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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1월 20

(수위소설)경국미희.txt

#아래 소설은 일반인이 거북해 할수 내용이 담겨 있을수 있습니다. BDSM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면 되돌아가기를 누르기를 바랍니다.

PRE번 호 : 1850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19일 22:18
등록자 : HALKO 조 회 : 510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1권 #1
/PRE

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많으시길래 무명언니의 허락을 받고 퍼왔습니다...(__)

====================






傾國の美姬 1卷 : 측실과 세 왕자
written by 未津摩せりん

때는 쇼호쿠력 804년.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황금의 나라 쇼호쿠는 문무양도로 출중한 희대의 왕과 세 명의 유
능한
왕자하에서 전에 없던 평화와 번영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1.
강한 군사력에 여러 나라들을 복종시키고 또 많은 금광을 가진 쇼호쿠는 빈부의 차도 심한,

화가 번영하고 부유한 국가였다.
그 번영의 집대성인 쇼호쿠의 수도 수련(水蓮).
고도가 낮은 산 위에 있는 이 도시는 사방을 높은 성벽으로 둘러싼 요새 도시다.
그 거리 중앙에 있는 것이 '금*궁'.
(역주 : *란 것은 원본이 이런 게 아니라 한자를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원본 갖고 계신

은 이 한자가 뭔지 가르쳐 주세요~~)
단번에 눈을 끄는 그 황금색의 궁전은 왕이 거주하는 나라의 중추였다.
"제 1왕자 미쯔이 히사시님. 도착하셨..."
"죄송합니다. 지각했습니다!"
종자가 등장 선언을 끝내기도 전에, 여성처럼 어깨에 흑발을 늘어뜨린 아름다운 청년은 숨
을 헐
떡이며 금*궁의 방으로 뛰어들어왔다.
그의 이름은 미쯔이 히사시. 국내 제일의 궁수이기도 하고 외교수완에도 뛰어난, 어느 쪽인

하면 예술가적 기질이 있는 제 1왕자이다. 또 그 화려한 용모는 양친의 미모를 남김없이 이
어받
았다고 하는, 각국의
공주들을 누르고 대륙 제일이라고까지 칭송받고 있었다.
"늦었어, 형. 벌써 회의는 끝났다구."
"어... 요헤이? 웬일이냐, 너? 언제 유학길에서 돌아온 거야."
1년만에 보는 동생의 모습에 미쯔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어제 저녁에. 형의 처소에는 귀국하자마자 곧장 인사하러 갔었는데 없었잖아."
"흐응. 그거 미안하게 됐다. 여기에서의 사적인 일로 바빠서 궁전에는 못 갔거든."
그러니까 요헤이의 귀국 날짜조차도 몰랐던 것이다.
"...사적인 일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미쯔이에게 요헤이는 어깨를 조금 움츠렸다.
미토 요헤이는 쇼호쿠의 제 3왕자다.
다른 두 왕자와 대조되게 가냘팠지만 무예에 뛰어나고 야성미 있는 매력적인 왕자였다. 그
때문
인지 젊은 병사들에게 압도적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있는 다른 하나의 왕자는-
"어쩔 수 없어. 사랑이 풍부한 형님은 자기 궁전에도 제대로 못갈 만큼 바쁘신 분이니까."

의자에 허리를 걸친 채로 빙글빙글 웃으며 말하고 있는 것은 제 2왕자
센도 아키라. 왕비의 외동아들이고 쇼호쿠의 왕태자이다.
붙임성 좋은 온화한 언행과 반듯한 용모는 여성에게 절대적인 인기가 있었고, 게다가 정치
적 재
능도 무용(武勇)도 뛰어나서 인망도 두터웠다.
차기 왕으로서 나무랄 데 없는 인물이었다. 특히 검 솜씨는 검성(劍聖)이라는 별칭을 가질
정도
로 훌륭해서, 그에게 대적할 상대는 현재 쇼호쿠 왕뿐이라고 한다.
세 왕자의 성이 각자 틀린 이유가 있다. 쇼호쿠 왕가는 모친의 성을 따르는 것이 관례이기
때문
이다.
미쯔이는 센도 옆의 비어 있는 가죽의자에 앉고는, 여관에게서 물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후우. 땀이 나네. 너희들 이외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면 뛰어오지도 않았어."
"형은 변함없이 자유분방하네. 뭐라고 해도 이번에는 위험할 것 같아. 아버지가 상당히 화내

것 같았다구."
요헤이의 말에 미쯔이의 얼굴이 흐려졌다.
"...역시 화났나?"
요헤이와 센도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상대는 그 일벌레잖아."
"제 1 왕자 정도 되는 분이 국왕이 동석하는 정기총회를 제꼈으니까 이번에는 분명히 문책
이 있
을 거야."
"잊어버렸단 말야!"
"그런 게 먹혀 들어가겠어? 유곽에서 자다가 늦었다면 구원의 여지도 없어."
미쯔이가 얼굴을 굳혔다.
"...센도. 너 그걸 어떻게."
"최근 수련의 한 유곽에 있는 경국(傾國)에게 돈을 쳐들이고 있잖아. 도시에서는 꽤 소문이


어. 형은 일단 왕자니까 유희는 정도껏 해."
"켁. 쇼호쿠 제일로 밝히는 너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진 않다."
"자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애정 사건을 세끼 밥보다 좋아하는 형 정도로 악취미는 아니
지."
"뭐야!? 연장자에게 이 무슨 건방진 소리냐!"
"그렇구나. 노인을 공경해야지. 경로정신은 소중한 것이야."
"센도!"
"화내면 주름살 늘어."
"그런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아-!"
"예예. 아, 그렇지. 아버님의 전언이 있어."
"-전언?"
"빨리 누군가를 맞아들여서 정착하라는데?"
미쯔이는 노골적으로 싫은 얼굴을 했다.
"쳇, 쓸데없는 참견이야."
"남색도 좋지만 언젠가 그것 때문에 몸을 망치게 될 거야. 열 여덟이 되어서 정실은 고사하

측실 한 명도 없다니 왕자로서 실격이야."
"차기 쇼호쿠 왕은 너잖아. 나도 요헤이도 제위를 계승하기에는 모친의 신분이 너무 낮아서

이지. 내 걱정할 틈이 있으면 왕태자인 네녀석 걱정이나 하지 그러냐."
"그러니까 나는 욕망에 눈뜨기도 전에 6세나 연상인 귀엽지도 않은 정비를 떠맡게 되었잖
아. 비
교적 자유롭게 상대를 선택할 수 있는 형이나 요헤이가 정말 부러워."
"미녀뿐인 측실들이 있는 네 녀석이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누구든 좋으니까 빨리 임신시켜
서 쇼
호쿠의 미래의 왕을 만들어! 네 녀석이 무정자증이라는 소문이 있으니까 내 결혼에 대해
주위
사람들이 필요이상으로 기대하고 있단 말이다!"
"그거야말로 쓸데없는 참견이야. 나는 아직 아이는 바라지 않아.:
"네 입장을 자각해라!"
"지금의 대사를 똑같이 되돌려 드리죠, 제 1왕자."
일발촉발인 두 사람에게 요헤이는 한숨을 쉬었다.
"적당히 해둬. 난 형들의 말다툼을 들으려고 여기에 남아 있는 게 아니야."
센도는 막내 왕자에게 얼굴을 돌렸다.
"요헤이, 너도 빨리 결혼하는 편이 나아. 막내인 제 3왕자에게까지 추월당한다면 형도 조금

애가 탈 거야."
"센도!"
"모처럼 걱정해줘서 고맙지만 나는 당분간 결혼할 생각 없어. 그래도 정말로 미쯔이 형은
서두
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이젠 젊지 않잖아."
"나는 아직 18세야!"
"아버님은 18세 때에 이미 세 아이의 아버지셨어. 그 장남이 18세에 독신이라."
막내에게까지 비웃음을 당하자 미쯔이의 얼굴이 분노로 빨개졌다.
"...요헤이! 네 녀석까지!"
짝짝!
"-자, 이 얘기는 여기에서 끝내자구."
손뼉을 치며 두 사람의 관심을 자신에게로 돌린 센도는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여관들에게
지시
했다.
"술 가져와. 그리고 뭔가 안주거리도."
"센도?"
"지금부터 형제들끼리 요헤이의 귀국축하를 하는 거야. 우린 그것 때문에 형을 기다리고 있

어."
"헤에, 그거 좋지. 유학 때의 얘기 들려줘."
미쯔이는 조금 전까지의 위험한 표정을 거짓말처럼 털어버리고는 웃는 얼굴로 요헤이의 옆
에 의
자를 끌어왔다.
말싸움은 일상사였지만 이 형제에게는 뒷끝이 전혀 없었다.
"혼한(魂漢)은 말야,
동양문화의 최고봉이야. 진귀한 물건이 산더미 같아."
"그쪽에는 미인이 많다고 들었어. 어땠어?"
센도의 질문에 요헤이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최고야. 센도 형 취향의 미인이 우글거려."
"헤에, 좋겠다. 내가 갔으면 좋았을 걸."
"왕태자인 네 녀석이 갈 수 있겠냐? 그보다 선물은? 명물인 유리 이마장식 사다 달라고 부
탁했
잖아."
"아, 어느 쪽이 좋은 건지 몰라서 이마장식만이 아니라 반지에서 머리장식까지 하나 가득
사왔
어. 어제 형 궁전에 갔을 때 두고 왔으니까 가서 찾아봐."
"그래?"
"고마워 하라구. 형을 위해서 반지를 고른 동생이라니, 나니까 이만큼 해주지. 연인에게 보
내는
선물이냐고 가게에서 묻길래 대답하기 곤란했단 말야."
고개를 끄덕이며 센도도 입을 열었다.
"적어도 형이 여자였다면 미인이고 술에 강한 누님이었을 거야. 그럼 자랑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리 미인이라도 남자라면 어쩔 수 없잖아."
"정말이지... 일부러 나한테 그런 거 부탁 안해도 장식품 같은 건 쇼호쿠에도 얼마든지 있잖
아."
요헤이의 그 말에 미쯔이가 아닌 센도가 고개를 저었다.
"쇼호쿠의 장식품이란 건 특산품인 금을 사용한 것뿐이잖아. 형의 제멋대로 늘어뜨린 흑발
에는
금도 좋지만 라피스라즐리 쪽이 돋보이니까. 그쪽은 세공도 정밀하기도 하고. 몸이 호리호
리한
형에게는 쇼호쿠의 중후한 금세공보다 동양의 섬세한 세공 쪽이 어울려."
"호오."
미쯔이는 감동한 얼굴로 동생을 보았다.
"과연 센도. 잘 알고 있구나. 옷 입는 취미도 요헤이에 비하면 센도
쪽이
훨씬 낫지. 미적감각은 확실해."
"어차피 난 뼛속부터 무인기질이니까."
미쯔이는 퉁명스럽게 고개를 돌린 요헤이의 얼굴을, 손을 뻗어 자기 쪽으로 다시 한 번 돌
렸다.
그리고 응시했다.
"형?"
"음-. 너 상당히 미남이구나. 아깝잖아. 좀 더 갈고 닦아라."
"우리 형제가 본바탕은 좋잖아."
센도도 미쯔이와 한패가 되어서 막내 왕자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좋아. 결정했다. 내일은 셋이서 요헤이의 옷을 사러 도시로 내려간다."
"찬성."
"뭐-!"
싫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인 요헤이를, 큰형은 거부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박력있게 째
려 보
았다.
"형님의 명령은 따라라, 막내야."
"일부러 거리에 안 나가도 상인을 궁전에 불러들이면 되는 거 아냐?"
"의외로 진귀한 물건은 못 보잖아."
"...형들과 뭐 사러 가면 오래 걸리니까..."
아직 껄끄러워하고 있는 막내동생에게 센도는 가볍게 웃어주었다.
"가끔은 괜찮잖아. 오랜만에 셋이서 놀라 나가자. 귀여운 여자애가 많이 있는 가게에도 데려

줄게. 형 정도로 화려하게 놀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조금은 그런 곳에 흥미를 가지는 편이

아."
"그냥 냅둬."
완고하게 승낙하지 않는 요헤이에게 미쯔이가 최후의 수단을 제시했다.
"따라오면 선물의 보답으로 망아지 한 마리를 양보해 줄게. 나의 애마의 자식이니까 발은
확실
히 빨라질 거야."
"엣
, 정말이야? 라일락의 망아지라고?"
요헤이는 무의식중에 벌떡 일어섰다.
라일락은 미쯔이의 아름다움에 감동한 동쪽 나라의 영주가 그의 전속말로서 헌상해온 백마
였다.
그 말을 몬 미쯔이가 수확제(收穫祭)의 승마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아직 기억에 새로웠다.
"나는 거짓말은 안해. 내게는 라일락이 있으니까 새끼까지는 필요없어."
"야호! 미쯔이 형은 도량도 커!"
"좋아. 결정했다. 내일은 하루 종일 같이 가는 거야."
얘기가 일단 일단락되자 여관들이 술병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대령했습니다."
"나 포도주가 좋아. 그 쪽 병 줘."
"역시 술은 쇼호쿠의 화주(火酒)가 제일이야."
이러니 저러니 말해도 국외에까지 알려져 있을 정도로 사이 좋은 이복형제들은 단숨에 음주

빠졌다.
그런 세 사람에게 술과 요리를 날라다 주는 여관들은 왕자들을 자랑스럽게 보며 조그맣게
속닥
거렸다.
"전하들은 정말 사이가 좋으시네요."
"그래. 왕도 훌륭한 분이시고 후계자이신 왕자님들도 각각 다른 분야에서 뛰어나신 멋진 분
들뿐
이잖아. 쇼호쿠는 태평천국이야."
제 1왕자 미쯔이 히사시 18세.
제 2왕자 센도 아키라 17세.
제 3왕자 미토 요헤이 16세.
그들은 쇼호쿠 왕을 지탱하는 세 개의 기둥으로서, 타국에까지 그 이름을
떨치는 쇼호쿠의 세 왕자였다.

PRE번 호 : 1851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19일 22:20
등록자 : HALKO 조 회 : 323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1권 #2-1
/PRE

2 .

(1)

쇼호쿠의 수도 수련은 낮에는 활발한 교역으로 건전하게 돈을 벌지만, 밤이 되어서 가로등
의 촛
불에 불을 당기면 황금의 도시가 또다른 모습으로 요염하게 떠오른다.
수련은 결코 잠드는 일 없는 불야성이다.
밤이 되어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큰길에서는 상점도 문을 닫지 않는다. 유곽과

박장이 일몰과 동시에 일제히 영업을 개시하고, 그 주변에는 노점이 매일 밤 늘어서 있었
다.
유곽과 도박장의 존재는 도시를 활기있게 하지만 치안이 나빠지면 험악해지기 마련이다. 하
지만
수련은 달랐다. 낮과 밤을 불문하고 헌병들의 감시가 골고루 미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

비교하면 월등히 안전하다.
그 수련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번화가의 중심에 쇼호쿠
제일의 유명한 유곽 '옥란(玉蘭)'이 있었다.

"경국! 경국! 하나미치 오라버니! 일어나세요!"
"으응?"
자기 방에서 자고 있었던 하나미치는 여동생 뻘이 되는 소녀가 몸을 흔들어대는 바람에 달
콤한
수면의 세계에서 깨어났다.
졸린 얼굴을 베개에서 떼어내고 눈을 슥슥 비볐다.
"이런 밤중에 무슨 일이야..."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여기는 유곽이에요! 밤은 쉬는 시간이 아니라 일하는 시간이라구
요!"
"그러니까 나랑은 관계없잖아. 난 손님은 안 받아도 괜찮으니까. 일이 없을 때는 해가 지고

서 잠자는 편이 제일 건전하고 건강하다구."
"일 있어요!"
"일...이라면 밋찌가 왔다는 거야?"
"그래요."
졸린 얼굴이 순식간에 밝은 미소로 바뀌었다.
밋찌, 즉 미쯔이는 유곽의 남창으로서 처음 가게에 나왔을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하나
미치
는 그의 전속이었다.
"매일 놀며 지내는 것도 전부 그분 덕택이니까요. 부디 열심히 일해서 은혜를 갚아 주세요."
"응!"
"오라버니!?"
소녀는 일어나서 달려나가려는 하나미치를 황급히 불러세웠다.
"그런 잠옷 차림으로 왕자님을 뵐 생각이세요?"
"우... 그치만 일부러 갈아입기도 귀찮아."
"귀찮다고요? 그런 모습으로는 가게의 이름에 먹칠을 합니다! 경국이라는 자각을 좀 가져
주세
요!"
"...그래도 기다리게 하면 그 제멋대로 왕자는 곧장 불쾌해한단 말야. 이대로 가는 쪽이 기
다리
게 하는 것보다 나아."
"그러니까 전부터 말
했잖아요! 예정이 없어도 이처럼 갑작스런 방문에도 잘 대응할 수 있도록, 가게문을 여는
동안
에 일어나서 차림새도 단정히 해주시라고! 오라버니에게는 경국이라는 자각이 너무 부족해
요!"
"이... 이봐!?"
하나미치보다 세 살 어린 가냘픈 소녀의 커다란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흘렀다.
"오라버니의 시중을 드는 제가 언제나 싫은 소리를 듣는단 말이에요. 오라버니는 저에 대해
서는
전혀 생각해 주시지 않는군요!"
"울지 마. 내가 잘못했어. 빨리 갈아입을게. 응?"
여자아이의 눈물에 무척 약한 하나미치는 황급히 소녀의 기분을 풀어주었다.
-사쿠라기 하나미치. 유곽의 정점에 선 남창만을 지칭하는 '경국'을 단지 반 달 만에 획득한

15세가 된 소년이다. 그리고 가게의 정점에 선 유녀의 칭호는 '경성'이다. 그 의미는 미색으

나라와 도시를 기울게 하고 멸망시킨다는 말이다. 그 이름은 유곽에서 일하는 자들에게 있
어서
최고의 명예인 것이다. 그러나 수련 최고의 규모를 자랑하는 유곽의 경국 하나미치는 특이
한 존
재였다.
경국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그늘에서 활동하는 요염한 분위기는 전혀 없고 보통 사람들과 비
교해
서 체격도 좋다. 언동은 거칠고, 숙맥에다가 성격도 밝아서, 존재 그 자체가 건전 중의 건전

표상같은 인간이었다.
분명히 말해서 유곽에서 몸을 파는 직업에 몸담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이

곽에서 싸구려로 팔려질 당시에는 전혀 기대받고 있지 않았다.
그랬는데 때마침 왕자라는 굉장한 특급 손님을 잡았기 때문에, 현재를 빛내고 있는 수련 제
일의
남창 자리에까지 오른 것이다.

옥란에서 제일 비싼 자리에 있는 최상층에는, 하나미치의 준비가 끝날 때까지 미쯔이의 상
대로
서 유곽의 기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미쯔이의 손에 들린 잔에 술을 따르는 것을 허락받고 달콤한 말을 속삭이며 몸을 밀착시키
는 미
녀는, 수련 제일이라고 칭송받는 값비싼 경성이었다.
다른 아름다운 남녀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있다.
미쯔이의 자리로 식사와 술을 운반한 하급 유녀 두 사람은 복도로 내려가서 황홀한 한숨을
내뱉
고 있었다.
"하아... 멋져. 미쯔이 왕자님과 경성이라니 남자와 여자라기보다는 미녀가 두 사람 있는 것

아."
"미쯔이 전하가 그토록 곱고 아름다우시니까! 주인님이 몸소 유곽으로 스카웃 하고 싶다고
진지
하게 말할 정도시잖니. 수련 전체를 뒤져도 그런 미모는 다시 없을 거야."
"미쯔이 왕자님의 어머님은 이 유곽의 전설의 경성이야. 아버님도 미의 화신이라고까지 찬
사받
는 분이시고. 저 아름다움은 혈통서가 붙은 진짜배기야."
"쇼호쿠 최고의 꽃으로 이웃 나라에까지 명성이 높은 미쯔이 전하를 이런 식으로 매일 뵐
수 있
다니 우리들은 행운이야."
"...있지, 미쯔이 왕자님과 함께 있으면 우리 경성도 빛이 바래 보이지 않아?"
"당연하지. 비교할 바가 못돼. 하지만 경성은 경국에 비교하면 훨씬 나은 거야. 경국인 하나

치 상과 미쯔이 왕자님이 함께 있는 모습은, 난초와 잡초를 같이 둔 것 같은 걸. 하나미치
상에
게 돈을 지불하는 게 전하라니 완전히 사기야. 세상이 잘못된 거라구."
"어째서 왕자님은 하나미치 상 따위를 마음에 들어하시는 걸까?"
"고귀한 분의 취향은 알 수 없는 거야."
"...어머,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아... 잠깐. 경국이라는 사람이 복도를 뛰어가고 있네."
"천박해. 뭐 얼굴만은 단정하다고 생각하지만 저 빨강 머리와 품위없는 모습은 경국으로서
치명
적이야."
치명적이라고 하는 경국은 소곤소곤 속삭이는 유녀 두 사람 앞을 전력질주하면서 지나갔다.



탕!
"밋찌!"
달려온 기세 그대로 하나미치는 조각한 목제 문을 온몸으로 열고 방안으로 뛰쳐들어왔다.
그 순
간 방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우?"
"경국!"
-켁!?-
질책하듯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하나미치를 부른 것은 이 계통의 정점에 위치한 여주인 이었
다.
보통은 표면에 스스로 모습을 나타내는 일이 드문 그녀가 신기하게도 거기에 있었다.
유곽의 전통과 규율로 시끄러운 주인 앞에서, 경국의 등장으로서는, 지나치게 파격적인 방
법으
로 입실한 것은 커다란 실책이었다.
황급히 융단 위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시... 실례하겠습니다. 옥란의 경국 사쿠라기 하나미치입니다. 오늘은 미쯔이 전하의 직속으

지명을 받았습니다. 노여움을 푸시고... 푸시고... 엇?"
- 이런. 밋찌밖에 손님을 안 받아서 정식 인사를 홀라당 잊어먹었어-
흘끗 주인을 보자 예상대로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노여움으로 떨고 있었다.
"...하나미치. 당신이란 사람은...!"
"면목 없습니다!"
이마를 마루에 박았다.
-크읏. 나중에 엄청 깨지겠다-
미쯔이에게 아양을 떨며 기대어 있는 경성에게서 작게 쿡쿡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경
성의
업신여기는 태도에 화를 낼 정신적인 여유조차 없었다.
그런 경직된 공기를 부드럽게 해준 것이 미쯔이였다.

"이제 와서 그런 딱딱한 인사는 필요없어. 됐으니까 이쪽으로 와, 사쿠라기."
"미... 밋찌...가 아니고 미쯔이 전하."
"밋찌라고 해도 좋아."
여주인을 의식하면서, 오라고 손짓을 하는 미쯔이에게 머뭇머뭇 다가갔다.
"앗..."
미쯔이의 눈앞까지 오자 팔을 잡혀서, 그 가슴에 안기게 되었다.
"늦었잖아. 날 기다리게 하다니 상당히 건방져졌어."
"미안. 옷 갈아입느라 늦어졌어."
"흐응, 그거야 네 사정이지. 분명 내가 올 때까지 쿨쿨 자고 있었겠지?"
"어떻게 그걸?"
"...역시."
"우."
"뭐, 자고 있었다고 해도 상관없어. 내가 마련해준 드레스를 단정하게 입고 왔으니까. 기다
리게
한 일은 용서해주마."
얇은 명주를 몇 겹 겹쳐서 만든 화려한 다홍색 드레스 자락에 입맞춤을 하며 미쯔이는 미소
지었
다.
"역시 네녀석에게는 화려한 색이 어울려."
"나는 천재니까 뭐든 어울려."
"그래그래. 공을 들인 보람이 있어서 기쁘다."
기분이 좋아진 미쯔이는 수줍어하는 하나미치를 무릎 위에 앉히고 옆에 있는 경성에게 훠이
훠이
손을 흔들었다.
"너는 이제 필요없다. 사쿠라기와 둘만 있을 테니까 다른 자들도 밑으로 내려가라."
그리고 잠시 생각하면서 주인에게 얼굴을 돌렸다.
"사쿠라기를 나중에 혼내지 마. 밋찌라고 부르는 것도 이 녀석에게만 내가 특별히 허락하는

야. 자유분방한 쪽이 마음에 들었으니까."
-오오♥-
혼날 각오를 하고 있던 하나미치는 얼굴을 폈다.
"알겠습니다. 부디 천천히 즐겨 주십시오."
유곽의 주인은 머리를 조아리고, 시선으로는 하나미치 이외의 인간에게 퇴장하라는 지시를
내렸
다.
"실례했습니다."
-우-
절세의 미녀라고 소문난 현재 경성은 일순간만 하나미치를 노려보고 제일 먼저 그 자리를
떴다.
그녀의 뒤를 이어서 여주인과 다른 사람들도 우아하게 떠나갔다.
전원이 사라진 후 미쯔이는 갑자기 멍해졌다.
"...뭐냐, 저 여자."
"뭐?"
"방금 전 경성 말야.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아양떠는 태도는 아직 용서해줄 수 있어. 손

앞에서 불쾌한 표정을 보이다니 경성으로서 실격이야. 저런 게 경성이라니 이 가게의 격도
떨어
졌군. 우리 새어머니가
보면 분명 우실 거야."
"그래도 미인이잖아. 밋찌가 나한테 큰돈을 들여주니까 일단 매상은 내가 가게 제일이긴 하
지만
원래 제일 잘나가는 건 저 사람이야. 밋찌의 변덕으로 전속이 되고, 일도 하지 않고 경국
자리
를 차지하고 있는 나는 다른 놈들이 보면 화나는 존재인 거지."
자신의 어떤 점이 미쯔이의 마음에 들었는지 아직도 알 수 없는 것은 하나미치도 마찬가지
였다.
경국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그녀들의 생각과 마찬가지였으므로 화내는 것도 납득할
수 있
었다.

"하지만 밋찌도 이상한 녀석이야. 내가 들어오니까 저런 미인을 무시하다니."
"헹. 저런 여자가 미인이라고? 너 누구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냐?"
"우?"
"나 자신이 대륙 최고의 꽃, 이 세상의 기적이다. 눈, 코, 입 전부 내 쪽이 월등해. 저런 여

는 내 옆에 둘 정도의 기량은 없어. 나와 함께 있어서 꿀리지 않는 미인은 이 유곽에서는
너뿐
이야."
"예예, 고마워요."
"그 말투는 뭐냐. 이 몸의 아름다움과 심미안을 의심하는 거냐?"
"특별히 그렇진 않아."
"건방지다. 에잇, 이렇게 해주마."
"아얏!"
갑자기 볼을 움켜쥐고 주욱 잡아당겼다.
"밋찌!"
찌릿 노려보자 이번에는 머리카락을 힘껏 당겼다.
"그만하라고!"
"날 믿지 않은 네가 나쁜 거야."
"못 믿겠으니까 그러지! 이런 상스러운 머리색을 한 내가 미인일 리 없잖아! 그거야 밋찌는

구보다도 아름답지만... 앗."
무심결에 본심을 말해버려서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핫핫핫. 내가 아름답다고! 그거야 당연하지! 역시 너는 귀엽구나."
"시꺼!"
전대미문의 왕자는 무척 즐거운 듯이 소리 높여 웃는다.
"웃."
- 갈수록 잘난 척이 심해지니까 지금까지 계속 말 안했는데!-
사실은 하나미치야말로, 미쯔이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미쯔이의 칠흑과도 같은 검은 머리와 눈동자는, 빨강 머리에 색소가 연한 눈을 가진 자신이

히 동경하는 것이었다.
"아, 그렇지. 동생이 가져온 선물 중에서 너에게 어울리는 게 있어서 가져왔다. 받아."
작은 상아색 상자를 가슴팍에서 꺼낸 미쯔이는 그것을 하나미치에게 쥐어주었다.
"열어 봐."
독촉하길래 상자를 열자 귀여운 꽃이 조각된 엷은 홍색의 반지가 들어 있었다. 섬세한 세공

반지는 한눈에 봐도 고급품임을 알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이거 밋찌의 선물이잖아. 이런 비싼 건 받을 수 없어."
'내 선물은 아직 궁전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걱정 마. 그건 내 새하얀 피부보다는 부드러

유백색 피부를 가진 사쿠라기의 피부에 더 어울려."
그렇게 단언하며 미쯔이는 반지를 상자에서 빼내 하나미치의 약지에 끼워주었다.
그리고 우아한 동작으로 정중하게 손목을 잡아 반지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밋찌."
"예상대로 딱 맞는군."
"......"
"받아주겠어?"
아름답고 단정한 얼굴을 정면으로 가까이 접근시키며 매력적으로 미소짓자 하나미치의 얼굴

붉어졌다.
하나미치는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다.
그러니까 이 아름다운 반지도, 그것을 주는 아름다운 사람도 곧장 좋아하게 되었다.
하나미치는 가장 아름다운 미쯔이를 제일 좋아했다.
"...
남자한테 반지를 받는 건 웬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반지를 밝은 곳에서 비춰보며 겸연쩍은 듯이... 하지만 너무나 기쁜 듯이 미소 지었다.
"...고마워."
"천만에."
미쯔이는 한층 더 활짝 미소를 짓고 하나미치를 껴안았다. 그리고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하
며-
"...이봐, 사쿠라기. 나한테 올 생각 없어?"
"응? 이제 안 올 거야?"
"그게 아니고 나의 측실이 될 생각은 없냐는 거야."
"츠... 측실!?"
와르르 쨍강!
동요한 나머지 미쯔이를 밀치고 뒤로 물러서는 바람에 등 뒤에 있는 감상용 도자기를 깨트
려 버
렸다.
도자기의 파편에 둘러싸인 하나미치는 입을 뻐끔뻐끔하며 미쯔이를 응시했다.
"어, 어째서... 나... 를!?"
한숨을 쉰 미쯔이는 엉덩방아를 찧은 하나미치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다친 데는 없어?"
"으...응."
빨개졌으면 몰라도, 창백해진 하나미치에게 미쯔이는 혀를 찼다.
"...저기 말야. 측실이라고 해도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어. 여기서 나를 기다리는 거나 궁전

서 나를 기다리는 거나 비슷한 거니까."
"완전히 틀려!"
"어디가?"
"밋찌는 바보야? 왕자의 측실이라고 한다면 일단 황족이잖아! 나는 가난한 농민 출신의 남
창이
야. 지금 이러는 것도 충분히 구설수에 오를 만한 일인데 왕자의 측실이라니 말도 안 돼."

"흥. 바보한테 바보라는 말 듣고 싶지 않아."
"아- 정말! 어쨌건 말야, 누구든 밋찌에게 어울리는 귀족 여자 중에서 측실을 선택해."
"고고한 귀족가의 아가씨 따위 피곤할 뿐이야. 너로 충분해."
"내가 뭘 하는 인간인지 알고 있잖아?"
"물론. 쇼호쿠 제일의 경국이지."
"경국이라고 해도 그건 밋찌가 나를 선택했으니까 그런 것뿐이야. 내 실력이 아냐!"
"내 마음에 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게 네 실력인 거야. 나 하나만으로도 이 부근의
높은
손님 천 명 이상의 가치가 있지.:
그것은 미쯔이의 자만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그래서 하나미치도 경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다.
"하... 하지만... 경국도 결국은 창부야..."
"우리 새어머니도 원래는 유곽의 경성이셨어. 왕비를 새어머니로 둔 왕태자 센도와는 달리, 내가

실로서 옥란의 경국을 맞이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아."
"...밋찌."
"정직하게 말해서 나도 괴로운 입장이야. 나는 18세잖아. 정실은 아직 괜찮더라도 적어도
측실
한 명 정도는 맞이하라고 주위에서 시끄럽거든.하지만 이제 와서 시끄러운 여자 따위 옆에
두고
싶진 않아. 너라면
나한테 방해는 되지 않겠지. 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
그리고 미쯔이는, 하나미치가 너무나 좋아하는 부드럽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포시 미소 지

다.
"게다가 너는 내가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한 오직 하나뿐인 사람이야."
"......"
행복하게...?
- 어... 웬지 굉장히 기뻐
...-
미쯔이의 말에 감동을 받았다.
"아니면 사쿠라기는 내가 싫어? 내가 싫어서 측실이 되기 싫은 거 아냐?"
"그럴 리가!"
미쯔이는 친척도 친한 인간조차 없는 지금의 자신에게 있어서 전부라고 말해도 좋았다.
"그래? 그럼 측실이 되는 건 아무 문제도 안 돼."
"...밋찌."
"이제부터의 일은 전부 내게 맡겨. 내가 책임지고 일생 너를 돌봐줄게."
-일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일생이라니... 나 계속 밋찌 옆에 있어도 되는 거야?"
"그래. 비(妃)가 되는 거니까 싫어도 옆에 있어야 돼."
"...거짓말 같아."
그런 일이 가능하다니.
"나 꿈을 꾸는 것 같아."
세상에서 제일로 좋아하는 사람의 옆에 계속 있어도 좋다니. 그런 일- 바라는 것조차 허락
받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하나미치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사쿠라기."
다정하게 끌어안겨서 입술이 천천히 겹쳐지는- 그때였다.
갑자기 방 바깥이 소란스러워진 것은.

PRE번 호 : 1852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19일 22:21
등록자 : HALKO 조 회 : 299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1권 #2-2
/PRE

(2)

"아무리 찾아도 너의 소식은 전혀 몰랐는데... 그것이, 유곽? 어째서 이런 일을...!"
"마을에서 도시로 이사간 뒤에, 촌사람인 아저씨가 처음 해보는 도박에 말려들어가서, 고리
대금
업자에게 큰 돈을 빚졌거든. 아저씨도 죽어버리고 돈도 못 갚아서 그 대신 내가 팔려온 거
야."
"너! 그거 웃으면서 얘기할 내용이 아니잖아! 빌어먹을, 그 대금업자 죽여버리겠어!"
분노로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주먹을 떨고 있는 요헤이의 모습에 대조되어서, 하나미치는

경쓰지도 않는다는 듯이 기분이 좋아 보였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 굉장히 싸서 빚의 절반 가격에도 못 미쳤어. 없는 데에서 털어봤

나오는 건 없으니까 나머지는 그냥 봐준 거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 녀
석들
좋은 놈들이었어."
"...하나미치. 너는 변함없이 너무 사람이 좋구나..."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리는 요헤이의 뒤에서 센도가 휘파람을 불었다. 웃으면서 두 사람의
얘기
에 끼어들었다.
"그렇더라도 놀랐어. 요헤이와 경국이 소꿉친구라니."
"놀란 건 내 쪽이야. 밋찌의 동생이 요헤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어. 그런데 요헤이야말로

떻게 왕자 같은 게 된 거야? 언제 와코오 마을에서 나왔어?"
"아아... 네가 이사가고 한 달도 안 되어서 궁정에서 마중 나왔어. 나 국왕의 낙윤(落胤)이었
대."
"낙윤이 뭐야?"
"높은 사람이 아내 이외의 신분 낮은 여자와 관계해서 낳은 아이를 말하는 거야. 17년 전
동방
전 때에 원정하러 온 국왕과 우리 새어머니가 관계를 가졌던 것 같아. 덕분에 지금 나는 왕자

하, 새어머니는 국왕폐하의 측실님이지."
"대단하다! 그거 출세한 거 아냐? 잘 됐다!"
하나미치는 눈을 반짝이면서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하지만 하나미치가 유곽에 팔려온 일로

다란 분노를 느끼고 있는 요헤이는 전혀 같이 기뻐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런 걸 말하고 있을 상황이 아냐. 어쨌든 이런 곳에 있을 필요 없어. 가서 낙적한 뒤에는

분간 내 궁전에-"
"기, 기다려, 요헤이!"
뛰쳐나가려는 요헤이를 황급히 불러세웠다.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요헤이가 돌아보았다.
"하나미치? 식대비는 신경쓸 필요 없어. 나 이래뵈도 지금은 왕자야."
"그... 그게 아냐."
하나미치는 뒤에 있는 미쯔이를 흘긋 보고 뺨을 붉혔다.
"...나 이미 낙적 결정됐어."
"에..."
하나미치를 뒤에서 끌어안은 미쯔이는 악동 같은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기뻐해 줘라, 너희들. 나도 드디어 측실을 맞게 되었다."
"측실이라니, 설마..."
요헤이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았다.
"맞아. 나의 측실은 사쿠라기 하나미치다. 오늘 낙적시켜서 이대로 내 궁전으로 데리고 돌아

거야."
"오늘이라고!"
커다란 목소리로 말한 것은 하나미치였다. 측실이 되지 않겠냐고 말을 꺼낸 게 바로 조금
전이
었는데 오늘!!
"아아. 짐은 나중에 사람을 보내서 가져오게 하면 되고 복잡한 일도 없을 거야. 오늘은 같이

아가는 거야, 하나미치 히메(姬)."
"히메!?"
"왕자의 측실이니까 히메지. 내게 수치를 주지 않도록 비(妃)답게 품위있게 행동해 줘."
"우, 우웃."
품위있게!? 비답게!?
- 너무 빨라!
이 순간 생각난 것은 그 말.
왕자의 측실이 되는 일을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하다니 나 무슨 짓 한 거야.
- 밋찌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할 거야. 하지만 비답게 행동하라는 건 정말로 무리야... 아...

니...천재니까 어쩌면 어떻게든 될 지도-
빨개졌다 파래졌다 하고 있자 미쯔이가 이마를 손가락으로 쪼았다.
"뭐하냐? 품위있게 행동할 필요 없어. 너는 너답게 행동해. 내가 사쿠라기의 몫까지 품위있
으니
까 그걸로 충분해."
"그... 그런가?"
안심하며 가슴을 쓸어내릴 때 요헤이가 굳은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하나미치."
"응?"
"정말로 너 미쯔이 형의 측실이 될 생각이야?"
요헤이의 진지한 눈빛을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수줍게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일단은 그럴 예정인데..."
"너 왕자의 측실이 된다는 의미를 확실히 알고 말하는 거냐? 한 번 해버리면 되돌릴 수 없
어."
"...그거 역시 어울리지 않아서 그런 건가... 하지만 밋찌가 나로도 괜찮다고 해서... 폐를 끼
치기도 했고..."
애매모호하고 요령 없는 하나미치의 대답에 요헤이는 크게 혀를 찼다.
"형에게 화대에 대한 감사를 느낀다면 쓸데없는 걱정이야. 원래는 형의 용돈도 너희들 국민

혈세니까. 부채감 느낄 필요는 없어. 지금이라면 내가 무조건으로 낙적시켜 줄 거고, 아직
생각
이 있다면 너의 옛날부터의 꿈이었던 국왕직속의 기사단에 넣어줄게. 무리해서 남자 버릇이

쁜 형의 것이 되려고 노력할 필요
는 없어."
"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분명 요헤이의 말에도 일리는 있어."
"밋찌!?"
요헤이의 차가운 어조와 내용에도 놀랐지만 미쯔이가 동의한 것이 놀라웠다.
"내게 부채감을 느끼고 측실이 되는 걸 승낙한 거라면 난 그런 놈 필요없어."
"!"
필요없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새파래진 하나미치에게 미쯔이는 확인사살을 가했다.
"무리해서까지 내게 올 필요는 없어. 내 측실이 되고 싶어하는 놈들은 이 나라만 해도 수두
룩하
니까. 사랑해 주지도 않는 놈을 일부러 측실로 할 정도로 궁하진 않아."
그 말의 진의를 찾으려는 듯이 요헤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럼 형은 하나미치를 측실로 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이야?"
"사쿠라기가 그 편이 좋다고 말한다면. 결정하는 건 사쿠라기야. 강제로 어떻게 하는 야만스

운 짓은 안 해."
"...나...나..."

하나미치답지 않게 쭈볏쭈볏하고 있으니 밀착해 있던 미쯔이가 간단히 하나미치를 놓았다.
"괴로울 정도라면 그만둬. 측실 자리를 차버려도 나는 화내지 않을 테니 좋을 대로 해."
"밋찌!"
지체없이 발걸음을 돌리는 미쯔이를 보고 하나미치는 창백해졌다.
"그럼 안녕. 두 번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행복해져라."
"싫어!"
어느 새 하나미치는 미쯔이의 몸을 뒤에서 껴안고 있었다.
미쯔이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왜 그래?"
"나 밋찌가 좋아! 헤어진다니 정말 싫어!"
"그런 건 알고 있어."
"...헤?"
싱긋 웃으며 미쯔이는 요헤이를 돌아보았다.
"그런 이유다. 이걸로 불평은 없지? 트집 잡지 말고 축복해 줘."
"......"
"이제부터 나의 사쿠라기를 잘 부탁한다."
이미 요헤이에게 반론의 여지는 없었다.
아직 뭔가 말하고 싶다는 듯한 기색을 한순간 보였으나 요헤이는 약간 머리를 흔들고는 무
뚝뚝
하게 중얼거렸다.
"...형이 말할 필요도 없어."
그리고 찌릿 미쯔이를 노려보았다.
"나의 소중한 소굽친구야. 울리면 용서 안해."
"울리는 게 당연하지. 나는 세계 최고의 미쯔이 히사시다. 남자와 여자를 울리는 것은 이 몸

전매특허 같은 거야."
"...하나미치. 역시 이건 그만둬. 절대로 추천 못하겠다."
"웃. 그치만 밋찌는 정말로
아름다워."

이미 한 번 아름답다고 본인에게 털어놔 버려서 말해버린 것이다. 이미 자신이 미쯔이를 아
름답
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은 없다.
"그러니까 어째서 지금 그런 대사가 나오냐고!"
"형의 얼굴에 반했으니까 다른 소행은 어떻게 되도 좋다는 말이겠지."
센도의 해석은 결국 정확했다.
요헤이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네가 얼굴 밝히는 건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일생을 결정해도 괜찮은

냐?"
"일생? 나 일생 밋찌의 얼굴을 보면서 살 거야."
황홀♥
"...하나미치."
요헤이는 울 듯한 얼굴을 했다.
"사쿠라기는 나의 아름답고 완벽한 얼굴을 좋아한대. 유감이다, 요헤이."
허리에 양손을 얹고 미쯔이는 소리 높여 웃었다.
"축하해, 형. 측실이라면 남자라도 문제는 안되니까. 솔직히 말해서 형에 대해서는 정말로
걱정
하고 있었어. 측실을 맞을 생각이 들다니 안심했어."
센도는 축복의 말을 해준 후, 미쯔이에게 살짝 귓속말을 했다.
"-다음은 정실이겠네."
"헛소리 하지 마. 나는 사쿠라기 한 사람으로 앞으로 5년간 버틸 거야."
"그건 무리야. 이걸 기화로 다음에는 정략결혼 문제가 거론될 걸."
"...너 상당히 즐거워 보인다?"
"딸린 처들이 많은 자들의 괴로움을 이제 알게 될 테니까. 굉-장히 기뻐."
"말해 두지만 사쿠라기를 너의 그 머리 빈 여자들과 일직선상에 두지 마."
"정실은 몰라
도 측실은 말이야 바보같은 쪽이 귀여워."

그날 밤 역대 1위의 화대를 자랑하는 경국이 옥란에서 낙적되어,남창에서 제 1왕자의 측실
로서
입궁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유래없는 행운을 얻은 경국이 그 후 쇼호쿠의 운명 자체를 크게 바꾸게 되는 것
은 그
때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PRE번 호 : 1853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19일 22:26
등록자 : HALKO 조 회 : 300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1권 #3-1
/PRE

3 .

(1)

미쯔이가 사는 백염궁(白焰宮)은 왕이 살고 있는 금염궁(金焰宮)에서 동쪽으로 말을 타고 반

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그리고 금염궁 서쪽에는 요헤이가 사는 흑염궁(黑焰宮)이 있다.
센도
의 경우는 왕태자라서 왕과 같은 금염궁의 한모퉁이에서 살아서 특별한 궁전은 없다(하지만

고 있는 '한모퉁이'만으로도 다른
왕자의 궁전보다 넓다)
맑고 푸른 담수호(淡水湖) 바로 옆에 세워진 백염궁은 쇼호쿠에서는 진귀한 대리석으로 만
들어
졌고, 외형적으로도 그리스 건축을 방불케 하는 멋진 궁전이었다.
이 아름다운 궁전에서 이제부터 살 거라고 했을 때, 하나미치는 대단히 감동했다.
본인도 자각하고 있지만 하나미치는 탐미주의자였다. 아름다운 것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무
척 좋
아했다. 보석에서 길거리에 핀 작은 꽃까지 수용범위도 넓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만난 인물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의 옆에 있을 수 있게 되고, 게다
가 지
금껏 본 중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산다고 듣자 너무도 행복했다.

늦은 밤에 미쯔이에게 이끌려 궁전에 막 도착해서 밤을 새느라 정오가 넘어서 일어났다.
하나미치는 여관이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정원에 나가서 손수 미쯔이의 침소에 장식할 빨
간 꽃
을 꺾고 있었다.
야행성인 미쯔이는 언제나 오후 때까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아직 수면중이었다.
"사쿠라기 군!"
"에... 아... 하루코 상!?"
생각지도 못하게 갑작스러운 하루코의 등장에 놀라서 꺾던 꽃을 전부 떨어트려 버렸다.
"여, 하나미치."
하루코보다 조금 늦게 요헤이가 나타났다.
"요헤이! 하루... 하루코 상이...!"
깜짝 놀라서 입을 뻐끔거리며 하루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하나미치에게, 요헤이는 쓴웃
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내가 데려왔어."
"-!"
"요헤이 상에게서 너에 대해 듣고 곧장 왔어. 이렇게 만난 건 6년만이지? 많이 컸구나."
눈물을 흘리는 하루코를 앞에 두고 반사적으로 얼굴이 불거졌다. 요헤이의 새어머니이고 마을
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하루코는 하나미치의 첫사랑의 여성이기도 했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청초하고 가련한 하루코의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 마을에 있을 때부터 미인이었지만 전보다 더 아름다워졌구나-
눈앞에 있는 것은 고귀하고 기품이 넘치는 아름다운 히메사마였다.
"지금껏 큰일이 많았지. 알아채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그런... 저 전혀 큰일은 나지 않았어요. 처음부터 밋찌가 잘해줬고요."
"그래... 사쿠라기 군이 미쯔이 전화와 만났던 것도 분명 하느님이 보우하신 거야. 미쯔이
전하
는 예술에 뛰어나신 멋진 분이지. 좋은 분과 이어졌구나."
"예!"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하나미치는 대단히 득의양양해 보였다. 옆에서 잠자

대화를 듣고 있던 요헤이는 조그맣게 웃었다.
"미쯔이 전하는 내 아들의 친형님이시지. 이제 우리들은 타인이 아니야. 이제부터는 같은 왕

의 측실. 마을에 있던 때 이상으로 사이좋게 지내자꾸나."
"에..."
- 하루코 상과 내가...-
"사쿠라기 군?"
"아..."
갑자기 눈물이 나와서 하나미치는 황급히 슥슥 눈을 비볐다.
"왜 그래. 벌써 형의 측실이 된 게 후회되는 거야?"
"아냐. 이제부터는 요헤이와 하루코 상과 이런 식으로 많이 만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
니...
웬지 기뻐서..."
"사쿠라기 군."
하루코의 희고 섬세한 손이 하나미치의 몸을 감싸 안았다.
"우리는 가족이 된 거야. 이제부터는 계속 함께 있는 거야."
"하루코 상."
감동을 잘하는 하나미치는 상냥한 하루코의 말에 더욱 더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다.
"-어? 요헤이와 하루코 짱 아냐?"
"밋찌?"
뒤돌아보자 자고 있을 미쯔이가 잠옷 차림으로 여성을 한 명 데리고 정원에 나와 있었다.
"어머! 인사도 못 드리고 멋대로 들어왔군요. 용서하십시오."
하나미치를 안고 있던 손을 풀고 하루코는 정중하게 예를 표했다.
"오랜만이에요. 하루코 짱이라면 언제든 대환영이에요. 내 측실과도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는

같고, 쓸쓸해할 사쿠라기를 위해서도 이제부터는 자주 얼굴을 내밀어 줘요."
"예, 감사합니다."
미쯔이는 아버지의 측실인 하루코를 농담조로 언제나 '짱'이라 붙여서 불렀다. 거기에 결코

의는 없고, 언제나 소녀 같은 그녀에 대한 찬사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루
코도 싫은 얼굴을 보이는 일은 없었다.
요헤이는 형 옆에 서 있는 미녀와 인사를 하고 나서, 미쯔이에게 말을 걸었다.
"일어났어? 아직 자고 있다고 해서 깨우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거 고맙구나. 그 상냥한 동생의 마음씀씀이도 쓸데없는 게 되버렸지만 말이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을 찌릿 노려보았다.
"이 사람이 하나미치를 만나게 해달라고 내 침소까지 와서 깨워버렸거든."
"-당신이 사쿠라기 하나미치?"
미쯔이 옆에 서 있던 곱슬머리의 미인인 '이 사람'이 입을 열었다.
"우?"
당당한 분위기의 유혹적이고 요염한 미녀는 빠른 발걸음으로 하나미치 쪽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하나미치의 바로 앞으로 와서 툭 떨어질 듯한 커다란 검은 눈을 반짝이며 가만히 바
라보
았다.
- 굉장한 미인이다-
하루코와는 완전히 다른 인상의 미녀 앞에서 하나미치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 정도의 완벽한 아름다움은 미쯔이를 제외하고는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녀

요염한 아름다움에 비하면 하나미치가 있던 유곽의 경성은 3류 이하였다. 지금까지 만난 여
자들
중 제일 미인이었다.
"어머... 울고 있네?"
"엣... 눈에 먼지가 들어간 것뿐이에요..."
울보인 주제에 강한 체하는 하나미치는 그렇게 말하며 얼버무렸다.
"모래?"
그녀에 뒤이어 다가온 미쯔이가 하나미치의 얼굴을 엿보고는-그대로 낼름 하며 눈물방울을
혀로
햝았다.
"우와아아!"
새빨개져서 크게 외친 하나미치는 등 뒤에 있는 화단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얼굴만이 아니라 귀도 손끝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눈에서는 다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사쿠라기?"
"우웃-! 사람들 앞에서 뭐하는 짓이야!"
"지금 와서 눈물 햝았다고 동요하는 거냐? 너는 내 측실이다."
"하... 하지만...아? 켁, 꽃이!"
처음으로 자신의 엉덩이 아래에 뭉개져 있는 꽃의 존재를 깨닫고 황급히 일어났다.
"...우... 꽃이 망가졌어..."
뭉그러녀 버린 10여 송이의 빨간 꽃.
홍조를 띤 얼굴이 순식간에 핏기를 잃고 낙담해서 양 어깨를 늘어뜨렸다.
"미안해... 밋
찌의 꽃을 망가뜨려 버렸어..."
"꽃? 신경쓰지 마. 많이 있으니까."
정원에는 많은 꽃이 심어져 있었고, 그나마 존재하는 나무도 전부 꽃나무였다. 넓은 정원
속에
서 단지 수십 송이. 전혀 표시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꽃은 진귀한 남국의 꽃을 품종개량한 비싼 꽃이라고 여관 옆집누나들이 말했어..."
꽃을 무척 좋아하는 하나미치는 꽃을 모으는 데 있어서 꺾어도 괜찮은 꽃과 안되는 꽃에 대

설명을 조금 전 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뭉개진 꽃은 꺾어서는 안되는 꽃.
눈물 어린 눈으로 고개를 푹 숙이는 하나미치에게, 미쯔이는 뭉개지지 않은 건재한 그 꽃을

송이 꺾어서 하나미치의 머리에 꽃아 주었다.
"괜찮다고 했잖아. 제일 비싸고 아름다운 나의 빨간 꽃은 너니까, 그 귀여운 얼굴을 눈물 때

에 망치지 마."
"...밋찌."
하나미치는 천천히 눈을 깜박이고, 피어나는 꽃처럼 활짝 미소를 지었다.
불타오르는 완벽한 신혼상태.

PRE번 호 : 1857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21일 01:05
등록자 : HALKO 조 회 : 288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1권 #3-2
/PRE

(2)

그런 두 사람의 좋은 분위기에 끼어든 것은 검은 곱슬머리의 미인이었다.
"어머어어! 너무 귀여워! 히사시! 너 언제부터 이렇게 취미가 좋아진 거니?"
"난 원래부터 취미 좋았어."
"정말이지... 이 기회에 그 말도 인정해 주마! 일부러 보러 온 보람이 있구나! 나 이렇게 귀

운 아들을 갖고 싶었어. 잘했다!"
미녀는 팔을 뻗어 미쯔이의 등을 팡팡 쳤다.
"밋찌, 이 사람은 누구야?"
"소개하지. 이쪽은 나의 새어머니 미쯔이 아야코. 쇼호쿠 왕의 제 1측실이고 전직 유곽의 경
성이
야."
"이 사람이 그 유명한!?"
유곽에 있을 때부터 그녀의 얘기는 몇 번도 더 들었다. 미쯔이 아야코라면 그쪽에서는 모르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전설적인 경성이었다.
"소문은 들었지만 대단한 미인이다... 과연 밋찌의 새어머니..."
"어머, 고마워. 하지만 새어머니라든가 아줌마라고 부르면 인정하지 않을 거야. 이름으로 불
러."
"쳇, 늙은이."
아야코는 퉁명스럽게 중얼거리는 미쯔이의 볼을 죽 끌어당겼다.
"뭐라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어머님께 그런 건방진 말이 어디 있니!"
"아파! 이 난폭한 여자! 당신이 그래도 여자야?"
"너야말로 그러고도 남자냐!? 그 새하얀 얼굴은 뭐니! 머리까지 기르다니 이런 여장 남자는

는 게 아니었어! 네가 연애 사태로 문제를 일으킬 때 마다 모친이 유녀니까, 라고 내 탓이
라고
말들을 하잖아! 두 번 다시 소동 일으키지 않도록 그 얼굴을 망가뜨려 줄까?"
"이...! 얼굴이 비틀어지잖아!"
"그... 그만두세
요, 아야코 상! 차라리 제 얼굴을 잡아당겨 주세요!"
"사쿠라기 하나미치?"
"밋찌의 얼굴에 만에 하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저, 조상님을 뵐 면목이 없어요."
...어째서 여기서 조상님이 나오는 거야.
눈을 부릅뜨는 필사적인 모습에 주위 사람들은 모두 말이 없어졌다.
그런 중 시녀에게 안내받은 다른 한 사람이 이 자리에 늘었다.
"전하. 센도 왕자님께서 행차하셨습니다."
"센도?"
"형!"
센도는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너는 언제나 갑자기 나타나는구나."
"사전에 알리면 방문 못하는 의례적인 사이는 아니잖아?...아, 이거이거. 쇼호쿠 제일의 꽃들

늘어서 있네."
부인들의 존재를 눈치챈 센도는 우아하게 인사했다.
"아야코 상에 하루코 상까지 여기 계셨습니까? 같은 궁전에 있으면서 아무 기별도 드리지
못했
군요."
"어머, 왕태자 전하. 저야말로요."
긴장한 얼굴로 꾸벅하며 사의를 표하는 하루코.
"어머, 한 달 만이구나. 가끔씩은 내게도 얼굴을 보여다오. 네가 오면 여관들이 기뻐하거든."
스스럼 없는 태도로 활짝 미소짓는 아야코. 같은 국왕의 측실인데도 센도에 대한 태도는 완
전히
틀렸다.
"요헤이도 와 있었구나. 마침 잘 됐다. 오늘 약속 기억하지?"
"약속...? 요헤이의 옷을 사러 가는 거 말이냐?"
"...망아지와 교환하는 조건으로 말이지."
퉁명스럽게 중얼거리는 요헤이의 말에 하나미치가 반응했다.

"망아지!?"
"어? 사쿠라기, 말에 흥미 있어?"
"응! 마차밖에 타본 적 없지만 멋있잖아! 백마 위에서 귀여운 여자아이와 승마하는 게 내
꿈이
야!"
하나미치의 이 말에 멍해진 것은 미쯔이였다.
"...너 이상한 꿈이 너무 많다. 조금은 내 처(妻)다운 소망을 가져봐."
"우?"
"측실인 네가 귀여운 여자아이와 승마를 하면 어쩌겠다는 거냐."
"멀리까지 타고 가서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손을 잡는 거야!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 키스!"
"...너 그건 나에 대한 바람기 선언이라고 받아들여도 되냐?"
콧김을 뿜는 미쯔이를 제외하고 모두 일제히 웃었다.
"우?"
"이봐, 괜찮다면 다음에 말을 사줄게. 귀여운 여자아이가 아니라서 미안하지만 같이 승마하

가자."
"정말이야, 센도!"
기뻐한 나머지 무의식적으로 존칭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센도는 신경쓰는 것 같지도 않았고

히려 기뻐하는 듯했다.
"-필요없어. 내가 받게 될 망아지를 양보할게."
"요헤이!?"
홱 요헤이 쪽을 돌아보는 하나미치.
"아아. 괜찮지, 미쯔이 형? 물론 오늘 물건 사러 가는 건 같이 갈게."
"오히려 고마울 정도다. 잘됐구나, 사쿠라기. 나와 나란히 백마를 타는 거야."
"와아, 고마워, 요헤이."
"원래는 미쯔이 형의 말이야. 감사라면 형에게 해줘."
"고마워, 밋찌!"
"그럼 나는 내년까지
마구를 선물해 줄게."
"센도!"
- 셋 다 너무 좋은 놈들이야! 세 왕자의 소문은 전부 진짜였어!-
볼을 붉게 물들이며 기뻐하는 하나미치에게 또다시, 센도의 선물이 주어졌다.
"오늘은 형의 첫 측실에게 헌상하려고 이걸 가져왔어."
손에 들고 있던 주머니에서 빨간 뭉치를 꺼내서 하나미치 앞에 펼쳐 보였다. 그 순간 빨간
천에
태양이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났다. 지금껏 본 어떤 천보다도 부드럽고 광택이 있어서 그것
을 만
져본 하나미치는 깜짝 놀랐다.
"이걸 나한테?"
"응. 진귀한 쯔나노의 천이야. 이 색깔은 쇼호쿠에는 아직 이거 하나밖에 없어. 아름답지?"
"우와! 이것만 있으면 밋찌의 의상을 몇 벌이고 만들 수 있어! 고마워, 센도!"
"...사쿠라기. 난 널 위해서 가져온 건데."
"그래! 그러니까 오늘부터 힘내서 밋찌의 옷을 이걸로 재봉해야지! 전에 유곽에서 만들었을

의 견본을 가지고 왔거든!"
센도에게서 천을 받아들고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행복한 사람이구나, 형은."
빙글빙글 표정을 변화시키는 매력적인 하나미치를 보고 있으니 주위의 인간도 따라서 따스
한 기
분이 들었다.
"정말로 히사시에게는 과분한 측실이구나. 이걸 기회로 바람기를 고치고 하나미치와 잘 살

라."
"당치도 않아요!"
아야코의 말을 듣고 목소리를 높인 것은 하나미치였다.
"밋찌처럼 굉장한 미인을 독점할 수 있을 리가 없어요! 그런 과분한 일을 어떻게!"
"그래, 과분해."
동의하며 미쯔이
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밋찌는 한 사람의 인간에게 묶일 것 같지 않아! 어쨌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이니
까!:
"괜찮은 말을 하는구나. 과연 나의 측실이다."
"맡겨줘!"
"쿡! 귀여운 녀석! 나에게 연인이 몇 명 생기더라도 널 제일 소중히 해줄게!"
"밋찌!"
모두의 앞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았다.
"...정말로 사쿠라기는 형을 좋아하는구나..."
"...그러지 않았다면 단념하지도 않았지."
"뭐...?"
뒤돌아본 센도가 본 것은 하나미치들을 바라본 채로 쓸쓸하게 미소짓고 있는 동생의 모습이

다.

PRE번 호 : 1858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21일 01:07
등록자 : HALKO 조 회 : 262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1권 #3-3
/PRE

(3)

그날 오후 세 명의 왕자를 따라 거리로 나가는 것을 허락받은 하나미치는 지금까지 살아온

가장 즐겁고 멋진 하루를 보냈다.
아름다운 물건을 많이 사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연극이라는 것도
보았
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만나게 된 이후 처음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좋아하는 미쯔이의 옆
에 죽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의 자신이 바라는 최고의 행복.
"오늘은 너무 재미있었어."
시녀를 물리치고 손수 미쯔이의 옷 갈아입는 것을 도우면서, 하나미치는 여전히 흥분이 가
라앉
지 않은 상태로 멍하니 말했다.
"특히 왕자 역인 놈, 멋있었어."
"어디가 멋있다는 거냐. 우리들 진짜 왕자 쪽이 훨씬 멋지지."
"그거야 그렇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야. 나는 극중의 왕자를 말한 거야. 이렇게 해서 적을 휙

무찌르는 점이-"
"사쿠라기!"
"앗."
흥분해서 미쯔이의 머리에서 제거한 머리장식을 휘두르고 있었음을 깨닫고 황급히 손을 내
렸다.
"미안, 혹시 맞았어?"
"두세 번."
"미안..."
미쯔이는 목을 푹 수그리는 하나미치의 머리를 웃으면서 어루만졌다.
"건강하다는 증거니까 괜찮아. 오늘은 기뻐해준 것 같아서 고맙다. 내일부터 당분간은 밀리

밀린 결제와 공무 때문에 신경써줄 수 없을 거야."
"...혹시 오늘은 날 위해 일을 쉬어준 거야?"
"그렇진 않아. 원래 오늘은 놀러갈 예정이었어."
"그래... 나 밋찌에게 절대 폐끼치고 싶지 않아. 날 위해서 무리하면 용서 안할 거야."
"하지 마. 누가 말려? 당분간 놀아줄 수 없지만 삐지지 마."
"삐질 리가 있어? 말도 받았고 밋찌의 옷을 만들어야 하니까 나도 바빠."
"옷 만드는 얘기 말인데 무리하지 마. 난 전속 재봉사가 많아. 일부러 네가 내 옷까지 만들

요는 전혀 없어."
"그런 놈들과 날 동격으로 보지 마! 난 재봉도 천재적이야! 설마 내가 만든 옷을 입을 수
없다
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지?"
"한 번 네가 만들어준 옷이 있었지. 네 솜씨가 좋은 건 잘 알고 있어."
"그럼 또 만들어도 난 괜찮아."
미쯔이는 대범하게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거드름을 피우며 명령했다.
"좋아. 만들어. 즐겁게 지켜봐 주겠다."
"응!"
씩씩한 하나미치의 대답에 다시 한 번 미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째려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깔았다.
"-그런데 너 하루코 짱에게 반한 거냐?"
"엣?"
"그녀를 대할 때와 나를 대할 때의 태도가 상당히 틀리던데?"
"나...나..."
"미안하지만 말야. 나는 상대가 바람 피우는 건 용서 못해. 나는 괜찮지만. 나는 자존심이
높고
마음이 좁거든. 나라는 남자가 있으면서 바람 따위를 피우면, 계획적으로 함정에 몰아넣어
서 둘
다 암흑 속에 묻어버릴 지도 몰라."
"하루코 상은 그런 게 아냐. ...지금 내가 좋아하는 건 밋찌야."
"그래? 뭐 당연한 일이지."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미쯔이는 엷게 웃었다.
나는 바람피우겠지만 너는 안된다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가혹한 말이었다. 하지만 하나미
치는
분노도 놀라움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점이 미쯔이가 미쯔이다운 점이고, 자신이 가
지고
있지 않은 이런 류의 자신감에 매료된 것이다.
하나미치는 몰래 미쯔이를 보고 볼을 붉혔다.
- 하아. 너무 아름다워-
그 정도로 눈부시고 긍지 높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고 하나미치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름답고 우아한 언행, 정말 사소한 약점도 방심도 없는자신감 넘치는 멋진 왕자님. 이 모
든 것
은 천재인 자신에게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존경의 눈으로 미쯔이를 보았다.
- 밋찌는 절세 미녀의 대명사인 황금의 여신님과 같을 정도로 아름다워-
그리고 여신님과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는 자신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요헤이들이 들었다면 착각도 자유라며 머리를 쥐어뜯을 감상을, 하나미치는 넋을 잃고 생각
하고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하나미치는 얼굴을 밝히기 때문에 미쯔이에게 푹 심취해 있었다. 평상복으로
갈아
입은 미쯔이는 흔들의자에 허리를 걸치고 몸을 흔들며 하나미치에게 카시스 술을 가져오라
고 시
켰다.
하나미치는 잔에 카시스 술을 따르면서 생각했던 일을 솔직하게 입밖에 내었다.
"밋찌가 아름다운 건 아야코 상을 닮아서였구나. 나도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새어머니였으면

더 나았을 텐데."
"아직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거냐? 나는 네게 지지 않을 정도로 얼굴을 따진단 말이다."
"뭐!? 그럼 왜 날 소중히 대해주는 거야!?"
"...네가 미인이기 때문이라고는 생각 안하는 거냐?"
맥이 풀려서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미쯔이에게 응?
하고 머리를 갸웃거렸다.
"...뭐어 네 말대로 우리 부모님은 확실히 미형이야. 하지만 나는 아버지보다도 새어머니보다

훨씬 아름다워."
"아버지... 밋찌의 아버지는 쇼호쿠를 이렇게까지 크게 만든 유명한 그 왕이지? 하지만 왕이

녀였던 아야코 상과 대연애를 하고 보통 평민이었던 하루코 상과 대연애를 했으니까 유능한

만이 아니라 굉장히 로맨틱한 사람이네."
"하아? 아냐아냐. 절대로 아냐."
미쯔이는 싫은 얼굴을 하고 오른손을 옆으로 흔들었다.
"우리 아버지는 덤덤하다고 말하기 이전에 감정이 완전히 결여된 인간이야. 우리 세 사람의

머니 중 누구에게도 애정 따위를 느낀 적은 없어. 여자란 아이를 만드는 도구 이상으로 생
각하
지 않아, 정말로. 로맨틱이란 단어는 아버지와 제일 거리가 먼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아이 만드는 도구까지는 아니겠지."
"아아, 센도의 새어머니는 달라. 왕비는 료난 왕의 여동생 피오나 님이야. 그녀만은 료난과의

화를 유지하기 위한 정략적 이용가치도 포함되어 있지. 하, 처음부터 끝까지 나라의 일만
생각
하는 멋진 아버님이야."
야유와 경멸이 담긴 어조에 하나미치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기 아버지를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좋지 않아."
"하지만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어. 왕위를 잇기 위해서 10살 때 여자를 배운다는 의미에서
신하
가 추천한 유곽의 경성과 잤고, 운이 좋게도 한 번에 내가 생겼지. 그래서 새어머니까지 낙적
시켰
고. 그 뒤로 아야코와는 한 번도 육체관계는 없었던 것 같아. 센도의 새어머니와도 애정 없이

략결혼을 해서 한 명 아이를 만들고 그걸로 끝. 요헤이는 나라를 받쳐주는 세 명의 왕자가
필요
해서 수를 맞추기 위한 거였어. 숙박하고 있던 마을의, 임시 시녀를 하고 있었
던 하루코 짱을 함께 원정가 있던 왕비로 착각을 해서 손을 뻗치고, 박정하게도 아침까지
다른
사람이라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아. 게다가 결국 있을까 말까 한 정력을 다 써버려서 그

래 약 15년 동안 전혀 여자를 안지 않았어. 믿어지냐, 그런 인생이?"
"밋찌는 그런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궁전에서는 상식이야. 게다가 아야코가 여러가지로 가르쳐 줬거든. 그 사람의 정보는 확실
해."
"왕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모두 말하고 있는데."
"일은 그 이상 없을 정도로 잘 해내니까 겠지. 가신이나 국민들에게 있어서는 멋지고 이상
적인
왕이야.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버지의 노는 모습이라든가 웃는 얼굴조차 한 번도 본 적

없어. 그 사람은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전혀 몰라. 살아있는 신이거나 세속과 떨어진 남
자야.
일만 하는 살아 있는 인형이야.
"...웬지 굉장히 가엾다."
"그래? 자신의 신념대로 살아가니까 행복한 사람인 것 같은데?"
"왕도 그렇지만... 아야코 상과 하루코 상, 왕비님도 모두 불쌍해..."
그 말에 미쯔이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새어머니는 어쨌든간에 하루코 짱과 피오네 왕비는 그런 아버지라도 사랑하고 있어서,
아버
지가 돌아봐주지 않으니까 분명 불행할 거야. 특히 왕비는 그게 원인으로 정신병을 앓아서
지금
은 궁전 깊숙한 곳에서 전혀 나오지 않아."
"왕비님이!?"
"외국에 홀홀단신으로 시집왔는데 마음의 유일한 지주여야 할 남편은 10년 이상 공무 이외
에는
말조차 걸지 않았으니까. 저 센도의 새어머니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화사하고 섬세한 여자니
까 무
리도 아냐."
- 말도... 걸어주지 않는다고? -
자기 남편에게 그런 취급을 받는 건 어떤 기분일까. 하나미치는 자신과 입장을 바꿔서 생각

보고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리고 가만히 자신의 남편에 해당되는 미쯔이를 바라보았다.

"사쿠라기?"
이름을 부른 것만으로도 웬지 뺨이 붉어진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다시
생각
해 보고 알았다.
"...밋찌."
"응?"
"나 밋찌의 측실이 되서 너무너무 행복해. 정말로 행복해."
"-그럼 좀 더 행복하게 해줄게."
진심으로 말하는 하나미치에게 미쯔이는 웃으면서 입을 맞추었다. 하나미치에게 있어서 미
쯔이
옆에서의 생활은 환희에 가득찬 최상의 하루하루 바로 그것이었다.

PRE번 호 : 1859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21일 01:09
등록자 : HALKO 조 회 : 257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1권 #4
/PRE

4.

그 날 미쯔이는 일 때문에 집무실에 틀어박혀서, 하나미치는 심심했다. 본래대로라면 시녀
가 하
는 일인 미쯔이의 시중을 전부 자신이 했기 때문에 모처럼 한숨을 돌린 오후였다. 그래서
선물
받은 망아지를 데리고 혼자 외출하기로 했다.
본래대로라면 왕족의 측실이 혼자 산보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안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하나
미치가 그런 걸 알 턱이 없었고 궁전 사람들에게 나간다고 말을 해야 한다는 것조차 떠올리

못했다.
"어이, 저녀석 누구야?"
백염궁의 문지기가 말고삐를 끌고 당당히 정문으로 나가려는 하나미치를 발견하고는 또 한
명의
문지기에게 물었다.
"아아, 쟤? 새로 들어온 신입이야. 잡역일 하는 녀석이지. 아까 빨래하는 거 봤어."
조금 전까지 하나미치는 필사적으로 만류하는 하인들을 완강히 설득해서 자신과 미쯔이의
옷을
빨고 있었던 것이다.
제 1왕자의 총애를 받는 경국 출신의 측실이라는 것을 말단 문지기가 알 리가 없었다.
문지기의 옆을 지나칠 때, 하나미치는 그들을 향해 싱긋 웃었다.
"근무 수고해요!"
"아, 너도 열심히 해라."
"힘내라, 신입."
"응!"
문지기의 착각 덕택에 하나미치는 백염궁을 자유롭게 왔다갔다 할 수 있는 몸이 되었다.


한 사람과 한 마리는 수련의 중심을 관통하는 금사천(金砂川)유역의 인적이 드문 상류까지
도착
했다.
하나미치는 기대에 부풀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말에 올라가서-떨어졌다.
"어?"
다시 한 번 오르려고 했지만 다시 떨어졌다.
"으응...? 어떻게 된 거야, 천재타로. 왜 날 태워주지 않는거야?"
곤혹스러워져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며 말을 바라보았다.
"천재타로...?"
다시 만지려고 하자 말은 귀를 눕히고 외면했다.
"이잇."
그 태도가 자신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울컥 했다.
"이렇게 되면 오기로라도 타 주겠다!"
이렇게 외치며 뛰어올라 말의 머리에 팔을 세게 두르며 매달렸다.
"어때? 떨어트릴 수 있으면 떨어트려... 봐-!?"
"히힝!"
"우앗!"
갑자기 뒷발이 들려졌다고 생각했는데 천재타로는 맹렬한 기세로 강을 향해 질주했다.
"힉! 죽겠다!"
수심이 얕은 강을 물방울을 날리며 가로질러가, 건너편 강가의 수풀에 뛰어들어 갑자기 정
지했
다. 그 반동으로 하나미치는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떨어졌다. 부드러운 물체 위로.
"...아야야..."
머리를 부딪쳤다. 눈앞이 어찔했다. 붕붕 머리를 옆으로 흔들고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켰다.
"...응?"
그때 처음으로 자신 밑에 깔려 있는 살아 있는 따뜻한 존재를 깨달았다.
"!"
그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안 순간 머리가 갑자기 굳어졌다. -...이런... 엄청난 기세로 떨어졌

데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깔려버린 남자에게서 급히 내려와서 걱정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이... 이봐, 괜찮아?"
눈앞에서 닫힌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어떤 녀석이든 간에 나의 잠을 깨운 놈은 용서할 수 없다."
퍽 하고 명치를 걷어찼다.
"웃...!"
멋진 발차기였다. 숨이 막히고 눈에서 불꽃이 튈 정도였다. 이렇게 강한 발차기를 당해본
것은
몇 년만 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순순히 감동할 상황이 아니었다. 순간 하나미치의 얼굴이 분노로 새빨개졌
다.
"이 자식! 잘도 쳤겠다!"
곧장 싸움준비를 갖추고 남자에게 주먹을 날렸다. 자신은 마을에 있을 때 부근 마을에까지
이름
이 알려진 유명한 골목대장이었다. 싸움은 가장 자신이 있었다.
그대로 두 사람은 고수준의 치고받기로 직행했다.

- 잇! 이 자식! 날 이렇게까지 애먹이게 하다니!-맨손 싸움은 거의 호각.
약 10분 후, 퍼런 멍투성이가 된 두 사람은 털썩 풀 위로 쓰러졌다. 그대로 호흡을 가다듬
을 때
까지, 두 사람의 헉헉거리는 거친 호흡소리만이 주위에 들렸다.
잠시 후 먼저 입을 연 것은 하나미치 쪽이었다.
"-너 어떤 놈이냐."
"...루카와 카에데."
"나는 사쿠라기 하나미치다."
"......"
"......"
그 뒤로 회화가 두절되었다.
-...응?-
그때 네 개의 하얀 다리가 우아한 발걸음으로 하나미치의 바로 옆을 지나쳐갔다.
"천재타로!"
모든 악의 근원인 천재타로의 존재를 생각해내자, 하나미치는 크게 외치며 벌떡 일어났다.
-!-
천재타로는 흠칫하며 노골적으로 몸을 돌리고 기세좋게 도망쳤다.
"기다려, 이 자식아!"
황급히 뒤를 쫓아 자신도 달려갔다.
"아-!"
천재타로는 분수를 뛰어넘어 장미 정원으로 돌진했다. 갈기갈기 찢어진 빨갛고 노랗고 하얀

잎이 강한 바람에 산산히 흩날렸다.
"야, 뭐하는 짓이야! 멈춰!"
하나미치의 쇳소리에 더욱 더 겁먹은 말은 한층 격하게 날뛰었다, 이미 정원의 장미는 되돌

수 없을 만큼 엉망이 되어 있었다.
- 또 저질렀다...-
어제도 백염궁의 귀중한 꽃을 못쓰게 만들었는데, 오늘은 어제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되는 손
해를
누군가의 정원에
입히고 말았다. 힘없이 주변을 둘러보고 그곳이 잘 보살핌을 받은, 규모만 해도 백염궁의
화원
에도 뒤지지 않는 훌륭한 정원임을 확인했다.
그것을 마구 파괴하고 있는 천재타로.
손쓸 방법이 없어진 하나미치는 털썩 풀밭에 무릎을 꿇었다.
"...이봐."
어느 새에 바로 뒤로 온 루카와가 말을 걸었다.
"...루카와. 여긴 누구 정원이야?"
"내 정원이다."
방금 전까지 싸우고 있던 상대라는 것을 자각하고 더욱 더 고개가 수그려졌다.
"...변상할게."
"할 수 있냐?"
하나미치의 초라한 복장을 보고 하는 발언이다. 루카와의 어조에는 웬지 모르게 깔보는 듯
한 울
림이 있었다.
"...응."
미쯔이에게 부탁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 밋찌에게는 절대 폐를 끼치지 않기로 맹세했는데 벌써 이런 일에 휘말리다니...-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흘렸다.
-...도움 되는 점 하나 없이 폐만 끼치고, 난 최저의 측실이야 -
하나미치는 너무나도 슬퍼졌다.
- 젠장. 왜 천재타로 녀석, 그렇게 날 싫어하는 거야...-
아침에 끌고 나와서 강가로 올 때까지는 굉장히 잘 따라주었으면서.
"...에?"
풀죽은 얼굴로 천재타로를 보고 있던 하나미치는 갑자기 눈을 크게 떴다.

"천재타로!"
하얗고 아름다운 네 개의 다리에 빨간 선이 몇 줄 그어져 있는 게 아닌가.
"저녀석, 장미 가시에..."
천재타로의 상처를 알아챈 순간 주저 없이 장미가 밀집한 가운데로 뛰어들어갔다.
팔다리가 가시에 찔리는 것도 아랑곳 않고 천재타로 쪽으로 뛰어가 말의 다리 밑에 있는 장
미를
맨손으로 뽑아낸 뒤-
"우웃-!"
천재타로를 번쩍 들어올렸다! 망아지라고 해도 말이다. 당연히 하나미치보다 체중이 무겁다.
- 밋찌와 요헤이가 준 말이야! 이 이상 상처입히면 안돼!-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비틀비틀 장미 속을 뚫고 트인 장소로 나와서 말과 함께 쓰러졌다.
루카와와의 싸움으로 안 그래도 멍투성이었다. 그리고 지금 현재, 옷은 찢어지고 발은 상처
뿐인
영광. 게다가 땀에 쩔은 몸으로 직접 흙 위에 쓰러져 버렸기 때문에 얼굴까지 진흙범벅이
되었
다. 꼭 부랑아만도 못한 모습이었다.
"말을 들어올리다니 제정신으로 할 짓이 아냐. 네녀석은 멍청이냐?"
"잇..."
- ! -
째려보기 위해 루카와를 올려다본 순간 하나미치는 입을 쩍 벌렸다.
바로 옆에 와서 자신을 보는 루카와의 얼굴!
- 이... 이녀석은 뭐야. 굉장히 아름답잖아!-
지금까지 잘 보고 있지 않아서 몰랐지만 그는 흠 하나 없는 완벽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흑요석 같은 가늘은 눈동자. 암흑으로 실을 뽑은 듯한 칠흑의 머리칼은 그다지 공을 들인
것 같
지 않았는데도 풍성한 직모였다.
피부색은 새하얘서, 쇼호쿠 사람으로
서는 누구도 비할 바 없는 용모를 갖추고 있었다.
- 믿을 수 없어- 이녀석 얼굴은 밋찌에게도 지지 않아 -
하나미치는 루카와의 얼굴에만 시선이 못박히는 자신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리고 웬지 루카와까지 자신을 응시하는 하나미치의 얼굴을 진지하게 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잠시 시간이 멈춘 것처럼 서로를 응시했다.
- ...웬지, 아름답지만 기분이 나빠 -
너무나, 지나치게 단정한 얼굴은 만든 것 같은 무기물로 보였던 것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억지로 얼굴을 돌리려고 했을 때 탁한 하늘이 걷히고 태양이 모
습을
드러냈다.
"!"
한눈에 봐도 신분이 높은 인간이란 것을 알 수 있는 많은 황금 장식품이 마치 루카와의 신
체의
일부처럼 반짝였다.
마치 황금의 화신과도 같은. 빛과 함께 루카와의 무기물적인 차가움은 전부 떨려져 나갔다.
그리고 남은 것은 신과 같은 미모-
"우...웃."
- 이 녀석, 인간이야!? 설마 쇼호쿠의 수호신인 황금의 여신님인가...?! -
거기까지 생각하자 핫 하고 놀랐다.
- 이녀석은 남자야. 여신님일 리가 없지-
하나미치는 지금까지 인간 같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미쯔이밖
에 없
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런 존재는 인정할 수 없어.
-...마음에 안 들어-
"...멍청이?"
"마음에 안 들어!"
상반신을 벌떡 일으키며 으르렁거렸다.
"황금의 여신님과 제일 가까운
건 밋찌야! 네가 아냐-! 분수도 모르고 밋찌에게 대항하다니 괘씸한 녀석! 너 따위는 밋찌

발치에도 못 미쳐!"
"-밋찌가 누군데."
"황금의 여신님이다!"
"멍청이. 쇼호쿠의 수호신인 황금의 여신의 이름은 밋찌가 아니라 미피티다. 자기 나라 여신

이름도 만족스럽게 발음 못하냐."
두 사람의 회화는 서로 물어뜯는 식은 전혀 아니었다.
일방적으로 하나미치가 루카와를 노려보자, 그 뒤쪽에서 느릿느릿 천재타로가 정신을 차렸
다.
그리고 몸을 뒤집었다.
"앗, 임마! 또 도망갈 거냐!"
하나미치가 황급히 천재타로의 머리에 달라붙으며 그 등에 기어올랐다. 갑자기 천재타로는
싫어
하며 날뛰기 시작했다.
"이... 잇, 천재타로! 이렇게 되면 오기로라도 오늘 중으로 네 놈의 근성을 고쳐주마!"
"근성을 고칠 쪽은 네녀석이다."
무뚝뚝하게 중얼거린 루카와는, 망아지의 등에 달라붙어 있는 하나미치의 목덜미를 잡아서
끌어
내렸다.

"무슨 짓이야, 루카와!"
"너 설마 이거 타고 여기까지 온 거냐."
"그렇다!"
"그래서 말에서 떨어져서, 낮잠을 자고 있는 내 위로 떨어졌다고?"
"미안하다! 승마는 해본 적 없으니까 서툴러도 어쩔 수 없잖아! 승마 정도야, 천재니까 오늘

으로 잘 탈 수 있다는 걸 보여주지!"
지금까지 하나미치는, 승마는 연습할 필요 없이 누구든 간단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

다. 거리에서 보는 말타는 사람은 모두 아무 어려움 없이 자유롭게 말을 몰고 있었기 때문
이다.
"그러니까 넌 멍청이인 거야."
겁먹은 망아지의 등을 어루만져 주면서 루카와는 한숨을 쉬었다.
"...네 녀석 말인가?"
"응."
"이 녀석은 좋은 말이야."
"흠. 뭐어."
말을 칭찬해주자 단순하게도 기쁜 얼굴을 했다.
"그리고 너는 최악의 주인이야."
"뭐라고!"
"이 녀석은 아직 사람을 태울 나이가 못 돼. 태어나서 1년도 안 된
망아지에게 너 같이 커다란 놈이 타면 최악의 경우에는 폐마한다. 너 이런 좋은 말의 미래
를 망
칠 생각이었냐?"
"...!"
두둥!
몰랐다.
전혀 몰랐다.
- 그래서 이걸 줬을 때, 이 녀석과 먼 곳까지 승마할 수 있는 건
내년이라고 밋찌가 말했었나-
미쯔이는 바쁜 왕자님이니까 할 일이 많아서 당장은 멀리 승마하러 갈 수 없는 거라고, 하
나미
치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보자가 안장도 등자도 없이 탄다는 건 근본적으로 무리야."
"...그치만 그건 내년에 사준다고... 앗."
바꿔서 말하면 올해에는 필요없다는 말.
"...멍청이?"
갑자기 하나미치의 두 눈에서 눈물이 그렁거리더니 아래로 주르륵 떨어져 내렸다.
- 어째서 이런 간단한 일을 눈치채지 못했지-
"나... 전혀 천재가 아냐-"
그저 굉장한 바보자식이야.
시선을 맞춘 것만으로도 천재타로는 루카와의 뒤로 재빨리 숨어 버렸다. 망아지의 겁먹은
동그
란 눈에 하나미치는 더욱 더 상처입었다.
"...미안해. 무거웠지. 가혹한 주인이라서 미안... 흑..."
머리를 숙이자 한층 심하게 눈물이 흘렀다.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작게 떨고 있는 하나미치
의 머
리에, 잠시 후 루카와의 손이 올라왔다.
"...울지 마."
"...카와..."
"몰랐다고. 그럼 어쩔 수 없지."
"하지만..."
"특별히 어디가 고장난 건 아냐. 다음부터 조심하면 돼."
아까까지 툭툭 내뱉는 듯한 말투에서 완전히 돌변한, 거짓말처럼 부드러운 어조. 그래도 눈
물이
멈추지 않는 하나미치를, 루카와는 그 머리를 끌어당겨 가슴에 안았다,
"...카와...?"
"조금 혼란스러운 기색을 보이자 무뚝뚝한 어조로 루카와가 말했다.
"...내일부터 매일 아침 여기에 와라. 승마 가르쳐주지."
"에...?"
의외의 말에 갑자기 눈물이 쏙 들어갔다.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루카와를 응
시하자 그는 갑자기 시선을 되돌렸다.
"너는 너무 무지해. 모처럼 좋은 말이 네 녀석의 무지 때문에 폐마되는 건 봐줄 수가 없어."
"...너 날 가르칠 수 있을 정도로 잘 하냐."
의심스러운 눈빛.
"요 수 년 동안은 나가지 않았지만 이전에는 몇 번 승마대회에서 우승했다."
"승마대회? 수련에서 1년에 한 번 하는 그거!?"
"아아."
- 수련의 승마대회는 쇼호쿠에서만이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강자가 찾아오는 커다란 대회
잖아 -

작년에는 천재타로의 아버지 라일락을 타고 미쯔이가 우승해서 국내 제일의 칭호를 받았다.

작년에는 센도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루카와는 훨씬 더 전에-?
"이...이잇. 여우 같은 얼굴을 한 주제에 말을 타다니 건방져."
투덜투덜 욕설을 내뱉었지만, 루카와의 제안은 매력적이었다.
- 내년에 밋찌가 승마하러 가자고 할 때 내가 말에 타지 못한다면 서운해할 거야. 열심히
연습
해야 돼-
바쁜 미쯔이의 손을 빌리는 것보다 루카와를 이용하는 편이 좋은 방법이다.
- 저런 곳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어. 이 녀석은 분명 대단한 부자라서 시간이 남아돌 거야-
염려할 필요 없다.
"어쩔 거냐. 나와 연습할 거냐, 말 거냐."
"...해준다면 상관없지만 나 오전중에는 빨래랑 청소로 바빠. 식사 시중도 들어야 되고."
미쯔이의 식사를 접시에 담아 나르는 일도 자신이 일임하고 있었다.
"너, 어디 하인이냐?"
"...그런 거지."
측실은 정비가 아니니까 하인 같은 거겠지... 아마. 게다가 남자인 자신이 남자의 측실이라

걸 알면 경멸당할 것 같아서 싫었다.
"그럼 저녁이다. 탑의 종이 네 번 울리면 여기로 와. 문지기에게는 말해둘 테니까 다음부터

정면으로 들어와."
"알았어. 천재타로랑 함께 꼭 올게."
루카와가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혹시나 해서 말해두지만 그 망아지는 데려오지 마."
"응? 그럼 나 어디에 타?"
"...너 아직까지도 이 녀석을 탈 셈이냐. 이렇게 겁내고 있는데."
"그렇지만 다른 말은 안 가지고 있어."
"연습용 말 정도는 이쪽에서 준비해 주겠다."
"그래? 미안하네."
활기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시선을 루카와에서 망아지에게로 옮겼다. 머뭇머뭇 천재타로에
게 손
을 뻗치자, 경계는 풀리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았다. 안심해서 미소를 지은 하나
미치
는 망아지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오늘은 정말 미안해. 네가 싫어하는 일은 이제 절대 안 할게. 많이 연습해서 너에게 어울리

멋진 남자가 될 거야. 그러니까 너도 빨리 자라 줘. 그리고 나랑 같이 놀러가자."
말이 통했는지 천재타로는 하나미치의 얼굴을 낼름 핥았다.
"천재타로!"
하나미치의 얼굴이 확 밝아지더니 만면에 미소를 가득 지었다.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며
천재
타로를 끌어안는 하나미치에게 루카와가 작게 중얼거렸다.
"...방금 전까진 울더니 이제는 웃고 있군."
"...우."
"너 정도로 감정기복이 심한 놈은 처음 봐."

그것은 미쯔이에게도 많이 듣는 말이었다. 루카와까지 그렇게 말한다면 정말 그런가 보다.
하나
미치는 납득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천재니까. 보통 사람과는 차원이 완전히 틀리니 당연하지."
"...천재? 네가?"
"그래!"
"...멍청이."
"뭐!? 또 멍청이랜다! 아까부터 듣자듣자하니까 천재에게 무슨 발칙한 소리를!"
"멍청이 같은 말과 행동. 멍청이 같은 빨간 머리. 머리부터 발끝까지 멍청이 도배."
"윽!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다-!"
분노로 새빨개져서, 하나미치는 다시 루카와에게 덤벼들었다.


해가 저물고 난 뒤, 하나미치는 백염궁에 돌아왔다.
하나미치의 부재를 알아챈 여관의 보고를 듣고, 하나미치를 걱정하면서 장시간 동안 기다리

있던 미쯔이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에 흙투성이로 돌아온 하나미치를 본 순간 안색이 변해서
노성
을 질렀다.
"사쿠라기!"
"...응."
"그 꼴은 뭐냐! 으악! 귀여운 얼굴에까지 상처를 입었잖아!"
짤랑짤랑짤랑짤랑!
미쯔이는 금으로 된 종을 흔들었다.
"누가! 누가 없느냐!"
"-미쯔이 님!"
드문 미쯔이의 커다란 목소리에 시녀가 열 명 이상 급히 달려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의사를 불러! 뜨거운 목욕물도 준비하고!"
"예!"
여관들은 고개를 조아리면서 급히 방을 나갔다.
"밋찌. 나 의사는 필요없어. 이런 건 핥으면 나아."
"바보야! 만에 하나 상처가 남으면 어쩔 거야! 게다가 피부 방지대책도 없이 햇볕 아래에
나간
것만으로도 제정신이 아냐! 기미라도 생기면 이 세상의 비극이야!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제

소중한 건 아름다운
외견이야!"
"...그건 좀 틀린 것 같은데...?"
"뭐라고! 너 주인님에게 말대답하는 거냐1? 세상물정도 모르는 주제에!"
"세상 물정 모르는 건 밋찌야. 혼자서는 옷도 못 갈아입으면서."
"이런 건방진!"
"아얏! 얼굴이 땡겨!"
볼을 꽉 꼬집혀서 바둥거리고 있자, 백염궁 전속 궁정의사가 급히 도착했다.
"미쯔이 전하. 어인 일로."
"나의 측실이 상처를 입었다. 닥치는 대로 해줘. 쓰라린 약을 듬뿍 사용해."
하나미치의 볼을 놓고 의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우웃."
털썩 하며 융단 위에 앉은 하나미치는 빨개져서 얼얼한 볼을 감싸고 분한 듯이 미쯔이를 올
려다
보았다.
"...내 얼굴이 늘어나면 밋찌 탓이야."
"뭐!? 아직 나한테 반항적인 태도를 취할 셈이냐!? 오늘은 저녁밥 없다!"
"너무해! 횡포야!"
"아무 말도 안 하고 몰래 빠져나가서 나를 걱정시킨 것도 모자라서 그런 꼴로 돌아왔으니
당연
한 업보지."
"왜 말 안 하고 나가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내가 어떤 꼴을 하고 있건 밋찌랑은 관계없잖
아!"
"-관계없다고?"
빠직 하며 미쯔이의 이마에 퍼런 심줄이 돋았다.
"너는 내 측실이잖아. 아니냐? \./++"
- 이런. 정말로 화나게 해버렸다-
어떻게 되버린 거야.
불유쾌한 걱정은 끼치지 않는 좋은 측실이 되기로 맹세했는데 화나게 했다.
"미... 밋찌. 저기..."
"익숙해지지 않는 궁전 생활을 고려해서 한 달 동안은 널 위해서 백염궁에서 자주려고 했는

이젠 나도 몰라. 다른 놈에게 갈 거야."
"잘 다... 다녀오세요..."
콰당!
의자를 쓰러트리며 미쯔이가 일어섰다.
확실히 말해서 지금의 하나미치의 대사는 실수였다. 여기서는 말렸어야 했다. 당황해서 두
사람
의 설전을 듣고 있던 의사가 경련이라도 일으킬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런이런, 왕자님. 제 1왕자이신 분이 측실님 한 분의 언동에 평정을 잃으시다니 보기 흉
하십
니다. 좀 더 어른스러워지셔야 합니다. 어떠십니까. 왕께서도 추진하시고 있는 일이고 하니

슬 정실을 맞이해서 아이를 한 명이라도-"
"정실!? 측실 한 명으로도 이렇게 손이 가는데 이 이상 늘리라고?"
내뱉듯이 말하고 미쯔이는 정말로 궁전을 나갔다.
"...밋찌."
망연자실해지고... 그리고...
"츠, 측실님!? 울지 말아 주십시오!"
"밋찌가 화났어어!"
하나미치는 엉엉 울었다. 이렇게 해서, 지금껏 어디에 있었는지, 왜 상처를 입었는지 미쯔이

게 말할 기회조차 잃어버렸다.


그 무렵 루카와는 다른 궁전에서 하나미치와 만날 시간을 내기 위해 내일 할 예정이었던 일

처리하고 있었다.
하나미치의 예상과는 아주 달리 그는 국내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바쁜 남자였던 것이다.
"실례하겠습니다."
방과 복도의 간막이인, 금사로 섬세하게 자수된 천을 들추고 측근인 쿠와타가 들어왔다.
"무슨 분부라도?"
서류에서 시선을 든 루카와가 입을 열었다.
"승마용이고 초보자용의 얌전한 말을 한 필 준비했으면 한다."
"초보자... 라고 하셨습니까?"
쿠와타가 괴이쩍은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루카와는 어떤 난폭한 말이라도 탈 수 있는 승
마의
달인이었다.
"말이라면 마굿간에 줄리어스 산의 좋은 군마가 들어왔습니다만..."
"방금 보고 왔다. 마굿간에 있는 말은 전부 안 돼."
"설마 루카와 님이 손수 그런 지저분한 장소로 가신 겁니까!?"
"그래."
"저에게 말씀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직접 확인하고 싶었으니까. 혈통이나 다리가 빠르거나 한 건 아무래도 좋아. 타고 있는 인
간을
떨어트리거나 절대 상처입히지 않는 성질이 온순한 말을 준비해."
그 말에 다시 한 번 쿠와타는 놀랐다. 루카와는 지금까지 성질 난폭하고 사나운 말을 좋아
했다.
쿠와타는 감히 의문을 제기할 정도로 생각 없는 자는 아니었다. 오른손을 가슴에 대며 머리

조아렸다.
"알겠습니다. 그런 말을 찾아서 내일 아침까지 여기로 대령하겠습니다."
"여기가 아니다. 내가 사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금사천 유역의 별궁으로 데려가."
"알겠습니다."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쿠와타는 물러갔다.
다시 혼자가 된 루카와는 서류 묶음에 다시 시선을 돌렸다. 깃털 펜을 쥐었을 때, 하나미치
와의
싸움에서 입은 손바닥의 찰과상이 눈에 들어왔다.
- ...멍청이-
문득 먼 곳을 보듯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입가에 작은 미소 같은 것을 떠올렸다. 오늘 만
난, 난
폭하고 얼빠진 녀석이고, 그리고 아름다운 빨간 머리의 위세 좋은 소년.
- 그런 멍청이는 처음 봐-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자신에게 부딪쳐오는 인간은 한 명도 없었다.
게다가 그 선명한 빨강.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이 아름답다고 알려진, 미인 산출국으로 명성
이 높
은 쇼호쿠에는 거의 대부분의 인간이 그랬지만, 하나미치는 달랐다.
- 색깔 있는 머리가 그렇게 아름답다니 생각도 못했어-
흑발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한 고대의 시인에게 보여주고 싶다. 울고, 웃고, 화내고,

고, 다시 웃는다. 어느 새에, 빙글빙글 변하는 하나미치의 많은 표정은 그날부터 루카와의
머리
속을 크게 차지하게 된 것이다.


PRE번 호 : 1860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21일 01:10
등록자 : HALKO 조 회 : 280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1권 #5
/PRE

5.

다음날이 되도 미쯔이는 백염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미쯔이가 없는 백염궁에 자기 편은
없었
다. 직접 입밖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하인들은 고귀함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는 하나미치를

자의 측실로서 인정하지 않았고, 두 사람의 싸움을 기뻐하기조차 했다. 그것을 민감하게 피
부로
느끼면서, 오늘의 하나미치는 한층 더 타격을 입고 있었다.
상심한 하나미치는 그런 상황에서도 약속을 깨트릴 수 없어서 저녁이 되자 루카와와 만나기

한 장소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늦었어."
"...아?"
문 쪽에서, 무장한 남자 둘을 뒤에 거느린 루카와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종이 네 번 울리면이라고 말했는데 벌써 다섯 번 울렸다. 뭘 듣고 있었던 거냐."
"...미안."
"멍청이?"
답지 않게 솔직하게 사과하는 하나미치를 보고, 루카와는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
고 가만히 얼굴을 보고는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일 있었냐."
"특별히..."
"말해."
"큰일은 아냐. ...어제 좀 실수를 했거든."
"실수라니, 일 때문에?"
"응. 눈치 없는 말을 해서 주인을 화나게 했어."
그렇게 말하며 무리하게 웃었다.
- 그런 건 전혀 큰일이 아냐. 분명 밋찌는 곧 웃으면서 용서해줄 거야. 이렇게 끝날 우리들

아냐-
그렇게 믿자고 머리 속에서 몇 번이고 반복했다.
하지만- 혹시. 혹시 용서해 주지 않는다면...?
갑자기 하나미치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어...라..."
급히 눈을 비볐지만 일단 흘러내린 눈물은 잘 멈춰주질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필사적으로 소리를 죽이며 울음을 삼키고 있자 잠시 후 루카와가 내뱉듯이
말했
다.
"너의 주인은 누구냐."
"...아?"
"
내가 한 마디 따끔하게 말해두겠다."
"바, 바보! 너 같은 말단이 직접 상대할 신분의 사람이 아냐!
상상만으로도 무섭다. 미쯔이는 자신의 적에게는 인정사정 없었다.
"그러니까 누구냐. 널 울린 그 녀석은."
"...헤?"
- 나를 울려?-
이상한 듯이 루카와를 본 하나미치는 그가 화내고 있음을 곧장 눈치챘다. 표정 변화는 그다

없었지만 분명 조용히 화내고 있었다,
"...왜 네가 화내는데."
"......"
그렇게 묻자 루카와도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그의 표정이 분노에서 곤혹으로 변했다.
"루카와?"
"...모르겠어. 하지만 웬지 울컥해서."
"이상해."
"...이상...한가."
두 사람은 가만히 서로를 바라보았고 잠시 후 동시에 웃었다. 하나미치는 아직 눈물이 마르

않은 눈을 닦으면서 크게 웃었다.
그리고 루카와는- 루카와의 입가에만 걸린 미소를 보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루카와의 웃는 얼굴이 얼마나 드문지, 하나미치는 아직 몰랐다.
- 역시 분하지만 이녀석의 얼굴은 밋찌에게도 지지 않아-
이때 처음으로 하나미치는 솔직하게 그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오늘 여기에 올 수 있어서 기
쁘다
고 생각했다.
"내가 나빴던 거라고 방금 말했잖아. 우리 주인은 나쁘지 않아.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내가
운 건 혼이 나서 슬픈 게 아니라 그 사람을 화나게 해서 슬펐던 거야."
그리고 크게 기지개를 폈다.
"그래서 말야. 그
런 좋은 사람이 이제 용서해 주지 않을 거라 생각하니까 웬지 눈물이 나오더라고."
"그럼 내가 너를 용서해 달라고 그 녀석에게 말해 두지."
진심으로 그렇게 말해주는 존재에게, 설령 그것이 무리한 일이더라도, 하나미치는 정말 기
뻐졌
다.
루카와와 얘기를 하니까 어제부터 계속 암울했던 마음이 서서히 밝아졌다.
- 할 수밖에 없어-
미쯔이를 만나서 확실하게 사죄해서 그래도 용서받지 못하면 궁전을 나갈 것이다.
원래부터 어울리지도 않았던 측실의 자리 자체에는 아무런 미련도 없다.
"멍청이?"
"모처럼 그렇게 말해준 건 고맙지만 그 제안은 사양할게. 웬지 이렇게 얘기를 하니까 기분
이 밝
아졌거든. 그보다 말을 보여줘. 난 말을 타려고 여기에 온 거잖아."
"아아."
루카와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돌아보았다.
"너, 마굿간에서 그 말 데려와."
인형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남자 중 한 사람이 머리를 조아리며 집
뒤로
모습을 감추었다.


"...이게 뭐야."
루카와가 준비해준 말은 하나미치의 예상과는 거리가 먼, 지독히도 볼품없는 것이었다. 여
위어
있고, 색깔은 얼룩. 몸 곳곳에 동그랗게 탈모 자국이 있고 갈기는 버석거렸다.
"...이거 정말로 네 말이야?"
눈길도 전혀 안 줄 정도의 이런 작고 더러운 말이?
"아아."
"...믿을 수 없어. 여기는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절반도 안 되지만 굉장히 멋있는 저택이야.

주인이라면 좀 더 좋은 말을 가지고 있어도 되는 거잖아. 사실은 너 집만 멋있고 내적으로
는 쪼
들리는 거 아냐? 일도 안 하고 노니까 무리도 아니겠지."
"잔소리 말고 빨리 타."
"쳇. 정말, 기대 밖이야."
루카와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그 말을 고른 것을 모르는 하나미치는 자기 멋대로 말하고
있었
다. 하지만 일단 말에 올라보자 즉시 불만을 잊어버리고 열중했다. 집터 한쪽에는 말을 달
리게
하기 위한 방목장이 있었다. 하나미치는 그것을 보고 무척 놀랐지만 이 나라의 상류계급에
서는
그다지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하나미치가 모를 뿐이지만 백염궁만 해도 이 이상의 설비를 갖추고 있었고, 저쪽에는 정원
안에
서도 수평선까지 보이는 규모의 호수가 한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세계에서 제일 유복한 나
라라
고 알려져 있는 만큼 쇼호쿠 부자의 스케일은 엄청났다.
그러나 특권계급에서 자라나지 않은 하나미치는 이 저택을 봐도 백염궁을 봐도 놀라움의 연
속이
었다.
"아래를 보지 마. 앞을 봐. 다리 힘을 빼고 뒤꿈치를 내려."
거만한 태도로 팔짱을 낀 루카와는 하나미치를 정확하게 지도하고 있었다.
"-좋아. 그대로 천천히 한 바퀴 돌고 와. 날도 저물었으니까 그걸로 끝낸다. 식사 준비 해두

으니까 이게 끝나면 먹고 가."
"응! 머리부터 발끝까지 미안하네!"
연습을 시작하고 한 시간 가량. 떨어졌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활기에 넘치는 하나미치는
얼굴
가득 웃으면서 말하고는 말을 몰기 시작했다.
"-무척 습득이 빠르신 분이군요."
루카와의 옆에서 조용히 있던 쿠와타가 감탄한 얼굴로 말했다.
"직접 지도하고 싶어지시는 것도 웬지 알 것 같습니다. ... 하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루카와 님은 무척 바쁘신 분.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 일하시는 데에 지장이 생깁니다. 허락

신다면 내일부터 그의 지도는 제가 맡겠습니다."
"필요없다. 다른 놈이 할 수 있는 일은 밑에 채인다. 나도 이 정도의 휴식은 취해도 좋겠
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전심전력을 다해 자신이 처리하는 루카와의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
서 쿠와타는 놀랐다.
"확실히 루카와 님에게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그런 일을 생각해 주시다니 기쁘기 그지없습
니다
만...그..."
"뭔가 문제가 있는가."
"아니요... 단지 이렇게 해서 정말로 휴식이 될지 의문이라..."
"쓸데없는 걱정이다."

"옛. 주제 넘는 말을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는 쿠와타를, 그러나 루카와는 처음부터 보고 있지 않았다. 루카와의
시선
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말을 잘 몰고 있는 한 사람에게 향해 있었다.
- 이상해. 어째서 저런 멍청이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거지?-
하나미치의 웃는 얼굴 하나만으로도 하루의 피로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마음 깊은 곳에서

이 쑤시고 두근두근하고 의미도 없이 단지 보고 있을 뿐인데, 지금껏 체험한 적이 없을 정
도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나 대체 왜 이런 거지-
어제 만났을 뿐이고 대화도 거의 한 것도 아닌데.
하나미치는 자신에게 있어서 이용가치가 전혀 없는 단순한 평민이었다. 그런데도 처음 만난

순간부터 뭘 하든간에 하나미치에 대한 것만을 생각해 버렸다. 어제와 오늘을 합쳐도 아직

시간밖에 함께 보내지 않았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믿겨지지 않았다.
- 왜 그런지 몰라도 저 녀석이 있는 곳만 색이 입혀지는 것 같아-
그리고 하나미치가 없는 세계는 무채색의 세계.
"...멍청이... 사쿠라기 하나미치..."
루카와의 얼어붙어 있던 정지한 세계가 지금 급격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루카와와 하나미치는 식사를 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호화로운 홀로 이동했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고급 유리창에는 보름달이 보이고, 주위에는 하얀 백합꽃이 숨이 막

정도로 대량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리고 불빛은 많은 촛대에 꽃혀 있는, 꽃이 그려진 양
초뿐.
이 홀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예술품처럼, 무척 아름다웠다.
"그 말, 처음에는 최저로 못생긴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보니까 굉장히 애교가 있더라.
이름
은 뭐야?"
백염궁에서의 식사에도 뒤지지 않는 호화로운 요리를 루카와와 둘이서 먹는 하나미치는 기
분이
최상이었다. 그런 하나미치를 온화한 눈으로 바라보는 루카와는 하나미치만큼 식사를 진행
하지
않고 있었다.
"...좋을 대로 불러."
"흠, 이름이 없어? 어쩔 수 없군. 그럼 이 천재가 이름을 붙여주지!"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곧장 얼굴을 확 빛냈다.
"여우타로!"
"...너, 그다지 취미가 좋진 않군."
천재타로에 이어 여우타로라니. 센스는 최악.
"뭐라고! 좋은 이름이잖아!"
삐져서 볼을 부풀리는 하나미치의 표정을 보자, 루카와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급사로서
옆에 대기하고 있던 측근 중 한 사람이 루카와의 표정을 눈치채고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루카와의 이런 행복해 보이는 표정은 지금껏 누구도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거겠지."
"웃. 웬지 마음에 안 드는 말투잖아."
투덜투덜 거리면서 커다란 고기조각을 휙휙 입에 넣었다. 잘 먹는 모습은 보고 있는 쪽도
기분이 좋을 정도였다. 식사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고 하나미치를 봄녀서 카시스 술만
을 마시고 있던 루카와는 하나미치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려, 뭔가를 하인에게 가져오게
했다.
"너에게 줄게."
"응? 뭐야, 그거?"
"승마복이다. 원래는 내가 입으려고 만든 거니까 체격이 큰 네게도 맞을 거야. 내일부터는
그걸 입고 여기에 와."
건네받은 금색 승마복을 펼치며 하나미치는 눈을 반짝였다.
"굉장해! 번쩍번쩍 하잖아! 정말로 고마워!"
"...그러냐."
하나미치의 반응에 기분이 좋아져서 루카와의 표정이 한층 더 온화해졌다.
"뭔가 답례라도 해야지."
"신경쓰지 마. 가난뱅이에게서 뭔가 받는 건 처음부터 생각도 안 했어."
"난 가난뱅이가 아냐!"
- 나는 왕자의 측실이야!-
부끄러워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하나미치는 이전과는 달리 결코 빈곤하지 않았다. 하
지만 가지고 있는 귀금속 등 모든 것은, 원래 미쯔이에게서 받은 것들뿐이다.
- 밋찌에게 받은 것을 루카와에게 줄 수는 없지-
"음... 아, 그렇지."
"멍청이?"
"내가 가져온 짐 어디에 있어?"
물어보자 곧 장 시녀가 가져와 주었다.
하나미치는 그 보따리에서 겉옷을 꺼냈다. 센도가 준 천을 항상 들고 다니면서 짬이 날 때
마다 만들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루카와는 조금 놀란 듯했다.
"쯔나노 직물...?"
"응. 역시 부자니까 잘 아는구나. 사실은 우리 주인의 겉옷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한 벌은 너
한테 양보할게."
"...괜찮은 거냐? 네 일이잖아."
"천은 아직 많이 있으니까 괜찮아. 겉옷이니까 체형도 그다지 관계없으니 문제 없어. 사실은
아직 완성된 게 아니지만, 화려한 걸 좋아하는 우리 주인과는 달리 네게는 이 정도의 장
식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서."
상의를 받아든 루카와는 가만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네가 손수 만든 거냐?"
"천재적이지? 어디서든 가게 차릴 수 있어."
"...그렇구나."
눈을 가늘게 뜨면서 입가를 비틀었다. 하나미치도 이제는 그 표정이 루카와의 웃는 모습이
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나치게 단정한 아름다운 얼굴이 그 표정을 지으면 더 아름다워
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어제 서로 싸워서 생긴 루카와의 뺨에 있는 상처자국만이 신
경쓰였다.
"...루카와."
"멍청이?"
"그거 안 아파?"
하나미치의 시선에서 '그거'가 뭔지 안 루카와는 뺨에 손을 갖다대고 고개를 저었다.
"대단한 것도 아냐. 나보다 네 쪽이 아플 것 같은데."

루카와보다 하나미치 쪽이 상처는 많았다.
"나는 괜찮아. 특별히 아름다운 것도 아니니까 상처가 얼마나 나든 상관없어."
"...아름답지 않다고?"
대단히 불가사의한 표정을 지었다.
"응."
하나미치는 자리에서 일어나 루카와 옆으로 이동해서, 숨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에서 루카
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흠. 이 정도라면 상처도 안 남을 것 같네."
"...멍청이."
"!"
갑자기 뺨에 입맞춤을 당해서 놀란 하나미치는 세 발짝 뒤로 급히 후퇴했다.
"뭐...뭐냐!? 너 나한테 키, 키스...!"
"...뺨에 밥풀 묻었다."
농담 같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아, 그래? 미안, 루카와. 나 자주 그래서 몰랐거든."
언제나 똑같은 일을 미쯔이에게 당하고 있는 하나미치는 혀로 핥아진 일에도 의문을 느끼지
못하고 고분고분하게 납득했다. 그리고 다시 원래 의자로 돌아가려고 할 때 앗 하고 멈춰
섰다.
"...이런."
"멍청이?"
"잊어버리고 있었어. 어제 천재타로가 망가뜨린 장미정원의 변상..."
- 어쩌지. 밋찌에게 부탁할 상황이 아닌데-
갑자기 새파랗게 질린 하나미치를 보고, 루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변상 같은 건 안 해도 괜찮아."
"엣!?"
"어차피 장미의 계절도 이제 곧 끝이야. 신경쓰지 마."

"...루카와!"
하나미치는 얼굴을 확 펴면서 루카와를 부둥켜안았다.
루카와는 오늘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았다. 지금까지 행복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미치가 안겨왔을 때 '행복'이 형태가 되어 가슴 속에 깃들었다고 진정으로 생각했다. 그
리고 몸이 떨어져 있는 지금도, 그의 미소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말할 수 없을 정도의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하나미치가 옆에 있을 때의 자신은 행복하고 없을 때의 자신은 불행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하
고 있는 자기 자신을 깨닫고 루카와는 내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침 나오고 있는, 식후의 디저트 의식에 환호를 지르고 있는 하나미치 몰래, 받은 겉옷에
뺨을 갖다댔다.
- ...멍청이와 똑같은, 태양의 냄새가 나-
그 겉옷은 어떤 보물보다도 소중한 루카와의 보물이 되었다. 그날 밤 루카와는 첫사랑을 자
각했다.


하나미치가 루카와와 함께 있을 무렵, 백염궁에는 미쯔이가 돌아와 있었다. 하루 걸려서 냉
정을 되찾고, 쓸데없는 일로 싸움을 했다고 반성을 하며 돌아왔는데-
"뭐라고! 또 사쿠라기가 없다고!?"
하나미치를 부르러 간 여관장의 보고에 안색이 변해서 벌떡 일어났다.
"궁 안을 구석구석 찾았지만 아무 데도 계시지 않습니다."
"문지기는 뭘 하고 있는 거야!"
"그것이... 문지기도 위병도 측실님이 외출하시는 모습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문지기들 사이에서 하나미치가 백염궁에서 일하는 소년이라고 인식되어 버린 사실을 모르는
미쯔이는 아연해졌다.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없어졌다고?
"...그 녀석에게 그렇게 사라지는 재주가 있을 리 없는데..."
분노로 붉어져 있던 얼굴이 한순간 파랗게 변했다.
- 설마 반 미쯔이파 놈들에게 유괴당한 건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현 국왕이 10년 전에 주변의 평원을 평정해서 거대한 쇼호쿠 제
국을 구축한 것으로 전국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평화로운 세상이 된 뒤, 전쟁에서의 공적에
의한 승진이 이뤄지게 되면 다음은 궁정에서의 권력 분쟁이다.
절대군주인 현 국왕을 기회로 삼을 틈은 없지만 그에게는 아들이 셋 있었다. 본인들은 사이
가 좋아서 싸울 염려는 전혀 없는데도, 신하들은 세 명의 세력을 분할하여 서로 물밑에서
격렬하게 다투고 있었다. 특히 위의 두 사람의 파벌 싸움은 옛날부터 거셌다.
왕비를 새어머니로 두었을 뿐 아니라 유력자의 딸을 몇 명이나 측실로 삼아 특권계급에 절대
적인 힘을 가진 왕태자 센도 아키라.
평화로운 세상에 힘을 쓰는 문관의 지지를 한몸에 받고 국민의 대다수인 서민계급에게 압도
적인 인기를 얻는, 전 경성을 새어머니로 둔 장남 미쯔이 히사시.
미토 요헤이는 왕자로 늦게 인정된 막내이고 새어머니도 평범한 시골 여자였다. 형들과 비교
하면 커다란 지지는 없지만, 젊은이와 군부에서의 인기는 얕볼 수 없었다.
그런 배경을 생각하니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
- 내가 처음 집착한 단 하나의 측실이다. 사쿠라기가 유괴당했다면 이상한 일이 아냐-
"...사쿠라기."
입술이 새파래져서 떨고 있는 미쯔이에게, 여관이 그의 걱정을 읽고는 얼굴을 흐렸다.
"전하. 몸이 안 좋으신 듯합니다."
"어머, 큰일이군요. 좀 누우세요."
"의사나 약사를 부르겠습니다."
"닥쳐라!"
"꺄악!"
꽃병을 던지며 그대로 여자들을 찌릿 노려보았다.
"지금은 내 걱정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은가! 대체 너희들은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던 거
냐!? 내가 없는 동안 백염궁의 주인은 사쿠라기다! 주인의 동향조차도 파악하지 못하다니
무슨 짓거리냐!"
"그... 그것은..."
"사쿠라기는 나다! 나와 동등한 인간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 녀석에게 복종해라!"
그녀들은 일제히 낭패했다. 미쯔이와 동등하다거나, 반려로서조차 하나미치를 생각하고 있
는 사람들은 없었던 것이다. 그녀들의 하나미치를 보는 눈은 표면상으로는 정중했지만 조
소와 모멸로 채색되어 있었다. 여관들은 백염궁의 주인도 사쿠라기라고 하는 왕자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미쯔이의 말은 여관들에게 있어서 신의 말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쿠라기 님을 찾아야 해..."
"수련 내... 아니, 쇼호쿠 전체에 포고령을!"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챈 여자들이 일제히 떠드는 동안, 신하 남자들 또한 미쯔이에게 호출
되어서 계속 모여들었다.
그 중 한 사람이 진언했다.
"미쯔이 전하. 급히 동생 전하들께 파발마를 보내시는 것이..."
"그건 안 된다. 그 녀석들의 부하의 짓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
그 두 사람이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추종자들의 짓이라면- 더 이상 살아
있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빌어먹을...!"
퍽!
힘껏 주먹으로 벽을 치고, 벽에 이마를 부벼댔다.
"무사해다오... 나를 두고 죽지 마."
자주색으로 변한 입술에서 쥐어짜듯이, 미쯔이는 기도라도 하듯이 중얼거렸다.


이런 소란의 중심인 하나미치가 돌아온 것은, 미쯔이가 번민하면서 고문과도 같은 두 시간
을 보낸 후였다.
"전하! 사쿠라기 님을 찾았습니다!"
"정말인가!?"
달려들어온 병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 어디에-"
"다녀왔어-. 아, 재미있었다!"
소란의 원흉이 기분 최상이라는 듯이 등장했다. 루카와의 집에서 너무 즐겁게 보냈기 때문
에 그렇게 괴로워하고 있던 미쯔이와의 싸움조차 지금은 잊어 버리고 있었다.
"재미있었다고...?"
"앗, 밋찌! 돌아왔어!?"
얼굴을 빛내면서 미쯔이 쪽으로 달려온 하나미치는,
퍽!
"...에."
뺨을 무자비하게 얻어맞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런 식으로 미쯔이가 손을 댄 건 처음 있
는 일이었다.
놀라서 목소리도 갑자기 나오지 않았다.
"너는...너는!"
"밋찌!?"
미쯔이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자 모두 놀랐다.
"한 번이든 두 번이든 네 맘대로 해! 어제 일을 반성도 않고 기분 좋게 놀러 다녔다니! 너
는 나를 화나게 해도 아무렇지도 않겠지! 나의 총애를 이런 식으로, 감히... 감히...이젠 정
말로 화났다!"
한번에 퍼부은 미쯔이는 발꿈치를 돌려 뛰쳐나가 버렸다.
"어... 어째서...?
하나미치는 어제에 이어서, 왜인지 모르게 화를 내며 뛰쳐나가는 미쯔이를, 영문도 모르고
어리둥절해하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PRE번 호 : 1864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22일 00:09
등록자 : HALKO 조 회 : 276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1권 #6-1
/PRE

6 .

(1)

하나미치의 낙담은 대단했다.
미쯔이가 사라진 후 그가 얼마나 자신을 걱정하고 있었는지 여관들에게서 들었던 것이다.
미쯔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갑자기 그녀들의 태도가 좋게 바뀐 것도 쓸데없이 하나미치를
죄악감에 가득차게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미치를 낙담시킨 것은 그 눈물.
처음으로 본 소중한 사람의 눈물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 이상의 눈물이 하나미치의 눈에
서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이렇게 해서 하나미치는 사흘간 방에 틀어박혀서 울며 지새웠다.
그리고 최악의 기분 그대로 나흘째를 맞이했다.
"사쿠라기 님. 또 식사를 남기셨군요. 게다가 안색도 정말 좋지 않으세요. 몸이라도 안 좋아
지시면 큰일입니다. 뭔가 드시기 수월한 것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후지이 상. 하지만 이젠 더 이상 필요없어요."
"사쿠라기 님..."
후지이는 하나미치의 시중을 드는 시녀였다. 그녀만은 처음부터 하나미치에게 잘 해주었던
여성이었다.
"...후지이 상. 오늘도 역시 밋찌는 돌아오지 않았나요?"
"아... 예..."
"...그런가..."
고개를 수그리고 말이 없어졌다.
그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하나미치에게, 후지이는 가만히 머리를 조아리며 물러났다.
하나미치가 혼자 있고 싶어한다는 것을 안 것이다. 정말로 눈치 빠른 여성이었다.
- 벌써 나흘째인가... 그러고 보니 루카와는 어떻게 하지...
약속을 멋대로 어겨서 화내고 있을 거야-
미쯔이의 일만이 아닌, 그렇게 잘해주었던 루카와와의 약속을 무단으로 어긴 일도 심적 부
담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측실은 멋대로 외출하면 안되는 거야-
그것을 그 후 여관들이 엄하게 말했다. 그리고밖에 나가서 뭘 했냐고 묻길 래 정직하게 말
해버려서 여관장에게 한소리를 들었다.
왕자님의 측실께서 왕자님이 안 계신 장소에서 다른 남자와 만나다니 무슨 짓을 하신 겁니
까- 라고 혼이 난 후 머리 위에 번개가 떨어진 듯한 쇼크를 먹었다.
측실이라고는 해도 자신은 보통의 남자다. 그러니까 남자인 루카와와 만나도 그게 나쁘다고
는 지금껏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루카와와 만난 것은 미쯔이에 대한 배신 행위라면서, 그와 만나는 것을 금지당하는 바람에
한층 더 슬퍼졌다.
-...루카와-
만나보고 알게 되었다.
무뚝뚝하고 입도 험했지만 그 녀석은 좋은 놈이었다.
- 싸움 친구정도는 해줘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약속도 지키지 않고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다니 난 정말 나쁜 놈이야... 적어도 이제 만날
수 없다면 알려주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여관장은 편지나 전언조차도 허락해 주지 않았다.
미쯔이는 돌아오지 않고, 모처럼 사이 좋아진 루카와와도 만날 수 없다.
일이 바빠진 듯, 센도와 요헤이도 만나러 와주지 않았다.

하나미치는 지금, 홀로 땅끝까지 낙심해 있었다.
"-사쿠라기 님."
물러갔을 줄 알았던 후지이가 발(역주:사람의 발이 아닙니다) 반대편에서 말을 걸었다.
"...응?"
"아야코 님이 방문하셨습니다. 들여보내도... 아! 아야코 님, 이러시면..."
"들어갈게."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얇고 유혹적인 검은 드레스를 입은 아야코가 발을 밀어젖히며 안으
로 들어왔다.
"아야코 상...!?"
수심에 잠겨 있던 하나미치는 갑작스런 그녀의 방문에 놀라서 눈물로 범벅이 된 눈을 크게
떴다.
"어머, 얼굴이 거칠어졌구나. 여관장에게서 얘기는 들었다. 히사시도 참 곤란하다니까."
"밋찌는 나쁘지 않아요! 나쁜 건 전부 나예요!"
큰 목소리로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내...가... 밋찌를... 밋찌!"
갑자기 엎드려서 엉엉 우는 하나미치를 보며 아야코는 한숨을 쉬었다.
"...최악의 상황 같구나. 이런 곳에 틀어박혀 있으면 점점 침울해질 뿐이야. 맞아, 내 거처로
놀러오너라. 금염궁은 한 번 볼 가치는 있거든."
"에... 하지만 나 외출하면 안된다고..."
"왕의 측실인 내가 이렇게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는데? 신경쓰지 마. 게다가 나는 미쯔이
히사시의 친새어머니. 히사시의 측실이 내 거처로 놀러오는 걸 누가 반대할 수 있겠어?"
"그거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결정됐지! 가는 거야!"

이렇게 해서 반은 강제로 아야코가 타고 온 마차를 타고 금염궁으로 끌려갔다.


-금염궁.
귀부인의 방에서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아키라 상! 어째서 매일 만나러 와주지 않는 거니!? 내게는 아키라 상밖에 없는데!"
자기 키보다 긴 흑발을 흔들어대며 센도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것은 30세가 된 화사한
미녀 피오네 왕비였다.
"그러니까 몇 번이나 말씀 드렸잖습니까. 요 2, 3일 동안 갑자기 일이 늘어서 매일 방문하
러 올 수 없다고요."
"어째서!? 같은 궁전에 살고 있는 거잖아! 잠깐 만날 정도의 시간은 만들 수 있잖아! 네 아
버지 같은 말을 하면서, 새어머니를 멀리하지 말아다오!"
"만나면 잠깐이 아니니까요. 당신은..."
무의식중에 흘러나온 센도의 본심에 왕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 아키라 상! 너는 날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거니...!"
"어머님!?"
"싫어! 싫어! 나를 버리지 말아줘!"
평정을 잃은 그녀는 센도를 껴안고, 그 가느다란 팔에서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힘으로 구속해왔다.
"버릴 리가 없잖습니까. 저는 당신의 아들인걸요."
"하지만 그 사람의 아들이지! 그 차갑고 아름답고 잔혹한 사람의...! 분명 너도 내게서 멀어
져 갈 거야. 그럴 거라면 차라리...!"
"어머님!? 어머님! 그만두세요!"
가슴에 품고 있던 단검을 빼들어 갑자기 찔러왔다. 그것을 간신히 피하고 팔을 잡아 단검을
빼앗았다.
"넘겨주지 않을 거야! 아키라 상은 내 거야!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을 거야!"
"누가! 누가 없는가!"
센도의 부름에 여관들이 머뭇머뭇 나왔다.
왕비의 침실에 남성은 아들인 센도와 국왕밖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전부 여성들이었다.
"어머님은 보통의 정신상태가 아니다. 어머님 주위에 위험한 건 놔두지 않도록 말해두었을
텐데."
단검을 여관의 발치에 떨어트렸다.
"며... 면목없습니다!"
안색이 변한 여관들 중 한 사람이 급히 그것을 주워 방 밖으로 가지고 나갔다.
".그럼 어머님.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 실례하겠습니다."
"아키라 상!"
센도는 망토 자락을 잡아, 그것을 조금 난폭하게 털어냈다. 그러자 왕비는 한층 제정신이
아닌 얼굴로 아들에게 매달렸다. 센도는 새어머니를 한 번도 보지 않고 여관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부디 어머님을 방에서 내보내지 않도록 해라. 이건 국왕의 명령이기도 하니까."
"예, 전하."
여관들은 인사를 하고, 센도에게 매달려서 난폭해지고 있는 왕비를 전력을 다해 억지로 떼
어냈다. 그것은 매일 있는 일이라 여관들도 익숙해져 있었다.
"가지 말아줘, 아키라 상! 아키라 상! 아키라 상! 아키라 상!"
모친의 비명 같은 외침을 등 뒤로 들으면서 센도는 복도로 나가서 문을 꼭 닫았다. 혼자가
되자마자 커다란 한숨을 토해내며 그대로 복도에 웅크리고 앉았다. 피곤한 얼굴을 무릎에
묻었을 때 화사한 여성의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센도 전하. 오늘도 상당했던 것 같네. 복도 끝까지 다 들렸어."
"...아야코 상."
센도는 고개를 숙인 채로 아야코 쪽을 한 번도 보지 않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살짝
자조했다.
"부끄러운 꼴을 보여드렸군요..."
"지금 와서 무슨 말을. 나는 여기에 살고 있어. 왕비의 일은 너 이상으로 잘 알고 있어. ...
그런데 최근에는 점점 심해지고 있는 것 같아."
"...이제 지쳤어요. 정말이지 토할 것 같아..."
"답지 않은 소리구나. 약하게 굴지 마."
아야코의 손이 부드럽게 센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옛날부터 변함없었던 이 따스함. 센도
가 솔직해질 수 있는 것은 생모보다도 옛날부터 아야코 쪽이었다.
"...작년에 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한 측실이 죽었어요. 어머님의 짓이었죠. 그걸 따지니까 눈
앞에서 자기 손목을 그었어요. 목숨을 건지고 나서도 매일 나를 구속하려고 하고, 저 상
태예요....이제 지긋지긋해요. 그렇게까지 당한다고 해도 아들이 새어머니를 사랑해야 하는
건가요?"
"그런 건 이 방 앞에서 말하면 안돼. 만약 들으면 어쩌려고."
"상관없어요!"
목소리를 높이자 어조가 약간 울 듯한 목소리로 변했다.
"지금까지 힘내서 아들로서의 의무를 다해왔어요. ...하지만 이젠 한계예요. 이대로라면 어머
님을 정말로 증오해버릴 것 같아요."
얼굴을 들어올린 센도는 갑자기 따뜻한 온기에 안겼다.
아야코가 끌어안은 것인 줄 알았지만 곧 그것을 부정했다. 은은하게 풍기는 냄새는 그녀가
사용하는 외제 향수가 아니라 설탕을 넣은 우유 같은 부드러운 향기였기 때문이다.
"괜찮아. 너는 아직 힘내고 있어, 센도."
"...에."
센도가 본 것은 선명한 빨간 머리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물이었다.


하나미치와 센도는 왕비의 방에서 5분 정도 떨어진 장소에 있는 아야코의 방으로 왔다.
"야무지게 굴어! 야무지게! 멋진 남자가 우물우물거리는 건 보기 괴로워!"
활기가 없는 두 사람의 눈앞에 선 아야코는 조금 전부터 일장연설을 해대고 있었다.
"...아야코 상의 강한 면이 부러워요. 나의 새어머니도 아야코 상의 절반...아니 한 조각이라도
적극적인 강함이 있었다면..."
"어머, 나도 원래부터 강했던 건 아냐. 열두 살 때에 고향이 멸망해서 쇼호쿠에 노예로 팔려
왔어. 강해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어."
"아야코 상..."
"유곽에 팔렸을 때 생각했지. 나의 미모로 빨리 부자를 붙잡아서 이런 장소에서 빨리 나가
자고.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어.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서 국왕의 시침녀로 뽑혔고
단 한 번으로 제 1왕자를 임신했으니 더욱 더 운이 좋았다구! 역시 인간은 최후까지 단념
하면 안되는 거야. 왕비님처럼 태어날 때부터 공주인 사람은 이런 고마움을 모르겠지. 나
는 사치스럽게 살 수 있어서 지금이 최고로 행복해. 그런 세상 모르는 왕은 개인적으로 취
미도 아니고. 총애가 없는 것도 귀찮지 않아서 고맙지, 뭐."
깔깔 웃으면서 센도의 등을 두드렸다.
"그러니까 너도 마지막까지 왕비님을 단념하면 안돼. 최악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적극적으로
노력하면 길은 열리는 거야."
아야코의 말에 하나미치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나도 유곽에 팔렸을 당시에는 세상이 새까맣게 보이더라고요. 어쨌든 이 머리
말이죠. 야만족의 피가 섞였다고 해서 처음 손님을 받을 때는 낮은 가격이 붙어졌고, 제일
처음 나갔는데도 그렇게나 쌌기 때문에 오히려 주목을 받았어요. 그래서 밋찌의 눈에 든
거지요. 세상이란 건 정말 알 수 없는 거죠."
"어머, 그 얘기는 처음 듣는데."
"밋찌가 날 보고 처음 한 말은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뭐라고 말했어?"
"이렇게 팔짱을 끼고 거만한 태도로 나를 노려봤어요. '말도 안 돼! 이 가격은 뭐야! 너 귀
여운데 옆 부스보다 가격이 낮잖아! 아름다움에 대한 모욕이다! 화나!' 라고요. 그 이후로
옆에 있던 잘 팔리는 옆집누나는 나랑 말도 안 해요."
"그애 답구나!"
아야코는 왕의 측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조야한 태도로 배를 잡고 크게 웃었다. 아름다
운 용모에서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유분방한 아야코의 언동은 역시 저 미쯔이의 어
머니라고 납득하게 하는 것이었다. 센도는 아야코와 하나미치를 나란히 보고, 그리고 살짝
미소지었다.
"...형이 부럽군요. 이런 멋진 새어머니와 측실이 있으니."
"무슨 말이야. 난 센도도 충분히 부러워."
"사쿠라기?"
"새어머니에게 그렇게나 사랑받고 있잖아. 난 격세유전으로 이런 머리로 태어나서 가족들에게
는 미움받았거든."
"그런, 머리색 정도로..."
"내가 태어난 곳은 외국인 같은 건 아무도 본 적이 없는 굉장한 시골이야. 전에 빨간 머리
의 인간이 우리 집에 태어났던 것도 100년 이상 전이라서 아무도 몰랐고 하니까 기분 나
빠하는 것도 어쩔 수 없지....그 가족도 내가 9살 때에 화재로 돌아가셔서 할아버지랑 나밖
에 남지 않았고."
센도와 아야코는 놀란 표정으로 하나미치를 보았다.
"불길한 아이인 내 탓이라고 마을의 어른들이 그랬어. 꼬마였을 때는 그걸 정말로 믿고 죽
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뭐, 살아 있어서 좋은 일도 많이 있었어. 밋찌를 만나고,
밋찌가 소중히 대해줘서 굉장히 행복했어..."
하나미치의 표정이 변하더니 요 며칠간 계속 끊이지 않던 눈물이 다시 볼을 적셨다.
"...그런데도 나는 그 밋찌를 울려버렸어."
"형과 무슨 일... 있었어?"
"아무래도 싸움을 해서 히사시를 울린 것 같아."
"울리다니, 하나미치가 형을!?"
"...나 이제 더 이상 백염궁에 있을 수 없을지도 몰라..."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소리를 죽이고 우는 하나미치는 당장에라도 시들어버릴 듯한,
비를 맞은 작은 꽃 같았다.
"...사쿠라기."
센도는 뭔가 충동적인 기분으로, 이번에는 자신이 하나미치를 끌어안았다. 아까와는 반대의
상황.
"센... 도...?"
"형이라면 나도 몇 번 울린 적 있어. 그 사람은 원래 울 보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아냐. 그때까지 밋찌는 한 번도 우는 모습을 보여준 적 없었어. 밋찌는 강하고 멋지고 아름
답고... 그런 식으로 울려도 좋은 사람이 아니야."
- 정말로 형을 좋아하는구나...-
여러 번이나 느껴왔던 사실을 재인식하자 센도는 조금 가슴이 아파졌다.
그리고 가슴에 통증을 느끼는 자신에게 놀라 일순간 굳어졌다.
-엣...?-
센도는 품 안에서 조그만 모습으로 울고 있는 하나미치를 응시했다. 그리고 가만히 그 빨강
머리를 손가락에 꼬았다.
"센도."
상처입은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덜컹... 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 뭐지...이건. 설마...-
생침을 꿀꺽 삼키고 한 번만 눈을 깜박인 뒤, 무리하게 미소 지었다.
"...울지 마. 형한테는 내가 사이좋게 지내라고 얘기해 둘게, 응?"
"...무리야. 분명 이젠 나 따위 필요없을 거라고 밋찌가 생각할 거야."
"괜찮아. 사쿠라기 같이 착한 애를 필요없다고 생각할 리가 없어."
센도는 잠깐의 시간을 두고 목소리를 낮췄다.
"그래도 만약... 만약이야. 형이 사쿠라기를 필요없다고 말한다면 내게 와도 좋아."
"응...?"
"그런 일은 절대 없겠지만 만약 백염궁에 있을 수 없게 되면 내게 와. 형에게 있던 때 이상
의 삶을 약속할게."
"...고마워, 센도."
"그럼-"

"아니."
하나미치는 깨끗하게 고개를 저었다.
"기분은 좋지만 갈 수 없어. 밋찌가 날 필요없다고 한다면 나는 출가할 거야. 그리고 매일
여신님에게 밋찌의 무사를 기원하며 생활할 거야. 그건, 밋찌가 유곽에서 나를 전속으로
해주었을 때, 신께 맹세한 거니까."
"...사쿠라기."
그렇게 말하고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웃는 하나미치는 예뻤다. 센도가 지금까지 본 누구보
다도 아름다웠다.
눈을 가늘게 뜨고 하나미치를 가만히 바라보자 전에 없을 정도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센도는 느꼈다.
"...졌다..."
- 그런 얼굴로 그런 말을 하다니. 진심이 되면 어떡하라고...-
지금의 말과 그 뒤의 부드럽고 평온한 표정은 일찍이 센도가 만난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아
름다웠다. 이렇게 모든 것이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며 감동하고 있는 자신을 자각하고, 내
심으로 커다란 한숨을 쉬었다.
- 위험해. 진심으로 빠지면 어쩌겠다는 거냐. 최악의 상대인데-
반 장난으로 손을 뻗치는 거라면 좋다. 하지만 진심이 되 버리면 그럴 수는 없다.
지금까지 연애는 많이 해봤지만 자기 자신을 잃을 정도의 진정한 사랑은 하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조절해 왔다. 똑같은 바람둥이로 알려진 왕자라도, 센도와 미쯔이는 그 내용이 크게
달랐다.
정말로 즐기고 있는 미쯔이와는 달리 센도가 연애하는 상대는 언제나 자신에게 이용가치가
있는 존재들뿐이었다.
이 순간까지 누군가를 이렇게 사랑스럽다고 느껴본 적은-
팡.
"잠깐, 언제까지 달라붙어 있을 생각이야? 하나미치도 언제까지나 울고 있을 거니! 히사시가
하나미치를 버릴 리가 없지! 그 애는 저렇게 보여도 한 번 집착하면 집요하거든. 쇼호쿠
제일의 '포기하지 않는 남자'가 우리 아들이야!"
아야코는 팔짱을 끼며 센도를 가볍게 째려보았다.
"난 너와 하나미치를 위로하려고 여기로 초대한 거야. 아들의 신부에게 남자를 중매하기 위
해 부른 게 아냐. 그런 아들이라고 해도 귀엽다고. 하나미치에게 손을 대는 건 허락하지
않겠어."
센도는 어깨를 움츠리며 하나미치에게서 떨어져나갔다.
"예예. 당신을 적으로 돌릴 생각은 없어요. 쳇. 싸움만 하지만 결국 아야코 상은 형의 편이
로군요."
"당연하지. 바보같은 아들일수록 귀여운 거야. 세 왕자 중에서 내가 낳은 왕자가 제일 바보
인 걸. 너무 사랑스러워서 얼굴을 볼 때마다 두세 번 때려주고 싶어져."
"무슨 말이에요! 밋찌는 천재예요! 학자보다도 머리가 좋고 쇼호쿠의 지혜주머니예요!"
"...하나미치. 맹목적인 숭배는 네 맘대로지만 환상이 깨진 뒤에는 어쩔 거니?"
"...나 역시, 형에게 너무 큰 꿈을 꾸지 않는 게 낫다고 봐."
"센도! 너까지!"
침체되어 있던 공간이 일순간 활기를 띠었다. 여기에 와서 많은 얘기를 한 것만으로도, 하
나미치도 센도도, 아까의 침울한 기분이 상당히 밝아져 있었다.
특히 센도에게 있어서 아야코와 하나미치가 있는 공간은 어떤 장소에서보다도 편했다. 하지
만 이 있기 편한 장소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센도는 그것을 슬플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아야코 덕택에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분이 풀린 하나미치는 백염궁으로 돌아가는 도
중에 차를 세워 달라고 부탁했다.
"여기서 내려줘요, 아야코 상."
"에? 백염궁까지 아직 더 걸리잖아."
"응... 하지만 좀 들를 곳이 있어요."
들르고 싶은 장소는 당연히 루카와의 처소였다. 모처럼 백염궁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 기
회를 놓칠 수 없다.
"하지만 위험해."
"괜찮아요. 저 싸움은 강하니까요."
"그래도."
"그럼 또 봐요. 오늘은 즐거웠어요!"
"하나미치!"
마차에서 뛰어내려 달려가는 하나미치는 단시간에 점점 멀어져갔다.
"...발이 빠르네... 뭐 하나미치라면 괜찮겠지만..."
자신의 아들보다 훨씬 견실한 하나미치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해서 자신을 장식하는
데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하나미치는 서민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 하나미치를 보고
왕자의 측실이나 부잣집 아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나미치가 굽어진 길을 돌아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본 뒤, 아야코는 금염궁으로 되돌아갔
다.


PRE번 호 : 1865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22일 00:11
등록자 : HALKO 조 회 : 251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1권 #6-2
/PRE

(2)

"루카와, 오늘도 기다리고 있을까?"
방금 전 6번째 종이 울렸다. 해가 지고 있었다. 아니 그 이전에 사흘이나 약속을 어긴 뒤였
다.
처음부터, 기다리고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웬지 오늘도 루카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카와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음이 틀림없다는 확신까지 있었다. 그리고

상대로 사흘이나 약속을 어겼는데도 루카와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늘 하나미치가 오는, 백염궁 쪽을 향해서 마치 조각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늘 오던

과 반대방향에서 온 하나미치는 루카와에게 머뭇머뭇 접근해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말을
걸었
다.
"...루카와."
반응은, 대단했다.
흠칫 어깨가 떨린다고 생각했더니 루카와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뒤를 돌아본 것이다.
하나미치를 눈동자에 담은 순간 두 눈이 한계까지 커다랗게 떠지며,
"멍청이!"
달려와서 힘껏 껴안았다.
놀라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윽."
루카와의 뒤에서 달려온, 언제나 그의 옆에 있던 종자들도 하나미치가 있는 것을 보자, 눈
에 보
일 정도로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 중 한 명인 쿠와타는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하나미치는 뭐가 뭔지 몰랐다.
"어이... 루카와?"

"...찾았어."
"아?"
"네 녀석이 오지 않으니까 한숨도 잘 수 없어서 계속 찾았어. 하지만 이 수련에 있는 어느
저택
에도 사쿠라기 하나미치라는 이름을 가진 하인은 없었어."
그럴 것이다. 자신은 하인이 아니라 왕자의 측실이니까. 정직하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

루카와는 계속 끌어안고 있는 그대로 하나미치의 얼굴을 보았다.
"너 왜 그 동안 안온 거야?"
"...미안. 안온 게 아니라 못온 거야."
"못 왔다고...?"
찬찬히 하나미치를 응시하고는 깜짝 놀랐다.
"...너 병 걸렸냐?"
"응?"
"안색이 안 좋아. 게다가 좀 야위어 보여."
- 밋찌의 일 때문에 식사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으니까-
좀 말랐을 것이다.
그런 일을 멍하니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발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에?"
루카와가 자신을 어깨에 짊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일순 하얗게 질렸다. 평균적인 남자보다
월등
히 체격이 좋은 자신이었다. 이 상황이 즉각적으로 이해되지 않았다.
루카와는 하나미치를 짊어진 채로 집 쪽으로 걸어갔다.
"루카와 님! 그런 일은 스스로 하시지 않아도 사쿠라기님은 저희들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미치와 마찬가지로 깜짝 놀란 시종들이 황급히 뒤를 쫓아왔다.
"내가 데리고 가겠다. 그보다 너희들은 의사를 불러와라."

"잠깐... 루카와! 의사는 필요없어!"
"환자는 입 다물어."
"환자가 아니라고!"
"그렇게 까칠해진 얼굴로 거짓말 하지마."
"거짓말 아냐! 까칠해진 거라면 네 녀석이야 말로 까칠하잖아!"
외침은 헛된 것이었고, 하나미치는 루카와의 저택으로 끌려들어갔다. 급히 달려온 의사가
전신
을 빈틈없이 검진했다. 하나미치는 영양실조와 수면부족. 게다가 어째서인지 과로라고까지
진단
을 받았다. 그리고 하나미치와 똑같이 여위어 있던 루카와도 그대로 진찰을 받게 되었고,
하나
미치와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원인은, 하나미치의 경우 미쯔이를 울린 일로 인한 심적 고
통.
그리고 루카와는, 하나미치가 갑자기 오지 않게 된 일이 원인인 심적 고통이었다.
제일 좋은 침실의 푹신푹신한 침대에 하나미치를 눕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많은 따뜻
한 요
리를 날라온 루카와는 헌신적으로 하나미치를 간병하고 있었다.
뜨거운 수프를 스푼 위에서 후후 불어서 차갑게 하고 손수 하나미치에게 먹였다. 하나미치
가 혼
자서 먹을 수 있다고 말해도 루카와는 전혀 듣지 않았다. 마치 그렇게 하는 게 즐거워서 어

줄 모르겠다는 모습이었다.
"멍청이. 다른 거 필요한 건 없어? 뭐든 갖다줄게."
"이젠 괜찮아."
고개를 젓고 가만히 루카와를 바라보았다.
"...넌 정말 좋은 놈이야."
"멍청이?"
"처음 인상은 최저였는데 완전한 타인인 나한테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해주었잖아. 아름다운

들 중 나쁜 놈은 없는 건 맞는 말이야."
"...아름답다고?"
"응?"
이상한 표정을 지은 루카와에게 하나미치도 또다시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너, 너 자신이 아름답다는 걸 설마 자각 못하는 거라고 말할 셈이냐?"
"아름다운 건 네 쪽이야."
"하?"
하나미치의 뺨에 가만히 손을 얹은 루카와는 지금껏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표정으
로 미
소 지었다.
"그 눈도, 입술도 새빨간 머리도, 너의 전부가 지금껏 내가 봐온 것들 중에서 제일 아름다
워."
"바,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이런 빨간 머리나 연한 눈동자가 아름다울 리가 없어! 아름다

건 너와 밋찌처럼 새까만 머리와 눈동자를 가진 놈을 말하는 거야."
"바보는 너야. 사쿠라기 하나미치는 세계 제일의 멍청이고, 세계 제일로 아름다워."
얼굴이 새빨개져서 할말을 잃었다.
루카와는 하나미치의 손을 꼭 쥐었다.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줄 알고 굉장히 불안했어. 사흘 전에는 한밤중까지 기다려도 너는

지 않고,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어.
이렇게 소중한 너에 대해서, 그 아름다운 모습 이외에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그러니까 무척

안해져서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어. 이런 일은 태어나서 처음이야."
"...너 그렇게 친구가 없냐? 최악이다."
하나미치를 비난하듯이 루카와의 어조가 강해졌다.
"멍청이."
"멍청이가 아냐! 정말 무례한 녀석이네. 정말이지 너 오늘은 이상하다. 왜 그런 거냐? 단지
3,
4일만이었는데. 아까 그 의사한테 머리도 진찰받는 쪽이 나았겠다."
"-실례합니다."
그 때 쿠와타라는 이름을 가진 측근이 생글생글 웃는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아
름다
운 직물로 만든 잠옷을 들고 있었다.
"사쿠라기 님, 갈아입을 옷입니다. 그런 복장으로는 편히 쉬실 수 없을 테니."
"에, 그치만 나 이제 가야 되는데."
몰래 여기 왔다는 것만으로도 혼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아야코의 처소로 간 김에 틈을
타서
들른 것뿐이다. 여기서 잔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러나-
"돌아갈 필요 없어. 여기에 있어."
"하?"
"이 별궁은 너에게 줄게. 널 과로로 쓰러질 때까지 부려먹은 나쁜 주인에게는 두 번 다시
돌아
가지 않아도 좋아."
"하아? 나 부려먹힌 건 아닌데."
"나한테 거짓말 할 필요 없어. 너는 내가 일생 소중히 보살펴 줄게."
루카와의 얼굴은 끝없이 진지했다.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하나미치의 힘이 빠졌다.
"보살펴 주겠다니 너... 밋찌 같은 말을 하는구나."
"...밋찌는 여신을 말하는 게 아니었냐."
하나미치가 자주 말하는 '밋찌'를 쇼호쿠의 수호신 미피티라고 생각하고 있던 루카와는 얼굴

을 흐렸다.
"아냐. 나의 제일 소중한 사람이야."
"...뭐라고?"
갑자기 루카와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하나미치는 잠깐 입을 다물고 루카와를 올려다보았
다.

"...저기, 루카와. 나 이제 여기엔 올 수 없어."
루카와가 커다란 숨을 들이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나미치는 그대로 괴로운 말을 한번

얘기해 버렸다.
"집안 사람들에게 멋대로 외출하지 말라고 말을 들어서... 사실은 오늘도 여기에 올 수 없는

였어. 하지만 와서 다행이야. 고마웠다는 말을 할 수 있어서."
"멍청이!"
"!"
다음 순간 루카와가 입을 맞추었다.
놀라서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에 저항할 타이밍을 놓쳐서 점점 깊어지는 루카와의 키스를 받
아들
이게 되고 말았다.
- 뭐...뭐야~!?-
눈을 뜬 채로 졸도직전 상태에 있는 하나미치의 입술을, 루카와는 계속 탐해 나갔다. 아랫
입술
을 깨물고, 입술을 벌려 입 안으로 진입해 들어가서 이빨을 벌린 후 아픔을 느낄 정도로 강
하게
혀를 밀어넣었다.
"웃... 응응..."
- 괴...로워...-
미쯔이는 언제나 부드러운 키스만을 해주었다. 이런 격렬하고 숨도 쉴 수 없는 키스는 모른
다.
이런 건 키스가 아냐!
"응~!"
온 힘을 다해 루카와를 밀어내는데 성공했다. 헉헉 숨을 내쉬며 입술을 오른손으로 북북 문
지르
면서
두 눈에서 눈물을 흘렸다.
- 어어어어떡해! 밋찌 이외의 남자와 키스해 버렸어!-
유곽출신이라고는 해도 제일 첫 손님이 미쯔이었고, 그 이후로는 그의 전속이었다. 키스 경
험은
거의 없었다.
- 바람 피우면 안된다고 밋찌가 그랬는데...-
"이런 여우와 키스 따윌 하다니 분명
밋찌가 싫어할 거야..."
"...또 '밋찌'냐."
침대 위에서 엉덩방아를 찧은 루카와는 울기 직전의 하나미치에게 다시 다가왔다.
"그 녀석과 너의 관계를 숨기지 말고 전부 말해."
"그런 건 어떻게 되도 좋아! 네 녀석은 왜 키스따위를 한 거야? 바보자식!"
"-널 좋아해."
"뭐!?"
당돌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고백에 말을 잃었다.
"네가 오지 않게 되어서 처음으로 깨달았어, 나는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너에게 빠져 있었
어."
"시... 싫어..."
"멍청이?"
"그런 말은 듣고 싶지 않아!"
그렇게 외치며 기적적인 순발력으로 침대에서 빠져나갔다. 그대로 출구로 일직선으로 달려
갔다.
-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아름다운 추억 그대로 헤어지자고 생각했는데!-
뒤에서 쫓아오는 루카와를 피부로 느끼자 울고 싶어졌다. 방의 출입구를 뛰쳐나가려 할 때,

카와의 부하에게 가로막혔다.
"거기 비켜!"
"여기에 남아 주십시오, 사쿠라기 님. 루카와 님을 계속 보아온 저는 알 수 있습니다. 당신

루카와 님께 필요한 분입니다."
"그런 건 몰라! 내겐 이미 밋찌가 있어! 밋찌에게 갈 거야!"
쫓아온 루카와는 전신에서 파란 불꽃이 보일 듯할 정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밋찌가 있다고...? 무슨 소리냐."
"나... 나는 밋찌를 좋아해! 네게는 응해줄 수 없어!"
그 순간 루카와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루... 루카와...?"
부들부들 루카와의 전신이 떨리기 시작했다.
"...너의 기분 따위는 관계없어!"
"아...?"
"내가 내 것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너는 내게 얌전히 복종하면 돼."
자신을 보는, 제정신을 벗어난 루카와의 눈에 하나미치는 너무도 무서워져서 후퇴했다.
"어떻게 된 거야. 넌 좋은 녀석이었잖아. 어째서 이런 심술궂은 말을 하는 거야..."
"좋아해."
"나는 좋아하지 않아!"
"사랑해."
"그만해! 그런 말 듣고 싶지 않다고 했잖아!"
"...!"
하나미치는 루카와가 방심한 틈을 타 몸을 날려 그대로 남쪽의 창문에서 바깥으로 뛰어내렸
다.
"멍청이!"
여기는 2층이다.
황급히 창문 쪽으로 달려간 루카와는 2층에서 떨어져서 상처 하나 없는 하나미치를 내려다
보았
다.
안뜰로 뛰어내린 하나미치는 눈썹이 휘날리도록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런!"
급히 루카와와 루카와의 부하들도 하나미치의 뒤를 쫓아 밖으로 뛰쳐나갔다. 처음에는 몇
명이
었지만 수십 명으로 늘더니 최종적으로는 100명이 뒤쫓아왔다.
하나미치는 발군의 운동신경으로 커다란 정원을 무조건 도망쳐 다니다가, 우연히 한가로이
걷고
있는 말을 한 필 발견하고는 본격적으로 도망쳤다.
처음 이 저택에서 천재타로와 왔을 때의 길 - 말을 타고 강을 건너서 정원으로 돌진해 들
어온 -
을 역행해서 일반 도로로 나가 백염궁으로 말을 달렸다.


"살았다..."
거대한 백염궁의 장대한 성문과 불빛이 보이자 마음속으로 안도했다. 자신은 무사히 루카와
에게
서 도망쳤다. 마지막으로 본 루카와의 눈을 생각하자 부르르 떨렸다.
- 그녀석, 제정신이 아냐. 그런 무서운 얼굴을 한 사람은 지금까지 한 번도 못봤어-
오히려 아름다운 얼굴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무서움은 배로 증가했다. 거기서 붙잡혔다면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모른다.
키스당한 것만으로도 미쯔이의 측실로서는 대단히 부정한 행실이었다. 그 이상의 일을 당한
다면 두 번 다시 백염궁에는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어이."
-!!
뒤에서 말을 거는 목소리에 놀라고 두려워하며 고개를 돌린 하나미치는 거기에 있는 것이
요헤이와 그 가신들임을 알고 마음속으로 안도했다.
"...요헤이."
미친 듯이 여기까지 왔다. 긴장이 갑자기 풀리자 눈물이 떨어졌다.
"하나미치?"
"요헤이!"
하나미치는 요헤이를 향해 손을 내밀고- 그대로 낙마했다.
"하나미치!"
놀란 요헤이는 자신이 타고 있는 말에서 뛰어내려 땅에 떨어지고 있는 하나미치를 무릎으로
받아 안았다.
그리고 얼굴빛을 흐렸다.
"...굉장한 열이야..."
요 며칠간 건강하지 못한 생활의 연속이었는 데다가, 지금의 도망극도 있었다. 뭐라고 해도
건강한 신체 -라기보다는 정신 - 도 한계에 달해 있었다.
자신보다 몸이 큰 하나미치를 들기 위해 가신들의 손을 빌리면서, 요헤이는 급히 하나미치
를 백염궁으로 데려갔다.


"백염궁 근처에서 사라졌습니다!"
"빌어먹을...!"
말 위에서 최후의 한 명에게 보고를 들은 루카와는 들고 있던 채찍을 집어 던졌다.
- 그 녀석... 도망쳤어-
자신이 다른 인간의 것이라고 말을 하고 내가 가르쳐준 승마술을 이용해서 도망쳤다.
하나미치에게 키스할 때, 전신을 달렸던 쾌감은 어떤 미녀를 안았어도 한 번도 가져 본 적
이 없을 정도의 기쁨이었다. 그런데-
"밋찌가 좋다고...!? 그놈도 발견하는 즉시 멍청이의 앞에서 산산조각 내주지!"
루카와는 분노한 나머지 허리에 있던 검을 뽑아 한칼에, 타고 있던 말의 머리를 베었다.
하나미치가 여우타로라고 이름붙인, 그날부터 루카와가 손수 애마로서 소중히 해온 말은 갑
작스런 일에 소리도 못 내고 옆으로 쓰러졌다. 말이 쓰러짐과 동시에 그 등에서 뛰어내린
루카와는 전신을 새빨간 피로 물들인 모습으로 절명한 말을 몇 번이나 검으로 후려쳤다.
옆에 있던 가신들은 여지껏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무서운 얼굴을 한 주인에게 말도 걸 생각
조차 못하고 있었다.
- 절대 안 놓친다!-
원형을 알 수 없어질 때까지 말을 난도질한 후, 이가 빠진 검을 던져버리고 부하 중 한 사
람에게서 다른 말을 빼앗아 탔다.
고삐를 당기며, 말머리를 별궁이 아닌 국가의 중추로 향했다. 그리고 따라오는 가신들에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시를 내렸다.
"쇼호쿠 전채를 수배해! 풀뿌리를 뽑아서라도 사쿠라기 하나미치를 찾아내서 내 앞으로 끌
고 와!"
연애에 대해서 무기력과 무관심을 일관해오던 남자는 이 날을 경계로 급변했다.
그러나 루카와가 상상하고 있는 것보다도 하
나미치의 수색은 힘들었고, 발견될 때까지는 아직 수일이 걸리게 된다. 질투로 미친 루카와
가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몸으로 알게 된 것은 좀 더 한참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PRE번 호 : 1866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22일 00:12
등록자 : HALKO 조 회 : 248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1권 #6-3
/PRE

(3)

장소가 바뀌어, 금염궁.
심야라고 해도 좋은 시각에, 정원의 분수대 옆에서 미쯔이는 그날로 다섯 명 째가 되는 남
자와 밀회중이었다.
"아아, 왕자님. 당신과 이렇게 둘만 만날 수 있다니 마치 꿈만 같습니다. 당신이 경애하는
왕의 아드님만 아니셨다면 이대로 납치해버릴 수 있을 텐데."
20대 후반의 병사 같은 느낌의 남자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달빛 아래에 있는 미쯔이를 바라
보았다. 미쯔이는 입술을 빨간 혀로 할짝 핥고는 희롱하듯이 미소 지었다.
"흐응? 그 입으로 몇 명에게 사랑을 속삭였지? 인기 있잖은가, 고명한 젊은 장군께서는."
"오오, 그런 말씀은. 당신이라고 하는 존재를 알게 될 때까지의 연애는 모두 허상이었습니
다.
미쯔이 히사시라는 기적적인 존재와 만나버린 지금, 그 이전의 착각이 어떤 의미가 있겠는
지요.
자, 이 진홍색 장미를 받아 주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꽃은 아름다운 당신을 장식하기 위해

재하는 것입니다."
내밀어진 장미를 받고 나서- 갑자기 미쯔이는 그 장미를 분수 속에 던져버리며 소리 높여
웃어
젖혔다.
"와, 왕자님?"
"진심이냐? 너 그거 진지하게 말하는 건가? 무인 주제에 그런 부끄러운 대사를 잘도 뱉는
군. 보
통 때처럼 말해라, 하세가와 장군."
"저... 저는...!"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낭패하는 장군에게 더욱 더 웃음소리를 높였다. 너무 웃어서 눈에서
는 눈
물까지 나오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내가 유혹하고 나서, 병에 걸린 척하고 일을 쉬고 시인에게 가서

애 대사를 받으러 갔었겠지. 그런 벼락치기 대사는 우습기만 할 뿐이다. 너의 말로 나에 대

사랑을 말해라. 4년 전 우리는 처음 만났었지. 그때부터 너는 내게 빠져 있었지? 왕족의 신

경호와는 관계없는 부서였는데도, 근위사단을 통괄하는 미야기에게 늘 붙어와서는 내 쪽만
보고
있지 않았느냐."
"왕자님. 저에 대해서 눈치채고 계셨던..."
"그럴 리가 있는가. 나는 쇼호쿠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자다. 너 같은 것을 신경쓰고 있을
리가
없잖은가. 미야기에게 들었다."
"예... 예에..."
"-하지만 너, 잘 보니까 내 취미일지도."
"미쯔이 왕자님...!"
"손대지 마라, 무례한 것!"
"아..."
자신에게 뻗는 손을 뿌리친 미쯔이는 가볍게 한 발 앞으로 나섰다.
"나를 좋아하는가?"
"...예."
"나를 위해서 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가?"
"목숨을 걸고."
"그럼 증명해 봐. 그렇지... 너 재상의 외동딸과 결혼했었지. 그 여자와 이혼하고 장군직도

만둬라. 그럴 수 있다면 이 손에 한 번만은 입 맞추도록 허락해 주마."
그렇게 말하며 요염하게 미소 짓는 미쯔이를- 뒤에서 퍽 걷어차는 발이 있었다.
"바보 형. 자기가 속상하다고 해서 유능한 가신의 밝은 미래를 망칠 생각이냐."

"미토 전하!?"
"아야... 뭐하는 짓이냐, 요헤이! 동생의 신분으로 나라의 보물인 미쯔이 히사시를 차는 거
냐!"
화를 내는 형을 무시하고 요헤이는 자신의 관할하에 있는 하세가와를 돌아보았다.
"오랜만이다, 하세가와 장군. 이 미쯔이 왕자는 측실과 싸워서 기분이 안 좋은 거야. 다른
사람
의 가정을 파탄내버려서 기분전환을 하려는 거지. 정말로 이혼하는 건 아니겠지."
"귀에 거슬린다! 나는 약속대로 손에 키스 정도라면 허락한다고-왓!"
또 한 번 걷어 채인 미쯔이는 하세가와의 팔 안으로 쓰러졌다.
"와... 왕자님..."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을 팔 안에 안고 있는 상태가 된 하세가와는 얼굴을 붉히며 몸을
떨었
다.
"이걸로 만족했겠지. 어서 물러나라. 나는 미쯔이 형과 할 얘기가 있다."
하세가와는 이마에 송글송글 난 땀을 닦고는, 가만히 미쯔이의 어깨를 밀어냈다.
"...미쯔이 왕자님."
"응?"
"감사합니다. 오늘 밤 이렇게 만나주신 데다가 웃는 모습까지 보여주시다니 더 이상 여한이

을 정도로 기뻤습니다. 오늘 밤의 일은 일생 잊지 않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방식대로 말

드립니다. 당신은 정말로 세계 제일로 멋진 분입니다."
"뭐어."
하세가와는 조그맣게 쓴웃음을 짓고, 군인답게 몸을 펴서 경례했다.
"다음에는 제 검을 당신께 바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일개 무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
나 미쯔이 전하를 위해서 라면 언제든지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쭈뼛쭈뼛한 태도는 이미 없
었다.
개운한 표정으로 야성적으로 미소 지으며, 하세가와는 몸을 돌려 씩씩하게 달려갔다.
"쳇. 방해하지 마, 요헤이. 새로 데리고 놀 녀석이었는데."
"너, 적당히 좀 해!"
"뭐...?"
미쯔이는 요헤이의 서슬 시퍼런 태도에 놀라서 멍해졌다.
"뭘 화내고 있는 거냐. 이런 건 늘 있는 일이잖아."
"하나미치를 내버려두고 뭘 하는 거야!"
"사쿠라기? 너한테 사쿠라기에 대해 잔소리 듣고 싶진 않다.
너는 단지 사쿠라기의 소꿉친구일 뿐이야. 우리들 부부의 일에 일일이 말참견하지 마라. 촌
뜨기
녀석."
퍽!
"!?"
요헤이에게 뺨을 얻어맞은 미쯔이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 아프진 않았지만 순간
적으
로 미쯔이의 표정이 변했다.
"얼굴 치지 마, 빌어먹을 녀석!"
주먹을 드는 미쯔이의 손을 잡은 요헤이는 형을 노려보았다.
"-하나미치가 열이 나서 쓰러졌어. 의사에게 보였더니 심적 고통이 원인인 것 같대. 쇠약해

있어."
"사쿠라기가!?"
백염궁을 다시 뛰쳐나오고 나서 한 번도 돌아가지 않고 놀러 다녔던 미쯔이에게는 처음 듣
는 얘
기였다.
"여관에게 물어봤더니 전부 형이 원인이라고 하잖아!"
"...내 탓? 흐응."
-내 일 같은 건 아무 생각도 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화를 내긴 했지만, 병이 날 정도로
걱정
하고 있었나?
나한테 홀딱 빠진 주제에 폐를 끼치다니-
하나미치가 병이 났다는
말을 듣고도, 걱정따위는 반편도 없는 표정으로 미소짓는 미쯔이에게, 요헤이의 인내심은
한계
에 도달했다.
"말했지. 울리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던 말이 충동적으로 튀어나왔다.
"형이 이 이상 하나미치를 울리면 정말로 빼앗을 거야."
"...헤?"
미쯔이의 움직임이 일순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머리를 기울여 턱에 손을 대고 요헤이를 보

다.
"...빼앗는다고...? 네가 사쿠라기를?"
깜박. 언제나 젖은 듯한 미쯔이의 검은 눈이 이상하다는 듯이 몇 번이나 깜박임을 반복했
다.
그리고 갑자기 표정이 위험하게 변하더니, 요헤이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건 도대체, 무슨 의미냐."
"......"
"얼래? 형과 요헤이 아냐."
"!"
험악한 두 사람 쪽으로 세 번째의 왕자가 오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던 두 사람을
떼어
내듯이 끼어든 센도는 두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너희들, 이런 시간에 금염궁까지 와서 뭐하는 거야? 방금 엄청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달려

건 지난 번에 서쪽 국경경비를 담당했던 하세가와 장군이잖아."

"형의 오늘 밤 상대야."
내뱉듯이 요헤이가 대답했다.
"과연. 그런 성실한 녀석까지 독에 물들게 하다니 변함없이 절조가 없어. 사쿠라기가 가엾다

는 생각지 않아? 오늘 만났을 때 형의 일로 굉장히 상처입고 있었어."
"네 녀석과는 관계없어."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사쿠라기가 울고 있었던 거 가르쳐 주려고 생각했는데."
"울고 있었다고? 그거 잘됐군."
"...잘됐다고?"
"내 명령을 따르지 않았어. 울리는 건 당연한 거다. 열이 나서 자리에 누운 것도 나를 불쾌
하게
한 벌이 내려서 그런 거야."
아이처럼 억지를 부리는 미쯔이를, 동생 왕자는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째서 사쿠라기는 이런 말을 하는 형에게 빠져 있는 걸까. 내게 빠져준다면 사쿠라기를

프게 할 일은 절대로 안할 텐데."
"...센도?"
"-그렇게 멋대로 굴면 뺏어버릴 거야. 사쿠라기."
센도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너희들, 설마 진심으로 그 녀석을-"
멍하니 미쯔이가 중얼거렸다. 얼굴도 점점 핼쓱해져 갔다.
"너희'들'? 복수라는 것은, 요헤이도 들켜버린 거야. 흐응, 그렇구나. 곤란하네. 우리는 셋이

사쿠라기는 한 사람이니. 그럼 어쩔까? 한 달을 셋이서 나눠서, 10일씩 사쿠라기를 소유하
는 건
어때? 괜찮은 명안이지?"
어처구니 없는 제안에 미쯔이는 분노로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 녀석은 내 측실이다! 너희들과 공유할 생각은 없어!"
입술을 깨무는 미쯔이의 두 눈에, 동생을 상대로 하더라도 한 발짜국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의
를 보고, 센도는 조금 어깨를 움츠렸다.
"...농담이야. 우리가 사쿠라기를 좋아한다고 말한 건 거짓말. 하지만 사람을 잘 따르는 하나

치를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어쨌든 그 흉악한 사랑스러움이 매력이
지. 내
버려두다가 어디서 굴러온지도 모르는 말 뼈다귀에게 뺏겨도 난 몰라. 여관들의 얘기에 의
하면
하나미치가 외출하고 있었던 곳도 남자의 집이었대. 그런 눈으로 우리들 형제를 볼 정도로
소중
한 측실이라면 옆에서 지켜보란 말야. 우리는 그걸 말하고 싶었어. 요헤이."
빙글빙글 웃으며 동의를 구하자, 요헤이는 한순간 주저했지만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미치는 나의 친구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냐."
작게 중얼거리는 요헤이의 말에 미쯔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너희들을, 나는 정말로 믿어도 좋은 건가."
의심스러운 눈초리의 형에게, 센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그거야, 하나미치를 귀엽다고는 생각하지만 말야. 형의 측실이잖아. 대상 밖이
야."
"...요헤이는?"
"하나미치가 반한 건 형이야. 그 이상 뭘 알고 싶은 거야."
"......"
"아직 못 믿겠어? 우린 지금까지 한 번도 형의 신뢰를 저 버린 적은 없었잖아."

"...그 말 잊지 않겠다."
하나미치에 대한 사랑의 진의는 어쨌든간에, 절대적으로 믿고 있는 형제들이다. 자신을 배
신할
리가 없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믿고 있는 미쯔이는 그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불쾌한 얼굴
을 누
그러뜨리지 않은 채 두 사람에게 홱 등을 돌렸다.
"...형?"
"-돌아가겠다."
"엣. 하나미치에게?"
"나는 자고 싶어져서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사쿠라기가 있어서가 아냐!"
얼굴이 새빨개져서 대답하는 것만으로도 하나미치가 있는 곳으로 돌아갈 셈이라는 것이 빤
히 드
러났다. 이렇게 해서 미쯔이는 분수 옆에 묶여 있는 백마 라일락에 올라타고 전력질주로 백
염궁
으로 돌아갔다.
보름달 아래에서 백마를 모는 형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던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은 한숨을 쉬었다.
"우리도 정말 대단한 형제애라니까. 나 스스로도 감동했어."
"...우리? 설마 센도 형까지 정말로 하나미치를 좋아했다고 말할 생각이야?"
"응. 반해버린 것 같아. 사쿠라기도 대단해. 세 왕자를 모두 함락시켜 버리다니. 졌어, 졌
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하며 웃는 센도. 요헤이는 말문이 막혀서 말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뭐, 이번에는 얌전히 실연할 수밖에 없나? 상대가 너무 나빠. 하나미치도 형도 소중

사람이니까. ...어느 쪽도 울리고 싶지 않아."
"...그런가. 둘 다 울보니까."
"그런 이유로 이런 상황은 어른이 양보해야 해. 형제끼리 진흙탕에서 뒹구는 건 피하고 싶
어."
형을 아이라고 단언한 센도는 크게 기지개를 펴며 자조했다.
"...그래도 역시 깨닫자마자 곧장 실연하는 건 괴로워. 상대가 형이 아니었다면 절대 단념
따위
는 하지 않았을 텐데."
"의외였어. 그렇게까지 형이 미쯔이 형을 생각할 줄은."
"...형과 싸워서 이길 방법이 없으니까."
"뭐? 올해 검술대회 결승에서 미쯔이 형을 쓰러트리고 네가 우승했잖아. 난 유학중이라서
불참
했지만."
"분명 칼솜씨도 생활능력도 내 쪽이 형보다 위야."
센도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나 세상에서 제일 형을 좋아하는 걸. 그런 형님에게 칼을 뽑는 것 따위는 정말로 할 수 없
어."
"......"
요헤이는, 이 녀석이 무슨 말을 하고 있냐는 눈으로 센도를 보았다.
"나중에 온 요헤이는 모르겠지. 어릴 때 나는 형만 쫓아다녔어. 어딜 가더라도 형님과 함께

아니면 싫다고 털썩 주저앉았고 사람들 앞에서도 형이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그런
내성적인 아이였어."
"뭐어?"
요헤이는 무의식중에 그 모습을 지금의 두 사람으로 상상하자 생각만 해도 싫다는 표정을
지었
다.
"내 어머님은 저런 사람이고 아버님은 없는 것 같은 사람이잖아. 실제로 날 키워준 건 형과

야코 상이야.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는 없지. 나는 아버지에게 칼을 들이댈 수 있어도 형에
게는
칼을 들이댈 수 없어."
"아버님에게 반역한다고? 큰일날 소리."
"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지. 아버님도 소중한 사람이야. 귀찮은 실무를 전부 떠맡아 주고 수

시간을 줄여서까지 이 나라를 혼자서 이렇게까지 만들어 주셨잖아. 덕택에 왕태자는 이렇게

고 있을 수 있고."
"남 말할 처지가 아니잖아. 센도 형은 차기 국왕이니까."
아무 생각 없이 말한 요헤이의 말에 센도는 굳어졌다.
분명 요헤이의 말대로였다. 현 국왕이 지금의 정치체계를 확립해 버렸기 때문에 국왕은 무
슨 일
이건간에 혼자서 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과로사로 죽기 딱 알맞은 노역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왕이 되면 틀림없이 현 국왕과 비교될 것이다. 그리고 똑같은 일을 요구받을

이다. 지금의 일벌레인 국왕과 똑같은 일을!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해."
"형?"
갑자기 센도는 크게 외쳤다.
"아- 정말 속상하다!"
"헤?"
"좋은 말만 했지만, 결국 나는 형이 부러워. 밝고 매력적인 다정한 새어머니와, 제 1왕자 주제

책임도 가벼운 자유로운 입장! 게다가 특히 사쿠라기까지! 내 측실이나 정실을 전부 묶어놔

사쿠라기 한 명의 가치는 없어! 큰형이라면 하나 정도는 동생에게 양보하라고!"
"혀... 형?"
"오늘밤은 갈 데까지 마셔주지! 너도 따라와! 싫다고는 말할 수 없을 거다! 요헤이도 형과
마찬
가지로 지금까지 좋아하는 대로 해왔고 앞으로도 좋아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입장인 데다가,

엽고 상냥한 하루코 어머님까지 있잖아! 가끔은 손해보는 역할만 전부 떠맡는 불쌍한 차남
을 위
로해 줘라!"
보통 때의 울분을 풀기 위해, 센도는 요헤이의 멱살을 붙잡고 금염궁의 자기 방으로 끌고
들어
갔다.



센도의 방에서 술독에 빠질 정도로 마신 요헤이는 완전히 취한 상태에서 띄엄띄엄 하나미치

일을 얘기하고 있었다.
"...나 마을에 있을 때부터 하나미치를 좋아했어. 옛날부터 그 녀석은 그런 느낌이었어. 내버

둘 수 없어서 이것저것 보살펴 주었지만...깨닫게 되자 그대로 빠져버렸어. 나 정말 애가 탔
어.
남자끼리잖아. 친구를 그런 눈으로 보는 나 자신이 정말 더럽다고 생각했어."
먼 곳을 보듯이, 요헤이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녀석과 헤어지게 된 뒤, 그래도 역시 다른 사람을 아무리 해도 좋아할 수가 없어서...

옛날부터 꽤나 인기 있었는데 말야. 아무리 해도 무리였어. 하나미치 말고는 전혀 원하지

아."
그리고 자조했다.
"남자끼리니까 처음부터 단념한 거였는데 하나미치 녀석이 미쯔이 형 따위를 택하다니 참을

없어..."
요헤이의 손에서 잔이 떨어졌다.
"...그래도 울리고 싶지 않으니까..."
그것을 마지막으로 조용해졌다.
"...요헤이?"
창밖을 보면서 조용히 요헤이의 술주정을 듣고 있던 센도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고개를 돌렸
다.
"잠들었어...?"
테이블에 엎드려서 조용히 잠들어버린 요헤이에게 다가가서 찰싹찰싹 뺨을 쳤다. 그렇게 해

요헤이는 전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자 센도의

정이 갑자기 험악해졌다.
이미 그 얼굴에는 취기가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로는 취하지도 않았다.
"...한 번뿐이다."
어두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나를 사랑하고 길러준 아야코 상을 위해서 한 번만은 이 사랑
을 포기해 주겠어- 하지만."
꽃병에 꽃힌 장미를 꽉 쥐어 으스러뜨렸다.
"...바라는 것을 전부 가지고 있는 형을, 나는 언제나 정말로 질투했어,"
자신은 모범적인 왕자의 역할을 연기하고 주위의 기대에 전부 부응하고 있는데도, 약간의
호의
와 왕태자라는 존재가치만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비해서 형인 미쯔이는 언제나 좋아하는
대로
하고 버릇도 없고 왕자로서의 당연한 의무인 공식 자리에조차 마음이 내키면 빠졌다. 그것
만으
로도 파격적인 왕자인데도, 그 형은 자신 이상의 애정을, 아무 어려움 없이 간단하게 빼앗
아갔
다.
미쯔이의 언동에 고개를 휘휘 돌리며 '곤란한 분이야' '조금은 센도 전하를 보고 배워 주신

면' 라고 말하는 신하들이, 사실은 미쯔이를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고 있는지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자기 주위에 모여 있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무리들뿐. 그
리고
미쯔이의 옆에는 정말로 그를 사랑하고 목숨을 던져서라도 그를 지킬 사람들이 모여 있었
다. 그
리고 이번에는 하나미치다.
-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째서 늘, 늘, 늘 형만 사랑받지? 어째서-
"나는 누구에게나 간단하게 사랑받는 형을 정말 싫어했어."
온화하다고 알려진 센도의, 속에 감추어진 격렬한 감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열 때문에 반쯤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잠들어 있던 하나미치는 목이 말라서 한밤중에 눈
을 떴
다.
"응...?"
배 위에, 뭔가 무거운 것이 올라와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정지.
- 미...밋찌-!?-
자신의 배 위에 머리를 박은 모습으로 미쯔이가 이불도 덮지 않은 채로 깊이 잠들어 있었
다.
"...밋찌."
- 돌아와준 거야?-
하나미치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돌아와 주었다.
아직 버림받은 게 아니었다.
"...고마워."
생각도 못했던 루카와와의 사건으로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그것만으로도 치유되어 갔다.
하나미치는 열로 휘청거리는 몸을 일으켜 미쯔이가 깨어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를 가만히 침대 중앙에 눕혔다.
그리고 자신도, 어른이 열 명은 누울 수 있는 거대한 침대 끝으로 기어들어가 손발을 쭉 뻗

다음 날 아침까지 푹 잤다. 두 번째의 수면은 그때까지의 불면증을 거짓말처럼 가시게 했
다.

다음 날 아침 완전히 건강해진 하나미치는 화원을 한 눈에 내다볼 수 있는 방에서, 미쯔이
와 함
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미쯔이는 하나미치를 측실로 맞기 전까지는, 아침에 거의 식사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
미치
와 이렇게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고부터 비록 소량이긴 하지만 음식을 입에 넣게는 되었다.
"반성도 충분히 한 것 같으니 용서해 주지."
미쯔이는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휙 하고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 뭐냐. 나도 생각이 짧았어, 측실의 상식을 잘 가르쳐 주지 않았으니까 나도

빴다."
"말도 안 돼! 모처럼 밋찌가 날 위해 그렇게 많은 시녀들을 붙여 주었는데도, 아무 것도 묻

않은 내가 나빠."
"...사쿠라기."
"나 열심히 할게. 훌륭한 측실이 될 수 있도록 이제부터 정신 단단히 차리고 공부할게."
자신에 대해서만 끝까지 고분고분한 하나미치에게, 미쯔이는 귀여워서 못 견디겠다는 듯이
고개
를 끄덕끄덕했다.
"좋은 마음가짐이다. 그럼 즉시 측실로서 열심히 해보겠어? 5일 후에 금염궁에서 열리는 국
왕탄
생기념 축하회에 나와 함께 참석해 줘."
"어, 나 같은 게 가도 되는 거야?"
"왕자의 측실이니까 당연하지. 측실은 결혼식은 못하니까, 이번 연회가 사쿠라기의 피로연이
야.
최대한 단장해야 해."
"멋부리는 거라면 맡겨줘! 나는 쇼호쿠 최고의 경국이었던 남자잖아!"
"내 덕택에 말이지."

가슴을 펴며 말하는 하나미치에게, 빙긋 웃으며 미쯔이가 대답했다.
"웃."
"미쯔이 히사시 님 디자인의 멋진 드레스를 한 벌 선물해줄 테니까 오늘 오후는 치수와 가
봉할
시간 비워둬."
"...밋찌의 디자인...?"
하나미치는 노골적으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
예술의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미쯔이는 당연히 예술가답게, 일반인의 감성을 지니고 있지 않

다. 어딘지 남다른 데가 있어서,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과다한 장식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곽에 있을 때도, 미쯔이가 가져온 의상의 반이 입기조차 망설일 정도의 괴이한 것들이었다.

떤 것을 입힐지 생각한 해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뭐야. 불만 있냐?"
"...밋찌의 감성은 너무 위대해서 보통 사람은 이해 못해."
빙 돌려서 거부했지만 미쯔이에게 그런 방식은 통용되지 않았다.
"보통 사람에게는 말이지. 하지만 사쿠라기라면 이해할 수 있어. 천재니까."
입버릇인 천재를 역으로 이용당해서, 반론할 말이 없어졌다.
"제 1왕자의 측실 사쿠라기 하나미치의 피로연이다. 좀이 쑤시는데."
"......"
- 이것도 밋찌의 측실로서의 의무야. 어떤 옷이라도 견뎌내야 해. 나는 밋찌의 측실이니까-
하나미치가 갸륵한 결심을 하고 있는 동안 미쯔이는 손에 든 따뜻한 우유를 단숨에 들이키
고 자
리에서 일어났다.
"또 오늘도 어디 나갈 거야?"
"오늘은 일이 있어서 금염궁에 가. 오랫동안 일을 놔두고 놀았더니 엄청 밀린 것 같아. 게
다가
왜인지 모르겠지만 왕자에게 주어지는 일이 갑자기 늘어났어. 아
버님은 아직 늙어 죽을 연령은 아닌데.
정말 귀찮아졌다니까."
"큰일이네. 열심히 하고 와."
"그래."
손을 흔들며 나가려고 하던 미쯔이는 도중에 멈춰서서 돌아보았다.
"아, 그렇지. 전에 센도가 가져온 쯔나노 직물. 그걸로 만들고 있는 내 옷은 아직 완성하지

았어?"
"아, 미안해.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 아직 거의 손도 못 댔어."
거의 완성한 한 벌은 루카와에게 줘버렸고- 라고 생각하자 갑자기 고개를 저었다. 이제 두

다시 루카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루카와의 일을 생각하면, 그것
만으
로도 미쯔이에 대한 배신일 거라는 기분이 들었다.
루카와에게 키스당했을 때, 순정적인 하나미치에게는 상당한 자극이었던 것이다.
"그거 유곽의 의상 같은 느낌의 색깔을 중심으로 5일 이내에 완성할 수 있어?"
"열심히 하면 되겠지... 어, 설마!?"
- 5일 이내라면 혹시 축하회용으로!?-
이 왕자는 국왕주최의 정식 모임에서 측실이 만든 의상을 입고 나갈 생각인가? 그것도 유곽

은...?
"너의 재봉기술은 일류니까. 어쨌든 그날 그 자리에 있는 건 콧대만 높고 아무것도 못하는
호박
들뿐이야. 나의 측실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이런 일까지 할 수 있다고 자랑해야지. 마음
씨 고
운 거라면 나의 사쿠라기가 대륙 제일이기도 하고."
그렇게 말하고 미쯔이는 미소지으며 돌아와, 하나미치의 뺨에 키스한 뒤 이번에는 정말로
방에
서 나갔다.
"밋찌..."
미쯔이의 입술이 닿은 뺨을 살짝 감싸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 정말로
사이가 좋아졌어...-
어째서 용서해줄 생각이 들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눈물이 나올 것처럼 기뻤다. 이전과 변하
지 않
은 거리낌 없는 웃는 얼굴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이렇게 고맙고 기쁜 말까지 해주
다니.
하나미치는 새삼스럽게 미쯔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 이제 두 번 다시 밋찌를 화내게 하거나 울리지 않을 거야. 이제부터는 밋찌하고만 외출하

않을 거고, 밋찌의 일만 생각하며 살아갈 거야 -
-...게다가 그냥 나갔다간 루카와를 만날 수도 있고-
루카와에 대해 다시 생각하자 따스하고 들뜬 기분이 갑자기 무겁고 어두워졌다. 어젯밤 루
카와
와의 사건은 하나미치에게 있어서 터무니 없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루카와가 자신을 그런

으로 좋아하고 있었다니 지금도 믿을 수 없다. 하나미치는 남창을 지내고 남자의 측실이 되
었다
고는 하지만 사고방식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남자라면 보통은 여자를 좋아하는 거라고 정
말로
지금도 생각하고 있었다. 빨간 머리의 거칠고 막된 자신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 밋찌는 예술가고 기인이니까 날 마음에 들어해 주는 거고, 나도 밋찌가 여자보다 훨씬
아름
다우니까... 그것만은 아니지만... 좋아하게 된 걸-
"...하지만 얼굴이라면 루카와도 아름다웠지-"
루카와의 단정한 얼굴을 생각해내자, 뒤이어 그와의 키스까지 생각해내서 얼굴이 붉어졌다.
"우... 우웃. 그건 불가항력이었어. 밋찌를 배신하는 일 따위는 없어."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던 동성이 갑자기 사랑을 고백한 것만으로도 쇼크 먹을 일이었는데 갇

뻔한 데다가 뒤쫓아온 것이다. 그대로 루카와에게 붙잡혔다면 지금쯤 살아 있을지도 의심스
러웠
다.
그 정도로 그 때의 루카와는 무서웠다.
"밋찌를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의 루카와의 그 얼굴..."
갑자기 한기가 돌았다.
루카와의 얼굴이 그 정도까지 무섭게 변하는 건 실제로 볼 때까지 상상도 못했었다.
- 당분간 꿈에 나올 것 같아-
미쯔이에게 돌아와서 정말로 다행이었다. 뭐라고 말해도 미쯔이는 왕자다. 루카와가 대저택

사는 귀족이라도 왕자의 보호하에 있는 자신에게 손을 내밀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제 1
왕자
의 측실이라고 알게 되면, 결국 루카와도 단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결론지은 하나미치는 루카와를 억지로 머리에서 떨쳐냈다.


PRE번 호 : 1867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22일 00:15
등록자 : HALKO 조 회 : 286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1권 #7
/PRE

7 .

"...저기, 눈 아프지 않아?"
"시끄러워, 센도! 말 걸지 마! 안 그래도 산란해 죽겠는데!"
"미... 미안."
충혈된 눈으로 하나미치가 어젯밤부터 자지 않고 계속 하고 있는 작업은 의상의 마지막 마
무리
인 자수였다.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다채로운 색실로, 완성한 의상에 섬세하게 화려한 꽃을 수놓아 갔
다.
이 단순해 보이지만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작업은 상상 이상으로 큰일이었다. 분명히 말해

정신이 어떻게 될 것 같았다.
- 후웃. 시간이 없어. 하루 여유만 더 있었으면 어떻게든 됐을지도 모르는데...-
국왕 탄생기념일은 내일이 었다. 몇 번이나 주저앉을 뻔했지만, 곧장 다시금 기운을 내고
바늘

계속 움직였다.
- 질 수 없어! 밋찌가 입을 옷이야! 아무리 큰일이라도 포기할 순 없어!-
살기가 번득이는 하나미치 옆에는 센도가 앉아 있었다. 그는 조금 전 하나미치를 만나러 백
염궁
으로 온 것이다. 그러나 놀아주기는 커녕 말조차도 걸어주지 않아서 심심해 보였다. 그 방
에 오
늘은 처음으로 미쯔이가 들어왔다.
"사쿠라기, 들어간다- 어? 너 와 있었냐?"
"방해했습니다, 형님."
센도는 일어서서 가까이 오고 있는 미쯔이를 맞이했다.
"이런 곳에 오다니 일은 다 한 거야? 나만 해도 쌓인 게 일인데 너는 더 비참하겠다."
"하하. 그러니까 도망쳤지."
"책임감이 강한 네가 그러다니 드문 일인데."
"벌써 나흘째 책상에만 붙어 있었어. 정말이지 숨이라도 돌리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웬지 금염궁이 이상해. 안정되어 있지가 않아."
"이상하다고?"
"살기가 넘친다고나 할까, 뭐라고 말하지... 말로 설명하기 좀 그렇네."
"내일은 1년에 한 번 있는 커다란 제전이니까 그렇겠지. 파티장인 금염궁이 살기가 넘친다
고 해도 어쩔 수 없잖냐."
"응. 뭐 그렇지만... 예년과는 상당히 달라. 출입도 엄격해졌어."
"매년 똑같은 일이지, 뭐.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
"그런가, 역시. 축하회라고 하니 말인데, 아야코 상에게 들었어. 사쿠라기도 데리고 간다며?"
"아아, 귀족들에게 첫선을 보이는 거야."
"흐응. 그러면 정장하는 거야?"
"후후. 내일은 쇼호쿠 신사숙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줄 생각이야. 기대하고 있으라구."
"형이 단언한다면 굉장하겠지. 금염궁에 가기 전에 보러 올게."
"그래. -사쿠라기."

"이봐, 사쿠라기."
말을 걸어도 하나미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일사불란하게 자수를 하는 하나미치에게는 두 사
람의 대화도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미쯔이가 이 방에 온 것조차 눈치채고 있지 못한 것
같았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미쯔이는 하나미치의 옆에서 몸을 굽히고, 손에서 침을
빼앗았다.
"앗!"
크게 외친 하나미치는 새빨개진 눈으로 미쯔이를 노려보았다.
"뭐하는 거야! 시간 없어. 방해하지마! 저리 가!"
"어, 무서워라."
미쯔이는 어깨를 움츠리며 양손을 들었다.
"곧장 퇴장해 줄게. 이제부터 외출할 거라서 여러 가지 보고를 하러 왔을 뿐이야. 오늘 늦게

거니까 먼저 자."
"...응? 일 있는 거 아니었어?"
"후후. 나는 정무의 천재. 여기 있는 어리석은 동생과는 달리 전부 끝냈지."
"호오. 그럼 어디 가는 건데."
"군인인 숙부님과 데.이.트♥"
센도 쪽이 오히려 놀라서 한쪽 눈을 윙크하며 기쁜 듯이 말하는 형을 돌아보았다.
"형. 사쿠라기 앞에서-"
"흐응. 조심해서 다녀와."
"사쿠라기!?"
미쯔이가 다른 남자와 밀회한다고 말해도 전혀 신경쓰고 있지 않은 하나미치에게, 센도는
놀랐
다.
"하지만 군인이라면 이전에 말했던 시장의 아들 말하는 거 아냐? 수련까지 공부하러 왔다는
그."
"아아. 역시 어린애는 안돼. 연인은 역시 어른이야."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하는 이상한 대화에, 센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나미치가 바람기
공인
이라고 말하고 있는 건 듣고 있었지만 이성으로는 어쨌건 간에 속마음은 조금이라도 뭔가
마음
에 걸릴 거라고, 센도는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의 다수의 측실들은 전원 그랬
다.
"아, 이런. 시간이 없네. 그럼 나중에 봐, 사쿠라기. 수면부족이면 화장발이 안 먹으니까 내

을 위해서 일찍 자."
"밋찌."
미쯔이가 눈꺼풀에 키스를 하자, 하나미치는 무척 행복한 듯이 미소지었다.
미쯔이가 나간 뒤, 센도는 의문을 툭 던졌다.
"...정말로 사쿠라기는 형이 바람 피워서 슬프지 않은 거야...?"
"응? 그치만 나 측실이잖아?"

"그러니까 싫지 않은 거야...?"
"하아? 바보 아냐, 너? 나는 이해심 있고 호탕한 전 경국이야. 질투따위는 촌스러운 감정.
그런
건 전혀 없어."
하나미치는 쾌활한 얼굴로 웃어젖히며 다시 자수로 의식을 돌렸다.
"...사쿠라기는 형을 사랑하는 거야?"
센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재개된 콕콕 작업 때문에 무시되었다.



PRE번 호 : 1870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23일 17:16
등록자 : HALKO 조 회 : 254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1권 #8-1
/PRE

8 .

(1)

국왕 탄생 기념일 당일.
거의 모든 국민이 일을 쉬고 왕의 생신을 축하하는 이 날. 수도 수련 이외의 각지에서도 크

작은 여러 행사가 열린다.
그 클라이막스인, 저녁부터 시작되는 금염궁의 대 축하회에 참가하기 위해, 하나미치들은
아침
부터 대단히 바빴다.
"오늘은 분명히 어떤 귀족 여자들보다도 밋찌가 제일 아름다울거야."
"야, 말하지 마. 입술 연지가 뭉개지잖아."
진지한 표정으로 하나미치의 얼굴에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몸차림을 완벽하게 정돈

준 미쯔이 히사시 왕자. 왕족의 상징인 황금 세공의 관을 쓰고, 하나미치의 역작을 입은 미
쯔이
는 중성적인 괴이한 매력을 전신에서 풍겼다.
입는 사람에 따라서는 천박해질 우려가 있는 화려한 의상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미쯔이에
게,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면서 하나미치는 크게 감격했다.
"-좋아, 끝났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같은 향수를 뿌린 뒤, 전신을 훑어보며 미쯔이는 만족스
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멋져. 이 정도라면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겠어."
"하지만 몸이 너무 드러나는 거 아냐?"
"괜찮아. 너는 완벽한 몸과 티끌 하나 없는 아름다운 피부를 가지고 있어. 그걸 강조 안 하

뭘 강조하냐?"
"그런 건가?"
하나미치가 입고 있는 것은, 자칫하면 망측하게 보이는, 요염하고 화려한 의상이었다. 상반
신은
거의
나체였지만 대량으로 걸려 있는 황금 장식품이 옷의 역할을 멋지게 수행하고 있었다. 하반
신도
황금 세공에 뒤덮여 있고, 걸친 거라고 해봐야 얇아서 투명한 소재의 천이, 장식 정도로 감

있었다. 그리고 머리 장식도 이마 장식부터 관(冠)까지, 엄청난 양의 황금이 매달려 있었다.

한대의 체력을 지닌 하나미치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의 무거운 순금을 지고는 걸을 수도 없
었을
것이다. 정말로 하나미치에게 밖에 할 수 없는 현란한 복장이었다.
그리고 미쯔이는 미쯔이대로, 유곽의 의상을 참고로 만든, 기품 있다기보다는 화려하고 색
기가
넘치는 요염한 의상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있으니 장관이었다.
"-전하. 손님입니다."
가신 중 한 사람이 입실해서 고하였다.
"손님?"
"센도 전하와 미토 전하입니다. 들어오시게 할까요?"
"아아, 그래라."
잠시 후 정장한 센도와 요헤이가 들어왔다. 둘 다 왕족답게 중후하고 공을 들인 옷차림이었
다.
미쯔이와 하나미치 같은, 닳고 닳은 듯한 의상이 전혀 아니라서 하나미치는 자신들의 복장
에 한
층 불안감을 느꼈다.
- 설마 우리들, 파티장에서 나쁜 의미로 주목받는 거 아닐까-
자신만이라면 몰라도 자신이 만든 의상으로 미쯔이가 나쁜 시선을 받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생 왕자들의 정상적인 정장 차림을 보고 말이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동생 왕자들도 또한
하나
미치를 보고 말이 없어졌다.(미쯔이의 이런 복장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하나미치. 너, 정말 그 차림은..."
새파래진 요헤이가 멍한 목소리로 간신히 중얼거렸다.
"어... 역시 이상한가."
"이상한 게
아냐. ...무서울 정도야, 너."
"무서워? 그렇게 안 어울려?"
낙담해서 고개를 떨구는 하나미치였지만, 요헤이는 고개를 크게 저었다.
"너무 어울려서 무서울 정도라고 말하는 거야, 나는!"
조금 전부터 하나미치를 응시한 채로 한 마디도 말할 수 없었던 센도도 크게 심호흡을 하고

을 열었다.
"...변했어. 원래 귀엽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아름답다니 정말 몰랐어."
"정말이야. 빈틈 없이 정장한 쇼호쿠의 악마와 함께 있어도 뒤지지 않아."
쇼호쿠의 악마란 암암리에 알려진 미쯔이의 통칭이다. 지금의 하나미치는 대륙 제일의 미
모, 마
성의 미모라고 칭송받는 미쯔이에게도, 순수하게 외견만으로 대항하고 있었다. 아니, 대항이

기보다는 어쩌면 하나미치 쪽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화려한 색채 때문에, 눈에 띈다는
점에
있어서는 미쯔이를 앞설지도 모른다.
하나미치의 매력이라면 지나칠 정도로 알고 있는 두 사람을 아연하게 만들 정도로, 오늘의
하나
미치는 완벽했다. 두 사람의 노골적인 찬탄에 기분이 좋아진 것은 미쯔이였다.
"나의 최고 걸작이다. 잘 꾸미면 사쿠라기가 이 정도가 될 거라고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
예술가로서도 이름을 떨치고 있는 미쯔이다. 그의 심미안은 진짜였다.
"우웅?"
시녀들이 가져온 거울에 전신을 비춰보고 하나미치는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어때? 완전히 달라 보이지? 이 정도라면 어떤 여자라도 명함도 못 내밀걸."
"우... 화장했으니까 예쁘게 보이는 걸지도 몰라. 대단한 건 아니잖아."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검은 눈과 직모의 흑발을 동경하
고 있는 하나미치는 지금의 자신을 봐도 그다지 아름답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하나미치의
감상
에 센도가 목소리를 높였다.
"아름다워. 굉장히! 이런 아름다운 사람은 지금까지 본 적도 없어! 지금의 사쿠라기 앞에서
라면
미쯔이 형도 눈에 띄지 않-"
미쯔이와 하나미치가 거의 동시에 센도를 걷어찼다.
"내가 사쿠라기에게 뒤진다고 네가 말할 수 있냐, 앙?"
"밋찌 쪽이 아름다운 게 당연하잖아! 나는 천재지만 아름답진 않아!"
미쯔이 이상으로 화가 나서 말하는 하나미치는 커다란 호박색의 눈에 눈물을 글썽였다.
"밋찌. 역시 그거 입지 않는 게 좋겠어, 센도에게 저런 굴욕적인 말을 듣는 것도 내가 밋찌

아름다움을 죽이는 옷밖에 만들지 못한 탓이야. 내 책임이야."
미쯔이는 허리에 양손에 얹고 하나미치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안 어울려? 나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킨다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생각진 않지만 센도가 그렇게 말하 니까 갑자기 그렇게 보이잖아."
고개를 떨구며 자기비하를 하는 하나미치에게 애가 타는 것은 동생 왕자 쪽이었다.
"아냐, 오늘의 형은 보통 이상으로 아름다워! 아니, 굉장해! 금세기 최대의 화려함이라고까

하는 형을 이렇게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옷을 만들 수 있는 건 세상에서 사쿠라기뿐이야!"
"정말이야...?"
"정말이라니까, 정말! 과연 사쿠라기는 천재야!"
"그래! 천재야!"
뻔히 비위를 맞추는 말에 넘어간 하나미치는 순간적으로 미소를 되돌렸다.
"...사쿠라기는 자신이 칭찬받는 것보다 형이 칭찬받는 쪽이 더 기쁜 거
구나."
센도의 말에 미쯔이가 히죽 미소지었다.
"그 정도로 날 좋아하는 거지."
"당연하지! 난 밋찌의 측실이니까!"
그 말을 듣고 요헤이가 한 마디 중얼거렸다.
"...옛날부터 하나미치는 단순했어."
"단순하다니 무슨 의미야!"
발끈한 하나미치. 일제히 웃는 미쯔이와 센도.
"왜 밋찌까지 웃는 거야!"
"너 같은 녀석을 측실로 삼은 나의 행운이 기뻐서."
"내가 측실이라서 밋찌는 기뻐?"
"그래. 나는 세계 제일의 행운아야."
"나도 밋찌와 만날 수 있게 되서 기뻐!"
마치 그가 자신의 전부라는 듯한 태도로, 미쯔이에게 착 달라붙어서 천진난만하게 미소짓는

나미치.
그 미소는 연인 사이나 부부라기보다도, 오히려 아이가 새어머니를 사랑하는 것 같은, 절대적

신뢰와 애정으로 가득차 있었다.
주위의 눈도 신경쓰지 않고 러브러브 상태인 두 사람에게, 센도와 요헤이는 작은 한숨을 쉬

다.

해가 저물어 노을이 진 하늘 아래, 세 왕자와 함께 하나미치는 백염궁을 떠났다.
아름답게 변신한 하나미치가 백염궁의 문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동안에도, 많은 여관들이 놀
라움
의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문지기들도, 아름다운 측실을 황홀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하나미
치들
이 사라지자 큰 목소리로 찬사를 해댔다.
"저게 남자라고!? 역시 경국을 지낼 정도로 아름다운 분이다!"
"우리 주인님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여자보다 훨씬 아름다운 남자가 다른 데에도 있기는 있

나."
"처음 봤지만, 과연 미쯔이 전하가 첫눈에 반하실 만큼, 아름답고 품위 있는 측실님이셔."
문지기들은 자신들이 이미 하나미치를 몇 번이나 봤을 뿐만 아니라 인사까지 나눴다는 사실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두 번째로 본 금염궁은 이전에 왔을 때보다 훨씬 아름답게 보였다. 전에 방문했을 때는 미
쯔이
를 울린 일로 낙담해 있었기 때문에 여유있게 구경할 정신적인 여유도 없었다. 이렇게 새삼
스럽
게 다시 보니 눈이 아찔할 정도로 호화찬란한 건물인 것을 실감하고도 남았다.
부지(敷地)만으로도 가볍게 백염궁의 20배는 되었고, 작은 도시가 전부 들어갈 정도로 거대

다. 황금 산출량 세계 1위를 자랑하는 풍요한 쇼호쿠의 중추인 만큼, 벽이나 천장에까지 금
박이
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두꺼운 황금이 입혀져 있고, 여관의 제복까지 금실로 직조되어 있는,

려한 것이었다. 용이 눈에 보이는 곳마다 조각되어, 전체적인 분위기는 동양풍이었다. 같은

화로운 건물이라도 대리석을 중심으로 만든 서양풍의 백염궁과는 크게 달랐다.
세 왕자를 따라 금염궁에 등장한 하나미치는 커다란 홀로 향하는 동안 건물 감상에 여념이
없었
다. 그것 때문에 가는 곳마다 자신이 주목받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복도에 나와 있는 금염궁의 여관들이 처음 정식으로 찾아온 제 1왕자의 측실을 보고 조그
맣게
서로의 의견을 말하고 있었다.
"아름다워. 저게 미쯔이 전하의 첫 측실님이라고?"
"역시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아. 전 경국답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미인이야."
"오늘의 미쯔이 님도 한층 더 아름다우신데도, 전혀 뒤지지 않잖아. 봐, 저 흠 하나 없는 매

러운 피부! 우리들과 같은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
"저런 분이 남성이라니 정말 사기야!"
"하지만 당연하다면 당연하지. 유곽에 몸을 담은 남창이 왕자의 눈에 들어서 측실이 되다니,

말 출세한 거지. 저 정도의 미인이 아니면 당연히 무리잖아."
"그렇구나. 그런 꿈 같은 일도, 보통 사람 이상의 미모가 있다면 현실이 되는 거야. 경성 출

인 아야코 님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분이시고."
"그래도 저 측실님, 우리 나라의 자랑인 세 왕자님을 거느리고 첫 등장이라니 굉장해. 독신

미토 왕자님은 그렇다 치고 센도 왕자님의 정실님들은 분명 심중이 안 좋으실 거야."
지나가는 곳마다 술렁거림을 일으키면서, 하나미치들은 파티장인 커다란 홀로 천천히 걸어
갔다.
하나미치들의 방문과 동시에, 세 왕자의 등장을 고하는 나팔과 호명 소리가 회장 내에 또랑
또랑
하게 울려퍼졌다.
"왕태자, 센도 아키라 전하!"
"제 1왕자, 미쯔이 히사시 전하!"
"제 3왕자, 미토 요헤이 전하!"
"제 1왕자의 측실, 사쿠라기 하나미치 님!"
제후들의 앞에서 처음으로 측실로서 정식으로 불리워진 이름. 이것이 하나미치의 실질적인
피로
연이었다. 국왕주최의 연회에 출석을 허락받은 쇼호쿠의 귀족, 무장, 여러 외국의 외교관,
명성
높은 저명인사들이 출중한 모습의 세 왕자와 마침내 제 1왕자가 맞이한 소문의 측실을 보
기 위
해 일제히 주목했다.
홀을 메우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입구의 빌로드 커텐이 삭 열렸다.
불려진 순서대로 왕자들은 한 사람씩 예사로운 모습으로 등장했다.
센도, 미쯔이, 요헤이, 왕자들이 나올 때마다 터질 듯한 환호가 일어났다. 그것만으로도 세

자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나갈 차례가 된 하나미
치는,
긴장한 나머지
창백해졌다.
- 나... 나는 단지 측실이야. 어째서 왕자들과 같이 등장을 해야
하는 거야-
측실이라고 해도 왕족의 말석에 위치한다. 왕족만이 아닌 이름 높은 귀족의 경우도 똑같이
호명
을 당하며 등장하는 것이 쇼호쿠의 관례였다. 그것을 몰랐던 하나미치는 각오를 전혀 하지
않아
서 굳어져 버렸다. 계속 나오지 않는 하나미치에게, 홀의 사람들로부터 불평의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할 때,
"-나의 가장 사랑하는 비는 고상한 성격 탓인지 사람 앞에 나오는 걸 부끄러워하는 것 같
소."
먼저 입장한 미쯔이가 작게 어깨를 움츠리며
말하고는, 발길을 돌려 일단 퇴장했다. 그리고 곧, 이번에는 하나미치를 데리고 등장했다.
-오오.
바로 그때 일제히 커다란 술렁거림이 홀을 관통했다.
- 히익! 모두 보고 있어!-
미쯔이의 등 뒤에 숨어서 겁먹은 표정으로 주위를 보았다. 배짱도 있고 배포가 큰 하나미치
였지
만 익숙하지 않은 이런 장소만은 큰 고역이었다.
바싹 붙은 미쯔이와 하나미치에게 홀 여기저기서 감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굉장해. 얼마나 아름다운가."
"미쯔이 전하는 이 정도의 미희를 바라고 계셨던 건가."
"왕자님 자신도 저 정도의 미모의 소유자. 어설픈 상대로는 만족되지도 않으시겠지. 제 1왕
자님
이 이 나이까지 아무도 간택하지 않으신 이유를 잘 알겠어."
"두 사람이 남자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아. 마치 미희가 두 사람 나란히 서 있는 것 같지 않

가."
"태양의 여신과 달의 여신이야."
특히 남자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고, 거기에 익숙해져 있는 미쯔이는 그쪽으로 교만한

소를 던졌다. 그리고 계속 잡고 있던 하나미치의 손을 함께 들어올렸다. 그 순간 열광적인
환성
이 회장을 다시
관통했다. 미쯔이는 기분이 좋아져서 하나미치의 귀에 입술을 갖다댔다.
"봐, 말한 대로지? 너는 아름다운 나의 측실로서 부족함이 없는 미인이야."
"내가 미인일 리가 없어. 저건 전부 밋찌에 대한 찬사야."
"너, 겸허함이 너무 지나쳐. 말도 안 되는 자신가인 주제에 왜 너 자신이 아름답다는 사실만

전혀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거야."
"...그치만 정말로 아름답지 않은 걸..."
더럽다고, 기분 나쁘다고 어릴 때부터 새어머니에게조차 경멸당한 용모. 고향에서는 이 빨간
머리
와 호박색 눈을 보고, 얼굴을 찡그리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하나미치의 유일한 최대의 콤플렉스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그것을 동경했고, 자타가 공인하

얼굴 밝힘증이 되었다. 검은 머리와 검은 눈의 미형을, 남녀를 불문하고 극도로 좋아하는
원인
도 거기에 있다.
"...내 얼굴은 꼴불견이야."
"그거 크게 말해 봐. 그 자리에 있는 너보다 월등히 떨어지는 여자들에게 저주받아 죽을
걸."
"우우..."
"자, 가자. 진귀한 요리가 많이 있다고 해서 너무 걸신 들린 듯이 먹지 마. 꼴불견이니까."
다짐을 받아두고 나서, 주위의 시선을 뿌리치며 두 사람은 걸어나갔다.
뷔페 파티이기 때문에 신분에 관계없이 - 라고는 해도, 테이블마다 같은 계급의 사람들끼리

리되어 있었지만 - 홀 안은 사람으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우."
센도 쪽으로 가자 그의 주위에는 화려한 옷차림을 한 미녀들이 모여 있었다.
"아, 사쿠라기. 소개할게. 오른쪽부터 유리아, 리카, 시노, 아리사, 미레이. 나의 측실들이야."
"다... 다섯 명!?"
쓴웃음을 지으며 센도는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아직 있어. 저쪽... 좀 알아보긴 힘들지. 기둥 그늘에 있는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나

정실이고, 그 주위에 있는 네 사람도 나의 측실이야."
"......"
총 10명의 미녀에 하나미치는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쇼호쿠는 기본적으로 일부일처제였
다. 그
래서 측실은 애인 같은 것으로 제 2왕비라든가 제 3왕비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런
이유
로 보통은 측실을 둬도 두세 명까지였다. 왕족은 예외라고 하더라도, 그래도 열 명은 많다
고 하
나미치는 생각했다.
소개받은 여자들은 일단 하나미치에 대해 머리를 숙였지만 그 눈은 확실히 모멸의 빛을 담
고 있
었다. 그녀들은 모두 태어나면서부터 귀족이다. 기품있는 그녀들은 평민 출신의 하나미치를

골적으로 경멸하고 있었고 그것을 숨기지조차 않았다.
그래도 인사받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서 하나미치 쪽도 예의작법에 엄격했던 유곽에서

운 대로 거의 완벽한 절도로 답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 1왕자의 측실 사쿠라기 하나미치라고 합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하나미치는 여자 앞에서 너무도 긴장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서로 알게 된 것도 많은 인연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후에도 이 사쿠라기를 잘 이끌

주십시오. 다음에 방문하실 때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제대로 인사한 건 칭찬해 주겠지만 좀 이상하지 않아?"
"...헤?"
"기다려 주겠다니, 무슨 말이야. 여기는 유곽이 아니야."
"!"
미쯔이에게 듣고 깜짝 놀랐다.
유곽에서 암기한 말을
하나미치는 말하고 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저런 정중한 인사는 못한다) 게다가 그것은 헤
어질
때의 인사였다. 하나미치는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졌다.
"...과연 예전에 남창이었던 분이로군요."
업신여기는 태도로 쿡쿡 웃은 것은 센도의 바로 옆에 있던 측실. 다른 측실들도 잠깐잠깐
하나
미치를 보고는, 들으라는 듯이 '품위가 없어'라든가 '태생이 천하다' 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나미치는 유곽에 있을 때에 중상(中傷)이라면 많이 받아봤기 때문에 특별히 멈출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들의 태도를 센도가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꺄악!"
갑자기 센도가 손에 든 포도주를 여자들에게 끼얹자, 그녀들은 비명을 질렀다.
"세... 센도!?"
"무슨 짓이십니까, 아키라 님!"
홀에 있던 많은 사람들도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일제히 센도 쪽을 돌아보았다.
"-그 태도는 도대체 뭐냐. 사쿠라기는 아직 정실이 없는 형에게 있어서 아내와 동등한 분이
다.
사쿠라기를 모욕하는 자는 설령 나의 측실이라고 하더라도 용서하지 않겠다."
측실들은 물론 어떤 여자에게든 상냥하다고 평판이 높았던 센도의 이런 언동은, 궁정에 모
여 있
던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한 자존심덩이 같은 센도의
측실
들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홀에서 도망쳐 나갔다.
"저것들 사쿠라기에게 사과도 안 하고..."
그녀들이 사라졌어도 험악한 표정을 누그러뜨리지 않는 센도에게 하나미치는 머뭇머뭇 말을

었다.
"난 저런 건 전혀 신경쓰지 않아. 남자잖아. 그보다 저 여자들이 가엾잖아. 여자 아이는 약
하니
까 소중히 해줘야 해."
"...사쿠
라기는 상냥하구나. 저런 잔혹한 말을 듣고도."
"응? 특별히 신경 안 써. 사실을 말할 뿐이잖아."
"사쿠라기..."
센도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나미치를 바라보며, 그 몸에 손을 내미려고 하다가- 멈췄다. 그
리고
작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미쯔이는 달아난 여자들 쪽을 향한 채로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
다.
"최악이다. 너의 여자들은 착실한 교육도 못 맏은 거냐. 좀 더 나은 여자를 둬라. 한심해."
"할말 없어. 이제부터는 여자들을 고르는 것도 형의 조언을 구할게."
"그래그래. 좋은 마음가짐이다."
어느 새 옆에 와 있었는지, 요헤이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고개를 설래설래 저었다.
"그만둬, 센도 형. 미쯔이 형의 안목이 통용되는 건 남자뿐이야."
"요헤이!"
"저기 밋찌. 이거 먹어도 돼?"
"...사쿠라기."
혼자서만, 진귀한 성찬에 관심을 쏟고 있는 하나미치에게, 미쯔이는 한숨을 쉬고, 센도는 미

짓고, 요헤이는 말 없이 요리를 쟁반에 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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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센도는 1권까지는 괜찮습니다. 이번 회에서는 멋있기까지도 하지요.
(계속 이래주면 얼마나 좋아요, 바로크 T_T)

PRE번 호 : 1871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23일 17:18
등록자 : HALKO 조 회 : 246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1권 #8-2
/PRE

(2)

하나미치는 요헤이와 센도가 권해주는 요리를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 옆에서 보면 세 왕자
를 주
위에 거느린 듯이 보이는 하나미치는 질투와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의 주역은 아직 안 나왔잖아?"
요헤이의 질문에 센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늦네. 아직 누워 있는 건가?"
"설마. 빨리 회복해주지 않으면 우리 몸이 안 남아난다."
진저리치는 어조의 미쯔이에게 요헤이도 괴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혼자서 해내다니 역시 괴물이야."
왕자들의 대화에, 하나미치는 고기를 씹으면서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임금님이 어떻게 된 거야?"
"아아. 그렇게 크게 말할 순 없지만 요 며칠간 몸에 탈이 나서 정무도 만족스럽게 못하는
모양
이야."
"덕분에 국왕의 일까지 전부 우리가 떠맡게 돼서, 손이 몇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야. 지금까

감기 한 번 걸리지 않은 사람인데 신기하기도 하지."
"과로인가. 더 이상 부활하지 않나 봐. 축하해. 이제부터는 형의 시대네."
요헤이가 센도의 어깨를 팡팡 두드리자, 센도는 정말로 싫은 표정을 지었다.
"에. 아무리 그래도 아직 너무 빨라. 아버지는 아직 28세란 말야."
"28?"
놀라서 무의식중에 큰 소리로 외쳤다.
"사쿠라기?"
"그게 뭐야! 굉장히 젊잖아!"
"왕족은 일찍 결혼하니까. 선대 왕만 해도 정비를 맞이한 게 7세 때였어. 28세에 우리들 정
도의
아들이 있어도 특별히 신기하진 않지."
센도의 말에 미쯔이
도 입을 열었다.
"전에 얘기한 거 들었지. 장남인 나는 아버지가 열 살 때에 생긴 아이야."
"...열 살...? 그건 어린애잖아."
이전에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지만 연령에 대해서는 주의깊게 듣지 않았다.
"덤으로 나는 열한 살 때의 아이."
라는 센도.
"나는 열두 살 때."
라는 요헤이.
"......"
15세의 자신과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 상상도 못할 스케일이라 식은땀이 흘렀다.
"센도가 정비를 맞이한 것도 분명 열 살 때였지. 7년이나 애가 생기지 않다니 정말 위험한

아니냐?"
"상관없어. 유사시에는 형의 아이를 양자로 삼으면 돼."
"하아!? 멋대로 말하지 마!"
"그럼 요헤이라도 괜찮아. 형을 위해 빨리 여자를 임신시켜 다오."
"네가 해! 네가!"
언제나처럼 셋이서 소란스럽게 떠드는 왕자들.
- 이녀석들 형제는 정말로 사이가 좋구나-
하나미치가 부러운 듯이 세 사람을 보고 있지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가 어깨를 쳤다.
"?"
무슨 일인가 하고 돌아본 하나미치는, 어딘가에서 본 듯한 얼굴을 발견하자 멍해졌다.
"사쿠라기... 하나미치 님...?"
남자의 굉장히 진지한 눈초리에 하나미치는 내심 혼란스러워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긴 한데 너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의 얼굴이 일시에 밝아졌다.
"역시! 굉장히 분위기가 달라지셔서 다른 사람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만, 본인이시라니! 그
렇군
요! 그 선명한 머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없지요! 혹시나 해서 말을 걸어서 정말로 다행입니
다!"
"응?"
눈물을 줄줄 흘리는 남자에게, 하나미치는 정말로 곤혹스러워져 버렸다. 두 사람을 본 미쯔
이도
얘기에 끼어들었다.
"어? 너 쿠와타 아닌가."
"오랜만입니다. 미쯔이 전하."
쿠와타는 재빨리 왕족에 대한 예를 표했다.
- ...쿠와타?-
들은 기억이 있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자, 곧 앗 하며 외쳤다.
- 쿠와타라면 루카와 집에 있던 시종이잖아!-
기억해낸 순간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어... 어떻게 네가 이런 곳에..."
"이제 곧 이쪽으로 오실 루카와 님의 등장을 알릴 사자(使者)로서, 방금 지금 도착했습니
다."
"그녀석이... 온다고?"
목이 바싹바싹 말랐고, 목소리가 멍해져 있는 것은 자신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정도로 낭패

컸다.
"너 사쿠라기를 알고 있나?"
"예."
"흐응."
쿠와타를 하나미치가 유곽에 있었을 때의 아는 사이로 해석한 것이다. 미쯔이는 특별히 의
문스
럽게 생각하지는 않는 듯했다. 결코 바람 피울 생각은 없지만, 미쯔이에게는 루카와에 대해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아, 그렇다 치더라도 잘됐습니다! 요 며칠간
저희들은 계속 사쿠라기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돌아가신 겁니까!? 그 날부터 우리
주인
께서는 난폭해질 대로 난폭해지셔서 종자들에게까지 피해가 미쳤습니다! 어서 루카와 님을
만나
뵈셔서 그 분의 마음을 평안히 되돌려 주십시오!"
- 그 자식. 그렇게 확실하게 거절했는데 아직 날 단념하지 않은 건가-
쿠와타의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그 뒤의 루카와가 어땠는지 뻔히 알겠다. 예측은 했었지만
이렇
게 직접 듣자 쓸데없이 기분이 가라앉았다.
-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렇게 되버렸지만, 그 녀석에게는 신세도 졌고. 같이 있어서 즐거
웠으
니까 가능하면 이대로 아름다운 추억으로서 마음 속에 남이 있길 바랬는데...-
왕자의 측실이라는, 다른 사람의 것이고 손을 내밀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알면 분명 여우도
충격
을 먹을 것이다.
"어느 저택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건 들었습니다만 미쯔이 전하 옆에서 일하고 계셨던 겁니
까?"
방금 온 쿠와타는 하나미치가 미쯔이의 측실이라는 것을 모르는 상태였다. 그에게 알려지면

카와에게도 전해질 거라 생각하며, 대답을 주저했지만 미쯔이가 간단하게 그 고민을 해소시

주었다.
"측실에게 일을 시킬 정도로 생활이 곤궁하진 않다. 듣기 거북하군."
"옛?"
쿠와타의 놀라움은 대단했다.
온화하고 동안인 그의 얼굴이 너무 놀란 나머지 인상이 완전히 변할 정도였다.
"...쿠와타?"
"와... 와... 왕... 왕자님...의, 츠... 츠... 측실...?"
하나미치는 체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곧 발각될 것이다. 생각해 보면 들키는 쪽이

을지도 모른다. 루카와도 빨리 단념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그런. 폐하에게 뭐라고 보고하면 좋을지..."
비틀비틀 물러서며,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의 쿠와타가 중얼거렸다.
- 폐하?-
어째서 여기에 폐하가 나오는 거야.
그 의문에, 조금 전부터 이쪽을 보고 있던 센도가 대답해 주었다.
"아버님의 측근이 어째서 사쿠라기를 찾고 있지?"
아버님의 측근!?
"이... 이봐! 너 루카와의 집에서 온 게 아니었어?"
"...예. 루카와 카에데 국왕폐하의 신변을 돌보고 있습니다."
루카와 카에데 국왕폐하!
"하... 하지만 임금님은 여기에 살고 있잖아? 루카와는 강변의 이름도 없는 저택에서 살고
있는
게 아니었나..."
"그건 폐하가 낮잠을 주무실 때 자주 사용하시는 사적인 별궁입니다."
"......"
이번에는 하나미치가 질릴 대로 질려서 비틀비틀 후퇴했다.
밋찌의 아버지가 루카와?
센도의 아버지도 루카와?
요헤이의 아버지까지 루카와!?
루카와가 국왕폐하!?
으아악!
"거짓말이야! 루카와 쪽이 센도보다 훨씬 젊어 보인단 말야!"
28세라고 생각해도 그건 너무 젊다.
루카와는 자신과 같은 나이
정도일 거라고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괴물이라고 했잖아. 모든 의미에서 정상적인 아버지가 아냐."
요헤이가 대답했다.
영문을 모르는 대화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미쯔이가 거칠게 말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아버님과 사쿠라기에게 뭔가 접점이 있는 거야!?"
"...역시, 사쿠라기 님이 말씀하신 '밋찌'는 미쯔이 전하를 말씀하신 겁니까...?"
맥이 빠진 쿠와타는 작은 희망에라도 매달리려고 확인하고 있었다.
"그래."
"역시..."
쿠와타는 어깨를 푹 떨궜다.
실은 루카와는, '밋찌'를 발견하는 즉시 그 자리에서 쳐죽여도 좋다고까지 말했던 것이다.
밋찌
가 왕자라는 것을 안 지금 그것을 실행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때, 상황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국왕의 등장을 고하는 팡파레가 파티장에 울려퍼졌다.
"루카와 카에데 국왕폐하! 그리고 피오네 왕비님! 제 1측실 미쯔이 아야코 님! 제 2측실 미

하루코 님!"
그 목소리에 덜컥해서, 겁을 내며 뒤돌아본 하나미치는, 정면의 보라색의 빌로드에서 나타
난 신
처럼 아름다운 루카와를 발견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왕족의 상징인 황금 망토에 푸른색과 금색이 아른거리는 듯한 의상. 금에 보옥을 박아넣은
벨트
에 보검을 차고 이마에 푸른 보석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라니...!
정장한 루카와를 보는 것이 처음인 하나미치는 자기 입장도 잊고 정신을 빼앗겼다.
왕비는 여위었고 뺨은 쏙 들어가 있었지만 그래도 대단히 아름다운 귀부인이었다.
연한 금발에 푸른 눈. 그리고 백설과도 같은 하얀 피부. 명칭을 보더라도 동양문화를 계승
하는
쇼호쿠에서, 외국에서 시집 온 왕비만은 순수한 서양인이었다.
정식 이름은 피오네 폰 센도.
아들의 '센도(仙道)'라는 성은 동양권의 명칭을 사용하는 쇼호쿠에 맞춰서 만든 것이다. 실
제로
쇼호쿠는 동양문화와 서양문화를 이것저것 섞은 듯한 드문 특색을 지니고 있었다. 아직 10
대로
밖에 보이지 않는 루카와와 함께 있자, 찌들은 듯한 분위기의 왕비는 모자간으로 보일 정도

나이차가 있어 보였다. 그녀는 보통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이런 때처럼, 꼭 나와야
하는
예식 때만 후궁에서 나왔다. 그러나 보통은 단지 있기만 하고, 말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루카와는 다른 사람보다 한 단 높은 장소로 올라가 그 자리에 있는 1000명 가까운 사람들
을 따
분한 듯이 바라다보았다.
"오늘은 나를 위해 모여줘서 감사한다."
루카와의 차갑고 위엄있는 목소리가 구석까지 울려퍼졌다. 극단적으로 말이 적은 국왕에게
익숙
해져 있는 신하들은 그걸로 인사가 끝났음을 곧장 알아채고 잔을 들었다.
"국왕폐하의 28세를 축하하며 건배!"
센도의 목소리가 파티장에 울려퍼졌고, 그것을 처음으로 파티장에 있는 사람들의 환호가 폭
발했
다.
"건배!"
"건배!"

잔이 서로 부딪치며 미소들이 빛났다.
잡아먹을 듯이 루카와를 보고 있던 하나미치는, 그제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와서 털썩 주저앉

다.
- 정말로 루카와는 임금님이야. 하루코 상이 계속 좋아했던 임금님이야-
루카와는 자신을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그 아들의 측실이고-
- 위험해... 발각되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무의식중에 땀이 나오고 있었다.
"...사쿠라기?"
"아..."
"왜 그래. 기분이라도 나쁜 거냐?"
미쯔이의 뒤에 숨으면서, 그의 옷깃을 붙잡고 작게 속삭였다.
"...가고 싶어. 이런 곳 이제 있기 싫어. 응? 백염궁으로 돌아가자. 응? 밋찌."
천 명이 넘는 속에서 그렇게 간단하게 발견될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1초라도 빨리 여
기서
떠나고 싶었다.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하며 다가오던 때의, 무서운 루카와의 얼굴이 뇌리에
되살
아나,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냐. 정말로 몸이 안 좋아 보인다."
창백해져서 하소연하는 하나미치에게, 예삿일이 아님을 눈치챈 미쯔이는, 조금 전 얘기의
계속
은 돌아간 뒤에 하면 된다고 판단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쯔이에게 부축받으며 나가려 할

쿠와타가 비통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사쿠라기 님."
"아..."
- 안돼. 지금 돌아가도 밋찌의 측실이라는 걸 쿠와타가 루카와에게 말할 거야-

"쿠와타!"
하나미치는 울 듯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나에 대해서는 그 녀석에게 입다물어 줘!"
"안됩니다! 폐하는 진심이십니다. 분명 제가 입을 다물고 있어도 당신을 찾는 건 시간 문제
입니
다. 지금은 보통 때처럼 행동하고 계십니다만 이제 폐하는 이전의 폐하가 아니십니다!"
"...이전의 루카와가 아니라고?"
"...저런 폐하를 보는 건 처음입니다. 당신이 사라지신 그 날 당신을 위해 고른 말을 직접
갈갈
이 베어버리시고, 그... 당신이 좋아한다고 말한 상대를 반드시 똑같이 해주겠다고..."
힐끗 미쯔이를 보고 쿠와타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하나미치는 어처구니가 없는 발언을
듣고
아연해졌다.
"뭐야... 뭐야, 그게! 보는 바와 같이 나는 밋찌의 것이야! 그 여우 자식의 것이 된 적은 단

번도 없어! 그런 횡포를 무슨 권리가 있다고..."
"사쿠라기 님이 화내시는 건 지당하십니다. 하지만 폐하는 첫사랑입니다!"
"나는 밋찌가 첫사랑이야!"
요 며칠간, 옆에서 무섭게 변모한 루카와를 가까이에서 보아온 쿠와타는 감정이 격해져서
눈물
을 흘렸다.
"사쿠라기 님이 사랑하는 상대가 아들이라는 것을 알면 설마 갈갈이 베어버리시기까지는 하

않으시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열병에 걸린 것과 똑같으십니다. 이 정도 사실로 사쿠라기 님

단념하리라고는 아무리 해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곤란해!"
"시끄럽다!"

갑작스러운 큰 목소리에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미... 밋찌."
팔짱을 끼며 거만한 눈을 한 미쯔이와 눈이 마주치자, 하나미치는 얼어붙었다.
"...이건 대체 무슨 일이냐. 내게도 알기 쉽도록 전부 설명해!"
이렇게 해서 하나미치는 도중에 쿠와타의 도움도 받으면서 루카와와의 일을 미쯔이들에게
얘기
했다.



얘기를 모두 들은 세 왕자는 동시에 한숨을 쉬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버지에게 사람을 사랑하는 정신구조가 있다니 의외였어."
라는 센도.
"지금까지 전부 자신이 해왔던 정무를 우리들에게 떠맡긴 것도 하나미치가 원인이었던 거
군."
라는 요헤이.
"그러니까 나다니지 말라고 했잖아!"
-라는 미쯔이.
하나미치는 의기소침해져서 맥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맙소사. 아버지까지 엮이다니 정말로 머리가 아프군."
미쯔이는 쭈그리고 앉아서 휴 하고 다시 커다란 한숨을 쉬고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미안해, 밋찌. ...나 시... 싫어진 거야...?"
"아아, 그래. 너 따위 이대로 아버지한테 줘버릴 거야."
"......!"
하나미치가 커다랗게 눈을 뜨고는 뚝뚝 눈물을 흘렸다. 거기에 놀란 것은 미쯔이 쪽이었다.
"바보... 거짓말이야. 이 정도로 울지 마. 울고 싶은 건 내 쪽이라고."
"...미안... 해."
"이제 됐다니까."
"미안해."
"사쿠라기..."
"미안..."
소맷부리를 붙잡고 사과하며 눈물을 흘리는 하나미치를, 미쯔이는 거칠게 가슴 속으로 끌어
안았
다.
미쯔이의 앞에서만은 철저하게 어리고 응석부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하나미치였다. 미쯔이가

는 곳에서는, 하나미치는 더 강했다. 자신들의 앞에서는 결코 보인 적이 없는 하나미치의
태도
에 센도와 쿠와타는 물론 요헤이까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너희들, 일단 오늘은 돌아가. 적당히 내가 둘러댈게."
"요헤이..."
"그래. 여기에서 무슨 대책을 세우건, 아버님과 사쿠라기를 만나게 하는 건 좋지 않아. 발견

기 전에 우선 돌아가는 쪽이 좋겠어. 연회가 끝나고 백염궁에 나도 갈 테니까 그 때에 대책

세우자."
"센도."
"...그럼, 어떻게 아버님을 하나미치에게서 떼어낼까?"
"그 사람, 한 번 마음먹으면 일직선이야. 쿠와타의 얘기만 듣더라도 늦은 첫사랑에 돌아버린

같아."
"...이건 장기전이 될 것 같군."
동생 왕자들은 서로 의미심장한 시선을 교환하며 싱긋 웃고는 쿠와타의 팔을 한 짝씩 꽉 잡

다.
"왕자님!? 무슨 짓을...!"
"오늘부터 당분간 요헤이의 흑염궁에서 지내주지 않겠어?"
"!"
"폐하에게 지금 들키는 건 바라는 일이 아니야. 쿠와타는 입을 다물어 주지 않으면 안돼."
"그런!"
"입을 막기 위해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안심해. 대책이 설 때까지 당분간 아버님에게 잡음
을 넣
지 말아줘."
요헤이와 센도에게 양손을 잡힌 쿠와타는 새파래졌다. 미쯔이의 품 안에서 느릿느릿 빠져나

하나미치는 아직 눈물이 남아 있는 눈을 닦고 걱정스럽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이봐, 괜찮은 거야? 그런 일을 하다가 나중에 루카와에게 들키면 혼날거야."
"나중에 나타난 아버님따위에게 사쿠라기를 도둑맞을 정도라면 혼나는 편이 낫지. 문제가
많은
형이지만 아버지보다는 훨씬 나아."
한쪽 눈을 윙크하며 센도는 미소지었다.
"...하나미치
. 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너의 편이야. 너의 행복이 미쯔이 형에게 있다면 미쯔이 형을 응
원해
줄게."
"...요헤이..."
- 밋찌의 형제는 모두 좋은 녀석들뿐이야.(아버지에게는 문제가 있지만)-
하나미치는 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그때였다- 귀찮은 사람에게 발각된 것은!
"사쿠라기 군!"
"하나미치!"
인사도 마치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몸이 된 하루코와 아야코가 하나미치를 발견하고 크
게 이
름을 불렀던 것이다.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한 상태로 멍하니 옥좌에 앉아 있던 루카
와가
갑자기 아야코들을 돌아보았다.
-이... 이런!-
애가 타는 하나미치에게 상관없이, 루카와의 측실들은 이쪽으로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 히익! 오지 마!-
황급히 미쯔이의 등 뒤에 숨었지만 이미 늦었다. 공허했던 루카와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생기
를 띄면서, 하나미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나미치는 자신도 모르게 떨리기 시작했다.
- 역시 무서워... 저녀석의 눈은 정상적인 인간의 것이 아냐!-
고백받을 때까지 눈치 못했던 게 이상할 정도로 그의 안력(眼力)은 압도적이었다.
아마 아들들도 처음으로 아버지의 그런 표정을 봤을 것이다. 미쯔이를 필두로 세 왕자가 꿀

생침을 삼키는 소리가 아주 선명하게 들렸다. 루카와는 한 순간도 하나미치에게서 눈을 떼
지 않
고 의자에서 일어나 이쪽으로 빠른 걸음걸이로 걸어왔다.
"-사쿠라기. 너는 당분간 외출금지다."
미쯔이는 작은 목소리로 내뱉은 뒤, 하나미치를 감싸듯이 한 발 앞으로 나가서 몸을 죽 펴
고 아
버지를 기다렸다.
루카와보다 조금 먼저 도착한 아야코와 하루코가 하나미치의 모습을 보고 환호를 질렀다.
"굉장해, 사쿠라기 군! 너무 아름다워! 마을에 있을 때와는 다른 사람 같아! 미의 화신이라

송받는 미쯔이 전하가, 정말 탁월한 선택을 하셨어."
"이렇게 잘 차려입으면 훌륭한 왕자의 측실로 보이잖아!"
아낌없는 칭찬은 좋았지만, 그러나 하나미치는 점점 얼굴이 새파래졌다.
-이 이상 말하지 말아 줘!-
"...측실?"
덜컹!
두 사람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루카와는 보통 때보다도 훨씬 나직하게 말했다.
"어머, 폐하? 신기하군요. 당신이 이런 곳까지 내려오시다니. 마침 잘 됐네. 소개할게요. 히

시의 측실 하나미치예요."
"!"
다음 순간, 루카와의 머리가 전부 거꾸로 섰다고 생각했다. 누구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루
카와
의 표정이 무시무시하게 변화했다.
"루... 루카와 님?"
곤혹스럽게 말한 것은 사정을 아무 것도 모르는 하루코. 지금까지의, 인생을 무표정으로 보
내왔
고 석고로 아름답게 빚은 듯한 얼굴과는 달리, 반쯤 정신이 나간 듯이 속삭이고 있는 국왕
의 얼
굴은 어느 새 처참해져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아버님."
미쯔이는 아무 것도 모르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우아한 동작으로 한 쪽 무릎을 굽히고 오
른 손
을 왼쪽 가슴에 얹으며 국왕에 대한 예를 표했다. 그리고 달콤한 미소를 얼굴 가득히 지으
며 루
카와를 바라본 미쯔이는, 등 뒤에서 떨고 있는 하나미치의 팔을 잡아끌어 옆에 세웠다.
"아버님. 제가 이번에 측실로서 맞이한 사쿠라기 하나미치입니다. 아버님께는 많은 걱정을
끼쳐
드렸지만 드디
어 저도 이렇게 해서 염원하던 측실을 두게 되었습니다. 몇 번이나 더 측실 정도는 두라고
충고
해 주신 아버님께 무슨 일이 있어도 보고해 드렸어야 했기에 오늘은 측실을 동반했습니다.
존경
하는 아버님의 축복의 말을 듣고 싶어서 말이죠. -사쿠라기. 나의 아버님께 인사를."
하나미치는 미쯔이의 진의를 모르는 채, 쫄아든 표정으로 어쨌든 머리를 조아렸다. 하지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미쯔이는 거기에 대해서 즐겁게 소리 높여 웃었다.
"국왕폐하를 앞에 두고 긴장해 있는 것 같군요. 화려한 외견과는 달리 수줍어하는 녀석입니
다.
저의 측실은 태생이 천하지만 보시는 바와 같이 이처럼 아름답고 또 마음씨도 상냥한 최고
의 측
실. 저의 생모 아야코도 원래는 하층민. 그런 저의 측실이라면 태생에 구애받릉 필요는 없
으니,
이상적이고 아무 문제도 없는 첩비(妾妃)입니다. 저는 완전히 이 소년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렸
답니다. 그리고 사쿠라기도 저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지, 귀여운 하나미
치?"
미소 지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미쯔이의 눈이 끄덕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하나미치는 황
급히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미쯔이는 겸연쩍은 표졍으로 더욱 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갑자기 뺨을 살짝 붉혔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제 마음을 드러내고 말았군요. 어쨌든 신혼이라서 만나는 사람 모

에게 귀여운 측실을 자랑하고 싶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언제까지나 어린애 같은 히사시라
고,
비웃어 주십시오."
어깨를 움츠리며 조금 혀를 낼름 내민 미쯔이는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였다.
- 무... 무서워. 밋찌, 루카와를 상대로 어리광이라니...-
"아아, 그건 그렇고 간신히 사랑하는 아버님의 분부를 따를 수 있게 되어서 한시름 덜게 되
었습
니다."
미쯔이는 얄밉도록 태연하고 유들유들하게 말하면서, 한치의 그늘하나 없이 밝은 미소로,
험악
한 표정의 아버지에게 정면으로 대치했다.
두 사람 모두 보통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용모의 소유자였다. 마주 보는
박력
은 압도적이었고, 두 사람이 이렇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위의 시선을 끌었다.
두 사람 모두 외견만이라면 하나미치의 궁극의 이상형이었다. 불성실하게도 이런 때조차 하
나미
치는 잠시 넋을 잃어버렸다.
- ...역시 부자간이구나-
루카와의 얼굴을 볼 때마다 미쯔이를 연상한 이유도 이렇게 나란히 있는 걸 보니 잘 알겠
다.
루카와 이상으로 미쯔이의 용모가 칭송받는 이유는, 그 절반이 루카와의 무표정 때문이었던

이다.
이렇게 격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루카와는, 얼굴도 미쯔이에게 뒤지지 않았다.
루카와는 손이 하얘질 정도로 세게 주먹을 쥐고 있어서, 놀란 나머지 말도 안 나오는 것 같

다.
꽉 깨문 입술은 핏기 없는 자주색으로 변색되고 있었다.
미쯔이는 그런 아버지를 눈치채지 못한 듯이, 하나미치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하나
미치
의 입가에 귀를 갖다대고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아버님. 사쿠라기가 나와 둘이서 있고 싶다고 귀엽게 졸라대고 있어서, 아직 이릅니다만 먼

돌아가겠습니다."
"뭐!? 도대체 언제 내가!"
"수줍어하지 않아도 좋아. 그래그래, 함께 우리들의 집으로 돌아가자."
이전에 하나미치가 루카와에게 준 겉옷과 똑같은 천의, 그보다 몇 배는 공을 들인 아름다운

상을 펄럭이며 하나미치의 등을 밀 듯이 출구 쪽으로 걸어나갔다.
도중에 갑자기 멈춰선 미쯔이는 고개를 돌렸다.
"아아, 말씀드리는 걸 잊었습니다. 생신 축하드립니다. 몸 상태가 좋지 못하시다고 들었습니
다.
옥체를 소중히 하십시오. 히사시는 아직 아버님의 지도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미쯔이는 완벽한 미소를 지으며 퇴장했다.
루카와는 하나미치가 자기 아들의 측실이었다
는 상상도 못한 전개와, 입을 열 틈도 없는 미쯔이의 화술에 이때는 아무 것도 대응할 수
없었
다. 잡아먹듯이 두 사람이 사라진 출구를 노려본 채로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서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출구를 나와서 파티장의 소란이 완전히 들리지 않는 곳까지 나오자마자 미쯔이는 털썩 주저
앉았
다.
"...무서워. 저게 웬일이냐. 정말로 저 아버지가?"
루카와에게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압도하는 듯이 보였던 미쯔이의 이마에서 지금

커다란 땀방울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하나미치도 그의 옆에 무릎을 꿇고 걱정스럽게 얼굴을

라보았다.
"괜찮아?"
"...정말로 죽는 줄 알았어... 어떻게 된 거야. 지금까지 조용한 아버지는 가짜였나?"
"상당히 화내는 것 같았는데. ...저기, 이것 때문에 밋찌의 입장이 나빠지지 않아? 좀 더 비

를 맞춰주는 편이 좋았을 텐데..."
눈을 번득인 미쯔이는 하나미치의 머리를 주먹으로 쳤다.
"비위를 맞추라니, 어떻게!? 너를 아버지에게 정말로 진상하라는 거냐!"
"아야... 그건 아니지만 좀 더 말을 좋게 하지 그랬어."
"진짜 아들을 그런 눈으로 보는 아버지야! 너를 내놓는 것 이외에 부자관계를 회복할 방법
은 없
어!"
"...설마 밋찌. 나를 루카와에게-"
얼굴이 확 새파래진 하나미치의 머리를, 이번에는 손바닥으로 쳤다.
"바보! 방금 전의 화려한 선전포고를 못 들은 거냐!"
"선전포고? 밋찌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이었잖아. 즐거운 듯이."
"너 정말 둔감하다. 나는 조금 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서운 아버지에게 싸움을 건 거야.

를 위해서! 목숨을 건 것도 알아주지 않다니 난 정말 불행하군."

무릎에 얼굴을 묻으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로 진절머리 난다는 듯한 상태의 미쯔이에게,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던 하나미치의
눈에
서 눈물이 떨어졌다. 말도 안 나와서 눈물만 계속 나왔다.
"......"
"......"
"......이봐."
"......(깜짝)"
"...정말이지. 운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
다시 한 번 한숨을 토해내자, 하나미치는 필사적으로 눈물을 그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
다.
입술을 깨물며 떨고 있자 잠시 후 미쯔이가 한 마디 던졌다.
"...네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지?"
"밋찌야."
"그렇지?"
"응."
미쯔이는 딴 쪽을 보면서 하나미치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럼 울지 마. 나 힘낼 테니까."
"밋찌."
미쯔이의 얼굴은 벌개져 있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는 눈을 크게 뜨고, 얼굴 전체에 활짝 미
소를
지으며 하나미치는 미쯔이에게 안겼다.
"나 밋찌만 있으면 돼. 루카와 같은 건 필요없어. 밋찌만 있으면..."
"알고 있어. 바보야."
몸만 크고 정신적으로는 아직 어린 두 사람은 복도 구석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

무명 :

컨디션이 별로 안 좋습니다. 그게 번역에도 영향을 미쳐서
굉장한 의역발이로군요 -_-;;
다음이 1권 마지막입니다. 하아...
비주얼적으로 상상하지 말자;; 안 그러면 못 견뎌...T_T
이 닭들 같으니...;;;

PRE번 호 : 1872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23일 17:21
등록자 : HALKO 조 회 : 276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1권 #8-3
/PRE

(3)

-파티장.
두 사람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잠시 동안. 최초의 충격이 사라진 후의 루카와의 행동은 빨랐
다.
"...빌어먹을 자식이!"
노한 나머지 권력의 상징인 왕관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아무리 봐도 보통 때와 다른 루카와

언동 때문에, 축하회의 참가자들 사이에서 술렁거림이 일었다.
"-끌고 와!"
누구를 끌고 오라는 건지 위병들이 묻기 전에 쿠와타가 달려갔다. 그를 뒤따라서 사정을 알

있는 루카와의 측근들이 뛰쳐나갔다.
"아버지! 당신 하나미치를 어떻게 하려는 거야!"
"-하나미치?"
하나미치라고 이름을 막 부르는 요헤이에게 루카와가 험악한 시선을 던졌다.
"...너도 그 녀석과 관계 있는 거냐."
"미안하게 됐소!"
"요헤이. 아버님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서로 노려보는 루카와와 요헤이 사이에서 센도가 끼어들었다.
"아버님. 사쿠라기와 요헤이는 같은 고향 친구입니다. 그 이상의 관계는 전혀 없습니다. 그

죠, 하루코 상?"
"예... 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 하루코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
다.
그곳에, 방금 전 돌아간 하나미치가 루카와의 측근들에 의해 억지로 끌려들어왔다.
"이런 빌어먹을! 놔! 날려 버리겠어!"
커다란 목소리로 외치며 떠드는 하나미치는 천 명이나 되는 손님들의 주목의 대상이 되었
다.

하나미치를 쫓아 얼굴이 새빨개져서 분노한 미쯔이도 들어왔다.
"나의 측실에게 더러운 손 대지 마라! 이 발칙한 놈들!"
"왕의 어명입니다!"
이 소란스러운 한구석은 엄청난 눈길을 끌었다.
하나미치의 도착을 기다리지도 않고, 루카와는 스스로 그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루카와가
도착
한 곳은 하나미치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아버님?"
자신의 정면까지 와서 가만히 시선을 내리까는 루카와에게, 미쯔이는 괴이쩍은 시선을 보냈
다.
"...옷."
"아?"
"그 옷, 벗어라."
일순간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알 수 없어진 미쯔이는 잠시 말이 없어졌다.
"그것은 너의 옷이 아니다."
"아버님!?"
루카와는 미쯔이가 입고 있는 하나미치가 손수 재봉한 옷을 붙잡고 옷깃부터 단번에 죽 찢
었다.
좌악...!
축하연에 온 쇼호쿠의 귀족들은 놀라서 크게 웅성거렸다. 이름난 귀족 아가씨들을 누르고
대륙
제일의 미인이라고 만인이 입을 모아 절찬하는 미쯔이의 옷을 공중(公衆) 앞에서 왕이 찢어
버린
것이다. 이 이상의 일은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다행히 완전 나체가 되지는 않았지만, 허리에 감긴 금사슬에 천이 매달려 있는 형상이 되어
서,
상반신은 목걸이만 남아 있는 모습이었다. 왕족은 노골적으로 피부를 내보여서는 안된다.
그것
은 미쯔이에게 있어서 참기 힘든 굴욕이었다.
"미쯔이 전하!"

어느 새 옆으로 왔는지, 미쯔이를 연모하는 하세가와 장군이 대단한 손놀림으로 자신의 망
토를
그에게 걸쳐주었다.
하나미치는 망연자실해져서 찢겨진 옷의 잔해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 요 5일간 밤에 잠도 못 자고 만들었는데-
루카와에게 건네준 옷 같은 건, 미쯔이가 입고 있던 의상에 비하면 조악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
였다. 하지만 그런 일은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
지금 화가 나는 것은 그런 일이 아니다.
"잘도... 잘도 밋찌에게 수치를 줬겠다!"
"밋찌?"
루카와의 매서운 안광(眼光)을 받으며, 미쯔이는 주춤했다.
"멍청이가 말한 '밋찌'란 널 말한 거였나!"
"아욱!"
루카와는 미쯔이를 인정사정 없이 걷어찼다.
- 힉...!-
하나미치는 경악한 나머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배를 걷어차여서 웅크리고 앉은 미쯔이에게, 루카와가 다시 발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미쯔
이에
게 더 이상의 폭력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세가와에 뒤이어,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조용히 미쯔이를 지켜보고 있던 남자들이 뛰쳐나
와서
왕의 분노를 살 각오를 하고 미쯔이를 지키듯이 에워싼 것이다.
미쯔이 대신에 채인 남자가 한 명, 입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날아갔다.
"진정해 주십시오, 왕이시여!"
"때리실 거라면 저를 치십시오!"
잘생긴 20명 이상의 쇼호쿠에서 으뜸가는 실력자들은 필사적인 모습으로 미쯔이의 용서를
구했
다.
그런 그들을 보고 다른 사람 일처럼 아야코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가끔은 히사시의 취미도 쓸데가 있군."
하나미치를 제외하고, 미쯔이가 상대하는 남자들은 항상, 용모는 물론이고 지위와 명예와
재산
이 있는 유력자들뿐이었다. 덕분에 상류계급이 모인 이 자리에서, 제 1왕자의 편은 많았던
것이
다. 목숨이 날아가더라도 사모하는 왕자를 지키기 위해 필사의 각오로 가로막고 서 있는 남
자들
을 무시하고, 루카와는 미쯔이만을 노려보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증오하고 있다는 것을 알

있는, 그 독살스러운 눈빛으로 루카와는 단호히 미쯔이에게 말했다.
"사쿠라기 하나미치는 나의 것이다."
방금 전 채인 충격이 수습되었는지, 미쯔이는 배를 움켜쥔 채로 하세가와에게 의지하여 일
어섰
다. 그리고 쥐어짜듯이 대답했다.
"...무슨 농담을. 사쿠라기는 제가 거리에 비밀리에 내려갔을 때 발견한 유곽의 경국. 제가

서 제 것으로 한 측실입니다. 정당한 제 것입니다."
"...유곽?"
천천히 루카와의 시선이 하나미치 쪽으로 이동했다.
"너 이 자식만이 아니라 다른 불특정 다수의 녀석들에게까지 몸을 판 건가?"
빈정거리듯이 입가를 비틀고, 분노를 내포한 목소리로 물어오는 그 무서운 눈은-춥지도 않
은데
하나미치의 전신에 닭살이 치솟았다.
"아... 아냐..."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는 하나미치의 옆까지 온 루카와는, 팔을 잡았는가 했더니 하나미치의

을 자신의 어깨에 짊어졌다.
"싫어! 루카와 바보! 놔!"
미친 듯이 몸부림을 쳤지만 루카와의 팔은 풀리지 않았다.
심상치 않은 루카와에게, 너무도 화가 난 하나미치는 수치심도 체면도 버리고 울음을 터트
렸다.
"사쿠라기!"
루카와 쪽으로 달려가려고 하는 미쯔이를, 주위에 있던 남자들이 황급히 가로막고 말렸다.
"밋찌!"
"아버님! 하나미치는 나의 측실입니다! 돌려주십시오!"
"밋찌! 밋찌! 밋찌!"
"...겨우 붙잡았다. 이젠 누구도 손대지 못하게 하겠어."
울면서 필사적으로 미쯔이 쪽으로 팔을 뻗는 하나미치의 얼굴을, 루카와는 억지로 자신 쪽
으로
향하게 해서 입술을 짓눌렀다.
"으읍!"
"빌어먹을! 사쿠라기를 놔, 망할 아버지!"
드디어 경어도 홱 내팽개친 미쯔이는 돌진하려고 했다. 그것을 그의 추종자들이 필사적으로

았다.
"미쯔이 님! 이 이상 왕의 노여움을 사시면 안 됩니다!"
"부디 진정해 주십시오!"
"이걸 참으란 말인가! 이렇게까지 바보 취급을 당하고 가만히 있다면 미쯔이 히사시가 아니
다!"
"나의 주군이여!"
"오오, 전하!"
"-실례하겠습니다."
미쯔이가 청년들을 뿌리치고 달려나가려는 순간 하세가와가 그의 배에 주먹을 내갈겼다.
"...너...어..."
하세가와 쪽으로 무너지듯이 쓰러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하세가와 장군!"
미쯔이를 감싸고 있던 다른 남자들에게, 하세가와는 의식이 없는 몸을 건네주었다.
"미쯔이 전하를 별실로."
지시를 내린 후 하세가와는 루카와에게 깊이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발꿈치를 돌려 미쯔이
와 함
께 모습을 감추었다.
싫다고 흐느껴 우는 하나미치의 입술을 여봐란 듯이 탐한 후, 루카와도 하나미치를 짊어진
채로
파티장에서 사라졌다.
오늘 이 장소에는 나라를 구성하는 특권계급의 인간들만 해도 천 명이 넘게 모여 있었다.
이 날 금염궁은 쇼호쿠가 시작된 이래의 스캔들로, 일찍이 없었던 소란이 벌어졌다.

루카와와 하나미치가 사라지고, 미쯔이도 남자들에 의해 어디론가 실려간 후.
남아 있는 친족들도 큰 소란을 떨고 있었다.
"잠깐! 무슨 일이야, 이건! 설명 좀 해줘!"
목이라도 조를 듯한 기세로 아야코가 센도에게 따지고 들었다.
"...보시는 대로입니다. 아버님이 아들의 측실을 연모해서 이 참상이죠."
"...최저야."
"아야코 상..."
"이런 최저의 일이라니, 파란만장한 지금까지의 인생 중에서도 한 번도 없었어. 어째서 그게

나미치인 거야...?"
안색이 죽은 아야코는 계속 중얼중얼거렸다. 충격을 받은 것은 물론 아야코만이 아니었다.
"-루카와 님이 사쿠라기 군을...?"
"새어머니!"
정신을 잃고 쓰러진 하루코를 황급히 요헤이가 받아 안았다.
"...빌어먹을! 저런 최저의 부친은 처음 봐!"
모친을 가슴에 안은 채로, 요헤이는 입술을 꽉 깨물며 분노로 온몸을 떨었다. 센도는 허리
를 양
손에 얹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형을 보는 아버님의 눈... 그건 부모가 자식을 보는 눈빛이 아니었어..."
-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고 있다는 느낌인가. 늦게 핀 첫사랑이라는 건 감당할 도리가
없군 -
참석자들 중에서 센도만은 놀랄 만큼 동요가 적었다. 마치 사전에 이 사건이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자신도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평온했다. 그리고 그 이유도 본인은 알고 있
었다.
- ...아버님의 심정은 손바닥 보듯이 이해할 수 있어. 결국 나도 그 인간의 아들이라는 건가
-
루카와가 감정으로 움직
이는데 반해, 정신면에서 너무 노숙한 것뿐이다. 한 발짝 잘못 디뎠다면, 똑같은 일을 했을

라고 단언하는 자신에게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 요헤이처럼 좋아하는 사람의 행복만을 순수하게 빌어주는, 순정적인 어린아이의 시대는
내겐
이미 지나가 버렸어-
지금의 자신은 동생보다도 아버지 쪽에 가까웠다.
- 하지만 나라면 좀 더 잘 했겠지만, 장소도 방법도 너무 나빴어. 이걸로 아버님의 평판은
땅에
떨어졌다-
저건 아무리 봐도 - 실제로 그렇지만 - 루카와가 악역이었다. 그리고 동정표는 하나미치가
아닌
미쯔이 쪽에 집중되어 있었다. 후우... 하고 한숨을 쉬며 하나미치가 끌려간 방향을 쫓아갔
다.
"...그럼 어떻게 할까."
"당연히 하나미치를 구하러 가야지!"
"우리들까지 아버지를 거스르면 어떻게 될 것 같아?"
"어째서 너는 침착할 수 있는 거야! 센도 형도 하나미치를-"
큰 목소리로 문제 발언을 하려는 요헤이의 입을 막고 센도는 곤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차기 국왕으로서 교육받아 왔으니까. 넓은 시야로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는 법을 익혀왔어. 지금의 아버님은 아마도 단 한 번일 사랑에 제정신을 잃었어. 칼을
겨누면 왕자라고해도 목숨이 위험해. 하지만 우리들이 죽임당하는 일이 있어도 사쿠라기가
죽임당할 일은 없을 거야. 정면에서 아버지와 충돌해 버린 형의 옹호를 위해서라도 우리
들은 아버지의 분노를 사지 않도록 왕자로서의 권력을 유지해 두는 쪽이 나아."
"...이런 때에도 센도 형은 훌륭한 왕태자님이구나. 나는 아버지에게 칼을 겨눈 미쯔이 형을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러니까 너희들은 아직 어린애야. -아버지도."
센도는 진의를 읽어낼 수 없는 표정으로 작게 웃었다.
출중한 국왕과, 세 명의 우수한 왕자로 구성된, 절대군주제 국가로서는 이상적인 쇼호쿠의
왕가.
그것이 지금 크게 흔들리려 하고 있었다-




루카와에게 들린 채로 침실에 끌려들어간 하나미치는 난폭하게 침대 위에 내던져졌다.
"너... 잘도...웃."
루카와는 하나미치의 위로 올라타자 여유를 주지 않고 곧장 입을 막았다.
"읍!"
루카와와의 세 번째 입맞춤. 떨쳐버리려고 필사적으로 몸을 흔들었지만 온몸이 완전히 눌려
있어서 잘 되지 않았다. 발버둥치면 발버둥칠수록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어서 마치 파도에
휩쓸려 익사해버릴 듯이 답답했다.
"...!?"
갑자기 옷에 손을 뻗는가 했더니, 단번에 죽 찢어버렸다.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도 난폭하
게 잡아뜯겨져서 보옥이 주위에 흩날렸다.
- 이녀석 설마-
루카와가 무엇을 하려는지 깨달은 순간 얼굴에서 핏기가 전부 빠져나갔다.
- 서...설마. 이무리 그래도 거기까지는 하지 않겠지!? 하지만... 하지만...-
"!"
루카와의 손이 명확한 의지를 담고 하나미치의 가슴에서 복부로 음란하게
움직였다.
- 말도 안 돼! 정말로 할 생각이야!-
그의 진심을 안 순간, 하나미치는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읍! 우우... 읍읍!"
필사적으로 양손 양 다리를 움직여서 위에 올라탄 루카와를 공격했다. 몇 번째인가의 저항
끝에
간신히 입술을 뗄 수 있었다.
"...푸하!"
어깨로 크게 숨을 쉬면서 찌릿! 하며 루카와를 노려보았다.
"이 여우 자식! 나는 네 아들의 측실이다! 이런 짓이 용서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나는 내 자식을 귀엽다고 생각한 적
은 한 번도 없어. 이용가치가 있어서 만들었지만 방해된다면 언제든지 처분해 준다."
"뭐..."
아무리 그래도 부모로서는 지나친 말에 말문이 막혔다.
- 나도 부모님에게는 사랑받지 못했지만 밋찌 쪽이 훨씬 비참한 게 아닌가...?-
하나미치의 저항이 멈춘 틈을 타서 루카와는 하나미치의 양 손목을 자신의 머리장식으로 재
빨리
묶어 버렸다. 다시 옷에 손을 뻗어 남은 천의 잔해를 전부 제거해 버렸다.
"아..."
"...!"
화려한 황금세공의 팔찌와 발찌만 남은 몸은, 완전 나체보다 더 망측했다. 하나미치의 나긋
나긋
한 몸을 응시한 채로, 루카와는 굳어버린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루...카와..."
수치심과 그것을 상회하는 공포심으로, 루카와의 시선에서 몸을 숨기려고 했지만 그것은 불
가능
했다. 루카와는 꿀꺽... 하고 생침을 삼키며 성급히 하나미치의 어깨 위에 입술을 갖다대고
는,
강하게 빨아들였다.
"앗..."
울혈일 정도는 아니다. 강하게, 강하게, 무시무시한 검은 멍이 들 때까지 그것은 계속되었
다.
"...멍청이."
한참 뒤에 겨우 입술을 뗀 루카와는 점점 표정이 험악해지고 있었다. 묶은 팔을 다시 침대
에 묶
고 나서, 일단 침대에서 빠져나가 창가 쪽으로 가서, 두 팔로 안아야 할 정도로 커다란 꽃
병을
들고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안에 꽂혀 있는 백합과 함께 꽃병의 물을 하나미치에게 끼얹었다.
"...윽...!?"
하나미치는 침대 시트와 함께 물을 뒤집어쓰게 되었고, 강렬한 백합 향기는 주위의 공기까
지 바
꾸어놓았다.
"...미쯔이와 똑같은 향수 따위 뿌리지 마."
뱉어내듯이 말한 루카와는 다시 하나미치의 젖은 몸에 손을 뻗쳤다. 그리고 둑을 터트리듯
이, 상반신에 쉴 새 없이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특히 유두에 대한 애무는 집요했다. 작은
돌기를 억지로 잡아당겨, 엄지와 검지로 짓누르듯이 문질러댔다. 그 열성은 제정신을
의심케 할 정도였다.
"...하앗..."
고통을 동반하는 끊이지 않는 애무로, 목구멍에서부터 고통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싫어... 루카와... 싫어..."
"싫다고? 너에게 거부할 권리는 없다. 내가 너를 내 것으로 하기로 결정할 때부터 너는 이
제 나
의 소유물이다. 인권 같은 건 당연히 인정되지 않아. 이제부터는 섹스 노예로서 내가 키워

지."
"아... 윽..."
"여기는 나의 나라다. 내가 법률이다. 내가 결정한 일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의 나열에 귀를 막으려고 했지만, 묶여 있어서 그것도 할 수 없었다.
"우악."
가슴 바로 위를 피가 날 정도로 강하게 깨물려서 펄쩍 몸이 뛰어올랐다. 루카와는 즉시 입
을 떼
고, 빨간 피가 나오는 피부에 천천히 혀를 갖다댔다. 하나미치의 피로 입술이 빨개진 루카
와는,
그것을 빨간 혀로 햝은 뒤, 일단 몸을 떼고 자신의 옷을 전부 벗어던졌다.
눈앞에 갑자기 나타난 것은 완벽한, 조각보다도 완벽한 육체미. 그것은 너무나 단정해서 피

통하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사실이 하나미치를 한층 공포로 몰고 갔
다.
"어... 어째서, 이런... 잔인한 짓을... 우린 전에는, 그렇게 사이, 좋았잖아... 그런데, 어째
서..."
도자기 같이 매끄러운 뺨에 눈
물이 흘렀다. 커다란 몸에 반해서 원래부터 아이처럼 보이는 얼굴이 눈물을 흘리자 더 어려

였다.
"그런 얼굴 해도 소용없어. 겉보기의 아름다운 모습과는 달리, 미쯔이와 그 외의 놈들에게
돈을
받고 몸을 판 더러운 창부 주제에."
비웃음과 증오에 가득찬 목소리로 루카와가 말했다.
"아냐..."
"어디가 어떻게 틀리다는 거냐."
"나는 아직 아무하고도... 아... 앗!"
루카와의 오른손이 갑자기 하반신 쪽으로 뻗었다. 하나미치의, 서 있는 그곳이 위축되어 버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성급하게 깊숙한 곳의 한 점을 노렸다.
"너... 무슨 짓을!? 아악!"
최대한 깊숙이, 결코 가늘지 않은 긴 손가락이 세 개 동시에 밀어넣어지는 바람에 아픔으로

순 숨을 멈췄다. 이질감에 하나미치가 익숙해지기 전에 손가락을 뺀 루카와는 아무 것도 행
하지
않는 그대로 하나미치의 양 발목을 잡았다.
"루카와!?"
발목에 걸려 있는, 금방울이 달린 발찌가 짤랑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울린 직후- 믿을 수
없는
충격이 전신을 관통했다.
"욱..."
시야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곧바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
다.
"아아-"
까칠하게 말라 있는 그곳에, 온 체중을 싣고 억지로 밀고 들어오는 루카와에게, 모든 세상
의 검
이 비밀스러운 부위를 찔러서 도려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아... 악...! 싫어... 루카와! 그만해!"
어떤 애원도 그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보통 때라면 절대 들어가지 않는 무
리한 상태에서 보통이 아닌 힘만으로 밀고 들어온 것이다. 몸에 가해지는 부담은 심상치 않

다.
"너 같은 거, 싫어... 싫어... 아아아!"
찢겨져서 피가 흘러도 루카와는 멈추지 않았다.
피가 흐르는 것에 힘입어 깊숙한 곳까지 찔러댔다. 그 때문에 입구가 점점 찢어져서 엄청난

가 흘렀다.
"아파... 아파... 아파!"
수치심도 체면도 없이 크게 울부짖었다. 분명 이 목소리는 주위 일대에 울려 퍼졌을 것이
다. 그
러나 사람들이 들을까 봐 걱정할 정신적 여유도 전혀 없었다. 너무나 아파서 지금이라도 죽
어버
릴 것 같았다.
"피가 나오는군..."
루카와는 하나미치의 하반신을 빨갛게 적시는 피를 건져올리며 차가운 미소를 떠올렸다.
"마치 처녀 같군. 수많은 남자를 받아들인 낡은 중고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
- 너무해-
어째서 이런 가혹한 짓을 하면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걸까. 이것은 고문이었다. 몸만이
아니
라 마음도 상처입히는, 강제이라고 하는 이름의 최저의 고문이었다.
아픔보다, 괴로움보다, 슬픔 쪽이 강했다.
"아...!?"
갑자기 하나미치의 눈이 경악으로 크게 떠졌다.
들어온 것만으로도 믿을 수 없이 아픈데, 그것도 모자라 루카와는 움직이는 것이다.
"움직이지 마... 하악!"
반사적으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오히려 더 큰 통증이 왔다. 아파서 마구 뒹굴고 싶었지만 그
것도
불가능해서 목졸려 죽기 일보직전의 목소리로, 하나미치는 계속 소리질렀다.
"도와줘... 누가... 밋찌... 밋찌, 밋찌!"
"그 이름 부르지 마!"
시야가 흔들려서, 뺨을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보다도 하반신 쪽에 강렬한 통증이 와

뺨을 맞은 아픔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밋찌... 밋찌... 밋찌..."
무의식적으로 보호자의 이름을 계속 부르는 하나미치에게, 루카와는 무서운 표정으로 다시
반대
쪽 뺨을 갈겼다.
너무도 아픈 나머지 점점 의식이 희미해져서, 눈의 초점이 맞춰지지 않았다. 그리고 완전히

을 감고, 마치 자신을 안고 있는 것이 미쯔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
다.
"미..."
"아니야!"
잠꼬대처럼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하나미치에게, 루카와는 그의 눈꺼풀을 양손의 손가락으
로 억
지로 열어젖혔다.
"내 얼굴을 봐! 나는 미쯔이가 아냐! 너는 나의 것이다... 나의...나의 것이란 말이다. 절대로
놔주지 않겠어. 더 이상 아무도 만지지 못하게 하겠어. 아무리 울면서 그 녀석을 불러도 평

내 옆에 묶어놓겠다!"
고통으로 신음하면서 하나미치는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을 때까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처
음으
로 하는 사랑에 자기 자신을 잃은 루카와는 눈치채지 못했다.
실은 이것이 하나미치의 첫경험이라는 사실을.
루카와의 광기와 집착.
그리고 하나미치의, 지옥과도 같은 나날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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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

...대단하죠? 강공 루카와에게 열광하시는 분들께 강력추천입니다.
제 심경은 복잡하군요 /.\ 이런 루카와 좋아하지만 그래도 미쯔이
때문에...(한숨) 그리고 강공도 적당히 강공이면 좋지만
강(强)을 넘어서서 광(狂)이라면 그건 좀...;;
(작가 후기에서 밝히기를, "2권부터는 비열 악역 루카와,
하나미치에게 있어서 최악의 루카와가 활약합니다."라고 하는데
2권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루카와가 나온다는 말입니까 -_-;
미즈마 씨(작가)가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도대체...T_T
그렇게 심각해요? T_T)

PRE번 호 : 1873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23일 17:23
등록자 : HALKO 조 회 : 285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1권-후기 & 2권 예고
/PRE


경국미희 3권을 번역하다가 좀(정말?) 열을 받아서요;;
1권 후기와 예고편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이 작가의 머릿속을 살펴볼 겸도 해서...-_-;
군데군데 해석이 막혀서 그냥 넘어가거나 의역한 곳이
너무나도 많아서 죄송하지만 가볍게 읽어보세요 ^^
(양심에 찔릴 정도로 의역발이다, 이건...T_T)
()안의 글도 작가의 말 맞습니다.
군데군데 저의 분노;도 들어가 있긴 하지만 그건 확실하게
역자 주라고 표기를 했습니다;;
안 그래도 정신 사납게 복잡한 후기인데
거기다가 제 사견까지 끼워넣어서 죄송...T_T
하지만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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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 (미즈마 세린)

해설?, 토크, 늘 하는 변명, 신변 잡기 ONLY의, 맥락 없는 후기

5월 이래로 첫 신간입니다. 6월에 신간을 내려다가 좌절(...)
했고 이건 간신히 발행에 맞췄습니다. 좌절했던 건 사쿠라 혹성의
번외편. 쓰다 보니 의외로 길어져서 연기되어 버렸다는...
우웅. 근성 없어라!(언젠가 빛을 보면 좋겠당...)
이번에는 본격적인 예고도 하지 않고 세 번째의 장편 패러렐을
시작했습니다.(아, 혹시 본문보다 먼저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본문을 먼저 읽어주세요) 지금 시점에서 겉보기에는 미쯔하나.
하지만 저는 근본부터가 루하나 인간이라서, 그 이외의 라스트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를 믿고 봐주시면 행복하겠습니다.
(안 행복해 T_T - 역자) 2권에는 미쯔이와 하나미치를 갈라놓는
비열악역 루카와의 편이 될 것 같습니다만... 맺어질 때까지의
시련이 크면 클수록, 저/는/ 이런 걸 좋아합니다.
(뭐? 라고 반문하시겠죠. 그래도 행복을 보다 실감할 수 있지
않습니까?) (도대체 어디가!! - 역자)
1권에서는 루카와를 그다지 쓰지 않았습니다. 스토리 전개상이라고는
해도 분해서 다음 편에는 씁니다.(...하나미치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루카와를...) 이전 장편을 쓰고 약 1년. 장편이란 건 정신적으로
피곤해서 (하지만 좋아해요...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읽는 건 더)
결단을 내리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만, 한 번쯤은 아들의 신부를
강제로 빼앗는 루카와를 써보고 싶다고 늘 생각하고 있어서(...)
조금씩 쓰기 시작한 겁니다. 그 전에 햇수로 4년이 되는 RUNA도
결말을 짓고 싶었지만 그건 좀 더 나중 일. 잊어주시면 고맙겠어요.
이번에는 하나미치를 세 왕자 중 누구의 측실로 할까 고뇌했습니다.
그래서 요/헤/이/로 결정.
(안 그래서 천만다행이지. 그건
내가 못참아 \./+ - 요헤이 팬인 역자)
하지만 저는 미쯔이를 편애하는 루하나녀(...). 루하나 이외의 눈에
띄는 배역은 역시 미쯔이가 아니면... 이라고 가슴 속에서 가만히
속삭이길래 깨닫고 보니 미쯔이가 다시 미쯔이가 주연급이 되었더군요.
(요헤이도 좋아하지만... 좋아하지만... 그 이상으로 밋찌가아...)
(정말 다행이다, 요헤이 T_T - 이것도 역자)
지금까지의 미쯔이보다 좀 더 어리고 의지가 안 되지만...
(내가 보기엔 이게 그/나/마/ 원작 미쯔이에 가까운데? - 역시 역자)
변함없이 하나미치는 언제나 이상으로 얼굴을 밝히고...
하지만 루카와의 매력은 얼마나 많은가에 대해 얘기하면, 결국 맨 처음
언급되는 건 얼굴이지요.(개인적인 해석입니다) 하나미치가 얼굴을
밝힌다는 신념은 누가 뭐라고 말하든 굽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쯔이가
아름답다는 신념도!(하지만 원작을 보는 동안 정통파 미형은 루카와,
하나미치, 미쯔이라고 생각합니다.(또 있지만 일단 제게 있어서는 TOP 3))
(이봐요, 후지마랑 센도는 어디다 두고...;;? - 이 또한 역자)
미쯔이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저에게, 똑같은 열정으로 동의해주는 친구는
고토쿠 상(중대학학교 후배이고 현재의 친구이고, 판매원도 해주고, 놀러도
데려가 주고, 제게 있어서는 하느님 같은, 현재 킹 오브 파이터 인간(웃음))
밖에... 하지만 미쯔이를 좋아하는 건 루카와가 하나미치를 좋아하는 것과
같을
정도 . 아, 이래봬도 저는 하나미치 팬입니다.
하나미치가, 아름다운(...) 루카와라든가, 예쁜(...) 미쯔이라든가,
남자다운 센도에게 사랑받고 소중하게 취급받는 게 요/점/입니다.
(굴려지는 게 아니고? - 아직도 역자)
2권에서 끝날지는 의문이지만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시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겠습니다. 이번 권은 거의 프롤로그 같은 것이라(이 페이지 수로
프롤로그...?) 참으로 거창해 보입니다만 제목에 지지 않는 얘기를
쓸 수 있으면 좋겠군요.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무리인가...
(제목에도 꿀리지 않는 스토리였어요, 미즈마 상 - 계속 역자;;)
화제를 바꾸겠습니다. 6월에 고향 친구(루하나는 없어요(실소))의
주최로, 저/를/속/이/고/ 세린의 생일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중 세린에 대한 기술은 많이 틀립니다. 잠깐 여기서
제 개인적 소견을 변명하게 해주세요. 저는 루하나에 관해서는,
죽이는 것보다 해피 엔드 쪽을 좋아합니다.(죽는 얘기를 좋아했던
건 이전 쟝르예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그리고...
미쯔하나가 레즈라니 뭐라고!? 내가 좋아하는 건 손도 잡지 않은
것 같은 유리(ユリ)(사실은, 어깨를 나란히 해서 걸어가는 것도
싫어! 무조건 플라토닉!)지 레즈는 아니야! 전혀 다르다구!
(그토록 강조해서 말했는데 뭘 들은 거냐!?) 그리고 사야마...
내가 언제부터 로리타에 빠졌다는 거니? 분명 하나미치 수로
전향했을 때 '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쿠라기 하나미치라는 귀여운
타입의 미소년에게 빠졌어 ♥' 같은 표현은 했지만, 하나미치 팬이지
로리타라고 단언한 기억은 없어! 지금까지는 아직 캐릭터 사랑이라구.
로리만 있는가 했더니 쇼타도 있었어!? 그럼 너도 동류야! 게다가
그 센도의 세라복은 도대체 어디가 내 기대에 부응한다는 거냐!?
(그래도 이전에 저는 센코시인 사야마의 생일 때 센하나본을 만들어
바친 과거가 있어서 용서할 수밖에 없군요(웃음)) 그리고 유우코,
그 '니세(가짜) 미즈마 세린'이라는 PN은 도대체... 아니, 얘기는
재미있었어. 처음 쓴 소설이 그 정도라니, 하늘이
두 쪽 갈라진다는
느낌이랄까.('니세 미즈마 세린'이란 이름으로 소설을 쓴 게
유우코라는 사실을 폭로하는 일은, 본인에게 승락받은 뒤)
그래도 난 궁상맞은 전쟁터는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지만...
어느 쪽이 좋냐고 한다면 전쟁 전의 녹명관 쪽이 훨씬...
화려하잖아 ♥
이렇게 되면 한 번 술마시러 갈 때라도 진지하게 내가 인생을 걸고
(엥?) 성실하게 하고 있는 루하나를 모두에게 얘기해 주마.
(...하지 마. 밖에서 그런 부끄러운 얘기는...)
...아, 위의 책을 읽지 않은 분들께는 모르는 일을 지루하게 써서
죄송해요. 다른 쓸 것도 없어서요. 용서해 주세요. 그 책 얘기인데,
BAROQUE 스페이스에도 당분간 두려고 하니까 흥미가 있으면 보세요.
모토키 짱, 고토쿠 상, 사야마, 유우코, 이것저것 불평 쓰긴 했지만
애정(?)이란 건 잘 알고 있어. 나를 위해서 루하나를 써줬잖아.
고마워, 소중한 걸 읽게 해줘서 (아, 게스트 분께도 고마워요 ♥)
하지만 내년에는 더 이상 필요없어... 뭘 쓰든간에 심장에 안 좋으니까.
(당신이 쓰는 것도 충분히 심장에 안 좋은데요 - 끈질긴 역자;;;)
특히 유우코.(세린은 좀 켕기는 데가 많은 것 같아서(웃음) ...寶塚은
정말 웃겼어. 이따가 또 보러 갈 거야) 아, 이제 슬슬 콘서트 회장에
가야겠군!(마감 날짜가 위태로운데...(두둥)) 아직 안 끝났는데...
어쩌면 내일 직접 쿠리에이 사로 향하는 비행기나 장거리 버스를
타야 할지도...(싫어- 그건 싫어- (그럼 콘서트를 안 가든지...))

8월 모일 치매와 열의가 공존하는 쓸쓸한 여인 미즈마 세린 올림

◆ 예고 (경국미희 2권)

-카랑.
손에서 단검이 미끄러지면서 맑은 소리를 내며 침실 바닥에 떨어졌다.
"...미안, 밋찌... 나... 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렸다.
"나 루카와를 죽일 수 없어..."
여기서 손을 내리면 소중한 사람을 구할 수 있는데.
그래도... 나는...
"...미안해..."
울면서 여기에는 없는 미쯔이에게 몇 번이고 사과하면서, 동시에
비장한 결의를 굳혔다.

"나 이외의 다른 남자의 이름을 다음에 입밖으로 내면 그 자리에서
너의 혀를 잘라버리겠다. 네 입에서 말은 필요없어. 멍청이는
신음소리만 내면 돼."


PRE번 호 : 1875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26일 09:45
등록자 : HALKO 조 회 : 266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2권 #꿈
/PRE


傾國の美姬 2卷 : 왕의 표적 written by 未津摩せりん


- 격자 너머에서 처음으로 밋찌를 보았을 때의 놀라움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주위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어떤 때에든 그 자리의 중심에 있는,
이 세상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뭐든
할 수 있는 첫 번째 왕자님.
내면도 외견도 왕자라는 그 신분조차, 그렇게까지 완벽하고 눈부신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니, 만나기 전까지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조차 없었다.
이런 대단한 사람이 있었구나 하고 솔직히 감동했다.
환상을 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바보자식도, 극소수 있었지만,
정말로 밋찌는 대단한 놈이다.
대단한 밋찌가, 나는 좋다.
밋찌보다 좋아하는 사람 따위 절대 생길 리가 없어.
밋찌의 옆에만 있을 수 있다면 무조건 '행복'해.
- 그러니까 돌아가고 싶어.
아찔할 정도로 눈부시게 빛났고, 너무도 행복했던 그 시절로 -



"믿을 수 없어! 이 가격은 뭐냐! 너 이렇게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다른 부스보다 가격이 낮잖아! 미에 대한 모욕이다.
화가 나!"
"...하?"
도로를 향해 있는, 유곽의 베란다 한구석에 앉아 있던 하나미치는
갑작스레 벌어진 일에 뻐끔 입을 벌렸다.
눈앞에는 추종자들을 몇 명 거느리고 있던, '나 한신분 하오' 라고
부르짖는 듯한 지나치게 화려한 복장의, 거짓말 같은 초절미모.
타국에까지 명성이 알려져 있는 고명한 1왕자가 있는 것이다.
왕자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보려고 도로로 모여드는 사람들의
시선까지도, 왕자의 시선이 향한- 하나미치에게 집중되었다.
"우...웃?"
처해진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하나미치는 눈을 끔벅였고, 그리고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 어...어째서!? ...아니, 기다려, 진정해, 천재! 진정하는 거야! -
고개를 저으며 심호흡을 햇다.
- 귀여운 얼굴이라고 왕자가 말했잖아. 나는 귀엽지 않으니까
내게 말하는 게 아닌 거야 -
억지로 끼워맞춰서 이해한 하나미치는 왕자가 말하는 '귀여운 얼굴'
이라는 인물을 찾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뭘 두리번거리고 있는 거냐! 너야, 너! 빨간 머리를 한 너한테
말하는 거다!"
- 헤? 빨간 머리? 빨간 머리 녀석이라면, 여기에는...
"나밖에 없잖아!
"
"그래, 너."
무의식중에 부르짖어버린 하나미치에게, 왕자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어째서..."
우연히 지나간 왕자가, 어째서 갑자기 나한테 그런 소릴 하는 거야!?
- 나 무슨 짓 했었나!? 안했는데! 안했을 거야! -
자신은 단지 조용히 앉아 있었을 뿐이다.
하나미치는 당면한 이 사태에, 공황상태 직전이었다.
"그 같잖은 가격파괴 금액의 이유를 납득할 수 있도록 내게
설명해 봐."
"...가격? ...그런, 나...아니 제...가 결정한 게 아니니까......
모르겠...습니다..."
익숙치 않은 경어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높은 사람- 그것도
왕족과 얘기하고 있는 일도 있어서, 말투가 생각보다 괴상했다.
"몰라?"
끄덕이자, 다시 고함을 질렀다.
"헛소리 하지 마! 너도 프로라면 이런 싼 가격의 이유 정도는
잘 설명할 수 있을 거 아냐! 이 정도라면 오히려 무서워서
아무도 사주지 않겠다!"
...빠직.
빠직빠직빠직.
- 어째서 내가 싸다는 것 때문에, 왕자가 화를 내야 하는 거야 -
불합리도 정도가 있다.
상대가 왕자라는 이유로 기가 죽어 있었지만, 웬지 하나미치까지
화가 났다.
아무 말 없이 서로 노려보기를 몇 분.
모여 있
던 민중을 헤치며, 바깥의 소란을 눈치챈 유곽의 책임자
두 명이 안색을 바꾸며 왕자에게 달려나왔다.
"이...이것은, 미쯔이 전하!"
"무슨 불미스런 일이라도 있습니까!?"
왕자는 발밑에 엎드린 남자들에게, 불쾌하고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
"...너희들이 이 빨간 머리의 책임자인가?"
남자들의 얼굴이 확 새파래졌다.
"설마 사쿠라기가 전하에게 무슨 실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 자는 오늘이 첫선인 신입입니다. 무례를 범한
사쿠라기를 여기서 엄하게 처벌하겠으니 부디 노여움을 푸십시오!"
"에에!? 날 벌준다니! 잠깐 기다려! 내가 뭘 했다는 거야!"
"너는 조용히 있어!"
"조용히 있을 수 있겠어!?"
유곽의 징계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최저가의 상품에게 많다.
최악의 경우 죽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난 아무 짓도 안했어!"
"사쿠라기!"
"-시끄럽다."
지옥에서 기어나온 듯이 나직한 목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돌아보자, 왕자는 얼굴을 한층 험악하게 찌푸리며, 하나미치를
보고 있었다.
"와... 왕자님?"
"...오늘이 첫선이라고? 그런데 그 이마장식에는 옥이 한 개밖에
안 달려 있다니, 내 눈이 이상해진 건가?"
유녀들의 이마장식이, 이 계통에서는 가격을 나타내는 가격표
대신이었다. 옥의 수가 많으
면 많을수록 그에 비례해 금액이 높다.
첫선을 보일 때는 보통때보다 높은 가격이 붙여지는 게 상식이다.
옥 하나라니, 뒷골목의 작고 더러운 매춘굴이라면 몰라도 이 수련
제일을 자랑하는 고급 유곽에서는 가격파괴라고 해도 할말 없는
최저가격이었다.
하지만 유곽의 남자들은 미쯔이의 말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분명히 보시는 대로 커다랗고 빨간 머리. 부끄럽습니다만
노래도 춤도 만족스럽게 못합니다. 옥 하나가 비싸다고 하시는 것도
당연하겠지만, 아무래도 쇼호쿠 제일의 유곽으로서의, 최저한의
체면이라는 것이 있어서."
왕자가 하나미치의 가격이 너무 높다고 말하고 있다고 오해한 가게
남자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럼, 내가 그 100배의 가격으로 사주지."
"...에?"
"그러니까 그 사쿠라기라는 것의 첫 손님으로 내가 되주겠다고
말하는 거다. 그녀석에게 어울리는 가격으로."
왕자의 말에 일순 찬물을 맞은 듯이 주위는 조용해졌고, 그 다음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어...어처구니 없는! 이런 자가 아니라 우리 가게 최고의 경국을
준비시키겠습니다!"
"최고? ...그렇다는 건 사쿠라기보다도 대단하다는 건가?"
"당연합니다! ...너희들, 경국을 데려와!"
"하지만 경국은 지금 다른 손님과..."
"상관없어! 급하다!"
"예..
.예."
"자자, 왕자님. 안으로 들어와 주십시오! 아아, 왕자님의 동행도
부디!"
왕자가 손님이라면 가게의 이름이 한층 빛난다.
이렇게 해서, 생각지도 못한 운좋은 사태에 유곽 '옥란'은 흥분으로
들끓었다.

장소는 옥란의 최상층. 제일 비싼 방이다.
"하하하하하!"
데려온 옥란 제일의 남창인 경국을 한 번 본 순간, 미쯔이는 배를
잡고 웃어댔다.
"와...왕자님?"
"이...이녀석이 제일 잘 팔리는 녀석이라고!? 농담도 정도껏 해라!
이 정도로 내게서 돈을 받겠다니 농담이 지나치다!"
"예...예. 이미 쇼호쿠 최대의 꽃이라고 칭송받는 미쯔이 전화와는
비교해서도 안 되게 하찮습니다만..."
"그런 놈과 나를 비교하지 마라. 차원이 너무 틀리잖은가. 불쾌함을
넘어서서 오히려 웃긴다."
이마의 땀을 닦는 가게의 초로의 남자와, 이끌려온 화사하고 가녀린
미소년은, 대단히 곤혹스러워져 버렸다.
이것이 미쯔이가 아니라면 무례한 놈이라고 화를 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상대는 세계 제일의 미모를 가졌다고 칭송받는
그 미쯔이 제 1왕자인 것이다. 경국 톱 정도로 대항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자존심 높은 경국도, 왕자를 본 순간 패배를 인정했고, 비웃음당해도
당연하다며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한바탕 웃은 후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고 미쯔이는 말했다.
"뭐 대충 예측은 했지만. 하지만 이녀석이 경국이고 어째서 그
빨강이... 사쿠라기라고 했나. 그녀석이 옥 한 개라고? 사쿠라기를
제치고 유곽의 정점에 선 경국이니까, 혹시 나와 겨룰 정도의
미모가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했잖아. 나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사쿠라기는 그 경국보다도 훨씬 상급품이다."
방 구석에서 몸둘 곳을 몰라하고 있던 하나미치는, 갑자기 자신에
대한 말을 들어서 깜짝 놀랐다.
미쯔이에 의해서 하나미치도, 강제로 여기까지 끌려온 것이다.
"역시 최초의 예정대로 내 상대는 사쿠라기로 부탁한다."
"그...그러나..."
"나가라."
차갑고 엄격하게 왕자는 명령했다.

쫓겨나듯이 경국들이 나가고, 이렇게 해서 미쯔이와 그의 추종자,
그리고 하나미치만이 방에 남았다.
"그럼, 보자..."
미쯔이는 하나미치를 돌아보며, 입술 끝만을 올리는 교만한
미소를 지었다.
태어날 때부터 다른 사람에게 떠받들리고 찬미만을 받으며
자란 자 특유의 절대적인 자신감으로 뒷받침된 표정.
하나미치는 지금까지 이런 미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성격에는 대단히 문제가 있는 것 같은 왕자지만, 용모는 완벽히
하나미치의 이상이어서 무의식적으로 두근거렸다.
하나미치는 자신의 용모에 대한 열등감으로, 예쁜 얼굴을 무척
좋아했다.
"그런 구석에 있지 말고 이쪽으로 와. 월플라워 같은 건, 화려한
미인인 네게는 어울리지 않아."
울컥해서 입술을 삐죽거렸다.
"...너 눈이 썩었냐."
"아?"
"뭐라고! 전하에게, 이 무례한 놈!"
하나미치의 발언에, 지금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말없이
따라온 미쯔이의 추종자들이 일제히 분기탱천했다.
그것을 미쯔이는 한 손을 흔들어서 조용히 시켰고, 진의를 읽기
위해 미소를 지으며 하나미치를 보았다.
"-그건 무슨 의미지?"
하나미치는 완전히 대담하게 나왔다. 경어를 사용법조차 이미
저 멀리 던져버렸다.
"내 어디가 저 경국보다 상급품이라는 거야
. 기분나쁜 말을 해서
나를 놀리려는 거 아냐?"
"방금의 그녀석보다 네 쪽이 훨씬 아름답다고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데."
"특별히 그런 아첨은 필요없어. 남자가 아름답다고 들어봤자
기쁘지도 않아. 나는 여자도 아니고."
"나도 여자는 아니지만 아름답다고 들으면 기쁘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 이상으로 아름다운 여자라는 건 한 번도 본 적 없어."
"맞아! 밋짱이 제일 아름다워!"
기족의 아들이고, 미쯔이의 소꿉친구 겸 숭배자인 홋타 노리오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면서 외쳤다.
그를 따라서 미쯔이의 추종자들도 깊이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매일같이 미쯔이의 추종자는 멤버가 바뀌지만, 오늘의 얼굴들은
어릴 때부터 미쯔이의 친위대를 자부하는 소꿉친구들이었다.
남자는 짧은 머리가 상식인 쇼호쿠에 있어서, 어깨까지 기른 비단과도
같은 흑발을 살랑거리며, 미쯔이는 턱을 쑥 내밀고 가슴을 폈다.
"그래, 내가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
"맞아, 밋짱!"
"멋지다!"
"훌륭합니다!"
"핫하하하! 당연하지!"
부추겨져서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는 왕자에게, 하나미치는 정말로
아연해했다.
"...뭐야, 이 왕자님... 얼굴만 예쁘고 머리는 텅 빈 바보...?"
"!"
하나미치의 말에, 쉬이잉...
하고 주위가 조용해졌다.
- 아... 나 혹시, 히익? -
"자...잘도 남창 주제에 세기의 대천재 밋짱을 바보라고 불렀겠다!"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홋타가 하나미치에게 돌진했다.
팔힘에 자신이 있는 홋타는 그대로 주먹을 번쩍 들었다.
"그만둬, 노리오!"
미쯔이의 제지는 때가 늦었다.
누구라도 하나미치의 얼굴에, 홋타의 주먹이 작열할 거라고 생각했
-지만!!
하나미치는 약간 얼굴을 왼쪽으로 움직여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재치있게 피한 것이다.
"너!?"
"받아라!"
"!!"
홋타의 오른뺨에 주먹을 먹이고, 즉각 무릎으로 배를 올려찼다.
때리려고 했다가 도리어 맞은 홋타는 아연한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졌다.
"흥! 천재 사쿠라기 하나미치 님에게 싸움을 걸다니 백 년은
빠르다!"
승리로 기분이 좋아져서, 의기양양하게 웃은 하나미치는, 미쯔이가
휘익 작은 휘파람을 불자, 퍼뜩 자신의 입장을 깨달았다.
- 이...이런! -
"-네놈, 잘도 홋타 님을...!"
남자들이 일제히 표정을 험상궃게 하면서, 하나미치를 노려보았다.
그들의 분위기는 일순간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바보스러움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그녀석이 먼저 싸움을 건 거야."
"남창 주제에 뭘 지껄이는가!"
깜짝!
"미쯔이 왕자님이라고 하면 너희들 평민에게 있어서, 바로 구름 위의
존재. 직접 말을 걸어주시기는 커녕, 얼굴만 가까이에서 뵙는 것조차
바랄 수 없는, 고귀한 분이시다! 그런데 그같은 폭언을 내뱉고
귀족이신 홋타 님에게까지 손을 대다니!"
- 히익-! -
"불경죄다! 극형을 면할 수 있을 거라 생각지 마라!"
남자 중 한 명이 허리의 칼자루에 손을 댔다.
그것을 넌지시 미쯔이가 멈췄다.
"-그만둬."
"왕자님!?"
"난 특별히 화나지 않았어."
"하지만 이녀석은-"
"괜찮다고 내가 말했다."
조금 어조를 강하게 하자, 남자들은 불만스럽게 입을 다물었다.
"그보다 너희들. 나는 유곽에서 남자를 샀다. 이제 좀 알아서
눈치를 채주지 않겠나."
"에... 서, 설마 정말로 이런 꼬마를!?"
"방해된다. 꺼져라."
미쯔이는 엄지손가락으로 출입구를 가리켰다.

하나미치는 미쯔이와 둘이서만 서로 마주보며 서 있었다.
여기는 유곽.
자신은 상품이고 미쯔이는 손님.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불을 보는 것보다도 뻔하다.
- 웃! 드디어 나도 남자를 상대로 그런 파렴치한 행위를 당해야
하는 건가!? -
부끄럽지만 여기에 온 14세가 되서 처음으로 아이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된, 늦되고 순진한 하나미치이다.
혐오감도 치솟지만 공포심은 그 이상이다.
미쯔이가 한 발짝 다가왔다.
하나미치는 두 발짝, 후퇴했다.
미쯔이가 이번에는 두 발짝 다가왔다.
하나미치는 이번에는 세 발짝 후퇴했다.
미쯔이가 척척척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하나미치는 그 이상의 속도로 두두두두 재빨리 후퇴했-지만,
- 헉. 막혔다! -
뒤의 벽에, 달라붙은 듯한 모습으로 하나미치는 경직했다.
쫓기는 하나미치를 보고, 미쯔이의 얼굴이 싱긋 미소지었다.
심술궃어 보이는 미소를 지은 그는, 아무리 봐도 정말로
재미있어하는 듯했다.
- 이...이대로 때리고 도망쳐 버릴가 -
그런 일이 일순간 뇌리에 스쳤지만, 납득하고 유곽에 팔려온 이상
무책임한 짓을 할 수 있는 하나미치는 아니었다.
그리고 뭐라고 해도 눈앞에 있는 것은 왕자.
왕자를 때리고 도망치면 이번에야말로 확실히 사형이라는 것을
하나미치라도 알 수 있었다.
- 여자애하고도 손잡아본 적도 없는데 뭐가 모자라서 남자 따위와... -
최소한의 구원은 첫 상대가 웬만한 미녀보다도 훨씬 아름다운
남자였다는 것일까...... 정말로 빈한한 구원이다.
"힉..."
결국 팔을 잡혔다. 그대로 미쯔이의 단정한 얼굴이 서서히 다가오고-
- 우와아! 우와아! 우왓! -
공포 때문에 실제로는 목소리 하나 나오지 않았다.
숨을 들이마시고 꼬오옥 눈을 감은 하나미치의 이마를, 미쯔이는
자주색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으로 탁 튕겼다.
"...우?"
눈을 뜨자 미쯔이가 웃고 있었다.
"바보. 싫어하는 어린애를 안는 취미는 없어."
"헤...?"
"도대체 어째서 내가 공 역할이라는 귀찮은 짓을 해야 하는 거야.
그런 건 거절이다. 바보같아."
"무...무슨 말을?"
"그러니까 여자를 상대로 할 때는 어쨌건, 남자를 상대할 때는
기본적으로 아무 것도 안하는 주의야. 나른해지잖아. 나와 잘 거라면
뒷수고는 전부 상대가 해줘야 해."
간단히 말해서 미쯔이는 귀찮다는 단지 그것만의 이유로, 남자 상대일
때는 수를 하는 일이 많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순진한 하나미치에게는 그것조차도 이해불능.
"처음인 네가 나를 만족시킬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어. 그 이전에
지금의 너는, 그럴 마음도 안 들어
. 나는 아무 것도 모르는 신참을
개발해가는 취미도 없다. 내 상대가 되고 싶다면, 다른 사람에게서
기술을 연마해서 완전해지면 와라. 젊음과 체력만이 밑천인 꼬마는
이쪽에서 사양한다."
"...하아...?"
말하고 있는 절반 이상을 이해할 수 없다.
뭐가 뭔지 모르겠어서 아연해하고 있는 하나미치에게, 미지의 생물은
점점 더 뜻모를 말만 계속했다.
"뭐 얼굴은 마음에 들었고, 5년 후에 내게 어울리는 남자로 성장하면
이 몸과 침소에 드는 권리를 쟁탈할 권리를 주겠다. 나에게 있어서 20세
이하는 그런 의미로 대상 밖이야."
"궈...권리를 쟁탈할, 권리...?"
그게 뭐야.
"그런 이유로, 안심해. 네게는 아무 짓도 안해. 내가 너를 지명한 건
미술품이든 인간이든 부당한 취급과 평가를 받는 것을 보면 참을 수
없는 체질이라서. 사쿠라기 같은 이 내 눈으로 봐도 필적할 정도의
미모가, 그런 가격이 붙여졌다니 내게 있어서도 굴욕이니까. 쇼호쿠의
아름다움을 리드하고 있는 제 1왕자로서는, 그런 부끄러운 가격을
붙이고 수도의 큰길에서 맨얼굴을 내보이다는 민폐야. 제대로 된 감성을
가진 외국인들이 보면, 쇼호쿠의 인간은 쓸만한 심미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비웃을 것이고, 쇼호쿠의 미모를 대표하는 나의 아름다움까지
의심할 거란 말이다. 너의 옥 한 개는 나의 멋진 얼굴에도 먹칠을 하는
거야. 정말로
너와 이런저런 일을 하고 싶어서 지명한 게 아냐. 왕자인
내가 샀다는 사실로, 이제부터는 너도 정당한 평가가 내려질 테니까
사준 것뿐이야."
노도의 물결처럼 술술 말해대고 있는 왕자.
얘기를 들으면서 하나미치는, 서서히 표정을 바꾸고 있었다.
"...잠깐 기다려."
"앙?"
"너, 내게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그런 말이냐."
"아까부터 그렇게 말했다."
그 기뻐해야 할 사태에, 하나미치는 분노로 얼굴을 물들였다.
"...사람을 놀린 것만으로 모자라서 그대로 돌아가겠다는 거냐..."
"아?"
"헛소리 하지 마! 결국 사줬는데도 여기까지 와서 그만둔다면
나중에 내가 혼난단 말야. 밥도 못 먹어서 아사하면, 설령 네가
왕자라도 귀신이 되서 나타날 테다! 이 사쿠라기 하나미치를
바보 취급하고, 그대로 사라지겠다고는 생각하지 마!"
하나미치의 눈은 완전한 삼각형이 되어 있었다.
"잠깐... 기다려봐. 돈을 안 내겠다고 말하는 게 아냐. 너의
대금 정도는 확실하게 치뤄준다고. 그놈들을 전원 내쫓은 것도
네가 열심히 일을 했다는 겉보기만 보여주려는, 상냥한 배려를-"
"공짜보다 비싼 건 없어! 돈을 받은 만큼 일한다! 나를 안아!"
그렇게 외친 뒤, 하나미치는 자신이 말한 대담한 발언을 깨닫고
확 얼굴이 붉어졌다.
갑자기 침묵한 미쯔이는, 즉시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한
얼굴로 눈을 빛내고 조롱하는 듯한 어조로 속삭였다.
"...흐응. 좋은 마음가짐이다. 그럼 하나만 받아갈까."
"후웃!?"
미쯔이의 빨갛게 칠한 듯한 입술이, 하나미치의 탐스러운 입술과
맞닿았다.
- 키스.
태어나서 처음 하는 키스.
그것을 이해한 순간, 하나미치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닿자마자 곧장 떨어진 키스에,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제... 끝장이야. 내 인생은 완전히 끝이야."
"하아? 뭔 소리를 하는 거냐. 앉아 있지 말고 일어서."
"...허리를 삐었어."
"농담하네. 허리가 삐었다는 뻥은 아무도 안 믿어."
"키스했잖아! 후우웃! 나는 더럽혀졌어! 이제 평생 여자아이랑은
결혼할 수 없어!"
"뭐, 뭐냐, 너는. 나한테 안아달라고 한 건 너잖아. 그런 어린애
같은 키스로 시끄럽게 굴지 마. 내가 키스해 줬는데도 기뻐하지
않다니 너 좀 이상한 녀석이다."
"이상한 건 너야! 키스는 좋아하는 사람하고 하는 거란 말야!"
"너는 키스당하는 쪽보다 안기는 쪽이 좋다는 거냐."
"다...당연하지."
"강한 체하지 마, 꼬마."
"우!"
다시 키스당해서 눈물이 났다.
"...너무해..."
"어이?"
하나미치는 드디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
"아무리 네가 왕자님이라고 해서 내 장래를 망칠 권리는 없어."
"뭘 울고 있는 거야, 겨우 키스 가지고."
하나미치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바닥을 노려본 채로,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펑펑 눈물을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하나미치의 아이같은 우는 얼굴에, 미쯔이는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뭔가... 신선하군. 이런 반응도."
정말로 변덕이 발동해서 사본 것에 지나지 않았는데, 얘기를 하고
있는 동안 일찌기 느껴본 적이 없는 보호본능 같은 감정이 솟아올라와,
미쯔이를 무척 당혹스럽게 했다.
제멋대로의 끝을 모르는 그에게 자각은 없었지만, 장남인 미쯔이는
잠재적으로는 남 봐주기를 좋아하는, 형 기질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정말이지. 그런 무방비한 모습을 보이면 내버려둘 수 없잖아."
"우웅?"
콧물을 훌쩍이며, 하나미치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하루의 변덕으로 칠 생각이었는데 마음이 변했다."
"우웅?"
다시 얼굴을 접근시키자, 하나미치의 몸이 흠칫 떨렸다. 미쯔이는
얼굴와 얼굴이 달라붙기 직전에 움직임을 멈추고, 싱긋 웃었다.
"나를 좋아하도록 해. 좋아하는 사람과 한 키스라면 문제없지."
"왕자님?"
당혹스러운, 어린애 같은 시선.
"미쯔이 히사시다."
"밋찌?"
"하아?"
"밋찌."
"......"
정정할지 어쩔지 생각하다가, 하나미치가 부른 그것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는 자신을 깨닫고, 미쯔이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갑자기 즐거운 듯이 사안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낙적시켜줘도 괜찮지만 곧장 나쁜 놈들에게
속아서 다시 팔려갈 것 같군. 사회공부 겸 당분간 여기에 둬볼까."
"우웅?"
"아-아."
자신이 입고 있는 값비싼 옷자락으로 하나미치의 코를 닦아주었다.
"이런, 콧물 닦아야지.귀여운 얼굴이 엉망이 되잖아. 이제부터는
왕자의 마음에 들었으니까 미모에도 특히 신경을 써야 해."
"이제부터라니..."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외견만 좀 흥미가 있었을 뿐인,
늘 하는 변덕이었지만, 정말로 합격이다. 오늘부터 너는 나의
전속이다."
".......................................에?"
- 뭐라고 말했지? 전속? 전속이란 대체...? 내가 왕자님의 전속!? -
에-!?
"사쿠라기... 이름은 뭐라고 부르지?"
"하...하나미치..."
"사쿠라기 하나미치인가. 예쁜 이름이다."
자신의 바로 가까이에서, 교만하고 매력적인 미소를 짓는 미쯔이의
미모에, 하나미치는 처음 깨달은 듯이 숨을 들이켰다.
- 멀리서 봤을 때도 놀랐지만 가까이서 보니 훨씬 예쁘잖아! -
하나미치는 얼굴을 밝혔다.
자신의 용모에 뿌리깊은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밝히는 것도 확고했다.
바로 옆에서 본 미쯔이 왕자의 검은 머리, 검은 눈의 미모는,
하나미치의 궁극의 동경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미치의 얼굴 밝히는 주의는, '얼굴이 잘난 놈에게 나쁜
놈은 없다'라는, 근거없는 결심을 할 정도로 철저했던 것이다.
- 이렇게 얼굴이 아름다운데, 마음은 훨씬 더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왕자님임에 틀림없어. 그렇지 않다면 조금 전에 나쁜 말을 한 나를
사형시켰을 텐데 목숨까지 구해주고...... 오오! 그렇다는 말은,
이 예쁜 왕자님은 목숨의 은인!? -
그렇게 생각한 순간 하나미치의 심장은, 격렬히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미쯔이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울어서 빨개진 하나미치의 코에
쪽 키스를 했다.
하나미치는 더욱 더 새빨개졌다.
"너 정도로 억세게 운 좋은 녀석은 거의 없다. 뭐라고 해도 미쯔이
히사시 님의 마음에 들었잖냐. 최고의 미래가 보장된 것과 마찬가지야."
미쯔이의 아름다운 얼굴에 홀려서, 하나미치는 순순히라기보다는
간단하게, '그럴지도'라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이것이 쇼호쿠 제 1왕자 미쯔이 히사시와, 유곽 출신의 측실
사쿠라기 하나미치라는, 잉꼬 부부(...)의 최초의 만남이자,
대륙 전체를 뒤흔들어 놓을 이야기의 진짜 시작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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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드디어 2권이 손에 들어왔습니다.
이전에는 2권만 빼고 다 있는 상태여서, 일단 먼저 3, 4권 번역은
끝마친 상태입니다. 2권만 끝나면 도배 수준이 되겠죠...
(근데 2권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으려나...-_-;)
이번 번역도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의역+창역의 결정체.
다음 챕터부터 등장하는 극악 질투마, 강제마 루카와,
부디 알아서 피해주세요 ^^ 초반부만 좀 심하니까(순전히 제 생각)
그것만 지나면 그럭저럭 참으실 수 있을 겁니다.(과연?)
루카와 팬이 대거 떨어져나가는 일까지 발생하지 않기를 빌면서...
(이 소설은 오리지날이다...라고 굳게 생각하십시오;)
(무서워... 다음 챕터는 번역하기 싫어어...T_T)


PRE번 호 : 1876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26일 09:50
등록자 : HALKO 조 회 : 256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2권 #1
/PRE

1.

"...우..."
조그맣게 웅얼거리면서 눈을 떴다.
미쯔이와의 행복한 나날을 꿈꾸고 있었던 하나미치는, 자신이
처해진 상황을 곧장 파악하지 못했다.
부비부비 눈가를 비비며, 흐리멍텅해 있는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흐릿한 시야 앞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미쯔이라고
생각하며 팔을 뻗었다.
- ...밋찌 -
부드럽게 손을 잡히자 하나미치는 너무나 기뻐졌다.
따스한 손을 그대로 자기 뺨으로 갖다대며, 소중한 이름을 부른다.
"......밋찌."
퍽 하는 소리 후에, 뺨이 지끈 뜨거워지고 다음으로 아픔이 느껴졌다.
"우... 밋찌...?"
"멍청이!"
"!"
- 밋찌가 아냐! -
잠에 취해 있던 눈의 촛점이 한순간에 맞추어지고,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남자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발견하자 숨을 들이쉬었다.
"녀석의 이름은 입에 올리지 말라고 말했지!"
"루카와...!"
갑자기 루카와가 자신을 깔고 앉았나 했더니, 입 안에 시트를
우겨넣었다.
"으읍!"
무작스럽게 계속 밀어넣자, 숨쉬기가 괴로워서 눈물이 나왔다.
- 이 자식! 언제까지나 우쭐해하고 있지 마! -
퍽.
"...윽."
하나미치 혼신의 무릎차기를 먹자, 역시
루카와도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맞은 루카와보다 때린 하나미치 쪽이 몇 배나 데미지가
컸던 것이다.
"으아... 아아아..."
시트를 토해내서 자유로워진 입에서, 고통의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자신의 몸을 끌어안으며 몸을 떨고 있는 하나미치의 이마에는,
구슬같은 식은땀이 솟아나 있었다.
- 아파... -
요 며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루카와에게 계속 당한 데미지는,
한때의 수면 정도로 치유되는 것이 아니었다.
맞은 타박상과 억지로 삽입되어서 생긴 비부의 찢어진 상처,
그리고 정신적인 타격 때문에, 처음으로 안긴 뒤 하나미치는
고열을 앓았다.
병자에게도 루카와의 폭행은 용서없이 계속되어서, 3일이 지난
지금도 열은 전혀 내리지 않았다. 일반인과는 기초체력이 근본적으로
틀린 하나미치이기 때문에, 살아 있을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였다.
펑펑 눈물을 흘리며 신음하는 하나미치에게, 루카와는 머리 위에서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렇게까지 놈을 사랑하나."
"루카와...!"
"안심해. 이제부터는 그녀석 대신 내가 널 데리고 놀아주겠다.
지루하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퍽!
"...윽."
비명을 지르는 몸으로 루카와의 뺨을 때리며, 눈물로 가득찬 호박색
눈으로 노려보았다.
"밋찌가 이런 잔혹한 짓을 할 것 같냐! 밋찌는 나를...나를..."
미쯔이의 일을 생각해내자 더욱 더 눈물샘이 약해졌다.
"멍청이...?"
"너 같은 것, 조금도 밋찌를 안 닮았어! 네가 나의 밋찌의 아버지라니
절대 인정 못해!"
외친 순간, 사정없이 다시 한 번 얼굴을 맞았다. 그래도 꺾이지 않고
더욱 더 격하게 말을 하려던 하나미치는, 루카와의 표정 변화를 눈치채고
안색이 죽었다.
"...나/의/ 밋찌?"
"히이..."
억양 없는 루카와의 목소리에, 며칠 동안 신체 깊은 곳에서 침잠되어
있던 공포심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무의식적으로 몸이 도망칠 궁리를 하며, 침대 끝으로 기어올라갔다.
"또 녀석의 이름을 불렀나. 몇 번이나 험한 꼴을 봐야 정신을
차릴 거지?"
"시...싫어... 오지 마..."
"멍청이."
"아윽!"
뼈를 부수기 일보직전의 힘으로 턱을 쥐는 바람에, 격렬한 통증에
쉰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하나미치가 싸움에 강하다고 해도, 결국 자기류의 풋내기다.
어릴 때부터 일류의 교사 옆에서, 정식 무예를 익혀온 루카와에게는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나 이외의 남자의 이름을, 다음에 입에서 내면 그 자리에서 너의
혀를 잘라버리겠다. 네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필요없다. 멍청이는
신음소리만으
로 족해."
내뱉듯이 그렇게 말하고, 통증으로 얼굴을 찡그리는 하나미치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짓눌러왔다.
공격적인, 애정의 한 조각도 느껴지지 않는 입맞춤.
"으읍..."
눈물이 샘처럼 솟아나왔다.
인간이 이렇게까지 많은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게 놀랄 정도로,
여기에 오고 나서부터 하나미치는 계속 줄곧 울었다.
- 밋찌에게 돌아가고 싶어 -
루카와에게 감금당해 폭행당하면서도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보낸, 짧았지만 행복했던 나날들뿐.
바로 며칠 전까지 그 행복의 나날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거라고
의심치 않았었는데.
- 밋찌... -
말을 꺼내는 것조차 금지된 사람의 이름을 마음 속으로 반복했다.
돌아가고 싶어.
돌아가고 싶어.
그 따뜻했던 장소로 돌아가고 싶어-
육체에 가해지는 고통으로 처절한 비명을 계속 지르면서도, 오로지
가장 사랑하는 왕자의 일만을, 하나미치는 계속 생각했다.

================================================================

...짐승... mT_T+


PRE번 호 : 1877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26일 09:52
등록자 : HALKO 조 회 : 251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2권 #2
/PRE

2.

-백염궁.

하나미치가 괴로운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미쯔이는 미쯔이대로
잠들지 못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째서 저 냉혈무도최저재수 아버지는 날 만나주지 않는 거야!"
쾅!
"전하!"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루카와와의 면회를 거절당하고 돌아온
미쯔이는, 책상을 뒤엎으며 폭주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황급히 달래기 시작했다.
"미쯔이 전하, 진정하십시오!"
쨍그랑!
이번에는 비싼 유리 화병을 마루에 내동댕이쳤다.
"죽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죽인다! 저 바보 아버지!"
"헉, 전하!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 입에 올리지 마십시오!
만에 하나 폐하의 귀에 들어갔다간...!"
"이를 테면 일러라! 나는 저런 아버지, 정말 싫다!"
"왕자님!"
"-아아. 이건 또 지독한 소동이군."
이 참상 속으로, 새로운 인물이 출입구에서 불쑥 나타났다.
"센도냐!"
미쯔이는 홱 고개를 돌렸다.
"죽을 정도로 바쁜 나를 강제로 초대해 주셔서 고마워, 형."
"사쿠라기는 어떻게 됐어? 그녀석 아직 아버님에게 묶여 있겠지!"
서두도 없는 재촉.
왕과 같은 금염궁에 사는 센도다. 하나미치의 일을 뭔가 알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불러들인 것이다.
본래는 스스로 찾아가는 편이 사리에 맞지만, 미쯔이는 루카와에
의해 금염궁의 부지내로 들어오는 것조차 금지되고 있었다.
"응... 나도 개인적으로 어떻게든 사쿠라기와 직접 만날 수 없나
해서 힘써봤지만 무리야. 나만이 아냐. 아버님 이외에는 시녀들조차
사쿠라기와 만나는 것을 금지되고 있어."
"시녀들까지...? 하지만-"
미쯔이의 의문을 눈치채고, 센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섭게도, 사쿠라기의 몸시중도 전부 그 아버님이 혼자 들어주고
이쓴 것 같아. ...아버님은 사쿠라기를 자신 이외의 사람들 눈에
띄게 하는 것조차 싫어하고 있어."
"뭐냐, 그건..."
"상상 이상의 집착심이지. 일을 소홀히 하고 사랑에 미친 왕 대신,
정무는 어쨌든 내가 대행하고 있지만. 확실히 말해서 한계에 가까워.
궁정도 나도- 사쿠라기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들려오는 하나미치의 비명은, 금염궁에서는
유명한 얘깃거리가 되고 있었다.
센도는 일단 입을 다물고, 한 호흡 뒤에 주의를 주었다.
"왕의 사쿠라기에 대한 사랑은 상식을 벗어났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 지금 섣불리 사쿠라기를 되찾으려고 하면, 처분되는 건
형 쪽이야. 말과 행동에 아무쪼록 주의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게
좋아."
"헛소리 하지 마! 왜 내가 나중에 나타나서 아들의 측실을 빼앗은
바보자식의 눈치를 봐야 하는 거냐!"
"고집부릴 단계가 아냐. 최악의 경우 아버님에게 죽을 수도 있어."
"...큭."
그 말에 겁낼 미쯔이가 아니었다.
"미쯔이 전하!"
그 축하회 날부터 미쯔이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하세가와 장군이
바닥에 양손을 짚으며 무릎을 꿇었다.
"부탁입니다! 사쿠라기 님은 단념해 주십시오!"
"하세가와!?"
"...이 이상, 부디 이 이상 폐하의 노여움을 사실 짓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당신처럼 훌륭한 분이 측실 한 명 때문에 장래를 헛되이
하셔서는 안됩니다!"
"...너."
분노로 미쯔이의 전신이 미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 이 남자는 몸을 지키기 위해 하나미치를 왕에게 바치고, 그녀석의
일은 잊으라고 이 나에게 말하고 있다.
그것은 미쯔이에게 있어서 모욕과도 같은 말이었다.
고함을 지르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하세가와를 노려보고
씹어 뱉듯이 말했다.
"-걱정해 줘서 고맙지만 나는 단념하지 않기로 유명한 제멋대로
왕자다. 나는 원하는 것은 단념할 수 없어. 어떤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손에 넣는다. 손에서 놓는 것은 내가 필요없어졌을 때뿐이다.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살아왔다. 이제와서 내가 사는 방식을, 아버님
따위의 탓으로 바꾸고 싶지 않아. 사쿠라기는 나의 것이다."
"전하..."
하세가와는 괴로운 듯이 얼굴을 찡그리며, 뭔가를 결의한 표정으로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쉰 목소리로, 쥐어짜듯이
말했다.
"...오늘 아침, 왕의 경호를 맡고 있는 부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반미쯔이파 자들이 루카와 국왕께, 저항심 강한 제 1왕자는 배척해야
한다고 진언했던 것 같습니다. 왕께서는 거기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시고..."
"...뭐라고..."
센도와 미쯔이, 그리고 주위에서 말없이 대기하고 있던 백염궁에서
일하는 자들이 동시에 숨을 들이쉬었다.
"...그런 중대한 일을 폭로하면 너도 그대로 끝나지 않을 텐데."
센도의 말에 하세가와는 각오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은
채로 미쯔이를 꼼짝도 않고 올려다보았다.
"...사랑하는 당신을 잃는다면, 저희들은... 저는 살 수 없습니다...
지금의 제 충성은 왕이 아니라 당신에게 있습니다. 미쯔이 왕자님."
"그럼 죽어!"
미쯔이는 갑자기 고함을 질렀다고 생각했더니만 하세가와의 커다란
몸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너의 사랑!? 충성!? 그런 쓸모없는 것 필요없다! 방해돼! 내 마음에
들고 싶다면 사쿠라기를 아버지에게서 빼앗아와라! 그게 불가능하다면
두 번 다시 그 더러운 면상 내 눈앞에서 보이지 마!"
"형!"
센도는 하세가와를 계속 걷어차는 미쯔이를 가슴으로 끌어안았다.
"놔, 센도! 그때 이녀석이 날 때려서 기절시키지 않았다면 사쿠라기를
아버님에게 끌려가게 하지도 않았어!"
퍽!
"!"
센도에게 뺨을 맞은 미쯔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작작 좀 해. 머리 좋은 형이라면 그때 하세가와 작운의 행동이
올바른 일이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거 아냐."
미쯔이는 숨을 들이키고-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전하."
하세가와는 센도의 가슴 속에서 울기 시작한 미쯔이를 가슴아프게
바라보면서, 그 자신까지 눈물을 흘리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용서해 주십시오, 미쯔이 전하."
"...사과하지 마. 바보자식."
"아니요. 어떤 사정이 있건간에, 저는 존귀한 당신께 손을 대서,
그 의지를 방해했습니다. 꾸짖으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어떤 취급을 당해도, 미쯔이에 대한 사랑이 한치도 흔들림이 없는,
하세가와의 올곧은 시선.
지금까지 아무 말 없었던 주위의 사람들도, 하세가와의 뒤에서 차례로
무릎을 꿇고 미쯔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제각기, 하나미치의 일은 잊어주라고 간청했다.
경애하는 소중한, 자신들의 왕자를 지키기 위해... 순수하게 미쯔이를
위해서만 그들은 고개를 계속 숙이고 있었다.
센도의 얼굴에 한순간만 혐오에 가까운 감정이 스쳐간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만둬. 나는 그런 단세포에게 질 정도로 얼간이는 아니다."
"루카와 폐하는 무서운 분입니다."
루카와보다 한 살 연장인 하세가와는 진지한 얼굴로 충고했다.
그는 루카와와 함께 전장을 누벼온 전우이기도 했다. 루카와의 진정한
강함과 무서움은 궁전에서의 왕밖에 모르는 미쯔이보다도, 훨씬 더
깊이 실감하고 있었다.
"장군 말이 맞아. 아버님을 얕보지 마. 진심이 된 아버님은 예측할 수
없으니까."
10대에 대륙 중부를 평정한 왕이다. 두 사람의 말은 지당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얌전히 있을 것 같으냐!"
"얌전히 있어. 자신이 조금이라도 소중하다면."
"센도!"
"형은 적시되고 있어. 지금은 얌전히 아버님을 이 이상 격노하게 하지
말고, 백염궁에서 근신하고 있는 편이 현명한 처사야. 아무쪼록 경솔한
행동은 하지 마. 동생이 형에게 보내는 선의의 충고야."
차기 왕이 될 동생 왕자는, 부정을 용납하지 않는 태도로 형에게 말했다.
"...큭."
미쯔이도 멋으로 지성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인간은 아니다. 그것이
최선이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제일 괴로운 건 사쿠라기야. 형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우는 건
그애라고. ...형은 아야코 상과 하나미치를 위해 살아갈 의무가 있어."
미쯔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처소로 돌아가려고 근위 10명과 함께 말을 몰고 있었던 센도는, 미쯔이가
혼자 뒤를 쫓아오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말을 멈췄다.
백마 라일락에서 뛰어내려, 미쯔이는 센도의 바로 옆으로 달려왔다.
"-형?"
"센도! 이거 어떻게든 사쿠라기에게 전해주지 않겠어?"
"사쿠라기에게라고..."
편지를 받은 센도는 곤란한 얼굴을 했다.
"무리한 일 부탁한다는 거 알아. 무리해달라고는 말하지 않을게. 기회가
있으면 전해달라는 거야. 중요한 편지도 아니고... 아니, 중요...한가."
"...이거, 뭔가 써 있어?"
"특별히... 격려의 말 같은 거야. 지금은 함께 있을 수 없지만 꼭 구해줄
테니까 날 믿고 기다려 달라고... 뭐, 그런 내용이야."
그렇게 말하며 웃은 미쯔이의 얼굴이 그 직후에 찡그려졌다.
"형?"
"...금염궁에도 내 입김이 닿아 있는 놈들은 많이 있어. 그녀석들에게
사쿠라기가 아버님에게 지독한 짓을 당하고 있다고 들었어."
미쯔이는 긴 속눈썹을 떨면서 고개를 숙이고, 금방이라도 울 듯한,
좀처럼 없었던 약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석, 몸은 크지만 속은 깨끗한 그대로의 작은 꼬맹이야. 그리고
엄청난 울보라구. 분명 지금도 울고 있을 거야. ......내가 지켜줘야
했는데. 그녀석에게는 나밖에 없었는데... 그런데... 빌어먹을..."
소중하게, 소중하게, 결코 상처입히지
않으려고 지켜온 아이.
그것을 억지로 빼앗아간 증오스러운 부친을 생각하자, 분노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그것을 멈출 수 없었던 자신의 무력함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분하다-
"...형도 사쿠라기를 정말로 좋아하는 구나."
"센도?"
"편지 전해줄게. 혹시나 어떻게든 될지도 모르고."
"미안. ...네가 동생이라서 다행이다."
"...나는 형의 동생으로 있는 게 언제나 고역이었는데."
"아...?"
한순간 표정을 지운 센도는, 다음 순간 언제나처럼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형제가 아니라면 이런 미인은 가만 놔두지 않았어. 망설임 없이 내
것으로 했겠지. 쇼호쿠 사상의 최고 미모를 가진 미쯔이 제 1왕자님."
가벼운 농담에, 미쯔이는 잠시 표정을 조금 풀더니, 살폿 미소지었다.
"넌 여자밖에 취미없잖아. 정말이지. 너는 어떤 때든지 무사태평해서
부러워."
"에..."
"괴로움 같은 건 옛날부터 아무 것도 없잖아. 정말로 행복한 녀석.
나도 너처럼 재미있게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
"-"
센도의 표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센도?"
"-무사태평하고 있는 것도 굉장히 피곤한 거야..."
센도는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입술을 비틀었다.

"...제길!"
미쯔이와 헤어지고 금염궁의 자기 방을 돌아온 센도는, 받은
편지를 바닥에 내팽개쳤다.
"괴로움이 없어? 그건 형 쪽이잖아!"
미쯔이가 말한 아무 뜻없는 마지막 한 마디.
그것은 센도에게 일찌기 없던 분노를 일으키게 했다.
웃는 얼굴 밑에, 자신이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려왔는지,
저 형은 일생 모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단 한 번도 예외없이 전부 사랑받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방약무인하게 행동하고, 그것조차도 매력이라서
간단하게 인망을 획득해온 저 형만은...!
참는 일, 단념하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에게 이용당해서
희생되는 일을 강요받아온 자신의 기분 따위, 저 사람만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쌓인 곳이 있다고는 해도, 그때까지 자신은 아야코와
하나미치를 위해 아버지 루카와가 아닌 형 미쯔이를 두둔할
생각이었다.
처음으로 진심으로 사랑한 하나미치를, 피를 토하며 단념할
결심을 한 번은 했었다.
그러나-
노크 소리가 들리며 시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센도 전하. 왕비님이 부르십니다."
-...큭 -
남편 루카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난 일로, 한층 제정신이
아닌 새어머니 피오네. 그녀를 생각해내는 것만으로도 위가 찌릿찌릿
아파왔다.
"전하?"
- 이제 지겨워 -
센도는 모든 사태에 대한, 참을성의 한계에 도달해 있었던 것이다.

=================================================================

미쯔이가 쓸데없이 '니가 부럽다'라는 말을 안했다면
어쩌면 센도도 계속 미쯔하나의 조력자가 되주지 않았을까요...
요헤이처럼 멋진...(여기 요헤이 너무 멋있어..._)
그랬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센도에게 이를 갈지도 않았을 텐데...;;
바로크... 다음에는 제발 센도 좀 멋있게 써줘 T_T
다음 챕터는 제일제일 번역하기 싫은 부분...-_-;
그러나 여기만 잘 넘기면 그 뒤는 어느 정도는 수월합니다.
힘내자... 흐으윽...T_T


PRE번 호 : 1878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26일 09:57
등록자 : HALKO 조 회 : 244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2권 #3
/PRE

3.

루카와에게 감금된지 한 달 이상이 지났다.
침대 위에서 뒹굴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청히 있는 하나미치는
갑자기 새 울음소리가 들려온 느낌이 들어서 얼굴을 그쪽으로
돌렸다.
"...아."
남쪽의 창턱에 있는 노란색의 작은 새.
모든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공간에 처음으로 찾아온 작은 변화였다.
하나미치의 시선 반경 내로, 새는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오르더니
방안으로 들어왔다.
빙글빙글 천장 주위를 도는 모습에, 하나미치의 표정이 오랜만에
부드러워졌다.
"...루카와 이외의 살아 있는 것을 본 것도 오랜만이네."
미쯔이와 억지로 헤어진 축하회의 날부터, 하나미치는 시녀의
얼굴조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수련에서 제일 높은 장소인 이 사각형의 방은, 커다란 창이 사방
전부에 있지만, 너무 높은 위치에 방이 있기 때문에, 새조차도
찾아온 적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이다.
수도 수련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금염궁에서도 최상층에 있는
이 방은, 본래 파수대의 역할을 담당하는 장소였다.
루카와는 사람이 살기 위한 방이 아니었던 이곳을, 무슨 생각을
했는지 갑자기 개조해서, 하나미치를 가둔 것이다. 그 때문에 벽은
도배도 되어 있지 않은 회색의 석조 그대로고, 천정도 대들보가
벗겨져 있었다.
가구라고 해봐야, 커다란 침대가 한 개에, 작은 테이블
이 한 개뿐.
그 이외에는 배설과 목욕을 위한 한 구석이 간신히 마련되어 있을
뿐이었다.
방 넓이도 당연히 좁고, 침대가 방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어른 셋이 여유롭게 잠들 수 있는 커다란 침대지만.
금염궁의 규모를 생각하면 국왕이 하루의 태반을 보내고 있는
장소로서는 너무도 좁고 검소했다.
유일한 출입구는 방 중앙의 바닥 밑. 보통은 그곳도 열쇠가 밖에서
걸리게 되어 있고, 바깥에 보초도 세워서, 루카와의 명령이 아니면
문은 열지 않는다.
사방에 커다란 창이 있어도 최상층 위에 다시 만들어진 파수대의
방이다. 창밖은 발판 하나 없는, 높게 깎아지른 절벽 같았다.
창에서의 출입도 절대 불가능. 큰맘 먹고 창으로 나가면 그 자리에서
절명이다.
이런 상황의 방에 갇힌 데다가, 왼발목에는 족쇄가- 그것도 쇠공이
매달려 있는 족쇄가 걸려 있는 것이다. 역시 하나미치도, 탈주는
절망적이었다.
그런 장소에, 식사와 갈아입을 옷을 가져다주는 것도, 목욕시키는
것도 전부 루카와.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외부 세계에서 격리되어, 완전히 우울한
상태에 있었던 하나미치에게 있어서, 새 한 마리라도 얼마나
마음의 위로가 되어주는가.
루카와가 없을 때는 그저 멍하니 바깥 경치를 보는 정도밖에,
하는 일이 없었던 하나미치다. 사소한 이런 변화라도 신기하다는
듯이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당연했다.
- 귀여워라 -
하나미치는 작은 새를 바라보며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 내게도 저런 날개가 있다면 밋찌에게 날아서 돌아갈 수 있을 텐데 -
선망의 시선으로 작은 새를 바라보고 있던 하나미치는 루카와가
방으로 돌아온 일을 눈치채지 못했다.
"-멍청이."
"...어."
등 뒤에서 말을 거는 목소리에 뒤돌아보자, 점심식사가 놓인 쟁반을
든 루카와가 바닥 밑의 출입구에서 나타난 것이다.
루카와는 흘끗 하나미치를 보고, 그리고 방안을 날아다니는 작은
새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루카와?"
루카와는 말없이 계단 대신인 사다리를 완전히 끌어올린 뒤, 방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았다.
보초병의 손에 의해, 이미 듣기에 익숙한 찰칵 하고 열쇠를 거는
소리가 바닥 밑에서 울렸다.
루카와는 하나밖에 없는 테이블에 식사를 놔두고 침대 시트를 손에
든 뒤, 위쪽으로 집어던졌다.
하얀 시트는 사뿐히 공중에서 춤추며, 작은 새를 잡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응?"
갑자기 뭘 시작하려는 건지 의심스럽게 생각하는 하나미치의
눈앞에서, 루카와는 천 위에 갇혀서 삐삐 울고 있는 작은 새를,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짓밟았다.
"헉!"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숨을 들이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잔혹한 광경은 계속되었다.
루카와는 즉사한 작은 새를, 계속 공들여 밟아뭉갰다.
천천히, 온몸의 체중을 실어서.
한참 뒤 겨우 치워진 발밑의 천은, 작은 새의 혈액으로 흠뻑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너...너, 무슨 짓을..."
루카와는 하나미치의 말을 무시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으로
두 개의 의자 중 하나에 앉았다.
"...밥이다. 이쪽으로 와. 네가 좋아하는 걸 많이 준비했어."
"어째서 죽인 거야! 불쌍하잖아!"
"밥이라고 말했다."
"썩어빠진 것도 정도가 있지!"
"밥..."
"시끄러워! 너 같은 악당이 가져오는 밥 따위 먹고 싶지 않아!"
와장창!
"!?"
루카와는 식사를 식기채로 전부 내던졌다.
"먹기 싫으면 먹지 않아도 상관없어. 아사해서 죽으면 박제로
만들어서 침실에 장식해 주마. 죽으면 그 건방진 입에서 다른
남자의 이름을 들을 일도 없겠지. 너는 죽는 순간 영원히 내 것이
될 뿐이야."
"루카와!"
루카와에게 머리칼을 잡혀서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리고
용서없이, 카펫이 깔려 있다고는 해도 돌로 만든 바닥에
뒷통수를 부딪혔다.
"욱."
머리를 맞은 충격으로 현기증이 일어서 의식이 멀어져갔다.
게다가 루카와는 목을 졸라서 하나미치를 고통스럽게 했다.
결코 죽이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하나미치가 한계에 달하기 직전에 살짝 팔힘을 풀고, 다시
조르기 시작했다.
고통을 느끼게 하려는 것만이 목적인, 최저의 폭력.
그것을 몇 번 반복한 후, 하나미치의 멱살을 쥔 루카와는
상반신을 끌어올려 얼굴을 가까이 했다.
"-웃었지."
"...우...우......"
"저런 더러운 새 따위에게까지 웃어줬겠다."
- 설마 이녀석 겨우 그것만으로...!? -
"아윽!"
다시 바닥으로 쓰러트려졌다.
"너의 눈은 나를 보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그 네가 나 이외의
것을 본다면, 너의 눈은 필요없어. 아무것도 보지 못하도록 그
호박색의 안구를 손가락으로 찔러서 짜부라트리고 도려내 줄까...?"
하나미치는 괴롭게 숨쉬면서도, 족쇄가 걸려 있지 않은 쪽인
오른발을 날렸다.
"...윽."
운좋게 루카와의 하복부에 맞았다.
미친 듯이 발버둥쳐서 겨우 루카와의 밑에서 도망친 하나미치는
거친 숨을 간신히 고르며 노려보았다.
"이... 미치광이...!"
"...미치광이? 나를 이런 식으로 만든 건 네가 아닌가."
"?"
"나는 너의 몇 번째 남자지? 너의 몸 위를 지금까지 몇 명의
남자들이 지나간 거지? 전원의 이름
을 말해. 저 새처럼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죽여버릴 테니까."
"무... 헛소리 하지 마!"
새빨개져서 분노로 떠는 하나미치에게, 루카와는 코웃음을 쳤다.
"모르는 건가. 그렇겠지. 너무 많아서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테니."
목구멍으로 웃으며, 하나미치의 얼굴을 커다란 손으로 살며시
감싸쥐었다.
"'경국'이라고 하면 유곽에서 제일 돈을 벌어들이는 간판 남창의
이름이다. 그 명칭을 받기까지 상당수의 남자를 거친 게 틀림없어.
게다가 너는 몸 하나로 노는 데 익숙한 그 히사시를 낚아서, 남자의
몸으로 왕자의 측실에까지 오르는 데 성공한, 백전연마의 솜씨를 지닌
소유자다. 웬만한 남자 상대로 지금의 위치는 존재하지 않았겠지.
너같이 얼굴과 침대 기술 정도밖에 쓸모없는 멍청이라면, 그런 수많은
과거의 남자의 이름은 커녕 얼굴조차도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겠군.
물어본 내가 잘못이었지."
가차없는 모욕에 화가 나서,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고함을 지르려는 것을 겨우 참고 하나미치는 나직하게 쥐어짜듯이
말했다.
"...나는 그런 게 아냐."
유곽에서의 손님은 미쯔이 한 사람이었다.
싫다는 어린애를 안는 취미는 없다고 말하면서 웃은 미쯔이. 그는
그 말대로 키스 이상의 일은... 하나미치가 싫어할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
미쯔이에게 안기는 자신은,
모든 것을 루카와에 의해 경험당한
지금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 정도로 그는 신성했다.
하나미치에게 있어서 미쯔이는 결코 더럽혀서는 안될 신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만이 아니라 미쯔이도 모욕하는 루카와의 발언에,
하나미치는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다.
"...너같은 변태가 달리 있을 리가 없잖아."
"무슨 의미냐."
"나같이 빨간 머리에 커다란 남자. 정상적인 놈은 안으려는 생각도
안 든단 말야! 네가 뭘 착각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게 손을
댄 변태는 너 하나다!"
"...너는 내가 첫남자라고 말하는 건가."
"아아. 그래!"
한순간의 침묵 후, 루카와는 갑자기 폭발하듯이 웃어젖혔다.
처음 만났을 당초, 하나미치에게만 지어주었던 부드러운 미소는
아니다.
마치 미친 듯한 조소.
"루...루카와...?"
"너 무서운 놈이군. 청순한 척 하는 것도 창부의 기술인가? 그런
더러운 몸을 하고 처녀라니 잘도 진지하게 거짓말을 하는군."
"거짓말이 아냐!"
"더러움을 모르는 순진무구한 얼굴이지만, 결국 속은 만만찮은 창부.
태연히 남자를 기쁘게 하기 위한 거짓말을 하다니, 과연 남자 상대의
상술로 정점을 차지한 남창이다."
"너... 웃..."
입술을 입술로 막혔다
.
곧장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옷 벗어."
"...!"
"나는 너를 놀려둘 생각은 없다. 멍청이인 너는 이것밖에 특기가
없으니까 자기 생활비는 자기 몸으로 벌어야겠지."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 번 웃었다.
일찌기 루카와는 거의 감정을 보이지 않는, 웃는 얼굴은 누구에게도
보인 적이 없는, 그런 인물이었다.
빈번하게 웃게 된 루카와.
그러나 결코 이전보다도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처음 안긴 날부터 1개월이 지나자, 다소 익숙해져서 신체의 부담
자체는 경감되었다.
하지만 남자가 남자에게 강제로 덮쳐진다는, 정신적인 굴욕과
혐오감만은 지워질 것 같지 않았다.
하나미치가 필사적으로 저항했기 때문에, 주위는 지독한 참사
상태였다. 배게는 망가져서 깃털이 공중에서 흩날리고, 커텐은
찢겨지고, 테이블은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루카와가 던져버린 식사 위에서 뒹굴어서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데다가, 긁힌 상처투성이가 된 하나미치는 억지로 밑에 깔리게 되었다.
루카와는 표정조차 변하지 않고 냉혹하고 담담하게 작업을 계속했다.
하나미치는 여기에 감금되고 나서, 벗기기 쉽도록 한 장의 잠옷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불안한 의복조차도 전부 벗겨져, 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더할나위없이 완벽한 나체가 남김없이
드러났다.
"우... 크윽... 아..."
끝없는 눈물과 답답함과 구토감.
집요한 애무에 이성이 느슨해지고, 저항할 힘이 약해져간다.
- 이제... 틀렸어... -
의식이 혼탁해지고, 완전히 단념의 경지에 도달할 때, 루카와가
갑자기 몸을 뗐다.
"...아...?"
"멍청이. 이게 뭔지 알겠나."
가슴팍에서 하얀 편지봉투를 꺼내서 하나미치에게 보였다.
"루...?"
"이건 히사시가 너에게 건
네달라고 아키라를 경유해서 보낸 편지다."
미쯔이가 부탁한 편지를, 센도가 루카와에게 맡긴 것이다. 확실히
루카와는 하나미치에게 편지를 전달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었지만,
그것은 너무나 무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미쯔이라고 듣자, 공허했던 하나미치의 눈이 순식간에 반짝였다.
"...밋찌에게서...!?"
퍽 하고, 지체없이 뺨을 얻어맞았다.
"그 이름은 입에 올리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나."
"...큭."
"히사시는 너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하고 있는 것 같군. 감동적인
문장이 나열되어 있다."
루카와가 먼저 읽었던 것이다. 건네진 편지는 이미 뜯겨진 채였다.
- 아... -
봉투에서 미쯔이가 자기 전용으로 특별제작한 달콤한 향수 내음이
은은하게 풍겼다.
- 밋찌 -
그리운 나머지 눈물이 나왔다.
단지 1개월을 만나지 않은 것뿐인데, 그때부터 모든 것이 변해버린
것이다.
이제 그 무렵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걸까...?
하나미치는 눈가의 눈물을 손끝으로 닦고, 작게 고개를 저었다.
- 괜찮아. 약해져선 안돼. 분명 곧장 밋찌에게 돌아갈 수 있어.
루카와라도 계속 나를 옆에 둘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건 아냐.
슬슬 색다른 장난감 같은 것에 질릴 때니까 -
그리고 돌아가는 것이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그 장소
로.
- 내 말, 좀 커졌을까? 봄이 되서 천재타로가 멋지게 성장하면,
밋찌와 센도와 요헤이와 멀리 놀러가는 거야. 일찍 일어나서 도시락을
많이 만들고, 너무 좋아하는 모두와 함께 놀러가는 거야. 봄이 되면 -
미쯔이의 향기가 나는 이 편지가 봄의 전조처럼 느껴졌다.
괴로운 일의 연속이었던 하나미치는,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
"...응?"
봉투에서 속을 꺼내려고 하다가 얼굴이 흐려졌다.
"아무 것도 들어 있지 않잖아. 너 진짜 편지는 어쨌어?"
"여기다."
가슴에서 제 1왕자의 문장이 들어간 하얀 편지지를 꺼냈다. 그것을
잡으려고 손을 뻗은 하나미치의 손을 쳐내고, 루카와는 일어섰다.
"루카와...?"
찍...!
괴이쩍은 표정을 지은 하나미치의 눈앞에서, 루카와는 천천히 그것을
찢었다.
"!"
너무 놀라서 갑자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루카와는 경직한 하나미치를 무시하고, 한층 더 잘게 편지를 찢고,
창밖으로 하얀 종이눈을 뿌렸다.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전부 버린 뒤, 하나미치를 돌아보며 냉담하게
말했다.
"내가 그녀석의 편지를 너에게 보여줄 리가 있냐, 멍청이."
"......"
크게 뜬 하나미치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떨어졌다.
우는 소리는 전혀 없다.
단지 루카와의 잔인무도
함에 충격을 너무 받아서, 소리도 내지 않고
표정도 변하지 않고, 투명한 눈물만이 가득 볼을 적셨다.
미쯔이의 편지가 버려진 것은 루카와에게 강제당하는 이상으로,
하나미치를 상처입혔다.
루카와는 작게 혀를 차고, 누운 채로 움직이지 않는 하나미치에게
다시 손을 뻗었다.
입을 맞추고 몸에 손을 대도, 하나미치의 반응은 전혀 없었다.
루카와의 얼굴이 불쾌하게 일그러져갔다.
"네 쪽에서 가끔은 서비스해봐. 그렇게 하면 방금 전 편지 한 줄
정도는 가르쳐줘도 괜찮지."
그 말에 처음 하나미치는 반응했다. 매달리는 듯한 시선으로 루카와를
올려다보았다.
"...정말이야...?"
"멍청이!"
물론 진심으로 말한 건 아니었다.
거부할 거라고 생각했던 말에, 이런 반응을 보여서, 루카와는 냉정해져
있을 수가 없었다.
"가르쳐주지 않아! 가르쳐줄 리가 없잖아! 히사시의 편지 내용 같은 거,
너에게 절대 가르쳐주지 않아!"
격앙해서 하나미치에게 덤벼들었다.
"헉...!? 그만... 그것만은, 싫어..."
루카와는 하나미치가 울면서 무서워해도 용서하지 않았다. 딱딱하게
굳은 흉기를 가장 깊숙한 부위로 쑤셔넣었다.
"--------!"
하나미치는 크게 입을 벌리고 나오지도 않는 비명을 질렀다.
"아... 아아... 아..."
이런 식으로 해서, 낫기 직전에 다시 상처를 넓히는 짓을 몇 번이나
반복했고, 하나미치는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최근 루카와가 조금 요령을 알게 되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몸이
익숙해진 건지, 조금은 쉬워졌는데도, 다시 찢겨지는 듯한 감촉이
느껴졌다.
미끈거리는 따뜻한 피바다 속을, 종횡무진하며 누비는 루카와.
삽입될 때마다 쉰 비명이 터져나왔다.
격렬한 통증으로 우는 하나미치와 마찬가지로- 그 이상으로 괴로운
얼굴을, 루카와가 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나미치는 눈치채지 못했다.
"...좋아해."
"...아파... 아파... 아파..."
"...좋아해... 멍청이."
"싫어... 이제... 싫..."
"히사시에게도, 누구에게도 널 넘겨주지 않을 거야."
"흐윽..."
루카와는 언제나 하나미치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좋아한다고 하는 사람에게 심한 짓만 하는 루카와를,
하나미치는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잠들었다기보다는 기절해 있는 하나미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루카와의 마음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격하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차남에게서 건네받은 장남의 편지에는, 데리러 온다고... 꼭
구해줄 거라고 그렇게 쓰여 있었다.
자신에 대한 하나미치의 애정을 한치도 의심치 않는 내용에,
현기증이 날 정도의 분노가 가슴을 새까맣게 물들여갔다.
"그 빌어먹을 자식은 아직 멍청이의 소유권이 내게 넘어간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건가."
분한 듯이 혀를 찼다.
- 구해낸다고...? 내게서 멍청이를?
내게서 멍청이를 데리고 가겠다는... 그런 말인가?
그렇다고 한다면 용서할 수 없다.
절대 용납 못한다.
하나미치는 자신의 것인데, 아직껏 하나미치의 마음을 계속 사로잡고
있는 증오해도 시원치 않은 최저의 아들.
누구보다도 무엇보다도 그녀석이 밉다.
혼백 한조각까지 불태워 버리고 장사지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전략에 있어서 루카와의 유래없는 두뇌는 천천히 하나의 계획을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이번의 표적은 친아들 제 1왕자 미쯔이 히사시였다.

==============================================================

...........................(부들부들)
하아하아... 우우우... 꼬르르륵...........
진정하자... 진정하자... 진정해야 해...
이보다 더한 루카와도 분명 어딘가에 존재할 거야...
내가 아무리 강공 루카와 취향이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T_T
과연 작가마저도 인정한 비열악역 루카와...;;
(하아아... 1권 초반과의 갭이 너무 심하다)
(이런 놈을 할리퀸 소설에 등장시켰다간
그 소설 당장 독자들한테 판금당하고 말지;;)
결정적으로 루카와를 싫다고 생각했던 챕터입니다만...
그래도 저는 여기 루카와가 여기 센도보다는 낫습니다.
(사실 거기서 거기지...-_-; 난 둘 다 싫어 T_T
이런 비참한 비교를 해야 하는 내 자신이 불쌍해...T_T)
어쨌든 제가 아는 한은, 이제부터 여기만큼 하나미치를 갈구는
루카와는 없습니다.(물론 계속 끊임없이 갈구죠. 그나마 이번
챕터보다는 순화되었다는 소리입니다 -_-;;)
그러니 조금은 안심하시길.(정말 그럴까;)
아, 그리고 보니 '오와라나이 러브송'이 생각나는군요.
저는 그걸 1권인가 2권인가까지밖에 못봤지만 그것도 정말
만만치 않았다고 기억합니다 -_-;;
그때는 야오이에 대해서 상당히 거부감을 가졌던지라
정말 끔찍하다고 생각했었는데...(지금 : 삭제하지 말걸 T_T)
혹시나 오와라나이 러브송 파일 가지고 계신 분
메일링 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너무 오래전에 봐서 내용을 거의 까먹었어요 /.\
이번에는 끝까지 보고 싶어...)


PRE번 호 : 1879 / 2053 등록일 : 2000년 11월 26일 10:04
등록자 : HALKO 조 회 : 278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2권 #4
/PRE

4.

미쯔이를 포함한 세 왕자가, 국왕으로부터의 호출을 받은 것은
하나미치가 끌려가고 1개월 반이나 경과한 후였다.
오늘에야말로 하나미치를 되찾으려고 의기분투하여 금염궁으로
나온 미쯔이는, 예측도 못한 얘기를 아버지에게서 듣고 말았다.
"내가 카이난에 부마로...?"
"그렇다."
"잠깐... 잠깐 기다려. 하지만 카이난은 건국 시절부터 적대국이
아닌가!"
미쯔이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옆으로 긴 대륙의 동부를 고래부터 통치하고 있는 카이난 제국.
서쪽 일대에 하나의 세력으로서 영화를 누리고 있는 료난 왕국.
그리고 루카와 대에, 소국의 집결지였던 중부를 하나로 통합해서
거대왕국을 건설한 쇼호쿠.
대륙의 세력도는 현재 그 세 개로 나뉘어져 있었고, 쇼호쿠는
카이난과 800년도 넘는 옛날부터 적대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소국이지만 광산을 수많이 보유하고 있는 부유한 국가였던
쇼호쿠는 옛날부터 몇 번이나 인접국인 카이난에게 침략을 계속
받아왔다.
다만 국력에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카이난(海南)은 그 이름
그대로 해양국가. 카이난의 해군이 아무리 세계 제일이라고 해도
산악지대가 국가의 9할을 차지하는 쇼호쿠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쇼호쿠의 수도 '수련'이, 공격이 어려운
산 위에 있다는 사실도 있어서, 지금까지 어떻게든 카이난에
공격당해서 함락당하지 않고 독립을 지켜온 것이다.
그리고 현 국왕 루카와 카에데가 즉위하고, 쇼호쿠의 발군의
경제력을 되살려서 서쪽 대국인 료난과 혼인관계를 맺게 되자
대륙의 정세는 크게 변화했다.
료난의 힘도 빌려서 수년만에 대국이 된 쇼호쿠의, 최대의
유일한 적은 옛날부터 인연이 있는 카이난 단 하나.
카이난과 쇼호쿠의 골은 그 정도로 깊었다.
10세에 최고학위를 따고, 천재라는 명성을 원하는 대로 떨쳐온
미쯔이는 그 정도의 사정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평화입니까? 목적은."
처음부터 말이 없던 센도가 오늘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거기에
루카와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미쯔이는 책상을 뒤엎고 일어섰다.
"거짓말! 당신은 나를 사쿠라기에게서 멀리하려는 거야-"
거기까지 말하고, 미쯔이는 움찔 표정이 굳어졌다.
루카와가 무서울 정도로 차디찬 시선으로 이쪽을 본 것이다.
"...말을 꺼내온 건 카이난 쪽이다."
"아...?"
세 사람의 왕자는 모두 놀란 표정으로- 미쯔이만이 즉시 퍼뜩
놀라서, 괴로운 듯이 입을 다물었다.
미쯔이는 아연실색한 표정 그대로 한 번 일어섰던 의자에 다시
주저앉았다.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두 명의 아들을 위해, 루카와는 귀찮다는
듯이 설명을 시작했다.
"...너희들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쇼호쿠가 힘을
갖게 된 건 최근이다. 내가 료난의 왕매를 비로 맞이했을 무렵은,
카이난도 지금만큼 쇼호쿠에게 경계를 느끼진 않았지. 하지만
요 10년 동안 대륙의 정세는 크게 변했다. 내 다음으로 쇼호쿠를
잇는 것은 료난 국왕의 친조카. 쇼호쿠의 제 1왕위계승권을 가진
것만이 아니라 료난 왕위계승권 제 5위의 자리까지 가지고 있는
아키라다."
"...과연. 쇼호쿠와 료난이 손을 잡고 카이난으로 공격해 들어올
것을 염려해서, 카이난도 쇼호쿠와 인척관계를 맺으려는 거군요."
말을 이은 센도에게, 루카와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려요. 아직 이해할 수 없어요."
"요헤이?"
"카이난이 쇼호쿠의 왕자를 부마로 원하는 이유는 알겠어요.
하지만 그걸 어째서 순순히 승낙한 거죠? 쇼호쿠에 득되는 일이
아니잖습니까."
찌릿 루카와는 막내아들을 노려보았다.
"네 머리는 장식이냐.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않은 너를, 무엇
때문에 외국으로 유학시켜서까지 공부를 시킨 거라고 생각하냐."
내뱉듯이 말하며, 바보에게 할 말은 없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어쩔 수 없이 센도가 요헤이에게 설명했다.
"득이라면 있지. 사돈될 상대는 마키 황제의 외동딸이야. 황제는
6년 전에 열병에 걸려서 이 이상 아이를 바랄 수 없는 것 같고,
부마로 들어가면 형이 카이난의 차기황제야. 쇼호쿠의 왕자가
전쟁도 하지 않고 카이난을 손에 넣는 거라구.
쇼호쿠에 있어서도
이 이상 없을 멋진 얘기지."
"...카이난의 기누카 히메는 아직 열 살이잖아."
"황족의 히메라면 훌륭한 적령기야. 3년만 지나면 임신할 수 있어."
"너는 미쯔이 형을 쫓아내려는 거냐!"
"설마. 나는 객관적인 일반론을 말할 뿐이야."
센도와 요헤이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미쯔이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시 의자에서 일어섰다.
"...얘기는 잘 알아들었다. 어차피 나도 쇼호쿠가 지겹던 참이었지.
그 혼담 받아들이겠다."
"미쯔이 형!?"
"단!"
미쯔이는 루카와에게 고개를 돌려 단호히 말했다.
"카이난에는 사쿠라기도 데려간다."
"!"
방안의 공기가 한순간 얼어붙었다.
"사쿠라기 하나미치를 내게 돌려줘."
"......"
가늘어진 루카와의 칠흑같은 두 눈에, 분노의 불꽃이 당겨져 한순간에
불타올랐다.
보통 사람이라면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의 안광을, 미쯔이는 정면으로
받아냈다.
말없이 서로 노려보는 부자간에 센도가 끼어들었다.
"형은 부마야. 측실을 데려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럼 이 혼담은 없는 거다."
내뱉듯이 발길을 돌린 미쯔이의 뒤에서, 루카와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출발은 10일 후다. 너에게 거부할 권한은 없
다."
"...!"
뒤돌아보며 루카와를 노려본 미쯔이를, 루카와는 그 이상으로 격렬하게
노려보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루카와는 미쯔이 쪽으로 걸어갔다.
"...?"
퍽!
갑자기 뺨을 맞은 미쯔이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윽."
"히사시. 너는 최저최악의 아들이다. 마지막 정도는 내게 도움이 되라."
미쯔이의 얼굴에 퇫 침을 뱉고 그대로 출입구로 향했다.
자존심 귀신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미쯔이는, 너무도 분노한 나머지
말도 나오지 않았다.
미쯔이가 아닌 요헤이가 안색이 변해서 외쳤다.
"당신은 아들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요!"
"-아들?"
차가운 시선으로 요헤이를 돌아본 루카와는, 마음속 깊이 깔보는
듯한 어조로 딱 잘라 말했다.
"당연히 도구다."

원래부터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부자관계가 결정적으로 파탄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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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 것 같군요...


PRE번 호 : 1885 / 2053 등록일 : 2000년 12월 02일 08:23
등록자 : HALKO 조 회 : 252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2권 #5
/PRE

5.

쇼호쿠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제 1왕자가 카이난에 부마로
보내진다는 정보는 순식간에 나라 안에 퍼졌다.
보통 때라면 몇 년도 전부터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
큰일이다. 그것을 혼담이 결정된 직후에, 국내에서의 연회도 전부
생략하고, 왕자를 카이난으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장래에는 쇼호쿠의 재상으로서 왕위에 오를 센도를 정치면에서
보좌할 존재가 될 것이라고, 미쯔이는 그렇게 인식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갑작스런 혼담에, 국민들은 처음에는 놀람과 의심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미쯔이가 카이난의 차기 황제로서 간다는 것을
안 순간 열광적인 환호로 변했다.
이걸로 카이난과의 평화가 반영구적으로 성립된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유일한 적대국이 가족이 되어서, 쇼호쿠의 미래는 안전했다.
루카와의 현명한 결단에 국민들은 정말로 기뻐하고 있었다.
아들의 측실을 빼앗은 일로, 루카와는 일시적으로 인기가 떨어졌다.
하지만 이 일로, 혼담에 방해밖에 되지 않는 남창 출신의 측실을,
국왕이 스스로 악역을 떠맡아서, 나라를 위해 왕자에게서 떼놓았다고,
사람들은 오해한 것이다.
루카와는 미쯔이를 카이난에 부마로 보내는 일로, 실추했던 신용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국가가 세기의 혼례로 들끓는 중,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은 하나미치뿐인
것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루카와는 아침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하나미치는
늘 하던대로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창가에 의자를 놔두고 거기에 앉아, 창턱에 팔꿈치를 얹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뭔가 축하행사가 있는 듯이, 오늘은 금염궁은 물론, 수련의 거리에
빨간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그때, 뒤에서 덜컹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루카와일 거라고 생각해서 뒤돌아보지 않은 하나미치는,
그 뒤에 어느 목소리를 듣고,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사쿠라기."
"!"
이 목소리는... 이 목소리는-!
"...서...설마. 분명 또 환청이야."
지금까지 몇 번이나 환청을 듣고, 환상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절망했고 기대한 것만큼 상처입었다.
"너무나 만나고 싶다고 언제나 생각하고 있어서, 분명 또 환청을
들은 거야..."
"바보. 뭐가 환청이냐."
"!!"
"환청 따위로 나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재현할 수 있을 것 같냐?"
설마.
설마 정말로!?
"...밋찌?"
"데리러 왔다."
"!"
머뭇머뭇 돌아본 하나미치는, 거기에서 미쯔이의 모습을 확인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 데리러 와주었어!
정말로, 정말로 구해주러 온 거야!
"사쿠라기."
울고 웃는 얼굴로, 하나미치는 미쯔이의 가슴 속으로 달려가 안겼다.
"밋찌!"
기세가 대단하다 못해서, 두 사람은 그대로 바닥에 굴렀다.
"...윽."
"밋찌다! 나의 밋찌야!"
눈물을 흘리며, 미쯔이의 가슴에 머리를 부비부비하면서, 하나미치는
금지되어 있었던 소중한 이름을, 크게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리운, 너무나 달콤한 그의 향기.
겨우 보호자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는 안도감이 전신을 가득
메웠다.
"...미안. 늦어졌지."
그 말에 하나미치는 고개를 재빨리 저었다.
이렇게 해서 와준 것만으로도 좋아.
악몽은 드디어 끝난 거야.
"밋찌."
"아아."
"밋찌."
"사쿠라기."
"밋찌."
반복해서 자신을 계속 부르는 귀여운 측실에게, 미쯔이는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사쿠라기. 나와 함께 카이난으로 가자."
"에..."
"지금은 천천히 설명할 시간이 없어. 너 조국을 버리더라도 나를
따라올 수 있어?"
"응."
한순간의 주저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곽을 나와 미쯔이의 측실이
되기로 승낙했을 때, 그의 옆에서
일생을 다할 거라고 결심하고 있었다.
"좋아. 그럼 빨리 여기서 탈출하자. 언제 아버님이 돌아올지 몰라."
역시 루카와를 통해서 하나미치를 데리러 온 건 아닌 것 같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아무리 생각해도, 몰래 잠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장소다. 단 하나의
출입구 바깥에는 늘 여러 명의 보초가 있었다.
미쯔이는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서, 장난스럽게 윙크했다.
"나는 전국민의 맹목적인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는 아이돌, 미쯔이
히사시 왕자다. 내 키스 하나에 목숨을 던져줄 놈들은 금염궁에도 많아."
"호오."
미쯔이에게 맹목적 신뢰를 퍼붓는 인간 중 한 명인 하나미치는 쉽게
납득했다. 만약 부탁받은 것이 자신이라도, 미쯔이를 위해서라면
주저없이 목숨을 버릴 자신이 있었다.
- 똑같이 미인이라도, 밋찌는 루카와와 달리 성격도 좋으니까! 루카와
따위보다 훨씬 많이 아군이 있는 게 당연해! -
...정말로 맹목적인 하나미치였다.
"아-아, 너 족쇄까지 차고 있는 거냐. 저 바보 아버지. 독점욕을
넘어서서 변태로 입문한 건가."
몸을 굽힌 미쯔이는, 쇠공이 달린 족쇄에 얼굴을 찌푸렸다.
"이러면 쇠사슬보다 먼 거리는 걸어가지 못하겠어..."
"응? 괜찮아. 이런 거."
"봐."
가볍게, 커다란 쇠공을 들어올린 하나미치에게, 미쯔
이는 한순간
말이 없어졌다.
"밋찌?"
"...너의 괴력에 오늘은 감사한다."
"우?"
그때, 밑에서 갑자기 소동이 일었다.
"!"
미쯔이와 하나미치의 얼굴이 확 긴장했다.
바닥 밑의 사각형 출입구의 문이 홱 열리더니, 체격 좋은 중년의
남자가 안색이 변해서 뛰쳐올라왔다.
"왕자님, 도망치십시오! 왕이...우왓!"
"...!"
다음 순간 남자는 등에 칼을 맞고 바닥에 쓰러졌다.
눈을 크게 뜨며 경직되어 있는 하나미치를, 미쯔이가 감싸듯이
가로막았다.
쓰러진 남자의 뒤에서 나타난 것은 호리호리한 미의 화신.
피갑칠을 한 검을 들고, 핏발선 눈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는
루카와 카에데였다.
"...히사시. 너 잘도!"
"...아버님."
루카와의 검이 한 번 번득였다.
"!"
눈깜짝할 사이 뒤쪽으로 스텝을 밟으며, 간발의 차로 미쯔이는
검을 피했다.
팔랑팔랑 바닥으로 떨어지는 흑발.
설마 아무리 그래도 아들인 미쯔이를 죽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하나미치는 아연해했고- 다음 순간 비명을 질렀다.
"밋찌!"
황급히 그를 감싸려고 미쯔이의 앞으로 나섰지만, 미쯔이 본인에
의해서 등 뒤로 밀려났다.
"위험하니까 물러나 있어!"
"하지만... 흐악!"
다시 루카와의 검이 내리쳐져서 미쯔이에게 날아왔다.
- 밋찌가 죽어! -
그렇게 생각한 순간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
태클하는 듯한 폼으로, 미쯔이에게 안겼다. 하얀 칼은 하나미치의
얼굴 바로 앞을 스치고 멈췄다.
루카와는 분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비켜라, 멍청이."
"싫어! 절대 못 비켜!"
"너는 또 아픈 꼴을 당하고 싶은 건가!"
"...욱."
아름다운 가면을 연상케 하는, 지나칠 정도로 단정한, 루카와의
미모는, 전신에 닭살이 돋을 정도의 공포를 하나미치에게 안겨주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자신의 목숨과 맞바꿔서라도 미쯔이는 지켜야 할 존재다.
하나미치는 한층 더 미쯔이를 꼭 끌어안았다.
"...떨어져."
"싫어."
"그녀석에게서 떨어져!"
"우왓!"
갑자기 믿을 수 없는 힘으로, 루카와는 하나미치의 머리털을
잡아당겨서 미쯔이에게서 떼어놓았다.
"...아윽..."
머리를 감싸쥐며 작게 신음했다.
"너, 루카와!"
고개를 든 하나미치는 다음 순간 움찔 표정이 굳었다.
미쯔이를 보는 루카와의 시선에, 일찌기 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강한, 명확한 살의를 느낀 것이
다.
"...히사시. 너는 절대로 용서 못한다."
"그건 내가 할 대사다."
천천히 일어선 미쯔이는, 루카와보다 조금 낮은 위치에서 그를
노려보았다.
휴대하고 있던 가느다란 단검을, 미쯔이도 뽑았다.
"밋찌!?"
"-사쿠라기. 내가 시간을 버는 동안 가능한 한 멀리 달아나."
작게 귓속말을 하며, 루카와에게 그 단검을 겨누었다.
...그다지 기대하지는 않지만.
자조하듯 중얼거리며, 미쯔이는 강한 아버지에게 덤벼들었다

하나미치는 갑작스런 친자대결에 아연해 있었다.
- 달아나라고... -
고개를 끄덕이며 족쇄에 달린 쇠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식은땀이 흠뻑 이마에 고였다.
"...아무리 천재라도 역시 한계라고 하는 게..."
이 족쇄로는 걸을 수는 있어도 달리는 건 불가능하다.
2합, 3합 서로 칼을 마주치는 동안에도, 서서히 미쯔이 쪽이
눌리고 있었다.
검술에 있어서 유수의 검사인 미쯔이도, 장검과 단검이라는
불리한 상황인 데다가, 국내 제일의 실력을 센도와 다투는
루카와에게는 역시 적수가 되지 않았다. 기술면으로는 뒤지지
않지만 체력면에서는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다.
"사쿠라기! 머뭇머뭇거리지 마!"
지금까지도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 하나미치에게, 성마르게
미쯔이가 크게 외쳤다.
"하...하지만..."
"뭘 하는 거야! -우왓!"
하나미치에게 주의를 돌린 틈을 타서, 단검이 날아갔다.
"거기까지다."
...큭."
목에 칼이 닿자, 미쯔이는 혀를 차며 양손을 올렸다.
- 밋찌! -
"아직 멀었다, 히사시."
입가를 끌어올리며 루카와는 쿡쿡 웃었다.
잔인한, 등줄기가 얼어붙을 듯한 웃음.
검의 평평한 부분을 미쯔이의 턱 밑에 갖다대며, 얼굴을
보기 쉽도록 위로 치켜올렸다.
"흐...응. 네가 멍청이가 말하는 세계 제일의 미인이라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노려보는 미쯔이를, 그 이상의 격렬한
시선으로 노려보며, 루카와는 조소했다.
"도대체 너의 어디를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거냐. 멍청이를
봐라. 너의 천 배나 미인이 아닌가."
"무슨 말 하는 거야, 루카와! 너 정말로 눈이 썩은 거냐!"
꽥꽥 소리지르는 하나미치를 무시하고, 루카와는 자신의 장남을
다시금 응시했다.
"그러나, 아무리 조악한 얼굴이라도, 그것 때문에 멍청이가 홀린
것임에는 틀림없다."
"!?"
다음에 루카와가 취한 행동에, 순식간에 하나미치의 안색이
새파래지다 못해 흙빛으로 변했다.
"헉... 그만해, 루카와! 그만해 줘!"
검 끝으로, 미쯔이의 턱에서 목에 걸친, 상처 하나 없는 매끄러운
피부에 빨간 선을 그어갔다.
하얀 목에 진홍색 줄기가 만들어져서 흘러내린다... 몇 줄기나,
몇 줄기나.
"멍청이가 두 번 다시 홀리지 못하도록 누가 보더라도 눈을 돌릴
얼굴을 만들어 주마."
일찌기 떠오른 적이 없었던, 잔혹한 유쾌한 표정으로 루카와는
속삭이듯이 말했다.
검이 들이대진 미쯔이는 조금도 미동할 수 없었다.
"-이걸로 멍청이는 나의 것이다."
일단 검을 뗀 루카와는, 이번에는 미쯔이의 이마에서 볼에 걸쳐
깊고
커다란 상처를 그으려고 용서없이 팔을 들어올렸다.
"죽어버리겠다!"
갑자기 실내를 관통한, 엉뚱하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하나미치의
외침.
그 불온한 발언내용에, 역시 루카와도 동작을 멈추고 하나미치에게
고개를 돌렸다.
"멍청이!?"
정말로 보기 드문 루카와의 경악.
창턱에 기어올라 몸을 절반 이상 바깥으로 내밀고 있는 하나미치가,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루카와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이상 밋찌를 상처입히면 여기서 뛰어내려서 죽을 거야!"
"그만둬, 멍청이!"
"오지 마! 가까이 오면 뛰어내린다!"
"...큭."
"이런 곳에서 떨어지면 시체는 엉망진창이 되겠지! 박제해서
침실에 장식할 수도 없을 테니까! 내가 투신하는 게 싫다면
밋찌에게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해!"
하나미치에게 있어서 이것은 반신반의의 커다란 도박이었다.
그리고 도박의 결과는-
"알았다."
"...아?"
너무나 간단히 승락받아서, 멍하니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죽이지 않아. 그러니까 이쪽으로 와."
"정말이야!? 이제 밋찌의 머리털 하나 다치게 안한다고 맹세해!"
하나미치는 전혀 루카와를 신용하고 있지 않았다.
루카와는 크게 한숨을 쉬고, 분하다는 듯이 자기 자식을 노려보았다.
사랑에 미치고 질투에 애타는 루카
와에게는, 부친의 정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루카와에게 있어서 미쯔이는, 가장 사랑하는 하나미치에게
최대의 애정을 받고 있는, 기분 잡치는 최저최악의 존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미쯔이를 지금 죽이는 것은 쉽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그럴 때는 아니다.
루카와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고, 미쯔이에게 겨눈 칼을 내렸다.
"...죽이지 않아. 히사시는 아직 내게 있어서도 이용가치가 있으니."
"에..."
"오늘밤 이녀석은 카이난으로 떠난다. 카이난의 황녀와 결혼해서
부마가 되기 위해서야. 이제 여기에는 돌아오지 않아."
"!!"
말문이 막혀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하나미치에게는 처음 듣는 이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 밋찌가 카이난에 간다고 말했던 건 그런 사정이 있어서였나...? -
"-히사시. 카이난 놈들에게 미움받아서 살해당하지 않도록,
가능한 한 특기인 미인계로 열심히 살아라."
분한 듯이 서 있는 미쯔이에게 내뱉듯이 말하고, 루카와는 가만히
있게 된 하나미치 쪽으로 걸어갔다.
멍청해져 있는 하나미치는, 루카와가 팔을 잡아당겨도 저항하지
않았다. 걸터앉아 있던 창턱에서 무저항인 채로 실내로 떨어졌다.
하나미치를 안전권에 두자, 루카와는 돌아서자마자 미쯔이에게
주먹을 올렸다.
"큭..."
갑작스런 불의의 습격에, 정면으로 명치를 얻어맞은 미쯔이는
의식을 잃고 무너지듯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루카와는 조금 전 죽인 미쯔이를 안내해서 여기까지 데려온
남자의 시체를 걷어차서 출입구로 떨어트렸다. 뒤이어 의식이 없는
미쯔이도 아무렇게나 걷어차서 3미터 아래의 복도에 떨어트렸다.
"-미쯔이 전하!"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쿠와타가 황급히 미쯔이에게 달려갔다.
얼굴에 미약한 상처가 있는 데다가 조금도 미동하지 않는
미쯔이에게 한순간 덜컹했지만, 숨을 쉬고 있음을 확인하자
쿠와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남자의 유체가 쿠션이 되었던 것이다. 미쯔이에게 떨어질 때의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루카와가 머리 위에서 밑에 있는 쿠와타에게 말했다.
"카이난으로 향하는 출발식까지 지하감옥에 그녀석을 감금해라."
"지하감옥!?"
"시간이 되면 내보내. 카이난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절대 눈을
떼지 마라."
놀란 쿠와타에게 차갑게 말하고, 루카와는 출입구를 닫았다.

"...부마?"
나의 밋찌가.
"카이난으로 가버려...?"
그렇게 먼 곳에.
"이제... 만날 수 없어?"
계속 옆에 있기로 결심했는데-
"싫...어... 싫어... 그런 것, 정말로 싫어..."
한번 멈췄던 눈물이 계속계속 흘러내렸다.
마음 속에도 먹구름이 끼어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멍청이."
다시 돌아온 루카와가, 웅크리고 앉아서 무너지듯이 울고 있는
하나미치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분한가...? 하지만 전부 네 탓이다."
"!"
난폭하게 빨간 머리를 움켜쥐고 끌어당겨서, 깨물듯이 입을 맞추었다.
"음... 우...음음...음!"
울고 있는 하나미치의 옷을 끌어내리고, 가차없이 몸을 눌러오는
루카와.
- 함께 카이난에 가자고 말해주었는데... -
루카와에게서 도망쳐서 미쯔이의 옆에 있는, 최대이자 최후의 기회를
놓친 자신을, 이때 하나미치는 절망 속에서 이해했다.

폭력적으로 하나미치를 안은 루카와는, 기절하듯이 잠들어버린
하나미치를 몇 시간이고 바라보고 있었다.
자고 있어도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는 눈물. 그것을 질리지도
않게 몇 번이나 계속 닦아주었다.
"...찌..."
"멍청이?"
"...밋찌..."
"......"
"...밋찌... 밋찌..."
하나미치는 괴로운 듯이 고개를 뒤척이면서, 눈물로 뺨을 적시며
미쯔이를 불렀다.
반복하고 반복해서-
"그만둬!"
초췌하고 까칠해져 버린 하나미치에게, 충동적으로 주먹을 내리쳤다.
퍽...!
하나미치의 얼굴 바로 옆에 주먹을 내리꽂으며 몸을 떨었다.
"...제길."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이성을 총동원해서, 무차별 폭력을 어떻게든
단념한 루카와는, 그대로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하나미치를 끌어안았다.
"...멍청이."
이런 곳에 갇혀 있어도, 하나미치의 몸에서는 언제나 태양의 냄새가
났다.
...사실은 웃는 모습이 가장 좋았다.
언제나 하나미치에게는 웃게 해주고 싶었다.
자신의 옆에서, 처음 만났던 그 무렵처럼, 아무 구김살없는 미소를
보고 싶었다.
상냥하게 해주고 싶고, 하나미치의 소망이라면 뭐든 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하나미치의 과거를, 용서할 수 없었다.
하나미치의 마음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이렇게 자신은 심란하고 미칠 듯이 애가 타는데, 하나미치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용서할 수 없었다-
"...멍청이?"
가만히 껴안고 있자, 하나미치의 손이 루카와의 등 뒤를 감쌌다.
눈을 크게 뜨고 꿀꺽 생침을 삼켰다.
그러나, 다음에 그의 입에서 나오 것은-
"밋찌..."
"...큭."
몸이 굳었다.
제정신을 잃을 정도의 질투.
"...그렇게 그녀석이 좋은가...?"
미쯔이 히사시. 아야코와 자신 사이에서 태어난 친아들.
행실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주어진 일은 완벽하게 해내는 미쯔이에게,
하나미치와의 일이 있기 전까지는, 큰 불만은 없었다.
운명의 축하회 때까지는, 장남에 대해 특별한 감정 같은 것,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지금은 욕지기가 날 정도로 증오스럽고 참을 수 없다.
- 어째서 나는 너희들이 만나기 전에, 히사시를 죽이지 않았을까...
아니, 그 이전에 어째서 저런 아들을 만들어버린 걸까 -
아무리 봐도 어쩔 수 없는, 말도 안된다고 해도 좋을 일 때문에
격심한 후회가 덮쳐온 것이다.
- ...하지만 놈은 이제 끝이야 -
미쯔이의 부마 문제에는, 실은 또 하나 흑막이 있었다.
그 계획을 실행하면 분명 하나미치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루카와를
원망할 것이다.
이제 두 번 다시 그렇게도 좋아했던 그 미소를 보여줄 날은 오지
않겠지.
그것을 알고 있어도, 그래도...
"나를 사랑할 수 없다면 네가 히사시를 생각할 틈도 없을 정도로
나를 미워하게 해주겠다. 나를 증오해서 내 일만 생각해."
너무도 슬픈 표정으로, 루카와는 다시 한 번 하나미치에게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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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비열악역 루카와...;;
그러나 이번 편 마지막 씬은 꽤나 절절하군요.
(그렇다고 루카와의 행위가 정당화된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PRE번 호 : 1886 / 2053 등록일 : 2000년 12월 02일 08:26
등록자 : HALKO 조 회 : 220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2권 #6
/PRE

6.

미쯔이의 출발식에, 국왕의 모습은 없었다.
혼례는 카이난에서 열리는 데다가, 미쯔이 본인이 거부했기
때문에 특별히 쇼호쿠에서 연회 등은 열리지 않았다. 그것
때문인지, 아름답고 총명한 왕자의 모습을 볼 최후의 기회라면서,
출발식에는 국내의 수많은 귀족들이 참석했고, 도로는 국민들로
넘쳐났다.
"대단하군. 저 훌륭한 채비."
"이거라면 카이난 놈들도 트집잡지 못할걸."
"우리 나라의 위광에 압도될 게 틀림없어."
미쯔이의 부마식 지도는 센도의 손에 의해, 황금의 나라
쇼호쿠로서의 위신을 떨어트리지 않는, 호화찬란한 선물들이 많이
준비되어 있었다.
황금 마구를 단, 대형 5두 마차가 300개 남짓 백염궁 앞에
정렬해 있었고, 카이난의 국경까지 미쯔이를 호위할 3만 명의
병사는 금색의 새로 만든 제 1급 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 모두가 압도되었고, 자국의 권위를 눈으로 확인하며,
자랑스러움으로 가슴을 부풀렸다.
그리고 어떤 훌륭한 채비보다도 인민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은
것은, 역시 주역인 미쯔이 히사시 그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오늘의 미쯔이 왕자님은..."
"아아, 정말로..."
"젠장. 미쯔이 전하를 타국에 보내는 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역시 분해."
보통 입는 파격적인 의상이 아닌, 쇼호쿠 왕가의 전통적인
검은 색과 금색 의상을 몸에 걸친 미쯔이는, 신선한 놀라움을
주위 사람들에게 안겨 주었다. 루카와에게 상처입은 턱의 상처도
높은 옷깃으로 숨겨져서 사람들 눈에는 띄지 않았다.
원래 호리호리한 중성적인 왕자이다. 무예에 뛰어나게 우수한
남자들뿐인 왕가 중에서, 미쯔이의 요란스러움은 왕자라기보다느
공주에 가깝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내 유수의 검사이고, 활솜씨는 대륙 제일.
게다가 두뇌까지 국내 톱 레벨인, 어설픈 남자는 대항할 수도
없는 마음 든든한 존재인 것이다.
그 언발란스함이 미쯔이의 매력을 한층 드높여, 쇼호쿠의
제 1왕자의 명성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나 오늘의 그는 묘하게 침울했고- 언제나 화려하고 활짝
핀 꽃처럼 행동했던 눈부신 그가, 마치 비에 젖은 수국처럼
우울한 표정으로 국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처음으로 보는 왕자의 표정에, 사정을 모르는 민중들은 단순히
쇼호쿠를 떠나는 것을 애석해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친애의
정을 두텁게 했다.
그러나 속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의 가라앉은
모습은 고통스러워서, 보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국왕이 없는 출발식을 도맡은 것은 동생 왕자 두 사람.
그 중 한 명인 요헤이는 식전 동안, 불쾌함을 감추려 하지도
않았다.
"부마라고는 해도, 결국 인질인 거잖아. 하나미치에게서 떼어놓는

다가 동쪽의 대국과도 평화수립. 일석이조야. 그 아버지가
생각할 만한 수법이야."
"하지만 아버님의 옆에 있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 실제로
인질이라도 카이난의 차기황제가 되러 가는 건 틀림없으니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대출세지."
"그런 식으로 단순히 결론지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적국에
혼자서 들어간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잖아. 그 이전에 미쯔이
형은 입신출세에 능숙한 남자가 아냐."
"확실히... 그렇지. 음유시인이 되서 여러 나라를 유랑하고
싶다고, 옛날에 그렇게 말했었어."
"그렇지! 이 결혼 형에게 있어서 좋은 일은 하나도 없어!"
"그래도 적대하는 아버님이 있는 이 나라보다는 훨씬 낫지."
"...그거야..."
반론할 수가 없어서 요헤이는 입을 다물었다.
"형은 걱정 없어. 저 사람은 아군을 만드는 데는 천재니까.
그 나라에서도 요령있게 처신해서 곧장 인기인이 될 거야."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알아, 나는."
"...너 최근 미쯔이 형에 대해 차가워."
"그런가. 연적이기도 하고."
"그걸 말한다면 아버지도 그렇겠지."
"같은 건가... 아니, 사랑받는 쪽인 형 쪽이 화가 나."
"뭐..."
센도는 싱긋 웃었다.
"농담이야, 농담. 뭐, 지금 여기서 우리들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형이 카
이난으로 장가가는 건 결정사항이니까 무리한 일로 골치를
썩이는 건 그만둬. 우리들은 쇼호쿠에 남은 둘뿐인 왕자야. 사이좋게
지내자구."
"센도 형...?"
센도가 무척 들떠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눈치챈 요헤이는,
어째서 그런 건지 몰라서, 잘생긴 눈썹을 찌푸렸다.
- 웅성...! -
미쯔이가 있는 마차 주변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비켜요!"
"이...이런, 아야코 님!"
"...아야코?"
"히사시!"
갑자기 끌어안겨서, 미쯔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왕의 측실이고 제 1왕자의 생모라고는 해도 하층민 출신인 아야코다.
그 신분이 없다는 이유로 오늘의 의식에는 미쯔이의 옆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갑자기 예의도 관례도 벗어던지고, 고위의 귀족과
호위병사를 밀어젖히고, 미쯔이에게 달려든 것이다.
"아야코..."
다부진 새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미쯔이의 눈이 곤혹스럽게 흔들렸다.
"뭐... 뭐야. 왜 당신이 우는 거야."
"당연하지! 나는 네 새어머니야! 아들이 멀리 가는데, 최악의 경우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데, 냉정하게 있을 수 있는 새어머니가
어디에 있니!"
"...하지만 나는 아야코에게 있어서 내놓은 자식 아니었어...?"
아야코는 언제나, 얼굴을 볼 때마다 미쯔이를 헐뜯었었다. 하지만-
"...바보구나. 언제나 히사시는 나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는 걸."
금방이라도 울 듯한 미소.
그녀가 그런 상냥한 표정에, 상냥한 말을 한 것이 몇 년만인가.
- 아야코... -
이때까지는 하나미치의 일만 머리에 가득찼었다. 하지만 이제
두 번 다시 이 새어머니와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다고 처음으로
상기했다.
태어난 순간부터, 아버지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쓸쓸하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얼마만큼의 애정을 지금까지 이 사람이 베풀어 주었던가.
친구 같은 모자라고, 자신들을 보며 사람들은 말했다.
하지만 '친구'가 아니다.
친구는 이런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주지 않는다.
분명 자신은 아야코를 새어머니로 두었기 때문에, 이 쇼호쿠에서의
17년간 너무도 행복했다-
"...힘내.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지지 마라. 네가 어릴
때부터, 몇 변이나 말해왔지. 단념하면 패배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히사시는 이 나의 단 하나의 핏줄이니까 패배자만은 절대 안돼."
"...어머님."
미쯔이는 아야코를 안으며, 한 줄기 눈물을 흘렸다.
- 나는 단념하지 않아 -
다시 이 장소로.
이 쇼호쿠로 돌아온다.
- 나의 나라는 쇼호쿠뿐이다 -
하나미치를
이 상황에서 남겨두고 가는 것은 가슴이 에일 정도로
걱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으로, 하나미치는 구할 수 없다.
쇼호쿠에서는, 사상 최고의 영웅왕 루카와 카에데에 대항할 만한
힘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새로운 별천지라면-?
미쯔이의 눈에서 공격적인 빛이 번득였다.
증오스러운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던진 말을, 미쯔이는 그때
생각해냈다.
'특기인 미인계로 열심히 살아라.'
자신에게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었다. 이 미쯔이 히사시에게!
- ...해주지. 아아, 해주고말고. 아버님이 말한대로, 유력자들을
미인계로 함락시키고 함락시키고 함락시키고 함락시켜서, 마지막에는
황제도 매료시켜서 내 시종으로 만들어서, 카이난을 나의 미모로
점령해 주겠다! -
자신은 유서깊은 대국의 왕녀인 피오네 비를 새어머니로 둔 센도가
아니다.
순진무구하고 좌절을 모른 채 올곧게 자라난 시골 여자인 하루코를
새어머니로 둔 요헤이도 아니다.
가족이 죽임당하고 조국이 멸망당해, 아무 것도 모르는 소녀시절에
유곽에 팔려, 그래도 단념하지 않고 미모만으로 출세한, 경성 출신의
아야코를 새어머니로 둔 왕자인 것이다.
루카와는 모욕할 생각으로 말했겠지만, 그 발언은 확실히 미쯔이의
투지에 불을 붙였다.
- 카이난에 가서 힘을 얻어서, 반드시 사쿠라기를
되찾겠다! 내겐 아직
최대의 무기인 이 미모와 두뇌가 남아 있다! 불가능한 일은 없다! 나는
미쯔이 히사시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
아야코의 등장으로, 급할 수록 돌아가는 거라고 깨달은 미쯔이는,
카이난을 자신의 미모만으로 장악하기로 결심을 굳히며, 애타는 마음을
다잡았다.
마음의 정리가 된 미쯔이 옆으로, 첫째 동생이 다가왔다. 미쯔이는
끌어안고 있던 아야코에게서 몸을 떼고, 센도를 기다렸다.
"형. 선두 기마가 채비를 끝냈어. 슬슬 형도 준비해줘."
"아아."
고개를 끄덕였지만 곧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형?"
"...센도. 아야코를 부탁해. 나와 아버님의 골은 결정적이야. 혹시
이 사람에게까지 불똥이 튈지도 몰라. 그때는 네가 아야코를 후원하고
지켜주지 않겠어?"
조금 눈을 크게 뜬 센도는, 다음 순간 너무나 기쁜 듯한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걱정 마. 내게 있어서 아야코 상은 새어머니나 다름없는 사람이니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에게는 신세를 진다."
"괜찮아. 우리들은 형제잖아."
"잠깐, 두 사람! 나 후원 따위 필요없어. 내 일은 내가 어떻게든
할 거야. 센도 전하를 번거롭게 할 필요는 전혀 없으니까."
"아야코 상에게는 필요없더라도 형과 내게는 아야코 상이
필요해요. 부탁이니까 형이 없는 동안, 나의 자기만족을 위해서
지키게 해주십시오."
"센도 전하..."
깊이 머리를 숙인 센도에게, 아야코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왕태자 전하에게 인사를 받다니, 거절할 수도 없네."
"고마워요!"
센도는 얼굴을 빛내며 아야코의 손을 양손으로 꽉 쥐었다. 그리고
조금 고개를 기울여서, 안색을 살피듯이 아야코를 보았다.
"부탁 하나만 더 해도 괜찮을까요?"
"뭐지?"
"오늘부터 아야코 상을 어머님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센도 전하..."
"아, 그건 싫어요."
고개를 저으며 센도는 미소지었다.
"아이 때처럼 아키라라고 불러요. 네? 어머님."
"아키라?"
"안돼나요?"
"...고마워. 상냥하구나. 하지만 어머님은 사절하겠어. 갑자기
늙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아하지 않아. 그래서 히사시에게도
그렇게 못 부르게 했던 거야. 이것만은 양보 못해, 아/키/라/ 상."
"...아야코 상."
센도는 얼굴 전체로 활짝 미소지었다. 그리고 미쯔이를 돌아보며,
이번에는 그 손을 잡았다.
"형. 쇼호쿠에 미련이 많다는 건 알지만 뒷일은 전부 내게 맡기고
안심하고 카이난으로 가. 사쿠라기의 일도, 나는 이대로 놔둘
생각은 없으니까."
"나도 이대로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어."
"형..."
"...하지만 지금은 아버님이 말하는 대로 카이난으로 갈 수밖에 없지.
쇼호쿠에는 아버님의 말이 절대적이니까."
후우... 하고 우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고 나서, 센도에게 조금
웃어보였다.
"...건강해라."
"형이야말로."
"-이봐. 나만 빼놓지 말라구."
"요헤이."
돌아보자, 뒤에 요헤이가 서 있었다.
"그쪽에 가도 열심히 해. 미쯔이 형은 미덥지 않으니까, 엄청난
실수를 해서 국제문제로까지 발전하지 않을까 걱정이야."
"건방진 말 하지 마라. 막내 주제에."
그렇게 말하고 웃은 미쯔이에게 요헤이도 웃었고- 다음 순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형을 끌어안았다.
"-요헤이?"
"...힘이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요헤이.
미쯔이는 가만히 미소지으며, 말없이 막내왕자를 부드럽게 껴안았다.

수많은 생각들을 남기고, 쇼호쿠의 제 1왕자 미쯔이 히사시는 그 날
카이난으로 떠났다.

아야코를 방까지 데려다 주고 저녁식사를 함께 해서 밤늦게 방으로
돌아온 센도를 기다린 것은 피오네 왕비의 직속 여관이었다.
"부탁드립니다, 전하! 어머님을 만나주십시오! 피오네 님은 폐하의
탄생일 이후, 전보다 더 자주 우울해 계십니다. 왕비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건 아들이신 전하밖에 안 계십니다."
"...시끄럽다."
"전하!?"
"만나고 싶지 않다고 몇 번이나 말했나. 자신에게 매력이 없어서
아버님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주제에, 피해자인 척 굴지 말라고
전해라."
"무슨 말씀을...!"
"그 사람은 아야코 상의 손톱 때라도 삶아먹어야 해. 아야코 상은
아버님 같은 건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아. 결코 남자에게 아양부리거나
하지 않는다. 정말로 너무나 멋진 여성이다."
그리고 쿡쿡 웃었다.
"나는 말이야, 이제 어머님은 필요없어. 훨씬 더 멋진 어머님을
형에게서 받았으니까. 나를 낳기만 한 새어머니 따위 필요없어."
"너무한..."
"너무해? 너무한 게 어느 쪽이지? 어머님은 언제나 자기 일만
생각하지. 내 기분 따위 한 번도 생각해 준 적 없었다. 그 사람은
말야, 나 따위 사실은 어떻게 되도 좋은 거야. 실제로 지금까지
사랑해준 적도, 어릴 때에 안아준 적조차 한 번도 없었지.
...나는 언제나 혼자였고... 언제나 쓸쓸하고 고독했다."
"...전하."
"오늘 나는 생전 처음으로 아버님에게 감사한다..."
무시할 수 없는 선열한 매력으로 애정을 독점하는 형을 멀리
쫓아내고, 이상의 새어머니인 아야코를 자신에게 남겨주었다.
계속, 계속 형을 부러워했었다.
형의 모든 것을 질투했었다.
그러나 이제 눈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열등감과 고독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는 사라졌다.
- ...다음은 사쿠라기다 -
루카와가 하나미치에 대해 잔혹한 짓을 하면 할수록, 귀여운 그의
마음에 끼어들 틈이 생긴다.
분명 하나미치는 더 많이 울게 되겠지.
울고, 울고, 절망해서- 거기서 내가 그를 구한다면?
"...최고다."
루카와의 계획이, 미쯔이를 쫓아내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부하에게 들은 것은 오늘 아침.
센도에게는, 그것만으로도 하나미치를 빼앗을 자신이 있었다.
너무나 바래마지 않았던 '아야코가 있고 하나미치가 있는 공간'.
그것을 이제 곧장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예감에, 마음이 들떠서
오늘 밤은 잘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금염궁의 최상층에서는 똑같이 잠 못드는 밤을 보내는 인물이
한 명.
"...엉...흑...우...훌쩍..."
옆에서 잠든 루카와에게 등을 돌린 채, 어둠 속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하나미치는 떨면서 계속 울고 있었다.
기절한 것처럼 잠든 하나미치가 겨우 눈을 떴을 때, 바깥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연히 미쯔이는 카이난으로 떠난 후였고, 창으로 달려간
하나미치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길고 긴 부마행렬의 제일
끝자락뿐.
그때부터 한밤중인 지금까지, 계속 울고 있는 것이다.
미쯔이를 생각하며 우는 하나미치에게, 당연히 루카와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처음에는 욕설을 퍼부으며, 상심한 하나미치에게
더욱 더 강요를 하던 루카와도, 전혀 태도를 바꾸지 않는 그에게
질렸는지, 바로 두 시간 전에 잠들어 버렸다.
"어째서... 어째서 이런 일이..."
슬프고 분해서... 어찌할 수도 없는 분노만이 가슴 속에
소용돌이쳤다.
유곽에서 처음 알게 된 그 날부터 삶의 지주는 미쯔이의 존재
그 자체였다.
미쯔이의 옆에서 그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하나미치
최대의 존재의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악몽과도 같은 현실은 무엇인가.
떨림은 멈추지 않고, 마를 줄 모르는 뜨거운 눈물이 뺨을 적셨다.
- 나, 밋찌에게
어떻게 얼굴을 들면 좋지... -
혼례는 겉보기의 방편이라는 것을, 루카와의 태도를 보면
하나미치라도 알 수 있다.
쇼호쿠에 있을 곳이 없게 된 그 소중한 사람은, 부친의 손에 의해
적국으로, 인질처럼 쫓겨난 것이다.
"...나... 때문이야... 애초에 내가 밋찌의 명령을 어겨서...
그래서... 밋찌가..."
루카와도 네 탓이라고, 똑똑히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는가.
아아, 어째서 그 행복의 절정에서, 루카와 따위를 만나버린 걸까.
어째서 미쯔이에게 제지된 뒤에도 몰래 만나러 간 걸까.
그때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이번에는 절대로 실수하지 않을
텐데.
미쯔이가 있는 백염궁에서 결코 나오지 않고, 일생 그의 옆에서
그를 위해서만 살아갔을 텐데.
구체적으로 자신의 뭐가 잘못되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이 미쯔이에게 있어서 재앙만 가져다 주었다. 최악의
측실이었다는 사실만은, 이 현실이 증명하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을 불행하게 한, 역병신과도 같은 자신.
자신이 없으면 그는 지금도 쇼호쿠의 왕자로서 이 나라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을 것이다.
- 나만 없어지면 -
살아갈 근원을 잃은 하나미치는 천천히 일어서서, 불안한
발걸음으로 창 쪽으로 다가갔다.
"밋찌에게 폐만 끼친, 이런 나는 이제 필요없어."
멍하니 중얼거리며
닫힌 창으로 손을 뻗었다.
끼이...
창문을 염과 동시에 차가운 비바람이 실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때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멍청이?"
언제나 엔간해서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루카와가, 눈을 비비면서
천천히 상반신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하나미치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경악해서 얼굴이 굳어졌다.
"멍청이!"
하나미치는 한 번도 루카와를 돌아보지 않고 달도 없는 어두운
하늘로 주저없이 몸을 날린 것이다.

============================================================

감동적인 모자, 형제간의 이별 ♥
그러나 센도가 날 갈구는군...-_-;
하나미치가 어떻게 살아났는지 추리해내시는 분께는
소정의 상품을...(...줄 리가 없다;;)

PRE번 호 : 1887 / 2053 등록일 : 2000년 12월 02일 08:29
등록자 : HALKO 조 회 : 224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2권 #7
/PRE

7.

-카이난 제국.

파란 하늘, 파란 바다. 풍성한 녹림에 광대한 대지.
쇼호쿠에서 대략 말을 타고 15일 걸리는 동쪽의 대국에서는
근래에 없던 술렁임이 찾아오고 있었다.
단 한 명의 사랑스러운 황녀전하의 혼례.
그것도 상대는, 쇼호쿠의 고명한 세 왕자의 장남. 만능으로
이름난 세 왕자 중에서도 특히 미모와 두뇌로 대륙 내에
이름이 알려져 있는 미쯔이 히사시인 것이다.
차기황제로서 인격적으로도 능력적으로도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다.
료난과 쇼호쿠가 손을 잡아서, 불리한 전쟁을 걸 가능성도
이걸로 회피된 것이다. 카이난의 일반 시민들은 묵은 한을
잊고 이 부마를 은혜로서 받아들였고, 몇십 년에 한 번 있을
축제 분위기가 나라 전체에 퍼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소용돌이 와중에 있는 작은 황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버님! 히사시 님이 도착하셨다는 게 정말이예요!?"
바다 옆에 세워진 왕궁 깊숙한 곳에 있는 커다란 방. 거기에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나타난 것은, 카이난의 어린
히메였다.
그녀의 이름은 마키 기누카.
복숭아색의 의상이 아주 잘 어울리는, 긴 흑발에 푸른 눈의,
다갈색 피부를 지닌 미소녀다.
"방금 입성했다는 보고가 왔다. 슬슬 여기에 인사하러 올 테지."
"와아! 이제 곧 기누카의 왕자님을 만날 수 있는 거군요!"
뺨을 붉게 물들이며, 소녀는 지금이라도 춤출 듯한 상태로
환호를 질렀다.
"기누카, 기누카는요! 히사시 님을 만나면 보여드리고 싶은 게
많이 있어요!"
"보여주고 싶은 것?"
"예에! 사슴 씨가 사는 숲에, 비밀 화원에, 노란색 새 씨에,
친구인 유리 짱!"
"유리 짱은 인형이잖니."
"하지만 친구예요!"
마키 황제는 귀여워서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사랑하는 딸을
바라보며 얘기를 듣고 있었다.
자식을 끔찍히 위하는 부친으로서, 국외에서도 유명한 마키다.
외동딸에 대한 도를 넘어선 익애는, 적령기가 되어도 딸에게
부마를 붙여주지 않아서 주위에서도 반쯤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을 정도였다. 이번 혼담이 결정되었을 때, 그런 의미에서도
가슴을 쓸어내린 가신이 많았다.
"저기, 아버님. 히사시 님은 초상화처럼 정말로 그렇게
아름다운가요?"
"아아, 수년 전에 단 한 번 만난 적이 있지만, 아름다운
미소년이었지. 그대로 성장했다면, 기누카와 어울리는 청년이
되었을 게다. 검술도 뛰어나고 머리도 우수하고 인심도 두텁지.
이전부터 세계 제일의 공주님인 기누카의 부마에는, 그밖에
없다고 생각했단다. 아버지가 기누카를 위해 준비한 세계 제일의
훌륭한 부마란다. 분명 기누카도 마음에 들 게다."
"아름답고 멋진 왕자님! 아아, 빨리 만나뵙고 싶어요!"
소녀가 꿈꾸는 눈동자로 황홀하게 외쳤을 때, 시종이 미쯔이의
내방을 고하러 나타났다.

엷은 보라색의 천에, 같은 색의 비단실로 자수한 긴 옷을 입은
미쯔이는, 한없이 우아한 몸놀림으로 알현의 예를 올렸다.
파격적인 성격의 미쯔이지만 궁정의례는 완벽했다.
그는 칠흑으로 반짝이는 머리를 천천히 들어올려, 품위있는,
그것도 위엄있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마키 황제. 쇼호쿠 왕 루카와 카에데의
제 1왕자 미쯔이 히사시라고 합니다."
"...호오."
여자라고- 그것도 절세 미녀라고 착각할 정도의 용모에
마키는 무의식적으로 중얼거리고 말았다.
"아름다워졌군."
"황공합니다."
긍지와 기품으로 가득찬 분위기로, 미소만을 지으며 미쯔이는
겸허하게 말했다.
웃으면서 의자에서 일어난 마키는 미쯔이 쪽으로 몸소 걸어갔다.
"오랜만이다, 미쯔이 왕자. 4... 아니 5년만인가. 각국 대표의
학자들을 압도했던 카이난에서의 연설. 어제 일처럼 생생하군."
"부끄럽습니다. 그런 이전의 일을 기억하고 계셨군요."
"기억하다마다. 그때, 이 왕자를 딸의 부마로 삼기로 결심했으니까.
그때부터 곧장 결혼 신청을 했지만, 쇼호쿠에서 변변한 답변이
오질 않아서 최근에는 완전히 단념하고 있던 참이었다."
"...전부터?"
미쯔이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 저 빌어먹을 아버지! 역시 날 쫓아내려고 흐지부지된 혼담을
다시 되살린건가! -
지나가는 우연이라기에는 지나치게 타이밍이 좋은 혼담이라고
생각했었다.
읽을 수 있었다. 루카와의 생각은 전부 읽을 수 있었다.
- 카이난에 왕자를 부마로 보내는 건 확실히 나쁜 얘기는 아니지만
공격의 귀신으로 유명한 흉폭한 저 아버지다. 평화 따위 바랄 리가
없어. 료난과 손을 잡고 카이난 자체를 칠 생각으로, 지금까지
혼담을 무시해온 것임에 틀림없다 -
그러나 나라를 뺏는 전쟁보다 마음을 빼앗긴 하나미치가 나타났기
때문에, 순순히 의도를 변경하고, 핑계 좋게 연적을 이국으로
쫓아낸 것이다.
- 자만할 생각은 없지만 나는 쇼호쿠 국민에게만이 아닌, 외국에서도
인기 대폭발인 미쯔이 왕자다. 아무 이유도 없이 죽이거나 추방시킬
수는 없으니까. 저 자식, 누구라도 불평을 말할 수 없는 최고의
수단을 택했군 -
루카와의 근성 나쁨과 교활함은 충분할 정도로 파악하고 있었지만,
새삼스럽게 재인식하자 한층 더 열받았다.
머리 속에서 루카와를 욕하고 있자, 작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히...히사시 님?"
고개를 돌리자, 사랑스러운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즉시 미쯔이는
완벽한 접대용 미소를 지었다.
"아아, 처음 뵙습니다, 기누카 히메. 인사가 늦어져서 실례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황녀전하의 남편될 영광을 가진 미쯔이
히사시입니다."
"!"
기누카는 미쯔이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본 순간, 새빨개져서 마키의
등 뒤로 숨었다.
"왜 그러니, 기누카? 그렇게 만나고 싶어한 기누카의 왕자님이다."
"그치만... 그치만... 너무 아름다운 걸요. 놀라서..."
"확실히. 초상화보다도 훨씬 아름답지. 쇼호쿠의 화가는 그림
실력이 나쁜 것 같군."
"폐하도 황녀도 칭찬이 능숙하시군요. 하지만 '아름답다'는
남자에 대한 칭찬의 말은 아닙니다. 남자라면 마키 황제 같은,
굳세고 남자다운 용모야말로 칭찬의 대상인 것을."
그리고 미쯔이는 후우...하고 우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자주 여자라고 오인되는 빈약한 이 용모가 철이 들 때부터
저의 최대의 고민입니다. 조금이라도 늠름해지려고 무예에도
소년 시절부터 힘을 쏟았습니다만 아무래도 체질이라는 것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이런 저이기 때문에 당신 같은 분이야말로
아름답다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뻥이다. 무예 일반은 아버님의 지시로, 쇼호쿠의 왕자들은
어릴 때부터, 강제로 연습을 해야 했다고. 아름다운 이몸의
신체에 근육이 안 붙게 하려고, 섬섬옥수 같은 손에 검못이
박히지 않게 하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냐 -
마음 속으로 혀를 내민 미쯔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마키는
기특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다, 미쯔이 왕자. 남자로서는
굴욕일 텐데, 아름답다고
말하는 게 아니었다."
"괜찮습니다. 익숙하니까요."
미쯔이는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검을 황제의 발밑에 바쳤다.
"항상 당신을 동경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살 수
있게 되니, 장인이라고는 해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입장이
된 지금, 조금이라도 황제폐하의 아들로서 어울리는, 남자다운
인간이 될 수 있도록 정진하고 싶습니다."
이 대면을 위해 평소의 세 배나 시간을 들여서 옷을 골라입고,
엷은 화장까지 해서, 이런 말을 잘도 술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마키 황제가 감동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티없는 미소를 지어준
후, 미쯔이는 또 한 명의 인물에게 회유책을 썼다.
"황녀전하."
"...앗."
미쯔이는 소녀의 손을 정중하게 들어올려 거기에 입맞춤을 한 뒤,
날아갈 듯한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나의 사랑스럽고 작은 공주님. 당신의 남편이 될 수 있는 행운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의지가 되지 않는 저 자신입니다만,
일생을 걸고 당신을 사랑하고 지켜드릴 것을 맹세할 테니, 당신의
인생을 함께 걸을 수 있도록 모쪼록 허락해 주십시오."
"...히사시 님."
기누카는 빨개진 얼굴을 더욱 더 붉히며 부끄러운 듯이...
그러나 지금까지의 그녀보다 더 어른스러운 분위기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히죽.
- 이녀석, 나한테 넘어갔어 -
더할나위없이 좋은 예감이 든다. 미쯔이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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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등장한 마키와 오리지날 캐릭터 기누카...
기누카는 3권부터 갑자기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마키는...
..................
..................................
......................................................
의연하고 도량 넓은 제왕 마키를 돌려다오, 바로크으!!!!
(저런 팔불출 마키라니...T_T)
차라리 비정한 폭군 마키를 쓰란 말이다 \./++!!!
그거라면 광분하면서 볼 수 있는데 T_T
사랑에 미친 폭군 마키도 보고 싶어~
그럴 경우 그 상대는 꼭 후지마 상 ♥
(그렇다면 하나가타 왕자의 측실 후지마...? -_-;)
마키가 아무리 미쳐도 루카와처럼 완전히 맛가지는 않겠지만...
(센(루,하나,코시 etc.) 버전의 경국미희는 어떠할까...)
(상상력의 한도는 끝없다...)


PRE번 호 : 1888 / 2053 등록일 : 2000년 12월 02일 08:32
등록자 : HALKO 조 회 : 247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2권 #8
/PRE

8.

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부드러운 햇살에 감싸여, 하나미치는
눈을 떴다.
- 응...? -
긴 잠에서 깨어난 하나미치는, 현재 상황을 곧장 이해할 수 없었다.
"하나미치! 정신이 드니!?"
"...아야코 상...?"
걱정스럽게 자신을 들여다본 것은 아야코.
어째서 여기에 그녀가 있는 거지...? 그 전에 여기는 어디지?
품질 좋은 가구와 장식품이 깔끔하게 늘어서 있는 넓고 아름다운 방.
웬지 기억이 있는 이 장소는-
"...아야코 상의 방...?"
아직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지만, 기억이 정확하다면 여기는
이전에 한 번 방문한 적이 있는 금염궁의 아야코의 방이었다.
그것을 이해한 순간, 놀라서 잠이 싹 달아났다.
- 어째서 내가 아야코 상의 침대에서 자고 있는 거야!? -
황급히 일어나려고 하는 것을 부드럽게 저지당했다.
"안돼. 머리를 다쳐서 열흘이나 계속 잠들어 있었어. 아직 움직이지
않는 편이 좋아."
"머리...?"
손을 머리에 갖다대자, 터번 모양의 붕대가 둘둘 말려 있었다.
웬지 머리가 아픈 느낌도 든다.
"어떻게 머리가... 아."
중얼거린 순간, 그날의 일이 노도처럼 되살아났다.
하나미치는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하나미치?"
"-나 죽지 않았나
요..."
"바보!"
퍽 하고 갑자기 뺨을 맞았다.
"어째서 자살 같은 경솔한 짓을 했니!? 사람이 죽으면 지는 거야!
끝이야! 폐하의 학대를 견뎌내기 힘들었던 기분은 모르진 않지만!
네가 죽어도 어떻게 될 일이 아니잖아! 여기서 죽으면 폐하에게
지는 것과 마찬가지야! 최악이라고 생각해도, 적극적으로 노력하면
길은 열린다고 내가 말했을 때 너도 동의했잖아! 그거 거짓말이었던
거니!? 잘못 봤다, 사쿠라기 하나미치!"
얘기하는 동안에 감정이 고조되어서인지, 아야코의 두 눈에는 눈물이
펑펑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야코 상..."
이렇게나 폐를 끼쳐버렸다. 그렇게 생각하자 하나미치는 아야코에 대해
너무나 면목이 없어졌다.
미쯔이의 일도 포함해서 그녀에 대해서는 아무리 사과해도 부족하다.
어느새 하나미치는 아야코와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정말. 어째서 너까지 우는 거니..."
"...미안해요, 아야코 상... 나, 나 때문에 밋찌가..."
"...설마 히사시가 카이난에 보내진 일로 책임을 느끼고 죽으려고 한
건 아니겠지?"
"미...해요..."
아야코는 한숨을 쉬며 하나미치의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주었다.
"...이제 두 번 다시 바보같은 짓은 하지 마. 네가 죽어도 히사시가
쇼호쿠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야. 개죽음이야. 아니, 보통의 개죽음보다
최악이야. 하나미치가 자살했다는 걸 알면 히사시도 분명 슬퍼할 거야.
그때는 그 아이가 책임감을 느끼고 자신을 꾸짖겠지."
"...!"
"어머, 뭘 놀라는 거니. 당연하잖아."
"...그런...가. 그렇...구나. 나... 계속 밋찌에게 폐를..."
눈물이 샘처럼 쏟아져나왔다.
"아-아, 남자애잖니. 간단하게 울지 마."
손으로 닦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아야코는 시트로 하나미치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 어째서 그런 간단한 일을 몰랐지. 나는 천재가 아냐. 처음부터 끝까지
바보천치야... -
조금은 냉정해진 지금, 투신자살을 계획했던 그날 밤의 일을 생각하자,
정상적인 사고능력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건 알고 있다.
자신이 죽어도 아무 해결도 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상황을
악화시켰음에 틀림없다.
- 밋찌는 고압적이고 제멋대로니까 오해받기 쉽지만, 사실은 굉장히
상냥한 녀석이야. 내가 죽으면 분명 자신을 꾸짖을 게 당연해 -
죽을 수 없다.
아무리 사는 게 괴롭더라도, 자신의 소중한 사람의 미소를 이 이상
흐리게 할 수 없기 때문에 절대 죽어서는 안된다.
- 같이 죽는다면 최소한 루카와에게 복수라도 한 뒤에...
우... 루카와? 아! -
"아야코 상! 루카와는!?"
루카와에게 감금되어 외부로부터 차단된, 결코 짧지 않은 나날.

연장일 터인 현재, 어째서 자신은 그 감옥 같은 방이 아니라
널찍하고 기분좋은 아야코의 방에서 자고 있는 걸까.
그리고 어째서, 그렇게 항상 집요하게 옆에 있던 루카와가 아무 데도
없는 거지?
"그...게다가 잘 생각해보나까 어떻게 내가 거기서 떨어져서 살아났죠?
내 머리가 그렇게 단단했나요?"
뛰어내린 그 창에서 밑의 사람들을 보면 좁쌀 하나 정도의 크기였다.
그 정도로 높은 위치에 있었다, 그 창은.
거기에서 떨어져도 멀쩡하다니, 좀... 아니 대단히 이상하다.
"떨어지지 않았어."
"예?"
"운이 좋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어. 폐하의 악취미가 엉뚱한 곳에서
도움이 됐는 걸."
"루카와의 악취미?"
너무 많아서 어떤 건지 특정하게 꼽을 수 없다.
"폐하가 족쇄를 채웠잖아. 죄인에게 사용하는 커다란 쇠공을 단 그거.
원래 중량이 무겁기도 했고, 게다가 창턱에 그게 걸려줬거든. 목숨을
건진 거야. 떨어진 순간에 벽에 머리를 강타당한 것 같지만, 그걸로
끝난 게 기적적이라구. 지금 이렇게 목숨이 있다는 걸 신에게
감사하렴."
- 저 굴욕에 지나지 않았던 족쇄가...? -
정말 뭐가 다행인지 모르겠다.
왼발목을 보자 거기에는 족쇄가 아닌 하얀 붕대가 감겨 있었다.
떨어질 때 온몸의 체중을 지탱했기 때문에 상처가 난 것이다.
휙휙 움직여 보
았지만 아픔은 거의 느껴지지 않아서 찰과상인 듯했다.
"...그리고 폐하 말인데. 루카와 폐하는 지금 별궁에서 요양하고
계셔."
"요양!? 그녀석의 어디가 아픈데요!?"
"여기야."
아야코는 자신의 머리를 검지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였다.
"머...머리?"
"그래. 뛰어내린 순간을 폐하가 봤거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고 철썩같이 믿어서, 마음이 망가져 버렸어. 그때부터 폐하는
모든 것에 전혀 반응해주지 않아. 지금은 소리도 빛도, 아픔조차
느끼지 못해. 숨쉬기만 하는 살아 있는 인형이야. 중도의 정신장해라고
의사들도 진작에 포기해 버렸어."
뜻밖의 전개였다.
"...루카와가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그것 때문에? ...말도 안돼요.
그런 일 가지고, 심장에 털이 박힌 저 여우가 폐인이 될 리가 없잖아요.
그리고 그녀석, 내가 죽어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했어요. ...말했는데
어째서..."
"...그만큼 널 좋아했던 거야. 구애 방법은 엉망진창이었지만 사랑은
진심이었어."
하나미치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루카와의 입에서 직접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최근에는
그것도 의심스러워졌다.
"돌아버릴 정도로 날 정말로 좋아한다면 싫어할 짓은 하지 말았어야죠.
그건 좋아하는 사람에게 하는 짓이 절대 아니예요. 그러니까 루카와는
그렇게 날 좋아하는 건 아니예요. 차라리 미워하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요."
"바보같긴. 좋아하니까 그렇게까지 한 거야."
"모르겠어요."
머리가 혼란스럽다.
솔직한 성격인 하나미치에게는, 루카와의 비틀린 애정표현 같은 건
이해할 수 없었다.
"몰라도 괜찮아. ...아니, 모르는 편이 빨리 잊을 수 있으니까
그게 더 나을지도."
"아야코 상...?"
"축하한다, 하나미치. 너는 이제 자유야. 아무리 지나친 애정
때문이라고 해도, 폐하가 한 행위는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야.
너는 네 목숨을 걸고 복수에 성공했어. 이제 악몽은 끝난 거야.
이제부터는 어디든 가고 싶은 곳에 자유롭게 갈 수 있어. -물론
카이난에도."
- ! -
"밋찌에게 가도 된다고요...?"
아야코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하지만 밋찌는 부마로 간 거니까 측실인 내가 쫓아가면
곤란해지지 않나요?"
"겉으로는 시종으로서 가면 되잖아. 하나미치는 남자아이고,
쇼호쿠에서 측실이었던 일은 입다물고 있으면 분명 들키지 않아."
"...시종."
분명히 좋은 방법이다.
실제로 측실보다도 시종의 입장인 편이, 하나미치에게 있어서도
마음에 든다.
- 정말로 나 밋찌에게 갈 수 있는 거야?
꼭 꿈만 같았다.
눈을 뜨자 모든 것이 해결되어 있다니, 너무나 모든 것이 잘
되어서 웬지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 밖에서 똑똑 문을 노크했다.
"무슨 일이지?"
"실례합니다."
문이 열리고 아야코의 직속 여관이 입실했다. 정중히 인사를 한
그녀는 사무적인 어조로 말했다.
"아야코 님. 미토 요헤이 전하가 오셨습니다."
"어머, 오늘은 빠르네. 곧장 여기로 들여보내줘. 아아, 그렇지.
하나미치의 의식이 돌아왔으니까 의사도 부르고. 가벼운 식사도
준비해 줄래?"
"알겠습니다."
여관은 인사를 하며 방을 나갔다.
"요헤이는 여기에 자주 왔나요?"
"그래. 투신자살을 꾀한 하나미치를 재빨리 내가 데려왔으니까,
그 이후 매일 병문안을 와주었어. 고맙다고 말해."
아야코가 말을 끝냄과 동시에 문이 홱 열렸다.
"하나미치!"
"요헤이?"
"이 바보자식!"
요헤이의 무서운 모습에 놀라서 황급히 상반신을 일으킨 하나미치는,
다음 순간 주먹을 뻗어온 요헤이에게, 힘껏 뺨을 얻어맞았다.
아픔보다도 놀라움이 먼저 하나미치를 강타했다.
"너 어째서 자살 같은 걸 시도한 거야!"
"웃."
"웃이 아냐. 웃이! 엉!?"
멱살을 쥐고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잠깐만 전하! 하나미치는 머리를 다쳤어요!"
아야코의 목소리에 퍼뜩 놀라서, 황급히 요헤이는 손을 놓았다.
그리고 아랫입술을 깨물고, 얼굴을 한 손으로 감싸며 고개를 숙였다.
"요헤이...?"
"...보지 마!"
고함을 지르고 요헤이는 등을 돌렸다.
그의 등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요헤이..."
- 설마 울고 있는 건가...? -
지금까지 요헤이의 우는 얼굴을 봤던 것은, 5년 전에 마을에서
헤어진, 그때 한 번뿐이었다.
드문 눈물만으로도, 자살미수가 요헤이에게 끼친 충격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 밋찌만이 아냐. 내가 죽으면 슬퍼해주는 놈이 이렇게나 많아 -
그런데도 아무 생각없는 바보였다.
"요헤이."
그의 등 뒤에서, 하나미치는 충동적으로 끌어안았다.
요헤이의 몸이 움찔 떨렸다.
"...하나미치?"
"미안해, 요헤이. 이제 그런 바보같은 짓 안할게. 약속해."
눈물을 닦고 돌아본 요헤이는 안겨 있는 채로 하나미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요헤이...?"
"적극적인 네가 자살할 정도로 괴로웠던 거냐... 때려서 미안해.
사과할 쪽은 나야."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
보통때의 침착함으로 돌아온, 하나미치가 익히 알고 있는, 너무
좋아하는
요헤이의 얼굴이었다.
"나쁜 건 전부 아버지야. 네가 아냐. 꾸짖어서 정말로 미안."
아버지라는 말에 하나미치는 얼굴을 찡그렸다.
"...저기, 요헤이. 루카와, 정말로 그... 이상해진 거야?"
"아아, 자업자득이야."
루카와는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경멸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나 때문이야...?"
"자업자득이라니까. 설마 너, 그런 놈을 동정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건 아니지만... 하지만 역시 뒷맛이 개운치 않은 그런
거야..."
애매한, 아무 뜻없는 대답.
하나미치의 성격을 잘 아는 요헤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만큼의 심한 짓을 당했으면서 아직 너는 그런 말을 하는 거냐?
사람 좋은 것도 적당히 해.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버렸지만, 그러지
않았다면 내가 그녀석을 뭉개버리고 너를 구했을 거야."
"헤...? 그건 무슨 의미-"
"하나미치. 너 미쯔이 형을 지금도 제일 좋아하니? 형 옆에 있고
싶어?"
갑자기 말을 막듯이 묻는 말에, 당혹해하면서도 하나미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카이난에 가. 센도 형은 마음에 안 들어할지도
모르지만 무시하면 돼. 내가 전부 수배해줄게."
"요헤이..."
"너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줄게. ...그게 내 역할이야."
진지한- 이 이상 없을 정도로 진지한 시선.
하나미치는 그 눈동자에 깃든 특별한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고,
단순히 '좋은 친구'라고 감동했다.
"...미쯔이 형은 비굴한 점이 없고,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남자야. 너의 선택은 틀리지 않아."
그것만 말하고 요헤이는 뭔가 털어냈다는 듯이 일어서서,
하나미치를 카이난에- 그것도 미쯔이의 옆에 있을 수 있도록
사전 교섭을 하기 위해 재빨리 방을 나갔다.

"-너는 정말 행복한 아이구나, 하나미치."
요헤이가 사라진 문을 바라보며 아야코가 중얼거렸다.
"우?"
"아무 것도 아냐. -자아, 이제부터가 큰일이야. 공적인 수속은
전부 전하에게 맡겨두더라도 소지품은 이쪽에서 준비해야지.
여행이 아니라 영주니까 짐 꾸리는 것도 고역이겠어."
"......"
"어머, 이상한 얼굴. 왜 그러니? 혹시 카이난에 가고 싶지 않은
거니?"
하나미치는 고개를 저었다.
미쯔이에게 갈 수 있는 건 정말로 기쁘다. 가능하면 지금 곧장
혼자서 날아가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아야코 상, 부탁이 있어요."
"뭔데?"
"카이난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루카와를 만나고 싶어요."
"하나미치..."
만나서 어떻게 할 생각은 없다.
이 눈으로 발광한 루카와를 확인하지 않는 한, 안심하고 카이난에
갈 수 없다든가, 자신을 사랑한 나머지 마음이 망가졌다고 하는
루카와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여행하는 것은 좀 걸린다든가, 그런
이유를 단다면 한이 없다.
하지만 정말 본심은 하나뿐.
- 반응하지 않는 루카와는 어떨까 -
알맹이가 빠진 조개같은 루카와는, 아무리 생각해도 상상이 안 갔다.
루카와는 늘, 하나미치 앞에서는 누구보다도 감정이 풍부하고, 알기
쉽고, 과격한 기질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반응이 전혀 없는 인형같은 루카와라니, 도무지 믿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

하나미치 바보... 그냥 떠나면 될텐데.
(어차피 센도의 방해공작이 있겠지만...)
다음 챕터도 여러 가지로 짜증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
이 책을 읽어서 좋은 점은, 다른 동인지의 어떤 루카와 강공이건
웬만한 건 다 견뎌낼 수 있다는 거겠죠 -_-;

PRE번 호 : 1897 / 2053 등록일 : 2000년 12월 06일 19:51
등록자 : HALKO 조 회 : 247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2권 #9
/PRE

9.

루카와는 요양을 위해, 하나미치와 처음 만났던 그 강 유역의
별궁에서, 왕비와 함께 보내고 있었다.
"-루카와 님. 자, 보세요. 아름다운 백장미지요? 온실에서
제일 예쁜 꽃을 꺾어오게 했답니다."
긴 금발을 느슨하게 등에 늘어뜨리고, 투명한 얇은 소재의
순백의 료난 풍의 드레스를 입은 피오네는, 꽃병에 손수
꽃을 장식하며 돌아보았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본 채로, 아무 반응도 하지 않는 루카와를
신경쓰지도 않고, 그녀는 소녀같은 몸짓으로 루카와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등을 기대왔다.
"...아아, 정말로 행복합니다, 나의 폐하. 겨우, 겨우 피오네만의
것이 되어주셨군요."
힘없이 팽개쳐진 루카와의 손을 잡고, 거기에 입을 맞추며 자신의
뺨으로 갖다댔다.
"저는 루카와 님만으로 충분해요. 루카와 님만 옆에 있어주신다면
다른 건 아무 것도 필요없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진짜 루카와 님과
이렇게 있을 수 있게 되었다니. 아키라 상은 이제 필요없어요.
피오네는 일생 루카와 님만을."
10년은 회춘한 듯이 보이는 왕비는 마음이 부서진 남편에게
상냥하게 계속 얘기하고 있었다.
반복해서, 반복해서-
그녀가 쇼호쿠에 시집오고 약 10년. 처음으로 맞이한 행복의
나날들이었다.

아야코의 방에서 눈을 뜨고 벌써 5일 후. 발군의 회복력으로 거의
완쾌한 하나미치는, 아야코와 함께 별궁으로 루카와를 만나러 갔다.
그러나 도착한 두 사람은 피오네 왕비에 의해, 면회를 거부당한
것이다.
제일 먼저 루카와의 아이를 낳은 아야코.
루카와가 유일하게 사랑한 하나미치.
그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루카와를 만나러 온 것이다.
겨우 독점할 수 있게 된 루카와를 이 두 사람에게만은 만나게 할 수
없다고 히스테리칼하게 지껄이는 피오네의 목소리가, 별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하나미치들에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폐하를 만나는 건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구나. 저 왕비님도 참
곤란하다니까."
아야코는 조금 어깨를 움츠렸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걸로 잘된 거라고 생각해. 그렇게
진지한 얼굴로 부탁하니까 나도 모르게 이런 곳까지 따라와 버렸지만.
이제 두 번 다시 폐하는 만나지 않는 편이 좋아. 이번 폐하의 발광은
네가 원인도 아니고 책임도 없어. 만나서 쓸데없는 죄의식을 느끼기라도
하면 일생 불행해져. 너에게 있어서도 폐하는 생각해내고 싶지 않은
과거이기도 하니까, 폐하의 일은 없던 것으로 치고 전부 잊어버려."
"...그런가요."
마지막 한 번으로 만나서, 인형같은 루카와라는 것을 보고 싶었지만,
그게 무리라면 어쩔 수 없다.
하나미치는 작게 한숨을 쉬고,
뺨을 찰싹찰싹 때리며 정신을 차렸다.
"좋아요, 돌아갈게요. 백염궁에 둔 개인 물건도 가져오고 싶고,
바쁘네요."
"개인 물건? 필요한 건 내가 새로 준비해줄게."
하나미치는 고개를 저었다.
"바꿀 수 없는 것들만 있어서요."
"예를 들면?"
"...내가 측실이 될 때, 밋찌가 준 반지라든가...뭐...그런 것..."
미쯔이가 지금까지 자신에게 준 것은 전부 백염궁에 소중하게 있다.
"그래. 분명 바꿀 수 없는 보물이구나."
살짝 뺨을 붉히는 하나미치에게, 아야코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히사시를 잘 부탁해. 어딜 가도 잘할 애라는 건 알지만, 역시
눈앞에 없으니 걱정이야. 저렇게 보여도 쓸쓸함을 잘 타고 울보라서,
하나미치가 옆에 있어주면 나도 안심이야."
"아야코 상."
아야코를 가만히 바라보며, 하나미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카이난에 가서 미쯔이의 옆에서 산다.
장소는 변해도, 이전의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이 또 이어지는 것이다.
아무 괴로움 따위 없는-
조심스럽게 문이 두드려진 것은, 그때였다.
"-사쿠라기 님, 아야코 님."
"예, 들어와요."
"실례합니다."
문을 노크하고 입실한 것은, 루카와 직속 시종인 쿠와타였다.
"어, 쿠와타 아냐?"
"오랜만입니다. 설마 사쿠라기 님이 루카와 님을 병문안 와주실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트...특별히 병문안 같은 걸로 온 건 아냐. 그녀석의 뒈진 얼굴을
보러 온 것뿐이야."
"...루카와 님을 원망하고 계십니까?"
"그래."
대답을 듣자 쿠와타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십니까. 그것도 어쩔 수 없지요. 그분은 너무도 감정 표현이
서툴고- 올바른 사랑법을 모르는, 요령 없는 분이시니까요."
"그런 게 아냐. 그놈은 날 미워하고 있어."
딱 잘라 단언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처음에는 조금은 날 좋아했었는지도 모르지. 나도 그녀석의 고백을
의심하지 않았어. 하지만 이렇게 겨우 루카와에게서 떨어지고 나서
진정하고 상황을 잘 생각해 봤는데, 역시 그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처음에는 어쨌건 내가 밋찌의 측실이란 걸 알고부터는, 그놈은 확실히
날 미워하고 있다구. 그렇지 않으면 그런 심한 짓은 설명이 안돼.
날 좋아한다면 좀 더 그... 상냥하게 해주었어야지. 그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취급은 커녕, 인간 취급도 아냐."
"사랑으로 인한 질투였겠지요."
"질투? -설마 아무리 변태인 그놈이라도 그건 아니겠지."
하나미치는 얼굴이 경련을 일으키며 굳어졌다.
"사쿠라기 님?"
"미인이고 상냥한 데다가 마음씨까지 좋은, 기적같은 최고의 밋찌지만,
친아들이잖아."
"친아들이기 때문에 타인 이상으로 질투한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그럼... 정말로 루카와 녀석은 밋찌를 좋아했던 거야?"
"-하?"
어이가 없어진 아야코와 쿠와타는, 한참동안 간신히 하나미치의
착각을 깨달았다.
하나미치는, 루카와가 미쯔이를 좋아하고, 그 미쯔이의 측실이기
때문에 하나미치를 괴롭힌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미치의 너무도 비약의 비약을 거듭한 상상에, 아야코는 벌려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아야코 상?"
"바...바보니, 너!? 폐하는 널 좋아하고, 그런 너의 사랑하는 사람인
히사시를 질투한 거야! 지금까지 도대체 폐하의 어디를 봤던 거야!?
나 처음으로 폐하를 동정할 지경이야."
바보라고 들은 하나미치는 화가 나서 입술을 삐죽댔다.
"사쿠라기 님... 정말로 루카와 님의 기분을 의심하고 계시는군요."
"의심도 뭣도 없이, 그놈은 나 같은 거 사실은 좋아하지 않아."
쿠와타는 곤란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하나미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순간적인 망설임 후,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카이난에... 미쯔이 전하가 계신 곳으로 떠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보여드리고 싶은 물건이 있습니다."
"응?"
"별실까지 같이 가주시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거절할 이유도 없어서 하나미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는 것은 넓은 방 한가운데에 한 개만 높인, 비싼 유리 케이스,
다가가서 안을 보자 겉옷이 한 벌 놓여 있었다.
"이건..."
그 존재조차도 지금의 하나미치는 깨끗히 잊고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 본 기억이 있다.
아직 루카와에게 고백당하기 전. 루카와를 친구로서 인식하고
즐겁게 보냈던 무렵의, 하나미치가 그에게 선물한 수제 겉옷이었다.
"...루카와 님은 축하회 날에 사쿠라기 님을 감금하실 때까지,
매일 여기에 오셔서 몇 시간이고 이 겉옷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부드럽고 따스한 폐하의 얼굴을 본 것은, 같이 자라온
저도 그때뿐이었습니다."
쿠와타는 루카와의 젖형제이기도 했다. 왕족은 보통 유모에게
키워지고, 센도와 미쯔이에게도 각기 젖형제가 있었다. 현재 왕족
중에서, 친새엄마의 모유로 자란 것은, 평민으로 자란 요헤이뿐이다.
"루카와 님은 정말로 사쿠라기 님을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욕심 없는 루카와 님이, 단 하나 원한
것이 사쿠라기 님이셨습니다. ...요령 없는... 너무도 요령 없는
루카와 님이십니다. 어려서 왕위를 잊고, 친한 친구도 없는 채로
감정을 억누르는 기술만을 배우며 자란, 고독한 분이십니다.
올바르게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모르셨던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아무도 루카와 님에게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
"그렇다고 해서 그분을 용서하라고는 말할 수 없지요. 하지만...
루카와 님의 일생에 한 번뿐인 진실한 사랑만은 인정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폐하가 너무도 가엾습니다."
"...그런 건 몰라. 그녀석에게 어떤 과거가 있더라도, 밋찌와 내게
한 짓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거야."
고개를 숙인 하나미치는, 꼬옥 주먹을 쥐었다.
"...나도 처음에는 루카와를 조금이지만 좋아했었어. 이 별궁에서의
시간은 정말 즐거웠어. 그녀석을 좋은 놈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까 배신한 건 용서할 수 없어."
"폐하는 당신을 좋아하셨을 뿐입니다."
"그게 배신이야! 나는 그녀석을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믿었는데...
그놈은... 그놈은..."
"사쿠라기 님..."
"멋대로 그녀석만 다른 의미로 '좋아'하게 되버렸다는 게, 그게
최저의 배신이 아니고 뭐야?"
하나미치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루카와의 사랑을 부정하는 것만은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을, 루카와의 사랑에 대한 멀리 돌아간 긍정이라고 받아들인
쿠와타는, 눈동자에 눈물을 글썽이며 깊숙이 머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인사 따위 하지 마! 나는 루카와가 정말 싫어!"
"감사합니다."
"그만해!"
"감사합니다."
"우... 젠장. 이젠 몰라!"
하나미치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발길을 돌렸다.

루카와와의 대면을 단념하고, 돌아가기 위해 별궁의 야외 복도를
걷고 있던 하나미치와 아야코는, 정원에 있던 루카와와 피오네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걸음을 멈춘 하나미치는, 루카와와 왕비의 일견 화목해 보이는
모습을, 떨어진 장소에서 가만히 바라보았다.
- 루카와... 변했어 -
이전의 선열한 분위기는 모습을 감추고, 마치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과도 같아서, 지금은 존재감이 없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십중팔구 인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미치 앞에서는 첫대면 때부터, 루카와는 존재감이 넘치다 못해
불손한 남자였다.
처음으로 보는, 살아 있는 시체라고 불러도 좋을 그를 보고,
멍하니 생각했다.
- 그런가... 이렇게 될 정도로 루카와 놈은 날 좋아했던 거야 -
그렇다고 해도 루카와가 한 짓은 용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 끝났어 -
뭐가 뭔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 악몽은 끝났다.
루카와는 꿈의 세계의 거주민이 되었고, 자신은 결과적으로
복수를 했다.
벌을 받은 루카와를 본 것으로, 가슴 속의 커다란 얼음조각이
천천히 용해되어 갔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루카와의 마음을 망가뜨린 원인이 된 일로,
마음이 아팠다.
자신이 받은 폭행의 횟수는 이번 기회에 어떻게 되도 상관없지만,
미쯔이에게 행한 폭력- 그리고 핑계 좋은 국외추방은, 간단하게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루카와가 폐인이 되어야 할 정도의 커다란
죄였던 걸까...?
가슴으로 날아오는 여러 가지 감정을, 꼭 눈을 감고 떨쳐내며,
후... 한숨을 쉬었다.
- 이제 전부 끝난 거야 -
타국의 왕가로 들어가버린 미쯔이가 쇼호쿠에 돌아올 수는 없지만
이제 분노는 없다.
- 여기에 와서 다행이야... -
루카와를 계속 미워하며 카이난으로 가지 않은 게 정말로 다행이다.
하나미치의 뺨에, 한 줄기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그것을 거칠게
문지르며 표정을 다잡았다.
"...안녕, 루카와."
이제 두 번 다시 루카와를 만날 일은 없겠지.
하나미치는 과거를 떨쳐내듯이 중얼거리며 떠나려던- 그 순간.
"헤!?"
뭐라고~~~!?
하나미치는 눈을 크게 떴다.

"멍청이!"
하나미치의 일에 관해서는 지옥귀인 루카와 폐하.
제정신을 잃었을 루카와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희미하게
들린 하나미치의 목소리의 출처를 찾아서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다.
"루카와 님!?"
옆에 달라붙어 있던 피오네가 놀라서 목소리를 높였다.
"...있다."
떨어진 장소에서 멍청히 이쪽을 보고 있는 하나미치를 발견하고,
순식간에 루카와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다.
루카와의 시선 앞에, 하나미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왕비는,
안색이 죽었다.
"시... 싫어... 가시면 싫어요, 폐하!"
팔을 붙잡으려는 처를, 루카와는 마구 옆으로 밀치며, 그 몸을
날렸다.
그리고 하나미치 쪽으로 화단을 마구 밟으면서 달려온 것이다.
"허억..."
그 자리에 못박혀 있던 하나미치는, 방금까지와는 틀린 의미로
제정신이라고 할 수 없는 루카와의 상태에, 한발한발 물러서기
시작하다가, 잡히기 직전에 간발의 차로 달아났다.
"기다려, 멍청이!"
"싫어!"
"멍청이!"
"히익!"
인간같지 않은 속도로, 두 사람은 정원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 어째서!? 어째서어째서어째서어째서!! -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하웃!"
- 이런! -
나무뿌리에 발이 걸린 하나미치는 요란하게 넘어졌다.
"...아야... 우와!"
넘어진 하나미치의 위로 루카와가 덮쳐왔다.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물리치지도 못하고 꼬오옥 괴력으로 끌어안겼다.
"너...너...너! 미쳤던 게 아니었냐!"
지금도 거의 광인이지만 종류가 다르다.
"나를 위해 살아돌아와 주었구나, 멍청이."
"누가 널 위해서!"
"이제 두 번 다시 그런 바보같은 짓은 하지 마."
"시끄러워! 전에 너 내가 죽어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했잖아!"
그 뒤 박제로 만든다고도 말했었지만.
"이제 말하지 않아."
"우!"
"거짓말이라도 그런 말 절대 못해."
진지한 어조에 하나미치는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었다.
"네가 어떻게 되면 나도 끝이야."
"루...카와..."
루카와의 탄생일 이래 잔혹한 말만 들어오며 구박받아온 하나미치는,
갑작스런 상냥한 말에 당황했다. 그리고 돌연히 생각이 났다.
- 이...이녀석, 나...나를 조...조...조...좋아하는 거야 -
하나미치는 뺨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멍청이?"
"...하...하지만 나는 너 따위 좋아하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건
언제까지나 일생 밋찌뿐이야."
순식간에 루카와의 표정이 돌변했다.
"또 너는 놈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거냐!"
퍽!
"...윽."
뺨을 있는 힘껏 얻어맞은 하나미치는 뇌진탕을 일으키며 녹초가
되었다.
루카와가 폭력을 휘두르는 단계가 되자, 지금까지 멍청히 보고만
있었던 아야코가 황급히 뛰어들었다.
"그만해요! 하나미치는 병중이예요!"
완치해 있다고는 해도, 5일 전까지는 머리를 맞아서 의식불명이었다.
병중인 것은 틀림없다.
"너는 빠져 있어!"
"아니요! 제정신으로 돌아온 것 같으니까 오늘에야말로 확실히
말하겠어요! 하나미치를 찾아낸 것은 당신의 아들이예요! 왕족의
이혼은 인정되지 않고, 측실이라고 해도 맞이한 왕족측이 바라지
않는 한은 함께 있는 거예요! 하나미치는 히사시가 맞아들인
측실이니까 히사시가 그것을 바라지 않는 한, 당신의 것은 될 수
없어요!"
루카와의 원래부터 하얀 얼굴이, 한층 핏기를 잃고 더욱 더
새하얘졌다.
"...이제 그만둬요. 하나미치를 히사시에게 돌려보내 주세요.
그게 제일 좋아요. 하나미치를 위해서도, 당신을 위해서도-"
- 아야코 상 -
아야코의 말에 감동해서 하나미치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루카와는-
"말하고 싶은 건 그뿐인가."
갑자기 그녀의 긴 흑발을 잡아당겼다.
그대로 힘껏 잡아당겨서 쓰러트렸다.
"아욱.
.."
"너는 그 쓰레기의 모친이었지. 깜박 잊고 있었다."
말하자마자 그녀를 걷어찼다.
"아야코 상!"
황급히 아야코를 감싸려 했지만 시간이 없었다.
- ! -
복부를 걷어채인 아야코는 몸을 웅크리며 고통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 그녀에게 용서없이 루카와는 두 번째를 반복했다.
"히이!"
거기에 비명을 지른 것은 아야코가 아닌 보고 있는 아야코 쪽이었다.
이번에는 어깻죽지를 채인 아야코는, 환부를 손으로 움켜쥐고 이를
악물며, 말없이 루카와를 노려보았다.
"...흐-응. 비명도 지르지 않는군. 그 근성만은 칭찬해주마. -허나."
퇫 하고 아야코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모처럼 내 아이를 낳게 해줬는데 저런 쓰레기밖에 낳지 못한
도움도 안 되는 쓰레기 계집. 너같은 측실은 이제 필요없다. 짐을
꾸려서 오늘중으로 궁전에서 나가라."
20년 가까이 부부로 살았던 측실에게, 루카와는 차갑게 말했다.
- 너...너무해... -
여성에게... 그것도 아이까지 낳은 사이인 여성에 대한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야코에 대한 관심을 잃은 루카와는, 아직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채인 하나미치의 두 팔을 거칠게 쥐고 끌어올려, 그대로 그 거체를
어깨에 짊어졌다.
그리고 커다란 목소리로 측근의 이름을 불렀다.
"쿠와타!
쿠와타 있는가! 금염궁으로 돌아간다! 쿠와타!"
"루카와 님!"
피오네가 갑자기 몸을 내던지듯이 진로를 막았다.
"...피오네?"
땅바닥에 양손을 짚은 그녀는 필사적인 표정으로 루카와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만해 주세요. 그런 출신도 알 수 없는 커다란 남자의 어디가
좋다는 겁니까. 당신같은 고귀한 분에게 평민 여자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유곽의 남창이라니, 어울리기 이전의 문제입니다."
경멸하는 듯한 시선으로 하나미치를 바라보았다.
"...가축이나 소만도 못한 더러운 빨간머리 남창! 루카와 님, 하천한
인간을 상대로 해서 자신을 낮추는 짓은 이제 그만해 주세요. 저는
사랑하는 폐하가 더럽혀져 가는 것을 이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미치만이 아닌, 창부였던 아야코와 평민이었던 하루코를
포함해서 말하는 경멸. 하지만 아들인 센도 앞 이외에는 말수가 적었던
왕비가 드물게 말하는, 흔들림없는 진심이었다.
피오네는 펑펑 눈물을 흘리며 루카와에게 손을 뻗었다.
"부디... 부디 눈을 뜨셔서 저만의 폐하가 되어주세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유일한 피오네를 사랑해 주세요... 부탁입니다..."
처의 처절한 외침에 대해서, 루카와는 차가운 시선을 던졌을 뿐이었다.
"방해된다, 비켜."
"폐하! 그 하천한 남창에게 제 어디가 뒤진다는 말씀입니까!?"
발을 붙잡으려는 피오네를, 혹독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료난의 왕매가 아니라면 누가 너같은 하찮은 여자 상대로 하겠나.
아야코처럼 채이고 싶지 않으면 멍청이에 대한 험담은 이 이상 하지 마라.
이녀석을 욕해도 되는 건 나뿐이다."
눈을 동그랗게 뜬 피오네는 다음 순간 큰 비명을 지르며 엎디어 울기
시작했다.
- 대체 뭐가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
하나미치는 루카와의 어깨 위에서 거의 멍해져 있었다.
- 나는 여기에 루카와의 멍청한 얼굴을 보러 왔을 뿐인데. 그리고 나서
곧장 밋찌에게 가는 거였어. 그런데... 어째서 나는 루카와에게 들려
있는 거지? -
급격하게 상황이 변한 이 사태에, 혼란은 극에 달했다.
루카와는 얌전한 하나미치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이, 하천한 남창."
"우!?"
"나의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기회로, 이런 곳까지 어슬렁어슬렁
산보를 하면서 또 남자 사냥이라도 하고 있는 거 아니었나."
"너는 왜 그렇게 이상한 식으로 억측을 하는 거냐!"
"너는 거짓말장이에 음란하니까 믿을 수 없어."
"뭐뭐뭐."
새빨개져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뻐끔뻐끔 입을 움직였다.
"-폐하!"
그때 루카와의 목소리를 들은 쿠와타가 기쁜 듯이 궁전에서 달려나왔다.
"제정신으로 돌아오신 겁니까! 다행입니다!"
"요 최근의 기억이 확실하지 않다. 나는 며칠이나 놀고 있었나."
"오늘로
정확히 반 개월째입니다."
루카와는 그것을 듣고는 혀를 찼다.
"반 개월이라... 슬슬 진행할 때로군."
"폐하?"
"내일 자식들 이외의 상층부를 금염궁으로 소집해라."
"옛."
가슴에 손을 얹고 쿠와타는 국왕에 대한 예를 올렸다.
루카와는 완전히 원래대로 되돌아갓다.
쿠와타에게 잠시 의식을 집중한 루카와지만, 다시 입가를 비틀며
하나미치에게 말했다.
"돌아가면 곧장 안아주마. 바람피우지 않은 게 사실이라면,
쌓였을 테니 너도 분명 기쁘겠지. 좋아하지 않는다면 바람피운
거라고 판단하고, 두 번 다시 다른 남자에게 엉덩이를 대주는 것
따위는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로, 성 공포증 같은 벌을 충분히
내려주겠다."
"허...헛소리 하지 마! 나는 두 번 다시 그런 생활로 돌아갈
생각 없어! 놔!"

이렇게 해서 루카와는 완전히 부활을 달성했고, 하나미치는
짧은 휴식을 끝내고, 다시 금염궁의 최상층에 감금된 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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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불능 닭대가리 하나미치...
괜히 하나미치의 마음을 흔들리게 한 괘씸한 쿠와타...
왕재수 피오네...
(뭐라고! 센도가 이제 필요없다고!!! 이런 나쁜!!)
(←언제는 여기 센도 싫다고 바락바락 우기지 않았었나;;)
(그래도... 역시 원작의 캐릭터 사랑이...-_-;)
결정적으로 악당의 악당 루카와...(바득바득)
이번 회에서 멋진 건 아야코뿐이군.
아야코를 구타하다니 이런 쳐죽일 루카와 놈 \./+
(저 아야코 팬이거든요)
(차라리 피오네를 구타하지 그랬냐, 루카와...)
제가 이짓을 아직도 계속하는 이유는, 이젠 단 하나뿐.
재미있어서도 아니고, 이왕 한 거 끝까지 해보자는 오기도 아니고
(재미야... 있죠. 하지만 번역 과정은 전혀 재미있지 않아요;;)
미리 해둔 3, 4권이 너무 아까워서. 단지 그것뿐입니다.
그거 안해뒀으면 진작에 때려치웠죠;;
욕 먹어가면서 이런 스트레스 만땅을 계속 번역하겠습니까.
아아... 나는 어째서 그런 쓸데없는 짓을...T_T
(←그땐 2권의 위력을 몰랐잖아...)
그러나...
결국 어쩌고 저쩌고 바로크를 욕해도
그 사람의 다른 작품도 돈주고 사서라도 읽고 싶다는
제가 밉습니다(풀썩)
(이미 사쿠라혹성까지 주문하다...;;; 나 왜 이러니 T_T)
하지만 아무리 바로크 것이 보고 싶어도 원작 설정은 절대사절.
패러렐이라면 그럭저럭 참고 재미있게 봐줄 수 있지만
단지 거기까지입니다. 원작에서 농구하는 설정의 바로크는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사랑은 끝없이... 압권이었다 -_-;)
(압권은 그것만이 아니었지... 단편집은 또 얼마나 대단했는가)
(그거 빨랑 어딘가에 팔아버리고 싶어 T_T 누가 좀 사주세요!)
그래도 슬램덩크 인물들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보면 이만큼
제 취향인 작품도 없습니다.
(역사물 + 할리퀸 + 강제마 질투마 등장 + 순진무구 히로인)
경국은 제겐 좀 버겁지만... 후궁물어가 딱 제 취향에 부합!
만약 경국 루카와의 배역이 루카와가 아닌 다른 오리지날
캐릭터라면, 아니면 그냥 비중있는 조연이었다면 전 이 캐릭터를
꽤나 좋아했을지도 모르지요.(*간씬도 좀 자제해주면 더 좋고)
이 작가의 오리지날도 읽고 싶은데... 음냐...


PRE번 호 : 1898 / 2053 등록일 : 2000년 12월 06일 19:53
등록자 : HALKO 조 회 : 214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2권 #10
/PRE

10.

하나미치가 감금된 다음날.
흑염궁에서 요헤이는, 믿을 수 없는 보고를 부하에게 듣고 있었다.
"군부가 국왕의 명령으로 은밀히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고?
지금 와서 대체 어디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는 말이냐!"
"...그것이 그... 카이난 같다고..."
"하아!? 형이 부마로 들어가서, 카이난과 평화를 맺은 게 아닌가!"
"저도 곧장은 믿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 그렇다면 카이난의 왕가로 들어간 형은 어떻게 되지...?"
부마로서라고는 해도 입장은 누가 뭐래도 인질에 가깝다. 지금
쇼호쿠 쪽에서 전쟁을 걸면, 십중팔구 복수라는 본보기를 위해
미쯔이를 죽일 것이다.
"...설마 저 아버지가 처음부터 미쯔이 형이 부마로 들어가서
방심하고 있는 카이난을 칠 생각으로...?"
그렇다. 분명 그럴 것임에 틀림없다. 그자라면 분명 한다.
"...미쯔이 형을 죽게 내버려둘 셈인가."
아이는 도구라고 말한 아버지.
그 말대로 확실하게, 그 남자는 실행하려고 하는 것이다.
부친의 끝모를 냉혹함을 깨달은 것 같아서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 무렵 하나미치는, 겨우 망연자실한 경지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미쯔이에게 갈 생각이었는데, 거짓말같은 단순함과 바보스러움
때문에, 즉각부활을 달성한 루카와에게 다시 감금되어, 하룻밤을
울며 지새웠다.
그리고 날이 밝자, 루카와가 일 때문에 방을 나간 그 후, 갑자기
막힌 것이 한번에 터졌다-라기보다는 폭주한 것이다.
"...잘 생각해 보면 나는 천재가 아닌가. 이 멋진 쇼호쿠 남아인
사쿠라기 하나미치가 뭐가 슬퍼서 이런 곳에서 하염없이 약하게
울고 있어야 하는 거야?"
자신에게 있어서 미쯔이의 말은 신의 말.
미쯔이는 함께 카이난으로 가자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자신은 가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이 빠른 기분전환은, 정말이지 미쯔이와 잘 어울리는 부부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물거리는 건 이제 끝이다!"
"-사쿠라기 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입구 바깥에서 보초가 걱정스러운 듯이 말을 걸어왔다.
반 개월 전 하나미치의 자살미수 사건 이후, 하나미치가 다시
똑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늘 그들은 걱정하고 있었다.
자살미수 직후의 소동은, 하나미치는 의식불명이었기 때문에
몰랐지만, 큰일이었던 것이다.
하나미치의 안부가, 그대로 국왕의- 나라의 안부와도 직결된다는
것을 통감한 그들은 굉장히 신경질적이 되
어 있었다.
- ...그래! 죽는다고 말하면 문을 열어줄지도! -
창문은 루카와의 명령에 의해, 열리지 않도록 철판이 막혀 있지만,
시트를 사용해서 목을 매다는 등, 마음만 먹으면 죽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어젯밤도 하나미치는 루카와에게 호되게 혹사당해서 비명을 계속
질러댔고, 바로 조금 전까지 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자살한다고 하면 분명 그들이라도 믿을 것이다.
- 과연 천재, 명안!! -
빠른 게 최선이라고, 방금 생각한 일을 즉각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후웃 하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런 생활 이제 싫어! 죽어버릴 거야!"
하나미치의 자살을 경계하고 있던 보초는, 예상대로 그 대사에
놀랐다.
"사쿠라기 님! 성급하게 굴지 마십시오!"
찰칵찰칵 황급히 열쇠를 돌리는 소리가 났고, 굉장한 기세로 바닥의
문이 튕겨지듯이 열렸다. 그리고 보초가 얼굴을 내민 순간-
"비켜!"
퍼억!
남자를 세게 때리고, 하나미치는 드디어 탈주에 성공했다.

"우아아아아아! 비켜비켜비켜!"
커다란 쇠공을 질질 끌면서, 하나미치는 금염궁 안을 마구 달려가고
있었다.
"꺄아아!"
"사쿠라기 님, 기다려 주십시오!"
"빨리 붙잡아!"
금염궁의 사람들은 술래잡기를 계속했고, 하나미치는 도중 몇 번
잡힐 뻔했지만, 최상층에서 밑으로 밑으로 도망쳐갔다. 그리고
문득 깨닫자, 1층을 지나쳐서 지하실까지 내려와버린 것이다.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어, 지하창고로 뛰어들어가서 문을 닫은 뒤,
머리를 감싸쥐었다.
- 이런! 지하실은 도망칠 곳이 없는데! 나는 바보바보바보! -
천재라고 생각했다가 바보라고 생각했다가를 하면서 분주한,
덫에 걸린 쥐.
지하로 추격자의 발소리가 가까워져 왔다.
절대절명의 이 사태. 탈주는 실패로 끝나버린 건가!?
- 윽! 도망칠 장소는 커녕 숨을 곳조차... 어? -
머리를 쥐어뜯으며 위를 올려다본 하나미치는, 천장의 통풍구를
발견했다.

하나미치가 도망치고 있을 무렵, 같은 금염궁의 동쪽에서는,
센도의 방으로 요헤이가 찾아왔다.
"평화를 위해서라는 건 겉보기야. 요헤이의 해석대로, 처음부터
아버님은 방심한 카이난을 칠 생각으로 형을 부마로 보낸 거야."
"그러면 미쯔이 형은 어떻게 되는 거야!"
"죽겠지."
"!"
"연적을 단지 죽이는 게 아니라 최대한 이용해먹으려 하다니,
야비하다고 해도 좋겠지. 아버님이 형에게 살의를 품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유도 없이 왕자를 죽일 수는 없고, 타국에서 죽게 해서
게다가 나라까지 받으려고 하다니, 잘 생각한 거야. 최근 혹시나
바보가 아닌가 생각하기 시작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우리 아버지는
유능해."
"그...그런, 쇼호쿠의 국민들이 입 다물고 있을 리가 없어! 미쯔이
형의 인기를 아버지도 알고 있을 거라고!"
"그것도 아버지의 계산내에 있어. 다소는 국민도 불신감을 품겠지만,
형에게 직접 손을 대서 살해하는 건 카이난 측이야. 어차피 구체적인
일 같은 건 무지한 대다수의 국민이 알 리가 없고, 진실은 하나,
'카이난에서 미쯔이 왕자가 살해당했다'로 충분한 거지. 복수전이라는
명분으로, 본격적으로 선전포고도 하고, 국민감정도 고조시킨다.
일석이조야. 아버님은 이전부터 해외와의 교역이 편리한, 국제적인
항구를 가진 카이난을 탐냈어. 거기에 카이난을 공략할 수 있다면,
사실상 쇼호쿠가 대륙 제일이야. 형을 희생하는 것만 눈감으면,
바라마지 않는 기회라고 생각해."
센도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말투, 요헤이의 얼굴이 흐려졌다.
"...너 설마 알고 있었던 거야?"
"아버님이 형을 죽도록 내버려두고, 카이난을 수중에 두려고 한다는
것? 당연히 알고 있었지. 나는 왕태자, 차기국왕이야. 요헤이조차
쥘 수 있었던 정보, 내가 모를 리 없잖아."
"!"
요헤이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센도를 보았다.
"뭘 놀라는 거야?"
"...너 알고 있었다고? 우리들의 형이 아버지에게 살해당하게
생겼어. 한시라도 빨리 뭔가 손을 써서 미쯔이 형을 구해야
하는데 어째서 가만히 있었던 거야!"
센도는 의자에서 일어나 요헤이 쪽으로 걸어왔다.
"형...?"
요헤이의 턱을 쥐고 들어올리며 얼굴을 가까이 접근시켰다.
"-요헤이. 너는 말야. 좋/은/녀/석/이야."
"...아?"
"나는 말야. 새하얗고 더러움 없는 좋은 아이예요, 라는 얼굴을
하고 있는 너를 보면 가끔 굉장히 화가 치밀어."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형은 빙긋 미소지었다.
"궁정에서 살게 된지 몇 년째지? 언젠가는 왕제로서 나의 수족이
되어주어야 할 텐데, 언제까지나 순박한 농촌 소년으로 있어준다면
나로서도 곤란해. 슬슬 왕족으로서의 방식을 기억해 둬야지.
그렇지 않으면 너까지 언젠가 형처럼 될지도 몰라."
"...큭."
"이제 형을 편드는 건 그만둬. 그 사람의 운명은 아버님을 적으로
돌린 시점에서 끝난 거야. 실추한 형의 편을 들어도, 득되는 건
아무 것도 없어. 처음부터 없었던 걸로 생각하고 형의 일은 잊어."
"이 자식!"
때리려고 치켜올려진 요헤이의 손을, 간단히 막은 센도는, 지금껏
보인 적이 없는 차가운 시선으로 동생으로 보았다.
"언제까지 보통의 가족놀이를 할 셈이냐. 우리들 선민은, 아랫것들과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 부자, 형제간에 서로 죽이는 것도 당연한
일. 그런 거지. 언제까지나 하계의 환상을 꿈꾸며 혼자서 순수해질
수는 없어. 절대자인 아버님과 내게 거역해도, 손해보는 건 네 쪽이야.
-형으로서의 선의의 조언이다. 미쯔이 히사시에게서는 깨끗이 손을 떼."
"센도 형은 바보자식이야!"
요헤이는 벌떡 일어서서 형의 방을 뛰쳐나갔다.

믿을 수 없어!
뭐야, 저 자식!
뭐야, 저 자식!
뭐야, 저 자식!
요헤이는 복도를 전력질주하면서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센도는 미쯔이의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도중에 형제로 합류한 자신 이상으로, 센도와 요헤이의 사이에는
신뢰가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 우리 세 사람은 어떤 형제보다도 사이가 좋고, 주위에서 멋대로
파벌싸움을 하면서 비교하는 것도 전혀 관계없이, 누구든 부러워하는
형제고... 형제고 -
"저 자식, 미쯔이 형을 좋아한다고 말했잖아. 세계에서 제일 좋다고,
아버님에게는 거역해도 형에게는 거역할 수 없다고 말했잖아."
그런데 어째서-?
그것은 거짓말이었나.
거짓말?
지금까지 셋이서 쌓아왔던, 세 왕자의 끈은 전부 거짓말-?
"...큭."
정신적인 충격으로 토할 것 같아서 멈춰섰다. 요헤이는 그대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사람 없는 방으로 뛰쳐들어가 주저앉고는,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뭐가 나라야. 뭐가 왕이야, 궁정이야. 그런 거 전혀 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 그런 것 때문에 손바닥 뒤집듯이 친형을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게 왕족이라면 그런 것 되고 싶지도 않아."
"친형을 죽도록 내버려둬!? 그게 무슨 소리야!"
"......허?"
요헤이는 웅크리고 있던 시선 앞- 바닥 밑의 작은 통풍구에서, 먼지
투성이의 얼굴만 내밀고 있는 하나미치를 발견하자 경악했다.

요헤이의 도움으로 겨우 하나미치는 통풍구에서 기어나왔다.
하나미치의 오른쪽 발목에 차여 있는, 비인도적인 족쇄를 보고
요헤이는 격분했다.
"아버지 녀석, 하나미치에게 또 이런 것을 달다니!"
"그런 건 어떻게 되도 좋아! 그보다 친형이라니, 밋찌를 말하는
거야!? 죽도록 내버려두다니 무슨 소리야!"
목을 조를 듯한 기세로, 하나미치는 요헤이의 멱살을 쥐었다.
"...하나미치."
"응?"
요헤이가 응시하고 있는 것은, 잠옷만 걸친 반라의 상반신.
하나미치의 몸에 온통 박힌, 능욕의 빨간 낙인과 폭행의 파란
멍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하나미치는, 요헤이의 멱살을 잡은 손을 떼고,
황급히 잠옷을 여몄다.
"요...요헤이?"
"...제길."
요헤이는 고개를 떨구며 주먹을 떨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고, 하나미치는 놀랐다.
"내가 좀 더 빨리 너를 카이난으로 보냈더라면... 내가 우물거려서
또 아버지 따위에게 너를..."
"아...아냐! 내가 루카와를 만나러 가서는 안되는 거였어! 하지만 봐,
이렇게 해서 천재답게 혼자 힘으로 탈출했잖아! 나 이대로 카이난으로-"
퍼억!
갑자기 벽을 친 요헤이에게, 하나미치는 놀랐다.
"아버지도 형도, 왕족 따위 전부 역겨워! 하나미치! 같이 여기서
도망치자!"
"헤!?"
"이제 궁정에는 정나미가 떨어졌어. 우리 둘이라면 분명 마을에 있던
때처럼 즐겁게 살 수 있어. 둘이서 바다를 건너서 아무도 우리들 따위
모르는, 아무도 쫓아올 수 없는, 훨씬 먼 곳으로 가자."
"요...요헤이?"
"일단 흑염궁으로 돌아갈 것까지도 없어. 여기서 하나미치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신의 도우심이야. 가자."
"자...잠깐 기다려! 나 밋찌에게 갈 거야!"
요헤이는 퍼뜩 눈을 크게 떴고, 잠시 후에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눈을 떨구며 자조의 웃음을 띄웠다.
"...그런...가. 그렇구나. 나하고 갈 생각이 없다니. 미안해,
이상한 말을 해서."
"특별히 요헤이와 가고 싶지 않다는 게 아냐. 하지만 나 그...
밋찌를 위해서 살아가기로 결심했으니까..."
"...그렇게까지 신용해도 괜찮은 거냐."
요헤이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아?"
"미쯔이 형도 왕족으로 자랐어. 아무리 믿어도, 유사시에는 버릴지도
몰라. 그놈들은 마음 속으로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 모를 인종이야."
"요헤이!"
하나미치는 나무라듯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밋찌는 그렇지 않아. 밋찌의 험담을 말하면 요헤이라도 용서 안해."
한순간의 공백.
요헤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미쯔이 형은 너를 위해 국왕에게도 거역한 남자지. 그녀석은
아버지들과 틀려."
"그래. 밋찌는 얼굴과 똑같이 마음씨도 고와."
미쯔이에게 심취한 하나미치의 말에, 요헤이는 슬픈 표정으로 하나미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소중한 너를 지금의 미쯔이 형에게 보낼 순 없어. 카이난에
가다니, 뻔히 알면서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에?"
"-곧 쇼호쿠는 카이난에 전쟁을 걸 거야. 미쯔이 형은 분명 살해당하겠지.
...아버지는 형을 죽게 내버려둘 생각이야."
"---!"
뭐라고오오!?
"루카와, 죽일 테다! 어디 있냐, 루카와! 흉악한 여우놈! 내가 응징해
주겠다!"
"기다려, 하나미치!"
"루카와!!"
눈에 핏발이 선 하나미치는, 복도에 장식되어 있는 장식용 투구에서
창을 빼들고, 그것을 휘두르며 복도를 달려갔다.
그 뒤를 안색이 변한 요헤이도 쫓아갔고, 또 그 뒤를 위병들이 쫓았다.
금염궁은 하나미치 탓으로 대단한 소동이 일고 있었다.
족쇄의 쇠공은 계속 질질 끌려다니는 바람에 쇠사슬 부분에서 끊어져,
하나미치는 몸이 가벼워졌다. 야산에서 단련된 하나미치의 빠른 다리를
아무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광대한 금염궁. 건물만으로도 하나의 소도시와 같은 정도의 크기인
궁전 안, 무작정 달려서 목적장소에 도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극한상태에 다달아 있는 하나미치는, 야성의 감이라고 해야
할지, 확실히 루카와가 있는 장소로 접근해갈 수 있었다.

"여기냐!"
감 하나만으로 맨 끝방까지 온 하나미치는, 한층 화려한 문앞에 있는
위병을 때려눕히고,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그리고 목표물을 드디어
발견했다.
"찾았다!"
"...멍청이!?"
중신들을 소집해서 회의중이었던 루카와는, 감금되어 있을
하나미치의 등장에 놀라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죽어라, 루카와!"
굉장한 기세의- 그것도 루카와에 의해 소집된, 쇼호쿠 굴지의
중신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하나미치는 국왕을 습격했다.
"!"
루카와는 눈 깜짝할 사이에 뒤쪽으로 뛰쳐올라, 하나미치가
내리치는 창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하나미치는 쳇 혀를 차고, 다시 창을 휘둘렀다.
"그만둬, 멍청이!"
"시끄러! 밋찌가 죽기 전에 네 숨통을 끊어주겠다!"
겨우 쫓아온 요헤이가, 지금 마침 루카와를 죽이려고 하는
하나미치를 발견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만둬, 하나미치! 국왕을 상처입히면 사형죄는 면하지 못해!"
"이녀석과 같이 죽는 게 소원이야! 내 목숨은 이미 밋찌에게
줬으니까! 루카와를 죽이면 밋찌는 살 수 있어!"
"-멍청이가."
"!"
루카와는 책상 위의 촛대를 집어들고, 내리쳐오는 창을 막았다.
그대로 두 사람은 서로를 있는 힘을 다해 억누르며, 힘의 공방전으로
넘어갔다.
그때가 되어서 굳어 있던 주위의 인간들도 사태를 파악하고 움직였다.
"반역자다!
"자객의 손에서 국왕폐하를 구해라!"
- ! -
수십 명의 위병들이 검을 빼들고 하나미치를 치러 왔다.
철검이 번득이며 하나미치에게 내리쳐졌다.
"...!"
팟 선혈이 튀어올랐다- 루카와의 왼쪽 어깨에서.
빠른 순간에 하나미치를 감싼 루카와는, 위병이 가진 검을 빼앗아서
하나미치를 죽이려고 한 남자를 한칼에 베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인간이 놀라서 루카와를 보았다. 그것은
하나미치도 예외는 아니었다.
- 피가... 루카와의... 피...? ...나를 감싸고... 루카와가 베여...?
어째서... 나는 루카와를 죽이려고 했는데... 정말 죽이려고 했는데...
그런데... 그런데... -
자신의 손으로 죽이려고 했는데, 루카와의 어깨에서 뻐끔 열린 빨강과
분홍색의 베인 상처를 보고, 하나미치는 완전히 동요하고 있었다.
살의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손에서 카랑... 하고 창이 떨어졌다.
하나미치가 무방비가 된 것을 깨달은 병사 몇 명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검을 빼들었지만, 루카와가 엄하게 노려보는 바람에 전의를
꺾였다.
루카와는 멍하니 있는 하나미치를, 피범벅이 된 왼쪽 어깨로
누르듯이 하며 끌어안았다. 그대로 주위를 둘러싼 병사들을 노려보며,

른손에 든 검끝을 그들 쪽으로 겨냥했다.
"...이녀석은 사쿠라기 하나미치. 나의 정부다. 상처입히는 건 용납치
않는다."
"---!"
루카와는 진심이었다.
그것을 느씬 주위의 사람들 사이에서 곤혹스러운 웅성거림이 일었다.
"...오늘의 회의는 끝이다. 해산."
루카와는 그것만 말하고, 하나미치를 안은 채 방을 나가려 했다-
그러나.
"...윽."
털썩 하고 무릎을 바닥에 꿇었다.
가벼운 상처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부상을 입은 몸으로, 자신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체격의 하나미치를 안고 걸어가는 것은, 역시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루카와가 고통으로 작게 신음할 때, 주위 사람들도 겨우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었다.
"폐하!"
"빨리 폐하의 치료를!"
"의사를 불러!"
옆으로 다가온 사람 중 하나가 하나미치의 팔을 거칠게 잡았다.
"와라! 폐하를 시해하려 한 죄, 이대로 끝날 거라고 생각지 마라!"
"멍청이에게 손대지 마!"
"폐하...!?"
"...손,대지,마. 이녀석에게 남자가 손대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
괴로운 숨을 쉬며 격렬하게 노려보는 루카와에게, 무의식적으로
남자는 하나미치의 팔을 놔버렸다.
"하...하지만 폐하! 이대로 무죄방면을 할 수는 없습니다! 대역죄는
사형이 통례! 이만큼 많은 목격자가 있습니다. 상응하는 극형에
처하지 않으면 폐하의... 국가의 위신에도 관계됩니다!"
"위신 따위 어떻게 되도 좋다."
"폐하! 이것은 당신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괜찮다고 말했다!"
고함을 질러서 격통이 엄습했는지, 왼쪽 어깨를 쥐며 신음했다.
"...이녀석에게는 손대지 마."
"왕을 시해하려 한 자를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중죄도 중죄,
이 이상의 죄는 없습니다!"
그래그래 하며 다른 자들도 일제히 동조했다.
보통은 순종적인 가신들이었지만 이번만은 간단히 넘어갈 수 없었다.
이전에는 더이상 없을 정도로 근면하고 이상적인 왕이었던 루카와가,
아들의 측실에게 미쳐 국가 일을 게을리 하고, 드디어는 발광.
어제까지 폐인이었던 왕이 제정신으로 돌아와서 안심한 순간, 이번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드디어 중신들도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한 것이다.
쇼호쿠 북부를 다스리는 대귀족 노인이 신하들을 대표해서 발언했다.
"듣자하니 그 자는 미쯔이 전하의 측실님이라고요. 아무리 폐하라고
하셔도, 너무도 부도덕하시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요즘 일련의
사건으로, 우리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색향에 홀려
국사를 소홀히 하시는 것은, 집정자로서 있을 수 없는 소행- 폐하!?"
장황하게 설교하고 있는 노인에게, 루카와는 왕관을 집어던졌다.
"내게 불만
이 있으면 지금 당장 아키라에게 왕좌를 양보하겠다.
그러면 불평은 없겠지."
- 뭐!? -
발언 내용에 흠칫해서, 하나미치는 루카와를 돌아보았다.
"아...아니. 저는 폐하를 배척하고 싶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아닙니다. 10여 년만에 지금의 쇼호쿠를 건설하신 폐하의 공적은
모든 국민이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단지 그 남자를 이쪽으로 넘겨
주시고, 응당의 처분을 내리게만 해주신다면 그것만으로 좋습니다."
"닥쳐! 왕좌보다도 너희들 전원보다도 이녀석 쪽이 소중하다!"
- 두근.
그것을 들은 순간, 하나미치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 ...그렇게까지 이녀석, 나를...? -
두근두근 심장이 크게 계속 고동쳤다.
놀란 것은 당연히 하나미치만이 아니고, 중신들과 병사, 그리고
어느새 모여 있는 여관들도 숨을 삼키고 루카와와 하나미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쇼호쿠의 일을 언제나 우선으로 생각해주신 존경하는
폐하의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군요..."
바싹 말라서 갈라진 목소리로 노령의 신하가 말했다.
루카와가 지금까지의 인생을 걸고 세워온 쇼호쿠- 그리고 쇼호쿠의
국왕으로서의 신뢰.
그것이 지금 크게 흔들리려고 하고 있는 사실은, 정치를 모르는
하나미치라도 알 수 있었다.
몸이 무의식적으로 덜덜 떨렸다.
"...째서?"
"멍청이?"
"나는 널 죽이려고 했어. 지금도 기회만 있으면 죽일 생각이야.
그런데 어째서-"
양손에 얼굴을 묻으며 하나미치는 중얼거렸다.
"...그렇게까지 너 날 좋아하는 거야?"
"지금와서 당연한 사실을 말하는 거냐."
칠흑같은 두 눈동자.
반사하는 듯한 똑바른 시선.
그의 눈에 거짓은 없었다.
"...그럼 어째서 그런... 그런 심술궃기만 한 짓만 한 거야. 왜
조금도 상냥하게 해주지 않았던 거야... 네가 좋아한다는 말은,
너무 어려워서 나는 이해 못하겠어."
펑펑 눈물이 나왔다.
루카와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하나미치의 머리를
오른손으로 끌어당겨서 가슴에 품었다.
"...하지만 너는 히사시를 좋아하잖아."
"루카와?"
"내가 너에게 반했으니까 너는 내 것인데, 너는 멍청이니까 그걸 몰라."
그리고 휙 시선을 돌리며,
"...마음을 손에 넣을 수 없다면, 미움받는 편이 훨씬 나아."
지리멸렬한, 말주변이 부족한 루카와의 대사. 하지만 타인의 감정에
둔한 하나미치도, 웬지 모르게 거기에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
뭔가를 납득하려고 한, 그때-
"아버님!"
인파가 갈라지고, 소동을 들은 센도가 나타났다.
루카와의 상처를 본 순간, 엄격한 목소리로 외쳤다.
"상처를 입은
폐하의 처치도 않고 뭣들 하고 있느냐!"
그 목소리에 놀라서, 굳어 있던 신하와 위병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보다 빨리, 두 사람 쪽으로 달려간 센도는, 재빨리 루카와에게
지혈 처치를 했다.
루카와는 상처가 조여서, 고통으로 신음을 흘리며 진땀을 흘렸다.
루카와가 신음을 낼 때마다, 흠칫흠칫하며 하나미치의 몸도 떨렸다.
걱정하는 듯한 그 모습에, 루카와에 대한 살의는 보이지 않았다.
"센도. 루카와 괜찮을까?"
"아아. 기본체력이 원래부터 틀린 아버님이야. 오늘밤은 열이 날지도
모르지만 크게 번지지는 않아."
"...그래."
하나미치가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때, 겨우 궁정의사가
달려왔다.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빨리 처치를."
"예!"
의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정확한 응급처치가 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나서, 국왕을 여기에서 제일 가까운 침실로 옮기라고 지시를 내렸다.
"...우. 루카와?"
들것에 싣기 위해, 몇 명의 남자들이 다가왔지만, 루카와는 그것을
거부하고 하나미치의 팔을 잡았다.
그대로 강한 힘으로 꼭 잡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
출혈이 지독해서 의식이 급격히 멀어져 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차라리 집념이라고 불러도 좋을 근성으로, 하나미치의 옆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이미 눈은 촛점이
없고, 초점까지 맞지 않는 상태인데-
"...왕은 정말로 나라보다도 이 소년 한 명이 소중하신 건가..."
한 명이 멍하니 중얼거리자, 같은 목소리가 주위에서 차례차례
나오더니, 커져갔다.
그것을 잘라버린 것은 냉정한 목소리.
"-너희들은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센도 전하?"
"폐하의 발언 내용은 모르지만 이 출혈에다, 어제까지 폐인이나
다름없던 폐하다. 설마 빈혈로 의식이 몽롱한 부상자의 헛소리를 믿는
자는 없겠지."
센도의 말에 주위의 사람들이 퍼뜩 깨달았다.
- 그랬다.
국왕은 바로 어제까지 마음이 망가져 있지 않았었는가.
어제 오늘로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생각하는 쪽이 원래 무리다.
게다가 지금은 부상도 입고 있다.
냉정한 판단력 같은 게 없는 것이 당연하다.
오늘 시점에서 이상한 말을 해도, 왕에게 책임능력은 없다-
지금까지 루카와는 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집정자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신뢰는 지금도 건재했다.
영웅왕 루카와 카에데는 쇼호쿠에서 카리스마적 존재이다.
자신들과 나라보다도, 빨간 머리 소년 한 명에게 더 무게를 두는 왕을
제정신이라고는, 그들은 아무리 해도 생각할 수 없었다-
-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전하. 폐하 살해를 꽤한 그 반역자를, 이쪽으로 넘겨주실 수
있겠군요."
센도의 눈이 조금 불쾌하게 가늘어졌다.
"너는 누구냐."
"예...?"
"이 사쿠라기 하나미치는 제 1왕자의 측실이다. 정식 문서도 존재한다.
형은 타국에 결혼하러 갈 때도, 그를 측실인 채로 해두었다. 왕족의
측실이라는 것은, 다시 말하면 그도 왕족의 말석에 속해 있다는 것.
그 왕족을 너희들이 벌하려 하다니, 신하 주제에 대단한 생각을
해냈구나."
주위가 찬물을 맞은 듯이 조용해졌다.
"사쿠라기의 처우는 우리들 왕족이 결정한다. 오늘은 수고했다.
몸 조심하고 돌아가라."
주위의 반론을 센도는 전부 봉쇄했다- 그 압도적인 위엄과 뛰어난
화술 양쪽으로.
이렇게 해서 그 상황은 일단 일단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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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센요를 바란 건 지나친 기대였던가...T_T
이번 회는 야악간 멋있었다, 루카와. 정말 야악간.


PRE번 호 : 1899 / 2053 등록일 : 2000년 12월 06일 19:56
등록자 : HALKO 조 회 : 206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2권 #11
/PRE

11.

센도의 말대로 루카와는 상처로 그날 밤 발열했다.
루카와가 요양으로 사용하게 된, 그 사건이 일어난 홀에서 가장
가까운 장소에 있는 방은, 품질 좋은 가구와 장식이 적당히
구비된 쾌적한 손님방이었다.
이제까지 누구에게도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여관들의 눈에도
닿지 않도록 최상층으로 하나미치를 감금해온 루카와였지만,
이 상황에서는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처럼 하나미치를
최상층에 감금해도, 식사 등 시중을 드는 사람은 필요하다. 자신이
움직일 수 없는 이상, 확실히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없다.
어차피 보이게 된다면, 눈이 미치는 장소에서 한시도 옆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감시하는 쪽이, 훨씬 낫다고 루카와가 생각한
것도 당연했다.
국왕 살해를 꾀한 하나미치가 옆에 있는 사실에, 여관들은 좋은
얼굴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왕의 결졍에 거스르는 자들이 있을
리도 없어서, 싫어도 복종하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런 사정으로 손님용 방에 끌려온 하나미치는, 루카와가 치료를
받고 있는 동안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은 충분했다.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시간이 경과해서, 완전히 침착해졌다.
충동적으로 루카와 살해를 실행에 옮겨버렸지만, 너무 빨랐다고
반성까지 하고 있었다.
- 요헤이가 거짓말을 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미쯔이가 확실하게 죽임당한다고도 말하
지 않았다.
아무리 루카와라도 친아들에 대해 그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믿기
어렵고, 또 그런 번거로운 살인계획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실현
불가능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루카와라면 쉽게 미쯔이를 죽일 수 있을
것이다. 그를 죽이기 위해서만으로 타국에 전쟁을 건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다. 게다가 혹시, 전쟁을 정말로 건다고 해도, 사전에
미쯔이에게 알려서 탈출시키는 등, 여러 가지로 도울 방법은 있다.
루카와를 죽일 필요는 아마 없겠지-
-하나미치는 옛날부터, 일을 좋은 쪽으로만 갖다붙여서 생각하는,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나쁜 습관이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자세한 얘기를 듣기도 전에
미리 앞서가 버렸기 때문에, 세부사항을 몰랐던 것이다.

"하-. 상쾌하다... 우와!?"
배설을 끝내고 돌아온 하나미치를, 갑자기 꽃병이 습격했다.
꽃병은 얼굴 바로 옆을 스치고 날아가, 등 뒤의 벽에 부딪쳐서
시원스럽게 깨졌다.
"어디 간 거야!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했잖아!"
"어디라니, 변소야."
"여기서 해!"
"하아!?"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몰래 다른 남자를 도발하지 마! 요강이라도
준비해둘 테니까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
열에 들떠서 헉헉 거친 호흡을 반복하면서 외치는 루카와.
이렇게까지 엉망이면 화낼 기력조차 없어진다.
"...저기. 이제 됐으니까 너 자라구."
"이리 와! 언제까지 밖에서 보이는 장소에 멍하니 서 있을 거야!"
팡팡 침대를 두드리는 루카와에게, 하나미치는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옆으로 다가갔다.
열 때문에 보통 이상으로 성말라진 루카와는, 이번에는 여관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멍청이를 여기서 내보내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다음에 이런 일이
있으면 너희들 전원의 목을 잘라버리겠다!"
"요...용서해 주십시오!"
창백해진 10여 명의 여관들은 일제히 부복했다.
"말해둔 수갑은 아직인가!"
"방금 가지러 보냈습니다!"
- ...수갑? 무슨 말이야 -
고개를 갸우뚱할 때, 다른 여관이 들어왔다
.
"-폐하. 센도 왕자님이 문안 오셨습니다."
루카와는 노골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문안 따위 필요없어. 돌려보내."
"헤? 루카와?"
"그녀석도 남자다. 남자 버릇이 나쁜 멍청이가 음심을 품고 낚아채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어."
"하아!?"
"-아버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사쿠라기가 가엾습니다."
"센도!?"
어째서인지 손에 황금색의 수갑을 들고, 센도가 허락도 받지 않고
방으로 들어왔다.
"몸은 어떠십니까."
"...누가 들어와도 좋다고 했냐."
"곧장 나갈 겁니다. 아버님이 상처를 입으셨는데도 병문안도 가지
않으면 왕태자로서 입장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최소한의
문안은 하게 해주십시오."
사리에 맞는 센도의 주장에도, 납득하려는 기색도 없이 계속
노려보는 루카와에게, 센도는 웃어보였다.
"아/버/님/의/ 사쿠라기에게 손을 대서, 제 입장을 괴롭게 할
바보 같은 남자는 아닙니다, 저는."
진의를 탐색하듯이, 루카와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말이라니까요. 의심도 많으셔라."
"너의 뱃속은 읽을 수 없어."
"아-아. 저도 신용이 없군요. 저는 아버님의 누구보다도 충실한
종복일 텐데."
센도는 그렇게 말하고 어깨를 움츠렸다.
"-아아, 그렇지
. 이것을. 방금 전 복도에서 아버님의 여관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병문안하는 김에 받아왔습니다."
설명하면서 하나미치의 왼손을 잡은 센도는, 멍하니 있는
하나미치에게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또 한쪽을 루카와의 오른손에
채웠다.
"그럼 저는 이제 나가보겠습니다. 빠른 쾌유를 빌겠습니다."
정나미 떨어질 정도로 완벽하게 국왕에 대한 예를 올리고 나서,
센도는 발걸음을 돌려 떠났다.
복도와 방을 간막이한 보라색의 천을 제치고, 센도가 모습을
완전히 감출 때까지 멍청히 지켜보고 있던 하나미치는, 그 후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이봐! 이 수갑 뭐야!"
루카와는 수갑으로 연결된 자신과 하나미치의 팔을 만족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오른손을 세게 끌어당긴 것이다.
"우와!"
수갑 탓으로 루카와의 옆으로 쓰러진 하나미치는,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강한 힘으로, 루카와에게 꼭 안겼다.
"이...이자식! 놔!"
"난폭하게 굴지 마. 몸은 아프고 기분도 안 좋으니까, 널 안지는
않을 거야. 안심해."
"그그그런 문제가 아냐! 놔! 여자들이 이쪽을 많이 보고 있잖아!
부끄럽다구!"
여관을 가리키며 외치자, 루카와는 순순히 대답했다.
"그럼 퇴실시키지."
여관들에게 방에서 나가라는 듯이, 루카와는 턱으로 지
시했다.
여관들 사이에서 곤혹스러움이 일어났다.
"실례합니다만 폐하. 부상을 입으신 데다가 오늘밤은 열도
높으십니다. 간병하는 자를 남겨두셔야 합니다."
"필요없어. 나가라면 나가. 너희들이 있으면 이녀석이 얌전히
있어주지 않아."
"바보! 네가 놔주면 되잖아!"
"...너와 이렇게 하고 있으면 편해."
"아?"
멍해진 하나미치를 가슴에 꼭 끌어안은 채로, 루카와는 눈을
감았다.
그대로 안도한 표정으로 하나미치에게 기대며, 미동도 하지
않게 되었다.
"어...어이?"
찰싹찰싹 얼굴을 두드려 봤지만, 죽은 것처럼 반응이 없었다.
- 설마 기절했나...!? -
이렇게 해서 밀착하고 있으니, 루카와의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하지만-
"...아냐, 틀려. 자고 있어, 이녀석..."
루카와의 잠든 얼굴은 본의는 아니지만 익숙해져 있었다.
이 얼굴은 자고 있을 때의 루카와의 얼굴이었다.
한 번 잠든 루카와를 깨우기는 힘들고, 더구나 때려서 깨우기라도
하면 어떤 복수가 되돌아올지 모른다. 그 사실은 여관도 하나미치도
몸으로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입장상 여관들은 루카와의 명령에는 아무리 본의가 아닌 일이라도,
복종해야 했다.
하나미치를 신용
하고 있지 않지만, 방안의 흉기 같은 것을 전부
치워버리고 나서 그녀들은 방을 나갔다.

어두워진 방의, 커다란 천개가 달린 침대 속에서, 두 사람은 꼭
달라붙어 있었다.
이제 곧 겨울이 다가올 이 추운 계절. 루카와의 뜨거운 몸은
차라리 기분이 좋다.
"...이녀석, 죽이려고 한 건 정말 화내지 않는 것 같아."
이유조차 - 입밖으로 외쳐버려서 알고는 있겠지만 - 물으려고
하지 않았다.
미쯔이의 이름을 입에 올린 것만으로도 그만큼 격노했던 루카와가
죽이려고 한 일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불평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음이 넓은 건지 좁은 건지 모를 남자다.
"...굴절된 건지 비뚤어진 건지, 아니면 그저 바보인 건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린애야, 이녀석은."
분명 루카와에게 있어서 자신은 처음으로 생긴 친구였을 것이다.
루카와는 단순한 놈이니까, 친구와 연인의 구별도 하지 못하고,
폭주한 거라고 하나미치는 보고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심술궃게 대하고, 제멋대로의 독점욕으로
묶어두려고 하고-
"전부 어린애의 소행이잖아."
세 왕자의 아버지라는 걸 알고 나서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
감정면에서의 성장이 현저히 늦은 어린애.
그렇게 생각하자, 지금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루카와의 언동의
대부분이 쉽게 납득이 갔다.
"...하지만 말야. 아이라고 해서 뭐든 해도 괜찮다는 건 아냐."
아름답게 뻗은 루카와의 코를 틀어쥐었다.
잠시 동안은 몸을 움직이지 않았지만, 숨쉬기가 힘들어졌는지
약간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눈을 뜨면 곤란하니까 재빨리 손을 떼고, 수려한 미모를 가만히
응시했다.
- 얼굴은 좋은데 성격이 영 아니라니 아까워. 밋찌처럼 얼굴과
성격 양쪽이 좋은 놈은 정말로 드물구나 -
루카와와의 사건이 있기 전에는, 얼굴이 잘난 놈은 성격도 좋은
거라고, 근거없이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그 때문에, 신념을
근본부터 뒤엎어버린 루카와의 존재에 꽤 고민하기도 했다.
- 하지만 죽이려고 한 나를 감싸고 상처까지 입었잖아. 질투심
귀신인 것만 빼면, 사실은 속도 얼굴만큼 좋을지도 -
흠잡을 데 없는 루카와의 용모.
열 때문에 부은 것 같고 상기되어 있어도, 외견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루카와의 얼굴은 어느 각도에서 봐도 역시 완벽했다.
결점이 없는 게 결점이라고 할 얼굴을 보고 있자, 웬지 진정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똑같이 예뻐도, 밋찌의 얼굴을 보면 굉장히 행복한 기분이 드는데
루카와의 여우 얼굴을 보면 초조해지니, 역시 싫은 거야."
"그렇네."
"!?"
깜짜악!
바로 가까이에서, 루카와 이외의 남자가 대답을 해서 놀랐다.
"누구...!?"
"쉿."
오른손의 검지를 입 앞에 갖다대고
, 침대 가장자리에 서 있는 것은
센도였다.
"할말이 있어. 잠깐 괜찮겠어?"
"괜찮냐니, 나는-"
"자, 수갑 열쇠."
"어?"
건네진 작은 열쇠에 눈을 깜박거렸다.
"아-아. 아버님도 참, 완전히 안심한 얼굴이라니, 이 잠버릇은
정말 확고하다니까. 아버님의 목을 따는 건 간단하지. 자고 있을
때 습격하면 되는 걸."
태연하게 계속 얘기하는 센도에게, 루카와가 일어나는 게 아닌가
해서 아슬아슬하다.
하나미치는 우선 수갑을 풀고 몸에 감겨 있는 루카와의 손을 옆으로
치운 뒤, 주의깊게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가능한 한 소리를
내지 않도록 창가까지 센도를 끌고 가서, 주의에 주의를 기울이기
위해 두터운 커튼 속으로 숨었다.
"얘기라니 뭐야. 이런 장면을 여우가 보면 또 바람 피운다느니
하면서 가차없이 말해댈 거고, 나까지 지독한 꼴을 당한단 말야."
"그럼 이대로 도망치면 되잖아."
"...에."
하나미치는 생각도 못했다- 생각해보지 않았던 게 오히려 이상한
제안을 듣자 입을 뻐끔 벌렸다.
오늘 아침까지는 그렇게도 여기서 도망가고 싶었는데, 루카와가
몸을 날려 감싸주고 나서, 그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가. 여기라면 도망칠 곳도 없는 최상층도 아니고."
"국내 제일의 금염궁의 경비를
따돌리고 탈출하는 건 간단하지
않지만, 내가 손을 써줄 수도 있지-"
일단 말을 끊고, 센도는 목소리를 낮췄다.
"하지만 도망가 버리면 바보같지 않아?"
"우?"
"이대로라면 형은 죽어."
"하?"
"형의 살해계획은 알고 있는 거지? 자신만을 위해서 아버님을
죽이려고 했다고는, 사쿠라기의 성격으로 봐서는 생각할 수 없어."
"응.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정말로 밋찌가 죽는다고 결정된 건
아니잖아. 애당초부터 밋찌를 죽이려고만 하기 위해서 전쟁을
걸다니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할 이유도 없고. 분명 뭔가 착각일
거야."
"형을 부마로 보낸 일로 카이난이 방심하는 동안 유리한 전쟁을
시작하려고 하는 게 이유 중 하나야. 아버님은 이전부터 카이난의
항구를 탐내고 있었어."
"엣!?"
놀란 하나미치에게 똑같이 놀라서, 센도는 하나미치를 응시했다.
"-설마 그런 것도 몰랐던 거야?"
하나미치는 요헤이가 처음 말한 몇 마디 말밖에 듣지 않았다.
구체적인 얘기를 듣기 전에 루카와를 죽이겠다고 폭주해버린
것이다.
"...그...그래, 밋찌를 죽이려고 전쟁을 걸 거라고는, 요헤이도
말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형을 죽이는 것도 동기 중 하나야. 형은 죽고 카이난도 손에
넣는다. 아버님은 일석이조를 노렸던 거지."
"...!"
하나미치는 얼굴이 새빨개졌다가, 그리고 곧장 새파래졌고, 콰당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사쿠라기? 괜찮아?"
"크...큰일이야.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밋찌에게 알려서 쇼호쿠로
돌아오라고 해야..."
"쉽게 생각하는구나. 그걸 어떻게 알리려고? 이 쇼호쿠에 아버님을
거스를 사람은 없고, 아버님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역량의 소유자도
유감스럽지만 없어. 만에 하나 아버님의 계획이 카이난 측에 탄로라도
난다면, 그 자리에서 형도 끝이야."
센도의 목소리는, 어딘지 재미있다는 듯한 울림이 있었다.
"아버님의 제일 목적은 누가 뭐래도 형의 목숨이니까. 형과 함께
따라간 종자들의 과반수가 아버님의 입김이 닿아 있는 놈들이야.
편지를 전해줘도 본인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처분될 거고, 운좋게
형의 귀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 시점에서 그들에게 암살될 걸-
카이난 놈들에게 죽임당하도록 그럴싸하게 꾸며서. 그렇게 하면
국제 여론은 전부 쇼호쿠의 편이야. 당초의 계획대로 진행하면
평화를 일방적으로 깨는 거니까, 비난받는 건 쇼호쿠겠지. 이러면
료난의 협력을 얻기도 어려워. 하지만 이걸 형이 죽임당한 것에
대한 복수전이라고 한다면, 이건 이것대로 료난과 손을 잡고
한 나라를 칠 수 있으니까 아버님은 조금도 상관하지 않을 거야.
아버님은 단 한 개의 덫만을 놓는 평범한 사람이 아냐. 몇 겹을
치고
있어. 카이난 측이 형을 처형하지 않는 상황과, 만에 하나
전쟁 그 자체가 중지되는 상황이라도, 다시 불씨를 일으키기 위해
형을 죽이려고 자객을 보낼 거야."
하나미치는 창백해져서, 어느새 떨기 시작했다.
"내...내가 갈 거야. 알리러 내가..."
"무리야. 형 옆에 가기 전에 아버님의 입김이 닿아 있는 종자에게
살해당할 걸. 사쿠라기는 개죽음을 당하고, 형도 언젠가 카이난
놈들에게 살해당할 거라구."
"...큭."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쇼크가 너무 커서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다.
"-사쿠라기, 이것을."
센도는 섬세한 금세공이 되어 있는 주머니칼을 하나미치의 손에
가만히 쥐어주었다.
"...아?"
"이걸로 아버님을 찔러.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 괜찮겠지."
한순간 뭘 들은 건지 몰라서 말이 없어졌다.
"실패했다고 해도, 오늘의 하나미치의 행동은 정당했어. 아버님을
죽이는 것 이외에 형을 도울 방법은 없어."
"루카와를 죽여...?"
"사실은 이런 싫은 일은 사쿠라기에게 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적임자가 없어. 아버님이 죽고 내가 왕이 되면, 독단으로 모두를
움직이게 할게. 은밀히 진행중인 전쟁 준비도 멈추게 할 거야. 형은
카이난에서 언제까지나 평화롭게 살고, 하나미치도 아버님에게서
완전히 해방되는 거야."
- 밋찌가 살아난다... -
단검을 쥔 하나미치의 손에서 촉촉히 땀이 배어나왔다.
"물론 하나미치가 왕을 죽인 사실은 은폐할 거야. 죄는 묻지 않아.
만약 하나미치가 바란다면 새로운 이름과 호적도 줄게. 나쁜 얘기는
아니지?"
센도는 단검을 쥔 하나미치의 손을 살며시 감싸쥐었다.
"-죽이는 게 하나미치라고 해도, 그걸 사주한 건 나야. 내가
일생동안 존속 살인죄를 떠맡고 살아갈게."
"...왜? 어째서 네가 그렇게까지-"
"아버님의 성격은 하나미치도 알고 있지? 이제 지겨워. 그 사람의
방식에는 따라갈 수 없어."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이런...!"
크게 외치려는 하나미치의 입을, 센도가 왼손으로 막았다.
"조용해. 소리를 높이면 아버님이 일어나 버리겠어."
"...아."
얼굴을 돌린 하나미치에게, 센도는 부드러운 어조로 속삭였다.
"내 치세가 되면 하나미치도 행복해질 수 있어. 내가 행복하게
해줄게. 약속해."
"......"
- 밋찌가 루카와에게 죽는다고?
- 내가 루카와를 죽인다고?
이제 잠시라도 이런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아졌다.
고개를 숙여버린 하나미치에게 센도는 조금 어깨를 움츠리며,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럼 나 슬슬 돌아갈게. 아무쪼록 살해현장은 누구에게도
목격되지 않도록 해. 자기가
죽였다고 말하면 안돼.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창문을 열어놓고, 괴한에게 습격받았다고 말해둬.
범인은 이쪽에서 적당히 준비해둘 테니까."
커텐을 밀어젖히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만 돌아보았다.
"-아, 그렇지. 아버님에게 이혼당한 아야코 상은 내가 데리고
있어. 교외의 내 별궁에서 살고 있지."
"아야코 상...?"
- 아아... 그러고 보니 아야코 상이 밋찌의 새엄마니까 이제
필요없다고 루카와가 말했지 -
정말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루카와는 지독한 놈이다.
어떻게 손쓸 수도 없는, 변변치 않은, 포악의 한도는 끝없는
왕바보자식.
하나미치는 많이많이 생각했다.
자신에게 있어서 뭐가 제일 중요한가?
어떻게 하는 게 제일 바른 일인가?
- 진실은 망설일 여유도 없는 하나뿐.
"...나는 밋찌가 전부야."
자신의 모든 것은 루카와와 처음 만나기 훨씬 전부터, 소중한
왕자님에게 바쳤다.
선악과 도덕 같은 건 관계없다. 미쯔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나쁜
일이라도 한다.
고민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미쯔이를 구하기 위해서 루카와를 죽여야 한다면, 망설임 없이
자신은 루카와를 죽인다.
미쯔이가 행복해진다면, 자신의 행복도, 목숨도, 세계 평화도
필요없다-
멍하니 있는 동안, 센도는 어느 새엔가 사
라져 버렸다.
하나미치는 불안한 발걸음으로 침대로 돌아왔다.
손에 단검을 쥐고 루카와를 응시한 채로, 그날 밤은 꼬박 밤을
지샜다.

"센도."
하나미치와 헤어지고 방을 나서자, 센도는 젖형제 겸 오른팔인
후쿠다에게 불러세워졌다.
후쿠다는 성큼성큼 걸어와서 센도의 가슴 속에 손을 넣었다.
거기에 단검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 툭 내뱉었다.
"잘된 것 같군."
"응, 뭐어. 고마워, 후쿠다. 경호병들을 잘 따돌려줘서."
"대단한 일도 아냐. ...그렇다고 해도 대담한 수단을 생각해냈다."
"아버님이 있는 한 사쿠라기는 손에 넣을 수 없으니까. 아버님에게
직접적인 원한은 없지만 어쩔 수 없어. 멀리 있는 형보다는, 가까이
있는 아버님이야."
"-국왕의 암살에 성공해서 즉위하면 정말로 카이난과의 전쟁을
멈출 생각이야?"
"아아. 사쿠라기와 약속했어. 미움받는 건 싫으니까 약속은
지켜야지."
"모처럼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상차림이 되어 잇는데도? 즉위해서
곧장 카이난을 함락시키고, 쇼호쿠를 대륙 제일의 나라로 만들면,
너의 이름은 루카와 국왕 이상이 되어서 역사에 남을 거야."
"나는 말야, 후쿠다. 하나미치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이제 아무
것도 필요없어. 형의 생사는 어떻게 되도 좋아. 만나지만 않으면
살아도 죽어도 별 차이 없으니까. 나와 하나미치의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멀리서 살아 있는 한은 관계없어. ...아니, 오히려 살아
있었으면 해. 전쟁을 멈추고 형을 구한 나는 분명 하나미치에게
많은 감사를 받을 거야. 많이많이, 호의를 얻을 수 있어."
"...나는 분명 네가 미쯔이 왕자를 미워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센도는 의미깊은 표정으로 웃었다.
"나는 형이 죽기를 바라는 건 아냐. 눈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야."
누구든지 매료시키는, 선열한 카리스마를 가진 존재.
그런 인간을 형으로 두면서, 그를 제치고 왕태자가 되어야 했던
자신의 괴로움은 분명 당사자밖에 이해할 수 없다.
자각도 없이 애정을 빼앗아가는 형은 멀리 갔다.
그리고 지금, 이상의 새어머니였던 아야코는 자신의 옆에 있고,
사랑하는 하나미치도...
"...아버님을 죽인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사쿠라기를, 나는
부드럽게 감싸주는 거야. 나는 사쿠라기를 옆에 둘 수 있는
최고권력만이 아닌, 공범자라는 이름의 끈과, 형의 목숨을 구한
감사와 신뢰. 그리고 커다란 은혜를 손에 넣을 수 있어. 형만
없으면 마음도 곧장 내 쪽으로 돌아설 거야."
"...센도. 전부터 생각했지만, 너는 무턱대고 자기 형을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는 것 같아. 너의 어디가 미쯔이 전하에게 뒤진다는
건지 나는 전혀 이해 못하겠어. 사적 감정을 빼고 객관적으로 봐도
검술에서 통치자로서의 능력까지, 전부 네 쪽이 위라고 생각하는데.
인망도 결코 뒤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해. ...아니, 오히려 그것도
네 쪽이 위야. 미쯔이 전하는 남자 버릇이 나빠서, 유력자의
여자에게는 적이 많아. 제 1왕자가 왕자들 중에서 제일 이성에게
인기가 없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야."
"그건 형이 상류계급의 여성에게 흥미가 없어서 그런 거야.
형은 하층 여성과, 웬지 결혼 전의 순결한 처녀에게는 아주 인기가
있어. 형이 진심이 되면, 내 처들도 곧장 그쪽으로 쏠릴걸."
"센도 너의 제일 나쁜 점은 그 비굴한 근성이야."
"하하. 그런 말을 하는 건 후쿠다뿐이야."
"그건 네가 나에게밖에 본심을 얘기하지 않으니까 그런 거지."
"...고마워, 후쿠다. 내게도 너같은, 진정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굉장히 감사하고 있어. 이해타산 없이,
감정만으로 형보다 나를 택해준 건 언제나 너뿐이야."
"그런 제멋대로인 남자는 사절이야. 네 쪽이 훨씬 나아."
아연실색하듯이 말하는 후쿠다에게, 센도는 정말로 기쁜 얼굴로
웃었다.

=============================================================

와아, 후쿠다다 ♥
바로크의 후쿠다는 너무 멋있어 ♥♥
미쯔이, 후쿠다를 띄워주는 열정으로 센도도 띄워줘, 바로크 T_T
난 센도의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좋아한다구 T_T
(증오를 넘어서서 이제는 동정할 지경...-_-)


PRE번 호 : 1900 / 2053 등록일 : 2000년 12월 06일 19:57
등록자 : HALKO 조 회 : 249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2권 #12
/PRE

12.

아무리 마음이 어두컴컴한 채라도, 아침은 어김없이 다가왔다.
루카와가 눈을 뜨기 전에, 수갑을 원래대로 자신의 손에 채운
하나미치는, 겉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며 아침을 맞았다.
하나미치가 가지고 있는 수갑 열쇠는 예비 스페어다. 루카와는
손에 찬 수갑을 발목으로 옮겼고, 쇠사슬도 긴 것으로 대체했다.
수갑까지 바꾸지 않은 것은 정말로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하나미치는 방 안만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 나는 오늘밤 루카와를 죽인다. 루카와를 죽이고 밋찌를 지킨다 -
망설임은 전혀 없다.
하룻밤이 지난 지금,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차분했다.
단검은 침대 밑.
열쇠는 베개 속.
나머지는 오늘 하루를 의심받지 않도록 아무렇지도 않게 보내면
된다.
다행히 루카와는 하나미치가 있는 이 손님방에, 필요최소한만
사람을 들였다.
분명 오늘밤도 둘만 있을 수 있다.

"응, 입 벌려."
순순히 벌린 루카와의 입에, 휙 하고 껍질을 깐 밤을 던져넣었다.
그리고 다른 밤을 까기 시작했다.
루카와는 명백히 기쁜 듯한 모습으로, 잠자코 입을 움직였다.
"멍청이."
"잠깐 기다려. 곧장 까줄게."
"......"
"자, 됐다."
또 입을 쩍 벌리는 루카와.
거기에 하나미치가 다시 밤을 던져넣었다-
그런 일을 두 사람은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루카와가 자고 있는 침대 가장자리의 테이블은, 밤껍질로 수북해져
있었다.
"이걸로 끝이다."
마지막 한 개를 보이자, 루카와는 여관을 부르기 위해, 머리맡에
놓인 금종으로 손을 뻗었다.
"야! 너 몇 번이나 가져오게 해야 직성이 풀리냐! 병상에 있는
데다가 폭식이라니 말도 안돼!"
"...네가 이런 귀여운 짓을 하는 건 처음이니까..."
"켁."
입술을 삐죽대며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밤은 이제 그만둬. 내가 붕대 갈아줄 테니까."
"멍청이."
- 바보. 이런 정도로 기쁜 얼굴 하지 마 -
오늘 밤까지의 목숨이라고 생각하자 차가워질 수 없었다.
그래서 무심결에 헌신적으로 - 라고 해도 백염궁에서 밋찌에게
한 정도지만 - 시중을 들어줘 버린 것이다.
"
너 드디어 내 것이라는 걸 자각한 건가."
"자만하지 마, 여우. 자, 상의는 네가 벗을 수 있지?"
루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 정말로 못 벗는 거냐."
"빨리 해, 멍청이."
상반신을 일으킨 루카와는, 거만한 태도로 침대 위에 앉은 채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정말."
하나미치는 한숨을 쉬고, 마지못해 손을 뻗었다.
"상처입지 않은 쪽 팔을 올려."
순순히 루카와는 오른손을 올렸다.
하나미치는 요령있는 손놀림으로, 루카와의 잠옷을 벗겨갔다.
나타난 것은 눈에 익은 - 익고 싶지도 않았던 - 훌륭한 체구와
상반신의 절반을 메우고 있는 붕대.
"...저기. 내가 갈지 않아도 금염궁에 의사가 있잖아."
"멍청이. 의사도 남자다. 널 연모할 가능성이 있는 놈을 이 방에
들어오게 할 수 없어."
"바...바보! 나는 근본적으로 남자보다 여자 쪽을 좋아해! 질투할
거면 최소한 여자한테 해!"
바보같은 말을 한다고 말하는 듯한 태도로 루카와는 코웃음을 쳤다.
"이잇."
남자의 측실이 된 이상, 강하게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저...정말이야. 나 하루코 상 같은 사람을 신부로 맞는 게, 어릴
적부터의 꿈이었어."
루카와가 화낼 것을 각오하고, 하나미치는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
아주 좋
아하는 여성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그러나 루카와에게, 미쯔이의 이름을 말했을 때 같은 반응은 없었다.
"-하루코?"
루카와는 누구를 말하는 건지 모르는 듯했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라고 고개를 갸우뚱하는 그에게, 하나미치 쪽이 격노했다.
"너의 측실이잖아! 아들까지 낳게 했으면서, 무슨 신경을 가지고
있는 거냐, 너는!"
"아아..."
겨우 생각났는지 루카와는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셋째 아이를 낳은 모친인가."
"네 세 번째 부인이다!"
"측실은 처가 아냐. 단지 정부지."
"...큭."
루카와의 논법으로 간다면, 미쯔이의 측실인 하나미치는 미쯔이의
정부라는 말이다.
미쯔이와 자신은 육체관계를 초월한 높은 부분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믿고 있던 하나미치에게 있어서, 이것은 참을 수 없었다.
"...너는 하루코 상과 나...나를 그런 식으로 보고 있었던 거냐..."
"하루코 같은 시시한 여자 정부도 못돼. 정처인 피오네도 정말 변변치
못한 여자고 방중술도 하루코와 비길 정도로 서툴었으니까, 16년 전엔
깜박 착각해버린 거다. 안 그러면 누가 저런 여자를 상대로 하겠나.
여자로서의 기량이라면 아야코 쪽이 다른 두 마리 암퇘지보다 훨씬
나았었지- 아니, 여자의 유일한 존재가치인 아이가, 최저였으니까
아야코가 제일 질나쁜 여자인가."
하나미치는 입을 떡 벌리고 루카와의 입에서 차례차례 나오는 믿을
수 없는 폭언을 계속 들었다.
하나미치에게 있어서 여성은 신성한 존재였다.
쇼호쿠에는 신도 여자다.
아무리 훌륭한 남자가 있어도, 모든 것은 여성에게서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여성은 존중받는 것이다.
하나미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아 그런데-!
- 루카와같은 최저의 녀석은 죽어도 싸!
"멍청이. 네가 제일 훌륭해."
"뭐가!"
"얼굴도 몸도 최고야. 부족한 머리도 바보같은 언동도 굉장히 귀여워.
밤일도, 많은 남자를 연습용으로 해와서인지 타의 추종을 불허해.
그 젊음으로 잘도 이렇게까지 남자를 유혹하는 기술만을 몸에 익혔군.
남자를 홀리는 재능은 분명 네 입버릇대로 천재다. 나도 감쪽같이
걸려들어 버렸으니까."
"날 여자취급 하지 마! 나는 남자다! 여자가 아냐!"
"당연하지. 너같이 멋진 여자가 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어."
"......"
화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아마 이 상황에서는 화내야 할 것이다.
하나미치는 루카와와 말하고 있는 게, 웬지 바보스럽다고 느꼈다.
"...그런 얘기는 이제 안해도 돼. 그보다 붕대 갈아야지."
잠시 중단한 작업을 재개했다.
요령 좋은 하나미치다. 약초에서 추출해서 만든 화농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는 정도는 아
무것도 아니었다.
일련의 처치를 뛰어난 손놀림으로 끝내고, 의사가 감은 것보다
완벽하게 붕대를 감을 때까지, 그렇게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끝났다."
마지막 매듭도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시켜 두고 나서 얼굴을 들었다.
"...루카와?"
하나미치가 감은 붕대를 말없이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던 루카와는
그때 약간 입가가 벌어졌다.
"!"
- 루카와가 웃었다...! -
최근 빈번하게 보인, 사람을 깔보는 미소는 아니다.
사랑의 고백을 거부한 몇 개월도 전의 그 날 이후,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는 루카와의 부드러운 미소.
"..."
하나미치는 지금에 와서 딱 하나를 깨닫고 있었다.
상냥하게 대하면 루카와도 똑같이 상냥하게 대해주는 것이다.
귀신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언동에, 자신을 마구 휘두르는
루카와가, 신경써주는 것만으로 사탕과자처럼 부드럽게 웃는 것이다.
마치 처음 만났을 때의, 서로의 정체를 몰랐던 그때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어서,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 이런 일 생각하면 안돼. 루카와는 적이야. 나와 밋찌의 적이야 -
"...아."
그때 나직하게 루카와가 중얼거렸다.
"응? ...앗! 뭘 하는 거야!"
잠옷 상의를 스스로 입으려다가, 루카와는 겨드랑이 부분을
찢어버리고 있었다.
루카와는 특별히 신경쓰는 기색도 없이, 찢어진 비단 잠옷을
둘둘 말아서 바닥에 던졌다.
"악! 아깝잖아! 버리지 마, 바보야!"
황급히 주워 먼지를 털고 주름을 폈다.
"그런 거 버려. 얼마든지 더 있어."
"그러니까 바보라고 하는 거다, 너는! 이 정도는 바늘과 실만
있으면 즉시 수선할 수 있잖아! 이런 비싼 견직물을 잠옷으로
하는 근성도 마음에 안 드는데, 버리다니 제정신이 의심스럽다!
유곽이면 이거 한 벌로 여자를 몇 명 살 수 있다고 생각하냐!"
유곽이라는 말이 하나미치의 입에서 나온 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루카와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유곽의 일 따위 듣고 싶지 않아."
"뭐라고! 그렇게 지독하게, 날 깎아내리는 재료로 쓰는 주제에,
제멋대로인 녀석!"
입술을 삐죽대며 외치고, 화난 표정 그대로 손을 내밀었다.
"멍청이?"
"실과 바늘. 가능하면 견사가 좋아."
"...?"
"멍청히 있지 마! 고쳐준다는 거야! 나는 재봉도 천재니까!"
루카와는 조금 눈을 크게 떴다고 생각했더니만, 곧장 머리맡의
금종에 손을 뻗어서 흔들었다.
방 밖에 대기해 있던 여관이 곧장 밖에서 말을 걸었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최상급의 바늘과 견사를 준비해. 많이."
그녀에게 입실 허가도 내리지 않고 용건만을 말했다.
"이봐, 많이는 필요없어."
"사용하지 않는 건 버리면 돼."
"이런 가난뱅이의 적! 그런 돈이 있으면 세금을 좀 내려라!"
"...네게 세금은 관계없잖아."
"내 밥과 옷에 드는 돈은 어디에서 나오냐! 엉!?"
"더 인상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래, 내년에는 새로운
세금을 보태서 그 돈으로 네게 순금의 서양풍 드레스를 만들어
주지."
"...엑."
"머리장식과 신발도 만들어줄게. 세금을 늘려서."
"네녀석은 국민의 적이야!"
이렇게 된 결과, 내년의 세금은 하나미치의 드레스를 위해,
조금이지만 인상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온 것은, 양손에도 안을 수 없을
정도의, 색색가지의 최고급의 견사. 게다가 순은으로 만들어진
바늘더미였다. 하나미치는 그것을 보고 기우뚱 현기증이 났다.
지금 와서 불평을 말할 기운도 안 나서, 그 중에서 제일 작은
바늘과 빨간 실과 녹색 실을 하나씩 집어들었다.
"...왜 하얀 잠옷을 수선하는데 빨강과 녹색이지?"
"잠자코 봐. 단순한 수선이 아니라 예술이라구. 이대로는
초라하니까."
이렇게 해서 하나미치는 결과적으로 루카와의 잠옷을 수선하기
시작했다.

하얀 천에 꽃이 피었다.
찢어진 겨드랑이에서 앞섶의 4분의 1까지, 녹색 덩굴이 이어져
곳곳에 가련한 꽃이 피어 있었다.
처음에는 빨간 꽃만이었지만, 모처럼 실이 많았기 때문에, 파랑과
노랑과 분홍 꽃도 피어났다.
몇 개월의 공백을 느낄 수 없는 하나미치의 재봉술은 천재를
자칭해도 될 정도로 훌륭했다.
그렇게 복잡하게 손을 놀린 것도 아닌데, 순식간에 자수 꽃밭은
넓어져갔다.
루카와는 가만히, 찢어지기 전보다 훨씬 아름다워져 가는 자신의
잠옷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 ...자수하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네.
단조로운 작업을 반복하고 있으면, 점점 마음이 진정되어 가니
불가사의하다.
어느 새인가 싫은 일은 잊고, 콧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했다.
- 그러고 보니 마지막에 완성했던 밋찌의 파티복이 있었지.
루카와에게 찢겨버렸지만 그게 내 최고 걸작이었어 -
자신이 만든, 많은 꽃이 피어 있는 의상을 입고 미소지었던
미쯔이는 너무나 너무나 아름다웠다.
충분히 소화해내준 게 너무 기뻐서, 연일 잠도 안 자고 계속
바느질하느라 쌓인 피로가 한번에 가셨었다.
- 이제 두 번 다시 그 이상의 건 만들 수 없겠지... -
멍하니 과거를 회상하고 있던 하나미치는, 다음 순간 보통은
절대 하지 않는 실수를 했다.
"아얏!"
"왜 그래."
"...아무 것도 아냐. 바늘이 손가락을 좀 찔렀을 뿐이야."
"보여줘."
"...우."
지금까지 그렇게 많이 마구 때려댔으면서, 바늘로 손가락을 찔린
것만으로 걱정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루카와에게, 반은
곤혹스러워하면서 손가락을 내밀었다.
"뭐 대단한 상처는 아냐."
엄지손가락 중간 부분에 솟아난 새빨간 핏방울.
루카와는 그것을 주저하지 않고 핥았다.
"루...!?"
핥은 것만으로 모자라서 엄지손가락을 덥썩 입에 넣어버렸다.
끈쩍하고 따뜻한 감촉에 숨을 들이쉬고, 황급히 손가락을 뺐다.
"기, 기분나쁜 짓 하지 마!"
"소독이야. 지금 와서 이런 정도로 놀라지 마. 처녀도 아니면서."
"뭣!"
"붕대 갈아줄 테니까 다시 한 번 손 내밀어."
"필요없어."
"괜찮으니까 내밀어."
가부를 말할 수 없는 어조로 말하며, 손을 잡아챈 루카와는,
정말로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
말을 꺼내면 듣지 않는 루카와의 성격은 잘 알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좋아하는 대로 내버려두고 15분.
이렇게 해서 완성된 엄지손가락의 붕대는, 붕대 그 자체가
밧줄처럼 칭칭 말려 있는 데다가, 몇 겹이나 겹쳐서 엄지손가락이
경단처럼 되어버렸다.
확실히 말해서
너무도 흉하다.
"...너 정말 못한다."
들을 것까지도 없이, 루카와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조금
뺨을 상기시키며 외면했다.
그 태도가 아이같아서, 하나미치는 무의식중에 웃어버렸다.
"!"
루카와는 너무나 놀란 모습으로 하나미치를 바라보았다.
"뭐...뭐야."
"너 지금 웃었냐."
"우... 그게 뭐."
"...내 앞에서는 이제 두 번 다시 웃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넋두리하듯이 중얼거린 루카와는, 다음 순간 아무런 사심없는
표정으로 꽃이 활짝 피듯이 웃었다.
이만큼 확실한 미소는, 처음 만났을 무렵에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것.
이 루카와의 표정을 이끌어낸 것이 자신의 미소라고 생각하자,
하나미치는 뭐라 말할 수 없이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 ...원래는 나쁜 놈이 아냐. 고백받기 전에는 굉장히 좋은
녀석이었는데, 하지만... -
점점점점 죄책감이 쌓여갔다.
- 정말로 오늘밤 루카와를 죽일 수 있을까 -
...아니, 고민해서는 안된다.
루카와를 죽이지 않으면 미쯔이가 죽는다.
미쯔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설령 여신을 상대로 해도,
자신은 망설임없이 칼을 내리칠 것이다.
지옥에라도 떨어질 것이다.
자신에게 있어서 미쯔이는 정말로 모든 것이니까.
모든 것이었다. 그러니까-
"멍청이...? 너 왜 우는 거지?"
"...아?"
하나미치는 뺨을 적시는 따뜻한 액체를 깨닫고, 황급히 눈가를
닦았다.
하지만 계속계속 솟아나오는 눈물은 멈춰주지 않았다.
"멍청이?"
"아무 것도 아냐."
"아무 것도 아닌 얼굴이 아니잖아."
끌어안으려고 뻗어오는 루카와의 손을, 하나미치는 거칠게
뿌리쳤다.
"나한테 상냥하게 굴지 마! 너는 세계 최고의 악당이야! 나는
속지 않아! 너는 내게서 밋찌를 빼앗아갔어! 절대, 절대 용서
못해!"
루카와는 숨을 들이쉬었고- 갑자기 눈이 가늘어졌다.,
방금 전까지 부드러웠던 시선이 차갑고 예리한 빛을 발했다.
"-아아, 그런가. 특별히 용서받는 것따위 생각도 안했어."
루카와는 말하자마자, 하나미치를 침대로 끌어당겨 쓰러트렸다.

"하악. 아파... 웃... 우욱... 앗."
타는 듯한 열이 온몸을 태우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저항해서 진입물을 막으려고 한, 좁은 기관. 그것을
억지로 꿰뚫려서, 하나미치는 끊임없이 계속 비명을 질렀다.
"멍청이..."
루카와는 언제나 하나미치에게 굶주려 있었다. 공들여 준비해서,
하나미치의 충격을 완화시키는 등의 여유는 이전부터 전혀 없었다.
게다가 하나미치를 만나기 전의 여성과의 성교는, 아이를 만드는
것만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정말 최소한의 행위밖에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나미치에게 부담만을 강하게 주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번의 폭주는 고의였다.
그 정도로 루카와는 화나 있었던 것이다.
악당이라든가, 용서 못한다든가 하는 말이 이유는 아니다.
그의 분노의 최대 원인은 단 한 마디.
내게서 밋찌를 빼앗아갔어- 그렇게 말한 하나미치의 말이었다.
"웃... 허억... 우우..."
넣어질 때마다 피가 흘러서 지끈지끈 두통마저 일었다.
수치심도 날아가 버리고, 맞는 쪽이 훨씬 나을 정도의 아픔에,
하나미치의 의식은 어중간하게 흐려져가고 있었다.
이전이라면 여기에 이르기까지 확실히 정신을 잃었을 텐데,
어영부영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에, 반죽음의 생지옥은 길었고,
그것은 길었고, 하나미치는 계속 괴로워했다.
- 아파.
너무 아파... 역시 루카와는 대악당이야 -
흐린 눈으로 루카와를 노려본 그 순간- 심장이 얼어붙었다.
- 뭐...!? -
루카와의 상반신에 감겨 있는 붕대.
그것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이다.
약간 흘러내린 정도가 아닌, 확실하게 상처가 터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그것.
- 이녀석, 언제부터... -
루카와의 몸을 걱정할 상태가 아닌데도, 폭력 속에서 하나미치는
아연한 듯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뭔가에 씌인 듯이, 무턱대고 고문을 계속하는 루카와의 얼굴은
광기로 물들어 있었다.
아프지 않을 리가 없는데도, 루카와는 안는 것을 전혀 멈출
기색이 없었다.
주변에 충만한, 목이라도 메일 듯한 자신과- 루카와의 피냄새.
- 멈추게 해야 해 -
빨리 멈추게 해서 의사를 불러야 해.
죽이려고 하는 인간에 대해서, 몸을 신경쓰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신적인 여유는, 지금의 하나미치에게는 없었다.
격렬하게 삽입되어서, 혀를 깨물고 싶어지면서도, 필사적으로
말했다.
"피가- 루카와, 피가...!"
"시끄러!"
"루카와!"
하나미치가 루카와를 부둥켜 안은 것과, 그가 사정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몸 속에 뜨뜻미지근한 감촉이 퍼져가서, 밖으로 방출하려는 것을
숨을 들이쉬며
참아냈다.
"멍...청이?"
묶어둘 듯한 강한 힘으로 하나미치는, 루카와에게 달라붙어
있는 채였다.
움직이려는 루카와를, 더욱 더 힘을 줘서 끌어안았다.
"움직이지...마... 안돼... 이렇게... 피...피가... 너, 피..."
"멍청이..."
루카와의 눈동자가 곤혹스러움으로 흔들렸다.
숨이 끊어질 듯한 건 자신인데, 루카와의 몸을 걱정하는 하나미치.
어깨의 재출혈을 깨달은 루카와는, 이런 심한 짓을 해도 아직
걱정해주는 하나미치의 상냥함을 느끼고, 괴로운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루카와?"
"-빌어먹을...!"
갑자기 그렇게 외치고, 안타깝게 하나미치를 꼭 껴안았다.
"좋아해. 널 보고 있으면 너무 좋아서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어.
숨쉬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네가 좋아서 가끔 호흡곤란으로
죽을 것처럼 괴로워져."
"...루...카."
이렇게까지 깊이, 누군가에게 사랑받은 적이 지금까지 있었던가.
누군가의 유일한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적이,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미쯔이는 하나미치의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도 그는 모두의
왕자님이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자신만을 원한 것은 루카와가
처음이었다.
...지끈 하고 가슴이 죄어오듯이 아파왔다.
"...내가 반한 건
너의 웃는 얼굴이야. 하지만 네가 웃을 수
있게는 하지 않을 거야. 절대, 그녀석과 행복하도록 놔두지 않을
거니까. 히사시도, 히사시를 생각하는 너도 너무나 싫어."
거칠게 말을 내뱉으면서 노려보고, 눈물을 흘리는 루카와.
- 정말로 이녀석은 어린애야... -
나이를 먹고 몸이 커졌을 뿐인 아이.
하나미치는 몽롱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새삼 그렇게 생각했다.
이전에는 루카와의 얼굴을 보고, 인간 같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얼굴이 좋아도, 울고 화내고 웃는, 똑같은 인간이다.
- 그러고 보니 밋찌도 딱 한 번 내 앞에서 운 적이 있었어 -
신과도 같이 신성하게 보였던 미쯔이가 울었을 때, 그 일은 너무나
충격이었다.
미쯔이는 절대 울거나 낙담해 있거나 하는 일이 없는 완벽한 존재라고
믿고 있었으니까.
생각해 보면 요헤이도, 센도도, 아야코 상도 모두 그 생각을 비웃었다.
어째서 모두 그렇게 간단한 일을 모르는 건가 하고, 언제나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틀렸던 건 내 쪽?
- 혹시 밋찌도 루카와처럼, 울고 낙담하고 상처입는, 약하고 상처입기
쉬운 보통 인간이었던 걸까.
- 혹시 루카와에게도 밋찌와 같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이 어딘가에
있는 걸까.
너무도 좋아하는, 동경해 마지 않는 검은 머리에 하얀 피부. 완벽한
얼굴에 검은 눈동자.
너무도 아름다운 두 사람.
하나미치는 거의 꿈을 꾸는 듯한 부유감 속에서, 여러 생각을 하면서
이윽고 의식을 잃었다.

===========================================================

열살 때부터 여자가 서툴고 안 서툴고를 아는 루카와...
무서운 아동이었군... 이쯤 되면 징그럽다...-_-;
정말로 열살 난 남자애가 아기를 만들 능력이 있을까요...
열살 난 여자애는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생*가 빠르다면)
남자의 경우는 으음...;; 아무래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 나이 때도 제대로 된 정*가 나올 수 있는 건가...
이건 소설이니까 루카와는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현실이라면
아무래도 무리가 아닐까요.
(미성년자도 볼 수 있는 게시판에 이런 걸 써서 죄송)
그리고 **씬 중에서 본의가 아니게 삭제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쪽팔려서 도저히 번역할 수가 없더군요...-///-;
아마 제 일본어가 아직 서툴러서 뜻을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지만
불순한 제게는 그런 의미로밖에 안 보여서...(하하하...)
어디를 삭제했을까요~~ ♬


PRE번 호 : 1906 / 2053 등록일 : 2000년 12월 11일 23:09
등록자 : HALKO 조 회 : 210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2권 #13
/PRE

13.

밤이 되서 잠들면, 언제나 꿈을 꾼다.
제일 소중한, 제일 좋아하는, 아름답고 아름다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나날을.
아직 그렇게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을 텐데, 너무도 옛날 일처럼
가슴이 지릿 아파지는 듯한, 쓸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눈을 떴을 때는 해도 서산 저편으로 훨씬 전에 넘어가서, 암흑의
베일이 방안을 감싸안고 있었다.
폭력적으로 안긴 피로만이 아니라 어젯밤 철야한 것도 있어서,
너무 많이 자버린 것 같다.
"...으응? ...아아... 그러고 보니 나 또 루카와에게... 어?"
기억이 지금 한 개, 확실하지 않다.
- 루카와에게 강제당하고, 녀석의 어깨 부상이 터지고... 그리고... -
'좋아해. 널 보고 있으면 너무 좋아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확!
루카와의 어린애 같은 사랑의 고백을 생각해내고, 순식간에 목에서
머리 위로 뭔가가 끓어올랐다.
"이잇."
도리도리 고개를 젓고, 루카와의 말을 황급히 머리에서 떨쳐냈다.
- 좋아한다는 말, 지금까지도 썩을 만큼 많이 들었잖아. 지금와서
그런 일 정도로 뭘 동요하는 거야 -
그래- 정말로 새삼스럽게...
...하지만 정말로 이해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나미치는 후우... 한숨을 쉬고, 머리맡에 놓여 있는 춧대의
양초 한 자루에 불을 붙였다.
어렴풋이 밝아지자, 주위의 상태를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
"상처 처치는 잘 해둔 것 같네."
옆에서 죽은 듯이 자고 있는 루카와를 보고, 붕대가 새로운 것으로
갈아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잠깐. 그렇다는 것은
혹시, 내 뒷처리도 여관 옆집누나나 의사가..."
무서운 생각이 들자, 하나미치는 한 번 고개를 저었다.
"루...루카와가 한 게 당연하지. 그녀석은 내 나체를, 남자는 커녕
여관들에게조차 절대 보이지 않을 놈이야."
억지같은 말이 너무도 지당해서, 하나미치는 자신의 말에 납득했다.
그러나 안심한 것은 좋지만, 아직 가슴 속에 뭔가가 걸려 있는
느낌이 들어서, 웬지 모르게 시원하지가 않다.
"...?"
깨어나서 아직 정신이 없는 하나미치는, 중대한 일을 잊고 있었다.
정신을 잃고 그대로 15시간 가량 자서, 아직도 잠이 덜깨 있었던
것이다. 어제 낮의 일은 생각났지만, 어젯밤의 일을 생각해내는 것은
한참의 시간이 필요했다.
"...밋찌의 아버지인가..."
턱을 괴고, 착잡한 마음으로 옆에 있는 미모를 보았다.
"성격은 전혀 닮지 않았지만 얼굴이 잘난 것만은 닮았어."
하나미치는 주저하다가 루카와의 머리칼을 만져보았다.
"...뻣뻣해. 머리털은 밋찌 쪽이 부드러워서 훨씬 예뻐. 하지만 눈은
루카와 쪽이 가늘어서 예쁜 것 같아..."
중얼거리고 나서, 하나미치는 자신의 발언내용에 놀라서 아연해했다.
"밋찌보다 루카와 쪽이 좋은 점이라니, 있을 리가 없어! 무슨 말을
한 거야, 나는!"
- 나는 최저야!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총명한 기적의 존재인 밋찌를,
이런 어린애에 변변치 않은 놈에, 짐승인 루
카와 따위와 비교하다니...
루...루카와 따위와, 루카와 따위와! -
"크아악!"
천개가 달린 호화로운 침대의, 네 개의 단단한 기둥 중 한 개에
몇 번이나 머리를 박았다.
- 루카와는 대악당이야! 쇼호쿠가 낳은 국보인 밋찌를, 외국에
줘버린 것만으로도 용서 못할 소행인데, 목숨까지 노리고 있는
최저최악의 쓰레기야!
"-아?"
하나미치는 갑자기 굳었다.
목숨을- 노려?
"!"
지금이 되서 겨우 하나미치는 완전히 깨어났다.
자신이 처해 있는 입장- 중요한 사명을 생각해낸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루...루카와의... 상처를... 걱정하다니... 나 정말로...
멍청이... 아닐...까..."
- 내가... 이 내가 루카와의 목숨을 빼앗는데!
흔들리지 않는 결심이었을 텐데.
확실하게 결정하고, 오늘 밤 확실히 죽일 생각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밋찌는 죽는다.
세계에서 제일 좋아하고 소중한 밋찌가 살해당한다.
자신에게 이 이외의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러니까 한순간도 망설임없이 결정했는데, 그것을 잠시나마
잊고 있었다니!
"...버...벌써 밤이야. 빨리 죽여야 해..."
하나미치는 거의 떨어지듯이 침대에서 내려왔다.
발목에 걸린 수
갑이 철컥거리는 싫은 소리를 냈지만, 소리를
신경쓸 정도의 정신적인 여유는 없었다.
그 이전에 루카와는, 이 정도의 소리에 일어나는, 잠귀가 밝은
남자는 아니었다.
여관도 전부 나가 있다.
하나미치의 행동을 누구도 목격하는 자는 없다.
떨리는 손으로, 침대 밑의 단검을 집어들었다.
순금과 철로 만들어진 그것은, 묵직하니 무겁고 차가웠다.
칼집 속에서 나타난, 날카롭고 정련된 검신.
엷은 빛에도 반사하는 예리한 검을 보고 꿀꺽 침을 삼켰다.
지금까지 막연했던, 루카와를 죽인다는 행위가 현실성을
띈 채 압박해오고 있다.
"오...오늘밤, 꼭 해야 할 이유는 없어..."
무의식중에 도피적 발언을 입밖에 내고 나서, 즉시 우거지상을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 안돼. 내일이라도 쇼호쿠가 카이난을 침공해 들어갈지도
모르는데 한가로운 말 하면 안돼 -
그리고 다른 의미로라도, 시간을 버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실행할 수 없게 될 것 같다.
결의했던 어젯밤보다 하루 지난 지금이 괴로웠다.
- 어쨌든 해야 할 일이라면 빨리 해버리는 쪽이 좋아 -
빨리, 빨리, 빨리, 빨리-
정에 이끌려서 돌이킬 수 없어지기 전에.
-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마. 생각하는 건 밋찌의 일만 -
루카와에 의해 헤어지기 직전에 둘만이서 나눈 대화
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네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누구지?'
'밋찌야.'
'그렇지?'
'응.'
'-그럼 울지 마. 나 힘낼 테니까.'
울고 있는 자신에게,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딴 곳을 바라보면서
무뚝뚝하게 말한 미쯔이.
지금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미쯔이다.
이 마음은 일생 변하지 않는다.
- 밋찌도 힘낸다고 말해주었어. 나도 힘내야 해 -
미쯔이의 일을 생각해내려고 한 행위는 잘한 짓이었다.
단검을 쥔 손의 떨림이 겨우 진정되었다.
"이 정도로 약한 소리를 내면 먼 나라에서 힘내고 있는 밋찌가
비웃을 거야."
모든 것은 단 한 사람을 위해.
소중하고 소중한, 정말로 소중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가볍게
여길 수 있을 정도로, 소중한 사람을 위해.
센도는 루카와를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다고... 그렇게 해준다고
했다. 루카와를 죽인 죄책감을 자신이 짊어지겠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하나미치는 국왕 살인죄를 확실하게 공적인 자리에서 밝힐
생각이었다.
분명 사형은 면할 수 없다. 본래대로라면 친척과 연고자에게까지
죄가 미칠 정도의 죄라는 것도 알고 있다.
- 설마 이런 식으로 천애고아인 게 도움이 될 줄이야 -
자신의 오명은 역사상 최고의 국왕이라 칭송받는 루카와를 죽인
죄인으로서, 분명 쇼호쿠가 계속되는 한 영원히 남을 것이다.
"...루카와. 가능한 한 아프지 않게 죽여줄게. 어쨌든 곧장 나도
죽을 거야. 저 세상에 가면 어떤 벌이라도 받겠어."
루카와의 평온한 잠든 얼굴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리고 다음에 취한 행동은 자신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 루카와... -
입술과 입술을 살짝 겹쳤다.
- 부드러워... -
언제나 격렬하게 강탈당하고 아플 정도로 빨아들여져서,
매순간마다 루카와의 입술은 닿으면 아픈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렇게도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것이다.
눈을 꼭 감고 곧바로 입술을 뗐다.
"...작별인사야, 바보 여우."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하나미치는 양손으로 단검을 쥐고, 들어올렸다!
"-청이."
흠칫 몸이 굳어졌다.
"멍청이..."
루카와는 다시 한 번 하나미치를 부르며 살짝 미소지었다.
"...카와."
단지 잠꼬대.
일어나려는 것은 아니다.
이대로 단검을 내리면 모든 것이 끝난다.
모든 것이-
-카랑.
손에서 단검이 미끄러지면서, 맑은 소리를 내며 침실 바닥에
떨어졌다.
"...미안, 밋찌... 나... 나..."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렸다.
"나 루카와를 죽일 수 없어..."
여기서 손을 내리면 소중한 사람을 구할 수 있는데.
그래도... 나는...
"...미안해..."
울면서 여기에는 없는 미쯔이에게 몇 번이고 사과하면서,
동시에 비장한 결의를 굳혔다.

"-하나미치!?"
숨기고 있던 열쇠로 수갑을 풀고 잠옷 차림인 채로 복도로 나오자,
누군가가 불렀다.
"...?"
울어서 새빨개진 눈을 그쪽으로 돌렸다.
"...아... 요헤이...?"
"하나미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온 것은 늦은 밤의 금염궁에는 있을 리 없는
요헤이였다.
입구 옆에는 왜인지 두 명의 병사와 한 명의 여관이 쓰러져 있다.
"어째서 요헤이가 여기에 있는 거야?"
"구해주러 왔어. 같이 이 나라를 떠나자."
"...!"
놀라서 요헤이를 응시했다.
"여기에서 침실로 잠입해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수고를 덜어서
다행이다. 뭐, 어느 쪽이든 잠버릇 나쁜 아버지니까, 깨어나서
방해받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루카와의 잠버릇은 모두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듯하다.
"그럼 네가 그 사람들을 해치운 거야?"
복도에 쓰러져 있는 세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아아. 경호병 두 명과 불침번인 여관이야. 그녀석들이 소란을
피우면 널 데리고 나갈 수가 없어지니까, 급소를 찔러서 잠들게
했어."
요헤이의 말을 듣고 처음으로, 보초가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하나미치는 혼자서 여기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국왕이 있는
방의 출입구에 병사가 없을 리가 없는데 깜박 잊고 있었다.
발견되서 다시 잡히면 두 번 다시 탈출 기회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아버지도 센도 형도 따라갈 수 없어. 도망가서
이 나라를 떠날 결의는 굳혔어. 하지만 하나미치, 너를 두고 갈 수는
없지. 어제는 거절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 옆에 있는 건,
너를 위해서도 안되는 일이야. 같이 가자."
"요헤이..."
언제나 하나미치를 제일 생각해 주는, 상냥하고 의지가 되는 친구.
자신 한 명만 두고 생각한다면, 분명 그의 힘을 빌려 루카와의 손이
닿지 않는 이국으로 도망가버리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하지만-
"...미안. 나 너와 갈 수 없어."
"어째서?"
"나는 밋찌에게 갈 거야."
"아직 너는 그런 말을 하는 거냐!"
드물게도, 요헤이는 하나미치를 향해 고함을 질렀다.
"그건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잖아! 이제 형은- 카이난은
틀렸다고... 어제와 오늘, 나도 철저하게 군부를 조사했어. 결과는
최악이야. ...우리들은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괴로운 듯이 요헤이가 말했다.
빙 둘러 말해서, 미쯔이를 단념할 수밖에-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고
요헤이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미치는 슬프게 미소지었다.
"도울 수는 없어도 함께 죽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하나미치!"
"...밋찌는 말야, 내게 있어
서는 신이야. 신을 내버려두고 살아갈
정도라면,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은 할 거야. 그것도 안된다면
순교할 거야."
지금에 와서야 알게 된 사실.
미쯔이는 신이니까, 지금까지 한 번도 독점하고 싶다는 건
생각지도 않았었던 것이다.
신은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두에게 포교하고 숭배받는
것이다.
- 아마 이건, 사랑이라고 부를 수 없는 거겠지 -
자신을 사랑하는 루카와를 이해한 지금에 와서, 갑자기 깨달았다.
자신은 미쯔이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 대한 마음이 사랑에 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미치. 너 그렇게까지..."
"아,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둘이서만 죽으려고 카이난으로 갈
생각은 없어. 가능한 한 둘 다 살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고,
옆에 있으면 최악이라도 몸을 희생해서 밋찌만은 감쌀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직 모든 걸 단념한 게 아니었어?"
"응, 당연하지. 나는 사쿠라기 하나미치잖아."
카이난으로 간다.
설령 성공할 가능성은 적더라도, 루카와의 계획을 미쯔이에게
알리고 도망치게 하기 위해.
그리고 만에 하나일 때는, 그의 방패가 되어서 죽기 위해서
카이난으로- 미쯔이에게로, 이번에야말로 정말로 가는 것이다.
이것이, 루카와를 죽일 수 없었던 하나미치가 내린 결론이었다.
요헤이는 고개를 숙이며 주먹을 떨었다.
"...미안해, 하나미치. 나쁜 건 전부 우리들 왕족이야. 너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어째서 요헤이가 사과하는 거야. 모든 악의 근원은 루카와야.
나도 왕족이라든가 왕궁이란 건, 근본적으로 질색인 세계지만,
하지만 말야. 나는 밋찌를 만나서 측실이 될 수 있었던 건, 지금도
너무도 기쁘게 생각하고 있어. 밋찌를 만나고 나서 요헤이와 재회할
수 있었고, 나는 쇼호쿠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었어."
"하나미치."
"...하지만 밋찌는 나를 택했기 때문에, 재난의 연속이야. 나는
정말로 최악의 측실이야. 어째서 이렇게 되버린 걸까... 밋찌를
위해서 세계 제일의 측실이 될 거라고 맹세했는데... 세상 일이란
건 잘 되는 게 아니야."
엄청나게 운 뒤인데도,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알았어."
"요헤이?"
"내가 너를 카이난의 국경까지 데려다 줄게."
"!"
"사실은 직접 형에게 데려다줄 때까지 따라가주고 싶지만 내 얼굴은
이 대륙에서는 너무 알려져 있어. 그리고 증서도 한 장뿐이야."
"증서?"
"아버지가 폐인이 되었을 때 너를 카이난에 보내려고 수배해둔
증서가 겨우 어제 나한테 들어왔어.며칠이 걸렸지만, 저쪽 궁전
내에서도 그 나름대로의 효력이 있는 증서야. 이것만 있으면, 미쯔이
형을 만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요헤이!"
하나미치는 요헤이를 힘껏 끌어안았다.
"고마워! 요헤이가 있어줘서 다행이야...!"
"-내가 반드시 미쯔이 형을 만날 수 있게 해줄 테니까. 너의 행복은
나의 행복이야. 반드시 살아남아서 형과 행복하게 지내."
요헤이의 진지한 말에, 하나미치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미치를 금염궁에서 데리고 나오기 위해, 사전에 용의주도하게
준비해 두었던 요헤이는, 무사히 하나미치를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게 탈출시켰다.
그리고 일단 하나미치의 갈아입을 옷과 증서를 가지러 제 3왕자로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흑염궁으로 잠시 돌아갔고, 한 필이면 도중에 말을
쉬게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발빠른 군마를 한 사람당 두 필씩 끌고
밤이 지나기 전에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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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헤이...T_T

PRE번 호 : 1907 / 2053 등록일 : 2000년 12월 11일 23:10
등록자 : HALKO 조 회 : 185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2권 #14
/PRE

14.

하나미치의 도망은 곧장 발각되었다.
요헤이에게 급소를 맞아서 정신을 잃고 있던 병사와 여관들이,
순회를 돌고 있던 위병들에게 발견된 것이다.
국왕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긴건가 하고 황급히 방으로 들어간
그들이 본 것은 자고 있는 국왕 단 한 명.
왕이 무사한 사실에 그들은 안도했지만, 루카와 쪽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잠이 덜 깬 상태인 루카와도, 사태를 파악한 순간,
귀신 같은 형상으로 벌떡 일어서서, 아직도 정신을 잃은 채인
위병에게 달려가 그 뺨을 때렸다.
"일어나라, 겁장이 녀석!"
너무 세게 때려서, 의식을 되찾기는 커녕 입에서 피거품을 물며
눈이 뒤집어졌다.
"쳇."
한 명을 던져버리고 다른 한 명을 밟기 시작했다.
밟힌 남자는, 늑골이 부러지는 기분나쁜 소리와 함께 눈을 떴고,
말다운 말을 남기기도 전에 다시 의식을 잃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도움이 안돼!"
마지막 여관을 정신차리게 하기 위해 멱살을 쥐고 끌어올리려 할 때-
"아버님. 그런 방법은 역효과입니다."
이 소동에 달려온 센도가 복도에 장식되어 있던 꽃병의 물을, 꽃과
함께 여관에게 뿌렸다.
"...응..."
효과는 즉각이었다. 흠뻑 젖은 여관은 처음으로 몸을 조금 움직였다.
기회를 두지 않고 루카와는 외쳤다.
"멍청이는 어디에 갔나! 들어온 놈이 있었나!?"
"...폐하?"
중얼거린 순간, 자기 가까이에 아름다운 국왕폐하의 얼굴이 보이자
간담이 서늘해졌고, 그녀는 순식간에 제정신을 되찾았다.
여관은 황급히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녀에게 루카와는 다시 한 번 반복했다.
"멍청이... 사쿠라기 하나미치는 어디에 갔나."
"사쿠라기 님...? 설마 사쿠라기 님이 행방불명이신 겁니까!?"
그녀의 대답에 미간의 주름이 깊어졌다.
"너희들을 이렇게 한 건 멍청이가 아닌가."
"예...예."
"누구냐."
"제 3왕자, 미토 요헤이 전하입니다."
"-!"
이렇게 해서 하나미치가 요헤이의 도움으로 도망갔다는 것이
발각된 것이다.
말이 없이 굳어버린 사람들 중, 센도가 한 마디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대담하구나, 요헤이."
- 국왕 암살은 실패인가. 형에게 완전히 중독되어 있는 사쿠라기라면
어쨌든 꼭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나도 생각이 짧아 -
자조하고 나서, 센도는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아버님?"
"-저 멍청이."
한순간 모든 표정이 사라진 루카와는, 순식간에 얼굴을 다시 분노로
새까맣게 물들였다.
"장남만으로 모자라서 삼남까지 꼬시다니!"
내뱉듯이 외치며, 루카와는 여관을 걷어
찼다.
"국경을 전부 봉쇄해! 아들과 함께 있다면 증서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완벽한 허가증을 가진 놈이라도 개미새끼 하나 통과하게
하지 마! 흑염궁에도 병사를 보내! 요헤이 측근의 신하에서 흑염궁의
여관까지 전원 일단 구속해라! 숨어 있을 것 같은 여관과, 그녀석과
멍청이의 고향에도 사람을 풀어!"
냉정함을 잃고, 얼굴 모양이 완전히 변할 정도로 분노해 있어도, 센도가
봐도 정확하다고 생각되는 완벽한 지시를, 루카와는 내리고 있었다.
이 상태로는, 즉시 두 사람은 끌려올 것이다.
"...끝났군, 그녀석도."
이때 센도는, 형에 이어서 동생의 운명도 다했다는 사실을, 폭풍과도
같은 소란 속에서 깨달았다.

센도와 루카와의 예상 이상으로 요헤이는 신속하고, 게다가 머리회전도
빨랐다.
쇼호쿠에서도 발이 빠르기로 손꼽히는 말을 네 필, 번갈아가면서 달리게
해서 전력으로 질주해서, 국왕의 전령이 닿기 전에 두 사람은 몇 개의
마을과 도시를 달려갔다.
이렇게 해서 해가 질 무렵에는, 카이난으로 가는 최단거리인 쇼호쿠
최대의 산맥의 기슭에 있는 숙박 거리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구가도(舊街道)를 따라서 형성된 이 거리는, 일찌기 번영했던 흔적이
빈집과 돌담 등에 곳곳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숙박 거리라고 불리는
것도 주제넘을 정도로 쓸쓸해 보였다.
쇼호쿠를 거대국가로 만든 현 국왕이, 산을 뚫고 다리를 쌓은 새로운
도로를 10년 전에 완성시켰기 때문에, 그 이전의 불편한 구가도를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었기 때문이다.
요헤이는 사람이 적은 구가도를, 감히 도망경로로 선택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도망 첫날 밤, 거리에 세 채 있는 여관 중 한 곳에서 따뜻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맛있어!"
향신료를 가미한 새고기를 입에 넣은 순간, 하나미치는 무의식적으로
환호를 질렀다.
"이것도 맛있어! 맛있어!"
물을 만난 고기처럼 눈을 반짝이며, 테이블 가득히 놓인 요리를 걸신들린
듯이 먹었다.
맞은편에 앉은 요헤이는 술을 가볍게 홀짝이면서, 그런 하나미치를
미소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때도 식욕이 있구나. 아버지가 너한테 변변한 것도 안 먹인 거냐."
"응! 여우는 째째하니까! 녀석이 가져오는 요리는 늘, 이런 커다란
접시에 요만큼밖에 안 가져와! 야채 같은 것도 일부러 꽃 같은 모양으로
다듬어 놓으니까 분량도 적어지고. 내가 먹고 싶은 건 사람이 먹는
음식이지, 꽃이나 나비가 아냐! 그런 것 아무리 먹어도 만족감이 없어!"
"너 분명 형 옆에 있을 때는 궁정요리를 신기해하면서 먹지 않았었냐?"
"백염궁 건 맛있지만, 금염궁 건 맛없어!"
큰 목소리로 궁전의 이름을 계속 말하는 하나미치에게, 도망자로서의
자각은 없었다.
오랜만의 해방감에 떠들어대는 하나미치를, 요헤이는 꾸짖을 생각도
하지 않고 웃는 얼굴로 얘기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백염궁이라도 이 정도는 아냐."
"그래. 나도 대중의 취향이 입에 맞아. 궁정요리는 매일 먹
으니까."
"그렇지? 아-아. 이런 맛있는 것, 밋찌도 루카와도 한 번도 먹은 적
없겠지."
"형들은 먹었어. 자주 거리로 몰래 놀러 나갔으니까."
"음... 루카와는?"
"그녀석은 없겠지. 놀러 거리로 나간다는 일은 한 번도 없을 거야."
"...그런가. 그녀석 정말로 시시한 인생을 살아왔구나."
"뭐냐, 너. 그런 아버지라도 동정하는 거야? 그건 상냥함을 넘어서서
사람이 좋은 거야. 그런 아버지가 폐인이 됐을 때도 그렇게 말했지.
게다가 어슬렁어슬렁 병문안 갔다가 다시 붙잡혀서 제 무덤을 팠잖아."
"벼...병문안 가려던 건 아니었어. 그리고 동정 같은 것도 아니야."
"그건 그렇겠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동정할 수 있다면 네가 바보지."
"그러니까 동정하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
"당연하지. 화내지 마."
"우."
그때 두 사람 옆으로, 사람 좋아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 손에 새로운
요리접시를 들고 다가왔다.
"어머, 벌써 이렇게 줄어들었네요. 내 요리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해
주는군요."
맛있는 것만 있으면 즉각 기분이 좋아지는 하나미치는, 싱글싱글 웃으며
대답했다.
"예! 아줌마의 요리는 나 다음으로 최고예요!"
"고마워요. 내일 아침식사도 솜씨를 발휘해 볼게요."
"예!"
"유감이지만 오늘 밤은 묵지 않아."
"에?"
분명 이대로 묵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던 하나미치는, 놀라서 요헤이를
돌아보았다.
"묵지 않는다뇨, 손님. 벌써 날도 저물고 이 근처에는 아무 것도
없으니까 오늘은 여기 묵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편이 좋아요."
"고마워요. 하지만 급해서요. 산노오 행 배가 들어오는 항구는,
구가도를 여기에서 12시간 정도 서쪽으로 가면 있지요?"
"손님, 산노오에 가시나요? 그럼 분명 오늘밤은 서둘러 가는 편이
낫겠네요. 내일 아침 일찍 떠나는 배를 놓치면, 다음에 오는 건 분명
10일 후를 기다려야 할 테니까요."
"-산노오?"
카이난으로 가는 게 아니냐고 물어보려던 하나미치는, 요헤이의 시선에
입을 다물었다.

여관을 나와 다시 말 위에 오른 두 사람은, 가득한 별 아래를 경쾌하게
달렸다.
"저기. 요헤이는 산노오에 가는 거야?"
"안 가."
"어? 하지만 아까..."
"시간 벌기야. 너의 빨간 머리는 눈에 띄니까. 내일은 분명 그 여관까지
아버지의 손이 뻗칠 거야. 거기서 우리들이 바다를 건너 산노오로 간다고
믿는다면, 이제부터의 여행은 좀 더 편해지겠지."
"과연. 너도 내 친구니까 천재구나."
거기에는 대답하지 않고 요헤이는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이해한 하나미치는 잠시 말없이 말을 몰았지만, 본래 떠들기 좋아하는
성격상, 곧장 다시 입을 열었다.
"이봐, 요헤이. 이런 때에 이런 생각하면 좀 그렇지만, 승마란 건
재미있어. 나 이렇게 많이 달려본 건 처음이거든."
그리고 허리만 아프지 않았다면 좋았을 거라고는, 역시 말할 수 없다.
"아아. 말은 탈 수 있게 될 무렵이 제일 즐거우니까. 그렇다고 해도
네가 이렇게까지 능숙하게 탈 수 있다니 행복한 오산이었어. 그 아버지가
제대로 가르쳐줬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상상이 안돼."
"음... 좋은 교사였어."
아득한 옛날 일 같은 느낌이 들지만, 승마를 가르쳐 주었던 때의 루카와는
좋은 교사였고, 그리고 좋은 친구이기도 했다.
"거짓말이지."
전혀 믿지 않는 요헤이에게, 하나미치는 어째서인지 뺨을 살짝 붉혔다.
"...루카와가 내게 승마를 가르친 건, 서로의 입장을 알기 전이니까..."
"하앙. 아직 비교적 아버지가 제정신이었을 무렵인가."
"에..."
- 제정신...? -
그럼 지금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가.
분명 강제당한 직후에는, 루카와가 이상해져 버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막 만났을 무렵의 루카와도, 지금의 루카와도 근본적으로
같다는 새악이 들었다.
- 처음 만난 사람에게 친절하게 승마를 가르쳐준 루카와와, 친아들을
냉혈무도하게 죽이려고 하는 루카와가 같다는 건 이상한 얘기지만 -
그리고 신하들을 적으로 돌리면서까지 하나미치를 몸바쳐 감싼 것은,
현재의 루카와였다.
- 이전의 루카와와 지금의 루카와...? -
문득 처음 루카와의 얼굴을 봤을 때의 일을 생각해내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감정 없는 루카와의 얼굴이, 인형처럼 보여서 기분나쁘다고 생각했었지 -
하는 짓은 분명 지금 쪽이 심각하고, 미쯔이에 대한 언동 등,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냉혹함. 하지만 처음 만났을 무렵보다도 어째서인지 최근의
루카와 쪽이 훨씬 인간답다고- 하나미치의 눈에는 명확하게 보였다.
- 루카와... -
하나미치는 수련을 나오고 나서, 미쯔이 쪽으로 확실하게 가까이 가고
있는데, 그에 비례해서 루카와의 일을 생각하는 게 늘어나고 있었다.
"하나미치."
"...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하나미치는, 요헤이가 말을 걸자 현실로 되돌아왔다.
"추우니까 겉옷 입어."
그렇게 말하고 던져준 것은, 동물 가죽으로 만든 튼튼하고 따뜻한 외투였다.
"하지만 이거 네 거잖아."
자신은 다른 것을 이미 하나 입고 있었다.
"나는 너랑 달리 피부가 두꺼워."
"어, 나도 그렇게 약하지 않아."
조금 발끈해서 입술을 삐죽였다.
"...아직 몸상태가 안 좋을 테니까 걸쳐."
얼굴을 돌리며 무뚝뚝하게 말하는 요헤이에게, 하나미치는 멍청히
잇다가, 다음 순간 얼굴이 새빨개졌다.
분명 몸상태는 좋지 않다... 루카와에게 강제당한 탓으로.
마지막으로 안기고 나서 이미 하루 이상이 지났지만, 말에 타서
계속 달리는 것은 분명히 아직 쉽지는 않다.
- 피... 필사적으로 숨기고 있었는데 역시 들킨 건가!? -
지금 와서 말해봐야 새삼스럽지만, 그래도 역시 부끄러웠다.
"우..."
눈을 치뜨고 올려다보자, 요헤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외투 같은 게 도움이 안 되는 건 알아. 하지만 최소한 추위만이라도
막는 게 나아. 그리고 카이난에 도착하기 전에 감기라도 걸려서
쓰러져버리면 안돼잖아. 나는 널 국경까지 데려다주면 끝이지만,
너는 거기서부터가 큰일이니까."
"요헤이..."
"미쯔이 형을 구하는 거야, 천재."
빙긋 웃는 요헤이
.
요헤이는 마을에 있을 때부터 정말로 늘 상냥했다.
어릴 때 누구보다도 제일 좋아했던 친구.
서로 헤어지고 나서 유곽에서 재회하기 전까지, 나날의 생활이 바빠서
거의 생각하지 않았던 게, 지금은 이상할 정도다.
"...따뜻해."
미소짓는 요헤이에게 자신도 미소지으며, 그리고 천천히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사계절이 있는 쇼호쿠에는, 이 시기는 급격히 추워진다.
얼어붙은 공기는, 수없이 별이 빛나는 맑은 밤하늘을, 한층 더 아름답게
빛내주고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는 것이 몇년만일까.
밤새 불빛이 사라지는 일이 없는 수련에서는 이 정도의 별은 볼 수 없다.
- 밋찌의 목숨이 위태로웠는데 어째서 나는 루카와를 죽일 수 없었을까... -
말등에서 흔들리면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생각했던 일.
그래도 아직 그 대답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 ...미안해, 밋찌. 반드시 내가 목숨과 바꿔서라도 밋찌를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까 용서해줘 -
이렇게 된 이상 후회해도 소용없다.
문득 긴장이 풀리자, 자신이 되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해버린 게
아닌가 불안해지면서, 앞일의 어두운 미래에 절망적인 기분이 되었다.
그때마다 하나미치는 약한 생각을 떨쳐내고, 앞만 보고 전진하는
것뿐이라면서 기합을 단단히 넣고 말을 몰았다.

그날밤은 가도 옆의 숲속에서 야영했다.
그때까지 매일 밤 계속 꾸었던 미쯔이의 꿈.
하지만 루카와에게서 도망치고, 미쯔이에게 향하는 오늘 밤.
하나미치는 미쯔이의 꿈이 아닌, 루카와의 꿈을 처음으로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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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챕터만 더 하면 끝인데... 끝인데...
그런데 왜이리 하기 싫은 걸까...
최소한 2권만은 끝내야 그 다음부터 편한데...

PRE번 호 : 1908 / 2053 등록일 : 2000년 12월 11일 23:12
등록자 : HALKO 조 회 : 183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2권 #15
/PRE

15.

-금염궁.

하나미치가 도망치고 사흘. 확실히 범위는 좁아지고 있었지만,
변함없이 두 사람의 정확한 소식은 잡히지 않아서, 예상외로
루카와는 고전하고 있었다.
이때쯤 되자, 국경을 봉쇄하게 되서 발생하는 피해도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상업면에서는 대타격을 입어서, 매일
탄원서가 왕궁에 쇄도했다.
그래도 루카와는 쇄국을 해제하지 않았고, 이유는 쿠와타들의
배려로 일부의 인물 이외에는 알리지 않았다.
급격히 국내에서 루카와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고, 국경에서는
작은 다툼이 다발하고 있었다.

"하아!? 제 1왕자의 유곽 출신 측실이고, 현재 국왕의 애인인
사쿠라기 하나미치라는 남/자/가 제 3왕자와 눈이 맞아서 도주?
뭐야, 그게."
왕궁에 불려간 근위사단장 미야기 료타는, 지나치다고 한다면
지나친 사정 내용을 듣고, 굉장히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지극히 평범한 감성을 지닌, 귀족과 평민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군인이다. 순수한 귀족이었다면 틀림없이 쇼호쿠의
8장군 중 한 명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 실력의 소유자였다.
루카와는 가면 같은 무표정- 그러나 악귀 같은 분위기를
전신에서 뿜어내며, 미야기의 앞에 앉아 있었다.
"속명이다, 미야기. 미토 요헤이를 죽이고 사쿠라기 하나미치만
데려와라."
"폐하!?"
깜짝 놀랐다.
"왜 그런가."
"그...그거 반대 아닙니까?"
보통의 경우, 죽이는 것은 왕족을 유혹한 하나미치고, 데려오는
것은 왕자인 요헤이일 것이다.
"내 것을 멋대로 훔쳐서 달아났다. 그놈은 이제 내 아들이 아니다.
반역자다."
- 이봐이봐. 원래는 장남의 측실을 당신이 가로챈 거잖아 -
그렇게는 생각했지만, 역시 그것을 입으로 말할 정도로, 미야기도
어리석지는 않았다.
- 싫은 일이다. 정말, 어째서 내가 -
다른 사단은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전쟁 준비에 바쁘다고는 해도,
이건 너무한다. 미야기의 근위사단은 보통, 왕궁수호와 왕족의
경호 등을 담당하는, 왕의 친병인 것이다. 연애사태의 처리를
강요받는 부서는 결코 아니다.
여러 명의 사단장 중에서도 특히 실력을 인정받아서, 자신이
지명되었다고 해도, 이번에 한해서는 결코 기쁘지 않았다.
싫은 원인 중 가장 첫째인 것은, 군부에서 미토 요헤이가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야기 자신은 다소 교유관계도 있어서 미쯔이 왕자파였지만
부하인 근위사단은 압도적으로 미토 왕자파가 많았다.
- 그녀석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지 -
젊은 병사 사이에서는, 신성시되고 있는 제 3왕자를 살해해야 한다니,
손해보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미야기?"
고개를 들자, 말이 없어져버린 자신에게 루카와가 괴이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내심 머리를 쥐어짜면서도 절대자의 말에 거역할 수 있을 리가 없기에,
등을 펴고 경례했다.
"-속명, 확실히 받아들였습니다. 근위사단장 미야기 료타.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퍼억...!
미야기가 병사를 이끌고 도시를 나갔다는 보고를 받은 직후, 루카와는
왕좌의 팔걸이를 갑자기 주먹으로 내리쳤다.
"...역시 참을 수 없어. 나도 간다."
"폐하!"
일어서서 달려나가려고 하는 루카와의 진로를, 옆에 있던 쿠와타가
막았다.
"비켜라."
"비킬 수 없습니다! 어깨 상처도 아직 완쾌되지 않으셨습니다!
본래대로라면 지금도 침대에서 절대안정을 하셔야 하는 겁니다!"
"이 정도로 죽지는 않는다."
"그렇게 말해서 무리하셨다가 어제는 낙마하시지 않았습니까!"
"...큭."
국내 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승마술을 가진 루카와에게 있어서,
그것은 이 이상 없을 굴욕이었다.
무리한 것을 빌미로 상처가 몇 번이나 터져서 피를 흘렸고, 발열은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말에 타서 국내를 달릴 체력은 도저히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은 괜찮다."
"괜찮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라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고
계신 겁니까!"
카이난에 전쟁을 걸려고 하는 지금, 왕이 수도를 떠날 수는 없다.
병사들에게는, 미쯔이는 몰래 도망치게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거짓 설명을 해두고 있었다. 전쟁만 일으키면, 이러저러하게
꾸밀 수 있다. 오히려 미쯔이의 죽음을, 역으로 병사들의 카이난에
대한 적의를 증폭시켜서 사기를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어딘가에서 비밀 계획이
발각된다면?
분명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날 것이다. 국내에서의 미쯔이의 인기를,
루카와는 결코 얕보고 있지 않았다.
미토 요헤이의 말살명령을 내린 일로, 그것을 안 일부의 인간들
사이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동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항상
수련의 금염궁에서 있으면서, 국내에 권위를 세울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카이난 측에게 이쪽의 움직임을 완전히 모르게 할 수
있다는 확증도 없다. 역으로 공격당할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다.
내우외환.
지금 성을 비운다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
병법과 제왕학에 정통한 루카와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즉시 잡을 수 있다고 네놈들이 나서고 나서, 오늘까지
참아줬다. 그 결과가 뭐냐-"
"히익..."
루카와는 쿠와타의 목을, 상처입지 않은 쪽 손으로 쥐고 공중으로
들어올렸다.
"아무래도 나의 쇼호쿠는 생각 이상으로 무능력자들만 있는 것 같군."
"크윽..."
"멍청이를 요헤이에게 그대로 내버려두면, 히사시를 죽여도
본말전도다. 안 그런가?"
난폭하게 쿠와타를 던져버리고 차갑게 명령했다.
"멈추면 용서하지 않겠다. 말을 준비해. 내 손으로 요헤이를 죽인다."
"폐...폐하."
바닥에 쓰러져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도, 쿠와타가 그래도 만류하려
했을 때-
"-기다려 주세요, 폐하!"
"...?"
루카와를 부른 것은, 새된 여자의 목소리였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요헤이의 새어머니인 하루코가,
두 눈에 눈물을 머금으며 문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하루코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부디... 부디 요헤이 상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 아이들은 형제나
마찬가지인 소꿉친구이고- 결코, 결코 폐하가 생각하시는 것과 같은
더러운 관계가 아닙니다. 태어날 때부터 두 사람을 알아온 제가
말하는 것이니까 사실입니다. ...요헤이 상이 돌아오면 둘이서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두 번 다시 귀찮게 해드리지 않겠습니다.
저의 최초이자 최후의 바램입니다. 부디 아들을, 제게서 빼앗지 말아
주십시오. 부디 자비를-"
그러나 하루코의 필사적인 청원도, 루카와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닥쳐. 놈은 반역죄로 죽인다."
"...!"
"방해된다. 꺼져라."
내뱉듯이 말하고 무릎을 꿇은 하루코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폐하."
문을 나서기 직전 다시 이름을 불렀다-
...푹!
"...!?"
달궈진 철에 지져진 듯한 아픔이 루카와의 등을 급습했다.
"너...어..."
천천히 뒤돌아보는 루카와.
하루코는 등을 돌린 루카와에게 혼신의 힘을 다해, 단검을
루카와의 등에 꽃고 있었다.
"...폐하가 제게 관심이 없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평범하고 사랑받지 않는 제게 있어서, 폐하가 주신 요헤이 상만이
전부였습니다. 요헤이 상은 온몸과 마음을 다해서 혼자 키운
제 아이. 설령 사랑하는 폐하라고 해도 멋대로 하게 내버려두지
않겠습니다."
하루코는 눈물범벅인 얼굴로 미소지으며, 위병들이 달려오기 전에,
루카와를 찌른 단검으로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그 무렵 하나미치들은 산속에 있었다.
요헤이는 처음부터 정규 방법으로 국외에 도망갈 수 있을 거라고는,
쉽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거의 수풀로 감춰져 있는, 지금은 거의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소톤 산맥의 산속의 구가도를 이틀 동안 계속 달려서, 내일부터는
도보로 길이 없는 산속을 전진할 예정이었다.
"싫어! 아무리 요헤이의 부탁이라도 이것만은 절대 듣지 않겠어!"
얼굴 전체를 눈물로 범벅하며 싫다고 마구 고개를 젓는 하나미치.
"...하나미치."
칼집에서 빼낸 검을 들고 조금씩 다가오는 요헤이에게,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우린 여기에 놀라 온 게 아냐. 네 맘대로 말하지 마."
"싫어! 그런 걸로 베면 아프잖아! 피가 많이 날 거야! 아무리
그래도 너무해!"
"하나미치!"
전에 없이 혹독한 목소리로 이름을 불려서, 흠칫 몸을 떨었다.
"최...최소한 도망치게라도 해주지 않겠어?"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마. 한번에 왕궁의 것이라고 알 수 있는
이런 걸 남기고 갈 수 있냐. 만에 하나 이게 발견되면, 우리들의
목적지가 밝혀져서 가기 전에 발각될 거야. 죽여버리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야."
요헤이가 말하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비켜, 하나미치. 이 이상 나를 화나게 하지 마."
이 입씨름을 시작하고 꽤나 시간이 지나 있었다. 일각을 다투는
지금, 요헤이는 거의 한계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우...우..."
펑펑 눈물을 흘리며, 맥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요헤이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한 발짝 다가왔다.
눈을 꼭 감은 하나미치의 뺨의 눈물을, 그때 따뜻하고 커다란
혀가 위로하듯이 핥아주었다.
놀라서 눈을 뜨고, 요 사흘간 자신을 태워다준, 너무 좋아하는
갈색 털 말의 얼굴을 바라보고, 다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역시 싫어!"
외친 순간, 하얀 검신이 내리쳐지며 말의 목이 떨어졌다-

바삭바삭 불이 타고 있었다.
데려온 네 필의 말을 혼자 처분해서, 한 마리만 빼고 늪에
빠트린 요헤이는, 저녁으로 말고기를 굽고 있었다.
요 며칠간 계속 건조한 보존식만 먹고 있어서, 여관에서한
저녁식사 이래 최초의 따뜻한 식사였다.
"하나미치, 다 구웠어. -하나미치?"
말을 걸어도 대답이 없다.
모포를 몸에 둘둘 만 채, 등을 돌리고 웅크리고 있는 하나미치에게,
아직 앵돌아져 있는 건가 하며 한숨을 쉬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하나미치?"
하나미치는 울다가 지쳐서 잠들어버린 것이다.
"...정말. 말 하나 때문에 이렇게 될 거라고 미리 생각했어야
했는데."
눈 주위도 코 밑도 새빨갛다. 대체 얼마나 울었던 걸까.
"...하나미치의 눈앞에서 죽이는 게 아니었어."
요헤이는 한 마디 중얼거리고, 조금 주저하고 나서, 큰맘 먹고
입술에 키스를 했다.
하나미치와의 첫 - 아마 최후일지도 모를 - 키스는 짭짤한 눈물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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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코, 멋지다!! 부디 천국으로~~T_T
드디어 료칭 첫등장. 이 경국에서 몇 안되는 괜찮은 등장인물 중
하나입니다. 비중은 작지만 앞으로도 계속 꾸준히 나옵니다.
하나미치는 여전히 철없는 바보 멍청이.
축하한다, 요헤이 ^^;
PRE번 호 : 1909 / 2053 등록일 : 2000년 12월 11일 23:14
등록자 : HALKO 조 회 : 203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2권 #16
/PRE

16.

끝없이 펼쳐지는 시트의 파도 위에서, 하나미치는 요염하게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응... 우... 요헤이... 좀 더어..."
목젖을 올렸다 내렸다 신음하면서, 양다리를 한껏 벌리고 음란하게
남자를 유혹했다.
이미 몇 번이나 끝낸 뒤다. 얼굴도 몸도 정액으로 끈적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더욱 더 탐욕스럽게, 비부를 외설스럽게 만지작거리며, 끝없이
하나미치는 쾌락을 원했다.
"...하나미치."
하나미치는 부끄러움도 모르고 요헤이의 손을 잡아서, 서 있는 자신의
하반신에 댔다.
"앗... 응... 아아..."
즉시 찾아오는 쾌락에, 수치심도 없이 황홀해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요헤이... 아앙... 기분좋아..."
"하나미치."
"요헤이..."
하나미치는 요헤이의 머리칼을 쥐고, 자신 쪽에서 입을 맞추었다.
츄우츄우 소리를 내며 입맞추면서, 조금전 사정했을 요헤이의 욕망의
증거 쪽으로 오른손을 뻗었다. 이미 부활한 그것을, 천천히 쥐는
손에 망설임은 없었다.
천성적인 재능과 음란함으로, 하나미치는 곧장 요헤이의 것을
다시 최대한도로 부풀렸다.
"...앗."
"...안돼."
요헤이가 완전히 도달하기 전에 손을 떼고, 귓가에 숨을 불어넣듯이
하며 속삭였다.
"
...이걸로 부족해. 좀 더 넣어줘... 으응..."
"하나미치... 하나미치... 하나미치..."
열에 들뜬 표정으로, 요헤이는 하나미치의 이름을 계속 부르며,
황급히 몸을 굽혔다.
하나미치는 머리색과 똑같을 정도의 빨간 혀로 낼름 입술을 핥으며,
남자의 욕정을 부추기는 요염한 미소를 한층 더 깊이 지었다.
그리고 스스로, 요헤이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아-!"
하나미치는 삽입당하는 감각에, 울음소리와도 같은 교성을 질렀다-

"멍청이...!"
루카와는 번쩍 눈을 뜨고, 크게 부르짖었다.
"폐하!?"
가위눌렸다고 생각했더니만 갑자기 벌떡 일어난 루카와에게,
간병하고 있던 시녀는 놀라서 약병을 떨어트렸다.
하루코에게 찔린 루카와는, 과다출혈로 오늘 아침까지 생사의 경계를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자식...!"
머릿속은, 요헤이에게 몸을 밀착시키며 환희로 몸부림치는 하나미치의
모습으로 가득찼다. 뇌 전체가 다 타버릴 정도의 분노로 뜨거워졌다.
깨어난 직후의 루카와는 꿈과 현실의 차이를 물랐던 것이다.
"죽인다!"
머리맡에 상비해두고 있는 검을 쥐고 침대에서 뛰쳐나가려고 했다.
"그만해 주십시오, 폐하! 그런 몸으로 무리하시면 정말로 죽습니다!"
"닥쳐!"
"힉...!"
시녀를 노려보는 루카와의 시선에는, 살인도 주저하지 않을 험악한
빛을 뿜고 있었다.
못박힌 듯이 움직일 수 없게 된 시녀를 제치고 침대에서 한발 발을
내린 순간.
"-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털썩 무릎을 꿇었다.
"폐하!"
진홍색으로 물든 시야.
빈혈 때문에 격렬하게 두통도 일었다.
시녀들이 10명 가량 신속하게 다가왔다.
"무슨 무모한 짓이십니까!"
"절대안정이라고 말씀드렸잖
습니까!"
루카와는 바닥에 쓰러진 채로, 바득바득 이를 갈았다.
- 제길- 그 여자! 죽지 않았다면 이 손으로 갈갈이 찢어버렸을 텐데! -
하루코는 즉사했지만, 루카와의 상처는 치명상에는 이르지 않았다.
단련된 몸은, 가녀린 여자의 팔에 찔린 정도로 어떻게 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목숨은 건졌다고 해도, 중상인 것은 변함없다.
하나미치를 감싸고 입은 부상도 그대로인 데다가, 새로운 상처를
또 입은 것이다. 루카와의 체력과 근성이라도, 서 있을 수는 없었다.
"실례합니다, 폐하."
"...큭."
강인한 병사 두 명이 다가와서, 루카와를 안아올려 다시 침대에
눕혔다.
엎디어져 눕혀진 루카와에게, 단지 그 정도의 충격에도 정신을
잃을 듯한 격통이 엄습했다.
재빨리 다가온 의사가 어깨의 붕대가 빨갛게 물든 것을 깨닫고
혀를 찼다.
"등이 아니었던 게 불행중 다행입니다만 어깨 상처 쪽이 다시
터졌습니다. 부탁이니 안정을 취해주십시오. 보통 사람이라면
죽었을 정도의 커다란 부상입니다. 이 이상 움직여서 출혈을
하게 되면 폐하라고 해도 목숨을 보증할 수 없습니다."
전에 없이 엄격한 어조의 의사였다. 그것은 거짓말도 과장도
아니었다.
루카와도 국왕이라고는 해도 무인이다.
지금 자신이 생사의 문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안정해야
한다는 자각은 충분히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감정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몸을 돌볼 정신적 여유는 전혀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미치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다고 생각하자,
가슴을 쥐어뜯고 심장을 도려내서 그대로 쥐고 짜부라트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 ...뭐가 '좀 더'냐...? 뭐가 '기분좋아'냐...? 뭐가 '좀 더
넣어줘'냐...! -
꿈 속에서 하나미치는,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는
환희의 표정으로, 아들에게 안겨 있었다.
관능이 넘쳐흐르는 황홀한 표정으로 온몸을 발그스레하게
물들이고, 나아가서 다른 남자에게 선정적인 그 몸을 내주는
것이다...!
빈혈도 겹쳐서, 어느덧 그것은 루카와의 속에서, 꿈이 아니게
되었다.
- 그렇게 매일 실컷 안아주었는데, 다른 놈에게도 다리를 벌리다니,
구제불능의 음란한 색정광! 그녀석은 나 하나로 만족할 수 없을
정도로 남자를 밝혔던 건가! -
하나미치에게 있어서는 트집밖에 잡지 않는 루카와의 사고.
- 붙잡아서 끌고 돌아오면, 두 번 다시 욕구불만 따위 되지 않도록
도구를 사용해서 하루 태반을 좋아서 미치게 해주겠다 -
"각오해라, 멍청이... 윽."
소리를 내서 말하는 바람에, 등에 다시 경련이라도 날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허억."
"폐하. 흥분하시면 옥체에 지장이 있습니다."
조금 전의 충격으로 터진 어깨 상처를 치료하면서 의사가 타일렀다.
"...이런 곳에서 자고 있을 틈이 없다."
"최소한 1개월은 침대에서 절대안정하셔야 합니다. 그래도 일어나실
거라면 죽음을 각오해 주십시오."
피가 나올 정도로 세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 ...빌어먹을 -
극도의 혈액부족으로 서서히 시야가 흐려지고, 의식을 유지하고 있기도
어려워져가고 있었다.
여기서 무리하면 확실하게 죽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어도, 감정은 하나미치에게 지금 곧장 날아가고 싶다.
하지만-
- ...나는 아직 죽을 생각은 없다 -
죽는 것 자체는 두렵지 않다.
죽음으로 인해 하나미치와 만날 수 없게 되는 것은 확실히 무섭지만,
그것도 이렇다 할 이유는 아니다.
죽을 수 없는 최대의 이유는 단 하나.
- 그녀석은 다른 남자에게 안 줘! -
다른 놈에게 도둑맞을 정도라면 하나미치를 죽이고 머리부터 전부
먹어치운 뒤, 그 후에 자신도 죽는다.
세계인구의 과반수가 늑대라는 이 수라의 세계에, 저런 최상의 먹이를
남겨두고 저 세상 따위로 갈 수 없다고, 루카와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 내게서 도망쳐도, 남자를 이용해먹는 녀석이다. 내가 없어지면,
남자에게 기생해서 살아가는 법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저 멍
청이가
몇 사람의 남자를 먹어치울 것인가... -
아니... 먹이로 삼는 게 아니라 먹이가 될 가능성도 높다.
뭐라고 해도 하나미치는 멍청이다.
말랑말랑한 몸에 백치의 머리.
- ...구제의 여지가 없어 -
하나미치가 들으면 불타죽을 것이 틀림없는 확신을, 루카와는 멋대로
가지고 있었다.
- 멍청이가 살아 있는 한 나는 절대 죽지 않는다 -
그 때문에, 지금은 요양이 필요하다.
미칠 것 같은 초조감이 남아 있지만, 루카와는 피를 토하면서
하나미치의 추적을 미야기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겨우 잠든 루카와는, 그만하면 좋을 텐데도, 이번에는 미쯔이에게
안겨서 좋아 죽는 하나미치의 꿈을 꿔서 다시 벌떡 일어났다.
누구보다도 잠을 사랑하는 남자는, 그 이후 불면증에 걸렸다.

국왕의 속명을 받은 미야기는, 소톤 산맥의 구가도에 있는, 하나미치들이
첫날에 식사를 한 여관에 도착했다.
미야기가 직접 오기 이전에, 다른 자들의 움직임으로 여기까지 두 사람의
발자취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의 소식이 참으로 애매했다.
"-그래서, 확실히 그 젊은 두 명의 남자는, 산노오로 간다고 말했다고?"
"예에. 전에 왔던 병사님에게도 말했지만요. 그 길을 말로 12시간
정도로 가면 항구가 있어요. 거기에서 나가는 아침 첫 배로 산노오로
향했을 거예요."
"과연, 보고대로군. 여러 가지로 협력해줘서 고맙소."
"그건 괜찮아요. 그런데 단장님. 대체 그 아이들이 무슨 짓을 한 건가요?
나쁜 아이들로는 보이지 않았는데요."
"아아... 위에서 지시가 있어서 아직 진실은 말할 수 없소. 미안하오."
"그래요..."
여관 여주인은 한숨을 쉬고 부엌 안으로 사라졌다.
미야기 앞으로, 부하 한 명이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미야기 단장님."
"아아. 왕자들이 타고 있을지도 모르는 산노오 행의 배 쪽은 지금
어떻게 됐나."
"빠른 쾌속선으로 뒤를 쫓고 있습니다. 산노오에 입항하기 전에
따라잡을 수 있겠지요."
"그런가."
고개를 끄덕이고 팔을 괴었다.
- ...정말로 산노오로 간 건가 -
도망처로서 산
노오는 확실히 나쁘지 않다.
산노오와 쇼호쿠는 거의 국교가 없기 때문에, 그 섬나라로 도망치면
쇼호쿠 측도 손을 쓰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10일에 한 번만 출항하는 이 배편에 아슬아슬하게 시간이
맞았다면, 정말로 운이 좋은 거다.
국왕의 명령이 국내 곳곳에 미쳐서, 국경이 봉쇄된 뒤라면, 외국으로의
도망은 어려워진다.
산노오 행의 배는, 외국항로의 배가 출항정지되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출발한 것이다.
모든 조건이 지나칠 정도로 잘 구비되어 있다- 하지만.
"...아냐. 산노오로는 향하지 않았다."
"단장님?"
"미남자와 드문 빨간 머리의 남자, 눈에 확 뜨이는 두 사람이 사람으로
넘치는 항구에서 전혀 목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무리 생각해도 묘해.
그리고 금염궁에서 그렇게까지 완벽하게 사쿠라기 하나미치를 데리고
나와서, 구가도를 예상을 훨신 상회하는 단기간에 이동해낸 왕자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식사를 하고, 순순히 행선지까지 흘리다니, 너무도
어설퍼."
"...분명히 부자연스럽군요."
미야기의 바로 밑에 있는 사단참모는 진지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왕자는 목적지에서 추격자의 눈을 돌리고 싶었겠지요. 그렇다면
행선지는 산노오로 가기 위한 항구 방향이 아니라..."
"아아, 이 숙소 거리에서 다른 목격자가 전혀 없었던 걸 고려하면
아마도-"
미야기는 고개를 들어, 항구가 있는 서쪽이 아닌, 동쪽에 있는 험준한
소톤 산맥을 올려다보았다.

사람을 물리쳤기 때문에, 금염궁의 침실에는 루카와 이외에 아무도
없었다.
상처를 입고 불면증까지 병행하고 있는 루카와의 침실은, 한낮이라고
해도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어서, 마치 저녁처럼 어두웠다.
요 며칠간, 루카와는 완전히 까칠해져 있었다.
깊은 그늘을 드리운 얼굴에는, 이전의 어울리지 않을 정도의 젊음은
없어서, 실제 나이에 어울리는 연령으로 보였다.
하나미치의 부재는 상상 이상으로 루카와에게 타격을 주고 있었다.
"......?"
고개를 든 루카와는, 그때 처음으로 머리맡에 개켜져 있는, 하나미치가
자수한 잠옷을 알아보았다.
아마 여관 중 누군가가 이전에 요양으로 사용했던 손님방에서 여기로
가져오는, 쓸데없는 수고를 해서 가져온 것 같다.
"...욱."
간신히 일어나는 것만 가능하게 된 루카와는, 등을 관통하는 격통에
얼굴을 찡그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거의 기어가듯이 가까이 다가가서 그것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하나미치가 없어지고 이미 8일.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고, 만질 수도 있었던 과거 쪽이
꿈이었던 것처럼 생각되기조차 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미치가 있었다는, 흔들림없는 증거.
그러나 새하얀 잠옷에 핀 색색가지의 꽃은, 완성되지 못하고
도중에 끝나 있었다.
이것이 완성될 날은 이제 두 번 다시 오지 않겠지- 그
런 자신답지
않은 약한 생각을 한 순간, 확 머리에 피가 몰렸다.
"이런 것!"
루카와는 하나미치가 수선한 잠옷을 쥐고 찢어버리려고 힘을 넣었다.
하지만...
"......큭."
손이 떨리고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찢어버리다니, 절대 할 수 없다.
이전에 분노한 나머지 하나미치를 위해 준비한 말을 죽인 것처럼은,
더 이상-
그때보다 지금의 하나미치를 더, 훨씬, 좋아하니까.
루카와는 자수된 잠옷을 끌어안으며, 하나미치가 사라지고 나서
처음으로 조그맣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암암리에 준비되고 있는 카이난 출병.
당초의 예정으로, 진군 개시는 반 달 후로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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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첫장면 보고 저 정말로 경악했습니다;;
아니, 이 작가가 센하나도 모자라서 요하나까지!?
(안돼! 요하나는 절대 안돼!)
(차라리 하나요라면 비주얼적으로 봐줄 수 있지만...)
역시 이 부분도 번역하기 참 민망스러웠습니다 -///-
솔직히 삭제하거나 잘라버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잘랐다는 티가 너무 날 것 같아서 그냥 울며 겨자먹기로...T_T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아서, 저 좋은대로 각색하고 말아서
죄송합니다.
조금은 불쌍한 이번회의 루카와. 땅파는 루카와도 재미있군요.
제가 보기에 이후 루카와의 행동은 거의 개그 수준입니다 ^^;


PRE번 호 : 1910 / 2053 등록일 : 2000년 12월 11일 23:19
등록자 : HALKO 조 회 : 223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2권후기 & 3권예고
/PRE

◆ 후기

안녕하세요. 친구에게는 '아플 것 같아'라는 말을 들었고, 받은
팬레터에는 하나미치의 피를 굉장히 진지하게(웃음) 걱정해 주시고,
이벤트 회장에서는 '다음 책에서는 조금만이라도 하나미치를
기분좋게 해주세요'라고 상냥하게 말을 걸어주는 분들이 많아서,
행복한 미즈마 세린입니다(...). 이번 책 마지막 챕터의 루카와의
꿈 속에서(...) 요헤이와(......) 삐리리한 뭔가가 있을 듯
말 듯한 게... 그래서는 안되지요. 하하하(...허탈한 웃음).
이번 2권은 도중에 일단 집필을 중단하고 말과 곤충 같은 걸
쓰고 있었기 때문에, 데드라인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죽어라고
노력하니, 새어머니나! 1권보다도 두껍잖아! 이런 기세로 3권도
150페이지 이상을 목표로 하고 싶습니다. 마지막까지
계속 읽어주시면 행복하겠어요 ♥

1997.12 미즈마 세린 올림

◆ 예고 (경국미희 3권)

"...아키라가 멍청이를..."
믿을 수 없는 보고에, 루카와의 얼굴에서 핏기라는 핏기가 전부
빠져나갔고, 입술마저도 자주색으로 변했다.
"-자식 따위 만드는 게 아니었어. 모조리 이놈이고 저놈이고
그렇게 간단히 멍청이의 색향에 홀리다니."
"폐...폐하?"
퍽!
루카와는 옥좌의 팔걸이를 있는 힘을 다해 내리치고 벌떡 일어났다.
"한 마리도 남김없이 다 죽여버린다!"

"사쿠라기 하나미치. 너는 쇼호쿠 사상 최대의 역병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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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2권은 완전히 끝입니다.
다음부터 3, 4권을 계속 올립니다.
미리 해둔 게 있으니까 내일부터 하루에 다섯 개씩 올리죠.
제 생각에는 그냥 하루에 모조리 올려버리고 완전히 손떼고
싶습니다만 게시판 글수 제한이라는 게 있고 해서...
5권 번역은 현재로서는 절대 안하는 걸로 굳어져 있습니다.
시간 없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열받아서 도저히 못합니다.
지금까지 '안한다 안한다'하면서도 그래도 참고 계속 해왔지만
정말 5권은 구제의 여지가 없습니다. 루카와는 루카와대로,
센도는 센도대로(특히 이놈이!), 하나미치는 하나미치대로
절 혈압오르게 하다보니 의욕이 꺾이는군요 T_T
안 읽는 게 좋을지도 몰라요... 지금보다 더 스트레스 받기 싫으시면...







---------

번역하신 무명언니께서 상당히 스트레스를 많이 벋으신듯.

하지만 3권도 4권도 무사히 번역 하셨고..
곧 파이널인 5권도 하신댑니다....(ㅋㅋㅋㅋ)

PRE번 호 : 1918 / 2053 등록일 : 2000년 12월 19일 09:28
등록자 : HALKO 조 회 : 228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3권 #1
/PRE

傾國の美姬 3卷 : 카이난 제국 written by 未津摩せりん

1.

쇼호쿠의 수도 '수련'. 그 중심부에 있는 왕의 거성에서는,
제 1왕자가 가장 사랑하는 유일한 측실을 아버지가 강제로
빼앗은 이래, 평온과는 거리가 먼 날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아들의 측실에 대한 도를 지나친 왕의 집착은, 왕궁에서
최하층의 빨래 담당 여자까지, 지금 와서 누구 하나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중에 일어난 대사건-
현 국왕 루카와 카에데에게 온 마음과 온 영혼으로 사랑을
받은 제 1왕자 미쯔이 히사시의 측실이라는 입장에 있는
사쿠라기 하나미치가 갑자기 제 3왕자인 미토 요헤이와,
손을 맞잡고 도망쳐버린 것이다.
게다가, 미토 요헤이 왕자의 말살령을 발표한 왕이, 왕자의
생모에게 찔려 중상을 입고부터는 걷잡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계속 연이어지는 왕족의 불상사.
루카와 카에데가 국왕으로 즉위한 이래, 번영의 길을 걷고
있었던 800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에 처음으로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보고합니다. 산노오 행의 정기선에 미토 왕자들이 승선하고 있지
않다는 확인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폐하?"
침실 문앞에서 보고하고 있던 쿠와타는, 방 안에서 절대안정을
취하고 있을 루카와가 뛰쳐나오자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상처에 지장이 있습니다! 방으로 들어가십시오!"
"이 도둑놈!"
"!!"
노호성과 함께, 얼굴을 노려오고 있는 주먹.
피할 겨를도 없이 얻어맞은 쿠와타는, 복도에 쓰러져 버렸다.
"폐... 폐하!?"
"잘도 멍청이에게 손을 댔겠다!"
"예에에!?"
"어젯밤에 너, 멍청이와 잤지!"
"모... 모릅니다!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혀 기억이 없는 쿠와타는, 맞은 뺨을 쓰다듬으며 낭패해했다.
그러나 곧, 루카와의 눈의 초점이 흐려져 있음을 눈치챘다.
"어젯밤에 결국 멍청이는 건장한 남자 1000명 째를 달성했다.
천 명째의 남자를 유혹해서 안긴 뒤에, 그것만으로 모자라서
귀족과 영주 늙은이에게까지 손을 뻗치고, 마지막으로는
네녀석을 먹어치웠단 말이다. 나는 전부 봤다. 전부..."
"...또 그런 꿈을 꾸신 겁니까?"
쿠와타는 피곤한 듯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루카와는 잠을 자면 꼭, 하나미치가 다른 남자에게 기쁜 듯이
안겨 있는 꿈을, 계속 꾸고 있었던 것이다. 꿈 속에서 하나미치의
상대는 유곽에서부터 하나미치를 사서 측실로 삼은 미쯔이와,
함께 도망친 요헤이가 횟수로는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최근에는
무차별의 남자들에게 안겨 있기도 했다.
루카와는 꿈을 꾸는 것이 무서워져, 완전히 불면증이 되어서
한계까지 일어나 있다가 정신을 잃고 잠에 빠진 뒤, 다시 꿈을
꾸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이 잔혹한 악순환에, 루카와는 거의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그 창부 녀석. 얼마나 남자를 안아야 만족하는 거야. 빨리
붙잡아서 내 가슴 속에 가둬두지 않으면, 국내의... 아니, 세계의
남자를 농락할 것임에 틀림없어. 멍청이는 15세 때까지, 쇼호쿠의
훌륭한 남자는 전부 잡아먹은 괴물이다. 요헤이를 이용하고,
이번에는 국외의 남자를 낚으러 갈 셈인가...?"
"괜찮으십니까, 폐하? 잘 들으십시오. 그것은 꿈입니다. 현실이
아닙니다."
"멍청이... 멍청이... 어째서 나 하나만이 아니면 안되는 거지?
내가 누구보다도 사랑해주고 있는데, 어째서 다른 남자하고만
자는 거지? 가능한 한 매일 안아주었는데, 어째서 만족해주지
않는 거야...!"
"그래서 말입니다, 폐하- 폐하?"
쿠와타는 루카와의 이상을 눈치채고 옆으로 달려갔다.
춥지도 않은데 루카와의 입술은 보라색으로 변색되어, 전신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실례하겠습니다."
루카와의 이마에 손을 대본 쿠와타
의 얼굴이 갑자기 흐려졌다.
"또 열이-"
열이라는 말을 쿠와타가 말한 순간 주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녀 중 한 사람이 몸을 돌려 달려갔다.
루카와가 하루코에게 찔려서 중상을 입은 이후, 옆방에 대기하면서
간병을 하고 있던 의사가 시녀의 호출로 곧장 뛰어왔다.
여관들의 수도 늘어나서, 갑자기 주위는 소란스러워졌다.
"...나는 멍청이밖에 안고 싶지 않은데, 어째서 멍청이는 그렇지
않은 거지...? 나는... 나는-"
"정신차리십시오, 폐하!"
"폐하!"
웅크리고 앉아 오열하고 있는 루카와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절대안정을 해야 할 중상의 몸으로 일어난 일이 화근이 되어,
루카와 카에데는 그날 밤 몇 번이나 생사의 경계를 헤맸다.

루카와 가라사대, 세상의 모든 남자를 먹어치우려고 하는
음란한 하나미치는, 대단히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후후. 천재~ 천재 ♪오."
호수에 세수를 하러 온 하나미치는, 수면에 비친 자신을 보고
싱긋 웃었다.
"오늘도 사쿠라기 하나미치 천재님은 멋진 남자다! 아니 이거
곤란해, 곤란해! 핫핫핫!"
"...하나미치."
"어. 왜 웃는 거야, 요헤이!"
"겨우 활기가 돌아온 것 같구나."
"그래! 언제까지나 말 때문에 낙담해 있을 수는 없으니까!
뭐라고 말해도 내 두 어깨에는 밋찌의 목숨이- 세계의 운명이
무겁게 매달려 있어!"
자신들의 자취를 지우기 위해 말을 죽인 일로, 어제까지는
몹시 울고만 있던 하나미치였지만, 회복은 빨랐다.
"그래그래. 그 때문에라도 빨리 식사하고 출발하자.
...한시라도 빨리 미쯔이 형을 만나고 싶지?"
"응!"
요헤이의, 자신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하나미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절대로 밋찌를 루카와 따위에게 죽게 놔둘 수 없어.
설령 그걸로 내가 죽게 되더라도 밋찌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어."
요헤이는 아까와는 달리 조용한... 일말의 쓸쓸함조차 느끼게
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 줘. 나의 바램은 형의
행복이 아냐. 너의 행복이야. ...목숨을 소홀히 하지 마."
"알았어!"
씩씩하게 대답하는 하나미치는, 이때의 요헤이의 말 속에 담긴
무게를 전혀 알지 못했다.

미야기 단장이 통솔하는 쇼호쿠의 근위사단이, 소톤 산맥에서
미토 요헤이와 사쿠라기 하나미치의 자취를 결국 발견한 것은
그들이 금염궁을 나와서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찾고 있던 것을 발견한 미야기는 휘파람을 불며 싱긋 웃었다.
"-적중했군."
"근위단장님?"
옆에 서 있던 부관이 이상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봐라."
미야기가 발끝으로 흙을 차자, 재로 뒤범벅이 된 검게 변색된
흙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닥불의 잔해...입니까?"
"그래."
"저... 이게 무슨?"
"왕자들이 여기에 있었다는 증거다."
"예에!? 하지만 이 구가도는 동쪽으로 향하는 여행자가
신가도만큼은 아니더라도, 지금도 빈번하게 이용하는 길입니다.
모닥불 잔해 정도가 남더라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만...
실제로 이 근처에서도, 여행자들의 발자국이 발견되고 있고..."
"바보. 보통의 여행자가 이런 식으로 은폐공작을 하겠냐.
알겠나, 잘 생각해 봐라. 보통이라면 가지가 부러지거나 풀이
밟혀지거나 해서, 뭐든 사람이나 동물이 지나간 자취는 남는다.
그런데 이 일대만은 그게 전혀 없어. 오히려 부자연스럽지.
그래서 나는 여기 와서, 지금 땅 속에서 재를 발견했다."
"그럼..."
"-단장님!"
그때, 전령의 깃발을
든 병사가 한 명 미야기 쪽으로 달려왔다.
병사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보고합니다. 명령하신 대로 주변의 늪과 샘을 조사한 결과,
동남쪽 늪에서 도망치는 데 사용된 말의 유체가 마구와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미야기는 짝짝 박수를 치며 웃었다.
"좋다. 역시 병법서대로군. 미토 전하는 우등생이었지만,
그게 역으로 화가 된 거야. 이걸로 왕자들의 목적지는 카이난
제국으로 확정되었다."
산노오 행의 쾌속선에 하나미치들이 승선하지 않은 것은 이미
확인되었다. 최후의 목격증언을 비교해 본 지금, 남은 가능성은
카이난밖에 없다. 게다가 이 잔해와 말의 유체의 발견으로,
의심의 여지는 완전히 없어졌다.
"미쯔이 전하를 찾아갈 생각일까요. 동생과 자신의 측실의
도망을 도울 거라는 건,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뭐어. 고귀한 분들의 생각은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거니까."
"...확실히."
이번의 소동이 좋은 예이다.
"-그럼 가볼까. 언제까지나 이 구가도에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왕자들은 도중에 산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했다.
"대략 잡아서 하루 반 정도 늦은 것 같군. 그 정도라면 전하들이
국경을 통과하는 장소까지 추적하겠다."
"하루 반의 거리가 벌어
졌는데 정말로 괜찮을까요?"
"아아. 새로 생긴 정규 가도를 통하면 여기에서 나흘 내에
카이난의 국경에 도착한다. 소톤 산맥을 통과하면 지도상에서는
최단거리지만, 길이 없는 산속을 도보로 가는 건 상상 이상으로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 그리고 우리들은 왕의 칙령을 받은 정규군.
누구에게도 구에받지 않고 신가도를 말로 전력질주할 수 있다."
부관은 미야기의 논리정연한 얘기에 감동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 방법이라면 왕자들을 국경에서 기다리는 것도
가능하겠군요."
"그렇지."
미야기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미소지으며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전령에게 명했다.
"주변에 흩어져 있는 녀석들을 전원 소톤 산맥 국경으로 집결시켜.
타국에 들어가게 되면 어쩔 도리가 없으니까 개미새끼 한 마리라도
국경을 통과시키지 마라."
"옛!"
전령은 경례를 하고 재빨리 달려나갔다.
"미토 전하를 죽이고 사쿠라기 총비를 데리고 돌아가면 국왕폐하도
만족하실 겁니다. 분명 미야기 군단장님도 이번의 포장으로 장군이
되시겠지요. 힘내십시오."
부관은 참으로 시원스럽게 터부시되고 있는 말을 꺼냈다.
"미토 왕자님을 죽이면... 다른 녀석들은 모두 싫어하는 것 같은데
너는 아무렇지도 않은가?"
미토 왕자는 군부에서는 카리스마적 존재였다. 이렇게 미토 왕자를
뒤쫓는 지
금도, 군단 내에서는 곤혹스러운 항의가 계속되었고
개중에는 사표를 제출한 병사까지 다수 나타났다.
"저는 미토 왕자님의 파도 다른 왕자님의 파도 아닌, 유일하고
절대적인 국왕파니까요. 폐하가 바라는 일이 정의입니다."
"...이런 인륜을 배반하는 말도 안되는 명령이라도?"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폐하의 깊은 생각이
있어서겠지요."
"...그런가."
미야기는 어깨를 움츠리며, 부관의 어깨를 한 번 탁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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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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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퍼와서 너무 죄송;;
게을러서 말이죠...-_-;;
PRE번 호 : 1919 / 2053 등록일 : 2000년 12월 19일 09:30
등록자 : HALKO 조 회 : 178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3권 #2
/PRE

2.

센도가 그 보고의 내용을 들은 것은 별채에서 아야코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사쿠라기가 카이난으로 향하고 있다고...?"
센도의 손에서 컵이 미끄러져 떨어지고, 아야코의 얼굴이
밝아진 것은 거의 동시의 일이었다.
"히사시야! 그애들, 히사시에게 가려는 거야. 그 두 사람이
달아나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미치는 히사시를
뒤쫓아간 거였어. 그렇다면 납득할 수 있지. 하나미치도 정말,
히사시에게 그렇게나 가고 싶어했었는데 잘됐어-"
"...시끄러워요. 좀 조용해 줘요."
"에..."
처음으로 센도가 화내는 모습을 본 아야코는 놀라서 눈을
둥그렇게 떴다.
센도는 보고를 전해온 부하에게, 험악한 시선을 보냈다.
"확실히 사쿠라기는 카이난 쪽으로 향하고 있는가- 형에게로."
"카이난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미쯔이
왕자님이 목적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건 당연하잖은가!"
그것은 갑작스런 격앙이었다.
"저... 전하?"
"아키라 상?"
"아..."
센도는 화가 나서 소리쳐버린 것에 대해 대단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책상에 양 팔꿈치를 얹고 얼굴을 묻으며 한숨을 뱉어냈다.
"...미안하지만 나가 주시겠어요? 혼자서 생각할 게 있어요."
"그... 그래."
보통 때와 다른 센도에, 아야코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아키라 상. 떠들어대서 미안하구나."
"......"
대답 없는 센도에게 아야코는 조그맣게 사과하고는, 급사 담당
여관들과 보고하러 온 사자를 데리고 이 자리를 떴다.

...컹.
...덜컹.
덜컹덜컹덜컹.
팔꿈치와 책상 사이에서 소리가 났다.
혼자가 된 순간 센도의 가슴이- 전신이 떨리기 시작한 것이다.
안색이 끔찍하게 나쁜데다, 더운 것도 아닌데 이마에는 흠뻑
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목적지는 카이난이라고...? 지금의 카이난이 어떤 상황인지...
카이난으로 향하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것을 사쿠라기도 알고
있을 텐데..."
루카와의 암살을 부추겼을 때, 그만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제 곧 쇼호쿠는 인척관계를 맺어서 평화가 체결되었다고
믿고 있는 카이난에게 전쟁을 걸 것이라고.
카이난의 황실로, 인질과 같은 처지의 부마로서 들어간 형은
확실히 죽을 운명에 있다고.
그런데... 그것을 알고도 미쯔이에게 간다니 무모하다고 하기
이전에- 자멸.
"...사쿠라기는 형과 함께 죽을 생각인 건가...? 그 정도로
사쿠라기는 형을... 형... 형은..."
모국으로부터도, 친아버지로부터도 버림받아 적국에서 외톨이인
왕자. 그것이 지금의 형의 입장인데, 그래주지 않으면 안되는데.
고립무원이고, 누구보다도 고독한 왕자여야 할 형은, 그래도
지금도 사랑받고 있어?
전부 알면서도 사쿠라기는 형을 택했다-!?
"...윽."
요헤이와 도망쳤다고 생각했을 때는 전
혀 동요하지 않았던
센도의 마음이 지금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원래부터 하나미치가 요헤이를 연애감정으로 사랑하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함께 도망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도,
곧 여기로 돌아올 거라고... 최종적으로는 자신의 손 안에
떨어질 거라고 단순하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 그런데... 사쿠라기는 형이 목적이었어-
혹 만에 하나 하나미치가 동생 요헤이를 정말로 택했더라도
이 정도로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두 사람의 행복이라면 지금은 무리더라도 언젠가는
축복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형과 사쿠라기라면?
... 한 번은 단념했다.
미쯔이와 사쿠라기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만 했다.
피를 토하며 단념했는데, 그런데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옛날부터 고민이 없어서 부럽다'고, 자신이 아이 때부터
계속 바랬던 것을 전부 가지고 있는 주제에, '행복한 녀석'
이라고 미쯔이는 자신에게 말했다.
그때 맛본 굴욕감은 절대로 일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 자신은, 모든 것을 단념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러니까 그대로 둘 수 없어. 절대로 그 둘이서... 그런
행복한 죽음, 하게 놔두지 않겠다!"
나이프를 눈앞의 책상에 푹 찔렀다.
어느 새 센도의 눈에서 눈물이- 어릴 때에 두고 왔을
눈물이 흘러내렸다.
"겨우... 겨우 손에 넣었다고 생각했는데... 형은 어디까지
날 방해해야 직성이 풀리겠어."
하나미치가 미쯔이에게 갔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방금 전의
아야코의 기뻐하는 모습.
결국 저 멋진 여성도 '형의 새어머니'인 것이다. 아무리
헌신적으로 위해주어도, 자신은 친아들인 형 이상의 존재는
될 수 없다.
"...잘 알겠어. 형이 살아 있는 한 아무도 날 봐주지 않아.
형만... 형만 없어져 준다면-"
처음으로 센도의 내부에서 형에 대한 명확한 살의가 태어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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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센도 본격 등장 짠!
(언제는 블랙이 아니었냐만... 그래도 죽이려고까지는 안했죠)
그래도 센도가 요헤이는 많이 봐주는구나...
(역시 센요였으면 좋을 것을 T_T)

PRE번 호 : 1920 / 2053 등록일 : 2000년 12월 19일 09:32
등록자 : HALKO 조 회 : 174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3권 #3
/PRE

3.

카이난 출병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카이난과의 국경부근의 100개의 주둔지에는, 이미 3만의
병사가 대기중이었고, 현재도 시시각각 수가 계속 늘고
있었다.
또, 금염궁의 작은 도시라면 거뜬히 들어갈 수 있을
광대한 부지에는 족히 3만 명은 되는 병사들이. 약 10일 후의
출전에 대비해 최후의 조정에 들어가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병사들이 의미도 없이 모여 있는 일은 주변
국가들을 괴이쩍게 했다. 그 때문에 표면상으로는, 미쯔이
왕자의 성혼을 축하하기 위한 대규모의 축전을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한 발 앞서서 미쯔이는 카이난으로 들어갔지만
전세계의 사자들이 모이는 정식 혼례는 좀 더 뒤였다.
이런 이유라면 카이난의 국경 부근에 병사들을 집결시켜도
이상할 것은 없다.
루카와는 미쯔이를 철저하게 이용해먹을 셈이었던 것이다.

-금염궁.
국내 각지의 부임처에서 여덟 장군이 금염궁에 모여, 중상을
입고 있는 루카와 국왕이 부재중인 채로 최종적인 군부회의를
진행하기- 전에.
당직병 중 한 명이 군부회의가 있는 홀로, 기가 막힌 통지를
지니고 황급히 뛰쳐들어온 것이다.
"보고합니다! 하세가와 장군이 미쯔이 왕자파의 병사 약
2000명을 데리고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웅성 하며 일제히 장군들은 동요했다.
"-그것은 확실한 정보인가?"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은 쇼호쿠 장군의 필두이고, 이번 전투의
주력부대를 통솔할 예정에 있는, 쇼호쿠군 총사령관 아카기
다케노리였다.
크고 굳센 신체를 지닌 그는 용모로나 표정으로나, 무인으로서
태어난 남자라고 모두가 납득하는 인물이었다.
"옛, 하세가와 장군의 저택에서, 장군을 포함한 약 2000개의
사표가 발견되었습니다. 조사한 바로는 어젯밤 사이에, 모든
병사들이 아내와 이별하면서 가족, 친척과 인연을 끊는 등,
신변정리도 한 듯합니다."
다시 홀이 소란스러워졌다.
"신변정리... 친족에게 죄가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인가."
"반역자로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겁니까?"
"카이난 침략 얘기를 꺼냈을 무렵부터 하세가와 장군의 상태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는 미쯔이 왕자를 사모하고 있었으
니까요."
"장군도 그렇고 폐하도 그렇고, 성실 일변도인 남자가 사랑에
미치면 무서운 거로군."
아카기는 쓰디쓴 표정으로 다른 무장들이 소근대는 말을 들으면서
세로주름을 그은 미간을 눌렀다.
"...그 바보가, 사적 감정을 개입시키다니."
아카기와 하세가와는 왕과 함께 전장을 누빈, 오랜 친구였다.
이전의 하세가와는 지적이고 조용한, 의지가 되는 동료였다.
잘못이 일어나더라도 연애사태로 길을 벗어날 종류의 인간은
아니었는데- 사람은 의외로 겉만 봐서는 안되는 걸지도 모른다.
"...남자를 이용하고 버리는 것으로 유명한 제 1왕자에게
푹 빠져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설마 이런 짓까지 할 줄은..."
강직한 아카기는 그의 행동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카기는 한숨을 쉬고는 부하에게 명령했다.
"우리 쪽부터 전쟁을 걸기 전에 카이난에게 눈치채이면 곤란하다.
즉시 수배령을 내려서 하세가와들을 체포하라."
"옛!"
대기해 있던 부하 중 한 사람이 달려나갔다.
"-장군. 이렇게 된 이상 만에 하나를 생각해서 한시라도 빨리
전쟁을 시작하는 쪽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의 부관 겸 참모인 코구레가 진언했다. 아카기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쟁은 미쯔이가 부마로 가서 방심하고 있는 카이난을
선제공격하는 일이 최유력 사항이다. 그 전에 발각되어 버리면
오히려 쇼호쿠 측이 멸망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사회규칙을 일방적으로 깨트리는 것은 쇼호쿠 쪽이다. 카이난과는
달리, 다른 나라의 원조는 바랄 수 없다.
전쟁 시작을 앞당기자는 제안에 대해서 부정을 말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전투만 시작되면 하세가와도 고작 2000명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폐하에게 날짜 변경을 알린다."
이렇게 해서 그 날, 카이난 출병은 5일 후로 변경되었다.
5일 뒤면 하나미치들이 겨우 국경에 도착할까 말까한 시간.
하나미치가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카이난의- 그것도
나라의 중심에 있는 카이난의 왕궁으로 5일 내로 걸어서 간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도 절대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산 속에 있는 지금의 하나미치들이 알 방법은
없었다.

그날 밤 금염궁에서는 또 하나의 대사건이 일어났다.
"-루카와 님!"
요양중의 루카와에게, 쿠와타가 혈색이 변해서 왔다. 숨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모습으로 침대 옆에 부복하며 외쳤다.
"주무시는 중에 실례합니다! 큰일- 큰일이 일어났습니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도 악몽 때문에 자고 있지 않았던 루카와는
곧장 반응하여 아픈 상반신을 일으켰다.
"멍청이의 일인가?"
"아... 아닙니다. 왕비님의 일입니다."
갑자기 루카와의 얼굴에서 흥미가 사라졌다.
다시 침대에 몸을 눕히고 이불을 덮었다.
"폐하!"
"시끄럽다. 최근 제대로 잠도 못 잤다. 얘기라면 내일 일어나거든
해라."
"그런 느긋한 소리 하실 사태가 아닙니다! 이 금염궁에서 피오네
왕비님이 암살당하셨습니다!"
"-암살?"
그냥 들어넘길 수 없는 말에, 루카와 또한 표정이 변했다. 이불에서
얼굴을 내민 루카와에게, 쿠와타는 용기를 얻어 말을 계속했다.
"예! 방금 정원의 분수 속에서, 10여 곳 이상 찔려서 사망한
왕비님의 참살된 사체가 순찰중이던 병사에게 발견되었습니다!"
"...피오네가..."
루카와는 한참 생각에 잠겼다.
"-료난 왕의 여동생이 암살당했다면, 료난 왕이 뭐라고 말해올지
걱정이다. 확실히 범인을 체포해서 사형해라. 잘 처리하지 않으

국제문제가 된다."
하나미치의 일이 있어서 거의 직무를 방치하고 있는 루카와였지만,
그래도 오랜 세월의 재위로 익숙해져 있는 통치자로서의 행동은
잊지 않고 있었다.
쿠와타는 깊이 머리를 조아리며 의견을 물었다.
"왕비님 말씀입니다만, 유체를 이쪽으로 모셔올까요?"
"필요없다."
"예... 하지만 지금의 루카와 님의 건강상태로 침대에서 움직이는
건 자살행위에 가까운-"
"움직일 것도 없다. 피오네의 유체는 적당히 너희들이 처리해라."
"루카와 님!? 18년이나 부부로서 함께 살아온 분이 살해당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한 번 얼굴이라도 보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 여자가 살아돌아오나? 귀찮다."
"루카와 님!"
"그런 일보다 멍청이 쪽은 어떻게 되었나."
"루카와 님..."
쿠와타는 눈썹을 찌푸렸다.
이 이상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작게 한숨을
쉬고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사쿠라기 님에 대한 새로운 보고는 아직 미야기 사단장에게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루카와의 얼굴을 지나간 낙담의 빛.
"...무능한 자식, 발자취도 모르면서 멍청이와 요헤이 따위에게
언제까지 시간을 끌 작정이냐."
주먹을 불끈 쥐며 온 힘을 다해 이불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대로
그 주먹을 얼굴에 갖다대고 고개를 떨구었다.
"...빨리 돌아와, 멍청이. 네가 없으면 잘 수도 없어..."
"폐하..."
눈물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 눈에 어느 정도의 비애가 담겨 있는지,
보지 않아도 쿠와타는 알 수 있었다.
아이까지 낳은 비의 죽음에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면서도,
하나미치의 부재에는 그것만으로도 괴로운 표정을 짓는 것이다.
피오네 왕비가 얼마나 루카와를 사랑했었는지는, 금염궁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루카와의 시중을 들고 있는 여관이나 쿠와타 등,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지금은 죽은 왕비를 진심으로 동정했다.

왕비의 거처는 무겁고 암울한 공기에 휩싸여 있었다.
방 중앙에 있는 침대에는 무참히 살해당한 왕비의 유해가 눕혀져
있었고, 그 주변을 지금까지 피오네의 시중을 들어왔던 여관들이
지키고 있었다.
여관 이외의 사람은 없었다.
사인(死因)이 사인이라서, 그녀가 생전에 친하게 지낸 인간만이
오늘밤은 면회를 허락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친한 친구 같은
것은 없었다.
결코 사교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내성적인 왕비는, 쇼호쿠에
시집온 이래로 친구 한 사람조차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쓸쓸하고 쓸쓸한, 그것은 쓸쓸한 밤이었다.
"...그런데 루카와 폐하에 대해서 들었어?"
여관 중 한 명이 옆에 서 있는 동료에게 조그맣게 말을 걸었다.
"응. 폐하가 왕비님을 사랑하지 않은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해."
"피오네 님이 가엾어..."
가냘픈 고참 여관이 그렇게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 눈물이 왕비를 위해 흘리는 최초의 눈물. 그것이 한층 더
그녀의 불행을 강조하고 있었다.
"...부디 아드님이신 센도 왕자님만이라도 얼굴을 보여주셨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최근엔 왕자님도 왕비님에게는 쌀쌀하시잖아. 게다가
지금은 폐하의 측실이셨던 아야코 님을 새어머니라고 거리낌없이
부르시고. 오늘밤도 아야코 님이 계신 별궁으로 가셨을 거야.
"
"...무리도 아니야. 그렇게까지 참아낸 센도 전하가 용하지."
"그렇구나."
후... 하고 여관들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들의 어조에서, 센도를 책하는 기색은 없었다.
왕비의 여관으로서, 가까이에서 그 아들을 보아온 그녀들은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에 대한 왕비의 언동은 결코 정상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직접 보고 들은 자들은, 새어머니의 죽음에 급히 달려오지
않는 센도를 일방적으로 꾸짖을 수 없었다.
다시 여관들이 입을 닫자, 무겁고 괴로운 침묵이 주위를 지배하고
있었을 때, 복도에 대기하고 있던 다른 여관이 소문의 주인공의
등장을 알렸다.
"-왕태자 전하가 오셨습니다!"
"어머, 센도 전하가!?"
"전하!"
여관들은 전원 황급히 방에서 뛰쳐나왔다. 단정한 제 2왕자의
모습을 확인하자 그녀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왕족에 대한
정식 예를 올렸다.
센도는 여관들의 앞을 지나쳐 천천히 새어머니가 누워 있는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침대 끝으로 걸어간 센도는 단지 물건에 지나지 않는 모친의 몸을
비통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어머님."
쥐어짜는 듯한 중얼거림.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그나마 상처를 입지 않은, 생전과 똑같이
아름다운 새어머니의 얼굴을 쓸었다.
"어머님."
불러도 대답은 없었다.
이제 두 번 다시 이 눈이 떠질 일은, 투명한 푸른 눈을 볼 일은
없을 것이다.
"...당신은 마지막까지 저를 봐주시지 않으셨군요... 하지만
언젠가... 언젠가 저를 인정해 주실 날이 올 거라고... 그것만을
계속... 바래왔는데..."
눈물이 주르륵 뺨을 적셨다.
"왜... 어째서,,, 이런 잔혹한... 어머님이 대체 무엇을 했다고...?
누가 이런..."
오열하며 마루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떨구는 센도. 그것을 보고 있던
여관들 전원이 눈물을 흘렸다.
"...센도 전하..."
"센도 님..."
"-어머님을 이렇게 만든 놈을, 나는 절대 용서 못해...!"
그렇게 외친 센도는 새어머니의 작은 몸을 붙잡으며 울부짖었다.
센도의 비탄은 보는 사람 전원에게 전해졌다.
그가 결코 새어머니를 싫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싫어하고
있기는 커녕, 사실은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고, 여관들은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다음날 장례식에서도 센도는 계속 말이 없었다.
국내외의 사자들에게 최소한의 인사만 했을 뿐, 그 낙담을 감추지
않아서 그 모습에 모두가 놀랐다.
센도는 새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한동안 자기 방에 틀어박혀
왕태자로서의 최소한의 실무조차 해내지 못하는 상태였다.
장례식이 끝나고 사흘째가 될 무렵에는, 그의 비애에 대해 모자의
정이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 한 사람도 없게 되었다.
그리고 곧장 체포될 거라고 생각되었던 왕비암살범은 용의자조차
발견되지 않은 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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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하아하아...(꼬르륵)
정말 죽겠다...-_-;;

PRE번 호 : 1921 / 2053 등록일 : 2000년 12월 19일 09:34
등록자 : HALKO 조 회 : 226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3권 #4
/PRE

4.

출병이 앞당겨진 것을 모르는 하나미치는, 아직 시간이 있다고
믿으면서 오늘도 산속을 열심히 지나가고 있었다.
구가도(舊街道)를 지나 산길을 걸은지 5일.
마침내 국경이 보이는 장소까지 왔다.
울창한 삼림과 산과 깎아지른 듯이 솟아 있는 암반.
밤이 되니 바람도 멎고 공기도 선뜩해졌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 깊은 숲은 위로가 된다기보다도,
고독과 쓸쓸함, 생리적인 공포심을 유발했다.
불을 피울 장소조차 확보할 수도 없고, 이제 곧 국경이고 해서,
점점 몸에 스며들어오는 산의 한기와 적막감 속을, 두 사람은
한밤중을 계속 걸어가고 있었다.
"우앗."
덤불 속에서 파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새가 날아올랐다. 거기에
놀라서 몸을 흠칫하자, 옆에서 걷고 있던 요헤이가 괜찮다는 듯이
등을 팡팡 두들겨 주었다.
"우...우음."
"이제 곧 고개 정상이야. 거기서부터는 카이난이다. 힘내자구."
"으...으응."
새파래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미치는 누구보다도 암흑과 귀신 같은, 형태 없는 공포에 대해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옆 덤불에서 괴물이 튀어나올 것이라는 착각에, 식은땀을
흘리며 부들부들 떨었다.
- 어...어쨌든 고개야. 이 고개 정상에 도착하면... 정상에
도착하기만 하면...! -
그러나 길은 점점 더 급경사가 되어, 진로는 한층 위험해져 갔다.
정말로 정말로 무서웠다. 나무에 가려져서 별조차 만족스럽게
볼 수 없는 가운데, 횃불 하나만을 의지하며 전진을 계속한 하룻밤-
만약 옆에 요헤이가 있어주지 않았다면 발광했을지도 모른다고
진심으로 생각할 정도로, 산 속의 밤은 하나미치에게 무서운 것이었다.
"-아."
움찔!
요헤이가 갑자기 목소리를 내자 놀란 하나미치는 약간 뛰어올랐다.
"요...요요...요헤이!?"
"봐, 하나미치. 저 하늘."
"...우?"
해는 아직 뜨지 않았지만 진행방향인 동쪽 하늘은 검은색에서
남색으로- 그리고 점점 적자색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여명이 가까워져 온다."
"...응..."
햇살은 사람을 안심시킨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이정도까지 여명을 고마워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산의 해는 떠오르는 것도 아주 빨랐다.
어슴푸레 밝아져오는 주변을, 시신경을 집중시켜 올려다보자, 아직
올라가야 할 높이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제 곧 산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거기서부터는 이제
미쯔이가 있는 카이난 제국이다.
하나미치는 그것들을 확인하고, 휴유 한숨을 쉬었다.
점점 밝아져오는 주변에 비례해 몸에서도 긴장이 풀려서, 그렇게 되자
여러 가지를 생각할 여유도 생겼다.
-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는 요헤이가 있어줘서 다행이었지만
이제부터는 혼자로구나... -
옆에서 걷는 친구의 단정한 옆얼굴을 흘긋 보며, 하나미치는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산속에서 보낸 밤의 무서움은 지금은 잊어버렸지만, 하나미치는
쇼호쿠를 나올 때 요헤이를, 국경까지라는 약속으로 데려온 것이다.
- ...나 혼자서 산 속을... -
"......"
"하나미치?"
다시 얼굴이 새파래진 하나미치에게, 요헤이는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저기 요헤이. 정말로 이 고개를 넘으면 우리들 헤어지는 거야?"
"국경까지는. 약속이니까."
"...그럼 너, 또 그 무서운 장소를 혼자서 돌아갈 생각이야?"
"나는 너와 달리 특별히 급한 여행도 아니니까. 천천히 시간을 들여서
낮에만 여행할 거야."
"우... 하... 하지만, 하지만 말야... 모처럼 여기까지 와서 카이난에
아예 들어가지 않겠다니 아깝지 않아? 어차피 국경 통과소도 지나가지
않으니까 통과증서 없이도 괜찮지...?"
"...하나미치."
고개를 숙인 채 눈을 치뜨며 바라보는 하나미치에게, 요헤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알았어. 인가가 보일 때까지 같이 가자."
"요헤이!"
하나미치의 얼굴이 일시에 밝아졌다.
오늘밤의
경험이 어지간히 무서웠던 거로군. 기뻐한 나머지
끌어안아 오는 하나미치의 등을 달래듯이 어루만져 주면서,
요헤이는 복받치는 사랑스러움에 웃음지었다.
"...나도 미련이 있는 건가."
"응?"
"아무 것도 아냐. 국경을 넘고 나서 아침식사 하자. 서둘러."
"아, 기다려, 요헤이!"
하룻밤 내내 걸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활발한 발걸음으로,
두 사람은 산을 올라갔다.

해가 뜨고 거의 동시에 하나미치들은 국경선인 산 정상에
도착했다.
산 밑에 펼쳐진 카이난의 풍경을 잡아먹을 듯이 보고 있던
하나미치는 한참 후 불만스럽게 말했다.
"이게 어디가 카이난이야."
"하아? 카이난이야."
"하지만 똑같지 않아."
"뭐가."
"이쪽도 저쪽도 다 똑같은 산이잖아."
"그거야 그렇겠지. 카이난과 쇼호쿠는 곧장 연결되어 있으니까
국경을 넘었다고 갑자기 변화가 있겠어?"
"엣-!"
"에- 라니 너, 뭘 기대한 거야?"
쇼호쿠에서 태어나고 자란 하나미치는 생전 처음 오는 외국에
대해 여러 가지 환상을 품고 있었다.
'국경'이라는 것은 지도와 똑같이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전보다 나을 게 없는 경치가 눈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쳇, 웬지 시시해."
"여긴 산 속이니까. 도시까지 가면 차이가 있을 거야."
"그래도 잎사귀까지 녹색이라니 납득할 수 없어."
"하아? 보통 초목은 녹색이야."
"뭐야, 요헤이! 너 외국에 유학한 적도 있으면서, 모르고 있었냐?
외국의 나뭇잎은 빨개. 하늘에는 보석처럼 반짝반짝하는 커튼이
걸려 있고 새가 말을 한단 말야."
"하아?"
"외국에서는 말야, 산만큼 커다란 생물이 바닷속을 헤엄쳐서
다닌단 말야."
"...하나미치. 너 그 나이가 되서 아직 동화를 믿고 있는 거냐."
"동화 아냐! 전에 밋찌가 말해줬어. 외국은 쇼호쿠에 없는 이상한
것들이 많이 있댔어!"
"너 또 미쯔이 형에게 놀림당했구나."
"아냐! 밋찌는 나한테 거짓말 안해!"
"그건 좀 심했다."
"밋찌는 만물박사야! 요헤이가 모를 뿐이야!"
"네네네."
"아! 안 믿는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그런 헛소리나 하는 형은 버려두고
나와 함께 멀리 가버리지? 위험한 카이난 행 따위는 그만두라구."
농담처럼 하는 말에, 은근히 섞여 있는 진심.
"어, 무슨 바보 같은 말을 하는 거야."
"하나미치..."
골을 내는 하나미치를 보는 요헤이의 눈이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 이제 곧 이별하게 된다.
인가가 보이는 장소까지 겨우 하루만 걸어가면 도착한다.
거기서 헤어지면 아마 이제 두 번 다시 하나미치와 만날 일은
없겠지 -
요헤이는 눈을 꼭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 다음 순간 그는
하나미치를 가슴 속으로 끌어안고 있었다.
"요헤이?"
하나미치는 멍하니 머리를 갸웃거렸다.
"어이, 요헤이. 답답해."
"...하나미치. 내가 널 좋아한다고 한다면,
어쩔 거야?"
"응. 나도 요헤이가 좋은데?"
"그런 게 아냐. 연애감정으로, 널 사랑한다고, 내가 말한다면?"
"!!"
파앗!
하나미치는 갑자기 요헤이를 밀치고는 그의 품에서 도망쳤다.
"뭐... 뭐뭐뭐-"
자신을 보는 하나미치의 눈에 떠오른 것은, 순수한 두려움뿐.
원래 혈색이 좋은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갔고, 입술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나미치."
무의식중에 손을 뻗자 격한 몸짓으로 몸을 피했다.
요헤이는 허공에 머물러 있는 자신의 손을 쳐다보며 씁쓸히
미소지은 뒤, 팔을 내렸다. 그리고 눈을 내리깔았다.
"-농담이야. 진담으로 듣지 마. 우리들은 친구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냐."
갑자기 하나미치의 전신에서, 한눈에 보일 정도로 힘이 빠졌다.
"그... 그래. 겁주지 마라. 루카와의 일도 있어서 그런 식의
농담은 웃고 넘어갈 수가 없어."
친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루카와가 갑자기 돌변해서 덮쳐온
과거가 있었다.
"미안, 미안. 그럼 어쨌든 또 한 번 힘내서 낮이 되기 전까지
고개를 내려가 볼까-"
온화한 어조로 말하고 있던 요헤이는, 그러나 다음 순간 나찰귀의
표정으로 변했다.
"누구냐!"
반사적으로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쥐고 돌아보았다.
왼쪽 덤불을 헤치자 나타난 것은-
"-쇼호쿠 군 근위사단?"
쇼호쿠 특유의 빨간 갑옷을 몸에 걸치고, 근위병에게만 허락된
빛나는 은색의 망토를 걸친 병사가 거기에 서 있었다.

"와...왕자님...?"
놀란 것은 근위사단의 병사도 마찬가지였다.
미토 왕자의 말살과, 빨간 머리 소년을 데리고 오라는 명령은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갑자기 자신이 그들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예측으로는 여기보다도 남쪽의, 좀 더 가파르지 않고 편한 장소를,
왕자들이 통과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위험한 이 장소를 지키고 있는 것은, 근위사단 중에서도
지위가 낮은 극소수의 병사들뿐이었던 것이다.
내키지 않는 이번 작전에, 운좋게 자신은 끼지 않았다고 안심하고
있던 병사는 이런 전개에 아연해했다.
그러나 근위사단으로는 말단이라고 해도, 그도 군인 중에서는
고르고 골라 뽑은 근위병이었다.
즉시 마음을 고쳐먹고 동료를 부르기 위한 피리를 불었다.
삐익 하고 아침의 청량한 공기를 가르는 피리 소리에 재빨리
반응한 것은 요헤이였다.
병사 쪽으로 달려들었나 했더니,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검놀림으로 병사의 목젖을 베었다.
"히익!"
하나미치는 병사의 목에서 뿜어져나오는 엄청난 피에
무의식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즉사한 남자를 혀를 차며 내려다본 요헤이는 위험한 표정
그대로 하나미치를 돌아보았다.
"나와 다닌 게 실수였어. 곧 다른 병사들도 몰려들 거야.
서둘러."
"나...나, 노...놀라서..."
망연히 주저앉아서 입을 뻐끔뻐끔하고, 눈을 둥그렇게 뜬 채
시체를 응시하고 있는 하나미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상태였다.
요헤이는 그런 하나미치의 멱살을 잡고 손바닥으로 뺨을 쳤다.
"정신차려! 너는 겨우 이 정도 각오로 쇼호쿠를 나온 거냐?
그래서는 형을 구할 수 없어!"
"...!"
요헤이의 질책에 하나미치는 겨우 자기 자신을 되찾았다.
- 그래. 몸을 던져서라도 밋찌를 구할 일념으로, 루카와에게서
도망쳐 나왔는데, 이런 곳에서 잡힐 생각은 없어 -
하나미치는 비틀거리며 일어났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카이난 방향으로 달려갔...지만.
"쳇!"
몇 발짝도 못 가서, 방금 전의 피리소리를 들은 15명의
병사들에
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전하."
병사들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고뇌가 담겨 있었다.
제 3왕자 미토 요헤이는 군부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카리스마적 존재였다. 그런 그를 죽이는 것은, 그들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던 것이다.
"-용서해 주십시오, 미토 전하. 왕의 칙명에 의해, 척살령이
내려졌습니다."
"척살령-!?"
괴롭게 말하는 병사의 말에 하나미치가 깜짝 놀랐다.
"어째서!? 어째서 가출한 것만으로 왕자가 죽어야 된다는 거야!"
입을 연 것과 동시에, 병사들에게 아주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웃?"
"-당신이 사쿠라기 하나미치... 님이시군요. 국왕폐하의
명령입니다. 저희들과 함께 금염궁으로 돌아가 주십시오."
어조는 정중했지만, 하나미치를 보는 병사들의 시선은 아무리
관대하게 보더라도 호의적이라고 말할 순 없었다. 병사의 눈에
나타난 것은 틀림없는 증오와 분노.
"그런 걸 묻지 않았어! 어째서 요헤이가 그런 꼴을-"
"너 때문이잖아!"
"!?"
뒤에 있던 젊은 병사가 갑자기 격앙되서 외쳤다.
그는 미토 왕자를 동경해서 군대에 입대하고, 조금이라도
왕자에게 가까이 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크게 노력해서, 겨우
올해 여름에 근위사단에 입단한 젊은이였다. 닭똥같은 눈물을
펑펑 흘리며 하나미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미쯔이 전하의 측실로 받아들여졌으면서, 루카와 폐하를
유혹하고, 질려버리니까 이번에는 미토 전하와 눈이 맞아서
도망쳤잖아!"
"누... 눈이 맞아?"
"너 같은 놈, 나는 남자라고 인정할 수 없어!"
"잠깐 기다려, 눈이 맞다니 무슨!"
갑자기 흠칫.
- 눈이 맞아 도망갔다는 것은, 연인들이 손을 맞잡고 별천지로
가는... 그것? -
도대체 어째서 자신과 요헤이가 어느 새 그렇게 된 것인가.
너무 놀란 나머지 반론도 잊어버렸다.
"너만 없었으면 이런 일을 우리가 하지도 않았다!"
다른 병사들도 차례차례 감정이 북받쳐서 하나미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더러운 남창의 몸으로, 이렇게까지 견고했던 왕가를 뒤집어엎어서
오죽이나 즐거웠겠군!"
"루카와 국왕과 세 왕자는 우리 쇼호쿠 국민 전체의 자랑이었다!
1년에 몇 번 뵐 수 있는 왕가의 4분이 한 분도 빠짐없이 나란히
서 있었던 모습은 얼마나 신성하고 긍지높아 보였는지...! 그런데
미토 전하도 미쯔이 전하도- 이런 남창 하나 때문에 쇼호쿠는
엉망진창이야!"
"사쿠라기 하나미치. 너는 쇼호쿠 역사상 최대의 역병신이다."
"-나...나는..."
하나미치에게 그럴 생각이 없었다고 해도, 현실은 그들의 말대로였다.
아픈 곳을 찔린 하나미치는 무의식
적으로 양손으로 귀를 막아버렸다.
너무나 무방비한 그 모습-
"너야말로 죽어버려!"
결국 병사 한 명이 그렇게 외치며 하나미치를 향해 칼을 뽑았다.
"바보 자식! 폐하께서는 사쿠라기 님을 아무런 상처 없이 데리고
돌아오라고 하셨다!"
유일하게 이성이 남아 있던, 그들의 상관 같은 남자가 외쳤지만
병사의 폭주는 멈추지 않았다.
젊은 병사에게 유발되어 다른 병사도, 본래대로라면 미토 왕자를
쳐야 할 상황인데 하나미치에게 일제히 칼을 뽑았다.
본래 이 장소는 미토 왕자가 지나갈 거라 생각한 곳에서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그 때문에 만날 가능성이 적은 이곳에 모여 있는 것은,
특히 미토 요헤이를 존경하고 있는 사람들뿐이었던 것이다.
미야기 사단장의 예상이 완전히 틀어져버린 것이다.
"...!!"
하나미치를 향해 내리치는 검을, 방금 전 죽인 남자의 피를 뒤집어쓴
채로 있는 그 검으로, 요헤이는 병사의 가슴을 푹 찔렀다.
"미... 미토 전하!"
등줄기가 서늘해질 듯한 시선으로, 요헤이는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점점 빌어먹게 시시한 핑계만 늘어놓고 있군. 나쁜 쪽은 아버지고
하나미치는 피해자다."
"미토 전하, 눈을 뜨십시오!"
"이 빨간 머리의 악마만 없어지면 루카와 폐하도 제정신으로
되돌아오실 겁니다. 그렇게 되면 미토 전하도 왕궁으로 돌아오실 수
있습니다!"
"부디 저희들과 함께 쇼호쿠의 악귀를 쓰러트립시다!"
요헤이는 침을 퇘 뱉고 검을 고쳐쥐었다.
"-나의 하나미치에게, 손가락 하나 댈 수 없다."

이렇게 해서 요헤이의, 하나미치를 지키기 위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5분 후에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쓰러진 10여명의 병사와 서 있는
요헤이와 하나미치뿐이었다.
"...후우."
병사들 전부를 혼자서 떠맡고, 그들의 피로 전신을 빨갛게 물들인
요헤이는, 장검을 땅에 직각으로 꽂아서 거기에 기대어 있었다.
검술도 국내 유수의 실력을 자랑하는 3왕자의 한 명이라고는 해도
다수를 상대로 했기 때문에 지나치게 피로한 상태였다.
그런 요헤이에게, 하나미치는 머뭇머뭇 다가갔다.
"요...요헤이."
"...아아... 하나미치. 너 상처는 없는 거야?"
하나미치는 한 번 고개를 끄덕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도 분했던 것이다.
끼어들려고 했지만 정규 훈련을 받고 있는 근위병들에게는 통용되지
않았다.
- 빌어먹을. 마을에 있을 때는 요헤이보다 내가 강했는데 -
오히려 싸움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쇼크는 컸다.
- 카이난에 가서 자리를 잡으면 꼭 무술과 검술을 익혀야지.
힘들어도 이제부터는 꼭 열심히 할 거야 -
지금의 자신은 미쯔이를 돕기는 커녕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하나미치는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요헤이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다. 자신을 천재라고
믿고 있는 하나미치에게 있어서 그 사실은 굴욕이었다.
하나미치는 입술을 깨물고 발끝을 보다가, 죽은 병사와 눈이 마주쳐

흠칫했다.
"우...우웃."
하나미치는 그런 심약한 자신에게 점점 화가 나서, 빙글 몸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이런 피냄새 나는 곳에 오래 있어봐야 소용없어! 빨리 가자!
-응?"
요헤이가 따라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챈 하나미치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요헤이...? 요헤이!"
그때 처음으로 요헤이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의 안색은 백짓장처럼 창백했던 것이다.
숨은 거칠었고 복부를 움켜쥔 손에서 피가 뚝뚝 땅으로
떨어져서, 새까만 피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너 다쳤잖아!?"
다른 사람의 피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아무래도 틀린 것 같다.
"요헤이!"
"...가벼운 상처야. 신경쓰지 마."
"가벼운 상처로 피웅덩이를 만들 수 있냐!"
"피가 아냐. 이건 대부분이 물이야."
"...아?"
"봐."
기대고 있던 검에서 몸을 일으킨 뒤, 품 안에서 말가죽으로 만든
수통을 꺼냈다.
그것을 기울이자 안에 있는 물이 전부 쏟아져나왔다.
"하...하지만 안색이 안 좋아."
"피곤한 것뿐이야. 변변한 것도 못 먹고 격렬한 운동의
연속이라서 그래. 나는 너 정도의 체력은 없잖아."
그렇게 말하며 요헤이는 웃었다. 지팡
이 삼고 있는 검을
땅에서 뽑아내 칼집에 다시 꽂았다. 안색을 제외하면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다행이다."
하나미치는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미치. 여기서 태양이 뜨는 방향으로 곧장 가면, 어쨌든
포장도로가 나올 거야. 거길 따라서 남쪽 방향으로 10일 정도
걸어가면 카이난의 수도 난화(欄華)다."
"응?"
"여기서부터는 혼자서 가."
"뭐어! 인가가 있는 곳까지 함께 가준다고 했잖아!"
"내 얼굴은 카이난에도 알려져 있어. 역시 나는 갈 수가 없어.
게다가 아무래도 우리들은 사랑의 도피를 했다고 알려져버린 것
같아. 오해를 풀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헤어지는 편이 나아.
둘은 아무래도 눈에 띄니까."
"우...우웅..."
요헤이의 말은 논리정연해서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가. 병사들이 또 올 거야. 나도 너도 서둘러서 여기서 헤어지는
게 좋아."
"...요헤이..."
아직 머뭇거리고 있는 하나미치에게, 요헤이는 비를 맞아도
끄덕없도록 기름종이에 싼 여행증명서와 발화도구, 대륙 전체에서
통용되는 금화가 든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자, 빨리 가지 않으면 전쟁이 시작될 거야. 너의 양 어깨에 미쯔이
형의 목숨이 걸려 있어. 너 혼자 몸이 아니잖아. 빨리 가."
미쯔이의 이름을 거론한
것은 적중했다.
하나미치는 건네받은 도구류를 꼭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갈게."
"아아, 건강해라."
"요헤이도."
"힘내."
"응- 여러가지로 고마워."
내뱉듯이 말하는 진심어린 인사에, 요헤이의 미소는 한층 깊어졌다.
"빨리 내려가지 않으면 또 무서운 산 속을 밤을 새면서 다녀야 될 거야."
어젯밤의 공포를 생각해내고, 하나미치는 조금 걸음을 빨리 했다.
갑자기 걸음이 빨라졌지만- 그래도 뒤돌아보며, 뒤돌아보며, 하나미치는
멀어져갔다.
그것을 보고 있는 요헤이의 이마와 뺨에서 펑펑 구슬 같은 땀이 솟아나와
턱을 타고 땅으로 떨어졌다.
"...수고를 끼치다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 피곤하단 말야."
완전히 모습이 사라진 순간, 요헤이의 몸이 기우뚱하며, 피바다 속으로
철퍼덕 쓰러졌다.
피가 콸콸 흘러나오는 배를 손으로 막고, 얼굴을 고통으로 찡그렸다.
그리고 콜록 하는 소리와 함께 대량의 피를 토해냈다.
-...칫. 내장까지 닿은 것 같군. 이제 살아날 수 없는 건가 -
그 때 뒤쪽 덤불이 다시 흔들렸다.
급격히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요헤이는 흐릿한 시야에서도
새로운 병사들의 모습을 인식했다.
이제 저항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아- 그럴 필요도 없어.
하나미치는 국경을 넘어서 카이난으로- 형에게로 여행을 떠났
다.
- ...하나미치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으면 괴물이 되어서 나타날 거야.
바보 형 -
최후로 그런 일을 생각하면서도, 마음 어딘가에서는 그 큰형이라면
자신보다도 훨씬 하나미치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왕의 낙윤(落胤)으로 인정되어서, 시골 마을에서 나와 익숙하지
않은 궁전에서의 생활을 막 시작할 무렵-
태생이 천한 동생이라 부끄럽다고 욕설을 퍼붓고도, 한밤중까지
공부와 궁정의례를 가르쳐 주었다.
궁상맞다고 들볶았어도, 왕자에게 걸맞는 옷이나 소지품을, 주위의
누구나 감탄할 만한 취향으로 완벽하게 준비해 주었다.
도시에서 친구가 한 명도 없다니 한심하다고 비웃었어도, 같은
연령의 소년들만 모이는 무도회나 연회를 계속 열어주었다.
-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효과적으로, 왕자로서 지녀야 할 최소한의
지식을 몸에 익히게 해준 것은 그 형이었다. 하나미치가 택한 것은
그런 사람이었던 것이다.
일견 가볍고 적당해 보이는 미쯔이가, 아버지 루카와나 자신을
포함한 다른 두 왕자보다도 속이 깊다는 사실을, 요헤이는 자신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 분명 그 형이라면 연애감정과 손익을 빼더라도, 하나미치에게는
제일 좋은, 제일 행복한 길을 걷게 해줄 수 있다 -
그 확신이 있었기에 하나미치를 빼앗아 달아나자는 달콤한 유혹에
굴하지 않았던 것이다.
연적에게 넘겨주는 게 아냐. 하나미치를 가장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남자에게 넘겨주는 거야.
그 때문에 자신은 여기까지 하나미치를 데리고 왔다.
- ...나는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어. 그러니까 미쯔이 형,
이번에는 네 차례야 -
부디 하나미치를 행복하게-
남들보다 울보이고 상처입기 쉬운 하나미치의, 그 미소를
계속 지켜줘-
"...하나...미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요헤이는 침침해져서 거의
보이지도 않는 눈을 감았다.
조국보다도 세계보다도 나 자신보다도 사랑한다.
그런 존재를 만난 나의 인생은, 분명 행복한 것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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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여기 경국미희에서 제일 마음에 들어했던 요헤이...
이걸로 퇴장이군요 T_T
(그래도... 언젠가는...T_T)
(후궁물어에서 깎일대로 깎인 점수를 여기서 만회하는군...)
(센도도 좀 띄워줘 바로크 T_T)
병사들 마음도 정말 이해가 갑니다. 저라도 그렇게 말했겠죠.
여기 하나미치는 정말 마구 때려주고 싶어요 --;;
정말 닭대가리만큼이나 생각없는 녀석!! 민폐야, 민폐!
(젠장, 레 샤르휘나의 추억이...-_-+)
그러나...
이러니 저러니 욕하고 있지만...
하나미치 팬으로서 하나미치가 이렇게 극중 인물들에게
욕을 먹는 건 역시... 싫습니다...;;
아무리 짜가 하나미치라고 해도 어쨌든
하나미치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한숨)
(나 정말 왜이리 줏대가 없지 T_T)
바로크... 다음에는 루카와 총수인 하나루/센루를 써보시죠.
광공 하나미치와 비열 센도에게 굴려지는 꽃수 루카와를...;;
(정말로 그런 걸 쓴다면 바로크에 대한 이 애증을
완전히 '증'으로 바꿀 수 있겠지...-_-;)


PRE번 호 : 1951 / 2053 등록일 : 2000년 12월 30일 23:53
등록자 : 에니시사랑 조 회 : 242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3권 #5
/PRE

5



카이난 침공 예정일인 이른 아침.
하나미치들을 추격하고 있는 근위사단에서의 보고에 따라,
미토 요헤이 제3왕자의 부고 통보와 사쿠라기 하나미치를
카이난으로 도주시켰다는 통지가 루카와에게도 전해졌다.
아들이 죽었다고 들었을 때도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던
루카와가, 하나미치의 행동- 요헤이가 빈사의 중상을 입은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망설임 없이 버리고 카이난으로...
그것도 아마 미쯔이를 찾아가려고 도망친 것 같다는
보고를 들은 순간, 격렬한 분노를 표출했다.
"요헤이가 의지가 안 된다고 곧장 옛날 남자로 바꿔치웠다는
말인가! 그 줏대도 없는 음란한 놈!"
노호성과 동시에 침대에서 뛰쳐나와 이 보고를 전하러 온
전령을 걷어찼다.
"남자에게 기생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초특급 멍청이!
음란한 색마 놈! 차례차례 남자를 갈아치우는 절조없는
녀석! 남자를 가지고 노는 게 그렇게 즐거운가! 엉!?
말해보란 말이다!"
한층 분노해서 전령을 걷어차댔다.
이 사실을 고하기 위해 국경에서 밤새 달려온 애국심 넘치는
병사는, 이유 없는 왕의 폭력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멍청이!"
"그만두십시오, 루카와 님! 죽겠습니다!"
전령이 기절했어도 계속 발길질을 하는 루카와에게, 측근인
쿠와타가 중간에 끼어들어 루카와를 말리려고 했다.
"어째서..."
루카와는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며 주먹을 떨었다.
"루카와 님?"
"어째서 이용할 거라면 날 이용하지 않는 거냐!"
피를 토할 듯한 비통한 목소리로 외치며, 그대로 루카와는
바닥에 쓰러졌다.
"루카와 님!?"
황급히 달려온 쿠와타는 루카와의 몸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굴이 새파래졌다.
"안돼... 누가! 누가 없느냐!!"
만일을 대비해 방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여관과 신하들이
서둘러 뛰어들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아, 폐하!"
"빨리 의사를... 전의를 데려와!"
루카와의 출혈로, 침실은 소동의 도가니였다.
다시 상처를 악화시킨 루카와에게, 쿠와타는 머리털을 난폭하게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빌어먹을! 이게 대체 몇 번째야!"
보통 사람이라면 적어도 4, 5번은 죽었을 것이다.
"...멍청...이..."
"폐하! 말씀을 하시면 안됩니다! 출혈이 심해집니다!"
"...윽."
하루코에게 찔린 상처에서 대량의 피가 철철 흘러나와,
서서히 안색이 파래졌다가 새하얘졌다.
- ...히사시에게 갔다고? 또 그 녀석을 의지하려는 거냐?
나는 내 아들에게조차도 뒤지는 건가...!
"젠장...!"
분하고 분해서... 그 이상으로 슬퍼서 루
카와는 오열했다.
지금까지는 수려한 용모와 그 지위에, 세상 여자들은
단 한 명 예외도 없이, 스스로 몸을 던져왔다.
말을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몸부림을 치며 기절하는 여자는
전혀 신기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하나미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지?
미쯔이와 요헤이는 되도, 어째서 나는 안 되는 거야!?
"...멍청이..."
루카와에게 있어서 이것은 첫사랑이었다.
그렇게까지 가혹한 처사를 하나미치에게 했으면서도, 루카와는
자신 쪽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쿠와타의 목소리가 귓전에 꽂혔다.
"정말 어쩔 수 없는 분이로군요! 쇼호쿠의 왕이라고는 해도,
몸은 무력한 인간에 지나지 않잖습니까!"
- 무력한 인간 -
쿠와타의 말은 루카와의 가슴에 깊이 박혔다.
- ...그런가. 내게는 멍청이를 곁에 둘 수 있는 힘이 없는 거다 -
지금 이대로의 나는 안된다.
세상 모든 남자가 멍청이를 원하고 있다.
세상 모든 남자가 멍청이를 노리고 있다.
세상 모든 남자는 전부 적이다...
그런 중에서, 단지 일국의 왕 정도로 뭘 할 수 있지!?
친아들에게조차, 간단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겼다.
지금의 한심한 자신...
- 힘이 필요해.
하나미치를 정말로 독점할 수 있는 힘이- 권력이 필요하다.
지금보다도 훨씬 더.
이 사태를 초래한 것이 자신의 무력함 탓이라고, 상처와
광기로 제정신이 아닌 루카와는 근거도 없으면서 그렇게 확신했다.
- 그러니까 쇼호쿠 한 나라의 왕으로는, 멍청이는 만족하지 않아.
내가 세계 제일의 남자가 되면 멍청이도 분명 기뻐하면서, 나의...
나만의 옆에 있게 될 거야. 내 힘이 아직 크지 않아서 멍청이는
내게서 도망친 거야 -
과도한 심적 피로와 수면부족. 그리고 죽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커다란 상처에 의한 빈혈-
지금의 루카와의 사고는 완전히 지리멸렬하고 두서없는 상태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 있는 당사자에게는, 그것이 현실이다.
- 전세계의 놈들이 모두 힘을 합치더라도 대적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나는 반드시 손에 넣겠다 -
그리고 두 번 다시 다른 남자가 하나미치를 손대지 못하게 하겠다.
이제 두 번 다시 다른 남자가 하나미치의 마음을 빼앗지 못하게
하겠다.
- 카이난을 멸망시키면 단번에 료난도 정복해 주겠다...! -
증오하는 연적인 아들을 죽이려는 것이 제 1목적이었던 카이난
침공이, 다른 의미로 변경되었다.
하나미치를 독점하기 위해 대륙의 패자가 되기로, 자신이 흘린
피에 얼굴을 완전히 쳐박은 상태에서, 루카와는 맹세했다.

치료를 받은 루카와는 다시 침대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게 되었다.
방금 전의 출혈로 인해 루카와의 몸에 있는 피는, 생존에 간신히
필요할 정도만 있었다. 여기서 무리해서 다시 출혈하면, 그때야말로
확실히 숨이 끊어지는 것이다.
빈혈인 루카와를 위해, 실내를 어둡게 하기 위한 커텐을 내리면서
쿠와타는 한숨을 쉬었다.
"이걸로 오늘 출병식 참가는 불가능하군요. 결석 통지를 전했습니다."
당초 예정으로는 출병식에서 루카와가 직접 병사들을 격려하기로
되어 있었다.
루카와는 이제까지의 전쟁 역사상, 군신이라는 칭호까지 가진
희대의 왕이다. 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병사들의 사기가
완전히 틀려진다.
지금까지의 전쟁 때처럼, 직접 선두에 서서 군대 지휘를 할 수
없게 된 이상, 그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몸 상태로는
정말 무리한 얘기였다.
"출병...?"
극도의 빈혈로 그때까지 의식이 몽롱했던 루카와는, 쿠와타의
말에 처음으로 반응했다.
"...안 된다. 멍청이가 카이난의... 그것도 히사시에게 갔는데
그 나라는 침략할 수 없다."
"예?"
"만에 하나, 미쯔이와 함께 멍청이까지 카이난 놈들에게 죽는다면
큰일이다. 멍청이의 신변을 확보할 때까지 출병은 연기한다."
"무슨...! 출병은 오늘입니다! 막대한 국비를 지출해서 오늘에
맞춰서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병사들에게 뭐라고
말하라는 겁니까! 이번 카이난 출병은 건국 때부터 적국인 카이난을
멸망시키고 영토를 늘리고 나라를 보다 부강하게 하려는 것이
대의명분입니다! 그런 개인적이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출병을 멈추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멈춘다."
"무리입니다!"
"-이 나라는 누구의 것이냐."
나직하고 두려운 루카와의 목소리.
"루카와 님..."
"내 명령에 조금이라도 불복하는 놈은 전부 베어버리겠다.
내 나라에는, 나의 명령을 충실하게 지키고 실행하는 놈만
있으면 된다."
명령하는 데에 익숙한 절대군주는, 그 말로 모든 반론을 봉쇄했다.
쿠와타는 아직도 납득할 수 없었지만, 그것을 겉으로 나타내서
왕의 기분을 거스를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그럼 사쿠라기 님의 신변을 확보할 때까지 출병은
연기하겠습니다."
예를 표한 쿠와타는, 신하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위해 몸을 돌렸지만,
출입구에서 퍼뜩 멈춰섰다.
뒤돌아보며 화를 내듯이 물었다.
"-어떻게 사쿠라기 님을 데려오실 생각이십니까?"
"내가 데리러 간다."
"!"
지금까지 오랫동안 루카와의 몸에 대한 염려를, 그야말로 머리가
벗겨질 정도로 하고 있던 쿠와타는, 그 발언에는 참을 수 없어졌다.
저절로 목소리도 날카로워졌다.
"죽고 싶으시다면 멋대로 하시죠. 아니면 그 상처가 완치되시고
나서 카이난으로 손수 마중나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러시다면 일단
모인 병사들을 해산시켜 주십시오. 작년에는 불황이었는데, 귀중한
식량을 이런 곳에 쓸데없이 낭비할 수는 없습니다."
십만 명의 병사를 먹이려면, 한 달에 900만 명분의 식량이 필요하다.
유복한 쇼호쿠라고 해도, 쓸데없는 지출을 피하는 것은 왕의 의무였다.
"완치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가."
1분 1초라도 빨리 하나미치를 되찾아서, 다른 남자에게서 격리시켜야
하는데.
"그러면 어쩔 생각이십니까? 폐하는 움직이실 수 없고, 카이난 측에
직접 사쿠라기 님을 넘겨달라고 부탁하더라도, 분명 미쯔이 전하에게
저지될 겁니다. 그 이전에 사쿠라기 님이 카이난으로 간 사실로, 이번
출병 계획이 미쯔이 전하에게 새어나갔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습니다."
루카와의 얼굴이 분하다는 듯이 뒤틀렸다. 거기에 힘입어 쿠와타는
다그치듯이 계속했다.
"머리가 좋은 왕자님입니다. 자기자신에게 칼을 들이대는 격이 되는,
이 카이난 출병계획을 카이난 측에 알리지는 않겠지만, 사쿠라기 님을
역으로 자신에 대한 인질로 할 겁니다. 미쯔이 왕자님은 폐하의
세 아드님 중에서도 특히 지략이 풍부하신 분. 천재적인 그 왕자가
어떤 수를 쓸지 저 같은 보통 사람은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사쿠라기 님이 카이
난으로 입국해버린 것은 커다란 타격이었군요."
"그런 건 네가 지금 와서 말 안해도 알고 있다!"
날카롭게 질책당한 쿠와타는 입을 다물고 머리를 조아렸다.
쿠와타라도 예측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은, 사랑에 미친
지금의 루카와라도 확실히 알고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새삼스럽게 입밖으로 내서 말하면, 분노와 조바심만 늘어난다.
-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멍청이의 목숨을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손에 넣을
수 있을까?
게다가 세상에서 제일 증오하는 그 아들을, 굴욕과 절망 속에서
무참히 죽이려면 어떻게 해야-?
어떤 의미로 사방팔방이 꽉 막힌 현재 상황에서, 루카와는
피가 나올 정도로 세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때,
"-아버님. 제가 사쿠라기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갑자기 말을 거는 목소리에 놀라서 루카와는 얼굴을 들었다.
"...아키라."
거기에는, 새어머니 피오네가 암살당한 이래 방에 틀어박혀
있었던 제 2왕자 센도 아키라가 이전보다 훨씬 까칠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일단 인사를 드리려고 입실했습니다만, 몰두하고 계시느라
제가 온 걸 모르셨나 보군요."
"네가 멍청이를 데리고 돌아오겠다니, 어떻게 말이냐."
"제가 형을 설득하겠습니다. '아버님은 카이난 침공을 그만두셨다'
라고요. 애초부터 인척관계를 맺어서 평화가 성립된 지금,
카이
난을 공격해도 우리 나라에 전혀 잇점은 없습니다. 그것을
그 형도 모를 리가 없지요."
"녀석이 간단하게 믿을 것 같으냐."
"괜찮습니다. 제 말이라면 형은 믿을 겁니다. ...그 사람은
한 번 마음에 들어한 사람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후해지니까요."
센도는 그렇게 말하고 엷은 미소를 띠었다.
"그러니까 저를 혼례 축하 사절로서 카이난에 보내 주십시오."
"...멍청이를 한 번 손에 넣은 남자가 다시 놔줄 리가 없다.
게다가 멍청이도 그 자식을..."
전부 말할 수 없어서, 괴로운 표정으로 말을 도중에 끊었다.
"맡겨 주십시오. 제국의 후계자인 유일한 황녀와 결혼한
형에게 측실의 존재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모든
일은 풀릴 겁니다."
"......"
루카와는 탐색하듯이 센도를 바라보았다.
"나는 너를 믿어도 되는 건가."
"물론입니다."
"원하는 게 뭐냐."
"원하는 것이라니, 존경하는 아버님의 도움이 된다면 고맙죠...
그렇게 말씀하시다니 신용해 주시지 않는군요."
"시시한 말 지껄이지 말고 본심을 말해."
센도는 마지못해 웃었다.
"-아버님께는 당할 수 없군요. ...그럼 하나만 부탁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뭐냐."
"사쿠라기를 쇼호쿠에 데리고 돌아오는 대로, 아버님의
측실이었던 아야코 상을 저의 측실로 맞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거기에 크게 놀란 것은 뒤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쿠와타였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왕태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러나 루카와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확실히 말해서
하나미치가 관계한 이외의 인간에게 관심이 없는 것이다.
"형을 낳은 분입니다. 연령차도 있고 비상식적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아야코 상 이외의 여성은 아무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저는 그 아름다운 분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센도의 열정적인 어조는 거짓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루카와에게 있어서 아야코는 어떻게 되어도 좋은 존재다.
구태여 그녀에 대한 감상을 말하자면 '증오스러운 아이를
낳은 최악의 암캐' 그뿐.
그렇지 않아도, 여자 한 명으로 하나미치를 되찾을 수
있다면 자기 새어머니와의 결혼이라도 허락해줄 것이다.
- 그러나 루카와에게는, 모든 남자를 경계하고 있는, 단 하나
커다란 이유가 있었다.
이미 아들 둘이 그렇게 된 지금, 마지막 아들이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어쨌든 이 녀석도 직접 하나미치를 보고 말도 걸었다. 그것을
확인하지 않고 하나미치에게 보낼 수는 없다.
"아버님?"
"너는 멍청이에게 빠지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느냐?"
"제가 사쿠라기를!?
설마요!"
센도는 정말 놀랐다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버님이 알고 계신 대로 저는 천성적으로 여자를 좋아합니다.
여자라면 나이나 얼굴에 관계없이 모두 좋아합니다만, 남자라니
말도 안 됩니다."
확실히 지금까지의 센도는, 수많은 여자하고만 바람을 피워왔다.
함락시킨 여자만 해도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고 소문난 호색적인
왕자지만, 동성과는 단 한 번의 소문이 난 적도 없었다.
- 그런 것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어 -
센도가 여자를 좋아한다고 해서, 하나미치를 맡겨도 안심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분명히 말해서 관계없다.
자신도 하나미치를 만나기 전까지는, 남자 따위에게 관심없었다.
지금도 하나미치 이외의 남자는 만지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루카와는 시선을 떨어트리고 한참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움직일 수 없는 이상, 센도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센도를 완전히 신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지못해서... 정말로
마지못해서 루카와는 결단을 내렸다.
찌릿하며, 남은 최후의 아들을 협박하듯이 노려보았다.
"...어차피 내친 측실이다. 그런 여자 원한다면 지금 곧장 주마.
-확실하게 하나미치를 데리고 돌아와라."
"현명한 결단이셨습니다, 아버님."
센도는 그렇게 말하고, 기쁜 듯이 미소지었다.

아버지의 전 측실이자 형의 친새어머니를, 왕태자가 새로이 측실로
맞아들인다는 소문은 그날 내로 퍼졌다.
원래 여자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는 센도였지만, 뭐라고 해도
이번에는 주위도 놀랐다.
그 중에서도 제일 놀란 것은 물론 당사자인 그녀였다.
"-내가 왕태자 전하의 열 번째 측실? 정말 농담도 정도가 있지."
그날 밤 아야코는 금염궁의 방에서 센도를 맞이했다.
루카와 국왕의 분노를 사서 한 번 쫓겨났던 금염궁의 후궁으로,
이번에는 왕태자의 측실로서 되돌아온 것이다.
새로이 왕족의 측실로 맞아들여진 여성으로서 처음 보내는 밤-
우스운 얘기지만 '초야'라고 하는 밤.
시녀들은 아야코를 씻기고, 센도가 좋아하는 료난 제의 하얗고
얇은 잠옷을 억지로 입힌 뒤, 달콤한 향기가 나는 향수를 뿌려주었다.
"야아, 아야코 상. 오늘밤은 한층 더 아름답네요."
싱긋 웃으며 말하는 센도를, 아야코는 이마에 힘줄을 돋으며
노려보았다.
"너 도대체 어쩔 셈이지!?"
"어쩔 셈이냐니... 이런 결과죠."
"이런 결과가 뭐냐고!"
"아야코 상을 아버님에게 부탁해서, 내 측실로 달라고 했어요."
"다... 달라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 의지를
무시하고 멋대로 이런 일을 하지 마!"
센도는 이번에는, 웬지 모르게 깔보는 듯한 표정으로 쿡쿡 웃었다.
"-아야코 상의 의지 같은 건 관계없잖아요."
"하아!?"
"원래는 아버지에게, 유곽에서 팔려온 거잖아요? 소유권은
아버지에게 있었지요. 그 아버지가 내게 당신을 양보한다고 했으니까
아야코 상은 이제 내 것이 아닙니까. 당신은 말이죠, 자기자신조차도
자유롭지 못한 불쌍한 신세예요."
"아키라 상..."
평소와 다른 센도에게, 아야코는 무의식적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나... 나는 히사시의- 네 형의 새어머니야."
"그래요. 그러니까 나와는 혈연관계가 없으니까, 당신을 안아도
금기는 아니겠지요."
"!!"
센도는 갑자기 아야코의 입술을 키스로 막았다.
아연해진 아야코는 갑작스런 일에 저항도 잊고 눈을 깜박거렸다.
입을 막은 채로, 센도는 아야코의 등에 팔을 둘렀다. 몸의 선을
음미하듯이 수상쩍게 꿈틀거리기 시작한 손의 감촉에, 겨우 그녀는
제정신을 되찾았다.
"음... 우... 읍읍!"
퍽퍽 가슴을 쳐서 겨우 아야코는 입술을 떼어냈다.
"뭐... 뭐하는 거야!"
"저항하는 모습도 요염하군요."
"바보!"
"...헤에.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역시 형의 모친이로군요. 얼굴이
닮았어요. -웬지 형을 덮치고 있는 것 같아서 좋군요. 흥분되네요."
억센 가슴에 다시 안겨, 쉰 목소리로 속삭이는 소리를 들은 아야코는,
갑자기 무표정이 되어서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정말로 날 안을 생각이니?"
"무서운가요?"
"무서워...? 하. 너 누구에게 말하는 거야? 유녀의 정점에 있었던
경성 아야코를 얕보지 마."
갑자기 아야코는 센도를 밀어내고 곧장 옷을 벗기 시작했다.
"아야코 상...?"
18세가 된 아이가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나체를
숨기지도 않고, 옷을 전부 벗은 아야코는 센도의 앞에 정면으로
섰다.
"너도 아까 말했듯이 나는 내 몸으로 여기까지 출세한 유곽의
경성이야. 어떤 불쾌한 손님이라도 거부한 적은 없어. 역으로
말하자면 돈을 지불해도 내키지 않는, 작고 예쁜 왕자님과 자서
지금까지 누렸던 호화로운 생활을 보증받을 수 있다면 괜찮은
거래지. 자, 좋을 대로 해."
여자를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결국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귀족 여자들만 상대해 왔던 센도였다. 울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지만, 아야코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생활을 위해서라면 안겨도 괜찮다고요?"
"그래. 나는 말야, 히사시를 임신하고 루카와 폐하에게 낙적되기
전까지는, 키는 나보다 더 작고 몸은 아키라 상의 세 배나 뚱뚱한,
가학취미가 있는 대머리 노인네의 열세 번째 첩이 되려고 했었어."
"...그건 참 대단하군요."
"그는 돈만은 많았으니까. 부자를 농락하는 게 유곽에서는
제일
가치있는 일이야. 뭐, 온실에서 자란 왕자님에게는 미지의 세계지."
센도는 가만히 아야코를 바라보았다.
"혹시 아야코 상은 지금까지 한 번도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나요...?"
"히사시를 사랑하지. 그리고 물론 너도. 내가 키운 소중한 아이니까.
...아니, 그/랬/었/다고 말해야 하는 건가."
갑자기 엄한 표정을 지으며 똑바로 센도의 눈을 노려보았다.
"-나를 안으면 너는 나의 '아들'이 아니게 돼. 너는 너를 아무런
이득감정도 없이 사랑해주는 사람을 한 사람 잃는 거야. 나는
아무 것도 잃지 않지만 아키라 상은 불쌍한 사람이 되어버려."
"...웃."
그녀의 발언은 센도의 가슴에 비수처럼 꽃혔다.
아야코는 자신이 안고 있던 딜레마를 전부 간파하고 있었다.
크게 숨을 들이쉰 센도는, 한참 후 천천히 숨을 토해냈다.
"-역시 당신은 닮았어요. 아름다운 얼굴로 제일 아픈 곳을
용서없이 찔러대는군요. 비겁하고 교활한 형을. 정말 무서울
정도로 똑같아요."
"친아들이니까."
"......"
"-나가라. 오늘밤은 네 방으로 돌아가서, 내 일을 포함해서
네게 있어서 최선의 방법이 뭔지, 혼자서 잘 생각해 봐."
"...아야코 상."
센도는 눈빛을 흐리며- 뭔가를 떨쳐버리듯이 눈을 꼭 감고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전의 부드러운 분위기는 그 표정
속에, 한 조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아야코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서 조금 전보다도 난폭하게 가슴
속으로 끌어안았다.
"아키라 상!?"
"...유감이군요, 아야코 상. 하지만 나는 이미 결정했어요."
"에...?"
"이걸로 당신은 내게는 필요없는 사람이 될 거예요."
쉰 목소리와 동시에 센도는 그녀의 입술을 다시 막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센도가, 아야코의 방에서 나와 자신의 방으로
돌아오자, 후쿠다가 방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방에서 함께 식사를 한 센도는, 그 자리에서 카이난 행의 동반자로
그가 뽑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흐응. 후쿠다도 나와 함께 카이난에 가주는 거구나."
"국왕폐하가 직접 내린 명령이니까. 오늘중으로 널 데리고
쇼호쿠를 출발하라는 명령이다."
"오늘중...?"
싫다는 표정을 지으며 센도는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래, 오늘중."
"...이거 참, 급하긴 급하신가 보군. 일국의 왕태자가 단신으로
타국의 왕가를 방문하는 건데... 겉보기는 어쨌든 축하 사절이니까
선물 같은 것도 준비해둬야 하잖아. 그렇게 빨리 출발할 수 있겠어?"
"거기에 대해서는 어젯밤 동안 폐하가 전부 준비를 마치셨다."
"이런. 그렇게 빨리 사쿠라기를 데려오고 싶으신 건가... 그렇군."
센도는 씁쓸하게 미소지으며 잔에 반쯤 남은 포도주를 비웠다.
시종을 물리치고, 스스로 두 잔째의 포도주를 잔에 부었다.
식사를 끝낸 후쿠다가, 입가를 닦으면서 불쑥 말했다.
"그 정도만 마셔. 아침부터 취하면 품위를 의심받는다."
대답으로 날아오는 흥 하는 코웃음. 센도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이전의 형제들을 제외하면 젖형제인 그의 앞에서만이었다. 지금의
센도가 유일하게 신뢰하고 있는 존재가 후쿠다였다.
"정말이지 이런 흠집투성이 왕태자가 세간에서는 인격자로서
통하다니. 소문이란 건 믿을 게 못된다니까."
"미안하게 됐군. 어차피 나는 근본이 어둡고 음험하고 근성이
비뚤어진 흠집뿐인 인간입니다. 형에게는 뭐 하나 당해내지 못하고."
"또 너는 미쯔이 전하를 끌어들이는구나."
후쿠다는 지겹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여기에 오는 동안 이상한 소문을 들었어."
"소문?"
"국왕폐하의 측실이셨던, 미쯔이 왕자의 새어머니인 미쯔이 아야코 님이
너의 열 번째 측실이 되었다고... 어떻게 된 거냐."
"흐응. 역시 소문이 퍼진 건가."
"정말이냐..."
"그래."
망설임없이 대답하는 센도에게, 후쿠다는 한숨을 쉬었다.
"...그런가."
"지조없다고 나무라는 거야?"
"아니, 솔직히 말해서 안심했어."
"안심? 어째서?"
"사쿠라기 하나미치에 비하면 그녀 쪽이 훨씬 문제가 적으니까."
"...아아. 그런 의미였나."
두 잔째의 포도주도 한 번에 비워버린 센도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이상의 새어머니인 아야코 상과, 이상의 연인인 사쿠라기를
둘 다 손에 넣으려고 했지만 틀렸어. 이대로라면 둘 다 잃을 것
같았으니까. 하나를 버리고 한
쪽에 집중하기로 한 거야."
"그래서 그녀를 택한 건가. 현명한 선택이었어."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후쿠다에게, 센도는 쿡쿡 웃었다.
"'새어머니'와 잘 수는 없지."
"센도?"
후쿠다는 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말했지? 한 명을 버렸다고."
"...?"
"-어젯밤 아야코 상을 안았어. 이제 두 번 다시 그녀는 나의
'새어머니'가 될 수 없어. 나는 말이야, 후쿠다, 그녀를 안음으로써
아야코 상을 버린 거야."
센도의 고백을 겨우 깨달은 후쿠다는 꿀꺽 침을 삼켰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너는- 네가 택한 것은-"
- 사쿠라기 하나미치?
"이제 원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뿐이야."
센도는 후련한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친구와 헤어지고 혼자가 된 하나미치는, 요헤이가 말했던
포장도로에 다음날 무사히 도착했다.
카이난의 수도 난화를 향하여 남쪽으로 계속 걸어간지 약 2일.
도합 사흘간, 정신적으로 완전히 넉다운되었다.
- 아-. 오늘 꿈은 특히나 최악이었어 -
이번 꿈은, 그 루카와가 울면서 자신을 뒤쫓아와서 정말로
무서웠다.
어제의 꿈은 루카와가 머리 위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전 꿈은 조금 나았다. 루카와를 위해 계속 밤껍질을 까주는
꿈이었다.
금염궁을 나온 그날부터, 루카와의 꿈을 꾸게 되었지만, 요헤이와
헤어지고 혼자가 된 순간, 점점 그것이 현저해져 갔다.
매일 밤 매일 밤 루카와의 꿈만 꿔서 정말 수면부족이었다.
게다가 깨어나 있어도, 문득 생각이 나면 루카와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자신에게, 정말로 당혹스러워하고 있었다.
금염궁에 막 감금되었을 무렵에는, 루카와에 대해서는 조금만 생각하고,
미쯔이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역전되었다.
루카와의 얼굴이 항상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결국 이런 식으로 루카와에 관계된 일로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앗! 젠장!"
갑자기 외치면서 도로에 깔린 벽돌을 팍팍 밟고 머리털을 쥐어뜯었다.
"여우의 저주인가, 빌어먹을! 나는 지지 않아!
절대 루카와의 저주
따위에 굴하지 않을 거야! 분명 밋찌를 만나기만 하면 이런 증상도
없어질 거야! 어쨌든 지금은 밋찌다!"
정신을 분산시키자는 의미도 겸해서, 기세좋게 도로를 달려가는
하나미치였다.

이런 식으로 하나미치는, 카이난의 수도 난화까지, 보통 10일 걸리는
거리를 약 5일만에 돌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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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도,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넌 역시 여기선 어쩔 수 없는 악당이야...T_T
다른 작품에선 부디 멋지게 나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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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코언니 대신 제가 퍼옵니다....

-대만군-
PRE번 호 : 1952 / 2053 등록일 : 2000년 12월 30일 23:56
등록자 : 에니시사랑 조 회 : 186 건
제 목 : [퍼옴/연재] 傾國美姬 3권 #6
/PRE

6


-바다와 태양의 나라 카이난.
살며시 다가오는 위기를 아직도 눈치채지 못하고, 대륙 동쪽에
위치한 제국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매일 공물이 늘어가는군."
미쯔이의 방에 입실한 마키 황제는, 넓은 방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눈부시고 화려한 보석들을 보고, 반은 감탄, 반은
멍한 듯한 어조로 말했다.
황금, 순은,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진주,
자수정, 토파즈, 라피스라즐리, 비취, 상아... 세계에 존재하는
온갖 아름다운 보석들이 미쯔이를 위해, 카이난의 가신들에 의해
헌상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건간에 돈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축하연 자리에서
미쯔이는 좋아하는 것이 보석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아니, 아버님 아니십니까."
무릎을 굽힌 미쯔이는,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인사를 한 뒤,
꽃과도 같은- 그야말로 형용할 수 없는, 완벽한 최고의 미소를
지었다.
"황제께서 직접 내방해 주시다니 황공하옵니다. 직접 불러주신다면,
어디에 계시든 이 미쯔이, 직접 경애하는 아버님이 계신 곳으로
달려갔을 것을."
"아니, 부를 정도의 일은 아니네. 또 한 번 승부를 겨룰까 했는데.
사위에게 비긴 채라면 아버지로서의 면목이 서질 않잖나."
"또 농담을 하시는군요. 제가 겨우 아버님과 호각으로 겨룰 수
있는 것은 활뿐입니다. 다른 것은 발끝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정말로 무척 겸허한 부마로구나. 이 정도의 왕자를 타국에
주다니, 쇼호쿠의 루카와 왕도 성급했어. 아니면 쇼호쿠는 미쯔이
왕자를 내줘도 분하지 않을 정도로, 인재가 많은 건가. 쇼호쿠의
세 왕자라고 하면 우리 나라에서도 유명하지. 세 왕자의 명성을
들을 때마다, 루카와 왕을 부럽다고 생각했었다."
"분명 저의 동생들은 타인이 보더라도 우수한 부류에 들어가는
인재들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절 따라잡으려면 멀었습니다."
빙긋 웃으며 악의없이 말한 미쯔이에게, 마키는 소리높여 웃었다.
"우리 나라의 부마는 겸허하게 보여도 사실은 대단한 자신가였군!"
"이 정도쯤 되지 않으면 왕가의 장남은 못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저는 최고위의 신분을 가진 아버지와, 최하위의 신분을 가진 새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묘한 입장의 제 1왕자니까요. 왕태자인 동생을
제쳐놓고 엉뚱하게 저 혼자 눈에 띌 수는 없고 해서, 동생들과
발란스를 맞추는 것이, 지금까지 대단히 힘들었습니다. 정직하게
말해서, 카이난에 와서 처음으로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 5년 그 나라에 있었다면, 분명 괴로워서 대머리가 되었을
겁니다."
"아름다운 부마가 대머리라니 상상도 할 수 없군."
마키와 미쯔이, 그리고 주위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문관, 여관들도
함께 웃었다.
미쯔이에게 있어서, 화술로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 바보. 내가 대머리가 될 날은 태양이 서쪽에서 떠도 안 올 거요 -
미쯔이는 마음 속에서 혀를 낼름거렸다.
카이난에 와서 1개월 남짓.
미쯔이는 완벽한 거짓말로, 양의 탈을 써서 인망을 얻고 있었다.
한바탕 웃은 뒤, 다시 마키가 미쯔이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럼, 오늘 오후는 나를 위해 시간을 내줄 수 있는가?"
"예. 기꺼이."
미쯔이의 주변에 있던 초로의 남성이 그것을 듣고 부정을 표했다.
"안됩니다, 황제폐하. 미쯔이 전하는 내년 봄에 착공예정인
예술관 설계로, 오늘 오후는 저희들을 지도해 주실 예정입니다."
"그런가... 그럼 그 뒤에-"
"그 뒤에는 양강(揚江) 도시 건설계획에 대해 설명해 주실
예정입니다."
"그럼 그 다음에."
"그 다음에는 혼례 의상 반가봉이-"
"안돼요! 히사시 님은 기누카와 함께 멀리 놀러갈 거예요!
그렇죠, 히사시 님?"
"기... 기누카 히메."
언제 이 방에 들어왔는지, 어른들을 밀치고 나타난 카이난의
외동 공주는 미쯔이의 팔에 매달렸다.
"멀리... 놀러간다고요? 언제 그런 약속을 했지요?"
"지금 기누카가 정했어요!"
이때 미쯔이의 얼굴에, 살짝 불쾌한 표정이 지나간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마키는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정말 대단한 인기로군."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모두 친절하게 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것은 왕자의 인망이 두터운 덕이다."
"히사시 님! 히사시 님! 빨리 가요!"
"하지만..."
곤란한 듯이 마키를 보자, 그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남자들도 마지못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가게. 기누카를 부탁한다."
황제가 편애하고, 신하들에게도 사랑받고 있는 기누카다. 그녀가
미쯔이 쟁탈전에 끼어든 시점에서, 그의 오후는 그녀와 보내는
것으로 결정이 난 것과 같았다.
"...그럼 다른 분들과는 후일을 기약하며-"
"앙! 빨리빨리!"
"히...히메! 그렇게 세게 잡아당기면 소매가 뜯어집니다."
"뜯어지면 갈아입으면 되죠!"
"-히메도 곤란한 사람이로군요."
미쯔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으며 일어서서, 마키 황제를
향해 우아하게 인사를 한 뒤, 황녀와 함께 걸어나갔다.
미쯔이의 표정은 생글거리고 있었고, 기누카를 바라보는 시선도
부드러웠다- 겉보기에는.
하지만 내심은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 쳇. 또 이 시끄러운 꼬맹이의 유모 역이군. 안 그래도 나도 바쁜데
이 계집애가 달
라붙으니까 황제를 뇌쇄시킬 틈도 없잖아. 아버지와
약혼자를 마구 눌러대고, 자기가 필요한 것만 억지로 밀고 나가다니,
아내감으로 실격이야 -
시종 달라붙는 기누카 때문에, 미모로 카이난을 정복할 계획(...)은
대폭 늦어지고 있었다.
- 정말 저 황제도 이상한 남자야. 아무리 둘만이서 천천히 만날 틈이
없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내가 색기를 발산했는데, 조금은 얼굴 정도
빨개지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아무리 과거에 열병 탓으로 '그것'이
불능이 되었다고 해도, 나보다도 딸에게 쪽을 못 쓰잖아. 정말 변태
아냐? 얼굴은 내 취향의 노숙한 얼굴이지만, 역시 남자는 '그것'을
쓸 수 없게 되면 끝장이야 -
"저기요, 히사시 님! 오늘은 남쪽 숲까지 가봐요! 시녀에게 도시락
싸달라고 했어요!"
빠직하고 이마에 파란 심줄이 솟아올랐다.
- 도시락? 난 차가운 음식은 안 먹는다고 했잖아! 이 돌대가리야!
아아, 이렇게 되고 보니 사쿠라기는 좋은 측실이었어. 아무 사심없이
밝으면서도 물러설 때를 잘 알고, 나를 섬길 줄도 알았고. 정말로
그런 좋은 비는 여자 중에서는 없어 -
"...히사시 님?"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던 미쯔이를 겨우 알아챈 기누카는, 이상하다는
듯이 이름을 뷸러왔다.
미쯔이는 순식간에 미소를 만들어 보였다.
"아아... 그거 재미있겠군요."
기누카의 얼
굴이 확 밝아졌다.
"그래요! 기누카는요, 히사시 님과 함께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해요!
히사시 님도 기누카와 있으면 행복해요?"
"당연하지요. 나의 귀여운 히메."
상쾌하고 부드럽고 황홀한 미쯔이의 미소.
그러나 내심은-
- 우웩! -
미쯔이는, 아이는- 특히 소녀는 정말 싫어했다. 원래 제멋대로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역으로 자신에게 제멋대로
구는 것은, 일부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참아내지 않았다.

-그 무렵의 하나미치는.
난화에 무사히 도착한 하나미치는, 궁전이 보이는 가도 옆의
들판에 주저앉아서 낙담해 있었다.
어제부터 용감하게 문지기에게 도전한 것이 십수 번. 모두
입구에서 내쫓겨, 미쯔이와 만나기는 커녕 궁전 내에 발도
들여놓을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우우- 이 천재가 이런 중대하고 치명적인 실수를 하다니."
요헤이가 준비해 준 소중한 통행증서. 거기에는 카이난의
왕궁에도 들어갈 수 있는 정식 소개장도 첨부되어 있었다.
미쯔이를 만날 수단으로서, 하나미치는 거기에 의지해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러나-
"도대체 어디다 떨어트린 거야!"
사실은, 요헤이와 헤어진 직후 국경 부근에서, 일찌기
분실되었다. 쇼호쿠의 병사가 그것을 주워서, 그 증서의
존재로 하나미치가 미쯔이에게 향했다는 것이 확증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는 하나미치는, 어제는 하루 종일 주변의
가도 근처를 찾아다녀서 피로가 쌓여 있었다.
"우-"
하나미치는 머리를 감싸고, 이미 몇 번째인지도 모를 신음을
내뱉었다.
"루카와의 계획을 한시라도 빨리 밋찌에게 전해야 하는데,
어쩌면 좋지..."
고민해도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타개책은 없나 기대하며 끙끙 계속 고민했다.
"차라리 궁전에 불
이라도 지르면 밋찌도 밖으로 나오겠지...
아니, 안돼. 만에 하나 밋찌에게 상처라도 입히면 그거야말로
큰일이야..."
하아... 하고 한숨, 한숨, 한숨.
미쯔이가 살고 있는 앙리궁(昻李宮)이 보이는데도, 이대로
자신은 영원히 그와는 만날 수 없는 것인가.
- 그러고 보니 쇼호쿠에 있을 때도, 밋찌를 만나기 전까지는,
왕자님이란 구름 위의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지 -
직접 만나는 것도 고사하고 먼 발치에서 보는 것조차 드문 존재.
본래대로라면 아주 멀리에서 모습을 보이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세를 불렀어야 했다.
마을에 있을 때는, 왕족이란 것은 구름 위의 사람은 커녕
상상 속의 생물이었다.
그런 사람을, 아무 후원도 없이 단신으로 만나러 가다니,
만나게 해주는 쪽이 이상한 것이다.
하나미치는 너무 괴로워서 두통까지 났다.
"밋찌... 나 여기까지 겨우 왔어..."
멍하니 중얼거리며 무릎에 얼굴을 묻었을 때, 궁전 쪽이
갑자기 시끄러워지더니, 잠시 후 정문이 열렸다.
"응?"
열린 대문에서는, 정렬한 많은 근위병들이 계속해서 나타났다.
무슨 일이 일어나나 하면서 얼굴을 들고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 하나미치의 앞을, 그들은 줄을 지어 전진하기 시작했다.
빨간 갑옷을 입고 창을 든, 약 50명의 병사가 지나간 후,
금빛 갑옷을 입은 화려한
병사들에게 둘러쌓인 은백색의 커다란
마차가 지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다시 선두와 똑같이, 빨간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뒤따랐다.
- ...번쩍이는 갑옷은 역시 멋있어. 나도 전에는 저렇게 입은
기사를 동경했었지...-
그런데 지금의 자신은 무엇인가.
미쯔이의 측실이 된 건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때에
갑자기 생각이 난다. 미쯔이도 만나지 못하고 유곽에서도 팔리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생활을 보내고 있었을까 하고. -그리고,
- 제일 처음으로 루카와를 만났다면, 우리들 좀 더 잘해나가지
않았을까... 처음 만났을 때처럼, 지금도 둘이서 즐겁게-
거기까지 생각하자 하나미치는 핫 하고 새빨개졌다.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찰싹 양 뺨을 쳤다.
"이잇. 만약 되돌릴 수 있다면 루카와와 일생 만나지 않도록
비는 게 당연하잖아. 루카와만 방해하지 않았다면 나는 평화롭고
행복했을 거야."
...그래. 행복.
- 밋찌의 백염궁에서 매일 밋찌의 시중만을 들고, 가끔 요헤이와
센도와 놀고, 아야코 상과 하루코 상도 만나러 와주고...그리고...
어쨌든 나는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쌓여서 분명 지금도
행복했을 텐데 -
모두 행복하고 한 사람도 불행하지 않을 텐데.
"...응? ... 한 사람도?"
- 잠깐. 나만을 좋아한 루카와는 나와 만나지 않는 쪽이 행복했을까?
행복이라는 말의 의미도 모르는 것 같은, 외로운 놈이었지 -
"앗."
다시 하나미치는 제정신을 되찾아 찰싹찰싹찰싹 하고 이번에는
세 번 뺨을 쳤다.
"밋찌의 일만 집중해야 하는데 어째서 그런 제멋대로 구는 자식의
일만 생각하고 있는 거야! 빌어먹을!"
금염궁을 탈출한 이후, 긴장을 풀면 루카와의 일까지 생각해 버리는
자신. 정말 어떻게든 해야 한다.
"루카와가 날... 좋아한다는 거, 그런 건 알고 있지만, 나는 밋찌를
좋아해."
자신에게 말하듯이 중얼거리고, 하나미치는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이런 곳에서 머뭇거리다간 쓸데없는 일만 생각하겠어. 어쨌든
다시 부딪쳐 보자구!"
아직 기병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궁전의 입구를 향해서, 하나미치는
득달같이 돌진했다.
...그 장면을 요헤이가 보았다면, 무모하기 그지없다고 말하며
머리를 쥐어뜯었을 것이다.

하나미치는 정문에 도착하기 전에,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막 나온 기마에게 즉각 제지당했다.
"꼬마야! 우리들이 마키 기누카 전하와 미쯔이 히사시 전하의
행렬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거냐!"
- !? -
입을 쩍 벌렸다.
"꼬마?"
"-미쯔이라니... 밋찌의!?"
잠시 후에 놀라서 외친 하나미치의 말에, 그것과는 다른 의미로
병사들은 놀랐다.
"미...미쯔이 전하를 밋찌라고!?"
"무슨 무례한!"
"불경죄다!"
겨우 2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서, 미쯔이를 사모하고 있는 젊은
병사들은 순식간에 하나미치에 대한 적의를 드러냈다.
그러나 하나미치는 그런 일을 헤아리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앗! 설마 지금 방금 지나간 화려한 마차에 밋찌가!?"
기사들에게 보호받으면서 방금 전에 지나갔던 마차를 생각해내고,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밋찌!"
은백색의 마차는, 괴롭게도 시야에서 아득히 멀어져 있었다.
"우웃! 여기까지 와서 그냥 지나치다니!"
마차를 뒤쫓기 위해 달려가려고 했지만, 병사들에게 가로막혔다.
"놔! 밋찌가 가버린단 말야! 빨리 밋찌를 쫓아가지 않으면... 밋찌!"
"그 천박한 호칭 멈추지 못하겠나!"
퍽 하고 검자루로 머리를 맞아, 그 충격으로 쓰러졌다.
"...웃."
병사가 봐주지 않고 때려서 뺨이 찢어졌고, 따뜻한 피가 뺨을 적셨다.
"밋찌..."
하나미치는 미쯔이가 탄 마차가 멀어져가는 것을, 쓰러진 그대로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마차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 눈물이 펑펑 흘렀다.
"밋찌..."
겨우 잡은 기회를 놓친 것을 깨닫고, 단번에 힘이 빠졌다.
- ...어째서 가버린 거야. 나 밋찌를 만나려고 루카와에게서
도망쳐서 여기까지 열심히 왔는데... -
계속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않고 펑펑 눈물을 흘리고 있자,
난폭하게 팔을 붙잡혔다.
"와라! 미쯔이 전하에 대한 모욕 외 다수. 극형을 면할 거라고
생각지 마라!"
하나미치는 이렇게 해서, 궁전의 지하감옥에 감금되었다.

그렇게 된 줄은 생각도 못하는 미쯔이는, 사두마차 안에서
기누카의 쓰잘데 없는 얘기를 계속 들어주고 있었다.
"이제부터 가는 곳은 사슴 씨가 사는 숲이예요. 너무너무 귀여운
사슴 씨예요. 오늘에야말로 잡아서 빨간 리본을 머리에 매줄 거예요."
"그렇습니까? 그렇게 하면 분명 지금 이상으로 귀여운 사슴 씨가
되겠군요. 황녀는 상냥한 분이로군요."
"우후후."
- 우후후 좋아하네! 쳇, 이제 곧 11세가 된다면서, 이녀석의 머리는
어떻게 되어먹은 거야! 사슴에게 '씨' 따위 붙이지 마! -
머릿속은 활화산. 분화하려는 것을 꾹꾹 눌러참으며 화제를 바꾸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단순히 야외로 놀러가는 건데 경호가 엄청나군요.
전부 1500명은 되지 않습니까."
쇼호쿠에 있을 때는 항상, 필요최저한의 무리들밖에 거느리지 않았다.
분명히 말해서 자유가 제한되는 이런 대규모의 경호는 공적인 자리
이외에서는 사양하고 싶다.
"엄청나요? 기누카와 히사시 님의 신분으로 이 정도는 부끄럽지요."
"하아... 그렇군요."
가치관의 차이를 새삼 느끼는 미쯔이였다.
경련이 이는 얼굴 근육을 마음 속으로 질타하고 격려하면서, 근성으로
미소를 유지했다.
"그런데 어째서 마차로 가는 거지요? 멀리 간다고 해서 분명 말을 타고
숲으로 가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머. 승마라니 안되요. 낙마
하면 큰일이잖아요. 왈가닥으로만 보여도
기누카는 한 번도 말에 타본 적이 없고, 칼도 가져본 적이 없어요."
- 뭐어!? 이녀석은 황녀 주제에 그런 것도 못해? -
미쯔이에게 있어서 승마라는 것은, 고귀하게 태어난다면 남녀에
관계없이 몸에 익혀야 하는, 최소한의 기능이다.
칼을 지닌 적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일국의, 그것도 유일한 황녀라면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한 호신용으로,
보통은 단검 한 자루라도 구비해둬야 하는 것이다. 쇼호쿠 왕가에서는,
상식 중의 상식이었다.
의무를 게을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말하는
기누카에게, 미쯔이는 다시금 혐오감을 느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고, 기누카는 자신의 발언이
미쯔이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고 믿으며 방글방글 웃고 있었다.
"히사시 님도 사랑하는 기누카를 위해서, 위험한 일은 그만두세요."
...빠직.
- 최근 들어 웃는 얼굴만 봐도 올라올 것 같아. 비가 되는 여자가
생리적인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여자라니, 정말로 앞일이 막막하군 -
"히사시 님, 대답은?"
"유감이지만... 그것은 지킬 수 없군요. 말에 타고 자유자재로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것은 무척 기분이 좋답니다."
"예-?"
"괜찮다면 제가 공주에게 승마를 가르치지요. 이렇게 보여도 승마는
자신 있습니다."
인형과 사슴
얘기를 줄줄 듣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러나 기누카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저었다.
"분명 아버님이 허락해주지 않으실 거예요. 위험한 일과 야만스러운
일은 기누카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실 거라구요."
- 칫! 과보호 아버지 같으니 -
무의식적으로 정말로 혀를 차버렸다.
"히사시 님?"
미쯔이는 재빨리 미소를 만들었다.
"아...그, 무척이나 아버님께 사랑받고 계시는군요."
"그래요. 아버님은 기누카를 굉장히 좋아하세요. 맞아. 아버님이
생일선물로 주신 료난 인형 에리카 짱을 아직 소개하지 않았네요.
에리카 짱은 기누카와 똑같은 파란 눈이에요. 그리고-"
"아아... 히메."
"히사시 님?"
말을 막듯이 이름을 부르는 미쯔이에게, 기누카는 이상한 듯이
가까운 장래에 남편이 될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 더 이상 이런 꼬맹이 얘기에 못 맞춰주겠다 \./++ -
"익숙하지 않은 마차에 타서 조금 기분이 나빠진 것 같군요.
저만 마차에서 내려서 직접 말을 타고 숲으로 가도 괜찮겠습니까?"
"어머, 큰일이네요! 마차를 멈추고 쉬어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이렇게 보여도 저는 승마대회에서
대륙 제일의 칭호를 받은 적도 있는 몸입니다. 어릴 때부터
친숙하고 익숙한 말에 타서 바깥 공기를 쐬면 기분도 곧
나아질 겁니다."
"승마라니
위험하고 야만적이예요! 게다가 말냄새는 더러워요.
히사시 님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빠가각!
- 그만 좀 해라, 이 멍청한 지지배야! -
말을 좋아하는 미쯔이였다.
산처럼 소유하고 있는 어떤 보석보다도, 실은 미쯔이가 제일
좋아하는 보석은, 하나미치 다음으로 백마 라일락이었다.
보통 때라면 어떤 고가의 공물을 가지고 와도, 사귀는 데 사흘도
가지 않았지만, 라일락을 바친 영주와는 1개월을 사귀어 주었을
정도였다.
"기누카를 위해 말에 타는 건 그만둬 주지 않겠어요?"
한 번 죽어볼래, 이것아! -라고 외치고 싶었다.
정말로 화가 났다.
- ...안돼. 이 이상 이거랑 같이 있다간 정말로 토할 것 같아 -
"죄송합니다. 그래도 저는 말을 좋아합니다. 그럼 목적지에서
만나죠."
말을 하고 나서, 말이 좀 과격하지 않았나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미쯔이는 마차를 세우고 재빨리 내려서, 근처에 있던 병사
한 명의 말을 탔다.

뭐라고 성질을 부리는 소녀에게서 간신히 떨어진 미쯔이는
말 위에서 어깨에 준 힘을 뺐다.
- 아, 피곤해. 저런 거랑 일생 같이 해야 된다니 참을 수 없어.
차라리 재빨리 후계자 하나 낳고, 바보 여자는 죽여버릴까 -
거기서, 아이를 낳기 위해 필요한 행위를 머릿속에서 상상하자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 ...정말이지 고문이로군 -
아무래도 밤일은 못할 것 같았다.
"-미쯔이 전하."
새파래져서 토할 듯한 그의 옆으로, 호위 한 명이 걱정스러운
듯이 다가왔다.
"안색이 무척 좋지 않으신 듯하군요. 일단 행렬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시는 쪽이 좋지 않겠습니까?"
- 농담 마. 모처럼 저 멍청이와 떨어졌는데, 그런 짓을 하면
또 달라붙는단 말야 -
"저...전하?"
무의식중에 그를 노려보고 만 미쯔이는 황급히 미소를 지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걱정을 끼쳤군요... 에에, 다카사고 군...?"
"저...전하! 저의 이름을!?"
미쯔이는 누구라도 황홀해할 듯한 아름다운 미소를 활짝 지으며,
사근사근하고 우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카사고는 얼굴을 붉히며 온몸을 떨었다.
"여...영광입니다! 저는 일개 무인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목숨이
다하는 한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과장되신 분이로군요. 하지만 마음은 무척
기쁩니다. 고마워요."
미쯔이의 미소는 더욱 더 깊어졌다.
- 부하는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치 않으니까 -
암기력이 비상한 미쯔이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수중에 넣어두기 위해, 전원 이름만이라도
기억해두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렇게 간단히 함락해 버린다.
미쯔이는 다카사고에게 말을 나란히 모는 것을 허가하여,
정보수집의 의미도 겸하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완전히 미쯔이의 술수에 넘어간 다카사고는 계속 뺨을 붉히며,
병사들 사이에서 인망이 두터운 것은 누구인가 등의, 알고 싶은
정보를 많이 제공해주고 있었다.
목적지인 숲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마침내 화제가 바닥난
다카사고는 오늘 일어난 사건을 미쯔이에게 얘기했다.
"불경죄?"
미쯔이는 조금 눈을 크게 뜨더니, 그리고 나서 아주 슬픈 듯이
눈을 내리깔았다.
"...나는 아직 카이난의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군요...
유감입니다."
"설마요! 미쯔이 전하가 황녀 전하의 남편이 되주셔서 전국민이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될 정도의 폭언을 한 백성이 있잖습니까...?"
"그건 카이난의 국민이 아닙니다. 이 나라에는 없는 머리색을
한 커다란 남자였으니까요."
"그렇습니까?"
"예. 얼핏 본 것뿐이지만 정말로 무례한 빨강머리 남자였습니다.
전하를 '밋찌'라고 버릇없게도 천한 이름으로 불러댔으니까,
극형은 당연하겠지요. 정말로 불유쾌한-"
- 빨간 머리의 남자? 밋찌? -
"......"
"미쯔이 전하? -전하!"
미쯔이는 말없이 말고삐를 부여잡고,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서
궁전 쪽으로 전력질주했다.

돌아오는 동안 걸린 시간은, 떠난 시간의 약 10분의 1이었다.
흡사 경마라도 하듯이 멋진 고삐놀림으로 궁전으로 달려온
미쯔이는, 그대로 죄인이 갇혀 있는 지하감옥으로 달려내려갔다.
이 날은 황녀와 왕자의 호위를 위해 약 1500명의 기사가 나가
있었지만, 미쯔이를 따라올 수 있었던 것은 승마기술이 특히
뛰어난 세 사람뿐이었다.
그 중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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