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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1월 20

(수위소설)[권희정]바람과함께사라지다.txt

#아래 소설은 일반인이 거북해 할수 내용이 담겨 있을수 있습니다. BDSM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면 되돌아가기를 누르기를 바랍니다.

#프롤로그

[비룡그룹 회장 오 동추의 자택]

[으악~~~~~~~~~~]

[어어...자기야 힘줘....조금만....]

[이 나쁜 놈~~~~~~~~으악~~~~~~~]

오 동추의 아내 진 진해가 동추의 머리를 확 잡아채고는 그의 머리를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으악!!!!여보!!내 머리는 좀 놔줘!!]

[이 나쁜놈...당신 때문에 내가 이 고생이잖아...아아...]

진해는 막바지로 치다는 산고의 고통으로 몸부림을 쳤다.

갑자기 시작된 산통으로 인해 진해는 거의 실신 직전이였다.

하필이면 이때 기사가 휴가를 갈게 뭐람...

동추는 속으로 이를 갈며 땀에 흠뻑 젖은체 넓은 거실 바닥에서 아이를

낳기 위해 비명을 질러대는 자신의 아내를 보았다.

좀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즐겨보던 비디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갑자기 애 라니.....

[여보...119 불렀으니까....조금만 참아....]

[아..안돼..지금 나올것 같단 말이야......아..악!!!!]

다시한번 진해의 비명이 튀어나오더니 그녀의 눈이 하얀 흰자를 보이며

뒤로 눈이 넘어갔다.

[여..여보!!나온다..아이가 나올려고해!!]

[음...악~]

다시 한번의 비명과 함께 오 동추의 2세가 쑤욱하고 진해의 다리사이에서

나왔다.

동추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들고는 언젠가 TV에서 봤던 것처럼 아이의

다리를 잡고 거꾸로 들어 아이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아이가 조그만 울음소리를 내더니 이내 크게 자신의 출생신고를

하려는듯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그래 그래 울어라.힘껏 울어라!!]

[여보...아들이지?]

진해가 힘겹게 동추에게 묻자 동추는 얼른 아이의 성별을 확인했다.

[아..아니. 딸이야]

진해가 실망스런 신음을 내뱉으며 털석 다시 누워버렸다.

[여보..미안해....]

진해가 사과하자 동추는 힘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아니야.당신을 닮아 아주 예쁜 아이인걸?하하 날 닮았으면 아마

평생 두고두고 나를 원망했을꺼야!]

동추가 아내를 위로 하려는듯 너스레를 떨었다.

[여..보..나 자꾸 왜 잠이 오는거지?]

진해의 말에 동추는 아이를 강보에 싸서 옆으로 뉘인다음 진해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진...해...피를 너무 많이 흘리는거 아니야?]

어느새 진해의 하혈로 진해가 누워있는 곳엔 붉은피가 흥건했다.

[여..보!!정신차려!!]

정신을 놓으려는듯 진해의 눈이 감기려 하자 동추는 진해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119입니다!!]

동추가 미리 열어놓았던 현관문으로 119 구급대원들이 들이닥쳤다.

[제..아내가 이상합니다.제발 살려주세요!!]

애원하는 동추를 뒤로 하고 119 구급 대원들이 진해의 상태를 살폈다.

동추는 울음을 터트리는 자신의 딸을 꼭 끌어안았다.

[저..선생님...]

잠시뒤 한 구급대원이 동추를 불렀다.

[예..제 아내는 괜찮은 겁니까?]

[이런 말씀 죄송합니다.이미 숨을 거두셨습니다.]

[네? 그..그럴리가...방금전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출혈이 너무 심하셨어요..죄송합니다.]

[아..안돼..진해...진해!!!!]

동추의 오열뒤로 TV화면속에 스칼렛 오하라의 모습이 나타났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거야...]

여 주인공의 독백과 함께 영화의 끝을 알리는 자막이 올라갔다.




#1
아침부터 시끄럽게 울려대는 초인종 소리로 우진은 신음소리를 내며

베게로 자신의 머리를 감쌌다.

분명 신문을 보라는 잡상인이 분명할터 몇번 울리다가 사람의 기색이

없으면 돌아가겠지 하는 마음에 초인종 소리는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한두번 울리던 초인종은 5분동안 계속 울려대며 우진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었다.

[젠장!!]

우진이 소리치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야....자기...신경쓰지마....]

나른한 여자의 목소리와 함께 우진의 알몸의 상체를 감싸며 팔 하나가

올라왔다.

[뭐야!!아직도 안 간거야?]

우진이 불쾌한 얼굴로 옆에 알몸으로 누워있는 도 도해를 쳐다보았다.

도해는 흐트러진 긴머리를 유혹적으로 쓸어넘기며 우진을 따라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새틴 이불이 흘러내리면서 도해의 풍만한 젖가슴이 드러났다.

[좀 가리지 그래.]

우진이 불투명한 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런 우진의 냉랭한 태도에 도해는 입을 삐죽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와

어제 우진이 마구 벗겨버린 자신의 속옷을 찾아 입었다.

그 와중에도 초인종도 모자라 이제는 쾅쾅거리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가만두지 않겠어!!]

우진이 방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삼각 팬티를 입었다.

우진의 늘씬하고도 멋진 엉덩이를 감상하며 도해는 멋진 저 남자가

자신의 연인이라는 사실에 뿌듯해 했다.

우진은 자신의 검정색 잠옷 까운을 몸에 걸치며 허리띠를 앞으로 매어

옷을 여미었다.

[나가요!!나갑니다!!]

우진이 소리치며 쾅쾅 거리는 현관문쪽으로 다가섰다.

[누구십니까!!]

우진이 걸쇠 하나만 남겨두고 문을 열자 바깥쪽에서 문을 확 잡아당겼다.

놀란 우진이 뒤로 물러나자 문이 열린 틈새로 중년쯤 되보이는 여인의

얼굴이 쏙 들어왔다.

[빨리 문 안열어!!]

[새어머니!!아침부터 왠일이세요!!]

우진이 걸쇠를 풀고 문을 열자 우진의 새어머니인 나 미녀 여사가 아들을

밀치고 다짜고짜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우진의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자 마자 코를 킁킁거리더니 홱

뒤돌아 아들인 우진을 노려보았다.

[아들!이게 무슨 냄새지?킁킁]

[냄..새라뇨...]

우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제발 침실에 있는 도해가 나오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킁킁...이 새엄마를 속이려 하는거야? 여자 향수 냄새인데?킁킁...]

나 미녀가 우진을 찌릿 쳐다보고는 조금 열린 우진의 침실문을 보고는

다다다 우진의 침실로 달려갔다.

[안돼요!!새어머니!!]

우진이 미녀에게 팔을 뻗었지만 작은 키 이지만 날쌘 미녀를 잡기는

힘든 일이였다.

[자기~왜 이렇게 시끄러워? 우유 아줌마는 빨리 보내고 다시 침대로

돌아오라구......]

나긋나긋한 도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미녀는 망설일것 없이 우진의

침실 문을 확 열어 재꼈다.

[세상에~~~~~넌 누구야!!]

미녀의 고함소리에 놀란 도해가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꺄악~~~~아줌마야 말로 누구세요!!■..■+]

도해가 이불을 끌어당겨 브래지어만 입은 자신의 가슴을 가렸다.

[아들!!이리 당장 안와!!]

미녀의 고함소리에 거실에 서 있던 우진은 끙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자신의 숱 많은 머리카락을 거칠게 헝클었다.

[아들...이게 뭐하는 짓이지? 이래서 네가 나가 사는걸 반대했지!!

그리고 아가씨!! 혼자사는 총각집 침대에 왜 아가씨가 뒹굴러 다니는

거야!!아이고 남사스러워라...옷이나 빨리 입어요!!]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미녀의 고함소리에 도해는 헐레벌떡 침대에서

내려와 의자에 걸어두었던 자신의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쯔쯔쯔...]

미녀가 혀를 차며 방을 나와 거실의 소파에 앉고는 우진을 노려보았다.

[새어머니....이건 사생활 침해라구요!!]

우진이 미녀에게 소리치자 미녀는 울먹이는 표정을 지었다.

미녀의 주무기는 눈물로 그녀가 눈물만 흘리면 아들인 우진은 꿈쩍도

하지 못한다는걸 잘 알고 있었다.

[흑흑....이젠 내 아들이 여자때문에 하나 밖에 없는 어미한테 소리까지

지르고....아이고.......여보.....왜 먼저 떠나서 아들한테까지 이런

수모까지 당하게 만드는거예요..흑흑..]

미녀가 눈물을 흘리는척 하며 힐끔 우진을 살펴보았다.

역시나 미녀의 눈물에 우진의 표정이 누그러지며 새어머니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에 질세라 미녀는 더욱 큰소리로 흐느끼며 금방이라도 우진의 아파트를

뛰쳐 나갈것 처럼 모션을 취했다.

[새어머니..제가 잘못했어요...울지 마세요..제발..]

우진이 자신의 새어머니를 감싸 안으며 그녀를 달랬다.

[저....방해해서 죄송합니다만...이만 저는...]

도해가 어느새 자신의 검은 정장 원피스를 차려 입고는 거실에 나와

우진의 품에 안겨 미녀가 흐느끼는 것을 안절부절 못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고~~~~~~~서러워라~~~~~~~]

도해를 본 미녀가 큰 소리로 통곡하자 우진이 도해를 쳐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게 어젯밤에 떠났어야 했잖아!!]

우진은 절대 자신의 집에 여자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

약간의 결벽증이 있는 우진은 자신의 침대를 다른 누군가와 쓰는것

조차 싫어했기 때문이였다.

어제 그 망할 양주 때문이야.......

도해와 함께 한 술자리에서 우진은 양주 한병을 거의 혼자 다 마시다

시피했고,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우진을 도해가 그의 아파트까지 데리고

왔던 것이다.

그의 결벽증을 알고 있던 도해였기에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막무가내로

도해의 팔목을 잡고 침대로 끌어당기는 우진의 유혹을 굳이 거절할 필요

는 없었기 때문에 그의 침대를 함께 사용하게 된것이다.

[미...미안해..우진씨..나갈게.안녕히 계세요.]

도해는 통곡하는 미녀에게 어설프게 고개숙여 인사한다음 자신의 구두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그의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도해가 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미녀는 울음을 그치고는 우진을 쳐다보았다

[아들.....이렇게 새엄마를 실망시킬거야?]

[죄송해요.새어머니..어제는 술에 많이 취해서 제가 실수한것 같아요.]

우진이 미녀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다.

미녀는 그녀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아들 우진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아들이지만 정말 우진은 잘생긴 미남이였다.

부리부리한 콧날에 섹시한 저 입술,미녀와는 달리 큰 키에 게다가 탄탄한

직장까지 정말이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일등 신랑감이였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잘난 아들이 도통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눈치로 때려보면 아들은 생물학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는 성적욕구가

철철 넘치는 남자인 것은 당연한데 그럼 뭐가 문제라서 결혼을 싫어한다

는것인가.....

나 미녀 여사는 더 이상 황새가 아들을 닮은 손주들을 물어다 주기를

바라고 있을수는 없다고 결론내렸다.

아들이 나설수 없다는 이 어미가 나설수 밖에...

[저 아가씨 결혼할 아가씨냐?]

미녀가 은근슬쩍 우진을 떠보려 우진에게 물었다.

[아니예요!! 그냥 알고 지내는 여자예요.]

[아들!! 니 나이가 벌써 몇이냐...내년이면 서른이야!!

이 에미가 늙어 죽을때 까지 토끼같은 손주 녀석들을 안겨주지 않을

작정인거야!!]

[새어머니!! 새어머니 나이가 몇이신데 벌써 손주 타령이세요!!]

[이 에미가 얼마나 외로운지 넌 모르는구나...에효 이 여사는 어제

손주녀석이 귀엽다고 얼마나 자랑을 해대는지......]

[새어머니...전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구요.]

[아들....그렇게 드라이아이스마냥 여자들한테 차갑게 굴기만 하니

여자들이 따르겠니? 좀 나긋나긋하게 여자들한테 잘 좀 해줘봐라.

인물이 빠지니,그렇다고 직업이 빠지니....에휴....]

미녀는 아예 작정하고 우진의 아파트를 쳐들어왔는지 푸념을 계속

늘어놓으며 우진의 인내심의 한걔를 테스트 하고 있었다.

[아..알았어요...생각해볼게요...그러니까 이만 돌아가세요.저 회사

출근도 해야 한다구요.]

[아들! 진짜야? 진짜 결혼할 생각이 있는거냐구!!]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미녀의 두 눈이 반짝 거렸다.

[네......]

우진은 포기하는 마음으로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역시 우리 아들은 효자라니까.....그럼 그렇게 알고 이 어미는

돌아가마......]

미녀는 흥이 났는지 콧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아들의 아파트를 나섰다.

미녀가 돌아가자 우진은 시계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새어머니로 인한 아침 소동으로 그의 출근 시간은 30분 이상을

늦게 되버리고 만것이다.

#2

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를거야...)

따라라라~따라라~~~~~■■■

비비안리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면서 비디오의 자막이 올라가고 있었다.

자막의 끝이 다 보일때까지 오 하라는 훌쩍이며 TV에 끝까지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훌쩍...언제봐도 슬픈 영화야....]

자신의 앞에 가져다 둔 티슈각에서 티슈를 뽑아낸다음 팽하는 소리와

함께 힘껏 코를 풀었다.

리모컨을 눌러 비디오를 끈다음 하라는 소파에서 일어나 힘차게 기지개를

펴며 거실에 벽에 걸려있는 오씨집안의 가훈이 적힌 액자를 쳐다보았다.

내일의 태양은 내일 다시 떠오른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라는 영화광이였던 하라의 아버지 오 동추와

하라를 낳다가 세상을떠난 하라의 새어머니 진 지혜가 함께 만들어낸

걸작의 오씨 집안의 가훈이였다.

집안의 가보와도 같은 비디오 테잎을 다시 케이스에 넣은다음 장식장안에

잘 간수해 두었다.

그녀의 방으로 올라가려던 찰나 거실의 전화기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하라니?]

수화기 너머로 하라의 친구 미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니가 부탁한 씨디 구했다!!]

[정말? 정말이야?]

[그래 기집애야!이거 구하느라 내 남동생 컴퓨터를 모조리 뒤졌다는거

아니겠냐....한턱 단단히 쏴야 한다!!]

[걱정마셔!!!히히히히 지금 내가 당장 받으러 갈게!!]

[그럼 지금 내가 일하는 회사근처로 올래?]

[어딘데?]

[강남 삼성역 근처에 보면.....]

하라는 미경이 가르쳐 주는데로 메모지에 열심히 받아적었다.

[그럼 이따가 보자!!]

전화를 끊은 하라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어릴적 부터의 친구인 윤경이의 결혼식 선물로 하라를 비롯한

장난이 짖궂기로 유명한 악동클럽의 친구들은 요즘 한창 유행한다는

[노란 스카프]라는 포르노 씨디를 선물해 주기로 했다.

유명한 제목과는 달리 구하기 힘들다는 그 씨디를 구하기 위해 하라는

미경에게 특별히 부탁해 두었는데,그 임무를 미경이 제대로 해낸것이다.



미경에게 씨디를 건네 받은 하라는 이 씨디안의 영화를 본 친구 부부의

얼굴표정을상상하니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왔다.

씨디가 든 작은 종이 봉투를 손에 쥐고 길을 건너기 위해 하라는 횡단

보도 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온 비로 도시의 먼지가 말끔이 씻겨져 내려갔는지 주위는 깨끗하고

청명해 보이는 풍경이였다.

하라가 기분좋은 얼굴로 하늘을 잠시 바라볼때 차 한대가 그녀옆을 빠른

속도로 지나가자 고여있던 빗물이 튀며 하라는 머리부터 끝까지 빗물을

뒤집어 쓰게 되었다.

[앗!!차거워!!]

하라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지만 이미 속옷까지 축축히 젖어들고

있었다.

그녀에게 빗물세례를 선사한 승용차는 유유히 빌딩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저...저...나쁜...]

불의를 보면 참지못하는 성격의 하라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씩씩하게

그 승용차가 멈추어선 빌딩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차문이 열리자 경비원이 달려나와 차에서 내리는 남자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는것이 그녀의 눈에 보였다.

[흥...한 직함 하는 자인가 본데..어림도 없지....]

하라는 그 남자를 놓칠세라 뛰기 시작했다.

하라가 남자를 쫓아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저 만치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는 남자의 뒷 모습이 보였다.

[이봐요!!]

하라가 그 남자를 부르기 위해 소리쳤지만 그 남자는 못들었는지 묵묵히

계속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저 남자가!!]

하라는 황소가 돌진하듯 무서운 콧김을 씩씩 내 뿜으며 남자에게 그대로

달려가 힘껏 두 손으로 그 남자의 등을 떠밀었다.

등을 떠밀린 남자가 홱 몸을 돌리면서 하라와 남자의 팔이 부딪쳤다.

그러면서 남자가 들고 있던 서류 가방과 하라가 들고 있던 종이가방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잡다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뭐요!!]

우진은 갑자기 자신을 등을 떠다밀은 범인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에 흠뻑 젖은체 흙탕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자신을 잡아먹을듯이

노려보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당신...내 꼴이 안보여요?]

하라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당신 꼴이 어떻든 왜 사람을 치는거요.]

[하...참...적하반장도 유분수지....]

[적반하장이라고 하는거요? 지금?]

우진의 말에 하라는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아..아무튼요...당신이 차로 지나가면서 빗물을 튕겨서 내 꼴이

이렇잖아요......적어도 차를 세운다음 사과정도는 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어딜 말도 없이 뺑소니를 치는거예요?]

[지금 내가 당신을...그러니끼 이 물에 빠진 생쥐꼴로 만들었다는거요?]

[지금 장난해요? 누가 지금 생사람을 잡느냐구요!!]

하라가 소리치며 우진에게 대들듯이 앞으로 가슴을 들이밀었다.

[내가 그랬다면 사과 하겠소.바쁜일이 있어서 차를 빨리 몰았소.

세탁비 얼마면 되겠소?]

우진이 자신의 양복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십만원짜리 수표한장을

꺼내 하라에게 건넸다.

하라가 물끄러미 그가 내민 수표를 쳐다보자 우진은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하라의 손을 잡아끌어 수표를 쥐어주었다.

그리고는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물건들을 줍기 시작했다.

중요한 프로젝트의 자료가 담긴 씨디가 바닥에 가방이 떨어지면서 튀어

나왔는지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그는 씨디를 주워들고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얼른 올라탔다.

[이봐요!!]

문이 닫히려는 찰나 발 하나가 들어와 엘리베이터 문을 다시 열었다.

[또 무슨일이요? 돈이 모자른거요?]

우진이 소리치며 엘리베이터를 붙잡고 있는 하라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돈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는데요.....난 단지 당신 사과만

받고 돌아갈 생각이였다구요!!돈만 아는 속물같은 당신한테 이런 돈

받을 이유 없어요!!도로 가져가세요!!]

하라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와 그가 건넨 수표를 우진의 양복주머니에

구겨 넣고는 엘리베이터를 나와 단추를 눌렀다.

문이 닫히자 우진은 당돌하고 황당한 여자때문에 잠시 어안이벙벙했다.

[젠장...오늘은 하루종일 일진이 꽝이군.]

그가 주관이 되어 이끌어 가야할 회의시간이 벌써 저 여자때문에 5분이나

늦은 상태였다.

그는 재빨리 회의실이 있는 7층의 단추를 눌렀다.


하라는 재수없는 남자를 욕하며 바닥에 떨어진 씨디케이스를 집어들었다.

손잡이 끈이 떨어진 종이가방은 이제 소용이 없어진것 같아 씨디 케이스

만 집어들고는 종이가방은 엘리베이터 옆에 마련된 쓰레기 통에 버렸다.

어디 깨진데가 없나 씨디를 살펴보던 하라의 두 눈이 점점 커졌다.

[이거 뭐야?]

분명 미경이 건넨 씨디에는 그녀가 표시해둔 빨간 하트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 이 씨디에는 휴먼 앤 퓨처라는 로고의 스티커가 버젓이 붙어

있었다.

[허걱~~~~혹시 그 남자와?]

좀전에 허겁지겁 자신의 가방과 씨디를 챙겨들던 남자의 모습이 생각났다

[으~~~설마 그 씨디를 보는건 아니겠지?]

하라는 허겁지겁 중앙홀에 있는 경비원에게 달려갔다.


#3

[아저씨!!혹시 아까 그 남자 있잖아요]

[누구 말하는건지?]

[아이참...그 남자가 차에서 내리니까 아저씨가 인사한 사람이요...]

[아..우리 사장님 말이요?]

사장?

하라의 길다란 눈썹이 한쪽으로 올라갔다.

[암튼...그 남자..아니 사장님이요.사무실이 몇층이죠?]

[사장님은 왜?]

[지금 당장 만나야 한다구요....]

[이봐요 아가씨....]

경비원이 흙탕물을 뒤집어 쓴체 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하라의 모습을

한눈에 훏어 보았다.

[잡상인 함부로 들이다간 우리가 쫓겨난다구...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나가요!!]

경비원이 다짜고짜 하라를 내쫓기 위해 그녀의 등을떠밀었다.

[아이참!!아저씨 나 잡상인이 아니라요...아까 그 사람..아니 사장님

물건이랑 내 물건이 바뀌였다구요!!지금 당장 찾아와야 해요!!]

하라가 두 발로 버팅기며 애원하듯 경비원을 쳐다보았다.

[ 이 여자가 미쳤나? 이 몰골로 누굴 만나겠다는거야!!]

하라는 쫓겨나지 않으려 애쓰면서 벽면에 붙어있는 안내게시판으로

눈을 돌렸다.

10층에 사장실 이라는 팻말을 확인한 하라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알았어요..가면 되잖아요.밀지 말아요!!]

하라가 도리어 큰 소리치자 경비원이 놀란듯 제자리에 멈추었다.

[갈게요..내 발로 간다구요....]

하라는 힐끔 엘리베이터의 불이 1층으로 내려오는걸 확인하고는 빌딩을

나가는척 걸어갔다.

경비원이 물이 묻은 자신의 손을 털며 등을 돌리자 하라는 이때다 싶어

후다닥 엘리베이터로 뛰어갔다.

[아니!! 저 아가씨가!!]

경비원이 하라를 뒤쫓았지만 하라는 재빨리 엘리베이터에 올라 닫힘

단추를 눌러버렸다.

문이 닫히자 마자 하라는 10층 버튼을 누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0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하라는 고개만 쏙 내밀고는 10층 복도를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사장실이라는 팻말이 달린 곳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하라는 사장실 문앞에서 크게 심호흡을 한다음 노크를 했다.

안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자 하라는 손잡이를 잡고 문을 살짝 열었다.

비서가 앉아 있어야 할 책상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하라는 안으로

들어섰다.

[아무도 안계세요?]

개미만한 목소리로 하라가 물었지만 아무도 없는듯 사장실은 적막감이

흘렀다.

[휴우....누구든 오기전에 빨리 씨디를 찾아야 하는데...■.■]

하라는 사장의 책상으로 보이는 듯한 곳으로 다가갔다.

책상위에는 하라가 찾는 씨디는 보이지 않았다.

[뭐야...그럼 사장실로 오지 않은건가?어디로 간거야?]

하라가 사장실을 나서려는 찰나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라는 후다닥 커다란 책상밑으로 몸을 숨겼다.

납짝하게 바닥에 엎드려 밑으로 누가 들어오는지 관찰하려 했지만

사람의 다리만 보일뿐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스타킹을 신고 구두를 신은 다리가 보였다.

비서인가?

[이 비서!!여기 이상한 여자 하나 안들어왔어요?]

문이 벌컥 열리면서 아까 하라를 쫓던 경비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요? 무슨 일 있어요?]

[아..아니..왠 이상한 여자가 사장님을 찾으면서 이리로 올라왔거든..

사장님은?]

[지금 7층 회의실에 회의중이십니다.]

허걱 7층에서? 회의?

하라는 좀더 그들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 귀를 쫑끗세웠다.

[아..참 그럼 그 여자는 어디로 사라진거야....토끼마냥 잽싸군]

경비가 투덜거리며 사장실을 빠져나갔다.

비서도 무언가를 책상에서 챙기고는 곧 사장실을 나가자 하라는 기어서

책상밑에서 빠져나왔다.

[7층이라구? 설마 그 회의하고 이 씨디하고 관련이 있는건 아니겠지..]

왠지 불안해 지는 예감에 하라는 식은땀이 났다.


[이번 아이템은 작지만 틈새시장을 점령할 수 있는 효과를 얻을수 있기

때문에 규모에 비해 회사로서의 이득은 극대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입니다.자세한 사항은 앞에 있는 화면을 통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우진이 지시를 하자 한 직원이 우진에게 건네받은 씨디를 회의실 정면에

있는 커다란 스크린과 연결되어 있는 컴퓨터 안에 집어넣었다.

[자...앞을 봐 주십시요.]

우진은 단상으로 올라가 자료화면과 함께 설명할 서류들을 훏어보며

자료 화면이 스크린에 나오길 기다렸다.

서류를 검토하던 우진의 귀에 갑자기 웅성거리는 이사진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든 우진은 책상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쳐다

보았다.

저마다 침을 꼴깍 삼키며 심지어 어떤이는 입가의 침을 닦아내고 있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우진이 스크린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세상에!!]

놀란 우진의 고함과 동시에 갑자기 회의실 안에 마련된 스트레오 스피커

에서 난잡한 여자와 남자의 신음소리가 서라운드로 울려퍼졌다.

스크린의 화면에서는 노란 스카프만을 목에 두른 홀딱 벗은 여자와 남자

가 적나라한 정사를 즐기고 있었다.

맙소사..이게 어떻게...

당황한 우진의 등뒤로 싸늘한 기운이 흘러내렸다.

[잠깐만요!!]

그때 회의실 문이 벌컥 열리며 여자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열린 회의실 문으로 아까 우진과 실랑이를 하던 여자가 뛰어들어왔다.

[당신!!]

우진이 손가락으로 여자를 가리키며 소리를 쳤다.

[미안해요...씨디가 바꼈어요..]

하라는 재빨리 컴퓨터로 다가가 그안에 들어있는 씨디를 꺼내었다.

그리고는 자신과 뒤바뀐 우진의 씨디를 우진에게 건네주었다.

[죄송합니다.하던 회의 계속 하시죠..전 조용히 사라지죠.]

하라는 멍한히 하라와 우진을 쳐다보는 이사진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당당히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우진은 떨리고 있는 자신의 손에 있는 씨디를 내려다 보았다.

오..세상에..........정말 죽을 맛이군.

[잠시..잠시 회의를 중단하겠습니다.]

우진은 이사진들에게 말하고는 비틀거리며 단상을 내려왔다.


하라는 엘리베이터를 잡기 위해 그 앞에서 내려오고 있는 엘리베이터

숫자판의 불빛을 쳐다보았다.

설마 했는데 벌써 씨디를 보고 있었다니.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 있던 사장의 얼굴을 다시 떠올려 보니 웃음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하라를 무시한 댓가를 그 남자는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였다.

하라가 막 엘리베이터를 탈려는 찰나 회의가 벌써 끝났는지 회의실에서

나이 많은 이사진들이 한꺼번에 몰려 나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찰나 한 남자가 급히 엘리베이터를 잡고는

올라탔다.

문이 닫히고 하라와 그 나이 많은 남자만이 엘리베이터에 남게 되었다.

하라는 이상한 기분에 힐끔 옆 남자를 쳐다보았다.

뭐야....왜 그런 눈으로 날 보는거야...■..■+

하라는 끈쩍거리는 남자의 시선에 엉거주춤 벽쪽으로 몸을 붙였다.

[저..아가씨?]

남자가 드디어 말을 걸어오자 하라는 본때를 보여줄 심으로 매서운 눈을

하고 남자를 노려보았다.

[뭐예요!!아저씨!]

하라의 외침에 남자가 멋적은듯 머리를 긁적였다.

[저...미안하지만...아까 그 씨디말이야....제목이..뭔지 알수 있을까?]


핫~~~~~~이 아저씨 정말 변태 아니야?■.■;

[아저씨!! 집에 계신 사모님한테나 충실하세요!!]

하라는 남자에게 쏘아붙이고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마자 뛰어나갔다.

하여튼 남자들이란...

우리 아빠 빼고는 모두다 늑대라니까.


#4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우진은 그야말로 벼랑끝에 서 있는 기분이였다.

그 제목조차 모르는 그 비디오에 대해 이사진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젠장 맞을 그 재수없는 여자만 아니였어도.

우진은 당장이라도 그 여자가 자신의 앞에 있다면 목을 졸라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이였다.

몇날 며칠을 밤새워 준비한 회의가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아...하느님

다시는 그 여자를 만나는 일이 없기를.....



하라가 질척 거리는 운동화를 신고 집으로 돌아오자 어느새 그녀의

아버지인 오 동추가 집에 돌아와 있었다.

[아빠~~~~~~]

하라가 어린아이처럼 동추에게 달겨가 그의 품에 와락 안겼다.

[왠일이래? 오늘 이렇게 일찍 들어오고?]

[어디 갔다 오는거야?]

탐색하는 듯한 동추의 시선에 하라는 허겁지겁 문제의 씨디를 뒤로

숨기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 아빠..는...친구 만나고 오지...]

[기집애가 빨리 빨리 다녀야지.해가 다 저물어 가는데....]

[아이참..일찍 오려고 했는데,왠 재수 없는 남자가 태클을 걸잖아.]

[태클? 뭐야!! 어떤 넘이 내 딸을 상대로 레슬링을 한거야!!]

동추가 버럭 고함을 지르며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어부쳤다.

[아빠...태클은 축구경기에서 나오는 용어라구요..■..■]

[하하.^^; 그러냐?]

하라는 이미 말라버린 머리카락에서 흙 먼지가 떨어지자 인상을 찌푸렸다

[에효..오늘은 정말 정신없는 하루였어요...저 샤워좀 해야 할것 같아요]

하라가 비에 젖은 자신의 운동화를 하나씩 벗어냈다.

[좀 씻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너라...할 말이있다.]

동추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하라에게 말했다.

[금방 내려올게요.]

하라는 동추의 뺨에 쪽 소리나게 입을 맞춘다음 2층으로 뛰어올라갔다.

[뛰지 말고!!원 다큰 처녀가 저렇게 철이 없어서야...]

동추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딸을 탓하고 있었지만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딸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하라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렛 오하라

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고 야무진 여성으로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딸의 이름도 오 하라 라고 지은것이다.

다행히 하라는 새엄마 없이도 밝고 티 없는 성격의 아가씨로 자라주었고,

그런 하라를 누구보다도 자랑스럽게 여기는 동추였다.

이제 한가지 자신의 딸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하라가 멋진 배필을 만나

결혼을 해서 올망졸망한 손주들을 자신의 품에 안겨주는 것이였다.

오늘 회사에서 실시한 건강진단에서 동추는 간이 좋지 않다는 결과가

나와 동추를 놀라게 하였다.

막상 자신의 나이를 생각하니 언제라도 큰 병에 걸려서 하라를 놔두고

세상을 떠날수 도 있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나는 것이였다.


저 철없는 것을 두고 어찌 떠날고......

동추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딸의 방이 있는 2층을 바라보았다.

그때 금방 샤워를 끝낸 하라가 흰색 면티와 반바지를 입고 아래층으로

요란스럽게 뛰어 내려왔다.

[아빠!!]

하라가 동추의 목에 팔을 두르며 그에게 매달렸다.

다른때 같으면 다정스럽게 하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동추였지만

냉정하게 분위기를 잡으며 딸의 팔을 풀어내었다.

[여기 좀 앉어봐.]

심각한 동추의 표정을 본 하라는 주춤거리며 동추의 앞에 자리를 잡았다.

[아빠..무슨 일 있어요?왜 그래요....]

[오 하라....]

[네...]

[너.....언제까지 이렇게 아빠한테 붙어살 작정이냐?]

[예?]

[시집은 안가고 평생 처녀귀신으로 이 아빠 곁에 살거냐구..]

[푸훕...아빠 시집이라니....너무 웃겨....]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 하라가 자신의 배꼽을 움켜잡고 낄낄

거렸다.

[오 하라!!아빠 지금 심각하게 이야기 하는거야!!]

동추의 고함에 하라는 동추가 장난이 아님을 깨닫자 얼굴에서 웃음기

어린 표정이 싹 사라져 버렸다.

[아빠......]

[ 이 아빠는 하라가 이제 시집을 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아빠..내 나이 이제 겨우 23이라구요!!!]

[이 자식아 이 아빠 나이 벌써 58세이다.2년이면 환갑이야!!]

[아빠....]

하라가 울상을 지으며 사정하듯 동추를 바라보았지만,그는 딸의 얼굴을

외면하고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느즈막히 너를 낳고,그동안 애지중지 키워왔다.남들은 내 나이에

벌써 손주새끼들 재롱에 노년을 보내는데...나는 뭐냐...다큰 딸래미

뒷바라지나 하고 사니....에휴....]

동추가 큰 한숨을 내쉬며 힐끔 딸의 반응을 살폈다.

[아빠....그래도 내 나이는 아직 결혼하기엔.....]

[옛날엔 15살만 넘어도 시집가서 애도 잘낳고 살았다.]

[켁..아빠 그건 옛날이구요.....]

[암튼, 조만간 내가 선 볼 자리를 마련할 테니 군소리없이 시집이나 가]

[아빠!!]

선이라는 소리에 하라가 경악을 하며 소리를 쳤지만 동추는 딸을 남겨둔

체 자신의 서재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갑자기 변해버린 아버지의 모습에 하라는 아직도 어안이벙벙했다.

시집이라구.....으.........끔찍해.



서재로 들어온 동추는 얼른 전화기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급히 숫자버튼을 누르며 신호가 가길 기다렸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코맹맹이의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미녀 여사? 나야 동추..]

[여사는 무슨 여사가 낯간지럽게...그냥 미녀라고 불러...]

나 미녀 여사의 경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그래...아들은 어찌 됐어? 내딸은 지금 막 구슬려 놨지.]

[우리 아들도 다른 사람한테는 무섭게 굴어도 내 앞에서는 꼼짝 못한다

니까.....곧 내가 하자는 데로 할꺼야....]

[그래.시간을 언제쯤 잡는게 낫겠어?]

[가만있어봐...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몰라? 내가 곧 시간을 정해서

알려줄게....]

[그래그래..알았어....아참 그나저나 이 사장은 맘에 들어?]

[그 영감쟁이!! 한번만 내 눈에 띄면 가만 안놔둘줄 알아!!]

미녀가 갑자기 소리치며 펄펄 뛰었다.

며칠전 절친한 고향 친구 나 미녀 여사에게 동추는 그와 알고 지내는

작은 중소기업 사장인 이 사장을 소개시켜 주었었다.

그런데 미녀는 이 사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였다.

[무슨 일 있었어?]

[망할 영감쟁이....글쎄 은근슬쩍 내 엉덩이를 만져보려 하잖아!!]

[이런......이 사장같은 신사는 없는데.....]

[동추....너도 각오 하고 있어!!어디서 그런 변태 영감을...]

[아...미안해...이 사장이 그런 사람인줄 정말 몰랐다니까....]


동추는 화가 난 미녀를 간신히 달래놓고는 전화를 끊었다.

몇해전 잠시 미녀와 함께 동반 외출을 했던 그녀의 아들을 본 적이

있었는데,듬직한 모습이 동추의 마음을 쏙 빼앗아 버렸었다.

아직 그때는 하라가 대학학생인지라 동추는 마음을 접어야 했지만,미녀로

부터 그녀의 아들이 아직 솔로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동추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절대로 빼앗길수 없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그의 친구 미녀 또한 아들을 총각귀신으로 썩혀 둘까봐 전전긍긍

하던 참이였기에,동추와 미녀는 척척 손발이 들어맞았다.



하라는 자신의 앞에 놓인 팥빙수를 수저로 떠서 맛있게 먹고 있었다.

늘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하라였고,또 그런 모습을 좋아했던

심한이기에 그저 그녀가 먹는 모습만 봐도 그는 언제나 배부른것 같았다


[넌 안먹어?]

혼자만 너무 열심히 먹었던걸 알아챘는지 하라가 슬그머니 고개를 들며

그녀앞에서 시커먼 뿔테안경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심한을 쳐다보았다.

[괜찮아.]

[아휴....]

느닷없이 하라가 한숨을 쉬며 팥빙수를 먹던 수저를 내려놓았다.

[왜 더 먹지 않구....]

[됐어...요즘엔 입맛 하나도 없다니까.]

[무슨 일 있어?]

심한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하라를 보았다.

[우리 아빠가 나보고 시집이나 가래...]

[뭐? 시집?]

심한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자 주위 사람들이 동시에 그들을 쳐다보았다

[조용히해!!창피해 죽겠네]

하라가 고개를 숙이며 심한에게 속삭였다.

[왜 시집이야 갑자기.....]

[몰라.솔직히 우리 아빠 나하나 바라보고 사셨는데,자식이라곤 나 하나

달랑 있지,아빠는 계속 나이를 먹어가고.....아빠 맘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하지만..내 나이 겨우 23이라구....이 파릇파릇한

청춘이 벌써 애기나 낳고 사는 아줌마가 되어야 겠냐구....]


[그..그래서 어떻게 할려구?]

[아빠는 나보고 선 봐서 시집가래.차라리 너하고 결혼하는게 낫겠다.

처음 보는 남자라 어색하게 자리에 앉아서 이름이 뭐예요?나이는요?

정말 싫다.....]

차라리 그와 결혼을 하고 싶다는 하라의 말에 심한의 양볼이 바알갛게

물들어 갔다.

늘 하라의 친구로서 그녀의 옆자리를 지켜왔던 그 였지만 하라에 대한

감정은 자신의 속으로만 감춰놨을뿐 한번도 하라에게 내색해본적이

없었다.

하지만 직접 하라가 그와 결혼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자 왠지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조...좋아....난 괜찮아...]

[뭐?]

더듬거리며 얼굴을 붉히는 심한을 하라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난 괜찮아...너만 좋다면...너와 결혼을....]

[푸읍.........]

하라가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이 웃음이 너무 헤프다는걸 스스로 알고는 있었지만,심각한 표정으로

얼굴까지 붉히는 심한을 보니 도저히 웃음을 참을수가 없었다.

[야.....너 지금 나랑 결혼할 수도 있다고 하는거야?]

[차라리...나와 결혼하는게 낫다며.....너만 원한다면...난..]

[야!! 정신차려!! 너하고 내가 결혼?으.......]

진저리 치는 하라를 보며 심한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그가 상처받았음을 눈치 챈 하라가 다정히 심한의 손을 잡아주었다.

[너하고 나는 정말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야....내가 힘들때 마다

곁에서 의지할수 있는 나무같은 친구라고....몇십년동안 유지해온

우리의 우정을 그런식으로 깨고 싶지 않아.....]


[하라야....난 네 친구도 계속 되어줄 수 있고,또 너의 든든한 인생의

동반자도 되어줄수 있어!!정말이야.노력할게.]

[야! 소 심한!!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 할래? 나 결혼 안해.어느 누구

하고도 결혼 안한다구...난 평생 아빠하고만 살거야.]

[네 아빠가 바라시는 바라 아닌데도?]

[지금이야 그러시지만 내가 차차 설득해 드리면 아빠도 이해해 주실거야]

#5

우진은 일그러진 얼굴로 억지로 도해에게 끌려 극장안으로 들어섰다.

도해는 기여이 자신의 고집데로 퇴근하는 우진을 이끌고 자신이 보고

싶어하던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으로 온것이다.

[난 정말 영화는 취미 없다구...]

우진이 투덜대며 팝콘을 사고 있는 도해옆에서 못마땅한 표정으로 서서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 자기 이러기야? 며칠만의 데이트라고...싫더라도 한번쯤은 나를

위해 해 줄수도 있는 일이잖아...]

도해의 징징거림이 막 시작되려 하자 우진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아..알았어....]

우진이 마지못해 대답하자 도해의 얼굴이 그새 환하게 변했다.

정말 카멜레온 같은 여자야.....

우진은 속으로 못마땅해 하며 그녀를 따라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영화가 시작되었는지 상영관 안은 어두워 앞도 제대로 분간 못할

정도였다.

[저기 저리 있다....]

도해가 중간 쯤 되는 곳에 비어있는 자리를 손가락질 했다.

우진은 어두운 상영관을 더듬거리며 도해를 데리고 그쪽으로 향했다.

중간에 위치한 자리로 들어가기 위해 우진과 도해가 들어서자 사람들이

발을 들어 길을 비켜주었다.

[죄송합니다...]

우진은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며 비어있는 자리로 향했다.

[아얏!!]

우진이 발을 밟았는지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

[아..괜찮아요.]

으잉? 어디서 들은 듯한 목소리인데?

우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이 밟은 발의 주인공을 보려했지만,

뒤에서 빨리 앉으라는 사람들의 성화에 그대로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영화는 이미 초반을 지나 중반부로 접어들고 있었다.

며칠동안 밤을 센 우진은 실실 잠이 오기 시작했다.

그는 팔짱을 끼고는 졸지 않기 위해 애써 눈을 부릅뜨며 영화의 집중

하려 기를 썼다.



[하라야..나 화장실좀....]

옆자리에 앉아있던 심한이 하라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응.]

심한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그의 무릎에 있던 콜라가 엎어졌다.

[앗!차거....]

심한이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서자 완전히 뒤집어 질뻔한 콜라컵을 재빨리

하라가 붙잡았다.

[조심좀 하지!!]

하라가 주위 사람들이 들을까 목소리를 낮추며 손에 묻은 콜라를 털어

내었다.

[일단 화장실 다녀와 의자는 내가 닦을게..]

[미안...]

심한이 몸을 숙이고 상영관을 빠져 나가자 하라는 자신의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심한이 앉았던 콜라가 젖은 자리를 닦아내었다.

바닥까지 닦으려던 하라는 손에 든 콜라컵이 거추장 스럽자 자신의

오른쪽 손잡이에 마련된 컵 홀더 자리에 컵을 꽂아두고 젖은 의자를

쉽게 치우기 위해 팝콘 상자또한 오른쪽 손잡이에 올려두었다.


발걸이에 손을 올리고 졸고 있는 우진은 느닷없이 자신의 왼팔을 밀쳐

내고 콜라컵과 팝콘을 턱하니 올려놓는 여자를 불쾌한듯 쳐다보았다.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지만 그 여자는 휴지로 의자를 닦아내고 있는

지 고개를 숙이고 있어 확인 할 수가 없었다.

[참 매너 없는 여자군....]

우진이 낮은 소리로 그 여자가 들으라는듯이 중얼거렸다.

우진은 팔짱을 끼고는 다시 스크린으로 눈을 돌렸다.

스크린속에서는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멋진 키스신을 연출하고

있었다.

저런 재미없는 멜로 영화를 사람들은 왜 좋아하는지....

우진은 하품을 하며 따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우진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온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는 슬며시 고개를 내려 자신의 남성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옆에 앉은

여자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이여자가....어딜 만지고 있는거야?


오호...너무 멋져....

주인공들의 키스씬에 넋이 나간 하라는 침을 흘렸다.

언제나 저런 로맨틱한 첫 키스를 꿈꾸워 왔던 그녀였다.

키스씬에 몰두하며 하라는 팝콘을 집기 위해 오른쪽으로 손을 뻗었다.

팝콘을 집기 위해 뻗은 하라의 손에 무언가 물컹한 것이 손에 잡혔다.

어어?

이게 뭐지?

하라는 말캉한 것이 점점 굳어지는 것이 느껴지자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려갔다.

뭐야 뭐야...이건 대체 뭐지 팝콘은 아닌데...

하라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천천히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진은 어둠을 틈타 성추행을 일삼는 뻔뻔한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순간 스크린속의 배경이 환한 낮으로 바뀌며 극장안을 환히 밝혀주었다.

환한 빛속에서 마주보고 있는 남여의 얼굴이 환하게 드러났다.

헉..이 여자는.....


헉...이 남자는.....

하라가 놀란 눈으로 슬며시 시선을 자신의 손을 내렸다.

그녀의 손이 정확히 그 재수없는 남자의 바지 앞섶에 턱하니 올려져

있었다.

헥~내가 지금 무슨짓을....


두 남녀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동시에 둘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으악~~~~~~~~

놀란 사람들이 우진과 하라를 쳐다보았다.

하라는 더러운 벌레를 만졌던 것처럼 우진의 남성에게서 손을 떼고는

후다닥 자신의 가방을 들고는 정신없이 자리를 박차고 통로쪽으로

달려나갔다.

[거기서!!]

뒤늦게 정신차린 우진이 소리치며 하라를 쫓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젠장젠장....왜 또 저 남자야....

입가를 훔치던 하라는 그 손이 그 남자의 거시기를 만졌던 손이라는걸

깨닫자 헛구역질을 하며 문을 박차고 상영관을 나왔다.

[하라야!!]

때 마침 화장실에 나온 심한이 상영관에서 뛰쳐나오는 하라에게 손을

흔들었다.

[무슨 일이야?]

심한의 하얗게 질린 하라를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빠...빨리 여기서 나가자.]

하라가 심한의 팔을 붙잡고 그를 재촉했다.

[왜? 아직 영화 안끝났어.....]

[아이씨..빨랑!!]

[거기 안서!!]

하라의 뒤로 문이 상영관 문이 벌컥 열리며 씩씩거리며 우진이 뛰쳐

나왔다.

뒤돌아본 하라는 두 눈을 질끈 감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으...젠장]

하라는 홱 고개를 돌리고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무시무시한 표정의

우진에게 뻘쭘한 미소를 지었다.

[저..그게요..약간의 오해가.....]

[오해? 무슨 오해?]

이미 이성을 잃은것 같은 그의 표정을 보니 하라는 사태가 심각함을

깨닫고는 냅다 여자 화장실로 뛰어갔다.

[하라야!!]

[거기 안서!!]

우진이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제끼며 하라를 뒤쫓아 갔다.

하라는 여자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는 비어있는 화장실안으로 들어가 안에서 문을 걸어잠구었다.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뻗칠데로 뻗친 우진은 여자화장실이라는것도

의식못한체 무작정 화장실 안으로 쳐들어갔다.

다행히 화장실 안에는 아무도 있지 않았다.

[거기 숨어 있는거 다 알아..빨리 나오지 못해!!]

우진의 고함에 하라는 움찔하며 문고리를 단단히 손으로 움켜쥐었다.

[오...오해하고 말씀 드렸잖아요....]

[오해? 오해 좋아하시네....포르노 비디오에 모자라서 이젠 내...

내....그...]

차마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남성을 표현하지 못한 우진이 멈칫거렸다.

[재수없게 당신이 자꾸 얽혀드는걸 나보고 어쩌란 말이예요.....

정말 난 그곳에 팝콘이 있는 줄 알고 손을 뻗었지...팝콘이 있어야 할

그곳에 당신의 그......그...아이참 거시기가 거기 있는 줄 몰랐다구요]

하라의 적나라한 표현에 우진의 표정이 또다시 일그러졌다.

[당장 나와!!]

[왜 자꾸 반말이예요!!]

하라가 화장실 안에서 야무지게 대꾸했다.

우진은 하라가 숨은 화장실 앞으로 다가와 문을 열려 잡아 흔들었다.

하라는 우진이 문을 못 열게 하려 기를쓰고 문고리를 잡고 반항했다.

[뭐예요!!]

때마침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던 여자들이 우진을 보고는 비명을 지르며

화장실을 뛰쳐나갔다.

[당신....밖에서 내가 꼼짝안하고 기다릴테니...어디 하루종일이라도

숨어 있어 보시지.]

우진이 소리치며 발로 문을 걷어찼다.

그리고는 화장실을 나가려다 문득 무슨 생각이 났는지 제자리에서 마치

우진이 밖으로 나가는것 같이 발소리를 냈다.

그의 생각데로 잠시뒤 딸각하는 빗장 풀리는 소리가 나면서 문이 빼꼼이

열리고 있었다.

우진은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며 바싹 벽쪽에 붙어 숨어버렸다.

하라의 얼굴이 슬며시 문안에서 나오더니 화장실에 아무도 없음을 알고

옷을 털며 화장실 안에서 당당히 빠져나왔다.


[생각보다 사람을 쉽게 믿는군.]

[어어....]

하라가 어색한 미소로 몸을 돌려 그녀에게 다가오는 우진을 보았다.

[나간거 아니였어요?]

[나간척좀 했지.]

[헥...]

하라가 다시 화장시롤 뛰어들어가려 했지만 이미 재빨리 우진이 손을

뻗어 하라의 팔을 붙잡았다.

[이거 놔요!!!]

하라가 버둥댔지만 우진의 손아귀는 갈고리처럼 꽉 하라를 붙잡고는

놓치를 않았다.

[당신을 경찰에 넘겨야 내 속이 편안하겠어.]

[겨..경찰이요?]

경찰이란 소리에 하라는 겁을 먹기 시작했다.

[당신때문에 회의를 망쳐 회사에 큰 손실을 입었고,게다가 성추행까지]

[성추행이라니요!!오해라고 말씀 드렸잖아요!!게다가 난 당신같은

남자는 취향이 없다구요!!]

생각없이 내뱉은 하라의 말에 우진이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상하네...내 앞에서는 모든 여자들이 벌벌 떠는데.......

당신만은 내가 아니라고 하니.....당신 취향이 독특하다고 해야 하나?

아님 내가 그동안 왕자병에 걸려 있었다고 해야 하나?]


[당신이 뭐가 좋다고 여자들이 벌벌 떠는지 모르겠네요...

얼굴이 잘생기기라도 했나.....]


뭐야..이 남자 잘생겼잖아?


[아..아니...남자는 모름지기 성격이 좋아야 하는데 당신은 마치

마치......]

딱히 뭐라할 표현이 생각나지 않자 하라는 머리를 굴리며 이 거만한

남자에게 타격을 줄 만한 표현을 생각해 내려 애썼다.

[맞아요!! 마치 싸이코 같잖아요!!]

[뭐? 사이코?]

[네 사이코요.]

하라가 우진을 표정을 보며 자신의 표현이 그의 신경을 건드리는데

성공했음을 알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과 입씨름을 하며 시간을 죽이기는 싫소.당장 경찰에 넘겨야 겠어]

[이거놔요!!]

하라가 끌려가지 않으려 애썼지만 우진은 질질질 그녀를 화장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우진에게 끌려나오는 하라를 보고는 심한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그 손 놓지 못해요?]

심한이 여차하면 덤빌 태세로 우진을 노려보았다.

[남의 일에 상관하지 말고 비키시오.당신한테는 볼 일 없으니까.]

[우진씨!!무슨일이야?]

도해가 놀란 표정으로 우진에게 다가왔다.

[지금 경찰에 신고해서 빨리 이곳으로 와 달라고 해]

[경찰?]

[어서!!]

[아..알았어.]

도해가 핸드백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난 이제 죽었다....

하라가 두 눈을 감으며 체념한듯 축 늘어졌다.

[빨리!! 이손 놔요!!]

심한이 소리치며 우진에게 매달리자 우진은 한손을 거뜬이 심한을

밀어냈다.

심한은 어이없게도 맥 없이 바닥에 떠밀려 넘어져 버렸다.

정말 끔찍하군.

하라는 바닥에 쓰러져 비실대는 심한을 불쌍하다는듯이 쳐다보았다.

[이.....날 쳤어?]

심한이 바닥에서 일어서더니 놀라운 사랑의 힘으로 힘껏 주먹으로 우진의

얼굴을 가격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우진이 뒤로 밀려나며 하라를 잡았던 손을 놓치고

말았다.

[하라야!!]

심한이 손을 내밀자 하라는 얼른 심한의 손을 붙잡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거기 안서!!]

우진이 심한에게 맞은 얼굴을 손으로 감싸며 그들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발빠른 두 사람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올라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우진씨!! 괜찮아?]

도해가 우진에게 달려왔다.

[젠장!!저 여자를 놓치면 안되는데...]

우진이 소리치며 분한듯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쳤다.

[뭐야..저 여자는 뭐고 또 우진씨 때린 저 남자는 뭔데?]

[있어...지독히도 재수 없는 여자....]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우진이 엘리베이터쪽을 노려보았다.



[하라야 괜찮아?]

간신히 버스에 오른 심한이 숨차 하며 하라에게 물었다.

[괜찮아....]

[그 남자는 누구야?왜 널 붙잡고 경찰을 부르는 건데....]

[넌 모르는 남자야....있어...아주 재수 없는 남자.]

#6


[우으으....]

우진은 거울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며 신음을 내뱉었다.

그 비실대던 남자에게 맞은 얼굴 한쪽에 멍이 들어있었다.

두번씩이나 재수없게 얽혀드는 그 여자가 그는 너무나도 맘에 안들었다.

마치 머피의 법칙과도 같은 징크스를 가진 여자였다.

며칠전 다시는 그 여자를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던것이 생각나자

더욱 죽을 맛이였다.

그는 시선을 내려 자신의 알몸을 훏어보았다.

젠장..하필이면 그때 그 여자의 손길에 멍청이 같이 반응할게 뭐람.

수치심이 몰려들었다.

이대로 그냥 지나칠수만은 없었다.

꼭 그 여자를 찾아내어 자신이 받은 온갖 모욕과 수치심을 돌려주리라.


기다려라.....여자여.

거울속으로 우진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총을쏘는 흉내를 내었다.



집으로 돌아온 하라는 기진맥진해서 그대로 자신의 침대에 쓰러졌다.

벌러덩 천정을 보고 누운 하라는 그 남자의 얼굴을 기억해내며

천장에 그림을 그려보았다.

오똑한 콧날,섹시한 입술,헝클어진 검은 머리카락,사람을 압도하는

그 검은 눈동자.......

헉...뭐야. 내가 뭐하는 짓이지?

하라는 손을 뻗어 천장에 그린 그의 얼굴을 박박 지워버렸다.

그 재수없는 남자가 잘생겼다고 생각하는거야 지금?

으...솔직히 잘 생긴건 사실이잖아?

에고 모르겠다.

하라는 침대에서 일어나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갔다.

세면대의 수돗물을 틀어놓은다음 그 남자에게 닿았던 자신의 손을

때밀이 수건으로 박박 씻어내었다.

그리고는 손바닥을 코에 갖다대고는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아보았다.

[성추행? 치이...어디서 날 성추행범으로 밀어붙이려고 해?재수없어]

하라는 손바닥의 연약한 살이 벌개질때 까지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하라의 친구 윤경이의 결혼식 날은 그야 말로 화창한 날씨였다.

하라가 야외 결혼식장에 도착하자 이미 많은 하객들로 결혼식장은

복잡했다.

하라는 자신이 입은 푸른 드레스를 정리하며 신부가 있는 곳으로 다가

가서는 친구에게 축하의 미소를 보냈다.

[하라야!!]

순백색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윤경이 하라를 반갑게 맞이했다.

아름다운 친구의 모습에 하라는 은근히 샘이 났다.

[윤경아 축하해!!]

하라는 윤경을 끌어안아주며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꺼냈다.

[너 안오는줄 알고 걱정했어.]

[차가 막혀서 좀 늦었어.기분 어때?]

[떨리고 얼떨떨하지 뭐....아참 이따가 피로연에 참석할거지?]

[물론.당연하지.]

윤경은 하라의 팔을 잡아 이끌더니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우리 신랑 친구중에 너한테 소개 시켜 주고 싶은 사람 하나 있거든.

기대해도 좋아.]

[정말?]

하라가 눈을 빛내며 윤경에게 물었다.

[그럼.너를 위해 특별히 우리 신랑한테 부탁했다니까.이따가 피로연때

자연스럽게 만나게 해 줄게.]

[알았어!!]


많은 사람들의 축복속에 신랑신부는 무사히 결혼식을 끝마칠수 있었다.

신랑 신부와 함께 그들의 친구들은 따로 마련된 피로연이 마련된

단란주점으로 모두 몰려갔다.

윤경의 신랑이 벤처기업 사장이라서 그런지 신랑 친구들은 하나같이

인물이면 인물,직장이면 직장 모두 빼어난 킹카들이었다.

[야야..저 남자 괜찮지 않냐?]

하라의 옆에 있던 미경이 하라의 옆구리를 찌르며 한 남자를 가리켰다.

할 일없이 맥주잔을 홀짝이고 있던 하라는 미경이 가리키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헥?

맥주잔을 들고 있던 하라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 하느님...정말 무심도 하시지...왜 또 저 남자란 말입니까...

하라는 계속되는 악연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미경이 가리킨 곳에 신랑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 문제의 재수없는 남자

우진이 서 있었다.

[아...왠지 배가 아프네...미경아 나 먼저 가야겠다.]

하라가 슬그머니 자신의 핸드백을 챙겼다.

[뭐 벌써 가려구? 안돼!!니가 빠지면 윤경이는 어쩌라구!]

미경은 하라의 팔을 붙잡고 놔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찌 할 바를 모르고 하라가 쩔쩔매고 있을때 하라를 부르는 윤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라야!!]

하라는 최대한 자신의 긴머리로 얼굴을 가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윤경에게 다가갔다.

[너 한테 소개 시켜줄 사람 있다고 했잖아...인사해..여기는 오 하라]

[인사해요..우진씨 내 가장 친한 친구라서 특별히 우진씨 한테만

소개시켜 주는 거라구요.]

윤경은 쩔쩔매는 하라의 등을 떠밀었다.

[아..안녕하세요.]

고개를 들던 하라가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당신!!]

[앗.....]

두둥~원수는 외 나무 다리에서 만난다.

자신을 잡아먹을듯이 노려보고 있는 남자앞에 선 하라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였다.

[하라씨..이 녀석 우리 친구들 중에서도 제일 킹카이니까 놓치면

안됩니다.]

윤경의 신랑이 우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하라에게 말을 건넸다.

[아...네....]

쥐구멍이라도 있었으면......

[반갑습니다.정 우진이라고 합니다.]

우진이 하라에게 이를 갈며 손을 내밀었다.

[오 하라예요.하하^^;]

하라가 우진이 내민 손을 향해 억지로 자신의 손을 갖다대었다.

하라의 손을 힘주어 꽉 쥐면서 찌릿하는 우진의 시선이 느껴졌다.

꿀꺽~난 죽었어....■.■

[자자~우리 모두 재미있게 파티나 하죠!!]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친구들의 짖궂은 파티가 시작되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하라는 윤경과 그녀의 신랑에 의해 우진의

옆자리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번엔 하느님이 날 도와주시는가 보군....]

우진이 신랑에게 미소를 보내주며 나즈막히 중얼거렸다.

[왜..왜요?]

하라또한 자신에게 미소를 보내는 윤경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그에게

물었다.

[당신을 잡을 수 있게 딱 한번만 더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거든.]

헉..이 남자 단단히 벼르고 있군...

[축하해요...이렇게 딱 날 잡으셨네요....]

[어떻게 당신을 처리해 줄지 생각중이니까 도망갈 생각 말아요.]

[도망가고 싶어도 우리한테 내내 시선을 떼지 않는 저 신혼부부때문에

도망 못 가겠네요.....]


신혼부부 노래에 우진과 하라는 서로 멋적은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박수장단을 맞춰주는척 했다.

[자~다음은 우리 신랑 친구들중에서도 킹카 정우진군의 축가가

있겠습니다!!]

사회자의 소리에 사람들이 우진을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정우진!정우진!!]

그의 이름을 외쳐대는 사람들로 가득하자 우진은 멋적은 표정을 지으며

무대앞으로 나갔다.

한때 테리우스로 각광을 받았던 신성운이라는 가수의 노래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우진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여자들은 기절하는 시늉을

하며 열화같은 괴성을 질러댔다.

하라는 이때다 싶어 도망가기 위해 은근슬쩍 엉덩이를 움직였다.

그때 우진이 하라를 향해 앞으로 나오라는듯 손가락으로 손짓을 했다.

우진과 눈이 마주친 하라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당신....

우진의 눈빛이 하라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것만 같았다.

[뭐하니? 파트너가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윤경이 하라를 앞으로 끌어내고는 우진의 옆에 떠밀었다.

하라는 죽을상을 지으며 우진의 옆에서 몸을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는

시늉을 했다.

우진의 노래가 끝나고 사람들의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어딜 도망가려고 해? 어림도 없지....]

우진이 하라의 귓가에 속삭였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것 뿐이라구요...]

자신의 계획이 우진에게 들킨것 같아 기분이 나빠진 하라는 불투명스럽게

우진에게 대답했다.

[자!!이젠 커플 게임이 있겠습니다.커플은 모두 앞으로 나오세요!!]

뭐야?커플 게임?

들어가려던 우진과 하라를 사회자가 붙잡고 멘트를 날리자 끼리끼리

커플을 만들어 사람들이 무대 앞으로 나왔다.

사회자는 길다란 빼빼로 과자 하나씩을 커플들에게 건넸다.

[자!!가장 짧게 끊는 팀에게는 신혼부부측에서 특별히 마련한 선물을

드리겠습니다.자..준비하시고....시~작]

사회자의 구령에 따라 커플들이 저마다 빼빼로 과자의 끝을 입에 물고서

천천히 거리를 좁혀나가기 시작했다.

[난 죽어도 당신하곤 할 수 없어요.]

하라가 팔짱을 끼며 등을 돌렸다.

[누군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당신 얼굴만 봐도 끔찍하다구....

하지만 저기 우릴 보고 있는 신혼부부를 보라구..]

우진이 이사이로 말을 내뱉으며 옆을 가리키자 하라는 우진이 가리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윤경이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빨리 하라는듯 응원을 보내주고 있었다.

[신혼 부부의 흥을 깨고 싶은 마음은 없소.]

[정말...미치겠네.좋아요..그냥 하는척만 해주자구요.]

하라는 과자를 입에밀고 우진에게 반대쪽을 내밀었다.

우진도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과자끝을 물고는 천천히 간격을 좁혀갔다.

그런데 처음 대충하겠다던 그들의 마음과는 달리 게임에 몰두한 사람들의

열기때문이였는지 어느새 그들도 게임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어어...너무 가까이 오는거 아니예요?]

하라가 주춤하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라야 힘내!!]

[우진이 화이팅!!]

그들을 응원하는 윤경과 그의 신랑의 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기여이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입에 물고 있던 과자가 툭 부러지며 우진의 입술이 그대로 하라의 입술로

정면 박치기를 했던 것이다.

[읍~]

[헉~]

둘은 갑자기 일어난 일에 놀라 서로의 입술을 맞대고는 그대로 얼어

붙어버린체 서로의 눈을 쳐다보았다.

[꺄악~~우진씨 너무 찐해요!!]

윤경이 발을 동동구르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읍~]

하라가 먼저 입술을 떼고는 손등으로 박박 자신의 입술을 문질러댔다.

하라의 반응과는 달리 우진은 여유롭게 허리를 피고는 입가에 묻은

과자부스러기를 훔쳐냈다.

[꼭 그렇게 벌레 씹은 표정을 지어야 겠소?]

우진이 유난을 떠는 하라에게 핀잔을 주었다.

[윽..당신 입술이 닿았다구요!!어떻게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냐구요!!]

[당신 키스도 안해봤소? 그렇게 유난떨게 뭐 있소!]

[망할자식!!내 인생의 첫 뽀뽀였단 말이야!]

하라의 외침에 이어 곧 그녀의 구두 앞머리가 힘껏 우진의 정강이를

향해 날라들었다.

[윽~~~~저 망할....]

우진이 정강이를 감싸며 그대로 무대에 주저앉았고 하라는 눈물을 훔치며

그대로 밖으로 뛰쳐 나가버렸다.

#7
키스.

어흑.......하라는 손등으로 입술이 떨어져나가라 부비부비 닦아내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 망할 자식이 내 첫 키스를 빼앗아 가다니.......

하라는 정신없이 피로연장을 빠져 나와 택시를 잡기 위해 승강장 쪽으로

달려갔다.

[잠깐!!기다려~]

뒤에서 외치는 소리에 하라가 뒤돌아 보자 다리를 절룩 거리며 우진이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무슨 여자가 그렇게 억센거요!]

아직도 시큰거리는 정강이를 붙잡고는 우진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뭐예요!]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하라가 우진을 쏘아보았다.

[내가 왜 당신에게 이렇게 구타를 당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좀 알아야

겠소.내가 당신엑 죽을죄를 지은것도 아닌데 이건 좀 심하다고 생각

하지 않소?]

하라가 코를 훌쩍거리며 우진이 가리키는 그의 정강이를 쳐다보았다.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았죠!!]

[내가 뭘 잘못했는데!!]

화가 난 우진의 음성이 높아졌다.

[이..이 나쁜놈~당신이 내 입술을 빼앗아 갔잖아!!]

하라가 씩씩거리며 당장이라도 우진에게 달려들 기세로 주먹을 움켜쥐자

우진이 기가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신 나이가 몇살이요?]

[내 나이는 왜요?■..■+]

[조선시대 정절녀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성년자도 아니면서 그깟

입술 조금 닿았다고 그렇게 펄펄 뛰다니.......설마 뽀뽀 했다고

책임지라는 둥 어쩌라는둥 고리타분한 여자는 아니겠지?]

[이..이남자가 말이면 다 하는줄 아나.....그걸 말이라고 해요!!]

드디어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하라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가 재빨리 몸을 옆으로 비끼자 하라는 중심을 잃고 그대로

땅바닥에 털석 넘어지며 고꾸라졌다.

[아야......]

땅에 엎어지면서 팔꿈치가 바닥에 쓸리며 따끔한 느낌이 뒷따랐다.

하라는 너무도 창피한 생각에 자신이 언제 일어섰는지도 모르게 빠른

속도로 벌떡 땅바닥에서 일어났다.

[이씨...피했어!!]

하라가 주먹을 쥐고 그를 때리기 위해 손을 들어올렸지만 우진이 그녀의

팔목을 붙잡아 버렸다.

그에게 손을 붙잡히 하라가 바둥거리며 그의 손아귀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려 했다.

[잘들어 이아가씨야.난 이제 당신이라면 살이 떨릴 정도야.

왜 자꾸만 내 앞에서 알짱거리면서 사사껀껀 내 일을 방해하는거지?

성격은 괴팍한데다가 포르노 씨디를 늘상 가지고 다니는 변태기질에,

당신같은 여자라면 나 좋다고 매달려도 사양이요.]

[사돈 남말 하시네요.자기가 제일 잘난줄 아는 왕자병 주제에..쳇]

하라도 지지 않고 우진에 독기어린 말들을 쏟아내었다.

[나도 당신이라면 지긋지긋하네요.피차 일반이니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서로 몸사리고 살자구요.아.저.씨]

하라는 일부러 그를 아저씨라 불렀다.

그녀보다 나이가 많음을 비꼬는 그녀의 방식이였다.

하라는 그에게 손목을 빼내고는 막 지나가려던 택시를 불러세웠다.

[아저씨하고 다시 마주치게 된다면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고 말겠어요]

하라는 소리치고는 택시에 올라탔다.

하라를 실은 택시가 출발하자 우진은 거칠게 자신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대책없는 여자같으니라구.쳇!

그는 바지를 위로 들어올려 시퍼렇게 멍든 자신의 정강이를 보고는

욱씬거리는 아픔에 인상을 찡그렸다.



우진이 자신의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서자 집에서 맛있는 음식 냄새들이

솔솔 풍겨나오고 있었다.

왠일인가 싶어 놀란 우진이 거실로 뛰어들어가자 마침 앞치마를 두른

나 미녀 여사가 식탁에 보글보글 끓고 있는 찌개를 올려놓고 있던

참이였다.

[새어머니!!]

[오~사랑스런 내 아들 이제 오는거냐?]

[어쩐일이세요 연락도 없이 여기는 어떻게 들어오셨구요!!]

우진은 일부러 그의 새어머니에게 그의 아파트 열쇠를 주지 않았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생각에 뻔질나게 그의 새어머니가 들락 거릴거라는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경비원한테 떼 좀 썼지.네 새어머니라고 하니까 금방 열어주더구나

배고프지? 오랜만에 실력발휘좀 해봤는데 맛있는지 모르겠네?]

나 미녀 여사는 콧노래 까지 흥얼거리며 가스렌지 쪽으로 다가갔다.

우진은 그의 새어머니의 방문이 왠지 달갑지 않았다.

그의 새어머니가 이번에 무슨 꿍꿍이로 직접 그의 집을 방문했는지,우진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처럼 조마조마 했다.

우진이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식탁에 앉아 나미녀 여사도 앞치마를 벗고

아들 앞에 앉았다.

우진은 수저를 들어 찌개를 떠서 맛을 보았다.

[어떠니? 맛있니?]

나 미녀 여사가 싱글거리며 아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네 맛있네요.]

입안에 느껴지는 짠맛을 억지로 참으며 우진은 그의 새어머니를 위해

간신히 미소를 지어주었다.

[호호호....사실 찌개가 좀 짜지 않나 걱정했는데 네 입맛에 맞다니

다행이구나....어서 많이 먹어!]

[새어머니도 잡수세요.]

[그래.그래.]

우진은 얼른 그의 새어머니가 눈치채지 못하게 물컵을 들어 물을 들이켰다.

[일요일날 시간있니?]

식사를 하던 나 미녀 여사가 은근슬쩍 우진으에게 물어왔다.

[일요일이요?]

[응.일요일에 내 선자리 약속해 두었으니까 차질없게 준비하고 있어라!]

드디어 우진이 우려하던 일이 그의 새어머니 입에서 흘러나왔다.

선이라니.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가.

[새어머니.....전 선보는거 싫어요.]

[너! 나하고 약속을 벌써 잊은거니!!]

며칠전 아침에 도 도해와 마주친 사건으로 덜미를 잡힌 우진이 억지로

새어머니를 달래느라 생각없이 내뱉은 말을 나미녀 여사는 아들에게 상기

시켜주려는듯 소리를 쳤다.

[새어머니.....]

[군말 하지 말고,일요일날 내가 직접 와서 너랑 같이 갈테니 그리 알어]

결혼자체에 흥미가 없는 우진에게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선 자리가

달가울리가 없었다.

[정말 놓치기 아까운 규수다.내 며느리로 딱 맞았으면 하는 아가씨니까

정말 신중히 잘 해봐야해.알았지? 아들~이 어미의 소원을 저버리는건

아니겠지?]

[아...알았어요.하지만 그 여자가 제 맘에 들지 않는다면 만나지 않을

거예요.싫은 여자랑 억지로 만나는거 제 성격에 맞지도 않구요.]

[그럼.....걱정말아라.너도 그 아가씨가 쏙 맘에 들거야.들구말구.]

나 미녀 여사는 장담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라는 못내 맘에 안든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가 불편한듯 앉아있는

의자에서 엉덩이를 움찔거렸다.

오늘 그녀와 만나기로 한 남자는 약속 시간 10분이 지나도 나타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하라는 신경질 적으로 핸드백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어 1번을 꾹 눌렀다.

[여보세요? 아빠!뭐예요.오늘 이 남자 나오기는 하는거예요?]

[왜.......아직 도착 안했어?]

[10분이나 지났다구요.정말 매너 꽝인 남자네요.안봐도 훤히 알겠어요.]

하라가 투덜대자 동추는 혹시라도 그 핑계로 하라가 선을 안보겠다고

나설까봐 조마조마 했다.

[하라야 아빠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까 기다리고 있거라!

내가 그쪽에 연락해 볼게]

[딱 10분만 더 있다가 갈거예요.]

하라는 전화를 끊고는 목이 타는듯 자신의 앞에 놓인 냉수잔을 들어

올렸다.

물을 들이키는 하라의 눈에 하라가 있는 호텔 커피숍으로 들어서는 한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헥?

저 남자가 왜 또 여기를.......

하라는 커피숍 안을 두리번 거리며 살펴보는 우진을 피해 얼른 테이블

밑으로 몸을 숨겼다.

아씨......정말 찰거머리 같은 놈이군.

하라는 우진보다 자신의 상황이 더욱 신경에 쓰였다.

여기는 주로 선을 보는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인데 여기서 하라를 그가

보기라도 한다면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 수 도 있겠다 싶었다.

저 남자가 여기는 왠일이지?

설마 저 남자도 나처럼 선을 보러 온건 아니겠지?

하라는 우진이 자신이 있는쪽으로 다가오자 더욱 몸을 낮추고는 테이블

밑에서 쪼그리고 앉아 그를 피해 테이블 주위를 빙빙 돌며 몸을 숨겼다.

우진은 시계를 한번 쳐다보고는 인상을 찡그리며 하라의 테이블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서서히 쪼그리고 앉아있는 하라의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으....다리야.

하라는 손가락 끝에 침을 묻혀 코에 열심히 찍어 발랐다.

하지만 다리에 난 쥐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가 눈치채지 못하게

슬며시 테이블 밑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가 창가쪽으로 눈을 돌리자 하라는 이때다 싶어 벌떡 마저 몸을 일으켰

다.

그 순간 하라의 옆으로 쥬스잔이 담긴 쟁반을 들고 서빙하던 웨이터와

하라가 부딪치자 웨이터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쥬스잔이 땅바닥에 떨어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갑작스런 소동에 사람들이 시선이 일제히 쏠렸고,우진또한 예외가 아니

였다.

[맙소사! 또 당신이요?]

웨이터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하라를 발견한 우진이 일어서며 끔찍한

비명을 질러댔다.

[왜 또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날 따라온거요?]

[세상에 누가 당신을 따라다녔다고 그래요? 여기는 내가 먼저 와 있었고

당신이 나중에 들어왔다구요!!엄연히 따지면 당신이 날 따라온거라구요]

[설마.....당신 여기에 선보러 온거요?]

우진이 하라의 차림새를 훑어보더니 그의 입가에 재미있다는 듯한 미소가

슬며시 나타났다.

[누...누가 선을 보러 왔다고 그래요?]

하라는 속으로 뜨끔했지만,일부러 아닌척 오히려 그에게 큰 소리쳤다.

[아니면 그만이지만......내가 보기엔 당신 옷차림이나 딱 선보러 온

여자랑 똑같은데......]

젠장.

하라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8

능글맞은 웃음을 짓는 우진의 앞에서 하라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울상을 지었다.

정말이지 그의 표정이 너무도 얄미워서 그의 볼살을 손으로 잡고 양쪽

으로 힘껏 늘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녀만의 통쾌한 상상에 하라는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헛...왜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요?]

우진이 자신을 노려보며 실실 웃음짓는 하라를 보며 불안한듯 몸을 잔뜩

움츠렸다.

[어떻할까요? 다시 당신앞에 나타나면 혀를 깨물고 죽겠다고 했는데...]

하라는 그의 앞에서 자신의 혀를 길게 내밀고는 깨무는 시늉을 했다.

크헉!

정말 엽기적인 여자군.

우진은 진저리 치며 하라에게 물러나라는듯 손을 내저었다.

하라는 그의 바램데로 그의 앞에서 사라져주기 위해 자신의 핸드백을

챙겨들었다.

[하라야!!]

하라가 막 몸을 돌리려는 찰나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하라는 막 커피숍으로 들어서는 동추에게 손을 흔들다가 그의 옆에서

웃음짓고 있는 곱상한 외모의 중년 여인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아빠 애인은 아니겠구.

하라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예감하는 순간 우진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

나더니 하라의 곁으로 다가왔다.

[새어머니!]

우진이 크게 새어머니라 외치는 쪽으로 하라는 고개를 돌렸다.

히익~이게 무슨 일이람?

동추의 옆에서 함께 걸어오던 여인이 우진을 향해 손을 흔들며 웃음짓고

있었다.

[아니 벌써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이야?]

그들에게 다가온 동추가 하라와 우진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무슨 말씀이예요?]

하라가 느닷없는 동추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동추야 네 딸 사진보다 더 이쁜 아가씨인데?]

[하라야 인사드리거라.우진군 새어머니 나 미녀 여사.]

동추가 하라를 보고 웃음짓는 나 미녀 여사를 하라에게 소개했다.

[뭐..뭐라구요? 정 우진씨 새어머니라구요?]

하라가 멍한 얼굴로 자신의 옆에서 그녀와 똑같은 표정을 짓는 우진을

바라보았다.

[설마.......당신이?]

우진이 하라에게 믿기지 않는다는듯 물었다.

[내가 뭐요?]

[당신 오늘 선보러 나온거요?]

[아니 애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하하 아무튼 우리 없이도 서로

이야기를 잘 나누고 있으니 우린 빠져도 되겠구나.]

나 미녀 여사가 동추와 서로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아빠!이 남자가 오늘 저와 선보기로 한 남자인가요?]

[아니 하라야 왠 뚱단지 같은 소리야? ]

오 마이 갓~~~~~~~

하라와 우진은 서로 동시에 몸을 떨며 멀찍히 떨어졌다.

[말도 안돼......당신이.....]

하라가 우진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그녀의 아버지 뒤로 숨었다.

[말도 안되고 기가 막히는건 나요.당신이 새어머니가 말하던 일등 신부감

이라니....하참...세상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군.]

우진도 불쾌한 심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차라리 아까 혀깨물고 죽는게 나았네요.흥!]

하라가 몸을 돌려 커피숍을 나가려 했다.

[이하동문이요!허 참!]

우진도 화를 내며 커피숍 현관쪽으로 몸을 돌렸다.

익숙하지 않은 하이힐을 신고 걸어가는 하라를 우진이 밀치며 먼저

앞서 현관쪽으로 걸어나갔다.

[우씨!저 인간이!]

하라가 비틀거리며 앞서가는 우진을 따라잡고는 다시 그를 밀치고는

당당하게 먼저 커피숍 현관을 나섰다.

[동추야...쟤들이 왜 저러냐?]

나 미녀 의사는 서로 먼저 나가려 아둥다웅 하며 다투는 우진과 하라의

뒷 모습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허허...글쎄다.벌써 사랑 타툼하는건가?]

[낄낄...그런가? 암튼 오늘 선은 성공적으로 끝난것 같구나!]

초등학교 동창생 친구인 동추와 미녀는 서로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웃으며 사돈지간을 약속하는 악수를 나누었다.



정우진 그 사람의 새어머니와 우리 아빠가 친구 사이라니.....

하라는 자신의 침대위에 앉아 큰 한숨만 푹푹 한시간째 쉬어대고 있었다.

벌러덩 침대에 누워도 온통 정우진의 얄미운 얼굴만이 천정을 도배하고

있었다.

[으악~~~~~~~~]

마침내 참지 못한 하라가 비명을 지르자 온 집안에 메아리 쳤다.

[무..무슨 일이야!!]

놀란 동추가 허겁지겁 하라의 침실로 뛰어 들어왔다.

[왜 그래?]

동추가 자신의 침대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딸을 내려다 보았다.

[아빠.....그 사람 정말 나 싫어요.]

[우진군 말하는거냐?]

[우진이고 우동이고 그 사람 이름 듣는것 조차 살떨려서 싫다구요!!]

[아니 아까 서로 이야기 나눌때는 언제고 싫다니 왠 소리냐!!]

[왜 하필 그 남자냐구요.....그 남자도 나 싫어한다구요.]

[아니!우진군이 너한테 그러더냐? 네가 싫다고?]

[암튼 그 사람이나 저나 서로 싫어하니까 어떻게 엮어 볼려고 하지

마시고 일찌감치 그 남자는 포기하세요.]

[처음 만나보고 어떻게 아냐.....모름직이 사람은 계속 만나봐야

그 진가를 알수 있는거다.아무말 말고 한달동안 더 교제해봐.

놓치기 아까운 신랑감이니까.]

동추는 징징대는 하라를 모른척 하며 침실을 나가버렸다.

[아빠~]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하라의 절규를 무시하고는 동추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이미 미녀로 부터의 전화로 우진또한 하라가 싫다고 펄펄 뛰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 미녀 여사와 동추는 서로

꼭 사돈지간이 되겠다고 굳게 다짐한 바가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저 말괄량이를 구슬려서 미녀의 아들과 결혼시켜야만 했다

오늘 미녀의 아들 우진을 직접본 동추는 생각보다 그가 자신의 사위로

더 마음에 들었다.

인물도 그만하면 미남형이고,무엇보다 사람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가진

그 였다.

그정도의 카리스마라면 천방지축 자신의 딸을 잡아줄 수 있겠다 싶었다.

오 하라.

사랑스런 내 딸.

너야 어떻든 이 아빠는 우진군을 찜했다.크크크




[뭐야 선을 봤단 말이야?]

[시끄러워 목소리좀 낮춰!]

우진이 자신의 사무실로 찾아온 도해를 보며 조용히 하라는듯 손가락을

자신의 입가에 갖다대었다.

[말도 안돼....우진씨 어떻게 나를 놔두고 선을 볼 수가 있는거야?]

발끈 하는 도해를 보며 그는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야 말로 내가 선을 보든 말든 발끈 하는 이유가 뭔데?]

[그걸 말이라고 물어? 엄연히 이렇게 애인이 있는데 다른 여자를 만나

는 이유가 뭐냐고!!]

아무래도 그녀는 자신 이외에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것에 대해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였다.

도해가 우진과 침대를 가끔 나눠쓰는 연인 관계라 하여도 연애를 하는

연인 이상이 아닌 그녀이기에 우진은 아무 생각없이 도해와의 약속을

어긴 이유를 캐묻는 그녀에게 선을 본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이다.

그 이유로 도해가 이렇게 까지 피곤하게 자신의 사무실까지 쫓아와

그를 괴롭힐 줄은 몰랐다.

[여기 사무실이야.어서 돌아가]

도해의 언성이 짜증이 난 우진은 냉정하게 도해의 말을 잘라버렸다.

[자기 나한테 이럴 수 있는거야?]

[자꾸만 이렇게 사람 피곤하게 만들면 나도 어떻게 될지 몰라.

사람 만나고 다니는 것 까지 일일이 이렇게 터치하는 속좁은 여자인줄

몰랐어.]

우진의 말에 도해는 잠시 움찔 거렸다.

우진의 말은 도해에게 실증을 느끼고 있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미친 사람처럼 발광하던 도해는 이내 표정을 싹 바꾸며 우진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어루만져 주었다.

[미안해.......이렇게 속좁게 굴려고 했던건 아닌데....자기가 내 곁을

떠날까봐 그게 겁이 나서.....화 난건 아니지?]

천하의 도 도해가 이렇게 남자에게 비굴해지다니.

도해는 정말 죽고만 싶은 심정이였다.

하지만 정 우진 이라는 남자야 말로 놓쳐서는 안될 그녀 일생일대의

최고의 기회였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릴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이따가 퇴근할때 연락할게 돌아가 있어.그리고 앞으로 이런식으로

사무실까지 찾아오면 곤란해.]

[알았어.....그럼 연락 기다릴게]

도해는 고개를 숙여 우진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유혹하는 듯한 시선을

한번 더 그에게 보내주고는 조용히 우진의 사무실을 나왔다.

[망할자식.]

우진에게 살랑거리던 도해는 그의 사무실을 나오자 마자 대뜸 욕부터

하며 신경질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솔직히 그의 돈을 보고 먼저 접근을 하긴 했지만,연인으로서 나무랄데

없는 열정적인 그가 좋아진 그녀였다.

어쩜 그와 사랑에 빠진지도 몰랐다.

이미 그녀의 손에 쥔 이상 어느것도 포기 할 수 없었다.

설령 그 방해자가 그의 새어머니라 해도.
#9

아줌마~저 왔어요!]

사람이 북적거리는 식당안으로 들어서는 하라는 주방쪽으로 큰소리를

치며 손을 흔들었다.

[오~아가씨 왔네!!]

하라를 잘 알고 있다는듯 주방에 있던 아줌마가 하라를 반갑게 맞아주며

함께 손을 흔들어 주었다.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우진을 속으로 비웃으며 하라는 아무렇지 않은듯

씩씩하게 방석을 가져다가 식당내의 마루방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뭐해요? 앉아요]

[설마...여기서 식사를 하자는건 아니겠지?]

우진이 손가락으로 [보신탕]이라고 쓰여진 메뉴판을 가리켰다.

[맞아요.여기서 밥 먹을건데요?왜요? 싫어요?]

[하..하지만 저건.....]

[설마 남자가 못먹겠다고 뒤로 빼는건 아니겠죠? 어떤 사람들은 혐오

식품이라고 하지만 고 단백질로 몸에 얼마나 좋다구요.]

하라는 자연스럽게 수저통에서 수저를 꺼내 우진과 자신앞에 놔두었다.

[잠깐만요,,,화장실좀 다녀올게요.]

하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옆에 붙어 있는 화장실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힐끔 옆자리에서 열심히 보신탕을 먹고 있는 남자들을 혐오스런

눈으로 쳐다보는 우진을 관찰했다.

어디 한번 골탕좀 먹어봐라....■■■■

하라는 화장실을 가는척 하며 주방에 있는 아줌마를 작은 소리로 불렀다.

[아줌마~]

하라의 목소리를 들은 아줌마는 하라에게 다가왔다.

[아줌마 부탁 하나만 드릴게요.저기에 보신탕 하나주시구요,수육은 따로

개고기 말고,쇠고기로 만들어 주실래요?]

[으잉?그게 무슨 소리여?]

[그러니까 보신탕은 그대로 해주시구요,수육에는 개고기 대신 쇠고기를

넣어 달라구요...아무 말씀 하지 마시구요.]

[응?으잉...알았어.아가씨는 개고기 못먹지.....알았어.]

아줌마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라는 장난을 준비하는 개구장이 같은 표정

으로 우진이 앉아있는 곳으로다가갔다.

[아...배고프다....]

하라는 식탁위에 있는 물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난 위가 좋지 않아서 국물없는 수육을 먹을테니까 우진씨는 탕으로

드세요.]

[정말 당신도 보신탕을 먹는단 말이요?]

[네.왜요? 이상해요?]

[아..아니...나도 화장실좀 다녀오겠소.]

우진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갔다.

이마에서 삐질삐질 식음땀이 배어나왔다.

화장실로 들어가려던 우진의 귀에 주방에서 떠들어 대는 주방 아줌마들의

목소리가 들여왔다.

[아니 못먹으면 못먹는다고 하지.왜 쇠고기를 개고기처럼 꾸며달라고

한데.....보신탕 집에 왔으면 개고기를 먹어야지.....]


[아이...그러지 말어.저 아가씨 맨날 여기와서 쇠고기 먹고 가지

언제 보신탕 먹고 가는거 봤어?]


[애인 따라 왔으니 개고기 먹는 다는 말은 차마 못하겠나 보지?]


우진은 주방 아줌마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하라임을 곧 알아챘다

망할 계집애 같으니라구.......날 골탕먹이려구?

우진은 더운듯 손으로 부채질을 하는 하라를 보며 슬며시 주방으로 들어

가 주방 아줌마를 불렀다.

[아줌마...]

[예?]

[아까 저 아가씨가 부탁한 쇠고기 말입니다.]

[아...네]

[제 애인이 요즘 몸이 허해서요.몸보신좀 시켜 줄라고 데리고 왔는데

저렇게 먹기를 싫어하니.....제 애인이 쇠고기 부탁했었죠?]


[아니!애인한테 비밀로 해달라고 그러더니만 다 알고 있네.]

[저 죄송하지만....수육과 보신탕용 고기 바꿔주시면 안될까요?

그러니까 보신탕 안에 쇠고기를..수육에는 개고기를....]

[하하하....어이구 두 애인이 서로 끔찍이도 여기네...좋아요.그렇게

해드리지요.]

[하하..감사드립니다.]

우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하라에게 다가왔다.

[무슨 남자가 화장실에 그렇게 오래 있었요?]

하라가 핀잔을 주었다.

[손좀 씻느라고....어 저기 음식 오네...]

우진이 입맛을 다시며 반갑게 음식을 맞이했다.

그의 달라진 모습에 하라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이게 아닌데.....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돌아가는것 같자 슬슬 그녀는 불안감이 느껴졌다.

[자....아까 배고프다고 했는데 많이 먹어요.]

우진은 손수 자신이 보신탕을 떠서 맛있게 밥과 함께 먹었다.

켁......잘도 먹는군.....뭐야 보신탕을 좋아하는거야?

맛있게 먹는 우진을 보며 하라도 자신앞에 있는 수육에 젓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여기서 질 수는 없지.

[아....맛있겠다.이렇게 몸 보신 해보는게 얼마만이야?]

하라는 젓가락으로 개고기로 둔갑한 쇠고기를 집어 들고는 입안에 집어

넣고는 쩝쩝 소리를 내며 맛있는 표정을 지었다.

[큭...]

우진은 그녀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올것 같았지만,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에게 먹이려고 한 개고기를 쇠고기 인 줄 알고 맛있게 먹는

하라를 보니 그동안 그녀에게 당했던 수난과 고통들의 체증이 한꺼번에

내려 가는 것 같았다.

[맛있소?]

[그럼요!!역시 뭐니뭐니 해도 수육이 최고라니까요.어서 드세요.]

[많이 들어요..쿡쿡]

하라는 보신탕을 자신앞에서 맛있게 먹는 우진을 보니 모든것이 김이

새버린듯 했다.

깔끔 떠는 이 남자가 보신탕 매니아인줄 누가 알았겠는가.

뭔가 더 강력한 방법을 썼어야 했는거 아니야?

하라는 계속해서 수육을 입안에 집어 넣으며 얄미운 우진을 노려보았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하라는 배가 터질것만 같았다.

그녀의 평소 식사량보다 너무 많이 먹은듯 했다.

[오늘 식사 맛있게 잘했소.]

[별말씀을요....그렇게 개고기를 잘 드실줄은 몰랐네요.]

왠지 거북한 속이 불편한 하라는 인상을 찡그렸다.

[개고기는 먹어본적이 없었지만...뭐니 뭐니 해도 난 쇠고기가 연한게

더 맛있는것 같은데........]

우진의 말에 하라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무슨 말이예요? 쇠고기라뇨?]

[몰랐소? 내가 먹은건 쇠고기고 당신이 먹은건 개고기잖소.

개고기가 여성 피부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당신이 그렇게

개고기를 잘 먹는지 몰랐소.그것도 수육으로.]

[뭐...뭐라구요? 내가 먹은게 개고기?]

헥? 이게 무슨 소리냐구요.....

[내가 주방 아줌마 에게 특별히 부탁좀 했소. 애인이 요즘 하도 비실비실

대고 있으니 고단백 고기좀 먹여야 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내가 먹을

개고기와 당신이 먹을 쇠고기를 바꾸어 주더군.....]


[뭐...당신이 메뉴를 바꾸었다구요? 그럼 내가 먹은게...개..고기?]

[커피라도 한잔 대접하고 싶지만...난일이 바빠서....여기서 헤어져야

겠소.다음에 또 연락하리다.잘가요]

우진은 경악에 몸을 떠는 하라를 보며 자신의 차에 올랐다.

차를 출발시키고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는 하라를 백미러로 쳐다보며

우진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자신이 개고기를 먹은걸 알고 울상짓는 그 표정하고는...하하

깨소금 맛이군...크크크]

우진은 손으로 핸들까지 내려치며 웃음을 멈출줄 몰라했다.

멀어지는 우진의 차를 보며 하라는 헛 구역질을 하며 길가를 막 뛰어갔다

가까이 보이는 약국 간판이 걸린 곳으로 뛰어들어갔다.

[아저씨..소화제좀....아..빨리요.]

하라가 금방이라도 토를 할것같이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어쩔줄 몰라했다

망할 자식.......

아...이게 무슨 꼴이람....내가 놓은 덫에 내가 걸리다니......



몇시간동안 집으로 돌아와서도 하라는 계속 뱃속에 들어있는 모든

음식물들을 게워내어야 했다.

몇번을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위속에 있던 모든것을 게워내고 하라는

기진맥진한 체로 침대위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막 스르르 잠이 들 찰나 쿵쾅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하라의 방문이 벌컥

열리며 동추가 들어섰다.

[하라야!!너 오늘 우진군 만났다며!!]

[소식통도 빠르셔.....그건 어디서 들으셨데요?]

[하하하!!우진군 새어머니가 그러더구나.]


뭐야.....마마보이야? 그새 새어머니께 보고까지 하다니.

[네.....만났죠...]

하라는 힘없이 중얼거리며 배를 침대위에 깔고 누웠다.

[그래...어떻던?]

[아...아빠...저 지금 속이 속지 않아 죽을 지경이라구요.■.■]

하라는 또 울렁거리는 속때문에 배를 움켜쥐었다.

[아니 왜? 우진군이 맛난거 안 사주던?]

[맛난거요?우웩~그 사람 이야기좀 제발 꺼내지좀 마세요.뱃속에서 강아지

몇마리가 살려달라고 아우성 치고 있는것 같다구요....으..우웩!]

하라는 자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는 후다닥 다시 화장실로 뛰어갔다.

[하..하라야!!괜찮아?]

동추가 놀란 얼굴로 하라를 뒤따라 화장실로 들어가 딸아이의 등을 두드

려주며 물었다.

[으.....정말이지 그 남자 얄미워죽겠어요...아빠...그 남자 꼭 만나야

하는거예요?]

하라가 울먹이며 동추를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야? 이 아빠하고 한 약속 잊은거야?]

[아...아뇨.그런건 아니지만....]

[이제 겨우 오늘 한번 만난거 가지고 그러다니.......하라야 아직 한달

중에 하루 지나고 30일 남았다.으흠.]

동추는 뒷짐을 지며 하라의 말을 무시하며 그녀의 방을 나갔다.

#10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파티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하라가 쓴 소설책이 우연찮게 미국 로맨스 작가 협회에 신인작가로

등단하게 되면서 출판사 쪽에서 하라를 위해 축하 파티를 열어주게 되었

던 것이다.

[하라야~]

하라가 출판사쪽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파티장안으로 들어서는 심한을 바라보았다.

[하라야....축하한다.정말 축하해!]

심한이 하라에게 장미 꽃다발을 내밀었다.

정장 차림의 파티장 안의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심한은 색이 바랜

푸른 폴로형 티셔츠에 면바지 차림이였다.

하지만 힐끔거리며 심한을 쳐다보는 사람들과는 달리 하라는 웃으며

진심으로 심한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다면 하라는 심한과 친구사이로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약간은 꺼벙해보이면서도 멋을 낼 줄 모르는 그였다.

그의 촌스러운 모습에 모든 여자들이 그를 꺼려해도 하라는 어릴적부터

서로의 모든것을 속속들이 보여주며 자라온 친구라 그의 진정한 모습을

잘 알기에 그들의 편견이나 시선같은것은 신경쓰지 않았다.

[고마워~아잉 어떻게 알고 왔어?]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미경씨 만났어.왜 나한테 말 안했어?]

[너 공부하는데 방해될까봐 그랬지.]

카이스트 수재인 심한은 지금 중요한 컴퓨터 프로그램 프로젝트에 교수

들과 함께 참여대이라 눈코뜰새 없이 바쁜 그였다.

[아무리 바빠도 널 축하해 주는 자리에 올 수도 없을 만큼은 아니야.]

심한은 내심 하라에게 섭섭했던 마음을 살며시 드러내었다.

[알았어!!미안해.....잘왔다.오늘 여기 맛있는 음식 많거든?배불리

많이 먹고 가라.언제 이런 호화스런 음식 먹어보겠냐!]

하라는 심한의 귓속에 대고 속삭이며 그를 끌고 부페장으로 끌고 갔다.




우진은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파티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속에서 하라를 찾기 위해 두리번 거렸지만,그녀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 하라 라는 이름이 적힌 축하메세지의 커다란

플랜카드만 보일뿐이였다.

그의 새어머니로 부터 오늘 하라의 출판 기념 파티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때

그는 솔직히 좀 의외였다.

부자집 말괄량이 외동딸인줄만 알았는데,그녀가 한국에서는 이름이 있는

로맨스 소설 작가라는 사실을 알았을때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아무리 눈을 씻고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 보아도 도저히 글을 쓰는 작가의

면모다운 모습을 그녀에겐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였다.

모름지기 작가라 하면 정숙하고,조용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야 할터인데

도무지 그 여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얌체공처럼 대책없는 부자집에서

어려움모르고 자란 아가씨이기 때문이였다.

그의 새어머니의 반 협박에 못이겨 축하의 꽃바구니를 들고 파티장에 그녀

를 찾아오기는 했지만,솔직히 그녀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우진은 안내 데스크에 있는 안내자에게 꽃바구니를 건네주었다.

[오 하라 씨에게 전해주십시요.]

[네.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정 우진이라고 전해주시지요.]

[저쪽에 오 하라씨가 계시는데 만나뵙고 가시지요?]

안내자가 가리키는 곳으로 우진이 고개를 돌리자 연분홍빛의 원피스를

입은 하라가 누군가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듯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냥 돌아서려던 우진의 시선이 한 촌스러운 패션의 남자의 팔에 자연

스럽게 팔을 올리는 하라의 손에 멈추었다.

하라는 그 남자에게 우진이 한번도 보지 못했던 그에게는 한번도 보여

주지 않았던 아름다운 미소를 그 촌스러운 남자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문득 호기심반,질투 반의 감정이 생긴 우진은 저도 모르게 하라와 그녀

앞에 서 있는 의문의 사나이에게 걸음을 옮겼다.

과연 어떤 사내이길래,자신만 보면 인상을 찌푸리던 그녀가 그에게는

저렇게 자연스러운 미소를 보내주는 걸까?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지 내가 끼어도 되겠소?]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던 하라가 고개를 돌려 우진을 보는 순간 그녀의

입가에선 웃음기가 단번에 사라져 버렸다.

[당신! 여기 왠일이예요? 난 초대한 기억이 없는데요?]

[새어머니에게 당신 이야기를 들었소.이거 섭섭한데? 적어도 우리 사이에서

내가 당신을 축하해줄 만한 자격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우진은 자신을 보자 안면을 바꾸어 버리는 하라에게 심통이 나자 일부러

그녀를 자극하는 말을 꺼내며 그녀의 비위를 거스리고 있었다.

[하라야....누구셔?]

우진의 말에 이상한 뉘앙스를 느낀 심한이 하라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반갑습니다.정 우진 이라고 합니다. 오하라씨와는 이제 막 시작한

애인 사이라고 말해두는게 좋을 것 같군요.]

[우진씨!]

하라는 그의 당황스런 소개말에 하얗게 얼굴이 질려갔다.

심한 역시 우진의 말에 충격을 받은듯한 표정을 지으며 우진이 그에게

내민 손을 얼떨결에 잡고는 악수를 나누었다.

[저...저는 소 심한 이라고 합니다.하라의 친구...죠.]

소 심한? 이름한번 딱 어울리는군.

굵은 검은테 너머로 보이는 심한의 소심해 보이는 눈빛을 보며 우진은

그와 딱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당신 애인이래요?]

기가 막힌 하라가 허리에 손을 올리고는 우진을 노려보았다.

[선보고 데이트 까지 했으면 애인사이이지.그럼 친구사이요?]

우진은 일부러 주위사람이 들으라는듯 큰 소리로 외쳤다.

주위의 시선을 느낀 하라가 얼굴을 붉히며 우진의 팔을 잡아 끌고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구석진 자리로 끌고 갔다.

[양복 다 찢어지겠소.]

그녀에게 끌려가며 우진이 하라의 손을 뿌리쳤다.

[이봐요! 정우진씨.여기는 나를 아는 사람도 많다구요.괜히 잔치집에

재뿌리려고 하지 말고 조용히 돌아가시죠.....]

하라가 이를 악물며 조용히 그에게 속삭였다.

[이런....축하하러 온 사람에게 너무 푸대접하는거 아니요? 나도 바쁜

일정을 다 물리치고 일부러 찾아온건데......아 급히 오느라 점심식사도

걸렀는데 여기서 간단히 요기좀 하고 가야겠소.]

우진은 기막혀 하는 하라를 밀친체 심한이 서 있는 부페 테이블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테이블에 다가간 우진은 접시를 들고는 싱싱해 보이는 회초밥 몇개를

접시위에 올려놓았다.

너무도 태연자약하게 음식들을 고르고 있는 우진을 보자니 하라는 심통이

나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그를 여기서 끌어내지 못하면 내 성을 갈겠어.

하라는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불끈 쥐고는 우진에게 다가갔다.

[하..하라야...]

하라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심한이 그녀를 말리려 해보았지만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하라를 말릴 수는 없었다.

[이봐요! 정우진씨!]

하라가 크게 우진을 부르며 그에게 다가가는 찰나 그녀가 신은 하이힐이

옆으로 휘면서 파티장에 깔아놓은 붉은 카펫 자락에 그녀의 신발이

걸려버렸다.

[어...어.....으악~~~비켜욧!!]

하라가 비틀거리며 우진에게 소리쳤지만,먹음직스러운 쇠고기 스튜를

접시에 떠담느라 정신이 팔렸있던 그는 그녀의 외침을 듣지 못했다.

[으악!]

하라의 비명소리와 함께 하라는 앞으로 슬라이딩을 하듯 공중으로 붕

뜨면서 앞에 서 있는 우진의 등을 힘껏 밀쳤다.

[헉~]

놀란 소리를 지르며 우진은 누군가 떠다미는 힘에 대항해 앞으로 넘어

지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그는 음식이 담긴 테이블 앞으로 멋지게

널부러진 후였다.

테이블위에 음식이 담긴 접시들이 깨지고 떨어지면서 온갖 음식들이

파티장 이곳저곳에 흩어져 떨어졌다.

[으........]

원피스 아래로 드러난 무릎이 아픈듯 문지르며 하라가 몸을 일으켜

간신히 바닥에 앉았다.

[하라야~괜찮니?]

놀란 얼굴의 심한이 하라에게 뛰어와 그녀를 부축해 일으켰다.

[아...괜찮아.]

하라는 아픔보다는 자신을 둘러싸고 그녀를 지켜보는 사람들때문에

느낀 창피함이 더 무서웠다.

으.....왠 쪽이람.....

헉! 정 우진씨!

하라가 뒤늦게 우진의 존재를 깨닫고 고개를 들어 자신의 앞에 벌어진

끔찍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우진이 부페 테이블위에 대자로 엎드려 누워있었다.

[정우진씨!! 괜찮아요?]

하라가 앞으로 몸을 움직이다 힐이 부러진 구두때문에 걸음걸이가 불편해

지자 하이힐을 벗어 집어 던지고는 우진에게 다가갔다.

우진이 천천히 테이블위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하라쪽으로 몸을 돌렸다.

히익~이게 왠 그지 꼴이야!

하라의 앞에 서 있는 우진의 꼴은 정말 가관이였다.

그의 비싼 양복위로 쇠고기 스튜의 소스가 줄줄줄 흘러 내리고 있었고

그의 머리 꼭대기에는 회초밥 하나가 덜렁 올라가 있었다.

[오하라씨......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건지...말좀 해주시겠소?]

그는 머리위에 있는 회초밥을 손으로 들어내며 그녀에게 물었다.

우진이 분노감으로 두 눈을 번뜩이며 이를 악물며 하라를 쳐다보았다.

[아......그...글쎄요.....고의는 아니였다고 말씀드리고는 싶은데...

하하하....이 상황이.....]

하라는 당황하며 그의 앞에서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11
우진은 남자 화장실 안에 있는 세면대에서 열심히 음식이 범벅이 된

자신의 양복상의와 바지를 물로 씻어내고 있었다.

화장실에 볼 일을 보러 들어온 남자들이 우진을 보고는 코를 손으로 막고

화장실을 서둘러 빠져나갔다.

[으......오 하라 정말 가만두지 않겠어.]

정말이지 그 여자는 요 며칠새에 우진에게 일생일대 최대의 수치심과

창피함만을 선사하고 있었다.

포르노 비디오 사건에 극장내 성추행 사건,게다가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음식구덩이로 밀어 쳐 넣다니....

우진은 신경질적으로 대충 양복에 묻은 음식찌꺼기를 씻어 내고는 화장실

을 나섰다.

그가 화장실을 나서자 홀에서 기다리고 있던 하라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의 모습도 가관이였지만,그녀 역시 행색이 말이 아니였다.

높은 하이힐 구두를 한짝만 신고 있어서 키 균형이 안맞아 삐닥하게

서 있었는데,원피스 아래로 드러난 스타킹 신은 그녀의 다리에는 넘어

질때 생긴 커다란 구멍이 스타킹위로 나 있었다.

멋지게 틀어올린 그녀의 머리또한 몇가닥의 머리가 빠져나와 어깨위로

흘러 내려가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시선을 끈것은 그녀의 얼굴이였다.

울었는지 퉁퉁 부은 눈위로 마스카락 자국의 얼룩이 보였다.

[미안해요..정말 미안해요.]

하라는 정말 진심으로 그에게 사과했다.

그녀로 인해 우진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게 생긴것이다.

그녀가 의도한바는 아니였지만,어쨋거나 우진은 그녀로 인해 사람들

앞에서 볼거리가 되었고,한 회사의 사장으로서의 위치가 실추되었다.

[정말 미안하기는 한거요!!정말 살다살다 당신같은 여자는 첨보는것

같소!!어떻게 만날때 마다 사고를 치는거요!!]

[소리치지 말아요!!미안하다고 했잖아요!!]

[이게 미안하다고 끝날 이야기요? 내 자존심과 수치심 그걸 어떻게

보상해 주겠다는거요!!정말이지 당신같은 여자는......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소!!]

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하라는 막무가내로 소리치는 그를

보자 다시 마음이 바뀌어 버렸다.

[누군 당신 얼굴 마주대하고 싶은지 알아요!!그렇니까 서로 만나봐야

좋을 것 없으니까 만나지 말자구요!!]

[미쳤지......우리 새어머니는 당신같이 미친여자가 뭐가 좋다고 !!]

[뭐라구요? 말 다했어요?]

[다했소!!양복값 청구할테니 기다리고 있어요!!]

우진은 성난 황소처럼 씩씩거리며 하라를 밀치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씨!!]

성이 난 하라는 한쪽만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 우진에게 힘껏 던졌다.

그녀의 구두가 정확히 우진의 뒤통수를 때리고 떨어졌다.

뒤통수를 매만지며 우진이 홱 뒤돌아 하라를 잡기 위해 그녀를 쫓아왔다.

헥!

놀란 하라가 달아나려 했지만 긴 다리를 가진 우진이 뛰는데는 더 유리

했다.

그는 도망가려던 하라를 힘껏 붙잡고는 그의 가슴팍으로 그녀를 끌어

당겼다.

[이 못된 망아지 같으니라구....어디 또한번 덤벼보시지....]

우진이 자신의 얼굴 앞에서 당당히 턱을 들고 그를 노려보는 하라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이 사이로 말을 내뱉었다.

[난 여자를 때리는 남자를 제일 혐오해요.손가락 하나 나한테 까딱했다간

바로 고소할테니 그리 알라구요.....]

하라는 토시 하나 지지 않고 우진에게 맞서며 보란듯이 작은 턱을 들어

올렸다.

우진의 깊고 검은 눈동자를 가진 눈이 하라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에게 붙잡혀 그의 몸에 찰싹 달라붙은체 터질듯한 긴장감으로 하라는

숨쉬기 조차 힘이 들었다.

하지만 그에게 지고 싶지 않은 하라는 가쁜 숨을 참으며 그에게 대항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숨을 참고 있기가 힘들었던 하라가 입을 벌려 얕은 숨을 내쉬자,

그녀를 노려보고 있던 그의 시선이 흔들리는것 같았다.

[나도 여자를 때리는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떤 식으로든 당신은 응징의 댓가를 치뤄야 해.]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입술이 하라의 입술로 달려들었다.

[흡~]

놀란 하라가 입을 꽉 다물고는 우진의 가슴팍을 밀어내려 했지만 이미

분노감에 이성을 잃은 그의 힘을 당해내기는 힘들었다.

우진은 하라가 꼼짝 못하도록 그녀의 양팔을 꽉 움켜쥐고는 처절한

응징을 시작하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피하려는 하라를 막기 위해 한손으로 그녀의 뒤통

수를 잡고는 단단히 그의 입술에 그녀의 입술을 고정시켰다.

그의 갑작스런 키스에 놀란 하라는 그에게 반항하다 이내 포기한듯

잠자코 그가 하는 데로 내버려두었다.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그도 포기하겠지 하는 그녀의 바램과는 달리

점점 그녀를 유도하는듯한 그의 키스에 그녀도 조금씩 이상한 기분과

함께 무언가가 몸안에서 꿈틀거리는것 같았다.

윤경의 피로연장에서 게임도중 일어난 잠깐의 뽀뽀와는 달리 그의 키스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다.

뜨거운 불기둥이 자신의 몸을 뚫고 지나가는것 같았다.

아~이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에게 했던 레트 버틀러의 키스

와 같은 기분인가?

레트의 키스를 받고 기절까지 한 스칼렛이 문득 하라는 생각났다.

정말이지 우진의 키스로 인해 기절할것만 같은 현기증을 동반했다.

[기절할것 같아요........]

하라가 무의식중으로 스칼렛이 했던 말을 그대로 속삭이자 우진은 입술을

떼고는 몽롱한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는 하라를 쳐다보았다.

[젠장.......정말 여러모로 당신은 위험한 여자야!]

우진은 하라를 밀쳐내고는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헝클으며 바삐 홀을

빠져나갔다.

멀어지는 우진을 멍한히 하라는 지켜보고 있었다.

뭐지? 방금? 그와 내가 키스한거야?

하라는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려 그의 입술이 닿았던 자신의 입술을 만져

보았다.

아직도 키스의 여운으로 그녀의 입술은 적당히 부풀어 오른체 그의

따스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하라야~]

그녀를 부르는 심한의 목소리에 하라는 버뜩 현실세계로 돌아왔다.

[괜찮니? 너 왜그래? 마치 넋나간 사람같다.]

[심한아........]

[어?]

[나......기절할것 같다.]

[뭐? 하라야!]

스르르 쓰러지는 하라를 심한이 재빨리 안아올렸다.

[하라야 정신차려! 하라야!]




어쩌자고 그녀에게 키스까지 했을까.....

회사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우진은 밀려드는 후회에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정말이지 그녀를 때리고 싶어줄 만큼 너무도 미웠다.

하지만 달싹이는 그녀의 입술을 본 순간 그의 이성의 끈은 툭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그가 정신 차렸을때는 이미 그녀와의 달콤한 키스에

빠져버린 후였다.

정말이지 그녀는 입술 하나는 끝내주게 황홀했다.

그동안 많은 여자와 키스를 나눠보긴 했지만 하라만큼 수줍으면서도

정신을 잃을정도로 강력한 유혹의 마력을 가진 입술은 없었다.

기절할것 같아요......

그녀의 말이 생각나자 우진은 그녀가 한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다.

기절할것 같다니.

그만큼 내 키스가 멋졌다는 건가?

아니지 그녀는 내 손끝 하나만 닿아도 파르르떨며 혐오스러워하던

여자가 아니던가?


아아아.....모르겠다.

복잡해지는 머리속때문에 우진은 두통이 몰려오는것 같았다.

오하라.

그녀에 대해 그의 신체에선 적색 경보가 떨어졌다.

정말이지 그녀는 위험 그 자체,폭탄같은 여자다.


#12
[오오~레트.....키스해줘요.]

[스칼렛!]

움아~~~~~쪽쪽쪽~~~~~~~~~~

[아...레트....키스도 너무 잘하네요....]

[당신 보다야 잘하지...오 하라씨.]

헉!다...당신은......


헉!

꿈에서 깬 하라는 온몸이 식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젠장...이제 꿈속까지 나타나서 사람을 괴롭히네.

분명 스카렛이 된 하라는 레트의 품에 안겨 있었는데,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가 어느새 정 우진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으아아악~~~~~~~~]

하라가 베게를 끌어안고 비명을 질러댔다.

그녀가 이토록 괴로운건 그 혐오스러운 남자가 키스 하나는 끝내주게

잘한다는 것과 그의 키스가 너무도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애써 그의 입술을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천장을 보아도,창밖을 보아도

그 젠장맞을 그의 섹시한 입술만 동동 떠다니는 것이다.

잊어야 하느니라....잊어야 하느니라......

책상위의 볼펜을 집어다가 허벅지를 찔러가며 하라는 그렇게 인내아닌

인내를 하고 있었다.

하라가 이를 악물며 버티고 있을때 그녀의 책상위에 있던 핸드폰이

띠리리~울리고 있었다.

[여보세요?]

[하라니?]

[어..심한아.]

[너 괜찮은거야?]

하라가 심한의 앞에서 생전 처음으로 기절을 하던날 그도 역시 쓰러지는

하라를 보며 그대로 그녀를 안고 그자리에서 기절을 해버렸다.

결국 둘은 119에 나란히 실린체 병원까지 실려갔었다.

하라가 응급실에서 눈을 떴을때 심한은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체 팔에

링거까지 꽂고 있었다.

[야.....너야 말로 괜찮냐? 남자가 그렇게 심장이 약해서야 어디다 쓰냐?

이래서야 내가 니 앞에서 맘데로 기절이나 할 수 있겠냐구!!]

[미...미안해.....난 정말 놀랐단 말이야.네가 죽은줄 알고.....]

[임마!키스 정도 했다고 죽지는 않아!]

[뭐? 키스?]

허억~내가 무슨말을....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주책맞은 말들을 주워담지 못한체 하라는 자신의

주둥이를 손으로 때렸다.

[아....아니.아무것도 아니야.]

[오늘은 뭐할껀데? 나와라 내가 너 좋아하는 신당동 떡복이 사줄게]

[정말?정말정말?]

떡복기라는 말에 하라의 눈이 빛나며 벌써부터 엉덩이를 들썩였다.

어린아이처럼 떡복기라면 사죽을 못쓰는 하라를 달래는 방법을 심한은

잘 알고 있었다.

[좋아~지금 준비하고 후딱 나갈게~]

전화를 끊은 하라는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욕실로 후다닥 달려갔다.

욕실로 들어서자 그녀는 칫솔에 치약을 묻힌다음 거울을 바라보며 열심히

양치질을 시작했다.

거울속에 비친 자신을 모습을 바라보던 하라는 양치질을 멈추고 거울속의

자신의 얼굴을 관찰했다.

아무리 봐도 도저히 키스 하고픈 섹시한 얼굴은 아닌데 말이야....

하라는 부시시해서 까치집을 지어놓은 자신의 머리스타일과 어젯밤

늦게까지 먹은 라면 덕분에 퉁퉁 부은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아니야......난 도저히 키스하고 싶은 얼굴이 아니란말이지.....

젠장...무슨 상관이람.

어차피 손해본건 그쪽이지 나는 아닌게 분명하잖아.

적어도 그의 키스가 나쁘진 않았으니까.




심한은 거의 무서운 집착으로 떡복기를 먹어대는 하라를 경이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오뎅으로 국물까지 싹싹 닦아서 먹은 후에야 하라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너...며칠 굶었냐?]

[왜?]

[아니..그렇게 먹고 탈 날까봐.]

[괜찮아.난 열받으면 이렇게 배가 부르도록 먹어줘야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니까.물!]

하라가 명령하듯 말하자 심한은 벌떡 일어나 그녀앞에 물을 담은 컵을

갖다 대령해 주었다.

하라는 벌컥벌컥 시원한 물을 들이켰다.

[우와~시원하다.]

하라는 티슈로 고추장 범벅이 된 입가를 닦아내었다.

[심한아~]

[어?]

[너......내가 묻는 말에 한치의 거짓도 없이 대답해야 한다.]

[왜....왜그래......]

[웃지 않겠다고도 약속해!]

[아...알았어.]

심한은 하라가 내미는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었다.

서로의 새끼 손가락을 걸고 나서 하라는 유심히 뜸을 들이며 심한을

쳐다보았다.

[너...있잖아.]

[어.....]

[내 친구로서가 아니라....한 남자라는 인격체로서 말해봐.

정말 어떤 여자가 미치도록 너를 화나게 만들면.........

그러면 그 여자한테 키스하고 싶어지니?]

[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뭐야!약속이 틀리잖아!진지하게 난 묻고 있는거라구!]

[아..알았어.]

[너......그동안 나를 알아오는 동안 한번도 내 얼굴을 보고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해본적 없어?]

하라의 적극적인 질문공세에 심한의 이마에서 삐질삐질 땀이 배어나왔다.

[그...그게 말이지.]

[응..말해봐]

하라가 의자를 바싹 당겨 앉으며 심한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그게 너..넌 이뻐.너처럼 이쁜 여자를 보면 키....스...도 하고

싶지....]

심한은 목이 타는듯 하라가 마시다 남은 물을 들이키며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내었다.

[정말? 정말 너도 나를 보면 키스하고 싶니?]

[정말 솔직히 말해도 너 화 안낼거지?]

[괜찮아....말해봐...]

[저....저번에 비오던날.]

[비오던날?어...그래..생각나.우리 우산 없어서 비 홀딱 맞은날?]

[어....그날]

[그날 뭐?]

[그날 비 많이 맞고 너 옷도 젖고 머리도 온통 젖었을때,그때 너 집까지

바래다 주면서......너..한테 키..키..스 하고 싶다고 느꼈어.]

무슨 큰 선포를 한 마냥 심한은 큰 숨을 들이쉬었다.

[정말?왜 비에 젖은 내 얼굴이 섹시해 보이던?]

[아...아니..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망설이며 주저하는 심한을 보며 하라는 그를 다그쳤다.

[그게 아니면 뭔데?]

[비에 젖어서 블라우스위로 네...가...슴이.....]

[뭐?■..■+]

[가...슴이 다...드러났는데....]

[이....이.....변태자식이!!]

퍽퍽퍽!!!!으악~~~~~~~~~~퍽퍽!!

하라의 주먹에 심한은 꽥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대로 의자와 함께

그대로 뒤로 벌러덩 자빠져버렸다.

[이 변태!당분간 연락하면 주금이닷!]



[로맨스 라이프 잡지사]

[요번에 특별기획으로 로맨스 소설 3대 작가를 선발해서 연재글을

실으려고 기획안을 잡고 있습니다.]

검정색의 커리우먼같은 이미지의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은 도해는 당당한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회의를 진행시키고 있었다.

[그럼,첫번째 테잎을 끊을 작가는 섭외해 두었습니까?]

[네.지금 큰 화제거리가 되고 있는 오 하라 작가를 섭외중입니다.]

[음....그렇군.좋아요.도 도해씨 한번 일을 진행시켜 보십시다.]

[감사합니다.]

회의가 끝나자 사람들이 빠져나간 회의실에서 홀로 남아 핸드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우진씨?나야......축하해줘.어렵게 준비한 내 기획안이 멋지게

성공했어.축하하는 의미로 오늘 저녁 어때?좋아..그럼...응 거기서]

전화를 끊은 도해는 단정하게 틀어올린 머리를 고정시킨 핀을 끌러버렸다

핀을 끄르자 긴 머리가 흘러내려와 도해의 어깨를 드리우면서 도해의

섹시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한달동안 그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기획안이 윗 사람들 눈에 든 이상

이번 건만 잘 해결한다면 그녀의 승진은 맡아놓은 당상이나 다름없었다.

도해는 책상위에 놓인 파일을 들추어 보았다.

[오하라!떠오르는 로맨스 소설계의 요정]

타이틀이 선명하게 찍힌 신문기사를 스크랩한 서류가 보였다.

[오하라......오하라...]

도해는 사진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젊은 여자의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13
[오랜만에 오셨네요.]

사랑의 집에 하라가 도착하자 원장수녀님이 반가운 얼굴로 그녀를

맞이해주었다.

[죄송해요.수녀님.변명같지만 많이 바뻐서요.]

[아니예요.잊지 않고 이렇게 찾아 주신걸요?]

[아이들은 잘 있죠?]

[그럼요]

하라가 원장수녀님과 함께 사랑의 집 안으로 들어서자 하라를 발견한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반갑게 그녀에게 뛰어왔다.

하라에게 안기는 아이를 안아올려주며 그녀는 아이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며 미소를 지었다.

[잘있었니?]

[언니~]

사랑의 집 제일 큰 아이인 혜선이 하라에게 다가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아주었다.

[혜선아~]

[언니.....언니 신문에 나온거 봤어요.]

[그러니?]

[애들이 하라씨가 신문에 나온걸 보고 얼마나 즐거워 했는지.]

원장수녀님이 뒤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아이들의 말을 거들어 주었다.

[애들아~오늘 내가 멋진 선물을 준비해 왔다!!들어가서 풀어보자!]

[우와~신난다~]

아이들과 하라는 즐겁게 선물 보따리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어머~하라씨 왔네요.]

빨래를 하고 있던 안젤라 수녀님이 아이들과 방안으로 들어가는 하라를

보며 말을 꺼냈다.

[참 밝고 아름다운 아가씨예요.]

[저도 햇살같은 아가씨죠?저도 하라씨를 보고 있으면 제 마음까지 환해

지는 기분이라니까요.]

[그렇죠?]

[아참~원장실에서 정 사장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정사장님?]

[네.저희 고아원에 세탁기를 기증해 주시겠다고 하네요.]

[어머! 고마우셔라!빨리 가봅시다.]

원장수녀님은 서둘러 원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서자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훤칠한 키의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정 사장님!]

[원장수녀님~안녕하세요.]

몸을 돌려 원장수녀님에게 인사를 건네는 그는 바로 우진이였다.

[안젤라 수녀님께 들었습니다.세탁기를 기증해 주신다니.....늘 이렇게

도움만 받아서 죄송해서 어쩌나요.]

[아닙니다.제가 해야 할 일을 할뿐인데요.뭘.어려운 일 있으시면 주저

말고 연락해 주십시요.힘 닿는데 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참 녹차 한잔 하실래요?]

[좋죠.]

[안젤라 수녀님? 부탁합니다.]

[네,원장수녀님]

안젤라 수녀님이 원장실을 나가자 원장 수녀님과 우진은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오늘은 아이들이 제일로 행복한 날이겠군요.]

[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두 사랑의 집에 모였으니

정말 사랑이 넘치겠어요.한달에 한번씩 봉사 활동을 오는 아가씨가

있는데,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답니다.]

[네 그렇군요.]

[정 사장님 아직 미혼이시죠?]

[네? 네....쑥스럽군요.]

우진이 머리를 긁적이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애인 없으시면 어때요? 제가 참한 아가씨 하나 소개시켜 드릴까요?]

[아하..원장 수녀님 쑥스럽게 왜 자꾸 그러십니까...]

[농담이 아니예요.아까 말한 그 아가씨 말이예요.정말 괜찮은 아가씨

랍니다.우리 정 사장님과 딱 어울릴 만한 아가씨예요.

마침 두 분이 이렇게 오늘 함께 오셨으니 인사도 나눌겸 한번 만나

보시지요.]



하라는 어린 아이들을 재우고는 바람도 쐴겸 사랑의 집 앞마당에 마련된

작은 벤치에 앉아 운동장에서 축구 경기를 하고 있는 남자아이들을

즐거운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하라가 준비해온 축구공을 보자 남자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뛰쳐나갔

고,벌써 한시간째 공을 몰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하라는 아이들에 끼어서 함께 공을 몰고 있는 한 남자를 유심히 지켜

보았다.

그는 입고 있던 니트의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 올리고 열심히 아이들과

놀고 있었는데,멀리 떨어져 얼굴은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큰 키와

다부진 체격이 왠지 매력적으로 보였다.

[모두들 시원한 물 한잔씩 드세요!!]

어느새 안젤라 수녀님이 주전자에 시원한 물을 담고 나와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소리를 쳤다.

그녀의 부름에 놀고 있던 아이들이 동작을 멈추고 안젤라 수녀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하라도 안젤라 수녀님을 돕기 위해 벤치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먼지들을 탁탁 털어내고는 안젤라 수녀님에게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몇 발자국 걷던 하라는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우뚝 걸음을 멈추고

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등에 매달리는 아이와 장난을 치고 있는 그 남자,아이들과 공을 몰던

그 남자는 분명 우진이였다.

저 남자가 여기는 왠일이지?

그를 만났다는 사실보다 그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더 의아스러웠다.

하라는 그가 자신을 발견하기 전에 얼른 커다란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뭐야?

왜 저 남자를 만났는데 가슴이 콩딱콩딱 뛰는거지?

하라는 자신의 심장에 손을 얹으면서 고개만 나무뒤에서 내밀고는 우진을

살펴보았다.

늘 봐 왔던 양복차림의 그와는 달리 편안한 옷차림으로 아이들과 어울려

있는 그의 모습이 왠지 그녀가 알고 있던 그가 아닌 다른 사람 같았다.

[여기 있었군요.차 한잔 하려고 찾아 다녔어요.]

어느새 하라의 등뒤에 원장수녀님이 서 있었다.

[수녀님!]

나쁜짓을 하다 들킨 아이 마냥 하라는 얼굴을 붉히며 어쩔줄 몰라했다.

나무 뒤로 보이는 우진을 보고는 원장수녀님이 미소를 지었다.

[참 멋진 분이시죠?]

[네?]

[저기 저 남자분이요.]

원장수녀님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 우진이 서 있었다.

[네......]

[우리 사랑의 집에 후원자 이시죠.아이들을 많이 사랑해 주시는 참

좋은 분이시랍니다.]

[우진씨가 여기 후원자라구요?]

뜻밖의 말에 하라는 저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외치며 원장수녀님에게

물었다.

[정 사장님을 잘 아시는군요?]

핫.....

하라는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았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였다.

[예...그냥 안면 정도만 아는 사이예요.]

[어머,이런 인연이 있나.......그럼 두분이 벌써 인사 나누었겠군요]

[네...아까....]

하라는 위기를 모면해 보려 원장수녀님께 거짓말을 했다.

[난 그런줄도 모르고,두분을 서로에게 소개시켜 주려고 했죠.]

사랑의 전도사 역활을 실패해서 그런지 원장수녀님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저기~정사장님이 오시네요.]

그가 온다구?

하라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원장수녀님!]

그의 목소리가 하라의 등뒤로 가까이 들려왔다.

[정사장님~아이들과 함께 뛰어다니시느라 힘드시죠?]

[하하~아이들을 따라다니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군요.]

우진이 이마의 땀을 훔쳐내며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젠 아이들끼리 놀게 놔두시고 좀 쉬시지요.]

[그래야 겠습니다.]

우진은 자신에게 등을 돌린체 원장 수녀님 앞에 서 있는 여자가 누구

냐는듯 원장수녀님에게 눈짓을 했다.

[아~ 인사하세요.정사장님 아까 제가 말씀드린 아가씨 입니다.

두 분이 서로 아는 사이라고 왜 말씀 안하셨어요? ]

오 마이 갓~~~~~~~

하라는 속으로 신을 부르며 고개를 숙였다.

[네? 아는 사이요?]

[하라씨! 뭐해요?]

[네.....]

하라는 계속 그에게 등을 돌린체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라의 태도에 원장수녀님이 멋적은 표정을 지었다.

히잇~하라? 혹....혹시...설마....그 오 하라는 아니겠지?

아니야.하라 라는 이름은 흔치 않은데......

나하고 아는 사이라니?

우진은 문제의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그 여자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라는 더 이상 피할수 없음을 깨닫고 슬며시 고개를 들어 자신앞으로

다가온 우진을 쳐다보았다.

[하...정 우진씨 오랜만이예요?]

[히힛!다...당신!]
#14
[당신이 왜...여...기에 있지?]

젠장 바보같이 이젠 이 여자 앞에선 말까지 더듬는군.

[여기 왜 있다뇨? 당신과 같은 이유로 있죠.]

하라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듯 행동했다.

[정말 의외예요.]

[뭐가 의외라는 거요?]

우진은 하라를 따라 벤치에 나란히 같이 앉았다.

[당신이 여기 후원자란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버지때 부터 해오시던 일이요.]

[그렇군요.좋은 일을 하셨네요.]

[당신도 한달에 한번씩 이곳에 온다고 하던데?]

[요새는 바빠서 저번달 빼먹었어요.]

그들에게 잠시 어색한 침묵이 잇따랐다.

우진과 하라의 키스 사건 이후로 그들은 서로를 피해왔기때문이였다.

[으흠.....저번에 그 일 말이요.]

우진이 헛기침을 하며 먼저 말을 꺼냈다.

[무...무슨 일이요.]

하라가 할일없이 자신의 티셔츠 밑단을 만지며 물었다.

[음...그게 그땐 화가나서 정말 제정신이 아니였던 같소.

그럴려고 한건 아닌데,나도 모르게 그만.

정말 정식으로 사과하겠소.당신을 욕보이고 수치심을 주었소.]

그는 키스라는 단어는 꺼내지 않았지만 그의 말을 들으니 충분히 그때의

일을 거론하고 있음을 하라는 알 수 있었다.

[으...됐어요.그때 일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아요.나도 잘못했죠.

많은 사람들앞에서 당신을 창피를 주었으니.]

평소의 그녀와는 달리 순순히 자신의 죄를 실토하는 뜬금없는 그녀의

태도에 놀랐다.

이 여자가 뭘 잘못 먹었나?

[그럼 서로 피차 일반이니.....음.]

[그래요.피차일반]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아....이 어색함...정말 죽갔네

하라는 인상을 찡그리며 어쩔줄 몰라했다.

[아 맞다!!오늘 저녁 약속이 있는걸 깜빡했네!저 먼저 가야겠어요]

하라는 우진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벤치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어어~~~~~~]

그녀가 일어서자 우진의 몸이 기우뚱 하며 땅으로 바로 엎어졌다.

벤치 끝에 앉아있던 우진이 하라가 일어서자 벤치가 중심을 잃고 우진과

함께 옆으로 쓰러진 것이다.

[어머!괜찮아요!]

하라가 비명을 지르며 넘어진 우진에게 달려갔다.

[휴전 하자 마자 또 이렇게 사고치는거요?정말 걸어다니는 폭탄이야]

우진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하라를 쳐다보았다.

[그러게 말이예요.제 폭탄은 당신하고 있을때 마다 터지네요.하하...]



[아빠~ 저왔어요!]

하라는 집으로 들어오자 마자 소리쳤다.

하지만 응당 그녀의 소리에 웃으며 반겨야 할 동추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샤워하시나?]

하라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동추의 침실문을 노크해 보았지만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네 아까 분명히 전화 할때 집안에 계시다고 했는데?서재에

계시나?아빠~]

하라는 서재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살짝 열린 문으로 동추의 모습이 보이자 하라는 그를 부르기 위해 안으로

들어서려다 방안에서 새어나오는 동추의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뭐?암이라고?]

암?

하라는 귀를 쫑긋하고는 동추의 전화통화를 엿들었다.

[얼마나 살수 있지?아..세상에 3개월이라니......너무 하잖아.]

동추가 괴로운 신음을 내뱉으며 고개를 숙였다.

[딸 하나 믿고 살아 왔는데,암이라니.....이런 일이.

아직 딸애 결혼한것도 보지 못했는데..........]

하라는 울지 않으려 이를 악물며 미친듯이 자신의 방이 있는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방으로 들어가자 마자 하라는 침대에 엎드려 울음을 터트렸다.

아빠가 암이시라니......

어떻게 하지.......겨우 3개월.......

아....아빠.......


하라는 무너지는듯한 절망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절규했다.

아버지가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도 해본적이 없었다.

갑자기 결혼 운운하며 하라를 다그쳤던 아빠의 태도를 이젠 이해

할수 있을것 같았다.

딸 하나를 남겨 두고 떠나기엔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던것이다.

아빠.......나 이제 어떻게 해요...무서워.



[그러게 이 박사 내 친구좀 잘 부탁하네.나처럼 딸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암이라니......정말 남일 같지가 않구먼.

그래,그래,정말 내 얼굴을 봐서라도 내 친구 부탁해.]

전화를 끊은 동추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절친한 사업 동료였던 그의 친구가 폐암에 걸려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것이다.

동추와 같이 사별하고 딸 하나를 키워왔는데 자신과 똑같은 처지의 그를

유달리 아끼고 형제처럼 생각해왔던 그였다.

동추의 전속 담당 의사인 이 박사에게 그를 부탁하는 안부전화를 하고

동추는 하라를 생각하며 좀더 자신의 건강에 신경을 써야 겠다고 생각

했다.

동추는 책상위에 놓인 탁자용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이 기집애는 왜 아직 안들어오는거야?

동추는 늦는 딸의 귀가를 걱정하며 서재를 나왔다.

서재를 나오자 현관에 하라의 샌들이 그의 눈에 보였다.

[하라야~너 왔냐?]

동추가 2층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자 동추는 2층의 딸의 침실로 향했다.

그가 하라의 방문을 노크 하고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의 흐트러져 있는

침대의 모습이 보였다.

[기집애가 칠칠치 못하게...]

동추는 흐트러진 이불을 가지런히 정리해주었다.

[아빠!]

동추가 뒤돌아보자 세수를 한듯 수건을 들고 서 있는 딸이 보였다.

[언제 왔냐?]

[좀전에요.]

[그래?]

하라는 동추가 올라오는 소리를 듣고 후다닥 욕실로 달려가 찬물로

우느라 달아오른 얼굴을 식혔다.

하지만 충혈된 두 눈은 감출길이 없었다.

[그런데 왜 니 눈이 토끼눈처럼 빨갛냐?]

[어?하하....요새 눈병이 유행한다더니..눈병인가?]

하라는 동추를 보고 또다시 솟아오르는 눈물을 참으려 눈을 껌뻑이며

수건으로 얼른 눈물을 닦아 내었다.

[힉!당장 병원에 가봐!아빠한테 눈병 옮기지 말구!]

[치이~우리 아빠 맞아? 딸이 아프다는데]

[딸은 무신.....애물단지지. 빨리 시집이나 가~요새 우진군은 제대로

만나고 있는거야?]

[그...그럼요.]

[암튼,이 아빠하고 약속 잊지 말고 부지런히 만나라.]

[아..알았어요.]

[쉬어라.피곤해 보인다.]

[네.]

동추가 하라의 방을 나서자 하라는 얼른 문으로 달려가 문을 걸어잠궜다.

그리고는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또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딸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애써 태연한척 연기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다.

아빠.

약속드릴게요.

꼭 아빠가 원하는 딸이 되어드릴게요.

결혼?

그까짓거 하지.

아빠가 저렇게 소원하시는데.......

#15

[야..너 어디 아프냐?]

심한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풀이 죽은체 고개 숙이고 있는

하라를 쳐다보았다.

[심한아......]

[어.]

[심한아......]

[어.]

벌써 하라는 한시간째 심한의 이름만 부르고 있었다.

[나.......결혼한다.]

[뭐?]

[결혼할꺼라구.]

느닷없는 하라의 선포에 심한은 거의 경악수준의 표정을 지었다.

[누...누구랑?]

[우리 아빠가 원하는 사람과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안돼!]

[뭐?]

소리치며 벌떡 자리에서 심한이 일어서자 까페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

[뭐야 쪽팔리게 빨리 자리에 앉아!!]

하라가 심한의 팔을 끌어당기며 그를 자리에 앉혔다.

[내가 시집간다는데 네가 왜 안된다는거야!!]

하라는 이유를 설명해 보라는듯 심한을 노려보았다.

[너.....너...넌 나랑 결혼해야 하니까!]

[푸웁!!!!]

쥬스를 마시던 하라가 심한의 말에 입에 있던 쥬스를 내뿜었다.

[켁...미안해.괜찮아?]

하라가 손수건을 자신의 핸드백에서 꺼내 얼굴에서 쥬스가 뚝뚝 떨어지는

심한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니가 갑자기 헛 소리 하니까 놀랐잖아!]

[헛...헛소리 아니야.]

[뭐?]

심한은 무언가를 결심한듯 덥석 하라의 두 손을 잡았다.

[뭐..뭐하는 짓이야!]

하라가 심한에게 잡힌 자신의 손을 빼내려 했다.

하지만 심한은 꽉 잡은체 좀체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라야.....나 어릴때 부터 넌 당연히 내 색시가 될거라고 생각했어.

나 아닌 다른 남자는 생각조차 못했다구!!]

[야~너 뭐 잘못 먹었어?저번에 말했지!!넌 그냥 내 친구일뿐이라구!]

[아니야!!난 네 친구 아니야.넌 친구였는지 몰라도...난...

난....항상 널 내 연인이라고 생각해왔어.]

[어우야~~~~닭살 돋는다.그만해]

하라가 심한에게 손을 빼내고는 자신의 팔을 박박 긁었다.

[하라야......난 너 아니면 못살아....결혼해야 한다면 나랑 하자.응?

네 아버지도 나 싫어하시지는 않잖아.]

[야.소심한 정신차려.내가 너를 열렬히 사랑한다고 해도 난 너랑 결혼

할 수 없어.]

[왜!왜 난 아닌데?]

[야!너 남매끼리 결혼하는거 봤어? 넌 나에게 형제같은 존재야.

더 이상 헛소리 말고.정신차려라...응?]

[아...안돼!!그럴수 없어.]

[야.너 왜 자꾸 이렇게 끈적이 처럼 나오냐?]

[너....결혼 못하게 할거야.]

[뭐?]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너 나 아닌 다른 사람이랑 결혼 못하게

할거라구.....]

[소 심한......너 아니라도 나 지금 죽을 지경이다.그만해!]

하라는 화가난듯 자리에서 일어나 심한을 내버려 두고 까페를 나가버렸다

하라의 뒷모습을 멍한히 살펴보며 심한은 굵은 눈물 방울을 툭툭

떨어뜨렸다.

[에이씨...하라야 난 너 없으면 못살아......엉엉.....]

마침내 심한은 주위사람은 상관안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늘 여왕을 호위하는 기사같은 마음으로 하라의 곁에 늘 머물러왔던

그였다.

이제 와서 다른 왕자가 자신의 여왕을 채가려 한다면 기사의 이름으로

절대 용서못할 일이였다.


하라는 내 여자야........

심한은 코를 훌쩍이며 자신의 앞에 놓인 커피잔을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핫!!앗 뜨거~~~~~~물......차가운 물좀 줘요~~~~]




[사장님~오 하라씨 찾아오셨는데요?]

[오 하라씨가?]

[네.]

[들여보내 줘요.]

곧이어 문이 열리고 당당한 걸음으로 하라가 안으로 들어섰다.

[당신이 연락도 없이 여기까지 어인 행차시요?]

[당신 만나러 왔죠.]

하라는 제 집인양 자연스럽게 소파에 털석 주저 앉았다.

[차?]

[아니요.방금 마시고 왔어요.]

[됐어요.]

우진은 대기하고 있던 비서에게 나가보라는듯 손짓했다.

비서가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가자 우진은 자신을 유심히 쳐다보는 하라의

민망한 시선을 의식하며 그녀앞에 앉았다.

[무슨 할 이야기가 있어서 온거요?]

[우리 한달동안 데이트 하기로 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지금 데이트 하자고 이렇게 연락도 없이 막무가내로 찾아온거요]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요.]

[뭘?]

[당신하고 나요.]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그리 썩 나쁘지만은 않은것 같아요.당신 말이예요.]

하라의 말에 우진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 칭찬이요?]

[네 칭찬이요.]

[그럼 당신은 그동안 날 어떻게 생각해왔었는데?]

[음.....글쎄요.오만하고 고집불통이고,화도 잘내고........]

[그...그만 하시오.그렇게 나열하다간 완전 인간 말종을 만들겠군.]

[하지만 당신에 대한 생각이 틀려졌어요.사랑의 집에서 본 당신은

왠지 다른 사람같더군요.제가 당신에 대해 너무 단편적인 모습들만

봐 왔던것 같아요.그리고 우리가 만난 상황도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

였기 때문에 서로의 장점을 바라보지 못했던것 같구요.]


우진은 갑자기 몸을 앞으로 숙이며 그녀의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갖다대었다.

[당신 어디 아프오?]

[오늘은 유달리 제 건강 걱정을 해주는 사람이 많군요.]

[아프지 않고서야.당신이 갑자기 이렇게 변한 이유가 뭐요?]

[그냥 서로서로 좋게 다시 시작해보자는 거예요.]

[시작?]

우진은 다시 뒤로 몸을 당기며 소파에 등을 기대고 팔짱를 꼈다.

[무슨 시작? 우리가 시작이란 단어로 묶여야 할 이유라도 있소?]

[있죠.당연히.]

당연하다는듯한 하라의 대답에 우진의 미간이 좁아졌다.

[어디 그 이유라도 먼저 알아봅시다.]

[당신과 결혼해야 하니까요.]

[뭐?]

[당신하고 나하고 결혼해야 한다구요.]

하라의 설명에 우진은 아무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이내 그의 웃음을 참는듯 그의 얼굴이 점점 부풀어 오르더니 이내 크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왜 웃어요!!남은 심각하게 이야기 하는데]

[그럼 웃지 않게 생겼소?하하하하......결혼이라니.도데체 당신의 발상

은 어디까지인지.......놀랍소!!하하하하하]

[농담아니예요!!정말 당신과 결혼 할꺼라구요!!]

하라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노려보았다.

[웃어서....푸웁...미안...푸웁...]

웃음을 참으려 했지만 우진은 자꾸만 새어나오는 웃음때문에 견딜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심각한 하라의 표정에 그도 그녀가 단순한 농담을 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알고는 얼굴이 점점 굳어져 갔다.

[정말.......당신 나와 결혼할 마음이요?]

[네 진심이예요.]

[벌레보다도 나를 싫어하던 당신인데 왜 나와 결혼하겠다고 하는거지?]

[우리 아빠가 원하시니까요.]

[뭐?단지 그 이유뿐이요?]

[네.단지 그뿐이예요.아빠가 내가 결혼하길 원하세요.]

[당신 아버지가 딸이 결혼하는게 소원이시라면 굳이 나를 선택한

이유는 뭐요? 세상에 널린게 남자요.]

[아빠가 원하시는 사위는 오직 당신 뿐이예요.]

[뭐라고?]

[당신 아니면 아무도 사위가 되는걸 원치 않으세요.]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군.미안하오.담배좀 피어야 겠소.]

우진은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가 서랍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당장 결혼하면 좋겠지만.당신에게도 시간을 줘야 하고.....]

[이봐!난 당신하고 결혼 하겠다고 아직 말하지도 않았소.]

[왜요? 내가 싫어요?]

[뭐?]

[당신 새어머니도 나를 싫어하지는 않는것 같던데요?]

[이건 내 새어머니를 떠나서 난 결혼 자체에 흥미가 없소.]

이게 무슨 날벼락같은 말인가?

결혼을 해야만 하는 남자가 결혼에 흥미가 없다니.......

[결혼이 싫다구요?]

[그렇소.]

[그럼 평생 혼자 살건가요?당신 혹시...무슨 문제 있는거 아니예요?]

[무슨 문제?]

[그거요.....]

하라가 힐끔 우진의 아랫도리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가 말한 의미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린 우진의 얼굴이 울그락푸르락

변해갔다.

[당신!!정말 여자가 못하는 소리가 없군!!난 아무 문제도 없고,혈기도

왕성한 남자요!!]

정말 이 여자한테 내가 남성으로서 아무 문제도 없다는 것까지

설명해야 한다니......죽을 맛이군.

[그럼 뭐가 문제죠? 왜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건데요!!]

하라는 점점 절망적으로 변해가는 심정으로 그에게 외쳤다.

[난 연애는 하지만 구속받는 결혼은 하지 않겠다는거요!]

[참 이기적인 발상이네요.]

하라가 그를 꼬집듯이 그의 말을 되집었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상관없소.난 자유로운 삶은 원하오.]

[안돼요~당신은 나하고 결혼해야 해요.]

[미치겠군!설령 내가 미친척 하고 결혼한다 해도 당신은 아니요!]

[왜요?]

[폭탄 끌어 안고 살라고 하면 당신은 살겠소?]

우진은 더 이상 말이 필요없다는듯 자신의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난 바쁜 사람이니 어서 돌아가요.그리고 한번만 나한테 결혼 이야기

꺼내려 하거든 날 찾지 말아요.]

[싫어요.]

하라는 결심한듯 야무진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끼고는 그를 노려보았다.

[마음데로 해요.난 나가 봐야 하니까]

우진은 옷걸이에 걸려있는 자신의 양복상의를 입었다.

[어딜가요!대답해주고 가요!]

나서려는 우진의 앞을 양팔을 벌려 하라는 가로막았다.

[비켜요!]

[대답해 주고 가요!]

[정말 못말리는 여자군.]

우진은 억지로 하라를 밀치고는 앞으로 나갔다.

[두고봐요!!당신은 나하고 꼭 결혼해야 할꺼예요!!]

[다른 남자나 알아보시지!!]

우진은 콧방귀를 끼며 사장실을 나섰다.

[꼭 당신이 나한테 결혼하게 해달라고 애원하게 만들테니 두고보라구요!]

이미 사라져 버린 우진에게 하라는 고래고래 소리치고는 털석 소파에

주저앉았다.

생각보다 일이 점점 어렵게 풀려가고 있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오 하라가 아니지.

꼭 저 남자를 내 남편으로 만들고 말꺼야!

꼭 아빠 소원을 들어드리고 말꺼라구.

#16

하라가 집에 돌아오자 맛있는 라면 냄새가 났다.

하라가 코를 킁킁 거리며 부엌으로 들어서자 라면을 끓인 냄비를

들고 식탁에 앉는 동추의 모습이 보였다.

[아빠!!벌써 퇴근하셨어요?]

[어? 어 왠지 감기 몸살이 있는지 몸이 좋지 않아서 일찍 왔다.]

[그런데 왜 라면을 드세요......도우미 아줌마는요?]

하라가 가방을 소파에 던져놓으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도우미 아줌마 오늘 아들이 아파서 일찍 가야 한다길래 보냈지.]

동추는 젓가락으로 라면을 집으면서 입김을 호호 불어댔다.

[아빠!!라면 드시지 마세요!!]

하라는 속에서 무언가 울컥 솟아오르는것 같았다.

하라는 소매를 걷어 부치고는 동추의 앞에 있는 라면 냄비를 빼앗아

모두 씽그대에 부어버렸다.

[아깝게 왜 버려!!]

동추가 하라를 말리며 그녀의 손에서 냄비를 빼앗으려 했다.

[금방 밥해드릴테니까 밥 드세요!!아빠 뭐예요! 궁상맞게 혼자 라면이나

끓여드시고!!]

[오랜만에 라면이 먹고 싶어서 끓였지.]

[밥 드세요!!그리고 앞으로 담배도 끊으시고 술도 끊으세요.]

[오 하라...너 왜그러냐 갑자기?]

동추가 딸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그녀에게 물었다.

[이...이상하기는?]

[아니...뭔가 이상해서.....]

[아빠는....딸이 아빠 걱정해 주는게 뭐가 이상한가?]

하라는 떨어지려는 눈물을 참으며 몸을 돌려 쌀통에서 쌀을 퍼왔다.

[허참!네가 밥을 한다구? 아서라.니가 무슨 .....]

[저도 잘 한다구요.기대하세요.]

[오랜만에 딸이 해주는 밥도 먹어보겠네.]

동추는 휘파람을 불며 뒷짐을 지고 거실로 나갔다.

하라는 괜히 애꿎은 쌀만 물에 박박 씻으며 코를 훌쩍 거렸다.


아프시면서.....내색도 안하시구....

아빠...죄송해요.



[제가 갑자기 왜 저런데?]

동추는 뭔가 의심스런 눈빛으로 다시 한번 부엌에서 쌀을 씻고 있는

하라를 살펴보았다.

평소의 하라와는 무언가 다른 낌새가 있는데,그게 무엇인지 동추는 영

감을 잡지 못했다.


설마 우진군과 사귀기 싫어서 수를 쓰는건?


[하라야!너 우진군은 만나고 있는거냐?]

거실에서 묻는 동추의 물음에 하라는 흠칫 몸을 움츠렸다.

[그럼요!!지금도 만나고 왔는걸요!!]

하라가 큰 소리로 대답하는걸 들은 동추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우진군은 마음에 드냐?]

[네.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예요.]

하라는 되도록이면 동추의 마음에 맞도록 좋은 말만 골라서 했다.

그녀의 생각데로 그녀의 아버지의 얼굴은 무척이나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그 정 우진 을 어떻게 유혹을 한다?

죽어도 결혼은 싫다고 목을 메니......

골똘이 생각에 잠긴 하라는 쌀을 너무 힘차게 씻어서 쌀알이 부서져

버리는 것도 모른체 그렇게 열심히 쌀만 한시간을 씻어 댔다.



거나하게 술에 취한 우진은 제대로 몸조차 가누지 못했다.

[우진씨!정신차려!]

도해가 우진의 팔을 잡고 부축하며 그의 아파트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에 올라탔다.

[으..속쓰려...]

우진이 괴로워하며 엘리베이터 벽에 등을 기대었다.

가물거리는 그의 시선에 엘리베이터 문앞에 서 있는 하라의 모습이

들어왔다.

젠장.집에까지 쫓아왔군.

[뭐야....결혼하자고 여기까지 쫓아온거야?]

느닷없는 우진의 말에 도해는 고개를 돌려 우진을 쳐다보았다.

[뭐? 결혼?]

도해가 되묻자 우진은 천천히 도해에게 다가왔다.

[흥.어림도 없지.]

우진은 도해를 벽쪽으로 밀치고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고

있는 도해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우진씨? 왜그래?]

이여자가 이젠 친한 사이처럼 말까지 놓네?

어어? 이 여자 입술이 점점 나한테 왜 다가오는 거지?


도해는 입술을 내밀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우진을 바라보며 은밀한

미소를 지었다.

아닌척 하지만 내 매력에 빠진거야.흥.

도해는 속으로 생각하며 다가오는 그의 키스를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입술이 닿자 도해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팔로 그의 어깨를

감싸며 키스에 열중했다.

이 여자 언제 이렇게 키스 테크닉이 늘어난거야?

화끈한 상대방의 키스 실력에 놀라며 우진이 게슴츠레 눈을 떴다.

[뭐!뭐야!!]

우진이 깜짝 놀라며 도해를 밀쳐버렸다.

[왜그래?]

하라인줄 알았던 여자가 어느새 도해로 바뀐체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자기가 먼저 키스해 놓고는......]

도해가 우진에게 뭘 쑥스러워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엘리베이터의 신호음이 들리면서 우진이 살고 있는 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문이 열렸다.

도해는 비틀거리는 우진을 데리고 그의 아파트까지 가서 그의 호주머니

속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아유!정신좀 차려봐!]

도해는 신발도 벗는둥 마는둥 하는 우진을 억지로 끌고 그의 침실까지

들어가 그를 침대에 눕혔다.

대자로 침대에 누운 우진은 그대로 잠에 골아떨어졌다.

[오늘은 무슨 술을 이렇게 마신담......]

도해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가 다시 우진을 쳐다

보고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굳이 갈 필요가 뭐 있어? 여기 처음 와 본것도 아닌데....]

도해는 천천히 자신이 입고 있던 블라우스의 단추를 끄르기 시작했다.

우진을 부축하고 오느라 약간 땀을 흘린터라 그녀는 샤워를 하고

싶었다.

그녀는 샤워를 한다음 우진의 옆에 누워 잘 요량으로 거실로 나왔다.

그녀가 거실로 나온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도해는 까마득한 어둠속

으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나 미녀 여사는 아들이 핸드폰까지 꺼버리고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자

화가 난 상태였다.

아마도 동추의 딸 하라를 만나라고 잔소리를 하는 자신의 전화를 받기

싫어 일부러 꺼 놓았을거라 생각하며 당장에 아들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우진은 아직은 귀가 전인지 그의 아파트는 불이 꺼진 체였다.

체념을 하고 돌아서려던 찰나 문이 열리며 그 여시같은 도해라는 여자와

우진이 들어서고 있었다.

나 미녀 여사는 얼른 부엌으로 몸을 숨겼다.

우진을 침실까지 데리고 들어가는 도해를 보며 나미녀 여사는 살금살금

아들의 침실로 다가갔다.

그 여시같은 여자가 그녀의 블라우스를 벗으며 응큼한 눈으로 자신의

아들을 쳐다보고 있는게 아닌가?


[저 여시한테 우리 아들을 통째로 넘겨줄 수는 없지.]

나미녀 여사는 부엌으로 들어가 제일 작아 보이는 프리이팬 하나를

들고 우진의 침실 문 옆에서 숨어서 도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그녀가 나오자 프라이팬을 그녀의 머리에 내리쳤다.

맥없이 도해가 그대로 거실바닥에 쓰러지자 나 미녀 여사는 웃음을

지었다.

[네가 자초한 일이니 날 너무 원망하지 말아라.]

나 미녀 여사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이기사? 지금 여기로 당장 올라와.]

얼마뒤 나 미녀 여사의 전속 기사가 올라왔다.

그는 거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도해를 보고 놀란 눈치였다.

[우리 아들 친구인데 술먹고 기절까지 하네...이 여자좀 데려다가

어느 호텔 같은데 내려다 놔요.]

[예.알겠습니다.]

나 미녀 여사는 프라이팬을 등뒤로 숨기며 기사가 도해를 안고 나가는

걸 쳐다보았다.

이 기사가 나가고 나 미녀 여사는 아들이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휴~술냄새...]

나 미녀 여사는 코를 움켜쥐며 아들의 양말을 하나씩 벗겨주었다.

[이놈아 아무리 네가 싫다고 해도 난 꼭 동추 딸래미 한테 널 장가

보내야 겠으니 그리 알어.]

#17

우진은 아침 일찍 일어나 죠깅을 하기 위해 운동화를 신고 자신의

아파트를 나섰다.

전 날 마신 술 때문에 못 일어날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오늘은 유달리

일찍 새벽에 잠이 깬 것이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며 우진은 한강 둔치변을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상쾌한 새벽 공기가 폐 깊숙히 들어오니 저절로 기분이 업 되었다.

[좋은 아침~]

누군가 반갑게 인사를 하며 우진의 곁으로 다가와 그와 함께 뛰고

있었다.

우진은 누군가 싶어 고개를 돌린 순간 그의 얼굴은 경악으로 가득찼다.

그의 놀란 표정과는 달리 하라는 씨익 웃으며 이마의 땀을 닦아내었다.

[다...당신....이젠 내 스토커가 되기로 한거요!]

우진이 뛰기를 멈추고 하라를 노려보았다.

[스토커라뇨? 무슨 섭한 말씀을.......]

[그럼...,생전 보이지 않던 당신이 왜 이시간에 나와 함께 뛰고 있는지

설명을 좀 해주겠소?게다가 당신 집은 여기가 아니잖소!]

[아침일찍 버스타고 왔죠.아침운동은 참 좋은거네요.그쵸?]

하라는 목에 건 수건을 단단히 잡고 뛰기 시작했다.

먼저 뛰어가는 하라와는 달리 우진은 그 자리에 선체 그녀를 쳐다보았다

[뭐해요!!안뛰어요?]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설명해 주기전까지 이곳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을거요.]

그의 고집에 하라는 할수 없다는듯 발길을 돌려 다시 우진에게 다가왔다

[내가 그랬잖아요.당신과 결혼 할꺼라고.

우선 내가 결혼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무얼 즐겨하는지.

간단한 공감대 부터 가져야 겠다 생각했죠.

우린 서로에 대해 모르는게 너무 많은것 같아서요.]

[당신 원래 그렇게 제 멋대로요? 하긴 외동딸이니 그런면도 다분이

없진 않겠군.]

[당신은 툭하면 내가 외동딸이니 어쩌니 하는데요.

그러는 당신은 외 아들 아닌가요?피차 일반이죠.]

[암튼 난 분명히 당신과의 결혼,당신이라는 여자에 대해 관심조차

없으니까 괜히 새벽부터 헛 수고 하지 말아요.알겠소?]

우진은 하라를 무시한체 뛰기 시작했다.

하라가 우진을 따라 뛰기 시작하자 그는 하라를 힐끔 쳐다보고는 속력

을 내서 뛰기 시작했다.

뭐야? 날 따돌리겠다는거야?

하라는 우진이 앞서 속력을 내 달리며 하라를 뒤처지게 하자 오기가

발동한 그녀는 자신도 속력을 내서 우진을 따라붙었다.

이 여자가?

또다시 자신의 옆으로 따라붙은 하라를 보고 우진은 더 속력을 높였다.

그렇게 우진과 하라는 서로 속력을 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서로

치열하게 몸싸움을 시작했다.

서로에 대한 반감으로 일어난 오기심이 그들의 경쟁을 더 부채질했다.

더 이상 속력을 내지 못하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 우진이 포기를 하며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 앉았다.

심하게 숨이차며 가슴이 들썩 거렸다.

[헥헥헥......내가 대학교때까지 계주선수 였는지 몰랐나보네요.

달리기라면.....헥헥...어느 정도 자신 있다구요!]

하라는 땅바닥에 주저 앉은 우진 앞에서 제자리 뛰기를 하며 의기양양

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놀려댔다.

[좋아.당신이 날 따라다니던 난 철저히 무시할테니 그리 알아요.]

우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자신의 아파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당신 집에 가서 물 한잔 얻어 먹을 수 있을까요?]

[저기 매점 있소.생수나 한통 사먹어요.]

저 정머리 떨어지는 남자.■..■+

[차비 밖에 없는 데요?]

하라의 말에 우진은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하지만 호주머니속에서 그의 아파트 열쇠만 나올뿐 동전 한푼 나오지

않자 인상을 찌푸렸다.

[어머나....어쩌나.우진씨한테 돈이라도 꿔볼까 했는데....아...목말라

당신 집에 가서 물을 얻어 마실수 밖에 없겠네요.]

으.........저 얄미운 여자.

우진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앞장서 걸었다.

그의 뒤를 따라 걷는 하라는 키득키득 거리며 휘파람을 불렀다.




그가 사는 아파트는 참으로 고급스러워보였다.

하긴 일개 한 회사의 사장님이 사는 곳인데......

하라는 우진의 집을 두리번 거리며 이것저것 구경했다.

[여기 있소.빨리 마시고 돌아가요.]

우진이 불투명스럽게 투덜대며 하라에게 물컵을 내밀었다.

[고마워요!]

하라는 명랑하게 대답하며 그가 건넨 물컵을 받아들고 거실의 소파에

털석 걸터 앉았다.

[집이 상당히 넓네요.혼자 사세요?]

[무슨 뜻이요? 그럼 혼자 살지.여자라도 감춰두고 사는 줄 알았소?]

[그런뜻이 아니란거 알잖아요.]

우진의 타박에 벌써 발끈 하며 몇번이고 대들었을 그녀였다.

하지만 왠일인지 그녀가 그의 타박에도 생글생글 웃으며 한번도 대들지

않자 우진은 기분이 찜찜해 지는게 그녀가 더욱 두려워졌다.

저 웃는 얼굴 뒤에 과연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거지?

우진은 의심스런 눈초리로 하라를 쳐다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거예요?]

하라가 자신을 쳐다보는 우진을 향해 소리쳤다.

[아...아니.물 다 마셨소? 빨리 돌아갔으면 하는데?]

우진은 갑자기 어제 마신 술로 인해 싸하게 아파오는 배를 움켜쥐고

빨리 귀찮은 저 여자가 자신의 집에서 사라져 주었으면 하고 바랬다.

[자꾸 보채지 말아요.집에 찾아온 손님한테 너무한거 아녜요?]

하라는 홀짝홀짝 물을 마시면서 소파에서 일어나 거실 벽에 걸린

그림을 구경했다.

[으....]

도저히 뱃속에서 요동치는 고통을 참을 수 없는 우진은 배를 움켜쥐고

화장실쪽으로 달려갔다.

[물 다 마시면 알아서 나가요!]

우진은 소리치며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풋!]

하라가 절절매는 우진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고집불통,냉정해 보이는듯 해도 왠지 저 남자가 점점 귀여워 보이고

있는 중이였다.

예쁘게 봐줄려고 하면 그 사람의 예쁜점만 보인다더니 딱 저 남자가

그 짝이였다.

하라는 부엌으로 들어가 물잔을 식탁에 내려놓고는 화장실쪽을 슬쩍

쳐다보고는 그의 침실이 있는곳으로 살금살금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침실이 있는 방문을 열자 그가 혼자 누워도 자리가 많이 남을

만한 큰 사이즈의 침대가 방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

[우와~넓다!]

하라는 감탄하며 저도 모르게 그의 침실 안으로 들어섰다.

화장대 위에 그가 쓰는 남성용 화장품과 향수들이 쫙 진열되어 있었다.

그가 쓰는듯한 스킨을 들어 뚜껑을 열고 하라는 냄새를 맡아보았다.

알싸한 쿨한 냄새가 머리속을 환하게 하는것 같았다.

그에게서 늘 나는 화장품 냄새와 같은 것이였다.

그의 분위기와 딱 어울리는 스킨 냄새였다.

범죄 현장을 탐색하듯 하라는 이곳저곳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아주 은밀하고 사적인 개인 공간을 살펴본다는건 실례인줄 알지만,

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내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다고 그녀는 속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침실 벽쪽으로 통하는 또다른 간이 문을 보고 하라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문을 여니 그의 드레스 룸으로 통하는 작은 통로가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그의 값비싸 보이는 양복들이 단정하고 가지런히

옷걸이에 걸려있었다.

한치의 틈도 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옷들은 그가 얼마나 꼼꼼하고

깨끗한 성격인지 나타내주고 있었다.

먼지 하나 볼 수 없는 모든지 딱 정열로 정리정돈 되어있는 그는 약간은

피곤한 성격일지도 몰랐다.

하라는 그가 욕실에서 나오기 전에 이 집을 빠져 나가야 겠다 생각하며

드레스 룸에서 서둘러 나와 문을 닫고는 침실을 빠져 나가기 위해 거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갑자기 침실문과 마주보는 욕실문이 벌컥 열렸다.

놀란 하라는 침실을 빠져나가려다 그 자리에서 우뚝 멈추어 섰다.

안돼...열지마...열지마....

하라의 마음속 주문과는 달리 문이 활짝 열리고 우진의 모습이 나타났다

욕실에서 나오는 우진을 보는 하라의 두 눈이 점점 커져갔다.

그녀의 시선은 방금 샤워를 한듯한 그의 촉촉히 젖어 있는 머리부터

그의 얼굴,얼굴에서 상체쪽으로 그리고 마침내 그의 허리 아래쪽까지

시선이 거침없이 훑어 내려갔다.

그녀의 시선이 우진의 허리 밑에 멈추어섰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하라를 보는 우진 역시 놀라서 말은 못하고

뻐끔뻐끔 금붕어 마냥 입만 벙긋거렸다.

신호탄이 울려 일제히 달려 나가는 사람들처럼 하라와 우진은 동시에

힘껏 비명을 질러댔다.

[으악~~~~~~~~]

[꺄악~~~~~~~~]

하라는 알몸으로 자신앞에 서 있는 우진을 보지 않기 위해 고개를

얼른 옆으로 돌렸고,우진 또한 자신의 알몸을 가리기 위해 다시 욕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욕실로 들어서던 우진의 발이 물이 뭍은 욕실바닥을 미끄러졌다

[어어~]

우진이 팔을 허우적 대며 넘어지지 않으려 했지만 순식간에 그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욕실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커다란 둔탁한 소리에 하라가 고개를 다시 돌렸다.

[꺄악~우진씨!]

하라는 욕실 바닥에 알몸으로 쓰러져 있는 우진에게 달려갔다.

[우진씨!]

그에게 달려가던 하라는 그가 알몸임을 깨닫고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의식없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그를 가만히 놔둘수는 없었다.

[우진씨!!정신차려요!!]

하라는 우진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받쳐 들고 그를 흔들어댔다.

하지만 그는 영 정신차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뒤통수에 커다란 혹이 하라의 손바닥으로 느껴졌다.

[어쩌지...아이참...맞다 119!]

하라는 허겁지겁 우진의 머리를 바닥에 내려놓고 전화기로 달려갔다.

119에 급히 상황 설명을 마친 하라는 우진에게 다시 돌아왔다.

알몸인 그를 그대로 119 대원들에게 넘겨줄 수는 없었다.

하라는 우진의 드레스 룸으로 달려가 그의 속옷을 찾았다.

속옷 서랍에 있는 아무 팬티나 끄집어 내고는 우진에게 달려갔다.

[입히긴 입혀야 하는데....으.....]

하라는 그의 알몸을 보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리고는 더듬더듬 손으로

그의 다리부터 더듬어 갔다.

[으.....]

머리에 깨질듯한 통증을 느끼며 우진이 게슴츠레 눈을떴다.

그의 눈에 욕실 천장이 들어왔다.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하던 우진은 자신의 아파트를 떠난 줄로만 알았던

하라가 자신의 침실 문 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걸 발견하고 도망치다

욕실 바닥에 미끄러져 넘어졌음을 기억해 냈다.

머리 뒤통수에 느껴지는 통증을 참아내던 우진은 자신의 다리를 더듬는

이상한 손길을 느꼈다.

그가 힘겹게 고개를 들자 옆으로 고개를 돌린체 그에게 팬티를 입히고

있는 하라의 모습이 보였다.

[당신!]

[어머! 깜짝이야!]

우진의 소리에 하라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우진씨!!정신이 좀 들어요?]

[지금.....뭐하는 짓이요!당장 꺼지지 못하겠소?]

[우진씨 지금 넘어져서 머리에 큰 혹이 났어요.119가 금방 올거예요.

조금만 참아요!]

[뭐? 119?으.....]

깨질듯한 머리의 통증때문에 우진을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이렇게 알몸으로 119를 맞을 수는 없잖아요....하하...^^;]

하라 자신도 민망한듯 멋적은 미소를 지었다.

[뭐.다큰 남자의 알몸을 보는건 처음이지만.....그래도 당신은 환자

이니까....참을만 하네요.다리좀 들어봐요.팬티좀 올리게]

[으....당신!!]

우진이 파르르 떨었다.

당장이라도 그녀의 목을 졸라버리고 싶었다.

그때 띵동 하는 초인종이 울렸다.

[119 인가봐요!!]

[젠장...빨리 팬티나 입혀요!]

우진이 참담한 심정으로 하라에게 소리쳤다.

하라는 그의 외침에 순식간에 그의 팬티를 위로 올려 허리까지 무사히

입혀주었다.

[됐어요!!나 아무것도 못 봤으니까.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하라는 그를 위로하듯 소리치며 현관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여기예요!!]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환자를 실어 나르는 간이침대를 들고 119대원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119 대원이 우진의 상태를 점검해 보았다.

[욕실에서 넘어졌어요.]

[부인 되십니까?]

하라를 쳐다보며 119 대원이 물었다.

[네? 아뇨.아니요.맞아요.아..아뇨.]

횡설수설 하는 하라의 설명에 119 대원들은 우진을 간이 침대에 눕히고

는 간이 침대를 들어올렸다.

그들이 간이 침대를 들어올리자 욕실의 커다란 거울에 우진의 모습이

비추어졌다.

우진은 자신의 몰골을 확인하기 위해 옆으로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우진의 얼굴이 새빨갛게 상기되어 갔다.

[으...으...오...하라~~~~~~~~~~~~~~]

우진이 비명을 지르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거울속에 팬티 하나 달랑 입은 우진의 모습이 비추어졌다.

그가 입은 팬티는 앞쪽에 코끼리 얼굴 그림과 함께 코끼리 코 부분이

툭 튀어 나온 익살스런 팬티였다.

그건 언젠가 도해가 우진을 놀려주기 위해 사준 속옷이였는데,보기에도

민망한 그 속옷을 버리지도 못하고 구석진 곳에 던져 놓았던 것인데

그 문제의 팬티를 오 하라가 그에게 입혀놓은 것이였다.

오...신이시여~만약 당신이 정말로 계시다면....

제발 저 여자좀 어떻게 해주십시요.
#18
[하마터면 큰 일 치를뻔 했구나.]

나 미녀 여사가 두근 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침대에 누워있는 아들

에게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약간의 뇌진탕 증상 빼고는 말짱하데요.

이틀만 더 있다가 퇴원할 수 있다고 했어요.]

우진은 벌써부터 병원침대가 불편한지 온 몸을 비틀며 괴로워했다.

[그나저나,동추의 딸이 널 병원으로 데려 왔다면서?]

나 미녀가 심상치 않다는 눈치로 우진에게 물었다.

[그 여자가 그러던가요!]

[소리치기는 이 새엄마 귀는 아직 멀쩡하다.]

[죄송해요..새어머니.]

[어머!]

우진은 갑자기 놀라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집에 가서 옷을 갈아 입고 왔는지 단정한 원피스 차림의 하라가

손에 보온병을 든체 우진과 나 미녀 여사를 놀라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당신은 왜 또 온거요! 병원에서 날 웃음거리로 만들어 놓고 아직

더 볼일이 남은거요?]

[제가 아까 다시 온다고 말했잖아요.배고플까봐 집에서 전복죽좀

쑤어 왔어요.]

[흥.말은 바로 합시다.정말로 당신이 한거요? 도우미 아줌마가 한게

아니고?그리고 누가 내 끼니까지 오 하라씨보고 신경쓰라고 했소?]

참자.참자.참자.

하라는 속으로 참을 인자를 무수히 외치며 입가에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배고프죠?식기전에 어서 드세요!]

[어머나!하라 왔구나!]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나 미녀 여사가 그제서야 하라를 아는척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어머님!계신줄 몰랐어요.안녕하세요.]

어머님?

술술 입에서 어머님이란 소리가 잘도 나오는군.흥!

우진은 넙죽좋게 그의 새어머니에게 어머님이라 부르며 인사를 건네는

하라를 얄밉다는 쳐다보았다.

[아이고,우리 아들때문에 고생이 많았지?]

[아니요.고생은 뭘요.오히려 어머님이 많이 놀라셨죠?]

하라는 특유의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나 미녀 여사에게 공손하게 굴었다

그런 하라를 나 미녀 여사는 마냥 흡족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전복죽 넉넉하게 가지고 왔는데 함께 드세요.]

[아이고,정말 하라가 만든거야?]

[네,틈틈이 요리 학원에 다녀었거든요.맛은 별로 없지만 드셔보세요.]

[그냥 거기다 둬요.벌써 식사는 했소.]

[아..그래요? 그럼 나중에 드세요.]

하라는 보온병을 조그만 탁자용 테이블위에 올려놓았다.

[하라야 여기좀 앉어라..]

나미녀 여사가 하라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새어머니.하라씨 바쁠텐데 그러지 마세요.]

[아...그런가?]

[아녜요.새어머니.오늘은 특별한 일 없어요.]

하라는 얼른 대답하며 어떻게든 자신을 밀어내려는 우진을 바라보며

얼른 혀를 내밀며 놀리는 시늉을 했다.

[그래,아버지는 잘 계시지?요즘 내가 바빠서 연락을 잘 못했지 뭐야.]

아버지란 소리에 하라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네,잘계세요.]

[아휴.....친구끼리 사돈이 된다니 정말 재미있는 일이야...]

[새어머니!누가 저 여자랑 ......]

[우진아...넌 좀 쉬어라....]

우진이 발끈 하며 소리치자 나 미녀 여사는 얼른 우진의 얼굴을 손으로

뒤로 밀고는 하라에게 웃음을 지었다.

[부족함이 많습니다.어머님이 예쁘게 봐 주신다면 정말 예쁜 며느리가

되겠어요.]

하라는 이때다 싶어 나 미녀 여사를 구슬리기 위한 말을 늘어놓았다.

아무래도 우진의 새어머니인 나 미녀 여사가 그녀를 도와준다면 천군만마

를 얻은 것보다 더 큰 효과가 있을것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우진은 침대에 누워 하라와 그의 새어머니가 손뼉을 마주치며 수다를

늘어놓는것을 보며 땅이 꺼져라 큰 한숨을 내쉬었다.

저 여우같은 여자가 내 새어머니까지 홀리다니.......

우진은 자꾸만 암담해지는 기분이였다.

쉴새없이 떠들고 있는 하라의 입술을 보며 우진은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우진씨가 많이 피곤한가 보네요.이만 가봐야 겠어요.]

하라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나 미녀 여사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휴.하라가 있어서 참 재미 있었는데....벌써 가려구?]

[네.어머님도 좀 쉬셔야지요.]

[그래.그럼 차 조심하고,또 올거지?]

헉..오기는 뭘 또와?

우진이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우진아~하라 간단다.인사해야지.]

나 미녀 여사는 아쉬운듯 머뭇거리는 하라를 보며 아들을 불렀다.

[잘 가시요.그리곤 다시 여기에 오지 말아요.

당신 얼굴을 보면 나을 병도 다시 도질것 같소.]

나 미녀 여사는 아들의 등을 찰싹 소리나게 때렸다.

[하하......애가 워낙 지 애비를 닮아서 말주변이 없어.....]

나 미녀 여사가 변명하듯 말을 꺼냈다.

[괜찮아요.원래 우진씨의 그런 무뚝뚝함에 반했는걸요?]

아무리 싫다고 발악해봐라.

내가 꿈쩍이나 하나.

하라는 꿀밤이라도 한대 우진을 때려주고 싶었다.

[우진씨 몸조리 잘하고 또 올게요.]

병실을 나가려던 하라는 머뭇거리다 침대에 누워있는 우진에게 다가왔다

[뭐지?]

자신에게 가까이 몸을 숙이는 하라를 보며 우진이 흠칫 놀랐다.

[작별의 키스는 해야죠.달링~]

하라가 간지러운 목소리로 그를 부르더니 나 미녀 여사가 보란듯

쪽 소리나게 그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호호호~요즘 젊은 애들은 자기 감정 표현도 솔직하단 말이야.

호호호 참 보기 좋구나 우진아!]

나 미녀 여사는 낭만적인 표정을 지으며 흐뭇해 했다.

[새어머니~]

우진이 울상을 지으며 그의 새어머니를 쳐다보았다.

하라는 승리의 브이자를 우진에게 보여주며 유유히 그의 병실을 나섰다.



하라는 로맨스 라이프 잡지사의 사람과 만나기로 한 까페안으로 들어섰다

[여기입니다!]

하라가 들어서자 창가쪽의 테이블에서 한 여자가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어서오세요.차가 많이 막히죠?]

[네.조금요.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니요.한 십분?]

하라는 의자에 앉으며 자신의 맞은편에 있는 여자를 유심히 보았다.

꽤 육감적이고 매력적인 여자였다.

커리우먼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정장을 입고 있었도 그녀의 풍만한 몸매

와 섹시한 이미지의 얼굴은 가리지 못했다.

[반갑습니다.로맨스 라이프 잡지사의 도 도해 팀장이예요.]

도해가 명함을 건네자 하라는 명함을 받아들었다.

도 도해?

나 처럼 이름 한번 특이하네.

하라는 명함을 자신의 지갑에 넣어두며 도해를 쳐다보았다.

[요번에 잡지사에서는 오 하라씨의 로맨스 소설을 연재로 실었으면

하고 있습니다.대충 컨셉에 대해서는 전화로 설명 들으셨죠?]

[네.제가 잘 할수 있을지 모르겠네요.연재라 하니 약간은 부담도

되구요.]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해주신다면 저희가 적극적으로 도와

드리겠습니다.물론 오 하라씨의 명성에 걸맞는 대우도 해드릴꺼구요.]

[좋아요.그럼 하는걸로 하죠.]

[감사합니다.]

도 도해란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녀가 의외로 하라와 성격이 잘

맞는 여자란 생각이 들었다.

뒤끝없고 자기 일에 열심인 도해라는 여자가 왠지 하라는 마음에 들었다

하라역시 꾸밈없고 화통한 성격이라 1시간 여의 대화끝에 어느새

그녀들은 언니와 동생 사이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하라씨는 애인 있어요?]

[왜요?]

[글쎄....로맨스 소설 작가라면 왠지 사랑은 많이 해봤을것 같아서.

글은 작가의 경험에서 많이 나온다고 하잖아요.]

[어쩌죠.전 연애라고는 제대로 해본적이 없는데.

요즘 수작을 걸어볼까 하는 남자가 있긴 하지만요.]

[수작?호호 하라씨 정말 재미있는 사람인거 알아요?]

[그래요?]

[정말 하라씨 마음에 든다.우리 열심히 함께 일해봐요!]

[저야 말로 잘 부탁드릴게요.]




[동추야 나 미녀다!]

동추는 전화기 너머로 흘러나오는 경쾌한 나 미녀 여사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그래.]

[오늘 내가 누굴 만났는줄 알아?]

[누구?]

[네 딸!]

[으잉? 하라 말이야?]

[그래,우리 아들 병실까지 찾아왔더라구.분위기를 보니까 꽤 진척이

되가는 상황인것 같더라.]

[그래?허허 그 녀석 싫다고 발악할때는 언제고?]

[우리 아들이 좀 시큰둥 하기는 하지만,이제 슬슬 우리도 좀 나서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지.키햐~드디어 우리가 사돈 지간이 되는거냐?]

[호호호 그럴것 같아~어디 한번,사돈 우리 한번 잘해봅시다.]

나미녀 여사의 농담에 동추가 껄껄 걸죽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봅시다.사돈~으하하하]

#19
30분이면 끝난다는 우진의 회의는 한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그가 의도적으로 하라의 전화를 피하며 당체 그녀를 만나주지 않는통에

하라는 직접 그의 회사로 씩씩하게 쳐들어왔다.

그의 사무실로 찾아가자 그녀를 반기는건 우진 대신 그의 아리따운

여자 비서였다.

[저......차 더 갖다 드릴까요?]

비서가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며 하라에게 물었다.

[아니요.괜찮아요.전 신경쓰지 마세요.]

하라는 최대한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비서에게 말했다.

으흠~저 여자도 이젠 내가 누구인지 잘 알겠지?

나의 이 자애로운 미소,사장님의 부인다운 싸모님의 미소 아니겠어?

쿠하하하하~^^;

비서가 문을 닫고 나가자 하라는 도저히 기다리는 것이 지겨워 견딜

수가 없었다.

졸음이 밀려와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던 하라는 안되겠다 싶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체조를 시작하기 시작했다.

[정 우진! 네가 나를 피하겠다 이건데...어림도 없지.

이 오 하라가 한번 찜 해놓은 이상 어림도 없다!]

하라는 혼자서 중얼거리며 계속 국민체조를 시작했다.

그때 장식장 위에 진열된 무언가가 하라의 눈길을 끌었다.

또다시 호기심이 발동한 그녀는 체조를 멈추고 장식장쪽으로 다가갔다.

장식장 위에는 특이한 모양의 인형들이 쭉 진열되어 있었다.

오뚜기 처럼 생긴 목각 인형이였는데,저마다 화려한 색체로 각기 다른

표정으로 인형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어머나...예쁘네?]

하라가 인형 하나를 손에 들어 살펴보았다.

사람이 그린것 같지 않은 섬세한 얼굴 표정에 하라는 저도 모르게

그 인형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편안하게 앉아서 인형을 볼 요량으로 뒤로 몸을 돌리던 하라는 체조를

하느라 풀어진 운동화 끈에 발이 걸려 비틀거렸다.

[어어...]

넘어지지 않으려 버티던 하라가 손에 든 인형을 놓치고 말았다.

인형은 하라의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며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인형의

목이 흉하게 떨어져 나갔다.

[새엄마야!이를 어째?]

몸통에서 떨어진 인형의 머리가 데구르르 굴러서 우진의 책상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으....죽었다.]

하라는 얼른 몸통만 덜렁 남은 인형을 집어 들고는 머리를 찾기 위해

책상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우진의 책상은 대형 마호가니 책상이어서 바닥과 책상 사이의 공간이

낮아 하라가 안으로 들어가기도 빠듯한 높이였다.

하라는 최대한 몸을 낮춰 책상밑으로 들어갔다.

간신히 손을 뻗치자 그녀의 손에 인형의 얼굴이 손에 닿았다.

[에고...힘들어.]

인형의 얼굴과 몸통을 각기 한손에 들고서 다시 책상을 빠져나가려고

할 찰나 사무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우진이 들어섰다.

[아무도 없는데?]

[어? 안에 계실텐데요?]

에고...어쩐다?

하라는 두동강이 난 인형을 내려다 보며 책상밑에서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였다.

[돌아간거 아니야?]

[글쎄요....잠시 제가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 가셨나?]

[갔나보군.알았어요.]

비서가 나가자 우진은 자신의 책상쪽으로 걸어왔다.

하라는 그에게 들킬까 걱정하며 책상 안쪽으로 더욱 들어섰다.

우진은 책상밑에 하라가 숨어 있는 줄 꿈에도 모르고 그의 책상 의자에

앉았다.

그가 의자를 당겨 책상안으로 들어오자 하라는 몸을 움츠렸다.

그녀의 눈에 우진의 고급 수제화 구두가 들어왔다

아...어쩐다.인형이 동강 난 걸 보면 저 남자 또 길길이 날뛸텐데.

하라가 나갈까 어쩔까 고민하던중 갑자기 우진이 구두를 벗기 시작했다.

힉?

구두를 벗은 우진은 다리를 스트레칭 하듯 책상 밑으로 발을 쭉 뻗었다.

윽....

하라가 재빨리 옆으로 몸을 붙이자 그의 발이 바로 하라의 얼굴 옆으로

뻗쳐졌다.

그의 발에서 실실 땀냄새가 풍겨오자 하라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코를

움켜쥐었다.

그때 갑자기 하라의 얼굴 옆으로 뻗어있던 그의 발가락이 옴질옴질

움직이기 시작했다.

[푸웁~]

하라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한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마치 발가락 스트레칭을 하듯 양말속의 그의 발가락들이 옴질옴질 거리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풉..풉....]

한손으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기가 어려운 하라는 동강난 인형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두 손으로 입을 막아버렸다.

하지만 그의 현란한 발가락운동에 드디어 하라의 참았던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풉...푸하하하하하]

[뭐!뭐야!!]

책상밑에서 커다란 여자 웃음소리에 우진이 놀라며 의자를 뒤로 밀고는

책상밑으로 고개를 숙였다.

[당신!내 책상 밑에서 뭐하는거요!!]

우진이 경악하며 책상밑에서 쪼그리고 숨어있는 하라에게 소리쳤다.

[아..미안해요.웃지 않으려 했는데 당신의 그 발가락 스트레칭...

풉....웃겨서....]

하라의 말에 우진은 얼굴을 붉히며 얼른 벗었던 구두를 신었다.

[왜 책상밑에서 바퀴벌레 마냥 숨어 있는거요?]

이유를 따져 묻던 우진의 시선이 하라의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얼굴과

몸통이 따로인 인형에 멈추었다.

얼른 장식장으로 고개를 돌린 우진은 그 문제의 인형이 장식장 위에

있던 것임을 알았다.

[미..미안해요.예뻐서 잠깐 본다는 것이.]

하라는 미안해 하며 책상밑에서 기어나왔다.

[그 인형이 얼마나 하는줄 알고 하는 소리요?]

[예? 이거 얼만데요?]

[한개에 백만원을 호가 하는 골동품이란 말이요!]

[헥? 이까짓 나무 인형이 뭐가 그리 비싸데요?]

[이까짓 나무인형? 정말 무식이 철철 흐르는군.이리내놔요!]

우진이 하라에게서 인형을 낚아챘다.

너무 세게 그가 낚아챘던지 인형의 얼굴이 또다시 바닥으로 쓰러져

데굴데굴 굴러갔다.

[젠장!]

우진이 욕설을 내뱉으며 인형을 줍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내가 주울게요!]

하라가 동시에 그와 함께 움직이는 순간 또다시 운동화끈을 밟아버린

하라가 비틀거리며 책상쪽으로 넘어지려 했다.

[위험해!]

하라가 넘어지면 바로 책상의 모서리에 머리가 부딪히는 거리임을

알아차린 우진이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넘어지는 하라의 손을 잡아

자신에게 잡아끌었다.

하라의 몸이 우진을 밀치면서 우진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고 그의

다리가 소파 손잡이에 걸려 그는 하라를 안고 그대로 소파위로 넘어갔다

[윽......]

우진이 큰 숨을 내쉬며 신음을 내뱉었다.

[우와...괜찮아요?]

우진의 몸위에 길게 눕혀진 하라가 고개를 들어 우진을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하라는 흠칫 놀랐다.

그의 얼굴이 바로 하라의 얼굴 밑에 있었다.

겨우 십센티 남짓한 거리만을 떼어놓은체 우진과 하라는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뭐지?

가슴이 왜 갑자기 콩딱콩딱 뛰는거야?

설마,이 남자 때문인거야?




이 여자.......이렇게 가까이서 얼굴을 보니.

나름데로 이쁜걸?

이 여자가 이렇게 예쁜 얼굴을 가졌던가?



갑자기 입안이 메마른듯 하라가 침을 꿀꺽 삼키며 우진을 계속 내려다

보았다.

그또한 아무말 없이 하라의 눈을 응시했다.

[저기.....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거예요?]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는데?]

[당신은요?]

[당신부터 말해봐요.]

[그러지 말고 동시에 말하는게 어때요?]

하라가 속삭이듯 그에게 말했다.

[좋지.하나,둘, 셋 하면.]

[좋아요.하나.둘.셋!]


그 순간 우진은 하라의 입술을 향해,하라는 그의 입술을 향해 달콤한

항해를 위한 출발을 시작했다.

#20
아...

이런 기분이였어.

하라는 자신의 입술위에서 느껴지는 우진의 입술을 느끼며 황홀지경에

빠진체 달콤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몸을 뒤집어 하라를 소파 밑으로 내려가게

했다.

이젠 주도권이 바뀌어 버려 하라가 그의 몸아래 깔린체 그의 키스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었다.

그가 하라의 뒤통수 밑으로 손을 집어 넣으며 더욱 깊은 키스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으읍......뭐야.

이 남자의 혀가 들어오고 있잖아.

아...어쩌지.

젠장 영화는 그렇게 많이 봐 놓고는 키스조차 제대로 몬 하다니.

하라는 어떻게 하면 이남자에 멋진 키스를 되돌려 줄까 고민하다

갑자기 자신의 혀를 휘감는 그의 혀때문에 깜짝 놀랐다.

에라 모르겠다~

[흐흡~]

우진은 갑자기 그의 뒤통수를 끌어당기며 강하게 키스를 해대는 하라의

공격에 놀란듯 큰 숨을 들이켰다.

다소 얌전했던 그녀가 갑자기 돌변해 미친듯이 그의 입술을 공격하고

있었다.

이 여자 여태 내숭 떨고 있었던거야?

키스 실력이 장난이 아닌데?


이 남자 놀라기는........

그저 영화한편 보고 흉내 냈을뿐인데...■■■■ (모 CF패러디..두둥~)


당장 키스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우진의 생각과는 달리 그는 하라와의

키스에 빠져들고 있었다.

젠장.....진짜 이여자 입술 하나는 끝내주게 달콤하단 말이야.

우진의 몸안에서 뜨거운 열들이 발산되기 시작했다.

우진의 등을 더듬던 하라의 손이 그의 가슴쪽으로 다가오자 우진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입술을 떼었다.

하라는 그가 갑자기 입술을 떼자 싫다는듯 고양이처럼 가르릉 거리며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자..잠깐....아무데나 더듬지 말아요.젠장~만지지....윽.....]

하라가 낄낄 거리며 그의 가슴에 손을 대고 더듬자 흥분으로 인해

우진은 얼굴까지 벌개진체 초인적인 힘으로 욕망을 억누르고 있었다.

[여기서 남자한테 볼쌍사나운 일 당하기 싫은면 당장 그만두시지.]

자꾸만 장난을 거는 하라에게 으르렁 거리며 우진이 다시 하라에게

깊은 키스를 시도했다.

키스를 하면서도 쿡쿡 거리는 하라의 웃음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때였다.

노크소리가 들리며 밖에 대기하고 있는 여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상무님 들어가십니다.]

[어~자..잠깐!]

우진이 놀란 얼굴로 키스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미 사장실의 문이 열리면서 상무의 검정 구두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젠장!]

우진이 소리치며 소파에 누워서 상기된 얼굴로 우진을 쳐다보고 있던

하라를 재빨리 소파 밑으로 끄집어 내렸다.

[꺄악!]

하라가 갑자기 우진이 잡아 당기는 바람에 그대로 소파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이 무슨!]

하라가 소리치려고 몸을 일으키자 우진이 다시 하라의 머리를 손으로

소파 밑으로 억지로 집어 넣고는 조용히 하라는 눈짓을 했다.

[상무님!왜...왠일이십니까? 하하!]

우진이 헝클어진 우진의 머리와 단추가 몇개 풀린 와이셔츠 차림을 보고

상무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사장님께서 회의 결과 자료 가지고 올라오라고.....아니.

그런데 사장님 어디 편찮으신건가요?]

하라는 바닥에 드러누운체 우진의 발을 자신의 발을 툭툭 쳤다.

우진이 힐끔 하라를 내려다보았다.

[입술~입술~]

하라가 소리내지 않고 입모양을 벙끗 거리며 자신의 입술을 손등으로

닦는 시늉을 했다.

우진의 입술은 하라가 바른 립스틱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우진은 하라의 신호가 무슨 뜻인지 깨닫고는 흠칫 거리며 손등으로

자신의 입술을 닦아내었다.

[하하....제 꼴이 좀 이상하지요? 요즘 운동 부족이라서 간단하게

사무실에서 운동좀 하고 있습니다.하하하.....]

젠장.

민망해 죽겠군.

이게 무슨 꼴이람,나이 많은 상무 앞에서...■.■

[서류 저에게 주시고 가세요.운동 끝나거든 제가 전해드리겠습니다.]

[네? 아네..그러시지요.]

상무가 우진에게 서류를 건네고는 힐끗 소파쪽을 쳐다보았다.

사장실 문을 등지고 있는 소파라서 바닥에 누운 하라가 보일 리는 없었

지만,우진은 왠지 상무가 소파밑에 하라를 힐끔거리는것 같았다.

혹시나 그녀가 보이는건 아닐까 그가 소파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소파

옆으로 빼꼼이 삐져나온 하라의 운동화가 보였다.

우진은 상무에게 멋적은 미소를 지으며 슬글슬금 하라의 운동화가 삐져

나온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자신의 발로 툭 하라의 발을 쳐서 밀어넣었다.

으씨...이남자가!

자신의 발을 우진의 발로 차자 기분나쁜 표정을 지으며 하라가 눈알을

부라리고 우진을 노려보았다.

[그럼...운동 계속하시지요.]

상무는 오늘따라 이상하게 보이는 자신의 사장을 의심스럽게 쳐다보고는

사장실을 나섰다.

상무가 문을 닫고 사장실을 나가자 우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야......]

소파밑에서 낑낑 거리는 하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소?]

[갑가기 그렇게 사람을 내던지듯 소파밑으로 던지면 어떻게해요!

아이구....허리 아파 죽겠네....]

[그럼,사장이 벌건 대낮에 여자와 소파에 뒹구르면서 키스를 하고

있었다는 소문을 회사에 쫙 퍼지게 해야겠소?]

우진이 십년감수했다는듯 이마에 맺힌 식은 땀을 닦아냈다.

[아..허리야 손이나 좀 잡아줘요.]

하라가 손을 내밀자 우진이 그녀의 손을 잡고 바닥에서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었다.

[앞으로 키스 할때는 좀더 방해받지 않는 안전한 장소를 물색해봐야

겠어요.....먼지좀 털어줄래요?]

하라가 우진에게 등을 돌리자 우진이 그녀의 등에 묻은 먼지를 털어

주었다.

[다시는 우리 사이에 앞으로는 없을 거요.]

[무슨 말이예요?]

[당신과의 키스는......그저......한순간의 충동이였단 말이요.]

[정말이예요?]

[으음.정말.]

[맹세코 진짜예요?나 못지 않게 나랑 키스하는거 당신도 좋아하던

눈치였는데.]

[다시는 그런일이 없을거라 하지 않소!]

[그런데 왜 아직도 내 입술을 쳐다보고 있는거죠?]


그녀의 말에 우진은 나쁜짓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그녀와의 대화중에도 무의식적으로 하라의 키스로 인해 적당히

부풀은 매력적인 입술을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였다.

[더이상 회사에서 풍기문란하게 굴지 말고 돌아가요.]

[풍기문란이요? 풍기문란에 당신도 한몫했다는걸 잊지는 말아요.

아...배고프다.퇴근 시간 아니예요?나 밥좀 사줄래요?]

하라는 어떻게든 자신을 내쫓으려는 우진의 노력을 무시한체 소파에

앉아 꼬르륵 소리나는 자신의 배를 움켜쥐었다.

[정말 못말리는 여자군.분위기 파악을 못하는거요? 아님 염치가

없는거요?]


[대기업 사장님과 밥 한번 같이 먹는데 분위기 파악과 염치가 있어야

하는지는 몰랐네요.좋아요.오늘은 내가 살게요.돼지갈비 어때요?]


하라를 쳐다보던 우진은 졌다는듯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잘됐군.그렇지 않아도 무언가를 아주 잘근잘근 뜯어먹고 싶었던

참인데..........]

우진이 하얀이를 드러내며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표정에 하라가 낄낄 거리며 손뼉을 쳤다.

[얼마든지 뜯어보세요.■■■■]
#21
갈비집 안으로 들어서자 맛있는 고기 굽는 냄새가 하라의 식욕을

더 자극했다.

[우와 맛있는 냄새...킁킁 오랜만에 포식좀 해봐야 겠어요.]

[사람들도 북적대고,이 고기냄새.......]

우진은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는다는듯 고기가 불판에 올려질때까지

내내 인상을 찡그렸다.

하라는 고기가 다 구워지자 젓가락으로 고기 한점을 집어들고는 자신의

입에 쏙 넣었다.


[움아...너무 맛있다.우진씨도 들어요.]

하라는 마지못해 젓가락을 드는 우진도 아랑곳 안하고 벌써 상추에

고기를 싸서 다시 한번 입속에 넣고 있었다.

[시원한 맥주 한잔씩 할래요?]

[그러는게 좋겠소.]

[아줌마~여기 맥주 한병이요!]

[그렇게 크게 안 외쳐도 다 듣고 있소.]

[하하...미안해요.원래 내가 목소리가 하이톤이라.]

우진은 고기 한점을 집어 들어 먹어보았다.

응?

생각보다 맛이 꽤 괜찮네?

우진은 입안에서 달콤하게 스스르 녹는듯한 연한 고기의 육질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다시 고기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아줌마가 맥주를 내오자 하라는 우진의 잔에 맥주를 따라주었다.

[자요!]

하라가 맥주병을 우진에게 내밀자 우진도 하라의 잔에 맥주를 따라

부었다.

[우리의 발전되어가는 관계를 위하여~건배!]

하라가 건배를 위해 내미는 잔을 우진은 무시한체 그냥 벌컥벌컥

들이켰다.

[우진씨.뭐좀 물어볼께요.]

하라의 질문에 우진의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결혼이 하기 싫은건가요? 아님 내가 싫은건가요?]

[그럼 당신은 왜 그 많은 남자들중 하필이면 나랑 결혼하려는 거요?]

[내가 먼저 물었잖아요.]

[난 결혼도 싫고,당신도 싫소.]

[이런.........이거 난감한데요.결혼만 싫다고 하면 어떻게든 해보겠는

데,내가 싫다고 하니........당신은 어떤 여자가 좋은데요?]

[내 여성 취향을 묻는거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내 여성 취향은 좀 까다롭소.]

[어떤데요?]

하라가 귀를 쫑긋하며 그의 말을 제대로 들으려 애썼다.

[첫째......]

우진은 힐끔 하라를 살펴보았다.

뭐든지 이 여자와는 반대로 말해주면 이 여자도 제풀에 포기하겠지?

[첫째,난 가슴이 큰 여자가 좋소.]

크흑.....사실 이 여자처럼 적당한 크기의 가슴을 가진 여자가 좋다....


[둘째,난 얌전한 성격의 여자가 좋소.]


얌전한척 하며 내숭떠는 여자보단,명랑하고 꾸밈없는 이 여자도 괜찮지

가끔 엉뚱한 짓만 하지않는다면야......


[셋째,난 몸매가 글래머한 여자가 좋소.]


솔직히,이 여자 몸매 하나는 끝내준단 말이야.


[그리고,넷째.......]


[으으으으.됐어요!]

하라가 젓가락을 소리나게 테이블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몸매 끝내주고,당신말이라면 고분고분 듣는

여자가 좋다는 거잖아요.]

[왜 화를 내는거요? 당신이 질문한 답에 솔직히 답해주는것 뿐인데.]

[당신한테 실망했어요.당신은 그래도 뭔가 다르 줄 알았는데,

요즘 속물인 남자들과 하나도 다를바가 없네요.

풍만한 몸매에 말 고분고분 듣는여자....쳇.

정말 실망이예요.

하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식사할 마음이 싹 달아나 버렸네요.남아서 많이 더 드시고 가세요.

계산은 제가 하죠.]

하라는 어이없어 하는 우진을 남겨둔체 계산대로 가 계산을 한다음

숯불갈비집을 먼저 나가버렸다.



갈비집을 빠져나온 하라는 씩씩거리며 화를 참아내려 애썼다.

[뭐야,그러니까 나는 몸매도 아니고,성격도 아니라 이런말인가?

쳇,조선시대 남자도 아니고 얌전한 여자를 원한다고?

물좀 떠오시요,하면 네 서방님..쪼르르....웃기시네.

가슴이 큰여자?]

하라는 고개를 내려 물끄러미 티셔츠 위로 봉긋 솟은 자신의 가슴을

쳐다보았다.

[그래,나 가슴 작다.뭐 보태준거 있어? 변태 자식.]

하라는 가방에서 껌을 꺼내 입에 넣고 그가 미운만큼 잘근잘근

씹어대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얼마쯤 걸어가던 하라가 다시 우뚝 걸음을 멈추더니,몸을 돌려 갈비집

으로 걸음을 옮겼다.

홀로 갈비집에 남겨진 우진은 식어버린 고기를 식상하게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의 잔에 남은 맥주를 마저 들이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데체가 머리속에 뭐가 있는 여자인지 모르겠군.]

갈비집에 주차해놓은 자신의 차로 걸어가던 우진이 그의 차에 누군가

기대어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하라가 풍선껌을 불며 그의 차에 기대어 있었다.

[다시는 날 보고 싶지도 않다는듯이 나가더니,여기서 날 기다리고 있었

던 거요?]

우진이 자신의 바지 호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하라에게 물었다.

[당신한테 할 말이 남아서 다시 되돌아 왔어요.]

[무슨 말이지? 실망한거 말고 또 있는거요?]

[난 가슴도 크지도 않고 몸매도 글래머도 아니예요.

더군다나 남자가 물 떠오라면 물떠오고 양말 벗기라면 양말 벗겨주는

현모양처의 얌전한 성격도 아니예요.

그러니까,당신이 좋아할 만한 구석은 하나도 없는 여자라구요.]


[알긴 잘 아는군.]

우진이 코웃음을 치며 주머니 안에 있던 담배를 꺼냈다.

[여러모로 당신이 맘에 들어할 만한 구석은 없지만요,그렇다고 당신

맘에 들도록 나 자신을 바꿀 생각은 없어요.

원래 세상은 자신이 갖고 싶다고 다 가질 수는 없는거잖아요?

내가 당신 취향에 아니라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할 수 있도록

당신의 취행을 바꿔주겠어요.]

당돌한 하라의 도전에 우진이 길게 담배연기를 내 뿜으며 기가 막힌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 맘데로 하시지요.어차피 모든게 당신 맘데로 아니였소?

이제 굳이 당신을 피하려고 하지도 않을 작정이요.

당신이 아무리 날 결혼식장에 끌고 가려 해도 난 꿈쩍도 하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우진은 열쇠로 자신의 자동차 문을 연다음 차에 올랐다.

그가 시동을 걸자 하라가 그가 있는 운전석 유리창을 두드렸다.

그가 창문을 내려 하라를 쳐다보았다.

[원래,식사를 마친다음 여자 집앞 까지 데려다 주는게 일방적인

코스 아닌가요?]

[당신 두 다리도 튼튼하겠다.버스 타고 가시지.]

우진은 다시 창문을 올리고는 차를 출발 시켰다.

[야!정 우진!!네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냐!!]

이미 뒤꽁무니를 보이며 멀어지는 그의 차에 대고 하라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지르고도 성미가 풀리지 않은 하라는 길가에 떨어져 있던

깡통을 발로 힘껏 차버렸다.



샤워를 마친 하라는 자신의 방에 있는 전신 거울앞에 서 보았다.

거울속에서 보이는 자신의 가슴을 쳐다보던 하라는 큰 한숨을 쉬었다.

하필이요 큰 가슴의 여자를 좋아할게 뭐람.

하라는 투덜거리며 참대위에 올려놓은 미키마우스 티셔츠를 입었다.

잡지사와 약속한 연재 소설을 쓰기 위해 하라가 컴퓨터 앞에 앉자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하라야~하라야~]

[누구야?너 심한이니? 너 술마셨니?]

심한이 전화기 너머로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러댔다.

[야!술 마셨으면 잘것이지 왜 전화질이얏!!]

[하라야~지금 집앞인데 나와봐라.]

[뭐? 우리집?]

[그래 니네집~]

평소의 심한과는 달리 떵떵거리며 소리치는 그를 보니 분명히 술에

엄청 쩔어있는게 분명했다.

[기다려!]

하라는 핸드폰을 끊고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22
하라가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심한이 비틀거리며 하라의 집

담벼락에 기대어 선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심한아~]

놀란 하라가 그에게 다가가자 그가 흐리멍텅한 눈으로 하라를 쳐다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휴~술 냄새.]

하라가 코를 잡고 고개를 돌렸다.

[어디서 이렇게 엉망으로 취한거야? 너 술 잘 못하잖아.]

[하라야.......하라야......]

심한은 하라의 이름만 부르더니 털석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야!정신차려 여기서 이러면 어떻게 해!]

하라가 심한의 팔을 잡아 끌며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난 널 좋아하는데,넌 왜 나를 싫어하냐?]

[미친놈 술 쳐먹었으면,집에나 돌아갈 것이지.일어나봐!]

하라가 억지로 심한을 일으켜 세웠다.

하라가 그를 일으키자 그가 비틀거리더니 갑자기 와락 하라를 끌어당기

더니 그의 품에 하라를 안았다.

[야! 무슨 짓이야!이거 안놔!]

[하라야.나 너아니면 못 산다.하라야.나한테 시집와라!]

심한은 그의 품에서 바둥거리는 하라를 끌어 안은체 진득이 처럼 들러

붙었다.

[싫어.대답하기 전에는 절대 놓치 않을거야.......하라야.대답해줘.

나한테 시집와라!]

[야! 소심한!]

하라가 있는 힘껏 그를 떠밀었다.

하라의 힘에 술에 취한 심한은 뒤로 나자빠졌다.

[야! 소심한! 프로포즈를 하려면은 술 깨고 말짱한 정신해 해라.

너 답지 못하게 이게 무슨 추태야!]

[나 다운게 뭔데?]

심한이 하라의 말에 고함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소심한 다운게 뭐냐구!]

[왜........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심한의 고함에 약간 주눅이 든 하라가 말을 더듬었다.

[그래, 처음엔 어릴적 부터 함께 자라온 소꿉친구로 널 여겨왔어.

하지만 대학교에 다니고,대학학교에 다니면서 이 세상에 여자는

오직 너 밖에 안보이더라.기억나?언젠가 네가 머리 좋은 남자가

좋다고 했잖아.넌 아무렇지 않게 내 뱉은 말이였지만,난 그날 밤부터

죽도록 공부만 했고,수재들만 모인다는 카이스트까지 갔어.

그런데, 넌? 너를 위해 난 하루에 두시간 잠도 마다않고,카이스트

까지 갔는데 넌 나한테 조금이라도 너에게 다가 갈수 있는 여유를

준적이 있어?이렇게 몇십년동안 네 옆자리를 지켜온 나는 아무

소용없는거야?그......그.족제비 같은 남자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아닌게 되버리는거야?]


[심한아.......사랑은 무언가 댓가를 바라고 하는게 아니야.

그냥 댓가를 바라지 않고 무한정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것,

그게 사랑이야.내가 너 였더라면,내가 너한테 이만큼 해주었는데

넌 왜 나한테 안 해주냐 하는 댓가를 바라진 않았을거야.

취했다.돌아가.비가 올것같아.]

하라는 힘없이 고개를 숙이는 심한을 내버려 둔체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라야~하라야~]

하라를 부르는 심한의 외침이 계속되었지만,하라는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그의 부름을 무시한체 정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2층 방으로 올라와 하라는 슬쩍 창문의 커텐을 젖히고 심한을

내려다 보았다.

아직까지 그 자세 그대로 멍한히 심한은 하라의 침실 창문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어느새 후두둑 빗방울이 하라의 창문을 때리기 시작했다.

심한은 내리는 비도 아랑곳 안하고 그대로 온몸에 비를 맞고 있었다.


오 하라.

난 모르겠다.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난 아직 널 사랑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은 놈인가 보다.


심한은 쓸쓸히 다시 한번 하라의 창문을 올려다 본 다음 천천히 발걸음

을 옮겼다.




우진은 불우 아동 돕기 자선 파티장안으로 도해와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꼭 내가 여기까지 따라 와야 해?]

우진은 자신의 팔에 바싹 붙어 팔짱을 끼고 파티장을 두리번 거리는

도해에게 못 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음.자기는 맨날 어차피 쫓아 와줄거면서,투정이야?]

[3시까진 회사에 들어가 봐야해.]

[걱정마세요.나도 놀러온거 아니야.일하러 왔지.]

[그런데,여기 파티장 분위기가 왜 이래?]

이상한 분장으로 파티장의 여기저기 오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우진이

얼굴을 찡그렸다.

[일종의 가장 무도회 비슷한거야? 워낙 글쓰는 사람들이라 특이한

면이 많지.좋잖아.독특한 분위기.난 맘에 드는데?]

도해가 무당벌레 복장을 한 뚱뚱한 남자를 흥미롭다는듯 쳐다보며

웃음을 지었다.

[여기 앉으면 되겠다.]

도해는 우진을 파티장의 중앙에 마련된 빈 테이블로 이끌었다.

그들이 테이블에 앉자 파티장 앞쪽으로 마련된 무대쪽에서 갑자기 웅성

거리며 시끌벅적 해졌다.

[드디어 시작인 모양이야.]

[뭐가?]

[오늘 파티의 피날레~]

도해가 조용히 감상이나 하라는듯 팔짱을 끼며 무대 쪽을 바라보았다.

무대위의 막이 걷히면서 환하게 조명이 켜졌다.

이 벌건 대낮에 왠 쇼야?

우진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다리를 꼰체 무대쪽은 쳐다보지도 않은체

테이블 위의 쥬스잔을 들이켰다.

[너무 멋져.카르멘이잖아.]

도해가 턱을 괴며 중얼거렸다.

카르멘?

우진이 무대쪽으로 힐끗 시선을 한번 던졌다가,다시 고개를 돌리고는,

모두 제자리에 멈춘체,무대쪽으로 고개를 돌린 각기 다른 분장으로

우스꽝스러운 사람들을 관찰했다.

카르멘에 나오는 Habanera 노래가 우진의 귓가에 맴돌았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노래소리에 우진은 저절로 무대쪽으로 다시 시선이

돌아갔다.

무대위에는 붉은 원피스를 입은 카르멘이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깊게 파인 드레스위로 하얀 젖가슴이 아슬아슬하게 드러나 있었는데,

전혀 천박하거나 야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관능적인 아름다움이 물씬 풍기는 여인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시선을

위쪽으로 옮긴 우진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가득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매력적인 카르멘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하라였다.

[오 하라.]

우진이 중얼거리자 도해가 우진의 팔을 툭 건드렸다.

[우진씨가 하라씨를 어떻게 알아?]

[뭐?]

[저기 카르멘 로맨스 소설 작가 오 하라씨잖아.]

[어?어.......집안끼리 좀 아는 사이야.]

우진은 변명하듯 말을 내뱉고는 다시 카르멘에게 고개를 돌렸다.


Love is the child of the Bohemian,
It has never, never known any law,
If you don't love me, I love you,
If I love you, keep guard of yourself!

(Keep guard of yourself)
If you don't love me, If you don't love me I love you!
(Keep guard of yourself)
But, if I love you, If I love you, keep guard of yourself!
카르멘 Habanera 中

감미로운 카르멘의 노래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는 카르멘에게 우진은 점점 혼을 빼앗기듯

넋을 잃고 있었다.

카르멘의 노래가 끝나고 사람들의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하라는 가슴에 손을 얹고 환성을 보내주는 사람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해주었다.

무대에 다시 막이 닫히면서 사람들은 다시 여기저기 흩어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진씨!]

도해의 부름에 환영에 잠겨있던 우진은 현실로 돌아왔다.

[어?]

[뭘 그렇게 넋을 잃고 쳐다보는거야? 사람이 부르는 것도 모르고?]

도해가 질투를 하는듯 입을 삐쭉 거렸다.

[자...잠깐 화장실좀 다녀올게.]

우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도해가 커피잔을 들어올리다 그녀에게 다가오는 하라를 보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하라 역시 도해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어서오세요.]

[와우~하라씨 너무 멋져요!글만 잘 쓰시는줄 알았는데,노래도 엄청

잘하시네요!]

[뭘요.평소 카르멘 뮤지컬을 즐겨보는 편이라 쉽게 할 수 있었어요.

복장이 좀 야하죠?]

하라가 가슴이 깊게 패인 카르멘 드레스가 민망한지 멋적은 표정을

지으며 손을 마주 잡았다.

[혼자오셨어요?]

[아니요.애인이랑 같이 왔는데.......괜찮죠?]

[어머!애인도 있으셨어요? 도해씨같이 매력적인 여자분의 애인되시는

분은 어떤 분 인지 궁금한데요?]

[아~저기 오네요!]

도해가 하라의 등뒤로 걸어오는 우진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제 든든한 백마탄 왕자님이예요.]

도해가 우진의 팔을 잡아끌며 하라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처음 뵙.....]

인사를 하며 고개를 든 하라의 표정이 굳어졌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우진이 그녀앞에 서 있었다.

하라는 우진의 팔에 팔짱을 끼고 있는 도해에게 고개를 돌렸다.

[처음 뵙겠습니다.오 하라 라고 합니다.]

하라는 냉정을 찾고는 우진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인사의 우진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가며 그도 입을 열었다.

[정 우진이라고 합니다.]

[우리 테이블에 앉아서 샴페인 한잔씩 하죠?]

그들은 각자 테이블에 앉았다.

우진의 옆에 나란히 붙어 앉아있는 도해를 하라는 불편한 심정으로 계속

쳐다보았다.

[오늘같이 아름다운 하라씨 모습을 보여줄 남자친구는 없나요?]

도해가 웃으며 하라에게 물었다.

[글쎄요.지금 데쉬중인 남자가 있긴 한데.]

[그런데요?]

도해가 궁금하다는듯 테이블에 턱을 괴며 물었다.

[그 남자가 영 제가 싫다네요.]

[어머~이상한 남자네.하라씨가 뭐가 어떻다고 싫다는 거예요?]

도해가 먼저 흥분하며 길길이 날뛰었다.

[글쎄요.그 이유를 알면,그 남자한테 더 접근하기 쉬울텐데 말이죠.]

하라는 시큰둥 하게 대답하며 자신의 앞에 놓인 냉수잔을 들어 물을

홀짝였다.

[도해씨 좀 더 계시다가 가세요.노래를 부르는데 너무 힘을 썼더니,

진이 빠지네요.휴게실에 가서 좀 쉬어야 겠어요.]

[어머,그래요.하라씨.우린 신경쓰지 말아요.]

우리?

쳇.

하라는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참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반가웠습니다.정 우진씨.도해씨 오늘 와 줘서 고마워요.]

[뭘요.]

[그럼.]

하라는 억지로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도해와 우진의 곁을 떠났다.

[잠시,전화좀 하고 올게.]

우진이 도해에게 말하고는 급히 하라를 잡기 위해 하라를 뒤쫓아 갔다.

[망할자식,애인이 있었어? 그래, 애인이 있었단 말이지.]

하라는 걸리적 거리는 원피스 치마 자락을 부여잡고는 씩씩거리며

휴게실로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기다려요!]

뒤에서 우진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하라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더욱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오 하라~]

[내 이름 부르지도 말아요!]

하라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 우진에게 소리쳤다.

[잠깐 이야기 좀 하지.]

우진이 이를 갈며 하라의 팔을 붙잡고 사람이 없는 곳으로 끌고 갔다.

[이거 놔요!!]

[조용히 하시지.엉덩이를 찰싹 때려주기 전에~]

사람들이 오지 않는 휴게실로 그녀를 끌고간 우진은 휴게실 안으로

하라를 밀어 넣고는 문을 닫고 잠금 장치를 눌러버렸다.

[무슨 짓이예요? 여긴 관계자 빼고는 출입금지라구요.]

하라가 팔장을 끼고는 우진을 노려보았다.

[당신이 도해와 아는 사이 인줄 몰랐소.]

[그래서요?어쩌라구요?]

[젠장~왜 아무 상관없는 도해와의 관계를 죄지은듯이 변명해야

하는거요!!]

[왜 애인이 있다고 진작 말하지 않았죠?]

[나 좋다고 따라다닌건 당신이지,내가 아니였소.굳이 일일이 애인까지

있다고 당신한테 이야기 했어야 한다고 생각치는 않소.]

[나쁜자식~적어도 난 당신을 따라다니는 동안은 당신에게 충실했다구요!

이렇게 사람을 바보로 만들 수 있는건가요?]

[당신의 지금 현재 모습을 보고는 나한테만 충실했다고 볼 수는 없겠

는걸? 그렇게 훤히 가슴을 다 드러내놓고,남자들에게 유혹의 노래나

흘려보내다니.파티장에 있던 남자들의 절반은 당신을 보며 침을

흘리더군.]

우진이 기분나쁘다는듯 하라의 차림새를 훑어보았다.

화가 난 하라가 숨을 내쉴때마다 그녀의 가슴이 들썩 거렸다.

[당신 말대로 하면 당신또한 나한테 상관할 바가 뭐래요?

당신은 애인하고 놀아나면서,나는 수녀복이라도 입고 남자들 앞에

서야 한다는 건가요? 웃기는 처사네요.]

[그래,이제야 이야기가 풀려가는군.그러니까 서로 이렇게 피곤하게

굴것없이 당신은 날 깨끗이 포기하고,나도 당신같이 귀찮은 여자

떨궈내고 애인도 마음대로 만나고 다니고,서로 좋은거 아니요?]

비아냥 거리는 그의 말에 화가 뻗칠대로 뻗친 하라가 휴게실에 간이

분장대로 놓여진 화장대 위의 물건을 사정없이 우진에게 집어던졌다.

[나가요!!나가!당신같은 오만한 남자는 정말 꼴도 보기 싫어요!

도해씨가 당신같은 남자를 애인으로 삼으려 한다니 정말 불상하군요]

[그 말 취소해.]

[싫어요.당장 여기서 나가요!]

[싫다면?]

[나가요.당장.]

[나한테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새어머니 밖에 없지.당신이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명령할 권리는 없소.]

[오만한 남자같으니라구!나가~]

하라가 화장대 위의 꽃병을 집어 들어 그의 옆으로 집어 던졌다.

꽃병이 우진을 아슬아슬하게 비껴나 문에 부딪히며 산산 조각이 났다.

[젠장~망할 여자 같으니라구!]

우진이 하라에게 달려들어 또다시 물건을 집어 드는 하라의 손목을

잡아 그녀의 머리위로 들어올렸다.

[이거 놓지 못해요!]

두 손이 그의 손에 묶여버리자 하라가 발길질로 우진의 정강이를 힘껏

찼다.

정강이에 느껴지는 고통에 우진이 끙하는 신음소리를 냈지만,그녀의

팔목을 잡고 있는 손에는 힘을 풀지 않았다.

흥분한 하라의 얼굴에 홍조가 생기면서 그녀의 까만눈이 반짝 거리며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정말 아슬아슬 하군.어떻게 이런 옷을 입고 남자들 앞에 설 생각을

했지? 그들의 갈망어린 키스를 바라기라도 했나? 남자를 유혹해 놓고

죽음까지 이르게 하는 카르멘이 되고 싶었나?]

[그래요.카르멘이 되서 남자들을 유혹하고 싶었어요.적어도 그들은

당신처럼 날 싫어 하지는 않으니까요.]


[카르멘이 되고 싶었다.좋아.그게 당신 소원이라면 바라는 대로해주지.

노래를 부르는 내내 당신이 바래 왔던건 이거 아닌가?]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진의 입술이 하라의 입술에 달려들었다.

[이..미친....]

우진이 자세를 잡기 위해 잠깐 입술을 떼었을때,하라가 욕설을 퍼부으려

했지만 이내 다시 그의 입술에 막혀버렸다.

우진은 하라의 손목을 잡은체 그녀를 벽쪽으로 밀어붙였다.

하라의 등이 벽에 와 닿자 그는 그의 긴다리를 하라의 다리 사이로

밀어넣으며 키스 하기 편한 자세를 취했다.

반항하던 하라는 어느새 열정적인 카르멘이 되어 우진의 키스에 점점

반응하기 시작했다.

우진에게 손이 자유로워진 그녀가 팔을 그의 목에 두르며 그의 키에

맞추려 발돋움을 하며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밀어 넣었다.

[하라씨!거기 있어요?]

갑자기 휴게실 문을 두드리며 누군가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지....지금 옷 갈아 입고 있어요!]

당황한 하라가 그에게 입술을 떼고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우진이 문을 잠궈놓은것이 정말 천만 다행이였다.

[옷 갈아입고,파티장으로 다시 나와요!사람들이 인사를 하고 싶어해요]

[네~금방 갈게요]

문 넘어로 그 사람이 물러 나는 소리가 들렸다.

[젠장.]

우진이 그제서야 그녀와의 키스의 여운에서 정신을 차린듯 그녀에게서

멀어져 나갔다.

[도해가 기다리고 있을거요.]

우진은 손등으로 자신의 입술을 훔치며 휴게실을 나가기 위해 문쪽으로

걸어갔다.

[생각이 바뀌였어요.]

하라의 말에 우진이 무슨 소리냐는듯 고개를 돌렸다.

[당신! 아무래도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운 남자인거 같아요.

또 오기도 생기구요.골키퍼 있다고 골 안들어 가는거 아니잖아요?]

[쳇.당신 맘대로.언제는 내 의향을 묻고 행동 한 적 있었소?]


우진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당신,오늘 정말 카르멘처럼 노래도 잘 부르고,아름다웠던건 인정해

주겠소.]

우진이 뒤도 안돌아 보고 중얼거렸다.

[그거 칭찬인가요?]

[말을 말지.]

우진이 혀를 차며 문을 열고 휴게실을 나갔다.

도해를 찾기 위해 휴게실 복도를 걸어가는 우진은 마음이 어지러웠다.

왜 난 저 여자와 키스만 하면 정신을 못차리는 거지?

그리고,왜 저 여자를 쳐다보는 남자들의 시선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걸까?

#23
밤 늦게 자신의 아파트로 돌아온 우진은 혹시나 해서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플립을 열어보았다.

도해와의 만남 이후로 하라는 그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벌써 몇번이고 전화해서 데이트 하자고 졸라대야 할 그녀가 삼일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자 어느새 전화기만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

을 발견하고 우진은 당황스럽기도 하였다.

뭘 기다리는 거야?

혹시 그 괴물같은 여자의 연락을 기다리는거야?

우진은 피식 웃으며 핸드폰을 침대에 던져놓고는 벌레가 허물을 벗듯이

옷을 벗고는 샤워를 위해 욕실로 걸어갔다.

그가 욕실 손잡이를 잡자 침대에 던져 두었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반사적으로 재빨리 몸을 돌려 침대로 달려가 전화를 받았다.

급히 뛰어가던 그가 침대 발 모서리에 발을 부딪쳤다.

[으....젠장.]

그는 발을 감싸다 혹여 핸드폰이 끊길까 얼른 전화기를 귀에 갖다대었다

[여보세요?]

[우와~왠일로 벨소리 두번만에 전화를 받는데요?]

전화기 너머로 명랑한 하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때마침 손에 전화기를 들고 있었소.]

반가운 그의 마음과는 달리 우진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전화를 기다렸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무슨 일 있었소?]

[왜요?]

[아니.]

얼른 말꼬리를 얼버무리는 우진의 대답에 킥킥 거리는 하라의 웃음소리

가 들려왔다.

[우진씨 솔직히 고백해요.내 전화 기다렸죠?]

[누....누가 당신 전화를 기다렸다는 거요!]

우진이 버럭 소리를 치자 하라는 더욱 큰소리로 깔깔 거리며 웃었다.

[아니면 됐지. 왜 그렇게 화를 내요? 뭐 낀 놈이 성낸다는 말도 몰라요]

[당신 언변을 따라가려면 난 아직 멀은것 같소.]

[그럼요,그래도 내가 명색이 작가 아니던가요.뭐하고 있었어요?]

[막 집으로 돌아온 참이였소.]

[음.그럼 지금 뭐하고 있던 중인데요?]

[샤워하려던 참이였소.]

[우와~그럼 지금 홀딱 벗고 있는건가요?]

[지금 당신의 은밀한 상상을 방해하고 싶진 않지만,입을 건 입고

있으니까 괜한 그림 머리속에 그리고 있지 마시요.]

[난 당신의 몸애에 대해 상상할 필요까진 없어요.이미 한번 봤는데

상상할 이유가 있나요?]

우진이 욕실에서 알몸으로 쓰러졌던 사건을 말하는 듯 했다.

우진은 하라에게 당했던 그 수치스러웠던 순간이 생각 나는듯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부탁하지만,그때 그일은 제발 기억속에서 영영 지워주시오.]

[왜그래요? 당신 몸매 정말 죽였어요~유후~]

하라가 우진을 약을 올리려듯 괴성까지 질러대고 있었다.

[이봐요~]

우진이 슬슬 약이 오르는것 같자 하라는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그에게

전화를 걸은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 삼일동안 글 쓰느라고 정말 바빴어요.전 한번 발동 거렸다 하면

며칠이고 미친듯이 방콕 하거든요.]

[당신도 글 쓸때 다른 작가들 처럼 담배와 커피에 중독되서 며칠동안

머리도 안감고 씻지도 않고 그렇게 글을 쓰는 거요?]

[이런.정 우진씨.당신 지금 한 말 글을 쓰는 모든 작가들을 모독하는

말인거 알아요? 물론 그런 괴짜 작가들도 몇몇 있지만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다구요.사람들 편견이라는게 참 무섭죠?

글 쓰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외계인 취급 한다니까요.]

[그럼 당신은 안그런다는거요?]

[담배는 피지 않지만,지독한 슈가 중독증이죠.]

[슈가?]

[난 글을 쓰면 막 단것이 땡기거든요.글 쓰는 동안은 막대 사탕을

입에 물고 살아요.]

[그나 저나 할 말이 뭐요?막 샤워하려고 모두 벗고 있던 참이라,

감기 들겠소.]

[빙고~딱걸렸어~내 말이 맞죠? 다 벗고 있잖아요 당신!]

[젠장.]

우진은 얼른 침대위의 침대보를 끌어당겨 자신의 중요한 부분을 가렸다

당장이라도 어디선가 하라가 튀어 나와 자신을 놀릴 것만 같았다.

[좋아요~나도 감기에 걸려 코 훌쩍 거리는 남자와 키스를 하고 싶지는

않다구요.제 본론은요, 내일 오후 2시에 소개팅에 나가기로 했어요.

설마 당신 애인이 다른 남자와 소개팅 하는것을 보고만 있지는 않겠죠?]

[누가 당신 애인이라는 거요? 그리고 난 당신이 누구와 데이트 하던

신경쓰이지 않소.]

[정말이예요? 그 남자 유명한 골프 선수라던데,돈도 많고 인물도 끝내

준다고 하던데.뭐 당신이 신경쓰이지 않다면 할 수 없구요.

내일 오후 2시 갤러리 호텔 커피숍이요.그럼 난 할 말 다 했어요.

샤워하러 가세요.으흐흐흐..뽀독뽀독 깨끗하게 씻으세요!유후~]

우진은 황당한 얼굴로 끊겨버린 자신의 핸드폰을 쳐다보았다.

정말이지 쉴 새 없이 퍼붓는 하라의 수다를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소개팅이라구?

쳇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구?

우진은 핸드폰을 다시 침대에 집어 던지고는 욕실로 들어가버렸다.


전화를 끊은 하라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친구 미경이 나가기로 한 소개팅 자리였는데,미경이 갑자기 장염이 걸려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하라가 대타로 나가게 되었다.

싫다는 하라를 영원히 그녀를 보지 않겠다는 미경의 반 협박에 못이겨

허락은 했지만,솔직히 하라는 그 자리가 영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우진을 한번 떠 볼 좋은 기회라 생각된 하라는 당장에 우진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내일 우진이 자신의 소개팅 자리에 나온다면,어느정도 그에게 희망이

보이는 것이고,안 나온다 해도 하라에겐 그 어떤것도 방해 될게 없었다.

어차피 그는 하라의 남자가 될 사람이니까.



우진에게 잔뜩 야단을 맞고 사장실은 나온 윤 상무의 얼굴은 정말이지

똥이라도 씹어 먹은듯 울상이였다.

[사장님 오늘 왜 그러셔?]

윤 상무가 우진의 비서에게 물었다.

[모르겠어요.점심 시간 부터 저렇게 안절부절 왔다 갔다 하시는데

저도 정신이 하나도 없다니까요.]

[안절부절? 무슨 일 있으신거 아니야?]

[글쎄요.]

[나 원 젊은 놈 사장으로 모시고 살려니까 더러워서 못 해 먹겠구만.]

윤 상무는 투덜투덜 거리며 사장실을 나갔다.

우진은 초조한듯 책상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는 애써 시계를 쳐다보지 않으려 했지만 그의 귓가에서는 이미 한시간

이나 계속 똑딱거리는 초침 소리가 생생하게 울려대고 있었다.

유혹에 못 이긴 우진이 결국엔 항복하며 자신의 손목 시계를 쳐다보았다.

정확히 오후 2시 20분 전이였다.

우진은 책상으로 돌아와 자신의 의자에 앉아 윤 상무가 두고 간 서류철

을 활짝 펴놓고 서류에 집중하려 애썼다.

서류위에 써 있는 깨알같은 글씨들이 저마다 춤을 추며 퍼즐을 맞추듯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 같았다.

글씨들이 하나씩 모여 들더니 오 하라 라는 선명한 글씨로 변해 우진의

두 눈에 정확히 들어왔다.

[젠장!!]

우진이 소리치며 서류철을 집어 들어 냅다 바닥에 집어 던졌다.

[미쳤어! 환각까지 보이다니.]

[사장님 괜찮으세요?]

우진의 고함에 기다렸다는듯이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진은 옷걸이로 다가가 자신의 양복 재킷을 거칠게 끌어내고는 성큼

성큼 사장실을 걸어나갔다.

[사장님!어디가세요? 파워텍 사장님과 약속 있으신데요!]

[파워텍에 전화해서 약속장소 갤럭시 호텔 커피숍으로 바꿔요!]

우진은 고함을 지르며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비서는 난데없는 사장의 돌출 행동에 어안이 없다는듯 그 자리에서

엘리베이터 속으로 우진이 사라지는것을 쳐다보았다
#24
소개팅에 나온 남자 앞에 앉은지 10분 밖에 안되었는데도 하라는 따분

해서 하품이 실실 나올려고 했다.

골프 선수라고 하기엔 육체미 하는 선수 처럼 근육이 울퉁불퉁 한게

하라의 취향은 아니였다.

이 남자는 만나자 마자 하라가 알아 들을 수 없는 골프 용어를 주절주절

늘어놓으며 하라를 더욱 짜증나게 했다.

딱 20분만 더 있다가 퇴짜 놔버려야지.

하라는 혹시 우진이 나타나지는 않을까 두리번 거렸지만,그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작은 실망감들이 하라의 가슴을 스쳐갔다.

[하라씨?]

하라를 부르는 앞에 앉은 남자에게 의미없는 미소를 보여주었다.

[네?]

[제 이야기가 좀 따분하죠?]

[아.......아니요.제가 잘 모르는 분야라 신선하고 잼 있네요.]

개뿔 잼 있긴 뭐가 잼 있어.■..■+

이름도 웃기지.임신중? 임 신중이 뭐야?

암튼 이놈의 가시나 이런 자리에 날 대타로 내보내?

죽겄어.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에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처음에 소개팅 하는 상대방이 갑자기 바뀌였다고 했을때,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그분께는 죄송하지만 오히려 하라씨가 나와주신것에

대해 감사해야 겠는데요?]

임 신중 이란 희귀한 이름을 가진 남자는 백만불을 주고도 사지 못할

기름기가 줄줄줄 흐르는 메이드 인 미국 산의 버터같은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하라를 쳐다보았다.


억....토할것 같아.

도저히 못 견디겠어.■.■


하라가 금방이라도 토할 것같은 느끼함을 미소를 지으며 억지로 참아

내고 있었다.




우진은 느끼한 시선으로 하라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그녀의 앞에 앉은

남자를 계속 노려보았다.

그 남자도 마음에 안들었지만,저런 놈에게 시종일관 미소를 보이고 있는

하라 또한 마음에 안들었다.

[저.......정 사장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우진의 앞에 앉아 있던 파워 텍 신 사장이 무시무시한 표정으로 한곳을

노려보고 있는 우진이 걱정되는듯 물어왔다.

[아,죄송합니다.]

우진이 그제서야 자신이 중요한 거래처 사장과의 약속에 나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지못해 그 문제의 두 남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어디까지 말씀을.......]

[아,잠시만요.]

신 사장이 갑자기 울리는 자신의 핸드폰을 받았다.

신 사장이 핸드폰을 받는 사이 우진은 다시 재빨리 하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가 즐거운지 하라가 깔깔 거리며 고개를 젖히고 웃음을 터트렸다.

젠장.

아주 신이 나셨구만.

무릎위에 놓여져 있던 우진의 손이 불끈 주먹이 쥐어졌다.

[저,정 사장님 죄송해서 어쩌지요?]

전화를 끊은 신 사장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회사에서 전화가 왔는데,구미쪽 공장에서 사고가 터졌다는군요.

긴급한 일이라.제가 직접 구미쪽으로 내려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긴박한 일이라면 어서 가셔야죠.]

우진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가시지요.제가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신 사장은 자신보다 먼저 서두르는 우진의 태도에 멋적은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적당히 그의 비유만 맞춰주고 오라는 미경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하라는 남자의 말에 과장되게 웃어주며 그와의 대화를 즐기는 듯한

분위기를 유도해 냈다.


으.......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아.■.■

언제까지 이 짓거리를 해야 하는거야?


억지로 웃느라 그녀의 얼굴의 모든 근육 세포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라가 물잔을 들어올리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왠지 익숙해 보이는

남자의 뒤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뭐야?

혹시 그 사람이야?

자세히 보려 하라는 목을 길다랗게 쭉 빼고는 그 남자가 고개를 돌려

주기를 기다렸다.

[하라씨?]

그녀를 부르는 소리에 하라는 아쉬움을 달래며 앞에 앉은 남자에게 고개

를 다시 돌렸다.

[하라씨는 정말,유쾌하고 잼 있는 분 같습니다.얼굴도 아름다우시구요.]

그의 아부섞인 발언이 그리 기분 나쁘지 만은 않은 하라가 매력적인

미소를 또한번 보내주었다.



[여보세요?]

병원에서 할 일없이 만화책을 읽고 있던 하라의 친구 미경은 요란하게

울려대는 자신의 핸드폰을 받았다.

[옆집누나?]

그녀의 동생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왜?]

[하라 옆집누나 소개팅 나갔어?]

[어.지금 한창 이 옆집누나 대신 대화를 나누고 있을것이다.]

[아,큰일이네.]

[와? 무슨 일 있어?]

[지금 하라 옆집누나하고 있는 자식,오늘 소개팅 하기로 했던 남자가

아니야!]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신중이형 병원에 있어.]

[뭐야 병원이라니~그럼 하라와 있는 남자는 누군데?]

[신중이형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는 변태 자식이 있는데,그 자식이

소개팅 나가는 신중이형 때려 눕히고는 그 약속장소로 나갔어.]

[뭐야!!]

미경이 소리치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섰다.

[으.........]

[옆집누나 괜찮아?]

[젠장,링켈 바늘 빠졌다.■.■그럼 하라는 어쩌냐.빨리 네가 호텔

커피숍으로 가봐!!경찰에도 연락하고!]

[지금 그리로 가고 있는 중이야.]

[너! 하라한테 무슨 일 생기면 죽는다!!옆집누나와 동생 사이의 인연까지

끊을겨!!각오해!]

미경의 협박의 그녀의 동생은 전화를 끊어 버렸다.

[아,어쩌지.]

미경은 급히 버튼을 눌러 하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놈의 기집애 전화는 왜 꺼놓고 지랄이야!]

하라의 전화기가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원의 음성에 미경이 욕을

하며 전화기를 집어 던졌다.




아무래도 남자의 직감으로 저 남자의 시선이 왠지 불안했다.

우진은 하라가 딴 곳으로 시선을 돌릴때마다 움흉한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보는 그 남자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어?]

우진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는 하라와 그 남자를 보며 자신도 일어

서려다 하라의 눈에 자신의 모습이 들킬까 얼른 고개를 숙이고 테이블에

앉았다.

다시 그가 고개를 들자 하라와 남자가 커피숍을 나서고 있었다.

우진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

나섰다.



[제 차는 지하 주차장에 있어요.]

[아,그럼 제가 차 있는데 까지 모셔다 드리지요.]

남자가 나서자 하라는 정중히 그의 제안을 거절했다.

[괜찮아요.밤도 아닌데요.]

하라는 잠시라도 이 남자와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점점 자신을 보는 이 남자의 시선이 불편해 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말로는 표현 할 수 없지만,자신을 보는 이 남자의 시선이 그리 건전하지

못하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아닙니다.요즘같이 험한 세상에 여자 혼자 지하 주차장은 위험하죠.]

부득부득 자신이 에스코트 하겠다는 남자를 딱히 거절할 이유가 생각

나지 않자 하라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 주차장에 있는 자신의 차 앞까지 도착하자 하라는 등을 돌려

남자에게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안녕히 가세요.]

하라가 자신의 차에 열쇠를 꽂으려는 순간 커다란 손이 자신의 입을

뒤에서 막았다.

그녀의 비명 소리 조차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할 만큼 하라의 입을 막고

있는 손에 남자는 있는 힘껏 힘을 주었다.

[감히,네가 나의 사랑을 가로채려해?]

기분나쁜 목소리로 남자가 하라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의 사랑?

이 미친놈이 무슨 소릴 하는거야?


[오늘 내 사랑이 소개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

어림도 없지,나를 두고 여자를 만나겠다구? 나에게 보낸 그 미소와

시선은 어떻게 된거야? 나를 사랑한다고 해놓고,여자랑 놀아나려

해? 우리의 순수한 사랑을 방해하는 여자들은 다 없어져야 해.]

남자의 한쪽 손이 더듬더듬 하라의 가슴을 더듬기 시작했다.

이씨~어딜 만져!

하라가 눈알을 부라리며 힘껏 입을 막은 남자의 손을 물어뜯었다.

[으악~]

남자가 자신의 손을 잡고 펄쩍 뛰며 뒤로 물러났다.

[뭐야!당신 임 신중 이란 남자 아니야?]

[내 사랑의 이름을 함부로 지껄이지마!]

[당신 변태야?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게?]

[나쁜 년,이쁜것들은 다 죽어야해!죽어라!]

남자가 남산만한 덩치로 하라에게 달려들었다.



우진은 지하 주차장을 울리는 하라와 남자의 비명소리의 진원지를 찾기

위해 미친듯이 주차장을 헤집고 다녔다.

[어디있소!!]

우진이 소리치며 하라를 찾기 위해 넓은 주차장을 뛰어다녔다.

그때 또다시 하라의 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우진의 머리속에 복잡한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망할자식~그 여자한테 손 하나 까딱 했다간 내손에 죽을 줄 알어!]

우진이 고함을 지르며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뛰어갔다.

모퉁이를 돌자, 주차장 땅바닥에 널부려저 있는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우진의 눈이 커다래 지며 하라의 모습을 찾기 위해 한 발자국 옮기자

갑자기 그의 앞으로 그림자 하나가 튀어 나왔다.

놀란 우진이 뒤로 물러섰지만,이미 그의 몸이 허공으로 붕 뜨더니만

그대로 바닥으로 내팽겨졌다.

[윽.......]

바닥에 닿는 순간 가슴에 와 닿는 고통에 우진이 신음했다.

[어머~우진씨!]

그를 부르는 소리에 그가 고개를 들자 머리를 산발하고 구두 하이힐로

막 우진을 내리 찍으려는 하라의 모습이 보였다.

[당신.......괜찮은거요?당신 비명 소리를 듣고 쫓아왔소.]

[전 괜찮은데,당신이 괜찮지 않아보이는데요?]

[젠장! 당신이 날 이렇게 바닥에 패대기친거요?]

[네,저 놈과 같은 무리인줄 알고.]

하라가 구두를 집어 던지고는 호들갑을 떨며 우진쪽으로 쪼그리고 앉아

그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우진은 자신의 옆에서 코피를 터트린체 정신을 잃고 바닥에 누워있는

문제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설마,당신이 이 남자를 이꼴로 만들었다고 나한테 설명하지 말아요.]

우진이 몸서리 쳐진다는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남자 완전 변태 였지 뭐예요.기분 나쁘게 내 몸을 더듬길래 약간

손좀 봐준다는게,좀 힘을 과 하게 썼나봐요.

합기도 사범님이 전 늘 힘 조절이 안되는게 문제라고 말씀 하셨죠.]

우진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미소짓는 하라를 어이없이 쳐다보았다.

#25

미경의 남동생과 그가 데리고 온 경찰에게 그 문제의 변태 남자를

넘긴 후 하라와 우진 둘만 남게되었다.

우진은 아직도 하라에 의해 바닥에 떨어질때 받은 충격으로 갈비뼈까

욱신 거리는 것 같았다.

[많이 아파요?]

하라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정말이지 당신 같이 마른 여자한테서 그런 괴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신기할 따름이요.무슨 여자가 자기보다 덩치가 큰 남자 둘은 한꺼번에

그렇게 패대기 칠 수 있소?]

[말했잖아요.힘 조절이 안됐을 뿐이라구.]

하라는 입을 삐쭉거리다 우뚝 걸음을 멈추고 우진을 쳐다보았다.

[그런데,당신 내가 지하 주차장에 있는 줄 어떻게 알았죠?]

[뭐?]

[당신,나 보려 온거 맞죠? 그렇죠?]

[변태한테 시달림을 받더니 정신까지 어떻게 된 모양이군.]

우진이 속으로 뜨끔하며 하라의 시선을 피해 성큼성큼 앞서 걸어갔다.

[빨리 말해요!왜 여기 왔어요!]

하라가 뒤쫓아 오며 그에게 물었다.

[때마침 이 호텔에서 약속이 있었소.행여 당신을 찾아 왔다는 엉뚱한

상상일랑 하지 말아요.]

[에이~거짓말!나 때문에 온거 맞죠? 그렇죠? 빨리 자백해요!]

우진이 자신의 차에 오르면서 찌릿 하라를 노려보았다.

하라는 뭐가 좋은지 싱글싱글 웃으며 우진을 바라보았다.

[그냥 내가 소개팅 하는게 궁금해서 왔다고 하면 될것이지,

구차하게 남자가 딴 소리를 해요?

빨리 자백해요!]

하라가 우진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찔러대자 그가 간지러운지 몸을

비틀며 웃음을 터트렸다.

[어린애 같이 그러지 마시요..풉.간지러워!]

우진이 하라를 피하자 그녀는 재미가 들린듯 그를 쫓아다니며 자백을

하라며 귀찮게 굴었다.

깔깔거리는 하라와 우진의 웃음소리가 야외 주차장을 가득 메워갔다.



어쩌다 집에만 데려다 준 다는 것이 여기까지 왔는지.

우진은 자신의 앞에서 엄청난 식욕으로 떡복기를 먹어대는 하라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입가에 빨간 고추장까지 묻혀가며 떡복기를 먹는데,열심히

열중하고 있었다.

[여자가 좀 조신하게 먹을 수는 없소?]

우진이 주위 시선을 의식했는지 하라에게 타박을 주었다.

[왜요? 맛있는 음식은 맛있게 먹어줘야 음식이나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

에 대한 예우라구요.]

[입가 좀 닦아야 겠군.]

[어디요? 여기요?]

하라가 자신의 혀로 입가를 닦아내려 낼름낼름 거렸다.

엉뚱한 쪽으로만 분홍빛 혀를 낼름거리는 하라를 보며 우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 당신이 하는 행동을 보면 어린아이 같은 걸 아오?]

우진이 테이블 위에 티슈각에서 티슈를 꺼내 하라의 입에 묻은 고추장을

닦아내주었다.

잠자코 그가 닦아주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하라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우리 이러고 있는거 보면,남들이 연인이라고 생각하겠죠?]

그녀의 말에 우진은 저도 모르게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고 있던 자신의

손을 내렸다.

[정 우진 씨 이제 순순히 인정하시죠.]

하라가 마지막 하나 남은 떡복이에 포크를 내리 찍으며 그에게 말했다.

[뭘?]

[당신도,솔직히 나 한테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죠?]

[글쎄.]

[와우~글쎄? 우와 우와 글쎄라는 말은 조금은 우리 사이에 희망이 보인

다고 생각해도 되는건가요?]

[떡복기 다 먹었으면 그만 집으로 갑시다.]

[대답 회피하는데는 도가 트셨군요.치이]

하라는 가방을 집어 들고 먼저 일어선 우진을 따라 나섰다.

그의 차에 오른 하라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매야지.]

무슨 말이냐는듯 하라가 고개를 돌려 우진을 쳐다보았다.

[뭘 매요?]

[벨트.]

[아.벨트]

하라가 벨트를 매기 위해 벨트의 손잡이를 찾았다.

[벨트가 안보이는데요?]

[의자 옆을 잘 살펴봐요.]

[없어요.]

하라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벨트를 찾았다.

[덜렁 대기는.]

우진이 한숨을 쉬며 밸트를 찾기 위해 쩔쩔매는 하라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가 하라의 앞으로 몸을 기울이자 하라가 깜짝 놀라며 좌석의 등받이에

바싹 자신의 등을 갖다대었다.

그가 벨트를 잡기 위해 몸을 더 숙이자 그의 따뜻한 숨결이 하라의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하라는 자신의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우진에게 행여 들키기라도 할까,

조심스런 마음으로 그를 내려다 보았다.

벨트를 잡아 당겨 벨트 를 채워놓고는 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가 고개를 들자 바로 자신을 쳐다보는 하라의 반작이는 시선과 바로

마주쳤다.

묘한 기운이 차 안을 감돌았다.


아.떡복기만 먹지 않았어도 이 남자

확 어떻게 해보는 건데 말이야.


[차 출발해도 되겠소?]

[네? 아 물론이요.]

우진은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다.


그녀의 집앞에 도착한 우진은 시동을 끄고는 하라를 바라보았다.

차를 출발시킨지 오분도 안되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하라는 이제

작지만 코고는 소리까지 내며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우진은 자신이 메고 있던 벨트를 풀고는 하라를 깨우기 위해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잡아 흔들었다.

[음,아빠 십분만 더요.]

하라가 중얼거리더니 몸을 옆으로 돌려 이제 우진의 어깨에 턱하니

자신의 머리를 올려놓고 편안 자세로 잠을 자기 시작했다.

[정말 갈 수록 난감하군.]

우진은 그녀의 말대로 십분만 기다리자 생각하며 그녀에게 어깨를 빌려

준체 차안의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에서 은은한 클래식 음악과 함께 DJ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누구나 가슴에 사랑하는 사람의 나무를 심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잊지 마세요.

나무를 심는것 보단 지켜나가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요

만화 파페포포 中에서


우진은 속눈썹을 길게 내린체 어린아이 마냥 쌔근쌔근 잠들어 있는

하라를 내려다 보았다.

이 여자는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그래서 나를 그렇게 쫓아 다니는 것일까.

이 여자의 마음속엔 어떤 나무가 자라고 있을까.

아마도 이 여자의 가슴엔 상큼한 레몬 나무가 자라고 있을거야.

그런데 이 여자 뭘 믿고 이렇게 자는거야?■..■+

우진은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아기마냥 잠들어 있는 하라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그제서야 우진은 오 하라 라는 여자의 얼굴을 자세히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샅샅이 살펴볼 수 있었다.

길고도 풍성한 속눈썹하며 작지만 매끄럽게 뻗은 콧날,도톰한 입술까지.

그녀의 입술에 시선이 머물자 또다시 우진의 신체에 적색신호가 경대학

을 울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다른건 몰라도 이 여자가 멋진 입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은

그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유독 이 여자의 입술만 보면 바보같이 정신 못차리고 있는 그 아닌가?

우진은 순진한 양처럼 자고 있는 하라의 입술을 자신이 덮치기 전에

하라를 깨워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몇번 하라의 어깨를 흔들자 그녀가 부시시 눈을 뜨고는 그를 올려

다보았다.

[내가 잠들 었나요? 쓰읍~]

너무도 태연하게 손등으로 입가의 침을 닦는 그녀를 보며 우진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 많이 놀랐을.......아니,힘쓰느라 힘들었을텐데.십분만 더

자라고 일부러 깨우지 않았소.]

하라가 두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피며 하품을 했다.

그녀가 공중으로 팔을 뻗자 그녀가 입고 있는 윗 옷이 올라가며 날씬한

허리선이 드러났다.

애써 그곳에 시선을 두지 않으려 우진은 고개를 돌렸지만,저도 모르게

자꾸만 그곳에 시선이 돌아가는건 막을 수가 없었다.

이건,순수한 남성의 본능일 뿐이야.

우진은 애써 속으로 자신을 위로했다.

[오늘 고마웠어요.우진씨~]

하라가 차에서 내려 문을 닫고는 우진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가 막 차에 시동을 걸어 출발하려 하자 뒤에서 검은 승용차 한대가

다가오더니 시끄럽게 경적을 울려댔다.

무슨 일인가 싶어 우진이 백미러로 멈춰선 차에서 내리는 사람을 쳐다

보았다.

윽.젠장.제대로 걸렸군.

차에서 내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하라의 아버지,비룡그룹 회장,

오동추 회장이였다.
#26
[아빠~]

하라가 쪼르르 달려 내려가 동추의 품에 안겼다.

우진은 어쩔까 망설이다 할 수없이 차에서 내렸다.

[아니~이게 누구야!나 미녀 여사 아드님 아니신가?]

동추가 반가운 기색으로 우진에게 다가왔다.

[오 회장님.안녕하십니까?]

우진이 정중하게 허리숙여 동추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래,그래,오랜만에 보는군.]

[우진씨가 여기까지 데려다 주었어요.]

하라가 동추의 팔에 팔짱을 끼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아.......그래?]

하라는 자신의 아버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잠깐,들어가서 저녁식사라도 함께 하지.]

[아.......죄송합니다.저는......]

[좋아요!아빠!그렇지 않아도 배가 무척 고팠던 참이였거든요]

하라의 말에 우진이 무슨 소리냐는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라는 우진에게 윙크를 하며 신호를 보내고는 그의 등뒤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다시 거절의 말을 꺼내려는 우진의 등을 떠밀었다.

하라에게 얼떨결에 등을 떠밀린 우진은 기여코 그녀의 집안까지 발을

들여놓고야 말았다.

[아줌마~손님 오셨으니까~빨리 저녁 식사 준비좀 해줘요!]

동추가 집으로 들어오자 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어쩌자고,집안까지 날 끌어들이는거요!]

우진이 앞서 들어가는 하라의 팔을 붙잡고 낮은 소리로 소리쳤다.

[우리 부녀가 당신을 잡아 먹기라도 해요? 저녁식사 같이 하는것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을 떨어요.]

하라 역시 동추에게 들리지 않도록 낮은 목소리로 울상을 짓는 우진에게

타박을 주었다.

[우진군~이리오게!]

동추가 우진에게 다가와 우진의 팔을 이끌었다.

[예?아.......예.회장님]

우진은 하라를 흘겨보며 도살장에 끌려가듯 동추에게 이끌려 거실로

들어섰다.

그런 우진의 모습을 보던 하라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화이팅 모션을

취했다.



우진은 자신의 앞에서 김을 모락모락 내고 있는 백숙을 쳐다보았다.

[아휴~급히 준비하느라고,반찬이 변변치 못하네요.]

[이정도면 진수성찬이지 뭐.아줌마 수고했어요.]

동추가 도우미 아줌마에게 고마워하며 우진을 쳐다보았다.

[많이 들게나.배고플 텐데.]

[예.회장님]

[하하하하~회장님은 무슨,서로 이렇게 다 아는 사이에 회장님이라고

격식 갖춰서 부를 것 없네,그냥 편하게 장인어른이라고 부르지.]

동추의 말에 우진은 들고 있는 수저를 저도 모르게 놓치고 말았다.

수저가 바닥에 떨어지자 우진과 하라가 동시에 수저를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식탁아래서 하라와 마주친 우진은 인상을 찡그리며 하라를 노려보았다.

우진이 지금 얼마나 울상인지 가늠할 수 있는 하라는 그저 깨소금

맛이였다.

[빨리 아버님께 우리가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말씀 드려요.]

우진이 하라에게 속삭였다.

[안돼요!만약 당신 한마디라도 뻥끗 했다간 내 손에 죽을 줄 알아요.]

[당신이 안하겠다면 내가 하겠소.]

[알았어요.그러니까 당신은 입다물고 있어요.]

[뭘그리 식탁밑에서 속삭이나?]

불쑥 식탁밑으로 동추의 얼굴이 내려오자 놀란 하라와 우진이 고개를

들었다.

[하하하.......그렇게들 잠시라도 둘만의 대화를 나누고 싶은게야?

오 하라.벌써 부터 애인 생겼다고 이 아빠 무시하기냐?]

[아니예요.아빠.......]

하라가 동추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우진에게 빨리 식사를 하라는듯

눈짓을 보냈다.

[백숙이 참 맛있게 생겼네요.]

[자고로 처가댁에 오면 사위한테 씨 암탉 하나 잡아 준다고 하지 않나.

마다하지 말고 그거 혼자서 다 먹어야 하네.]

[예.......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우진은 울며 겨자 먹기로 닭 다리 하나를 뜯기 시작했다.

동추는 우진이 먹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 내내 하라는 우진에게 시선 한번 마주치지 않고 계속 자신의

아버지만 쳐다보며 재잘재잘 거렸다.

그녀의 태도가 영 못마땅한 우진은 이 불편한 자리에서 벗어나고만

싶은 심정이였다.

가까스로 하라와 눈이 마주친 우진은 빨리 말하라는듯 하라에게 눈짓

으로 재촉을 했다.

하지만 그의 재촉에도 하라가 모른척 식사를 하자 드디어 우진도 참을성

이 한계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우진은 식탁밑으로 슬며시 자신의 발로 하라의 발을 툭 치면서 하라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하라는 우진을 무시한체 닭다리를 뜯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 여자가.......

우진은 다시 한번 식사 하는척 하면서 발로 하라의 발을 다시한번

툭 건들여 보았다.

한번,두번 ,세번을 해도 하라가 반응이 없자 우진이 고개를 번쩍 들고는

하라를 노려보았다.

그가 고개를 들자 아주 당황스런 얼굴로 그를 쳐다보는 하라의 아버지

동추와 시선이 마주쳤다.

왜그러지?

왜 날 이렇게 뚫어져라 쳐다보고 계신거지?

우진은 자신을 바라보는 동추에게 닭다리를 들어보이며 싱긋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의 미소에 갑자기 동추가 얼굴이 벌개지며 식탁에서 벌떡 일어섰다.

[왜요? 아빠?]

[자.......잠깐 화장실좀 다녀오마.]

동추는 이마의 식음땀을 닦아내며 여전히 자신에게 미소를 보내는

우진을 힐끔 쳐다보고는 화장실로 달려갔다.

[왜 그러시지? 속이 안좋으신가?]

하라가 아버지가 걱정되는듯 화장실을 쳐다보았다.

[이봐~오 하라씨........]

우진이 동추가 사라지자 이를 갈며 하라를 불렀다.

[왜요?]

[이렇게 사람 말을 무시 할 수 있는거요?그렇게 발로 쳐도 모른척

하고........난 이자리가 불편해 죽겠단 말이요.]

[발로 치다뇨? 당신이 언제 발로 찼어요?]

[뭐?무슨 소리요.내가 계속 식탁밑으로 당신 발을 툭툭 건드렸는데,

싹 무시하고 쳐다도 보지 않더군.]

[당신 내 발 찬적 없어요.]

[뭐요?]

순간 우진의 머리속에 당황스런 눈빛으로 자신을 보던 오 회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쉣! 젠장!



[아하하하.......너무 웃겨.]

하라는 벌써 10분째 자신의 침대위를 데굴데굴 구르면서 웃음을

그치지 못하고 있었다.

우진은 하라의 화장대 의자에 앉아서 계속 똥씹은 표정으로 자지러지게

웃고 있는 하라를 못마땅한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만 웃어요!]

[미....안해요.하지만,너무 웃겨서.우리 아빠 표정을 생각하면..푸..

풉...하하하하]

[젠장,졸지에 어른 앞에서 변태로 낙인이 찍혔는데,그렇게 내 앞에서

웃음이 나오는 거요?]

정말로 심각해 보이는 우진을 보며 하라가 간신히 터져나오는 웃음보를

진정시켰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우리 아빠 그렇게 고지식한 분 아니예요.]

[당황해 하시는 분께 미소까지 보내주었으니,아.......날 어떻게

생각하셨는지,말 안해도 잘 알겠어.]

우진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 뜯으며 괴로워했다.

[벌써 사위처럼 생각하고 계시는데,그까짓 허물쯤 안 덮어 주시겠어요?]

심각해 하는 우진과는 달리 싱글싱글 웃는 하라를 본 그는 더욱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라했다.

[당신을 따라서 여기에 들어오는게 아니였어.]

[어쩌죠? 이미 우리 아빠한테 사위감으로 딱 찍혔으니.

우리 아빤 한번 찜 해놓은 사람은 절대 놓치지 않으시거든요.]

[젠장! 당신이 해결해요.모두 당신이 벌여놓은 일이니.]

우진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려구요?]

[밤이 늦었소.또 내가 다 큰 딸의 방에 함께 있는 것을 회장님이

좋아 하실리도 없고.]

우진은 문쪽으로 다가가 벌컥 문을 열었다.

그가 문을 열자 어이쿠 하는 소리와 함께 문에 귀를 대고 있던 동추가

균형을 잃고 방안으로 쓰러지듯 들어왔다.

[아빠!]

[회장님!]

하라와 우진이 놀란 얼굴로 동시에 외치자 동추가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하.엿들을려고 한게 아니라 그냥 뭐하나 싶어서.어서 대화들 나눠

난 신경쓰지 말고.]

동추가 다시 문을 닫으며 하라의 방을 나갔다.

동추가 나가자 우진이 경악스런 표정으로 하라를 뒤돌아 보았다.

[도데체~오씨 집안 피는 다 이렇게 엽기적인거요?]

[■■■■,우리 집안이 좀 유별나긴 해요.당신도 곧 익숙해 질거예요.]

하라가 키득키득 거리며 우진에게 장난스런 표정을 지었다.

오 하느님~

이 오씨집안 식구들을 어찌 해야 한단 말입니까!

오~신이시여~
#27
늦도록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정말 피곤했다.

우진은 잠이 오는 눈을 손으로 비벼가며 가까스로 자신의 아파트 주차장

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차의 시동을 끄고,자신의 서류가방을 들고 뚜벅뚜벅 주차장을 가로질러

아파트 건물까지 걸어갔다.

그때,그의 발자국 소리 외에 뒤에서 구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진은 불편해 지는 마음을 뒤로 하고 자신의 발걸음에 조금씩 속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가 속력을 올리자 뒤에 따라오던 구두소리 또한 빨라지기 시작했다.

우진은 속으로 숫자를 세며 걷다가 1까지 다 센다음 갑자기 몸을 돌려

자신의 뒤에 오던 인물을 확인했다.

그 순간 그가 얼굴을 확인도 하기전에 시커먼 그림자가 우진에게 달려

들더니 그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웁~]

지독한 싸구려 여자 향수 냄새가 우진의 코를 찔렀다.

우진이 강제로 자신에게 키스를 한 사람을 떼어놓자 그 사람은 후다닥

뛰어 도망치기 시작했다.

[젠장!]

우진이 더럽다는듯 그 여자의 입술이 닿은 곳을 손등으로 닦아내었다.



[그러니까,며칠 전 부터 이상한 여자에게서 전화나,메일,집까지 쫓아

온단 말씀이시죠?]

[네,그렇습니다.]

며칠째 그를 스토커처럼 쫓아다니는 여자를 잡기 위해 우진은 고심끝에

경찰에 연락하게 되었다.

[문제는 그 여자가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상한 소문이라뇨?]

[사실 지금 저희 회사가 중요한 주식 상장건을 앞두고 있는데,

저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나,회사의 이미지가 실추되면 회사로선

큰 타격을 입게 되죠.그런데 그 여자가 제가 그녀를 범하고 이용만

하다 자신을 버렸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주위에 흘리고 다니고

있다고 합니다.]

[정말 그녀가 누구인지 모르십니까?

아님 혹 예전에.......]

[아니! 절 뭘로 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우진이 화를 내자,경찰이 손을 들어올리며 미안하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일단 조사에 착수 하도록 하겠습니다.최선을 다할테니 너무 걱정

하지 마십시요.]

[꼭 좀 부탁드립니다.]

[예.]

겅찰관이 돌아가자 우진은 지친듯 자신의 사무용의자에 걸터 앉아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내 주위에는 왜 골치 아픈 여자들만 들 끓는지.

요즘 글 쓴답시고 오 하라가 뜸하더니만,난데없이 스토커가 따라붙고,

정말 첩첩 산중이군.

우진은 답답한 마음에 금연으로 며칠간 손을 데지 않았던 담배를

책상 서랍에서 꺼내 입에 물었다.

[안녕~우진씨!]

사장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하라가 들어서고 있었다.

하라를 본 우진의 입에서 담배가 책상위로 툭 떨어졌다.

정말이지 오 하라 라는 여자는 변신의 귀재였다.

평소의 발랄한 복장을 즐겨 입던 그녀가 왠일인지 오늘은 정말 사무적

으로 보이는 검은색 정장을 차려 입고 있었다.

몸에 딱 달라붙는 정장은 하라의 몸매를 여과없이 드러내주었고,

짧은 치마 밑으로 늘씬한 하라의 다리가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오늘 무슨 일 있소?]

우진은 이제 느닷없이 자신을 찾아오는 하라에게 놀라지도 않은체

아무렇지도 않은듯 그녀에게 물었다.

[오늘 잡시에서 인터뷰가 좀 있었어요.]

[잡지사?]

잡지사라면 도해가 일하고 있는 잡지사 인가?

[맞아요.도 도해씨가 있는 잡지사.]

우진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하라가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소파에

앉아 긴 다리를 꼬았다.

[혜진씨!미안한데 시원한 냉수 한잔만 부탁할게요!]

얼씨구?

내 비서 이름까지 꿰찼군.

우진은 담배피우기를 포기하고 담배를 다시 서랍속에 집어넣었다.

[그런데,무슨 일 있어요? 경찰이 보이던데.]

[좀 골치아픈 문제가 생겼소.]

[무슨 문제인데요?]

하라가 호기심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우진의 책상으로 다가왔다.

[당신 스토커가 뭔지 아시오?]

[스토커요? 왜요.당신을 스토커하는 여자라도 있나요?

으음.이거 문제인데요.나 말고 당신을 스토커 하는 여자가 또 있다니.]

[농담하는거 아니요.]

우진이 심각하게 대답하자 하라가 책상을 집고 훌쩍 우진의 책상위로

올라와 앉았다.

하라의 육감적인 엉덩이가 바로 우진의 책상위에 놓여져 있었다.

책상위에 앉은 하라는 다리를 흔들거리며 곰곰히 생각에 잠긴듯

조용해 졌다.

[정말 스토커예요?]

하라의 물음에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여자인데요?]

[모르겠소.나에대해 안좋은 소문까지 퍼트리고 다니니.요즘엔 창피해서

얼굴도 들고 다니지 못하겠소.]

[이런,얼굴이 많이 수척해 졌어요.]

갑가기 하라가 책상에 엎드리며 그에게 바싹 다가와 자신의 얼굴을

그의 얼굴앞에 들이밀었다.

놀란 우진이 뒤로 의자를 물리며 물러섰다.

[남이 보기전에 얼른 책상에서 내려와요!]

우진이 타박하자 하라가 그의 책상에서 뛰어내렸다.

[집에도 찾아오고 그러나요?]

[으음.]

[이런,회사에도요?]

[내 생각엔 회사에도 조만간 쳐들어오지싶소.]

[이런.정말 골치덩어리군요.좋아요.내가 해결해 주죠.]

[뭐? 지금 농담할때요? 당신이 뭘 해결한단 말이요?]

[원래 여자 문제는 여자가 해결해야 한단 말도 몰라요?

내가 당신의 보디가드가 되어 주겠단 말이예요.]

[쳇,당신의 합기도 실력으로 그 여자를 때려 눕히기라도 하겠단

말이요?]

[이런,날 그렇게 과격한 여자로 몰고가지 말라구요.

요즘 시대에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만한 호신술은 누구나 하나씩

알고 있어야 한다구요.]

[괜히 엄한 사람잡고 다니지 말고,집으로 돌아가요.

이제 여자라면 나도 질리려고 하니까.]

[나를 못 믿는군요.정말 해결해 줄테니까 걱정말아요.

오늘은 당신이 피곤해 보이니까,조용히 사라져 드리죠.

너무 신경쓰지 말고 몸조심이나 하세요.]

하라의 걱정되는듯한 말투에 우진의 마음이 묘하게 움직여 갔다.

[잘가요.]

[네.]

하라가 사장실을 나서려다 말고 몸을 돌려 우진을 쳐다보았다.

[뭐 잊은거라도 있소?]

우진이 묻자 하라가 씨익 웃으며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의 책상에 길게 몸을 뻗으며 엎드리고는 의자에 앉아있는

우진의 넥타이를 잡고 그녀에게 끌어당겼다.

우진이 하라의 얼굴 가까이 끌려오자 하라는 쪽 소리나게 우진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추었다.

[기운내라고 영양제 주는거예요.알았죠?]

하라가 웃으며 책상에서 내려와 빠르게 그의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녀가 빠져나간 그의 사무실에는 아직도 하라의 상큼한 레몬 향수

냄새가 은은하게 남아있었다.

우진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의자의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래,

오늘은 힘든 하루였으니까.

기분 전환 했다고 생각하지 뭐.


하라가 콧 노래를 부르며 우진의 사무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죄송하지만 잠시만 비켜주세요.]

수건을 눌러쓴 청소원 유니폼을 입은 한 여자가 걸레질을 하며 하라에게

다가왔다.

하라는 슬쩍 옆으로 비켜주며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청소를 하던 여자의 걸레가 하라의 구두위로 올라왔다.

[아이고,죄송합니다.]

여자가 사과하며 하라의 구두위에서 더러운 걸레를 내려놓았다.

[괜찮아요.신경쓰지마세요.]

하라가 친절하게 대답하자,청소원은 말없이 화장실 쪽으로 사라졌다.

더러워진 자신의 구두를 내려다 보고 있던 하라는 아무래도 물로 살짝

구두를 닦아야 겠다 생각하며 화장실쪽으로 자신도 걸음을 옮겼다.

화장실로 들어서자 먼저 들어간 청소원은 보이지 않았다.

하라는 이상하게 생각하며 티슈를 뽑아 구두를 닦아냈다.

그때 였다.

변기가 있는 화장실 칸막이 안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소리지?

직감적으로 이상한 기분을 느낀 하라가 화장실 문쪽으로 다가섰다.

그때 문 손잡이를 여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리려고 하자 하라는 얼른

옆칸의 화장실로 몸을 숨기고는 문을 살짝 열어 살펴보았다.

옆칸에서 나온 사람은 바로 청소를 하던 여자였다.

하지만,입고 있던 청소원 유니폼은 온데간데 없고 고급 원피스를 차려

입고,화장까지 진하게 해서 좀전의 청소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

였다.

그 여자는 청소원 유니폼을 쓰레기통에 집어 쳐 넣고는 핸드백에서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나야.감히 나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나?두고봐.가만두지 않을거야.]

여자는 자신의 할 말 만 하고 툭 전화를 끊고는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숨어있는 하라는 조심스럽게 화장실에 나왔다.

뭐야.

혹시,저 여자 우진씨가 말하던 스토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라가 급히 그 여자를 붙잡기 위해 쫓아갔다.

하지만 여자는 이미 사라진 후 였다.


#28

[야 오 하라 우리가 이런 짓 까지 해야 겠냐?]

[시끄러워~잠자코 일이나해]

하라의 타박에 그녀의 단짝 미경은 투덜거리며 열심히 세재를 풀어

화장실의 변기를 닦고 있었다.

하라의 협박에 못이겨 그녀를 따라오긴 했지만,자신이 빌딩 청소원이

되어서 화장실 청소까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못했다.

[여기서 잠복하고 있으면 분명히 그 여자가 다시 나타날거야.]

하라가 자꾸만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수건 두건을 끌어올리며 열심히

화장실 변기를 닦는척 하면서 화장실로 들어오는 여자들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야,그런데 나까지 꼭 필요하냐?]

[내가 그 여자를 상대하고 있을동안 넌 사람을 불러와야 할 것 아냐.]

[아씨,오늘 나 소개팅 있는데.]

[넌 날 그 변태자식한테 넘겨주고도,내 앞에서 소개팅 이야기가 나오냐]

■..■+

하라는 미경을 노려보며 그녀에게 수세미를 건넸다.

[좀더 닦고 있어라,난 밖에 나가서 동정좀 살피고 올게.]

하라는 머리 수건을 푹 눌러쓰고는 화장실을 나갔다.

[아씨,이게 무슨 고생이람..킁킁...윽 화장실냄새.■.■]

미경은 투덜투덜 거리며 세차게 수세미를 문질러 대기 시작했다.

하라는 복도를 쓰는 척 하면서 바삐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그녀가 의심하는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늘은 안 나타나려나?

하라가 잠복근무를 이쯤에서 접을까 생각하며 미경이 있는 화장실로

몸을 돌릴때 였다.

[어이~아줌마! 여기좀 쓸어주시죠?]

헉.

아줌마.

혹 날 부르는건 아니겠지?

하라가 못 들은척 하고 걸음을 옮기자 누군가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저기 쓰레기통이 엎어져 있는데 좀 치워주시죠.]

헉.

이 목소리는........


정.우.진.

앗 들키면 안되는데.

[네~알겠습니다.]

하라는 우진이 자신을 알아보지 않기만을 바라며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진은 수건까지 푹 눌러쓰고,이상한 목소리를 내는 청소원을 힐끔

쳐다보았다.

가뜩이나 스토커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태에서 왠지 이 여자가

의심스러워졌다.

[여기서 일하신지 오래되셨어요?]

[아,아뇨.오늘 첨 왔습니다.]

하라가 얼른 그 자리를 피하려고 화장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줌마~저기 청소하고 가셔야죠.]

아~된장....

하라는 두 눈을 질끈 감고는 고개를 숙이고 우진이 가리키는 곳으로

은근슬쩍 걸음을 옮겼다.

우진은 자신의 사무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왠지 미심쩍은 청소원에게

다시 한번 시선을 돌렸다.

그 여자는 청소를 하면서도 허둥지둥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우진은 사무실로 들어와 인터컴을 눌러 경비실과 연결했다.

[네.경비실 입니다.]

[네.수고하십니다.여기 사장실입니다.]

[아네 사장님]

[이상한 청소원 하나가 있는데,지금 사람을 보내서 확인좀 해주시겠

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인터컴을 끊은 우진은 괜시리 자신이 오버하는건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미리 조심스러워 하는것도 나쁘진 않을거라 생각하며 이내

그 이상한 목소리의 청소원에 대한 생각은 접어버렸다.



[아저씨!나 나쁜 사람 아녜요!]

하라가 화장실로 돌아오자,미경이 경비원에 의해 질질 끌려나오고

있었다.

[하라야~하라야~니가 좀 말좀해봐!]

하라를 발견한 미경이 소리치며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뭐야 아가씨도 한 패야?]

경비원이 무시무시한 표정을 지으며 하라에게 다가왔다.

[왜,왜그러시는데요?]

[아가씨? 허가증 있어요?]

[허,허가증이요?]

[이거이거 한패구만,아니 멀쩡하게 생긴 아가씨들이 무슨 짓이요!]

경비원이 호통치며 하라의 뒷 덜미를 붙잡았다.

[아,아저씨 무슨 오해가 있으신가본데요.]

[오해는 무슨 오해? 여기는 청소원이라도 허가증 없이는 이 빌딩에서

일을 못하게 되있었요.허가증도 없이,처음 보는 얼굴들인데 지금

무슨 짓을 하는거야!]

[하라야!어서 말해.]

미경이 사태가 심각해 지는 것 같자 하라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댔다.

[아저씨,저 여기 사장님하고 잘 아는사이예요.]

[아니,이 아가씨가 어디서 그런 황당한 거짓말을 눈하나 깜짝 하지 않고

한데? 아가씨가 사장님과 아는 사이라면,나는 사장님 형이야.

어디서 사람을 갖고 놀려고 해? 그렇지 않아도 요즘 불순한 자들때문에

회사 분위기가 어수선한데,잘됐네 바로 경찰에 넘겨서~]

[네? 경찰이욧?]

미경의 두 눈이 커다래지며 샛된 비명을 질러댔다.

[아저씨,이거 좀 놓고 말씀하세요.]

그에게 잡힌 목덜미 때문에 목이 아파온 하라가 켁켁 거리며 그에게

부탁했지만,그에겐 어림도 없는 말이였다.

경비에게 질질 끌려가던 하라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사장실쪽으로 걸어

가는 그 문제의 여인을 발견했다.

[앗! 저여자!]

하라가 소리치자 미경이 그 여자에게 얼굴을 돌렸다.

[저여자야?]

[맞아!]

[사장실로 가는데?뭐해? 빨리 잡아야지.]

[아저씨~저 여자,저 여자가 수상해요.]

[이봐요 아가씨 도망갈려고 수 쓰는데 이상한건 바로 아가씨들이야!]

경비원은 하라의 말에 코 웃음을 치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아이참~아저씨 이것 좀 놔줘요!]

하라가 발버둥을 치자 경비원은 하라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아저씨,정 이러시면 저도 어쩔 수 없이 힘으로 해결할거예요.]

하라가 팔짱을 끼면서 경비원에게 말했다.

[참,맹랑한 아가씨네? 그래 힘으로 하면 어쩔건데?엉?]

[헉.아저씨,조심하세요.]

미경은 이미 하라의 성질과 그녀가 이성을 잃었을때 어떠한 반응이

나올거라 알기에 미경은 몸을 움츠리며 경비원에게 경고를 해주었다.

[아저씨,전 분명히 경고했습니다.야앗!]

하라의 기합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경비원의 팔이 등뒤로 하라에게 붙잡

힌체 꺽어졌다.

[으....이거 안놔!!]

경비원이 소리쳤지만,뒤로 팔이 묶인터라 힘을 쓸 수 없었다.

하라는 경비원을 있는 힘껏 밀어버리고는 미경의 손을 잡고 우진이

있는 사장실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이럴수 있는거야? 어떻게 나를 배신하고,다른 여자를 만나?]

우진은 손에 칼을 들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여자를 피해 뒷걸음질을

쳤다.

[다,당신이 계속 협박해오던 그 스토커 맞지?]

우진이 용기를 내어 여자에게 소리쳤다.

그의 말에 여자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스토커?후후.스토커라니,애인한테 그런 말을 하면쓰나?]

[당신이 말도 안되는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고 다닌걸 다 알고 있어.

좋은 말로 할때 이쯤에서 포기하고,조용히 지내는게 좋을꺼야.

벌써 경찰이 이리로 오고 있을껄?]

[맘대로 해!난 당신만 있으면.......아,여보 우리 애가 지금 집에서

기다리잖아.왜 집에 돌아오지 않는거야?]

여자는 정신이 이상한듯 계속 횡설수설을 하고 있었다.

우진은 제발 먼저 도망친 자신의 비서가 경비원들과 함께 빨리 돌아와

주기를 바랬다.

[넌 내꺼야.누구한테도 빼앗길 수 없다구!!]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칼을 들고 우진에게 달려왔다.

우진은 여자에게 의자를 밀치며,의자에 부딪힌 여자가 비틀거리자

얼른 책상을 뛰어 넘어갔다.

[거기 서!]

여자가 칼을 들고 그를 쫓았다.

[꺄악~]

우진의 사무실로 들어서던 미경이 우진의 뒤에 칼을 들고 달려드는

여자를 보고 비명을 지르며 하라의 등뒤로 숨었다.

[우진씨!]

하라가 앞으로 나서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우진은 청소원 차림으로 자신의 앞에 서 있는 하라를 어이없이 바라보았

다.

[우진씨!위험해요!]

우진이 자신을 바라보느라,뒤에 있는 스토커를 신경쓰지 못하자,하라가

우진을 부르며 그의 손을 잡아 당겼다.

우진이 하라쪽으로 몸이 기울자 그녀가 앞으로 나가며 힘차게 발차기로

스토커의 손에 들린 칼을 걷어 차냈다.

[이년이!저 남자는 내꺼야!]

스토커가 고래고래 악을 지르며 하라에게 덤벼들었다.

[웃기지마!우진씨는 내 남자란 말이얏!]

순식간에 우진의 사무실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하라와 스토커가 서로의 머리를 부여잡고 엎치락 뒤치락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뒤늦게 우진의 비서와 경비원이 그의 사무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사장님!괜찮으십니까?]

[예,전 괜찮습니다.]

우진은 사생결단을 낼 듯 싸우고 있는 여자들에게 달려들었다.

[하라씨!그만해요!]

우진이 스토커로 부터 하라를 빼내려 할때 누구의 주먹인지 정확히

우진의 눈을 힘껏 때렸다.

[윽~]

우진이 신음하며 뒤로 벌러덩 자빠지고 말았다.

[하라야~]

미경이 더 이상 못 봐주겠었는지,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장식장 위에

놓여진 목각 인형을 발견했다.

미경은 목각 인형을 집어 들고는 정확히 스토커의 머리를 조준했다.

[야~하라 놓지 못해!]

미경이 고함을 지르며 스토커의 머리를 향해 목각 인형을 날렸다.

그 순간 하라를 밑에 깔고 앉아 그녀를 때리던 스토커가 몸을 굴리더니

순식간에 하라가 스토커의 위로 올라왔다.

[꺄악~]

미경이 비명을 지르며 손을 거두려 했지만,이미 미경이 손에 들린 목각

인형은 하라의 뒤통수를 가격한 후 였다.

[켁!]

[하라씨!]

우진이 하라에게 달려왔다.

하라는 우진을 몽롱하게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우진씨,나의 우진씨가 두명인거죠?헤벌레~]

하라는 그대로 우진의 품안으로 꼬꾸라져 버렸다.

[으앙~어떻게 해!]

미경이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경비원이 스토커를

붙잡았다.

[이거놔~우진씨!]

스토커가 반항하며 우진을 애처롭게 바라보았지만,우진은 그녀에게

시선한번 주지 않고 자신의 품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 하라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라씨!정신 차려요!하라씨!]

#29
한차례 돌풍이 쓸고간 우진의 사무실에는 그와 하라,그녀의 친구 미경

만이 남아 있었다.

미경이 급히 공수해온 달걀로 우진은 멍들어 가는 자신의 눈을 문지르고

있었고,하라는 얼음주머니를 뒤통수에 갖다댄체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하라야 괜찮니?]

미경이 하라에게 미안한지 그녀의 앞에서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었다.

[괜찮아.혹이 조금 났지만,참을만 해.]

[무슨 여자가 그렇게 겁도 없이 칼을 든 여자한테 뛰어드는 거요?]

우진은 하라가 걱정 되었다는 표현대신 화 부터 버럭 내고 있었다.

[그럼,그 여자가 당신을 해치려고 하는데 보고만 있으라구요?]

[정말이지,당신이 무슨 형사라도 되는거요? 그 꼬라지는 뭐고,잠복

근무? 그거는 왜 하고 있었던 거요?]

[저번에 그 여자를 화장실에서 마주친 적이 있는데,왠지 수상쩍드라구요.

봐요,내 직감이 딱 맞았잖아요.그 여자가 화장실에 다시 나타날 거라

생각하고 미경이 하고 잠복 근무 중이였죠.

내 남자는 내가 지킨다.뭐 그런 말도 몰라요?]

[참나,내 남자라니,당신하고 그 스토커하고 하나도 다를게 없소.

단지 그 여자는 협박이라는게 더 추가 되었지.]

[이럴수 있는 거예요? 난 당신 목숨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이라구요!]

하라가 벌떡 일어서다 뒤통수가 다시 시큰 거리는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하라의 모습에 우진이 그녀에게 다가와 걱정스런 표정을 하라의

뒤통수를 살펴보았다.

[정말 병원에 안가봐도 되는거요?]

[괜찮아요.아빠 닮아서 저도 돌머리랍니다.]

하라의 농담에 미경이 웃음을 터트렸다.

미경의 호탕한 웃음에 어이없어 하던 우진도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는거야? 다들!]

하라가 심각해 하며 소리쳤지만,우진과 미경의 웃음은 그칠줄을 몰랐다.

[좋아.오늘 내가 한턱 쏘지!같이 나갑시다!]

우진이 호탕하게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호!좋아요 그렇지 않아도 시원한 생맥주 한잔 생각나던 참이였는데.]

미경이 환호성을 지르며 우진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아주 둘이서 죽이 척척 맞는구만.]

하라는 입을 삐죽거렸지만,그녀도 은근히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자~끔찍한 스토커를 물리치고,하라가 우진씨를 무사히 구출해낸

것을 축하하며~건배~]

미경의 구호에 하라와 우진도 맥주잔을 부딪히며 건배를 외쳤다.

그들은 단숨에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다.

[크아~좋다.]

하라가 맥주잔을 소리나게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입가의 맥주거품을

닦아내었다.

[오늘,미경씨가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우진이 미경의 빈잔에 맥주를 따라주며 인사를 건넸다.

[뭘요,전 사고만 쳤지,오늘의 주인공은 하라예요.]

[그러게 말이야.이 남자는 누가 자신을 구해 주었는지,벌써 잊어 버리셨

나보다.쳇 담부터 구해주나 봐라.]

하라가 삐진척 하자 우진이 웃으며 그녀의 잔에도 맥주를 따라주었다.

[고맙소.정말로 당신이 내 목숨을 구했소.]

[엎드려 절받기네요.]

하라가 우진이 따라주는 맥주를 잔을 들어 받았다.

[저 잠깐 화장실좀 다녀올게요.아직도 뒤통수가 시큰거리는게 찬물로

세수좀 해야 겠어요.]

[괜찮아? 같이 가줄까?]

미경이 걱정하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하라가 웃으며 미경의 어깨를 누르며

다시 자리에 앉혔다.

[혼자 갔다올테니까,둘이서 내 욕 실컷들 하시라구요.]

하라가 미소지으며 화장실쪽으로 걸어갔다.

화장실로 들어가는 하라를 보며 미경이 미소를 지었다.

[하라한테 우진씨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미경이 우진에게 고개를 돌리며 그에게 말했다.

[그렇습니까?]

[저,실례되는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요?]

미경이 조심스럽게 묻자 우진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라에 대한 우진씨 감정을 듣고 싶어요.]

[꼭 대답해 드려야 합니까?]

[솔직히,하라가 저렇게 누구에겐가 열중해 보기는 처음이예요.

정말이지 남자한테는 전혀 관심이 없던 아이였는데,

하라의 인생에는 그녀의 아버지,글 뿐이였거든요.

새어머니 없이 아버지 밑에서 외롭게 자란 아이라,정도 많고 눈물도

많은 아이예요.하라가 늘 웃고 명랑해 보이지만,그건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한 모습뿐이라는걸 전 잘 알고 있어요.]


[저도,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고 새어머니와 단 둘이 자라왔습니다.

부모님 한분이 안 계시는 그 외로움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하라가 우진씨 많이 좋아하고 있는것 같아요.하라 말로는 아직 우진씨가

하라에게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고 하는데.......맞나요?]

[미안합니다.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두 사람의 일에 제가 콩이야 팥이야 할수는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꼭 말씀드리고 싶네요.

제가 볼때는 이 세상에 하라같은 여자는 없을거예요.

우진씨가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해 주시길 바래요.]

[뭐야 내 욕하고 있었지!]

어느새 하라가 화장실에서 돌아와 미경의 어깨를 툭 건들였다.

[그래,기집애야.네 욕 실컷 하고 있었다.]

미경이 웃으며 하라를 쳐다보았다.

[어,진짜인가보네.우진씨 미경이가 무슨 말 했어요?]

[당신의 놀라운 발차기 실력에 대해 논의 하고 있던 참이였소.]

[와우~발차기 하면 나 아니겠어?]

발차기 흉내를 내는 하라를 보며 미경과 우진이 은밀한 미소를 교환했다.



[하라씨,오래 기다렸죠?]

흰색 원피스를 입고,시원하게 머리를 틀어올린 도해가 나타났다.

흠.......

정말 미인인걸?

이 여자의 어디가 좋다는거야?


하라는 자신의 앞에 앉는 도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가슴 빵빵?

헉,적어도 B컵 이상은 되겠는데?■.■

몸매도 글래머 하고,

당차고,똑똑하고,뭐야 완전 퀸카잖아.

하라는 도해가 우진의 애인일 수 밖에 없는 당연한 이유들을 도해에게서

발견하자 왠지 기분이 울적해져갔다.

[하라씨?]

[네?]

잠시 엉뚱한 생각에 잠겼던 하라는 도해가 한 말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

[아,아뇨.죄송해요.]

도해가 괜찮다는듯 미소를 지으며 하라의 앞에 팜플렛 한장을 꺼내

놓았다.

[요번에 우리 잡지사와 함께 후원계약을 맺은 회사 레져 상품 광고

팜플렛이예요.

내장산 안에 있는 산림욕촌인데,통나무 오두막으로 만들어진 방갈로가

아주 그만인 곳이죠.벽 난로 까지 있다니 너무 멋지지 않아요?]


[그렇네요.]

하라가 팜플렛을 뒤적거리며 살펴보았다.

[하라씨 머리도 식힐겸 주말에 이틀코스 잡아서 같이 놀러가보는게

어때요? 이 회사측에서 무료로 오두막 하나를 내주기로 했어요.]

[어머!정말이요?]

하라가 눈빛을 내며 즐거워했다.

[그럼 가는걸로 결정 본거예요.]

[네,그러죠.]

[아참,하라씨 남자친구 있어요?]

[네? 그럼요.]

하라는 우진을 생각하며 도해에게 대답했다.

[어머!잘됐네요.그럼 커플끼리 같이가면 잼 있겠다.]

[네? 커플이요.......]

[하라씨 남자친구 데리고 와요,저도 우진씨랑 같이 갈게요.]

앗.

딱 걸렸어~ ■.■

하라는 괜히 도해에게 거드름 피운다고 남자친구가 있다고 흔쾌히 대답

한것을 속으로 후회하고 있었다.

#30
젠장,

어떻게 하지?

심한을 데리고 가?

그 인간이 도해씨와 같이 간다는데 이제와서 가기 싫다고

빼는것도 이상하고.......아아~머리통 터지겠다.


하라는 투덜거리며 도해의 잡지사를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

터를 기다리며 어떻게 하면 주말에 그 난감한 상황을 모면할까 골똘이

생각에 잠겼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하라는 몽유병 환자마냥 엘리베이터에 올라

문이 닫히는걸 쳐다보았다.

[휴우~]

하라가 큰 한숨을 내쉬며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보았다.

[어~우진씨!]

하라가 소리치며 뒤로 몸을 돌렸다.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어 층수를 나타내는 전광판을 보고 있던 우진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하라를 쳐다보았다.

[여긴 왠일이요?]

[우진씨야 말로 왠일이예요?혹시,■..■+도해씨 만나러 온거예요?]

[이 빌딩 꼭대기에 내 거래처 하나가 있어서 거기 들렸다가

돌아가던 참이였소.당신이야 말로 도해를 만나고 가는 길이요?]

[네,잡지사에 연재하는 글에 대해 의논좀 할겸......그런데 이왕 온김에

도해씨 만나지 않고 그냥 가나요?]

하라는 은근히 우진을 떠보며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사업상 이 빌딩에 온거지 여자나 만나러 온건 아니요.]

여자나?

도해를 아무렇지 않게 여자나로 표현하는 우진의 말에 하라는 묘한

승리의 쾌감이 느껴졌다.

금새 주말에 갈 여행건에 대한 걱정을 사라진 하라는 히죽거리며 우진을

바라보고 웃었다.

헉,뭐야 저 표정은?- -+

우진은 히죽거리는 하라의 얼굴을 외면하며 더욱 벽쪽으로 붙어섰다.

하라가 우진에게 다가 서려던 찰 나 갑자기 잘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덜컹 거리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어? 왜그러지?]

하라의 말과 동시에 엘리베이터 안의 불이 갑자기 꺼져버렸다.

엘리베이터 안은 순식간에 어둠속에 잠겨버렸다.

[젠장!!]

우진이 욕설을 내뱉는 소리가 어둠속에서 들려왔다.

[가만 있어봐요.비상벨을 울려볼게요.]

하라가 어둠속에서 더듬거리며 비상벨 버튼을 손의 감각만으로 찾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비상벨을 찾기 어렵자 하라는 있는데로

버튼이란 버튼은 모조리 다 눌러버렸다.

[벨을 다 눌러봤는데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아요!]

하라의 말에 우진이 크게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진씨? 우진씨?]

우진에게서 아무런 말이 들리지 않자 하라가 그에게 다가섰다.

[왜 대답안해요?]

[아.......미치겠군.]

그가 괴로워하는 소리였다.

[왜그래요? 어디 불편해요?]

그녀의 물음에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떨리는 우진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나.......난 어둠 공포증이 있소.젠장!미치겠군!]

하라에게 고백을 털어놓은 우진은 창피해 죽을 지경이였다.

그녀의 작은 웃음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웃지 말아요!어릴때 지하실에 반나절 동안 갇힌적이 있는데 그때 부터

폐쇄 공포증과 어둠 공포증이 생겼소.]

[미안해요.안 웃을게요.많이 무서워요?]

[답답한게 목을 죄이는것 같이 괴롭소.]

우진은 목을 조르는듯한 답답함에 넥타이를 풀어 제꼈다.

그는 조심스럽게 주저 앉으며 벽쪽으로 등을 바싹 붙였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거기 있소?]

갑자기 조용해진 기분에 우진이 어둠속에서 소리쳤다.

[하라씨!장난치지 말아요!]

우진이 두려움에 하라의 이름을 불렀다.

[우.....진.....씨......]

스사한 소리와 함께 우진이 옆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시퍼런 불빛에

하라의 얼굴이 드러났다.

[으악~]

놀란 우진이 펄쩍 뛰며 엉덩이를 질질 끌며 뒤로 물러났다.

그의 반응에 하라가 까르르 웃으며 핸드폰의 플립을 닫았다.

[우진씨 정말인가 보네....우하하하...웃긴다.뭔 남자가 그렇게 놀래요?]

[젠장!그럼 이 어둠속에서 시퍼런 불빛아래 여자 얼굴만 덩그러니

나타나면 안 놀라겠소!!]

십년감수했다는 듯이 우진이 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진의 끙끙 앓는 신음 소리가 길어지자 하라는 점점 그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우진씨,괜찮아요?]

[하나도 안 괜찮으니까 건들이지 말아요.]

하라는 어둠속에서 더듬거리며 우진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손에 그의 팔이 와 닿자 하라는 그의 옆에 같이 쪼그리고 앉았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씩 무서운것을 가지고 있데요.난 이 세상에서

물이 가장 무서워요.그래서 수영도 못해요.]

[물에 빠진 적이 있었소?]

[네,어릴때 아빠하고 바다에 놀러간적이 있는데 파도에 휩쓸려서

죽을 뻔 했죠.아빠는 절 구하기 위해 계속 헤엄쳐서 다가오는데,

제가 아빠한테 손을 뻗을 수록 파도는 저를 계속 밀어내는 거예요.

점점 멀어져 가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아 이제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다행히 수상요원이 절 건져내서 구사일생 했죠.]

[내가 폐쇄공포증이 있다는건 아무도 몰라요.비밀로 해주시오.]

[■■■ 그러죠.비밀로 해드릴게요.많이 힘들면 제게 좀 기대셔도 되요.]

[괜찮소.]

[이럴때는 괜한 남자로서의 오기같은건 필요 없어요.서로 어려울때

돕자는게 뭐가 창피해요? 천둥번개가 쳐서 내가 무서워 하면 아빠가

절 품안에 꼭 안아주며 심장 소리를 들려주시곤 했죠.그러면 신기하게도

점점 안심이 되면서 마음이 편안해 지는거예요.]

하라가 우진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을 뒤집어 그가 자신의 팔목을 잡도록 해주었다.

[어때요? 제 맥박이 뛰는게 느껴져요?]

우진의 손 바닥에 팔딱팔딱 뛰고 있는 하라의 손목의 맥박이 느껴졌다.

[으음.]

[그냥 가만히 맥박을 느껴보세요.규칙적으로 뛰고 있는 맥박에 신경을

집중 시키다 보면 두려움을 사라질거예요.]

우진은 조용히 그녀의 맥박의 느낌에 집중하려 애썼다.

하라의 말대로 신기하게도 두려움에 심하게 두근거리던 그의 심장이

점점 느려지면서 차츰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새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들려주는 자장 노래에.......

아기는 스르르 잠이 듭니다.......]

하라의 노래가 우진의 머리속을 애잔하게 파고들었다.

마치 새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것 처럼 포근하고,안정된 기분이였다.

#31
노래를 부르던 하라는 갑자기 조용해진 우진의 숨소리를 느낄수 있었다.

[우진씨?우진씨.......지금 자는거예요?]

[.......]

조금씩 우진의 코 고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하라는 점점 무거워지는 그의 머리를 살며시 잡아 당겨 자신의 어깨위에

올려놓았다.

정말,혼자 도도한척 거만한척 하더니,

정말 이럴때 보면 어린 아이 같은 남자야.

하라가 미소지으며 자신도 엘리베이터 벽에 머리를 기대였다.

그러나,저러나,사람이 엘리베이터에 갖힌 줄도 모르나.

왜 아무도 안오는거야?

하라는 소리를 질러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잠든 우진을 깨우지 않기

위해 소리지르는건 포기 했다.

그때 하라의 바지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하라는 우진이 깰까 싶어 얼른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여보세요?-모기만한 목소리로.]

[하라니?]

미경이였다.

[엉.]

[너 감기 들었냐? 목소리가 왜 그러냐?]

[어? 아니.]

하라가 다시 목소리를 높여 미경의 전화를 받았다.

[어디야?]

[엘리베이터 안인데,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나보다.갖혔어.]

[뭐!괜찮아!]

고함을 지르는 미경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터트릴듯이 크게 울렸다.

[야 목소리좀 낮춰!]

[비상벨 눌렀어?]

[아니 비상벨도 안울려져.]

[그럼 소리라도 치지!]

[안돼!소리치면.]

[소리치면 안된다니?사람들이 못 들을까봐?]

[엉?]

하라는 차마 우진을 깨우기 싫어서 소리를 치지 않는다고 미경에게

설명할 수가 없어 속으로 끙하는 신음을 냈다.

전화기 너머로 생각에 잠긴듯한 미경이 조용히 하라에게 물었다.

[하라야.]

[엉?]

[우리 둘 정말 돌머리 아니냐?]

[돌머리?]

[그래.]

[난 빼죠.■..■+]

[야 전화기로 119에 신고하면 되는걸 왜 그러고 있냐?]

[헉!그렇구나.......]

[기집애야 당장 끊고 119에 신고햇!]

미경이 터프하게 전화기를 끊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말 난 돌머리 인가봐]

하라는 힘껏 119번의 버튼을 눌렀다.

[예.119죠?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갖혔는데요.......]



[뭐예요!아직도 안고쳐진건가요?]

도해는 점점 신경질이 나려고 했다.

자신이 일하는 사무실 건물 지하의 커피숍에서 손님이 기다린다는

전화를 받고 엘리에비터를 타려 했으니 고장난것을 보고 계단으로

커피숍까지 갔던 것이다.

그런데 손님과 헤어지고 난 후에도 엘리베이터는 고쳐지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119가 엘리베이터를 고치고 안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고 있다는

데요? 조그만 기다려보세요]

도해 옆에 서 있는 여자가 도해에게 알려주었다.

[어~고쳤나보네!]

엘리베이터 숫자판이 다시 움직이는 걸 보고 도해가 소리쳤다.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문앞으로 모여들었다.

문이 열리자 안에서 119 유니폼을 입은 대원들이 나오고 있었다.

[잠시만 비켜주세요!]

[어머~둘이 갖혀 있었나봐!]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도해가 발꿈치를 들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119

대원들과 나오는 두 남녀에게 관심을 돌렸다.

[어머! 우진씨!]

거의 파김치가 되어 한 여자의 부축을 받으며 나오는 우진을 보고

도해가 소리쳤다.

[어머.......하라씨?그럼 우진씨와 하라씨가 갖혀 있었던 거예요?]

도해가 우진의 팔을 잡고 부축해 주고 있는 하라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도해의 시선을 의식했던지 우진이 얼른 하라에게서 자신의 팔을 빼내

었고,그런 우진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듯 하라를 입을 삐죽거렸다

[수고하셨습니다.고맙습니다.]

[병원에 가보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예.괜찮습니다.]

우진의 인사를 받은 119 대원들은 철수를 하기 시작했다.

[우진씨!어떻게 된거야!]

도해가 쪼르르 달려와 하라옆에 서 있는 우진을 낚아채갔다.

어쭈?

이 여자 보게?

은근한 도해의 신경전을 느낀 하라가 도해를 힐끔 쳐다보았다.

[많이 놀랐나보다.얼굴이 창백한게,어머나 이 땀좀 봐!안되겠다.

우리 사무실에 가서 좀 쉬고 가야겠다.]

도해가 수선을 떨며 우진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

도해의 그런 수선을 팔짱을 끼고 하라는 지켜보았다.

[괜찮아.]

[괜찮기는,같이 올라가자.어서!]

아직도 충격때문에 정신을 못차리는 우진은 도해에게 억지로 끌려갔다.

[우진씨!]

하라가 우진을 불렀지만,도해와 우진은 하라를 아랑곳 안하고 다시

옆칸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하라는 기가 막히다는듯 숨을 들이켰다.

[뭐야.......죽써서 개준거야?참.기가 막히네.

망할 인간,벌벌 떠는 걸 누가 구해주었는데,날 무시하고 다른 여자와

떠나버려?쳇]

하라는 우진을 끌고 가는 도해보다 하라는 신경쓰지도 않고 도해에게

끌려가는 우진이 더 얄미웠다.

그래도 조금더 그에게 다가 갈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홀로 남은 자신이 울적하게 느껴진 하라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도해의 사무실로 돌아와 도해가 건넨 찬 냉수를 마시고 정신을 돌린

후에야 우진은 하라가 생각이 났다.

그렇다고,도해에게 하라는 어떻게 됐냐고 물을 수도 없는게 왠지 가슴이

답답해져 가는게,앉은 자리가 가시방석 같았다.

우진의 옆에서 그를 격려하며 노래까지 불러준 하라를 생각하니 그녀를

그렇게 보내는것이 아닌데,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우진은 도해가 잠깐 사무실을 나간사이 얼른 자신의 핸드폰을 주머니

에서 꺼내 하라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들리더니 이내 하라의 기운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요.정 우진.]

[.......]

[듣고 있는거요?]

상대방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우진은 조바심이 났다.

언제고 도해가 방안으로 들어올까 조바심이 났다.

[지금 바로 나갈테니 거기서 기다려요.]

[이 나쁜 자식아! 여자한테 이끌려서 헬레레 하고 갈때는 언제고

기다리라구? 쳇 흥이닷!!나는 자존심도 없는 줄 알아!]

------------뚜

우진은 황당하게 끊겨버린 전화기를 들고 멍하니 잠시 앉아있었다.

[우진씨 누구야?]

어느새 도해가 들어와 휴대폰을 멍한히 바라보고 있는 우진에게 물었다

[어? 아,아니야.나 지금 돌아가봐야 겠다.]

[뭐야~커피 가지고 왔는데!]

[미안 급한 일이 있어서]

우진은 소파에 놓여 있는 자신의 양복 상의를 잡아채고는 도해에게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며 급히 그녀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빌딩 밖으로 나와 우진은 하라를 찾으려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하지만 이미 떠났는지 하라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우진이 포기하고 돌아가려 주차장쪽으로 걸음을 옮긴 순간 빌딩앞에

있는 커다란 분수대에 앉아있는 하라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분수대 난간에 위태롭게 걸터 앉아서 어린아이처럼 다리를

까딱까딱 흔들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우진이 피식 웃으며 하라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32
우진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하라는 열심히 아이스크림을 먹는데에

열중하고 있었다.

[멀리 떠날 것 처럼 욕하고 전화 끊을때는 언제고,왜 여기 있는거요?

혹시 날 기다린거요?]

우진의 목소리에 하라가 고개를 들으니 우진이 웃으며 그녀의 옆 자리에

앉고 있었다.

[뭐예요? 누가 앉으라고 했어요?]

[이 분수대 하라씨가 다 전세낸 것도 아니고,내가 앉겠다는데

불만 있소?]

[그럼,앉기만 하고 말시키지 마요.]

하라는 딴청을 피우며 계속 아이스크림을 혀로 핣으며 쩝쩝 거렸다.

[화났소?]

[누구세요? 난 당신같은 사람 잘 모르겠는데요?]

[에이~오 하라씨 같은 털털한 여자가 그것 가지고 삐졌다면 말이

안돼지....화 풀어요.]

우진이 장난스럽게 하라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아야~뭐예요!]

하라가 버럭 화를 내자 그녀에게 장난을 걸려던 우진이 뻘쭘해진 표정으

로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당신이 많이 도와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당신을 쫓아 나왔소.그런데 차라리 당신을 찾지 말고 그냥 돌아갈걸

그랬군.]

우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갔다.


뭐야!

사람 민망하게스리.......


[이봐요!]

우진의 등뒤에서 그를 부르는 하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진이 뒤돌아 보며 하라를 노려보았다.

[누구십니까? 처음 보는 분이신데?]

어린아이처럼 토라져 그대로 하라에게 복수하는 우진을 보며 하라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좋아요! 사과 받아들이죠.그대신 조건이 하나 있는데.......]

[조건?]

우진이 되묻자 하라가 우진에게 다가오라는듯 손가락을 까딱까딱했다.

우진이 미간을 좁히며 그녀에게 다가가자 하라가 벌떡 분수대 난간위에

올라 섰다.

[그러다 넘어지면 어쩌려고 그래요!당장 내려와요!]

우진이 소리치자 하라는 고개를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하라는 자신의 목에 둘렀던 연 보라빛 스카프를 끌렀다.

그리고는 손끝에 잡고는 분수대쪽으로 팔을 움직였다.

[어머~]

하라가 능청스럽게 소리치며 스카프를 잡은 손끝에 힘을 풀었다.

스카프가 나풀거리며 분수대 안쪽으로 떨어져 버렸다.

[어머,스카프가 분수대 안에 빠졌네.......어쩌지.......]

하라가 우진을 보며 말을 하자 우진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설마,저걸 나보고 주워오라는 말은 아니겠지?]

[사과한다면서요,저거 하나 주워다 주는것도 못해줘요?]

우진은 하라가 사과를 빌미로 자신을 놀리고 있음을 알았다.

우투커니 서 있는 우진을 보며 하라는 속으로 그에게 혀를 내밀었다.


우리의 오만한 왕자님께서 설마 저 물속으로 뛰어 들겠어?


하라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분수대 안으로 뛰어들

준비를 했다.

신발이 젖지 않게 하려고 구두를 벗어놓으려 하라가 몸을 굽히는 순간

중심을 잡지 못한 하라가 비틀거렸다.

[어~위험해!]

우진이 소리쳤지만,이미 하라는 풍덩하며 분수대 안으로 빠진 후였다.

[앗! 차가워!]

하라가 소리치며 물속에서 방방 뛰었다.

겨우 하라의 허리까지 오는 깊이였지만,하라는 온 몸이 흠뻑 젖은 후

였다.

그때 하라의 옆으로 풍덩하는 소리가 또 들리며 누군가 분수대 안으로

뛰어들었다.

하라가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우진이 분수대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예요!당신 비싼 양복 다 젖잖아요!]

하라가 소리쳤지만,그는 아랑곳 안하고 볼쌍사납게 물위로 둥둥 떠다니

는 그녀의 구두를 집어들고 하라에게 다가왔다.

[괜찮소? 다친데는 없소?]

우진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하라를 쳐다보았다.

[내 속옷까지 다 젖었다는거 빼고는 다 괜찮은것 같네요.]

하라가 물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하라가 분수대 위로 올라가려 손을 뻗었지만,높다란 분수대의 깊이

때문에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우진이 구두를 물위에 잠시 올려놓고는 하라에게 다가왔다.

[이리 와봐요!]

우진이 소리치며 갑자기 하라의 허리를 움켜잡았다.

[어머!]

하라가 깜짝 놀라며 작은 비명을 질렀다.

어느순간 그녀의 몸이 공중에 뜨는가 싶더니 우진은 가뿐하게 하라를

분수대 난간에 올려놓았다.

하라가 분수대 난간에 앉게 되자 우진은 그녀의 구두를 다시 집어들었다

[발좀 내놔바요!]

우진의 말에 하라가 그에게 발을 내밀었다.

우진은 가느다란 하라의 발목을 붙잡았다.

발목을 통해 묘한 쾌감이 하라의 온몸을 스쳐지나갔다.

우진은 하라의 구두를 들고는 그녀의 발에 조심스럽게 신겨주었다.

[어머~로맨틱하다~]

주위의 여자들이 수군거리며 하라가 부럽다는 시선을 보내왔다.

하라는 갑작스런 우진의 행동에 얼굴에 붉은 홍조가 떠올랐다.

마치 자신이 신데렐라가 되어 왕자님이 자신에게 유리구두를 신겨주는

것 같았다.

[난 계속 물속에 쳐박아 둘거요?]

우진의 말에 하라는 달콤한 상상에서 깨어났다.

[예?]

[올려줘야 나도 여길 나갈거 아니요!]

우진의 설명에 하라는 아~하는 대답과 함께 일어나 우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힘 꽉 줘요!]

[걱정 말고 나오기나 해요!]

우진은 하라가 내민 손을 잡고 분수대 위로 올라가기 위해 발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우진의 갑작스런 힘을 감당하는게 쉬운 일이 아니였다.

[어어~나 넘어질 것 같아요!]

[안돼!조금만 버텨요!]

거의 다올라온 우진이 소리쳤다.

[어어~우진씨!으악!]

[헉!]

하라의 몸이 앞으로 숙여지자 우진이 본능적으로 하라에게 팔을 벌려

넘어지는 하라를 자신의 품에 안아들었다.

그리고는 하라와 우진은 부둥켜 안은체 또다시 그대로 분수대 안으로

빠지고 말았다.




백화점 안을 물을 질척거리며 걸어가는 하라와 우진을 사람들이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난 차에 앉아 있겠다니까!]

우진이 사람들의 시선이 창피한지 하라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조용히 해요!]

하라가 머리의 물을 짜내며 캐주얼 옷을 파는 매장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서 옷을 사 입자구?]

[그럼,젖은 옷 때문에 양복을 다시 사 입을래요?]

하라의 핀잔에 우진이 입을 꾹 다물었다.

[어머 왜이렇게 젖으셨어요?]

매장내의 직원이 호들갑을 떨며 하라와 우진을 맞이했다.

[언니~우리 둘이 입을 만한 옷 아무거나 좀 주세요.이렇게 젖어서

차마 매장 안까지는 들어가지 못하겠네요.미안해요.]

[어머 괜찮습니다.잠시만요.두분께 딱 어울리는 옷이 있어요!]

직원이 매장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후 옷을 가지고 나왔다.

[이거 어떠세요? 커플용으로 풀세트 한정 기획 나온 상품인데 요즘

아주 잘 나가고 있답니다.]

[좋아요!주세요!]

하라가 자신의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려고 했다.

[내가 계산하겠소.]

[우진씨 지갑까지 다 젖었잖아요.내 가방은 물에 빠지지 않았으니까

내가 계산할게요]

하라가 자신의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

옷을 산 그들은 신발 매장에 들러 간편한 운동화를 사고 속옷매장까지

가게되었다.

속옷 매장에 들어가기 쑥스러웠던 우진은 밖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하라만 안으로 들어가 자신이 입을 속옷을 골랐다.

[남자 속옷도 좀 보여주세요.]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저기 저 남자가 입을 건데요!]

하라가 큰소리로 말하며 밖에 있는 우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으.......

망할 여자같으니라구,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려고 작정을 했군.

우진은 고개를 있는대로 푹 숙이고는 일부러 하라를 외면했다.

[여기 있습니다.]

하라는 속옷을 받아들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우진에게 다가갔다.

[가요! 옷 갈아입어야지요!]

하라는 싱긋 웃으며 우진의 팔을 잡아 끌었다.


#33

하라와 우진은 동시에 화장실에서 나오며 서로와 맞닥뜨렸다.

[우와~멋진데요? 양복만 입은거 보다가 이런 옷 입은거 보니까

왠지 새로워 보여요!]

하라가 휘파람을 불며 민망한 표정을 짓는 우진에게 환호성을 질렀다.

[차라리,젖은 옷을 입고 돌아가는게 났겠어.]

우진이 다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하라가 재빨리 그의 팔을

잡아챘다.

[뭐가 어떻다고 그래요? 요즘 연인들은 다 이렇게 입는다구요!]

우진은 울상을 지으며 하트 그림이 반반씩 나누어진 자신과 하라의

커플용 티셔츠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군. 이런 옷을 어떻게 입고 다닌담!]

[아쉬운대로 입자구요!]

하라는 머뭇거리는 우진의 손을 잡고 커피숍 매장안으로 끌고 갔다.

우진은 왠지 커피숍 안의 사람들의 시선이 전부 자신과 하라에게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아서 영 불편했다.

하지만 더욱 그를 불편하게 만드는건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망할 여자가

사온 팬티였다.

티자형의 팬티는 정말 보기에도 낯뜨거운 엉덩이쪽에 묘한 불쾌감을

일으키는 견디기 힘든 것이였다.

차마 노팬티로는 청바지를 입을 수 없던터라 억지로 입기는 했지만

티자형의 끝이 자꾸만 엉덩이를 자극하는것 같았다.

우진이 불편한듯 엉덩이를 자꾸 의자위에서 움찔 거리자 쥬스가 담긴

컵의 빨대로 쥬스를 먹던 하라가 우진을 쳐다보았다.

[왜그래요? 어디 불편해요?]

[당신,도대체 왜 이런 속옷을 사온거요!]

우진이 목소리를 낮추며 하라에게 물었다.

[그 팬티가 어때서요? 사이즈가 작나요?이상하다 매장 직원한테

물어보고 산건데?]

[젠장 사이즈가 문제가 아니라,팬티 모양이 문제란 말이요.

어디서 이런 해괴망측한 팬티를.......]

말하기도 민망하다는듯 우진이 얼굴을 붉혔다.

[우진씨 입는 팬티가 그런거 아니예요? 저번에 우진씨 욕실에서

넘어 졌을때 제가 잠깐 우진씨 속옷 서랍을 봤는데요

그런류의 팬티던데.......]

하라가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우진을 쳐다보았다.

[젠장 그 팬티들은 친구들이 장난치느라 선물로 준거지,

내가 입는 팬티는 아니란 말이요.

그렇지 않아도 당신이 입혀놓은 그 코끼리 팬티때문에 내가 얼마나

병원에서 망신을 당했는지.......]

[어머!몰랐어요.난 당신이 그런 취향의 팬티를 입는줄 알고,

좀 특이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우진은 계속 울상을 지으며 냉수를 한번에 들이켰다.

그런 우진의 모습을 보던 하라가 문득 은밀한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낮춰 우진에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우진씨 그거 착용감 어때요? 죽이지 않나요?]




미경과 하라는 나란히 침대에 누워 얼굴에 머드팩을 하고는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진씨가 내 발에 구두를 신겨주었다는 말이지?]

미경이 손거울로 자신의 팩 상태를 살펴보며 하라에게 물었다.

[엉.]

[어머 너무 멋지다~우진씨 너무 로맨틱한 남자인거 같아!]

미경이 호들갑을 떨자 하라는 피식 미소만 지을 뿐이였다.

[너 남자가 여자에게 신발을 신겨주는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신발 신겨주는데 무슨 의미가 있냐?]

심드렁한 하라의 대답에 미경이 몸을 돌려 하라를 쳐다보았다.

[넌 로맨스 소설 쓰는 작가 맞냐? 그런것도 모르게?

흔히 신발 선물 주면 애인이 도망간다고 하잖아?

사실은 그게 아니래.남자가 여자한테 직접 신발을 신겨주는건

바로 당신을 자신에게 구속시키겠다는 소유욕의 의미래.

아웅~너무 멋지지 않니?]

미경이 두손을 모으며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하라가 손가락을 튕기며

미경의 이마를 때렸다.

[넌 너무 로맨스 소설을 많이 읽었어.]

[야~작가가 그렇게 말하면 안돼지!!솔직히 여자들이 로맨스 소설을

읽는 이유가 뭔데? 다 자기 만족 아니겠냐? 나무랄데없이 완벽한

멋진 남자와의 로맨스~캬!으 심장떨린다.■■■■]

미경이 팩을 벗겨내기 위해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았다.

[아참!미경아 나 여행간다.]

[여행? 어디?]

[응 잡지사에서 취재도 할겸 내장산으로 여행을 가자고 하는데.]

[모처럼 콧바람도 쐴겸 갔다와.]

[근데,거기 우진씨도 간다!]

[뭐!야 오하라!]

미경이 소리치며 벌쩍 하라가 누워있는 침대위로 뛰어올랐다.

[야 이뇬아!침대 꺼진다!]

하라의 구박에도 미경은 싱글벙글 하며 하라의 옆에 누웠다.

[너 솔직히 말해봐!우진씨랑 모종의 썸씽을 만들러 가는거야?

그런거야? 아우야~너무 빠르잖아...■■■ 아니다 아니다.

남자를 확실히 잡으려면 여자가 좀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도 있지.]


[얼씨구~혼자서 김칫국 다 마시네.]

[뭐야? 우진씨랑 단둘이 가는거 아니야?]

[같이 가기는.내가 기가막힌 이야기 해줄까?]

[뭔데? 너와 우진씨 썸씽보다 더 기가 막힌 뉴스도 있냐?]

[나하고 같이 일하는 잡지사 팀장이 우진씨 애인이란다.]

[뭐~]

미경의 목소리가 하이소프라노로 높아졌다.

[어머어머,말도 안돼.정말이야?]

[엉.]

[그럼 우진씨 애인이 있으면서도 너한테 찝적댄거야?어머머 우진씨

그런 사람으로 안 봤는데 바람둥이 구나!]

[아니야 바람둥이.]

[야!양다리 걸치는 놈이 바람둥이가 아니라니!]

[그 사람 애인 있는 줄 알고 내가 덤빈거야.]

[뭐?]

[애인 있는줄 알고 우진씨한테 내가 계속 찝적거리는 거라구.]

[야......오하라........너같은 퀸카가 왠일이냐.너 어디 아픈거

아니야? 말도 안돼.이건 여자의 자존심 문제다.

왜 우진씨가 너같은 퀸카한테 넘어오지 않나 궁금했던 참인데.......]

[사실,나도 그 사람 좋아하지는 않아.하지만 그 사람하고 꼭

결혼까지 해야하는 이유가 있어.]

[야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랑 결혼은 왜 해?]

[아빠가 그걸 원하시니까? 그 사람 아니면 안된다고 하시니까.]

[뭐야!그럼 뭐 정략결혼 뭐 그런거야?]

[아니야.그런거]

[그럼~]

[비밀 지켜줄 수 있어?]

[비밀?그럼 여아일언중천금이다.]

[둘러대기는.......]

하라는 한숨을 내쉬며 우울한 얼굴로 미경을 바라보았다.

[아빠가.......많이 아프셔.얼마 남지 않으셨어]
#34

내장산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은 날씨가 무척 청명하였다.

하라는 간단한 여행복장을 하고는 집을 나섰다.

[하라씨!]

자동차 경적소리에 하라가 고개를 돌려보니 차안에서 도해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도해씨!]

[한차로 같이 가는게 편할것 같아서요.지리도 제가 잘 알고 타세요!]

하라는 도해의 옆자리에 올라탔다.

[오늘 날씨 죽이죠?]

[예.좋네요.]

도해는 신나는 댄스 음악 테이프를 넣고는 볼륨을 크게 틀었다.

[남자친구는요?]

도해가 하라에게 묻자 하라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갑자기 설사병이 나서 못 가겠데요.]^^;

사실 하라는 심한을 데려갈까 어쩔까 고민을 하다 결국엔 혼자 가기로

결심했다.

심한을 데리고 가서 우진과 마주쳐봤자 서로 이득될게 없기 때문이였다.

차라리 도해 하나를 상대하는게 났지,심한과 우진까지 감당해 낼

자신이 없었다.

[어머 안됐네요.여기 큰 사거리에서 우진씨랑 만나서 가기로 했거든요!]

도해가 차를 사거리 모퉁이에 주차를 시켰다.

[어 저기 우진씨 있네요!!]

도해가 차에서 내려 길가에 서 있는 우진에게 뛰어갔다.

저 인간은 내가 온다는걸 알면서도 쫄래 쫄래 따라나선거야?

하라는 내심 우진이 오지 않기를 바랬는데,우진의 출현때문에 왠지

감정이 상해버렸다.

도해는 우진의 팔에 팔짱을 끼고는 차로 다가왔다.

그들이 다가오자 하라는 마지못해 차에서 내려섰다.

차에서 내리는 하라를 본 우진의 표정이 굳어지며 그가 도해를 노려

보았다.

[앗.미안,내가 하라씨도 같이 간다는 말을 깜박했지?]

도해가 웃으며 우진에게 변명하듯 사과를 건넸다.


뭐야? 내가 오는 줄 몰랐단 말이야?

그럼 저 여자랑 단둘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는건데.

쳇,응큼한 남자같으니라구.

실망이야.


[안녕하세요? 정 우진씨?]

하라가 우진에게 손을 내밀자 우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하라의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오늘 사실 커플들 끼리 놀러가기로 했거든.우진씨 화 난거 아니지?]

[놀러간다는 말 하지 않았잖아.잡지 취재차 가는거 아니였어?]

불쾌하다는듯한 우진의 말에 도해가 도와달라는듯 하라를 쳐다보았다.

[취재차 가는거 맞아요.글쓰는 것 때문에 저도 같이 가는거구요.]

하라의 말에 우진은 입을 다물었다.

[제가 우진씨 한테는 혼자 내장산까지 올라가는게 무섭다고 같이 가달라

고 거짓말을 조금 보탰거든요.그래서 화가 났나봐요!]

도해가 하라를 향해 눈을 찡긋하며 변명했다.

[늦겠어요.어서 출발하죠?]

하라는 우진을 한번 노려보고는 차에 오르려 다가갔다.

[어!우진씨 내 옆에 앉아!]

조수석에 앉으려 문쪽으로 손을 뻗었던 하라는 얼른 뻗었던 손을

밑으로 내렸다.

짐짝 처럼 난 뒷자석에 태우고 지들끼리 앞좌석에서 히히덕 거리겠다구?

하라는 왠지 심통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뒷 자석에 탈게.]

하라의 불편한 심정을 눈치챘는지 우진이 뒷자석쪽으로 향했다.

우진이 직접 그렇게 나서자 도해도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운전석쪽으로

향했다.

하라가 차에 오르려는 찰나 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라야~]

놀란 하라가 뒤를 돌아보자 심한이 헥헥 거리며 열심히 뛰어오고 있었다


뭐야~제가 왜 여기에 오는거야?


[늦었지 미안해!]

심한이 숨이 찼는지 숨을 헐떡이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의 검은 테 안경이 콧 잔등까지 흘러 내려와 있었다.

[너 여기 왠일이야~]

하라는 도해와 우진이 나설까봐 목소리를 낮추며 심한의 팔을 끌고

다른 곳으로 가려 했다.

[왠일이냐니? 너 오늘 놀러간다고 나 오라고 했잖아.]

[뭐? 내가 언제!]

[미경씨가 전화 했는데? 오늘 너랑 같이 놀러가기로 했다구.]

젠장.

미경이 너 죽었어.

하라는 자신의 핸드폰을 눌러 미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야 너 어떻게 된거야?심한이 한테 연락했어?]

[어.내가 했어.]

[너 주글래? 뭐야!]

[야 넌 질투 작전도 모르냐? 질투를 일으키기엔 심한이 좀 모자른

부분이 많지만 어쨌거나 심한이도 남자 아니냐?

놀러가서 정 우진씨의 질투심에 확 불좀 댕기고 와라!알았냐?

하하하하 !!!!!]

미경은 그대로 전화를 끊고 말았다.

[하라씨? 하라씨 애인이예요?]

오~쉣~

도해의 목소리에 하라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라가 뒤를 돌아보자 우진의 탐색하는 듯한 눈빛과 정면으로 부딪혔다.

[제 친구예요.못 올줄 알았는데 왔네요.]

[안녕하세요? 소 심한 입니다.]

[풋~]

심한이 자신의 소개를 하자 도해의 입에서 웃음이 튀어나왔다.

[죄,죄송해요.제 이름도 좀 특이하지만,하라씨 애인분의 이름도 좀

특이하시네요.]

도해의 말에 심한이 머리를 긁적이며 실실 웃었다.

[그럼 잘됐네.심한씨랑 하라씨는 뒷 자석에 앉고 우리는 앞 좌석에

앉을게요.아참~심한씨 저는 도 도해라고 하구요,여기는 제 애인

정 우진씨!]

도해의 소개에 심한의 표정이 경계하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흠칫~저 녀석 왜 나를 저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지?

우진이 놀라며 심한을 쳐다보았다.

심한은 최대한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우진에게 다가섰다.

[반갑습니다.정 우진씨.]

심한이 내미는 손을 우진이 잡았다.

[윽.]

자신과 악수하는 손에 심한이 힘을 꽉쥐자 우진은 깜짝 놀랐다.

우진도 그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손에 힘을

주었다.

두 남자의 묘한 신경전에 분위기가 이상해 지자 하라가 얼른 중재에

나섰다.

[자자,어서 출발하자구요!]

하라는 억지로 우진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심한을 떼어놓으며 뒷자석에

내던지듯 심한을 태웠다.

[자 그럼 출발합니다!!]

도해의 말과 함께 그들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안에는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끊임없이 우진에게

말을 시키는 도해의 목소리만 가득했다.

도해는 쉴새없이 우진에게 재잘 거렸지만,우진은 필요한 대답만 하고는

영 대응이 시큰둥 했다.

그의 태도에 도해도 포기 했는지 더 이상 그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하라는 뚱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체 창밖만 쳐다보았다.

심한은 소풍을 온 것처럼 가방안에 싸온 과자를 하라에게 계속 권했지만

하라는 그런 심한이 창피해 죽을 지경이였다.

심한이 악의가 있어서 그런 행동을 하는것이 아니라는건 알지만,

이 상황에서 우진과 자신 사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심한이

결코 달갑지는 않았다.

[휴게소좀 잠시 들릴게요!]

도해는 차에 깜빡이를 넣으며 휴게소 안으로 차를 몰아갔다.

휴게소에 도착하자 하라는 차에서 내려 두시간동안 달려오느라 피곤

다리를 풀기 위해 기지개를 폈다.

[우진씨 화장실 다녀오는동안 캔 커피좀 부탁해!하라씨 커피 좋죠?]

[네.]

하라와 도해는 화장실로 발걸음을 향했다.

심한과 단둘이 남겨진 우진은 어색한 분위기에 슬그머니 자신도 화장실

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화장실로 가는 내내에도 자신의 뒤통수에 쏟아지는 화살들 때문에

뒤돌아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왜 저렇게 나를 잡아 먹을듯이 쳐다보는 거지?

젠장 불편해 죽겠네.

우진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화장실로 얼른 뛰어갔다.

그가 화장실로 들어가 변기에 자리를 잡고 바지 지퍼를 내려 볼일을

보았다.

그러자 그의 옆자리로 쓰윽 심한이 들어서더니 그 또한 우진의 옆에서

소변을 보았다.

우진은 힐끔 심한을 보고는 다시 자신의 정면에 붙어있는 거울로 시선을

돌렸다.

거울을 통해 심한을 관찰하고 있던 우진의 표정이 점점 붉어졌다.

심한의 시선이 계속 자신의 남성쪽으로 힐끔힐끔 머무는 것이였다.


뭐야.....변태 자식 아냐?


우진이 주춤주춤 몸을 옆으로 돌리며 심한이 볼 수 없게 했다.



보면 볼수록 정 우진이란 자식은 괜찮은 놈이라는걸 심한은 인정할수

밖에 없었다.

미경으로 부터 들은 소식통에 의하면 하라가 죽자살자 요즘 따라다니는

남자가 바로 정우진 자신의 옆에 있는 이 빌어먹을 잘생긴 남자였다.

처음엔 자신만만하던 심한은 우진의 잘생긴 외모와 매력적인 저음의

목소리 여자에겐 깍듯한 매너로 인해 자꾸만 움츠려 드는것만 같았다.

하지만,다행인 것은 도해라는 여자가 우진의 옆에 붙어있다는 것이다.

어쩜, 도해라는 여자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 수도 있었다.

심한은 저 매력적인 악당으로 부터 하라를 구해 낼 수 만 있다면,

누구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던 아무 상관이 없었다.

우진의 바지 지퍼를 올리고 나가려 하자 심한은 서둘로 소변 보기를

끝내고 스토커처럼 그를 쫓아 나갔다.

우진은 캔커피를 사는지 매장쪽으로 움직였다.

그를 놓칠세라 심한은 부지런히 우진을 따라잡았다.

우진이 캔커피 4개를 계산대에 올려놓자 심한이 캔커피 하나를 얼른

다시 제자리에 갖다놓았다.

우진이 황당한 얼굴로 심한을 쳐다보자 그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우리 하라는 캔커피는 마시지 않습니다.원두커피만 마시죠.

하라것은 제가 저쪽에서 따로 사가겠습니다.]

원두커피 매장으로 향하는 심한을 보며 우진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하라는 원두 커피만 마십니다.]

우진이 비아냥 거리듯 심한의 말투를 따라했다.

왠지 우진의 마음 한구석이 묘해졌다.

우리 하라 라는 심한의 말을 통해서 왠지 하라와 심한 사이에는 우진이

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것 같았다.

그러나 저러나, 오 하라같이 도도한 저 여자가 왜 저 심한이라는 남자

와 어울리는지 우진은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

애인이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죽자살자 매달렸던 하라에게 왠지 괘씸한

마음이 들었다.


이름처럼 소심해 보이는 저 얼굴,시커먼 안경테,

쳇 완전 고시생같은 모습이로군.

도데체 속을 알수 없는 여자야.

애인이 없다고 할때는 언제고 저런 애인을 꿰차고 나타나다니.


#35
내장산 휴양림 리조트에 도착하자 내내 기분이 꿀했던 하라는 상쾌한

숲속의 공기에 기분이 확 풀리는것 같았다.

모두들 즐거워 하는 표정을 보니 역시 여행이라는 것은 좋은듯 싶었다.

그들이 머물 통나무집에 짐을 풀고,출출해진 그들은 식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심한은 설사병이 났다는 하라의 거짓말 때문이였는지,정말로 배탈이

나서 도착하자 마자 화장실로 뛰어갔다.

도해가 대충 짐을 정리하는 동안 하라가 대충 슈퍼에 가서 장을 봐

오기로 했다.

하라가 통나무 집을 나서고,우진은 자신의 담배가 떨어진 것을 깨달았다

[나도 슈퍼에좀 다녀올게!]

[하라씨가 갔는데?]

[담배가 떨어졌어.금방올게!]

우진은 도해에게 말하고는 급히 통나무 집을 나섰다.

저 앞에서 하라가 터덜터덜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드리워진 커다란 나무들이 무성

하게 모여있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하라가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내게 도해가 있다고 그렇게 악을 쓰더니만,놀부 심보인거요?

어디서 저런 남자를 애인이라고 데리고 왔소?]

갑작스런 목소리에 하라가 몸을 돌려 그녀에게 다가오는 우진을 쳐다

보았다.

[무슨 소리예요?]

[애인없이 혼자 오면 자신이 처량하게 느껴질꺼라 생각했소?

애인이라고 속이고 데리고 오려면 좀 그럴듯한 남자를 데리고 오지

그랬소.그래야 내가 속아주는 재미도 느낄 것 아니요.]

어라?

이 남자 보게.

우진은 하라가 도해와 함께 오는 그에게 지기 싫어 심한을 애인이라고

속이고 데리고 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였다.

[당신의 재미를 깨뜨려서 죄송한데요,심한이는 한때 정말 제 애인이였

답니다.그리고 심한이 어디가 어때서 그런말을 하시는거죠?

한때 심한의 연인으로서 심히 듣기 거북한 말들이네요?]

[한때 애인? 그럼 지금은 애인사이가 아니라는 말이요?]

[지금은 당신이 있잖아요.]

씨익하며 사악한 미소를 짓는 하라를 보며 우진은 몸소리를 쳤다.

[착각도 자유시군.]

우진이 하라를 밀치고 앞서 걸어갔다.

[심한이 꾸미고 다니는건 좀 꾸리해도 잘 보면 잘생겼어요.

머리도 좋죠.카이스트에선 알아주는 수재랍니다.

아마도 졸업하게 되면 미국 MIT에 가게 될지도 몰라요.]


카이스트? MIT?

쳇 나도 그정도 머리는 있어.

우진이 속으로 투덜거리며 괜시리 발끝에 와 닿는 돌맹이를 걷어찼다.

[또 얼마나 여자한테 다정하게 잘 대해주는데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라면 자신의 간도 내줄 친구죠.

생긴건 소심하게 보여도 한번 불을 뿜었다 하면 정말 정열적인 연인

이랍니다.호호호호호]

하라의 너스레에 우진이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정열적인 연인? 풍기는 뉘앙스가 왠지 묘한걸? ]

[무슨 생각을 하는거예요?]

[흔히 정열적인 연인이라 칭하는건 서로 못볼거 다 볼만큼 은밀한

사이의 연인을 두고 표헌하는 말 아니요?]

아차.

하라는 스스로 제 무덤을 팠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우진에게 지기 싫은 마음에 하라는 턱을 들어올리며 최대한

황홀한 미소를 지었다.

[어찌나 뜨거운지 정신을 다 못차릴 정도였답니다.

당신은 도해씨한테 어떤 연인인지 모르겠네요.

하긴 내가 볼수가 없으니 알수가 있나?]

하라는 일부러 우진의 남자로서의 자존심을 슬슬 건드리는 말을 하며

그의 심기를 어지럽게 했다.

그녀의 의도가 성공했음을 일그러지는 우진의 얼굴을 보며 깨닫고는

하라는 휘파람을 불며 다시 앞서 나갔다.

[그렇게 정열적인 연인과 왜 헤어지게 된거지?]

[워낙 여자들이 많아 따라서 저 스스로 괴롭더라구요.

워낙 심한이가 마음이 약해서 그 여자들을 잘 처리하지도 못하고,

그래서 그냥 친구 사이로 남아 있기로 했어요!]

하라가 키득키득 거리며 우진이 자신의 말에 휘말려 드는것에 대해

재미있어 했다.

우진이 멈춰서서 움직일 생각을 안하자 하라가 그를 뒤돌아 보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심한한테 관심을 보이는거예요?]

[누...누가 관심을 보인다고 그러는 거요!남자를 고르는 당신의

취향속에 나까지 집어 넣을까봐 그게 걱정일 뿐이요.

제발 당신의 애인과 같은 부류에 나는 넣지 말아요.자존심 상하니까]

우진은 자신이 담배를 사러 간다는 것도 깜빡한체 씩씩 거리며 다시

내려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우진에게 한방 먹인것이 통쾌한 하라는 숲속이 메아리 치도록 깔깔

대고 웃으며 오솔길을 뛰어 내려갔다.



도해는 식탁에 보글보글 끓고 있는 찌개를 올려놓았다.

[맛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맛있겠는데요?]

심한이 수저를 들고 찌개를 한입 먹어보았다.

[어때요?]

[이야.맛있어요.하라야 너도 먹어봐.]

[으응.]

하라의 수저를 챙겨주는 심한을 우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우진은 수저를 들고는 심한과 하라를 노려보며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심한씨하고 하라씨하고 사귄지 오래되셨나봐요?]

[부랄친구예요.]

[켁!!]

하라의 말에 우진이 사래가 걸렸는지 켁켁 거리며 기침을 했다.

[괜찮아 우진씨?]

도해가 우진의 등을 두드려 주며 그에게 물잔을 내밀었다.

물을 마시고 나서야 우진의 기침이 간신히 멈추었다.

하라는 우진의 반응이 잼 있다는듯 맛있게 밥을 먹는척 하며 작은

소리로 웃었다.

[하라씨 표현이 너무 적나라 해서 우진씨가 놀랐나봐요.하하하

역시 하라씨는 솔직한게 매력이라니까요.]

[저도 제가 솔직한게 마음에 들어요.]

하라가 빙그레 웃으며 우진을 쳐다보았다.

[리조트 안에 수영장이 있는데,내일 수영하러 가는게 어때요?

수영복도 빌려준다니까 괜찮을 거예요.]

[하라씨는 수영못해.물 공포증이 있거든.]

우진의 말에 도해와 심한의 수저질이 동시에 멈추었다.

하라도 놀란 얼굴로 우진을 쳐다보았다.

자신을 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 우진은 자신이 실수 했음을

깨닫고 도로 말을 주워담고 싶었다.

[이상하네,우진씨가 하라씨 물공포증이 있는지 어떻게 알어?]

도해의 물음에 우진이 당황한 모습으로 하라를 쳐다보았다.

[저번에 엘리베이터에 같이 갇혔을때 잠깐 이야기 했었는데

그걸 기억하고 계셨네요.]

하라가 우진 대신 도해에게 설명해 주자 그제서야 도해는 의심의 표정을

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그렇구나.우리 우진씨는 폐쇄 공포증이 있거든요.]

도해가 다시 식사를 시작하자 우진은 안심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도

식사를 계속했다.


무서워서 떨고만 있었는 줄 알았는데,

그때 엘리베이터에서 나눈 말들을 기억하고 있었네.


하라는 우진을 살짝 쳐다보고는 그와 눈이 마주치자 자신의 밥그릇으로

얼른 시선을 옮겨버렸다.

#36
[우와 아침부터 날씨가 후덥지근 하네요!]

도해의 목소리에 하라의 두눈이 번쩍하고 떠졌다.

[좋은 아침~]

도해의 인사에 하라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날씨도 덥고 그래서요.우리 시원하게 물놀이나 하러 갈래요?]

[물놀이요?아........전.]

머뭇거리는 하라를 보며 도해가 그녀의 어깨를 툭 쳐주었다.

[걱정말아요.수영하는 일은 아니니까.]

도해는 자신의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음 시간이 거의 다 되가네요.남자들도 아까 일어난것 같던데.

하라씨도 빨리 서둘러요.좋은 볼거리를 놓치면 안되니까요.]

도해가 하라의 팔을 잡아 이끌며 허둥지둥 서둘렀다.

간단하게 세수를 마치고 하라가 오두막 밖으로 나오니 우진과 심한

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잘잤니?]

심한이 반갑게 하라에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응.]

머뭇거리던 우진도 인사를 건네려 입을 열었지만,도해가 얼른 끼어드는

바람에 그의 아침인사는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자자 빨리 서두르자구요!]

도해를 선두로 그들은 도해를 따라 리조트 안으로 걸어갔다.

리조트 안으로 들어서자 푸른 골프장의 잔디밭이 드러났다.

[우와~너무 멋져요!]

하라의 입에서는 저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지금은 아직 골프장 개장을 안해서 사람이 없어요.]

도해가 잔디밭 한가운데로 뛰어가며 즐거워했다.

시원하게 탁 트인 푸른 잔디밭에 우진과 심한도 즐거워하며 토끼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여자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빨리 와봐요!]

도해가 손을 흔들자 나머지 셋은 도해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뭔데 이렇게 뜸을 들여?]

우진의 물음에 도해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자 카운트 셉니다.5.4.3.2.1~]

도해의 카운트가 끝나자 넓은 잔디밭의 스프링쿨러에서 일제히 분수처럼

물이 뿜어져 나왔다.

[꺄악~차가워~]

스프링쿨러의 물줄기들이 그대로 그들에게 쏟아져 나왔다.

[어때요? 시원하지 않아요?]

스프링쿨러의 물줄기들이 푸른 하늘로 치솟아 올라 무지개처럼 빛을

내며 영롱하게 공기중으로 흩어져 갔다.

그들은 어린아이처럼 자신들이 흠뻑 젖는 줄도 모르고 즐거워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뛰어다니던 하라가 힘이 들었는지 벌러덩 잔디밭위로 누워 하늘을

향해 대자로 몸을 뻗었다.

얼굴위로 쏟아지는 스프링쿨러의 물방울들이 기분이 좋았다.

심한이 어디서 가지고 왔는지 물호수를 가지고 와서 도해에게 물을

뿌리며 장난을 걸자 도해가 이리저리 피해다니며 비명을 질러댔다.

하라가 몸을 돌려 그들을 쳐다보고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우진이 환한 웃음을 터트리다 하라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매가 얇아지며 미소를 그녀에게 보내고 있었다.

순간 하라의 눈빛이 반짝하고 빛다더니 우진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그의 손을 덥석 잡고는 서로 장난을 하느라 정신없는 도해와

심한을 피해 우진을 끌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어디가는거요?]

[아까 오다가 좋은 곳을 발견했어요!]

하라가 햇살 만큼이나 투명한 웃음을 터트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순간 우진은 그녀의 웃음에 심장이 멎는것만 같았다.

그녀의 웃음에 잠시 정신이 팔린 우진이 끌려온곳은 골프장 한켠에

만들어진 인공 폭포였다.

인공 절벽위로 폭포수가 시원한 소리를 내며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하라는 폭포수가 고인 웅덩이 안으로 우진을 데리고 들어갔다.

[어디를.......]

우진이 하라를 말리려는 찰나 그녀와 우진은 폭포수 안으로 이미

들어간 후였다.

[어때요? 멋지죠?]

하라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우진을 쳐다보았다.

인공기암절벽 안에는 텅빈 공간이 남아 있었는데,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가 커텐처럼 그 안을 가려주고 있었다.

[이렇게 폭포 안으로 들어와 보기는 처음이요.비록 가짜 폭포이긴

하지만,분위기 있군.]

우진의 마음에 들어하는 표정을 보니 하라도 기분이 좋아졌다.

하라는 갑자기 발돋움을 한다음 우진의 목에 자신의 팔을 둘렀다.

그리고는 놀라는 우진의 표정을 뒤로 하고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대었다.

살짝 스치듯 그의 입술에 키스를 한 하라가 멍한히 서 있는 우진을 보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굿모닝~굿모닝 키스예요.]

하라는 우진의 목에 둘렀던 자신의 팔을 푼다음 밖으로 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러자 갑자기 하라의 허리에 우진의 팔이 휘감겨 왔다.

그에 의해 몸이 돌려진 하라는 곧바로 자신의 입술에 와 닿는 우진의

입술을 느낄 수 있었다.

하라는 그가 키스하는대로 두 눈을 살짝 감으며 키스에 몰두했다.

시원한 폭포수와는 반대로 그들의 키스는 불처럼 뜨거웠다.

[와우~정말 이렇게 스릴 있는 키스는 처음인데요?]

우진이 입술을 떼자 하라가 숨을 헐떡이며 장난스레 중얼거렸다.

[어떻소? 나도 정열적인 연인의 기질이 좀 있는것 같소?]

우진의 물음에 하라가 개구장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글쎄요? 좀더 구체적으로 더 알아봐야 하겠는걸요?]

하라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하며 다시 우진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까이 가져갔다.

[하라야~]

[우진씨~아이참 어디로 사라진거야?]

도해와 심한이 그들을 찾는 목소리에 둘은 불에 데인듯 서로에게서

갑자기 떨어져 나갔다.

우진이 놀란 얼굴로 밖으로 나가려 하라가 그의 손을 잡았다.

[좀 있다가요........]

하라가 커텐처럼 드리워진 물줄기 사이로 희미하게 투영되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의 모습이 다른쪽으로 사라지자 하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우진과

함께 폭포안에서 빠져나왔다.



점심 식사를 준비하는 하라의 곁으로 심한이 다가왔다.

말도 하지 않고 탐색하는 자신을 지켜보는 심한을 향해 고개를 돌린

하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왜? 할말 있어?]

[너 아까 어디에 갔던거야?]

[뭐?]

[정 우진씨랑 함께 사라졌던거 맞지?]

[무,무슨 소리야?]

[오 하라!정신 차려 그는 애인이 있는 남.......]

하라는 얼른 심한의 입을 자신의 손으로 틀어막았다.

[너 조용히 안할래?]

하라의 태도에 심한이 자신의 입을 막은 손을 떼내었다.

[왜? 도해씨가 알까봐 무서운거야?]

[야 소심한!]

[니가 좋아한다던 남자 정 우진씨 맞지?]

[누가그래?]

[미경씨 한테 대충 말 들었어.]

못된 기집애 같으니라구.......

도움이 안되는구만.

[미경이가 장난한거야.]

[거짓말.네가 날 보는 눈빛과 정 우진씨를 바라보는 눈빛이 틀리다는걸

내가 모를줄 알아? 왜 하필이면 애인이 있는 남자야!네가 뭐가

부족하다구!]

[너 안되겠다.이러다가 큰일나겠다!]

하라는 심한의 손을 잡고 뒷문으로 그를 끌고 나갔다.

아무도 없어 보이는 듯한 곳으로 심한을 끌고 나온 하라는 화가 난듯

씩씩 거리며 팔짱을 끼고 심한을 쳐다보았다.

[너 도대체 왜 그래? 누구 작살 나는 꼴 보고 싶어 그래?]

[포기해.그 남자는 포기하라구.]

[싫어.그 남자와 결혼할거야.]

[뭐? 너 완전 미쳤구나!]

[그래! 미쳤어!그 남자한테 완전히 미쳤으니까!더 이상 내가 하는

일에 방해나 하지 말아줘.]

[회장님도 아시니? 네가 임자 잇는 남자한테 매달리는걸.]

[아셔.아빠가 소개 시켜준 사람이 바로 정 우진씨야.

도해씨는 모르고 있어.

나나 아님 우진씨가 도해씨 한테 말하기 전에는 절대 말하면 안돼.]


[그럼,너와 정우진 그 자식 의 놀음에 도해씨만 놀아나는거네?

너 그러면 정말 못된 여자라는거 알아?]

[상관없어.내가 악녀가 되어야 한다면 그래.악녀가 될거야.]

[뭣때문에?네가 악녀가 되면서 까지 정 우진씨를 차지 해야 할

이유가 뭔데?못 먹는감 찔러나 보자 뭐 그런거야?]

[소 심한~한 마디만 더 했다간 널 때려 눕힐거야.]

[어디 마음대로 악녀가 되어가봐.널 말릴수만 있다면,그래 나도 악마

가 되어줄게.]

[거기서 뭐해요!!식사해요!]

통나무집에서 도해가 그들을 향해 소리를 쳤다.

[네! 지금가요!]

하라가 대답하고는 심한을 쳐다보았다.

[방해하지마.알았지?]


#37
[뭐라구요?]

수영장을 가겠다며 우진과 팔짱을 낀 체 싱글벙글 하는 도해를 보며

하라는 울상을 지었다.

[하라씨도 같이 갔으면 좋겠지만,물 공포증 때문에 수영을 못하신다면

서요.모처럼 놀러 왔는데,애인과 잠시 시간좀 보내시라구 우리가 슬쩍

자리를 비켜드리죠.]

[아!마침 잘됐네요.저희도 수영장에 갈 참이였거든요.]

[뭐?]

심한이 무슨 소리냐는듯 하라를 쳐다보자 하라가 웃으며 심한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둘렀다.

[내가 수영을 못한다고 수영장에 못가란 법은 없죠.마침 선탠이나

좀 해볼까 했는데.......심한 너는 수영하고 싶지?응?]

하라가 억지 미소를 지으며 심한을 쳐다보았다.

[어?어어........]

[그럼 잘됐네요.수영장 비치에 선탠하기 좋은 자리가 있거든요.

함께 가요!]

[좋죠!]

어디서 둘이서 쏙 빠질려구해?

어림도 없지.

수영장에 도착한 하라는 따분한 얼굴로 시원한 물살을 가르며 수영을

하는 우진과 도해를 지켜보았다.

[넌 왜 내 곁에 붙어 있는건데?너도 수영좀 해]

[네가 심심하잖아.]

[난 선탠이나 즐길래.난 신경쓰지마.니가 옆에 딱 붙어있으니까

내가 더 따분하잖아.]

[정말 괜찮겠어?]

그렇지 않아도 더위때문에 땀을 줄줄 흘리고 있던 심한은 수영장의

시원한 물들의 유혹때문에 온몸이 근질근질 했던 참이였다.

[신경끄고,저 시원한 물에 풍덩이나 하라구.]

하라의 말에 심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영장안으로 풍덩 빠져들었다.

리조트 안에 있는 수영장은 그야 말로 호화판 그대로였다.

인공 야자수들이 수영장 주위를 둘러싸고 있고,넓은 수영장은 늘씬한

여자들이 비키니를 입고 몸매를 뽐내고 있었다.

넓은 수영장 한가운데에는 작은 인공 섬모양의 조형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수영하던 사람들이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잠시 쉬어갈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 곳에서 도해가 우진에게 손을 흔들며 아이스티를 마시고 있는것이

하라의 눈에 보였다.

[완전 무릉도원에 계시는구만.]

물속에 빠져들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하라가 투덜거렸다.

하라는 멋있는 등근육을 자랑하며 물살을 가르는 우진을 쳐다보았다.

그가 팔을 뻗을때 마다 그의 근육들이 움찔거렸다.

생각보다 멋진 몸매를 가졌네?

하라가 우진의 근육을 감상하다 심한에게 고개를 돌렸다.

오우~

하라가 깜짝 놀라며 심한의 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심한의 몸매는 우진보다 더 멋있었다.

저런 몸매를 그런 후질근한 옷 속에 숨기고 있었단 말이야?

지나가던 비키니의 여자들이 힐끔거리며 심한의 몸매를 훔쳐보는것이

하라의 눈에 들어왔다.

우진 역시 물속으로 들어오는 심한의 몸매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저 심한을 병약하고 힘도 못쓰는 헛다리로 생각해 왔는데,지금 보니

그의 몸매가 예사가 아닌듯 싶자,우진은 저도 모르게 물속으로 자신의

몸을 슬그머니 숨겨버렸다.

저 침 흘리고 쳐다보는 것좀봐.......

우진이 넋이 나가 심한을 쳐다보는 하라를 심드렁하게 쳐다보았다.

[우진씨!지금 몇 시쯤 됐어?]

도해가 묻자 우진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바라보다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 자신의 시계는 방수 시계인데,물이 찼는지 시계가 멈추어 서있었다

[시계가 좀 이상한데? 거기 벤취위에 잠깐 놔주겠어?]

우진이 손목시계를 끌러서 도해에게 건네주었다.

[어머 시계가 멈추었네?]

[아무래도 물이 들어갔나봐.수리를 맡겨야 겠어.]

[하라씨좀 봐 너무 불쌍해.]

도해가 수영장 너머 벤치에 앉아 선텐 오일을 바르고 있는 하라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게 왜 쫓아 오겠다고 하는지 몰라.]

[수영장 몇 바퀴만 더 돌고 돌아가자.]

[왜? 우리 여기 온지 얼마 안되었잖아.]

[하라씨 심심하잖아.]

[자기가 따라오겠다고 우긴거잖아.하라씨 신경쓰지 말고 우리끼리라도

즐겨야지.]

도해가 심통난 목소리로 우진에게 대답했다.

우진은 고개를 저으며 헤엄을 쳐서 하라쪽으로 다가갔다.

선탠 오일을 바르던 하라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우진을 쳐다보았다.

[왜요?]

[정말 수영하고싶은 생각이 없소? 거기만 있으려면 더울텐데.]

[지금 내 걱정 해주는건가요?]

[걱정이라기 보단 같이 어울리지 못하니 불쌍해서 그렇소.]

[고맙네요.저한테는 신경끄시고 저기 피앙새 한테나 가보시죠.

지금도 도해씨가 도끼눈을 뜨고 우릴 쳐다보고 있으니까요.]

하라가 턱짓으로 자신들을 쳐다보고 있는 도해를 가리켰다.

[어서 가보세요.]

[햇빛이 너무 뜨거우니 땡볓 아래 너무 오래 있지 말아요.]

우진이 다시 수영을 하며 도해쪽으로 돌아갔다.

[뭐예요.그렇게 친절하게 굴면 자꾸만 당신을 빼앗고 싶단 말이예요..]

하라는 멀어지는 우진을 보며 중얼 거렸다.



그들이 수영장에서 돌아왔을땐 이미 저녁의 해가 뉘엿뉘엿 사라지고

있었다.

그들의 마지막 밤을 멋지게 보내기 위해 도해가 모닥불 파티를 제안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그들은 모닥불에 빙 둘러앉아 캔 맥주를 들이키며

저마다의 여행의 여운에 빠져 있었다.

[정말 학교 다닐때 수학여행 생각난다.그지 우진씨?]

도해가 자신의 옆에 앉은 우진의 팔에 팔짱을 끼며 그에게 기대었다.

하라의 눈길이 우진의 팔에 두른 도해의 팔에 머물렀다.

우진은 하라의 시선을 의식한듯 어색하게 도해의 팔을 풀렀다.

[이렇게 커플끼리 놀러오니까 정말 좋다.우리 자주 이렇게 해요.하라씨]

하라는 그냥 웃음만 지을뿐 도해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정 우진씨와 도해씨는 결혼할 사이 이십니까?]

심한의 질문에 우진과 도해가 동시에 대답했다.

[그럼요.]

[아직입니다.]

하지만 서로 엇갈리는 대답에 도해와 우진은 서로를 쳐다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우진씨 말은 아직 당장 결혼은 안한다는 이야기 예요.우진씨도 일

때문에 바쁘고 저도 아직 회사일 때문에 결혼할 짬이 안나거든요.]

도해의 말에 하라의 얼굴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겠습니다.]

[우진씨 어디가?]

[비서한테 전화좀 하고 올게]

우진이 어색한 분위기를 빠져나가려는듯 자신의 핸드폰을 가지고

오두막 뒤로 사라졌다.

사라지는 우진을 보고 있던 도해가 멋적은 웃음을 심한과 하라에게

보여주었다.

[우진씨가 저렇게 좀 무뚝뚝한 면이 있어요.]

하라는 괜히 할일없이 막대기로 모닥불을 헤집었다.

[어머나!!]

갑자기 도해의 비명에 놀란 하라가 고개를 들어 도해를 바라보았다.

[이를 어째.......]

[왜요?]

[우진씨 시계를 수영장에 두고 왔어요.]

도해의 말에 하라는 아까 우진이 시계를 풀어 도해에게 건네주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쩌지........왜 이렇게 난 덜렁대는지.......]

[내일 리조트에 가서 확인해 보죠.]

[그 시계 잃어버린걸 우진씨가 알면 난 큰일나요.그 시계가 보통

시계가 아니거든요.]

[무슨 시계인데요?]

[우진씨 아버님 돌아가시면서 남기신 유품이예요.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 건데.......아까 우진씨가 잘 챙기라고 했는데.]

[누가 주워다 리조트 관리소에 맞겼을지도 모르잖아요.]

하라의 말에 도해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지었다.

[아까 수영장 한가운데 있는 인공섬에서 우진씨한테 시계를 건네

받았는데 아마 그곳에 있을거예요.거기는 수영장 관리인들도 잘

안 살펴 볼텐데.......]

도해는 거의 울음을 터트릴 지경이였다.

[내일 아침 리조트 문 열자마자 가서 찾아봐요.]

[안되겠어요.우진씨 한테 이야기 해야 겠어요.]

도해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진이 사라진쪽으로 걸어갔다.

[비가 올것 같은데?]

심한이 검은 구름에 가려져 달이 잘 보이지 않자 중얼거렸다.

하라도 심한의 말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 하나 달 하나 없이 칠흙같이 주위가 어두웠다.

어쩌지.......

우진씨 시계 비라도 맞으면 망가질텐데.

[비가 내리면 우진씨 시계 물 맞아서 망가지지 않을까?]

[글쎄.하늘 상태 봐서는 한바탕 쏟아져 내릴것 같은데.

빗물에 수영장 안 깊숙히 빠지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심한은 우진의 시계따위 관심없다는듯 캔에 있는 맥주를 마저 들이켰다.

하라는 슬슬 우진의 시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나 잠깐 화장실좀 다녀올게]

하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내었다.

[같이 가줄까?]

[내가 어린아이니?됐어!]

하라가 같이 따라나서려는 심한을 노려보고는 통나무집쪽으로 걸어갔다.

심한이 자신의 앞에 놓인 캔 맥주를 들어올리는걸 본 하라는 얼른

통나무집 쪽으로 가던 걸음을 옮겨 리조트 쪽으로 향했다.

#38
빗방울이 한 두 방울씩 모닥불 위로 떨어지기 시작하자 우진과 도해가

함께 심한이 있는 쪽으로 돌아왔다.

[하라씨는요?]

[화장실 갔는데요.]

[화장실이요? 어 이상하다.내가 방금 화장실 갔다 왔는데 통나무 집에

하라씨 없던데요?]

도해의 말에 심한이 고개를 들었다.

[화장실 간다고 간지 십분이 넘었는데.]

심한은 갑자기 하라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제가 가보고 올게요.빗방울이 떨어지는게 아무래도 비가 올것 같은데

모닥불 끄고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내가 불을 끄죠.]

우진이 모닥불로 다가가 발로 불을 끄기 시작했다.

심한은 하라를 찾기 위해 그들의 숙소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하라는 간신히 경비원을 따돌리고 리조트 수영장안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하라는 경비원에게 들키지 않게 몸을 숙이고는 조용하고도 빠르게

수영장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수영장 주위를 뱅뱅 돌며 벤치나 탁자위에 우진의 시계가 없나 하라는

살펴보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우진의 시계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하라가 둘러보지 않은 곳은 단 한군데,바로 도해가 아까 잠시

휴식을 취했던 수영장 한가운데 있는 인공 섬 조형물 뿐이였다.

문제는 저곳까지 어떻게 가는냐였다.

하라의 이마에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비가 온다는 것을 감지하자 하라는 더 이상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

하라는 이를 악물고 수영장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영장 한켠에 물놀이용 작은 고무 보트 하나가 있었다.

아마도 물놀이 손님 중 어느 누구 하나가 두고 간듯 했다.

하라는 휘파람을 불며 얼른 고무 보트를 가지러 갔다.

고무 보트를 수영장 위에 띄어 놓고는 조심스럽게 수영장 계단 손잡이를

잡고 보트 위에 올라탔다.


괜찮아,괜찮아,

보트까지 탔는데 뭘.

하나도 무섭지 않아.

하라는 밀려드는 공포심을 꾸역꾸역 목구멍 안으로 삼키며 손으로

노를 젓기 시작했다.

밤이라서 그런지 손에 와 닿는 수영장의 물이 차갑게 느껴졌다.

손으로 노를 저으며 하라는 조심스럽게 수영장 한가운데로 나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노를 저었을까 슬슬 팔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수영장 가운데 조형물에 와 닿자 하라는 조심스럽게 조형물에

내려 올라섰다.

[휴우~생각보다 쉬운데?]

하라가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우진의 시계를 찾기 시작했다.

[찾았다!!]

하라가 소리치며 간이 벤취 옆에 있는 작은 테이블 위에 있는 시계를

집어들었다.

[다행히 누가 가져가지 않았네.]

하라는 시계에 입김을 불고는 바지에 시계를 문질러 닦았다.

시계를 들어 올려 수영장 조명에 비춰보았다.

[좋았어!]

하라가 시계를 손에 쥐고 다시 보트에 올라타려 할때였다.

갑자기 한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후두둑 소리를 내더니 갑자기 폭우

같은 비들이 쏟아져 내렸다.

하라의 온몸이 금새 비에 젖어 가고 있었다.

당황한 하라가 서둘러 보트위에 자신의 한 발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중심을 잡지 못한 하라가 나머지 발까지 다 보트에 내려놓았을때

보트가 기울지기 시작했다.

[어어~]

하라가 중심을 잡으로 몸을 얼른 반대쪽으로 숙였지만,순식간에 보트가

뒤집히며 하라는 그대로 수영장안으로 빠지고 말았다.

[꺄악~]

하라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발을 디디려 했지만,깊은 수영장안에서는

하라의 발은 닿지 않았다.

견딜 수 없이 깊은 공포심이 몰려왔다.

꾸역꾸역 하라의 목구멍으로 소독약 냄새가 나는 수영장 물이

들어왔고,하라는 계속 몸부림을 치며 물위로 솟아 오르려 했지만,

이미 공포심에 온몸이 굳어버린 하라에겐 수영장을 빠져 나가는건

역부족이였다.

[사,살.....컥.]

입을 벌릴때 마다 들어오는 수영장 물때문에 폐의 압박이 심해지자

하라는 숨쉬기 조차 힘들어 졌다.




[정말 하라씨가 시계를 찾으로 수영장에 갔단 말인가요?]

도해와 우진 심한은 쏟아져 내리는 빗속에서 서둘러 수영장쪽으로

걸어갔다.

[틀림없어요.]

통나무 집에 하라가 없는 것을 확인한 심한은 분명히 하라가 우진의

시계를 찾으러 수영장에 왔을거라 확신했다.

도해와 우진은 심한의 말에 놀란듯 서둘러 우산을 챙겨들고 심한과

함께 바쁘게 수영장안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갑자기 비가 왜 이렇게 내린데.]

도해가 우산을 써도 속수무책으로 젖어드는 자신의 옷을 보며 투덜

거렸다.

무엇보다 도해는 왜 하라가 우진의 시계를 찾기 위해 혼자 비가 쏟아지는

이 밤에 수영장에 갔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를 않았다.

여행 내내 우진과 하라 사이에 흐르던 묘한 기류를 느낀 도해에게

한가지 의구심을 더 추가 하는 일이였다.

[하라야~]

심한이 하라를 불렀지만,커다란 비소리때문에 심한의 목소리는 이내

금방 묻혀버리고 말았다.

[하라씨!]

도해도 하라를 부르며 수영장을 살펴보았다.

[하라야!저기 있어요!]

심한이 마지막으로 허우적 대다가 물속으로 사라지는 하라의 손을

보며 고함을 쳤다.

[꺄악~어떻게!!심한씨 빨리 어떻게 해봐요!]

도해가 비명을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심한은 물에 뛰어 들기 위해 자신의 신발을 벗고 있었다.

[뭐예요!신발은 왜 벗고 들어가요!]

도해는 심한이 한심하다는듯 소리를 쳤다.

그때였다.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수영장안으로 우진이 그대로 뛰어들고 있었다.

[우진씨!!]

도해가 놀란 얼굴로 하라가 물속으로 사라진 쪽으로 헤엄쳐 가는 우진

을 쳐다보았다.

우진은 하라가 사라진 쪽으로 헤엄쳐 가서는 크게 심호흡을 한다음

물속안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이렇게 끝나는거야?

이 오 하라의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거야?

아빠.......

우리 불쌍한 아빠.

우리 아빠는 어떻하지?

아직 아빠에게 해 드려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많이 아픈 우리 아빠 나 때문에 더 아프시면 어쩌지?

그런데 이상하다.

왜 아빠의 얼굴대신 우진씨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르는거지?

왜 자꾸만 마지막으로 우진씨의 얼굴을 더 한번 봤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거지?


이제 더 이상 숨을 쉰다는 것은 하라에겐 힘든 일이였다.

폐가득히 차오른 물때문에 하라는 숨이 막히는듯한 고통과 함께

점점 의식이 멀어지고 있었다.

끝도 없이 수영장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자신을 느낄 뿐이였다.

하라가 마지막의 끈을 놓으려 팔을 아래로 떨어뜨리려 하자 누군가

강하게 하라의 팔을 잡아끌었다.

너무도 강렬한 이끌림에 온 힘을 모아 하라가 살며시 두 눈을 떴다.

어두운 물속이지만,흐릿하게 우진의 얼굴이 보였다.

그의 얼굴이 가까워지며 하라의 머리를 잡고 그녀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그의 입술이 하라의 입술에 와 닿았다.

그가 힘차게 자신이 들이마신 생명같은 산소를 하라의 입속에 힘껏

불어넣어 주었다.

약하지만,숨통을 트이는듯한 무언가가 우진의 입에서 자신의 입속으로

전해져 오고 있었다.

하지만,이미 많이 탈진해 버린 하라는 이내 고개를 뒤로 젖히며 그대로

축 늘어졌다.

우진은 하라의 허리를 붙잡고 있는 힘껏 물속에서 발길질을 하며 수면

위로 헤엄쳐 갔다.

마침내 하라와 우진이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도해가 비명을 지르며

두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하라야!]

심한이 소리치며 수영장안으로 뛰어 들어 우진에게 다가왔다.

[물을 너무 많이 먹었어요.빨리!]

우진이 숨이 찬듯 고함을 치며 하라를 안고 계속 헤엄쳐 갔다.

심한이 먼저 수영장 위로 올라가 우진을 도와 하라를 밖으로 끌어냈다.

축 늘어진 하라가 바닥에 눕혀졌다.

[세상에 어떻게 하라씨!!정신 차려요!]

도해가 하라옆에 무릎을 꿇으며 소리를 쳤다.

[모두 비켜요!]

우진이 소리치며 하라의 옆에 앉았다.

[하라씨,하라씨 정신 차려요!!]

우진이 하라의 뺨을 때리며 절망적으로 소리쳤지만,하라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우진은 급히 하라의 가슴에 자신의 귀를 갖다대었다.

[젠장!!숨을 쉬지 않아!!]

우진이 소리치며 하라의 가슴에 자신의 두손을 올려놓고는 힘차게

심폐 소생술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하라의 입을 열어 자신의 입을 갖다 댄 다음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제...제가 할게요!!]

우진의 인공호흡을 보다못한 심한이 나섰다.

[저리비켜!!]

갑작스런 우진의 고함에 놀란 심한이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놀라기는 도해도 마찬가지였다.

우진이 저렇게 까지 이성을 잃은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였다.


뭐야 우진씨.

하라씨 때문에 그렇기 까지 이성을 잃다니.

당신 어떻게 된거야.......


도해가 얼이 빠진 얼굴로 하라에게 인공호흡을 하는 우진을 내려다

보았다.

[제발.....숨을쉬어야 해!!젠장!!깨어나!!오하라!!]

우진이 고함을 치며 계속 하라의 가슴을 누르다가 인공호흡을 반복했다.

[빨리 119!!]

우진이 소리치자 심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리조트 관리소 쪽으로 달려갔다

[숨을 셔야해!!이대로 떠날 순 없어!!숨을 쉬어!!!]

우진이 소리치며 마지막인양 힘껏 하라의 입속에 산소를 불어넣어

주었다.

[쿨럭~쿨럭~]

우진이 입을 떼자 하라의 가슴이 들썩이며 얕은 기침을 했다.

[세상에 됐어!]

마침내 하라가 큰 기침을 하더니 입에서 수영장 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진은 재빨리 하라를 일으켜 그녀의 등뒤에서 허리를 잡아 안았다.

그리고는 힘껏 배를 눌러 그녀가 마저 폐속의 물을 뱉어낼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쿨럭쿨럭~]

하라가 폐속의 물을 다 토해내고는 기진맥진 한체로 우진의 품에

안겼다.

[정신이 좀 들어요?]

우진이 하라의 뺨을 손으로 두드리렸다.

하라가 희미하게 눈을 뜨고는 우진을 바라보았다.

[우진씨?]

[바보같이 왜 수영장에 뛰어드는거요!!수영도 못하면서!!]

[나 산거예요?]

[그래요 살았어요.]

우진이 조용히 미소지으며 하라의 말에 대답했다.

[우진씨.......]

하라가 울먹이더니 그를 끌어안았다.

[하라씨.......]

[당신인줄 알았어요.누군가 물 속에서 날 잡아끌었는데,나를 잡아준

그손의 주인공이 당신인줄 알았어요.......고마워요.]

하라가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렸다.

그런 하라를 우진이 말없이 끌어안아주었다.

[도대체......뭐야...당신 둘.......]

도해가 기막혀 하며 끌어안고 있는 자신의 애인과 하라를 쳐다보았다.

[119를 불렀어요!지금.......]

달려오던 심한이 걸음을 멈추고 끌어안고 있는 두 사람과 도해를

쳐다보았다.

[심한씨.......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줄수 있어요?

이런 상황이........도대체.]

도해가 심한을 뒤돌아 보며 그에게 물었다.

심한은 말없이 도해를 쳐다보았다.

#39
[일단 인공호흡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폐도 깨끗하고,하루정도

더 휴식을 취한다음 퇴원하셔도 될것같습니다.]

의사가 차트를 보며 우진과 심한에게 설명해 주었다.

의사가 나가자 하라는 미안한듯 병실에 있는 우진,심한,도해를 바라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요.많이들 놀라셨죠?]

하라의 말에 우진이 고개를 돌리며 병실 한 구석으로 걸어갔다.

[정말 몸은 괜찮니?어디 불편한데 있으면 당장 말해.]

[괜찮아.정말.그런데 도해씨 얼굴색이 안되보여요.]

하라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창백한 얼굴로 서 있는 도해를 쳐다보았다.

[나도 놀라서 그랬나봐요.좀 몸이 안좋.......]

도해가 갑자기 비틀거렸다.

[괜찮아?]

우진이 달려오며 도해를 부축하려 하자 도해가 갑자기 우진의 손을

냉정히 거절했다.

[괜찮아.잠시 어지러운것 뿐이야.]

[비 많이 맞아서 감기에 드신거 아니예요?]

심한이 도해에게 걱정스런 투로 물었다.

[그런가봐요.몸도 으실으실한게 좀 춥네요.]

[안되겠어요.의사한테 진찰좀 받으시죠.]

[미안하지만,심한씨가 좀 데려다 줄래요?]

도해가 심한에게 도움을 청하듯 그를 쳐다보았다.

심한은 하라를 한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심한은 도해가 우진과 함께 하고픈 생각이 당장은 없을것이라 생각했다.

하긴 하라와 우진이 그렇게 다정한 연인처럼 껴안고 있는 걸 보았으니

자신의 애인이 다른 사람과 있는걸 보고 아무렇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심한은 도해를 부축하며 하라의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나가자 하라와 우진 둘만 병실에 남게 되었다.

심한과 도해가 나간 병실문을 보며 하라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해요.저때문에 도해씨가 맘이 많이 상한것 같네요.]

[이런걸 원한거 아니요? 그래서 그 소동을 벌인거고.]

불투명한 우진의 목소리에 하라의 길다란 눈썹이 한쪽으로 올라갔다.

[일부러 당신 관심을 끌려고 죽으려고 할만큼 전 어리석은 여자는

아니예요.좀 말이 심하군요.]

[미안하오.내 말이 좀 심했소.]

[도해씨와 당신 사이를 떼어놓겠다고 생각은 했지만,이런식으로는

싫어요.마음이 착찹하네요.]

[왜 그 밤에 수영장에 갔는지 알려줄수 있소?]

[내가 수영장에 있을거라는걸 어떻게 알았죠?]

[심한씨가 당신이 그곳에 갔을거라고 말했소.왜 수영장에 있었던 거요?]

[당신 시계를 찾으러 갔었어요.]

[뭐?]

[당신 시계요.도해씨한테 이야기 못들었어요? 그 시계 당신한테는

중요한 거라는거 도해씨한테 이야기 들었어요.수영장에 있을거라고

해서요.비가 올것 같은데 비가오면 혹시 빗물에 쓸려 수영장안으로

떨어질가봐.......]

[누가 당신한테 그까짓 시계를 주워다 달라고 했소!!!!

정말 당신 어떻게 된거 아니요?

그까짓 시계때문에 당신이 죽을 수 도 있었소!]

[화내지 말아요!!보트를 타고 갔었다구요.갑자기 비가 내려서

당황했는지 보트에서 중심을 잃었어요.]

[맙소사.당신이 만약 죽었다면 난 평생을 후회속에 살았을 거요!]

[죽지 않고 이렇게 당신이 살려주었잖아요!!]

하라가 웃으며 우진의 말에 대답했다.

[그런일을 겪고도 웃음이 나오다니,정말 당신이란 여자는.......]

[이리와봐요.]

하라가 손짓하자 우진은 그녀에게 다가갔다.

[손 내밀어 봐요.]

[무슨 짓을 또 하려고 그러는거지?]

[얼른요!!]

우진이 하라에게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하라가 웃으며 그의 손바닥위에 시계를 올려놔 주었다.

[미안해요.물에 빠지는 바람에 시계가 물에 흠뻑 젖었어요.

고장난것 같은데 고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우진은 물끄러미 자신의 손바닥위에 놓인 아버지의 유품이자 자신의

보물과도 같은 시계를 내려다 보았다.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 지는게 무언가 가슴에서 울컥하는게 솟아오르는것

같았다.

[물에 빠뜨려서 화 났어요?]

아무말도 없는 우진을 보고 그가 화가 났을거라 생각한 하라가 조심스럽

게 그에게 물었다.

[다시는.......다시는.......나 때문에 그런 어리석은 짓 하지 말아요.]

우진은 주먹을 움켜쥐고는 병실 문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고.......고맙소.살아나줘서.......]

우진이 병실문을 열고 병실을 빠져나갔다.


나도 고마워요.

어둠속에서 나의 손을 잡아주어서.

우진씨 그거 알아요?

정말 세상은 한번 살아 볼만 하다는걸요.

고마워요.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해주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한마디 하지 않았다.

우진은 묵묵히 운전만 하고 있었고,도해 하라 심한은 각자 창밖만

내다볼뿐이였다.

하라의 집앞에 도착하자 하라는 심한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고맙습니다.피곤하실텐데 모두들 잘 돌아가세요.]

하라가 차에 남은 우진과 도해에게 인사를 건넸다.

[하라씨 몸조리 잘하세요.]

도해가 하라에게 인사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라가 창문 넘어로 우진을 바라보았다.

우진또한 하라를 보고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이내 포기를 하곤

고개만 끄덕이며 인사를 건네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멀어지는 차를 보며 하라가 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속시원하니?]

[뭐?]

하라가 심한을 뒤돌아 보았다.

[네 소원대로 이젠 도해씨까지 너와 우진씨의 관계를 눈치챘어.]

[이건 내 의도가 아니였어.정말 본의 아니였다구.]

[도해씨는 정말 정 우진씨한테 진심이였어.네 욕심때문에 한 여자의

사랑을 짓밟아 버린거야.]

[심한아,넌 이런 내가 혐오스럽니?]

[솔직히,예전에 내가 알던 오 하라가 아닌것 같아 씁쓸하다.

나중에 이야기 하자 .들어가.]

심한이 하라의 집의 초인종을 눌러주고는 걸음을 옮겼다.

[심한아!!]

하라가 돌아가는 심한을 불러세웠지만,그는 뒤돌아 보지 않았다.

[넌,넌 나를 미워해서는 안돼!!넌 내 친구니까.날 이해해줄순 없겠니?]

하라의 외침에 심한이 잠시 걸음을 멈추다가 다시 걸어나갔다.

[넌 내 친구니까.......친구끼리는 어떤것도 용서해 줄 수 있어야

하는거 아니니?넌 내 친구니까.......]




[우진씨 한가지만 물어볼께.]

한강 둔치에 세워둔 차안에서 도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리조트에서 하라씨와 우진씨 모습,나에게 설명해 줄 수 있어?]

[.......]

[말해줄 수 없을 만큼 내가 모르는 어떤게 있는거야?말해봐.

우진씨 나 자꾸 나쁜 생각이 들려고 그래.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일이 아니지?그런거지?]

[도해야.우리 서로 솔직해 지자.]

[뭘 솔직해지자는거야? 난 항상 우진씨 한테 솔직해왔어.

솔직하지 못한건 우진씨 아니야?]

[그래 맞어.나 일수도 있지.넌 나를 알아오면서 나에게 뭘 바라고

있는지 모르지만.......난 네게 바라는게 아무것도 없어.]

[무슨 뜻이야?]

[우리 이쯤에서 서로 헤어지자.]

[뭐?]

도해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널 만나오면서 싫었던건 아니야.하지만,만남을 더해갈수록

내게 많은 걸 바라는 널 보면서 언제부턴가 네가 부담스러워졌어]


[내가 우진씨 한테 결혼하자고 그러는 것 때문에 그래?]

[그런 이유도 있고.......암튼 네가 나한테 바라는 것보다 난 너한테

해 줄 수 있는게 없어.]

[결혼 이야기 안꺼내고 그냥 이렇게 연인처럼 지내자고 하면 그러자고

해도 나하고 헤어지고 싶어?]

[넌 날 무엇때문에 만나고 있는건데?사랑? 섹스?돈?]

[솔직하게 말할게.그래 처음에는 우진씨가 가진 배경과 우진씨의

그럴듯한 명함때문에 시작했어.하지만, 우진씨와 가까워 질 수록

그런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

우진씨 생각해봐,우리 정말 멋진 연인이였잖아.

우진씨 나랑 함께 자면서 내가 싫다거나 지겹다는 생각해본 적 있어?

아니잖아.그냥 우리 우진씨 이렇게 계속 지내자.

결혼하자고 조르지 않을게.우진씨 마음 잡을때까지 기다릴게.

그래 나 기다릴수 있어.]

[도해야!!이러지마.정말 이건 아니야.난 남자야 넌 여자구.

이런식으로 계속 가다간 흠이 되는건 여자인 너 밖에 없어.

나때문에 너의 인생에 흠을 남기고 싶지 않아.

나 아닌 다른 남자 만나서 새롭게 시작해.

아직 늦지 않았어.]

따악~

도해의 손바닥이 매섭게 우진의 뺨에 날라들었다.

[나쁜자식!!오 하라때문이지!! 그년 때문에 이렇게 변한거지!!]

[말 조심해.아무 상관없는 여자 끌어들이지마.]

우진의 말투가 냉랭해지며 싸늘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내가 눈치도 없는 여자인 줄 알아?

싫어 절대 못 헤어져.

죽어도 당신 포기 안할거야!!]

도해가 차에서 내리며 문을 쾅소리 나게 닫아 버렸다.

멀어져 가는 도해를 백미러로 쳐다보며 우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여자란 복잡한 존재야.

#40
도해는 벌써 몇번째인지도 모를 만큼 술잔에 독한 양주를 따라부었다.

자꾸만 잊혀지지 않는 한 장면을 지우려 했지만,술에 취해가는 도중에도

그 장면만은 뚜렷하게 각인되어 갔다.

도해는 그 장면을 기억해내기 힘들다는듯 힘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 우진.......그래 너 잘났다.내가 널 사랑한줄 아나본데.

웃기지마.착각하지마.너 아니여도 이 도도해 남자들 줄 섰다.

나쁜 자식.지가 몬데 감히 나한테 헤어지자 마라야.

쳇.이 도도해가 .......자존심 다 버리고 그렇게 매달렸는데.......

니가 날 찼단 말이지.웃기지마.

절대 포기하지 않을거야.빼앗기지 않을거야.......]

도해는 그대로 테이블에 엎어져 스스르 잠이 들어버렸다.

[손님?]

웨이터가 와서 도해를 흔들었지만,도해는 도저히 정신을 차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벌써 며칠째 우진은 하라의 전화를 피하고 있었다.

직접 회사로 우진을 만나러 갈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리조트에서

있었던 일로 도해와 우진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졌다는걸 알기에

선뜻 하라는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처음부터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아니기에 하라는 다시 마음을

굳게 갖고 우진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몇번의 신호음이 가도 받을 기미를 보이지 않자,하라가 전화를 끊으려

플립을 닫으려 할때였다.

나즈막한 우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 하라예요.]

[............]

[여보세요?]

[듣고 있소.]

[오랜만이네요.목소리 잊어버리겠어요.]

하라는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요.]

[네?무슨 일이냐구요? 제가 언제 일이 있어서 우진씨 한테 전화

걸었었나요? 목소리 한번 듣고 싶어서 전화 했죠.왜 이렇게

통화 하기 힘든거죠?]

[다시는 전화하지 말아요.]

[뭐라구요?]

[다시는 전화하지도,찾아오지도 말아요.당신과 자꾸 만나봤자

당신,나,그리고 내 주위에 모든 사람들이 피곤하게 됐소.

당신 하나로 인해 내 인간 관계까지 망치고 싶진 않단 말이요.]


[도해씨 말하는건가요?]

[지금 회의 들어가야 하오.끊어요.]

하라는 갑자기 전화가 끊긴 자신의 핸드폰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가 달라졌어.

예전하고 또 달라.

하라는 왠지 불안해 졌다.

처음 그에게 다가설때 보다 왠지 그는 더 멀어진 느낌이였다.

힘들게 그의 마음에 조금은 다가서려 하는데 일이 이렇게 틀어져 버리니

하라는 큰 한숨만 나왔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아버지의 생몀이 다하기 전에 하라는 꼭 정우진과 결혼 해야만 했다.

그를 사랑하던 사랑하지 않던 상관없어.

난 그와 결혼만 하면 되는거야.......

그런데,오늘 이 남자의 냉대가 자꾸만 가슴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얼까.......

마음이 상한 하라는 핸드폰을 침대에 집어 던지고는 자신의 방안을

서성거렸다.

자신도 할만큼 했는데,자신에게 한치의 마음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

우진때문에 자신도 지쳐가는데,괜시리 그가 미워졌다.

아니 어떠한 오기 같은것이 생겨났다.

그를 차지 하고 싶다.

그가 나를 사랑하게 만들고 싶다.

앙큼한 여자로서의 사랑의 도발이 시작되고 있었다.

정 우진!!

나를 무시한 댓가를 치루게 해주겠어!!

하라는 침대로 쪼르르 달려가 자신의 핸드폰 플립을 열어 번호버튼을

꾹꾹 눌렀다.

[미경이니?나야!]



[뭐? 남자를 유혹하는 방법?]

[그래.넌 이론에는 빠삭하잖냐.나좀 도와줘라.]

[정우진씨와 관계있는 일이냐?]

[정말이지 심장이 돌로 만들어진 남자인지,아무리 내가 용을써도

나한테 넘어오지를 않는다.]

[기집애,진작에 이 언니한테 도움을 청할것이지.]

[도와줘~꼭 정 우진이 나한테 뻑 가게 만들고 말거야.]

[리조트에 여행간건 어땠어?]

[엉망이였지.]

[심한한테 이야기 들었다.]

[맞다!이 기집애 심한이한테 왜 여행간다는걸 알려준거얏!!]

하라가 금방이라도 미경이를 때릴기세로 덤벼들자 미경이 웃으며

그녀를 피해다녔다.

[넌 질투 작전도 모르냐?이 언니한테 고맙다고 하지 못할망정.]

[질투작전?]

[그래.생각을 해봐라.죽자살자 자신한테 매달린 여자가 다른 남자를

애인이라고 데리고 왔는데 쌀 한톨의 질투도 생기지 않는다면

그건 너한테 아예 관심이 없는거라구.]

미경의 말을 들은 하라는 곰곰히 여러가지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심한에 대해 괜히 툴툴 거리며 딴지를 걸던 우진의 모습이 생각나자

하라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더 좋은 작전이 있는거야?]

[작전 성공 시켜주면 나한테 뭐 해줄래?]

[좋아.성공시켜 주면 네가 갖고 싶어 하던 내 파티용 드레스 줄게.]

[정말?정말이지? 나중에 딴 소리 하기 없다!!]

[알았어.기집애야.]

[좋았어!!오 하라의 정 우진 유혹작전 프로젝트!스타뚜~]


#41
~~~~띠리리~~~~~

[여보세요?]

[하라니?]

[누구세요?]

[누구이긴........아줌마 몰라? 우진이 새엄마]

[어머~새어머니~]

나 미녀 여사의 전화에 하라의 목소리가 갑자기 180도 코 맹맹이 목소리

버전으로 바뀌어버렸다.

[잘 있었니?]

[아야.살살해.]

하라의 머리를 고데기로 말던 미경이 그녀의 머리를 잡아당기자,하라의

입에선 비명이 튀어나왔다.

그녀의 비명에 수화기 너머로 나 미녀여사의 의아해하는 대답이 들려

왔다.

[아,아니예요.새어머니.어쩐일이세요?]

[호호호호,우리 우진이랑 요새 어떤가 해서 궁금해서 전화해봤지.

우리 아들 녀석을 내가 뭘 물어봐도 통 대답을 안해줘서.

우리 아들이랑 요새 어때?]

[새어머니~저 속상해 죽겠어요.]

[아니 왜? 우리 아들이 하라 속썩여?]

[원래 우진씨 그렇게 여자한테는 목석같은 남자예요?]

[왜?]

[아무리 제가 아양을 피고 재롱을 피워도 눈하나 깜짝 안하잖아요.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고 하는데,우진씨는 저한테 통 관심이

없으니......에휴.지금에서야 말이지만요 새어머니.

저도 좀 많이 힘들어요.]

하라의 하소연에 나미녀 여사가 깜짝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휴~내 자식이지만,정말 목석이라니까.하라가 그저 조금만 참고,

계속 내 아들좀 잘 봐줘.그래도 명세기 남자인데 하라같이 매력적인

여자가 계속 대쉬하는데 나 몰라라 하겠어?

나는 오직 하라 편이니까,알지?]

[정말이지 제가 새어머니 덕분에 우진씨 만날 용기가 솟는다니까요.

새어머니 고맙습니다.]

[별 말을.우리 아들 잘 부탁해.아참 오늘 우진이 생일인데]

[정말이요?]

하라는 하마터면 중요한 일정을 놓칠뻔 했다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었다.

[모르고 있었어요.죄송해요.]

[지금이라도 알면 됐지.우진이 성격이 자기 생일이라고 떠벌리고 다닐

놈도 아니고,오늘 오붓하게 둘이서 저녁식사나 하라고 알려주려고

전화 걸었어.]

[감사합니다.새어머니.]

[그럼 오늘 데이트 잘해~]

[네~]

하라가 핸드폰을 끊자 미경이 궁금하다는듯 하라에게 물었다.

[누구야?]

[우진씨 새어머니]

[어머 정말? 둘이 그렇게 친했니?]

[그 남자를 잡으려면 우선 든든한 후원자가 있어야지.]

[어쭈,한수 위 인데?]

[머리나 잘 말어~탄 냄새 난단 말이야!!]

[알았어!걱정마.오늘 아주 퀸카로 만들어 줄테니까!!]




하라는 우진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을 한시간 넘게 계속

돌아다녔다.

미경이 그녀에게 억지로 신겨준 하이힐이 때문에 자꾸 걸음걸이가

이상해 지는게 너무 불편했다.

[하이힐은 남자에게 성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몇번이고 이 망할 하이힐을 벗어 던져버리고 편한 운동화나 찍찍 끌고

다니고 싶었지만,미경의 충고 때문에 억지로 하이힐을 신고 다녔다.

백화점에는 마땅히 우진에게 줄 선물이 없었다.

흔하지 않은 우진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선물을 주고 싶었던 하라는

부어오르는 발을 무시한체 계속 백화점 안을 돌아다녔다.

그때 하라의 눈에 들어오는 작은 가게가 보였다.

매장안으로 들어가 하라는 전시용 테이블 위에 놓인 유리관 안의 작은

장미꽃을 살펴보았다.

[미니 장미예요.기르기도 쉽고 수명도 오래 간답니다.]

[신기해요.유리관안에서 자라는 장미라.......]

[이 장미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답니다.]

[특별한 의미요?]

[네,이 장미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해서 그 사람이 진심으로 선물

을 준 사람을 사랑한다면 이 장미가 잘 자란다고 해요.

하지만 사랑이 식어버리면 장미도 더 이상 자라지 않고 스스로 시들어

버린다고 하죠.]

[우와~대단한 선물이군요.]

[누구에게 선물하실건가요?]

[네.]

[그럼,한번 선물해 보세요.]

[이거 주세요.한개,아니 두개 주세요.]




하라는 나 미녀 여사가 건네준 우진의 아파트 열쇠를 들고 그의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그를 위해 깜짝 파티를 준비해 주고 싶었다.

하라는 서둘러 식탁위에 케잌과 샴페인을 장식했다.

시계를 보니 우진이 퇴근하기로 한 시간이 멀지 않았다.

하라는 풍선으로 장식을 해놓고 자신의 머리에 고깔 모자를 썼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하라는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낯선 여자의 모습에 하라의 얼굴이 저절로 찡그려졌다.

일명 섹시유혹작전로 일컫는 미경의 계획은 하라를 농염한 매력이

풍기는 여인으로 만들어 냈다.

하라의 긴 생머리는 구불구불 멋진 웨이브로 바뀌였고,하라의 도톰한

입술은 와인 빛깔의 립스틱을 칠해 단번에 하라의 얼굴 이미지를

섹시하게 만들어 주었다.

가슴이 큰 여자를 좋아 한다던 우진의 말을 기억해낸 하라 덕분에

가슴이 좀 과하게 파인 옷을 입었는데 하라의 뽀얀 젖가슴이 아슬아슬

하게 드러났다.

[너무 과한거 아니야?]

하라는 자꾸만 옷을 끌어 올려 가슴을 가리려 애썼다.

[젠장할 이런 옷 오늘 아니면 절대 상종도 안한다.]

하라는 투덜거리며 머리에 쓴 고깔 모자를 예쁘게 고쳐썼다.

[좋아!오 하라! 멋진 파티를 시작해보자구!!]


우진은 취한 모습으로 자신을 찾아온 도해를 억지로 뿌리칠수는 없었다.

그의 생일을 축하 한답시고,샴페인 한병을 들고 비틀거리며 그의

아파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도해를 부축해서 자신의 아파트로 올라

가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우진씨,생일 축하해.]

[많이 취했어.집에 잠깐 들어가서 술좀 깬다음 돌아가.]

우진은 무뚝뚝하게 말하고는 자신의 아파트 층수에 내렸다.

[우진씨,그거 알아?사랑에는 늘 보이지 않는 경쟁자가 있는법이래.

자신과의 싸움.사랑하는 사람과의 싸움.그리고 또 그 사랑을

쟁취하려는 또 다른 이와의 싸움.

그래서 사랑은 늘 전쟁중이라는 말이 나오는가봐.......후.......]

도해의 입에서 독한 양주 술냄새가 풍겨져 나오자 우진의 인상이

저절로 구겨졌다.

우진은 거의 쓰러질듯하는 도해를 간신히 부축하고는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아파트문을 열었다.

어두운 집안으로 들어서자 마자 우진은 도해를 거실의 소파에 앉히고는

차가운 물을 도해에게 주기 위해 불도 켜지 않은체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때 였다.

탕 하는 폭죽 터지는듯한 소리와 함께 온 집안의 불이 번쩍하고 켜지

더니 고깔 모자를 쓴 하라의 모습이 나타났다.


[우진씨!생일 축하해요!!짜자잔~놀랬죠?]

하라가 즐거운듯 깔깔 거리며 우진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던 하라의 입에서 점점 노래소리가 잦아들었다.

처음엔 황당한 얼굴로 바라보던 우진의 표정이 굳어지는걸 느꼈기

때문이였다.

[내 아파트에는 어떻게 들어왔지?]

싸늘한 우진의 음색에 하라가 당황한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진씨 새어머니가 주셨어요.]

하라의 말에 우진은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화났어요? 미안해요.우진씨 깜짝 파티 해줄려고 우진씨 새어머니께

도움좀 받았어요.배고프죠?내가 케잌이랑 샴페인이랑.......]

[돌아가요.]

식탁으로 다가서던 하라의 발걸음이 멈추어 섰다.

[우진씨.......]

[난 누가 내 사생활 공간에 얼쩡거리는걸 제일 싫어하오.

특히나 내가 초대하지 않은 사람일 경우.

그리고 그 천박한 모습은 뭐요?]

우진이 화를 내며 평소와는 달라 보이는 하라를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에 하라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께로 손을 가져가

은근슬쩍 가슴 깊이 파여진 옷자락을 위로 끌어올렸다.

[천박하다구요? 무슨 말을그렇게 하죠? 당신 생일 파티 때문에 4시간

이나 이집에서 기다렸다구요.적어도 축하하러 와 준 사람한테

너무 한 말 아닌가요?]

[돌아가요.내 집에 당신이 있는게 불쾌하오.]

하라의 눈에서 불꽃이 튀어오르며 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그러죠.저도 저 싫다는 사람과 오래 있고 싶은 생각 없어요.]

[어머머? 이게 누구야? 오 하라씨 아니야?]

하라가 핸드백을 집어들며 나가려던 찰나 도해가 비틀거리며 우진과

하라가 있는 부엌으로 들어섰다.

하라가 놀란 눈으로 우진과 도해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안녕하세요.]

하라가 먼저 침착한 투로 도해에게 인사를 건넸다.

#42
[안녕하세요.]

하라가 인사를 건네자 도해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거 우연이라고 해야 하나? 우진씨 아파트에서 하라씨를 다 만나고?]

도해의 추궁하는듯한 시선에 우진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우진씨가 초대한 손님이 있는 줄 몰랐네요.알았다면 이곳에 오지도

않을텐데.......미안해요.]

하라는 치밀어오르는 욕지기를 참아내며 황급히 우진의 아파트를 빠져

나왔다.

하라가 우진의 아파트를 나가자 도해가 잼 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우진을

바라보았다.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닌게 아닌 모양이야? 나 말고 우진씨 아파트를

이렇게 자유롭게 다닐수 있는것 보면? 이래도 하라씨와 아무사이도

아니라고 발뺌할거야?]

[저 여자 멋대로 한것 뿐이지,나와 아무런 상관없어.]

우진이 냉장고에서 생수통을 꺼내 물컵에 물을 따라 도해에게 주었다.

[너도 술만 깨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



우진의 아파트 주차장을 가로질러 빠르게 걸어가는 하라의 손이 주먹을

꽉 쥔체 그녀의 손톱이 연약한 손바닥을 파고드는 지도 몰랐다.

하라는 신경질적으로 핸드백에서 티슈를 꺼낸다음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술을 마구 문질러 댔다.

천박하다구?

누구때문에 내가 이런 고생을 했는데.......

[으악~]

빠르게 걷던 하라가 발을 삐끗 하자 높은 하이힐의 굽이 부러져 버렸다.

[가지 가지 하는군.]

하라는 구두를 벗어 부러진 굽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마저 다른 구두짝 마저 벗어 재활용 수거함에 힘껏 화풀이

하듯 집어 던져버렸다.

하라의 머리위로 차가운 빗방울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젠장 차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왠 비야?]

소낙비처럼 비가 갑자기 쏟아져 내리자 하라는 다시 재활용 수거함에서

구두를 가져와선 발에 신었다.

택시를 잡기 위해 절뚝 거리며 뛰어가던 하라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선물.

우진에게 줄 선물을 전해주지 못했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어떤 오기같은 것이 생겼다.

그를 위해 발이 부르트도록 선물을 사려고 돌아다녔던것이 생각나면서

그에게 꼭 선물을 전해주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라는 비를 맞으며 핸드백에서 핸드폰을 꺼내 우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뒤 우진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오 하라예요.]

[늦었소.다음에 전화해요.]

우진이 전화를 끊으려는 기색이 느껴지자 하라가 다급히 외쳤다.

[선물을 주고 못 왔어요.내가 다시 올라가기는 뭐하니까 당신이 내려

와서 선물 받아가요.]

[됐소.받은걸로 치겠소.]

[내려와서 당장 가져가요.기다릴거예요.]

[기다려도 소용없소.안 내려 갈거요.잘가요.]

우진이 전화를 끊어버리자 하라는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였다.

하라는 우진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훤히 보이는 장소로 걸어가 그 자리에

우뚝 선 체 우진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비가 하라의 온 몸을 적셔도 그녀는 아랑곳 하지 않고 아파트 출입구

쪽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기다릴거야.기다릴거야.


하라는 속으로 수백번도 더 외치며 우진의 모습이 나타나길 바랬다.

솔직히 선물은 아무래도 좋았다.

한 아파트 안에 자신은 안되고 도해는 된다는 우진의 사고방식과

아직까지 그의 아파트에 남아있는 도해에 대한 질투심 분노감때문이였다

도해,그녀에게서 우진을 빼앗고 싶었다.


정 우진,나와 꼭 나와야 해.

나 당신 미워하기 싫어.

그러니까,어서 나와.


우진은 골아 떨어진 도해를 소파에 눕히고는 커피잔에 원두커피를

담은담은 베란다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올때까지 내리지 않던 비가 마구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마구 퍼붓는 빗방울들이 살짝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들이쳐서 베란다를

적시자 우진은 창문을 닫기 위해 베란다로 나갔다.

창문을 닫던 우진의 눈에 무언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진의 눈이 커지며 다시 아파트 주차장쪽을 내려다보았다.

하라였다.

하라가 동상처럼 서서 우진이 서 있는 베란다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고집불통 여자같으니라구!!]

우진이 얼른 거실에 걸려있는 벽시계를 쳐다보았다.

하라와 마지막으로 통화한지 한시간이나 지나간 시간이였다.

우진은 커피잔을 식탁에 올려놓고는 신발장에서 우산을 찾아 급히

그의 집을 빠져나갔다.

우진의 베란다를 쳐다보고 있던 하라가 아파트 현관쪽으로 고개를 돌리

자 우산을 쓰고 급히 뛰어나오는 우진이 보였다.

그의 모습을 보니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바보같이 안나오면 그냥 가면 돼지.왜 이러고 서 있는거요!!]

우진이 소리치며 하라에게 우산을 씌워주었다.

[이렇게 나왔잖아요.나왔으면 됐어요.]

하라가 추위 때문에 덜덜 떨며 이를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이거 받아요.]

하라가 비에 포장지가 흠뻑 젖어버린 선물을 우진에게 내밀었다.

우진이 마지못해 하라의 선물을 받아들었다.

[생일 축하해요.

나도 이런 꼴을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해 죽겠어요.

그래도 당신이 조금이라도 나를 봐주지 않을까 해서 꾸며본건데.......

당신 반응을 보니 대 실패인것 같더군요.

당신이 그랬잖아요.섹쉬하고 가슴이 풍만한 여자가 이상형이라구.

맞아요.나 바보같은 여자예요.

당신이 나 떼어놓으려고 허풍 떤건데 그래도 혹시나 해서 어울리지도

않는 이런 우스운 차림이라니.

암튼 늦었지만 생일 축하해요.

선물은 전해 주었으니까 난 돌아갈게요.]

[이 우산 쓰고 가요.]

우진이 하라에게 우산을 내밀었다.

[됐어요.이미 흠뻑 젖었는데 우산이 뭐가 필요하겠어요.안녕]

하라는 우진이 내민 우산을 마다하고 굽이 부러진 구두때문에 절뚝

거리며 걸어갔다.

우진의 눈에 아무렇게나 구두를 구겨신은 하라의 발 뒤꿈치에 더덕더덕

붙어있는 반창고 들이 들어왔다.

자신을 위해 하라는 몇시간 전부터 파티를 준비해 왔고,또 그를 위해

평소 그녀와 어울리지 않던 화장과 옷들로 멋지게 변신했다.

솔직히 오늘 하라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우진의 침실로 끌고 들어가고

싶을 만큼 섹쉬하고 멋졌다.

하지만,도해와의 껄끄러운 만남을 고의는 아니였지만,그렇게 만든 하라

에게 너무도 화가나서 그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게다가 이 빗속에 한시간 이상이나 세워놓다니........

만약 그가 하라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하라는 아마도 새벽까지라도

그 자리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 만큼 하라는 충분히 자존심이 센 여자였기 때문이였다.

하라가 택시를 불러 세워 타고 떠나는 모습을 본 우진이 자신의 손에

들린 하라의 선물을 쳐다보았다.

당장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를 쫓아가 사과를 해야 했다.

그녀의 호의에 대해 무례를 범한 자신의 용서를 빌어야 했다.

하지만,그의 집에 누워있는 도해가 있었다.

그녀를 버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젠장!!

왜 여자들때문에 내가 이렇게 골치 아파야 하는거지?

이 천하의 정우진이 여자때문에

절절매는 꼴이라니........

꼴 좋다.정 우진.

#43
동추는 앓아누운 자신의 딸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병원에 가보자고 졸라대는 그의 부탁을 거절한체 하라는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방에 쳐박혀 나오지도 않았다.

어젯밤 어디서 그렇게 비를 맞았는지 흠뻑 젖은체 힘없이 들어오는 하라

는 결국엔 몸살감기에 걸려 뜨거운 열과 함께 끙끙 앓는 모습으로 아침

에 그녀의 아버지에 의해 발견되었다.

[하라야,이것좀 먹어봐라,도우미 아줌마가 죽 끓여줬다.]

동추가 하라를 침대에서 일으켜주었다.

[아빠,오늘 출근 안하세요?]

[너 이거 다 먹는거 보고 갈게.]

[미안해요.아빠,아빠 앞에서 이런 모습 보여드리면 안되는데.......]

하라의 말에 동추의 마음이 짠해지는게 콧등이 시큰해 졌다.

[그러게 임마!넌 불효녀야 어디서 이 늙은 아버지 앞에서 앓아 눕냐!!

효도 하려면 어서 빨리 자리털고 일어나.]

동추의 호통이 자신을 걱정해주는 투정임을 잘 알고 있는 하라가 힘없이

웃으며 동추가 먹여주는 죽을 받아먹었다.

[아빠는 요새 건강 어떠세요?]

[내 건강? 아주 좋지........요새 나 미녀 여사랑 골프치러 다니는데

운동도 되는게 아주 좋다.]

[우진씨 새어머니 하구요?]

[어,그나저나 어제 우진군이랑 무슨 일 있었던 거냐?

어제 그의 생일이였담서?]

[무슨 일은요.......]

[우진군이랑 잘 되어가고 있는거야?]

[그럼요,아빠 너무 걱정마세요.착착 잘 되고 있으니까.

빨리 결혼해서 아빠한테 이뿐 외손주 까지 안겨드릴테니까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하라가 목이메어 울먹이며 동추를 쳐다보았다.

[이놈이 아프더니 철난 소리까지 하네? 이놈아 손주며느리까지 보고

죽을라니까 걱정말고 빨리 우진군이랑 결혼날짜나 잡아라.]

[아빠.......사랑해!]

하라가 자신의 아버지를 힘껏 끌어안았다.

[나 아빠없인 아무것도 못하는 철부지 인거 아시죠? 그러니까 오래오래

제 곁에 남아계셔야 해요.]

[그래,그래,]

동추가 자신의 딸의 등을 두드려 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진은 하라의 핸드폰이 꺼진체 그녀가 전화를 받지 않자 왠지 불안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는걸까?

우진은 자신의 앞에 놓인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어다가 다시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의 집에 직접 전화를 걸어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차마 용기가

나지 않는 일이였다.

우진이 어쩔까 생각하는동안 그의 책상의 인터폰이 울렸다.

[사장님,사장님 어머님께서 전화 주셨는데요.]

[연결시켜주세요.]

우진이 수화기를 들자마자 그의 새어머니의 질책이 쏟아져 나왔다.

[아들!!어제 하라를 집까지 데려다 준거 아니야?]

[무슨 말씀이세요?]

[지금 방금 하라 아버지하고 통화했는데 하라가 병이나서 침대에

누워서 꼼짝도 못한다더라.어제 비를 흠뻑 맞고 집에 들어왔다던데

너랑 같이 있었던것 아니니? ]

하라가 아프다는 말에 우진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많이 아픈가요?]

걱정스런 우진의 말에 조금은 나미녀 여사의 마음이 누그러지는듯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어제 같이 있었던것 아니야? 네 생일이라고 하길래 네 아파트 열쇠를

주었는데........]

[어제 일이 있어서 일찍 헤어졌어요.]

[그렇다고 여자 혼자 집을 보내는 경우가 어디있니? 내가 널 그렇게

매너 없는 남자로 키웠더냐!!!아들 실망이야.]

[그렇지 않아도 하라씨한테 전화를 걸려던 참이였어요.]

새어머니의 넋두리가 시작되려 하자 우진이 얼른 말을 가로채며 대답했다

[전화갖고 되는 일이 아니야.너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직접 병문안

가거라.]

[네? 그녀의 집에 직접요?]

[왜? 뭐가 이상하니? 자기 애인 병문안 간다는데 뭐가 이상해?]

[새어머니,그녀는 제 애인이 아니라구요.■..■]

[헛소리 그만하고 당장 하라 집에 병문안이나 가!!]

화통한 성격의 나미녀 여사는 그렇게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그녀가 아프다고?

많이 아퍼?


[이게 무슨 꼴이냐.]

하라의 병문안을 온 미경을 혀를 차며 환자처럼 누워있는 하라 곁에

의자를 갖다놓고 앉았다.

[완벽한 나의 프로젝트를 망쳐놓다니,오 하라!!실격이야!]

미경의 말에 하라가 피식웃음을 터트렸다.

[완벽한 프로젝트는 무신.......천박하다고 우진씨한테 타박이나 들었

구만.......다시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짓 안할란다.콜록!]

하라가 기침을 하며 추운듯 이불을 끌어올렸다.

[쯔쯔,오뉴월에는 개도 감기에 안걸린다더만,무슨 꼴이냐? 남자한테

채여서는.......]

[누가 채였다고 그래?]

하라가 발끈 하며 미경에게 소리쳤다.

[그럼 그게 채인거지 뭐냐? 그 여자는 그의 아파트에 남았다면서!!

넌 쫓겨나고.]

[도해씨는 엉망으로 취한 상태였다구.]

[야!취했다고 키스 못하고,더한짓도 못하는거 봤냐? 자고로 남녀가

한집안에 있다면.......]

[그만해!!너 병문안 온거 맞아!!사람 염장지르고 있어!!]

하라가 비명을 지르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썼다.

그렇지 않아도 우진과 도해의 생각때문에 하라는 밤새 머리속이 터질

지경이였다.

온갖 은밀한 상상들이 난무하면서 하라를 지겹도록 괴롭게 만들었었다.

[야! 나좀 봐봐!!]

미경이 거칠게 하라가 뒤집어 쓴 이불을 잡아 끌어내렸다.

[너 정우진씨 좋아하냐?]

[뭐?]

[내가 보기엔 정 우진씨에 대한 감정 단순한것 같지는 않은데?]

[무슨 뜻이야?]

[그의 이름만 떠올리면 넌 어떤데?]

[어떻냐니?[

[앵무새처럼 내 말만 따라하지 말고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봐.]

미경이 핀잔을 주며 하라의 대답을 기다렸다.

[글쎄.......안보이면 그 사람 소식이 궁금하고,막상 그 사람앞에

서면 왠지 그 사람한테 딴지걸고 싶고,그러고 보니까 우린 만날때

마다 티격태격 싸우기만 했지.한번도 진지하게 만나봤던적이 없었던

것 같다.성격이 맞지 않는걸까?]


[쯔쯔,아주 지독한 사랑에 빠지셨구만.]

[뭐?]

[어린애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애한테 좋아한다는 말 대신 괜히 장난

걸고 괴롭히고 그러잖아.너와 우진씨 꼴이 딱 그거잖냐.

안그래? 안보이면 보고 싶고,그가 다른 여자랑 있는건 참을 수가 없고,

그가 너만 바라보게 하고 싶고,이런게 다 사랑의 이율배반적인

현상 아니겠냐? 둘이 깨닫고 있지 못할 뿐이지,너나 정 우진씨

둘다 사랑에 빠진게 확실해.]

[정말이야? 정말 내가 그와 사랑에 빠진걸까?]

[맞어 백프로 확신해.]

[말도 안돼........]

[어 맞다니까!!]

[그래 내가 정 우진씨와 사랑에 빠졌다고 치자,하지만 그는 전혀

아닐껄? 그는 날 얼마나 싫어 한다구.]

[넌 관심없는 여자 남자친구 한테 질투심을 내뿜는게 아무런 감정없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냐!!]

[그건........]

[그도 어느만큼 너한테 마음이 있는게 분명해.

네 마음만 분명하면,그대로 그의 사랑을 쟁취해 버려!!

사랑은 쟁취다!!!쿠하하 넘 멋진말 아니냐?]

미경이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콧노래를 불렀다.


정말.......

내가 정 우진 그사람을 사랑하는 걸까?

그를 만날때 마다 빠르게 내 심장이 뛰는것 처럼,

그가 도해씨를 만나는게 죽기보다 싫은것 처럼,

그가 날 바라볼때 마다 짜릿한 전기같은 것이

온 몸을 통하는 것처럼,

그의 키스가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이 모든 것들이........

그를 사랑하기 때문인거야?

오 하라........

정말 그를 사랑하는거니?


#44
심한이 까페 안으로 들어서자 그를 향해 손을 흔드는 도해의 모습이

보였다.

도 도해라는 여자는 정말 어디서는 확 눈에 띄는 여자였다.

세련되고,지적인 면모까지 풍기는 것이 남자들의 호감을 끌만한

그런 여자였다.

하라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매력적인 여인이였다.

[어서오세요.심한씨.내가 연락을 해서 좀 당황하셨죠?]

[예,솔직히 좀 뜻밖이였습니다.]

심한이 도해의 앞에 앉으며 대답했다.

[커피?]

[아닙니다.쥬스 마시겠습니다.]

[쥬스 부탁해요.]

서빙을 온 종업원에게 주문을 하고는 도해는 커피잔을 들어 커피를

홀짝이며 어색한 자세로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심한을 쳐다보았다.

[내가 왜 심한씨를 만나자고 했는지.......전혀 짐작되는 바가 없으

신가요?]

[하라와 연관된 일입니까?]

[네 맞아요.]

도해가 소리나게 찻잔을 내려놓으며 심한을 쳐다보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전 성격이 빙빙 돌려서 말하는 성격이

못되거든요.]

[예,말씀하십시요.]

[하라씨가 내 애인과 사랑에 빠졌어요.하라씨의 애인이 된 입장으로서

어떻게 하실건지 궁금해요.]

[말씀을 이상하게 하시는군요.]

[이상하다뇨? 뭐가 잘못되었나요?]

[사랑에 빠진건 도해씨의 애인 정우진씨지.우리 하라는 정 우진씨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우습네요.심한씨.이 상황에 이르러서도 그렇게 하라씨를 감싸고 싶으

신건가요? 솔직히 우진씨를 따라다니는건 하라씨지.우진씨는 아니예요.

제가 우진씨한테 직접 확인한 바도 있구요.]

도해의 말에 심한의 입술이 일자로 굳어져 갔다.

[그래요.지금 이 상황에 누가 누구한테 빠졌는지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솔직히 우진씨는 아니라고는 하지만,그도 어느정도 하라씨를 무시

못할만큼 조금은 마음이 움직이고 있는건 사실이예요.

문제는 제가 우진씨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

그건 심한씨도 마찬가지 일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도 우리 하라를 정 우진씨한테 빼앗기고 싶은 마음 추호도 없습니다]

[좋아요,그럼 어느정도 우리 사이에 거래는 성립된것 같군요]

[거래라뇨?]

[서로의 애인 단속 잘하자는 거예요.

우리의 목적이 같은 이상,난 우진씨를 심한씨는 하라씨를 맡아

그들이 서로에게 빠져들지 못하도록 하자는 거지요.]

[좋습니다.백짓장도 맞들면 낳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의외로 심한씨 말 잘통하네요?좋아요.그럼]

도해가 심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심한이 도해가 내민 손을 꽉 쥐었다.

순간 도해는 강인한 남성의 힘이 심한의 손으로 부터 느껴지자

움찔하며 자신의 손을 얼른 빼내었다.

[그럼,우리 잘해보자구요.]



[어머 이게 누구세요!!]

미경이 깜짝 놀라며 하라의 집으로 들어서는 우진을 쳐다보았다.

미경의 호기심 어린 관심에 우진이 어색해 하며 거실로 들어섰다.

[하라씨가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어머~자상도 하셔라.]

미경이 낭만적인 표정을 지으며 우진의 손에 들린 과일 바구니를

얼른 받아들었다.

[하라 지금 2층 자기 방에 있거든요.올라가보세요!!]

미경이 과일 바구니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가자 우진을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2층에 올라가자 하라의 방 인듯한 방문하나가 보였다.

방문앞에서 서자 방문앞에 [외부인 출입 금지]라는 우스꽝스러운

팻말이 떡하니 달려 있었다.

하라다운 엉뚱함을 느낀 우진이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우진이 헛기침을 하며 하라의 방문을 노크했다.

하지만 그의 노크소리에도 방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우진이 살며시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안으로 들어서자 향기로운 레몬향의 냄새가 방에서 풍겨져 나왔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푹 뒤집어 쓴체 잠들어 있는 하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라씨?]

혹시나 해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우진이 다가섰지만,깊게 잠든듯

하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걸터 앉으며 우진을 하라를 내려다보았다.

땀에 흠뻑 얼굴이 젖은체 축축해진 머리카락이 하라의 뺨에 붙어있었다.

우진이 조심스럽게 뺨에 묻은 머리카락을 떼어주자 하라가 몸을 뒤척

이며 열에 달뜬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이마에 손을 갖다대자 불덩이처럼 뜨거운 열기가 그대로 우진의

손바닥에 느껴졌다.

생각보다 하라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우진은 이불을 젖히고 하라의 팔을 만져보았다.

그녀의 팔 또한 열때문에 불덩이 같았다.

우진은 더 이상 안되겠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하라를 흔들어 깨웠다.

[하라씨!!하라씨 잠깐 일어나봐요!]

하지만 그의 흔들어도 하라는 정신을 차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젠장!!]

우진이 이불을 완전히 젖히고는 하라를 안아올렸다.

[어머!무슨 일이예요?]

쟁반에 쥬스잔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오던 미경이 놀라 쟁반을 화장대

위에 내려놓고 소리쳤다.

[열이 너무 심해요.정신도 못차리고 있어요.병원에 가야할것 같아요.]

[어머나~망할 기집애 그렇게 병원에 가자고 이야기 해도 말 안듣더니만

어떻하죠?]

미경이 안절부절 못하며 우진을 쳐다보았다.

[운전 할줄 아십니까?]

[예!]

[그럼 제 양복 주머니에서 제 차 키를 꺼내서 차에 시동좀 걸어주세요]

미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라를 안고 있는 우진의 양복 상의 주머니

에서 자동차 키를 꺼내들고는 바삐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아........]

하라가 아픈듯 인상을 찡그리며 신음을 내뱉었다.

[하라씨 조금만 참아요.]

우진은 속삭이며 축 늘어진 하라를 안고 아래층으로 바삐 내려갔다.

우진은 하라를 안은체 자신의 자동차 뒷 자석에 올랐다.

그들이 오르자 미경은 백미러로 그들을 확인한후 차를 출발시켰다.

하라의 집과 가까운 병원에 도착하자 우진은 다시 하라를 안은체

병원 응급실로 뛰어들어갔다.

하라가 응급실 침대에 눕혀지자 의사들이 달려와 하라를 진찰하기 시작

했다.

우진이 초조한 표정으로 진찰을 받는 하라를 지켜보았다.

우진의 안절부절 못하는것을 지켜보는 미경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틀림없어.

그도 하라를 좋아하고 있는게 분명해.

좋아~정의의 이름을 걸고 이 큐피트 미경이가

저들의 사랑을 꼭 이뤄주겠어!!키둑키둑


#45

링겔을 한시간이나 맞고 나서야 하라는 희미하지만 정신을 차려가기

시작했다.

[하라야!!정신 드니?]

미경이 눈을 끔뻑이는 하라에게 달려와 소리쳤다.

[여기가 어디야.....]

[병원이야!!너 많이 아파서 정신도 못차리는거 우진씨가 데리고

병원에 왔다.]

뭐?

우진씨?

방금 미경이가 우진씨라고 했나?

[좀 괜찮소?]

미경의 뒤에서 약간은 초췌해 보이는 우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음....나는 음료수좀 사올게요.]

눈치빠른 미경이 하라와 우진을 병실에 남겨둔체 서둘러 병실을

빠져나갔다.

[어쩐일이세요?]

[당신이 아프다는 이야길 듣고 병문안을 갔었는데,

열이 심해서 정신을 못차리더군.그래서 내가 미경씨와 함게

병원으로 데리고 왔소.]

[그렇군요......]

편도선 때문인지 목이 부어 말하는 것 조차 하라는 힘들어 보였다.

목의 통증 때문에 하라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괜찮소? 의사 불러줄까?]

우진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의 반응이 잼 있다는 듯 하라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조금 목이 아플뿐이예요....그런데 바쁜 사람이 이렇게

병원에 있어도 되는건가요?이제 돌아가보셔도 괜찮아요.]

[오늘 일정은 모두 취소했소.]

무슨 할말이 있는듯 머뭇거리는 우진을 보며 하라가 물었다.

[무슨 할 말 있어요?]

[나때문에 이렇게 아픈거라는걸 다 알고 있소.미안하게 생각해요.]

[왜 당신 때문이라고 생각하죠?]

[그날 나때문에 당신이 몇시간동안 비를 맞고 서 있었기 때문이란거

다 알고 있소. 바보같이 그냥 돌아가지.....]

미안한듯 우진이 고개를 숙이고 하라의 눈과 제대로 자신의 눈을

맞추지 못했다.

[당신 선물을 고르려고,몇시간동안 헤메다가 산거예요.

그냥 돌아갈 수 없었어요.

그리고 ....솔직히 질투도 났구요.]

[질투?]

[도해씨 말이예요.도해씨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우진씨 아파트를

들락거리는데 우진씨 파티를 위해 아파트에 온 나는 우진씨가

막 몰아세우면서 내쫓았잖아요.]

[그건.....]

[오기가 났어요.도해씨와 단둘이 아파트 안에 있는것도 꼴보기

싫었구요.....]

하라가 목이 아파 마른침을 삼키며 몸을 뒤척였다.

[당신이 이런 고생까지 감수하며 날 차지 하려는 이유가 뭐요?

날 좋아하고 있다는 얼통당토 되지 않는 이야기는 집워치워요.]

[쿡쿡쿡...뭘 봐서 내가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거죠?]

넌 정우진씨를 사랑해....

순간 미경의 말이 하라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정말?

이 남자를?

하라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우진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이 처음으로 가슴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봐요...정우진씨...]

[난 당신이 날 그렇게 부르면 늘 불안하오.꼭 말썽꾸러기가 사고를

터트리기 전 씨익 웃는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정우진씨는 뭐가 그렇게 내가 마음에 안드는건데요?]

[또 시작이군.....]

[또 시작이 아니라요...정말 궁금해서 그래요.솔직히 나 아직 정우진씨

포기 할 마음이 없거든요.내가 해볼만큼은 다 해봤는데 그런데도

당신이 나한테 넘어오지를 않으니....아쉽지만 이번엔 당신 기준에

한번 나를 맞춰가볼까 생각중이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야한 옷을 입고 화장을 한체 내 앞에 나타났던거요?]

[아....당신 생일 날 말이예요?키둑키둑 사실 저도 어색해 죽는줄

알았어요. 큰 가슴을 좋아한다던데 억지로 가슴을 키울수도 없고

좀 드러나는 옷을 입으면 가슴이 커보일까,섹시한 여자를 좋아한다

길래 화장을 좀 야시시 하게 하면 섹시해 보일까....

나름대로 몇시간동안 고생해서 나온 작품이라구요.

그런데 당신한테 천박하다는 말이나 들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하라가 실망의 한숨을 쉬었다.

[그날은 솔직히 컨디션도 좋지 않았고,도해까지 술에 취해서 제몸하나

가누지 못하고 나를 귀찮게 하는데 좀 화가 난 상태였소.

그 상태에서 당신까지 내 아파트에 무단 침입한것을 보고는 앞뒤

가리지 않고 당신한테 상처를 주는 말을 했소.미안하게 생각해요.

지금와서 솔직히 이야기 하면 당신 기분이 좀 나아질려나?]

[무슨 이야기 인데요?]

[솔직히,그날 당신 엄청 섹시했소.다른 남자가 봐도 한번쯤 데쉬해

보고 싶을 만큼.]

[정말이요?그럼 나 성공한거 맞아요?아야...]

하라가 벌떡 몸을 일으키다 팔에 꽂힌 링거바늘을 건들여 팔에 통증을

느끼고 그대로 누워버렸다.

[하여튼 덜렁 대는건 알아줘야 해.괜찮소?]

우진이 하라의 팔에 꽂힌 링거를 살펴봐주었다.

[괜찮아요.그럼 당신의 기호는 알았으니 항상 섹시한 차림으로

당신 앞에 나타나야 겠군요.]

[그러지 말아요.그날 당신이 섹시한건 사실이였지만,

당신과는 어울리지 않아.

당신은 그냥 꾸미지 않아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는 여자이니

괜히 그 매력을 감추려 하지 말아요.]


헉...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지?

지금 내 앞에서 이렇게 부시시한 머리와 환자같이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는 이 여자의 모습이

매력있다고 생각하는거야?

정우진...

정신차려라....


그의 후회에도 이미 늦은듯 하라가 감격어린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진씨가 날 그렇게 생각해 주고 있는지 몰랐어요......

왠지 기운이 불끈 불끈 솟는걸요?]

젠장.

꺼져가는 불씨에 내가 석유통을 또 들이밀었구만.

다시 기가 살아 싱글벙글 하는 하라를 골치아프다는듯 우진이 자신의

머리를 감싸쥐었다.

[정 우진씨 내가 웃긴 이야기 하나 해줄까요?]

[..........]

[당신이 점점 좋아질려고 해요.

끔직이도 싫었던 점잖빼는 당신의 모습도 그럭저럭 봐줄만하구요.

당신이 죽어라 나한테 도망칠때마다 당신이 더욱 갖고 싶어져요.

그리고 무엇보다 더 좋은건요...바로 이거!!]

하라가 갑자기 팔을 뻗어 우진의 넥타이를 힘껏 잡아당겼다.

우진의 몸이 하라에게 이끌려 침대에 누워있는 하라의 몸위로 올라오게

되자 하라는 고개를 들어 쪽 소리 나게 우진의 입에 키스를 했다.

순식간에 하라와 키스가 끝이 나자 우진은 저도 모르게 아쉬움의

신음을 내뱉었다.

[당신과의 키스...하나는 끝내주게 좋거든요.

어때요? 우진씨도 그만 튕기고 나한테 넘어오지 그래요?]

빛나는 하라의 눈을 본 우진은 질끈 눈음 감고 중얼거리며 다시 하라의

입술위로 자신의 입술을 내렸다.

[좀더 생각해 봐야겠는걸........잠시만 더 생각해 봅시다...]

#46
[요즘 하라 분위기가 어때?]

나 미녀 여사는 차를 홀짝이며 동추에게 물었다.

[글쎄.통 말을 하지 않으니 말이야.]

[내가 보기엔 하라는 마음이 있는것 같은데 우리 아들이 걱정이란

말이야.그 자식도 아주 마음이 없는건 아닌데 아직 확실한 제 감정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것 같아.]

[우리가 좀 나서야 하는거 아니야?]

[그래야 할것 같지? 지들끼리 하도록 내버려 두자니 내가 좀이

쑤셔야 말이지...]

[하여튼 그 급한 성격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동추가 통쾌하게 껄껄 웃자 나미녀 여사도 웃음을 터트렸다.


우진은 저 멀리서 아이스크림을 들고 손을 흔들며 뛰어오는 하라를

지켜보았다.

주말이라 그런지 놀이공원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놀이공원에는 대학학교때 소풍 온 이후로 한번도 와보지 않았던 그는

이런 장소가 왠자 낯설기만 했다.

[자요!!]

하라가 우진에게 대뜸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겨우 데이트 한다고 벼르고 벼른 장소가 여기요?]

[여기가 어때서요?]

하라가 아이스크림을 혀로 핣으며 그에게 물었다.

[여긴 사람도 많고,그리고 어린애들이 노는곳인데.....]

[어머 주위를 둘러봐요.애들밖에 없나.놀이공원 이용객 80%는 거의

연인들일걸요?]

하라의 말대로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쌍쌍이 팔짱을 끼고 다니는 연인

들로 놀이공원 광장은 가득하였다.

[사랑하는 연인과 놀이공원도 가보고,극장도 가보고,광장에 앉아 지나

가는 사람들 구경하면서 아이스크림도 먹어보고.....

이런게 다 사는 재미 아니겠어요?]

[늙은이 같은 소리 하지 말고....빨리 데이트나 합시다.]

하라에게 병을 제공한 우진을 용서해주는 대신 하라는 1일 데이트를

우진에게 제안했었다.

그녀의 제안이 약간은 떨떠름 했지만,하루정도 그녀에게 할해를 못해

줄까 싶어서 흔쾌히 허락한것이다.

아침부터 하라는 우진의 팔을 잡고 놀이공원으로 그를 이끌고 왔다.

어린아이처럼 이것저것 놀이기구를 타며 즐거워 하는 하라를 보니

시큰둥했던 우진의 마음도 점점 풀리고 있었다.

[다음엔 어떤 기구를 타볼까요?]

[또!]

하라의 말에 우진이 경악하며 소리를 쳤다.

[또라뇨....겨우 5개 밖에 더 탔어요? 아직 타봐야 할 놀이기구가

얼마나 많다구요!!]

[5개 모두 360도 뱅뱅 돌면서 사람 허파를 다 뒤집어 놓는 놀이기구

이니까 그렇지~~~으악~~~]

우진은 진저리를 치면서도 하라의 손에 이끌려 번지점프하는 곳으로

걸어갔다.

막상 높은 곳에 올라오니 하라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꼭 이걸 해야겠소?]

[언젠가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거예요.]

[내말은 하려면 혼자 하지 왜 꼭 굳이 커플 번지를 뛰겠다는거요.]

[으흐흐흐...저 좋은곳에 저 혼자 갈수는 없죠.]

하라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우진의 허리를 꽉 붙잡았다.

[자 준비되셨습니까!!]

진행자의 구령에 맞추어 하라와 우진은 번지점프 난간으로 걸어갔다.

[5초를 센다음 힘껏 뛰어내립니다.뛰어 내리면서 서로의 연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면 힘껏 외치십시요.자 준비하시고!!]

[땅에서 무사히 만나요!!]

하라가 식은땀을 흘리는 우진에게 속삭이며 그의 허리에 깍지를 끼었다.

[5!4!3!2!1! 번지~]

진행자의 고함에 힘껏 하라와 우진은 점프를 해서 새처럼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정우진~~~~내꺼~~~~]

하라가 힘껏 외치며 우진과 함께 새처럼 날아오르는 자세를 취했다.

그들의 두 눈에 푸른 하늘만이 가득 차올랐다.

[새가 된것 같아요!!]

하라가 소리치며 좋아하자 우진도 긴장감은 없어지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진과 하라가 무사히 땅에 내려왔다.

[어때요? 정말 끝내주지 않아요?]

[사람들이 이 맛에 번지를 하는것 같소.]

우진도 흥분했는지 목소리를 높이며 하라의 말에 대꾸했다.

[우와~배고프지 않아요? 우리 맛있는거 먹으러 가요!!]

하라가 우진에게 다가와 자연스럽게 그의 팔에 팔짱을 끼었다.

우진은 굳이 하라의 팔을 풀어내려 하지 않았다.

번지 점프를 통해 왠지 하라와 동질감 같은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였다.

[으악~~~~~~~~]

번지점프를 하는곳을 떠나는 하라에게 낯잌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다...]

[왜?]

[아뇨.많이 들어본 목소리같아서요...착각했나봐요.]

하라는 우진의 팔을 이끌며 서둘러 걸어갔다.



[엉엉~어흑어흑....]

도해는 벤치에 앉아 통곡하는 심한을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보며

그에게 티슈를 건넸다.

도해가 건네 티슈를 받은 심한은 코를 풀며 계속 훌쩍였다.

[미안해요.많이 무서웠어요?]

[엉엉....저는 고소공포증이라서요...어흑....]

우진과 하라를 감시하기 위해 심한과 도해는 그들을 뒤따라 번지점프

까지 따라갔다가 졸지에 그들도 함께 번지점프를 하고 말았다.

번지점프를 하고 나서 심한은 많이 놀랐는지 남자답지 못하게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도해는 심한에게 왠지 동변상련의 정이 느껴지며 남자답지 못한 심한이

왠지 불쌍해 보였다.

도해는 심한의 곁에 앉아서 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어차피 오늘 그들을 놓쳤는데 우리도 식사나 하러 가죠.]

[미안해요.저때문에..어흑...]

[괜찮아요.동지들끼리 미안해 하지 말자구요.미안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니까.가죠!!동지!!]

도해가 심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심한은 마저 코를 풀고는 도해의 손을 잡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도해는 풀이죽은 심한을 위로 하며 그의 어깨에 손을 얹어주었다.

[걱정말아요.....그들은 언젠가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올테니까요....]

#47
하라를 태운 우진의 차가 그녀의 집앞에 멈추어섰다.

[오늘 즐거웠어요.]

[즐거웠다니 다행이군.나도 즐거웠소.]

[지갑좀 내놔봐요.]

[지갑?]

[응.]

[지갑은 왜....]

우진이 망설이며 그의 품에서 지갑을 꺼내보였다.

그러자 대뜸 하라가 그의 지갑을 뺏어 지갑을 열어보았다.

[뭐하는거요? 남의 지갑가지고.]

[애인 사진 있나 확인중이예요.없네요.]

[난 그런거 지갑에 넣고 안다녀요...]

[그럼 지금부터 넣고 다니세요.]

하라는 놀이공원서 우진과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을 가방에서 꺼냈다.

그리고는 우진의 지갑 사진첩에 끼워넣었다.

[그러지 말아요!!]

우진이 지갑을 뺏으려 하자 하라가 손을 뒤로 감추었다.

[지갑에서 사진 빼놓기만 해봐요!!당신 아파트로 당장 쫓아가서

깽판놓을꺼니까.]

하라의 협박에 우진이 한숨을 쉬며 지갑을 빼앗아 자신의 바지

주머니 안에 넣었다.

[잘가요.운전 조심하구요.오늘 정말 행복했어요.]

하라가 우진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차에서 내렸다.

차의 시동을 거는 우진에게 하라가 열심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백미러로 집에 들어가지 않고 계속 손을 흔드는 하라를 보며 우진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걸렸다.

알면 알수록 새롭고 재미있는 여자였다.

하라를 만나고 있으면,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마치 우진의 삶이 생동감

으로 가득차는것 같았다.

그는 차를 인도쪽으로 세우고는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열어보았다.

지갑을 열자 마자 환하게 웃고 있는 하라와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나타났다.

언제봐도 그녀는 웃는 모습이 참 예뻤다.

사진을 빼내려던 우진은 그대로 다시 사진을 집어 넣고는 지갑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그가 다시 차를 출발시키자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의 플립을 열자 느닷없이 핸드폰 액정에 하라의 얼굴이 떴다.

앙큼한 여자같으니라구.

언제 핸드폰에 손은 댄거야?

아마도 그가 식당에서 잠시 손을 씻느라 핸드폰을 두고 간 사이

하라가 자신의 모습을 그의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 저장해 놓은 모양

이였다.

정말 말릴수가 없군.

[여보세요?]

[어때요? 제 사진 잘 뜨나요?]

[이건 또 언제한거요?]

[우진씨 아까 식당에서 손 씻으러 간사이예요.그것도 지우지 말아요!!]

[데이트 한번 했다고 애인처럼 굴지 말아요.멀리 도망가 버릴거요.]

[도망가면 또 찾아내면 되요.]

[스토커가 따로 없군.]

[그럼 운전조심하고 잘 들어가요~바바이~]

하라가 수화기에 대고 입을 맞추는지 쪽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진은 웃으면서 핸드폰을 끊자 곧이어 전화가 또울렸다.

[방금 전화 끊었으면 됐지 뭐하고 또 전화요?]

[나야.우진씨.]

하라인줄 알았던 우진은 도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깜짝 놀랐다.

[어.....]

[하라씨랑 통화했던 거야?]

[.....아니야.]

[거짓말.하라씨와 계속 그렇게 만나고 다니는거야?]

[도해야.....피곤하다.그만 하자 우리.]

[그만하기는 뭘 그만하자는거야? 그만 못해.

나뿐만 아니라 심한씨도 가만있지 않을거야.]

심한?

소심한?

검은색 안경테의 안경을 쓴 심한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슨소리야?]

[심한씨도 하라씨를 되찾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거라고 했어.

늦기전에 모두 제자리로 돌려놔.

우진씨가 그렇게 해야해.

우진씨 누구보다도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잖아.

얼마든지 우진씨가 모두 원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

[나중에 이야기 하자,나 운전중이야.]

도해의 설교가 더 길어지기 전에 우진을 전화를 끊어버렸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구?

누가?

내가?

그런데 도해야 이상하다.

왜 그 오 하라 라는 여자앞에선 냉철한 이성적 사고는

아무 소용없어지는 걸까.....



하라는 도해를 만나기로 한 장소 안으로 들어갔다.

크게 심호흡을 한다음 도해의 모습을 찾기 위해 두리번 거렸다.

우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확인한 이상 하라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었다.

바로 우진의 연인 도 도해.

그녀에게 본의아니게 미안한 일을 저지르게 되었다.

그녀를 생각하면 안되는 일이였지만,이제는 아버지가 아닌 자신의

우진을 향한 감정때문이라도 도해에게 사과를 하고 우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밝혀야 했다.

[여기예요!!]

도해가 하라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하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목인사를 한다음 도해가 있는 테이블로 다가

갔다.'

[우리 우진씨 아파트에서 만남 이후로 처음이죠?]

[네...]

하라는 도해 앞의 의자에 앉았다.

[내가 왜 하라씨를 만나자고 했는지.하라씨 잘 알고 있을거라 생각해요.

하라씨는 똑똑한 사람이니까.]

[예.알고 있어요.그렇지 않아도 제가 먼저 만나뵙자고 할 참이였어요.]

[그래요?]

도해가 미소를 지으며 커피잔을 우아하게 들어올렸다.

[묻고 싶은게 있어요.우진씨 내 연인인걸 알면서도 계속 만나왔었나요?]

도해의 질문에 하라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라의 태도에 도해가 탁 소리나게 찻잔을 내려놓고는 하라를 노려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만나겠다는 생각이 있는건가요?]

[............네.]

[참 기가 막혀서.하라씨 보기보다 참 독한 여자네?]

도해가 드디어 인내심이 바닥이 났는지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짓이야?]

낮은 목소리에 하라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들 옆에 어느새 왔는지 우진이 서 있었다.

[내가 불렀어요.이런 일에는 삼자대면이 딱 아닌가요?우진씨 어서와.]

도해가 자신의 옆자리를 비켜주었으나 우진은 인상을 찌푸리며

건너 테이블에서 의자하나를 가지고 와서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하라씨가 왜 여기 있는거요?]

[내가 불렀어.]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

[확실하게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싶었어.

어떻게 해? 우진씨는 하라씨에 대해 말은 해주지 않고,

난 우진씨를 하라씨한테 빼앗기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이렇게 라도 서로 삼자대면을 해야 하지 않겠어?]

[너와 나 사이의 문제야 하라씨를 끼워놓지마.]

[무슨소리야? 하라씨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하는거야?]

[목소리 낮춰.]

도해의 언성에 주위 사람들이 힐끔 거리자 우진이 나즈막이 속삭였다.

[하라씨 말해봐요.우진씨 좋아해요?]

도해의 다그침에 하라가 고개를 들어 우진을 쳐다보았다.

그의 깊은 눈동자가 하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네.좋아해요.아니 사랑하는것 같아요.]

[그래서요?]

[도해씨한테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안? 그런건가? 사람 감정이라는거.....느닷없이 마음대로 사람

감정 갈갈이 찢어놓고 미안하다구? 그 말로 다 되는거야?]

[그만해.]

[못해.난 그만 못하겠어.하라씨 이야기 해봐요.하라씨 그런 여자였어요?

하라씨 마음에 든다고 마음대로 남의 남자 가로챌 만큼 그런 여자

였어요? 그래도 명세기 로맨스 작가라면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꾸며가면서 남의 사랑 이렇게 짓밟아도 되는거예요?]

[그만 하라니까!!하라씨 일어나요]

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라의 손을 잡아 끌었다.

[우진씨는 가만히 있어!!]

[너 잘들어 ....이런 네 모습 얼마나 추한지 알고 있어?]

우진의 말에 도해의 얼굴에 상처받은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죄송합니다.]

하라가 도해에게 사과했다.

[저도 처음부터 우진씨를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하지만,사랑이라는게 마음처럼 되는게 아니더라구요.

도해씨는 능력있고,아름답고 우진씨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새로운 사람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전 아니예요.

전 우진씨 아니면 안되는 이유가 있어요.

전 그가 필요합니다.꼭 그를 필요로 하고 있어요.

도해씨가 우진씨 놔주세요.부탁드립니다.]

하라의 말에 도해가 벌떡 일어나 냉수컵을 집어들어 하라의 얼굴에

물을 끼언젔다.

[무슨 짓이야 이게!!]

우진이 도해에게 소리치며 당황스런 얼굴로 하라를 쳐다보았다.

[절대 절대 우진씨 못 놔줘.하라씨 한테 우진씨 아니면 안될 이유가

있듯이....우진씨 나한테도 그런 존재예요.절대 포기못해요.

어디 마음대로 해봐요.나도 똑같이 해줄테니.]

도해는 핸드백을 낚워채고는 커피숍을 나가버렸다.

하라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쓸어올리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우진이 하라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그렇게 왜 이런 자리에 나와서 스스로 웃음거리를 만드는거요!!]

화가 난듯한 그의 고함에 하라가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말했잖아요.당신을 사랑한다구...그리고 당신이 아님 안될 이유가

있다구.....난 괜찮아요.이정도 반응은 예상하고 나왔으니까.]

하라가 밝게 웃으며 머리의 물을 짜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이 나올줄은 몰랐어요.바쁠텐데 회사로 들어가보세요.

저도 일이 있어서 어디좀 가봐야 해요.]

[정말 괜찮은거요?]

[이까짓 일로 의기소침해 있을 오 하라로 보여요?

걱정말아요.한강 다리 올라가서 죽네 사네 소동까진 안벌일테니까.]

씩씩하게 걸어나가는 하라를 보는 우진의 귓가에 하라의 말들이

되살아 났다.


그를 사랑해요...


사랑해요...


#48


[아니.왠 술을 이렇게 마신거야!!!]

술에 취해 집에 들어오자 마자 쓰러지는 우진을 안으며 나미녀 여사가

그에게서 풍겨나오는 지독한 술냄새에 코를 움켜쥐었다.

[새어머니...새어머니....]

[아니..무슨 일 있는거야?]

우진은 아무리 술을 마셔도 한번도 흐트러진 모습으로 나미녀 여사가

살고 있는 본가집에 찾아오는 일이 없었다.

그런 그가 왠일인지 자신의 몸도 주체못할 만큼 술에 취해 본가를

스스로 찾아오다니 나미녀 여사는 분명 아들에게 큰 일이 생겼을거라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야.....]

[새어머니.....]

[그래.......]

[사랑이란게 뭡니까?]

[뭐?]

[늘 새어머니를 쓸쓸히 놔두시는 걸 보고 전 쓸데없는 사랑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결혼도 하기 싫은거구요.]

[너 많이 취했구나...]

[새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하셨습니까?]

[그럼 사랑했지...]

[거짓말 마세요.아버지는 한번도 새어머니를 사랑한다는 말 하지

않으셨어요.늘 일때문에 새어머니를 혼자 쓸쓸히 내버려 두셨구요.]

[네 아버지가 날 사랑하지 않는것처럼 보였는지는 몰라도

아버지는 분명히 날 사랑하셨단다.

항상 눈빛으로 마음으로 날 사랑해 주셨지.]

[모르겠어요.어떤게 사랑인지.그 여자만 보면 미칠듯이 화만나는데,

또 보이지 않으면,왠지 가슴 한쪽이 허전한게.....이상하죠?]

[꼭 사랑이라고 단정지으려 하지 말고 그냥 마음 흘러가는대로

자연스럽게 이뤄지도록 지켜봐라.]

[자연스럽게요? 마음 흘러가는대로?]

[으음...]

[그러다 정말 사랑에 빠져버리면 어떻하죠?]

[아들......때론 사랑도 해볼만 하단다.그 사랑이 내가 주는것이건,

받는것이건,사랑을 할 수 있다는건 정말 축복받은 일이란다.]

[내 감정을 확실하게 알고 싶어요........확실하게 알기전까진....

서둘러서 시작하고 싶지 않아요.......새어머니....]

나미녀 여사는 자신의 품에서 잠든 우진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드디어...

너의 가슴에도 사랑이 자라기 시작하는구나....

너의 가슴에 씨앗을 심은 아가씨가....

바로 사랑스런 그 말괄량이 아가씨니?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숙취로 인해 괴로워하는 우진을 보며 회의중이던 정부장이 슬쩍

우진에게 물어왔다.

[아...괜찮습니다.회의 계속 진행하시죠.]

[요번 신상품의 광고 모델로 기존의 연애인이 아닌 평범한 아마추어

모델을 기용하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소비자에게 좀더 친근하게 다가서자는 휴먼 앤 퓨처의 모토가 반영

된 것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그럼 모델 채용은 어떤식으로 이루어 집니까?]

[지금 홍보부에서 길거리 캐스팅을 들어가고 있습니다.]

[아무튼 정부장님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장님.중요한 외부 전화가 왔습니다.]

회의실 문이 열리며 비서가 들어섰다.

[아..죄송합니다.]

우진은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일어서서 회의장을 나가자 정부장은 우진이 앉아있던 곳에 떨어져

있는 지갑을 발견했다.

정부장은 우진의 지갑을 주워올리다가 그의 지갑 사진첩에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을 발견했다.

우진과 함께 찍은 사진이였는데,여자의 미소가 밝은것이 사진을 더욱

환하게 빛내주고 있는것 같았다.

정부장의 예리한 시선이 계속 사진속의 여자의 모습에 멈추어 움직이질

않았다.

[죄송합니다.추진하시는 대로 하는걸로 알고 있겠습니다.열심히들

해주십시요.]

우진이 다시 회의장으로 들어서며 사람들에게 외쳤다.

하나둘 책상에서 사람들이 일어서서 분주히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저...사장님.]

정부장이 조심스럽게 우진에게 다가섰다.

[예?]

[본의아니게 떨어져 있는 사장님 지갑안에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정부장이 지갑을 우진에게 건네며 말을 꺼냈다.

[아.......아는...여동생일뿐입니다.]

우진은 당황하는 얼굴로 정부장에게 변명하듯 말을 내뱉었다.

[저...그 여자분...아니 여동생분이 참으로 미인이십니다.

그래서 그러는데.....]



[예? 모델이요?]

하라는 언성을 높이며 우진을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목소리좀 낮춰요.]

우진이 주위 시선을 의식한듯 고개를 숙이며 하라에게 핀잔을 주었다.

[나같은 떡판을 뭘 보고 모델을 시켜준다는거예요?]

[자학이 심한거 아니요?그리 나쁘지는 않은 얼굴이요.]

[지금,나 이쁘다고 칭찬하는건가요?]

[■..■; 하여튼 당신은 조금이라도 띄워주면 금방 공주병이 도진다니까]

[캬캬캬....공주병이라도 좋네요.내가 정말 텔레비젼에도 나오고

잡지에도 얼굴이 나오는 모델이 된다는 말이죠?]

[아직 시켜준다고 말하지 않았소.카메라 테스트 한번 받아 보는게

어떠냐는 것뿐이지.카메라 심사에서 떨어질수도 있소.]

[우진씨같은 사장님의 든든한 빽이 있는데...설마 떨어지겠어요?]

[정말 못말리는군....]

[호호..농담이예요.물론 우진씨 얼굴을 봐서 거절은 안되겠죠?]

[거기다가 난 끼워넣지 말아요.당신이 그 요상한 사진을 내 지갑속에

끼워넣지만 않았어도....]

[요상하다니요..어딜 봐서 요상하다는 거예요? 멋진 선남선녀 사진

일 뿐인데....]

하라는 자신의 앞에 있는 쥬스잔의 빨대를 입에 물고 입을 오물거리며

쥬스를 빨아들였다.

오물거리는 하라의 입술을 보던 우진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뭐예요?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죠?]

[내..내가 무슨..당신을 봤다는거요!]

[마치 무슨 먹이감을 덮치는 듯한 그런 표정인거 알아요?]

하라의 표현에 우진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제기랄...

지겹도록 지겨운 이 여자의 얼굴이...

왜 자꾸 이상하게 보이는거야....

욕구불만이 쌓인 풋내기 총각처럼...

내참...죽을 맛이로구만.

우진은 급히 커피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그러자 뜨거운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자 우진은 켁켁 거리며

자신의 목을 두손으로 감싸안았다.

[괜찮아요!!우진씨!!냉수 !냉수!]

하라가 당황하며 우진에게 냉수잔을 건네자 우진은 벌컥벌컥 시원한

물을 들이켰다.

[켁켁....]

[우진씨!!남자들이 터프한척 하려고 커피를 원샷한다는 우스개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는데...설마 우진씨도??]

[켁켁...지금 뜨거워 죽겠구만 염장 지르는거요!!]

[냉수 더 갖다 줘요?]

[켁..괜찮아요.]

우진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였다.

바보.

여자 앞에서 이렇게 사고력이 정지되버린 바보가 되보기는 처음이였다.

#49

[괜찮으세요?]

심한은 벌써 흥건히 취해 보이는 도해를 걱정스러운듯 쳐다보았다.

[왜요? 내가 취한것같이 보여요?]

도해가 심한의 눈앞에 술잔을 흔들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좀...많이 드신것 같은데..딸꾹.]

술이 약한 심한 역시 두잔의 양주에 취기가 올라 정신이 혼미해져

가는것만 같았다.

[어머...심한씨가 취한것 같은데?]

도해의 눈이 장난스럽게 빛났다.

[우리 정말 한심하죠? 서로 애인을 빼앗긴 주제에 이렇게...술이나

마시며 신세 한탄이나 하다니....정말 바보같아....]

도해가 다시 자신의 잔에 양주병을 기울였다.

[너...너무...마음아파 하지 마세요...]

심한의 위로에 강한 모습만 보여주던 도해의 눈에 금방 눈물이 차올랐다

[심한씨...나 너무 괴로워....괴로워서 죽을것 같아...

심한씨도 그래?]

[.........]

심한은 대답하지 않은체 자신의 앞에서 울고 있는 도해를 측은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딱 부러지고 강한 여성으로 봐 왔는데 자신의 앞에서 울고 있는 도해를

보니 왠지 더욱 그녀가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심한의 손이 바르르 떨고 있는 도해의 손에 얹어졌다.

[울지 마세요.....]

심한도 울먹이며 도해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심한씨..심한씨!!]

도해가 소리치며 심한의 손을 부여잡아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당겨

통곡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통곡에 심한은 안절부절 못하다 그도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두사람의 통곡 소리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들이 쏠렸다.

[으...으억......나쁜 정우진......]

[흑흑.....나쁜 지지배....]

심한과 도해는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며 더욱 우는 목소리를 높여가기

시작했다.



[으...머리야....]

도해가 극심한 두통을 느끼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입안에서 단내가 나는게 어지간히 어젯밤 술을 퍼 마셨나보다 생각했다.

도해는 자신의 몸을 덮고 있는 이불을 제치다 갑자기 서늘한 공기가

맨몸에 느껴지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있는 자신을 본 도해는 무슨일인가

싶어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녀가 있는 방은 결코 분홍색 벽지가 발라진 자신의 방이 아니였다.

분명 호텔인듯 싶었다.

[아...무슨 일이야?]

도해가 잠시 생각을 가다듬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는 순간 그녀의 옆에서

드르렁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해가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눈에 그녀의 옆에서 세상모르고

잠에 빠진 심한이 보였다.

[꺄악~~~~]

도해가 비명을 지르자 자고 있던 심한이 번쩍 눈을 뜨고는 침대에서

뛰어 내려갔다.

[무..무슨 일이야!!으...악!!!!!!!]

[꺄악~~~~~~~~~]

침대를 사이에 두고 서로의 알몸을 보며 심한과 도해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먼저 정신을 차리 도해가 침대위의 이불을 끌어당겨 자신의 알몸을

가렸다.

심한도 절절매며 자신의 알몸을 가릴것을 찾았지만 이미 도해에게

이불을 빼앗긴 터라 욕실로 보이는 곳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심한은 욕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잠그고는 온몸을 떨었다.

[어...어떻게 된거예요!!]

욕실밖에서 도해의 외침이 들렸다.

[모..모르겠어요...어젯밤...술을 마신것 까진 기억이 나는데....

왜 우리가 서로 홀라당 벗고 함께 있는거죠?]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 해요!! 심한씨가 나보단 덜 취했었잖아요!]

[아...정말 모르겠어요..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우선...우선 옷 부터 입어요!!]

심한은 빼꼼이 욕실문을 열어 손만 내밀어 도해가 건네주는 자신의

옷을 받아들고는 다시 문을 굳게 닫았다.



[정말...정말 말도 안돼......]

도해가 객실을 서성이며 자신의 손톱을 깨물었다.

심한은 소파에 앉은체 죄를 지은듯한 표정으로 한숨만 내쉴뿐이였다.

[정말 아무기억도 나지 않아요?]

도해의 질문에 심한이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설마...우리 둘이...무슨 일이 있었던건 아니죠.....]

[무슨일이요.....]

[지금 무슨 일인지 몰라서 묻는거예요? 남녀 둘이 홀딱 벗은체

침대에 누워있었다면 무슨 일이겠어요!!!]

도해가 소리치자 심한의 표정이 또다시 일그러지며 푹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좋아.....]

[만약...제가 책임져야 할 일을 저질렀다면...도해씨를 책임 지겠습

니다....]

심한의 말에 도해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심한씨...미쳤어요? 난 우진씨를 심한씨는 하라씨를 되찾아야 한다

구요....우리 일이 만약 그들에게 알려지면.....끝장이라구요.]

[전...정말 기억이....]

괴로워하는 심한을 보니 도해의 마음이 어느정도 누그러졌다.

도해는 머리를 쥐어뜯는 심한의 곁으로 가서 앉았다.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솔직히 다큰 성인끼리 정신 못차릴정도로

술까지 마셨는데.....있을수도 있는 일이예요....문제는 당신

애인과 내 애인이 서로 바람났다는 거고.우리가 그들의 애인이라는

사실이죠.]

[네....]

심한이 갑자기 어깨를 들썩이며 훌쩍이기 시작했다.

[심한씨 울어요?]

[죄...죄송해요...]

[이런..울지 말아요....]

도해가 심한을 위로하려는듯 그의 머리를 이끌어 자신의 품안에 안았다.

도해의 품에 기대어 심한은 더욱 코를 훌쩍이며 울었다.

심한을 품에 안은 도해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여자들은 남자를 안을때 모성애를 느낀다고 하더니 지금 자신의 기분이

그런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해는 심한의 등을 다독여주었다.

[이 호텔을 나가는 순간 우리 아무일도 없었다는듯 모두 잊자구요...]

심한이 도해의 품에서 떨어져 나와 안경을 벗고 자신의 눈물을

닦았다.

그때 도해의 핸드백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잠시만요....]

도해는 소파에서 일어나 핸드백의 전화를 꺼내들었다.

[네.도도해 입니다.네?휴먼앤 퓨처에서 모델 오디션을 본다구요?]

도해와 함께 일하고 있는 김기자의 전화였다.

도해는 가끔 휴먼 앤 퓨처의 사보지의 편집장 역활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휴먼 앤 퓨처사의 모든 소식은 도해에게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네...알았습니다.]

전화를 끊고 도해는 심한이 있는 객실로 나오다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눈물을 닦느라 안경을 벗고 있던 심한이 도해쪽을 쳐다보았다.

도해는 약간 흐트러져 있는 심한의 머리 스타일과 안경을 벗은

심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심한이 아닌것 같았다.

심한도 나름대로 꾸미고 변화를 한다면 괜찮은 남자가 될것 같았다.

문득 도해의 입가에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심한씨......괜찮은 건수가 하나 생겼는데..어때 해보겠어요?]

#50

카메라 테스트를 받기 위해 스튜디오에 온 하라는 혹여 우진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진 작가인듯한 남자가 하라에게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오하라씨 되시죠?]

[안녕하세요.]

[카메라 테스트를 담당한 백경민이라고 합니다.]

[예.....]

자신을 백경민이라고 밝힌 남자의 뒤로 광고 관계자인듯한 사람들이

몇몇 무리를 지어 서 있었다.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편하게 사진찍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네.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남자 모델은 언제오는거야?]

사진작가가 고함을 치자 스텦인듯한 남자가 대답했다.

[예.지금 분장 마치고 오는 길이랍니다.]

[오늘 함께 사진을 찍으실 분은 이미 선발이 된 남자모델입니다.

오하라씨와 마찮가지로 프로가 아니 아마추어 모델이시죠.

오늘 그분과 함께 카메라 테스트를 받으실 겁니다.]

[저...그런데.....정 우진 사장님은 안오셨나요?]

하라가 조심스럽게 묻자 작가가 알만하다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정사장님께서는 조금 늦으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네....]

나쁜 남자.

이렇게 떨리는데 나만 덜렁 이런곳에 던져놓고 코빼기도 안보인단

말이야?

하라는 긴장이 되는듯 입술을 깨물며 환한 조명이 비추는 무대 중앙

으로 걸어나갔다.

[남자모델 들어갑니다!!]

한 남자의 고함소리에 하라는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오는 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은 조명이 환했지만,다른 곳은 어두웠기 때문에

문으로 들어오는 모델의 모습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어서 오십시요.소심한씨.]

뭐?

소심한?

웃기네.

세상에 그런 유별난 이름을 가진 남자가 또 있단 말이야?

하라가 흥미를 느끼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의 말을 꺼냈다.

[잘부탁 드립니다....오하...라...어머!!]

인사말을 꺼내던 하라의 두 눈이 커지며 그녀의 입에서는 감탄의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그녀앞에 서서 빙그레 미소짓고 있는 남자는 분명 심한이였다.

하지만 하라가 알고 있는 심한의 모습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수가

없었다.

[안녕!하라야.....]

[너...너 정말 심한이 맞어?]

[그래 나야.좀 많이 이상해 졌지....]

심한이 쑥스러운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이상한 정도가 아니였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이대팔 가르마를 고수하던 그의 헤어스타일은 갈색으로 염색한 후에

최신 유행 스타일의 멋진 헤어로 변해 있었다.

그가 늘상 끼고 다니던 검은 색 테의 안경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콘텍트렌즈를 꼈는지 그의 멋진 눈매가 얼굴의 모습을 더욱 훤하게

만들어 주었다.

정말이지 하라는 심한을 십년 가까이 봐 왔지만,그가 이렇게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너 완전히 딴 사람 같어...정말 심한이 맞어? 네가 여기 왠일이야?]

[도해씨 소개로 모델 시험을 봤어...운좋게..합격했구.]

[뭐? 도해씨?]

하라는 순간 도도해가 무슨 생각으로 심한을 이렇게 변화 시켰는지

의심스러워졌다.

[너...이 광고가 우진씨 회사 광고라는거 알아?]

[응 알고 있어.]

[그러니까 도해씨가 널....]

[어머 하라씨 왔어요!]

느다없는 도해의 목소리에 하라와 심한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그들에게

다가오는 도해를 쳐다보았다.

[미안해요,.심한씨 내가 좀 늦었죠?]

어느새 둘 사이가 친해졌는지 서로 편한 웃음을 주고 봤는 도해와 심한

을 어이없다는듯 쳐다보았다.

[이..모든 일이.....]

하라가 말을 잇지 못하자 도해가 그녀에게 싱긋 미소를 보냈다.

[어때요? 심한씨....마치 딴 사람같죠?그동안 심한씨는 누에고치에

쌓여있던 애벌레에 불과했지만,이제 번데기를 벗고 화려하고 멋진

나비로 탄생했어요.]

[제가 카메라 테스트를 받는다는걸 알고 계셨나요?]

[물론이죠.제가 심한씨 임시 매니저 역활을 맏고 있거든요.

상대방 모델이 누가 될지...그정도는 파악하고 있죠.]

[자자 준비되셨으면 촬영시작하겠습니다!!]

[심한씨 열심히 해요.....하라씨도 열심히 해보세요.꼭 테스트에 통과

했으면 좋겠네요....]

도해는 심한의 어깨를 툭 쳐주고는 무대밖으로 나갔다.

[어떻게 된거야....]

하라가 목소리를 낮추며 심한에게 물었다.

[도해씨 말 그대로야.나에게도 이런 재주가 있다는걸 도해씨가

발견해준것 뿐이야.]

심각해 하는 하라와는 달리 심한은 아무렇지도 않은듯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자 찍습니다.남자모델은 여자모델에게 가까이 다가서주세요.]

드디어 카메라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끊임없이 눌러지는 카메라 렌즈 앞에 하라는 심한이 이끄는 대로 어색

한 포즈를 지었다.

[하라씨 너무 얼었어요.좀 웃어보세요.]

작가의 주문에 하라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아주~좋아요!!]

작가의 요구에 따라 포즈를 취하던 하라는 문득 심한의 손이 자신의

허리를 휘감고 있는걸 느낄 수 있었다.

하라는 갑자기 확 달아오르는 열기에 멈칫 하며 심한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뭐야....

이 애가 이렇게 멋있었나?

처음으로 느껴지는 심한의 남성미에 하라는 당혹감이 스쳐갔다.

다시 카메라 쪽으로 시선을 돌리던 하라의 눈에 작가의 뒤에서 팔짱을

낀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우진의 모습이 들어왔다.

우진의 입가가 일자로 다물어진체 하라와 그녀의 허리에 둘러진 심한의

손을 노려보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작가의 말과 함께 테스트가 끝이났다.

[수고했어요,.]

우진이 하라와 심한에게 다가왔다.

[언제 왔어요?]

[한 삼십분쯤?]

우진은 심한을 유심히 살피며 하라의 대답에 건성으로 대답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심한이 먼저 나서며 우진에게 인사를 건넸다.

[우진씨 왔어?]

우진의 뒤로 도해가 나타났다.

후후 모두 모였군.

도해는 속으로 비웃으며 우진과 그의 곁에 서 있는 하라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된거지?]

우진은 마치 도해에게 심한이 왜 이자리에 있는지를 묻는것 같았다.

[보는 그대로야.우진씨 회사에서 아마추어 모델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심한씨가 도전한거고...그리고 합격....]

우진의 눈이 날카롭게 다시 한번 심한을 살펴보았다.

예전의 그가 아니였다.

수줍음에 말조차 더듬거리던 카이스트 범생이 소 심한이란 남자는

사라지고 우진의 신경을 거스릴 만큼 훨칠한 인물의 남자가 서 있었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갑자기 달라진 그의 모습이 아니라 바로

그 모습으로 하라의 허리에 팔을 두를수 있는만큼 대담해보이는 그의

눈빛이였다.

[하하 카메라가 아주 하라씨를 좋아하는군요!]

작가가 웃으며 어색해 지려는 4명의 주인공들 사이로 다가왔다.

[사장님.오 하라씨....이번 광고에는 제격인것 같습니다.다행히

남자주인공과 잘 어울리기도 하구요.어떻세요...오하라씨 한번

해보시겠습니까?]

[네? 제가 그럼 합격한건가요?]

[네.아주 대만족입니다.]

그럼....

내가 심한과 함께 광고를?
#51
우진을 따라 사무실로 따라가던 도해는 갑자기 돌아서는 우진과 정면

으로 부딪힐뻔 했다.

[왜 나는 소심한이 우리 회사 광고의 모델이 되어 있는게 계획적인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마음대로 생각해.]

[아직 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거야? 그래서 순진한 소 심한까지

이용하는 거라면....일찌감치 포기해.너와는 달리 소심한 그 남자는

계산적이지 못한 순진한 넘이니까.]

우진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빛났다.

[난 우진씨를 되찾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수 있어.

물론 이런 나의 모습이 우진씨에게는 집착같이 귀찮게 생각될수도

있다고 생각해.하지만 이 방법은 나만 우진씨를 되찾겠다는 것이

아니야.소심한 그 사람에게도 다시 하라씨를 돌려주는 일이기도 해.]

도해의 야무진 대답에 우진의 미간이 좁아졌다.

[하라씨는 물건이 아니야.스스로 행동하고 움직이는 사람이야.

너에게 하라씨를 심한에게 되돌려주고 말고 할 권리는 없어.]

[왠지 하라씨를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투로 들리는것 같아 불쾌한데?]

[내 마음또한 네 멋대로 읽고 해석할 권한또한 없어.]

우진은 다시 몸을 돌려 사무실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제 두 사람은 함께 광고를 찍을거야.심한씨의 달라진 모습에 하라씨

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어.난 봤어.심한씨 앞에서 달라진 하라씨의

눈빛을.....]

도해의 말이 바늘처럼 우진의 마음속을 콕콕 쑤시는것 같았다.

그도 심한의 달라진 모습에 놀랐는데 어찌 하라가 아무렇지 않겠는가.

그의 마음이 조급해 졌다.

일이 더 복잡해지기 전에 오하라...그여자와 끝장을 봐야 했다.




[성공이예요.하라씨나 우진씨 모두 심한씨를 보고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고 있어요...하긴 솔직히 저도 심한씨가 이렇게 까지 멋지게

변신 할 줄은 몰랐어요.]

도해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심한을 쳐다보았다.

도해의 미소에 심한의 얼굴에 약간의 홍조가 떠올랐다.

[다 모두 도해씨 덕분이예요.....저 같이 한심한 놈이.....]

[왜 심한씨가 한심해요? 사람은 외향만 보고 판단할수 없는거예요.

누구나 속으로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죠.그것을 누가 먼저 일찍

발견하고 스스로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외향이 결정되는

거예요.심한씨는 조금 늦었을뿐이예요.]

[도해씨.....]

심한이 일생에 처음으로 들어보는 멋진 말이였다.

그는 남몰래 도도해의 자신감 넘치는 용기를 사모해왔었다.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매사 당당해 보이는 도해의 태도는 심한의 소극적

인 태도에 적잖은 변화를 불러일으켜주기도 했다.

그런 존경심을 심한이 무너뜨리고 말았다.

남자로서 자신의 욕망하나 제대로 컨드롤 못하고 도해를 어이없이

안아버렸다는 사실에 밀려오는 수치심으로 견딜수가 없었다.

자신의 앞에서 웃고는 있지만 도해도 속으로는 자신을 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욱 자신이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과 같았다.

[저......도해씨.]

[네.]

[그날..일 말인데요....]

[심한씨 그러지 말아요.우리 잊기로 했잖아요.]

[하...하지만...전 남자고 도해씨는 여자예요.전 아무렇지 않게 생활

할수 있지만...여자인 도해씨에게는....]

도해는 문득 심한의 말에 우진이 생각났다.

자신에게 이별을 고하며 여자인 자신이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될까

걱정하던 우진이였다.

심한도 역시 그런것을 우려하며 이렇게 죄지은 사람처럼 도해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것이였다.

도해는 저도 모르게 입에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섹스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이런 현실에 이렇게 순정한번 가지고

죄지은듯 고개숙이는 남자가 심한 말고 또 어디 있을까......

[걱정하지 말아요.책임져 달라고 매달리지 않을테니까.

우린 서로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질줄 아는 성인이잖아요.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 하라씨와 우진씨 일만 걱정하자구요.....]

도해는 심한의 손등위로 자신의 손을 조심스럽게 얹었다.

순수하게 우정의 의미로 얹은 도해의 손길에 갑자기 심한은 심장한구석

에서 짜르르 하게 떨려오는 전기를 느낄수 있었다.

당황스런 그 느낌에 심한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해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꺼냈다.

하라와 손을 잡을때도 이런 느낌은 없었다.

편안하고 부드러운 하라와의 접촉과는 또다른 느낌이였다.

심한은 그 떨림의 실체를 찾으려는듯 자신을 향해 미소짓는 도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라는 자신의 정면에 있는 거울을 통해 힐끔 심한을 살펴보았다.

그도 역시 메이크업 중이였는데,세심한 메이크업으로 인해 심한의

얼굴을 더욱 딴 사람처럼 변화시켜 버렸다.

하라는 자꾸만 심한이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게 마음으로 괜시리

섭섭해지는 것만 같았다.

하라는 자신의 긴 생머리를 보기좋게 웨이브로 만들고 있는 미용사를

거울을 통해 쳐다보았다.

[많이 지루하시죠? 원래 카메라 앞에 서면 메이크업이 뜨거운 조명

때문에 땀으로 지워질 가능성이 많아서 더욱 공들여서 메이크업을

한답니다.]

[예.]

하라는 터져나오려는 하품을 억지로 참아냈다.

[다했니? 정말 이쁘다....]

벌써 메이크업을 마친 심한이 하라의 뒤에서 그녀의 외모를 칭찬했다.

[자 다 되었습니다.]

하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머리 모양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어머 하라씨 너무 이쁘군요.]

어느새 나타났는지 도해가 웃으며 심한과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하라는 도해를 보며 우진을 찾다 피식 웃어버렸다.

왜 그가 도해씨와 함께 올거라 생각했을까.

저도 모르게 도해와 우진을 연관지으면서 도해를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였다.

[오늘 광고 컨셉은 읽어보셨죠?]

[그런데 위험한 장면이 있던데 괜찮을까요?]

걱정스런 하라의 표정에 도해가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아요.스턴트맨도 있고,스텦들도 많기 때문에 큰 위험은 없을

거예요.]

#52
광고 촬영이 있는 장소는 허름한 큰 창고였다.

스텝의 말에 의하면 철강을 생산했었던 공장이였지만,이제는 문을 닫고

폐허가 되다시피한 공장이라고 했다.

하라는 왠지 으시시해 지는 기분으로 괴물같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커다란 창고 건물을 보았다.

드디어 촬영이 시작되고 하라와 심한은 창고안에 있는 커다란 쇠창살

감옥안으로 들어갔다.

찰영컨셉은 감옥안에 갇힌 두 주인공이 자신들의 컴퓨터에서 정보를

빼내려는 해커에 대항에 무선 리모컨만으로도 자신의 컴퓨터를 해커가

침입 못하도록 차단 시키는 프로그램을 진행 시킬수 있다는 것이였다.

[프로그램이 차단되는 장면과 동시에 건물 폭파신이 이어지기 때문에

신속한 움직임이 필요합니다.손발이 척척 맞아야 위험없이 무사히

촬영이 끝날 수 있을거예요.스턴트맨과 함께 빠져나갈거니까 너무

걱정들은 마시고 촬영에 임해주세요.]

감독의 설명과 함께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라는 심한과 함께 쇠창살이 무서워 보이는 감옥안으로 걸어가며

우진의 모습을 찾기 위해 두리번 거렸다.

그녀의 눈에 감독의 뒤에 서 있는 우진이 들어오자 입가에 미소가

퍼져갔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우진이 웃으며 엄지 손을 들어올리며 하라를

격려해 주었다.

하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불안한 마음을 잊은체 감옥안으로 들어갔다.

[자 그럼 감옥 문을 잠그겠습니다.]

하라와 심한이 감옥안으로 들어서자 철커덕 거리며 감옥문이 잠겼다.

드디어 감독의 싸인과 함께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긴장했던 하라와 심한은 언제 그랬냐는듯 카메라가 돌아가자 자연스럽게

연기를 시작했다.

우진은 감옥안에서 열심히 연기를 하고 있는 하라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생각보다 잘들 하는걸?]

어느새 곁에 다가왔는지 도해가 말을 꺼냈다.

[나름대로 끼가 있는것 같아.]

우진도 고개를 끄덕이며 도해의 말에 수긍했다.

[그런데 정말 안전한거야?]

우진은 옆에서 타오르는 횃불을 가지고 대기해 있는 스턴트맨을

고개짓으로 가리켰다.

[걱정마.일류 스턴트맨이라고 들었어.]

우진은 감옥 주위에 석유통에 있는 석유를 뿌리는 한 스텦을 쳐다보았다

[자!이제 공장 폭파신이 있을거니까 스텝여러분 모두 바싹 긴장하고

준비해 주세요.한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현장 진행자의 고함소리에 모두들 바싹 긴장한 얼굴로 준비자세를

갖추었다.

[레디...액션!]

감독의 큐 사인과 함께 스턴트맨이 석유가 뿌려진 곳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불길이 확 타오르며 심한과 하라의 감옥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하라가 달려드는 불길이 무서운듯 저절로 심한의 뒤로 몸이 숨겨졌다.

[불길이 너무 센거 아니야?]

하라가 귓속말로 심한에게 불안하게 속삭였다.

[괜찮아...걱정마...]

그들은 불길을 피해 아직 번지지 않은 쪽으로 몸을 옮겼다.

[컷!!좋았어!!스턴트맨 어서 주인공들 꺼내고!!]

감독이 다급하게 외치자 스턴트맨들이 감옥으로 달려갔다.

그 순간 펑하는 폭팔음이 창고안을 메우며 커다란 불길이 순식간에

천정으로 치솟았다.

[큰일났습니다!!폐기된 화학 연료통에 불이 붙었어요!!]

[젠장!!그러게 촬영전에 현장 점검 철저히 하라고 했잖아!!]

[꺄악!!]

널름거리는 불길이 스텝쪽으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모두들 빨리!!!!피해요!!빨리 감옥안의 주인공들!!]

겁을 먹은 스텝들이 우왕좌앙하기 시작했다.

[하라씨!!]

우진이 감옥쪽으로 달려가려 하자 감독이 우진의 팔을 잡아끌었다.

[걱정마시고 얼른 피하세요!스턴트맨들이 갔으니까 무사히 데리고

나올겁니다!!]

[그래 우진씨!!어서 빨리 나가자!!]

도해가 우진의 팔을 이끌고 창고 밖으로 향했다.

우진은 자꾸만 뒤돌아 보며 하라가 무사히 빠져나오는지 살펴보았지만

이미 불에 의해 시커먼 연기가 자욱한 상황에서 감옥은 잘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켁켁 거리며 창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어떻게해!!]

하라는 폭팔과 동시에 무엇인지 모를 파편이 날라와 심한의 팔에

상처를 남긴걸 보고는 비명을 질러댔다.

심한은 팔을 움켜쥐고 고통스러운듯 신음을 냈다.

[괜찮니? 괜찮아?콜록...]

매케한 연기때문에 호흡이 곤란했지만 하라는 심한이 더욱 걱정이

되었다.

[괘..괜찮아...그냥 스친것 뿐이야...]

심한은 피가 흐르는 팔을 하라가 보지 못하게 뒤로 숨겼다.

[괜찮으세요!!불이 번지고 있습니다..빨리 빠져나가야 해요.]

스턴트맨 한명이 뛰어와 감옥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심한이 다쳤어요...도와주세요..콜록...]

하라의 말에 스턴트맨이 놀란듯 심한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십니까?]

[예...괜찮...아악...]

심한이 걸음을 옮기다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팔뿐만 아니라 정강이에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다리도 다치셨군요.....]

스턴트맨이 심한의 다리의 상처를 보고는 그의 앞에 등을 돌리고 앉

았다.

[업히십시요..그 다리로 걷는건 무리입니다.]

[그래 어서 업혀....]

하라의 재촉에 심한이 절뚝 거리며 스턴트맨에게 업혔다.

그를 업은 스턴트맨이 앞서 감옥을 나가고 그들을 따라 나가던 하라는

또 한번의 폭팔음에 비명을 지르며 놀라 그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 순간 감옥 문이 닫히며 철커덕 소리와 함께 다시 잠기고 말았다.

하라가 다급히 뛰어가 쇠창살 문을 잡고 흔들었지만 감옥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스턴트맨과 심한은 검은 연기 속으로 사라져 버린 후였다.

[구해주세요!!!!여기요!!문이 잠겼어요!!]

하라가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콜록..콜록...]

숨이 가빠오며 눈이 매워서 견딜수가 없었다.



[심한씨!!괜찮아요!!]

스턴트맨의 등에서 내리는 심한을 보고는 도해가 놀란 눈으로 뛰어왔다.

[아...예...]

[세상에나 다쳤어요?]

도해가 피가 흐르는 심한의 팔과 다리를 쳐다보았다.

[그냥 좀 스친정도예요....]

심한이 고통에 헐떡이며 대답했다.

[하라씨는...하라씨는 어디 있소!]

우진이 성큼 성큼 걸어오며 심한에게 외쳤다.

[하라요? 같이 나오지 않았나요? 뒤에 따라오고 있었는데....]

두리번 거리던 심한의 얼굴에 갑자기 불안한 기색이 스쳐갔다.

[젠장!! 그럼 아직 안에 있다는 말이요!!]

우진이 고함을 지르며 불타오르는 창고를 쳐다보았다.

우진이 앞뒤안가리고 창고 쪽으로 뛰어가려 하자 도해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안돼!!우진씨..위험해!!빠져나와서 다른곳에 있을 수 도 있잖아!!]

[어디에도 하라씨는 없어!!안에 있는게 분명해!]

우진은 자신의 차로 달려가 트렁크에서 작은 소화기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도해의 만류에도 불길이 넘실대는 창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우진씨!!]

도해가 소리쳤지만,이미 불길은 우진을 삼켜버렸다.

[미쳤어.....]

도해가 멍한히 중얼거리며,이젠 무사히 그가 빠져나오기만을 기도했다.

[저 사람.......]

심한이 절뚝거리며 도해의 곁으로 다가왔다.

[저 사람....정말로 하라를 사랑하고 있어요.]

[뭐라구요?]

도해가 뒤돌아 보자 심한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 위험속에서도 난 살고 싶다고...내 생각밖에 하지 못했어요..

하라의 무서움이나 그녀의 안전따위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하지만.....우진씨는 위험이 있다는걸 알면서도.....본능적으로

그녀를 향해 움직이고 있어요......그의 본능...하라를 향한 본능...

그건 사랑이예요.....]

[심한씨....]

[그는 정말로 하라를 사랑하고 있어요....]

심한과 도해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한동안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53

[하라씨!!어디 있어요!!]

우진은 옷 소매로 코와 입을 막고는 어둑어둑한 창고안에서 하라를

목이 터져라 불러댔다.

[여기요!!]

하라의 목소리를 따라 우진은 간신히 감옥에 갇힌 하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감옥 문이 잠겼어요!!]

하라가 울상을 지으며 쇠창살 문을 손으로 잡고 흔들어댔지만,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비켜봐요!]

하라가 물러서자 우진은 문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밖에서는 쉽게 열리는 문이 어쩐일인지 열리지가 않았다.

[빨리 열어봐요..너무 뜨거워요...콜록....]

하라의 말에 우진은 있는 힘껏 문을 잡아 당겼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왜그래요...빨리 열어줘요.....]

[문이...문이...열리지 않아요...]

[뭐라구요?]

하라가 우진의 대답에 믿기지 않는다는듯 웃음을 터트렸다.

[우진씨 지금 장난할때 아니예요..빨리 열어줘요...]

[정말 열리지 않아요.....]

[시..싫어요..어서 열어줘요!!]

하라가 소리치며 문을 잡고 거칠게 흔들어댔다.

우진도 문을 잡고는 하라와 함께 문을 열려고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였다

우진은 소화기를 들어 문이 잠기는 부분을 힘껏 내리쳤다.

어느새 우진의 얼굴에는 비오듯 땀이 흐르고 있었다.

[우진씨..우진씨!!]

하라가 우진을 부르자 그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먼저...먼저 나가요...]

[그럴순 없소...]

[여기 있다간...당신까지 큰일나요...어서 불길이 더 번지기 전에...

먼저 나가요.....어서요....]

[싫어요.....당신을 꼭 데리고 나갈거요.]

우진은 다시 소화기로 자물쇠를 내리쳤다.

[정말 바보 같군요!!빨리 나가요!!누가 당신과 함께 죽고 싶다고

그랬어요!!어서 나가요!!빨리요!!]

[조용히해!!]

[바보! 멍청이! 왜 안나가는 거예요!!당신만이라도 살수 있잖아요!!]

[내가 왜 안나가는지 몰라서 물어!!당신을 사랑하니까!!혼자 둘수는

없으니까!!이 둔녀야!!그것도 몰라!!]

우진의 고함에 하라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우진씨.....]

[젠장...이런 상황에서 사랑고백이라니...정말 우스워....]

우진이 땀을 닦아내며 소화기를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집어 던졌다.

[우진씨...부탁이예요..먼저 나가요....]

[당신과 함께가 아니면 안나가....]

우진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 앉아 하라와 쇠창살을 사이로 마주보고

앉았다.

[바보같으니.....]

하라가 훌쩍이며 그를 노려보았다.

[얼굴이나 잘 봐둬요....죽은후에라도 잊지 않게...]

우진이 피식 웃으며 쇠창살을 부여잡고 있는 하라의 손위로 자신의

손을 가져갔다.

그녀의 손등을 감싸며 꼭 그녀의 손을 잡은 자신의 손에 힘을 주었다.

[여기서 살아서 나가면.....딴 소리 하기 없기예요...]

[무슨 딴소리?]

[나 사랑한다는 말이요...그거 정말이죠?]

하라의 말에 우진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줄거면 진작에 해주지...왜 그렇게 그동안 내 속을 애태웠어요?

치이....]

[그래도 죽기전에 이 말이라도 하고 죽으니까 후회는 없을것 같아...]

[죽기는 누가죽어?]

낯선 목소리에 하라와 우진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불은 꺼지고 그들의 뒤에 도해와 소방관들이 팔짱을 끼고

그들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헉..언제부터 거기 있던거야?]

[불꺼진줄도 모르고....둘이 열심히 신파극을 찍고 있더만.....]

우진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멋적은 얼굴로 웃음을 참고 있는

소방관들을 쳐다보았다.

[아직 유독 가스가 많이 남아있으니 빨리 빠져 나가죠.]

한 소방관이 하라가 갇힌 감옥으로 다가와 커다란 유압 스프레기로

쇠창살을 잘라서 문을 열었다.

감옥에서 탈출한 기분을 만끽하며 하라가 감옥에서 빠져 나왔다.

[괜찮소?]

우진이 하라의 몸을 살피며 물었다.

[괜찮아요...]

[어서 나갑시다!!]

사람들이 빠져나가자 하라는 우진에게 슬며시 자신의 손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녀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우진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맞잡고 깍지를 끼었다.

하라가 미소를 지으며 그와 함께 불이 붙은 잔해를 헤치고 바깥

세상속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딛었다.


병원에 가보자는 사람들의 권유도 거절한체 하라는 우진과 함께

호텔로 돌아왔다.

지방 촬영인데다가 많이 지친 하라가 당장 서울로 올라가지 못할거라는

우진의 세심한 배려 덕분이였다.

하라는 병원에 누워있는 심한이 마음에 걸렸지만,그나마 그의 곁에

남아 있겠다는 도해 덕분에 안심하고 돌아올수 있었다.

[샤워좀 해야겠어요...몸에서 아직도 매케한 냄새가 나요.]

하라가 킁킁 거리며 자신의 옷에서 냄새가 나는지 확인했다.

[샤워좀 하고 푹 쉬도록 해요.오늘은 정말 일이 많았소.]

그녀의 객실 앞까지 우진을 바래다 주며 말했다.

[고마워요....오늘 당신이 내 목숨을 구해주었어요.]

[쉬어요.좀 있다가 저녁 식사나 함께 합시다.]

하라는 자신의 객실로 들어와 옷을 훌렁 훌렁 벗은다음 욕실로 들어갔다

따뜻한 샤워 물줄기 아래 서 있자니 온몸의 근육들이 다 풀리는

느낌이였다.

하라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소리치던 우진의 말이 기억나자 혼자서

킥킥 대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가 날 사랑한다.....

그도 날 사랑해....

#54

호텔측에서 마련해둔 아로마 향을 뿌린 욕조에서 편안하게 목욕을 마친

하라가 욕실을 나오자 방안이 어둠컴컴했다.

[어..이상하다..분명히 불을 켜 놓고 들어갔는데...]

하라가 불을 다시 키려 전등 스위치로 다가갔다.

[불 키지 말아요.]

어둠속에서의 목소리에 놀란 하라가 고개를 돌리자 오색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촛불들이 보였다.

그뒤로 어느새 말끔히 샤워를 마친 우진이 있었다.

[우진씨!!]

하라는 멋진 샴페인 잔과 함께 촛불들이 꽃혀있는 케잌을 황홀한 시선

으로 쳐다보았다.

[어서 앉아요....]

우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라에게 의자를 빼주었다.

[어떻게 된거예요?]

[두번씩이나 죽을뻔 하다가 살아났는데 축하라도 해줘야 할것 같아서..]

우진의 말에 하라가 웃음을 터트렸다.

[두번씩이나 죽을뻔 했는데...두번씩이나 우진씨가 구해주었군요...

어떻하죠?이제 정말 우진씨가 내 인생 책임져야 하는건 아닌가요?

두번이나 살려냈으니...이제 내 목숨은 우진씨꺼나 다름없다구요.]

하라는 우진이 따라주는 샴페인을 잔을 들어 받았다.

둘은 멋지게 건배를 한다음 샴페인을 마셨다.

달콤한 액체들이 시원하게 목구멍을 타고 흘러 내려갔다.

[우진씨.....]

[음?]

[고마워요.....정말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거예요.]

[아직은 사랑에 대해 많이 서툴지도 몰라...그래도 차근 차근 하나씩

시작한다는 의미로 지켜봐주었으면 해.]

[그래요...하나씩...하나씩....]

하라가 천천히 샴페인 잔을 내려놓고 우진에게 다가갔다.

[하나씩...천천히...시작해요...]

하라가 조용히 속삭이며 우진의 강인한 턱을 쓰다듬었다.

하라의 손길에 우진이 몸을 떨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하라가 무언가를 갈구하듯 그를 유혹적으로 쳐다보자 우진의 입술이

천천히 그녀의 입술위로 내려왔다.

[그런데....왜...갑자기 반말이예요?]

[입다물어..이 아가씨야.]

우진의 바램대로 하라의 말은 그의 입술에 막혀 사라지고 말았다.

다만 달콤한 한숨만이 새어나올뿐이였다.

민감하게 하라의 입술의 윤곽을 따라 우진의 혀가 핥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애무에 하라가 입을 벌리자 그의 혀가 그녀의 입안으로 들어왔다.

하라가 팔을 들어 우진의 목에 두르자 그녀가 입고 있던 목욕가운의

앞섭이 벌어지며 그녀에게 풋풋한 사과향이 풍겨나와 우진의 머리를

어지럽게 하였다.

그의 커다란 손바닥이 하라의 머리 뒤통수를 떠받치며 그의 키스가

점점 깊어갔다.

하라는 천천히 그와 키스를 하며 그를 침대쪽으로 몰아갔다.

뒷걸음질을 치던 우진의 다리가 침대의 턱에 걸려 중심을 잃은 그가

하라를 껴안은체 침대위로 넘어졌다.

그가 넘어지자 하라가 낄낄 대면서 그의 몸위로 올라타 그의 티셔츠를

벗기기 시작했다.

그녀의 행동에 당황한듯 우진이 몸을 일으켰지만 하라는 손으로 그의

머리를 툭 밀어버리고는 티셔츠를 마저 벗겨냈다.

[아..잠깐만...너무 빠른거..아니야.지금 뭐하는거야!!]

우진의 항의에 하라가 입술을 달싹이며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키스로 인해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입술이 더욱 관능적으로 보였다.

[지금 내가 뭘 하려는지 몰라서 묻는거예요? 흔히 남자들 말로

난 지금 당신을 덮치려고 하는중이라구요....으흐흐흐....]

[그래도 로맨스 소설 작가인데 너무 무드 없는거 아니야?]

[로맨스를 바라나요? 좋아요...원하는 대로 해줄게요....]

하라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생긋 미소를 지었다.

[여주인공이 죽을뻔한 상황에서 남자주인공이 구하러 달려온다....

그리고....사랑을 고백한다....

목숨을 극적으로 구한 두 연인은 달콤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녀의 입술이 남자의 입술로 다가간다....]

하라가 그의 몸위에서 서서히 고개를 숙였다.

[남자의 숨소리가 거칠어 진다........그리고....몽롱한 눈으로...

여자의 달아오른 입술을 바라본다......그녀의 입술이 마침내...

그의 입술에 와 닿는다.....그리고...그의 손이 여자의 가슴에

와닿는다....]

하라가 그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가슴에 갖다대었다.

그가 떨고 있음이 그녀가 붙잡고 있는 그의 손목의 맥박에서 느껴졌다.

하라의 손이 바쁘게 우진의 바지 허리띠를 끄르고 있었다.

[여자의 유혹에 넘어간 남자가 갑자기 여자를 이끌어 낸다!]

우진이 하라의 말을 이어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꺄악!]

우진이 순식간에 몸을 뒤집어 하라의 몸위로 올라왔다.

하라의 몸위에서 우진이 숨을 헐떡이며 하라를 내려다보았다.

하라의 숨 역시 가빠지며 몽롱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흥분한 그의 남성이 몸으로 느껴지자 하라는 몸을 움찔 거렸다.

[당신의 소설 대사중 하나는 수정해야해.이럴땐 덮친다가 아니라

사랑을 나눈다고 하는거라구!젠장...이젠 더 이상 사정같은거 봐주지

않을테니 각오해!
]
우진이 거칠게 외치며 하라의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사정봐줄것 없어요.]

하라의 말에 우진이 웃으며 하라가 벗기다만 바지를 벗어 던졌다.

그리고는 하라의 하얀 목을 따라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세심하게 떨리는 그녀의 속눈썹이 보였다.

우진이 천천히 하라의 목욕 가운 앞 자락을 제치자 탐스러운 그녀의

가슴이 드러났다.

약간은 쑥스러운듯 하라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눈을 내리 깔았다.

[아름다워.....]

우진이 속삭이며 하라의 가슴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뜨거운 입술에 가슴에 와 닿자 하라가 몸을 비틀며 신음을

내뱉었다.

그녀의 신음에 우진은 더욱 흥분한듯 그의 손길이 빨라지며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목욕가운이 벗겨진체 하라는 알몸이 되어버렸다.

우진이 한동안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하듯 지긋이 바라보다 그녀의

하얀 목에서 쇄골뼈를 따라 뜨거운 키스를 이어갔다.

하라는 빙글거리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그의 머리를 감싸안았다.

늘 그녀의 소설속에서만 존재하던 이 모든 일들이 현실로 이뤄지고

있었다.

드디어 나도 나의 로맨스를 찾은거야......'

그의 손이 하라의 다리사이로 움직이자 하라는 본능적으로 두다리를

움츠렸다.

[괜찮아...긴장 풀어....]

우진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하라는 서서히 다리에 힘을 빼갔다.

그의 부드러운 손길이 그녀의 허벅지 안쪽을 쓰다듬자 하라는 전율에

정신을 잃을것만 같았다.

[우진씨..기분이 이상해요...어떻게좀 해봐요....]

[나도 미칠것 같아.....당신은 날 놀래키는 재주 하나는 있다니까....]

더 이상 주체할수 없는 욕망으로 우진이 자신의 마지막 남은 천을

벗으려 잠시 몸을 일으켰다.

그때였다.

시끄럽게 하라의 객실 초인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누구죠?]

하라가 헝클어진 머리를 쓰다듬으며 몸을 일으켰다.

[글쎄....]

[하라씨!!하라씨 있어요!!]

문밖에서 도해의 외침이 들려왔다.

[헉...도해씨예요!!]

하라의 말에 우진이 벌떡 침대위에서 일어났다.

[젠장!]

[꼭 이런때에 방해자는 있기 마련이죠....달콤한 사랑을 나누려던

연인 방해자에 의해 산통 다 깨지다....]

하라가 우울한 목소리로 아예 문을 주먹으로 두드리고 있는 도해가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 문이 열렸네?]

도해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 안잠궜어요?]

하라가 놀란 눈으로 우진을 쳐다보았다.

[모르겠어....]

우진도 당황한 얼굴로 하라가 벗겨버린 자신의 옷을 찾았다.

[들키겠어요.얼른 숨어요!!]

하라가 우진의 손을 잡고 그를 숨길 장소를 찾다 어떨결에 그를 베란다

쪽으로 내몰았다.

[윽..안돼!!여기는!!]

우진이 말을 잇기도 전에 그는 벌써 찬 바람이 쌩쌩부는 베란다로

내몰리고 말았다.

베란다 문을 닫은 하라는 급히 우진의 옷을 찾아 침대 밑으로 집어

던져 넣었다.

[어머..하라씨 있었군요...]

도해가 방으로 들어오며 하라에게 미소를 지었다.

[하하..도해씨..왠일이예요...]

[하라씨는 괜찮나 싶어서 와봤어요...]

도해가 힐끔 하라의 등 너머로 테이블에 놓여있는 샴페인잔 2개를

쳐다보았다.

[누구랑...같이 있어요?]

[아니예요..같이 있긴요...]

하라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며 얼른 잔 하나를 등뒤로 숨겼다.

도해는 의심스런 눈초리를 하라에게 보냈다.

[좀...피곤해서 자려던 참이였어요....]

흐트러진 침대를 의식한듯 하라는 속으로 진땀을 뺐다.

[그래요....좀 쉬어요...아참.혹 우진씨 여기 안왔나요?]

[아뇨!!]

갑자기 커진 하라의 대답에 도해가 깜짝 놀랐다.

[하하..그러니끼 제말은...호텔에 들어오고 나서....그러니까...

글쎄요...우진씨가 어디 갔나요?]

횡설수설 하는 하라를 보며 도해는 고개를 가로지었다.

[아무래도 하라씨 쉬는게 좋겠어요....]

[네....]

도해는 조금이라도 우진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두리번 거렸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분명히 우진이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그 방안에는 하라밖에 있지를

않았다.

도데체 어디로 빼돌린거야.....

도해는 고개를 갸웃 거리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녀의 귀에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아유...세상에 왠일이야...이런 일급 호텔에 그런자를 숙박하도록

하다니...별꼴이야...]

[뭔일인데요?]

[아글쎄..멀쩡하게 잘 생긴 남자가 팬티 바람으로 베란다에 나와있지

뭐유.....대낮부터...아이그..망측해라.....그렇게 사람이 많이

다니는 시간에 팬티 바람으로 베란다에 떡하니 나와있으니...

솔직히 변태 아니고는 누가 그러겠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도해가 피식 웃다 갑자기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혹시....

설마....




[젠장!!!오하라~~~~~~~~절대 용서하지 않을거야!!!!]

그 순간 하라의 객실에서는 절규에 찬 우진의 비명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55

도해는 심한의 누워있는 침대 옆에서 조용히 사과를

깍으며 심한의 눈치를 살폈다.

찰영장소에서의 사고 이후 심한은 큰 충격을 받은듯

말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심한씨 사과좀 먹어봐요.아주 맛있네요.]

도해는 일부러 명랑하게 말하며 심한에게 사과조각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심한은 고개만 가로저을뿐 조용히 눈을 감고 다시

침대에 몸을 뉘였다.

도해는 한숨을 쉬며 사과를 쟁반에 내려놓고는 심한이 덮고

있는 이불을 확제끼며 큰 소리를쳤다.

[정말 이러기예요!!세상이 끝난건 아니라구요!!]

도해의 말에 심한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이젠 정말 모두 끝이예요.]

[심한씨...아직 기회는 있어요...]

[아니예요...어쩌면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어쩌면...하라는 정말 정 우진씨를 사랑하는것이 틀림

없어요.....하라는 그 사람 곁에 있으면 반짝반짝 빛이 나거든요.]

심한의 말에 도해는 꾹 입을 다물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도해 역시 심한의 말에 어느정도 수긍해

가고 있는 중이였다.

[아니예요...아니예요...우진씨는 잠깐...스쳐가는 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뿐이라구요...]

[도해씨....우리 이제...그만해요..]

심한이 손을 내밀어 떨고 있는 도해의 손을 잡아주었다.

도해는 울음을 참으려는듯 입술을 바르르 떨고 있었다.

심한은 도해의 약한 모습을 보면서 가슴속에서 그녀를 향한

연민이 살아났다.

[난 인정하기 싫어요.......심한씨는 어떤지 몰라도.....정말

난 우진씨한테 진심이였다구요.....정말 진심이였는데....

그래요....우진씨를 정말 보내줘야 한다면.....하라씨한테는

절대 보내지 않을거예요.

하라씨는 나뿐만 아니라 심한씨까지 배신한거예요.

난 심한씨 처럼 그냥 물러나지는 않을거예요.]

도해가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해씨!!]

심한이 도해를 불렀지만, 도해는 그대로 심한의 병실을 뛰쳐나갔다.




하라는 행복감에 침대에 벌러덩 누워 히죽히죽 웃으며 우진의

얼굴을 떠올렸다.

드디어 그의 사랑을 쟁취해냈다는 만족감에 하라는 가슴이 절로

부풀어 오르는것 같았다.

그는 정말로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나를 사랑한다고 했어......

사랑....

하라는 자신이 단지 아버지를 위해 우진과 결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에게 접근 했던 것이 떠오르면서 왠지모를

죄책감 같은것이 느껴졌다.

하라는 만약 우진이 처음부터 하라가 아버지의 소원을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걸 알면 어떻게 나올까

생각해보았다.

그는 아마도 나에게 정머리가 떨어지고 말거야....

하라는 걱정스러운듯 코를 벌름 거리며 베게속에

얼굴을 파묻어 버렸다.

하지만...

이젠 정말로 그를 사랑하게 되버린걸.



[그럼 결혼은 언제 하는거야?]

미경이 행복에 젖어 있는 자신의 친구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글쎄....아직 우진씨가 청혼 하지도 않았는걸...]

하라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뭐? 사랑한다고 했다며...그럼 결혼 해야지.]

[이제 겨우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야....

당장 결혼하자고 달려들면 우진씨는 도망가버리고 말걸.]

[아버님 건강은 어떠신데?]

[ 모르겠어.....그렇게 크게 나빠보이시지는 않는데.....

일부러 내 앞에서는 건강한척 하시는 걸꺼야...]

아버지 생각에 하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사실...요즘 그리 행복하기만 한건 아니야...우진씨가

사랑한다고 고백한 그 순간 부터 양심의 가책에 시달려서

제대로 생각조차 못할 지경이야......]

[왜?]

[생각해봐....처음부터 내가 정말로 우진씨를 좋아해서

쫓아다닌건 아니잖아....그와 결혼하기를 마지막 소원

으로 여기시는 우리 아부지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에게

접근했었던 거야....

병때문에 마음까지 약해지신 상태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 소원이시라는데......

아빠가 쓸쓸히 내가 혼자 사는걸 보시게 하며 돌아가시게

하고 싶진 않았어....

만약 그가 이 사실을 알기라도 해봐...]

[만약 정말로 우진씨가 널 사랑한다면 그런 일쯤 이제와서

무슨 소용인데....과거야 어쨌건 지금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거 아니야?]

미경의 말도 하라의 복잡한 심정을 위로해 주지못하자 하라는

큰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머...하라씨...]

유리창에 도해의 모습이 비춰지자 하라는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해씨......]

설마...

우리가 한 말을 들은건 아니겠지?

하라는 도해의 미묘한 미소를 보며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 앉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잡지사 일로 인터뷰하러 왔다가 하라씨를 보고 왔어요.]

[그..그러세요...]

당황하는 하라의 모습을 보며 미경은 무슨 일이냐는듯 고개짓으로

물었다.

[우진씨와는 잘 되가세요?]

의미있어 보이는 도해의 질문에 하라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네.....]

[도해씨 뭐해?]

도해와 같이 온 사진기사가 멀리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먼저 가봐야 겠네요....하라씨? 우진씨와 함께 나중에

다시 봐요....]

도해는 굳어있는 하라에게 간단하게 목 인사를 하고는

유유히 까페를 빠져나갔다.

[뭐야...무슨 일이야? 저 여자 왜 널 잡아 먹을듯이

쳐다보는 거야?]

[휴우......저 여자....우진씨 애인이였어.]

[뭐? 세상에..........설마 우리 이야기 들은건 아니겠지?]

[몰라...모르겠어....]

하라는 그대로 테이블 위에 고개를 묻어 버렸다.


도해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는듯 몰던 차를

길가옆에 대놓고는 숨을 골랐다.

하라가 힘없이 고백하던 말들이 아직도 도해의 귓가에

아직도 머물러 있었다.

하라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도해에게 우진과 하라를 헤어지게

만들수 있는 승리의 열쇠를 쥐어준거나 다름없었다.

정우진....

당신......방황은 이제 끝이야...

당신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오게 될거야.


#56

술에 취한 하라는 비틀거리며 집안으로 몰래 들어갔다.

이미 도우미 아줌마와 아버지는 잠이 든듯 집안의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 하라는 불도 켜지 않은체

발소리를 죽여가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오니?]

오 회장의 방문이 열리며 동추가 거실로 나왔다.

[안주무셨어요?]

하라는 자신에게서 술냄새라도 날까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그냥....잠이 안오는구나...차나 한잔 할까 하고 일어났는데..

같이 할래?]

[제가 끓여 드릴게요.]

하라는 가방을 내려놓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동추는 하라가 곧 내온 솔잎차가 담긴 컵을 받아들고는

냄새를 음미했다.

[사실..이제 네가 시집을 간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설레여서

잠이 안왔어....어느새 네가 그렇게 컸나 싶기도 하고...]

[섭섭하세요?]

[섭섭하기는 속시원해 죽겠다...다행히 우진군이 내 사위가

될거라고 생각하니까 든든한 아들 하나 얻은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

[그렇게 우진씨가 좋으세요?]

하라는 콧등이 시큰해지는 것을 느끼며 흰머리가 희끗 희끗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럼..좋구 말구...그런 인재가 또 있겠니..인물 좋겠다....

무엇보다 너를 사랑해주고 있는것 같더라...]

[아빠.....]

하라는 기어이 눈물을 쏟으며 동추의 품에 안겼다.

[아빠...아빠...]

[얘가 왜 이래.....무슨 일있는거야?혹시 그 녀석이랑 싸웠냐?]

[아니요...싸우기는.....]

아빠....

돌아가시지 마세요...

날 혼자 두고 금방이라도 떠날것 처럼...그렇게...

날 바라보지 마세요...아빠....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마친 심한은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을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내일이면 이 답답한 병실을 퇴원할수 있다는 주치의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일 퇴원을 하게 되면 하라를 만나 진심으로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겠다고 심한은 결심했다.

그리고.....

또다른 상처받은 영혼인 도해가 그의 마음에 남아있었다.

그렇게 눈물을 보이며 병실을 뛰쳐나간 도해는 그 후로

심한에게 전화 한통 없었다.

자신도 외기러기 사랑때문에 아파했던지라 도해의 아픈 마음을

누구보다 자신이 잘 이해한다고 심한은 생각했다.

[똑똑~]

맑고 경쾌한 소리에 심한이 뒤돌아 보니 도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병실을 들어서고 있었다.

[도해씨....]

밝은 도해의 얼굴을 보니 심한의 마음이 한층 나아졌다.

[내일 퇴원한다고 들어오면서 의사선생님한테 들었어요?

컨디션은 어때요?]

[거뜬해요!]

심한이 알통을 보이는 흉내를 내며 웃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글쎄요...좋은 일이라고 해야 하나?]

[무슨 일인데요?]

도해가 의자를 끌어다가 심한의 침대곁에 놓고는 앉았다.

[심한씨.....하라씨의 아버님이 건강이 좋지 못하시다는거..

알고 있었어요?]

[예? 오회장님이요? 아니요...처음듣는 이야기 인데...]

[우연히 하라씨를 만나게 되었어요.....

거기서 엄청난 이야기를 들었죠....]

담담한 도해의 얼굴을 보며 심한은 왠지 불안해져갔다.

[어떤 이야기...이죠?]

[나는 우진씨를....심한씨는 하라씨를 되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예요...]

[난...무슨 말인지...]

자신에 찬 도해의 얼굴을 보며 심한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라씨 아버님....많이 아프시데요...돌아가시기전..마지막

소원이 바로 우진씨와 하라씨가 결혼하는걸 보시는 것이였죠.]


(미안해....그와 결혼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가 있어...

미안해 심한아..........)

눈물을 글썽이며 왜 우진이냐며 따져무는 그에게 대답하던

하라의 모습이 언뜻 스쳐지나가자 심한은 놀란 눈으로

도해를 바라보았다.

그럼...혹시..그때문에....

[하라씨는 아버님의 생전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우진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음 그를 유혹했어요...]

[도해씨...그건....]

[우진씨도 그 사실을 안다면.....그대로 하라씨와 결혼을

할까요? 글쎄요...제가 아는 우진씨는 거짓말을 가장 싫어

하는 사람이거든요.]

[도해씨.....그러지 말아요.]

[뭘요?]

[설마...우진씨한테 그 이야기를 할 생각은 아니겠죠?]

[하면 안되나요?]

[그들은 정말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있어요...

그들을 보면 모르겠어요?]

[사랑을 늘 변할수 있는 미지수를 가지고 있어요.

나와 심한씨에게서 그들이 변한것처럼....

다시 그들을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는것 뿐이예요.

심한씨는 나만 믿어요...]

[도해씨 그러지 말아요....정말 모르겠어요?

그들한테 집착할 수록 상처 받는건 도해씨 자신이라구요.

좀더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요.

도해씨는 당당하고 정말 멋진 여성이라구요!!

사랑때문에 변하지 말아요....]

[심한씨...정말 날 그렇게 생각해 주고 있는거예요?]

[난...난...도해씨의 당당함이 너무 좋았어요.

늘 마음을 숨기고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있는 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였죠.....도해씨의 자신감 있는 미소가

난 정말 좋아요....]

[심한씨.....]

잠시 도해의 눈동자에서 흔들림 같은 빛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결심을 굳게 한듯 그녀는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한씨...기다려요...당신에게 그녀를 되돌려 줄게요.]

[도해씨!!]

심한은 병실을 나서려는 그녀를 붙잡으려 했지만,이미 우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도해의 마음만은 붙잡지 못했다.

도데체.....

그들을 어쩌려는 거지...

심한은 다급히 전화기를 들어 하라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그녀의 전화는 전원이 꺼진 상태였다.

[제길...하라야 받아...]



우진은 자신의 책상 서랍을 열고는 낮에 사둔 커플링

반지함을 꺼내 보았다.

뚜껑을 열자 눈부신 에메랄드가 반짝 거렸다.

푸른 색으로 빛나는 에메랄드를 보는 순간 늘 싱그러운

하라의 모습이 떠올라 충동적으로 고른 반지였다.

오늘 그는 이 반지와 함께 하라에게 청혼을 할 계획이였다.

하라를 만나기 전까지는 우진은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구속적인 삶과 서로에 대한 책임에 자신이 없던 그였다.

하지만, 늘 그를 새롭게 해주는 하라와 함께라면 그의 인생을

걸고 시작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우진은 전화기를 들어 하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앗!!말하지 말아요....제가 맞춰볼게요...음...]

하라의 장난스런 목소리에 우진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당신은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계신가요:?]

[예...그런데요?]

[그럼 그 사람을 생각만해도 가슴이 두근 거리시나요?]

[어..글쎄요...]

[어허.....진지하게 대답하세요.]

하라의 능청에 우진은 속으로 웃으며 계속 그녀의

장난을 받아주었다.

[이 가슴이 말이죠...주책없이 그 사람만 보면 마구

뛰는게..어쩔때는 호흡 곤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어허...큰일이시군요...]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딱 한가지 방법이 있긴 하지만....]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 사람이 당신의 앞에 나타나거든 뜨거운 키스를

퍼부어 주십시요...그러면 깜쪽같이 그 심장병이

고쳐질것입니다...]

[엉터리....하하하하하]

드디어 우진이 웃음을 터트리자 수화기 너머에서도

하라의 경쾌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뭐하고 있었어요?]

[그냥....당신과 오늘 멋진 저녁 식사나 할까 생각하고

있었지?]

[으음...멋진 와인도 한잔?]

[으음....]

[그리고........뜨거운 키스도?]

[당근.]

[좋았어요...당장 달려갈게요...]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와]

[넵! 명령 받들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우진은 자신의 심장으로 손을 갖다 대었다.

오하라...

틀렸어.

내 심장은 아무렇지도 않은걸..

왜냐면...내 심장은 이미 당신이 가져갔으니까.

[사장님....]

인터컴을 통해 비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도 도해씨가 오셨습니다.]

도해가?

우진의 입술이 일자로 굳어져갔다.

[들여보내세요.]

[네.]

잠시뒤 문이 열리며 도해가 안으로 들어섰다.

[잘 있었어?]

[그래..왠일이야?]

[그렇게 날 보기 싫은거야?]

도해가 소파에 앉으며 우진을 쳐다보았다.

[차 한잔 부탁해요.]

우진이 인터컴으로 부탁을 한다음 도해의 앞에 앉았다.

[우진씨는 더 이상 내가 보고 싶진 않겠지만......

그래도 한때 내가 사랑했던 사람인데.....

버젖이 거짓 구렁텅이로 빠져드는걸 보고 있을수 만은 없어서...]

[무슨 말이야?]

[당신이 사랑하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야....

어때? 구미가 당기지 않아?]

#57

[안녕! 좋아보이는구나!]

[하라야....]

심한은 병실로 들어오는 하라를 보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웃는 얼굴 보니까 당장이라도 퇴원가능하겠는걸?]

하라가 심한의 어깨를 툭치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래 내일 퇴원해.]

[정말? 다행이다..늦기전에 잘 왔네...자 선물]

[뭐야?]

[너 좋아하는 망고]

[우와!정말? 그렇잖아도 병원밥에 슬슬 질려가던 참이였는데...]

심한이 망고가 든 봉지를 받아들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미안해...진작에 와 봤어야 하는데....너 침대에 누워서

오하라 오기만 해봐라...가만 두지 않을거야....하고

막 내욕했지?]

[어떻게 알았냐? ]

[치이.....어쩐지 귀가 근질근질 하더라...]

[하하...농담이야....]

심한은 예전의 따뜻한 우정의 시선으로 하라를 바라보았다.

함께 손을 잡고 소꿉 놀이를 했던 아이에서

단발 머리 대학생,사춘기 소녀 대학학생에서

이제는 사랑에 빠진 성숙한 여인이 된 그의 친구 하라가

앞에 있었다.

[심한아........]

[음?]

[우리.....아직 친구 인거 맞지?]

[임마....그럼 우리가 친구가 아닌적도 있었단 말이야?]

심한이 장난스럽게 하라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고마워....정말 고마워 심한아....]

[내가 미안해...그동안 말도 안되는 어거지를 부렸던 것 같아.

넌 소심한의 수호천사 친구 오하라로 남는게

나에게는 가장 눈부실때야....

요번 사고로 인해 정말 네가 우진씨를 사랑하고,

그 또한 너를 사랑하고 있구나 느낄수 있었어.

진심으로 너의 가장 친한 친구로서 축하해 줄수 있을것 같다.

이제는 말이야......]

[심한아........]

하라가 손을 내밀어 심한의 손을 덥석 잡았다.

[짜식...드디어 네가 철이 들었구나...]

하라의 말에 심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임마...이제야 철이 들었다.]

하라야....

이제는 너를 향해 항해를 했던 나의 사랑이란 배는

이제 항해를 멈추어야 겠지만......

항해를 하는 동안 함게 해왔던 잔잔한 추억이란 파도는

너와 함께 해왔던...그리고 앞으로 함께 가야 할...

세월동안 소중히 내 마음속에 간직해 둘게.

사랑한다.

연인이 아닌 친구로서....


우진이 있는 회사로 가는 동안 하라는 몇번이고 마음을

다잡아 먹어야 했다.

그에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천사와 그냥 묻어두라는

악마의 속삭임으로 하라의 머리는 점점 복잡해져만 갔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이상 더 이상의 비밀이나 거짓은

추호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 하라는 우진에게 하라가 처음

그에게 접근했던 이유를 설명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에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하라는 속으로 연습을 하고 또 연습을 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계세요?]

하라가 우진의 사무실로 들어서며 그의 비서에게 인사했다.

[네......아..잠깐..손님이...]

비서가 하라를 붙잡을세도 없이 하라는 문을 활짝 열고는

이미 우진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우진씨! 오늘 날씨가 참 좋..........]

안으로 들어서던 하라는 소파에 앉아있는 우진과 또다른

사람의 뒤통수를 보고는 얼른 입을 다물고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아..죄송합니다.손님이 계신줄 몰랐어요...]

하라가 허둥지둥 밖으로 다시 나가려 하자 소파에 앉아있던

우진의 손님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나갈필요 없어요. 하라씨...저도 막 지금 나가려던 참이였거든요.]

도해의 얼굴과 마주친 하라의 표정이 천천히 변해갔다.

하라는 얼른 우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무언가 심각한 일이 있었던듯 우진의 표정은 잔뜩 굳은체

무서운 얼굴로 하라를 노려보았다.

[우진씨....]

하라는 직감적으로 우진의 얼굴과 도해를 번갈아 보며

그들 사이의 문제가 바로 자신임을 알아챌수 있었다.

[우진씨.....]

하라가 우진의 이름을 부르자 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하라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하라의 뺨을 힘껏 후려쳤다.

[우진씨!!]

도해가 놀란 얼굴로 우진의 팔을 붙잡으며 그에게 소리쳤다.

[무슨 짓이야!!]

[우진씨....]

하라가 우진에게 맞은 뺨을 감싸며 그를 쳐다보았다.

하라의 입술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괜찮아요? 하라씨?]

도해는 하라의 입술의 상처를 살펴보았다.

도해는 우진의 갑작스런 행동에 몹시 놀라고 있었다.

그의 분노가 하라를 자신이 보는 앞에서 때릴 정도로 컸을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정말 실망이야.......그래......그래서 그렇게 기를 쓰고

나에게 매달렸던거군....실망이야 오하라....

정말 추잡하고 더러워...당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창녀처럼 나에게 자신의 몸을 내던져도 괜찮았던 모양이지?

다행이군......그날 무슨 일이라도 있었다면 어쩔뻔했어?

당신과 침대로 가지 않았던걸...지금 이순간 하느님께 감사드려.]

[우진씨........]

하라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런 가식적인 눈물따윈 집어쳐.내겐 이제 연기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까.......다신 내 눈앞에 나타나지마. 오하라....

이제....당신과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야.]

[우진씨..내말 좀 들어봐요...]

하라는 우진의 오해를 풀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다가서려 했지만,그는 매섭도록 하라를 쏘아보며 몸을 피했다.

[당장 나가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끌어내겠어.]

[우진씨!!]

하라가 절망적으로 그에게 다가서자 그는 인터컴을 눌렀다.

[지금 당장 올라와서 사람을 끌어내세요.]

마지막 끈이라도 잡을듯 우진을 향해 내밀었던 하라의 손이

공중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그는 이미 하라가 사랑하던 남자의 모습이 아니였다.

무섭도록 냉정하게 변한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하라는 눈물을 삼키며 몸을 돌려 그의 사무실을 천천히 걸어나갔다.

[우진씨....좀 심했어...때릴것 까지는 없었잖아.]

도해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우진에게 말했다.

[너도 나가.....]

우진은 어금니를 틀어 물으며 도해에게 말했다.

도해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우진을 보며 천천히 그의 사무실 문을

닫아주었다.

그녀의 목적대로 우진은 하라에게 절교를 선언했다.

이제 오 하라는 다시는 우진에게 돌아올수 없을것이다.

왜 이렇게 마음이 씁쓸 한거지....

도도해....

내 맘대로 된거 아니야.....

이제 정 우진은 네것이라구.....


미친듯이 우진의 회사를 뛰어 나오며 하라는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에게 맞은 고통보다 입술이 찢어져 아픈 상처보다

그가 자신을 짐승보듯 쳐다보던 그 냉정한 시선이 너무도 마음이

아파왔다.

[허헉.....흑.......]

하라는 숨이 차오를정도로 계속 길거리를 뛰어갔다.

#58

우진은 정말 엉망으로 취하고 싶었다.

취하지 않고는 하라를 잊지 못할것 같았다.

술잔을 들던 우진은 자신의 손을 쳐다보았다.

그 커다란 손으로 작은 하라의 뺨을 후려친것이 생각나자

당장이라도 자신의 손을 잘라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하라가 죽을 죄를 지었어도 그녀를 때리는 것이 아니였다.

더군다나 그의 비서와 도해가 지켜보는 자리에서 그녀를 때렸다는

것은 그녀를 모독한것이나 다름없었다.

때린것도 모자라 추한 말들로 하라를 질타하고 원망을 했었다.

눈물을 흘리며 입가의 피조차 닦아내지 못하고 떨고 있던

하라의 모습이 생각나자 우진은 미칠지경이였다.

정말 그녀는 도해의 말대로 의도적으로 그에게 접근했던 것일까...

도해가 했던 말들을 다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우진의 배경을 탐낸 하라의 아버지의 명령으로

하라가 의도적으로 그에게 접근했다는 이야기.....

나의 배경을 탐내?

왜지...

돈이라면 그녀의 아버지가 더 많을텐데...무엇때문에 내 회사를

원한단 말인가.....

도해의 말대로라면 무언가 맞지 않는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무언가 해명을 하려는듯했던 하라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들었어야 했다.

무조건 도해의 말만 듣고 바보같이 이성을 잃어버린 자신을

저주 하며 우진은 다시 쓴 양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오 하라........젠장. 끝까지 나를 괴롭히는군......]



동추는 나 미녀 여사에게 전화를 걸면서도 이층방에서

들려오는 딸아이의 통곡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뭐? 하라가 운다구?]

[그래..무슨 일이야? 혹시 우진이랑 무슨 일었던것 아니야?]

[하라한테 좀 물어보지...]

[몰라 ..눈물 범벅이되서 집으로 돌아온후 지방에 들어가

문까지 걸어잠그고 통곡만 하고 있어....]

동추의 떨리는 목소리로 보아 나 미녀 여사는 사태가 정말

심각함을 느낄 수 있었다.

[모르겠어..우리 아들은 전화까지 꺼놓은체 받지를 않네...]

[이 녀석들 싸운거 아니야? 잘되가는가 싶었는데....]

동추는 걱정스런 말투로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딸 부터 잘 달래봐.....]

[문을 열어줘야 말이지......]

동추는 점점 커지는 하라의 통곡소리에 점점 애가 타들어 가고 있었다.

[내 이놈의 자식을....그렇게 여자를 울리지 말라고 이야기 했건만..]

나 미녀 여사의 분개어린 목소리에 동추가 다급하게 그녀를 불렀다.

[나 여사...너무 흥분하지 말고.....아들이랑 연락이 되면

차근차근 물어봐...나도 우리 하라를 달래서 물어볼테니..

싸웠다면 다시 화해 할수 있도록 해줘야지...

어떻게 맺어진 사랑인데......]

[맞아 맞아....]

나 미녀 여사도 동추의 말에 동감하는듯 맞장구를 쳤다.

[가만..가만..우리 딸래미 울음을 그친것 같아...내가 한번 가볼게]

[오 회장!! 이야기가 되면 전화 다시 해줘!!]

[어..알았어.]

전화를 끊은 동추는 조심스럽게 하라의 방으로 올라갔다.

[하라야......]

동추가 조용히 노크를 하자 잠시 기척이 없다 덜컥 하며

하라의 방문이 열렸다.

동추가 안으로 들어서자 눈이 빨갛게 부어오른 하라가 머리를

산발한채 훌쩍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동추가 놀란 가슴을 부여잡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아빠.........]

하라가 울면서 동추의 품에 안겼다.

[그래..그래....왜...우진군과 싸웠냐?]

[아빠....미안해요....정말 미안해요...아빠 소원대로 그와 결혼하려

했는데.......못할것 같아요...]

[무슨 소리야.......우진군이 헤어지자고 하던?]

동추의 물음에 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왜?]

[내가 그에게 잘못한게 있거든요.......그는 도저히 용서를 할수

없는 일이였나봐요.......모두 제 탓이예요.]

[아니.그래도 그렇지.....]

[우리 아빠.......나 때문에 더 아프시면 어떻게 해요?

아빠.........나만 두고 돌아가시지 말아요....네?

아빠 돌아가시면 나도 확 따라서 죽어버릴거야!]

하라의 절규에 동추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 따라죽긴 왜 죽어? 그리고 내가 왜 돌아가시냐?

넌 이 애비가 일찍 죽었으면 좋겠냐?

난 손주 며느리 손주 사위 볼때 까지 눈 절대 안감을거다.]

[아빠......불쌍한 우리 아빠...그래요..그렇게 마음 굳게 먹고

치료도 열심히 받으시면.....흐흑.......]

점점 알수 없는 말들만 하는 딸을 이해 못한 동추가 품안에서

울고 있는 하라를 멀찍이 떨어뜨려 놓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치료라니........점점......무슨 말 하는거야?]

동추의 물음에 하라도 울음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

[아빠....일부러 아닌척 하실 필요 없어요...

나도 다 알고 있단 말이야.......

아프시면서도.......아닌척.......누가 그런거 좋다고

한데요?

아빠가 전화로 폐암 말기라고 얼마 못산다고 하신거

다 들었어요.......

혼자 그렇게 아프시면서 숨기시다니....

하나밖에 없는 딸한테도 숨기고 그렇게 남몰래

떠나고 싶으셨어요?

아직 효도도 다 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 드릴순 없다구요.......

으앙.........]

목놓아 우는 하라를 보며 동추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라야....네가 뭔가....오해를 하고 있는 모양인데......]

[네?]

하라가 코를 훌쩍이며 자신의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때 그 전화는 내가 아픈게 아니라.......

아 너도 알잖니......아빠 친구 경석 아저씨........]

[네....]

[그놈이 폐암 말기라서 내 주치의 김 박사한테 특별히

부탁하는 전화였어.]

[네? 그럼......아빠가 아프신게 아니고........]

[그래.......그럼 너 여태껏 이상하게 군게 바로 그때문

이였냐? 어쩐지......안하던 행동을 하면서 닭살스럽게

군다고 했더니만.........]

[아빠.....정말로.......정말로 아빠 아니예요?]

[그래 이놈아]

[아빠!!]

하라가 동추에게 달려들면서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이 녀석이......]

[아.....정말 그분께는 안된 말이지만.......아빠가 아니여서

정말.....다행이예요.......그동안 나는 혼자서 얼마나

마음 아파 했었는데..........]

동추는 딸아이의 가슴앓이를 이해한다는듯 다정하게 하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네가 마음고생이 심했겠구나......쯔쯔...]

[아빠 사랑해요......오래오래 제 곁에 있어주셔야 해요...]

[그래..사랑한다. 내딸.......아참....그런데 너 왜 우진군이랑

헤어진다는 거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제 되었어요......아빠만 괜찮으시다면.....]

오 하라......

정말 괜찮은거야?

이제 그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마음 아파하면서.....

정말 그를 잊고 살아 갈수 있는거야?



[도해씨 정말 실망했어요....]

심한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도해를 질책했다.

[너무 그러지 말아요...나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는 중이니까.]

도해는 우진에게 진실대로 모든걸 말하지 못한것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를 하고 있었다.

어쩌자고 진실을 말하지 못한 것일까.

만약 하라가 아버지의 병세때문에 그에게 접근했다고 사실대로

이야기를 하면 동정심이라도 하라에게 우진이 마음을 움직일까

그것이 두려워서였다.

그래서 말도 안되는 하라가 그의 배경과 부가 탐이 나서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엉터리 이야기를 늘어놓고 말았다.

[도해씨 정말 실망이예요.......]

심한에게 진심을 털어놓은 도해는 심한의 비난을 그대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심한씨 마음 이해 할 수 있어요...나도 지금 스스로 내가 경멸

스러울 정도니까요......심한씨 나 정말 형편 없는 여자죠?]

[그러게 그들이 그냥 사랑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자고 했잖아요..]

[미안해요.......그와 하라씨를 떨어뜨려 놓으면 그가 나에게

돌아올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막상 그와 하라씨가 헤어 졌는데도 마음이 편치 않은거

있죠.......난 그를 사랑한게 아니라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을

놓치기 싫어했던 욕심이 더 컸던것 같아요.......

심한씨 한테 이런 형편없는 내 모습 보여줘서 어떻게 하죠?

난 정말.......구제 불능이야......흐흑.........]

도해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울지 말아요........]

심한이 다정히 도해의 어깨를 감싸자 도해가 심한의 품에 안겨

울음을 터트렸다.

[그들이 다시 화해할 가능성은 없는걸까요?]

[우진씨.......하라씨를 용서하지 않을거예요....]

도해는 심한의 품에서 훌쩍이며 대답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일이 어긋나 버린걸까요......나만 정리하면

다 끝나는줄 알았는데.....그게 아니였나봐요.]

[심한씨.......나 경멸해요?]

도해가 눈물이 촉촉히 젖은 눈동자로 심한을 올려다보았다.

[아니요......도해씨는 사랑하는 방식이 틀렸을 뿐이예요....]

심한은 굵은 눈물 방울이 도해의 뺨을 흘러 내려가자 손을 들어올려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도해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울지 말아요.........난 당신이 울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심한씨..........나 외로워요......오늘만이라도......당신이

나의 따뜻한 불빛이 되어줄래요?]

[세상이 뭐라해도.......난 도해씨의 편이 되어줄게요......]

심한의 입술이 천천히 도해의 입술위로 내려앉았다.

도해의 손이 천천히 심한의 어깨위로 올라왔다.

어쩜......

나는 당신을 이용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렇게 따뜻한 품을 가진 당신이라면......

또다시 당신을 이용하는 나를 용서해 줄지도

몰라요.......



#59

[꼴좋다......남편한테 얻어 맞은 마누라도 아니고..꼴이 그게

뭐니? 그 모자좀 벗을 수 없냐? 그 선글라스는 뭐고?]

미경은 불만스런 얼굴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선글라스까지

끼고 약속장소에 나온 하라를 쳐다보았다.

[눈은 퉁퉁 부었고......입술의 상처는 부르트고.....

망할자식.......그 자식을 그냥 놔둬!!]

미경이 하라의 얼굴꼴을 보고는 분통을 터트렸다.

[그만해.......]

하라가 힘없이 자신의 커피잔만을 만지작 거렸다.

[그게 그렇게 용서하지 못할 일이래? 정말 그런거야?

우진씨 실망이다....그렇게 안봤는데....폭력이나 휘두르고

말이야.........]

[그만......이제 그 생각은 안하고 싶어....]

[정말 그와 헤어질 생각이야?]

미경의 물음에 또다시 눈물이 쏟아져 내릴것 같아

하라는 두 눈을 끔벅였다.

아직도 쏟아낼 눈물이 남아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였다.

몇날 며칠을 울어도 그의 이름만 들어도 저절로 눈물이 쏟아져

내리는 그녀였다.

그 이후로 우진은 아무런 연락조차 없었다.

그는 정말 그녀를 잊기로 한것이였다.

[다행이 아빠의 병이 없던걸로 되었잖아.......그걸로 만족해야지.]

[그건 다행인 일이지만......모르겠다........

우진씨 네가 지금 그를 정말로 사랑한다는거 알고는 있는거야?]

[이제 와서 내가 그를 사랑한다고 외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니....

이미 그는 나를 향한 귀도 막고 눈도 막고 모든걸 닫아 버렸는데.]

[정말 괜찮은거야?]

미경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빛을 잃어버린 하라의 눈동자를

쳐다보았다.

[괜찮아 지겠지....당분간 떠나있으려고 해.]

[어딜?]

[미국 시카고에서 전세계 로맨스 작가 협회의 모임이 있어.

그곳에서 초청장이 왔어.]

[얼마나 있을건데?]

[일정은 5일인데......사정을 봐서 한 보름정도 있다가 오려고 해.]

[혼자 가니?]

[응.]

[나라도 같이 가고 싶지만......휴가 내기가 어렵다.]

[마음만이라도 고마워....]

[하라야.......]

[응.]

[잘 다녀와....]

[그래...........]




[이렇게 바쁘신데 나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우진은 불편한 기색으로 자신의 앞에 앉은 심한을 쳐다보았다.

[제가 이렇게 뵙자고 한건.......하라일 때문입니다.]

[하라씨라면......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우린 헤어졌습니다.]

[하라에 대해 오해를 하고 계신것이 있어서 진실을

이야기 해드리려고 이렇게 왔습니다.]

[오해라니요....그녀에게 밝혀질 거짓이 더 남아 있단

말입니까?]

마음과는 달리 우진의 입에서는 또다시 독한 말들이 나오고

있었다.

하라에 대해 말하는 우진이 마음에 안드는듯 심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로 하라를 사랑하셨던건 맞습니까?

아직도 그녀를 잘 모르시는군요......]

[본론만 말씀하시지요......당신에게서 하라씨에 대해

운운하는건 더 이상 듣기 싫습니다.]

[하라가 처음 우진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왜 우진씨에게 접근할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에 오해가 있었습니다.]

[이유라뇨?]

[하라의 아버님께서 지금 병중에 계십니다.]

[병중이라뇨?]

[폐암 말기 이십니다.얼마 살지 못하시죠.

하나밖에 없는 딸이 혼자 세상에 남는게 마음 아프신 회장님께서는

딸이 빨리 결혼해 가정을 갖는것이 낳을거라는 생각을 하셨죠.

그 딸을 지켜줄 사람으로 바로 정우진씨를 회장님께서 점지해

두신거구요.......하라는 자신의 아버지가 얼마 살지 못하실걸

알고는 아버지의 소원을 들어들이기 위해 우진씨에게 접근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보같은 기집애가........

정말로 정 우진씨를 사랑하고 말았지요.........

사랑때문에 거짓말을 한 도해씨도 잘못이 있긴 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에게 기회조차 주지 않고 내쳐버린 정 우진씨도

그리 잘하셨다고 말씀드리기 어렵군요....

저라면....적어도 하라에게 해명할 기회정도는 주었을겁니다.

정우진씨가 하라와의 사랑을 포기 하셨으니........

그것은 제가 하라를 다시 사랑해도 된다는 뜻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이제 다시 하라를 제 곁으로 되찾아 가겠습니다.]

심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없이 앉아있는 우진에게 인사를

하고는 그를 남겨두고 떠났다.

심한이 까페에서 나오자 차에서 대기 하고 있던 도해가

그에게 승용차 문을 열어주었다.

[어때요?]

[모르겠어요......그를 자극할만한 미끼를 던져 두었으니.....

이제는 정 우진씨의 몫이겠죠.......

그는 아직도 하라를 생각하고 있는것이 분명해요.....

내 입에서 하라의 이름이 나오는것 조차 불쾌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니까요.......아직......그녀를 소유 하고 싶어 하는

질투심이 느껴졌어요.......]

왠지 쓸쓸해 보이는 도해의 손을 심한이 꼭 잡아주었다.

[다 잘될거예요.......]

[고마워요....심한씨....]

[우리 맛있는거나 먹으러 갈까요?]

심한이 도해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하라는 창밖에 내리는 비를 서글픈 눈으로 쳐다보았다.

정말 구질구질하게 비까지 내리는거야......

하라는 침대위에 정리하다 만 자신의 여행가방을 쳐다보았다.

내일 비행기를 타려면 일찍 잠들어야 했지만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커튼을 내려던 하라의 눈에 가로등 아래 서 있는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였다.

우진이 비를 맞으며 그녀의 방 창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우진은 문이 열리며 하라가 우산도 없이 뛰어나오는걸

보고는 놀란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왜 우산도 없이 여기에 서 있는거예요.......]

[당신은 왜 우산도 없이 이렇게 뛰어나왔는지...]

[그야 당신을 보러 나왔죠.....]

[...........]

[감기 들어요........]

[..........]

우진은 아무말없이 계속 하라를 바라보기만 했다.

[잘되었네요....당신을 한번 만나보고 싶었어요.]

[나를?]

[네..............]

우진은 손을 들어 아직 멍이 가시지 않은 하라의 입술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괜찮아요.....금방 아물었어요......당신이 내게 한 말들

곰곰히 생각해 보았어요........

당신이 충분히 화가 날 만 했어요........

난 당신을 사랑할 자격이 없어요........

당신 말대로........이제 다시는 당신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요...

떠나기 전에........당신한테 이말이 꼭 하고 싶었어요......]

[떠나? 어딜...........]

[무언가를 잊기에는 떠나는것만큼 좋은게 없죠..........

그동안 미안했어요....그리고 고마웠어요.........

당신이 날 사랑했었다는거......믿어요.......

그리고 감사하게 그 마음 간직할게요......

잘가요......]

하라는 무언가 할 말이 더 있는듯 했으나 아무말이 없는

우진을 보고는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뒤돌아 섰다.

그녀를 잡아야 하는걸까........

우진은 마음속으로 번뇌하며 멀어지는 하라의 등을 쳐다보았다.

정말 이대로 그녀를 떠나보내도 되는걸까........

정 우진........

너의 마음은 도대체가 뭐야.........

그녀를 사랑하기는 한거야?



#60

우진은 갑자기 문을 활짝 열고 들어서는 도해를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우진씨!! 이렇게 한가하게 앉아 있을 때가 아니라구!!]

[무슨 일이야?]

[지금 이따위 서류가 눈에 들어오기나 해?]

도해가 우진앞에 놓여 있는 서류를 빼앗아 옆으로 던져버렸다.

[무슨짓이야!]

우진이 소리치자 도해는 대들듯 그에게 다가섰다.

[지금 당신 애인이 내 애인이랑 사랑의도피를 하겠다는데

보고만 있을거야?]

[네 애인이라니?]

[심한씨 말이야!! 심한씨가 하라씨랑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잖아!!!

우진씨 때문이야!! 우진씨가 하라씨를 붙잡지 않았기 때문에

심한씨가 하라씨한테 넘어간거라구!!!

아앙.......난 이제 어떻게 해.......이제 착한 남자 만나서 착실히

연애나 해보나 했더니만.....아앙.....!!]

도해가 질끔 우는 척을 하며 우진의 반응을 살폈다.

당황스런 얼굴로 머뭇거리는 우진을 보며 도해는 더큰 소리로

우는 시늉을 했다.

[만약 심한씨가 하라씨와 미국에 간다면.......

난 더 이상 남자에게 마음을 줄 수 없을꺼야.......

이대로 노처녀로 늙어 죽고 말거라구!!!]

[몇시 비행기 인데?]

[2시 비행기 라고 하던데.........]

우진은 급한 얼굴로 시계를 쳐다보았다.

2시까지는 겨우 두시간이 남았을뿐이였다.

지금 출발한다 해도 교통대란에 두시간 안에 공항까지

갈수 있을지도 의문이였다.

[아앙...몰라 몰라..........심한씨잉~~~~~~~]

도해가 또다시 울음을 터트리자 우진이 급히 자신의

자동차 열쇠를 집어 들고는 사무실을 뛰쳐 나갔다.

[같이가!!!]

도해가 소리치며 우진이 뒤를 따랐다.



하라는 공항에 배웅을 나온 미경과 심한을 고마운 얼굴로 쳐다보았다.

[바쁜데 뭐하러들 나와...멀리 떠나는것도 아닌데...]

[미국이 한두시간이면 가는 거리니? 그게 멀리 떠나는게 아니면

뭐야......기집애......]

미경은 마치 하라가 사랑의 도피를 떠나는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건강하고.....연락 자주 하고....]

미경은 훌쩍이며 하라의 손을 잡은체 놔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빨리 들어가 있어야 겠다.여기 있다간....너희들 금방이라도

눈물 바람이라도 날것 같아....]

[아......저 하라야....]

심한이 가방의 손잡이를 잡는 하라의 손을 붙들었다.

[왜?]

[아....저...커피나 한잔 더 하고 가지......]

[무슨 소리야......이제 들어가봐야 해...]

들어가려던 하라를 심한이 또 다시 붙잡았다.

[아니....그러니까...화장실..화장실 안가봐도 되겠어?]

[너 왜그래.......]

이상하게 허둥대는 심한을 하라가 탐색하듯 그를 쳐다보았다.

[그...그게.....사실은....우진씨가 오기로 했어.]

[뭐?]

[도해씨가....우진씨를 데리고 올거라구....

오해는 풀고 가야지....이대로 그냥 너 미국 가버리면....

다시는 우진씨와 만나지 못할지도 몰라.......]

심한의 말에 하라는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심한아....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이미 우진씨와

난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어.

그는 이곳에 오지 않을거야....]

[하라야.........]

[산산이 부서져 버린 도자기는 다시 붙인다 해도 이미

그건 원래의 아름다웠던 도자기가 아니야.....]

[그래도 하라야......혹시 모르잖아...]

미경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심한과 함께 하라를

붙들기 위해 애썼다.

[고마워.....모두들......이제 나를 위해 애써주지 않아도

돼......고맙다......잘 다녀 올게.......]

[하라야......]

심한은 안타까운 얼굴로 출국장으로 들어서는 하라를

배웅했다.

[바보같은 남자.......평생 하라를 놓친걸 후회하게 될것예요...]

미경이 훌쩍이며 닫힌 문으로 사라진 하라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심한씨!!!!]

심한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도해와 우진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오고 있었다.

[하라씨는요?]

도해가 심한에게 묻자 심한은 말없이 고개만 가로지었다.

[벌써 떠난겁니까?]

우진이 나서며 출국장을 바라보았다.

[하라는......우진씨가 오지 않을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침울한 심한이 말에 우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시카고에서의 생활에 하라는 빠르게 적응해가고 있었다.

바쁘게 출판사를 오가면서 일에만 몰두했다.

하지만 낮에는 일로 그를 잊을 수 있었지만,쓸쓸히 호텔방에서

잠들때마다 하라는 우진의 생각에 밤새도록 잠을 뒤척일수

밖에 없었다.

미경과의 통화로 우진이 그녀를 보기 위해 공항으로 나왔었다고

들었을땐 하라의 심장은 무너지는듯 했다.

왜 그러죠.......

우린 이미 끝났는데....왜 자꾸 미련을 갖게 하는건가요....

시카고의 교외에 있는 한 저택에서는 로맨스 작가 모임의 마지막을

파티로 마무리 하고 있었다.

하라는 진주빛의 멋진 롱 드레스를 차려입고 검은색의 긴 머리는

우아하게 틀어올려 목 뒤로 한가닥의 애교머리를 남겨 가냘픈

하얀 목을 강조했다.

작가들과 기분좋게 담소를 나누며 하라는 칵테일을 홀짝였다.

[너무 많이 마시는거 아니야?]

작가의 모임에서 만난 일본인 작가 타쿠야가 하라에게 다가왔다.

[오늘은 분위기가 분위기 인 만큼 취하고 싶네요...]

하라가 잔을 타쿠야에게 들어올리며 다시 잔을 기울였다.

[하라씨는 애인 없어?]

[애인이요?있었죠.......]

[있었죠? 과거형이네?]

[네.헤어졌어요.]

[하라씨같이 매력적인 여자를 차버린 불행남은 누구지?

한번 보고 싶네?]

타쿠야의 말에 하라가 작게 웃었다.

[그러게 말이예요....]

타쿠야와 하라가 담소를 나누고 있을때,갑자기 파티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죠?]

[글쎄....]

타쿠야와 하라는 사람들 사이로 다가갔다.

[무슨 일이죠?]

로맨스 작가 협회장인 로빈에게 하라가 다가서며 영어로 물었다.

[글쎄...밖에 무슨 일이 일어난 모양이야...누가 집 밖에서

소동을 벌이고 있다던데?]

창밖에서 낭만적인 노래가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창가에 서서 밖의 상황을 내다보고 있던 로빈이 탄성을 지르며

하라를 쳐다보았다.

[하라~빨리와봐요...]

다급히 하라를 부르는 소리에 하라는 무슨일인가 싶어

테라스의 문을 열고 넓다란 테라스로 나갔다.

[오 세상에~]

하라는 테라스로 나가자 마자 놀라움의 비명을 질렀다.

테라스 바로 아래에서 멕시코 칸쵸네의 복장을 한 남자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은 테라스에 있는 하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노래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옆에는 [하라....I LOVE YOU~♡]라는

플랜카드가 펄럭이고 있었다.

[뭐야? ]

[모르겠어....뭐가 어떻게 된건지...]

[유후~저기좀 봐!!]

타쿠야가 소리지르며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하라가 고개를 돌리자 하얀 리무진이 달려오고 있었다.

[귀여운 여인의 리차드 기어잖아!!]

하라는 두 눈을 끔뻑이며 장미 꽃다발을 들고 리무진의

천장으로 솟아 오른 우진을 쳐다보았다.

리무진이 저택 앞에 멈추자 리무진의 트렁크가 열리며

오색 풍선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음.....오.하라....다..당신.....]

우진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사랑을 고백하는 자가 그렇게 용기가 없으면 안돼지!!]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그를 격려했다.

사람들의 격려에 용기를 얻은듯 우진이 하라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 하라! 당..당신을....제길......오하라! 당신을 사랑한단 말이야!

나랑 결혼해줘.........]

우진이 소리치며 리무진 지붕위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하라에게 장미 꽃다발을 내밀었다.

[뭐해..하라씨..저런 로맨틱한 남자는 없을거야...]

타쿠야가 멍하니 서 있는 하라의 팔뚝을 건들였다.

하라가 움직일 생각을 안하자 우진의 표정이 점점 실망감으로

바뀌어져 갔다.

[당신은......나를 용서못하는 거야....그렇지?]

[정말로......정말로.....날 사랑하는거예요?]

그녀의 물음에 우진이 확신에 찬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끊임없이 당신을 골치아프게 할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이젠 당신의 엉뚱한 행동에는 익숙해졌어.]

우진의 대답에 하라가 피식 웃었다.

[허락해 주는거야?]

[아니요.]

하라의 대답에 우진이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좀더 로맨틱하게 청혼 할 수 없어요?

이게 뭐예요......이미 여러 사람들이 써먹은 레파토리 잖아요.

좀더 창의적인 방법으로 다시 청혼해 주세요.

그럼........고려좀 해보죠.]

하라의 새침한 표정에 우진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좋아~몇번이고 당신이 원한다면 청혼을 해주지.

하지만 당신의 맘에 든다면 당장 오케이 해줘야 해!!]

[바보같은 남자로군요........이미 예전에 난 당신의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다구요!!!]

하라가 우진에게 손을 흔들며 파티장 안으로 들어갔다.

[오 하라~ 사랑해~이 말괄량이 아가씨야!!사랑한다구!!!]


창밖으로 우진의 사랑의 고함이 들려오자 하라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정 우진.

당신은 이제 내 남자야.


#에필로그


일요일 오후 하라와 우진은 나른한 표정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놀러가기로 약속한 휴일이였지만, 하라의 짧은 미니 스커트를

본 우진이 그녀에게 달려든 후 그들은 피크닉을 포기하고

기꺼이 그들의 달콤한 침실에 머물렀다.

사랑의 여운으로 얼굴이 상기된 하라가 우진의 맨가슴에 얼굴을

대자 우진이 사랑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하라의 이마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날마다 이렇게 낮이고 밤이고 사랑을 나누다 보면

당신은 회사에서 쓰러지고 말거예요.]

[회사고 뭐고 때려치고 집안에 당신을 내곁에 꽁꽁 묶어두고 싶어.]

[우리 식구는 누가 먹여 살리구요!!!]

[■■■■■ 당신이 책 쓰면 되잖아.]

[엉터리!]

하라가 우진의 가슴을 물어뜯는 시늉을 하자 우진이 깔깔 거리며

몸을 뒤척였다.

[참.......심한이 있잖아요...]

[심한씨가 왜?]

[뭔가 구린 냄새가 나요.......]

[구린 냄새?]

[도해씨랑.....심한이랑 아무래도....]

[그걸 이제 알았어?]

[뭐예요? 그럼 뭔가 알고 있다는 말이예요?]

[ 그 두 사람.....아직은 뭐라 하기는 이르지만...

서로에 대한 마음은 진실한것 같아.

곧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리겠지.]

[아아...정말 둘이 잘 된다면 좋겠다....]

[우리의 로맨티시즘...또 발동이구만...]

우진이 웃으며 하라를 꼭 끌어안았다.

[어? 누가 왔나본데?]

초인종 소리에 우진이 몸을 일으켰다.

[누구지?]

하라가 알몸에 로브를 걸치며 머리를 정돈했다.

우진이 침대에 누워 제법 살이 올라 글래머해진 하라의 몸매를

감상했다.

우진도 침대에서 일어나 하라가 마구 벗겨버린 자신의 속옷과

옷가지들을 입기 시작했다.

우진이 막 바지를 입을 찰나 방문이 벌컥 열리며 그의 장인어른이 된

오 회장이 뛰어 들어왔다.

[앗!! 장인어른!!]

우진이 바지에 한쪽 발만 걸린채 다짜고짜 자신을 끌어안는 오 회장을

당황스런 얼굴로 쳐다보았다.

[하하하하....드디어 자네가 장한 일을 해냈구만...하하하하]

[예?]

[하하하하....아주 실한 장군감을 바라고 있지만......

뭐 우리 이쁜 딸 닮은 손녀도 괜찮지.......]

[장인어른....손녀딸이라뇨.......]

[아빠!! 아직 이야기도 안했는데 아빠가 먼저 터트리면 어떻게 해요!!]

하라가 삐진듯한 표정으로 방안으로 들어섰다.

[무슨 말씀이셔.....손녀딸이라니......]

우진이 자신의 아내를 돌아보며 물었다.

[오늘 저녁에 이야기 해주려고 했는데......]

하라가 애정어린 표정으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3개월째래요.]

[뭐?3개월이라니..........]

[당신이 애기들 아빠가 되는게 정확히 7개월 남았다는 뜻이예요.]

[뭐? 정말?]

우진이 환호성을 지르며 하라를 번쩍 안아들었다.

[꺄악! 어지러워요!!]

하라가 웃으며 우진의 품에서 바둥 거렸다.

오 회장도 껄껄 웃으며 딸 내외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하라는 우진의 귓속에 대고 뭐라 속삭였다.

함박웃음을 웃던 우진의 입이 점점 더 벌어졌다.

[이런 오하라! 정말 끝까지 나를 놀래키는 일만 벌이는군.]

[왜 그러나 무슨일이야?]

오 회장이 궁금하다는듯 우진을 쳐다보았다.

[장인어른........아무래도 양팔에 손주들을 안아보실것 같습니다.]

[뭐?]

[아빠.......쌍둥이래요!!]

[뭐? 으하하하하하 좋다 좋다! 세 쌍둥이 네쌍둥이...

토끼같은 손주들만 안겨준다면야...하하하하하]

하라의 행복한 신혼 보금자리에서 정겨운 웃음들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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