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곁에 있으면 보는 내가 다 잠이 오는구나. 어쨌건 이 제안을 받아들여 줬으면 한다."
"내 머리를 쓰는 대가는 비싸요... 그러니 나도 제안을 하죠..."
"말해 보거라."
히죽 웃는 육손을 보며 감택은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전권을 나에게 위임할 것... 군사, 외교, 정책... 모든 권한을 말하는 거예요... 그리고 유비군을 막아내면... 곡물 창고를 개방하여 성민들에게 나눠줄 것... 어때요?"
"와아! 대장! 태수 녀석이 홀딱 벗고 성내를 뛰라고 하면 안 될까?"
소걸이 폴짝폴짝 뛰며 촐랑댔다.
"으음..."
감택은 고민했다. 물론 육손을 등용하는 데 한현이 전권을 그에게 위임했으니 받아들일 수는 있었다. 그러나 한현의 성격으로 보아 전쟁이 끝난 뒤에 육손에게 한 약속을 지킬 것인가?
'처음에는 지키는 척 하다가 다시 성민들을 쥐어짤 터...'
자신이 모시는 주군이지만 그 야비한 성격은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자신도 한현이 어떻게 행동할지 뻔히 보이는데 그 보다 몇 수 위인 육손이 그것을 모르겠는가? 그래서 더욱 불안했다.
육손이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뒤통수를 칠 까봐 염려하는 거예요...?"
나긋한 그녀의 말에 정곡을 찔린 감택은 헉 소리가 절로 보이는 얼굴이었다. 육손은 빙긋 미소 지었다.
"걱정 말아요... 태수 녀석이 먼저 그러지 않는 한. 나도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일단 태수님과 상의해 보고 다음에 오마."
"편할 대로 해요... 난 잠이나 잘 테니까..."
반쯤 몸을 일으켰던 육손은 다시 나무 밑에 벌렁 드러누웠다. 감택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궁성을 되돌아갔다.
다음날, 육손은 총군사가 되어 임시로 시상의 모든 권력을 쥐게 되었다.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장사의 금선과 동맹을 맺는 일이었다. 금선 역시 유비군에 대해 위협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동맹은 일사천리로 합의되었다.
바야흐로 시상과 장사에 걸친 유비군에 대한 대항세력이 조직된 것이었다. 총군사는 육손, 그 휘하에는 한현의 소속인 위연, 금선의 소속인 주태 같은 맹장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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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비연합 결성입니다.. 그래봤자 꼴랑 2성이지만... 푸후
짤방은 육손. 유비군은 여강을 흡수한 뒤 세력이 급격히 커졌다. 감녕의 휘하에 있던 동습, 우번, 능통, 여몽 등이 별 탈 없이 합세했고 전직 해적들로 구성된 강력한 선단을 얻게 되었다. 이제 무리 없이 서벌을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제2군단장으로 임명된 모용환은 출전 보고를 하기 위해 대전으로 가는 길이었다. 여강에 임시로 마련된 대전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단아한 멋이 있었다.
내궁으로 들어선 모용환은 낯선 얼굴을 보았다.
"안녕?"
유엽이 손을 흔들며 반갑게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조선소에 있어야 할 그녀가 어떻게 궁성에 있는 걸까?
"엽 누이? 여긴 어떻게...?"
모용환이 어리둥절해 하자 유엽은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대뜸 모용환과 팔짱을 끼었다.
"오호호홋! 이 누나가 못 갈 곳이 어딨어? 역시 동생은 달라. 어떻게 감녕과 견사를 엮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진짜로 뚝딱 해치울 줄이야."
몸을 배배 꼬며 자신에게 엉겨 붙는 유엽의 행동에 모용환은 당황했다. 물론 팔에 와 닿는 풍만한 가슴의 감촉은 무척 좋았지만 혹시라도 그의 부인들이 이 광경을 보게 된다면 골치가 아파지게 된다.
모용환은 늑대본성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발휘되어, 그는 무의식중에 유엽의 가슴을 평했다.
'보기와는 달리 이 정도 크기면 거의 장비와 동급... 아니, 이게 아닌데.'
그는 하체로 몰리는 힘을 간신히 억눌렀다.
"여, 엽 누이. 일단 이것 좀 놓고... 전 유부남이란 말입니다."
"아이, 저번에 엉큼하게 손을 잡았던 게 누군데 그래? 동생이 그러는 거 보니까 더 귀엽다. 냐하하하."
그래도 완전 막무가내는 아니었는지 유엽은 슬그머니 그에게서 떨어졌다. 한숨 돌린 모용환은 여전히 주위의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어떻게 왔는지 말이나 해보십시오."
"있지, 동생이 나중에 온다고는 했지만... 깜찍한 동생들이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는걸. 그래서 그냥 와버렸어. ...동생은 누나가 싫은 거야?"
울 듯한 얼굴로 말똥말똥 자신을 바라보는 유엽의 얼굴에 모용환은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강동의 별 모용환의 치명적인 약점은 미녀에게는 한없이 약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유엽은 최고의 난적이었다.
"그, 그건 아닙니다... 운아와 량아는 만나보셨습니까?"
"운아, 량아? 헤에, 부부사이인데도 그렇게 친근하게 부르는 거야? 모용 동생은 요즘 보기 드문 다정한 남자인 것 같아."
'이 누님의 의도가 대체 뭘까...'
여전히 파악을 할 수가 없었다.
"아량이랑 아운은 좀 전에 만나고 왔어. 아운도 그렇지만 아량은 정말 예쁘던걸? 동생은 정말 복 받은 거야. 아니, 걔들이 복 받은 걸까? 이런 멋진 신랑을 낚아챘으니 말이야. 냐하하핫!"
'참아야 한다...'
유엽이 꺄르르 웃으며 폴짝 뛰자 겉보기에는 그리 표가 나지 않던 가슴의 굴곡이 완연하게 드러나며 심하게 출렁거렸다. 그 모습에 모용환은 다시 남근이 솟아오르는 걸 느끼고 한쪽 팔로 슬쩍 그곳을 짓눌렀다.
'크으...'
그의 고충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엽은 살짝 눈웃음치며 물었다.
"해서 난 얼마 동안 여기서 계속 머물 예정이야. 동생들이랑 그동안 밀린 회포도 풀고. 동생은 어디 가던 중이었어?"
"... 출진보고를 하기 위해 유비님께 가던 중이었습니다."
"어머, 그럼 누나가 시간을 뺏은 거네? 진작 말하지. 미안해. 어서 가봐."
유엽이 길을 터주자 모용환은 최대한 하체를 가리며 대전으로 걸어갔다. 유엽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 아픈가?"
물론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모용환에게 미친 파장은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
"주군. 속하 모용환, 내일 아침 출진을 하려 합니다. 이에 따른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대전에 들어선 모용환이 유비의 면전에 나아가서 말했다.
이제 대전에는 감녕이나 동습 같이 새로 들어온 장수들도 있었기에 모용환은 유비를 사무적으로 대했다. 예전처럼 한 가족들끼리 있었을 때라면 모르지만 지금 같은 경우 수하가 주군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친근하면 자칫 기강이 문란해질 수도 있는 일이다.
유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하세요."
"감녕, 장료, 조운을 부장삼아 데리고 갈 생각입니다. 군사는 원래 있던 5만의 병력에 5천의 수병을 추가할 것입니다."
"참모는요?"
현재 남아있는 인물들 중에 책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제갈량이나 우번이 있었다. 주유는 손상향을 따라 오월 원정에 나가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모용환은 참모를 데리고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심려하지 마십시오. 종군군사가 없이도 충분히 원정을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 장사의 금선이나 시상의 한현에게는 제갈 군사나 우번을 데려가야 할 정도로 지략이 뛰어난 자가 없습니다. 그래도 주태와 위연 같은 용장들이 있습니다만, 속하를 비롯한 부장들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사료됩니다."
"모용 공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군사의 자격으로 평정에 참여한 제갈량도 그의 말에 수긍했다.
"그래도..."
유비는 뭔가 꺼림칙했다. 모용환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손책의 전례가 있었다. 그 누가 손책이 오월족에게 당할 거라고 짐작이나 했었겠는가. 적의 간계를 간파할 책사가 없어서 일어난 일이었다. 게다가 모용환은 자신의 남편이니 유비는 더욱 걱정이 되었다.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안 모용환은 부드럽게 말했다.
"아군이 여강에 입성한지는 이제 이틀이 지났을 뿐입니다. 혹시라도 불순한 세력이 있을 수도 있으니 주군께서는 하루 빨리 여강을 안정시키셔야 합니다. 그러자면 내정에 능한 제갈 군사나 우번의 보좌가 필수입니다."
그래도 유비가 불안해하는 기색을 지우지 못하자 그는 이어서 말했다.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면 원군을 청하겠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알겠어요."
유비가 마지못해 끄덕이자 모용환은 보고를 계속했다.
"보급은 여몽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여강의 물자가 풍족하지 못하니 건업의 태사자가 지원을 할 것입니다. 제갈 군사는 원정의 와중에 타세력의 움직임을 눈여겨 봐 주십시오. 수상한 동태를 발견하면 즉시 회군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모용 장군."
보고를 끝마친 모용환은 최종적으로 군단을 점검하기 위해 대전을 나섰다. 보병 5만, 수군 5천. 여강에서 시상으로 가려면 장강을 건너야 했다. 수군 5천은 5만의 보병을 수송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5만의 보병이 육지에 상륙하는 순간 한현과 금선의 태수 생활도 끝장이 나는 것이었다.
'주태, 위연...'
정보를 얻기 전까진 설마 그들에게 이 같은 장수들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자신과 감녕, 장료, 조운이라면 그들의 상대로는 넘치고도 남았다. 될 수 있으면 사로잡아 등용시켜야할 인재들이었다.
모용환이 아는 것은 한현과 금선의 휘하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장수들뿐 이었다. 때문에 모용환은 한현과 금선이 은밀히 동맹을 맺은데다가, 그들을 총지휘하는 사람이 다름 아닌 육손이라는 사실을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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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방은 느닷없는 재갈량 재탕.. 몇 시간 후 연참하겠습니다 그날 밤, 모용환은 내일 있을 출정에 대한 오만가지 생각 때문에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이고 있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군대를 이끌게 된다는 설렘 때문일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오각산에서 엄백호를 토벌하는 토벌대를 이끈 전력이 있지만 그건 아무래도 소수다보니 군대를 지휘하는 맛이 나지 않았고, 건업공략에서도 자신은 관우의 부장으로 참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제2군단의 군단장으로서 5만이 넘는 대병력을 지휘하게 된 것이다.
"휴우... 잘 할 수 있을까."
유비의 앞에서는 큰소리를 탕탕 쳤지만 자신은 병법을 공부해 본 적도 없고 군사들을 지휘해본 경험도 별로 없다. 머리가 좋아졌다고 지식이 늘어난 건 아니다. 순전히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은 현대전의 지식과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싸워야 한다는 소린데...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상대가 상대라... 다행이군."
한현. 금선. 그들이 상대라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모용환이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 있을 때였다.
드륵.
그의 처소의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슬며시 들어섰다.
"응? 너희들이 이 시간엔 왜 왔어?"
대교와 소교였다. 태사자는 건업에 남아 모종의 일에 몰두하고 있어 대교를 주유에게 딸려 보냈는데, 그녀들을 돌봐주던 주유가 오월에 가버리자 자매는 요즘 눈에 띄게 시무룩해져 있었다.
잠을 자려던 참이었는지 대교와 소교는 큼지막한 비단 베개를 하나씩 안고 있었다. 워낙 성장이 느린 소녀들이라 베개를 안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몸이 묻힌 것 같았다.
"......"
모용환의 물음에 말없이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던 대교는 옆에서 베개에 얼굴을 푹 박고 있는 소교를 쿡쿡 찔렀다.
"네가 만들었잖아. 어서 가."
"...어, 언니이..."
대교에게 떠밀린 소교는 모용환의 앞에 섰다.
"......?"
모용환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소교는 얼굴이 안 보일 정도로 깊게 숙이며 두 손으로 보따리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뭐지?"
"...저, 저..."
그가 묻자 소교는 얼굴만 붉히고는 애꿎은 검지 손가락 끝만 톡톡 부딪쳤다. 그러자 동생의 숫기 없는 모습을 보다 못한 대교가 가슴을 두드리며 나섰다.
"으휴! 답답아! 오라버니. 소교가 만든 거예요. 풀어 보세요."
"흐음."
대교의 말에 의미심장한 눈으로 소교를 바라보던 모용환은 소교가 건네준 꾸러미를 풀어 보았다.
"전포(戰袍)?"
꾸러미 속에 있는 물건 곱게 개어져 있는 푸른색의 전포였다. 전포는 장수들이 전장에 나갈 때 걸쳐 입는 웃옷이었는데, 모용환은 전포가 없었다. 전포야 있든 말든 그다지 상관이 없었지만 이렇게 소교에게 선물을 받으니 묘한 감흥이 일었다.
"이게 정말 소교가 만든 거야? 옷감도 구하기 힘들었을 텐데."
모용환의 음성에는 뿌듯함이 담겨 있었다. 그는 전포를 펼쳐 보이며 여기 저기 훑어보았다. 다소 투박한 솜씨였지만 정성을 들여 바느질한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특이하게도 왼쪽은 박음질이 잘 되어 있었는데 오른쪽은 좀 삐뚤빼뚤했다.
"... 옷... 고름은... 스승님이..."
"그래? 유아가..."
소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용환은 주유가 달았다는 남색의 비단 옷고름을 매만졌다.
'이런 걸 준비했으면 말이라도 하지.'
입맛이 씁쓸했다. 주유를 보낼 때 손상향의 대장 임명 문제로 다투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때 대교가 말했다.
"등의 용 문양은 제갈 언니가 수놓은 거예요. 다른 언니들도 많이 도와줬어요. 수실은 조 언니가 달은 거구요, 여기 이 장식은 상향 언니가 만들었어요. 저랑 스승님은... 헤헤. 바느질을 할 줄 몰라서... 응원만 했구요... 참, 바느질이 잘 된 곳은 유비님이 한 거고, 흉한 곳은 소교가 한 거예요."
"언니..."
대교가 소교의 바느질 솜씨를 폭로하자 소교의 얼굴은 금새 홍당무가 되었다.
"후우..."
모용환은 전포를 받아들고 긴 숨을 내쉬었다. 이 커다란 전포를 직접 손으로 짓기 위해서 얼마나 걸렸을까. 한 달? 두 달? 이야기를 들어보니 각자 어디 한 군데씩을 맡아서 만든 모양이었다. 아내들의 정성이 듬뿍 담겨 있는 전포를 보니 폐부 깊숙한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며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음에 안 드세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긴 것일까. 소교가 처음으로 또박또박 말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모용환이 전포를 든 채로 이마를 짚고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마음에 안 들어서 그런 건가하고 생각한 듯 했다.
와락!
그는 대교와 소교를 깊숙하게 끌어안았다. 소녀들이 놀라서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그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그녀들을 끌어안은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몸을 숙이고 있어 그의 볼과 소교, 대교의 볼이 맞닿았다.
그녀들은 깜짝 놀랐다. 모용환의 볼이 축축했기 때문이다.
"오라버니."
"...우세요?"
그는 조용히 흐느끼고 있었다. 자기는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여인들은 왜 그런 자신에게 이리도 헌신적인가. 미안해서, 기뻐서 눈물이 났다. 비록 잠시 감정이 격해져 그런 것일지는 몰라도 그는 이 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었다.
"...기뻐서 그래. 너무 기쁘니까 눈물이 나는 거야."
그는 코를 매만지며 포옹을 풀었다. 대교와 소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모용환은 히죽 웃었다.
"최고의 선물이야. 고마워... 졸리지? 이거 만드느라 피곤했을 텐데 이제 가서 푹 쉬어."
하지만 대교는 아직 할 말이 더 남아있는 듯 했다. 그녀는 꾸물거리며 볼을 긁적였다.
"저, 오라버니. 이번 원정에 저희도 데려가 주세요."
"뭐어?"
모용환은 몹시 놀랐다. 전쟁터에 이 자매를 어떻게 데려가란 말인가. 그는 조금 화난 얼굴로 타이르듯 말했다.
"전쟁터는 노는 곳이 아냐. 게다가 너희는 아직 어려."
그러나 대교는 요지부동이었다.
"저희도 이제 열일곱, 열여섯이에요. 이만하면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컸다고요. 스승님들도 안계신데 언제까지 할일 없이 있을 수는 없어요.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요. 빨래도 하고, 밥도 할게요. 장군님들은 시중드는 사람이 필요하잖아요."
"......"
이미 사전 조사를 다 끝내고 결단을 내린 듯 했다. 모용환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대교와 얼굴을 맞대며 다정하게 말했다.
"아무도 너희가 뭘 해주길 바라지 않아. 너흰 그냥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거든. 궁내의 활력소라고나 할까?"
"이대로는 저나 소교나 마음이 편치 않아요. 언제까지 받기만 할 수는 없다고요. 이미 제갈 언니가 군사 자격으로 재가를 내 줬어요. 오라버니의 전속 시녀로 발탁이 났으니 오라버니만 허락해 주시면 되요."
'량아... 무슨 생각인 거야?'
모용환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시대에 자매들의 나이면 다 컸다고 할 수 있지만 겉보기에 대교, 소교는 발육이 늦어 본래 나이보다 두 살은 더 어려 보였다. 자매는 허락을 얻기 전까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앙증맞게 치뜬 두 눈에는 비장함마저 엿보였다.
결국 그는 승낙하고 말았다.
"좋아. 단, 절대 막사에서 벗어나면 안돼."
"네! 주인님!"
"네..."
대교가 활기차게 말하자 모용환은 그녀의 이마를 콩 쥐어박았다. 대교는 작은 비명과 함께 이마를 손바닥으로 감쌌다.
"주인님은 무슨 주인님. 정말 시녀라도 된 줄 알아? 그냥 평소처럼 대해."
"하지만...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것도 영 거북하단 말이에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날 오라버니라고 부르지 뭐라고 불러? 전처럼 대인~ 이렇게 부를래?"
대교의 말에 모용환은 기가 찼다.
"상향 언니나 조 언니가 오라버니라고 부르잖아요. 언니들은 아내니까... 우리도 그렇게 부르면 동격이 되잖아요. 그게 불편해요."
"별 걸 다 불편해 하는 거 아냐?"
사소한 투정이었다. 사춘기가 오면 이런 별 거 아닌 것에도 불편함을 느끼다 보다라고 생각한 모용환은 머리를 긁었다.
"오라버니도 이름이 외자인 언니들을 부를 때 애칭으로 부르니까, 우리도 오라버니를 마음대로 부를래요."
"흠. 그게 목적이었구나. 뭐, 마음대로 해."
대교의 속셈을 간파한 모용환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바꾸라고 하지 마세요. 약속해요."
"알았어. 뭐라고 부르고 싶은데?"
"아빠."
"쿨럭!"
순간 사레가 들린 모용환은 입을 막으며 기침을 해댔다. 그만큼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모용환은 생긋 미소 짓는 대교를 보며 황당해 했다.
"그건 좀..."
"바꾸라고 하지 않기로 약속했잖아요. 그치, 소교야?"
"...응."
소교까지 합세하자 모용환은 이 호칭을 바꾸기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날이 암담했다. 자신을 아빠라고 부르는 소녀들이 전속 시녀로 배속되다니. 전쟁터에서 이 아이들에게 아빠 소리를 듣는 자신을 병사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두통이 더욱 심해졌다. 끄응 앓는 소리를 낸 그가 자포자기한 얼굴로 물었다.
"왜 하필 아빠인지 들어나 보자."
"음... 아빠 품이 무척 포근해서요. 저희가 도적들에게 잡혔을 때 부모님들이 돌아가시긴 했지만 친부모님은 아니에요. 당숙 내외셨죠. 친부모님은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셨어요. 양부모님은 무척 엄격하셔서 안기는 건 생각도 못했어요. 그런데... 그 때... 아빠한테 구출되면서 안겼을 때... 꼭 친아빠한테 안긴 것처럼 따뜻하고, 포근했어요. 헤에. 그러니까, 정말 좋았어요."
"...저도요..."
대교는 쑥쓰러운 듯 작은 혀를 쏙 내밀었다. 아빠 같은 느낌이 난다는데 무슨 말을 하랴. 그는 한숨을 내쉬며 침상에 드러눕고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대교와 소교도 그의 양 옆에 베개를 놓고 조심스럽게 누웠다. 모용환은 실눈을 뜨며 나직하게 말했다.
"여기서 자고 가려고?"
"헤헤. 오늘은 아빠랑 같이 자고 싶어요. 침대도 넓잖아요."
"......"
소교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의지를 내비쳤다. 소교가 말없이 한 쪽 팔을 끌어안자 모용환은 험상궂은 얼굴로 돌변하여 자매를 꽈악 껴안았다.
"이리와! 날 놀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줄 테니."
"수, 숨 막혀요!"
"...하..."
그들은 그렇게 잠만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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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 잤지요. 짤방은 소교 재탕 모용환의 출진 소식을 입수한 시상에서는 반유비연합의 수뇌부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한손이라도 더 필요하다는 말에 장사를 잠시 비우고 한달음에 시상까지 달려온 금선은 방금 도착한 전령의 보고를 그대로 읊었다.
"모용환이 이끄는 5만 병력이 남하를 시작했다고 하오. 이제 군사가 지금껏 준비한 패들을 우리에게 보여줄 때가 되지 않았나?"
좌중의 시선이 육손에게로 향했다. 말끔하게 차려 입은 육손은 예전의 남루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어 마치 딴사람 같았다. 그녀는 펼쳐진 군용 지도 위에 손가락을 대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아군은 이곳을 뺏기면 절대 안 됩니다. 여기서 장사까지는 탄탄대로니까, 시상에서 죽기 살기로 막아야 한다는 소립죠. 높으신 분들이 알아 들으셨는지 모르겠네?"
모습은 변해도 특유의 비아냥거리는 말투는 여전했다. 금선과 한현 등의 안색이 울긋불긋해졌지만 이미 전권을 위임했으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아니꼽긴 해도 유일한 구원줄이니 육손을 믿어야 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년. 아주 기세가 살았구나. 전쟁이 끝나고 보자.'
'한현도 알 만 하군. 이런 계집을 지금까지 손도 못 댔다니... 이후 이 년은 내 첩으로 삼아야겠어.'
금선은 음흉한 내심을 숨긴 채 근엄하게 물었다.
"흠흠. 우리야 군사의 말을 따를 뿐이지."
육손은 그들을 보며 속으로 비웃었다.
'이 몸이 너희 놈들의 속을 모를 줄 알고? 뼛속까지 권위 의식으로 가득 찬 것들의 생각이란 뻔하지. 이 기회에 아주 나락까지 떨어뜨려 줄게.'
그녀는 전쟁이 끝나고 한현을 시상에서 축출할 생각이었다. 그 동안에도 몇 번이나 봉기를 일으킬 기회가 있긴 했지만 서두르지 않은 이유는 한현이 어딘가에 숨겨 논 막대한 자산 때문이었다. 10여 년간 시상을 다스리면서 한현이 축적한 부는 어마어마했다.
'저 등신은 그걸 활용할 생각도 못하고 쌓아두기만 하다니.'
이런 쪽으로는 한현도 꽤 세심해서 2년 동안이나 찾았지만 그의 비고(秘庫)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시상을 뒤엎어서 강제로 말하게 한다면? 죽었으면 죽었지 반란군에게 비고의 행방을 말할 한현이 아니었다.
'생명줄을 보여주고, 스스로 내놓게 한다.'
뻔히 죽을 상황이라면 죽어도 비고의 위치를 입 밖에 낼 그가 아니었지만 비고에 있는 돈을 조금만 써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상황에서는 다를 것이다. 육손은 모용환의 군대를 막아내면서 살 가능성을 열어 주고, 시간이 지나면 군수물자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한현에게 비고의 행방을 알아낼 계획이었다.
'그 돈이면 태수 따위 없이도 우리는 잘 살 수 있다고.'
그녀의 사상은 이 시대에서 엄청나게 혁신적인 것이었다. 육손은 다스리는 자가 없는 사회제도, 현대로 치면 직접민주주의의 초기 형태를 구상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높은 관직에 앉아 있는 자들은 다 똑같아 보일 뿐이었다.
"모용환군은 직접 이곳으로 오지 않을 겁니다. 이곳은 장강에 맞닿아 있어 배를 정박하고 싸우기엔 불리한 곳이죠. 아마 상류 쪽에 배를 댄 후 파양호(%26#37169;陽湖)와 장강을 잇는 지류 쪽으로 진군해 올 터. 이미 그 쪽에 주태, 위연 장군을 보내놨습니다."
"그들만으로 될까?"
"물론 정면으로는 상대가 될 리 없죠."
육손의 직설적인 말에 한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어떻게 막는다는 거지?"
"상대는 수춘성에 단신으로 쳐들어가 안량의 목을 벤 모용환입니다. 이 중에 그럴 능력을 가지신 분, 있나요?"
물론 있을 턱이 없었다. 삽시간에 고요해진 장내를 둘러본 육손은 소리 내어 웃었다.
"킥킥.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절 부르지도 않았을 테죠. 물론 정면승부는 안하니 두고 보십쇼."
"군사. 더 이상은..."
"아아. 심기를 거슬러 죄송합니다. 미천한 출신이라 예의라곤 쥐뿔도 없어서리..."
육손은 어느 선을 넘지 않고 계속해서 그들의 화를 돋구었다. 감택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한현과 금선의 반감을 키워서 좋을 것은 없지 않은가.
'무슨 생각이냐?'
"어쨌든... 저들은 우리가 연합한 것을 모르니, 초전에 큰 피해를 줘야 합니다. 그걸 위해서 요화님과 장양님을 보내 놓긴 했지요."
한현과 금선은 그 때서야 네 명의 장수가 육손의 명을 받고 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승전 보고를 받게 되면 알게 되실 겁니다."
육손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육손의 짐작대로 모용환은 바로 시상으로 가지 않고 파양호변의 강가에 배를 대고 진군했다. 강을 등지고 있는 시상을 공략하기 어려운 점도 한몫했지만 더 큰 이유는 배멀미를 하는 병사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강이 많은 강동 지방이지만 대부분의 백성들은 일생 동안 성 밖에까지 나갈 일이 없었다. 생전 처음 배를 타보는 병사들도 부지기수였으니 무리한 도강은 사기를 떨어뜨릴 우려가 있었다.
"이곳이 파양호로군."
모용환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푸른 호수를 보고는 감탄했다. 호수라는 것을 미리 알지 못했다면 바다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역시 중국대륙은 호수라고 해도 다른 나라의 호수와는 차원이 틀린 크기였다.
"우와! 이게 호수야?"
"허허. 난 이렇게 많은 물은 태어나서 처음 보네."
"용이라도 살고 있는 거 아냐?"
병사들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는지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수군거렸다. 모용환은 조금 시끄러워진 군대를 진정시켰다.
"조용! 호수 변을 따라 진군한다!"
"와아아아!"
계속 호수를 구경하면서 간다는 말에 병사들은 함성을 내질렀다. 뭐 신기할 게 있겠느냐마는 평생 산구석에서 살던 이들도 많았는지라 이런 거대한 호수는 삶에서 한두 번도 보기 힘든 것이었다.
"비가 왔나."
주변 땅이 조금 질척한 게 비가 온 모양이었다. 하긴 이제 여름이 가까워지고 있었으니 중원 남쪽 지방에는 우기(雨期)가 빨리 왔을 법도 했다.
"무지개다!"
"오오오!"
병사들의 말을 들은 모용환은 호수 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연이 만든 환상적인 광경이 한눈에 들어오자 그는 입을 벌렸다.
'이야...'
커다란 무지개가 호수 위에 형성되어 있었다. 무지개가 만들어진 걸 보니 정말 비가 오긴 왔나 보다. 오색찬란하게 빛나는 무지개는 병사들의 잔뜩 긴장한 마음을 순식간에 풀어줄 정도로 아름다웠다.
"햐. 나도 이런 건 처음 봐."
어느새 옆으로 말을 몰고 온 장료가 멍하니 무지개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을 들은 감녕은 풋 웃음을 터뜨렸다.
"이 정도에 감탄하다니. 장 공에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려."
"이게! 나는 감수성도 없는 줄 알아?"
"혈랑대의 악명을 들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걸. 틀린 말도 아닌데 뭐."
"입 다무시지."
그들은 소소한 말다툼을 하며 지루함을 달랬다. 셋이 있어도 이렇게 적적한데 후미를 이끄는 조운은 얼마나 심심할까?
'카메라라도 있으면 찍어두고 싶을 정도군.'
그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계속해서 진군했다. 이윽고 파양호 북쪽에서 뻗어 나온 지류가 장강으로 흘러드는 곳에 도착했다.
정찰조의 말로는 수심이 무릎까지 닿는 정도라고 했다. 강폭은 넓지만 수심이 그리 깊지 않다는 것은 사전 조사를 통해 모용환도 이미 숙지하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곳으로 진군한 것이기도 했고.
그가 막 강을 건너라는 명을 내리려 할 때 강 건너편에서 무수히 많은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둥! 둥! 둥!
"이야아아아아!"
요란한 함성 소리와 북소리에 모용환은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그는 말고삐를 당기며 미간을 좁혔다.
"적군인가?"
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선두에서 검은 수염을 기른 당당한 체격의 장수가 모습을 드러내며 외쳤다.
"적장 모용환은 들어라! 나는 위연 문장! 그대의 주군인 유비님은 도의를 아는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어찌하여 우리를 치려는 것인가!"
모용환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마주 외쳤다.
"치다니! 유비님은 한황실의 후예로서 자신의 것을 되찾으려고 하실 뿐이다! 이제 주인이 왔으니 마땅히 한현이 직접 나와 고개를 조아려야 할 터!"
"이미 황실이 망해버린 마당에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요구냐! 유비님이 황실의 피를 이은 것은 인정하나 이미 한은 멸망했다!"
"그렇다면 말은 필요 없겠군! 전군, 돌격하라! 이랴!"
"한바탕 놀아 보겠군!"
"아하핫! 달려!"
모용환은 청공검을 뽑아들며 선두에서 말을 달려 나갔다. 그 뒤를 감녕, 장료가 따르며 5만에 이르는 대군이 성난 파도처럼 위연군에게 밀려들었다.
강변에서 넓게 늘어선 위연군은 그들에게 마주 돌격하지 않고 전선을 형성한 채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었다. 적들은 강변위를 건너와야 한다. 굳이 아래로 내려갈 필요는 없었다. 고지(高地) 선점 효과를 노린 것이다.
위연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적군을 보며 침음했다.
"많긴 정말 많군."
그가 이끄는 군사는 1만 5천. 적은 3배가 넘는 수였다. 아무리 지형적인 유리함이 있다고는 하지만 적들이 너무 많았다.
"오는가."
적군의 선두에서 번쩍이는 푸른 검광. 모용환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상대는 그 무력으로 이미 이름이 드높은 장수. 위연은 손바닥에 땀이 배어남을 느끼고 쌍극을 고쳐 잡았다.
"위연!"
"안량을 벤 실력, 이 위 모가 받아보겠다!"
까앙!
두 장수의 무기가 불똥을 튀기며 본격적인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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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용환과 위연은 순식간에 십여 합을 겨루었다. 모용환이 알고 있는 위연의 무력은 96. 장료나 하후돈과 비견될 만한 무예를 갖춘 자였다. 힘도 힘이지만 저 쌍극은 정말 대응하기가 어려운 무기였다.
키릭!
청공검의 검신 사이에 쌍극이 비집고 들어와 자물쇠 맞추듯 사이에 끼워졌다.
'크!'
끝이 양 갈래로 갈라져 있는 중무기, 쌍극은 마치 뱀처럼 휘어들어와 청공검을 사이에 끼워 봉쇄시킬 수 있었다. 일반적인 창이 아닌 이런 기병(奇兵)을 처음 상대하는 모용환은 딸려가는 힘에 몇 번이나 청공검의 손잡이를 놓칠 뻔 했다.
"별로 경험은 없나 보군. 안량의 목을 베었다는 건 헛소문이었나!"
"계속 지껄여라!"
'제길. 돌아가면 대련에 더욱 힘써야겠군!'
무력이 100이라고 무예의 모든 기술을 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에 걸 맞는 신체와 감각이 이 세계로 넘어오면서 주어졌을 뿐이었다. 전투에 최적화 된 그의 몸은 여포와 비슷할 정도였지만 기술적인 면에서는 한참 부족했다.
그래서 모용환은 현대의 무술들, TV로만 보았던 K-1의 기술이라던가, 유도, 검도, 태권도 같이 현대에서는 보기만 하고 쓸 수는 없는 기술들을 연습했다. 아는 게 그런 기술들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환골탈태를 한 것처럼 최적화 된 몸은 마치 솜이 물을 흡수하듯 기술들을 익혀나갔다. 맨 처음 너무도 손쉽게 삼단 공중 돌려차기를 성공하자 얼마나 어안이 벙벙했던가. 그러나 검술은 어느 정도 손에 익긴 했지만, 아직 부족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싸움에는 운이 많이 작용했다. 여포와 겨루었던 것은 반격할 엄두도 못 냈으니 넘어가고, 하후돈은 그가 생각하기엔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 같았다. 명목은 대련이었으니까. 장료와 만났을 때도 어물쩡 겨루다 넘어갔고, 확실한 수확은 안량을 죽인 것인데 여기에는 요행이 많이 작용했다.
순간적인 기지로 안량의 다리에 매달려 암바를 걸어 그의 무릎 관절을 꺾지 않았다면 승부가 어떻게 됐을지는 그도 장담할 수 없었다.
결론은, 전쟁터에서 제대로 된 무장을 만나 싸우는 것은 위연이 최초란 소리였다. 쟁쟁한 무장들과 그나마 쉽게 겨루어서 만만할 거라고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역시 검보다는 몸으로 싸우는 게 편한데...'
그렇다고 전쟁터에서 냅다 뛰어올라 공중 돌려차기를 날릴 수도 없는 노릇. 그렇게 위연을 낙마시키면 다행이었지만 땅에 떨어져서 포위당하면 속수무책이었다.
몸과 머리는 정말 좋아졌지만 정작 그걸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게 딱 그의 상황이었다.
위연은 모용환과 겨루면서 계속해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적장은 상당히 소극적으로 나왔고 덕분에 이럴 여유를 얻은 것이었다. 역시나 전황은 많이 불리했다. 안 그래도 적은 병력인데 전선을 넓게 펼쳐 대규모 일전을 치루고 있다 보니 피해가 많았다.
'특히 저 두 장수는...'
그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와하하핫! 피라미들은 꺼져라!"
위연의 쌍극과 흡사한 양지극(兩枝戟)을 휘두르며 종횡무진 전장을 누비는 감녕.
"전장에서는 검보다는 창이지."
우아하게 창을 휘두를 때마다 병사 두셋씩을 저승으로 보내버리는 장료. 적어도 저 둘은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한 눈을 팔 시간이 있나!"
까아앙!
"크으윽!"
모용환이 양손으로 청공검을 쥐고 일자로 내리치자 귀가 아플 정도의 굉음과 함께 위연은 쌍극을 놓치고 말았다. 땅에 떨어진 쌍극은 반쯤 갈라져 무기로서의 효용을 잃은 상태. 그는 이를 악물었다.
'무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괴력은... 정말 무지막지한 힘이군.'
한 손으로 검을 휘두를 때는 몰랐는데 양손으로 내리치니 그 위력에 하마터면 낙마할 뻔 했다. 그는 모르겠지만 모용환은 말도 타지 않은 상태에서 적토마를 탄 여포의 방천극을 막아낸 신력(神力)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무기를 놓치자 승부는 갈린 셈. 위연의 방심으로 너무 쉽게 승리를 취한 모용환은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위연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후퇴하라!"
"이런! 어딜 가느냐!"
적병들이 일사분란하게 빠져나가기 시작하자 모용환은 급히 가슴쪽에 매달린 단검을 뽑아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위연에게 던졌다. 물론 죽일 생각은 없었기에 단검은 급소를 피해 날아갔다.
푹!
"크윽!"
단검이 왼쪽 어깨에 박히자 위연은 밀려오는 고통에 신음했다. 다행히 깊게 박히지는 않은 듯 했지만 이것으로 모용환과 온전히 맞설 수는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큭큭 웃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이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무슨..."
구우우우우!
위쪽에서 들려오는 심상치 않은 소리에 모용환의 얼굴이 굳어졌다. 땅이 울리며 무언가... 엄청난 것이 위에서부터 오고 있었다.
"설마?"
"그 설마다. 주태가 위에서 둑을 터뜨렸다. 전선을 넓게 잡은 것도, 너희에게 최대한 피해를 주려는 의도였지."
"어떻게..."
모용환은 뒤통수를 맞은 충격에 멍한 얼굴을 했다. 둑을 터뜨리는 수공(水攻)? 그 흔한 병법은 그도 당연히 예측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지형에서는 그런 방법이 불가능했다. 물은 장강에서 파양호가 아니라, 파양호에서 장강으로 흐르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왔을 때도 정상적으로 흐르는 물을 보고 안심하고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던가.
"매년 이맘때쯤, 비가 오면서 증수기(增水期)가 되면 일시적으로 장강의 물이 역류하게 된다. 이 지방의 토박이가 아니면 모르는 사실이지. 나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정작 이렇게 써먹을 줄이야. 역시 군사는 대단하군."
"...군사라고?"
"육손. 오늘 너를 참패시킨 장본인이다. 뒷수습이나 잘하는 게 좋을 거다. 으하하핫!"
위연은 한바탕 대소하며 말을 몰아 달려가 버렸다. 그를 추격할 여지를 잃은 모용환은 급히 고개를 돌려 강을 건너는 병사들에게 외쳤다.
"물러서라! 어서 물러서어어---!"
콰아아아아!
그의 외침은 어마어마한 양의 강물이 밀려오는 소리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도강하던 병사들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밀려오는 푸른 강물을 보고는 파랗게 질려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엄청난 양의 물이 유동하는 탓에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우르르 진동했다.
"으아악--!"
"안돼!"
"아아아악-!"
병사들은 처절한 절규와 함께 거센 강물에 순식간에 휩쓸렸다. 노한 수신(水神)에게는 한 치의 자비도 없었다.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는 그 수많은 군사들도 개미 떼에 불과할 뿐이었다. 물경 육, 칠천에 이르는 병사들이 강물에 휩쓸려 호수 쪽으로 내려가 버렸다. 그의 군대는 수영을 못하는 병사들이 대부분. 깊은 호수에 빠지면 어떻게 될지는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최대한 그들을 살려내야 했다.
"호수! 호수 변으로 가서 병사들을 건져내라!"
그 때 장료가 다급한 얼굴로 말을 몰아왔다.
"큰일이야! 저 쪽에 남겨진 후미가 습격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아!"
"뭐?!"
모용환을 눈을 부릅뜨며 자신이 건너온 강 건너편을 보았다. 커다란 함성소리와 검은 연기, 매캐한 냄새... 이제는 허탈한 기분마저 들었다.
"불... 화공(火攻)이다. 후미에 매복을 하고 있었던 거야..."
상황은 최악이었다. 뒤에서 얼마나 많은 적군들이 습격했는지는 모르지만 이 불이야 말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후미의 상황을 보니 양 옆에는 매복한 적군들이 습격하고, 퇴로에는 불길이 치솟은 것 같았는데 바람마저 남서풍이었다.
적장들은 그저 포위망을 단단히 굳히기만 해도 불길이 알아서 병사들을 처리해 주는 것이다. 불길과 적병들을 피해서 물 속으로 뛰어드는 병사들마저 있었다.
"후미에는 운아가... 운아와 아이들이 있어! 건너가야 돼!"
모용환은 가장 위험이 적은 후미에 조운과 대교, 소교를 같이 있게 해주었다. 서로 친한 사이니 조운의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는 의도였다.
"미쳤어?!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났다고! 순식간에 휩쓸릴 거야!"
"닥쳐! 그럼 여기서 가만히 앉아 있으란 거야?"
모용환은 장료의 만류를 무시하며 강물 속으로 뛰어들려고 했다. 그 때 감녕이 그를 붙잡았다.
"장군. 이성을 찾으십쇼."
"놓으라니까!"
그는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몸부림치며 감녕의 팔을 떼어 내려고 했다. 그러자 어느새 다가온 장료가 그의 따귀를 갈겼다.
짝!
"정신 차려! 이 자식아! 누구는 걔들을 구하고 싶지 않은 줄 알아? 너만 잘난 척 날뛰지 말란 말이야! 적어도 군단장이라면!"
장료의 눈시울도 붉어져 있었다. 조운이나 태사자는 대련을 함께 하면서 다른 여인들보다도 그녀와 더욱 친밀한 사이였다. 더욱이 대교나 소교, 특히 대교는 태사자의 제자이면서 그녀도 수련하는 것을 많이 도와줬기에 남다른 정을 붙였던 아이였다.
장료라고 그녀들이 걱정되지 않겠는가.
모용환은 그녀의 눈을 보면서 미친 듯이 끓어오르던 마음을 많이 가라앉혔다. 그만 그녀들을 걱정하는 게 아니었다. 너무 자기 생각만 한 것 같았다.
그는 붉어진 볼을 문지르며 씁쓸하게 웃었다.
"... 고맙다. 정신 차리게 해 줘서. 하지만 난 저기로 건너가야겠어."
"장군!"
"너, 아직도..."
"내 머리는 이제 지극히 냉정해. 감녕, 네 무기 좀 빌리자."
느닷없이 모용환이 양지극을 가리키자 감녕은 의아해 하면서도 양지극을 내주었다. 모용환은 곳곳에 쓰러져 있는 병사들의 시체에서 허리띠들을 가져와 길게 이어 묶었다. 단단하게 밧줄이 만들어진 것을 확인한 그는 허리띠로 만든 밧줄을 양지극의 손잡이 부분에 매달았다.
모용환이 또 무슨 행동을 벌일까 불안하게 지켜보던 장료는 그가 하는 모습을 보고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현대에서 구조 작업을 벌일 때 흔히 보던 로프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걸 저기로 던질 생각이야?"
"그래. 흐아아압--!"
"내, 내 무기가!"
감녕은 저 멀리 날아가는 자신의 애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푹!
모용환이 전력을 다한, 어마어마한 힘으로 던져진 양지극은 강 저편 기슭에 손잡이만 보일 정도로 깊숙하게 꽂혔다. 줄을 당겨 빠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고정된 것을 확인한 모용환은 감녕에게 밧줄의 끝을 넘겼다.
"날이 날카로워서인지 잘 박혔군. 꽉 잡고 있어. 놓치면 내가 휩쓸려 갈지도 모르니까. 무기는 나중에 다시 회수해 올 테니 걱정 마."
"예."
감녕은 죽어도 놓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밧줄을 붙잡았다. 이윽고 밧줄에 매달린 모용환은 천천히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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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환이 한현이나 금선같은 듣보잡을 상대하는데 무슨 전략을 세웠겠습니까... 육손이 있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몰라도.
좀 이따 연참할지도 모르겠는데 ... 아, 모르겠군요. 몇 시간 뒤 컨디션에 따라. -_-ㅋ
참, 파양호가 증수기에 역류한다는 것은 실제로 있는 일입니다 ^^
짤방은 느닷없이 유비 "대교야! 내 뒤에서 절대 떨어지지 마!"
조운은 말을 탈 줄 모르는 소교를 자신의 등 뒤에 태우고 퇴로를 뚫고 있었다. 앞에는 강, 뒤에는 불. 그녀는 앞뒤는 포기 하고 오른쪽으로 말을 몰아가고 있었다. 우왕좌왕하던 병사들도 그녀를 따라 우르르 몰려갔다.
하지만 적병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어디서 이 많은 병사들이 숨어 있었는지, 단단하게 양 옆의 고지를 지키고 선 병사들은 겹겹이 벽을 형성하고 있었다.
"적이 너무..."
사지가 날아다니는 참혹한 광경에 대교나 소교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지만 그래도 울고 불지는 않았다. 그러기엔 자매들은 너무 많은 경험을 했다.
"많아 보일 뿐이야! 오라버니가 도와주러 오실 때 까지 버텨야 해!"
"하지만 강이 너무 불어났어요!"
"하앗!"
조운은 대교의 말에 대답할 겨를도 없이 여기저기서 칼날을 들이대는 적병들 사이를 휘젓고 다녔다. 그녀의 신기에 가까운 창술은 뒤에서 날아오는 눈 먼 검까지도 쳐낼 만큼 철벽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살인을 두려워하는 여린 소녀가 아니었다.
'오라버니가 믿고 군을 맡긴 이상 퇴로를 뚫어야 해.'
적들은 난전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래야 명령 체계가 잡히지 않고, 후퇴를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그녀와 소교, 대교 등의 소수만 탈출 할 수 있을 뿐이다. 조운은 눈을 빛냈다.
그녀의 시야에 한 사람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적장들은 모두 강을 건넜다! 이곳에 남겨진 놈들은 차려진 밥상이니, 마음껏 해치워라!"
백색의 갑옷을 입고 적군을 진두지휘하는 적장이 있었다. 장양. 육손이 요화와 함께 매복시킨 장수였다.
'저 사람을 없애면...'
"언니! 어디 가요!"
상황을 타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운은 지체 없이 장양에게로 말을 몰았다.
장양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후미에 남겨진 군대를 압박하고 있었다. 육손의 전략이 그대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수공으로 허리를 끊고 지휘관이 없어진 적 병력들은 난전과 화공으로 섬멸한다. 미리 맞춰진 것처럼 진행되는 상황에 그는 감탄했다.
'그런 인재는 당연히 주군인 금선님께 데려와야 할 것이다.'
결코 한현 따위에게 있을 인재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도토리 키재기였지만 어쨌든 그에게는 금선이 더 높게 평가되는 모양이었다.
장양은 불을 피해 도망쳐오는 적병들을 단숨에 베어냈다.
"버러지 같은 것들!"
"크아악!"
"으하핫! 강동의 별이라는 자가 적장이라더니, 별 수 없는 자로구나!"
부우웅!
그 순간 섬뜩한 파공음과 함께 예리한 창날이 그의 목을 갈라왔다.
"으헉!"
헛바람을 삼킨 장양은 들고 있던 검을 들어 창끝을 막아, 겨우 목이 잘리는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누, 누구냐!"
그의 앞에 푸르릉거리는 말을 타고 나타난 사람은 웬 소녀를 뒤에 태운 여성, 조운이었다. 그녀는 창대를 빙그르르 돌린 후 장양에게 척 하고 겨눴다.
"조운이라고 해요. 당신의 목이 필요합니다."
"이 계집이!"
당당한 겉모습과는 달리 장양의 속내는 낭패감으로 가득했다. 방금 전 일수의 겨룸으로 조운의 실력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 깔끔한 찌르기는 오랜 고련을 거듭한 창의 명인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옆면이 동그랗게 패인 검을 보고는 식은땀을 흘렸다. 창의 찌르기는 힘을 한곳에 모아 극대화시키는 것. 별로 좋은 창 같지도 않은데 명검 축에 속하는 자신의 검을 이렇게 만들어 놓을 정도라면...
'평범한 철검이었으면 무기와 함께 머리가 뚫릴 뻔 했다... 대체 누구지? 이런 장수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모용환이 적들에게 육손이 있다는 걸 몰랐다면, 육손 또한 모용환의 군대에 조운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모용환을 비롯한 혈랑대의 장료나, 장강의 지배자 감녕은 그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조운은 무명이었다. 당연히 육손이 그녀를 알 리가 없었다.
모용환이 그 작은 사실을 몰라 낭패를 본 것처럼, 육손의 전략 또한 조운이라는 존재로 인하여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챙! 챙!
"으으!"
조운이 쉴 새 없이 몰아치자 장양은 연신 뒤로 물러났다. 조운은 공수의 조합이 완벽했다. 도저히 뚫고 들어갈 틈새가 없었다.
체구는 작지만 마치 거대한 바위가 가로막고 있는 느낌에 장양은 전의를 상실하고 있었다.
'젠장맞을! 이번 전쟁만 끝나면 인생이 필 텐데... 이게 무슨!'
"여기서 죽을 수는 없다!"
포효하듯 외친 그는 방어를 도외시하고 조운에게 달려들었다. 살기어린 그의 눈을 본 조운은 침착하게 그의 공격을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노린 건 조운이 아니었다.
"...아...!"
그녀의 뒤에 타고 있던 소교였던 것이다. 소교는 아무 반응도 못하고 망연자실 자신을 향해 검을 찔러 오는 장양을 보고만 있었다.
"비겁한!"
조운이 뒤늦게 장양을 밀어내려고 하지만 당황한 탓에 그녀의 창대는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장양은 겁에 질린 사슴처럼 떨고 있는 소교를 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이 소녀와 무슨 관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소교를 죽인다면 조운에게 틈새가 보일거라 여긴 것이다.
"크하하... 엇!"
깡!
한바탕 웃으며 검을 휘두르려던 장양은 문득 옆에서 날아온 검이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자 놀라서 그 쪽을 바라보았다. 머리를 양 갈래로 곱게 묶은 소녀가 이를 악물고 검을 뻗은 것이 보였다. 대교였다.
"이런 빌어먹... 으윽!"
대교에게 노호성을 내지르려던 그는 결국 조운의 창에 심장이 뚫려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장양이 죽은 것을 본 주위의 적군들은 슬금슬금 그녀에게서 물러서기 시작했다. 일방적으로 장양을 몰아붙이던 그녀의 창술을 보았기 때문이다.
"대교야! 정말 잘했어!"
대교는 무척 긴장한 듯 이마의 땀을 닦았다. 하마터면 소교가 죽을 뻔 했다. 소교는 아직도 눈을 꼭 감고 있었다.
"하아아... 스승님께 배운 대로 했는데... 다행이네요..."
"네가 소교를 살린 거야."
조운의 말에 대교는 힘없이 미소 지었다. 힘겹게 싸우던 병사들은 장양의 죽음에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야아아! 적장이 죽었다!"
"조운님이 적장을 죽였다!"
조운은 그 기세를 몰아 주위의 아군들과 함께 적병들을 치기 시작했다. 지휘관을 잃자 오른쪽에 매복해 있던 적군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대로 간다면 퇴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군을 섬멸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예상보다 적군의 수가 더 적었기 때문이다. 많아 보이기 위해 늘어선 것일 뿐, 실상은 안 그래도 없는 병력에서 뽑아낸 별동대였기에 오른쪽과 왼쪽의 수를 다 합쳐봐야 1만도 되지 않았다.
'왼쪽에도 지휘하는 사람이 있을 거야.'
조운은 말머리를 왼쪽으로 돌렸다. 그녀의 생각대로 왼쪽에 매복해 있는 병사들을 지휘하는 사람은 요화였다.
그녀가 막 왼쪽 고지에 도착했을 때, 느닷없이 커다란 함성이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아아---!"
"적장의 목을 벴다--!"
조운과 대교는 멀뚱히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적장이 죽었대요, 언니."
"누가...?"
그녀들이 의아해 하고 있을 때 소교는 조운의 등 뒤에서 빼꼼 머리를 내밀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병사들 사이로 그녀들 쪽으로 걸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아빠."
소교의 말에 조운과 대교는 그녀의 시선이 향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전신이 핏물로 범벅이 된 모용환이 다가오고 있었다. 푸른색의 전포는 적군의 핏물로 원래부터 붉은색이었던 것처럼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모용환을 보자 조운과 대교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오라버니!"
"아빠!"
모용환은 씁쓸한 얼굴이었다. 특히 조운과 대교의 얼굴에 묻어 있는 핏물을 보자 더욱 자책감이 들었다. 자신이 못난 탓에 저런 험한 꼴을 당하게 하지 않았는가. 물론 전쟁터에서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될 수 있으면 그녀들은 이런 상황에 놓이지 않길 바랬었다.
그런데, 처음 건너오기 전에 한 걱정은 기우였나 보다.
'운아의 실력을 너무 낮게 봤나.'
요화를 베기 전 들은 아군의 함성은 아마 조운이 적장을 벴기 때문에 터진 것이리라.
"너희들이 준 전포... 처음부터 이렇게 만들어 버렸네. 미안하다."
"아니에요! 옷이야 빨면 되죠! 그런데 어떻게 오신 거예요?"
"강을 건너 왔지. 설명은 나중에 하자. 일단 상황부터 수습해야 해. 운아, 우익을 맡아줘."
모용환의 말에 조운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맡겨 주세요."
모용환은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목에 핏줄이 돋을 정도로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유비군의 제2군단장 모용환이다! 적장들은 모두 죽었으니,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는 자는 살 것이요, 저항하는 자에게는 오직 죽음뿐이다!"
가히 사자후(獅子吼)라 할 만한 외침이 전장을 쩌렁쩌렁 울리자 그가 이끄는 병사들은 한층 사기가 고양되어 우레와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우아아아아--!"
"강동의 별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모용환의 지휘 아래 매복에 당했던 후미의 상황은 차츰 정리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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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약하시다는 분이 많군요. 주인공이 이세계로 넘어온 시간은 1년도 안 됐습니다. 이정도 편수가 되니 길어보이시는 건가 -_-ㅋ 반년 좀 넘나? 그 정도 됐는데... 평범한 일반인이 그 시간 내에 최고의 무장들과 대등하게 겨룰 정도면 많이 성장했다고 보는데요.
주인공은 넘어오면서 천재가 됐죠. 그런데 아무리 천재라도 모든 무예를 그 짧은 시간안에 다 익힐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죠. 무협에서 보면 끝내주는 재능을 가진 기재가 1년도 안되는 시간 안에 절대고수가 될 수 있었나요..
군대 경험도 그렇습니다. 한국에서 아무나 집어서 5만 병사 지휘하라고 하면 잘 할 까요. 병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 말이죠. 쓰진 않았지만 주인공도 나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머릿속에 지식이 담겨 있는 것과 막상 활용하는 건 다른 법이죠.
쓸데없는 글을 남겨 죄송합니다. 지웠습니다. 제2군단은 일단 강의 상류를 이용한 도강 후에 진을 쳤다. 육손의 수공과 화공, 매복에 연이어 당한 덕분에 2군단의 피해는 막심했다. 가장 많은 병사들이 밀집되어 있었던 중앙의 허리가 끊겼던 탓에 물에 빠져 죽은 자들이 몇 천은 되었고, 불에 타죽은 자들도 비일비재했다. 오히려 칼에 찔려 죽은 자들 보다 물에 빠지고 불에 타서 죽은 자들이 더 많을 지경이었다.
5만이었던 군대는 이제 3만이 간신히 넘는 정도가 되었다. 사기는 바닥이었고 부상자들도 많았다.
모용환은 전용 막사에 제장들을 소집했다.
"후우."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손을 이마에 대고 있었다. 초전부터 이렇게 박살이 나다니. 어디 예상이어 했던 결과던가. 수하 장수들을 볼 낯이 없었다.
"내 불찰이다."
감녕이 그를 두둔했다.
"장군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렇게 맘 상해 할 것 없어. 지금 시기에 물이 역류할 줄 누가 알았겠냐고? 위연도 토박이만 아는 사실이라고 했잖아. 수공에만 당하지 않았더라도 매복이나 화공 같은 것엔 피해가 거의 없었을 텐데."
장료의 말 대로였다. 물에 휩쓸려 진형이 흐트러지지만 않았어도 소수의 매복에 그렇게 휘둘릴 일은 없었을 테고, 퇴로가 차단되어 불길에 당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위로도 모용환에게는 전혀 힘이 되지 못했다.
"운아가 아니었더라면 피해가 더 컸을 거야. 적절한 판단이었어."
"당연한 일이었어요."
조운이 볼을 긁적였다.
"그나저나 이제 시상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야. 강도 없고. 우리도 당하고만 있던 건 아니었어. 적어도 둑이 터지기 전에 피해를 꽤 입었을 테고, 네 말로는 매복조가 1만 정도였다며? 그들을 섬멸했으니 아주 손해를 본 건 아니야."
"아마 매복조가 전멸 당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2만을 잃고 적에겐 1만이 넘는 피해를 준 것이 그나마 거둔 수확이었다. 그것도 못했으면 완패를 당할 뻔 했다. 모용환은 침중하게 말했다.
"오늘에서야 안 사실이지만... 상대는 한현, 금선 같은 자들이 아니었어. 적들을 지휘하는 자는 육손이야."
"그 놈이 누군데 장군이 그런 소릴 하십니까?"
"흐음. 그 놈이 무척 까다로운 놈이지."
육손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감녕이나 조운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오직 장료만이 육손의 무서움을 알고 있다. 연의에서 관우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며 후에 분노한 유비가 촉한의 대군을 이끌고 침공하자 화공으로써 막아내고, 오나라의 승상이 된 인물. 원래대로라면 주유의 후계자로 훨씬 나중에야 나올 인물이 지금 버젓이 나타나 그의 앞길을 막고 있는 것이다.
"위연은 금선 휘하에 있는 주태가 둑을 터뜨렸다고 했으니... 금선과 한현이 동맹을 맺은 것 같다. 이래서야 각개격파를 하려던 애초의 계획이 완전히 무산됐어."
조운이 걱정스레 물었다.
"그들이 성 안에서 농성을 하면 어떻게 하죠? 군사들의 숫자가 너무 줄었어요..."
금선과 한현의 군사를 다 합쳐 봤자 3~4만 정도일 것이다. 그래서 5만 정도면 충분하다 여겼는데, 2만을 잃었고, 그들이 동맹을 맺은 상태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못해도 시상에는 2만 이상의 수비 병력이 있을 것이다.
장료도 조운의 말에 수긍했다.
"공성(攻城)은 통상적으로 수성(守城)의 몇 배는 되는 병력이 필요해. 그래서 우리도 넉넉잡아 5만을 이끌고 나온 거고. 하지만 지금은 몇 배는커녕 두 배도 되지 않아. 건업에서의 지원은 기대할 수 없는 상태고."
"......"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모용환은 머리를 싸매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지금 상태를 정리해 보자. 아군은 3만. 적은 대략 2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 상황에선 보편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적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농성을 할 게 뻔하니까. 젠장! 2만이나 되는 병사들을 너무 쉽게 잃었어...'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기는 힘든 법이다.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후회가 아니라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지혜를 머리 속에서 뽑아내는 일이었다.
하지만 첫 패전의 충격이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량아가 준 서찰을 봐야 하나?'
그는 출진 전, 제갈량이 혹시 원정길이 어려워진다면 펼쳐 보라고 준 서신을 품속에서 꺼냈다. 모용환이 꼬깃꼬깃 접혀진 서신을 꺼내자 장료는 의아해했다.
"갑자기 무슨 쪽지를 꺼내?"
"잠깐만."
'량아의 걱정이 기우인 줄 알았는데... 설마 정말 이걸 펼쳐보게 될 줄이야.'
말은 하지 않았지만 유비만큼 제갈량도 그의 원정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서신도 남몰래 건넨 것이다. 공식석상에서 주지 않은 것은 유비를 안심시키기 위한 배려였으리라.
작은 서신에는 단 네 글자만이 쓰여 있었다.
'조호이산(調虎離山).'
호랑이를 산에서 떠나게 하라. 이 글자를 본 순간 어떤 생각이 모용환의 뇌리를 번쩍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무릎을 탁 치며 벌떡 일어섰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어!"
제장들은 영문을 몰랐지만 모용환이 기뻐하니 덩달아 환한 얼굴을 했다.
"정말이야?"
"오라버니, 이길 방법을 찾으신 거예요?"
"역시 장군이십니다!"
모용환은 지금쯤 건업에서 유비를 도와 내정을 행하고 있을 제갈량을 떠올리며 서신을 다시 품속에 집어넣었다.
'고마워. 량아.'
그는 씨익 웃었다.
"난 적을 몰라서 처참하게 당했지만 적도 우리에 대해서 모르는 게 많아. 육손이 행했던 방법을... 그대로 되돌려 줄 생각이야."
상처 입은 호랑이는 더욱 무서워지는 법이다.
모용환의 군대를 상대로 거둔 대승은 직접 군을 이끌고 돌아온 위연에 의해서 생생하게 보고 되었다. 하지만 후미를 기습 공격했던 장양, 요화가 이끄는 매복조는 단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했다. 육손은 이것이 무척 의외였다.
"위연 장군. 정말 적장들이 모두 강을 건넌 후에 둑을 터뜨린 것이 확실합니까?"
그녀의 물음에 위연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분명 모용환, 장료, 감녕이 모두 달려나온 후에 신호를 보냈소. 내 생각에는 후미에 남겨진 병력이 의외로 많아 공멸(共滅)한 것이 아닐까 싶소만..."
"공멸이라... 그럴 수도 있겠네요."
가능성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시상이나 장사의 병사들에 비해 모용환의 군대는 훈련이 잘 되어 있었고, 장양이나 요화가 뛰어난 맹장은 아니었으니까.
위연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매복조가 전멸당하긴 했지만 적들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소. 사실 이것만 해도 이번 전쟁은 이긴 게 아니오? 농성만 하면 적들은 우릴 절대 이길 수 없소."
원래대로라면 매복조가 후미를 전멸시키고 돌아와서 완전한 우세를 점하는 것이었지만 이것만 해도 어딘가.
"하긴, 5만의 병력이 3만으로 줄었다고 하더군요. 설마 확연히 약세인 우리가 농성을 하지 않고 나와 있을 줄은 몰랐을 테니까요. 히야, 모용환의 표정은 어땠나요?"
"군사의 작전에 당하자 혼이 달아난 모습이었소."
"큭큭. 알만 하네요."
육손이 키득대자 한현과 금선은 한 시름을 던 얼굴이었다. 그들은 육손을 새삼 다른 눈으로 보고 있었다. 정말로 모용환군을 격퇴할 줄이야.
"자. 이제 그 놈들이 물러가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건가?"
"일단은 그렇다고 볼 수 있는데..."
육손이 말끝을 흐리자 한현은 짜증을 냈다.
"그렇다면 그런 거지 볼 수 있는 건 또 뭐야? 군사. 확실히 말하도록 해."
'그렇게 쉽게 물러갈까?'
뭔가 꺼림칙했다. 아무리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지만 이렇게 쉽게 물러날 인물이면 강동의 별이란 명칭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육손이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여 있을 때, 하늘이 답이라도 내주듯 한 병사가 황급히 대전 안으로 달려왔다.
"금선님! 큰일났습니다! 모용환이 이끄는 군대가 장사로 향하고 있다 합니다!"
"뭣이라!"
육손 또한 아차 하는 표정이었다. 설마 코앞에 있는 시상을 내버려두고 금선이 자리를 비운 장사로 방향을 돌릴 줄이야!
금선이 거의 전병력을 이끌고 시상에 지원을 온 탓에 장사에는 몇 천의 수비 병력밖에는 없었다. 모용환의 3만 병력이 들이닥친다면 장사가 그의 손에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금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한현! 나는 돌아가야겠소! 이곳이야 당신네 땅이니 당신은 걱정 없겠지만, 나에게는 장사가 점령당하면 아무 소용이 없소! 주태! 당장 장사로 갈 준비를 해라!"
"예!"
안 그래도 없는 병력이 분산되게 되면 안 된다. 육손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금선을 막았다. 지금 상황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1만의 매복조만 잃지 않았더라도! 애초에 이런 상황은...!'
"금선님의 병력이라야 약 1만 5천! 어떻게 3만의 군사에 대적하려 합니까! 상황 파악을 하시지요!"
"닥쳐라! 이 천한 년이 고분고분 말을 들어줬더니 끝까지 기어오르려 하는 구나! 최대한 빨리 입성하여 농성을 한다면 어떻게든 막을 수 있다!"
어차피 급조된 동맹이었다. 그 단결력에는 한계가 분명하게 존재하기 마련. 육손은 금선을 막을 명분이 없었다. 그녀는 얼굴을 구기며 발을 굴렀다.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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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격개시-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죄송하게 됐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리플에 굉장히 민감해져서... 간혹 필요 이상으로 흥분할 때도 있거든요...
모용삼국지 처음 부분을 읽으셨으면 알겠지만.. 좀 날림입니다. 서문에도 있듯이 원래 가볍게 쓰려고 한 글이니까요. 묘사하기도 귀찮아서 뭐 특기 [은밀] [반격]발동. 이런 식으로 써놓았습니다.
그러다 많은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글에 대한 애정이 생기다 보니 제대로 맘 잡고 쓰게 된 겁니다. 시간이 나면 앞부분도 리메이크할 생각이고요. 여기저기 어설픈 부분이 민망할 정도로 보입니다. 이거 연재한지 한달 정도 됐는데... 짧은 기간이지만 리플로 해주신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하루 2~4연참 하는 것은 음... 지금 솟구치는 창작욕이라는 불이 꺼지면 하루 1번 올리는 것도 귀찮을 정도가 되겠지요. 아직까지 심지는 타오르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어떨 때면 그냥 게임으로 설정할 껄 하는 생각도 합니다. 뭐든지 간단하게 할 수 있으니... 적군에게 [교란]을 성공시켰다. 쩝;; 현실이다 보니 그 과정까지 다 써야 하고. 그러다 보면 h씬(*-_-*)이 줄게 되는 거니. 전쟁 끝나면 h씬도 좀 많이 나와줘야겠죠. 첫타가 어떤 여자가 될 지는 작가 마음... 흠흠. 결국 금선은 1만 5천의 잔여 병력을 이끌고 시상을 떠났다. 이제 시상에는 한현의 팔천여 병력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육손은 한현에게 간언을 했다.
"징병을 하십쇼. 금선이 당한다면 지금의 수비병으로는 모용환군을 감당할 수 없어요."
하지만 한현은 심드렁했다.
"이봐, 생각을 해 봐. 이미 놈들은 이곳에서 벗어났어. 금선의 말마따나 지친 3만의 병사가 쌩쌩한 1만 5천보다 장사에 일찍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지금이야 좀 거리가 벌어졌겠지만 머지않아 곧 따라 잡을 거야. 수비 병력까지 합치면 장사에 있는 병사들은 약 2만 정도가 돼. 놈들은 못 이겨."
'이 돼지가! 뭘 믿고 이렇게 낙관적인 거야!'
그녀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최대한 나긋하게 말했다. 하지만 얼굴 근육은 강하게 경직되어 있어 무척 어색해 보였다.
일단 한현에게 경계심을 심어 줘야 했다.
"장사의 수비 병력이 늘어났다는 걸 알면 또 다시 회군해서 시상으로 올 텐데... 뭐, 태수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습니까?"
물론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병사들은 전쟁보다 과로로 죽이고 싶지 않은 이상에야 시상에서 장사까지 두 번이나 왕복을 시킬 리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할 지능이 없는 한현에게는 잘 먹혀들었다.
"허억! 그럴 수도 있겠군! 젠장,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쯧쯧.'
육손이 혀를 차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한현은 그녀에게 매달렸다.
"군사! 어떻게 방법이 없겠나? 성민들이 날 위해 싸울 리가 없지 않나!"
참으로 한심한 걱정이었지만 나름대로 일리는 있었다. 한현의 악정은 성민들에게 오랫동안 앙심을 품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손이 이렇게 그에게 비아냥거릴 수도 있는 것이고.
'하긴. 오히려 들고 일어나지 않으면 다행이지. 이 기회에...'
"돈을 준다고 하십쇼. 태수님께 남은 패는 오직 돈 뿐입니다."
그녀는 비고의 위치를 알아내기로 마음먹었다. 육손이 말하는 게 자신의 비밀창고를 풀어 용병을 고용하듯 성민들을 징병하라는 소리임을 알자, 한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방법밖에는 없나?"
어지간히도 싫은 모양이었다.
"돈을 푼다면 시름을 덜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나중에 그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크으!"
육손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자 한현은 벌벌 떨었다. 노후를 위해 아득바득 모은 돈인데 써보지도 못하고 죽다니! 그런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됐다.
'이 년에게 위치를 알게 해주더라도 나중에 다시 바꾸면 되니까... 그래, 눈 딱 감고 이번만 풀자. 이 고비만 넘기면...'
"따라와. 절대 아무에게도 비고의 위치를 말해선 안돼. 징병은 네게 일임할 테니... 알아들었겠지?"
"아무렴요."
시상에서 떠나온 지 하루. 금선은 병사들을 다그치며 행군을 강행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모용환 군보다 늦게 되면 자신은 모든 기반을 잃어 방랑군이 되는 것이다. 그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었다.
"워워."
낮은 언덕 아래를 지나 선두에서 말을 몰던 주태는 행군을 멈추고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불길한 기운이 이 근방에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오랜 시간 동안 전장에 몸담았던 장수의 감이었다.
"주군!"
"뭐냐?"
금선은 짜증이 치밀어 소리를 빽 질렀다. 주태가 무용은 뛰어났지만 눈치가 없는 게 늘 마음에 안 드는 금선이었다. 지금 자신은 이렇게 다급한데 수하는 태평하게 말을 멈추고 말을 거는 게 아닌가.
"예감이 좋지 않습니다."
"에잇! 그 따위 예감 때문에 행군을 멈추었단 말이냐!"
"와아아아아!"
그 때 느닷없이 두 무리의 병사들이 커다란 함성을 지르며 나타났다. 주태와 금선은 경악했다. 앞의 언덕에서, 뒤의 언덕에서 나란히 나타난 병사들은 금선군의 앞뒤를 가로막으며 포위했다.
"아저씨, 감이 좋은데? 근데 눈치 깠으면 바로 회군을 해야지. 너무 늦었어."
"장료! 장사로 향했다고 들었는데!"
주태는 낮게 신음했다. 앞을 가로막는 병사들을 이끄는 자는 바로 장료 문원이었다. 혈랑대의 대장으로 있다가 유비군의 산하로 들어간 맹장.
장료는 창대를 돌리며 미소 지었다.
"동향이니까 우리가 이렇게 만난 거 아니겠어? 좀 더 나중에 올 줄 알았는데, 저 삐쩍 마른 아저씨가 어지간히 다급했나 보네? 아하핫!"
금선은 자신을 놀리는 장료의 말에 발끈했지만 상대가 혈랑대의 대장이라는 것을 아는 이상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
주태는 그녀가 이끌고 온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잔존 병력이 3만이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적군. 나머지 지휘관들은 어딨지?"
"여기엔 1만 5천 뿐이야. 그 쪽이랑 비슷할걸? 감녕이랑 대장도 없고."
이곳에 매복하고 있던 자들은 장료와 절반의 군사들이란 소리였다. 그럼 나머지 병력과 그 두 명의 장수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여기서 시간을 끌고 장사를 치는 건가?"
"글쎄... 날 이기면 말해 줄게. 덤벼."
금선은 장료와 주태의 대화를 듣고 길길이 날뛰었다. 주태의 말대로 장료의 병력은 여기서 시간을 끄는 별동대고, 적의 본진은 장사를 치러 갔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는 후미로 들어가며 주태에게 명했다.
"주태! 어서 저 계집을 끝장내고 길을 뚫어라! 여기서 지체하면 안 된다!"
그러면서 자신은 뒤로 쏙 빠지는 금선이었다. 뒤에도 적병들이 있긴 했지만 모용환과 감녕이 없다고 했으니, 그 쪽은 안전할 거라 여긴 것이다. 장료가 혈랑대를 이끌며 무명을 천하에 떨쳤지만 주태 또한 위연과 함께 남방에서 손꼽히는 용장. 병사들의 수도 비슷했다. 충분히 해볼만한, 아니 적병들이 지쳤다는 걸 감안하면 이기는 싸움이었다.
"죽여라아아!"
"으아아아--!"
차앙!
선두의 병사들이 격돌하고 장료와 주태의 병기가 불똥을 튀겼다. 주태는 스산한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구환도(九環刀)를 떨쳐 내었다.
짜랑! 짜랑!
"이크!"
구환도에 매달린 아홉 개의 쇠고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자 장료가 타고 있던 말이 놀라서 움찔하는 바람에 머리카락 몇 가닥이 잘린 장료는 얼른 창대를 내리고 몸을 숙여 목 언저리를 스쳐지나가는 구환도를 피해냈다.
"위험한 무긴데! 아저씨!"
"매복을 했으면 바로 공격하는 게 병법의 기본! 장료, 넌 실수한 것이다!"
매복이 완전하게 들킨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자신과 떠들어 대느라 준비할 시간을 준 장료를 책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장료는 어찌 된 일인지 여유로워 보였다.
"그럴까? 난 말이지, 당신의 주군이라는 말라깽이가 뒤로 가줬으면 했다고. 그 겁쟁이는 예상대로 움직이더군. 뒤에 범이 있는 것도 모른 채 말이야."
"뭐라고?"
"하하핫! 조금 있으면 알게 돼!"
금선은 후방에서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물론 전방은 아니고 뒤에서 몸을 숨긴 채 소리만 버럭 지르고 있었지만, 그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그는 더욱 목에 힘을 주고 외쳤다.
"적장은 머지않아 주태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 모두 힘을 내라!"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사기가 오른 함성이 아니라 처참한 비명소리들 뿐이었다. 한 쪽에서 병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며 핏물이 솟구치는 광경이 금선에 눈에 들어왔다. 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저, 저건 뭐야?!"
은색의 갑옷과 투구를 걸친 장수였다. 한 자루 창을 귀신처럼 쓰며 거대한 폭풍같이 전장을 휩쓸고 있었다. 창날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빠르기로 휘둘러지면 어김없이 비명소리와 함께 피보라가 일었다.
금선에게 더욱 무서운 사실은 그 장수가 점점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미 둘 사이의 거리는 코앞이었다.
"으으... 저 괴물은 뭐란 말이냐! 어서, 어서 날 보호해라!"
"태수님을 보호하라!"
그의 명령에 몇몇 용기있는 병사들이 나섰지만 결과는 매한가지였다.
"크아아악!"
"귀, 귀신!"
누구도 그 장수의 앞을 막지 못했다. 단 한 번의 공격도 받아내질 못하고 죽어버리니 이제는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금선까지 가는 길이 대로처럼 뻥 뚫려 버렸다.
"커허허..."
금선은 압도적인 상대의 무위에 털썩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해도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았다.
저벅. 저벅.
그의 앞까지 걸어온 은색의 장수는 쓰고 있던 투구를 슬며시 들어 보였다. 공포에 떨던 금선은 상대의 얼굴을 보자 어이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뜻밖에도 투구 아래에서 나타난 건 아직 여린 티를 벗지 못한 순진해 보이는 여인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전 조운이라고 해요. 더 큰 희생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어요. 미안해요."
"계집!"
금선은 흉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조운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것 같은 여인의 모습을 보자 좀 전의 두려움은 저 만치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그의 만용은 곧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서걱.
"꺼...!"
조운이 지그시 눈을 감으며 가차 없이 창을 휘두르자 금선의 목이 허무하게 잘려 바닥에 나뒹굴었다.
"금선이 죽었다!"
"와아아아아아아!"
한창 장료와 겨루던 주태는 뜻밖의 소리를 듣자 순식간에 몸이 굳어 버렸다. 금선이 죽다니? 금선이 일개 병사한테 죽을 정도로 일신의 무예가 형편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이내 자신의 목에 닿은 싸늘한 감촉을 느꼈다.
장료는 휘파람을 불었다.
"휘익! 아저씨, 한 눈을 팔면 어떡해?"
"......"
주태의 무기를 잡은 손이 부르르 떨렸다. 설령 금선이 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미 자신이 제압당한 이상, 승부는 끝난 것이다.
"내가 알게 된다고 했지? 후미에는 나만큼이나 무서운 애가 있거든. 그 놈이 살 수 있을 리 없지."
"... 주군을...! 모욕하지 마라!"
주태가 씹어뱉듯 말하자 장료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머나, 무서워라. 아저씨, 무기나 버려. 조용히 포로로 잡히면 병사들의 안전은 보장해 줄 테니."
"큭!"
주태는 할 수 없이 구환도를 바닥에 내던졌다. 양 군이 격돌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전투는 수장인 금선이 조운에게 죽음으로써 싱겁게 끝났다.
장양을 베고, 금선을 벤 조운은 이 날의 전투를 계기로 은룡(銀龍)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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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방은 조운 재탕입니다 *-_-* 비고의 위치를 똑똑히 확인하고, 그 돈으로 징병을 하던 육손은 성벽 위에 있던 한 병사의 다급한 보고를 받고 황급히 성벽 위로 올라갔다.
시상성 바로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적군들.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절대 이곳에 나타나서는 안 되는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적 진영에서 펄럭이고 있는 푸른색 장군기에는 모용(慕容)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모용환! 이게... 아!"
쿵 하고 머리를 울리는 충격에 육손은 주먹을 꼭 쥐었다. 완전히 당한 것이다.
"조호이산지계! 장사로 간다는 허보(虛報)로 금선을 유인해 낸 거야!"
허술한 동맹 관계이니 더욱 더 잘 먹힌 병법이었다. 동맹군이 시상에서 버틴다면 원정군은 필패이니 금선이 안나오면 안될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적군의 병력이 절반밖에 안되어 보였다.
육손은 눈살을 찌푸렸다.
"일만 오천 정도의 병력... 장사로 간다는 말이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나? 안 그래도 적은 병력을 양분하다니... 저 정도면 시상의 병력만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데."
이해할 수 없는 군사 배치였다. 불현듯 그녀의 뇌리에 전멸한 매복조가 떠올랐다. 왜 지금 이 순간에 그 사실이 떠오르는 걸까?
"가만..."
그녀의 머리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모용환이 소속되어 있는 유비군은 도저히 그 역량이 측정 불가능한 세력이었다. 적어도 그녀가 아는 바로는 그랬다.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은 모용환을 중심으로 오에서 세력을 일으켜 건업을 차지하고 원술을 멸망시켰다. 그리고 중원 남부의 제후들 중 가장 강성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이런 위업이 불과 1년도 안되는 시간 내에 이루어졌다.
그런 유비군에 충성하고 있는 장수들은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명장들이 많았다. 관우, 모용환, 태사자, 장료, 감녕... 지금은 전사했다고 들었지만 오월 지방에서 맹위를 떨치던 손책도 있었다.
'이 중 모용환이나 손책 같은 인물들은 무명(無名)이었다가 혁혁한 전공으로 급격히 유명해진 인물들. 그런 장수가 하나 더 없으리란 법은 없지. 불가사의한 세력이니까.'
만약 모용환, 감녕, 장료 말고도 뛰어난 장수가 있어 후미를 이끌고 있었다면? 장양이나 요화는 주태와 위연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력이 약한 장수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미지의 장수에게 모두 패사했다면!
'그 때는 그냥 넘어갔지만 공멸을 한다 해도 소수는 살아 돌아왔어야 해. 그렇지 못했다는 건 포로로 잡혔다는 거겠지...'
모든 아귀가 들어맞았다. 육손은 이를 바드득 갈아붙였다. 그녀는 앙칼지게 적진의 선두에서 성벽을 응시하고 있는 모용환을 노려보았다. 지략에 자신이 있었던 그녀에게 이 의외의 한 방에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한 번씩 주고받은 셈이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육손에게는 씻을 수 없는 굴욕이었다.
모용환은 시상의 성벽에서 자신을 강렬하게 쏘아보는 시선을 느꼈다. 거리가 너무 멀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한 사람이 자신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그는 온 몸이 넘실거리는 전의(戰意) 탓에 근질거릴 지경이었다.
"아마 태수인 한현이나... 총군사라는 육손이겠지? 후후."
모용환은 장료와 조운의 승리를 확신했다.
'병법에 대해서는 아직 밝지 못하지만, 이런 쪽의 전술이라는 건 익숙해.'
바꾸어 생각해 보면 간단한 것이었다. 어려운 전략, 병법... 이런 것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가 원래 자신 있었던 분야, 현대에서 즐겼던 전략 게임을 할 때처럼 군대를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그가 깨달은 것이었다.
'빈집털이와 쌈싸먹기에는 일가견이 있지.'
예전에 즐겼던 스타크래프트를 떠올리며 그는 빙긋 웃었다.
"이쯤 기다렸으면 됐다! 진격하라!"
모용환은 청공검을 높게 치켜들며 시상으로 군대를 진격시키기 시작했다. 일만 오천의 병력으로 팔천 정도의 수비 병력이 포진하는 성을 함락시키려 하는 것이다.
"미쳤어! 대체 저 병력으로 뭘 어쩌겠다고!"
육손은 무모한 돌진을 감행하는 모용환의 군대를 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녀는 모용환이 천재인지 바보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한 방 크게 먹었다고 생각했더니 이런 난 데 없는 돌진이라니! 충차 같은 공성병기도 없지 않은가! 간간이 병사들 사이에서 기다란 공성용 사다리들만이 눈에 띌 뿐이었다.
'금선군을 섬멸하러 간 병력들이 돌아오기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었단 말야?!'
모용환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었다. 육손은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장수가 있다는 가정 아래, 금선군이 필패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감녕이나 장료 같은 장수 둘만 가도 주태 하나밖에 믿을 게 없는 금선은 확실히 패배한다.
그리고 그 병력이 돌아와 지금 모용환군에 합류한다면 모용환이 전격적으로 공격해 올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 시간까지는 이쪽도 징집병들로 충분히 수를 맞출 수 있는데... 이건!'
그렇게 태평하게 생각했는데!
"모르겠어...!"
육손은 힘없이 고개를 떨구더니, 이내 번쩍 머리를 쳐들었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결의가 동공 깊숙한 곳에서 번쩍이고 있었다.
"기필코 막아 주지! 씨팔, 전쟁 끝나면 늘어지게 자야겠다!"
거지 패거리 속에서 자라며 거칠게 형성된 육손의 본성(?)이 살짝 엿보이는 순간이었다.
왕칠은 시상의 뒤쪽 성벽의 경비를 담당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적군의 침공으로 후미에서 성벽을 지키던 동료들 대부분이 전진 배치를 위해 근무지를 빠져나갔기 때문에, 지금은 그를 비롯한 몇 몇 병사들밖에 없었다.
그는 성벽 아래에 동료이자 고참병인 황구와 쭈그리고 앉아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나 참. 뒤에는 절벽이고 장강이 있는데 뭐 올 게 있다고 이런 데서 경비를 세우는 거여? 내도 앞에 나가서 싸우고 싶은디!"
왕칠이 호기롭게 말하자 황구는 혀를 찼다.
"예끼! 이 사람아, 자네 목숨이 두 개라도 되는 줄 아나? 우린 그저 여기 조용히 있다가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거야."
"아따, 황 아저씨는 겁도 많소! 즈그 놈들 칼날이 내 가슴팍에 박히기나 하것소?"
"숨통이 붙어 있을 때 소중히 다뤄. 이 친구야."
황구의 핀잔에 왕칠은 입맛을 다셨다. 호기로운 척 나대기는 했지만 그도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투에 차출되지 않은 것을 내심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냥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황 아저씨. 그런데... 윽!"
왕칠은 황구에게 말을 걸다 말고 갑자기 신음성과 함께 쓰러져 버렸다. 입가에 거품을 끊임없이 흘리는 걸로 봐서는 죽지는 않고 기절한 것 같았다.
황구는 대경하여 일어섰다. 성벽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이 왕구의 뒷목을 쳐 기절시킨 것을 두 눈으로 봤기 때문이었다.
"으쌰! 어이, 영감. 죽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기절해 있어."
손에 이어서 머리, 팔, 다리까지 올라온 이는 구릿빛 커다란 체구를 지닌, 꽤 잘생긴 자였다. 그는 가볍게 성벽을 뛰어 넘어 황구에게 다가왔다.
황구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목숨은 목숨이고 궁금증은 궁금증이었다. 본래 그는 호기심이 많았다.
"그, 그... 절벽을 기어 올라온 거요? 이 높은 곳을?"
"허약한 놈들에겐 무리일지 몰라도 우린 이런 걸로 벌어먹고 살지. 뱃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하는 거다. 기절할 준비 됐나?"
사내는 황구의 대답도 듣지 않고 왕칠과 마찬가지로 그의 뒷목을 강하게 내리쳤다. 황구는 목에 뻐근한 통증이 느껴지자 흐릿한 눈으로 성벽 위를 바라보았다.
입에 칼을 문 사내들이 무더기로 성벽 위를 올라와 넘어오고 있었다. 올라온 자들만 해도 족히 천 명은 되어 보이는데다가 하나 같이 험상궂은 얼굴이... 꼭.
'해적... 세상에...!'
황구가 눈이 풀린 채로 쓰러지자 사내는 두 개로 갈라진 극을 높게 치켜들며 외쳤다.
"이 감녕이 이끄는 장강제일세의 힘을 확실히 보여주자! 시상은 이제부터 유비님이 다스리시는 거다! 가자, 우리들의 여신을 위하여!"
"오오오옷! 유비님을 위해!"
견사에 대한 사랑과 유비에 대한 존경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는 감녕이었다. 어떤 일을 계기로, 해적들은 열렬한 유비의 추종자가 되어 있었다.
육손은 적군의 소극적인 공세를 잘 막아내고 있었다. 모용환군은 공격을 할 의사가 별로 없어 보였다. 의욕이 없는 적병들의 공격에 과도하게 긴장한 시상의 수비병들이 오히려 지칠 정도였다.
"전쟁할 마음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저 사다리는 쓰지도 않을 거면서 왜 가져온 거고?"
그녀는 지지부진한 전황에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육손은 처음에는 기세 좋게 돌진하더니 성문 앞에 이르러 아예 걸어오는 적병들의 모습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그 때 후미에서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겁에 질린 얼굴로 도망쳐 나오는 징집병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해적이다!"
"뒤에서 해적들이 나타났다!"
우뚝.
육손은 완전히 굳어 버렸다.
'해적... 감녕!'
무식하게도 놈들은 그 높은 절벽을 기어 올라온 것이다! 이건 정말 결정타였다. 모용환의 진격이 늦은 것도, 빠른 진격으로 수비병들을 넓게 배치시키도록 유도한 것도 후방에서의 급습을 위한 한방을 노린 포석이었다.
그녀의 시야에 뱃살이 출렁이도록 헐레벌떡 뛰어오는 한현의 모습이 잡혔다.
"이게 어찌된 일이야! 해적들이 나타났지 않은가! 뭐라고 설명을 해봐!"
한현은 그 우악스런 손길로 육손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가녀린 몸이 파랑을 만난 조각배처럼 거칠게 흔들렸다.
"커, 컥... 이거 놔!"
철썩!
"으윽! 이 년이..."
육손이 뺨을 치자 주춤주춤 뒤로 물러선 한현이 분노한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오려 하자, 육손은 독기어린 말을 내뱉었다.
"이 돼지를 죽여요!"
처척.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자신을 포위하자 한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살찐 턱살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놈들이! 내가 태수다! 내가... 윽!"
병사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한현의 몸에 창을 찔러 넣었다. 한현이 처참한 최후를 맏이하자 육손은 그에게 잡혔던 옷깃을 추스르며 털썩 성벽에 몸을 기댔다.
"아하하... 아저씨들. 미안해요. 성문을 열어 주세요... 제가 진 것 같네요."
한현을 찔렀던 병사 중 하나가 주저앉아 있는 육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상하게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넌 최선을 다했다. 여기 사람치고 네게 도움 받지 않은 사람이 있니? 그나마도 네가 없었다면 태수의 악정에 시달리고 있었을 거야. 이 녀석을 내 손으로 죽인 것만 해도 난 후련해."
"그래, 거지치고 이만하면 잘 한 거지. 하하."
"무지렁이들 데리고 머리 쓰느라 수고했다."
병사들의 위로에 육손은 고개를 푹 숙였다. 한현의 돈이 있는 곳도 알아냈겠다, 조금만 더 버티면 이곳을 백성들을 위한, 백성들에 의해 다스려지는 낙원으로 만들 수 있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흐흑... 으아앙!"
육손은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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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10편 단위로 외전격인 이야기를 넣어야 할 듯 싶네요. 손견의 죽음이라던가, 조조의 과거, 해적들이 유비 추종자가 된 이유... 쩝.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귀찮아서 손을 못댄 게...
조운의 호칭문제는요, 뭐 일상적인 무협을 보면 남자는 용, 여자는 봉이라는게 정석이지만 아무래도 조운의 원래 자가 자룡이고 전장을 쓸고 다니는 장수에게 봉이라는 명칭은 좀 그런 것 같아서 그냥 은룡이라고 지었습니다. 양해바래요~ 편수삽화 보는법은 하단의 작품삽화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이번편 삽화는 없습니다. 해적들의 활약으로 무방비 상태였던 후방이 완전히 유린당하자 시상성의 수비병들은 성벽 위에 백기를 내걸었다. 감택을 비롯한 한현의 휘하들은 모용환에게 항복했고 태수인 한현은 어처구니없게도 자기의 병사들에 의해서 살해당한 상태였다.
대충 성내가 정리되자 모용환은 아무 병사나 잡고 전초에 자신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던 육손의 행방을 물었다. 상대가 원정군의 군단장이라는 것을 알자 병사는 사색이 되어 엎드렸다.
"아이고! 나리! 제발 그 아이만은 살려 주십쇼! 저희들을 위해 나리를 막아선것 뿐입니다요!"
"그건 무슨 소립니까?"
모용환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그 병사를 시작으로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백성, 병사할 것 없이 모두 엎드렸다.
"육손을 살려주세요!"
"마음이 고운 아이입니다!"
"손이는 아무 죄가 없어요! 차라리 쇤네를 벌해 주십시오!"
모용환은 이해할 수 없는 시상 내 백성들의 분위기에 의아해했다. 나중에는 늙은 아낙까지 나서서 머리를 땅에 박자 그는 그 노파를 손수 일으켜 주며 시상에서 육손의 인망이 무척 두텁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아이라... 생각보다 나이가 어린 모양이군.'
"죽이지는 않을 겁니다. 육손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가 사람들에게 묻자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때 무리 속에서 한 남자이 슬며시 손을 들었다.
"제가 알아요."
"소걸! 손이를 배신할 참이냐!"
소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중년 남자가 크게 호통 치자, 소걸은 찔끔하면서도 또박또박 말했다.
"장군님이 제가 듣던 대로 강동의 별이라면 한입으로 두말하시진 않겠죠? 대장을 죽이지 않는다는 거 말이에요."
남자의 당돌한 말에 모용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아일언은 중천금이지. 네 대장이라는 사람이 육손이냐?"
"네."
"어차피 전쟁 중에는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공방을 주고받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어. 어떤 피해를 받더라도, 그건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일이야. 그걸로 네 대장을 탓할 생각은 없다. 난 육손을 아군에 협력하게 하고 싶을 뿐이야."
모용환의 말에 소걸의 표정이 밝아졌다. 소걸은 한층 가벼운 발걸음으로 모용환의 앞에 섰다.
"절 따라오세요. 대장은 스스로 감옥에 들어갔어요."
"감옥에 넣을 생각은 없었는데."
모용환은 입맛을 다시며 육손이 갇혀있다는 감옥으로 향했다.
감방 안에는 퀴퀴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무척 오래전부터 쓰이던 감옥인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죄수들이 거의 없었다. 오직 단 한 명의 소녀만이 갇혀 있을 뿐이었다. 눅눅한 바닥이었지만 소녀는 개의치 않고 엉덩이를 붙였다.
"패장이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끼익.
육손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꺼운 쇠문이 열리며 소걸이 뛰어 들어왔다.
"대장!"
"어? 네 녀석이 여긴 무슨 일이냐?"
그녀가 어리둥절해 하자 소걸은 싱글벙글 웃으며 뒤따라온 모용환을 가리켰다.
"모용 장군님이야! 대장이랑 만나고 싶다고 하셔서 내가 모셔왔어!"
"모용환...?"
육손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모용환은 철창을 사이에 두고 그녀와 마주 앉았다.
"네가 육손이냐? 생각보다 어린데. 여자일 줄은 몰랐어."
그의 말에 육손은 퉁명스레 응수했다.
"형도 여자깨나 후리게 생겼네요. 생각보다 아주~ 젊고요. 난 또 요새 무명이 쟁쟁하길래 근육덩어리인 줄 알았구만..."
곱상한 외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뒷골목 왈패나 쓸 법한 말투에 모용환은 피식 웃었다. 어쩐지 거지 남자이 대장이라고 부를 때부터 심상치 않다 싶더니 뒷골목에서 자라온 모양이었다.
"소걸, 넌 이만 나가 봐라. 대장이랑 할 얘기가 있으니까."
소걸은 모용환의 말에 육손의 눈치를 보더니 후다닥 뛰어나갔다.
"네게는 호되게 한 번 당했지. 혼이 빠지는 줄 알았다."
"위연 장군이 그러더군요. 형 얼굴이 참 볼만했다고."
육손은 계속해서 모용환을 비꼬았다. 그러나 모용환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대화를 계속했다.
"아마 지금쯤 장사가 아군의 손에 떨어졌을 거다."
"말 안 해도 그 정도는 짐작하고 있는 뎁쇼."
모용환은 육손이 어떻게 반응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네 패인이 뭘까? 하나는 정보의 부족. 성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은 한정될 수밖에 없었지. 그래서 우리 군이 성 바로 앞까지 왔을 때에서야 알아차린 거고, 처음 아군을 수송했던 5천의 수군의 움직임도 파악하지 못해서 오늘 후방을 내어주고 말았어."
"......"
"또 하나는 제대로 군권을 쥐지 못한 것. 만약 네가 모든 군을 통제할 수 있었다면 금선군이 빠져나가는 걸 허락하지는 않았겠지. 당장 장사가 점령당하더라도 여강에서 장사까지의 보급선을 끊으면 우리를 고립시킬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한 치 앞밖에 내다보지 못하는 금선은 기반을 잃는다는 불안감을 참지 못하고 뛰쳐나갔고."
"이보세요. 그딴 자랑이나 하려고 날 만나러 왔어요?"
심사가 배배꼬인 육손은 모용환을 노려보며 짜증을 냈다. 모용환의 말대로 그녀는 그렇게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미 일이 다 끝난 뒤에 만약 이랬다면...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제일 밉게 보이는 법이었다.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것도 아니고. 육손은 모용환이 자신을 약 올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용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난 네가 우리와 손잡았으면 좋겠다."
"머리가 쓸만하니 밑으로 기어 들어와라, 이 소리죠?"
"표현이 좀 그렇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겠지."
하지만 모용환은 육손이 그와 같은 흔히 '상위 계층'의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큰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어릴 때 버려져 가난한 유모의 손에 자랐고, 거지 패거리와 어울리면서 한현 같은 가진 자의 횡포를 수없이 겪어왔던 육손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모용환 역시 똑같이 보였다. 육손은 일말의 증오가 서린 음성으로 말했다.
"좀 가졌다 싶은 놈들은 다 똑같아. 우리 같이 천한 것들은 어르고 타이르면 다 복종할 줄 알지. 내가 미쳤냐?"
거칠어지는 육손의 말에 모용환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파악한 바로 육손은 백성들에게 큰 인망을 얻었을 정도로 사람들을 위하지만, 가진 자들을 무척 혐오하는 듯 했다. 그는 일단 그녀를 찔러보기로 했다.
"너, 혹시 태수니 제후니 이런 사람들이 모두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설마 모용환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볼 줄은 몰랐는지 육손은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버럭 소리 질렀다.
"그래! 그 놈들이 하는 게 뭐가 있어! 부모 잘 만난 덕에 무능해도 평생 잘 먹고 잘 살지! 그딴 놈들 없이도 우리끼리 잘 살 수 있다고! 이번에 당신이 쳐들어오지만 않았어도 우린 여기에 낙원을 만들 수 있었어!"
이제는 그나마 불러주던 '형'이란 호칭도 '당신'으로 바뀌어 버렸다. 육손의 위험한 사상에 모용환은 조금 난감한 기분이었다. 육손은 좋게 말하면 혁명가고, 나쁘게 말하면 극단적인 좌파였다.
그는 연기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나도 한 때 너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
뜬금없는 모용환의 말에 육손은 씩씩대던 것을 멈추었다.
"뭐...라고요?"
"사실이 그렇지 않아? 나야 자수성가해서 여기까지 온 사람이지만, 이 세상이 얼마나 불공평하냐고. 우연히 부잣집에 낳아진 놈은 태어나는 수고만 하면 앞날이 탄탄하잖아? 그에 비해 가난한 집에 태어난 사람은 거의 평생 가난을 대물림하고, 운 나쁘면 전쟁에 끌려 나가서 죽는 거지. 전쟁을 일으키는 내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참 뭣 같아. 안 그래?"
"그, 그래요."
모용환의 말을 들으며 육손의 눈에 기쁨, 희열 같은 것들이 어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주위 사람들도 그녀를 따르기는 하지만 가난을 천명(天命)으로 알고 살아서 무척 답답했었다. 그나마 그녀를 쫓아다니는 소걸이 좀 깨이긴 했지만 거기서 거기였다.
그런데 가진 사람들 중 가장 윗선에 있다고 봐야 할 모용환이 자신의 말을 듣고도 단칼에 죽이기는커녕 얘기를 들어주고, 동조해 주고 있는 것이다.
"넌 어떻게 하려고 했지?"
그의 물음에 육손은 성심성의껏 자신이 시상에서 만들려던 '낙원'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 설명을 다 들은 모용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네 계획이 나쁘진 않아. 하지만 그 후에는? 그 낙원을 만든 후에는 어떻게 할 거지? 주위의 제후들이 가만 두고 보지 않을 거야. 현재의 권위에 반하는 자들을 그냥 둘 리가 없지. 전쟁이 벌어질 테고, 백성들은 고통 받게 될 거야."
모용환의 말에 육손은 분하다는 듯, 이를 악물었다. 성민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을 만들 생각만 했지 미처 그 뒤의 일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녀가 궁색하게 말했다.
"주, 주변의 성민들이 동조를 해 줄 테니..."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도 바쁜 사람들이야. 오랜 세월의 권위에 짓눌려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너도 알 텐데? 이 시상의 백성들이 그렇게 한현에게 착취당했음에도, 네가 아니었으면 계속해서 당하고 살 사람들이라는 걸. 점진적으로 의식을 변화시키지 않는 이상 개혁은 불가능해."
냉정하지만 조리 있는 말에 육손은 고개를 푹 숙였다. 눈물이 났다. 지금껏 추구해온 것들이 실현 불가능한 망상에 불과했다니. 결국 자신은 헛된 꿈을 쫓는 몽상가에 불과했던 건가? 허탈한 마음에 몸에 아무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형... 난... 어떡하죠. 이제..."
"한 가지 방법이 있어."
그의 말이 육손에게는 마치 자신을 구원해 주려는 신의 목소리처럼 들렸다.
"방법...?"
"천하통일을 하는 거지. 아래에서부터의 변화가 힘들다면 왕조를 만들어 위에서부터 아래를 변화시키는 거야. 지배층부터 변한다면, 개혁은 가능할지도 몰라. 물론 이 방법도 실제로 행하려면 수많은 난관이 있겠지만... 어쨌든 그러자면 네 도움이 필요해."
일리가 있었다. 모용환은 육손이 자신의 말에 따라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적어도 육손이 행하려던 방법보다는 훨씬 가능성이 있었기에.
하지만 육손은 픽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형만 믿을게요. 난 너무 지쳐서, 이제 이런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으니까. 쉬고 싶어요."
그녀가 예상 밖으로 거절을 하자 모용환은 다급히 말했다.
"무슨 애늙은이 같은 소리야?"
"전쟁도 졌고, 지금은 너무 허탈해요."
"그냥 우리 군에 들어오라니까."
"귀찮아요."
이제 본격적인 게으름뱅이 기질이 나오는 육손이었다. 모용환은 침음하며 이제는 강압적인 어조로 말했다.
"넌 패장이야. 그냥 잔 말 말고 내 말에 따라."
"아, 귀찮다니까요. 젠장, 이 일에 매달리느라 하루에 잠을 얼마나 줄였는지 형이 아냐구요. 피부도 안 좋아지고..."
육손이 본성을 엿보게 된 모용환은 황당했다. 아까의 말투도 그렇지만, 무슨 계집애가 이렇게 입이 험한가.
"그래. 임관하기 싫다 이거지?"
"네. 형, 감옥은 알아서 나갈 테니까 쫓지나 말아주시면 고맙겠는데요."
감옥에 알아서 들어온 이유가 다 탈옥 수단이 있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모용환은 땅기는 뒷골을 부여잡았다. 좀 전에 거창한 포부를 늘어놓고 여기서 쪼잔하게 굴 수는 없는 일.
모용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육손을 궁성으로 불러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그러면?"
"내 몸종이나 해라."
"엑? 온갖 수발을 다 들란 소리? 형, 미쳤어요? 그런 피곤한 일을..."
그는 육손의 말을 딱 잘랐다.
"아무 것도 안 해도 돼. 편하게 있어."
"그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거라고요. 아무 일도 안하고 빈둥빈둥 편하게 있으면 가진 놈들하고 다를 게 뭐예요?"
꼬치꼬치 말대답을 하는 육손이었다. 모용환도 결국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제길, 그러면 몸이라도 바쳐! 그럼 됐지?"
육손은 기겁했다.
"저, 정사?! 그것도 온갖 체위에... 귀찮은..."
"그냥 가만히 누워 있으면 내가 넣다 뺐다(?)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마! 됐냐?"
"......"
모용환이 윽박지르자 육손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짜증이 날 대로 난 모용환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형. 그럼 이건 어때요? 나랑 내기하나 해요."
"내기?"
"2일 안에 날 덮치는데 성공하면 형 말대로 몸종이 될 게요. 대신, 내가 이기면 형도 나한테 아무 말 하지 마요."
모용환은 다시 한 번 말을 잃었다.
'진짜 여자애가 맞는지...'
"그래."
별 희한한 제안이었다. 뭘 노리고 이런 제안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육손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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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방 육손 재탕 다음 날, 임시로 시상 태수로 부임한 모용환은 아침부터 밀려드는 서류 뭉치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것저것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전쟁으로 망가진 성 밖의 관도를 보수하는 작업, 소수이긴 하지만 전사자들에 대한 처리 문제, 성 내의 민심을 안정시키는 일 등...
'그 녀석이 이걸 노리고...'
모용환은 육손의 노림수를 알게 되었다. 전후 처리로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아지자 내기는 고사하고 오전 종일 집무실에 처박혀 있어야 했다.
'이렇게 할 일이 많은데 이틀 동안이나 덮칠 기회를 엿보라고? 영악한 녀석.'
그는 홧김에 내기를 수락한 것을 후회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나왔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 내기에는 단 두 개의 규칙이 있었다. 일부러 숨기거나 숨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은 일절 받지 않을 것. 그러니 육손은 성 안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 있을 테고, 모용환 또한 병사들을 동원하거나 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변장도 할 수 없었다. 첫 번째 규칙 '무엇이든 숨겨서는 안 된다.'는 얼굴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걸리는 점은 또 있었다. 육손이 특정한 거처가 없다는 점이다. 밖에서 아무렇게나 자거나 할 텐데 태수씩이나 되는 사람이 노상에서 여자애를 덮치면 볼 사람은 다 볼 것 아닌가. 태수 체면상 절대 그럴 수는 없었다.
지금껏 쌓아온 명성이 있는데...
점심을 먹은 모용환은 일단 육손의 위치를 파악하기로 했다. 어렵사리 오후에 시간을 쪼개서 밖으로 나온 그는 물어물어 육손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 빈민촌 한 구석에 있는 커다란 아름드리나무 밑.
"음냐..."
육손은 커다란 그늘 아래에서 쌕쌕 코를 골며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모용환은 혈압이 솟는 것을 느꼈다.
'크! 망할 녀석!'
자신은 고된 정무에 시달리고 있는데 정작 같은 내기의 당사자인 육손은 태평하게 퍼질러 자고 있다니. 문득 육손이 말한 단서 조항이 떠올랐다.
'덮친다의 기준이 뭐야?'
'에, 당연한 거 아니에요? 시작(?)하면 끝(?)을 내는 것.'
한 마디로 사정까지 하란 소린데... 쬐끄만 소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하는 것 보니까 확실히 자란 환경이 험하긴 했나 보다. 육손의 나이는 19살, 유비나 손상향과 동갑내기였다.
'저걸 어떻게 덮친다지?'
한창 시상을 안정시켜야 할 자신이 겨우 시간을 내서 한다는 일이 여자를 덮치는 일이라니. 조금 한심했지만 시상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는 육손이 꼭 필요했다. 굳이 그녀의 머리가 아니더라도, 그 인망만으로도 '육손 효과'는 클 것이 자명했다.
지금 주변에는 사람이 없지만 빈민촌도 하나의 동네인 만큼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일. 그가 조루도 아니고 그 전까지 확실하게 일을 끝낼 자신은 없었다.
'내일 시간을 다시 낼 자신은 없는데...'
지금도 최대한 빨리 업무를 끝내고 짬을 내서 나온 것이 아닌가. 다시 궁내로 돌아가면 아까보다 더 많은 서류더미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현이 내정 관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 모용환은 몸소 체감하고 있었다.
갑자기 엄백호를 친 후 오 성의 뒤처리를 담당한 관우가 존경스러워지는 그였다.
'내가 못 덮칠 것을 아니까 저렇게 태평한 거겠지?'
나무 밑에서 대(大)로 뻗어 있는 육손을 보면서, 모용환은 커다란 반발심이 들끓는 것을 느꼈다. 녀석의 저 끝도 없는 자신감을 한 번 눌러줘야 할 필요를 느꼈다. 좋은 생각이 떠오른 그는 음흉하게 웃으며 자고 있는 육손에게 다가갔다.
"자냐?"
"......"
육손은 정말 깊게 잠든 것 같았다. 볼을 살짝 잡아당겨도, 눈꺼풀을 들어 올려도 도무지 반응이 없었다.
"나 참. 무슨 여자애가 이렇게 무방비로 자는 거야?"
시상에서 육손을 건드리면 초주검이 된다는 사실을 그가 알 턱이 없었다.
모용환은 세심하게 주위를 살핀 후, 인적이 없다는 것을 알자 품속에서 단도를 꺼냈다. 그리고.
부욱.
육손이 입고 있는 바지의 가랑이 사이를 작게 잘라 구멍을 내 버렸다. 벌어진 틈새 사이로 소담스레 부풀어 있는 회색의 앙증맞은 헝겊 조각이 보였다.
"어디 맛 좀 봐라."
모용환은 큭큭 웃으며 날카로운 칼날로 조심스럽게 헝겊 조각을 가로로 잘랐다. 그러자 그 틈으로 육손의 꽃잎이 수줍게 그 모습을 보였다.
듬성듬성 나 있는 깜찍한 음모 사이로 입을 꼬옥 다물고 있는 소녀의 순결한 조개를 보자 모용환은 팔짱을 끼며 잠시 자신이 연출한 장관을 감상했다. 육손은 여전히 세상물정 모르고 자고 있었다.
"이대로 두고 가버려? 푸후후."
물론 그랬다간 나중에 뒷감당이 어려워진다. 하체 부근이 뻐근해진 그는 잽싸게 육손과 똑같이 자신의 바지 가랑이 사이에도 구멍을 만들었다. 잔뜩 성이 난 육봉이 그 구멍 사이로 웅장한 실체를 드러냈다.
"자. 사람들 오기 전에 빨리 끝내자. 아파도 네가 자초한 거니까, 참아라."
모용환은 대답 없는 육손의 꽃잎을 벌리고 커다란 육봉을 단숨에 끝까지 밀어 넣었다. 작은 저항이 느껴졌지만 그의 돌파력은 그런 것은 그냥 무시할 정도로 무지막지했다.
자고 있던 육손은 갑자기 가랑이 사이를 커다랗고 뜨거운 무언가가 쑤시고 들어오자 극렬한 통증을 느꼈다. 몸이 세로로 쪼개지는 것 같았다.
'찌, 찢어져!'
나른하게 자고 있다가 웬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녀는 눈을 번쩍 뜸과 동시에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으극... 씨팔! 아아악! 누구얏!"
"누구긴. 나다."
"혀, 형?! 악!"
모용환이 그녀를 안은 채로 몸을 일으키자 두 사람의 결합부가 들썩였다. 육봉을 둘러싼 꽃잎이 경련을 일으키며 자연스레 그녀의 다리가 모용환의 허리를 휘감았다. 육손은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의 목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모용환은 육손에게 삽입한 상태 그대로 걷기 시작했다.
"아욱! 저, 정말 덮치다니! 싸지 않으면 무효인거 몰라요?! 이 무모한 인간! 아, 젠장맞을! 아프다고요!"
육손은 모용환이 걸을 때마다, 갑작스런 삽입에 상처 난 질벽에 육봉이 문대어지니 쓰라려 죽을 것 같았다. 그녀가 꽥꽥 소리를 지르자 모용환은 낮게 속삭였다.
"임마. 여자애가 말이 그게 뭐냐? 너 조용히 하지 않으면 동네 사람들 다 온다."
"흡...!"
육손은 그제야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 소리를 죽였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의 비명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손아! 무슨 일이냐! 어엇, 장군님!"
"장군님! 손이에게 무슨 해코지라도 하신 건가요?"
"대장... 장군님한테 매달려서 뭐 하는 거야?"
다들 육손과 절친한 빈민촌의 사람들이었다. 강씨 아저씨, 박씨 아줌마 등 마을 어른들 여럿에 나중에는 소걸까지 왔다. 다리와 팔을 동원해서 온몸으로 모용환을 끌어안고 있는 육손은, 너무 민망한 나머지 얼굴이 더할 나위 없이 붉어졌다.
다행히 안겨있는데다가 옷 때문에 음란한 결합부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몸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아니, 아무 것도 아닙니다. 얘가 제가 너무 좋다고 도통 떨어지질 않는 군요."
"네에?"
사람들은 눈을 크게 뜨고 육손을 쳐다보았다. 마침 육손은 떨어지면 안 된다는 위기감에 모용환을 더욱 세게 끌어안고 있는 찰나였다. 마을사람들은 그녀의 행동을 보고 모용환의 말을 손쉽게 믿어버렸다.
뒤늦게 그 사실을 눈치 챈 육손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모용환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뻔뻔하게도 그녀의 등을 쓰다듬고 있었다.
"내가 좋으면 그냥 좋다고 하지, 이렇게 안길 것 까진 없는데."
"형! 그게 무슨...!"
그녀는 다급하게 해명하려 했지만,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
"어이구, 손아! 장군님 힘드시겠다. 다 큰 처녀가 그러면 못쓴다."
"아니, 아줌마! 그게 아니라요..."
"헤헤. 대장, 장군님한테 시집가는 거야?"
"아니라고!"
마을 사람들은 도무지 그녀의 말을 들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해명을 포기한 육손은 홍당무가 된 얼굴로 괴성을 지르며 소리쳤다.
"아아아악! 다들 구경났어요?! 가서 일이나 해요! 읍!"
모용환은 한 손으로 육손의 입을 틀어막았다.
"자자, 이 녀석은 제가 알아서 조용히 시킬 테니 할 일들 하세요."
"에고, 장군님. 무슨 이런 무지렁이들한테까지 존댓말을 하십니까. 그냥 아랫사람 대하듯 해주십시오."
그 말에 모용환은 누가 보더라도 호탕해 보이는 얼굴로 웃었다.
"하하핫! 손아를 봐서라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신분이 대수입니까? 다 어르신들이신데..."
유독 육손과 절친한 사람들 중 한명인 푸줏간 강씨가 기다란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허 웃었다.
"허허, 손아라고 부르실 정도면 저 아이가 장군님께 마음을 연 모양입니다 그려. 누가 데려가나 걱정이었는데. 허, 참... 손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사내애처럼 굴지만 속정이 많은 아이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제는 완전히 사위와 장인의 대화 같이 되어버렸다. 육손은 억울하고 분해서 머리 뚜껑이 열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발버둥 칠 때마다 세게 후벼 파는 듯한 육봉의 움직임에 너무 아파서 도무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모용환은 그 길로 바로 궁성으로 향했다. 육손을 안은 채로. 가는 곳마다 시선이 쏠려 육손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그녀가 좋아서 모용환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멍청이... 짐승... 해삼... 말미잘..."
"읏차."
"끼아악!"
육손의 몸이 밑으로 미끄러지려고 하자 모용환은 그녀의 엉덩이를 단단히 받쳤다. 그 바람에 삽입된 육봉이 다시 들썩이자 그를 향한 욕설을 중얼거리던 육손은 고통스런 비명을 내질렀다.
모용환은 그녀의 귓가에 사악하게 속삭였다.
"자, 이제 쌀 일만 남은 건가?"
그에게 안긴 육손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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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편 본격 h씬 ㄱ?
민주주의로 갈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다는걸 밝힙니다 ^^; 의외로 민주주의로 가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많네요... 전혀 현실성도 없을 뿐더러 ... 단지 육손을 꼬이기 위한 사탕발림일 뿐입니다. 전편에 '연기'를 한다고 써 놓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대교와 소교는 불안했다. 갑자기 웬 소녀를 안고 나타난 모용환이 처소로 들어가더니 이상한 소리가 안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인신매매단에게 조교를 받은 경험이 있는 자매는 지금 안의 상황이 어떤지 대충 짐작을 할 수 있었다.
"어떡하지? 아빤 도대체 언니들 생각은 안하고..."
대교의 말에 소교가 거세게 고개를 흔들었다. 자매였기 때문에 대교는 소교의 몸짓 하나 하나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응, 응. 우리 생각도 안 해주고. 나쁜 아빠야."
"...언니..."
"......"
서로를 마주 본 자매는 결의에 찬 눈빛을 주고받았다.
모용환은 육손의 옷도 벗기지 않고 처음 삽입한 상태 그대로 몸을 움직였다. 육손은 얼굴을 찡그렸다. 얼마나 아팠는지 그녀의 이마에는 땀까지 흘러내리고 있었다.
"젠장! 좀 살살 해요! 아욱! 뭐가 이렇게 커!"
하지만 육손은 기가 죽기는커녕 소리를 빽빽 질러대고 있었다.
"나도 아파, 임마. 다리 힘 좀 풀어."
"이렇게 아픈 줄 알았다면 내기 따위 하는 게 아니었는데! 빌어먹을 아저씨들은 이런 게 뭐가 기분이 좋다는 거야! 아으!"
"나 참. 덮쳐줍쇼 하던 녀석이 이제 와서 왜 이렇게 떽떽거려?"
"태수씩이나 되는 사람이 정말 덮칠 줄은 몰랐다구요! 그렇게 할 일이 없어요?!"
육손을 침상에 엎드리게 한 채 그녀의 자궁 속으로 육봉을 찔러 대던 모용환은 그녀의 질근육이 육봉을 끊어버릴 듯 세게 조여 오자 통증을 느낄 정도였다. 확실히 전희 없이 무식하게 진입하는 건 서로에게 좋지 않은 일이었다.
"바지 좀 벗겨 줘요! 땀 때문에 자꾸 달라붙으니까!"
"흠. 원한다면."
그는 꽃잎에서 육봉을 쑤욱 뽑아낸 뒤 육손의 바지를 무릎까지 내렸다. 육손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던 불방망이가 빠져나가자 살았다는 표정으로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씨팔, 일어서지도 못하겠네. 형이 이겼으니까 이제 그만... 악!"
모용환은 엉덩이를 부들부들 떨면서 앞으로 기어가는 육손의 허리를 잡고는 그대로 뒤로 당겼다. 그녀의 몸이 주르륵 다시 딸려옴과 동시에, 살짝 벌어져 붉은 원색을 드러낸 꽃잎 안으로 육봉이 박혀들었다.
다시 질 속을 가득 채운 물건의 크기에 육손은 입을 쩌억 벌렸다.
"누구 맘대로? 이번엔 여기 좀 볼까?"
"으힉!"
육손은 허리와 옆구리 쪽을 쓸어가던 손들이 그대로 상의 안으로 들어와 젖가슴을 움켜쥐자 당혹성을 내뱉었다. 그녀는 젖가리개를 하지 않고 있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젖무덤의 말캉한 감촉을 즐기며 한 가운데의 유두를 손가락으로 굴리던 모용환은 고무공처럼 탄력 있는 그녀의 가슴에 감탄했다.
"대담하게 아무 것도 입지 않고 있잖아? 너, 혹시 노출광?"
"으으... 무슨 개소리에요! 거지한테 그딴 게 뭔 필요 있다고!"
"하긴, 이런 가슴이라면 안 하는 게 낫다."
"이 변태! 흑!"
육손이 하는 말을 가볍게 한 귀로 흘린 모용환은 그녀의 유방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장난스럽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눌렀다 떼기가 무섭게 원형으로 돌아오는 탱탱함이 더욱 성욕을 부추겼다.
그 때.
벌컥! 쾅!
"아빠!"
대교가 문을 거칠게 여닫으며 난입했다. 그 뒤에는 소교가 그림자처럼 붙어 있었다. 뜻밖의 손님들이 들어오자 모용환과 육손은 그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남녀의 시선이 천천히 자매 쪽으로 향했다.
"...역시."
대교는 좀 전에 모용환이 안고 들어갔던 소녀가 엎드린 채로 그의 물건을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모용환은 육손의 젖무덤을 만지던 손을 슬며시 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 하하... 너희가 어쩐 일로..."
육손은 그녀 나름대로 기가 막혔다.
"형... 저, 저런 딸들이 있었어? 그, 그럼... 나랑 대체 몇 살 차이야?! 30살? 40살? 나... 아저씨한테 따먹힌 거야?"
그나마 젊고 잘생긴 모용환과 첫경험을 했다는 걸로 위안을 삼고 있던 육손이었는데, 최소 14살 이상은 되어 보이는 딸내미들의 아버지였다니.
"따먹다니! 임마, 어 다르고 아 다른데..."
"따먹은 거 맞잖아! ...으흐흑..."
육손은 급기야 소리를 빽 지르고 얼굴을 감싸 쥔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리 사내애처럼 억세게 자라왔다지만 처녀성을 소중하게 여겼던 것은 여타 소녀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그걸 겉만 번지르르한 중년 남자(?)에게 뺏기다니. 억울하고 서러워서 눈물이 끝없이 흘러 내렸다.
모용환은 난처했다. 그런 그의 심정을 알기라도 하듯, 대교가 육손에게 다가와 말했다.
"언니, 오해에요. 아빠는 이제 스물넷인 걸요."
"...으응...?"
토끼눈이 되어서 자신을 바라보는 육손의 모습에 대교는 미소를 지었다.
"저희는 아빠 딸이 아니고요, 수양딸도 아니에요. 그냥 동생 같은 사이인데... 순전히 우리가 좋아서 아빠라고 부르는 거예요."
대교의 말에 울상이던 육손의 얼굴은 많이 풀렸다. 그럼 그렇지, 저 얼굴에 이 나이 대의 딸이라니. 대입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훌쩍이며 모용환을 바라보았다.
"... 형. 계속... 할 거예요?"
"으음."
육손이 대교와 소교의 눈치를 보며 말하자 모용환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그녀의 몸 안에 들어가 있는 육봉은 계속 방아를 찧고 싶다고 온몸으로 외쳐대는데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다.
그런 그의 고민은 뜻밖에도 대교가 해결해 주었다.
"아빠, 계속하세요."
"......?"
"...대신에, 우리도 안아 줘요."
쿵.
모용환과 육손은 뜬금없이 튀어 나온 대교의 말에 귓가에 천둥이 울린 듯, 멍한 얼굴이었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모용환은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대교는 상기된 얼굴이었다. 그녀는 조금 가빠진 숨을 진정시키며 한 자 한 자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언니들은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 했어요... 다같이 모여서 전포를 만들 때, 물어봤어요. 아빠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런데... 아빤 우리 맘도 모르고... 그 언니랑... 참을 수 없었어요."
"나, 날 형이 덮친 거야."
왠지 자신이 모용환과 바람 피우다 걸린 것 같은 기분에 육손이 변명을 했지만 지금 그녀의 말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대교의 말이 횡설수설하는 감이 있었지만 모용환은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량아가 얘들을 여기에...'
제갈량이 전속 시녀로 발탁해 줬다는 점, 출진 전에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유비와 무슨 말인가 주고받던 자매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모용환은 대교와 소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소교는 고개를 숙여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대교는 그와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너무 어리잖아."
"몸이 안 자랐을 뿐이에요. 충분히 아빠를 상대할 수 있는 나이라고요."
대담한 그녀의 말에 육손은 자신이 처한 상황도 잊고 중얼거렸다.
"와. 형, 인기 많은가 보네. 그런데 이것 좀 빼주면 안 될까? 배가 묵직하단 말야."
"시끄러."
모용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교의 말대로 이 시대에 16, 17살이면 결혼도 할 수 있는 나이였다. 그 용기는 가상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안하다. 너희들은 유아나 빈아가 아끼는 아이들이고... 어?"
꼬옥.
언제 모용환의 뒤로 갔는지, 소교가 말없이 모용환을 끌어안았다. 소교의 몸이 등으로 확연하게 느껴지자 모용환은 욕망이 솟구치는 걸 느꼈지만 꾹 내리눌렀다.
"안..."
슬쩍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소교를 보고 다시 대교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안 되는데'라고 말하려던 모용환은 눈앞의 광경에 말을 잊고 말았다.
바로 앞의 대교가 두 손으로 치마를 들어 올린 채 서 있었다. 그녀는 속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 옥주 같은 두 다리 사이로 솜털만 보송보송 나 있는, 어린 아이의 그것처럼 미성숙한 여린 계곡이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간헐적인 떨림을 보이고 있는 허벅지 사이의 조개는 다물린 틈새 사이로 반짝 빛나는 투명한 애액을 토해내고 있었다.
다음 대교의 말은 결정타였다.
"그 때 이후로... 밤마다... 항상 이렇게 젖어 있는데..."
툭.
모용환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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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 주인공은 짐승인 법이죠.
원래 h씬은 몰아서 해야. 주인공 죽이려면 미인계 쓰면 간단할 듯.
오늘 연재는 여기까지일 듯 싶습니다. "아..."
육손은 모용환의 육봉이 빠져나가자 묘한 신음성을 흘리며 그대로 엎어졌다. 하체에 힘이 풀려 둔부를 들고 있을 수가 없었다. 침상에 옆으로 얼굴을 기댄 채 숨을 몰아쉬던 그녀는 대교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화들짝 놀랐다.
"왜, 왜 그래? 다시 말하지만 난 피해자라고."
"언니, 이름이 뭐예요? 전 대교라고 해요. 쟤는 소교구요. 제 동생이에요."
"음...난 육손. 역시 자매였구나."
꼬투리(?)를 잡으려는 게 아님을 알자 육손은 안심했다. 그런 그녀에게 대교는 싱긋 웃으며 얼굴을 더욱 가까이 들이댔다. 대교의 숨결이 코 앞에서 느껴지자 육손은 당황했다.
"아프죠? 여기 말이에요... 언니의 소중한 곳."
대담하게도 대교는 육손의 꽃잎 깊은 곳, 매끈한 점막 지대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세포 하나하나를 교묘하게 자극하는 그녀의 손길에 육손은 자기도 모르게 달뜬 신음을 토해냈다.
"아응... 마, 만지지 마."
"기분 좋게 해줄 게요. 제 차례를 기다리려면 저도..."
대교는 말끝을 흐리며 모용환과 소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모용환의 등을 안고 있던 소교는 그가 몸을 돌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자 얼굴을 들지 못했다. 모용환은 말없이 소교의 치마를 걷어 올렸다. 대교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고의를 걸치지 않고 있었다.
"아, 아빠."
"많이 아플 거야. 참을 수 있지?"
"...네."
부끄러워서 은밀한 곳을 손으로 가리려던 소교는 모용환의 말에 꾸물거리며 손을 치웠다. 모용환은 소교의 허리를 잡아 들어 올렸다.
귀두 부분이 도톰한 계곡살을 가르며 작은 질 안에 감싸여지듯 파고들었다.
"힉..."
"으음!"
머리 부분만 들어갔을 뿐인데도 소교는 발가락을 구부리며 몸을 떨었다. 모용환은 소교의 가녀린 몸을 훑어보았다. 나이는 열여섯이지만 몸이 그나마 성숙해지려고 하는 대교에 비해서 소교는 거의 성장을 하지 않았다. 젖가슴도 조금 부푼 정도였고 엉덩이의 살도 별로 붙지 않았다.
게다가 덜 여문 풋풋한 꽃잎은 그의 커다란 육봉을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작고 여려 보였다.
"힘드려나..."
모용환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자 소교는 거세게 도리질을 쳤다.
"해, 해... 주세요..."
소교의 간절한 눈빛에 모용환은 눈 딱 감고 천천히 육봉을 밀어 넣었다. 작기 때문에 긴축감도 엄청났다. 수십 겹의 질벽이 한번에 옥죄는 듯한 느낌에 육손과 정사를 한면서 한껏 달아오른 모용환은 자칫 넣자마자 사정을 할 뻔했다.
소교는 다리를 벌릴 수 있는 최대한에 가깝도록 쫘악 벌리고 모용환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성숙하지 못한 몸, 거기에 첫경험의 고통까지 더해지자 이빨로 깨문 입술이 터져 피가 흘러내렸다.
마침내 그의 육봉이 뿌리 끝까지 박혀들었을 때, 그녀의 작은 몸이 작살에 꿰뚫린 물고기처럼 애처롭게 퍼덕였다.
"히으윽...!"
'안 되겠군.'
소교가 무척 아파하자 모용환은 남근을 그녀의 꽃잎에서 빼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곧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어깨를 잡은 소교가 허리와 엉덩이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조교당하면서 배운 방중술인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모용환을 만족시켜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그만하자고 한단 말인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소교가 최대한 아프지 않게 해주는 것뿐이었다. 모용환은 소교의 작은 엉덩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한 손으로는 밋밋한 가슴을 애무했다.
"... 아빠아... 하응..."
소교의 말을 듣자 모용환은 이상하게 더욱 흥분이 되었다. 마치 근친을 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는 가학적 성향이 발현되는 것 같았다.
'난 변태가 아닌데... 로리 성향이 아니란 말이다! 젠장.'
아무리 그래도 유아 체형의 소교와 관계를 가진 건 이미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는 오히려 소교의 얼굴을 보면 안 서는 게 병신이라고 자위하며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쑤욱, 퐁! 쑤욱, 퐁!
워낙 소교의 질 구멍이 작았기 때문에 육봉이 빠져나갈 때마다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소교는 모용환의 움직임에 맞추어 엉덩이를 들썩였다.
"허업!"
전문적으로 교육 받은 소교의 방중술에 모용환은 금방이라도 쌀 것 같았다. 절묘하게 민감한 귀두 부분을 자극하는 질벽의 움직임은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의 육봉이 출입할 때 마다 소교의 아랫배가 작게 들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소교는 엷은 미소를 띤 채 자신의 복부에 손을 갖다댔다. 마치 아기의 움직임을 느끼듯, 상냥하게 아랫배를 쓰다듬던 소교는 질 안에서 육봉이 빳빳하게 굳어지자 작은 입술을 달싹였다.
"...아빠... 안에..."
그렇지 않아도 모용환은 소교의 적극적인 율동에 육봉을 뺄 겨를도 없이 한계에 다다랐다.
"윽!"
푸슈숙!
"...하아..."
소교의 끝에 다다른 육봉은 마치 화산처럼 폭발했다. 자궁을 한가득 채우는 분출물에 소교는 배부른 암고양이가 포만감에 내는 소리와 흡사한 신음성을 내며 몸을 늘어뜨렸다.
"아우으으으..."
육손은 온몸이 뜨거운 열기에 휩싸여 달뜬 교성을 입 밖에 내고 있었다. 대교의 손길이 온 몸, 특히 겨드랑이를 간질일 때마다 그녀의 몸은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렸다.
대교는 육손의 젖가슴에서 어깨 사이로 이어지는 부분을 자극하면서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육 언니는 여기가 아주 민감하네요? 와, 벌써 흥건해졌어요."
육손의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른 음핵을 본 대교가 탄성을 지르며 숨쉬듯 벌름거리는 그녀의 꽃잎 사이를 헤집었다. 이미 육손의 꽃잎은 집요한 대교의 공격에 투명한 애액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대교는 육손의 부푼 음핵을 손가락으로 잡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언니는 한 번도 스스로 해본 적이 없나 봐요? 보통 이렇게 하면 여길 먼저 만지는데."
"너, 너... 나중에 두고 보자... 하아아..."
육손은 두 살이나 어린 대교에게 완전히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에? 언니도 좋았으면서 뭘 그래요. 헤헤. 앗."
대교는 갑자기 겨드랑이 사이로 불쑥 튀어 나온 손이 자신의 몸을 번쩍 들어올리자 배시시 웃었다.
"제 차례가 됐나 봐요."
"요 꼬마 악녀 같으니라고."
"아하... 아빠, 세게 하지 말아요."
모용환은 들어올린 대교의 가랑이 사이에 다시 쇳덩이처럼 단단해진 육봉을 잇대었다. 대교의 몸은 소교와는 다르게 처음 봤을 때 보다 한층 성숙해져 있었다. 가슴이 볼록했고, 소교가 음모가 거의 없는 것과는 달리 솜털 수준이긴 해도 작은 수풀이 형성되어 있었다.
"학!"
그녀의 부탁과는 달리 모용환은 짓궂은 얼굴로 대교의 몸은 한번에 하강시켜 버렸다. 처녀막이 찢기는 걸 느낄 새도 없이 턱 밑까지 채우는 육봉의 존재감에 대교는 숨이 막혔다.
대교의 꽃잎은 넘칠 정도로 젖어있었기 때문에 고통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아프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모용환의 몸을 잡고 허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아앙... 커요..."
"우우... 너, 피만 없었다면 처음이라고는... 못 믿을 정도야."
모용환은 소교보다 더욱 리드미컬한 그녀의 율동에 최선을 다해 허리를 움직여야 했다. 가만히 있다가는 그대로 싸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작은 몸 어디에서 이런 기교가 나오는지.
'그 놈들은 애한테 대체 뭘 가르친 거야?'
애꿎은 인신매매단을 탓하는 그였다.
"아빠. 그런 말은... 하앙... 실례예요..."
대교는 작은 유방을 모용환의 상체에 맞대어 문질렀다. 그의 단단한 상체 근육이 젖가슴을 자극하자 대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성도 점점 열기를 띠었다.
"아빠아... 만져줘요... 여, 여기..."
잔뜩 붉어진 얼굴을 한 대교는 모용환의 손을 자신의 국화로 인도했다. 조교를 받아 자매 모두 성감대가 극도로 발달했지만, 원래 수줍은 성격인 소교보다 쾌활한 성정을 지닌 대교는 당돌한 요구까지 해왔다.
"이렇게?"
"흐윽! 조, 좋아요... 더!"
모용환이 대교의 국화 주변을 살살 문지르자 그녀는 눈을 하얗게 치떴다. 자신을 안는 대교의 팔에 힘이 더욱 강하게 들어간 것을 느낀 모용환은 손가락을 그녀의 국화 속에 쏙 집어넣었다.
"아아아! 저... 갈 것 같아요! 흐앙!"
꽃잎과 항문 양 쪽에서 공격을 당하자 대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절정에 달했다. 천당을 오가는 황홀한 기분에 그녀는 몸을 가늘게 떨었다.
"으음, 벌써 가면 내가 곤란한데."
소교와 마찬가지로 힘을 잃고 늘어진 대교를 눕힌 모용환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그의 육봉은 단단히 성이 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눈에 온 몸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안절부절 못하는 육손이 들어왔다. 대교와 모용환의 정사를 보면서 성욕을 느낀 것 같은데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사실 육손은 주변 사람들에게 성교에 대해서 기분 좋다, 좋은 거다. 이런 식의 추상적인 얘기만 들었지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었고, 자위도 해본 적이 없었다.
"형... 몸이... 뜨, 뜨거워."
드센 육손이 자기의 볼을 감싸 쥐며 애원하듯 말하는 모습은 퍽 귀여웠다. 모용환은 양반다리를 하고 자신의 육봉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풋! 내 위에 앉아. 이게 만병통치약이지. 육침을 맞으면 나을 거다."
"으, 응..."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육손은 엉거주춤 모용환에게로 다가가 다리를 벌리고 천천히 앉았다.
그런데 정작 육봉을 피해서 앉는 모습에 모용환은 그녀의 엉덩이를 당기고 손가락으로 꽃잎을 벌렸다. 조갯살을 파헤치듯 벌리게 하는 사내의 손길에 육손은 기겁하며 일어서려고 했다.
"어딜 만지는 거얏!"
"이게 몸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니까. 자!"
"흐악!"
다시 한 번 질 속에 육봉이 들어가는 걸 허용한 육손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몸을 구부렸다. 헌데, 처음과는 달랐다. 아프기 보다는 미묘한 쾌락이 하체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느낌이었다.
"후아... 안... 아프잖아?"
"아까는 처음이라 그런 거고. 이번엔 제법 질퍽해 졌으니까. 하하."
신기해하는 육손의 볼을 쭈욱 당긴 모용환은 진퇴운동을 시작했다. 자궁 끝에 닿았다가 약 올리듯 빠져나가는 육봉의 움직임에 육손은 형용치 못할 희열을 느꼈다.
"아으, 아으응... 형... 이, 이상해..."
"좋은 거니까."
"이래서... 하악...! ...기분 좋다고...아!"
퍽! 퍽! 퍽!
모용환이 육손의 엉덩이를 고정시키고 허리를 들었다 놨다 할 때마다 그녀의 달덩이 같은 둔부가 출렁이며 감창소리도 완연한 쾌락에 젖기 시작했다. 몸이 어떻게 될 것 같은 쾌감에 육손의 눈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아아아앙! 오줌... 마려... 놔, 놔줘."
애액으로 인해 더욱 윤이 나는 그녀의 음모 부근을 헤집던 모용환은 킥 웃었다. 절정에 다다르려 하는 모양이었다.
"오줌 아니야. 그냥 싸."
"어, 어떡해... 진짜라고!"
"나도 쌀 것 같으니까... 우리 같이 싸자."
모용환의 말에 육손은 열락에 젖은 와중에도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히끅...! 내, 내 몸 속에 오줌을 싼다고...? 미, 미쳤... 흐아아아앙!"
결국 육손은 말을 미처 다 끝맺지 못하고 모용환을 꽉 끌어안으며 다리를 움츠렸다. 그녀가 황홀경에 빠져들자 모용환 또한 곧 이어 아랫도리가 울컥하는 느낌과 함께 육손의 안에 자신의 분신들을 흩뿌렸다.
"흐으으... 안 돼애..."
뜨거운 액체가 울컥울컥 자신의 내부 안에 퍼지는 느낌에 육손은 그것이 정말 오줌인 줄 알고 절망감(?)에 몸부림치다 그대로 실신해 버렸다.
순진한 육손의 모습에 피식 웃은 모용환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잠이 든 소교의 옆에 누워 있던 대교가 키득거리며 그 장면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재미있는 언니네요."
"오늘 네 녀석들의 의외의 면을 알게 된 것 같은데."
모용환이 짐짓 심각한 얼굴로 말하자 대교는 핏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아빠. 언니들한테 사랑받고 싶으면 우리한테 잘 보여야 할 걸요?"
"뭐?"
"언니들의 성감대는 모두 알고 있다고요. 같이 목욕하면서... 확실히 알아뒀죠."
"......"
왠지 자매가, 대교가 무서워지는 모용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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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 복상사? 어림없습니다.
예전에 10명 한정이라고 말했을 때 독자분들이 반발하셔서 무제한으로 하기로 마음먹은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겨우 9명인데 많다니요. 우둔한 작가는 도통 독자제현의 깊으신 뜻을 모르겠습니다... 한바탕 질퍽한 하루를 보낸 모용환은 그 시간 동안에 밀린 서류 처리를 육손에게 강제로 떠넘겼다. 육손은 울상을 지었지만 어쩌겠는가, 몸종이니 주인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지. 그렇게 한결 편안하게 점령지를 안정화시키고 있던 그는 유비가 곧 시상에 도착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승전보를 받자 바로 건안에서 출발한 모양이었다.
그날 뒤늦은 오후, 미리 통보했던 대로 유비 일행이 도착했다. 명목상은 점령지 시찰이었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대로, 모용환을 만나고 싶어 온 것이다. 일행엔 언제나 유비를 그림자처럼 호위하는 장비와 군사인 제갈량, 또 어떻게 따라왔는지는 모르지만 유엽도 함께였다.
그녀들이 도착하자 가장 반긴 건 조운이었다. 조운은 전장에서 입었던 화려한 은색갑옷을 입은 채 어린 아이처럼 제갈량에게 안겼다.
"언니! 보고 싶었어요! 잘 지냈어요?"
"후훗, 운아는 이제 장군이 다 됐는걸? 오면서 들으니 은룡의 명성이 자자하던데."
"헤헤. 아직 많이 부족해요."
제갈량의 앞에서는 전장을 종횡하는 은룡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엄마의 칭찬을 받는 아이처럼 쑥스러워하는 조운이었다.
"아쭈, 난 이제 보이지도 않니?"
유엽이 눈을 가늘게 뜨며 허리에 손을 얹자 조운은 헤헤 웃으며 유엽을 끌어안았다.
"유 언니도요."
"흥, 이 계집애가 명성 좀 얻으니까 난 아주 뒷전인가 봐. 량아는 좋겠네, 이런 동생을 둬서."
유엽의 말에 제갈량은 살포시 미소 지었다. 그녀는 사람을 죽이는 걸 두려워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한사람 몫을 제대로 하는 장수가 된 조운이 마냥 대견스러웠다.
조운은 유엽이 고개를 팩 돌리자 우물쭈물 말했다.
"언니. 화내지 마요... 전 그냥 제갈 언니가 너무 반가워서..."
"흥흥. 결국 량아만 눈에 보였다는 거잖아? 난 운아 같은 동생 둔 적 없어."
냉랭한 표정의 유엽이 화를 풀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급기야 조운은 울먹이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흑..."
"풋!"
찌르면 와앙 하고 울음보를 터뜨릴 것 같은 조운의 얼굴을 본 유엽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런 가벼운 연기에도 의심 없이 속아 넘어가는 조운이 너무 귀여웠다. 대체 이 아가씨는 언제쯤이면 이런 거짓말에 내성이 생길까?
유엽은 짤랑짤랑 교소를 터뜨리며 조운을 놀려댔다.
"오호호홋! 바보니? 내가 이 정도로 화를 내게? 역시 운아는 놀리는 맛이 있어!"
그제야 유엽이 지금까지 장난 친 걸 깨달은 조운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화를 냈다.
"언니!"
유엽이 조운에게 장난치는 모습을 보고 있던 모용환은 웃음을 참으며 유비를 맞이했다. 언제나 변함없이 온화한 얼굴을 한 유비는 모용환을 보자 살짝 목례를 했다.
"해내실 줄 알았어요. 모용 장군."
모용환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과례를 감당키 어렵습니다. 주군. 전 오히려 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2만이나 되는 군사를 잃었으니까요."
유비는 고개를 저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해요. 지금은 전사자들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해 주는 것이 우리가 유일하게 그들에게 속죄하는 길이에요."
"주군께서 그런 말을 하실 줄 알고 전사자들에 대한 보상은 유족들에게 후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점은 심려치 마십시오."
육손이 알려준 한현의 비고. 그곳에 있는 돈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많았다. 그 일부분은 이번 전쟁에서 전사한 자들에 대한 장례와, 유족들에게 보상금으로 쓰여 졌다.
"대교와 소교가 보이지 않네요?"
유비의 물음에 모용환은 난처한 빛을 띠었다. 아직 여물지 않은 소녀들의 그곳에 육중한 그의 물건이 들어갔으니... 육손과 이교는 하체의 통증 때문에 현재 거동이 조금 불편한 상태였다.
"그게... 쩝."
차마 정부인이 될 여인 앞에서 어떻게 설명을 한단 말인가. 그의 기색을 본 유비는 빙그레 웃었다.
"그 아이들이 소원을 이룬 모양이네요."
"예..."
대교가 말하길, 언니들이 모두 모여 전포를 만드는 중에 허락을 받았다고 했으니 유비가 손쉽게 짐작하는 건 당연했다. 모용환은 그저 멋쩍은 얼굴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장비가 한 마디 내뱉었다.
"짐승."
"......"
무슨 할말이 있으랴.
"장 언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 아이들도 원해서 한 일이니까요."
"예. 유비님."
"이만 성 안으로 들어가도록 해요."
유비는 싱긋 웃으며 딱딱하게 굳어버린 모용환의 옆을 스쳐지나갔다. 장비가 그 뒤를 따르며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자신만만하게 나갈 땐 언제고 2만이나 잃다니."
"......"
금선과 한현,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은 것 치고는 2만이라는 피해는 적은 편에 속했지만 그 대부분을 단 한 번의 전투로 잃었다는 것과, 다른 사람도 아닌 장비에게 저 말을 들으니 마음이 심하게 찔리는 모용환이었다.
그런 그의 앞으로 제갈량이 다가왔다.
"장 언니가 말을 좀 심하게 했네요. 환랑도 무척 잘한 편인데."
모용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말 들어도 싸지. 나도 2만이나 잃은 줄은 몰랐으니까. 량아의 쪽지가 아니었으면 이번 원정은 실패했을 지도 몰라. 조호이산... 량아, 신통술이라도 배웠어? 어떻게 알고 그런 쪽지를 준 거야?"
제갈량은 배시시 웃으며 모용환의 팔짱을 꼈다.
"혹시라도... 적들에게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군사가 있다면 두 세력의 동맹을 맺을 거라 생각했어요. 환랑이 고생할 만한 일은 그거 하나뿐이니까요. 실리를 기반삼은 동맹은 작은 위협에도 쉽게 깨지기 마련이죠. 설마 했는데, 정말 그렇게 될 줄은 저도 몰랐어요."
모용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혜안에 감탄했다.
"덕분에 살았어."
"전 실마리만 제공했을 뿐, 거기서 모든 전략을 꾸민 것은 환랑이 한 일이에요. 고마워하실 필요 없어요."
"그 실마리 덕분에 살았으니까.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모용환과 함께 성문을 지난 제갈량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속삭였다.
"부부 사이에는 그런 말 할 필요 없어요... 알았죠?"
왠지 모를 교태가 느껴지는 그녀의 말에 모용환은 침이 꿀꺽 넘어가는 걸 느꼈다. 제갈량이 이렇게 나긋나긋하게 말할 때면 정말 솟구치는 욕망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그, 그래."
"그런데 환랑을 골탕 먹인 그 군사는 누구죠?"
육손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모용환은 멈칫했다.
"육손. 내... 몸종이 됐어."
"몸종이요?"
"크흠. 일단 가자."
사슴 같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제갈량은 이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일단 들어가서... 할 말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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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시간 후 다음편 올라오겠습니다. 모용환이 원정을 나간 사이, 중원의 정세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중 주목할 만한 점은 조조의 재기였다. 그것도 빼앗긴 예전 영토 쪽으로 확장을 한 것이 아니라 대담하게도 중원의 강호 중 하나인 원소의 영토를 빼앗았다. 그런 조조의 상승세에는 유비군도 한 몫을 했다.
시상 성 내의 대전. 모용환은 제갈량의 말을 듣고는 눈을 깜박였다.
"관우 형님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조조군에 지원을 나가셨단 말입니까?"
태사의에 앉은 유비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모용 장군이 원정을 나가자마자 조조군에서 밀사가 왔었어요. 조조군의 이인자인 하후 장군이었죠. 동맹을 맺고 소패를 점령하는데 지원을 해달라는 부탁이었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제갈량이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궁내로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나긋하던 그녀의 태도는 대전으로 들어서자 이지적이고 사무적인 군사의 모습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일전에 장군은 허창에서 곽가님에게 빚을 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동맹을 수락한 것도 있지만, 아군이 안심하고 중원 남부로 세력을 넓히기 위해서는 원소를 막아줄 단단한 방파제가 필요하기에... 하후 장군의 부탁을 수락한 겁니다. 솔직히 저도 벼랑 끝에 몰린 조조군에서 이런 제의를 해 올 줄은 몰랐습니다만."
곽가는 거의 맨손으로 시작한 조조군을 중원의 패권을 다투는 강호로 성장시킨 입지전적인 인물. 모사들에게는 신과 같은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제갈량 역시 곽가를 존경하는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그를 부를 때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뒤에 '님'자를 붙였다.
보통 막다른 구석에 몰리면 어떻게든 한 곳에서 버티려고 아득바득 하기 마련인데 조조군의 움직임은 정말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소패를 점령한 조조군은 하비의 도겸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북해로 진격 중이다... 란 건가."
어차피 늙고 병든 도겸이 다스리는 하비는 누가 점령해도 이상하지 않을 곳이었다. 유비군 역시 하비를 염두에 두긴 했으나 괜히 원소와 전선을 넓히고 싶지 않아 내버려둔 곳이었다.
"정확히는 현재 북해 공략전을 치루고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북해는 원술이 망한 뒤 치안이 엉망인 곳입니다. 어쩌면 벌써 조조군에게 점령당했을 지도 모릅니다."
조조가 세력 대부분을 사마의에게 뺏겼으면서도 그나마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휘하에 허저, 전위, 하후돈 등의 맹장들이 있는 것도 있었지만 호표기의 절반이 두 도시에 집중되어 있던 덕도 있었다. 원소와 전선을 맞대고 있는 진류와 복양에 남아 있던 호표기... 북방의 이민족들이나 여포의 기병대, 공손찬의 백마의종을 제외하면 내륙의 기마대 중 최고라 할 수 있는 정예병들이 움직인 것이다.
아마 원소가 어떻게 해 볼 틈도 없이 북해는 점령당할 것이다.
"조조군의 순욱, 순유가 낸 계책인가?"
모용환은 그가 알고 있는 조조군의 모사진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하지만 제갈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마 그들은 아닐 겁니다. 일전의 원소와 원술의 휘하에 있을 때 그들을 만나 본 적이 있습니다. 형식적인 말들을 나누었지만, 제가 생각하기로는..."
"흐음?"
"조조 맹덕. 철혈의 제후라고도 불리는 그녀가 직접 지시한 것일 겁니다. 조조군이 중원 한복판에 거대한 세력을 일구기까지는 불세출의 천재인 곽가님이나, 하후 장군의 공도 컸지만 그에 못지않은 공헌을 한 것은 조조 본인의 능력이었습니다. 일전까지는 곽가님을 비롯한 사마의, 정욱, 순욱, 순유 등의 모사진에 가려 있었지만..."
제갈량은 잠시 숨을 골랐다.
"일찍부터 황실의 고귀한 군주로 자라며 제왕학을 배운 인물입니다. 조조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쓰는 법이나 온갖 병서에 통달하여 시류를 읽는 통찰을 가진 인물. 지략은 뛰어나지만 다소 고지식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한 순욱과 순유는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이런 위험한 전략을 쓸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 전략이 멋지게 맞아 떨어졌군. 누가 지시했던 간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제갈량이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조조와 공손찬이 사전에 밀약을 맺은 것 같습니다. 단지 예상 뿐이지만... 지금까지 소극적으로 원소를 상대하던 공손찬이 조조군의 발호와 때를 맞춰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불확실한 소문이지만 소문으로만 듣던 백마의종을 봤다는 사람도 있고... 그 때문에 원소는 쉽사리 군대를 움직이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공손찬은 원소와 오랜 숙적이었으니 그리 이상할 건 없지 않습니까? 그 때문에 조조와 밀약을 맺었다고 해석하는 건 지나친 비약이 아닐까요?"
감녕의 말에 제갈량은 진중한 얼굴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 두 세력이 밀약을 맺었다면... 원소는 커다란 위험에 직면할 겁니다. 조조군의 지략과 공손찬군의 무력이 합쳐지면 제 아무리 원소라도..."
"......"
대전에 모인 사람들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제갈량의 말대로 정세가 돌아간다면 하북의 미래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조조와 공손찬이 힘을 합해 원소를 친다면 분명 원소가 불리하겠지만, 그렇다고 손놓고 당할 원소가 아니었다. 오랫동안 하북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원씨 가문은 수많은 크고 작은 태풍을 견뎌낸 거목(巨木)인 것이다.
"그럼 하북은 얼마간은 신경 꺼도 되겠군."
별로 긴장감이 없는 모용환의 말에 제갈량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회의를 이어나갔다.
"동탁군이 서량의 마등을 멸망시켰습니다."
고저 없는 그녀의 목소리였지만, 이 때만큼은 모용환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위 단 한 성만을 가진 마등이었지만 단련된 서량의 정병들로 계속해서 동탁을 괴롭히던 군주 아닌가. 그가 멸망했다니!
서량의 정예들도 동탁의 인해전술을 감당할 수 없었던 듯 했다.
하지만 그 소식에 더욱 크게 반응한 것은 감녕이었다.
"군사! 그게 정말입니까?"
"예. 동탁군에서 알린 바에 따르면 태수 마등을 비롯한 마씨 일가는 모두 목이 잘렸고, 마등의 딸 마초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현재는 포로로 잡힌 상태라고..."
감녕은 분통이 터지는지 제갈량의 말을 끝나기 전에 발을 쿵 하고 굴렀다.
"동탁, 이 죽일 놈!"
"진정해. 마등의 멸망은 예견된 것이었어. 단지 시기가 좀 빨랐을 뿐인데... 왜 그러지?"
감녕이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자 그를 진정시킨 모용환이 물었다. 감녕은 겨우 분기를 가라앉혔지만, 여전히 콧김을 뿜어내며 말했다.
"제가 어렸을 적에 마등님이 이 일대를 지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제 창술의 기본을 잡아주신 분이지요. 이 양지극도 그 분이 주신 겁니다. 이 감녕이 이만큼 크고 행세하게 된 데에는 그 분의 은혜가 큽니다. 그런데... 참수를 당하셨다니!"
모용환은 감녕이 유독 양지극을 아끼는 이유를 깨달았다. 저번에 강을 건널 때도 양지극을 던지니 차마 자기에게 말만 못했을 뿐이지, 얼마나 애가 닳아 하던가.
그는 감녕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네 손으로 원수를 갚게 해주마. 단, 지금은 안돼. 너도 잘 알겠지?"
지리상으로도, 세력상으로도, 아직 동탁과 대적할 힘은 없었다. 감녕도 그 정도는 알았다.
"물론입니다. 장군. 그 약속, 절대 잊지 마십시오!"
"당연하지."
감녕의 손을 굳게 맞잡은 모용환은 제갈량에게 시선을 돌렸다.
"군사. 그러면 동탁의 세력이 더욱 커졌겠군?"
"네. 여러모로 원소와는 대조되는 상황입니다."
제갈량은 원소를 인용했다. 그만큼 동탁과 원소의 상황은 무척 비슷했다. 후방에서 마등과 공손찬이 압박을 가하는 점도 그렇고, 아래에서는 각각 엄안과 조조가 눈엣가시처럼 남하를 막고 있었다. 그런데 여전히 공손찬에게 시달리는 원소와는 달리, 지금 동탁은 마등을 멸망시켰다.
"남하를 시작하겠군."
"아군에게 좋은 상황이 아닙니다. 마등이 멸망한 지금, 엄안만으로는 절대 동탁의 남진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제길. 미치겠군."
골이 아파진 모용환이 자기도 모르게 상소리를 내뱉자 제갈량이 주의를 주었다.
"장군. 주군의 앞입니다."
"아... 죄송합니다."
모용환은 유비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옆에 시립한 장비가 뭐라고 궁시렁거리는 게 들렸지만 그는 가볍게 무시했다.
회의 내내 아무 말도 없는 유비는 강사님의 수업을 필기하는 학생처럼 무릎 위에 종이를 놓고 붓으로 뭔가를 받아 적고 있었다. 제갈량이 말한 바로는 군주로서 꼭 알아둬야 할 천하의 현황, 앞으로 이어질 정세 등을 적고 있다고 했다.
잠시 짬이 나자 땀으로 흥건해진 손바닥을 천으로 닦은 유비는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두 분은 정말 대단하세요. 난 머리가 나빠서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가 없는데. 이것저것 생각하려면 머리가 아프네요."
유비는 내정 실무에는 뛰어났지만 이런 전쟁에 관련된 것은 어찌 된 일인지 영 젬병이었다. 그녀의 머리는 무척 똑똑한 편이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전쟁과는 거리를 두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하. 유비님은 이런 데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에요. 참, 상향이 승전보를 보내왔어요. 남해를 점령했다고요. 지금 계양으로 향한다고 했어요."
유비의 말을 들은 모용환은 놀란 얼굴로 제갈량을 바라보았다. 제갈량은 그의 시선을 받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오월대장으로 임명되신 손 장군이 첫 승전보를 보내왔습니다. 남해에서의 승전보가 도착한 지 며칠이 흘렀으니, 지금이면 계양 공략을 시작했을지도 모르겠군요. 계양은 무주공산이니 쉽게 점령할 수 있을 겁니다."
오월족의 세력권은 남해까지다. 사실상 계양은 점령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모용환을 놀라게 한 것은 오월족의 최후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남해를 경험이 없는 손상향이 의외로 빠른 시간 내에 점령한 것이었다.
"상향이 많이 노력한 모양인데? 뭐, 유아도 있으니까..."
"오월 일부에서는 마녀라고까지 불린다는군요."
"응?"
"남해 공략전에서 포로들을 조금 잔인하게 다룬 듯 합니다. 손책 장군의 죽음과 관련된 족장들은 모조리 참수했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
모용환의 얼굴이 굳어졌다. 손상향을 오월대장으로 임명하기 전에 세 가지의 조건을 내걸며 그렇게 당부했었는데. 하지만 뒤이은 제갈량의 말은 그가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게 해주었다.
"복수극은 그것으로 깨끗이 마무리하고, 그 이후에는 점령지를 잘 다스리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오월족들은 손 장군을 두려워하는 모양이더군요."
오월로 떠나기 전 마주했던 손상향의 북풍한설처럼 차가운 얼굴이 떠올랐다. 명랑하던 그녀의 성격이 많이 변한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 뒤로 형주의 채모가 사마의에게 강릉을 뺏겼다는 등의 보고가 올라왔다. 일단 원정이 끝난 직후이기 때문에 홀로 장사로 간 장료가 세세한 보고를 올리기 전까지는 내정에만 전념하기로 방침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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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방은 업데이트 된 세력도 입니다. 어느새 90화까지. 흠
초록 : 유비 파랑 : 조조 노랑 : 원소 주황 : 공손찬 회색 : 동탁 남색 : 엄안 하늘색 : 채모 연두 : 사마의 보라, 자두 : 떨거지
유비가 좀 세력이 넓어 보이죠? 근데 저중에 구석에 있는 성들.. 회계 건안 남해 같은데는 중원에 별 영향을 못미치는 구석에 박혀 있는 성들입니다.. 삼국지 해보신분들은 저 성들 별 도움안된다는거 아시겠죠(...)
시상에 유비가 도착하기 일주일 전.
"으으... 저 마녀..."
오월족의 족장 중 한명인 답진은 벌벌 떨면서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부서진 성문 아래에 말을 타고 커다란 궁을 든 장수가 매우 빠른 속사로 오월의 병사들을 과녁처럼 쏘아 맞히고 있었다.
오월족들은 유비군이 원정군을 파견한 이래 정말 물릴 정도로 싸워왔다. 대륙인들에게 숙이고 들어간다는 건 그들의 자존심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몰리고 말았다. 남해를 뺏긴다면 원정군에게 패하는 것이었다.
허공의 계략으로 손책을 죽였을 때에는 원정군이 순순히 물러갈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동생이라는 소녀가 대장으로 임명되었다. 그 때는 어린데다 여자니까 손상향을 만만하게 봤었다.
그런데...
'지독한 계집!'
알고 보니 제 오라비보다 더한 년이었다. 처음 손상향이 이끄는 원정군과 일전을 치룬 것은 빼앗긴 건안을 수복하기 위해 오월족들을 모아 건안을 쳤을 때였다.
단 한 발의 화살. 어이없게도 선발대를 이끌던 그의 아들 답황은 성벽에서 날아온 단 한발의 화살에 머리가 꿰뚫려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똑똑히 보았다. 성벽위에 서 있던 손상향이 차가운 얼굴로 쳐들었던 활대를 내리는 것을.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농성을 할 줄 알았던 원정군은 오히려 성문을 열고 나와 선발대장을 잃어 우왕좌왕하는 오월족을 말 그대로 학살하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는 손상향이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창을 휘두르는 그녀의 눈에는 자비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손상향과 정보, 한당, 황개 등이 이끄는 원정군에 완전히 기가 꺾여버린 오월족들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낙석을 이용하거나, 매복을 하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계략을 짜내어 봤지만 전과는 다르게 하나도 통하는 것이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원정군에 주유라는 걸출한 군사가 합류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남해성의 성문이 열리고 물밀 듯이 원정군이 들이닥쳐 항복하지 않는 자들을 닥치는 대로 베고 있었다.
답진은 갈등했다. 굴욕적이라도 항복하여 살 것인가, 끝까지 저항하다 죽을 것인가.
푸르릉!
그런 그의 앞에는 어느새 주변을 정리한 손상향이 말을 몰고 다가와 있었다. 그녀는 앳된 얼굴과는 달리 무섭도록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꿇어."
"......"
답진은 그녀를 올려다보며 굴욕감에 몸을 떨었다. 이 패배의 원흉이 눈앞에 있었다. 지금이라도 검을 뽑아 찌른다면...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손상향의 무력은 정면에서 암습을 허용할 정도로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항복...하겠소..."
털썩.
오월족의 실질적인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답진이 무릎을 꿇자, 그것을 시작으로 망설이던 오월족 병사들이 하나 둘 무기를 버리기 시작했다. 침통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답진은 손상향에게 물었다.
"우릴 모두 죽일 거요?"
"내 오라버니의 죽음과 조금이라도 관련된 자들을 말해. 허공을 도운 자라면 모두! 한 치의 거짓이라도 있다면... 살아있는 걸 후회하게 만들어 주지."
증오와 살기가 뒤섞인 손상향의 말에 답진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살기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그는 진작 죽었으리라. 그만큼 손상향이 품은 분노는 무시무시했다.
답진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작게 말했다.
"나와... 부족장들이 전부요. 그들만으로... 끝내 주시오."
"닥쳐. 그건 내가 결정해. 정보. 그들을 모두 끌고 와요."
"예. 아가씨."
명랑하고 쾌활하던 손상향의 너무도 변해버린 모습에 안타까운 눈길을 보내던 정보는 그녀의 명령에 따라 항복한 부족장들을 가려내어 포박해 데리고 왔다. 모두 4명. 답진까지 포함한 다섯은 끝까지 저항한 오월족의 수뇌부였다.
그 중 가장 젊은 장한이 손상향을 노려보며 피를 토하듯 외쳤다.
"손씨 연놈들! 오라비를 죽이니 동생 년이 와서 지랄이구나! 저주 받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힘이 없지만 언젠가... 컥!"
서걱!
손상향을 향해 욕설을 퍼붓던 그의 목은 가차 없는 칼질에 잘려 떨어졌다. 할 말을 미처 끝내지 못한 얼굴은 미련이 남았는지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자비를 바란다면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마."
퍽.
피분수를 뿜어내는 그의 몸을 발로 차서 넘어뜨린 손상향이 싸늘하게 말했다. 장한의 처참한 죽음에 다른 족장들은 모두 자라목이 되었다.
굳은 얼굴로 그걸 보고 있던 황개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가씨. 이들을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설마..."
그는 불안했다. 물론 저항 세력의 핵심인 이들은 모두 제거되어야 마땅했지만 지금 손상향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은 그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정보, 한당, 황개. 그들은 손상향의 심성이 잔혹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손상향은 족장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당신들이 선택해. 내가 만족할 만한 답이 나오면 그대로 따라 주지."
"......"
그녀의 말에 족장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암묵적으로 의견을 조율했다. 지금에 와서 살려달라고 하는 것만큼 구차한 일은 없었다. 이왕 죽을 거라면 그 목숨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고 싶었다.
"우릴 모두 죽여도 상관없소. 대신, 남은 자들은 최대한 선처를 바라오."
살려달라고 하지는 않고 선처를 바란다고 했다. 최대한 손상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함이었다.
손상향은 차갑게 냉소했다.
"그래도 정을 베풀어 달라 이건가? 좋아. 이들을 모두 죽여요."
"이 자리에서 말입니까?"
"그래요."
정보는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손상향이 확고한 얼굴을 하자 어쩔 수 없이 커다란 도를 들고 손수 사형집행을 시작했다.
퍽!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한 부족장의 머리가 땅에 나뒹굴었다. 자신들의 제안이 받아들여진 것을 알고 난 뒤라 그런지 그의 얼굴이 더없이 평온해 보였다.
퍽! 퍽!
그 뒤를 따라 답진을 제외한 모든 부족장들이 목을 잃은 시체가 되었다. 마지막 차례인 데다가 유일하게 포박을 당하지 않은 답진은 심하게 몸을 떨고 있었다. 결심한 뒤라 하지만 막상 죽을 차례가 되니 두려움이 온 몸을 엄습했기 때문이다.
손상향은 그런 그를 보고 코웃음을 치며 몸을 돌렸다.
"추하군. 볼 것도 없겠어."
그 말을 들은 답진의 두 눈이 순간 악독하게 빛났다. 정보가 막 그의 앞에 섰을 때, 그는 품속에서 비수를 꺼내들어 손상향을 향해 던졌다.
"죽어라!"
"이 놈! 아가씨!"
쐐액!
답진의 외침과 정보의 경악성을 들은 손상향이 고개를 돌렸을 때는 비수가 코앞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큭!"
손상향은 고개를 돌려 이마가 뚫리는 것은 면했지만, 비수는 그녀의 옆얼굴에 긴 자상을 남긴 채 스쳐지나갔다.
손상향이 피가 철철 흐르는 얼굴을 감싸 쥔 채 무릎을 꿇자 정보는 단숨에 답진의 목을 쳐버렸다.
"비겁한 놈이!"
"컥!"
허망하게 죽어버린 답진을 뒤로 하고 황급히 손상향에게 달려간 정보는 황개와 한당에게 손상향의 상태를 물었다.
"아가씨는 어떠신가!"
지혈을 하고 있던 한당이 침중하게 말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시네. 다만 워낙 깊게 베인데다가 비수도 그리 깨끗한 것이 아니라... 흉터가 남을 것 같네."
"그런... 익!"
정보는 분기를 참지 못하고 도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여인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얼굴이 아닌가. 더구나 손상향은 아직 신혼이었다. 그런 그녀의 꽃 같은 얼굴에 흉한 상처가 진 것이 자신 때문이라 생각하니... 도저히 가만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쿵 하고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제 부주의로...! 죽여주십시오!"
그를 말없이 바라보던 손상향은 얼굴 한쪽을 감싸 쥔 채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이 상처는 제 업보. 마땅히 제가 지고 갈 것이니 아저씨는 신경 쓰지 마세요."
이 날 이후로 손상향의 얼굴에 새겨진 흉터는 그녀가 언급될 때면 항상 뒤를 따르는 '마녀'라는 별명을 상징하는 낙인과도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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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서량을 평정하신 것을 앙축 드립니다. 상국."
장안성 대전 안, 내일 있을 서서와의 혼인식에 앞서 이유는 동탁과 독대를 하고 있었다. 현재 장안성 내는 오랫동안 골칫덩이였던 서량의 마등을 멸망시킨 일과, 동탁군의 두 머리라고 할 수 있는 이유와 서서의 혼인 때문에 축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동탁의 우람한 체구가 흥에 겨운 듯 씰룩였다.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시원하구만. 흐하하핫!"
"상국의 기쁨은 곧 저의 기쁨입니다."
콧수염을 강아지의 꼬리처럼 휘날리며 아첨을 떠는 이유의 모습은 영락없는 간신배의 모습이었다.
동탁은 그의 아부가 싫지 않은 듯 찻잔을 내려놓으며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핫! 요 근래 자네의 아부가 더욱 늘었구만. 그래, 내일 있을 혼인식에 대한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나, 사위?"
"헤헤. 저야 뭐, 상국께서 지시하신 대로만 따르면 되는 것 아닙니까."
이유가 실실 웃자 동탁은 신뢰감 가득한 얼굴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무쪼록 딸아이를 잘 타이르도록 하게. 후계를 잉태해야 할 귀한 몸이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유가 머리를 조아리자 동탁은 상체를 숙였다. 반 백년이 넘게 살면서 그의 얼굴에도 주름이 많이 늘어 연륜의 무게가 느껴졌지만, 선천적으로 커다란 근골을 타고 났기 때문인지 어지간한 청년들보다도 체격이 당당해 주변을 짓누르는 위압감이 풍겨 나왔다.
그런 그가 몸을 숙이니 마치 커다란 산악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대외적인 모양새도 그렇고, 특별히 신경 써야 할 것이야. 자네가 고자인 걸 보여주지 않았다면 내 신임도 얻지 못했을 테니. 알아들었는가?"
"예, 예... 그런데 대 놓고 말씀하시는 건 좀... 그래도 있기는 합니다만..."
그가 익살스럽게 말하자 동탁은 대소하며 그의 등을 두드렸다.
"크하핫! 이 사람아, 양물이 서기만 하면 뭐 하는가? 토정(吐情)을 못하는 양물은 달려 있어 봐야 소용이 없네. 내 자네의 목소리가 왜 그렇게 환관 같은지 항시 궁금했었느니, 그 이유가 있었군 그래."
"아이고, 소문만 내지 마십시오. 상국."
"넉살은. 으하하핫!"
이유는 헤헤거리며 연신 고개를 숙여 보였다. 동탁군에서 군주인 동탁의 신임을 가장 많이 받는 자는 다름 아닌 그였다. 그리고 이번 일만 성공한다면, 그의 지위는 더욱 확고해지리라.
동탁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내 자네의 책략에 감탄했네. 말 그대로이지 않은가 말이야. 대체 딸아이가 정에 약하다는 건 어찌 알았는가?"
"군사와는 소싯적에 작은 인연이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도도해 보여도 먼저 정을 주며 다가오는 사람은 거절하지 못하는 여인입니다. 예전부터 그랬지요. 특히 그 일 이후로는 그런 점이 더욱 심해졌을 것입니다."
"그 일...? 그게 뭐지?"
"별 일 아닙니다. 자매형제와 같던 친구들을 잃고, 어머니와 같던 스승을 잃었지요. 홀로 남겨지면 더욱 정에 굶주리는 법입니다. 후후, 상국께서 신경 쓰실 일은 아니지요. 그저 지금은 앞으로의 일에만 힘쓰시면 됩니다."
이유의 말에 동탁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유는 그 일에 대해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은 듯 했다. 이런 일을 굳이 캐물어 좋은 수하의 기분을 망치게 할 필요는 없었다. 들어 보니 별 일도 아닌 듯 했고.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한 달이 넘도록 공들인 일이긴 하지만 실패해도 별 상관은 없어. 어차피 안하고는 못 배길 테니까. 떠들고 다니면 좀 귀찮아질 뿐이지."
"군사는 그런 걸 입 밖에 낼 여자는 아닙니다. 다만 지략이 뛰어난 여인이니 조심하셔서 나쁠 것은 없다고 봅니다."
"크흐흐... 난 딸아이의 속살 맛을 정말 기대하고 있다네. 원래 여우짓을 잘 할수록 아랫도리가 야들야들한 법이지. 머리를 잘 굴린다지만 아무리 그래봐야 계집은 계집. 그저 꾹 눌러주면 알아서 매달릴 것들이란 말이야."
"감히 상국의 은총을 입는 것만 해도 그녀에게는 영광이지요."
"그래, 그래. 으하핫!"
충격적인 발언이 오고가고 있었다. 동탁은 표면적으로는 이유와 서서의 혼인식을 공표했지만 실상은 자신이 서서와 합궁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지닌 자질이 뛰어난 서서에게 자신의 아이를 임신시켜 후계를 잇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이유는 정을 토할 수 없는 불능이었기에 이유와 서서가 관계를 가진다고 해도 그의 아이를 임신할 수는 없으니... 이것이 그가 이유를 신임하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의심 많은 달리 믿고 맡길 만한 수하가 없었던 것이다.
동탁은 흐뭇한 상상을 하다, 문득 떠오른 사실을 입밖에 꺼냈다.
"이번에 잡아온 마등의 딸년은 어떤가?"
"군사와 마찬가지로 상국의 후계를 잉태하기에는 최상의 몸입니다. 군사가 문에 특출나다면 마초는 무를 갖추었지요. 다소 어리지만 근골이 무척 뛰어납니다."
동탁이 서서의 비중을 다소 줄이게 된 것은 마등을 멸망시키면서 서서에 못지 않은 자질을 지닌 그의 딸, 마초를 잡아왔기 때문이었다. 동탁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다소 드센 계집이던데. 성질 머리는 제 애비를 꼭 빼닮았더군."
"그래봐야 이제 열여덟입니다. 지닌 무예가 고강해서 그대로 일 이년만 지났으면 혹시 모르겠지만, 아직 화웅 장군을 당해내기엔 경험적으로도 많이 부족했지요."
"클클. 기가 센 계집은 또 나름대로 깔아 뭉개주는 맛이 있지."
이유는 동탁의 말에 얼른 맞장구를 쳐주었다.
"마등을 포로로 잡아놨으니 함부로 반항하지는 못할 겁니다. 헤헤."
세상 사람들은 무위가 점령당하면서 마등이 참수를 당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거의 반죽음 상태로 감금당한 마등은 마초를 억류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구속 역할을 하고 있었다.
동탁은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흐음. 그래... 훌륭한 밭이 마련되었으니 이제 내 씨를 뿌리는 일만 남았군. 누가 견실한 아들을 낳아 줄 거라 생각하나? 그래도 둘에 하나는 아들을 낳겠지?"
"당연하지요."
"흐하하...!"
생각만으로도 뿌듯한지 동탁은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몸 상태로 봐서는 앞으로도 그가 살날은 많았다. 이제 두 여인이 그의 혈육을 낳으면 훌륭한 후계로 성장할 때까지 있다가 이 드넓은 땅덩이와 무소불위의 권력을 물려주면 되는 것이다.
"......"
내일 있을 혼인식에 대해 의붓아버지인 동탁과 얘기를 하기 위해 대전으로 온 서서는 문 밖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랬던... 거였어...'
서서의 몸이 사시너무 떨 듯 떨렸다.
막 대전으로 들어가기 직전, 그녀는 나직하게 들려오는 동탁의 말소리에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한 달이 넘도록 공들인 일이긴 하지만 실패해도 별 상관은 없어. 어차피 안하고는 못 배길 테니까. 떠들고 다니면 좀 귀찮아질 뿐이지.'
여기서부터 시작하여 계속 이어지는 동탁과 이유의 대화. 눈앞이 캄캄해지고 현기증이 난 서서는 비틀거리며 대전 기둥에 몸을 기댔다.
'믿었었는데...'
처음 수양딸이 되어 달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에는 의심을 하기도 했었다. 다름 아닌 그 사람이 동탁이었기 때문이었다. 황족을 모두 몰살시킬 것은 명령하고 낙양을 폐허로 만든 장본인.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의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한동안 경계심을 지우지 않던 그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탁은 그녀에게 정말 잘 대해 줬었다. 온화한 웃음으로 다독여주기도 하고, 힘든 점이 없느냐고 물어보기도 했었다. 밤마다 보약을 지어 시녀를 통해 처소로 보내주는 정성은 또 어떠했던가.
사마의에 의해 수경강사이 실종되고, 혈육과도 같은 친우과도 소식이 끊어진 지금 세상천지에 홀로 남겨져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그녀에게 처음으로 정을 가지고 다가온 사람이 동탁이었다. 정에 굶주려 있었기 때문에 한 번 열린 마음은 너무도 손쉽게 열렸다. 서서는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이지만 정말로 동탁을 아버지로 생각했다. 세간의 평가가 어떻든 간에, 그녀에게만은 인자한 아버지. 그 자체였으니까.
이성은 위험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감성은 그것을 부정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이제 노년기에 접어든 동탁이 마음을 달리 먹게 되었을 거라고, 그렇게 자신을 설득했다. 하지만... 그 우려가 정말 현실로 나타나 버렸다.
그게 다 연기였다니... 자신을 잘 대해준건 그녀 자신을 바라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뱃속에 잉태시킬 후계자를 대한 것이기에 그리도 지극정성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동탁이 먹인 약재도 대부분이 산모의 몸에 좋다는 것들이었다. 혼인식을 앞 두어 그러려니 넘어갔는데, 진실한 속셈은 따로 있었다.
'도망쳐야 해.'
서서의 두 눈에 굳은 결의가 어렸다.
동탁은 자신을 씨받이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좀 전에 분명하게 확인했던 사실이었다. 이제 남은 건 이곳에서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이가 준 봉투...'
곽가가 동탁에게 버림 받거든 뜯어보라고 준 청색과 홍색의 봉투가 자신의 처소에 숨겨져 있었다. 서서는 그대로 몸을 돌려 대전 밖의 문으로 향했다. 일단 그 두개의 봉투를 챙긴 뒤 장안을 벗어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대전 문 앞을 벗어나려는 그녀를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군사. 상국을 뵈러 온 것이 아니오?"
듬성듬성 가시 같은 수염이 턱 선을 따라 나 있는 9척의 거인. 이번에 마등을 멸망시키는데 커다란 공헌을 한 동탁의 충성스런 부하, 화웅이었다.
화웅이 서서의 앞에 딱 버티고 서자 그녀는 흡사 커다란 철벽에 가로막힌 듯 앞으로 나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화웅의 위압감도 서서의 침착한 낯빛은 바꾸지 못했다.
"잊고 온 물건이 있어 돌아가려는 참이니 비켜주세요."
그 때 대전의 문이 열리며 동탁과 이유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웅의 커다란 목소리 때문에 무슨 일인가 싶어 나온 듯 했다. 그는 굳은 얼굴로 밖으로 나가려는 듯한 서서와 그녀의 앞을 막아선 화웅을 보고 살짝 안색이 변하더니, 이내 크게 웃었다.
"으하핫! 네가 웬일이냐? 흐음! 화웅, 내 딸아이에게 무슨 무례지?"
"죄송합니다. 주군."
화웅은 동탁에게 고개를 숙였지만 여전히 길은 비켜서지 않고 있었다. 서서는 몸을 가볍게 떨며 천천히 동탁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녀의 눈에 비친 동탁의 표정은 평소 그녀가 알던 동탁이 아니었다. 흡사 야차 같은 얼굴이 된 그가 천천히 말했다.
"그래... 얘야, 어디까지 들었느냐?"
서서의 우수어린 눈에 깊은 어둠이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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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못미 다음 날, 서서와 이유의 혼인식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동탁의 휘하 수많은 장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여러 절차를 거쳐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절세가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이니 이유의 얼굴은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무척 환했지만, 내자가 되는 서서의 얼굴은 그와는 대조되게 어둡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밤이 되자, 두 사람은 초야를 치루기 위해 화려하게 꾸며진 신방에 들어섰다.
방에 들어선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자자... 부인. 이제 백년가약을 맺었으니 일을 치루어야 하지 않겠소?"
"......"
침묵을 깬 이유가 일어나며 곱게 단장한 서서의 옷을 한 꺼풀씩 벗겨가기 시작했다. 원치 않은 혼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서는 반항을 할 수 없었다. 사르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자신의 옷가지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응시하던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한 가지만 말해 줘요. 어떻게... 스승님을 알고 있는 거죠?"
그녀가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이유. 그것은 눈앞의 사내가 수경강사 사마휘를 언급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어제... 그가 서서에게 말했었다.
'군사. 5년 전 헤어진 스승의 행방이 궁금하지 않소?'
'무슨...!'
'수경강사은 허창에 있소. 아직도 사마의에게 잡혀 있지. 어떤 대우를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그니... 후후.'
'......!'
'그녀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신중히 행동해야 할 것이오.'
사마의와 밀약을 맺은 간자는 황보숭이 아니었다. 바로 동탁의 최측근인 이유였던 것이다. 그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수경강사의 존재를 들먹이며 서서를 옭아매었다. 그녀가 함부로 행동한다면 사마휘의 신변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겨우 이런 간자 때문에 사마의가 그토록 끔찍하게 여기는 사마휘를 내칠 것인가? 그럴 확률은 물론 낮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고아였던 그녀를 거두어주고, 학문을 가르쳐 준 어머니였다.
그런 사마휘의 안전에 조금 이라도 이상이 생길만한 일을 한다는 건...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이유는 그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피했다.
"지금에 와서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겠소? 우후후... 부인의 몸은 참으로 아름답소."
젖가리개가 떨어져 나가고, 최후의 고의 한 장마저 벗겨졌다. 이유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볼부터 시작해서 목선, 탐스러운 젖가슴에 이르기까지... 여체를 쓰다듬었다. 마치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손길에 서서의 몸에는 소름이 돋아났다.
문득 둥그런 형태를 간직한 그녀의 젖가슴 바깥쪽을 맴돌던 손길이 서서히 꼭대기로 올라오더니, 끝에 매달린 분홍 열매를 살살 희롱하기 시작했다.
"......"
이유는 입술을 앙다물고 있는 그녀의 목 언저리에 뜨거운 숨결을 불어 넣었다.
"부인. 시간이 좀 지나면 상국께서 오실 것이니... 진짜 지아비를 맞아들일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소? 헌데 너무 뻣뻣하구려."
그는 슬그머니 유두를 만지던 손을 쓸어내리듯 밑으로 향했다. 기름진 아랫배를 지나, 돈독히 살집이 오른 계곡 주변의 방초림을 헤집던 손가락은 이내 깊은 옹달샘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으...!"
꽃잎 속을 파고드는 손가락을 느끼자 서서는 입술을 피나도록 깨물었다.
5년 전, 정인인 곽가와 단 한 번 관계를 가진 뒤로, 누구에게 보인적도, 침입을 허용한 적도 없는 은밀한 곳에 낯선 사내의 손길이 미친 것이다. 이토록 치욕스러운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반항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 지독히도 냉정하게 느껴졌다.
이유는 그런 그녀의 얼굴을 감상하듯 바라보며 묘한 말을 내뱉었다.
"사제가 나란히 정액받이가 되다니. 당신들도 참 기구한 운명이군."
"...당신?"
조소어린 그의 말에 서서는 눈을 부릅떴다.
"아아.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아무 것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마시오."
이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손을 내저었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었다. 사제라 함은 수경강사과 자신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스승님이... 정액받이가 됐다고?'
그녀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자신이 동탁의 진영에 투신한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바로 사마의를 처단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어딘가 계실 스승님의 행방을 그에게서 알아내겠다는 전제도 깔려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마휘가 험한 꼴을 당했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안돼!"
"읏!"
다급해진 서서는 평소라면 상상치도 못할 힘으로 이유를 밀치며 옆에 놓친 뾰족한 촛대를 휘둘렀다. 그러나 이유는 민첩하게 그것을 피해냈다. 평범한 문사라면 결코 보여줄 수 없는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그는 성난 얼굴로 서서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정작 분노에 차 있어야 할 서서는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면...?"
"이런..."
이유는 황망히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완벽하게 피해내긴 했지만 촛대가 워낙 길어 긁히는 것을 면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얼굴 표면의 찢긴 살갗이 만져졌다. 이상하게도, 피는 흐르지 않고 있었다.
경악한 서서는 얼굴색이 변하여 한 쪽으로 물러섰다.
"대체 누구야... 당신...!"
이유는 씁쓸한 얼굴이었다.
"네게는 최대한 숨기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군. 하긴 나도 겹겹이 쓰고 있느라 답답했던 차니까."
그는 자신의 얼굴 가죽을 세게 뜯어냈다.
찌익.
마치 허물을 벗듯 이유의 얼굴이 찢겨져 나가며 특징 없이 평범한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중년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고, 서서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그 얼굴을 본 순간, 서서는 파랗게 질려버렸다.
"바, 방통..."
놀랍게도 이유라고 알고 있던 사람의 얼굴가죽을 뒤집어쓰고 있었던 것은 5년 전 헤어진 친우 중 한 명, 방통이었다. 그는 개운치 않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글쎄... 네게는 방통이라는 이름이 익숙하겠군. 원한다면 그렇게 불려주도록 하지.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는 거야!"
서서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5년 전 그날, 방통은 사마휘의 절친한 지인인 방덕공에게 심부름을 가 자택에는 없었다. 그녀는 그 덕분에 방통이 화를 면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혹시 사마의가 그를 어찌 처리했을지 몰라 지금껏 사방팔방으로 수소문을 했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지금까지의 이유의 행동이 방통이 의도한 것이었다면, 필시 좋은 연유로 이렇게 나타난 것은 아니리라.
"말했잖아? 사마의와 밀약을 맺었다고. 5년도 더 된 일이야. 그와 내가 스승님과 너, 량을 오래 전부터 속여 온 거지. 전부 가식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야..."
털썩.
서서는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방통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그녀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듯 했다. 지독한 배신감에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왜? 어째서..."
"천하를 원했을 뿐이야. 지배받는 자보다는 지배하는 자가 되고 싶었지. 덤으로 사마의는 스승님을 얻고 말이야. 그래서 그는 조조에게, 나는 동탁에게 간 거야."
서서히 내막이 밝혀지고 있었다.
"아아..."
"될 수 있으면 량과 너는 건드리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사마의의 생각은 다르더군. 수하들에게 너희를 범하라고 한 얘기는 들었어. 위험이 될 싹은 미리부터 제거하고 싶었던 모양이야. 그 정도로 너희들의 머리는 우리에게도 위협적이거든. 그런데 량은 의외의 변수에게 구출되었고, 넌 곽가의 밑으로 들어갔지."
방통은 큭큭 웃으며 침상에 앉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그래도 한 때 동문이었잖아? 헌데... 곽가의 밑에서 도망쳐 동탁에게로 오다니. 동탁의 밑에서 힘을 키워 사마의와 대적하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그 사실을 뻔히 알고 있는 내게 온 건 실수였어. 덕분에 난 동탁에게 대충 너에 대해서 말하고, 이유라는 가면을 만들어 쓴 거지. 내 기반을 너에게 넘겨줄 순 없으니 말이야."
서서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녀는 지금껏 방통의 손아귀에서 발버둥치고 있었던 것이다. 꼭두각시가 된 것도 모른 채. 미칠 듯한 분함에 그녀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방통의 말을 들은 그녀의 뛰어난 오성은 사마의와 방통의 계획에 대해 대충 윤곽을 그릴 수 있었다. 서서는 씹어뱉듯 말했다.
"...그럼 사마의가 지금 들고 일어난 건..."
"맞아. 철저히 계획된 일이지. 이제 머지않아 동탁의 세력을 그에게 넘겨줄 참이야. 천하 삼강 중 둘이 합쳐지는 거지. 난 이인자로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는 거고. 사실상 중원통일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진배없어."
이유로 분한 방통은 동탁의 세력을 야금야금 좀먹고 있었다. 동탁의 주의를 황보숭에게로 돌려놓은 채, 사실상 이미 절반의 세력은 그의 영향력 하에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서서와 마찬가지로 동탁 역시 그에게 조종당하는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그래도 지금껏 날 위해 줬으니 동탁에게도 선물을 줘야 하지 않겠어? 네가 여기로만 오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이미 왔으니 할 수 없잖아. 그 가련한 몸뚱이를 조금이라도 가치 있게 써야지. 동탁이 주색에 빠지게 말이야. 아, 상국께서 오시나 보군."
방통은 천천히 서서의 몸을 부축해서 일으켜 세웠다. 계속되는 충격에 힘이 빠질 대로 빠져버린 서서는 멍하니 그의 몸짓에 따랐다.
잠시 후, 알몸의 소녀를 들쳐 맨 동탁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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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모두 행복할 수는 없는 거... 각설하고,
세상아 덤벼라역시 다수결의 의견을 반영할 수밖에 없더군요.
작가가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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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 동탁이 거하는 처소의 경비를 담당한 여포는 커다란 대들보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며 방천극을 달빛에 이리저리 비춰보고 보고 있었다.
말없이 그의 의미 없는 행동을 보고 있던 패왕기의 부대장, 고순은 불쾌한 얼굴로 화촉이 타오르는 신방 쪽을 쳐다보았다.
"대장. 두고 보실 겁니까?"
여포는 여전히 방천극을 가볍게 휘두르며 무감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러지 않으면?"
"곽가님께 진 빚은..."
"그거라면 일전에 조조를 구해주면서 깨끗하게 청산된 일."
방통은 몰랐겠지만 여포와 고순은 곽가와 서서와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여포가 나중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 방통은 동탁에게도 숨겼던 서서와 자신의 과거지사를 그에게 알려주며 서서를 감시하게 했다.
곽가와의 인연으로 그가 5년 전에 잠시 자택에 머무르던 소녀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여포는, 방통의 말로 그 소녀가 바로 서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그 자리에 있었던 고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서서를 동탁이 범하게 내버려 둔다고 생각하니 고순은 차마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여포는 냉정했다.
"정신 차려라. 이런 일로 그와 척을 져서는 안돼. 다시 동족들을 피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할 생각이냐?"
"...예."
여포가 자유로운 용병에서 갑자기 동탁의 휘하로 들어간 이유. 그것은 사마의와 방통이 그에게 한 가지 약조를 했기 때문이었다.
북방 민족과 중원의 역사는 그야말로 투쟁과 피의 역사였다. 척박한 북방에서 살아가는 이민족이 쳐들어갈 때도 있었고, 북벌을 빌미로 중원에서 밀고 올라올 때도 있었다. 어느 쪽이 쳐들어 오냐는 중요치 않았다. 문제는 그 때마다 북방 민족들의 삶의 기반이 망가져 버린다는 것이었다.
여포 역시 그런 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고아 출신이었다. 무쌍의 무예를 지닌 채 성년이 된 그는 동족의 전사들을 모아 용병대를 만들어 혼란한 중원에서 제법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 돈은 용병대를 유지하는 데 쓰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초원에 있는 동족들에게 보내졌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중원의 힘이 다시 결집되면 언제 또 대규모의 전쟁이 터질지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사마의와 방통이 제의를 해왔다. 천하를 집어삼킬 계획을 말해주며, 자신들을 도와준다면 북방에서 먼저 쳐들어오지 않는 이상은 북벌을 하지 않겠다고.
여포가 생각하기에도 사마의와 방통의 계획은 치밀했다. 실제로 사마의는 조조의 세력을 집어삼켰고, 방통 역시 동탁의 세력을 절반 이상 발아래 둔 상태. 사실상 중원의 절반을 손에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것이 천하무쌍이라 불리는 그가 동탁, 정확히는 방통의 휘하에 들어간 이유였다. 한족인 장료에게는 말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거둬들인 한족 제자가 그녀와는 상관없는 이유로 피의 수레바퀴에 휩쓸리지 않기를 바랐다.
고순은 검을 깡 소리 나게 땅에 휘갈겼다. 돌가루가 후두둑 튀어 올랐다.
"장료. 그 녀석이 재롱을 떨어주면 이 뭣 같은 기분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지금쯤 어디서 뭘 하는지."
용병대로 있었을 당시 유일한 홍일점이었던 장료를 고순은 딸자식처럼 귀여워했었다. 여포는 무뚝뚝하니 말했다.
"야묘(夜猫 : 밤고양이) 같은 녀석이니 잘 지내겠지."
"오늘만큼 기분이 더러운 적이 없습니다."
"그만 해라."
그들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달빛은 여전히 밝기만 했다.
신방은 후끈한 열기에 휩싸여 있었다. 방통은 동탁의 유희를 위해 일찍 자리를 피한 상태. 방 안에는 동탁과 두 여인만이 남아 있었다.
척! 척! 척!
동탁의 주름지고 늘어진 고환주머니가 쩌억 갈라진 조갯살에 부딪칠 때마다 찰싹이는 소리가 났다. 서서는 엎드린 채로 둔부를 치켜들고 동탁의 흉측한 육봉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동탁의 하체가 아랫도리를 움직일 때마다 비단금침에 얼굴을 묻은 서서의 몸도 흔들렸다. 그녀의 두 눈망울에서 흘러내린 이슬은 이미 베개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미안해요... 미안...'
누구에게 하는 사과일까.
"허어! 좋은 조임이로고!"
동탁은 손을 아래로 뻗어 끊임없이 출렁이는 그녀의 젖가슴을 우악스럽게 움켜잡았다. 젖가슴에서 느껴지는 극렬한 고통에 서서는 우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흐윽!"
찰싹!
동탁은 갑자기 옆에서 멍한 얼굴로 엎드려 있는 소녀의 엉덩이를 후려쳤다.
"아악!"
"네 년도 감창소리를 내 보란 말이다. 좀처럼 흥이 나질 않는구나!"
마초의 하체에는 난행당한 흔적이 역력했다. 나이답지 않게 무성한 수풀 사이로는 도톰한 계곡의 붉은 살집이 살짝 벌어져 허연 액체를 흘려내고 있었다. 이미 서서에 앞서 동탁에게겁간을 당한 듯 했다.
엉덩이 역시 양 쪽에 푸르스름한 멍이 들어 있었다. 동탁이 그녀를 얼마나 거칠게 다루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마초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서량의 꽃이라 불리던 자신이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는가. 지금이라도 동탁의 목을 비틀어 버릴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자신과, 아버지 역시 죽음을 당하고 말 터였다.
마초는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이런 늙은이한테...'
그녀의 심경을 대변하듯 아랫도리의 꽃잎은 붉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동탁에게 희멀건 허벅지와 우거진 수풀 사이로 새빨간 앵혈이 흐르는 모습은 성욕을 더욱 자극할 뿐이었다.
"아니면 내가 도와주어야 겠느냐?"
음흉한 얼굴을 한 동탁은 마초의 엉덩이 쪽에 붙어있던 손을 스르르 내려 좀 전의 정사로 벌려져 있던 그녀의 꽃잎 안으로 쑤욱 집어넣었다.
"아, 안돼!"
다시금 사내의 일부가 은밀한 곳을 쑤시고 들어오자 마초는 지독한 수치심에 다리를 한껏 오므렸다. 그 바람에 진입이 힘들어진 동탁은 얼굴을 찌푸렸다.
"네 아비가 어찌 되어도 좋단 뜻이냐?"
그 말을 들은 마초는 다리의 힘을 풀 수밖에 없었다.
"아... 제... 발..."
"빨리 끝나길 원한다면 내 흥을 돋우어 보란 말이다!"
그의 말에 서서와 마초는 어설프게나마 교성을 내기 시작했다. 한 사람은 스승이, 한 사람은 아버지가 볼모로 잡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성이라기 보다는 앓는 소리에 가까웠다.
"흐으윽... 아아..."
"하응... 으으응...'
찌걱. 찌걱.
동탁은 한손으로는 서서의 허리를 휘감으며 허리를 움직이고, 한 손은 마초의 꽃잎에 박아넣은 채 맹렬하게 흔들어 대고 있었다. 동탁의 커다란 손가락이 네 개나 들어간 그녀의 꽃잎은 애처롭게 벌어져 붉은색 꽃술이 마음껏 희롱당하고 있었다.
"허으윽!"
동탁은 마치 문어발처럼 조여 오는 서서의 질에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 사내를 경험해 본 적이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저 빡빡하기만 한 마초의 그곳과는 달리 그녀의 꽃잎 속은 매우 농염했다.
"보약을 먹어서 그런지... 우웃!"
찰싹! 찰싹!
"아윽! 흐으으윽..."
동탁은 마초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만월 같은 둔부를 미친 듯이 후려쳤다. 그는 이런 다소 폭력을 동반한 정사를 할 때야 비로소 성욕이 절정에 달했다.
눈 덮인 설원처럼 새하얗던 서서의 엉덩이에는 금새 붉은 손자국이 여기저기 아로새겨졌다. 그와 함께 동탁의 움직임도 점점 빨라졌다.
척! 척! 척!
활짝 만개한 꽃잎은 잘게 경련하면서도 동탁의 흉측한 육봉을 껍질처럼 감싸고 있었다. 이미 그녀의 꽃잎 내부는 새어나온 동탁의 정액과 그녀 자신의 애액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동탁의 육봉이 깊숙하게 밀려올 때마다 서서는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헉! 헉! 더, 더 소리를 질러 봐라!"
절정에 달할 것 같자 동탁은 난폭하게 서서의 머리채를 잡아챘다. 한껏 머리가 뒤로 젖혀진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아아아... 아앗!"
"흐어억!"
동탁은 장차 후계를 임신할 씨앗들을 그녀의 자궁 속 끝까지 뿌려넣었다. 뜨겁고 끈적이는 액체가 뱃속에 쏟아짐을 느낀 서서는 그대로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두 여인의 깊은 곳에 사정을 한 동탁은 흡족한 웃음을 띠며 몸 이곳저곳에 멍이 든 채 쓰러지듯 누워 있는 두 여인을 훑어보았다. 하나 같이 최고의 후계자를 낳기에 부족함이 없는 몸들이었다. 그는 서서와 마초 사이에 벌렁 드러누웠다. 그의 몸집이 워낙 큰 탓에 마치 그녀들을 깔아뭉개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는 마초의 조금 작은 유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그럼에도 마초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천장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흐흐... 나이 같지 않게 훌륭한 몸이다."
한동안 마초의 젖무덤을 쓰다듬던 동탁은 이번에는 서서의 꽃잎 윗부분, 그녀의 음핵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서서로서는 살짝 몸을 비트는 것만이 최선의 반항이었다.
"으..."
"귀여운 것. 앞으로도 기대하마. 크하핫!"
동탁은 징그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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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다 살았죠? 누구 죽었나요? ㅇㄹㅇㄹ??
한국 이겨야 한다... 더불어 내일 새벽 첼시도 이겨야 되고... 소패, 하비, 북해를 점령하여 원소를 위축시킨 조조군은 진류성에서 연일 회의를 거듭했다. 절박한 상황에서 많이 벗어난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제 곧 시작될 원소의 반격을 어떻게 막아내느냐가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회의의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제일 참모인 순욱이었다.
"일단 한 숨은 돌렸지만 아군의 상황은 여전히 누란지위(累卵之危)나 다름없습니다. 원소의 저력은 결코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미심쩍은 점은 사마의가 아군을 무시하고 남하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회의에 참석한 제장들은 모두 심각한 표정이었다. 사마의의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움직임. 유비군과 동맹을 맺어 놓기는 했지만 사마의가 진류를 칠 경우 지리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어 도움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상황이 그런데도 사마의는 마치 조조군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는 다는 듯이 형주의 채모를 서서히 압박하고 있었다.
순욱이 염려하는 것은 그 점이었다. 사마의가 남하를 한다고 해서 안심하고 원소와 대치하다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었다.
그는 주군인 조조의 안색을 살폈지만 조조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기색도 읽을 수가 없었다. 도통 짐작할 수 없는 그녀의 속내에 순욱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조조는 뛰어난 군주였지만, 신하된 입장에서는 마음을 살필 수 없다는 어려움도 있었다.
그녀는 고저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순욱. 사마의와 원소를 비교한다면 어디가 우위라고 생각하지?"
뜬금없는 물음에 순욱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현재는 비등하지만, 아무래도 나중에는 사마의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원소는 아군과 공손찬군에 의해 압박을 받고 있는 반면, 사마의는 계속해서 남하를 하고 있으니..."
"그래. 원소는 지는 해다. 천하는 동탁, 사마의, 유비의 삼강 구도로 새롭게 개편되었다."
"그렇습니다."
순욱은 그녀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동탁을 제외하고 원래 조조와 원소가 있던 자리에 사마의와 유비가 끼어들었다.
동탁은 마등을 멸망시키면서 후방의 위협 없이 엄안을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 엄안이 그동안 잘 버텨왔지만 동탁이 서부 지방을 모조리 장악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사마의 역시 조조의 밑에서 실행한 완 파괴공작으로 동탁과의 부딪침 없이 순조롭게 남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기름진 형북 땅이 이제 거의 그의 손아귀에 들어온 상태였다.
유비는 또 어떤가. 이번에 장사와 시상, 계양을 점령하고 해적들을 흡수하여 강력한 수군을 가지게 되었다. 장강이라는 천혜의 장벽을 그들 스스로 넘어가지 않는 한, 물 위에서는 막강한 전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게다가 오월족까지 평정하여 탄탄한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상태였다.
어디 하나 만만한 세력이 없었다. 얼마 전 까지 천하를 다투었던 조조군의 군사인 만큼 그는 입맛이 썼다. 그나마 삼강 중 하나인 유비군과 동맹 관계라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조조는 포기를 모르는 군주였다. 너무 꼿꼿한 대나무라고나 할까, 굽히느니 차라리 부러지기를 선택할 여인이었다.
"아군은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사마의는 지금까지 유비군과 중립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지금에 와서 동탁에게 어부지리를 넘겨줄 리는 없다. 후방의 견제는 무시하고 아군은 원소를 치는 데 전력을 다한다."
순욱은 침묵했고 순유는 기겁했다.
"주군! 다시 도박을 하신단 말씀이십니까?"
"이만한 위험 없이는 큰 것을 얻을 수 없다. 원소도 백마의종에 대한 소식을 듣고 혼란에 빠진 상태. 전열을 가다듬을 시간을 주지 않고 일거에 몰아친다. 이번 여름이 가기 전, 원소를 멸망시키겠다."
원소를 멸망시키겠다!
조조의 대담하고도 무모한 역발상에 제장들은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간이 부어터졌다고 했을 것인데, 철의 간담을 지닌 조조의 발언이니 전혀 허튼 소리로 들리지가 않았다.
하후돈은 조조를 믿었다. 그는 그녀의 말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어쩌면 타개책은 주군의 말씀 밖에는 없는지도 모르오. 원소가 기어 나오지 않고 버틴다면 형북을 차지한 사마의가 언제 다시 북상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오. 그 전에 공손찬과 협공하여 단숨에 놈의 숨통을 끊어 놓는 것이 최선책이오."
형세를 유지하기도 바쁜 조조군이 오히려 하북을 대대적으로 공격하지 그 누가 예상한단 말인가. 그러나 얻는 것이 큰 만큼 실패했을 시에는 한 번에 지리멸렬 할 수도 있는 전략이었다.
장수들이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 듯 보이자 조조는 확실하게 쐐기를 박았다.
"책임은 모두 본후가 진다. 실패 시에는 자결을 하도록 하겠다. 이후에는 알아서 살 길을 찾는 것도 좋겠지."
그녀의 말에 제장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주군!"
"그토록 저희를 믿지 못하십니까!"
"절대 실패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숙연한 제장들의 모습에 한쪽 무릎을 꿇은 하후돈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어렸다. 다소 극단적이긴 해도 이렇게 한 번에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능력이야 말로 조조가 가진 철혈의 카리스마였다.
그 때, 머리를 조아리던 전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군.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말해라. 전위."
그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 혼인은 언제 하실 건지..."
쭈뼛쭈뼛 말을 하면서도 그의 눈은 하후돈을 연신 힐끔거리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대번에 하후돈의 노호성이 터졌다.
"전위! 주군께 그 무슨 말인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이 판국에!"
전위는 억울했다. 자기 나름대로는 주군을 생각해서 한 말이었는데.
"대장군! 제가 일자무식이라지만 그래도 주군을 위하는 마음 하나는 누구에게도지지 않을 자신이 있는 놈입니다. 주군이 이제 스물다섯 이십니다. 물론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만 전..."
"어허! 그래도 이 사람이!"
다른 장수들은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이 심각한 분위기에 난데없이 혼인이 웬 말이란 말인가.
"하후돈, 그만 하라. 전위, 계속하도록."
조조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기미이자 전위의 안색이 밝아졌다.
"고맙습니다! 주군. 저의 충언을 헤아려 주셔서. 그러니까 제 말은... 주군의 나이가 그, 뭐라고 해야 하나... 처녀로서는 많이 차셨다는 거지요. 그, 그게... 그 뭐시냐..."
아무리 전위가 눈치가 없어도 조조의 앞에 대고 '노처녀'라고 할 수 있는 용기는 없었다. 마땅히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한 그는 대충 얼버무리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천하 통일이 쉽게 말해서 한 왕조를 창업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순욱 형님?"
갑자기 화살이 자신에게로 돌려지자 순욱은 헛기침을 했다.
"그,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그의 도움(?)을 받은 전위는 더욱 기세가 등등해졌다.
"천하통일을 하면 주군께서 마땅히 황제의 자리에 오르실 터인데, 지금 상황이 여의치가 않습니다. 천하를 통일한다고 몇 년, 혹은 수십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고. 흠흠... 마땅히 후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제 말은. 주군의 혈통도 아닌 엉뚱한 놈이 후계를 이어 받는다면 말짱 도루묵 아닙니까."
꺼낸 시기가 좀 어이없을 뿐이지 나름대로 타당한 전위의 말에 제장들은 한번에 딱 잘라 전위를 구박할 수가 없었다. 황제가 된다면 당연히 세습을 할 것이고 혈육에게 황위를 물려주게 되는데, 만에 하나 조조군이 천하를 통일한다고 해도 정말 몇 십년이 걸릴지도 몰랐다. 예전같이 안정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면 진작에 나왔을 말인 것이다.
동탁이 후계자리에 그토록 매달리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일례였다.
장수들의 눈이 모두 자기에게로 쏠리자, 조조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꽤 오래 유지되자, 하후돈은 한쪽 눈을 씰룩이며 전위를 노려보았다.
'저 놈이 쓸데없는 말을 해서는.'
감정이 죽어버린 조조에게도 혼인은 민감한 문제였을까? 하후돈의 찌르는 듯한 시선을 받은 전위는 딴청을 피웠다.
'그런데 정말 주군과 혼인할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남자보다 뛰어난 여자. 그것도 수많은 장수들이 따르는 군주라면, 그 중압감에 버텨내질 못할 것이다. 하후돈은 문득 한 사람을 떠 올렸다.
'아니, 군주의 남자가 한 명 있긴 있지...'
현재 욱일승천하고 있는 세력을 이끌고 있는 유비와 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남자, 모용환. 그와의 유쾌했던 만남을 떠올린 그는 피식 웃었다.
때마침 조조가 침묵을 깼다.
"본후는 혼인을 하지 않을 것이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에 장수들은 모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예?"
"본후는 좋은 어머니가 될 자신이 없다. 나 같은 사람을 어머니로, 아내로 둔다는 건 아이에게나 남자에게나 불행이겠지."
"......"
딱 잘라 말하는 그녀의 말에 전위를 비롯한 장수들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마음은 모정이나 사랑 따위는 느낄 수도 없을 만큼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후계를 정하도록 하겠다. 본후가 죽는다면, 제일 참모가 그 뒤를 잇는다."
"주, 주군!"
갑작스런 말에 순욱이 놀라 조조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유리알 같은 그녀의 눈동자가 더욱 투명해진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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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짤방은 마초예요. 이건 뭐 협박도 오고 무섭군요 ;ㅁ;
그나저나 스탬포드 브릿지 최다연승 이어나가길... 여강성을 모용환이 점령한 다음 날이었다. 감녕과 견사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혼인식이 끝난 후, 감녕은 해적 수하들을 포구에 모아놓고 엄숙하게 선언했다.
"우리는 이제부터 유비님을 주군으로 모신다."
해적들은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이내 거세게 반발했다.
"말도 안 됩니다!"
"두목. 뭐 잘못 먹은 거 아뇨?! 왜 자유로운 해적생활을 청산하고 관에 들어가겠단 거요?"
"어여쁜 색시를 두더니 간밤에 혈기가 골수까지 들어간 거 아닌가 몰라."
"이봐! 저 미친놈이 정말 두목 맞아?!"
생각보다 험한 말(?)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자 감녕의 얼굴은 대번에 붉어졌다. 이 자식들이 지금 누구보고 미친놈이래.
그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키더니 거세게 내뱉으며 고함을 쳤다.
"조용--!"
"......"
천둥과도 같은 고함소리에 해적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아직 죽지 않은 자신의 위엄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감녕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모두 입 닥쳐라. 내가 그러겠다는 데 뭔 잔말이 그렇게 많아? 특히 거기 너, 뭐? 미친놈? 미친놈은 네 놈이다. 당장 이리 와."
감녕의 살벌한 눈빛에 한 순간의 군중심리를 이기지 못하고 씻을 수 없는 단어를 내뱉은 해적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어버렸다. 그의 눈에는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감녕의 주먹만이 보였다. 저기에 골을 두들겨 맞는다면...
생각하기도 싫었다.
"두, 두목. 제가 잠시 미쳤었나 봅니다... 헤헤."
비굴하게 고개를 숙이며 싹싹비는 그의 모습에 감녕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 잠시 미치면 뭐 그럴 수도 있지... 라고 할 줄 알았냐! 미친개는 매가 약이지!"
퍼억!
"꽥!"
그의 무지막지한 주먹에 안면을 정통으로 맞은 그 해적, 장삼은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눈두덩에 시퍼런 멍이 든 채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그 참혹한 광경에 해적들은 모두 눈을 가렸다.
그러나 아직 감녕의 분은 풀리지 않았다. 어딜 말단 해적놈이 하늘같은 두목에게 욕질이야, 욕질은.
퍽!
"끄억!"
퍼컥!"
"어이쿠! 내 정강이!"
감녕의 발길질에 장삼은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다들 하길래 따라한 것 뿐 인데... 묻힐 줄 알았는데...'
어떻게 귀신같이 미친놈이라는 단어만 들어서는 자신을 이리도 피떡으로 만들어 놓는단 말인가. 한참 장삼을 밟아대던 감녕은 숨을 고르며 후 하고 숨을 내쉬었다. 더 이상 짓밟다가는 골병이 들 것 같았다.
"미안하다. 내가 잠시 이성을 잃었구나."
"......"
잘 다져진 고깃덩이가 말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목불인견의 꼴이 되었지만, 그래도 원래부터 근골이 튼튼해 해적질도 하던 장삼이라 외상만 많이 입었지 치명적인 상처는 입지 않았다.
하지만 죽도록 아픈 건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그나마 이제 끝났으니 다행이었다.
"이봐. 상처가 덧날 수도 있으니까 이 녀석 좀 물에 던져 넣어. 한바탕 씻고 나면 괜찮겠지."
"......!"
끝난 게 아니었다. 거동도 불편한 몸으로 장강에 빠지라니! 죽으라는 소리인가! 동료 해적들은 불쌍하다는 눈빛을 줄줄이 보내왔지만 감녕이 한 번 성깔을 드러낸 이상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게 철칙.
"미안하다. 죽을 만 하면 건져줄게. 그 때까지는 어떻게든 참아라."
'개자식아! 너도 같이 욕했잖아!'
장삼은 자신을 동정하는 동료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었지만 이미 그의 몸은 허공을 날고 있었다.
'살려줘어-!'
풍덩! 꼬르륵.
물에 던져진 고깃덩이를 본 감녕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하들을 둘러보았다.
"자. 이제 불만은 없겠지?"
"......"
있어도 토로할 수 없는 이 심정을 어찌 형용하리오.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을 때 해적 무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유생차림을 한 중년의 문사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나섰다. 해적단의 두뇌라고 할 수 있는 우번이었다.
"대두령께서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제가 알기로 대두령께서는 유비군 산하의 모용환에게 공격당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찔끔!
'이래서 먹물 좀 먹은 놈들은... 그냥 넘어갈 것이지.'
모용환의 도움으로 꿈에 그리던 견사와의 운우지정을 나누는데 성공했다는 말은 죽어도 할 수 없었다. 어떻게 쟁취한 사랑인데 한순간에 혓바닥을 잘못 놀려 물거품이 되게 할까 보냐!
그는 헛기침을 하며 진중하게 말했다.
"그건 서로 간에 사소한 오해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언제까지 이렇게 무의미한 삶을 살 텐가? 장부가 세상에 나왔으면 큰 뜻을 한 번 품어봄직 하지 않은가! 해적 같은 시시한 것보다는 수군이 되어 천하의 물길을 모두 누벼보는 것이 어떠냔 말이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감녕은 일순간에 훌륭한 웅변가가 되어 좌중을 뒤흔들었다. 그의 박력 있는 일장연설에 해적들은 점점 빠져들고 있었다. 이미 물 속에 빠진 장삼은 그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다.
한편 한동안 사력을 다해 허우적거리던 장삼은 온 몸에 힘이 서서히 빠져나감을 느꼈다. 간절한 눈빛으로 동료들을 쳐다보았지만 그들은 홀린 듯한 눈으로 감녕만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개... 꼬르륵!"
'죽는 건가.'
물을 꽤 많이 먹었다. 이대로 장강 밑바닥에 가라앉아 죽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했다. 남자답게 싸우다 죽는 것도 아니고 동료들에게 이 순간 관심을 받지 못해 죽다니.
'어머니... 불효자가 갑니다... 크흑!'
최후의 순간 떠오르는 건 살아계실 적에 좀 더 편히 모시지 못한 어머니였다. 그렇게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의식을 잃기 직전, 장삼은 갑자기 몸이 부웅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으아아!"
쿠당!
기다란 창대가 마치 낚시를 하듯 자신을 건진 후 그대로 던져 올린 것이다. 허공에서 반원을 그리며 날던 장삼은 작은 배 갑판에 추락했다. 갑작스런 충격에 배가 크게 요동쳤다.
"잘 하셨어요. 장 언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으으으...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그가 살짝 눈을 뜨자 흐릿한 시야에 가벼운 갑옷을 입고 물에 젖은 창대를 쥔, 눈이 번쩍 뜨일만한 미인이 들어왔다. 아무래도 그녀가 자신을 구해준 듯 싶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무게가 꽤 무거웠는지 어깨를 주무르며 살짝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장삼은 그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감녕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삭신은 여전히 삐걱이며 주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으윽!"
"아, 움직이시면 안돼요. 괜찮으세요?"
바로 옆에서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들리자 장삼은 힘겹게 고개를 돌렸다. 순간 눈을 뜨는 것도 힘겨웠던 장삼은 그 자신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두 눈을 번쩍 떴다.
'서, 선녀다!'
크고 서글서글한 눈동자에 긴 생머리를 찰랑이는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었다. 붉디붉은 입술과 기다란 속눈썹, 뚜렷한 검은 동공은 쳐다보고 있노라면 빨려 들어갈 듯 했다.
한창 감녕의 연설에 심취해 있던 해적들은 무언가 묵직한 물체가 떨어지는 소리에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와중에 한 해적이 경악성을 내질렀다.
"아, 맞다! 장삼!"
"... 그 놈이라면 저기 멀쩡히 살아있는데?"
해적들의 시선이 포구 지척에 떠 있는 배의 갑판 위로 향했다. 어떻게 물 속에서 기어 나왔는지는 몰라도 배 위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물체는 분명 장삼이었다. 그리고 자연히 그 옆에 있는 하얀옷의 여인을 본 해적들의 눈이 몽롱하게 풀어졌다.
"뭐, 뭐냐?"
"세상에... 월궁항아(月宮姮娥)도 저 정도는 아니겠다..."
"... 그런데 왜 저런 선녀가 장삼이 놈 옆에 있는 거지?"
유비를 보고 놀란 것은 감녕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쩍 벌린 입을 다물려고 애쓰며 마음속에 들어차려고 하는 번뇌와 싸웠다.
'이 근방에 저런 미인이... 아냐. 내겐 우리 여보야가 있어. 가만, 그런데 오늘쯤... 누가 오기로 했었는데.'
군주이신 유비님이 시상에 올 것이니 잘 맞이하라. 모용환이 어제 그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 제서야 그 사실을 떠올린 감녕은, 눈앞의 여인이 모용환이 말한 유비의 용모와 정확히 일치함을 깨달았다.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주군이시다! 저 분이 우리 주군이시니 어서 뫼셔라!"
"유비?!"
"뭐해! 빨리 가자고!"
해적들은 유비가 타고 있는 배로 우르르 달려들었다.
장삼은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었다. 상황도 상황이지만, 이런 선녀가 자신의 정강이에 몸소 천을 동여매 주고 있다니. 이젠 감녕에게 얻어맞은 것도 축복이라고 생각될 지경이었다.
장삼의 상처들 중 심한 곳들에 조심스럽게 깨끗한 천을 감아준 유비는 살짝 이마의 땀을 훔쳤다.
"이젠 된 것 같으니 안심하세요. 피부만 상했을 뿐, 큰 상처는 없어요."
"가, 감사합니다."
장삼의 인사에 유비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모용환이 시상을 손에 넣었다는 소식에 건업을 나온 그녀였다. 그를 만나기 위해 화장도 약간 하고, 평소에는 입지도 않던 화려한 옷을 입으며 최소한의 사치를 부려봤는데, 그 옷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장삼에게 동여매 준 흰 천은 자신의 옷을 찢어 만든 천이었기 때문이다. 유비는 그래도 다친 채로 물에 빠져 익사하려는 사람을 살렸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의 목숨은 옷 한 벌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소중한 것이다.
"아니에요. 그런데 저 분들과 아는 사이신가요?"
"예?"
장삼은 유비의 시선을 따라 포구를 바라보았다. 수많은 해적들이 자신을 불타는 눈길로 쏘아보고 있었다.
"유비님한테서 떨어져! 이 자식아!"
"감히 주군께 무례를 범하다니! 쳐 죽일 놈!"
"주제를 알아라!"
동료들의 말을 들은 그는 그대로 돌처럼 굳어버렸다. 장삼은 딱딱해진 혀를 애써 놀려 말했다.
"유, 유... 비?"
장삼의 놀란 눈초리를 받은 유비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유비예요."
"오오오! 웃으셨어!"
"날 보고 웃으신 거야! 이 근육에 감탄하신 거지!"
"에라이, 너도 미친놈이로구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그녀의 미소에 우락부락한 해적들은 순한 양처럼 녹아내렸다.
해적들의 여신은 그렇게 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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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격인 얘기입니다. 그나저나 오늘 새벽 리버풀 졌더군요 흠... 안습.; 이겨줘야 재밌는데.
작가는 이런 저런 에피소드들로 다소 주인공의 비중이 작아질 지언정 각 히로인들의 관계나, 이야기도 충분해야 개성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짤방은 요청하신 세력도 재탕 모용환은 시상에서 돌아온 장료와 함께 저자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조운을 먼저 시상으로 보내고 장사에서 한 동안 머물 줄 알았던 장료는 어이없게도 주태에게 그곳을 맡기고는 냉큼 시상으로 돌아와 버렸다.
"주태가 다시 들고 일어나면 어쩌려고 그래?"
모용환의 핀잔에 장료는 별 걸 걱정한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 아저씨, 승패는 분명하게 가릴 줄 아는 아저씨야. 내가 그 정도 사람 보는 눈도 없는 줄 알아?"
"널 어딜 봐서 믿어?"
딱!
"컥!"
대뜸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장료였다. 그녀는 허리에 손을 얹고 뾰족하게 말했다.
"야! 너 보다 몇 년이나 빨리 온 선배를 못 믿겠다는 거야, 지금?"
모용환은 뒤통수를 움켜쥐고 참을 인자를 되뇌었다. 군단장이나 되는 사람이 거리에서 여자랑 싸우면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않은가.
'큭! 계집애가 손버릇은... 고3이었다며? 난 대학도 졸업한 나이에 왔다. 젠장. 내가 뭘 바라는 거냐. 조금이라도 더 산 내가 참아야지.'
"이거 하극상이다. 아냐?"
"풉! 쪼잔하긴. 그거야 공식석상이고 지금은 단순한 친구 사이지. 이런 녀석을 애들은 뭐가 좋다고 따라다니는지 모르겠네. 왜, 한 대 더 치면 군법적용까지 하겠다?"
혀를 내밀며 약 올리는 장료를 보자 골이 아파왔다. 수하가 기어오름에도 제재를 할 수 없는 무의미한 군단장 자리에 회의가 느껴졌다. 자포자기한 심정이 된 모용환은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됐다. 내가졌으니 그만해. 왜 보자고 한 거야? 이런 거리에서."
유비군은 원정으로 소모한 힘을 다시 비축하는 중이었다. 이 말은 곧 모용환이 할 일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는 내정 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할 일은 없어도 항시 체력이 소진된 상태였다. 어제만 해도 적극적으로 매달리는 이교를 시작으로 새벽까지 제갈량과 정사를 나누었으니까.
물론 아직은 끄떡없었지만.
"널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
"흐음? 내가 아는 사람이야?"
"아니."
안면도 없는데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 아내들이나 장수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과 인연을 만든 적이 없는 그였다. 모용환은 그저 자신의 명성을 듣고 장료에게 부탁한 사람이겠거니 짐작했다.
그들이 들어선 곳은 어느 으슥한 골목길이었다. 한낮인데도 어두운 골목길은 뭐라도 나올 것처럼 스산했다.
"뭐야. 혹시 날 보겠다는 사람이 귀신이야?"
그의 물음에 장료는 한 쪽을 가리켰다.
"저거 안보여?"
"응...? 도, 도깨비불?!"
모용환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엄지 손톱만한 불꽃이 허공에 떠서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모용환은 헛것을 봤나 싶어 눈을 비볐다. 그러나 여전히 그곳에는 도깨비불이 공중을 유영하고 있었다. 모용환의 표정을 본 장료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 뭘 그리 놀래? 도깨비불 처음 봐?"
"그럼 이게 안 놀랄 일이냐?"
모용환은 이마를 짚었다. 그가 도깨비불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가자 도깨비불은 마치 도망치듯 뒤로 날아갔다.
그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저것은 분명 도깨비불이라고 확신했다. 그것의 실체(?)를 확실히 알기 위해 모용환은 도깨비불이 사라진 골목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어딜 도망가! 윽!"
"꺅!"
쿠당.
막 골목으로 들어선 순간 모용환은 누군가와 부딪쳐 넘어지고 말았다. 워낙 어두운 데다가 설마 누군가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 탓이었다.
"윽. 죄송... 합니다."
"제, 제가 오, 오히려..."
모용환은 자신의 밑에 여인이 깔려 있자 당혹스러운 얼굴로 일어섰다. 그녀와 겹쳐 넘어지면서 뭉클한 가슴의 감촉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크, 크다...'
여인에게 실례를 범한 건 둘째치고 잠깐이나마 느꼈던 푹신한 가슴의 감촉에 그는 일순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살짝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여인. 그녀의 가슴은 겉으로 보기에는 별로 티가 나지 않았지만 실제로 느껴본 바로는, 아마 지금까지 그가 만난 어떤 여인들보다도... 컸다.
그 뒤를 장료가 킥킥 웃으며 따라왔다.
"칠칠맞긴. 이분이 너와 만나고 싶다고 하셨어."
"그, 그래... 헉!"
모용환은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장료의 말을 듣고 여인을 마주본 것은 좋았는데, 어둠 속에서 새하얗게 빛나는 은색 눈동자라니. 무척 섬뜩했다.
놀라는 그를 보자 여인은 황망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얼른 땅에 떨어진 무언가를 주워서 머리 위에 덮어 썼다. 전체적으로 얼굴을 가리는, 장옷같은 천이었다.
"죄, 죄송...해요. 노, 놀라셨나요?"
여인은 말을 더듬었다. 당황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말을 더듬는 것 같았다. 어둠 때문에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무척 불안해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장료는 부드러운 말투로 그녀를 안심시켜 주었다.
"걱정 마세요. 이 녀석은 그런 거에 놀랄 사람이 아니니까. 천하의 유비군 제2군단장 모용환인데요, 뭐. 안 그래?"
그녀의 말을 들은 모용환은 살짝 굳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초면에 실례를 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좀 전의 도깨비불은... 소저와 관련이 있는 건지..."
"귀, 귀화(鬼火)예요..."
"예?"
여인은 마음을 가다듬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녀의 설명을 듣는 내내 모용환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척 잘 보이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녀가 사실은 맹인이라는 것과 주위가 어두울 때에만 사물을 잘 볼 수 있다는 것, 또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귀신같은 존재를 볼 수 있고 조금이나마 다스릴 줄 안다는 것, 그리고 그의 관상을 보기 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모용환은 문득 그녀가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에만 잘 볼 수 있다면 반쪽짜리 삶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런데 제 관상은 왜...?"
"어, 어떤 분의... 부, 부탁이에요..."
"으음... 좋습니다."
다소 꺼림칙하긴 했지만 간절한 듯한 여인의 태도 등을 봐서는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의 승낙이 떨어지자 여인은 고개를 들어 은색의 눈동자로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자신을 낱낱이 파헤치는 듯한 그 눈길에 모용환은 마치 알몸으로 그녀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저 신비한 눈동자 앞에서는 무엇이든 숨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저런 여인이니 귀신까지 불릴 줄 알겠지...'
그러고 보면 주위에 조금 싸늘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은 그 뿐만이 아니었는지 장료는 어깨를 감싸 쥐고 있었다.
"우우. 왜 갑자기 이렇게 춥지?"
그녀의 말에 여인은 잠깐 멈칫하더니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 끄, 끝났어요... 고, 고맙습니다... 저, 전 이만..."
여인의 심장은 자신도 놀랄 만큼 쿵쾅거리고 있었다. 지금껏 전혀 보지도, 듣지도 못한 관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제서야 그가 왜 자신보고 모용환의 관상을 봐줄 것을 부탁했는지 깨달았다.
모용환은 붙잡을 새도 없이 후다닥 달려가는 여인을 보며 조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깨비불로 사람을 불러와서는 대뜸 관상만 보고는 결과도 말해주지도 않고 사라지다니. 그런 그에게 장료가 다가와 물었다.
"어땠어? 관상을 본 느낌말이야. 결과는 말해주지 않네? 나쁘게 나왔나 보다."
"느낌이고 자시고... 그냥 쳐다보기만 하는 데 뭘 바래? 좀... 춥던데."
"음. 용한 점쟁이 인가봐. 내가 누군지도 척척 맞추던데? 그러더니 갑자기 널 불러와 달래더라."
장료도 그녀와는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 것 같았다. 모용환은 골목을 나서며 물었다.
"이름은 알아?"
"연이라고 하던데."
"연? 왠지 모르게 그... 뭐라고 해야 되나? 마이너스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더군."
"동감."
아마 현대로 치면 학창생활 동안 계속 왕따를 당하거나 매사에 항상 부정적이면 그런 분위기가 형성될까? 모용환은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연이라는 여인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게 되겠지.
여인은 시상을 나선 후 말머리를 장안으로 돌렸다. 본래는 모용환의 관상만 보고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시상에 들어오기 직전에 '끈'이 끊긴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모용환의 관상을 봐줄 것을 부탁하며 한 동안 맡겨두었던 붉은 봉투. 그녀는 그 봉투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 놓았기에 그것이 개봉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곽 오라버니...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말고삐를 더욱 힘주어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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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오해하실 지 몰라서.. 남깁니다 -ㅁ- ; 귀신으로 무슨 마법을 쓴다든지 하는 건 아닙니다... 말 그대로 귀신을 볼 수 있는 거고 무당처럼 잡귀를 퇴치할 수는 있을지언정 사람을 상하게 하는건 힘듭니다.. 대신 여러가지 용도로 쓸 수는 있겠지요. 어떤 물리력을 행사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밝혀둡니다. 육손은 궁성에 들어온 뒤로 하루하루가 가시방석 같았다. 어떻게 모용환의 몸종이라는 이유로 억지로 끌려오긴 했는데 예법도 모르는데다가 군주인 유비가 시상에 왔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는 아예 방에서 나오질 못했다.
빈민촌에서만 자라왔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유비같은 인물들은 구름 위의 사람이나 다름없었다.
"하-아...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천하의 육손이 낯을 가려 방에 박혀 있다니. 낯가림과는 좀 거리가 있는 이유이긴 했지만... 만약 나가서 그런 높은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면 뭐라고 한단 말인가.
"난 그냥 몸종일 뿐인데."
우악스런 성격이라 궁중의 여인들이 그녀를 보고 손가락질 할 수도 있었다. 그녀는 그런게 싫었다.
"쳇. 고운 말투가 다 뭐냐구. 징그럽게."
모용환이 말투 좀 고쳐라. 라고 한 게 생각나자 육손은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그녀는 거칠긴 해도 당장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욕설 섞인 말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드륵.
갑자기 문이 열리자 육손은 화들짝 놀라 그 쪽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처소에는 올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육손의 방에 들어온 사람은 같은 여자인 그녀가 보기에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여인은 궁의 여인들이 입는 옷이 아니라 유생과도 같은 차림을 하고 있었다.
육손은 그녀가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시상에 유비가 처음 들어왔던 날, 조금이지만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육손을 패배시킨 조호이산지계를 생각해 낸 유비군의 군사, 제갈량이었다.
"군사님... 께서 어쩐 일로..."
그녀의 말에 제갈량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같이 목욕이나 하는 게 어떻겠니?"
뜻밖의 말에 육손은 입을 살짝 벌렸다.
"네?"
"일종의 친목도모 같은 거야. 손아도 이제 우리 식구니까. 다들 손아를 보고 싶어해."
"자, 잠깐만요..."
좀 전의 일을 떠올린 육손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이곳에 오게 된 것이다. 목 아래까지 물에 잠긴 그녀는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궁내의 여자란 여자는 모두 모인 것 같았다.
'내가 이런 자리에 있어도 되는 걸까...?'
군주인 유비, 그녀의 호위 장비, 군사 제갈량, 일전에 만난 적이 있었던 대교와 소교, 혈랑대장 장료, 은룡 조운. 아직 어린 대교와 소교를 제외하면 모두 그녀에게는 신분이 지고한 여인들이었다.
모두 품위 있고 고고한 여인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욕탕에서의 그녀들의 행동은 육손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었다.
"아하하핫!"
첨벙! 첨벙!
"하지 마세욧! 요 언니!"
장료는 나이 어린 동생들에게는 장비와 구분하기 위해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녀가 물을 뿌리자 대교가 앙칼진 고함을 치며 마주 공격했다.
"......"
저게 어딜 봐서 그 악명 높은 혈랑대의 대장이란 말이냐. 한 구석에서 경망스럽게 여기저기 물을 뿌려대는 장료의 행동을 지켜보던 육손은 혹시 물이 튀일라 꼬르륵거리며 눈만 내놓았다.
그 때 문이 벌컥 열리며 누군가 뛰어 욕탕에 풍덩 뛰어들었다.
"꺄아아아!"
"누, 누구냐!"
"누구긴! 여탕에 난입한 변태다!"
"까아아... 에?"
물보라가 걷히고 드러난 침입자의 얼굴은 무척 고된 생활을 한 듯한 중년의 아저씨였다. 그 음흉한 얼굴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중요 부위를 가리던 여인들은 점점 시선이 아래로 향하며 어이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분명 얼굴은 남자인데 몸은... 성숙하고 굴곡진 여인의 것이었다.
"냐하하하. 어때, 재밌지?"
찌익!
벙찐 얼굴을 한 여인들을 음흉한 표정으로 둘러보던 아저씨는 이내 자신의 얼굴 가죽을 찢어버렸다. 보통이라면 끔찍한 피분수와 함께 근육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해골이 나와야 하지만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애교살과 보조개가 인상적인 미녀, 유엽이었다.
그제야 사태 파악을 한 여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엽의 장난스런 얼굴을 본 장료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저건 성형수술로도 힘들 텐데."
전투태세를 갖추던 장비는 붉어진 얼굴로 크게 소리쳤다.
"유엽님! 유비님께서 계신데...!"
"에이, 언니라고 부르라니까. 장 동생은 너무 딱딱해. 유비님도 이런 걸 좋아한다고. 그치? 군주님? 난 우리 군주님이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것 같아아--!"
"그, 그런! 무례합니다! 유비님!"
유엽은 한 가운데에 몸을 담그고 있는 유비를 끌어안고 비비적거렸다. 마치 인형처럼 유엽에게 안긴 유비는 그녀의 풍만한 가슴에 볼이 부비부비 되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웃고 있었다.
"저도 유엽님이 좋아요."
"그렇지? 장 동생은 괜히 그런다니까. 운아는 나이가 먹어서 이제 징그러워."
"어, 언니이..."
유비가 좋다는데 장비가 뭐라고 말할 것인가. 그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한 쪽에서는 그 모습을 본 육손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 세력의 군주라면 좀 더 위엄있고 도도한 모습인 줄 알았는데 유엽과 유비의 모습은 그저 친한 언니와 동생 사이 같았다. 또 유엽의 장난스런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는 울상을 짓는 조운은 또 뭐란 말인가. 도저히 장양과 금선을 벤 장수, 은룡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는 사이 대교가 유엽에게 다가왔다. 소교는 방금 전, 중년 변태(?)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는지 딸꾹질을 하고 있었다.
"와아아! 엽 언니! 그건 언제 봐도 신기해요! 가르쳐 줄 수 없어요?"
"오호호홋! 이건 내가 아니면 아무도 못하는 비전이라고. 아니, 그 녀석이라면 혹시 모르겠다."
유엽의 말에 대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녀석이요?"
"응. 7년 전인가? 내 문하에 들어왔던 녀석이 있어. 그 때 난 장의사 일을 하고 있었거든."
"네에?"
장의사란 말에 모두들 놀란 표정이었다. 유엽은 쑥스럽다는 듯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장의사가 시체를 쉽게 구할 수 있잖아. 길가에 버려다지는 시체도 무조건 맡기는데 뭐. 그 때 한창 인피면구에서 대해서 연구를 했었거든. 그 때 내게 그 방법을 배우고 싶다면서 들어온 녀석이 있었어. 장의사 일도 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아서 난 나병환자처럼 행세했었거든. 그런데 녀석도 나처럼 온 몸에 천을 둘둘 감고 온 거야. 1년 정도 같이 살았는데, 정말 나병환자 같지는 않았어. 나처럼 정체를 숨기고 싶었던 거겠지. 많이 어렸었는데, 12살? 13살? 무척 똑똑한 녀석이었어. 가끔 나도 놀랄 만한 물건들을 만들어 내곤 했었거든. 그러더니 어느 날 짠.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지. 지금은 뭐하나 몰라."
"화아... 남자였는지, 여자였는지도 몰라요?"
"응. 비밀스러운 구석이 많은 녀석이었어. 목소리가 좀 가늘긴 했던 것 같은데 나이가 어리니까 확실히는 알 수 없겠더라고. 그냥 훌륭한 조수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긴 했는데 어쩌면 인피면구나 변장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뛰어날지도 몰라."
모두는 유엽의 이야기를 마치 만담꾼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동네 꼬마들처럼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었다.
'쳇... 정말 높은 사람들 맞아?'
다정다감한 그녀들의 모습에 육손은 왠지 모를 질투가 났다. 가진 녀석들은 모두 오만하고, 착취를 즐긴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그녀였다. 그에 비해 자신같이 가난한 사람들은 오로지 이웃간의 사랑, 행복만이 유일하게 가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저 여인들은 그 모두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새침해진 그녀는 모두가 유엽의 이야기를 듣는 틈을 타 슬그머니 탕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육손을 따뜻하게 끌어안는 사람이 있었다.
"나가더라도 모두 같이 나가야 하지 않겠니?"
제갈량이었다. 육손은 그녀의 품에 안기자 스르르 힘이 풀어지는 걸 느꼈다.
"응? 처음 보는 애잖아? 량아, 누구야?"
이야기를 끝낸 유엽은 육손을 보고는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 모두의 시선이 자기에게 쏠리자 육손의 얼굴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달아올랐다.
"육손. 손아예요. 지금은 환랑의 몸종이구요."
"에? 몸종? 호호호홋! 모용 동생은 너무 밝힌다니까. 하긴 나라도 모용 동생처럼 잘난 남자라면 장담할 수 없는 걸?"
"후훗. 언니, 농담으로만 들을게요."
육손은 갑자기 자신을 안은 제갈량의 팔에 힘이 들어간다고 느꼈다. 유엽은 그런 육손을 보며 살짝 입술을 축였다.
"난 유엽이야. 엽 언니라고 불러. 성 보단 이름으로 불리는 게 좋거든. 그건 그렇고, 너 모용 동생이랑 했니?"
"네, 네?"
얼굴이 잔뜩 붉어진 육손은 말을 더듬었다. 빈민촌의 대장이던 육손도 유엽 앞에서는 순한 양에 불과했다.
"오호호호홋! 순진한 척 하긴! 어디 보자!"
"아앗! 흑!"
육손은 느닷없이 유엽이 자신의 꽃잎 속으로 손가락을 쑥 집어넣자 다리를 오므리며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손가락은 꽃잎 속을 한바탕 휘젓고 나온 뒤였다. 정작 그런 짓을 한 유엽 자신도 조금 상기된 얼굴이었다.
"정말 했잖아? 몸종은 무슨 몸종! 남자라면 책임을 져야지!"
그녀의 말에 육손은 유엽의 의도를 깨달았다. 그녀가 기가 죽지 않도록 공개적으로 육손의 위치를 끌어올려준 것이다.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자신을 신경 써 주는 그녀의 행동에 육손은 눈물이 나려고 했다. 비록 그게 조금 음란(?)하긴 했어도.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육손을 끌어안고 있던 제갈량은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려오자 어깨를 쓰다듬어 주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언니, 애들도 있는데..."
"호호호홋! 뭐 어때? 어릴 때 운아에게 자주 해줬는데."
갑자기 자신을 들먹이자 조운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화를 냈다.
"언제 그랬어요! 거짓말 하지 마세요!"
"언제라니? 기분 좋다고 앙탈할 땐 언제고... 꺅!"
풍덩!
조운이 씩씩대며 다가와 유엽을 덮치자 두 여인은 그대로 물 속에 잠겨 버렸다. 그 광경을 본 장료는 고개를 저었다.
"언제 철들려나."
조금 전 자신의 모습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그녀였다. 입을 가리고 웃고 있는 유비의 옆에서, 장비는 전혀 군주의 체통을 생각하지 않는 그녀들의 행동에 땅이 꺼져라 한숨만을 내쉴 뿐이었다.
뭐라고 할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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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만 쓸까... 그날 밤, 시상성에서는 승전도 자축할 겸, 군사들의 전공도 치하할 겸해서 창고에서 고기와 술을 풀었다. 장수들의 자리는 궁성이 아니라 강변 풀숲가에 따로 마련되었는데, 아무래도 모용환의 아내들이 많다보니 위연이나 감녕, 감택과 같은 사람들은 눈치껏 자리를 피해주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연회의 유일한 남자인 모용환은 가족 연회에 참석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눈앞의 정경을 감상했다.
"부어! 마셔! 냐하하핫!"
"콜록, 콜록!"
야외, 그것도 강변에서의 연회라 그런지 분위기가 더욱 무르익은 것 같았다. 유엽은 술을 잘 하지도 못하는 조운에게 계속해서 술을 권했고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의 조운은 콜록거리면서도 그것을 또 계속해서 마셨다.
'내일 일어날 수는 있을까?'
모용환은 갑자기 조운이 걱정되었다.
물컹!
그 때 갑자기 어깨아래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옆을 보니 유비가 반쯤 풀린 눈으로 자신의 팔을 껴안아 오고 있었다.
"유비님?"
"상고-옹!"
"......"
혀까지 배배 꼬인 그녀의 모습에서는 평소의 단아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용환은 당황했다.
'누가 술을 먹인 거야!'
"킥킥."
범인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모용환은 빈 술잔을 딸랑딸랑 흔들어 보이는 장료의 모습을 보고는 이를 갈았다. 그나저나 연회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렇게나 취하다니, 유비도 술이 어지간히 약한 것 같았다.
"유비님. 취하셨습니다."
"아안~ 취했어요오오... 딸꾹!"
어이구, 골이야. 모용환은 자신에게 달라붙는 유비를 조심스럽게 한 쪽 팔로 안아주었다.
"나도오... 안아줘요오..."
"......?"
뜬금없는 소리에 그는 유비를 내려다보았다. 풀린 눈으로 모용환의 품에서 비비적거리던 그녀는 팔을 늘어뜨렸다.
"군주저언에에... 나도... 딸꾹! ...여자란~... 말이에요오오... 그냐앙.. 안아아... 줘요오..."
유비의 취중진담을 들은 모용환은 입맛을 다셨다.
"쩝."
유비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푹 고개를 떨구고는 죽은 듯이 잠이 들었다. 모용환은 그런 그녀에게 무릎베개를 해주고는 보드라운 그녀의 볼을 매만졌다. 아무래도 군주다 보니까, 다른 여자들처럼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던 것인데, 유비는 그것이 서운했던 모양이었다.
"유비님!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물론 거기에는 옆에서 눈을 시퍼렇게 부릅뜨고 있는 장비도 한 몫을 했다. 장비가 지켜보고 있는데 어떻게 유비와 정사를 나눌 수 있단 말인가.
"무슨 짓이라니... 그냥 술 드시고 취하신 것 뿐이야."
"이익! 유비님께 술을 권하다니! 파렴치한!"
"아니... 내가 아니라."
모용환은 난처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장료를 가리키려고 했지만 그녀는 가증스럽게도 제갈량, 육손의 무리에 끼어 술잔을 높이 쳐들고 있었다.
게다가 그라면 질색하는 장비이니 믿어줄 리도 없었고. 그렇게 생각하니 모용환은 갑지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야."
"뭐야!?"
"넌 내가 그렇게 싫냐?"
모용환의 단도진입적인 말에 장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껏 모용환이 보인 반응과는 판이했기 때문이다.
그도 슬슬 취기가 올라오는 듯 했다.
"내가 대체 왜 싫은 건데? 엉? 왜 나만 보면 그렇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그의 박력있는 말에 장비는 살짝 주춤하면서도 자신이 기세에서 밀렸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하는지 인상을 썼다.
"그야 당연한 것 아냐?!"
"그러니까 그 당연한 게 뭐냐고!?"
"그, 그..."
장비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일순 말문이 막혀버렸다. 유비를 겁간해서? 지금이야 다 끝난 일, 유비도 행복해 하고 있었다. 자신을 패배시켜서? 어린애도 아니고 그런 것 때문에 징징댈 나이는 아니었다. 그럼 대체 왜 자신은 모용환을 싫어하는 것인가?
결론은 나지 않았다.
"그, 그냥 싫어!"
"뭐?"
모용환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냥 싫다고!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데 이유가 필요해?!"
딴은 맞는 말이었다. 이번에는 모용환의 말문이 막혔다. 그들 쪽에서 언성이 높아지자 떨어져 있던 여인들이 모여들었다.
"오호호홋! 뭐야, 뭐야?"
"혀엉... 싸우지 마아..."
"벌써 취했냐?"
유엽, 육손, 장료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대교와 소교는 단 한 잔을 들이마시고는 사이좋게 잠들어 버렸고, 조운은 좀 버티는가 싶더니 결국 유엽의 주량을 당해내지 못했다.
장료와 육손과 함께 술을 마셨던 제갈량은 극구 사양하다가 장료가 억지로 술을 먹여버리자 의외의 폭음 끝에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그녀의 폭음은 장료와 육손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웠다고.
모용환은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 본 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다들 자네."
"으응... 군사 누나... 무서웠어어..."
육손은 몸을 부르르 떨며 칭얼댔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보아 그녀도 곧 갈 것 같았다. 장료는 고개를 끄덕이며 엎드려 쌕쌕 자고 있는 제갈량을 바라보았다.
"흐응. 계집애, 평소에는 상냥하게 굴더니 저런 면모가 있을 줄은 몰랐어."
장료마저 그런 말을 하자 모용환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제갈량을 보았다.
'어떻게 했길래... 한 번 나중에 둘이 있을 때 먹여 볼까?'
심히 궁금해졌다.
한편 유엽은 장비의 등을 토닥이며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자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즐기자구. 냐하하핫! 건배애!"
다섯 사람은 술잔을 부딪치며 독한 술을 쭈욱 들이켰다. 이렇게 술잔을 부딪치며 '건배!'라고 말하는 것은 장료가 전파시킨 것이었는데, 호탕한 맛이 난다고 해서 유엽은 적극적으로 건배 문화를 밀고 나갔다.
"으아아... 어지러워..."
제일 먼저 떨어져 나간 것은 역시 육손이었다. 두통이 심한 듯 머리를 부여잡고 한 동안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그대로 엎어져 버렸다.
"... 꼬마 녀석이 꽤 버티더라마는. 아직 이 언니를 따라오려면 멀었어!"
"오호호호홋! 아무렴! 끝까지 가자!"
장료와 유엽은 죽이 맞아 떠들고 있었다. 모용환은 얼큰하게 올라오는 취기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술을 마시며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저 둘은 술고래구만.'
의외로 장비 역시 아직 낙오하지 않고 있었다. 모용환은 장비를 툭 치며 말을 걸었다.
"넌 안 취하냐?"
"... 만만하게 보지 마."
아직 목소리가 그런대로 또렷한 것이 쓰러질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아니면, 오기로 버티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모용환은 남자 체면에 먼저 쓰러질 수도 없고 해서 끝까지 버틸 요량이었다. 다행히 그의 몸은 술에 강했다. 어쩌면 최고로 단련된 육체의 정화 기능이 강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체면치레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들이키고, 또 들이켰다. 속에서 화악하며 뜨거운 불길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모용환은 석고대죄를 하는 죄인마냥 유비의 처소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어제 울다 지쳐 잠든 장비는 깨어나자마자 다시 서럽게 울기 시작했고, 지금은 유비와 유엽이 그녀를 다독이고 있었다.
"......"
대강의 사정을 들은 여인들은 모두 유비의 처소에 모여 있었다. 대교와 소교는 아직 깨어나지 못했지만, 숙취로 부스스한 얼굴을 한 나머지 여인들은 그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환랑,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는 하지만..."
한숨을 쉬는 제갈량.
"헹, 그럼 그렇지. 맨 정신일 때도 색마 같은 인간이 술이 들어가면 어떻게 되겠어?"
비웃는 장료.
"형... 대체 몇 명이야...?"
감탄하는 육손.
"모용 동생! 술에 취했으면 자기 아내를 덮칠 것이지! 엄한 애는 왜 건드려?!"
질책하는 유엽.
"상공... 어, 어떻게... 장 언니를..."
실망한 표정의 유비.
"오, 오라버니... 저희만으로는... 만족 못하시는 거예요...? 흑. 노, 노력할게요..."
조운은 다른 의미로 울먹이고 있었다.
모용환은 미칠 지경이었다. 일어나마자 밀려오는 왠지 모를 죄책감과, 강압적인 분위기로 인해 지금 이렇게 무릎을 꿇고 있기는 했다. 술에 취해서 장비를 덮친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분명 자신의 기억으로는 장비도 벗고(?) 있었다.
'내가 덮친 거야? 아니면 쟤가 날 유혹한 거야?'
그는 혼란스러웠다. 구멍을 보면 파고드는 게 남자 아닌가. 그렇게 이성을 잃었을 뿐인데 애초에 장비는 왜 벗고 있었단 말인가.
그러자 술이 막 깼을 무렵이 생각났다. 비릿한 소변 냄새와 어렴풋이 들리던 물줄기 소리. 몸을 떨며 울던 장비...
갑자기 모든 아귀가 들어맞았다. 모용환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헉! 그, 그럼 소변보려던 걸... 그, 그... 결국 내가 덮친 건가!'
장비로서는 술김에 자신과 정사를 해버린 것도 억울한데 수치스럽게도 오줌을 누는 것까지 생생하게 보여줬으니 부끄럽고 치욕스러워 죽고 싶을 심정일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녀가 싫다고 말한 모용환이었으니까.
사태 파악을 모두 한 모용환은 고개를 숙이며 침통하게 말했다.
"미... 안해... 내가 죽일 놈이야..."
"흐끅... 흐흐흑..."
하지만 장비는 여전히 울음을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벌써 한참 전부터다. 그녀의 눈물샘은 마르지도 않는 것 같았다.
옆에서 유엽이 다그쳤다.
"모용 동생! 목소리가 너무 작잖아! 장 동생, 뚝!"
"장 언니. 상공도 많이 뉘우치고 있어요."
여인들의 노려보는 시선이 강렬해지자 모용환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눈 딱 감고 외쳤다.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내가 죽일 놈이지!"
처음과 끝만 얼핏 기억나는 그로서는 상당히 억울했지만 이미 모든 정황이 너무 명백했다. 장비의 몸도 제대로 보지 못했고, 당시 느꼈던 촉감, 감정 같은 것들도 기억이 나질 않아 모용환은 무척 억울한 심정이었다.
'젠장!'
옆의 장료는 빈정거리며 그의 화를 돋우었다.
"쯧쯧. 죽일 놈인건 아네. 애 3명을 잡아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물건을 잘라버릴 수도 없고 말이야."
대교와 소교, 육손을 말하는 듯 했다. 하지만 잡아먹힌 당사자인 육손은 별로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그만큼 형의 능력이 대단하다는 거잖아요."
"그래, 그래. 여자 따먹는 것도 능력은 능력이지."
"요 언니, 오라버니 듣겠어요."
"흥, 들으라고 하는 소리야."
장료의 말을 계속 듣다가는 안 그래도 뻐근한 뒷골이 울화로 폭발할 것 같았다.
그 때 시녀가 와서 무릉 태수 조범의 사신이 도착했다는 것을 알려왔다. 갑자기 일면식도 없는 그가 유비군에 사신을 보낸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하지만 모용환에게 그런 것은 중요치 않았다. 다만 시기적절하게 내려온 구원의 손길일 뿐이었다. 이 난감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유비는 모용환에게 말했다.
"상공께서 나가보세요. 장 언니는 제가 달랠 테니. 참, 제갈 언니랑 손아도 같이요."
"예."
모용환은 살았다는 심정으로 찌뿌둥한 몸을 일으켰다. 군사인 제갈량이나, 현재 시상의 내정을 총괄하고 있는 육손은 사신이 무슨 의도로 왔던 간에 꼭 대동해야 할 여인들이었다. 사신이 기다리고 있는 대전으로 가며, 육손은 모용환의 안색을 보고 킥킥 웃었다.
"형도 어지간히 힘들었나 보네요? 표정에 다 써있어요."
"시끄러."
"히힛. 장 누나는 좋았겠다."
모용환은 시큰둥하니 있다가 갑자기 육손이 달라붙자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너, 왜 그러냐? 안 어울리게."
"그거, 기분 째지던데. 형. 오늘 해주면 안돼?"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는 육손을 보자 모용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얘가 뭘 잘못 먹었나?
"뭘?"
"에이. 그걸 꼭 내가 말해야 돼? 형의 그걸로... 내 거기에... 아, 쪽팔려."
한 번 관계를 가지니 그간 성에 대해 무관심했던 육손이 완전히 쾌락에 눈뜬 모양이었다. 그러자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제갈량은 지그시 육손을 떼어 놓았다.
그녀는 부드럽게 타이르듯 말했다.
"손아. 그런 말을 쓰면 못써요. 환랑이 곤란해 하잖니."
"네에-. 제갈 누님!"
아이 다루듯 하는 말에도 육손은 짜증내기는커녕 오히려 제갈량에게 달라붙었다. 모용환은 그런 그녀를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자신이 고운 말투 좀 쓰라고 말할 때는 잔소리가 싫다며 들은 척도 않더니.
그는 몰랐겠지만 육손이 유독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제갈량이었다. 고아로 자란 그녀는 제갈량에게 모정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조운을 5년간 양육(?)한 경험이 있는 제갈량은 그 역할에 딱 들어맞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4살 차이였지만 육손의 다른 누나들과는 다르게 '누님'이라고 불리는 그녀였다.
어쩌면 육손에게 '엄마'와 '누님'은 동의어일지도.
모용환은 태사의에 앉아 무릉 태수의 사신을 맞이했다. 자신을 포융이라고 말한 그 사신은, 딱 봐도 무척 힘이 장사인 것 같았다. 포융은 유비가 없는 것을 의아하게 여겼는데, 모용환은 그녀가 병중이라고 간단하게 둘러댔다. 그는 시상의 태수이기도 했으니 딱히 사신을 접대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
포융은 그의 말에 수긍하며 자신이 가지고 온 조범의 전언을 전했다.
"주군께서는 유비님의 휘하에 들어가길 원하십니다."
"흐음? 쉽게 말해 항복하겠단 말이오?"
직설적인 말에 포융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지만 그는 이내 신색을 회복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다만, 사마의로부터 최대한 보호를 해주셔야 합니다. 또한 주군의 무릉 태수직도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는 게 조건입니다."
"음. 그 정도야... 들어줄 수 있는 일이지."
모용환의 말에 포융이 감사의 말을 할 때, 제갈량이 나서서 물었다.
"어째서 사마의가 아니라 유비님을 택한 건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제갈량을 보자 포융은 마땅찮은 기색을 띠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자들 중 감택, 감녕, 위연 같은 장수들은 익히 명성을 들은 바 있었지만 정작 태수 양 옆에 자리한 제갈량과 육손은 처음 보는 여인들이었다. 군사와 내정총책임자니 상석에 서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포융이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기껏해야 태수의 애첩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건방지게 나대다니.
"아녀자가 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아녀자가 아니라 아군의 군사시오! 말을 삼가시오!"
위연이 나서 호통을 치자 포융은 찔끔했다. 둘 다 빼어난 미인이었기에 애첩이라 여겼는데 태수 다음으로 잘 보여야 할 군사였다니! 포융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죄, 죄송합니다! 감히 몰라 뵙고..."
"괜찮으니 제 물음에 대한 답을 해주십시오."
제갈량의 차갑고 사무적인 어조에 포융은 그녀가 마음이 상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원래부터 대전에서 회의를 진행할 때면 제갈량의 말투는 항상 딱딱했었지만.
'제길! 입이 방정이지!'
나중에 그녀에게 후한 선물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하는 포융이었다.
"사마의는 주군인 조조를 배반한 자입니다. 그런 자를 어찌 믿고 휘하에 들어가겠습니까? 그에 반해 유비님은 한 황실의 마지막 후예이신 데다가 어지고 인덕이 높다 들었습니다. 어찌 사마의 같은 자와 유비님을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주군의 선택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의도를 의심치 말아주십시오."
포융의 말에 제갈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별 뜻은 없었으니,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제갈량이 모용환을 바라보자, 그는 태사의에서 일어서며 포융에게 다가갔다.
"조범님의 뜻은 잘 알았소. 좀 더 머무르다 가지 않겠소?"
"아닙니다. 한시라도 빨리 이 낭보를 주군께 알려야 합니다. 말씀은 고맙지만 전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흠. 그렇다면 할 수 없군."
포융은 모용환에게 깊이 고개를 숙인 후 제갈량에게도 작게 고개를 한 번 더 숙여보였다. 점수를 잃었으니 이렇게라도 점수를 다시 따 볼 요량이었다.
포융이 사라지자, 제갈량은 살짝 굳은 얼굴이었다.
"이 항복을 받아들인 것이 잘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육손도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녀는 좀 더 부정적이었다.
"어쩌면 최악의 선택일 수도 있겠는데요?"
공짜로 성 하나를 얻었으니 좋아해야 할 일인데, 두뇌라 할 수 있는 여인들이 오히려 불안해하자 제장들은 어리둥절해졌다. 감녕은 머리를 긁으며 물었다.
"우둔한 전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없군요. 대체 무슨 뜻입니까?"
대답은 모용환에게서 나왔다.
"강하의 채모가 멸망하면 형북은 사마의의 차지가 되지. 그리고 우리가 무릉을 가져가면, 필연적으로 그와 부딪칠 수밖에 없어. 아군이 사마의의 남진을 막는 형국이니까. 방향을 돌려 북진을 하지 않는 이상 사마의는 더 이상 세력을 넓힐 수 없는 셈이지."
"사마의도 조조가 재기한 이상 섣불리 아군을 도발할 수 없다고 생각은 합니다만, 그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자입니다."
사마의를 떠올리자 제갈량의 온화한 눈동자 속에서 일순 새파란 독기가 일렁였다. 그 눈빛을 보지 못한 육손은 싱글벙글 웃었다.
"그나저나 누님은 좋겠어요. 아까 그 사람, 보니까 똥줄이 타들어 가는 게 아닌가 싶도록 전전긍긍 하던데요? 나중엔 뇌물까지 바칠 태세였어요. 보는 내내 안쓰러워서..."
"그래."
그녀에게 농을 걸려던 육손은 제갈량이 평소 같지 않게 말을 자르자 울상을 지으며 입을 다물었다.
제갈량이 왜 갑자기 서릿발이 풀풀 날리는지 알고 있는 모용환은 갑자기 밀려오는 긴장감에 손을 쥐락펴락 했다.
"사마의라..."
필히 넘어야 할 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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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를 넘자 슬슬 게을러지는 작가... 원소는 분에 못 이겨 팔걸이를 쾅 내리쳤다. 누구나 인정하던 하북의 패자였던 자신이 지금 이런 상황까지 몰리게 된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단 말인가!"
동탁, 조조와 함게 천하를 삼분하던 때에서 지금은 크게 달라진 것도 없었다. 언제나와 같은 내정을 펼쳤고, 상벌이 분명한 원칙을 지켜왔다. 오히려 원술의 잔여 세력을 흡수하여 커졌으면 커졌지 작아질 세력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예전만도 못해져 버렸다.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은 원소는 한 사람을 떠올리며 눈을 희번덕거렸다.
"모용환---!"
이 놈 때문이다. 안량이 죽고, 제갈량을 뺏기면서 정세가 이상하게 변해버렸다. 안량은 정당한 일기토로 패사에 죽었으니 그렇다 쳐도 그의 여자라 생각했던 제갈량은 빼앗긴 것은 화가 치밀다 못해 놈에 대한 증오심까지 일게 만들었다.
'지금까지 누구도 이 원소의 것을 뺏고 무사한 자는 없었다!'
유독 소유욕이 강한 원소. 그에게서는 이미 정확한 사리판단으로 하북을 이끌어 나가던 패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충혈된 눈으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원소의 모습을 본 전풍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주군께서 저리 되셨단 말인가...'
수춘에서의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원소는 꺾일 줄 모르는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한 번 크게 기세가 꺾이자 이제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조조가 지금 북진을 하고 있었다. 맹장들을 앞세운 그녀의 공세에 평원이 공격당하고 있다는 전보를 접한지가 바로 어제였다. 이미 평원은 조조의 수중에 떨어졌을 지도 몰랐다.
게다가 위에서는 공손찬이 남피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원소는 지금 엉뚱한 유비군의 모용환만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현재 업 성 내에는 원소가 광인(狂人)이 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주군! 조조의 군대가 평원을 쳤다고 합니다! 원군을 보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전방의 성들이 위험한 판국에 오히려 모든 군세를 업으로 돌리시다니요!"
"닥쳐라! 너희들은 지금 그깟 성들이 내 안위보다 중요하다고 지껄이는 것이냐! 업만 지키면 된다!"
원소의 호통에 전풍과 심배는 머리를 떨구었다. 평소의 원소라면 분명 조조군을 막던지, 공손찬군을 박살내던지 둘 중 하나를 확실히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극심한 정신 불안 증세에 시달리는 원소에게는 그런 판단을 내릴만한 자각이 없었다.
'이대로는 조조와 공손찬에게 먹히고 만다.'
전풍은 주먹을 우드득 소리 나게 말아 쥐었다. 모든 게 적들의 뜻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공손찬이 남피를 차지하고, 조조가 평원을 차지한다면... 그 둘이 만나 걷잡을 수 없는 군세가 만들어진다.
사실, 당장이라도 지원을 보내야 했다. 어느 한 성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 날로 원소는 끝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원소는 도무지 군대를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 때 대전 문 밖에 있던 병사의 소리가 들려왔다.
"주군! 허창의 사마의가 사신을 보내왔습니다!"
전풍과 심배 등 모사들은 반색했다. 의외의 지원군이 나타난 것이다. 필시 지금 같은 시기에 사마의가 보낸 사신이라면 조조를 막을 방도를 가지고 왔으리라.
"오오! 어서 들라 하라!"
문이 열리고 사신 일행이 대전으로 성큼 들어섰다. 선두에 선 자는 기골이 장대한 장수 하나와, 그들도 익히 알고 있는 정욱이었다.
"주군의 뜻을 전하러 왔습니다. 제일 참모 정욱이라고 합니다."
정욱은 대전안에 들어서자마자 원소의 퀭한 몰골을 보고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지만, 노련한 협상가답게 자세를 바로 했다. 원소가 비록 제정신이 아니라 하지만 아직 사람을 분간할 수는 있었다.
"호오. 그대가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지?"
"주군. 이 일은 제게 맡겨 주십시오."
전풍은 원소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먼저 선수를 치고 나섰다. 원소는 전풍을 보며 살짝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군사가 알아서 하라! 나는 이만 들어가겠다!"
원소가 휑하니 사라지자 전풍을 비롯한 제장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그가 현재 유일하게 취미 붙인 일이 있다면, 애첩들과 연회를 즐기는 것이었다. 아마 한 동안은 처소에서 나오지 않으리라.
원소군의 분위기를 보자 정욱은 웃음이 나왔다.
'이미 망국(亡國)이나 다름없군. 변변한 후계도 없으니 원소군은 자멸할 것이다.'
"오랜만이오... 무슨 일로 오시었소?"
정욱과 전풍은 한 때 동문으로 수학한 적이 있었다. 정욱은 얼른 표정을 고치고 담담히 말했다.
"거두절미하고 말하겠소. 주군께서는 조조를 협공하고 싶어 하시오."
"그 말은...?"
"전 공도 알다시피 공손찬군과 조조군이 만나... 협력 군세를 구축한다면, 당신들에게 남은 것은 멸망뿐일 것이오. 그것을 살려주겠다는 말이오."
"말이 지나치다!"
옆에 있던 저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은 기울어져 가는 늙은 호랑이와 같은 원소군이었지만, 아직 그 드높은 자존심은 죽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정욱에게는 비웃음의 대상일 뿐이었다.
"현실을 직시하시오. 실례되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예전 하북을 호령했던 군주는 스스로 죽어버렸소."
"으음..."
원소를 힐난 하는 말에 전풍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수는 눈을 부릅뜨며 허리춤의 칼을 뽑으려 했지만, 정욱의 옆에 버티고 선 당당한 체구의 무장이 쏘아 보내는 기세에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전풍은 감탄했다.
'저 자는 누구란 말인가! 허저, 하후돈, 전위 같은 맹장들은 모두 조조에게 갔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저런 자가 남아있었다니!'
정욱은 장수와 저수의 보이지 않는 기세 싸움을 알아채고는 장수를 말렸다.
"그만하라. 서황."
"예. 참모님."
커다란 덩치가 허리를 숙이자 흡사 곰이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전풍은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그냥 도와주겠다는 말은 아니겠군. 무엇을 원하시오?"
"역시 전 공은 말이 잘 통하는군. 별 것은 아니오. 그대들에게도 손해 보는 조건은 아닐 것이오. 조조를 멸망시킬 때까지, 현재 조조의 영토. 진류, 복양, 소패, 하비, 북해. 이 다섯 성을 아군이 접수하겠소."
정욱의 말에 노발대발한 것은 역시 저수였다.
"무슨 헛소리인가! 진류, 복양은 몰라도 소패와 북해는 예전부터 우리의 땅이었는데! 그것을 거저 가져가려고 하는 것인가!"
"후후. 혹시 조조만 처리하고 나면 끝인 줄 아는 것이오? 아직 백마의종 공손찬이 남아 있소. 남은 성들은 관리할 여력이 안 될 텐데... 아니면, 조조에게 넘겨준 것과 마찬가지로 유비에게 뺏기겠단 거요? 명심하시오. 수춘에는 신장 관우가 있소. 하지만 아군은 그를 상대로 충분히 수비를 할 수 있는 힘이 있지. 여기 서황만 해도 관우에게 그리 뒤지지 않는 장수요."
"으으...!"
논리정연한 정욱의 말에 저수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안량이 죽은 뒤로 원소군의 대표적인 장수라 하면 장합, 문추, 고람 정도였다. 최소 이들 중 둘이 있어야 관우를 막을 수 있을 텐데, 정욱의 말대로 공손찬을 막기에도 바빴기 때문에 여유가 없었다.
"요구에 따르겠소. 구체적인 계획을 말해 보시오."
원소군의 이인자인 전풍이 요구를 승낙하자 정욱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그만큼 이들이 다급하다는 증거였다.
"조조는 현재 도박을 하고 있소."
"그게 무슨 소리요?"
"조조의 대군이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시오? 설마, 단기간에 그 많은 군사들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고."
"......"
듣고 보니 그랬다. 겨울이 다 끝나갈 즈음에 반란을 일으킨 사마의에 의해서 세력의 대부분을 빼앗기고 진류으로 도망친 조조가 갑자기 어떻게 대군을 일으켜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을 가져볼 법 했지만 아래위로 밀고 들어오는 탓에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였다.
"조조의 후방은 텅 비어 있소. 한 마디로 전력을 짜내어 쳐들어 왔다는 소리지. 누가 생각이나 했겠소? 자기의 영토를 싹 비우고 쳐들어오리란 것을."
"그럴 수가..."
"조조가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대담한 역발상이오. 그게 당신들이 고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 하지만 아군이 후방에서 지원을 해준다면 얘기가 틀려지오. 아마 지금쯤 진류는 아군의 공격을 받고 있을 것이오. 진류를 시작으로 복양, 소패... 조조는 돌아갈 곳을 잃는 거지."
전풍은 한 때나마 자신의 주군이었던 조조를 패망시킬 방법을 차근차근 이야기하는 정욱이 무섭게 느껴졌다.
"당신들은 그저 버티기만 하면 되는 거요. 평원만 내주지 마시오. 조조가 공손찬에게로 도망칠 우려가 있으니까. 당신들의 주군에게 직할지를 평원으로 바꾼다고 간청을 해서라도, 반드시! 조조는 살려두기에는 너무 그릇이 큰 여자요."
정욱은 살짝 말을 끊고 히죽 웃었다.
"이제 죽일 때가 되었지."
타도 조조를 위한 원소와 사마의의 동맹이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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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한편 평원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전풍이 평원군을 지휘하는 장수로 내려보낸 사람은 문추. 장합과 고람은 공손찬의 군대를 남피에서 막고 있었다. 끊임없이 성벽에 사다리를 걸치고 올라오려는 조조군을 본 문추는 이를 갈았다.
"뜨거운 기름을 부어라!"
그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은 뜨겁게 달궈진 쇠가마를 성벽 아래로 들이부었다. 누런 기름이 성벽 아래로 쏟아지며 온갖 비명이 난무했다.
"으아아아악!"
"내 얼굴---!"
"크아아!"
성벽 밑에 있다가 기름세례를 맞고 살가죽이 흐물흐물 벗겨지자, 병사들은 미친 듯이 우둘투둘한 돌벽에 몸을 문대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드러나며 핏물이 성벽에 낭자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참상은 전쟁터에서 흔히 있는 일. 문추는 거기에 다시 한 번 일격을 가했다.
"횃불을 아래로 던져라!"
화르르륵!
"끄아아악!"
기름 탓에 순식간에 번져버린 불길은 아래에 깔려 있는 병사들을 태우며 해자같이 둥그렇게 퍼졌다. 수많은 시체들이 장작더미마냥 시커멓게 타들어갔다. 생살이 지글지글 타오르는 냄새가 성벽 위까지 올라올 지경이었다.
"우웨엑!"
비위가 약한 병사들은 성벽아래에 대고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을 욕하지 않았다. 다른 병사들 역시 쓴물이 올라오는 것을 꾹 눌러 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후우."
불길 때문에 일시적으로 후퇴하는 조조군을 바라보던 문추는 한숨을 돌렸다. 그는 왜 이렇게 조조군이 필사적으로 달려드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평원을 점령하고 공손찬군과 합류하는 것. 그것이 전풍이 귀띔해준 조조군의 목적이었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하지만 적병이 너무 많았다. 일단 성문이 열리거나 성벽을 내주게 되면 필패라고 봐야했다. 적장들 중에는 자신 이상의 무위를 지닌 대장군 하후돈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길. 왜 업에서 지원이 오지 않는 거지?'
벌써 원군을 열흘이 넘었다. 오려면 벌써 왔어야 했는데 감감무소식이었다. 보내준다는 말도 없고 보내주지 않는다는 답신도 없었다. 그러니 오히려 속이 타들어갔다.
"장구운-!"
"뭐냐!"
안 그래도 심란한 마음이었는데 병사마저 다급하게 불러대자 문추는 짜증이 치밀었다. 하지만 그 병사는 무척이나 다급해 그런 것을 따질 여유가 없어 보였다.
"급보입니다!"
"뭐냐고 물었다!"
"적의 원군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문추는 일순간 숨이 막혔다.
"뭐, 뭐라 했느냐!"
"허저는 복양에서, 전위는 북해에서 몰려오고 있어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합니다! 장군!"
"놈들! 아주 작정을 했구나! 크으으!"
눈앞이 깜깜해진 문추는 비틀거리며 성벽의 돌출부를 부여잡았다. 이제 어떻게 한단 말인가. 허저나 전위나 그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최고의 용장들이었다. 하후돈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버거운데 그들까지 합류한다면, 평원을 사수해낼 자신이 없었다.
"당장 업성에 지원을 요청해라! 보내준다고 할 때까지 계속해!"
"옛!"
잠시 소강상태에 빠진 전투. 그 와중에 조조는 작은 언덕에 올라 평원성을 주시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하후돈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과연 문추입니다. 적은 병력으로 이만큼이나 버티다니..."
"지금은 적장을 칭찬할 때가 아니다. 하후돈."
"으음. 죄송합니다."
조조는 말머리를 슬며시 돌렸다.
"허저와 전위는 언제쯤 도착하지?"
"하루면 도착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평원을 함락할 수 있을 겁니다."
이미 예전에 복양과 북해에서 지원병들이 출발했다는 전보를 받았고, 도중에 보낸 전령도 도착했으니 얼추 하루면 될 것이었다. 하후돈의 말에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관건이다. 명심하도록."
"물론입니다."
잠시 말이 없던 조조는 갑자기 하후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하후돈."
"말씀하십시오."
"불안하다."
"예?"
그녀의 말에 하후돈은 놀라서 입을 벌렸다. 그가 아는 조조는 누구에게 이런 약한 소리를 할 군주가 아니었다. 예전 세력을 일굴 초기에 곽가나 그에게 내심을 털어 놓기는 했었지만, 그 이후엔 일절 그런 소리를 하지 않던 그녀였다.
그런 조조가 불안하다고 했다.
"주군...?"
"사마의는 한 번 당한 계략에 두 번 속을 자가 아니다. 처음은 아군의 움직임을 놓쳐서 이렇게 세력을 팽창시킬 수 있도록 놔두었지만, 이번에도 그럴 수 있으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
"애초 출전을 하지 않고 기반을 다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원소가 공손찬을 제거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니.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결코 천하를 얻을 수가 없다. 그래서 본후의 모든 것을 걸고 도박을 한 것이다. 하후돈, 넌... 이럴 수밖에 없는 날 이해해 줄 수 있는가?"
조조의 음성은 그녀답지 않게 미세하게나마 떨렸다. 하후돈은 이런 저런 일을 겪으면서 그녀에게 많은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철혈의 군주이던 조조 맹덕이 많이 약해졌다는 것이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곽가의 죽음이 미친 영향이 생각보다 컸을지도 몰랐다.
"주군!"
하후돈은 말에서 내려 말없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주군께서 걸음마를 하실 때부터 옆에서 모셔왔던 접니다! 봉효가 저승으로 떠난 마당에, 소장이 주군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주군을 이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하후돈은 설사 주군이 지옥 끝까지 가신다고 하셔도 따라나설 것입니다!"
묵묵히 고개 숙인 하후돈을 내려다보고 있던 조조는 천천히 말머리를 돌리며 말했다.
"불길이 약해졌다. 다시 평원으로 돌격한다."
"예!"
기세 좋게 일어선 하후돈은 말에 올라타며 의천검을 높게 쳐들었다. 평원 일대를 쩌렁쩌렁 울리는 그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전군! 돌격하라--!"
"와아아아아---!"
하후돈의 패기 가득한 외침에 한껏 사기가 고양된 병사들은 우레와 같은 함성을 내지르며 다시금 평원성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평원성 아래에는 시체가 수북이 쌓여 있어 아까보다는 올라가기가 한결 수월할 듯 했다. 병사들은 망설임없이 동료들의 시체를 넘어 아득바득 성벽에 사다리를 대고 오르기 시작했다. 인정 따위는 없는 곳, 이게 전쟁터였다.
그 모습을 씁쓸한 눈으로 쳐다보던 하후돈은 한 기의 기마가 달려오는 걸 보았다. 흰색 깃발로 봐서는 전령 같았다.
"대장군! 진류 태수께서 보내신 급전입니다!"
"으음."
순유가 보냈다는 서찰을 전령에게서 받아든 하후돈은 이내 와락 서찰을 구겼다.
"이, 이게 정말 사실이냐?"
"전 내용을 모릅니다. 대장군."
어리둥절해 하는 전령에게서 시선을 뗀 하후돈은 서찰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심장이 마구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 이 사실이 알려져서 좋을 것은 없었다.
'진류가... 사마의에게 함락 당했다니.'
방금 전 조조가 했던 말이 현실로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서찰은 장수들은 겨우 도망쳤지만 조조군의 본거지인 진류가 함락 당했다는 것을 순유가 은밀히 알려온 것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조조군은 급격히 사기가 떨어질 것이고, 탈영병까지 생길 터였다. 진류가 함락된 이상 복양까지 사마의의 손에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의 가족들은 바로 그곳에 있었다.
'병사들 뿐 만이 아니다... 당분간은 주군에게도 이 사실을 숨겨야 한다.'
자신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줬던 조조였다. 자신의 우려가 현실화 된 것을 안다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조조의 성격상 그럴 일이 없기를 바랐지만, 혹여 모르는 일이었다.
하후돈은 품속의 구겨진 서찰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이대로 회군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필사의 각오를 한 사람이 마음을 돌리게 되면 맥이 빠지는 법. 지금 조조의 군대가 그랬다. 게다가 어차피 요충지인 진류를 뺏겼다면 지금 이 군대로 밀고 들어오는 사마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지금은 오로지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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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히로인들이 독자분들께 얼마만큼의 지지를 얻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비공식 투표를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마음에 드는 순으로 1순위 2순위 3순위를 선택해서 리플로 달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 : 1.xx 2.dd 3.zz)
이 글에 있는 리플로만 투표를 매겨 보고, 다음 글을 올릴 때 작가잡담에다가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진선미를 한 히로인들은 작가가 특별히 더 신경을 써 보도록 하지요 ^^ 더불어 h씬이라던가 에피소드가 늘어나는... 뭐 다 아시겠지만.
골고루 나오면, 뭐 다 신경쓰는 거고...; 아 참. 투표 참여 자격 히로인들은 작중에 등장하는 모든 '여자'입니다. 주막아줌마 이런거 안됩니다.
"짐을 꾸려라."
자택으로 와서 갑작스럽게 내뱉는 사마의의 말에, 잔뜩 긴장하고 있던 문화는 인상을 썼다. 느닷없이 짐을 싸라니.
"무슨..."
"친정(親征)을 나갈 것이다. 너는 물론 어머니도 따라와야 돼."
사마의가 조조를 배반하고 스스로 군주가 되었다는 것은 자택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문화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요 근래에 엄청나게 세력이 불어났다는 것도. 나가지는 못하지만 주변 하인들이나 시녀들에게서 이 정도의 정보 수집은 가능했다.
중원 한복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낙양의 재건까지 이루어 내고 있는 그가 친히 원정을 나설 정도의 일이라면?
시녀로서의 문화가 아닌, 완의 군사였던 가후의 두뇌가 영활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설마 조조를...'
근래 유비나 동탁과 마찰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사마의가 나설 정도의 대규모 원정이라면 조조의 잔여 세력을 치는 것일 터였다.
사마의는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넌 시녀일 뿐이다. 어머니만 잘 모시면 돼. 쓸데없는 것까지 생각하지 마라."
마치 자신의 머릿속을 낱낱이 훑어보는 듯한 그의 말에 가후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이 남자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끝까지 반발하는 그녀였다.
"하지만 왜 굳이 강사님까지 데려가시려는 건지..."
"문화야! 같이 나들이 가자! 해당화가 정말 예뻐! 어? 의아네?"
때마침 방문이 열리며 사마휘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마당에서 흙장난을 쳤는지 손이며 옷이며 모두 진흙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새 시녀 습관이 베어버린 문화는 지저분해진 사마휘의 모습을 보자 저걸 깨끗이 씻길 생각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아휴. 강사님. 그런 걸 가지고 노시면 안 된다니까요."
"헤헤. 미안."
속앓이를 하는 문화와는 달리 사마휘는 많이 밝아져 있었다. 원래 천성적으로 밝은 성격이기도 했지만 매일 반복되는 사마의와의 관계에서 이제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대신 문화가 고통 받기는 했지만, 그 빈도는 많이 줄은 상태였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문화가 사마의에게 개처럼 다뤄지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나마 평소에는 시녀 대접을 해주기라도 하지만 사마휘를 안을 때면 그의 성격은 무척 난폭해졌다. 때문에 그녀의 엉덩이에는 붓기가 빠질 날이 없었다.
"좋아 보이시는군요."
사마의가 인사를 하자 사마휘는 조금 주춤하면서도 작게 웃어주었다.
"으응. 의아는?"
"저도 괜찮습니다. 이번에 어머니와 함께 나들이를 가려고 하는데... 어떠신지요? 물론 문화도 함께입니다."
그의 말에 사마휘는 신이 나서 폴짝 폴짝 뛰었다.
"와아! 정말? 멀리 가는 거야?"
"물론입니다."
"좋아, 좋아!"
전쟁을 나들이로 둔갑시켜 버리는 사마의의 새빨간 거짓말에 문화는 속으로 고소를 금치 못했다. 매일 갇혀 지내는 사마휘에게는 나들이라고 해봤자 자신과 넓은 마당을 산책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사마의가 직접 먼 곳까지 구경시켜준다고 하니 그녀에게는 이 이상 신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피와 살점이 튀기는 전쟁이라는 것은 꿈에도 모를 테지만...
사마의는 사마휘에게서 시선을 돌려 문화에게 고정시켰다.
"왜 어머니와 널 데려가냐고 물었나?"
"그, 그렇습니다."
찌르는 듯한 시선에 문화를 말을 더듬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사마의가 기세를 일으킬 때면 연약한 그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어?"
사마의는 옆에서 혼자 들떠 쫑알거리는 사마휘를 낚아채 품 안에 끌어안았다. 그러더니 그녀의 품속에 불쑥 손을 집어넣었다.
"아앙..."
자신을 안은 사마의의 손이 젖가슴을 주물럭대자 사마휘는 코 먹은 소리를 내며 스스로 앞섶을 풀어 헤쳤다. 그러자 젖가리개를 하지 않은 풍염한 유백색 젖무덤이 출렁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일체 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성교의 쾌락을 확실히 체감하게 된 사마휘에게는 이것은 그저 기분 좋은 놀이일 뿐이었다.
사마의는 그녀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고 말했다.
"이것이 그 이유지. 어머니는 내 것이다. 조금이라도 나와 떨어져서는 안돼. 그렇지 않습니까?"
"으응... 난 의아꺼야."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사마휘는 사마의를 끌어안고는 몸을 비비적거렸다. 벌을 받을 때를 제외하면 사마의는 누구보다도 그녀에게 다정했다. 문화는 그 모습을 보며 소름이 끼쳤다.
'두 개의 가면을 쓴 악마...'
"넌 어머니의 시녀로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너도 데려가는 것이니까.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막사에서는... 나오지 마라. 어머니가 잔인한 광경을 보면 안 되지 않겠나."
'될 수 있으면'이라고 말할 때 사마의는 싸늘한 안광을 흩뿌렸다. 문화는 그것이 '결코'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아들었으면 난 이만 가도록 하지."
"의아. 가는 거야?"
"나들이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알았어."
사마휘는 멋모르고 손까지 흔들어 주었다. 사마의는 방문 옆에 석상처럼 서 있는 문화를 스쳐지나가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내 말 명심하도록. 네 몸을 원하는 발정난 수캐들은 많다. 단지... 네가 어머니의 시녀라 가만 놔두는 것일 뿐. 이것마저도 못하면 넌 효용가치가 없어."
부르르.
문화는 마치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은 그 소리에 풍이라도 걸린 듯 몸을 떨었다. 사마의에 대한 공포는 이미 그녀의 영혼까지 잠식해 버렸다.
"응? 뭐라고 했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싱긋 웃어 보인 사마의가 방을 나가자, 다리에 힘이 풀린 문화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영문을 모르는 사마휘만이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이게 열흘 전의 일이었다. 문화는 사마휘가 목이 마르다고 칭얼대는 탓에 물을 길으러 가는 와중에, 문득 저 멀리 진을 친 조조군의 진영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찌를 듯 높게 뻗어있는 태산은 과연 중원오악(中原五嶽) 중 으뜸이라 할 만 했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희뿌연 것에 가려진 천주봉(天柱峰)은 신선계에 있는 존재인마냥 오연히 인세를 굽어보고 있었다.
"하아..."
문화는 왠지 태산이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옛날 진시황(秦始皇)이 천하를 통일하고 봉선의식을 거행했던 성스러운 곳이 바로 태산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앞마당이 치열한 전쟁터가 되었으니 태산에 마음이 있다면 그 심정이 오죽할까. 몸이라도 일으켜 아귀처럼 싸워대는 인간들을 모두 떨쳐내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구나..."
비록 작은 세력이었지만 당당한 한 세력의 군사였던 자신이다. 그런데 지금은 시녀도 모자라 밤이 되면 암캐 취급을 받는 신세. 그나마 사마휘가 없었다면 치욕을 견디지 못하고 혀라도 깨물었을 것이다.
문화는 자신의 신세와 태산의 처지가 무척 비슷해 보였다.
둥! 둥! 둥!
"우와아아아아!"
"아 참. 물을 길어야지."
한창 상념에 젖어있던 그녀는 태산 일대를 울리는 커다란 북소리와, 땅을 울려 지진이라도 일으킬 것 같은 함성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다시 전쟁이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조조군이 이길 수 있을까?"
지금은 시녀라고 해도 군사를 지냈던 몸. 자연히 전쟁의 승패를 가늠하는 버릇이 있었다. 문화는 산성(山城)을 만들어 사마의의 대군과 맞서는 조조군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리 봐도 힘들어 보였다. 설령 자신이 조조군의 군사라 할지라도 이 엄청난 수의 차이를 감당해 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5만도 안되는 병력 대 8만이다. 조조군은 평원성을 점거하는 데 실패하여 사기가 바닥일 뿐만 아니라 무척 지친 상태. 그에 비해 사마의의 8만 대군은 진류와 복양을 거의 무혈입성하는 데 성공하여 사기충천(士氣衝天)한 상태였다. 군대의 질은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거의 승패가 갈렸다고 봐야했다.
"조조군은 지면 바로 멸망이니까... 필사적으로 싸우겠지만."
그나마 조조군이 유리한 점은 악에 받친 상황과, 산지에 있어 지형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이었다. 적들은 올라와야 되지만 조조군은 아래로 찌르면 되니까.
사마의의 진영에 있었지만 문화는 한편으로 조조군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 때 그녀의 머리에 어떤 생각이 얼핏 스쳐지나갔다.
"가만, 지금 저 산에다가... 핫!"
문화는 입을 틀어막으며 헛바람을 들이마셨다.
"아니야...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태산에... 아니, 아니... 그 자라면... 혹시 몰라... 기우일 거야..."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부정하려 애쓰며 가져온 수통에 물을 한가득 채워 넣었다. 어차피 전쟁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았다. 자신은 일개 시녀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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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력도는 다음편에 업뎃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짤방은 가후 재탕. "크아아압!"
하후돈은 목이 쉴 정도로 기합을 지르며 의천검을 사방팔방 휘두르고 있었다. 날카로운 예기가 섬전처럼 번뜩일 때마다 어김없이 적병들의 구슬픈 비명이 울려 퍼졌다.
태산 밑자락에 임시로 산성을 만들긴 했지만 말만 산성이었지 사실은 울타리나 다름없었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기 때문이었다. 하후돈은 허술한 성벽 주위를 뛰어다니며 무아지경으로 적병들을 베어내고 있었다.
"적장이다! 대장군 하후돈이 여기 있다!"
적병들 틈에서 누군가가 하후돈을 알아보고 크게 소리쳤다.
"크으."
하후돈은 흉흉한 눈빛을 빛내며 자기에게로 몰려드는 병사들을 보며 낮은 신음을 토했다. 어차피 진다고 생각하는 전쟁은 아닐 터, 그렇다면 자신을 잡아 팔자를 고쳐보려는 탐욕스러움에 나섰을 것이다.
그는 의천검을 선두에 있는 병사들에게 내뻗으며 성난 사자처럼 소리쳤다.
"오너라! 내가 바로 하후원양이다!"
산중을 커다랗게 울리는 그의 위맹한 기세에 병사들은 감히 다가서지 못했다. 과연 조조군 산하 맹장들을 부렸던 대장군다운 기백이었다.
"과연 만부부당(萬夫不當)의 기세. 정말 대장군이라 할만 하군."
하후돈의 기세에 짓눌려 얼어버린 병사들 사이를 가르며 나타난 자는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릴 정도로 커다란 대부(大斧)를 든 자였다. 키도 거의 9척에 가까워 주변에 수많은 병사들이 있었음에도 확 눈에 띄는 자였다.
하후돈은 심상치 않은 거한이 등장하자 스산한 살기를 피워 올렸다. 수많은 전장을 전전하며 갈무리된 살기는 약골이라면 심장이 대번에 오그라들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그러나 거한은 여유만만이었다.
"네 놈은 누구냐? 사마의의 휘하에 너 같은 놈이 있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는 처음 보는 거한의 등장에 살짝 동요하고 있었다. 사마의의 장수들은 원래 그의 아래에 있던 장수들. 그가 모를 리가 없었는데, 거한과는 분명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나는 서황 공명이오. 거, 초면에 이놈 저놈이라니. 실례 아니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유들거리는 서황이었다. 하후돈은 얼굴을 굳힌 채 의천검을 겨누었다.
"문답무용!"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오!"
까앙!
하후돈이 달려들자 서황은 커다란 대부를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휘둘러 도끼면으로 그의 공격을 막아냈다.
"명검이로군! 소문으로만 듣던 의천인가!"
"마지막으로 보는 명검일 테니 똑똑히 새겨두어라!"
"그럴 자신이 있다면!"
하후돈은 서황과 될 수 있으면 오래 어울릴 생각이었다. 그는 사마의 진영에는 이렇게 뛰어난 장수가 많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뒤를 허저와 전위에게 맡길 요량이었다. 이기진 못해도 오랫동안 시간은 끌 수 있으리라.
두 장수는 무기는 요란한 쇳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부딪칠 때마다 서황의 대부는 이가 나갔지만, 워낙 큰 도끼라 별로 티는 나지 않았다.
"큿!"
번개처럼 움직인 의천검이 도끼자루를 쥔 손등을 얕게 베고 지나가자 서황은 흠칫했다.
"맛은 없군. 큭큭."
손등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혀로 핥은 서황은, 직접 보지 않았다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신력을 발휘해 거대한 도끼를 한 팔로 휘둘렀다.
부아아앙!
저 흉폭한 도끼날에 맞부딪친다면 단숨에 가루가 될 것은 자명한 일! 하후돈은 굳이 맞서지 않고 몸을 피했다. 위력이 큰 만큼 공격이 빗나갔을 때의 허점이 크게 남는 일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서황은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다. 오른손으로 도끼를 휘둘러 옆에 공백이 생기자, 왼손으로는 허리춤에 달려 있던 작은 손도끼를 빼들어 하후돈에게 던졌다. 마침 하후돈은 그의 허점을 놓치지 않고 공격을 하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손도끼가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자 하후돈은 의천검의 검집을 들어 그것을 막아냈다.
"윽...!"
하지만 예상외로 손도끼에는 엄청난 힘이 실려 있었다. 의천검의 방향을 틀지 않기 위해 검집으로 그것을 막아냈던 하후돈은 가벼운 충격에 잠시 주춤했다.
서황은 그 순간 눈을 빛내며 도끼를 휘두르느라 옆으로 돌아간 상체를 반대편으로 돌리며 다시금 도끼를 휘둘렀다. 서황의 괴력에다 도끼의 무지막지한 중량, 회전력까지 더해진 그 일격은 천하의 그 누가 와도 막지 못할 것 같았다.
회심의 일격을 날린 서황은 하후돈의 허리가 베어져 나갈 것임을 의심치 않았다.
"끝이다!"
옆에서 휘둘러지는 거대한 도끼날을 본 하후돈은 이를 악물었다. 대충 거리를 잰 그는 거의 직각에 가깝게 허리를 뒤로 꺾었다.
부앙!
서황의 대부는 몸을 뒤로 꺾은 하후돈의 배 부분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며 아쉽다는 듯 애꿎은 허공만 베어버렸다.
공격이 실패한 걸 깨달은 서황이 뭐라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그 순간 튕기듯 몸을 일으킨 하후돈은 몸의 반동을 이용해 서황의 가슴을 어깨로 들이받았다.
우직!
"컥!"
강인하게 단련된 몸을 지닌 하후돈의 체중을 실은 어깨 공격에 서황은 숨막힌 신음을 터뜨리며 비척비척 뒤로 물러섰다. 하후돈이 몸을 숙이고 있었기에 옆구리 쪽에 공격을 허용한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것이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 같았다.
"크으으으... 설마 몸으로 들이받을 줄이야... 갈비가 두어 개는 나간 것 같군..."
몸집의 차이가 확연한데도 불구하고 몸싸움을 벌일 줄은 예상치 못한 서황이었다. 하후돈은 차가운 눈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말이 많구나. 이제 순순히 목을 내밀어라."
서황은 뒤로 물러섰다.
"그럴 순 없지! 적장은 지쳤다! 머릿수로 밀어 버려라!"
"노옴!"
병사들을 방패막이로 삼는 그의 행동에 하후돈은 의천검을 날려 서황의 숨통을 끊어놓고자 했지만 구름처럼 달려드는 수많은 병사들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틈에 몸을 빼낸 서황은 부상 중에도 크게 소리쳤다.
"대장군의 실력은 잘 보았소! 하지만 아군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님을 알아야 할 것이오!"
"뭐라는 거냐!"
하후돈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디선가 빛살처럼 화살이 쏘아져왔다.
쌔액! 푹!
"으으윽!"
반사적으로 왼팔을 들어 막기는 했지만, 화살이 담긴 힘이 어지나 강력한지 철로 만든 완갑(腕鉀)마저 뚫어 버리고 팔뚝에 박혀 버렸다. 인두로 지진 듯 밀려오는 고통에 하후돈은 신음하며 화살이 날아온 쪽을 쳐다보았다.
병사들에게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와 비슷한 연배의 장수가 활대에 재차 시위를 매기고 있는 것이 똑똑하게 보였다.
하후돈은 그 자의 정체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
"네 놈은... 서량의 방덕?"
마등의 수하로 활과 창, 검 등 다방면에 능한 무예를 갖추고 있는 장수가 바로 방덕이었다.
'동탁이 무위를 평정할 때 살아남은 마등군의 장수도 아무도 없다고 들었거늘... 어떻게 방덕이 이곳에 있는 거지?'
마등을 멸망시킬 때 지휘를 하던 자가 이유, 즉 방통이었고 방통이 방덕을 사마의에게로 빼돌린 것을 하후돈이 알 리가 없었다.
그는 다시 날아오는 방덕의 화살을 간신히 피해냈다.
"방덕! 군주의 뒤를 따르지 않았더냐!"
방덕은 자조어린 얼굴이었다.
"하늘은 아무래도 내가 조금 더 살길 바라는 모양이더군. 하후 장군, 실로 유감스럽지만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안 이상 죽어줘야겠소. 아마... 조조는 살아서 태산을 벗어나지 못할 거요."
"뭣이?"
방덕은 조금 망설이는 듯 했지만 이내 하후돈에게 지금 태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옛정을 생각해 조금 말해주도록 하겠소. 주군께서는 이미 이곳을 조조의 무덤으로 정하셨소. 감히 여자의 몸으로 황제를 꿈꾸던 조조에게 어울리는 곳이라면서 말이오. 아마 당신들은 공손찬의 구원병들을 기다리고 있을 거요. 그렇지 않소?"
"...그렇다."
"당신들을 물러나게 했던 원소의 6만 지원병은 사실 이미 중간에 오던 길에 방향을 남피로 튼 상태였소. 애초에 거짓 정보가 흘러가게 할 목적으로 평원방향으로 출발했던 것일 뿐, 실질적인 목적은 공손찬에게 공격받던 남피였지. 지금은 공손찬지의 차지가 되었다고 하던데, 또 모를 일이오. 공손찬이 6만 대군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원소가 다시 남피를 수복하게 될 터이고."
하후돈은 방덕의 말을 듣고 헛웃음이 났다. 그 말은 평원에서 후퇴하지 않고 계속 공격했으면 평원을 차지할 수 있었다는 말이 아닌가. 조조군의 다급한 심리를 정확하게 찌른 허보에 완벽하게 당해버렸다.
방덕은 이제 활을 버리고 언월도를 잡았다. 왼팔을 못쓰게 된 하후돈을 확실히 끝장낼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런 고로 당신들에게 원군은 없다는 소리요. 이만 포기하시오. 아, 시작했나 보군."
"불이다!"
방덕이 한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자연히 그 쪽을 바라본 하후돈의 안색이 일변했다. 커다란 불길이 조조군의 진지에서 치솟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마의의 군사들은 마치 토끼몰이를 하듯 조조군을 불길 속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타죽는 병사들의 십 중 팔은 조조군이었다.
하후돈은 멍하니 태산에 치솟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태, 태산에 불을 지르다니! 제정신인가!"
방덕은 피식 웃었다.
"여제(女帝)의 야망을 통째로 불태워 버리기에는 이만한 것도 없지 않소? 걱정 마시오. 불길이 번지지 않게 조절은 잘 할 것이니. 조조의 진지만 잿더미로 만들고 꺼질 불이오. 아무래도 보는 눈이 있으니까..."
하후돈은 방덕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탐욕스럽게 일렁이는 붉은 화마만이 비춰지고 있었다.
그냥 이름 없는 산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설마 태산에 화공을 쓸까 생각하여 진을 쳤던 것인데 사마의는 가볍게 상식을 무너뜨리는 공격을 해버렸다. 게다가 서황, 방덕 같은 쟁쟁한 무장들... 이들만 있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자신이 이런데 허저와 전위는 어찌되었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도대체...'
사마의는 어디까지 준비를 해왔단 말인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부처님 손바닥의 손오공처럼 빠져나올 수 없는 올가미에 걸린 것 같았다. 하후돈은 으스러져라 주먹을 쥐었다.
'주군을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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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의 혼자 한게 아니죠. 아주 오래 전부터~ 방통과 머리를 짜내고 짜내서 만든 천하대계인 것입니다. ㅇㅇ;
근데 중요한건 주인공은 아무래도 아직까지 시상에 있을듯 하다는..
짤방은 세력도 입니다. "하후돈! 등을 보이다니!"
설마 그 강직한 하후돈이 도망을 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방덕은 황망히 그의 뒤를 쫓았다. 그러나 이미 하후돈은 병사들 사이로 사라져버린 뒤였다.
하후돈은 걸리적거리는 병사들을 온몸으로 밀치며 조조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조조는 보이지 않았다. 오직 불길을 두려워해 도망치는 병사들과, 그들을 다시 화마 속으로 밀어 넣는 적병들만이 보일 뿐이었다.
"주구운-! 어디계십니까아--!"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그는 목청껏 소리 질렀지만, 그것은 오히려 적병들의 시선을 끄는 역효과를 가져왔다.
"적장이다!"
"포위해라!"
다시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하후돈은 처절하게 검을 휘둘렀다.
"꺼지란 말이다아앗!"
"으아아악--!"
거대한 분노가 담긴 하후돈의 의천검은 일반 병사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성난 해일처럼 퍼부어지는 그의 공세에 사마의의 병사들은 썩은 짚단마냥 베어지고 있었다. 가히 파죽지세. 그러나 전장의 광기에 휩쓸린 병사들은 두려움이란 감정이 결여된 듯 했다. 동료가 옆에서 죽어나가도, 팔이 잘려도 계속해서 달려드는 아귀 같은 모습에 하후돈은 점점 지쳐갔다.
"허억, 헉...!"
지금은 한여름이다. 찌는 듯한 더위에 불길 속에서 무거운 갑옷을 입고 장시간을 검을 휘두르니 강철 같은 체력을 지닌 그라도 도저히 배겨내질 못했다.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그나마 서황이나 방덕을 다시 만나지 않은 게 천운이었다.
"죽으란 말이다...!"
체력이 바닥나 버려 이제 그를 움직이는 것은 오직 정신력이었다.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그러나 적들은 아직도 끊임이 없었다.
"하후돈이 지쳤다! 잡을 수 있어!"
"놈의 목은 내꺼다!"
사람의 몸을 갑옷째로 무 썰 듯 하는 의천검의 위력에 조금 주눅이 들어있던 병사들은 하후돈의 움직임이 급격히 느려지자 다시 기세가 살아났다. 족히 수십, 수백은 벤 것 같은데도 병사들의 얼굴에는 공포 대신 탐욕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후돈을 잡으면 인생이 피는 것이다!
"크읏...!"
이젠 일반병들의 공격에도 힘에 부쳐하는 그가 암담한 눈을 할 때, 가까이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켜서라!"
서황의 대부만큼이나 무거워 보이는 커다란 도를 휘두르는 호한, 허저가 나타난 것이다. 하후돈은 허저를 만나자 눈을 비볐다. 불 때문에 눈이 너무 따가웠다.
"허, 허저... 주군은 무사하신가...?"
"일단 안으로 가십시다! 장군 먼저 죽겠습니다!"
허저는 적진 한복판에 있던 하후돈을 부축하여 조조의 진영으로 데리고 왔다. 이미 오면서 길을 뚫어 놨기 때문에 퇴로를 확보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아군의 진영으로 왔다고는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절망적이었다. 병력의 삼 할은 불을 끄는 데 급급했기 때문에 제대로 전투를 할 수가 없었다.
"하후돈."
"주군..."
조조의 무사한 모습을 보자 하후돈은 그 동안 자신을 지탱해왔던 힘이 한꺼번에 풀리는 것을 느꼈다.
털썩 쓰러지는 그를 보자 허저가 다급히 맥을 짚었다. 다행히 죽은 것은 아니었다.
"하후돈은 어떻지?"
"안도감에 가볍게 기절하신 것뿐입니다. 왼팔에 화살을 맞은 채로 적진 한복판에서 그토록 격렬하게 싸우시다니... 주군에 대한 걱정이 대단하셨나 봅니다."
하후돈의 상세가 생각보다 가볍다는 것을 알자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내 오른팔이니까."
허저는 수긍하며 일어섰다. 사실 그도 조조의 안위를 확인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하후돈과 마찬가지로 조조를 찾아 혈로를 뚫다가 아군 병사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에 온 것인데, 거기에 조조가 있었다.
"주군. 그런데 어떻게 그 수라장에서 빠져나오셨습니까? 전위는...?"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다. 태산을 빠져나가야 한다. 병력을 모아라."
"예? 옛!"
허저는 조조의 명령대로 주위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병사들을 규합했다. 그래도 도망칠 곳이 많은 산 속이라 불에 타죽은 자는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잔여 병력을 모은 허저는 조조의 지휘에 따라 후방의 불길을 피해 전방으로 돌격했다.
"퇴로를 뚫어라!"
"와아아아--!"
조조의 앞에서 돌격하던 허저는 전방에 넓게 펼쳐져 싸우고 있는 아군 병력들을 보았다. 그곳에는 전위와 함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장수가 적병들을 휩쓸고 있었다.
"관우?!"
그의 외침을 들었는지,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맹위를 떨치던 관우가 허저를 돌아보며 웃어보였다.
"오랜만일세. 제갈 군사의 말에 따라 원군을 이끌고 왔네."
"오오..."
관우를 보자 허저는 온 몸에서 힘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여포를 제외하면 가히 대륙최강이라 할 수 있는 무장이 원군을 이끌고 온 것이다. 비록 전황이 호전되고 있지 않은 것을 보면 큰 병력은 아니겠으나, 관우는 함께 싸우는 것만으로도 아군의 사기를 최고조로 올려놓을 수 있는 명장이었다.
조조를 아수라장에서 구출한 것도 그이리라.
허저는 관우의 옆에 붙으며 물었다.
"병력을 얼마나 끌고 오신 겁니까?"
"2만 일세."
관우의 말을 들은 그는 생각보다 적은 병력에 실망했다. 사마의는 자그마치 8만 대군을 이끌고 왔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화공에 당해 상당수의 병력이 와해되었고, 관우의 원군을 합친다 해도 5~6만에 불과했다. 여전히 수적인 차이는 사마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때, 적병들 사이가 갈라지며 적장들도 최전선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관우, 전위, 허저 등이 가담한 탓에 전선이 뒤로 밀리는 게 신경 쓰였던 모양이었다.
방덕, 서황, 악진이 말을 타고 나왔고 마지막에는 군세장이자 군주인 사마의까지 좀처럼 보이지 않던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의 여유로운 모습을 본 전위가 이를 갈아붙이며 소리쳤다.
"이 개 같은 후레자식! 드디어 그 역겨운 면상을 드러내는구나!"
그의 욕설에 악진과 서황이 불쾌한 기색을 내보였다.
"산도적 같이 생긴 놈답게 입이 걸구나. 도끼맛 좀 보려느냐?"
"오냐. 보아하니 몸도 성치 않은 것 같은데 잘도 주절대는구나! 덤벼라!"
차캉!
서황과 전위는 만나자마자 서로 욕설을 퍼부으며 일기토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에게서 시선을 뗀 사마의는 마치 예상했다는 듯 관우를 보며 미소 지었다.
"관운장께서 납시었군. 소패를 점령할 때 조조와 유비의 밀월관계는 이미 만천하에 들통이 났는데, 이렇게 은밀하게 원군을 움직일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소?"
"허허. 과연 중원의 한복판을 호령하는 젊은 군주답군. 마치 내 아우를 보는 것 같소."
"아우? 천하의 신장에게도 아우가 있었나?"
사마의가 슬며시 미간을 좁히며 묻자 관우는 청룡도를 어깨에 걸쳤다.
"강동의 별 모용환. 그가 내 하나뿐인 의제네."
왠지 비교하는 듯한 말에 사마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강동 지방에서 용이 났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는 않던 이름이었다.
"세상에 나 같은 자는 오직 하나일 수밖에 없소. 왜냐면 내가 천하를 지배할 테니."
"젊은 패기만큼 실력도 따르길 바라겠네."
"서운하지는 않을 것이오!"
사마의는 여포와의 대결 이후 무력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그가 가진 무력은 절대 천하에 이름난 무장들과 비교해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을 능가하는 면이 있었다.
게다가 최고의 명검까지 얻었다. 낙양을 재건하면서 황실 비고에서 얻은 물건, 칠성검(七星劍)이 그것이었다. 원래는 사도 왕윤이 황제에게 하사받아 가지고 있다가 황족 몰살 때 왕윤이 죽으면서 행방을 알 수 없다고 알려진 명검이었다.
"대단하군!"
"명불허전!"
사마의와 관우는 서로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관우는 얇은 검으로 팔십근이 넘는 자신의 청룡도를 수월하게 받아내는 사마의의 손목 힘에 놀랐고, 사마의는 충돌할 때마다 손목을 찌릿찌릿하게 울리는 관우의 일격에 경탄했다.
과연 신장이라는 이름이 어울릴만한 장수였다. 과연 천하에 몇 사람이나 이 청룡도의 참격을 받아낼 수 있겠는가.
그것은 사마의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는 몇 합 부딪치고 나서는 관우와 무기를 맞대는 것을 피했다.
관우는 민첩하게 자신의 일격을 피해내는 사마의를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싸움을 할 줄 아는군."
"칭찬으로 듣겠소."
호승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지칠 때를 기다린다. 조조를 구해내느라 상당히 힘을 쓴데다가 이 더위에 온종일 움직였으니 상당히 체력이 떨어져 있었다. 사마의는 영악하게도 그 점을 간파하고 피하기만 하는 것이다.
어차피 시간을 끌수록 숫자가 많은 그의 군대가 유리했다. 그로서는 괜히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없었다.
사마의는 관우에게 비릿한 조소를 날렸다.
"이곳이 평원이라는 게 당신들에게는 재앙이 될 거요. 이미 어느 정도의 지원이 올 것은 예상한 일. 하지만 섣불리 대군을 뺄 수는 없었을 테지. 2만 정도라면 북풍 앞에서 손바닥으로 촛불을 가리는 격이오."
그나마 산 속에서 싸우던 지리적 이점마저 없어져 버렸다. 같은 수의 맹장, 비슷한 병사들을 가진 두 세력이 이런 평원에서 싸운다면 당연히 수가 많은 쪽이 훨씬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사마의의 말이 맞았다.
"그렇군. 헌데 자네, 우리 군사와 안면이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관우가 격렬한 전투 중에 뜬금없는 말을 꺼내자 사마의는 그 저의가 궁금했다.
"무슨 소리요?"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 군사는 자네를 아는데 자네는 군사를 모르지.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알게 될 일, 미리 알려주도록 하겠네. 아군에는 두 명의 군사가 있는데, 그 중 한사람의 이름은 제갈량이라고 하네. 자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더군."
"뭣?!"
사마의는 잠시 몸이 굳어버려 하마터면 청룡도에 목이 날아갈 뻔 했다. 급히 몸을 숙여 송장신세를 면한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관우를 쳐다보았다.
제갈량이 원소와 원술 휘하에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원술이 멸망하고부터 도통 행방을 알 수 없던 그녀가 유비군에 있었다니. 사마의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은 유비군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제갈량이 철저히 자신에 대한 정보를 차단했기 때문이었다.
"제갈량이라고!"
"이건 첫인사라고 생각해 두게."
관우의 시선이 격전장의 서쪽, 넓게 펼쳐진 평원쪽으로 향하자 사마의는 자기도 모르게 그 쪽을 바라보았다.
"......!"
그의 몸이 흠칫 떨려왔다. 지축을 뒤흔들며 밀려오는 은빛의 물결. 족히 수천은 되어 보이는 은색의 기마대가 폭풍처럼 평원을 가득 메우며 달려오고 있었다. 자욱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인마(人馬)의 무게가 어찌나 무거운지 지진이 일어난 듯 했다.
언제나 침착하던 사마의는 그답지 않게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저, 저건..."
"철갑기마대라네. 개설 된지 반년 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허허, 태 부대장이 신났군."
은색 기마대의 선두에는 머리를 거칠게 휘날리는 태사자가 창을 붕붕 돌리며 말을 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낭랑한 외침이 태산 평원에 크게 울려 퍼졌다.
"아하하하핫! 다 쓸어 버려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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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병기 등장. 짤방은 철갑기마대를 훈련시키느라 고생한 우리 태사자양 태사자의 성은 태로 하기로 합의 봤었죠 ? 두두두두두!
서쪽 평원에서부터 쐐기형태로 밀고 들어온 철갑기마대는 사마의군의 좌군을 시작으로 중군, 우군까지 군대의 허리를 완전히 관통해 버렸다.
"크아아악! 괴, 괴물들이다!"
"칼이 안 박혀!"
"으아아아!"
전세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사마의의 군대는 화살도, 창도, 검도 통하지 않는 무지막지한 철갑기병들을 보자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저 엄청난 무게의 군마에 짓밟히면 살이고 뼈고 할 것 없이 모두 가루가 되어버리는 것을 잘 아는데, 누가 나서겠는가.
"이럴 수가...?"
겨우 5천의 기마병이 8만의 대군을 파죽지세로 유린하는 광경에 사마의는 넋을 잃었다.
기병의 가속도는 엄청나다. 거기에 철갑까지 덧씌워져 무기까지 잘 통하지 않는데다 무게 때문에 불안정한 기수의 자세는 등자가 보완해주는 것이다.
추행진의 형태로 쐐기모양을 이룬 철갑기병대의 돌파력. 물론 그 자체의 돌파력도 어마어마하지만 수많은 병사들이 몸으로 가로막다 보면 속도가 줄게 마련이고, 결국에는 멈춰 서게 되는데, 그럴 경우에 기수는 살아남기 힘들게 된다. 특히 개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유비군의 철갑기마대는 마상 전투술 보다는 돌격진형을 훈련하는데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에 그런 약점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선봉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돌파력을 극대화한 유비군의 철갑기마대, 쐐기의 꼭짓점에 자리한 선봉! 어지간한 무장이 아니고서는 그 돌파력을 살릴 수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천하에서 손꼽히는 무위를 지니고 최고의 기마술을 가진 태사자는 훌륭한 부대장이라 할 수 있었다.
"하하하! 모두 비켜엇!"
태사자는 하얀 백마위에 탄 채 마음껏 무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 동안 모용환의 부탁으로 철갑기마대를 훈련시키느라 얼마나 힘들었던가. 더군다나 이 여름에. 그것이 지금 이 순간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창술은 조운의 그것과 많이 닮아있었다. 수많은 대련을 통해 어느새 서로의 장점을 취한 것이었는데, 조운이 보다 방어적인 창술을 구사하다면 태사자는 극히 공격적인 자신의 창술에 조운의 방어적인 면을 가미했다.
어쨌거나 태사자가 휘두르는 창의 위력은 가히 일절(一節)이라 할 만 했다.
철갑기마대가 보여주는 일방적인 학살에 사마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런 보고는 어디에도 없었는데... 2만의 병사와 5천의 기병. 그게 전부가 아니었던가...?"
이미 사전에 관우의 원병이 출발한 것은 그도 알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병력 구성어디에도 지금같이 파괴적인 힘을 보여주는 철갑기마대에 대한 사실은 없었다.
"자네의 심정은 이해가 가네만... 생각해 보게. 누가 이 더위에 저런 철갑을 입고 행군할 수 있겠나? 저들의 마갑과 갑옷은 우리가 운반했네. 조금 늦어진 것은 갑옷을 갖춰 입느라 그랬던 것이지."
"......"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자네의 눈을 속이는 일이 되었네만."
관우의 대답을 들은 사마의는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언제나 모든 일을 계산 하에 놓던 그였지만 이런 일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제갈량이 있었다.
사마의는 전황을 살펴보았다. 하후돈에게 부상을 당한 서황은 전위에게 밀려 그의 공격을 막는데만 급급했고 방덕 역시 근접전의 조예는 허저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앞에는 아직 건재한 관우가 버티고 있다. 게다가 태사자까지 합류했으니...
"제갈량... 그 때 사창가로 보내버렸어야 했는데! 후퇴한다!"
그는 낮게 으르렁거리며 말머리를 돌렸다. 일이 틀어진 것을 안 이상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회군을 하려는 것이다.
관우는 그를 막지 않았다. 단 시간에 그와 싸워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었거니와 도망친다면 잡을 수도 없었다. 또 아직도 태산의 불길은 진화되지 않은 상태였으니. 이대로 계속 싸운다면 양측 모두 엄청난 피해를 입고 말 것이었다. 그것은 그도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약삭빠른 놈! 도망치는 거냐!"
"더 놀아주고 싶지만 퇴각명령이 떨어진 이상 어쩔 수 없지!"
전위는 도주하는 서황을 쫓는 것을 포기하고 관우가 있는 쪽으로 말을 돌렸다. 허저 역시 방덕을 놓치고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관우는 썰물처럼 일사분란하게 빠져나가는 사마의의 군대를 보고는 작게나마 감탄했다. 저리 수가 많은데도 저처럼 기강이 잘 잡혀 있는 군대를 만든 그의 능력이 얼핏 짐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상황을 훑어보며 말했다.
"대충 정리된 것 같네."
"그러게 말입니다."
서황을 놓친 것이 아직 분한지 전위는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 때 물러나는 사마의군의 후미를 한창 휘젓고 온 태사자가 투구를 벗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더워 죽는 줄 알았네. 아주버님, 제가 좀 늦었죠?"
태사자를 익히 알고 있던 허저와 전위는 그녀가 관우를 '아주버님'이라 부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주버님...?"
전위가 눈을 끔벅이자 관우는 껄껄 웃었다.
"하하하. 태 부대장은 내 의제의 부인이라네. 몰랐는가?"
태사자는 씨익 미소 지었다.
"아이, 제수씨라고 불러주시라니까요."
말을 타고 병사들을 도살하던 무서운 태사자는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단지 아주버님에게 아양을 떠는 어여쁜 여인네만이 있을 뿐이었다. 모용환에게도 좀처럼 애교를 부리지 않는 그녀가 관우를 이리 대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량아. 그 불여우가 나 없는 사이에 환랑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몰라. 혹시 제자 녀석도...? 보통 영악한 녀석이 아니니까... 흥, 백날 잘 보여 보라구. 난 아주버님에게 점수를 딸 테니까.'
전포를 만들 때 대교와 소교가 모용환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밝혔기 때문에, 태사자는 자기가 없는 사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몰라 항상 불안했다. 또, 밤에는 여우로 돌변하는 제갈량도 있지 않은가. 천성이 물러터진 조운은 이미 저 뒷전이었다.
관우는 태사자가 몸을 배배꼬자 헛기침을 했다.
"헛흠... 그, 그게 입에 잘 붙지 않는구만. 노력하도록 하겠네."
"어머, 너무 무리하시진 마세요."
제수씨만 도대체 몇 명인지. 유비를 극진히 생각하는 그로서는 영 불편한 게 아니었다. 어떻게 된 게 태사자는 그렇다 쳐도 두 명의 군사인 주유와 제갈량도 제수씨라 불러줘야 하니.
흐뭇하게 웃은 태사자는 이내 전위와 허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안녕? 오랜만이야."
그녀는 그 둘과는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전위나 허저나 그녀가 유요 밑에 있을 때 사신의 호위장으로 많이 온 적이 있었다.
물론 전위, 허저도 태사자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그녀는 이렇게 남에게 애교를 부릴 성격이 전혀 아니었다. 그들은 메슥거리는 속을 꾹 눌러 참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래. 몇 년 만이지?"
"1년 좀 넘은 것 같은데 무슨 몇 년 씩이야?"
"하, 하하... 내가 착각을 했나 보군..."
그러나 전위는 허저처럼 어물쩍 넘어가는 요령을 지니지 못했다.
"너 태사자 맞냐? 뭐 잘못 먹었나? 네가 불여시처럼 아양 떠는 걸 보니 엊그제 먹은 산나물이 다 넘어오려고..."
"어? 저건 뭐지?"
갑자기 태사자가 화들짝 놀라며 그의 뒤쪽을 쳐다보자 자연히 전위는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아무 것도 없었다.
"엥? 아무 것도..."
퍽.
"커허억!"
창대 끝으로 배가 찔린 전위는 자칫 말에서 떨어질 뻔 했다. 간신히 낙마 위기를 모면한 전위는 숨이 막히는지 컥컥거렸다.
"아, 미안. 창을 돌리려다가."
정말 실수로 그랬는지 무척 미안한 얼굴을 하는 태사자를 보며 전위는 열불이 치솟았다.
"누가 너 같은 여자를 아내로 삼았는지 참 인생이 불쌍..."
딱.
"......"
골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이마를 강타당해 말 위에서 조용히 잠들어 버린 전위를 본 허저는 마른침을 삼켰다. 성격이 조금 이상해진 것 같지만 여전히 태사자는 태사자였다. 그래도 예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창술에 많은 발전이 있었던 것 같군. 지금은 나도 승부를 장담하지 못할 정도야.'
아무 것도 아닌 듯 보였지만 창대 끝으로 이마를 맞춰 기절만 시키는 기술은 고도로 정밀한 힘의 분배가 아니면 쓰기 힘든 기교였다. 조금만 약해도 상대는 극심한 고통만 느낄 테고, 조금만 강해도 이마가 깨질 테니까.
그렇게 태사자와 전위, 허저가 재회를 하고 있을 때 관우는 조조를 만나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조조님."
관우가 동맹세력의 수장을 대하는 예로 허리를 숙여 보이자 조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군."
"동맹을 맺었으니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헌데 하후돈이 보이지 않는군요...?"
"그는 많이 지쳤다."
죽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얼핏 관우의 눈에 안도감이 스쳐지나갔다. 하후돈은 이런 데서 죽기에는 너무 아까운 장수였다.
조조는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땅에는 여전히 화선지에 먹물이 번지듯 핏물이 흐르고 있는데, 치열한 전쟁이 벌어진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여름하늘은 푸르기만 했다.
"관우."
"예."
"본후에게 남은 것은 이제 나를 따르는 장수들과 북해, 소패, 하비의 3성 뿐이다."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무심한 어조였지만 관우는 그녀의 음성이 무척이나 쓸쓸한 감정을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비어있는 성들, 본후에겐 유지할 능력이 없다. 이제는 감히 제후를 칭할 수 없는 상태다. 나의 장수들을 받아준다면 그대의 주군에게 주도록 하겠다."
"......!"
"유비에게는 나에게 없는 무언가가 있어 그대와 같은 장수들이 따르는 것일 테지. 내가 얻고자 했으나 얻지 못했던 것, 그것을 그대의 주군은 가지고 있다."
백성들과 장수들이 유비를 따르는 이유. 그것은 사람을 감화(感化)시켜 진정으로 따르게 하는 능력이었다. 이미 마음이 죽어버린 조조로서는 얻을래야 얻을 수 없었던 것이기도 했다.
관우는 이상함을 느꼈다. 그녀의 말 어디에도 자기 자신이 포함된 것은 없었던 것이다. 장수들을 받아달라고 했지, 자신을 받아달라는 말은 없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조님께서는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설마..."
관우의 불길한 생각은 들어맞았다. 조조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받들 듯이 들고는 그것을 가녀린 목에 가져가 댔다.
"나 때문에 유비의 휘하에 들어가는 장수들이 흔들려서는 안 될 것이다. 이미 천의(天意)가 나를 원하지 않으니, 하늘이 버린 목숨이라 생각하겠다."
조조는 출정 전 이번 전략이 실패한다면 자결을 한다고 했었다. 그것은 결코 농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가 허언을 내뱉을 리 없었다.
칼날이 그녀의 목에 가까워지자 관우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조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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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게 마지막이고 내일, 내일 모래도 연재는 못할듯 합니다.
놀러가기 때문에... 2박으로.. "주군! 멈추십시오!"
관우의 외침과 거의 동시에 들려온 또 하나의 목소리. 조조는 칼날에 목이 살짝 베인 채로 고개를 돌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하후돈이었다. 다소 초췌해 보이는 그는 외눈에서 안광을 뿜어내며 관우에게 소리 질렀다.
"관 장군! 뭐하시오!"
"......!"
하후돈의 의도를 알아차린 관우는 재빨리 조조의 손목을 창대로 쳐서 칼을 떨어뜨렸다. 자살기도를 저지당한 조조는 입술을 벌리며 무어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
퍽.
하지만 관우는 그녀가 어떻게 반응하기도 전에 수도(手刀)로 조조의 뒷목을 내리쳐 기절 시켜버렸다. 무예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닌 조조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
묵묵히 다가온 하후돈은 조조의 창백한 목덜미에 살짝 맺힌 핏방울을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베였다기보다는 검날의 날카로운 예기에 피부가 상했을 뿐이어서 흉터는 남지 않을 듯 했다.
"고맙소."
"음... 자칫하면 큰일 날 뻔 했구려."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순간적으로 많이 긴장한 탓에 관우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하후돈은 조조의 피를 다 닦아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바로 달려 나왔소. 모든 것을 다 걸고 나온 이상, 패전을 한다면 주군의 성격상... 이러실 줄 짐작했소이다."
관우는 하후돈의 행색을 보고 이번 전투에서 그가 무척 고전했음을 알았다. 조금은 파리한 안색도 그렇고, 왼팔에 피 묻은 무명천을 감고 있는 것만 봐도 하후돈의 몸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을 느낀 하후돈은 조조에게서 시선을 떼고 일어섰다.
"전쟁의 승패는 어떻게 되었소?"
"사마의는 물러갔소만, 병사들의 피해가 큰 것 같더구려..."
결과적으로 보면 사마의가 물러났으니, 동맹군이 이겼다고 볼 수 있었지만 이제 2만 남짓 남은 조조군으로서는 이겨도 이긴 게 아니었다. 북해, 소패, 하비의 모든 수비 병력들을 합쳐도 1만이 겨우 될까 말까 한 정도. 3만의 병력으로 3개의 성을 지킨다? 어불성설이었다.
사실상 조조군은 이제 세력을 유지할 아무런 힘이 남아있지 않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후돈은 고소를 머금었다.
"주군이 하셨던 말씀, 다 들었소. 그런데 관 장군께서도 그리 말하는걸 보니... 아군의 피해가 막심했던 모양이구려."
관우는 그에게 어떤 위로의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세력이 거의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고, 주군까지 자살기도를 했던 마당에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한동안 말이 없던 하후돈은 문득 고개를 돌려 관우를 바라보았다.
"관 장군. 주군이 했던 제안, 내가 다시 제의하겠소."
"음?"
"국혼(國婚)을 전제로... 유비님의 밑으로 들어가겠소."
하후돈의 말에 관우는 당황했다. 느닷없이 국혼이라니? 국혼이라 함은 말 그대로 국가와 국가의 혈손끼리 혼인을 하는 것인데, 당사자인 조조와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은 유비군에 없었다. 유비는 부모와 일찍 사별하였고, 일가친척 하나 없었기 때문에 결혼적령기의 남자 형제는커녕 일점혈육조차 없었다.
이런 사실 때문에 관우는 하후돈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미안하지만 적당한 상대가..."
"있지 않소. 모용환, 그 사람 말이오."
"......"
"올해 스물넷으로 주군과 나이가 얼추 맞는 데다, 군단장을 역임 중이고 유비님과 미래를 약속한 그라면... 주군의 반려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오."
당혹스런 얼굴을 하는 관우를 보며 하후돈은 말을 이었다.
"관 장군의 심정은 이해하오. 유비님이 어렸을 때부터 옆에서 보살폈다고 들었으니. 그러니까 원술 같은 소인배의 휘하에도 있었던 거겠지요... 하지만 그 같은 젊은 영웅이 부인을 여럿 둔다고 흉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소? 일전에 보니 유비님 말고도 두 명이 더 있었던 것 같았는데..."
모용환은 제갈량, 조운, 태사자, 주유와 함께 허창에 들렸을 때 곽가, 하후돈과 대면했었다. 눈썰미가 예리한 하후돈은 대번에 태사자와 주유가 모용환과 연인사이인 것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물론 하후돈은 그 사이에 모용환과 관계를 가진 여인들이 몇 배로 늘었다는 것을 몰랐다.
"으음..."
관우로서도 이 사안은 무척 민감한 문제였다. 군주인 유비와 혼인을 약속한 모용환이 또 다른 군주인 조조와 혼인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각자의 주군을 따르는 파벌이 생겨나 내부에서부터 세력을 좀 먹게 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솔직한 심정으로는 유비를 위해서 별로 반기고 싶은 제안은 아니었다.
그가 고민하자, 하후돈은 엎드려서 이마를 땅에 대었다. 갑작스런 오체투지(五體投地)에 관우는 급하게 그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천하의 대장군 하후돈이 이게 무슨 추태요?! 어서 일어나시오!"
관우의 경악성에 하후돈은 여전히 엎드린 채로 말했다.
"주군을 위해서라면 이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소."
비장한 기운이 서려 있는 그의 말에 관우는 흠칫했다.
"관 장군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 잘 알고 있소. 하지만 주군은 이제 천하에 대한 뜻을 잃으셨소. 휘하 장수들이 유비님의 밑에 들어간 마당에 재기를 노리실 분은 절대 아니라는 것은 관 장군도 알 것이오. 나 또한 그런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의 어조가 점점 격해졌다.
"주군이 한 황실의 군주셨던 것은 아실 거요. 공주마마를 모친으로 두셨기에 유년기의 대부분을 황실에서 보내셨소. 그러다 황족들이 몰살당할 때, 바로 눈앞에서 양친이 악적들에게 참살당하셨소. 그 어린 나이에 주군의 심정이 어땠을 것 같소? 보통의 아이라면 울고불고 난리가 났을 테지요. 헌데 주군께서는 그 때 천하를 발아래에 두겠다고 양친의 시체 앞에서 맹세하셨소. 후후... 열다섯의 여아(女兒)가 눈을 부릅뜨고 그렇게 말했단 말이오. 그 분에게는 그럴 자격이 있었소. 유비님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낙양 황실에서 공식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은 주군밖에 없었으니까! 주군은 천하를 거머쥠으로써, 동탁을 쳐 없앰으로써 죽은 양친께 떳떳하고 싶어 하셨소."
하후돈은 측은한 눈길로 쓰러져 있는 조조를 응시했다.
"...하지만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소. 오욕칠정(五慾七情), 복수심, 심적인 고통... 그 모든 것을 제물삼아 타오르던 야망의 불길이 꺼져버린 것이오. 모든 게 물거품이 된 이상 철혈의 제후는 존재할 수 없소. 그러나... 난 조조 맹덕이라는 여자를 이대로 죽게 할 수가 없소. 당신이라면 내 심정을 알 것이오... 제발 주군을 살려주시오..."
조조를 살려 달라. 하후돈의 마지막 말은 애원에 가까웠다.
강철 같은 하후돈이 재차 이마를 땅에 박으며 조조의 목숨을 애걸하자 관우는 착잡한 심정이었다. 그 또한 유비를 위하는 마음에서 원술의 휘하에 들어가 온갖 궂은일을 하지 않았던가. 하후돈과 관우는 해왔던 일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같은 인생을 살아왔던 것이다.
"나 또한 그러고 싶지만 국혼을 한다고 하여 조조님께서 마음을 돌리실지... 게다가 내 권한으로 국혼을 주선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오. 난 일개 무장에 불과하니..."
"아니, 그렇지 않소. 주군의 성격이라면 자신의 혼인까지도 정치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오. 지나치게 이성적인 것이 주군의 흠이라면 흠이니까... 주군에게는 우리들의 보다 확실한 충성 서약을 받기 위해 혼례를 치른다고 하면 될 거요. 대신 어떤 정치적 개입도 못하도록 실권도 주지 않는다면 납득을 하실 테지요. 그리고 관 장군, 장군께서는 모용 공의 의형인데다 유비님의 대부(代父)나 다름없지 않소? 게다가 군단장이시니, 충분히 국혼을 주선할 자격이 되오."
평소 말이 그렇게 많지 않았던 하후돈은 안간힘을 다해서 관우를 설득하고 있었다. 청산유수로 흘러나오는 그의 언변에 관우는 서서히 넘어가고 있었다. 거기에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동지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물론 실질적 이득도 적지 않았다. 어차피 조조와 동맹을 맺으면서 사마의와의 적대 관계는 예상한 바였다. 전선이 조금 넓어진다고 문제될 것은 없었다. 북해, 소패, 하비의 3성이 주는 이점은 전선 확대로 인한 피해를 상쇄시키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 큰 소득은 하후돈, 전위, 허저, 조인과 같은 명장들과 순욱, 순유 등의 모사들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조조가 중원 한복판을 지배할 때부터 기라성 같은 무장들의 위에 실력으로 군림하여 '대장군'이라 불리는 하후돈과 용맹하기가 호랑이와 같은 전위, 허저의 합류는 유비군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었다.
단지 하나 걱정되는 것이 있다면 잠시 주춤한 원소의 세력과 정면으로 맞서게 되는 것이었다.
결국 관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후돈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말대로 하겠소."
"고맙소. 아니, 감사합니다. 장군."
하후돈이 갑자기 존대를 하자 관우는 헛기침을 했다.
"헛험. 갑자기 왜 그러시오? 대장군에게 존대를 받으니 부끄럽소이다."
"이제 평범한 무장일 뿐이니 마땅히 군단장께 존대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국혼이 성사된 시점에서... 전 더 이상 대장군이 아닙니다."
"으음..."
그가 저자세로 나오니 관우는 어정쩡한 표정을 지었으나, 틀린 말도 아닌데다 하후돈이 그러길 원하는 듯 했기에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 정작 당사자인 모용환은 생면부지인 조조와 혼인이 성립된 것도 모른 채 시상에서 그동안 노느라 밀린 업무를 열심히 처리하고 있었다. 무릉 태수 조범이 항복해서 물자 등의 이동이 많았기에 처리해야 할 서류가 산더미 같았다.
제갈량이나 육손은 어느 정도 선까지만 도와주고 그 이상은 절대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에 모용환은 머리에서 쥐가 날 지경이었다. 태수라면 이 정도 내정은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나.
"제길. 서방님 고생하는데 좀 도와주지. 크으, 누가 내 얘기를 하나? 아직도 뭐가 이렇게 처리할 게 많아!"
왠지 귀가 가려운 그였다.
===
며칠만의 연재인지.. "엑?! 뭐라고요?"
"네가 태수하라고."
모용환의 말에 육손은 어이없는 얼굴이 되었다. 가뜩이나 내정전반을 책임지면서 할 일이 산더미 같이 많아졌는데 태수가 된다면? 요즘 서류더미에 깔려 죽을 것처럼 고생하는 모용환을 보면 답은 나온다.
"싫어요."
"어허. 말 안 들어?"
그의 고압적인 태도에 육손은 살짝 주눅이 들었다. 사실 거절할 입장이 아닌 것이다. 몸종이니 주인이 까라면 까야지.
그래도 싫은 건 싫은 거였다. 육손은 어떻게든 타개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니... 형.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지 이유나 들어보자고요. 유비님, 제갈누님도 계신데 제가 어떻게 태수를 해먹어요? 형 말마따나 전 몸종인데요? 그리고! 갑자기 왜! 태수직을 내팽개치겠단 건데요?"
딱!
"아코!"
삐딱한 육손의 말투에 모용환은 꿀밤을 먹였다.
"임마. 난 군단장 해먹기도 힘들다. 여강, 시상, 장사, 무릉의 태수들이 모두 나한테 보고를 보내는데 어떻게 태수까지 해? 지금껏 한 것만도 기적이야. 후후... 그리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유비님은 군주시고 량아는 군사잖아. 가장 만만한 데다 능력도 있는 게 넌데 무슨 딴소리야? 쿡. 뭐? 몸종? 요즘 몸종은 장군들한테 누나누나 하면서 졸졸 따라다니냐?"
"으으..."
장료나 조운과 친하게 지내는 걸 빗댄 그의 말에 육손은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제2군단이 결성된 상태에서 점령한 도시들의 태수를 임명하는 것은 군단장의 고유권한 이었으니 어차피 거절할 수도 없었지만.
사실 지루한 내정이라면 질색하는 그가 이 정도까지 버틴 것만 해도 용한 일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어."
"......?"
매우 귀찮은 일을 떠맡은 게으름뱅이의 전형적인 표정을 짓고 있던 육손은 모용환의 말에 호기심을 드러냈다.
모용환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사마의와 적대 관계가 됐어. 아마 이번에 사마의가 조조를 멸망시킬 계획이었겠지만, 우방인 우리가 그 계획을 무산시킨 것 같아. 정확한 전후 보고가 올라오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량아의 말로는 그래."
"에에?"
이 일은 육손도 금시초문이었다. 하긴 대국을 주관하는 제갈량이 태산 전투에 관한 사실을 알려준 것은 군주인 유비나 군단장인 모용환 정도였으니 그녀가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철갑기병을 벌써 드러낸 것은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어쩔 수 없지.'
모용환은 태사자에게 철갑기병의 조련을 부탁하면서 그들의 존재에 대해 제갈량과 주유에게 알려주었었다. 그 효용가치 또한. 제2군단의 원정군에 갓 개설된 철갑기병을 대동할 수는 없었으니 제갈량이나 주유의 지략을 믿고 그녀들이 철갑기병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이었다.
그가 잠시 상념에 잠긴 찰나, 그 말을 들은 육손은 안색이 변해버렸다. 영리한 그녀는 모용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아들어 버렸다.
"...형. 사마의의 남하를 나보고 막으라고요?"
"호오. 역시 눈칫밥으로 먹고 살았구나?"
"눈칫밥 어쩌고 할 얘기가 아니잖아요! 이건! 곧 강하의 채모는 망할 테고, 그럼 본격적인 적대가 된 사마의는 어떻게든 아래로 내려오려고 할 텐데! 그 무시무시한 대군을 어떻게 나처럼 연약한 소녀한테 막으라고 할 수 있어요!"
육손의 항변에 이번에는 모용환이 어이없는 얼굴이 되었다.
"...이럴 때만 소녀? 좀 소녀다운 맛이 있어야 그렇게 볼 거 아냐. 들어보니까 내가 쳐들어올 때도 자기만 믿으라면서 큰소리 탕탕 쳤다며? 나 막을 때처럼만 하면 돼. 이번에는 든든한 수군도 있는데 뭔 걱정이야? 아, 그러고 보니까... 그걸 잊고 있었네. 어쨌든 알았지? 힘내라."
"혀엉--!"
모용환은 그녀의 간절한 부르짖음을 철저히 외면한 채 유엽의 처소로 향했다. 사마의에 남하에 대한 대비는 육손만으로는 부족했다.
"선박 개량?"
유엽은 웬일로 모용환이 자신의 방에 찾아오자 반색을 하며 반겼다가 그가 대뜸 선박 개량을 부탁하자 어리둥절해 했다.
"엽 누이도 아시겠지만 감녕의 해적단... 이제 수군이 되었지만 말입니다. 어쨌거나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선박들은 제대로 된 군함이 아닙니다. 물론 날렵하기도 하고 전투에도 적합하지만..."
"너무 조악하다, 이거야?"
"잘 아시는군요."
그녀가 한번에 자신의 말뜻을 알아채자 모용환은 미소를 지었다. 육손이나 유엽이나, 유능한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편해서 좋았다.
"해적들의 경험에 엽 누이의 기술이 더해진다면 아군의 수군은 진정한 장강의 주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겁니다."
신뢰감 가득한 그의 말에 유엽은 난처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헤에... 나도 지금까지 공짜밥 많이 얻어먹었고, 더욱이 모용 동생의 부탁이니까 그러고 싶은데... 미안해.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눈이 너무 나빠. 모용 동생의 얼굴도 어느 정도 떨어지면 흐릿해서 잘 안 보이는 걸."
일전에 모용환이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에도 비슷한 부탁을 한 적이 있었지만, 유엽은 근시였다. 기술자에게 시력이 나쁘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유엽은 더 이상의 시력 약화를 막기 위해서 무언가를 만드는 취미도 버리고, 동생들과 노는 것에만 소일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물론 모용환은 그녀가 시력이 나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품속에서 자단목으로 만들어진 작은 목갑을 꺼내 유엽에게 건네었다. 향긋한 나무 향기가 방 안에 은은하게 퍼졌다. 얼결에 목갑을 받아든 유엽은 모용환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모용 동생, 이건 뭐야?"
모용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엽 누이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이걸 봐서라도 제 부탁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오호호홋. 글쎄, 나도 들어주고 싶지만 안 된다니까 그러네. 하아... 그나저나 동생의 선물이라니 고맙게 받을게."
그녀에게는 생전 처음으로 남자에게 받아보는 선물이었다. 다소 괴팍하긴 했지만 유엽도 여자인지라 다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목갑을 열어 보았다.
"어?"
목갑안의 물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보석이나 장신구일 줄 알았던 유엽은 그것을 들고 눈을 깜박였다. 투명하고 둥근 수정이 곱게 다듬어져 8자 모양의 나무틀에 끼워져 있었다. 얇은 나무틀은 옻칠을 한 듯 반짝하고 윤이 났는데, 양 끝에 끝부분이 구부러진 다리가 두 개씩 달려 있었다.
도무지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호기심이 많은 유엽은 그 물건을 찬찬히 훑어보며 두 눈을 영롱하게 빛냈다.
"모용 동생... 이런 건 처음 보는데...? 나무다리가 접히네? 신기해."
"순도가 높은 수정으로 알을 만들고, 단단한 박달나무로 틀을 만든 겁니다. 다리를 귀에 걸쳐서 얼굴에 써 보세요."
모용환이 유엽에게 준 물건은 바로 안경이었다. 대충 그녀의 눈 도수를 짐작한 그가 투명한 수정으로 만든 안경이었는데 작은 나무못으로 안경다리의 접힘을 처리했다. 말은 쉽지만 청공검으로 안경알을 흠이 안 나게 다듬고, 질긴 박달나무를 자르느라 그가 한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얼굴에 쓰는 거야? 냐하하... 좀 이상할 것 같은데... 아!"
천천히 모용환이 만든 뿔테안경을 콧등에 걸친 유엽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흐릿하게만 보이던 원경(遠境)이 가까이서 보듯 뚜렷하게 망막에 맺혔기 때문이었다.
"이, 이거..."
어찌나 놀랐는지 여간해서는 당황하지 않는 그녀의 음성이 무척이나 떨렸다.
"화아... 다 보여..."
유엽은 마치 신세계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단지 수정알 하나를 눈앞에 덧대었을 뿐인데 그토록 그녀를 괴롭혔던 시력이 예전으로 돌아갔다. 멍하니 안경을 쓰고 있던 그녀는 꿈인가 해서 안경을 이마 위로 올려 보았다.
"우..."
안경을 쓰지 않은 눈은 여전히 나빴다. 그렇지만 다시 안경을 쓰니 흐릿했던 사물이 뚜렷하게 보였다. 모용환은 계속해서 안경을 들었다 놨다 하는 그녀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안경(眼鏡)이라고 합니다. 대강 짐작해서 만들었는데 도수가 맞는다니 다행이군요. 엽 누이, 이제 부탁을 들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유엽은 어색하게 안경 쓴 얼굴을 매만졌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모용환을 바라보았다. 안경을 썼는데도 그의 모습이 뿌옇게 보였다.
"고, 고마워... 동생..."
울음 섞인 유엽의 말에 모용환은 그녀의 떨리는 어깨에 손을 얹었다.
"엽 누이는 웃으면 보조개가 피어서 더 예쁘니까, 웃도록 하세요."
"그... 래? 호, 호호..."
웃음 짓는 유엽의 얼굴은 안경이 무척 잘 어울렸다. 옻칠을 한 덕분에 진한 고동색으로 물든 안경테는 그녀의 연한 갈색 피부와 대조되어 보기 좋게 조화를 이루었다. 본래 옷걸이가 좋으면 무슨 옷을 입든 어울리는 법이다.
"모용 동생..."
유엽은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모용환에게 얼굴을 가까이 맞대었다. 그녀의 달콤한 숨결이 코로 느껴질 정도로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모용환은 정신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수정이 사이에 있어서 일까, 유독 유엽의 눈망울이 빛나 보였다. 그녀는 서서히 눈을 감았다.
'입맞춤해 달라는 건가?'
유엽과 모용환은 몸을 거의 완전히 맞대고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선 풍염한 젖가슴의 감촉이 야성의 본능을 일깨우고 있었다. 모용환은 뒷일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두 사람의 젖은 입술이 막 맞닿으려는 순간, 벌컥 문이 열렸다. 그 바람에 놀란 모용환은 유엽의 이마를 들이받고 말았다.
"헉! 윽!"
"악!"
들어선 사람은 대교였다. 대교는 요상한 물건을 얼굴에 쓴 채 이마를 감싼 유엽과, 마찬가지로 이마를 부여잡은 채 유엽이 넘어지지 않게 한쪽 팔로 그녀의 허리를 받치는 모용환을 묘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아빠, 엽 언니. 제가 방해한 건 아니죠?"
"하하.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오호호홋..."
모용환은 진땀을 빼며 변명했고 유엽은 그저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하지만 눈치 빠른 대교는 의심의 눈길을 지우지 않았다. 한숨을 내쉰 모용환은 그나마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들킨 걸 위안으로 삼으며 말했다.
"무슨 일이야?"
"상향 언니가 영릉을 점령했대요. 제갈 언니가 아빠보고 무릉에 갔다 오라고 전해 달랬어요."
손상향의 오월정벌군은 유비군의 제3군단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제3군단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기에 다음 임무 지침은 가까운 곳에 있는 상관, 예컨대 군단장을 맡고 있는 모용환이 내리는 것이 타당했다.
"음. 그럼 상향의 임무는 다 끝난 거잖아? 오월 쪽도 다 평정했겠다. 유아, 상향 둘 다 복귀하라고 하면 될 건데 굳이 내가 가 볼 필요가 있을까?"
대교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좀 난관에 봉착한 모양이에요."
"흐음?"
"상향 언니가 복귀하지 않고 그대로 교지로 나아가겠다고 전령을 보내왔어요. 하지만 제갈 언니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아요. 사마의와 적대 관계가 된 이상 오월원정군을 하루빨리 복귀시켜야 한다고... 전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아빠가 가서 상향 언니를 설득 해줬으면 좋겠대요."
"...그래? 그렇다면 가봐야겠지."
모용한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서 유엽의 처소를 나섰다. 유엽은 모용환이 나갈 때까지 조용히 쳐다보고 있다가 입맛을 다시며 침상에 걸터앉았다.
"아깝네... 그나저나 이건 어떻게 만든 걸까? 나중에 물어봐야지. 냐하하하."
다음날, 모용환은 육손, 대교, 소교와 함께 작은 마차를 타고 영릉으로 향하고 있었다. 일행이 단 넷뿐이었고, 이미 같이 난교(亂交)를 한 경험이 있었기에 마차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너무 뻔했다.
"흑... 아빠...앗!"
소교는 양 다리로 모용환의 허리를 휘감으며 작은 꽃잎으로 그의 육봉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발육이 매우 더딘 소교의 육체는 어린 아이에 가까워, 한 줌도 안 되는 젖가슴이 소담스레 부풀어 있었다.
"흐아앗...!"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용환을 상대하는 소교의 몸짓은 능수능란하기 그지없었다. 소교는 정상위 자세에서 모용환의 목덜미를 안고 설익은 엉덩이를 돌리고 있었다.
옥덩이 같은 조갯살은 찢어질 듯 팽팽히 벌려져 있었는데, 그 사이로 언뜻 장대한 불기둥이 모습을 보일 때마다 소교의 입에서는 달짝지근한 교성이 새어나왔다.
"아응...! 학! 아윽!"
여리기 그지없는 질 속을 광포하게 후벼대는 육봉의 움직임에 소교는 고통과 쾌락이 뒤섞인 신음성을 내며 모용환의 등에 손톱자국을 만들었다.
어린 꽃잎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조임에 모용환은 등에 상처가 새겨지는 것도 모른 채 소교의 종아리를 양 손으로 붙잡아 더욱 크게 벌리며 허리를 움직였다.
"흐윽... 아파요..."
소교는 허벅지에 잔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한껏 벌려진 가랑이 사이에 손을 넣어 작은 음핵을 문질렀다. 활짝 만개한 꽃잎 첨단에 매달린 연분홍 열매는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에서 춤을 추며 그녀에게 미칠 듯한 쾌락을 선사했다.
"하악...! 하으응! 히아아..."
퍽! 퍽! 퍽!
육손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소교와 모용환의 격렬한 정사를 뚫어져라 감상하고 있었다. 어차피 인적이 드문 산길인데다, 말들 또한 마부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의 명마들이기에 이런 짓도 가능한 것이었다.
여름철이라 그늘진 산속이라도 마차 안은 꽤 더웠는데, 그래서인지 넷은 모두 옷을 벗고 있었다. 이미 가면서 몇 번이나 정사를 했는데 가릴 필요가 뭐 있겠는가.
"와아... 저 큰 방망이가 몸 안에 쑥 들어가는 건 언제 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그런데도 아프진 않고..."
이런 쪽에는 거의 문외한인 육손의 감탄에 전문가(?)인 대교는 픽 웃었다.
"육 언니, 저 정도 신축성은 되어야 아이도 낳지 않겠어요? 헤헤. 언니도 젖었네?"
"만지지 말라니까!"
육손은 어느새 다가와서 자신의 꽃잎에 손을 갖다대는 대교의 대담한 행동에 얼른 음부를 가렸다. 벌써 몇 번이나 대교의 애무에 절정에 달했는지 모른다. 이상하게도 대교의 손이 몸에 닿을 때면 전기에 감전된 듯 찌르르한 쾌락이 밀려왔는데, 육손은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내, 내가 얘를 좋아한다는 거야 뭐야? 같은 여잔데!'
육손은 벌겋게 물든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순진하게도 그녀는 성교시의 쾌락이 사랑에 의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남자의 사정을 한동안 오줌을 싼 것이라 믿었을 정도니 어련할까.
처음 모용환과 그녀가 관계를 했을 때는 아프기만 했다. 전희가 없었으니 당연한 것이었지만 육손은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내궁으로 들어와 한껏 달아오른 상태에서 한 정사는 무척 기분 좋은 것이었다.
'그건 내가 형을 좋아하게 돼서 그런 건데... 그런데 왜 얘가 날 만지면 기분이 좋아지는 거냐고!'
여자의 애무에 기분이 좋아지는 자신은 비정상인 것인가? 육손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대교의 집요한 공격은 계속되었다. 그녀는 육손을 놀리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
"언니, 아빠가 왜 맨날 소교만 먼저 해주는지 알아요?"
"왜, 왜?"
실상은 소교가 가장 체력이 약해서 그런 것이었지만, 대교는 짓궂은 얼굴로 육손에게 속삭였다.
"언니가 제가 달래주는 걸 더 좋아하는 거 같아서라네요. 짜잔-! 이게 뭐게요?"
"헉!"
육손은 대교가 한 쪽 구석에서 꺼낸 물건을 보고는 기겁했다. 남근 모양의 나무 모형 두 개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두 목남근을 이어 놓은 사이는 무엇으로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무척 유연해 대교의 손에 잡히지 않은 한쪽 남근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 그거 뭐야?! 치워!"
"으흥... 기분 좋은 거예요~!"
본래 그 목남근은 건업성 지하 밀실에 있던 기구 중 하나로, 대교가 다시 가서 가져온 것인데 철저하게 조교 당해 밤마다 달아오르는 몸 때문에 괴로워하던 자매가 궁여지책으로 챙긴 것이었다.
색정어린 눈으로 목남근을 바라보던 대교는 한쪽을 자신의 꽃잎 속으로 밀어 넣었다.
"하으응..."
크기에서는 모용환의 것에 비할 바는 못 되었지만 흥건한 질 안을 채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육손은 목남근의 한 쪽이 대교의 꽃잎에 들어가자, 마치 남성의 성기를 달고 있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앉은 채로 주춤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마차 안이라 그녀는 금방 벽에 가로막혔다.
"어린 게 너무 발랑 까졌잖아! 너 설마 그걸... 흐아악!"
"후아... 언니도 그렇게 만들어 드릴게요. 하앙..."
대교는 뜨거운 숨결을 내쉬며 목남근의 나머지 한쪽을 육손의 흥건하게 젖은 꽃잎 속으로 박아 넣었다. 육손은 대교를 밀쳐내려고 했지만 계속해서 민감한 성감대를 자극하는 그녀의 손길에 힘이 쭉 빠지고 말았다.
육손과 정상위 자세로 결합한 대교는 그녀와 입맞춤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조교 당했어도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었지만, 대교 또한 몸이 너무 뜨거워져 있었다. 약에 취해 소교와도 이런 행위를 한 경험이 있었기에 대교는 거리낌이 없었다.
이성을 잃어가는 건 육손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가... 여자랑... 아...'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과는 다르게 육손의 혀는 대교의 혀와 서로 엉켜 타액을 교환하고 있었다.
"우움... 언니... 앙..."
"하아... 기, 깊어... 쪽쪽..."
자극을 받은 대교가 허리를 깊숙하게 밀어 넣자 목남근이 질 속을 관통하는 느낌에 육손은 대교를 끌어안으며 더욱 열정적으로 입을 맞추었다. 반짝거리는 타액이 소녀들의 턱선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진풍경인데...?"
소교와의 정사를 끝낸 모용환은 절정에 달해 실신해 버린 소교를 한 쪽에 눕혀둔 후 육손과 대교가 하는 행위를 보자 다시금 불같은 성욕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악동 같은 대교에게 육손이 잡아먹힌(?) 것을 파악한 그는 벌을 주기 위해 사악한 얼굴로 대교의 뒤로 갔다.
찌걱 찌걱.
두 소녀의 음란한 결합부가 마찰을 하며 물기 젖은 소리를 냈다. 육손과 대교는 서로의 조갯살을 피부로 느끼며 더욱 행위에 몰입하고 있었다.
"더, 더... 응... 대교야앗!"
성행위에 별로 면역이 없는 육손이 먼저 절정에 달했다. 그녀의 꽃잎 속에 파고들어간 목남근이 질에서 흘러나온 애액으로 인해 더욱 진한 색으로 물들었다.
"하윽! 아아앙... 하앗!"
대교 역시 절정을 향해 치달리고 있었는데, 그녀는 문득 자신의 엉덩이를 벌리며 국화 안으로 쑤시고 들어오는 거대한 실체를 느꼈다.
"아...빠! 아악! 아파요!"
"못된 장난을 치고 있어. 애 물들면 어떻게 하려고. 후후. 흡!"
대교의 항문에 육봉을 찔러 넣은 모용환은 땀으로 끈적해진 소녀들을 둘 다 안아서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대교는 육손과 모용환 사이에 끼어 무척 불편한 자세가 되었지만, 꽃잎과 국화 양 쪽에서 삽입을 당한 탓에 그런 것은 전혀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쾌락에 휩싸여 있었다.
"하아아앙!"
"혀, 형... 흐윽!"
모용환과 마주보게 된 육손은 부끄러워 엉덩이를 뒤로 빼려고 했다.
"좋은데 뭐. 셋이 한 번에 가볼까? 대교야, 손아 기분 좋게 좀 해줘."
"학... 뒤, 뒤가 너무... 으읍...!"
"혼 좀 나야지?"
작은 국화구멍에 커다란 육봉이 들어가자 대교는 극심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지만 모용환은 그것을 싹 무시했다.
그는 육손의 탄력 있는 유방을 대교의 입에 물려주었다. 그 후에 한 손으로는 대교의 앙증맞은 유두를 간질이고, 다른 손으로는 육손의 둥글게 부푼 엉덩이를 내리 누르며 허리운동을 시작했다.
퍽! 퍽! 퍽!
"흑! 아으으응...! 아학! 형...!"
"으으읍...! 흡!"
모용환은 두 소녀를 품에 안은 채 마주보고 있는 육손과 격렬한 입맞춤을 나누었다. 가뜩이나 더운 마차 안에서 거칠게 사랑을 나누고 있는 세 사람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번들거렸다.
"히아아앗...!"
모용환은 대교의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와 더불어 국화의 조임도 더욱 강해졌다. 대교는 질과 직장이 한 번에 꿰뚫린 채 온몸을 간질이는 쾌감의 파도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힉!"
육손은 유방을 애무하던 대교가 갑자기 유두를 꽉 깨물자 짜릿한 통증에 짧은 단말마를 내질렀다. 그러자 모용환은 엉덩이를 누르던 손가락 세 개를 그녀의 국화 속에 푹 찔러 넣고는 맹렬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턱! 턱! 턱!
"히끅! 아아아앙!"
"후욱!"
절정에 달해 쾌락의 여운만이 남은 대교는 항문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입을 떡 벌리며 말도 못할 지경이었지만, 육손은 그녀와는 다르게 국화 속의 손가락들이 내부를 휘젓자 그 야릇한 느낌에 금새 두 번째 황홀경에 도달하며 맹렬하게 도리질을 쳤다.
모용환이 대교의 국화 속에 사정한 것도 동시였다.
퐁.
한바탕 열기가 휩쓸고 지나가자 두 여인의 음부를 이어주던 목남근이 빠져나가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진이 다 빠진 육손은 구석에 몸을 기대어 앉았고 대교는 얼얼한 국화에 손을 갖다대며 철퍼덕 바닥에 엎어졌다. 손가락에서 피가 묻어 나오자 대교는 울상을 지었다.
"아야아... 피, 피 나잖아요!"
아직도 빨간 직장 안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벌려진 그녀의 항문은 꾸역꾸역 희뿌연 정액을 뱉어내고 있었다. 어린 몸에 뒤로 받아들이기는 확실히 무리였는지 국화주름 한 쪽이 살짝 찢어져져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모용환은 그 모습을 보고서야 대교를 품에 안았다. 설마 상처가 날 줄은 예상하지 못한 탓이다.
"고약을 발라줄 테니까 일단 닦자."
"너무 아팠다고요! 히잉..."
결국 그는 한동안 칭얼대는 대교를 돌보느라 힘을 다 빼야 했다.
끈적한 일정을 보낸 일행이 영릉에 도착했을 때, 맞아준 사람은 손상향이 아니라 주유였다. 몇 달간의 원정길에 많이 힘들었는지 그녀의 안색은 다소 창백해져 있었다.
주유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자신에게 달려오는 소교를 와락 끌어안았다.
"몇 달이 지났는데도 우리 소교는 별로 크지 않았네? 대교는 많이 자랐는데. 머리로 얼굴 가리지 말라고 했잖니."
주유는 품에 안은 소교의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겨주었다. 소교는 오랜만에 만난 스승이 너무 반가워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쩝. 아직 삐쳐있나?"
자신은 안중에도 없는 주유의 모습에 모용환은 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오월에 보낼 때 한바탕 말싸움을 하고 보냈으니 아직 앙금이 남아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자기도 원정을 한답시고 일에 치여 편지도 보내지 못했다.
육손은 주유와는 초면이었기에 그의 뒤를 어색하게 따르고 있었다.
"잘 지냈어?"
"흥. 말이라도 고맙네요."
역시 까칠한 말투. 모용환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또 어떻게 달래야 하나.
"미안해. 나도 좀 바쁘다보니..."
"많이 바쁘면 몇 년이라도 우릴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겠네요."
얼마나 바빴으면 안부편지도 보낼 짬도 못 내느냐는 핀잔이다. 정기적으로 올라오는 주유의 보고만 넙죽넙죽 받아서 보았던 모용환은 할 말이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풋풋한 소녀 삼인방과의 관계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없기도 했다.
그는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일단 화제를 돌리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상향은 어딨어?"
손상향의 얘기가 나오자 주유의 얼굴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출정하기 위해 주변을 정리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량아가 복귀하라고 서신을 보냈는데도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사마의와 적이 됐다죠? 그럼 어서 군을 돌려야 하는데 상향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그 애가 그렇게 강압적으로 나가는 건 처음 봐요."
주유도 몇 번이나 손상향을 말렸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종군 군사이니 원정대장인 손상향보다는 직급이 낮았기 때문에 그녀를 말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녀의 말을 듣자 모용환의 얼굴도 따라서 심각해졌다. 이미 오월족의 평정을 끝마친 마당에 손상향의 교지 출정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그다지 효용성이 없는 지방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 먼 곳까지 가는 데 쓰이는 물자가 아까웠다.
"그냥 막무가내야?"
"...휴우. 환랑이 한 번 만나보도록 해요. 성 밖 마을에서 하루 묵고 온댔으니 내일 올 거예요."
주유는 거의 포기한 듯 했다. 그녀의 표정을 본 모용환 또한 깊게 가라앉은 얼굴이었다. 일단 손상향을 한 번 만나봐야 할 것 같았다.
"성 밖 마을 어디?"
"회촌(徊村)이에요. 여기서 그다지 멀지 않아요. 서쪽으로 쭉 가다보면 도착할 수 있을 텐데... 지금 가려고요?"
모용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참, 얘는 몸종인 손아야. 유아가 알아서 잘 챙겨줘."
이미 주유도 제갈량의 서신을 받아 육손의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이제 갓 열아홉이 된 육손의 어린 얼굴을 보자 주유는 상당히 놀란 듯 했다.
"네가 그...? 생각보다 많이 어리네. 난 주유야. 호호. 눈꼬리가 늘어진 게 딱 게으름뱅이구나?"
"아. 네에..."
어떻게 된 게 남자들 앞에서는 당당한 육손이었지만 이렇게 연상인 여인들 앞에서는 기를 펴지 못했다. 아마도 그녀가 이렇게 된 데에는 유엽의 등쌀이나 사려 깊은 제갈량 등 누님들의 영향이 큰 듯 했다. 생각해보면 나이 어린 대교에게도 어느 때에는 휘둘리는 그녀였으니. 물론 대교나 소교에게는 평소엔 기세등등하지만...
"그럼 난 상향에게 가보도록 할게."
"그러도록 해요."
모용환은 회촌으로 가기 전, 육손에게 귓속말을 했다.
"유아한테 인사시키려고 데려온 거니까, 잘해. 네가 누님으로 모시는 량아와 동급이니까. 하하하."
그 말에 딱딱하게 굳어버린 육손은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회촌은 이족(異族)들이 모여 사는 평범한 산촌이었다. 그러나 촌이라고 불리기에는 살고 있는 인구수가 꽤 많아서 하나의 작은 성이나 다름없었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족들을 멸시하는 한족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마을인 것 같았다.
"있을 건 다 있는데...? 객잔도 있고, 점포도 있고."
모용환은 회촌의 거리를 배회하며 손상향을 찾고 있었다. 겨우 10명의 호위병들을 대동하고 나갔다고 하니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상향이 위험하지 않을까?'
이족들 중 천성이 유순한 유족이었지만 그래도 한인 장군인 손상향을 달갑게 볼 리는 없었다. 더군다나 주변을 안정시킨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을 지배 하에 두려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하니 모용환은 생각 없이 나선 손상향을 만난다면 단단히 혼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젠장. 대놓고 손상향 장군 못 봤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어쩐다?'
우당탕!
"어디서 수작질이야!"
그가 거리 한복판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네 명의 장한이 피떡이 되어 객잔 문을 부수며 밖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앳되지만 앙칼진 목소리가 객잔 안에서 흘러た都? 그러자 모여드는 행인들.
"또 시작이구먼."
"외지인인 모양이지? 쯧쯧..."
"아가씨를 건드리다니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었네 그려."
토박이들은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한 모양이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모용환은 무슨 일인가 싶어 인파를 헤치고 들어갔다.
문이 박살난 입구에는 목덜미까지 내려오는 짧은 머리에 꽤 날카로운 눈매를 한 여인이 씩씩대며 서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가벼운 갑옷에 호랑이 가죽을 걸친 장한이 커다란 쇠봉을 들고 앞으로 나선 상태였다.
"으으으..."
"쿨럭..."
그의 쇠봉에 당한 것인지 내동댕이쳐진 사내들은 온 몸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그들은 다 죽어가는 얼굴로 호랑이 가죽을 걸친 사내에게서 조금이라도 떨어지기 위해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했다.
차가운 얼굴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던 여인은 표독스럽게 말했다.
"숙부. 저들의 다리를 분질러버려요. 다시는 걸을 수 없게."
"그러지요."
호랑이 가죽의 사내는 붕붕 소리를 내며 쇠봉을 돌렸다. 한 손으로 오십근은 넘어갈 것 같은 무거운 쇠봉을 아무렇지도 않게 돌려대는 그 무지막지한 모습에 행인들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이런 일에는 그저 끼지 않는 게 상책인 것이다. 그 이면에는 악명 높은 '아가씨'의 성질머리도 한 몫을 했다.
"사, 살려 주십쇼!"
"제발..."
가죽을 걸친 사내가 다가오자 네 명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안 그래도 저 무시무시한 몽둥이에 한두 군데가 부러져 제대로 된 사람 구실을 할 수 없게 생겼는데 다리까지 부러진다면? 그들은 평생 바닥을 기며 살 자신이 없었다.
쇠봉을 든 장한은 사신처럼 음울한 얼굴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 썩은 눈을 뽑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해라. 눈이 있어도 귀인(貴人)을 알아보지 못한 죄, 두 다리로 받아가겠다."
모용환은 그의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저 앳된 여인에게 수작을 부렸다고는 해도 저것은 좀 심하지 않은가. 물론 힘이 없는 보통의 여인이었다면 저 네 명에 의해 어떻게 되었을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불구로 만들어 버리는 건 아니다 싶었다.
남의 일에 나서는 것은 그도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눈앞에서 멀쩡한 사람들이 병신이 되는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모용환은 성큼 앞으로 나섰다.
"저들도 잘못을 뉘우쳤을 테니 이만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사내의 시선은 무리 속에서 불쑥 나선 모용환에게로 향했다. 그의 눈에 의외의 빛이 스쳐지나갔다.
"누구지? 이들과 안면이 있나?"
"전 외지에서 온 사람입니다. 당연히 이들과 안 면이 있을 리가 없지요. 대강 상황은 알겠지만,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심하다?"
"그 두꺼운 쇠봉에 찍히면 뼈가 가루가 될 겁니다. 저 아가씨를 위해서도 그만하시는 것이..."
쇠봉을 든 사내의 음성이 더욱 낮아지자 모여있던 사람들은 이제 슬슬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는 멋모르고 나선 외지인 청년이 무척이나 불쌍하게 보였다.
"거, 훤칠하게 생긴 청년이 안 되었구먼..."
"아가씨가 관여한 일에 끼어들다니... 쯧쯧..."
그들의 말대로 이제 갓 스무 살이나 되었을 법한 여인은 무척 성질이 사나운 듯 했다. 그녀는 자신을 언급한 모용환을 무섭게 노려보더니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숙부! 저 자도 한 패거리가 분명해요! 똑같이 만들어 바닥을 기게 해버려요!"
"흐음."
모용환은 좋게 해결하려던 것이 틀어질 듯하자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딱 보아하니 여인은 높은 집안에서 응석받이로 자라온 것 같았다. 저런 성질머리라면 어지간해서는 주장을 굽히지도 않을 것이다.
'어느 집 자식인지는 몰라도... 골치 깨나 아프겠군.'
모용환은 그녀의 숙부라는 자가 자신을 향해 쇠봉의 끝을 겨누자 어쩔 수 없이 청공검을 빼들어 자세를 취했다.
한편 사내는 모용환의 절도 있는 자세를 보고 순간적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결코 범인(凡人)은 아니다... 어쩌면 오늘은 흉이 많겠군.'
사실 예전의 모용환이었다면 단순히 검을 잡은 기백만으로 상대를 이렇게 압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한 달 동안 그는 장료, 조운, 위연 같은 쟁쟁한 무장들과 수많은 대련을 해왔다. 주로 아침에는 장료, 오후에는 위연, 자기 전에는 밤일도 겸해서 조운과 대련을 했는데 그 덕분에 마구잡이식 검술의 틀이 확실히 잡힌 상태였다.
더불어 원래 익히고 있던 무예들도 상당히 넓은 폭으로 응용을 할 수 있게 되면서 기술적인 면에서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 물론 아직도 단순 기교만으로 장료와 목검 대련을 한다면 완패를 하긴 했지만, 그에게는 기교를 훨씬 상회하는 힘이 있었다. 엄청난 밀도로 응집된 근육들이 뿜어내는 무력은 호리호리한 체격에서 나온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파괴적이었고, 거기에 절세 보검인 청공검까지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이 무식한 힘과 청공검으로도 충분히 행세했던 것 같은데. 후후.'
무가지보(無價之寶). 뛰어난 무기는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는 법이다. 일전에 태사자가 건업에서 관우와 일기토를 벌였을 때에도 청룡언월도에 비견할 만한 무기가 있었다면 그리 허무하게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용환은 그런 이유에서 하후돈에게 무척 감사해하고 있었다. 청공검 같은 절세의 명검을 처음 본 사람에게 쉽사리 건넨다는 것은 결코 마음만 굳게 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대치가 한창 지속중일 때, 싸움을 보는 눈이 없는 여인은 숙부에게 성질을 부렸다.
"어서 놈을 묵사발로 만들지 않고 뭐하시는 거예요!"
"으음..."
그렇지 않아도 기백에서 눌려 있던 사내는 여인의 앙칼진 목소리가 귓전을 때리자 더욱 자세를 낮추었다. 어떻게든 허점을 찾으려는 것인데, 그에 비해 모용환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사내는 침음하면서 모용환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그의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이 콧등을 타고 떨어져 내렸다. 자신의 야성적인 감각은 눈앞의 청년과 정면대결을 해서는 결코 이길 수 없다고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은 창공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매처럼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어디냐? 분명 허점이 있을 것이다!'
"키욧!"
그는 괴이한 기합성과 함께 도약하는 표범과도 같은 빠르기로 모용환에게 접근해 쇠봉을 휘둘렀다.
부웅!
'대단하군!'
모용환은 가볍게 몸을 틀어 그의 쇠봉을 피했다. 쉽게 피하긴 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경탄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저 무쇠봉을 이렇게 빠른 속도로 휘두를 수 있다니. 천생 신력을 타고나지 않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마치 예전의 나 같군.'
사내의 무예는 단순명쾌했으나 절도가 없었다. 한 마디로 힘은 엄청난데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안량이나 문추 보다는 조금 못한 정도? 아마 그들처럼 온몸에 철갑을 둘렀으면 상대하기가 더 까다로웠겠지.'
모용환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범처럼 달려드는 사내의 공격을 잘도 피해냈다. 강한 파공음과 함께 휘둘러지는 쇠봉은 계속해서 허탕만 치고 있었다.
'내가 허깨비를 상대하는 건가?!'
사내는 두 눈을 끔벅였다. 계속 대치를 하며 허점을 찾아내기가 힘들어 달려든 것인데 자신의 공세를 유령처럼 빠져나가는 모용환을 보자 맥이 풀리고 있었다. 한껏 기세 좋게 휘둘러진 봉에 아무것도 스치지 않을 때의 허전함이란.
기실 사내의 무력은 상당했지만 천하에 위명을 떨치는 장수들만 상대해 온 모용환과 맞서기에는 한참 역부족이었다. 특히 물리적인 속도나 힘이라면 그 내로라하는 맹장들 중에서도 최강에 속하는 그였으니.
"헉! 헉!"
한참을 봉을 휘둘러대던 사내는 결국 제풀에 지쳐 공격을 거두고 뒤로 물러섰다. 그 모습을 느긋하게 지켜 본 모용환이 말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별로 검을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크으..."
사내는 압도적인 실력 차를 경험하였기에 뭐라 말도 못하고 그에 손에 들린 청공검을 쳐다보았다. 주인처럼 예사 무기가 아니었다. 시퍼런 예기를 뿜어내는 저런 명검의 칼날은 단순한 쇠뭉치인 자신의 철봉을 무 자르듯 베어버릴 수 있을 터.
애초에 모용환이 저 명검으로 쇠봉을 두동강냈으면 이리 오래 끌 승부도 아니었다.
"졌다..."
결국 사내는 패배를 시인했다. 그러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승부를 지켜보고 있던 행인들은 감탄성을 연발했다.
"오오! 대숙(大叔)이 졌어!"
"저 청년은 누구지?"
그걸 지켜보고 있던 여인은 분통이 끓어올랐다. 철석같이 믿고 있던 숙부가 어이없게도 변변찮은 공격 한 번 못해보고 패해버린 것이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바락 소리를 질렀다.
"넌 누구야!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죽여 버리겠어!"
행인들의 외침을 듣고 철봉 사내가 대숙이란 이름을 지닌 것을 알게 된 모용환은 그에게 걸어가려다가, 여인의 외침을 듣고 마땅찮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발길을 돌렸다.
"그러는 넌 누구지?"
"너?!"
자신의 숙부에게 존댓말을 쓰던 때와는 전혀 다르게 반말을 지껄이는 청년의 말에 여인의 아미가 상큼하게 치솟았다.
모용환은 그런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래, 너. 아니면 건방진 계집이라고 불러줄까? 난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는 존대를 하지 않아. 뭐,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에는."
그에게 있어 유일한 예외는 유비였다. 5살 연하지만 모시는 주군이니까.
"이, 이이익!"
그녀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자신이 누구인데 이렇게 함부로 대한단 말인가. 하지만 숙부가 패한 마당에 이 자를 응징할 사람은 지금 당장 주변에는 없었다.
"웬만하면 그냥 가도록 해. 저 분도 철부지 응석 받아주느라 힘드신 것 같은데 더 이상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지 말고."
이제는 대놓고 빈정거리는 그였다. 여인은 생전 처음 이런 말을 듣게 되자 황당하고 기가 막혀서 말까지 더듬었다.
"내, 내가 누군지 알아! 후회할 거다! 난...!"
"아가씨!"
그녀가 홧김에 입을 열려고 하자 침묵을 지키던 대숙이 다급히 그녀의 입을 막았다. 여인은 거세게 몸부림치다가 대숙과 눈을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였다.
대숙은 한숨을 쉬며 그녀의 입을 막은 손을 풀어주었다.
"미안하오. 아가씨가 요즘 신경이 날카로우셔서. 이만 가 보시오."
"숙부가 왜 사과를 하는 거예요! 쓸데없이 끼어든 저 놈이 잘못한 건데!"
"아가씨. 조용히 하십시오."
"으으...!"
화가 치밀었는지 울긋불긋한 얼굴로 소리를 지르던 여인은 대숙이 눈에 힘을 주어 쳐다보자 금새 조용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성난 얼굴로 모용환을 노려보고 있었다.
모용환은 그 광경을 보며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 때였다.
"아령 언니. 여기서 뭐하시는 거죠?"
'어? 어디서 많이...'
무척 낯익은 여자의 목소리가 그의 뒤에서 들려왔다. 여인의 이름이 아령이었는지,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모용환의 뒤를 본 그녀는 반색을 했다. 눈앞의 건방진 녀석을 혼내줄 수 있는 사람이 온 것이다. 대숙을 능가하는 그녀의 무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터였다.
"손 동생! 잘 왔어! 이 자식이 나보고 계집 운운하는데 동생이 혼 좀 내줘!"
"손...? 상향!"
모용환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어쩐지 낯익은 목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손상향이었던 것이다. 한번에 눈치 채지 못한 것은 그 목소리가 이전과는 달리 얼음장처럼 차가웠기 때문이었다.
"아니...?"
모용환은 뒤를 돌아보던 그대로 우뚝 멈춰 섰다. 오랜만에 마주한 손상향의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 라버니?"
손상향은 굳은 표정의 모용환과 눈을 마주하자 황급히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오뚝한 콧날 중간부터 눈 밑을 지나 볼까지 뻗은 흉한 자상이 낙인처럼 찍혀 있었다.
모용환은 기다란 흉터가 아로새겨진 그녀의 얼굴을 보며 멍하니 말했다.
"너... 얼굴이 왜 그래?"
그는 그제야 주유가 한숨부터 내쉬며 대뜸 손상향을 만나보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손상향은 이를 악물었다. 모용환에게만은 흉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그런데 이렇게 마주하고 나니 뭐라 설명을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속이 울렁거리면서 빨리 그가 시선을 돌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 아는 사이였어?"
그들의 뜻밖의 반응에 당황한 아령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손상향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녀는 여전히 한 손으로 흉터 부위를 가린 채, 평상시의 안색을 회복했다. 보는 눈이 많으니 상황을 수습할 요량이었다.
고된 원정길은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그녀에게 능히 군대를 지휘할 수 있을만한 침착함과 상황대처능력을 배우게 해주었다.
손상향은 딱딱하니 굳은 모용환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들어가도록 하죠."
객잔 안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손상향의 눈치를 살피며 안절부절 못하는 아령, 그녀의 옆에서 침묵하는 대숙, 찻잔만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손상향, 침중한 얼굴로 그런 그녀를 응시하는 모용환.
이 위태로운 침묵을 깬 것은 모용환이었다.
"말해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주 언니가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네요."
"유아는 그저 널 만나보라고만 했어."
"......"
손상향은 잠시 동안 말없이 애꿎은 찻잔만을 만지작거렸다. 그녀가 입을 연 것은 참다못한 아령이 음식이라도 시키기 위해 막 점소이를 부르려던 때였다.
"전장에서 상처 하나 얻은 거죠. 별 거 아니에요."
딱딱 끊어지는 그녀의 말투에 모용환은 가슴이 아팠다. 예전의 손상향은 이렇지 않았다. 밝고 명랑해서 보는 사람의 기분을 좋아지게 만드는 그런 소녀였는데. 마치 저 흉터가 변해버린 그녀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흉하죠?"
뜬금없는 그녀의 말. 모용환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오라버니는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언니들에게도, 듣기 싫은 소리는 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아."
모용환은 손상향의 삐딱한 반응에 한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눈으로 그를 보고 있던 손상향은 아령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언니는 오라버니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아... 그, 그게..."
아령은 난감했다. 자신의 성질머리를 돋구어서 모용환을 혼내주려던 것인데, 손상향과 아는 사이일 줄이야. 그것도 오라버니라고 부르는 것으로 봐서는 무척 친한 사이인 것 같았다. 지금은 찬바람이 쌩쌩 날리지만.
그녀는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별 일 아니야. 그런데 이... 분은 누구야?"
"모용환, 모용 장군님이에요. 군단장을 역임하고 계시죠."
마치 모르는 사람을 소개하는 듯한 말에 모용환은 그녀가 정말 변해도 너무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한편 아령은 자신에게 건방을 떨던(?) 사내가 손상향보다 직급이 높은 군단장이라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것은 대숙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황망히 모용환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좀 전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아가씨가 철이 없어 그랬던 것이니..."
"잊었습니다. 앉으십시오."
"예..."
다행히 모용환이 별로 마음에 두고 있지 않는 듯 하자 대숙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령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나 원체 귀하게 자라 자존심이 강한 그녀는 뻣뻣하게 목을 세우고 모용환을 쳐다보았다.
'내가 뭘 잘못했단 거야? 군단장이면 다야? 그렇게 치면 나도...'
사실 신분으로만 따진다면 그녀도 아쉬울 게 없었지만 대놓고 드러내지 못한다는 게 문제였다.
모용환은 처음부터 그런 아령을 신경 쓰지도 않고 있었다. 지금 그의 정신은 온통 손상향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내가 왜 왔는지는 알 거야."
"네. 그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손상향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름대로 손상향을 설득할 생각을 하고 있던 모용환은 순순하게 나오는 그녀의 태도에 어리둥절해졌다.
"복귀하겠단 소리야?"
"전 아니에요."
그녀는 점점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대체 무슨 말이야? 속 시원하게 설명 해봐."
"제가 지휘하던 원정군 대부분은 복귀시킬 거예요. 하지만 그 중 5천과 정보, 황개 장군은 조금 시일이 걸릴지도 모르겠네요. 한당 장군이 나머지 군대를 이끌고 복귀하실 테니 전력상 차질은 없을 거라 생각해요."
확실히 수만에 이르는 오월원정군 중 5천 정도는 빠져도 별 탈은 없었다. 어차피 지금 사마의와 전면전을 시작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모용환은 손상향이 그 군사들로 무엇을 하려는지, 그녀의 의중이 궁금했다.
"교지에 가려고?"
"네."
"지금 우리에게는 그다지 필요 없는 곳이야. 네가 아무 생각 없이 교지 정벌을 감행할 리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곳을 점령하는 게 아니에요."
손상향은 잠시 아령과 시선을 교환했다. 그녀의 시선이 뭘 뜻하는지 안 아령은 잠시 망설였다. 그녀가 대숙과 동행해 이곳에 온 이유도, 손상향과 친교를 맺은 것은 함부로 유출되어서는 안 되는 사안이었다.
"오라버니는 믿을 만한 사람이에요."
"으응. 그럼 동생 뜻대로 하도록 해."
모용환은 깐깐해 보이던 아령이 손상향의 말에 쉽게 수긍하자 새삼스런 눈으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손상향과 아령은 꽤나 친한 사이인 것 같았다.
아령의 동의를 얻은 손상향은 모용환에게 말했다.
"교지에서 만족(蠻族)의 우두머리인 사마가라는 사람이 발기(勃起)했어요. 그는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고 그곳에 살고 있던 유족(孺族)들을 몰아냈죠. 만족은 형주 쪽에서 무리를 이루던 이민족이었는데 사마의와 채모의 싸움으로 형주가 전쟁터가 되어버리자 남하를 한 거예요. 사마가는 처음에는 유족들에게 친선을 제의하며 접근했죠. 그러다가 회담 자리에 함정을 파서 유족의 족장님을 살해했어요."
목이 탔는지 손상향은 차를 홀짝 마셨다.
"여기 아령 언니는 살해된 족장님의 딸이에요. 지금 회촌에 유족들이 많은 것도 만족들을 피해서 도망쳐 온 거죠. 교지 부근에서 살아남은 유족들이 만족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다시 세력을 규합하고 있지만 그걸 로는 부족해서 아령 언니가 제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온 거예요. 전 아령 언니를 도울 생각이고요. 만약 교지를 되찾는다면 유족들은 유비님께 최대한 협조하기로 했어요."
"...흠."
그간의 사정을 듣게 된 모용환은 흘낏 아령을 곁눈질했다. 내색은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혹시 모용환이 손상향을 제지할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모용환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태연해 보이려고 하는 것이 꽤나 귀여워보였다.
'콧대 높은 이유가 있었군. 족장의 딸이면 공주님이나 다름없지.'
그것도 한 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족의 차기 후계자였으니 어련할까.
모용환은 생각을 정리했다. 사실 유족들이 유비군에게 협력한다고 해서 실질적으로 득이 되는 것은 별로 없을 터였다. 그래서 손상향도 그런 것에 대한 언급을 그다지 하지 않은 것일 테고. 무너진 기반을 재건하는 데에 온 힘을 쏟을 것인데 유비군을 도울 여력이 어디 있겠는가.
아마 손상향과 아령은 상당한 친분을 쌓은 듯 했다. 아니면 이민족에게 혈육을 잃었다는 공감대가 형성이 된 것일지도.
갑자기 오월족에게 죽임을 당한 손책이 생각나자 모용환은 씁쓸한 기분에 손상향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흉터를 보자 손책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도록 해. 그런데 5천으로 되겠어?"
"충분해요. 만족의 정확한 규모를 몰라서 제갈 언니에게 그런 연락을 했던 거니까요. 오늘 이곳에 와서 전령의 보고를 받았는데 원정군 정예 5천에 유족들의 힘이면 교지를 되찾을 수 있을 거예요. 허락해 주셔서 고마워요, 오라버니."
모용환은 고맙다는 말보다는 그녀의 웃는 얼굴을 다시 보고 싶었지만, 손상향은 여전히 사무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감사합니다. 모용 장군.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고, 고맙습니다..."
대숙의 손짓에 아령은 힘겹게 인사를 했다. 반억지로 고개를 숙이는 아령의 모습에 모용환은 피식 웃으면서도 손상향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일이 끝나면 나 좀 보자. 수춘에 가면 화타 강사님이 있어. 그분이라면 네 흉터를 어느 정도 고칠 수 있을지도 몰라."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뭐?"
뜻밖의 대답에 모용환은 미간을 좁혔다.
"이 흉터로 제가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평생 그 상처를 안고 갈 생각이라면 그만 둬. 넌 내 아내야. 손책이라는 영웅의 동생이기도 하고. 그런 네가 그런 흉터를 달고 다닌다면 내가 처남을 볼 면목이 없어. 권이도 그렇고."
"......"
옆에서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아령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아, 아내? 손 동생이 유부녀였다니...'라고 중얼거리는 것이 들렸지만 두 사람의 귀에 그런 말은 들어오지 않았다.
단호한 모용환의 말에 작게 한숨을 내쉰 손상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준비할 게 많으니까요. 가시는 길 배웅은 하지 않을게요."
"그래. 이만 갈게."
모용환 또한 담담한 얼굴로 일어나 객잔을 빠져나갔다. 할 수 있는 말은 다 했고, 그로서는 손상향이 스스로 마음의 짐을 덜어내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상향이 그랬단 말이에요?"
"그래."
주유의 물음에 대답한 모용환은 이마를 짚고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손상향의 차가운 태도는 그에게는 충격이었다. 손책의 죽음으로 많이 달라진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많이 신경써줬어야 했는데.'
원정을 나갔던 주유와 손상향에게 신경을 써주지 못한게 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그도 그동안 수련을 하랴, 내정을 하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었다.
'그런 핑계를 댈 순 있지만 어느 정도는 무심했던 건 사실이지.'
회촌에서 별로 쉬지도 못하고 왔기 때문에 눈 밑이 침침했다. 주유는 그가 피곤한 기색을 보이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오늘은 그냥 자요."
"아직 초저녁인데 무슨 소리야.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거야?"
"농담 말아요. 보니까 한 숨도 못자고 밤새 달려온 것 같은데 그게 할 말이에요?"
"괜찮아. 본성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어?"
있기는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다소 난감한 일이라 주유는 지금 상태의 모용환에게 그것을 말해야 할지 말지 잠시 고민했다. 그녀의 그런 낌새를 눈치 챈 모용환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왜 그래? 너 답지 않게."
그의 얼굴을 보자 주유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어쩔 수 없나 봐요. 당신의 여난(女難)은. 아니, 환랑에게는 여복(女福)인가요?"
심상치 않은 그녀의 말에 모용환은 눈을 크게 떴다.
"그게 무슨 소리야?"
"환랑이 회촌에 간 사이 량아가 서신을 보내왔어요. 환랑이 조조님과... 국혼을 치르기로 했대요."
"뭐?"
역시 모용환은 전혀 몰랐던 것이 분명했다. 주유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짓눌렀다. 왜 이렇게 유독 이 남자에게만 여자가 이리도 꼬이는지.
"흔한 일이에요... 혼인을 전제로 양 세력을 합치는 거죠. 조조군 휘하의 장수들은 분명 탐이 나는 사람들이에요. 조조님 본인도 그렇지만 하후 장군을 비롯해서 허저, 전위, 조인, 순욱, 순유는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사람들이죠. 더불어 북해, 소패, 하비의 3성도 세력권에 들어오니 아군 입장에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에요. 이 국혼을 계기로 확고부동한 중원의 패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테니까요."
"자, 잠깐만... 왜 하필 나야? 난 유부남인데..."
"아직 정식으로 우리와 혼인을 하지는 않았잖아요. 환랑이 일을 어물쩍 늦추니까 이렇게 된 거 아니에요!"
갑자기 주유가 빽 소리를 지르자 모용환은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주유 입장에서 본다면 점점 불어나는 모용환의 부인 수가 못마땅한 것이 당연했다. 그렇다고 그녀들이 미운 것은 아니다. 자신도 그녀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결국 모용환을 좋아한다는 것은 다 똑같았다.
'이런 바람둥이를 내가 왜 이렇게 안달 나서 쫓아다니는 건지...'
그녀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물론 이번 바람(?)은 모용환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손아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어...?"
"다 들었어요. 대교와 소교는 이미 알고 있어서 짐작은 했지만..."
주유의 말뜻을 알아들은 모용환의 얼굴은 머쓱해졌다. 하지만 주유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딸자식 같은 애들과 어떻게 그런 짓을 해요?!"
"...7살 차인데... 걔들도 다 컸다고."
이 시대면 그리 많은 나이 차는 아니었다. 꽃다운 나이의 여인이 돈 많은 늙은이에게 시집가는 일도 비일비재 했으니까.
하지만 대교나 소교를 제자로 삼고 딸처럼 생각하는 주유의 입장은 그렇지도 않았나 보다.
"대교는 잘 걷지도 못하던데..."
"...아니, 그게."
말문은 열었지만 할 말이 있을 리가 있나.
"...후우. 제자와 한 남자를 두고 경쟁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내 팔자야... 말이 다른 데로 샜는데, 손아는 어쩔 거냐고요? 설마 몸종일 뿐이라고 하진 않겠죠?"
"...유아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걸 저한테 물으면 어떡해요! 환랑이 알아서 해요!"
"......"
모용환도 뚜렷한 대안이 있어서 육손을 안은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기에 이겨서 안은 건데 뭘.'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육손의 능력이 아까워 어떻게든 잡아두려고 하다가 이리 된 것이었다.
"그 녀석 재량에 맡기지. 관계를 가졌다고 무턱대고 내 여자가 되라, 이렇게 말할 순 없는 노릇이잖아? 녀석이 싫으면 할 수 없는 거고. 그래도 내정엔 탁월한 녀석인데..."
'그러니까 싫다고 할 리가 없잖아요...'
남의 속도 모르고 모용환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주유는 머리가 아파왔다. 육손과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모용환이 강제로 그녀와 정사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싫었으면 관계를 가지지도 않았을 터였다.
"그 문제는 나중에 신경 쓰기로 하고. 일단 아까 말하던 국혼 문제나 상의해보자. 유비님은 허락하신 거야?"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모용환의 태도에 주유는 눈썹을 치켜 올렸지만 여기서 당사자를 제하고 왈가왈부 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기에 일단은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하아. 유비님이 거절하실 리가 없잖아요. 다른 것도 아니고 아군에 무척 도움이 되는 일인데. 그리고 주선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관우 장군이세요."
"관우 형님이? ...의왼데..."
누구보다 유비를 끔찍하게 여기는 관우가 이 일의 주모자였다니. 모용환은 자기가 모르는 흑막이 있는 것 같아 찜찜했다. 유비야 이런 일에 거절을 못하는 성격이니 그녀가 어떻게 나왔을지는 안 봐도 뻔했다.
"환랑에게 선택권은 없어요. 하후 장군과 관우님께서 적극적으로 나서시는 마당이니... 싫든 좋든 조조님과 혼인을 해야 해요. 그리고 그 기일에 맞춰 유비님과도 정식으로 식을 올릴 예정이고요."
"음..."
그로서는 생전 만나보지도 못한 조조와 혼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다른 여인들에게 미안하기는 했지만 여자가 늘어나는데 마다할 그는 아니었다. 하지만 조조라니.
모용환의 기억에 의하면 조조는 제왕의 그릇을 타고난 여인이었다. 휘하에 뛰어난 인재들이 몰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지도력을 발휘해 그들을 이끌고 중원 한복판을 제패한 여장부가 그녀였다. 그렇기에 부담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같은 군주지만 편안한 느낌의 유비와는 딴판이었으니까.
'그런 무지막지한 여자와 혼인을 하라니...'
그는 조조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무슨 성격인지도 몰랐다. 대강 그동안 이루어 놓은 업적으로 짐작만 할 뿐이었다.
"굳이 국혼까지는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죠? 지금 조조님을 따르는 휘하장수들은 사마의에게 회유되지 않고 끝까지 남은 사람들이에요. 그런 만큼 충성심도 대단하죠. 아무리 몰락했다고는 하지만 조조님이 푸대접 받는 것을 가만히 두고 볼 사람들은 아니란 소리에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환랑과의 혼인은 표면적으로 유비님과 거의 동격임을 인정받는 것과 동시에 장수들의 충성심을 온전히 유비님에게로 돌려놓을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인 셈이죠."
"으윽..."
논리정연한 그녀의 말에 모용환은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주유라고 이 혼인을 성사시키고 싶을 것인가. 하지만 그녀도 유비군의 앞날을 위해 이 혼인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군사의 입장에서 반드시 모용환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휴. 어쩌다 내가 남편에게 다른 여자와 혼인을 하라고 설득까지 하게 된 건지...'
"물론 조조님에게 주어지는 실권은 거의 없어요. 단지 환랑의 부인일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하후 장군을 비롯한 장수들은 만족할 테죠. 아군의 실권자는 환랑이니까요. 량아의 서신을 보니 이미 얘기가 된 듯해요."
한 마디로 피할 생각은 하지 마라. 이 소리였다. 그녀의 말에 모용환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다가 갑자기 결연하게 말했다.
"좋아. 하지만 당사자인 내가 이제야 알았다는 건 좀 너무하잖아? 그러니까 나도 한 가지 조건을 달겠어."
"환랑. 이미 결정된 일에 무슨..."
"그 날 너희 모두와 혼인식을 할 거야. 유비님도 동시에 할 거라며? 몇 명 늘어난다고 다를 건 없겠지."
"에?"
모용환이 의외의 말을 하자 주유는 얼빠진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두 명의 군주와 혼인을 하는 자리에, 다른 여자들을 데리고 와서 합동결혼식을 하겠다니? 자칫 군주들의 권위가 떨어질 우려가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어떻게 우리가 감히..."
"조조님은 모르겠지만 유비님은 그런 분이 아니란 걸 유아도 잘 알잖아. 이 기회에 너희들과의 관계를 확실히 하는 것도 좋겠고. 어차피 가까운 시일 내에 유비님께 청혼하고 너희와도 같이 혼인식을 올리려 했었어. 기일은 아직 정하지 않았지?"
"그, 그렇긴 해요."
"그럼 상향이 돌아오는 대로 식을 올리도록 하자. 그리고 감히라니? 유아는 우리군의 어엿한 군사잖아. 얼굴 예쁘지, 몸매 좋지, 머리도 좋지. 나만 아니었어도 좋다고 달려들 남자가 수두룩할 텐데 뭘 그렇게 기죽어 있는 거야?"
그의 말에 주유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걸 느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정인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그런 내심을 드러내지 않으며 모용환을 흘겨보았다.
"하여간 환랑은 말만으로는 천하제일일 거예요."
"여기로도 천하제일을 다툴 자신이 있지."
"꺅!"
장난스런 미소를 지은 모용환은 주유를 그대로 넘어뜨렸다.
"잠깐만요...! 씻지도 않았단 말이에요!"
"괜찮아."
말과는 달리 주유는 옷을 차례차례 벗겨가는 그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그녀의 몸은 너무나 뜨거웠다. 몸을 다정히 애무해주는 정인의 손길은 그녀가 오래도록 바라던 것이었다.
그녀는 모용환을 힘껏 끌어안았다.
"아아... 환랑...!"
주유는 달뜬 교성과 함께 모용환의 손에 몸을 맡겼다. 곧게 누운 그의 몸 위에 69자세로 올라탄 그녀는 그의 손가락이 조갯살의 점막지대를 비집고 들어오자 흠칫 몸을 떨었다.
모용환은 흠뻑 젖어 주위의 음모가 반질반질 윤을 발하는 그녀의 꽃잎을 보자 킥킥 웃었다.
"처음부터 젖어있었던 거야? 역시 유아는 음란해."
그녀가 뜨거운 몸을 가졌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예전에 태사자와 욕실에서 정사를 나눌 때에도 옆방에서 자위를 하다가 그에게 걸린 적이 있지 않던가. 그는 꽃잎 위에 매달린 돌기를 살짝 꼬집었다.
"하아아!"
"나 없어서 많이 외로웠어?"
"자, 장난치지 말아요...!"
짓궂은 그의 말에 주유는 얼굴을 빨갛게 물들였다.
"혼자만 즐기기야? 너무하잖아."
"에..."
모용환의 의도를 알아들은 주유는 조금 망설였다. 아직도 보수적인 선입관을 가지고 있어 그의 요구를 쉽사리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 사랑하는 사이인데 뭐 어때... 뒤, 뒤로도 해봤고...'
결국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킨 그녀는 눈을 딱 감고 앵두 같은 입술을 벌려 벌떡 서 있는 모용환의 육봉의 첨단을 입에 넣었다.
'뜨겁고... 말랑거려...'
딱딱한 기둥부분과는 달리 귀두부분의 겉은 말랑말랑했다. 주유는 육봉을 반쯤 입에 넣고는 혀를 놀려 조심스럽게 불기둥을 핥았다. 이렇게 제대로 마음먹고 육봉을 입으로 애무하는 건 처음이었다.
태사자와 같이 정사를 할 때에는 거의 반강제로 한 것이어서 뭘 느낄 틈도 없었다.
"흐읏..."
모용환은 그녀의 어설프나마 정성스러운 애무에 주유의 허리를 안고 육봉을 입 깊숙이 밀어 넣었다.
주유는 갑작스럽게 입 안으로 파고들어와 목구멍을 찔러대는 육봉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다.
"콜록... 갑자기 이러면 어떡해요. 하윽!"
"하하. 너무 기분 좋아서 그만. 미안, 미안."
모용환은 웃으면서 두 손을 아래로 내려 늘어진 그녀의 유방을 세게 움켜쥐었다. 안 그래도 풍만한 그녀의 유방은 엎드린 탓인지 더욱 손바닥 안에 착착 감기는 것 같았다. 찌르면 터질 듯 팽만한 젖가슴의 탄력은 일품이었다.
"아름다워..."
"흡! 하응...!"
그는 주유의 몸매에 감탄하며 젖꼭지를 비틀었다. 그 바람에 육봉을 빨고 있던 주유는 입으로 여전히 양물을 문 채 고개를 흔들어댔다.
'그간 너무 무심했었군.'
모용환은 주유에게나 손상향에게나 미안한 마음이었다. 예전과는 달리 관계시에 적극적인 모습이 그 동안 무척 외로웠던 것 같았다. 특히 남달리 성욕이 강한 주유였으니.
벌려진 다리 사이로 땀에 젖어 흔들리는 젖무덤이 보이자, 그 선정적인 모습에 모용환은 잠시 잠시간의 상념을 떨쳐버린 후, 탐스런 유방을 주무르며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가슴이 더 커진 것 같네. 장비와 비슷 하려나..."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장 언니와 비슷하다니?"
'헉!'
모용환은 아차 싶었다. 주유는 자신이 술김에 장비를 안았다는 것을 아직 모르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육손과 대교, 소교에다 조조와의 혼인 때문에 민감해져 있는 그녀였는데 장비까지 얽힌다면...
주유는 육봉을 애무하던 것을 그만두고 고개를 돌려 도끼눈을 뜬 채 그를 노려보았다.
"솔직히 말해요. 장 언니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그녀가 윽박지르자 모용환은 자신의 입을 꿰매버리고 싶었다.
'으이구, 입이 방정이지. 에라 모르겠다!'
"정말 미안한데... 술김이었어."
주유는 불길한 생각이 사실로 드러나자 이를 갈았다. 역시 이 바람둥이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흥! 술김?! 이걸 잘라버릴 수도 없고..."
그녀가 자신의 육봉을 지그시 노려보며 꽉 움켜쥐자 모용환은 온몸을 엄습하는 위기감을 느꼈다. 정말로 주유가 홧김에 육봉을 잘라버릴 수도 있겠다는 최악의 예감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미안하다니까."
"매일 말로만... 하악...!"
모용환은 주유의 잔소리가 이어지기 전에 재빨리 그녀의 벌어진 꽃잎 사이에 얼굴을 박았다. 다소 시큼한 냄새와 함께 꽃잎을 헤치고 들어간 혀끝에서는 비릿한 맛이 느껴졌다. 질 속을 휘젓는 뱀 같은 혀놀림에 주유는 하얗게 눈을 치떴다.
"흐으응..."
"안 씻었다더니, 정말이었네. 쿡쿡."
꽃잎에서 얼굴을 뗀 모용환의 말에 주유의 얼굴은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달아올랐다.
"나, 나쁜 사람... 그러니까 누가 이렇게..."
질퍽해진 꽃잎 사이에서 얼굴을 뗀 모용환은 주유를 자신의 위에 눕게 했다. 그리고는 그녀의 배를 잡고 꽃잎이 아닌, 국화에 육봉을 삽입했다. 예상치 못하게 국화가 공격당하자 주유는 헛숨을 들이켰다.
"아욱...! 거, 거긴..."
"뒤로는 두 번째 경험인가? 오늘은 특별히 선물도 가지고 왔지."
"학! 아아앙...!"
모용환은 손을 뻗어 자신이 벗어둔 옷더미 속에서 목남근을 찾아 주유의 꽃잎 속에 끝까지 밀어 넣었다. 앞뒤로 공격을 당하자 주유는 손을 허공에서 허우적댔다. 누워있어서 모용환을 끌어안을 수도 없었고, 맨바닥이라 마땅히 잡을 물건도 없었다.
그저 파도처럼 밀려오는 쾌감을 견디는 수밖에.
퍽! 퍽! 퍽! 질걱! 질걱!
"하아아아...! 흐윽! 흑!"
모용환은 주유를 몸 위에 눕힌 상태에서 빠르게 허리를 움직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목남근을 잡은 손 또한 쉬지 않고 꽃잎을 쑤셔대고 있었다.
어찌나 격렬하게 손이 움직이는지 목남근이 왕복운동을 할 때마다 그녀의 꽃잎은 움찔거리면서 애액을 사방에 튀겨대고 있었다.
'주, 죽을 것 같아...'
그녀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몸 전체로 모용환과 사랑을 나누는 것 같았다. 불덩이처럼 뜨거워진 몸은 전신이 하체와 감각을 공유하는 세포덩어리가 되었다.
이미 바닥은 홍수라도 난 것처럼 흥건했다. 원체 물이 많은 체질이기도 했지만 그녀가 몇 번이나 절정에 올라 애액을 싼 탓이었다.
"아아아아!"
결국 그녀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혼절하고 말았다.
격렬한 정사가 끝난 뒤, 정신을 차린 주유는 침상에 누워 모용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환랑."
"응?"
"나... 아이를 갖고 싶어요."
"음... 지금?"
"아니에요. 물론 지금은 안 되죠... 천하를 통일한 다음에... 이런 정무보다는 아이를 낳아서 오순도순 살고 싶어요. 동생들, 언니들도 함께요."
천하를 통일한 다음이라. 모용환은 아직 거기까지는 계획이 없었다. 지금 그로서는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힘들었는데, 주유는 그 뒤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참... 날 너무 높게 보는군. 그녀들도 다 같은 생각일까?'
그는 아내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될 거야. 그런데 오순도순 사는 게 가능할까? 천하통일을 하면 우린 황실 가족이 되는 건데."
"지금처럼만 살면 돼요. 전 딸을 낳고 싶어요. 아이들이 후계 때문에 다투는 일이 없었으면 하거든요..."
확실히 아들이 많다면 나중에 골육상쟁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나도 예쁜 딸이 좋은데. 그럼 딸만 낳자고 천지신명께 빌어야 하나? 너희들 닮은 딸만 나온다면 궁은 완전히 꽃밭이겠군."
"흥. 아부는 그 쯤 해둬요."
"하하하."
모용환은 주유의 보드라운 몸을 깊숙하게 껴안으며 눈을 감았다. 후일은 나중에, 지금은 이들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하후연은 수월하게 장안성 궁내에 잠입했다. 늦은 시간인데다가 궁내의 경비는 꽤나 허술했기 때문에 침입하기는 쉬웠다. 어떤 간 큰 사람이 동탁의 처소에 잠입하리라고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음기가 강한 밤이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시력이 좋아지는 귀안(鬼眼), 그리고 극도로 발달한 영감(靈感)과 단련된 신체는 은밀한 잠입을 가능하게 했다. 생기(生氣)가 느껴지지 않는 곳으로만 이동하면 되니 사람 눈에 들킬 일은 없었던 것이다.
"휴우..."
내궁에 심어져 있던 커다란 나무 위에서 주위를 둘러본 하후연은 아무도 없음을 알자 한숨을 내쉬었다. 소심한 그녀의 성격에 혼자 적진에 잠입하는 일은 그다지 맞지가 않았다. 이제 익숙해질만 한데도 몸은 아직도 떨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팔을 이를 악문 채 부여잡았다. 곽가의 마지막 부탁이다. 절대 실패할 수는 없었다.
마음을 가다듬은 하후연은 곽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연아, 난 이 봉투를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한 여인에게 줄 거다. 혹시라도 봉투가 찢어진 걸 느낀다면... 그녀가 위험에 처했을 거야. 미안하지만 네 능력으로 그녀를 구해주었으면 한다. 하하, 내키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돼.'
농담조로 말하긴 했지만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간절했었다. 그의 부탁은 서서라는 이름을 가진 한 여인을 구출해 달라는 것. 하후연은 서서를 잘 알고 있었다. 바로 동탁의 군사이자 수양딸인 아니던가.
'동탁의 내궁에서 잘 있을 그녀가 위기에 처했다니... 무슨 일이 생긴걸까?'
서서의 처소는 알기 쉬웠다. 봉투가 찢어진 곳, 그녀가 위치한 나무 앞에 있는 건물이 바로 그곳이었다. 아직도 불이 켜진 것으로 보아 안에 누군가 있는 듯 했다.
'일단 그녀와 만나도록... 헉!'
발소리를 죽이고 문이 살짝 열려진 서서의 처소로 다가가던 하후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방 안에서는 남녀가 교합할 때나 날 법한 음란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헉! 헉!"
"크음... 역시 미인의 몸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
"으흐윽...!"
'대체...'
두방망이치는 심장을 억누르고 살짝 벌어진 문틈으로 방 안을 엿본 하후연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방 안에는 세 명의 사내와 한 명의 여인이 땀에 젖은 채 짐승처럼 몸을 섞고 있었다. 그러나 풀려버린 여인의 눈은 일견하기에도 정상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이각. 주군이 알면 큰일이니 몸에 표를 내면 안 되네."
"크흐흐... 지금쯤 그 돼지는 서량의 어린년 아랫도리를 탐하고 있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게나."
"흐흐. 번주, 군사의 뒤 쪽은 어떤가?"
하후연은 그들의 말을 듣는 순간 윤간을 당하는 여인이 서서임을 깨닫고 다시 한번 경악했다. 그녀를 언급할 때의 곽가의 얼굴은 분명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는 애틋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여인이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꼴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유순한 성정을 가진 그녀답지 않게 살심이 치솟았지만 지금은 그저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소란을 일으킨다면 수비병들이 몰려올 테니.
그녀는 문에서 좀 떨어진 곳으로 가 몸을 숨겼다. 하지만 여전히 방 내부의 소리는 귓가에 들려오고 있었다.
"하으으윽! 하아...! 흐읍..."
"언제나 도도하던 군사가 이런 모습이라니. 흐흣, 미혼약의 효과가 대단하군."
자신의 흉물스런 육봉을 서서의 꽃잎에 쑤셔 넣고 있던 이각은 음흉하게 웃으며 그녀의 젖가슴을 떡 주무르듯 주물렀다.
그녀의 국화에 물건을 집어넣고 거칠게 왕복운동을 하는 번주는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이유님이 주신 약이니 어련하겠는가? 참 고마운 분일세. 명목상의 아내라지만... 클클."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으신 분일세. 우리야 좋지 아니한가? 즐기면 그만이지. 군사야 동탁에게 이미 더럽혀진 몸, 표만 안낸다면 그 누가 짐작이나 하겠는가."
"크크... 그래, 이런 일은 은밀할수록 재미가 쏠쏠한 법이지. 우웃! 고것 참!"
곽사는 그녀의 입을 탐하고 있었다. 그들의 짐승 같이 거친 움직임에 따라 서서의 가녀린 몸이 애처롭게 퍼덕였다.
하후연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표면상 동탁의 딸이자 군사였던 서서는 동탁의 눈을 속이고 휘하 장수들의 욕정을 푸는 노리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어처구니없게도 양부인 동탁과도 관계를 가진 듯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끓어오르는 분노에 하후연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때 마침, 볼일을 끝낸 세 사람이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이 보였다.
"거 참. 군사 때문인지 요즘엔 마누라도 보고 싶지 않더군."
"저런 계집을 그냥 두다니. 이유님은 사실 고자 아닌가?"
"클클. 그럴지도 모르겠네."
세 명의 대화를 들은 하후연은 그들의 뒷모습을 지그시 노려보고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멍한 얼굴의 서서가 허공을 응시한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동탁에게 들킬 것을 염려해 세 사람은 그녀의 몸을 깨끗하게 닦아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시간이 좀 흐르자 뱃속 깊숙한 곳에 있던 정액들이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저기..."
그녀를 안타깝게 쳐다보던 하후연은 혹시나 서서가 실성한 것이 아닐까 싶어 말을 걸어 보았다.
"...누구...?"
"과, 곽가 오라버니의 부, 부탁으로... 구, 구출하려고..."
하후연은 심하게 말을 더듬는 자신이 이때만큼 한심스럽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저 여인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을까? 자신이 곽가의 의중을 제대로 전했는지 자신이 없었다.
서서는 '곽가'란 이름을 듣자 고개를 돌려 자신의 방에 들어온 하후연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에 생기가 돌며 점차 또렷하게 초점이 잡히기 시작했다.
"...절 구출하러 오셨다고요?"
정액찌꺼기가 입 안에 남아있었는지, 아니면 한동안의 고초로 목이 쉬었는지 그녀의 음성은 상당히 탁했다.
하후연은 그녀의 말에 즉각 대답하지 않고 불안한 듯 다시 한 번 주위를 살폈다. 그런 그녀를 본 서서는 쓰게 웃었다.
"...그들이 마지막이에요. 오늘은 더 이상 올 남자가 없으니 안심하세요."
올 '사람'이 아니라 '남자'였다. 그녀의 말로 미루어보아 온종일 궁내의 장수들을 동탁 모르게 몸으로 상대하는 듯 했다.
하후연은 자신의 행동이 그녀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고개를 푹 숙인채 앉았다.
"미, 미안해요..."
"괜찮아요. 붉은 봉투... 때문에 오신 것 아닌가요?"
"마, 맞아요."
그녀는 서서에게 자신이 온 경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자신의 능력도. 그녀의 말을 들은 서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붉은 봉투를 열어보고 나서, 거기에 쓰여 있는 대로 봉투를 찢었었다.
귀신들린 봉투라더니, 과연 귀신을 들리게 한 장본인이 이렇게 온 것이다.
"언니가 절 조조님께 인도하는 분이군요."
"그, 그래요. 푸, 푸른 봉투는...?"
"써 있는 대로 했어요."
담담한 그녀의 말에 하후연은 다시 한 번 죄책감을 느꼈다. 자신이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도, 시상에 들리지 않고 왔더라면 서서가 받을 고통이 더 줄어들었을 텐데.
"느, 늦게 와서..."
"와주신 것만 해도 감사해요... 저는. 이제 믿을 사람은 그 사람이 보낸 언니밖에 없거든요. 전 지금... 누구도 믿지 못해요. 언니라는 희망이 없었다면 전 이런 고초를 견딜 수 없었을 테지요..."
자결을 했어도 진즉에 자결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구해주러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껏 버틸 수 있었던 것이었다. 서서에게 있어 하후연은 죽고 싶었던 상황에서 유일한 등불이 되어준 존재였다.
비록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일지라도.
"바, 바로 가도록 해요..."
"그래요."
주섬주섬 옷을 입는 서서의 눈에 한 줄기 안타까움이 스쳐지나갔다.
'그 아이를 데려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자신과 같은 처지에 처한 마초. 그녀는 여러 번 마초를 설득하려 했었다. 하지만 마초는 같이 나가자는 그녀의 말을 거부했다. 아버지와 같이 나가기 전에는 절대 나갈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어디에 감금되어 있는지도 모를 마등을 구출해 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결국 그녀는 마초의 설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동탁과 잠자리를 같이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이, 삼일에 한번 꼴로 잠자리 상대를 바꾸었다.
'그리고 스승님을 구해내야 해.'
그녀가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없었던 데에는 삼엄한 감시도 그렇지만 사마휘가 잡혀 있다는데 따른 제약도 컸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그녀는 마음을 독하게 먹은 상태였다. 기회가 온다면 탈출해서 사마휘를 구하기로.
사마의가 사마휘를 위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있다면 쉽사리 그녀를 해치진 않으리라 생각했다.
"뭐, 뭐 해요?"
"아니에요..."
아쉬움을 접은 서서는 몸을 일으키다 하체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통증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며 비틀거렸다. 그간 많은 사내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탓에 그녀의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괘, 괜찮아요?"
하후연이 걱정스럽게 물어보자 서서는 애써 웃어 보였다. 그녀의 신비로운 은색 눈동자에 어려 있는 따뜻한 기운을 보자 힘이 절로 솟는 것 같았다.
"네..."
초면이지만, 진정으로 자신을 걱정해주는 여인을 만났다는 생각에 서서의 눈동자에 어린 수심이 한층 옅어졌다.
그녀들의 두 번째 조력자는 고순이었다. 서서는 붉은 봉투에 안에 써져 있는 대로 푸른 봉투를 고순에게 전했는데, 고순은 은원이 칼과도 같은 여포와는 달리 곽가에게 빚을 진 빚을 아직 다 갚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조조를 구해준 것만으로도 그에게 진 빚은 넘치도록 갚은 것이었지만, 고순의 생각은 달랐다.
은혜를 입었으면 배로 갚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는 은밀하게 두 여인을 인도하며 말했다.
"내게 서신을 가져온 것은 잘한 일이었소. 만약 대장에게 가져갔으면 그 분은 그 자리에서 서신을 찢어버렸을 거요. 공과 사가 비정할 정도로 뚜렷하시니. 헌데, 당신은 그런 눈으로 앞이 잘 보이긴 하는 거요?"
"네, 네..."
여기서 맹인이라고 했다가는 고순은 절대 그녀들을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고순이나 서서나 그녀의 무예가 출중해서 안전하게 서서를 데리고 갈 호위무사 정도로 알고 있었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밤에만 국한된다는 점이 문제였다.
낮에는 영(靈)들의 도움과 신체의 감각만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다.
고순은 다소 미심쩍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더니 이내 시선을 돌렸다.
"뭐, 잘 보이는 듯하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말이오. 그나저나 군사, 몸은 괜찮소?"
"예..."
고순은 서서가 장수들의 노리개가 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마다 열불이 치솟았지만 이유와 마찰을 빚을 수 없어 참고만 있었다. 여포의 제지만 없었어도 고순은 당장에 그들의 목을 베었을 사람이었다.
고순의 안내로 두 여인은 패왕기의 훈련장 뒤편에 나 있는 쪽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한 눈에도 명마로 보이는 두 마리의 말이 투레질을 하며 대기 중이었다.
그러나, 그 곳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두 마리의 말 뿐만이 아니었다.
"고순. 그들을 데리고 어딜 가는 거냐."
커다란 그림자가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서 번쩍이는 반달형의 창날. 방천화극을 등에 맨 여포였다.
"대, 대장..."
고순과 하후연, 서서는 최악의 인물이 앞을 막아서자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아아..."
하후연은 말로만 듣던 천하무쌍, 여포의 위용을 직접 피부로 느끼게 되자 호랑이 앞의 토끼처럼 몸을 떨었다. 그의 기세도 기세지만 여포의 등 뒤에 매달린 수많은 영혼들이 그녀의 눈에는 보였다.
그들의 피를 토하는 귀곡성과 원망, 증오가 뒤섞여 주변을 요동치게 만들고 있었다.
'너무나 많은 업보...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여 온 걸까? 보통 사람이라면 이미 요절을 했을 텐데...'
그만큼 여포가 떠안은 망령들의 수는 일일이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가까이만 가도 질식할 것 같은 그의 흉험한 기세는 여포에게 죽임을 당한 수천의 망령들의 원한이 녹아들어 만들어진 것이었다.
"으으으..."
가장 몸이 약한데다가 그간의 피로까지 겹친 서서는 도저히 여포의 기운을 받아낼 수가 없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비틀거리는 서서를 보자 여포는 주위에 가득한 자신의 기운을 거두어 들였다.
여포의 투기가 사라지자 그제야 제대로 숨쉴 수 있게 된 일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서서를 부축한 하후연은 은색의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 우릴 막을 건가요?"
여포는 딱 잘라 말했다.
"물론이다. 그게 내 임무니까."
"대장! 정말 그럴 겁니까!"
"고순. 넌 나서지 마라. 내통죄 또한 군법으로 다스릴 것이니."
그의 스산한 살기에 고순은 움찔했다.
여포가 마음먹고 이들을 막으려고 나선 이상, 그들에게 희망은 없었다. 하후연은 어느 정도 근접 무술을 할 줄 알지만 활이 주무기였고, 그녀가 저격을 할 때까지 고순은 여포앞에서 버틸 재간이 없었다.
패왕기의 대장과 부대장이라지만 그 격차는 훨씬 컸다.
고순은 짧은 순간 갈등했다. 일시적이나마 이 위기를 모면할 것이냐, 아니면 여포에게 대항해 작은 가능성이나마 열어 볼 것인가.
결단은 빨리 내려졌다.
고순은 검을 뽑아들고 여포에게 달려들었다.
"대장! 어디 한 번 겨루어 봅시다! 사실 대장자리가 탐나던 차였소!"
"어리석군."
"난 원래 그런 사람이오!"
'젠장, 내가 이런 일에 목숨을 걸게 될 줄이야!'
그는 자신이 오래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하후연과 서서에게 외쳤다.
"어서 도망가시오! 난 걱정말고!"
"하, 하지만..."
심약한 성격의 하후연이 망설이자 고순은 여포의 무시무시한 참격을 간신히 피해내며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가란 말이야! 맞아 죽기 전에 속이 터져 죽겠소!"
그의 절박한 외침에 서서는 힘겹게 말에 올라타며 말했다. 상황판단이 냉철한 그녀는 고순이 희생을 하면서까지 만들어준 퇴로를 포기할 수 없었다.
"어서 가요. 이게 저분을 위하는 길이에요."
"그, 그... 죄, 죄송해요!"
망설이던 하후연은 고순에게 고개 숙여 사과한 뒤 말에 올라탔다.
히히힝!
두 기의 기마가 뒷문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자 고순은 맥이 탁 풀렸다. 어차피 이길 수 없다는 걸 빤히 아는 이상 대장인 여포와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싶지는 않았다. 먼저 대장의 명을 어긴 건 자신이니, 죽어도 할 말은 없었다.
덜그렁.
그는 칼을 내던지며 눈을 감았다.
"졌소. 죽이시오."
'사나이 고순, 이렇게 가는구나.'
한참을 서 있던 고순은 여포에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의아해졌다. 그는 실눈을 살짝 뜨며 여포를 살폈다.
"대장...?"
"오는군."
여포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고순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미세한 땅의 진동으로 몇 마리의 말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서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안 동탁, 혹은 이유가 추적대를 편성해서 보낸 것 같았다. 성문을 통과하지 않고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이곳이 유일했으니까.
고순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녀들이 밖으로 나간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지금 추적대가 따라붙는다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 때 여포가 말했다.
"고순, 단도는 어딨지?"
"예? 여, 여기에..."
그는 영문도 모르고 여포에게 단도를 건넸다. 잠시 무심한 눈으로 시퍼런 단도를 본 여포는 갑자기 단도를 역수로 쥔 채 자신의 왼쪽 가슴을 향해 힘껏 찔렀다.
푹!
"대장!"
"......"
심장 부근에 단도가 깊숙하게 박혔음에도 불구하고 여포는 살짝 미간을 찡그렸을 뿐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갑작스런 그의 자해에 대경한 고순이 지혈을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는 꾸역꾸역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런 상처는 오랜만이로군."
"아니, 대장! 오랜만이고 자시고 이게 대체 무슨...!"
"추적대가 오면 기습을 받아 내가 쓰러졌다고 전해라. 그래서 그들을 놓쳤다고 하면 될 거다."
"세상에 아무리 기습이라지만 누가 대장을 쓰러뜨린단 말이오! 그게 말이 되오?"
고순이 황당해하며 여포의 몸을 흔들자 여포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리 강철 같은 그의 몸이었지만 이 정도의 과다출혈을 하고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만. 그냥 그렇게 해. 아니면... 유비군의 모용환인 것 같았다고 말해라. 으음... 어지럽군."
지금 이 순간 그가 왜 생각났는지는 여포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기를 쓰고 그의 공격을 막던 모습이 인상에 남아서일까?
'...모르겠군.'
여포는 생각을 잇지 못하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과도한 출혈로 인해 기절한 것이다.
고순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자신의 대장을 내려다보았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소...?"
지금 생각해보면 여포의 의도는 명확했다. 그가 막아서지 않았다면 서서와 하후연은 탈출에 성공해도 내부에 내통자가 있다는 뜻이니 궁내부는 한동안 시끄러웠을 것이다. 더불어 평소 서서에게 호의를 가졌던 그가 유력한 용의자가 되었을 테고. 하지만 여포가 쓰러질 정도의 실력자가 동행하고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비록 기습이었을 지라도 여포를 이겼다는 것은 대단한 무예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니, 동탁은 다른 의심은 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대장도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단 말이오... 말이라도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나 참..."
고순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늘어진 여포의 몸을 부축했다. 지척까지 다가온 추적대가 쓰러진 여포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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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연참 약속은 지켰습니다 =ㅁ=
즐거운 설 되셨는지..?
짤방은 아령입니다. "서서가 도망쳤다고...?"
"그, 그렇습니다."
궁성 수비는 곽사가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유 앞에서 우물쭈물했다. 사실상 동탁의 세력을 모두 거머쥔 것이나 다름없는 그가 좌천을 시킨다면 변명의 여지없이 낙향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조력자가 있었을 텐데, 누구지?"
다행히 이유가 그리 언짢아하는 기색이 아니자 곽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만 여포 장군께서 쓰러지셨을 정도면..."
"여포가?"
덤덤하던 이유도 곽사의 그 말에는 상당히 놀란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포가 누구인가. 천하에서 일기토로는 감히 당할 자가 없다고 알려진 최강의 장수인 것이다.
그런 그가 쓰러졌다니.
"예. 정면 대결은 아니었던 듯 합니다. 고순이 말하길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여포 장군께서 군사에게 정신을 쏟는 틈을 타 단도를 던졌다고 합니다. 다행히 심장은 겨우 비켜나간 것 같은데... 상당한 중태이십니다."
"흐으음..."
이유는 현재 나이든 가면을 벗어버리고 젊은 방통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가 매끈한 턱을 매만지며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자 곽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고순은 그가 유비군의 모용환... 이었던 것 같다고 합니다만. 역시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모용환...? 하하핫!"
갑자기 이유가 웃음을 터뜨리자 곽사는 멀뚱히 그를 쳐다보았다. 그로서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근래에 가장 많이 들리는 이름이더군. 묘하게 신경을 거슬린단 말이야. 여기서도 그 자의 이름이 나오다니. 원래는 있어서는 안 될 이름일 텐데."
"예...?"
"아아. 아니다. 그나저나 여포가 머리를 썼군. 후후... 그 성격에 직접 그랬을 리는 없고, 아마 고순인가? 흠. 이런 일로 버리기엔 아까운 인물이지."
이유는 곽사의 말을 듣는 순간부터 여포가 수를 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알기로 서서와 모용환은 아무런 연고가 없을뿐더러 상식적으로 형남에 있는 모용환이 그 먼 거리를 달려왔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야기를 좋아하는 재담꾼들이야 그런 것에 상관없이 떠들 테지만.
"곽사."
"예."
"거사를 해야겠다."
"......!"
곽사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이다.
"유비군이 너무 컸어. 이번에 조조도 유비의 산하에 들어갈 터. 이쯤에서 우리도 세력을 불려야 하겠지. 마등은 어디에 감금되어 있나?"
"뇌옥(惱獄)에 있습니다."
"가자."
장안성의 뇌옥은 보통 감옥과는 달랐다. 악질적인 대역죄인들을 수감하기 위한 곳으로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데다가 발목까지 썩은 물이 고여 있었다. 게다가 매일 주어지는 식사도 하루 두 번, 모래 섞인 찬밥덩이가 전부였다.
"으으..."
마등은 끔찍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두 눈은 어디 갔는지 시꺼먼 구멍만이 뚫려 있었고 바짝 마른 몸은 해골에 가죽만 입혀 놓은 듯 했다. 게다가 발목은 푸르뎅뎅하게 부어 썩어들어 가고 있었다.
악취가 진동하는 뇌옥에 곽사와 함께 들어온 이유는 그의 처참한 몰골에 눈살을 찌푸렸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지? 최소한 얼굴은 온전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뒀을 텐데."
"그, 그것이... 동탁이..."
"빌어먹을 돼지 같으니. 뭐, 상관없겠지."
이유는 후각을 찌를 듯 자극하는 냄새에 코를 막았다. 어차피 마등은 저런 몸으로 오래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마초가 그를 알아봐야 했기 때문에 얼굴은 온전히 하라고 했던 것일 뿐. 그래도 혈육인 마초가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시체와 다름없는 마등을 본다는 것이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도 한 때는 서량을 호령하던 태수였던 그였으니.
'어지간히 마등에게 쌓인 게 많았나 보군. 그나마 혀를 뽑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죽은 듯 말이 없는 마등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마등. 살아있소?"
"...더러운 놈들..."
아직 정신은 온전한 모양이었다.
"당신을 구해주러 왔소. 좀 더 일찍 오지 못해 미안하오."
"...무슨... 넌 누구냐...?"
마등이 관심을 보이자 이유는 그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은근하게 말했다. 마등은 그의 호의적인 손길에 흠칫 몸을 떨었다. 눈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앞의 이 자가 자신을 해칠 뜻이 없다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유. 당신도 알다시피 난 동탁의 군사요."
"...그런데 왜..."
"당신도 동탁의 폭정을 잘 알지 않소? 이미 그에 불만을 가진 제장들이 모여 거사를 일으키기로 했소. 이미 세력의 구할은 우리 손에 들어왔고 남은 것은 그 욕심 많은 늙은이를 처단하는 것뿐이오. 무위가 함락되었을 당시에는 우리의 입지가 불안했기 때문에... 서량의 영웅을 이대로 방치한 우리를 용서해 주시오."
중후한 말투와는 다르게 약간 간드러지는 목소리에 마등은 다소 듣기가 좀 거북했지만 그의 뜻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날... 회유하는 건가? 뭣 때문에? 내 혈육은 모두 죽었고... 난 이미 살 뜻이 없다..."
"아직 한 명이 남아 있소. 당신의 딸 마초 말이오."
"초, 초아가...!"
두 눈이 없음에도 마초는 앞에 서 있는 이유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그의 손에서 풍겨오는 썩은내에 옆에 있던 곽사가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이유는 별반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 그 아이는 어찌 되었지?!"
"이런 말 하기는 뭐하지만... 동탁의 첩실이 되었소."
마등은 비틀거리며 이유에게서 손을 뗐다. 남달리 무예에 대한 자질이 뛰어나 특히나 어여삐 여겼던 딸이었다. 마씨 일가의 금지옥엽이었고, 특히 자신에게 얼마나 극진했던 아이였다.
그리 귀하게 키운 딸이 늙은 돼지 같은 동탁의 첩실이 되다니! 믿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머리를 감싸 쥐며 처절하게 절규했다.
"으아아아아! 동타아악--!"
이유는 꺽꺽거리며 울부짖는 마등을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았다.
"우리를 따른다면 마초를 구해낼 수 있소."
"흐으으..."
"오직 당신 때문에 그녀는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이오. 우리는 그녀에게 약속했소. 조금만 참고 기다린다면 당신을 구해주겠다고. 딸을 보고 싶지 않소?"
마초가 서서를 따라 도망치지 않은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이유는 이미 마초에게 마등을 구해주겠단 약조를 했던 것이다.
그에게 달리 마등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후 사마의와 세력을 합쳤을 때 그 휘하 장수들과 비교하면 동탁의 장수들은 다소 떨어지는 면이 있었다. 그나마 화웅이나 황보숭 같은 자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마등을 이용해 마초를 손에 넣으려 한 것이었다.
이유의 계략은 성공적이었다.
"나, 난... 두 눈이 뽑히고 몸도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당신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힘이 될 것이오. 차후 그녀가 대업을 위해 힘을 쓰도록 격려만 해준다면, 당신이 따로 할 일은 없소."
"대업...?"
"천하통일. 그 일익을 그녀가 담당하게 될 것이오."
아직 몸이나 경험등이 미숙해 화웅에게 패하긴 했지만, 차후 1, 2년만 지난다면 마초는 중원의 최강자 중 한 명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천고의 재능을 가진 그녀였으니 이유가 탐을 내는 것도 당연했다.
마등은 망설였다. 동탁의 첩실이 되었다면 이미 험한 꼴을 당했을 터인데 그런 딸에게 다시 전장을 전전하라고 말할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유는 그런 그의 내심을 눈치 채고 다시 한 번 그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기로 했다.
"지금도 그녀는 동탁의 비계덩어리에 깔려 신음하고 있을 것이오. 빨리 결정 하시오."
그의 말은 결정타였다. 마등은 거친 숨소리를 내며 곽사의 부축을 받고 일어섰다. 다리가 썩어버려 질질 끌리다시피 했지만, 그는 기어코 두 다리로 땅을 디뎠다.
"당신의 말을 따르겠소!"
이유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눈이 없는 마등은 그의 그런 미소를 보지 못했다.
'이걸로 애매한 태도를 보였던 방덕 또한 확실히 수중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잘 생각하셨소. 어서 가도록 하지요."
마등은 붉게 녹이 슨 쇠창살을 꽉 붙잡으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의 머리는 동탁에 대한 분노와 딸에 대한 걱정으로 꽉 차 있었다.
서량의 사자는 우리를 나서며 피맺힌 포효를 터뜨렸다.
"죽여버리겠다-! 동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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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당하는 마등.. 안습.
짤방은 마초 재탕. 동탁은 아직 간밤에 서서가 도망친 것을 몰랐다. 아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는 마초의 몸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서서나 마초 모두 빼어난 미인이었지만 아무래도 나이가 들다보니 어린 쪽을 선호하게 된 그였으니, 서서보다는 마초와 관계를 가지는 경우가 잦았다.
"허허헛! 회춘을 하는구나."
"으으윽!"
동탁은 이제 완전히 본색을 드러낸 상태였다. 수하들이 들어오건 말건 그는 태사의에 앉은 채로 마초를 농락하고 있었다.
그녀는 동탁의 무릎 위에 앉아서 몸을 흔들고 있었는데, 풋풋한 꽃잎 속으로 징그러운 육봉이 들락거릴 때마다 답답한 신음을 토했다.
가슴털이 무성한 동탁에게 안겨 있으면서도 그녀의 눈은 전혀 기세가 죽지 않고 있었다.
'죽일 놈!'
동탁은 거친 들풀처럼 밟아도 전혀 꺾임이 없는 마초의 사나운 성질이 마음에 들었다. 대가 센 계집일수록 깔아뭉개는 맛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인지라, 그녀의 성정은 가학성을 더욱 자극했던 것이다.
'으흐흐... 제깟 년이 눈을 부라려 봤자지. 제 아비의 목숨이 내 손에 있는데...'
그는 봉긋 솟아 있는 마초의 젖가슴을 우악스럽게 틀어쥐었다.
"악!"
이미 그녀의 뽀얀 젖가슴에는 푸르스름한 멍 자국이 여기저기 나 있었다. 동탁은 다른 한 손으로는 마초의 머리채를 잡으며 혀를 내밀어 그녀의 입술을 핥았다.
"가임기간이 아닌 게 아쉽구나... 그래, 다음 달거리는 언제냐?"
"닥쳐! 아윽!"
눈을 부릅뜨던 마초는 동탁이 깊숙하게 육봉을 박아 넣자 하체에서 밀려오는 고통에 얼굴을 찌푸렸다.
"흐흐. 그래도 혹시 모르지. 저번에 임신이 되었을지? 어서 내 후계자의 모습을 보고 싶구나... 응?"
음흉한 얼굴로 그녀의 목덜미를 애무하던 동탁은 갑자기 자신의 처소를 난입한 자들을 보자 흠칫 하다가, 이내 그들이 자신의 심복들인 것을 알자 불같이 화를 냈다.
"이럴 땐 들어오지 말라니까! 아니, 그 놈은 왜 끌고 온 거냐?!"
동탁이 같이 온 마등을 보고 의아해하자 이유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저 돼지가 이제 곧 저 죽을 줄 모르고 날뛰는 꼴이 우스웠던 것이다.
"아, 아버지!"
"억!"
마초는 마등을 보자 벗은 몸을 가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동탁을 강하게 밀치고 황급히 그에게 달려갔다. 두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퀭한 구멍만이 뚫려 있었지만 저 야윈 사내는 분명 자신의 아버지인 마등이었다.
동탁의 방에 들어오기 전 그가 했던 말을 들은 마등의 얼굴은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노오옴...!"
"아버지... 흐흑..."
마등은 자신에게 안겨 몸을 떠는 딸을 어루만졌다. 아직 열락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알몸. 설마 했는데 정말로 가족들을 죽인 원수놈이 딸의 몸을 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괜찮다... 이제 괜찮아..."
마초를 달래면서도 마등의 얼굴은 역류하는 피 때문에 야차같이 변한 상태였다. 비록 두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바로 앞에서 당황하고 있는 동탁의 모습은 보고 있는 것처럼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냐!"
자신이 있는 곳을 정확히 노려보며 이를 가는 마등을 본 동탁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마등과 같이 온 이유나 곽사는 그저 무심히 그를 쳐다볼 따름이었다.
"상국. 이제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내려오셔야겠습니다."
"이, 이놈... 날 배신한 거냐!"
언제나 간신웃음으로 그에게 아부를 떨던 이유가 차가운 얼굴로 말하자 동탁은 열불이 치솟았다.
그는 옆에 걸어둔 보검을 빼들었다.
"이 죽일 놈! 그동안 어여삐 여겨 잘 대해줬건만, 이런 짓을 해?! 난 곧 제위에 오를 사람이다! 네놈 따위에게 죽을 것 같으냐!"
"이미 상국이 주색에 빠져 있는 동안 대부분의 장수들이 날 따르기로 했습니다. 조용히 죽어주시지요."
이유의 옆에 서 있던 곽사는 그의 말을 거들며 나섰다.
"역적 동탁! 저승에서 황제 폐하께 사죄해라!"
"저, 저 놈이...!"
동탁은 황족들을 죽일 때 가장 앞장섰던 곽사가 이리 말하자 혈압이 솟구쳤다.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자기 주위에서 아부를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리도 쉽게 얼굴 가죽을 뒤 바꾸다니!
"...잠깐."
곽사와 동탁이 서로의 무기를 맞대려 할 때, 솜털이 쭈뼛 곤두설 만큼 살기어린 목소리가 한구석에서 들려왔다.
"어엇?"
"이리 줘."
마초는 곽사에게서 빼앗듯이 칼을 가져오고는 죽이고 싶다는 심정이 뚝뚝 묻어 나오는 눈초리로 동탁을 노려보았다. 한동안 그의 노리개가 되었다지만 서량을 주름잡던 실력이 어디가는 것은 아니었기에 동탁은 그녀의 위압감에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 또한 지닌 무력이 약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전장에 직접 나선 지는 오래 전 일, 감이 무뎌질 대로 무뎌진 그가 마초의 날카로운 살기를 감당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이, 이년... 지아비를 죽이겠단 거냐?"
스스로도 진검을 든 마초를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궁지에 몰린 동탁의 음성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마초는 씹어뱉듯 말했다.
"지아비? 미친놈이 헛소리를 하는구나. 오라버니들을 죽인 것도 모자라 아버지의 두 눈마저 저렇게 만들다니. 오늘 너를 죽여 혈채를 받아가겠다."
"여, 여포는 어디 있느냐! 어서 날 보호해라!"
차츰차츰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동탁은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연신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중태에 빠진 여포가 올 수 있을 리도 없거니와 동탁이 아닌 방통에게 충성을 바치기로 계약을 한 그가 동탁을 도와줄 가능성은 전무했다.
아직도 하체에 저 흉칙한 양물이 들어있는 것 같았다. 마초는 욱신거리는 하체의 통증을 참아내며 중얼거렸다.
"더러운 늙은이...!"
채앵!
"허억!"
손목 힘이 예전에 비할 바 못되는 동탁은 원독에 찬 마초의 단 일검을 막아내지 못했다. 아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었어도 몇 합은 겨룰 수 있었을 테지만 그러기엔 옆에서 싸늘하게 웃고 있는 이유의 얼굴이 그의 정신을 너무나도 산만하게 만들었다.
'이,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검을 놓친 동탁은 얼얼한 손목을 부여잡으며 눈을 빛냈다. 마등! 거의 불구나 마찬가지인 그를 사로잡는다면 다시 마초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으리라.
"크아아아!"
동탁은 괴성과 함께 마초가 아닌 마등에게로 달려들었다. 그 옆에 서 있던 곽사는 거대한 몸집의 동탁이 달려들자 굉장한 압박감에 헛바람을 들이켰다. 자신의 수중에는 검도 없지 않은가.
서걱!
"끄아악!"
그러나 동탁의 행동은 시도로만 그쳤다. 옆을 스쳐지나가는 동탁의 다리를 마초가 단숨에 베어버린 것이었다. 왼발을 잃은 동탁은 우당탕 소리를 내며 볼썽사납게 자빠져 나뒹굴었다.
"내, 내 다리가... 으아악!"
서걱.
마초는 동탁의 오른쪽 다리도 허벅지부터 잘라내었다.
"편히 죽여줄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끄어어어..."
동탁은 너무 고통스러워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렸다. 상처 부위가 불로 지진 듯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두 다리는 오라버니들의 몫, 그리고 이건..."
"크아아악!"
마초는 동탁의 두 팔마저 잘라버렸다. 몸뚱이와 머리만 남게 된 동탁은 목이 터져라 비명만 질러대었다. 그녀는 광기마저 엿보이는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낮게 읊조렸다.
"아버지 두 눈의 값이다."
그 잔인한 광경에 곽사는 고개를 돌렸다. 벌거벗은 소녀가 거대한 몸집을 지닌 늙은이를 토막 내고 있는 모습은 일견하기에도 무척 괴기스러웠다. 다만 이유만이 흥미로운 듯 그것을 감상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방 안은 이미 동탁이 흘린 핏물로 가득했다.
"주, 죽여줘..."
"아직 말할 힘은 남은 모양이군."
"으어억...!"
그녀는 다시 칼을 휘둘러 동탁의 양물마저 잘라버렸다. 처음 방 안에 들어왔을 때와는 다르게 안쓰럽게 쪼그라든 그의 남근은 처참하게 잘린 채 방 안에 나뒹구는 꼴이 되었다. 마초는 타오르는 눈으로 그것을 노려보더니 맨발로 남근조각을 짓밟아 버렸다.
'지, 지독한...'
살짝 고개를 돌렸다가 그걸 본 곽사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가렸다. 저 고통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았다. 마치 지렁이를 밟아 죽이듯 하는 모습에 오금이 저려왔다. 마초를 손대진 않았지만 서서를 능욕한 전례가 있었기에 더욱 그런지 몰랐다.
'저 정도 독심(毒心)이면 훌륭한 병기가 되겠군.'
이유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그런 둘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초는 이제 엄청난 출혈로 피부가 새하얗게 질려 버린 동탁의 머리 옆에 쪼그려 앉아 속삭이고 있었다.
"이제 죽을 준비는 됐나? 킥킥."
겁탈당할 때의 충격과 뼛속까지 스며든 원한으로 인해 그녀는 살심이 골수까지 침투한 상태였다. 광기에 물든 마초가 동탁의 눈에는 마치 악마처럼 보였다.
그녀의 스산한 살기에 마등까지도 몸을 떨 정도였으니.
"끄으으으..."
탈진한 동탁은 이제 말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단지 공포에 질린 두 눈으로 죽음을 애걸할 뿐.
스걱.
마초는 가차 없이 그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몸뚱이에서 떨어져 나온 그의 머리를 발로 차버렸다. 데구르르 굴러간 일그러진 머리통은 한쪽 벽에 세게 부딪치고 나서야 움직임을 멈추었다.
난세의 마왕(魔王)이라고까지 불렸던 동탁의 최후치고는 너무도 비참했다.
"영원히 죽어버려... 지옥에 가서도."
퍽.
저주를 퍼부은 마초는 진득하니 피가 흘러내리는 검을 던져 동탁의 머리에 박아버렸다. 검에 꿰뚫린 머리는 아직까지도 더 흘릴 피가 있는지 간헐적인 꿈틀거림을 보였다.
"아하, 하하하..."
공허한 눈으로 그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던 마초의 허망한 웃음소리가 피로 얼룩진 방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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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이 뒈졌군요 ㅇㅇ 그런데 마초 맛이 좀 간듯 모용환은 시상으로 복귀하자마자 분주한 시상의 분위기에 어리둥절했다. 그는 평소와는 다르게 궁내에서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며 제갈량의 집무실에 들어갔다. 산만한 궁의 분위기와는 달리 제갈량은 여전한 모습으로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
"나왔어."
"오셨네요."
회의 때만큼은 아니지만 집무실에서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의 그녀의 모습 또한 상당히 사무적이었다.
"서방님 오셨는데 할 말이 그것뿐이야?"
"그런 얘기는 침대 위에서 하세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내뱉는 제갈량의 태도에 모용환은 두 손을 들었다.
"말로는 못 당하겠다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궁 사람들이 바쁜 거지?"
그의 물음에 제갈량은 그제야 서류에서 눈을 떼었다.
"아. 환랑은 모르시겠네요. 조만간 즉위식을 할 예정이에요."
"즉위식...?"
"유비님께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신다는 소리에요."
너무나 갑작스러운 말에 모용환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뜬금없이 황제의 즉위식이라니. 그는 약간 벙찐 얼굴로 물었다.
"지금 이 시국에?"
"즉위식 한 번 한다고 나라가 흔들리지는 않아요. 대패를 했기 때문에 사마의도 섣불리도 도발은 못할 테고요."
모용환은 어쩐지 기분이 묘해졌다.
'그 울보 아가씨가 황제가 된다니... 어쩐지 마중도 안 나와서 좀 섭섭했는데. 지금쯤 바쁘겠구나.'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낸 이후로 유비는 모용환을 대함에 있어서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저번에 술에 취해서 안아달라고 요구했던 것도 그렇고. 그를 피해 다녔던 이전 모습과는 대조적이었기에 모용환은 그런 그녀의 변화를 반겼다.
지금은 장비에게 지은 죄가 있는지라 오히려 그 쪽에서 피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이곳에 오자마자 한 눈에 반했던 소녀이자 첫 여자였다.
그는 가만히 지난 유비와의 추억을 떠올려 보았다.
그래봤자 생각나는 건 촉촉하게 젖은 눈, 발갛게 상기된 볼, 허리어림까지 늘어뜨린 생머리와 보호본능을 물씬 자극하는 가녀린 몸...
'이런 젠장. 나란 놈은 왜 이런 게 먼저 생각나는 거지?'
생각나는 건 유비의 알몸밖에 없었다. 어쩌면 지극히 자연적인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그런 생각이 나니 또 이상한 감흥이 일어났다.
이대로 유비가 황제가 된다면 그녀는 대륙 최초의 여제가 되는 셈이다. 그런 여황제를 자신은 품에 끼고 잔 사람이 되는 것인데, 왠지 모를 우월감이 치밀어 올랐다.
"하하... 황제의 남편이라... 왠지 멋있는데?"
모용환이 실없이 웃자 제갈량은 다시 서류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실권은 상국(相國)에게 있을 텐데요. 유비님은 그런 일 싫어하세요."
"응? 상국?"
"네. 모용 상국. 즉위식과 더불어 관제도 정비할 생각이에요. 이미 세력은 제후국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커졌어요. 청주, 서주, 회남, 양주, 형남, 교주가 모두 아군의 세력권이에요. 대륙의 삼분지 일을 차지한 셈이죠."
사실이 그랬다. 한 황실의 황제가 생존해 있었다면 감히 황제를 칭하지 못하고 왕이라 불러야겠지만, 그녀 자신이 황실의 맥을 이었고 가진 세력 또한 일국을 세우기에 충분하니 제위에 올라 나라를 세워도 부족함이 없었다.
"환랑은 이미 상국에 내정되어 있어요. 유비님은 군사를 다스리는 일에 문외한이시니, 실질적인 군권은 환랑에게 있죠."
상국은 황제 다음 가는 직위로 동탁이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자신을 칭했던 관직이기도 했다. 상설직은 아니었고 지금처럼 특수한 경우에 만들어지는 관직으로서 모용환은 황제의 남편이기 때문에 이런 직위를 갖게 된 것이었다. 그의 직위는 승상을 비롯한 삼공(三公)을 발아래에 두는 말 그대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였던 것이다.
누구라도 바라마지 않을 직위였건만 모용환은 떨떠름했다. 공을 논하자면 결코 제외되어서는 안 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래도 관우 형님이 계신데..."
"관우님은 대장군(大將軍)이 되실 거예요."
그녀가 말하는 투로 봐서는 이미 모든 관직들에 대한 임명이 끝난 것 같았다.
"허어... 그럼 승상은 누구야?"
"즉위식 때 듣도록 하세요. 업무에 방해되니 이만 나가주셨으면 하네요. 그리고 즉위식 직후에 바로 혼례도 올릴 테니 알아두세요."
모용환의 질문이 길어질 것 같자 제갈량은 딱 잘라서 말했다. 그녀도 행사 준비로 무척 바빴기 때문에 그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 줄 시간이 없었다.
그는 제갈량의 그런 입장을 이해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려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우뚝 멈춰 서서 말했다.
"행사 주관은 모두 량아가 하는 거지? 그럼 혼례 준비는 다른 사람한테 맡겨. 량아도 그날 신부가 되서 식을 올릴 테니까."
"알겠어요... 네? 지금 무슨..."
"알았지? 그럼 난 간다."
그녀는 건성으로 대답하다가 화들짝 놀라 모용환을 쳐다보았다. 그는 손을 한번 흔들어 주고는 제갈량의 집무실을 나섰다.
그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유비의 처소였다. 물론 유비 옆에는 장비도 있을 테고, 그녀와 관계를 가진 후 처음 만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다소 껄끄럽기는 했지만 그래도 안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용환이 문 가까이 다가갔을 때, 안에서 도란도란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 언니. 괜찮아 보여요?"
뭔가 불안한 듯한 유비의 목소리.
"아름다우십니다."
유비를 하늘 같이 떠받드는 장비다운 말.
"칫. 장 언니에게 물어보면 다 좋다고 하잖아요.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겠어요."
친자매처럼 지내는 장비에게는 평소 볼 수 없었던 색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유비였다.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투정부리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모용환은 왠지 장비가 부럽다고 느끼며 슬며시 문을 열었다.
"제가 봐 드리면 어떨까요?"
"사, 상공!"
"너!"
눈을 크게 뜨고 모용환을 바라보는 유비의 눈에는 반가운 기색이 어려 있었다. 그러나 장비는 잠시 당황했다가 이내 얼굴을 붉히며 성난 얼굴로 바뀌었다.
술김에 격렬한 정사를 벌였다가 그가 보는 앞에서 오줌을 지리고 만 것은 장비에게는 씻을 수 없는 치욕으로 남아 있었다.
"풋! 와하하핫!"
대비되는 두 여인의 반응을 은근히 즐기며 방에 들어온 모용환은 유비의 모습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항상 남자 황제들만 봐 오다가 그녀의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어색했던 것이다.
소탈한 유비의 모습만을 봐와서 그런지 마치 시골 아가씨가 몸에 맞지 않은 비단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았다.
"우, 웃지 마세요!"
가녀린 체구에 황금빛 용포를 두르고 커다란 면류관을 쓴 유비는 모용환이 폭소를 터뜨리자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 그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러자 고정되어 있지 않은 면류관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아얏!"
"푸하하!"
"무, 무례한... 괜찮으십니까!"
머리에 맞지 않게 커다란 면류관이 흔들리자 앞뒤에 매달린 구슬 줄이 그녀의 얼굴을 찰싹 때렸다. 유비가 얼굴을 감싸 쥐자 모용환의 웃음소리는 더욱더 커졌고, 그녀의 존체가 상하지(?) 않을까 염려된 장비는 그를 지그시 노려보며 유비를 감싸 안았다.
"아, 이거야 원... 옷은 그렇다 치고 예모(禮帽)가 너무 큰 것 아닙니까? 백관(百官)들 사이를 걷다 모자가 떨어지겠습니다."
어찌나 웃었는지 눈물이 찔끔 맺힌 그가 말하자 유비는 면류관을 벗어들고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 지금 만들고 있어요. 이걸로 예행연습을 하려던 것뿐이에요."
그녀는 다소 새침해진 것 같았다. 의젓하기만 하던 유비를 봐온 모용환으로서는 그녀의 변화가 신선하기만 했다. 유비에게 이런 면이 있었던가? 왠지 그녀를 더 놀리고 싶어진 그였다.
"역대 황제들은 키가 컸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여자인 만큼 유비의 키는 작았다.
"신하들은 위엄 있는 황제를 잘 따른다지요."
시녀들에게마저 세심하게 배려하는 그녀에게 위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신발도 커서 걸을 때 마다 소리가..."
"그, 그만 하세요!"
"황제 폐하가 되실 분에게 그게 무슨 소리얏!"
그가 유비를 놀리자 울음기가 섞인 유비의 음성과 함께 모용환을 잡아먹을 듯 소리치는 장비의 고함이 들려왔다. 모용환은 장비의 말을 싹 무시하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유비의 볼을 잡고 쫘악 늘렸다.
"사응고옹 느아주세으요!(상공, 놔주세요!)"
유비는 자신을 어린애 다루는 듯 하는 -이제 19살이었지만- 모용환의 태도에 화가 났는지 힘껏 그의 팔을 밀쳐내려고 했다.
그는 유비와 똑바로 시선을 맞추며 다정하게 말했다.
"황제는 울어선 안 되는 겁니다. 후후."
"아..."
모용환은 그 말과 함께 유비를 끌어안은 채로 들어올렸다. 덕분에 면류관이 바닥에 나뒹굴며 짜라랑하는 소리를 냈지만, 두 사람은 그런 것 따위는 상관하지 않았다.
유비는 모용환의 체온을 느끼며 눈을 살며시 감았다. 자신의 목을 껴안은 채 어깨에 얼굴을 묻는 유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모용환은 못마땅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장비와 마주했다.
"난 유비님과 혼인식을 올릴 때, 모두와 함께 혼례를 치룰 생각이야."
갑작스런 그의 말에 장비는 그를 쏘아보았다.
"그런 말을 내게 하는 이유가 뭔데?"
"솔직한 심정으로는 너도 그 때 나와 같이 식을 치뤄 줬으면 해. 이렇게 애매한 상태로 있는 건 너무 찝찝하거든. 하지만 한 번 관계를 가졌다고 해서 내 여자가 되라는 소리는 아니야. 네가 싫으면 할 수 없는 거고..."
"누, 누가 너 따위랑 혼례를 치른다는 거야?!"
그러나 그녀는 뒤이어진 유비의 말에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장 언니도 함께 하는 건가요? 잘 됐어요! 사실, 저 너무 떨렸거든요."
유비가 무척이나 반기는 분위기이자 모용환은 피식 웃었다. 철혈의 제후 조조와의 합동 혼례에 대한 부담감은 그만 가진 것이 아니었나 보다.
"유비님도 좋으시다는데."
유비까지 나서자 장비는 머뭇거리다가,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시, 식만 치르는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작았다.
"오랜만이네. 거의 1년이 다 되었군."
즉위식 준비로 분주한 궁에서 혼자만 빈둥거리던 모용환은 뜻밖의 인물의 방문을 받았다. 바로 작년에 허창에서 만났던 하후돈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여기는 언제 와 계셨습니까?"
"자네가 어제 도착했다고 들었네. 우리도 그 쯤 에서야 왔지. 주군의 혼례문제도 있고..."
하후돈의 은근한 말에 모용환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 보면 이 혼례를 주선한 사람이 관우와 하후돈이라고 했다.
"하후 장군..."
"허험. 우리 사이에 장군이라니? 편히 형님이라고 부르게."
사교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하후돈이 먼저 호형호제를 하잔 소리를 했다. 그의 태도에 모용환은 하후돈이 아주 작심을 하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이 양반이 기어코 날 옭아매려는 구나!'
그러나 이미 돌이키기에는 너무 커져버린 혼례 문제였다. 모용환은 얼굴근육을 씰룩이면서도 제발 조조가 자신의 상상처럼 무서운 여자가 아니기 만을 빌었다.
"그, 그러지요... 하후 형님. 조조님께서도 이곳에 와 계십니까?"
"당연하지 않은가. 얼굴도 못 보고 혼례를 치룰 순 없으니 그 분께서도 자네를 보고 싶어 하시네."
'난 마주치기 싫습니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신의 성격상 여자가 강하게 나오면 잡혀 살 가능성이 컸다. 장료가 막 대해도 참고 사는 것이나, 제갈량과 정사를 가질 때면 매번 그녀에게 리드 당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그런데다 다른 사람도 아닌 조조였다. 삼국지의 제대로 된 역사를 알고 있는 그가 감히 조조를 품을 수 있을까? 유비야 그런 위엄은 전혀 없는데다, 미모에 눈이 뒤집혀서 반강제로 취한 경우였고, 난세를 평정할 토대를 닦은 효웅을 아내로 삼는 다는 것이 영 찜찜했다.
아무리 역사가 변하고, 사람들이 변했어도 조조의 카리스마는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제가 감히 조조님께 어울릴 사람인지... 솔직히 부담스럽습니다."
내심을 그대로 드러낸 모용환의 말에 하후돈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럴 것이네. 보통 주군을 아는 남자라면 감히 그분을 이성으로 생각한다는 것 자체를 하지 못할 걸세."
'그만큼 무섭단 소린가? 장료만큼 대가 세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모용환은 점점 더 불안해졌다. 그의 얼굴이 살짝 굳자 하후돈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부담감이 클 테지. 최고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거니... 단지...'
오해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
"사실 주군의 혼례를 주선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네. 자네에게는 미안하지만, 자식을 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네."
쿠쿵.
하후돈의 침통한 말을 듣는 순간 모용환은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감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자식을 볼 생각은 하지도 말라니. 이건 대체 무슨 소리인가? 설마 아예 밤일도 못하게 만드는 건...? 그의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런 제길! 똥 밟았다! 남성혐오증? 그래,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여자라면 남자를 벌레 보듯 할 수도 있지. 이러다 다른 애들하고도 못하게 방해 놓는 거 아냐? 권위의식에 젖어 있는 여자라면 다 휘어잡으려고 할 테지. 그녀의 신분상 다른 애들은 거부를 못할 거야. 그건 안돼!'
그는 요즘 들어 손상향의 외도(?)와 마음을 심란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일 때문에 부쩍 궁상떠는 일이 많아졌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더니...'
모용환의 얼굴이 암담하게 물들었다. 복귀 후 조운과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게 바로 어제였다. 지금도 천진난만한 얼굴을 한 조운의 뽀얀 나신이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이럴 수는 없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버럭 소리쳤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후사를 볼 생각은 하지도 말라니! 설마 조조님이..."
"...그렇다네. 나도 안타까운 일이네만..."
두 사람은 생략된 각자의 말을 역시 각자 다른 의미로 해석했다.
하후돈은 정말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본 모용환은 불길한 생각이 점점 현실화되자 탁자를 쾅 내리치며 소리쳤다. 그는 진짜 오랜만에, 엄청나게 흥분하고 있었다.
'이 양반이 우리 이쁜이들을 보고 입맛만 다시란 소린가! 남자라면 그렇게는 못해! 아니, 안돼!'
"이 혼인, 못하겠습니다!"
"음? 그게 무슨 소린가! 이미 결정된 혼인을 무르겠다니!"
모용환이 강경한 반응을 보이자 하후돈은 벌떡 일어섰다. 모용환이 보이는 태도가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자 하후돈은 덩달아 화를 냈다.
두 사람은 한동안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서로를 노려보았다. 하후돈의 외눈에서 뿜어지는 무시무시한 기광에도 불구하고 전혀 위축되지 않은 모용환은 기세는 오히려 하후돈을 기백에서 앞설 정도였다.
그들이 마치 용과 호랑이이의 대결처럼 숨 막히는 기싸움을 줄다리기 할 때, 먼저 숙이고 들어간 쪽은 아쉬운 하후돈이었다.
그는 한숨을 푸욱 내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흥분해서 미안하네. 대체 혼례를 하지 않겠다는 이유가 뭔가? 주군은 어디 놔도 부족한 분이 아니시네. 천하를 뒤덮을만한 지략에다 화려한 외모... 혹시 연상이라 그런 건가? 겨우 1살 차이네. 단지 흠이라면..."
모용환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 흠이 문제입니다."
'암, 정말 큰 문제지. 남성혐오증이라니... 그런 여자는 아무리 한수레를 가져다준다고 해도 같이 안자. ...못자는 건가?'
하후돈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인가? 후사라면 유비님이나... 다른 부인들에게서 얻을 수도 있지 않은가. 꼭 주군이 아이를 낳아야 하는 건가?"
이번에 어리둥절한 사람은 모용환이었다.
"예?"
"허어, 답답한 사람 같으니라고. 후사를 못 본다는 게 문제라고 하지 않았나?"
모용환은 그의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이상한 오해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조가 자신이 후사를 못 보게 막는다는 소리가 아니라 조조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잘못 들은 것이다.
그는 무안함에 얼굴을 붉혔다.
"아, 아니 그건... 그런데 조조님께서 불임(不姙)이십니까?"
"허험... 그건 아니지만... 그... 주군께서는 석녀(石女)라네."
조조의 치부를 말하는 하후돈 또한 얼굴이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 시대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는 여자 취급도 받지 못한다. 자식을 낳아 대를 잇는 것이야말로 혼인한 여인의 가장 큰 덕목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후돈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어 말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건 부군이 될 모용환이 알아야 될 사항이었다.
"주군께서는 예전 험한 일을 당하신 탓에 감정이 모두 메말라 버렸네. 당연히 사랑도, 성욕도 느낄 수 없지. 물론 몸기능이야 정상이지만..."
그는 차마 끝까지 말을 하지 못했지만 모용환은 하후돈의 말을 충분히 알아들었다.
'감정이 없는 여자라... 골치 아프게 됐군.'
몸은 정상인데 정신이 망가진 여자. 정확히는 이성만 남아있는 여자가 조조란 소리였다.
'그래서 완을 불태우라는 명령도 아무렇지 않게 내릴 수 있었군. 철혈의 제후의 정체가 이런 것이었다니.'
하후돈이 불임 운운한 것도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어떤 남자가 그런 여자를 안고 싶겠는가. 임신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전에 정사를 할 마음이 들게 하지 않는 여자. 이것은 그에게도 심각한 문제였다.
"...혼인을 정말 무를 건가? 다시 한 번..."
모용환의 눈치를 보던 하후돈이 재차 그를 떠보았다. 그로서는 이 혼인은 결코 실패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그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조조가 좋은 사람을 만나 평범한 여자처럼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는데, 모용환이 아니면 그녀와 결혼할 수 있는 남자가 없었다.
혹시 거절하면 어쩌나 하는 그의 간절한 눈을 본 모용환은 조금 전 자신의 행동을 자책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니, 약간 오해를 해서 그런 말을 한 겁니다. 혼례식은 차질 없이 진행될 겁니다. 걱정 마십시오."
하후돈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고맙네."
그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것도 모른채 모용환은 하후돈의 말을 토대로 조조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고 있었다.
'정략결혼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이왕 같이 살 거라면 행복하게 해줘야지. 문제는 어떻게 그 행복이란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느냐는 건데...'
이런 그의 생각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조조를 위해서가 아니라, 일전에 신세를 진 곽가와 하후돈을 위한 것이었다. 그가 준 청공검은 그의 애검이 되면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지 않은가.
하후돈은 모용환이 무언가 고민하는 듯하자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방을 나갔다. 그가 떠난 것도 눈치채지 못한 모용환은 여전히 조조를 치료(?)할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자폐증 비슷한 건가? 이 경우에는 이성은 온전하다는 것이 다르지만... 어떻게 하면 그녀의 감정을 되찾아 줄 수 있지?'
그도 이런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은 잘 몰랐다. 전생에 TV에서 자폐아를 치료하기 위해 주위사람들이 계속해서 말을 거는 것 정도만 본 그가 조조를 치료할 방법을 쉽게 알아낼 수 있을 리는 없었다.
"후. 여기서 궁리해봤자 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신부될 사람이나 한 번 보도록 하자. 직접 만나보면 뭐라도 생각나겠지."
모용환은 조조를 직접 만나보기로 결정했다.
"하후 형님, 조조님은 어디... 엇?"
방에는 그 혼자만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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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방은 조조 재탕 "......"
모용환은 소태 씹은 듯한 얼굴로 방 안에 한 사람과 나란히 마주앉아 있었다. 그는 지금 이 어색한 분위기 때문에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었다.
'인형같이 생겼군.'
그의 앞에 말없이 곧은 자세로 앉아 눈을 감고 있는 여인은 바로 조조였다. 어찌 물어물어 그녀의 처소로 와서 만나긴 했는데 지금껏 나눈 말이라고는 '그대가 모용환인가?' '예.' '그렇군.' 이 세 마디가 전부였다.
그 후에는 쥐 죽은 듯한 침묵.
모용환은 이 틈에 처음 만나는 조조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녀는 무슨 일인지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무례한(?) 행동이 발각될 염려는 없었다.
지금은 눈꺼풀이 내려져 있었지만, 좀 전에 본 유리알 같이 투명한 두 눈은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아 조금 오싹할 정도였다. 마치 사람 눈 모양의 보석을 박제해 놓은 것처럼 무심한 눈동자. 그리고 잡티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는 다소 창백하여 작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가슴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인형으로 착각할만한 자태를 가진 미녀였다.
'숨 쉬는 것만 빼고는 생기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군.'
모용환은 다시 자신의 생각을 정정했다. 생기(生氣)가 아니라 활기(活氣)라고 해야 타당할 듯싶었다.
'남편 될 사람과 마주했는데 아무 할 말이 없나? 하긴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왜 그녀의 처소까지 왔는지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대책 없이 오긴 왔다만 이야깃거리가 있어야지.
결국 참다못한 그는 먼저 입을 열었다.
"저기..."
"이곳은 이상한 곳이다."
모용환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어째 오늘은 무안한 일을 자주 겪는 것 같았다. 조조는 눈을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계속 말씀하시지요."
"시상까지 오면서 유비님 휘하의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그들을 보며 주목한 점은 여성들이 많다는 것."
조조는 그 점이 무척 낯설게 느껴졌다. 자신만 하더라도 대외적으로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모반의 빌미를 제공한 군주다. 그만큼 여자가 멸시받는 시대에, 특이하게도 유비군에는 여성이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한껏 발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위아래를 별로 따지지 않더군. 태사자는 관우에게 아주버님이라 불렀지. 유비님은 일개 호위무사를 언니라고 부르고, 은룡이라는 별명으로 이름을 떨치는 장수는 군사를 무척이나 따르는 듯 보였다."
그녀는 꽉 잡혀 있는 기강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때문에 유비에게 복속된 만큼 그녀에게는 존칭을 쓰고 있었다.
모용환은 조조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아들었다.
"해이해 보입니까?"
"그렇다."
"흐음."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자신을 비롯한 부인들끼리 모여서 평정을 시작할 때면 가족회의 같은 느낌도 들었으니까. 그러나 모용환은 그런 것이 딱히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모두 사석에서는 무척 친한 사이입니다. 여성의 몸으로 그녀들은 여기까지 올라왔습니다. 아직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시선들이 있지요. 그럴 때면 그녀들은 서로를 의지하곤 합니다. 단결력이 강할 수밖에요."
"그렇군."
변명 같은 모용환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예상외로 조조가 너무 쉽게 받아들이자 오히려 허탈해진 것은 모용환이었다.
"조조님 밑에 분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지요? 사실 우리 애들이 특이한 경우이긴 합니다만."
"애들? 그래. 그대는 여자가 많다고 들었다. 누가 그대와 관계를 맺고 있지?"
조조가 대놓고 물어보자 모용환은 머쓱해졌다. 그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위계질서를 잡으려는 건가?'
"...좀 많기는 합니다. 유비님과... 군사인 량아와 유아, 빈...태사자, 상향, 운, 대교와 소교... 애매하긴 하지만 손아와 장비까지 치면... 10명이군요."
조조까지 합친다면 11명. 대답을 하면서도 좀 많다고 느꼈는지 모용환은 애꿎은 뒤통수만 벅벅 긁었다. 오늘은 정말이지 무안에 민망의 연속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조조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의 중심엔 그대가 있었군."
"예?"
"다정해 보였다. 그런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조조는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리고 다시 입을 닫았다. 모용환은 도통 조조의 속을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유엽 다음으로 그를 난감하게 하는 여자였다.
'부러워하는 건가?'
"무슨 말씀이신지..."
"생전의 곽가와 만나보았다고 들었다."
조조는 모용환이 말할 틈을 주지 않고 재차 물었다. 유엽과는 완전히 다른 타입의 마이 페이스에 모용환은 휘말리는 듯한 위기감을 느꼈다. 그런데도 대답을 안할 수 없게 하는 이 기묘한 압박감이란.
'타고난 위엄이란 건가? 반말로 말하는데도 전혀 거부감이 안 드네. 하긴 그녀의 직위가 나보다 높긴 하지.'
"훌륭한 분이셨지요. 그 분의 죽음은 항시 안타깝게 여기고 있습니다."
입 발린 소리 같지만 그게 모용환의 진심이었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사마의는 난을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고, 조조는 여전히 천하의 강호로 위세를 떨치고 있었을 것이다. 그 한 명의 죽음이 이렇게 미래를 바꾸어 놓았다.
그 정도로 천하에 대한 영향력이 컸던 인물이 곽가였다.
"그대는 곽가를 어떻게 생각하지?"
그는 질문의 의도를 몰라 일순간 멈칫했지만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살아 계셨다면 형님으로 모셨을 겁니다. 하후돈 형님처럼 말이지요. 아니, 지금도 형님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곽가와 만난 것은 단 한번이지만 그 한번의 만남이 모용환의 기억 속에는 인상 깊게 남았다. 정말로 그가 다시 살아난다면, 호형호제를 해보고 싶은 남자였다.
"다행이군. 곽가가 그대를 생각하는 것만큼 그를 생각해 주어서. 곽가는 천하를 다툴 그릇으로 사마의와 그대를 꼽았다. 생각해 보면 곽가는 이미 이렇게 될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대도강. 곽가가 죽기 전 하후돈을 통해 들었던 말은 결국 실현되었다. 그는 죽어서까지 최대한 조조군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얏나무가 쓰러지니 복숭아나무인들 어찌 무사할 것인가. 결국 조조군은 멸망하였고, 군주인 조조는 이렇게 유비에게 몸을 의탁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천하를 일통할 인재 중 한명으로 꼽았던 모용환과의 혼례를 앞두고 있었다.
"모르는 게 없는 분이시니 그럴 겁니다. 무불통지(無不通知)란 말은 그 분을 위해 있는 말이 아닐까요. 하하하."
모용환은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곽가를 존경하기는 했지만 죽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봤자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지는 것이다. 안 그래도 어색한 분위기, 더 이상 망쳐 놓을 수는 없었다.
'평소엔 잘만 돌아가던 혀가 왜 이렇게 뻣뻣한지...'
상대가 상대니까.
"조조님. 한 가지 알려드릴 사항이 있습니다만..."
"듣겠다."
"즉위식 후의 혼례 문제 말입니다만, 전 그 자리를 통해 모든 부인들을 정식으로 맞이할 겁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모용환은 조마조마했다. 조조가 거절한다고 하면 파혼을 해서라도 강행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것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녀들이 평생 기죽어 살 수도 있었고, 똑같은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려면 이 방법이 제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말 파혼을 하기엔 뭐한 상황이었다. 하후돈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테고, 전위나 허저 등도 순순히 두고 보지는 않을 터였다.
자존심 강해 보이는 조조가 과연 다른 여자들과의 합동 혼례를 승낙할 것인가? 모용환은 뚫어져라 그녀의 입술을 쳐다보았다.
"그것을 왜 나에게 묻는가? 그대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 그렇군요..."
그는 다시 맥이 빠졌다. 정말 여러모로 그의 예상을 빗나가게 하는 여인이었다. 보기와는 달리 고집이 센 것도 아니고, 권위의식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마의 땀을 닦은 모용환은 슬슬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조조님은 정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십니까?"
치부라면 치부랄 수 있는 것을 면전에서 묻는다. 조조는 모용환의 진지한 얼굴을 한 번 쳐다보았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적어도, 나에겐 슬픔의 감정은 없다."
곽가가 죽었을 때에도 차갑기만 했던 가슴,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던 눈. 그것은 어떤 비애처럼 그녀의 가슴에 자리하고 있었다.
원하는 대답을 들은 모용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조조는 자신이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은 자각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그렇군요. 실례입니다만, 전 혼례를 올리더라도 조조님이 감정을 되찾을 때까지는 화촉을 밝히지 않을 생각입니다."
"그렇군."
이번에도 별 말이 없었다. 모용환은 정말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을 테고.
"저... 제 말 뜻을 알아들으셨는지..."
"내가 소박맞는다는 뜻 아닌가?"
그녀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 그렇게도 생각될 수 있겠군요... 달리 생각해 보면 조조님을 치료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단 뜻입니다."
조조는 모용환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맨 처음과 같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모용환은 숨 막히는 침묵 상태로 들어간 조조를 일견하며 가슴을 쓸어내린 채 그녀의 처소를 나섰다.
"휴우."
계속되는 긴장감, 허탈감에 수명이 십년은 감수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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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이 이 세계로 오면서 얻는 가장 큰 유리한점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장료와 모용환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리한 점. 수많은 사람들, 수천이 넘는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해 있음에도 일체의 잡음 없이 고풍스러운 음악 가락만이 흘러나왔다. 악사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손을 움직였다. 일체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따다당.
맑은 거문고소리가 들렸지만 누구도 그 소리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의 시선은 양 옆으로 도열한 사람들 사이, 붉은 비단길 위를 거문고소리와 함께 걷고 있는 소녀에게로 집중되어 있었다.
승천하는 용이 수놓아져 있는 황금빛 용포를 걸치고, 햇빛을 밫아 반짝이는 면류관을 곱게 눌러 쓴 유비가 천천히 단상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은 숨도 쉬지 않고 그 모습을 눈을 부릅뜬 채 지켜보았다.
한나라 멸망한 후 드디어 대륙에 새로운 황조가 열리는 역사적인 순간인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큭큭. 아이고, 배야.'
직위가 직위인지라 미리 단상 위에 있는 태사의 옆에 제갈량과 함께 서 있던 모용환은 웃음을 참느라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유비가 곧은 자세로 위엄 있게 걷고 있다고 생각할 테지만, 정면에서 그녀를 보고 있는 모용환은 모자가 떨어질 까봐 안절부절 못하는 유비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사실 조금씩 모자가 흔들리기도 했고. 곧은 자세로 걷는 게 아니라 모자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몸이 뻣뻣하게 굳었을 뿐이다.
'작게 만든 게 저 정도니. 대체 역대 황제들은 머리가 얼마나 컸던 거야?'
뭐든지 커야 좋다고 여기는 풍습은 이런 웃지 못 할 상황도 만들어냈다.
제갈량은 모용환의 옆에서 한 계단씩 낑낑거리며 위태롭게 올라오는 유비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녀는 낮게 속삭였다.
'너무 긴장하신 것 같아요.'
'뭐 어때. 우리 빼고는 유비님 얼굴 볼 수 있는 사람 없어.'
전전긍긍하는 제갈량에 비해 모용환의 태도는 느긋했다.
'연설도 하셔야 하는데...'
제갈량은 여전히 불안했다. 한 눈에도 딱딱하게 굳은 유비의 얼굴이 뭔가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염려되었던 것이다.
영릉에서의 일을 마치고 시상으로 복귀해 있던 주유는 그들보다 한 계단 아래에 서 있었다. 그녀도 제갈량과 똑같은 군사였지만, 직위에 관계없이 남녀 둘이 나란히 서 있는 게 보기 좋다는 모용환의 의견에 따라 관우와 짝을 이루었던 것이다.
'흥흥. 량아 저 계집애, 그 동안 나 없는 사이에 교태 깨나 많이 부렸겠지? 두고 봐. 오늘 밤 환랑은 나랑 잘 거니까.'
주유도 태사자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제갈량을 경계하고 있었다. 근래에 모용환이 유독 제갈량이나 조운, 혹은 둘 다와 정사를 가진 일이 잦은 것도 사실이었다. 친자매 같은 사이지만 그건 그거고 사랑은 별개의 문제였다.
태사자와 손상향 등 몇몇 오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관우가 자리를 비운 탓에 태사자는 울며겨자먹기로 수춘을 떠맡아야 했고, 유족과 만족의 일이 끝나지 않은 손상향 또한 마찬가지였다.
주유가 제갈량에 대한 질투심을 불태우는 동안 관우는 감격에 겨워 원래부터 붉었던 얼굴이 이제는 완전히 끓어오르는 듯한 혈색으로 뒤바뀌어 버렸다. 그는 지금 툭 치면 눈물이라도 쏟을 정도로 감정이 북받쳐 있었다.
'크흐흑... 내가 학문을 가르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유비님이 이리도 성장하셨다니...'
유비에 관해서라면 팔불출이 되는 그다. 제위에 오르는 그녀가 너무도 자랑스러워 얼싸안고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물론 체면상 그래서는 안 된다.
그들 아래에는 하후돈과 조조가 서 있었다. 조조는 그렇다 쳐도 하후돈은 상당히 착잡한 눈으로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유비를 바라보았다. 조조를 섬기다 이제 유비의 휘하에 들어갔으니 심경이 복잡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여섯 명의 시선을 받으며 힘겹게 꼭대기까지 올라온 유비는 태사의가 놓여져 있는 단상 위에 홀로 우뚝 섰다.
사람들은 제왕의 기운 같은 것보다는 그녀의 고운 자태에 감탄했다.
"오오오오! 과연 대륙의 황제가 될 만한 미모!"
"달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겠구나!"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장료는 입술을 삐죽였다.
"대낮인데 무슨 달타령이람. 바보들... 웁!"
그녀의 말에 조운은 황급히 장료의 입을 틀어막았다.
"언니! 좀 조용히 좀 하세요!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푸하! 듣긴 누가 듣는다고... 너도 참, 차라리 하늘이 무너지는 걸 걱정해라."
근엄하게 황제가 될 유비의 말을 경청해야 할 장군들이 앞에서 술렁이자 맞은편에 서 있던 유엽은 피식 웃었다.
"오호호홋. 천하 어딜 가도 이보다 산만한 즉위식은 못 보겠다."
유엽의 옆에 있던 육손은 멍하니 유비를 보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워요. ...그런데 황제와 미모는 무슨 관계죠?"
"글쎄. 화장이 진하면 손아도 황제 될 수 있다는 소린가? 냐하하."
"정말요?"
그녀들이 뭐라고 하던 이런 큰 행사에 처음 참석하는 대교와 소교는 시종일관 좌불안석이었다.
"소, 소교야... 이런 데에 우리가 왜 서 있는 걸까?"
"... 아빠 따라서..."
둥! 둥! 둥!
그 때 소요가 일어나는 좌중을 진정시키기 위해 고수(鼓手)가 크게 북을 쳤다. 사람들이 순식간에 입을 다물자 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유비는 흠칫 몸을 떨었다. 물론 아래에서 그녀를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았다.
제갈량의 눈짓을 하자 유비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 난 할 수 있어.'
여전히 심장은 크게 뛰었지만 음성은 생각보다 떨리지 않았다.
"천지신명과 만인(萬人)의 도움으로 이 땅에 새로운 천조(天朝)를 개창하게 되었습니다. ... 하, 한(漢)의 유지를 받들어..."
처음에는 앞만 보고 있었기에 괜찮았다. 그런데 시선을 내려 아래를 내려다보자 유비는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 같았다. 거의 1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자신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그 압박감에 숨이 막혔다. 뭐라고 말은 해야 하는데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언니들이 많았기에 평정을 개최할 때는 상관이 없었지만 대중 앞에 나서 이런 연설을 할 때에는 평소의 의젓한 모습을 하기엔 무리였다.
"그, 그래서..."
유비의 목소리가 점차 심하게 떨리는 것을 안 모용환은 급히 감녕에게 손짓을 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 감녕과 그는 수많은 바람잡이들을 군중 속에 심어 놓았다.
"...습니다..."
딱.
짝짝!
유비가 적절하게 말을 끊었을 때쯤, 모용환은 손가락을 튀겼고 감녕은 앞장서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행동을 신호로 도열한 사람들 사이에서 우렁한 함성소리가 터져나왔다.
"와아아아아!"
"황제 폐하 만세!"
물론 이 목청 큰 사람들은 대부분이 유비를 추종하는 해적들이었다. 해적들의 조성한 군중심리에 휘말린 대중은 나중에는 유비의 이름을 연호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 쯤에서 한 번 터뜨리자.'
그 모습을 본 모용환은 이번에는 고수에게 신호를 보냈다. 다시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사람들이 조용해진 가운데 단상에 서 있던 사람들이 두 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 의미를 깨달은 모든 사람들 역시 손을 쳐들며 목이 터져라 고함을 내질렀다.
"만세, 만세, 만만세!"
"만세, 만세, 만만세에--!"
자신의 자신없는 연설 때문에 즉위식이 망쳐지진 않았을까 초조해하던 유비는 다행히 반응이 무척 열렬하자 얼굴이 활짝 밝아졌다. 태사의에 옆에 서서 웃음꽃을 피운 유비를 흐뭇한 눈으로 쳐다 본 모용환은 해적들의 노고를 기억해 두기로 했다.
'역시 목소리 큰 사람은 쓸 곳이 많아.'
이윽고 즉위식 전에도 이런 일을 도맡아 하던 제갈량이 나서 새로 정비된 관제와 임관된 사람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이렇다.
황제(皇帝) 유비 열왕(烈王) 조조 상국(相國) 모용환 대장군(大將軍) 관우 삼공(三公) 승상(丞相) 주유 삼공(三公) 태위(太衛 : 대도독) 하후돈 삼공(三公) 어사대부(御史大夫) 제갈량 표기장군(驃騎將軍) 태사자 거기장군(車騎將軍) 손상향 위장군(衛將軍) 감녕 위위(衛尉) 조운 정위(廷尉) 전위 광록훈(光祿勳) 장비 대사농(大司農) 육손 표기장군(驃騎將軍) 하(下) 정동장군(征東將軍) 허저 표기장군(驃騎將軍) 하(下) 정서장군(征西將軍) 조인 표기장군(驃騎將軍) 하(下) 정남장군(征南將軍) 위연 표기장군(驃騎將軍) 하(下) 정북장군(征北將軍) 주태 거기장군(車騎將軍) 하(下) 진동장군(鎭東將軍) 정보 거기장군(車騎將軍) 하(下) 진서장군(鎭西將軍) 한당 거기장군(車騎將軍) 하(下) 진남장군(鎭南將軍) 황개 거기장군(車騎將軍) 하(下) 진북장군(鎭北將軍) 황충 위장군(衛將軍) 하(下) 안동장군(安東將軍) 능통 위장군(衛將軍) 하(下) 안서장군(安西將軍) 동습 위장군(衛將軍) 하(下) 안남장군(安南將軍) 여몽 위장군(衛將軍) 하(下) 안북장군(安北將軍) 장료 이상이 주요 관직을 배정받은 인물들이었다. 순욱, 순유, 장소, 장굉 또한 상서령, 사도, 태상 같은 관직을 받았으며 조조는 왕위를 제수 받았다. 물론 조조의 직위는 거의 명예직이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권력을 쥐게 된다면 옛 조조의 장수들 중 딴마음을 먹는 자들이 나타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유는 승상 직을 맡아 내정 전반을 담당하게 되었으며 어사대부를 맡게 된 제갈량은 관리들의 감찰과 황제의 비서실장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특이할 만한 점이라면 나이어린 손상향이나 육손, 조운 등이 높은 관직을 받았다는 것인데 정작 황제인 유비는 십 대였고 상국인 모용환 또한 이십대였으니. 별 말은 나오지 않았다.
육손이야 그 특출한 능력을 재정관리에 쓰게 된 것이고 무예를 인정받은 조운은 황실의 경호를 담당하게 되었을 뿐이다. 더구나 자리에 나오진 않았지만 손상향은 가신(家臣)들이나 다름없는 정보, 한당, 황개를 수하로 두는 것이었으니 다른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장비는 평소 하던 그대로 황제의 개인 신변을 책임지는 광록훈에 임명되었다.
"쳇. 난 왜 말단이야?"
발표가 끝내자 안북장군에 내정된 장료가 투덜거렸다. 그러자 유엽은 핀잔을 주었다.
"우리야 위치가 애매하잖아. 호호호, 난 그런 골치 아픈 일 안하면 좋아할 텐데. 모용 동생이랑만 같이 있을 수 있으면 상관없어."
"뿔테안경 쓰더니 그 놈한테 푹 빠졌네요. 언니. 안경알이 잘못된 거 아니에요?"
"흐흥, 난 원래 모용 동생을 좋아했었다고. 그런데 뿔테는 또 무슨 소리니?"
용병대를 데리고 고용된 입장인 장료는 공이 커도 오를 수 있는 직위에는 한계가 있었다. 최근 선박 건조에 큰 도움을 주고 있지만 정식으로 임관한 것이 아닌 유엽도 그와 마찬가지 이유로 별다른 관직을 받지 못했다.
국호는 예전 황조를 그대로 이어받아 한으로 하기로 했다. 모용환은 잔뜩 들뜬 장내를 둘러보며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여러 제후들이 한의 정통성을 그대로 잇는 유비에게 축하 사절단을 보내온 가운데 사마의는 어떤 말도 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사마의, 원소, 동탁이지. 그 셋이 연합을 한 것일까?'
그렇다면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동탁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원소 또한 전선이 작았다. 사마의 하나라면 좀 더 세력이 큰 유비군은 충분히 맞상대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 중 둘이나 셋이 하나로 합쳐지지 않는 이상은 말이지... 동탁이 미쳤다고 사마의와 힘을 합치겠어?'
그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는 동탁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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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건국. 이제 본격적으로 대륙 동부에 한나라가 건국되면서 천하의 구도에 커다란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경악할 만한 사실은 동탁의 죽음이었다.
전한(前漢)의 역사를 자신의 손으로 종식시키며 황족들을 씨몰살 시켰던 마왕이 수하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구체적인 내막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처참하게 조각난 동탁의 머리가 장안성 성문에 내걸리면서 그의 폭정에 시달리던 성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손을 들어 환호했다.
동탁군의 군사였던 이유는 동탁의 죽음을 대대적으로 발표하면서 그의 전 세력을 이끌고 사마의에게 투항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이 일의 파장은 엄청났다. 이유와 사마의의 결합은 단독으로는 대륙최강의 세력을 형성했던 한나라의 성장에 급격한 제동을 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유비의 즉위식에 사람 한 명 보내지 않은 두 세력이었기에 그들이 한나라와 치열한 대결 구도를 형성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일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한나라의 황제 유비보다 더욱 큰 영토를 갖게 된 사마의는 국호를 진(晉)이라 하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대대적으로 시대의 잔재인 한을 완전히 멸하겠다고 선언했다.
한나라에서는 진황제 사마의의 선언에 즉위식에 이어 준비했던 혼례식을 당분간 미루고 장수들을 전장에 내보내어 팽팽한 대치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원술의 멸망 이후 별다른 전쟁 없이 평화로웠던 대륙의 중원지방은 두 제국의 세력다툼에 휘말려 언제 피바람이 몰아쳐도 이상할 것 없는 전운(戰雲)이 감돌기 시작했다.
사마의는 태사의에 몸을 깊게 묻으며 매끈한 턱을 어루만지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옆에는 노랑과 분홍색이 잘 어울리는 궁장을 걸친 미녀가 서 있었는데,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노랗다기보다는 황제인 사마의와 비슷한 황색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무엄한 계집이라며 경을 칠 일이었지만 사마의나 그녀나 그런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완을 병참기지로 쓴다...?"
사마의는 낮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여인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녀는 빼어난 미인이기는 했지만 다소 병약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갸름한 얼굴선과 날카롭지만 힘이 없어 보이는 눈동자는 어딘가 쓸쓸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연약해 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그녀의 두 눈은 충만한 열정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래. 완은 폐허가 되긴 했어도 교통의 요지야. 그렇기 때문에 조조에게 한 네 건의가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거지. 어차피 그대로 내버려두긴 아까운 곳이니, 관도부터 다시 건설해서 차차 복구시켜 나가면 돼. 도로가 건설되면 군수물자 보급이 쉬워지고, 물자가 유통되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럼 자연히 폐허가 된 완은 서서히 되살아나겠지."
놀랍게도 그녀는 감히 황제인 사마의에게 반말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사마의에게서는 전혀 불쾌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훌륭하군. 그 정도만 해도 우매한 백성들은 황실을 칭송하겠지. 어차피 완을 불태운 자는 실종되어버린 가후이니. 그건 네게 맡기마."
"고마워. 그런데... 가후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그녀는 가후를 사마휘의 시녀로 삼은 사마의의 의도가 궁금했다. 자신에게는 똑똑한 시녀가 필요했을 뿐이라고 말하긴 했었지만, 글강사 겸 시녀를 해줄 수 있을 만큼 교육받은 여자들이야 널리고 널린 곳이 이곳 허창이다. 굳이 그녀를 시녀로 삼을 필요는 없었기에 그녀는 정확한 사마의의 의중을 알고 싶었다.
사마의는 그런 그녀의 내심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불신감을 심어줄 필요는 없지.'
안 그래도 슬슬 말해주려던 참이었다.
"그런 인재를 그냥 버리기엔 아깝다. 그리고 이제 그녀의 이름은 문화다."
보통 여자는 자를 갖지 못한다. 남자의 성인식 때 웃어른이 지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 가후처럼 스스로 자를 짓는 여인은 극소수였다.
때문에 가후는 이름에 비해 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어차피 남자도 아닌 여자의 자 따위를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랴마는.
"알았어. 그래서 문화를 쓰겠단 거야? 배신할 지도 몰라."
"예전이라면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잔정이 많은 여자다. 내가 학대할수록 어머니와는 그만큼 친해질 수밖에 없어. 이제 자신이 없으면 돌봐줄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할 텐데, 그런 그녀가 배신을 할 수 있을까?"
인간은 사사로운 정에 무척이나 잘 얽매이기 마련이다. 자신 또한 그런 식으로 사람을 이용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사마의에 말에 쉽게 수긍했다.
"하긴 그래. 지나친 정은 인간을 망치기도 하는 법이야."
"문화에게는 실권과는 거의 관계없는 내정을 맡길 생각이다. 그녀를 쓰는 만큼 다른 모사들은 여유가 생기겠지."
그렇다면 배신을 하더라도 별 걱정은 없는 셈이다.
"좋은 생각이야.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
"뭐지?"
"이번에 채모를 멸망시키고 형북을 차지했을 때, 어째서 여포를 쓰지 않았지? 그와 고순이 포함된 패왕기라면 적은 피해로 강하를 점령할 수 있었을 거야. 한과는 교착 상태인 지금 달리 쓸 곳도 없었잖아."
허창에서 즉위식을 올린 사마의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끈덕지게 버티고 있었던 강하의 채모를 멸망시켜 형북을 손에 넣는 일이었다. 그러나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 상상외로 강력한 채모의 저항에 진나라의 군대는 상당한 피해를 입어야 했다.
사마의는 여포를 생각하자 일순간 살기를 드러내었다.
"분명히 말하지. 난 그 자가 싫다."
"네게 저번에 칼을 들이댄 것은 알고 있어. 하지만 죽지는 않았잖아."
그녀는 말을 마치고 아차 싶었다. 사마의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발언을 한 것이다. 그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여포...! 그 날 나에게 씻을 수 없는 굴욕을 준 놈!'
사마의는 여포를 회유하는 일을 그녀에게 일임했었기 때문에 직접 여포를 만난 것은 그 날, 여포가 조조를 구하러 왔을 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여포는 방통이 말했던 '황제가 될 사람'이 사마의였다는 것을 알지 못했었다. 사마의는 여포가 아군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젊은 호승심에 그 사실을 숨기고 그와 싸웠었다.
그 때 끝까지 싸우지 않고 방통과의 밀약을 들먹였다면 조조를 사로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참담하게 패한 사마의는 자존심 때문에 이를 갈며 군을 돌렸다. 그 날의 일은 아직까지도 그에게 앙금으로 남아 있었다.
"강한 패는 쓰라고 있는 거야."
"진명, 네가 뭐라고 하든 그 자의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진명. 그것이 그녀의 이름이었다. 진명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문무를 고루 갖춘 천고의 기재였지만 아직 나이가 너무 젊어 자존심이 강하다는 게 흠이었다. 굽힐 줄 알고 포용하는 것도 군주의 덕목이거늘.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테지.'
"내가 부탁한 일은 어떻게 됐어?"
진명이 화제를 돌리자 사마의는 굳은 표정을 풀었다.
"네 말대로 뛰어난 인재더군. 특히 강유 백약이라고 했던가... 그 자는 충분히 중용할 만하다."
"등애도 뛰어난 아이야."
"능력이 뛰어나다면 요직에 않겠지."
그녀가 사마의에게 부탁한 일. 그것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과 인연을 맺었던 두 명의 고아를 데려와 진나라에 등용시키는 것이었다. 그 둘의 이름은 다름 아닌 강유와 등애였다.
'그 아이들을 만난 게 천운이었지.'
둘 다 이제 약관이 된 청년들이다. 그녀와는 8년 전부터 안면이 있던 사이였다.
공교롭게도 실제 역사에서 강유와 등애는 각각 위나라와 촉나라의 대장군으로 숙명의 라이벌이기도 한 관계였다. 제갈량의 뒤를 이어 촉나라를 짊어진 강유는 수차례의 북벌을 감행하지만, 위의 대장군이 된 등애에게 번번이 가로막혀 끝내는 지나친 국력소진으로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다.
삼국시대 후반 촉과 위의 두 거목이 되었던 그들은 지금 진명에 의해 진나라를 위해 그 재능을 고스란히 꽃피우려 하고 있었다.
사마의는 태사의에서 몸을 일으켰다.
"엄안과 원소가 변수다. 조조라는 동맹군을 잃은 공손찬은 이제 힘을 잃었어. 기껏 점령했던 남피도 다시 원소에게 빼앗겼지."
"엄안은 동탁과는 원수사이야. 난 명목상 악적 동탁을 처단하기 위해 모반을 일으켰어. 잘만 한다면 그를 회유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생각하는데?"
자신의 변신이었던 이유를 떠올린 진명은 빙긋 웃었다.
"염두에 두었던 일이지. 원소도 이번에 도움을 받았으니 어지간한 부탁은 거절하지 못할 거다. 특히 조조가 한의 신하로 들어갔다면 더더욱."
모든 것이 그들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한의 영토가 넓다하나 그것은 구석 오지까지 포함한 것이었기에 실질적인 세력은 진이 더욱 강성했다. 거기다 외교적 이점도 충분했다. 다만 정통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한 가지 단점이긴 했지만.
결국 힘 있는 자가 명분을 얻게 되는 세상에 그것은 별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야. 한나라에는 너무 뛰어난 인재가 많아. 그것 또한 충분히 변수가 될 수 있어."
"지나친 걱정 아닌가? 용장이 많기는 했지만 풋내기들도 많다. 가령 은룡이라는 계집은 기껏 피라미 두 명을 죽인 것 치고 너무 과대평가가 되어 있지."
"아니."
'상산의 조자룡. 원래라면 그렇게 불러야 할 테지.'
진명은 단호했다. 사마의는 몰라도 그녀는 한나라에 모여 있는 인재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한 사람을 중심으로 뭉쳐 있다. 모용환... 아마 그 자도.'
한동안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그녀는 이내 결심을 굳혔다. 진명의 눈동자에 섬뜩한 기운이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한 번 가보겠어."
"한나라에 말인가?"
"내 변장 실력은 잘 알거야. 마침 마땅한 얼굴가죽이 있지."
사마의는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아마 서서는 한나라로 도망쳤을 거다. 혹시라도 그녀와 만나게 될 수 있을 텐데."
"상관없는 일이야. 만나더라도 날 알아볼 수는 없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마음대로 해라. 내부에 진입할 수 있는 줄이라도 있나?"
진명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한에 아는 사람이 있어. 좀 오래되기는 했지만... 아마 목소리만 들려줘도 날 알아볼 거야..."
말끝을 흐린 진명은 사마의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댔다. 마치 입맞춤이라도 할 것처럼 요염한 분위기가 전신에 흘렀다. 그러나 그녀는 입맞춤 대신에 한자 한자 또박 하게 말했다.
"이 일이 끝나면 날 황후로 맞이하는 거야. 잊지 않았지? 그게 거래의 끝이니까."
"그러도록 하지. 삼일천하(三一天下)라고 했던가? 머지않았군. 축하한다."
"호호."
진명은 빙글 몸을 돌려 대전을 나섰다. 밖으로 나가는 그녀의 얼굴에는 천하통일을 논하며 즐거워하던 아까의 모습과는 달리 초조한 기색이 뚜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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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트가 너무 많았죠?
어쨌건 삼국지 후반 캐사기 캐릭 2명인 등애와 강유가 진나라로 가는군요. 종회는?
짤방은 독자입장에서는 악녀인 진명. 한나라의 수도는 건업이었지만 전시였기 때문에 유비는 병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 그대로 최전선인 시상에 눌러앉았다. 조정의 업무가 시상에서 행해지니 모용환이 육손을 태수로 임명한 것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 때문에 육손은 처음 한동안은 무척이나 신나했었다. 그러나 모용환이 무책임하게도 자신의 일을 모조리 떠넘기자 다시 울상을 지어야 했다.
유비가 군사 쪽의 일을 싫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용환 역시 내정 업무를 질색했기 때문이다.
한나라의 최고 대신들, 황제인 유비를 비롯하여 승상 주유, 어사대부 제갈량, 여러 장군직을 맡고 있는 모용환의 아내들은 조정의 일이 끝나면 저녁에 다시 대전에 모이곤 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가족들끼리 얼굴도 볼 겸, 미처 상의하지 못한 국정을 의논할 겸, 관직이 없어 심심한 유엽과 이교 자매는 수다를 떨기 위해서였다.
커다란 제국을 다스리는 실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기엔 평범한 가정집이나 다름없는 분위기가 감도는 대전.
어디서 가져왔는지 대전에는 낮에는 볼 수 없었던 직사각형 모형의 커다란 탁자가 놓여있었다. 일반 객잔에서 대량의 손님을 받을 때나 쓸법한 볼품없는 탁자의 위쪽에는 유비와 장비를 양 옆에 낀 모용환이 턱을 괴고 앉아 있었고, 그 옆줄로 여인들이 앉아 있었다. 특이할만한 점이라면 유비의 옆에 무표정한 얼굴을 한 조조가 있다는 것이었다.
"후우..."
모용환은 무료한 얼굴로 근심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앞에는 제갈량과 주유가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량아 네 생각은 알겠지만 호구 조사가 먼저라고 생각하지 않아?! 사람 수 속여서 세금 떼먹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군역도 확실히 할 수 있고. 가뜩이나 재정이 어렵다고 손아가 그랬잖아. 그렇지?!"
잔뜩 흥분한 주유가 잡아먹을 듯 윽박지르자 성격상 연상의 누님스타일에게는 맥을 못 추는 육손은 목을 움츠렸다.
"네..."
그러나 제갈량 또한 이번엔 양보하지 않았다.
"토지 조사가 우선시 되어야 해요. 토지 당 정확한 곡물 산출량을 알아야 군대를 차질 없이 움직일 수 있어요. 그리고 결당 세금도 정확히 거둘 수 있고요. 그렇지 않아도 손아가 수확량의 추정치와 실제치의 오차가 너무 심하다고 보고 했어요. 반드시 필요한 일이에요."
차분한 그녀의 말에 주유는 어쩐지 자신만 열을 내는 것 같아 모용환의 눈치를 살짝 보았다. 그에게 난폭한 여자로 비춰지면 큰 일 아닌가. 한동안 티를 안내서 그렇지 오랫동안 남장을 해 온 터라 그녀는 한번 성격을 드러내면 꽤나 거칠었다.
다행히 모용환은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녀들의 논쟁을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는 유비의 머리카락만 별 의미 없이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왠지 모를 용기를 얻은 주유는 고개를 홱 돌려 육손을 노려보았다. 그녀의 찌르는 듯한 시선을 받은 육손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손아. 세금문제니까 재정담당인 네가 결정해. 호구조사야, 토지조사야?"
둘 모두 꼭 필요한 일이었지만 단지 우선순위가 바뀌는 것뿐이다. 그러나 제갈량과 주유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기에 육손은 식은땀을 흘리며 쩔쩔맸다.
'어떡하지? 제갈 누님 말도 맞고, 주 누나 말도 맞는데. 시기만 좀 다를 뿐 결국 해야 되는 일이고...'
호구든 인구든 둘 다 조사하면 간단한 일이다. 문제는 어느 걸 하느냐가 아니라 어느 걸 먼저 하느냐였다. 육손은 눈치가 빨랐다. 그녀는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다져진 이해타산 능력을 십분 발휘하기 시작했다.
'내가 재정관리를 하고 있지만 용돈은 주 누나한테서 나오는 건데. 그렇다고 주 누나 편을 들자니 나의 제갈 누님은... 아, 뒷골 땅기네.'
자리를 비우기 전에도 동생들의 용돈 관리는 주유가 담당하고 있었다. 육손은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난감했다.
"내가 승상이잖아. 내정은 내가 맡을 테니..."
"이런 일에는 직위가 상관이 없어요."
'형. 좀 도와줘.'
둘의 논쟁이 과열될 양상을 보이자 육손은 모용환에게 구원을 바라는 눈길을 보냈다.
'쩝. 이대로가 좋은데.'
은근슬쩍 장비의 늘씬한 허리를 향해 손을 뻗던 그는 육손의 간절한 눈빛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그냥 둘 다 동시에 해. 하는 김에 같이 하면 수월하니까."
"환랑, 그렇지만 비용이..."
"한현의 비자금이 아직 많이 남았어. 지독한 녀석이 많이도 모아 놨더군. 성이라도 한 채 사려고 했나?"
모용환이 나서자 주유와 제갈량은 다소곳하게 제 자리에 앉았다. 그는 이왕 나선 김에 그동안 구상만 해두었던 것들을 입 밖에 내놓기로 했다.
"그리고 역참(驛站)을 설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역참이요?"
"그래. 마을마다 마구간과 숙소를 겸하는 역을 설치하는 거야. 그러면 최대한 빨리 중앙의 명령이 하달되겠지. 전쟁이 났을 때 전령이 오는 속도도 빨라질 테고."
장료는 그의 말을 듣고 퍼뜩 깨닫는 것이 있었다.
"아. 그건..."
중국 원나라 시대 몽골이 정보전에서 다른 나라를 월등히 앞설 수 있었던 일등 공신. 그것이 바로 역참제도였다.
제갈량은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 것이라면 지금도 있어요."
역참은 춘추전국시대부터 시행되었던 제도이다. 지금 역시도 다소 기능을 상실하긴 했지만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걸 좀더 세밀하고, 크게 하는 거야. 관도를 더욱 넓히고 최대 사방 백리 안으로 무조건 하나의 역이 있어야 해. 제국 어디라도 말을 타고 갈 수 있게."
중국은 농경국가다. 반면 칭기즈칸의 몽골 제국은 유목 민족인데다가 초원을 끼는 영토가 많았다. 중국도 역참이 있긴 했지만 몽골의 역참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 운영 방식이 몽골처럼 유기적이지 못하단 점이었다. 그건 민족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이기에 모용환은 관도를 확장하는 것으로 그 단점을 보완하려 했다.
'로마도 그랬지. 점령지에 가장 먼저 한 일은 도로를 정비하는 것이었어. 물자 수송이 편하니까. 모든 길은 로마...가 아니라 이제 한으로 통하게 될 거야.'
모두는 모용환의 말을 이해했다. 그리고 감탄 섞인 눈으로 그를 새삼 바라보았다. 장료만 빼고.
'그냥 베낀 거잖아? 뭐 그리 대단하다고.'
예전부터 생각해왔던 거지만 제후국으로 있을 때에는 이런 대대적인 사업을 벌일 수 없었다. 모용환은 잠시 잡스런 생각을 해보았다.
'이 참에 수나라처럼 대운하도 뚫어봐?'
그랬다가는 쫄딱 망하게 될 것이다. 기술적으로도 무리였고. 이 '기술'이란 것 때문에 그의 계획은 많은 제약을 받았다. 철로 제대로 된 무기를 제련하기도 어려운 시대다. 천하제일을 다투는 명장이 아니면 청룡언월도 같은 무기들은 꿈에도 보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청룡언월도, 장팔사모, 방천화극 등은 실제 삼국시대의 기술력으로는 만들 수 없음.
제도를 개혁하는 것도 문제가 조금 있었다. 건국 초기라 그런지 여기저기서 잡음이 있었던 것이다. 특히 무릉 태수를 필두로 한 몇몇 태수들의 보이지 않는 반발이 절대적인 중앙집권체제로 가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었다.
모용환은 무릉 태수 조범을 생각하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 놈. 항복했을 때 물갈이를 했어야 했는데.'
"아빠. 화났어요?"
구경만 하고 있던 대교가 조심스레 묻자 모용환은 얼른 얼굴을 폈다.
"그냥 재수 없는 사람이 생각나서."
"그런데 저 분은 누구세요? 새로운 언니? 주무시는 거예요?"
대교는 내내 말없이 눈만 감고 있는 조조를 가리켰다. 소교도 무척 궁금한 눈치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다는 건 모용환과 그만큼 친밀하다는 뜻이었으니까. 대교의 '새로운 언니'라는 단어에는 '새로운 아내'가 아니냐는 뜻이 함축되어 있었다.
"누나도 궁금하네. 누구야, 모용 동생?"
유엽도 조조와 초면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즉위식 때 단상위에 있던 그녀를 보긴 했지만 유엽과 이교 자매는 아무런 직위가 없어 얼굴만 비추고 궁으로 돌아갔었다. 따라서 그녀가 열왕으로 봉해진 조조란 사실을 몰랐다.
그 사실을 깨달은 모용환은 뒤늦게 조조를 소개하려고 했다.
'그런데 왜 계속 눈을 감고 있지? 저번에도 그러더니... 정말 자는 건가?'
"저..."
모용환은 일어서서 유비의 옆에 있는 조조에게 다가갔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조조는 감았던 눈을 뜨며 흑요석을 빼닮은 눈동자를 드러냈다.
"와아. 언니는 인형같아요."
"...예뻐요."
조조의 얼굴을 본 대교와 소교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웬만하면 말을 하지 않는 소교가 찬사를 보낼 정도로 조조에게는 귀족스러운 아름다움이 있었다.
모용환은 조조의 귀에 대고 무척 궁금해 하던 것을 슬며시 물어보았다.
"... 왜 눈을 감고 있으셨습니까?"
"시선을 둘 곳이 없더군."
조조의 대답은 간결했다.
"......"
그는 약간 어이가 없었지만 나름대로 수긍했다.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한 곳에서 땅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녀의 대답으로 모용환은 조조에 대한 한가지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어쩌면 낯을 꽤 가리는 편인지도 몰라. 그런데 이게 무슨 도움이 될까?'
"모용 동생. 무슨 음모라도 꾸며? 웬 귀엣말이야? 그나저나 정말 예쁜 동생인 걸? 몇 살이야?"
"스물다섯이다."
"오호호호. 이 언니가 네 살 더 많네. 엽 언니라고 부르도록 해. 알았지? 근데 동생은 좀 무뚝뚝하다. 원래 언니는 나이 많은 애들은 좀 징그러운데..."
유엽의 말에 조운은 시무룩해졌다. 그녀는 나이 들었다고 요즘 유엽에게 구박을 당하는 처지였다.
조조에 대한 호기심을 참지 못한 유엽은 어느새 다가와서는 그녀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있었다. 천하의 조조를 동생으로 삼으려는 유엽의 망측한 행동에 모용환은 다급히 그녀를 제지하려 했다.
"엽 누이, 이 분은... 헉!"
"동생은 깨물어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워! 아아!"
모용환이 미처 말리기도 전에 유엽은 조조를 기습적으로 와락 끌어안았다. 조조는 마치 실타래 끊어진 인형처럼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부비부비를 당해버렸다. 그녀의 돌발행동에 모용환을 비롯하여 조조의 정체를 아는 모두는 돌덩이처럼 굳어버렸다.
"조, 조조님..."
"저럴 줄 알았어."
주유는 황당해서 말도 제대로 못했고, 장료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나마 제갈량은 침착한 편이었다.
"...엽 언니. 조...조님이에요."
"응? 조조? 망해서 유비님한테 붙은 여자? 그 여자가 왜..."
쿵.
유엽의 망언(?)에 다른 사람들은 물론이고 이제는 사태를 완전히 파악한 대교와 소교까지도 질린 얼굴이 되었다. 모용환은 이 사태를 어찌 수습해야 될지 몰라 머리가 뒤죽박죽이었다.
'이 대책 없는 누님 같으니라고!'
하지만 이 상황에서 두 사람만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 얼굴이었다. 유비는 일어나서 유엽의 품에서 벗어난 조조의 손을 맞잡았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사이좋은 자매가 서로의 손을 잡고 있는 것 같았다.
"다들 진정하세요. 조조님은 좋으신 분이세요."
유엽은 그제야 자신이 안고 있었던 사람이 조조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콧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안경을 손가락으로 올린 뒤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에게 사과했다.
"아. 동생이 조조였어? 하하. 미안, 미안. 아까 말은 취소."
"틀린 말은 아니지."
"에이, 삐진 거야?"
조조는 유엽이 빤히 쳐다보자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표정의 변화는 없었지만 그녀의 행동에 모용환은 눈을 빛냈다.
'부담스러워 하고 있어. ...부담을 느끼는 것도 감정이라고 할 수 있나?'
몇 가지 단서는 얻었지만 그다지 도움 되는 건 없었다. 모용환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유엽은 씨익 웃었다.
"큰언니로서 새로운 동생이 들어왔는데 못 본 척 할 수는 없지. 오늘 내가 주연을 베풀겠어! 냐하하핫! 폐하도 괜찮지?"
유비가 마다할 리가 없었다. 즉위식 이후 조조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것은 유비였다. 같은 군주로서 그녀의 입장을 십분 이해하고 있었던 유비는 조조가 일행들과 많이 친해졌으면 했다.
"네. 그러도록 해요."
장비가 유엽의 말투에 딴죽을 걸었다.
"그래도 황제 폐하신데..."
"후후. 장 동생은 모용 동생을 싫어한다면서 왜 옆자리에 앉아 있을까?"
갑작스런 공격에 그녀의 얼굴이 빨개졌다.
"유비님 때문에..."
그녀도 이상했다.
'내가 왜 옆자리에까지 앉았는데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지?'
사실 자연스럽게 모용환이 유비와 장비 사이에 낀 것뿐이다. 그가 가운데 앉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장비의 당황한 모습을 보며 주유는 다시 가슴을 졸였다.
'이제 보니 장 언니가 꼬리치는 건 더 노골적이잖아!'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보고 모용환이 장비 운운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모용환은 소란스러워진 대전을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최소한의 근엄함은 지켜주면 좋으련만.
'이대로도 좋긴 하지만.'
그 때 문 밖에 있던 시녀가 연이라는 사람이 뵙기를 원한다고 알려주었다. 자신의 위치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모르는 이름인데다 이 시간에 제국의 실세를 만나보길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그것도 황궁에서.
"연? 모르는 사람인데... 어디서 들어본 이름 같기도 하고."
갑자기 장료가 손뼉을 쳤다.
"아! 그 때 그 점쟁이 아냐? 네 관상을 본!"
"음. 어쩐지 들어본 이름 같더라니... 그런데 그 사람이 맞을까? 아니, 그건 그렇다 쳐도 황궁에 어떻게 들어온 거지?"
일정 이상의 신분이 아닌 이상 황궁에는 출입조차 할 수 없다. 더욱더 그녀에 대해서 궁금증이 일어난 모용환은 문을 열고 대전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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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삼국지니까요... 그래도 수호지처럼 100명이 넘어가지 않는 건 다행이라고 생각함 -_-ㅋ
될 수 있으면 삼국지의 유명한 인물들은 웬만하면 등장시킬 생각입니다. 강유와 등애만 해도 지금 결코 등장해서는 안되는 인물들이지만 픽션이니까 ^^; 모용환이 꼬부랑 할아버지가 됐을 때 등장할수는 없는 일이니...
육손과 모용환 사이에서 아이를 낳으면 육항이려나.
학소나 종회 같은 인물들은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군요.
짤방은 업데이트 된 세력도 입니다. 색은 아실거라... 대전을 나오자마자 그가 본 것은 황실의 위사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두 여인이었다. 한 명은 말할 힘도 없는 듯 무척 초췌해 보였고, 다른 여인은 그저 막무가내로 대전에 들어가야 한다고 위사에게 사정을 하고 있었다.
"드, 들어가야 하, 한다니까요..."
"그러니까 지금은 시간이 늦었잖소. 처자가 누군지도 모르니 함부로 들여보낼 수 없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걸 보니 귀한 집 처자 같은데 다음에 오도록 하시오."
하후연은 자신이 장안으로 간 사이에 조조와 유비가 세력을 합치자 어디로 가야할지 한동안 갈팡질팡했었다. 그러다 물어물어 조조가 시상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온 것이었는데 정문 경비는 어떻게 몰래 들어올 수 있었지만 대전 안까지는 무리였다. 더구나 서서는 무척 지쳐있었다.
그녀를 상대하는 위사 또한 나름대로 짜증이 났다. 자태만으로도 침이 넘어가는 아가씨들이라 잘 타이르려고 했더니 이토록 막무가내일 줄이야. 용건을 물어도 우물쭈물할 뿐 그저 들어가야 한다고 박박 우기는 것이었다.
'제기랄, 게다가 말더듬이야. 앞에 놈들은 뭐 이런 여자를 통과시킨 거야?'
조조와 유비가 연합한 내막을 자세히 모르는 하후연으로서는 하후돈의 이복 동생이라는 신분을 숨겨야 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지만 상대의 입장으로는 짜증만 날 뿐이다.
'조조님을 만나야 하는데... 이 사람이 화낼 거 같아.'
하후연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능력을 조금만 쓰기로 했다.
"요, 요새 괜히 허, 허리가 아프죠? 트, 특히 밤에요."
"글쎄, 안 된다니... 뭐, 뭐요?"
위사가 관심을 보였다. 하후연은 좀 더 밀고 나가기로 했다.
"머, 머리가 띵할 때, 때도 있을 거예요."
"헉! 그걸 어찌 알았소?"
완전히 걸려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위사의 허리와 머리를 짓누르는 귀신들이 선명하게 보였다. 특이하게도 그 귀신들은 사람귀신이 아니라 여러 동물들의 형상을 한 귀신들이었다.
'곰, 개, 쥐, 토끼, 소... 세, 세상에... 커다란 구렁이도 있어.'
도대체 이 사람은 얼마나 많은 동물들을 먹은 걸까? 그것도 대부분이 잔인하게 죽은 동물들이었다. 구렁이 귀신은 썩어가는 형상을 한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아직 본판이 남아있는 것으로 봐서 최근에 먹힌 것 같았다.
"구, 구렁이를 드, 드신 것 같은데... 그, 그 전에도 여러 지, 짐승들을..."
위사는 머리를 긁적였다.
"귀신이구려. 사실 난 고기 먹는 걸 매우 즐긴다오. 맛도 맛이지만 짐승들은 쓰임이 많소. 사냥해서 잡아온 놈들의 가죽은 벗겨 쓰고, 살점은 구워먹고, 뼈는 고아먹거나 빻고, 뿔은 약방에 내다 팔면 남는 게 없지. 그 중에서도 구렁이 고기가 별미라오. 거, 젊은 처자에게 할 말은 좀 아니지만 구렁이가 정력에 좀 좋지 않소? 허리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잡아먹었는데 효과는커녕 이제는 머리까지 아프니."
일단 말문이 열리자 위사는 그녀에게 고민을 털어 놓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과연 그는 동물들의 적이 되기에 충분한 사람이었다.
'구렁이가 머리를 조이고 있으니... 당연하지요.'
하후연은 내심 생각하며 얼굴을 발갛게 물들였다. 위사의 뒷말 때문이다. 숫처녀지만 알 건 다 알았다. 하지만 눈을 가리기 위해 방갓을 쓰고 있어 티는 나지 않았다.
"보, 보름에 한 번 이, 일년 동안 제를.. 지, 지내면..."
이미 하후연의 신통력을 보았기 때문에 위사는 그녀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정말이오? 그럼 다 낫는 거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위사는 호탕하게 웃었다.
"으허허허. 정말 고맙소, 처자. 용하신 분 같은데 누굴 만나러 오셨소?"
잠시 그들이 하는 양을 뒤에서 지켜보던 모용환은 어이없는 얼굴이 되었다. 황궁을 지키라고 세워둔 위사가 점쟁이의 말 몇 마디에 넘어가는 꼴이라니.
"잘라 버릴 테다."
"그래도 저 사람이 용하긴 용한가봐."
뒤따라온 장료가 새삼 놀란 눈으로 하후연을 바라보았다. 그를 따라 나온 다른 여인들도 모두 그 광경을 보았다. 하후연의 목소리를 들은 조조는 그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하후돈의 동생이다."
주어가 생략되었기에 모용환은 조조의 말을 한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예? 하후 형님께 동생이 있었습니까?"
"방갓을 쓴 여자. 날 찾아온 것 같다. 내 호위를 맡은 하후연이다."
짤막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모용환은 크게 놀라서 소리쳤다.
"저 점쟁이 아가씨가 하후 형님의 동생이란 말입니까? 대체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그의 외침에 하후연과 서서는 대전을 나와 있는 일행을 볼 수 있었다. 무단침입(?)을 허용하게 된 현장을 딱 걸린 위사는 퍼렇게 질린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모용환은 그를 무시하고 하후연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의 뒤에 있던 유비는 이마를 땅에 박고 있는 위사를 안심시켜서 돌려보냈다.
"우린 구면이지요? 조조님을 찾아오셨다고요?"
"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방갓 밑으로 보이는 하후연의 얼굴선과 하후돈의 거칠어 보이는 얼굴을 비교해 보았다. 결과는 미스 매치. 아무리 성별 차이가 있어도 남매라면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있게 마련인데...
"그녀는 이복동생이다."
"아. 그렇군요."
별 것도 아닌 일에 호들갑을 떤 모용환은 하후연에게 시선을 돌려 서서를 쳐다보았다. 입술이 말랐고 안색은 파리하다. 한 눈에 봐도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보였다. 그는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서서를 부축했다.
"일단 이 분부터 어떻게 해야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토록 지치신건지..."
"......"
부축을 받은 서서는 반개한 눈으로 앞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한나라의 실세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동탁에게 겁탈을 당한 후에는 거의 감금되다시피 지냈기 때문에 그녀는 현재 천하의 정세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그러나 도주 중에 한나라와 진나라가 세워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진은 그녀를 이렇게 만든 원흉인 사마의와 방통이 건국한 나라. 사마휘를 구해내기 위해서는 한나라를 도와야 했다. 그리고 그러려면 한나라의 최고 권력자들을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저들이... 한의 재상들...'
그들을 보던 서서의 눈이 문득 한 사람의 얼굴을 보고는 찢어질 듯 크게 떠졌다.
"량...?"
"음?"
바짝 말라버린 입술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모용환은 서서를 내려다보았다. 모용환은 그녀의 시선이 제갈량에게 가서 딱 멈춰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량아와 아는 사이입니까?"
그의 말에 하후연을 보고 있던 제갈량 또한 서서에게 신경을 돌렸다. 그녀를 보자 왠지 기억이 날 듯 말 듯한 미묘한 느낌에 제갈량은 미간을 좁혔다.
이윽고 제갈량은 그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너... 서서! 서서야! 맞지?!"
차분했던 제갈량은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서서에게 달려갔다. 그 사이로 언뜻 보이는 예술적인 다리의 각선미에 보초를 서던 위사들은 헛기침을 하며 곁눈질을 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그런 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서에게 달려가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모용환은 그들에게 죽일 듯한 경고의 눈초리를 보냈다.
'내 아내야!'
몇몇은 그의 시선을 느끼고 얼른 고개를 돌렸지만 대부분은 제갈량의 다리를 감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는 나중에 위사들을 아주 혹독하게 교육시키리라 다짐했다.
제갈량이 전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마의를 패배시킨 이후부터다. 그 전까지 그녀의 존재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동탁의 군사로 있던 시절 서서 역시 유비군의 군사는 주유라는 것만 알고 있었을 뿐 제갈량이 유비군에 있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녀는 동탁이 죽은 후 사마의와 이유가 세력을 합치자 서서의 행방에 관해 비밀리에 조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유로 분한 방통의 철저한 차단으로 서서가 어찌 되었는지 몰라 노심초사하던 차였다. 그런데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다.
"아니... 쩝."
어어 하는 사이에 서서를 빼앗긴 모용환은 난감한 얼굴로 그녀를 얼싸안고 우는 제갈량을 쳐다봤다. 투신자살을 시도했을 때도 초탈했던 그녀가 눈물콧물 흘려가며 엉엉 우는 모습은 상상으로도 생각하기 힘든 것이었다.
"량아가 왜 저러는 거죠?"
"옛날에 헤어진 친구를 만난 모양인데...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어."
주유가 근심스레 묻자 대강의 사정을 알고 있었던 모용환은 그저 그녀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여인들도 제갈량이 서서를 껴안고 있자 함부로 말을 꺼내기 어려웠는지 다들 입을 닫았다.
"미안해! 그때 나만 도망가서... 정말 미안해... 흐흐흑..."
서서는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을 끌어안고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제갈량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녀의 손길을 느낀 제갈량은 서서를 올려다보았다. 제갈량의 얼굴은 눈물콧물이 범벅이 되어 보기 흉했다.
조운의 아버지에게 자신만 구출된 것을 몇 년 동안 가슴의 멍에처럼 지고 살았던 제갈량이다. 서서와 눈이 마주쳤던 마지막 순간을 악몽처럼 꾸기도 하면서 지내온 그녀였다.
서서는 눈물 젖은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제갈량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녀가 미안해할 일이 아닌데. 단지 자신보다 운이 좋았을 뿐인데. 왜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고 하는 걸까.
"넌... 전혀 변하지 않았구나..."
"미안해..."
"난 어린애가 아냐... 네가 미안해 할 필요는 없는 거야... 처음엔 네 원망도 했지만... 그건 바보 같은 짓이잖아. 그리고 어쨌든... 이렇게 다시 만났고."
제갈량을 원망하기에 서서는 너무 많은 일을 겪었다. 그저 헤어졌던 자매와 무사히 만날 수 있음을 하늘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다행이야... 정말..."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도 공허했다.
'아마 하늘은 이런 걸 바란 게 아닐까?'
복수하기 위해 동탁에게 갔지만 방통의 배신에 오히려 신세를 망쳤었다. 그리고 마지막 으로 희망을 걸었던 이번 도피행. 그런데 그 최후의 기대를 하늘은 저버리지 않았다.
소식을 알 수 없었던 제갈량은 자신과는 다르게 한나라의 재상이 되어 이미 사마의와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서서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량. 네게 할 말이 있어."
그녀는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제갈량에게 말해주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방통과 사마의가 대계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 동탁의 힘을 빌어 사마의를 치려던 자신은 방통에게 당해 감금을 당했으며 지금의 이 구도는 그들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 그녀는 자신이 동탁의 장수들에게 윤간을 당했던 일은 말하지 않았다.
서서의 말을 듣자 제갈량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흠칫 굳어져버렸다.
제갈량은 커다란 충격으로 인해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그, 그럴 리가... 방통이..."
'어쩌면 그는 방통이 아닐지도 몰라.'
그녀는 뒷말을 삼켰다. 서서는 방통이 그녀에게 했던 말들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글쎄... 네게는 방통이라는 이름이 익숙하겠군. 원한다면 그렇게 불려주도록 하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기묘한 뉘앙스가 풍기는 말이었다. 마치 방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 시상까지 도망쳐 오면서 서서는 줄곧 그의 말을 토대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었다.
'인피면구... 전혀 다른 사람이 어렸을 때부터 방통의 얼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면...'
어렸을 적의 방통은 어느 순간 좀 변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친한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서 조금 어색해하기도 했고 그녀와 제갈량에게 거리를 두곤 했었다. 당시에는 사춘기의 남자이 흔히 보일 수 있는 반응이라고 여겼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하니 확실히 가정이 성립했다.
'하지만 다 소용없는 일이야.'
누가 방통을 죽이고 연기를 했든, 아니면 정말로 방통이 변했든 간에 옛날의 그는 없었다. 그건 확실했다. 서서는 괜한 말을 해서 제갈량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그는 이미 적이 아닌가.
굳이 고민할 문제는 아니었다.
그녀는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제갈량을 꼬옥 안았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 한적한 시골에 가서 살고 싶어. 그래도 될까...?"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제갈량은 그 심정을 잘 알았다. 자신도 조운이나 모용환을 만나지 못했다면 혼자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서서는 홀로 여기까지 왔으니 그 고초를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래. 하지만 여기서 조금만 머물러 줘. 못 다한 얘기도 하고 싶고, 소개해줄 사람도 많아. 응?"
"하지만..."
"아, 아가씨. 그, 그렇게 하도록 하, 하세요..."
하후연까지 거들고 나서자 서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도 지금 무척 몸이 피곤했다. 오는 길에 치근덕대는 자들을 수없이 만나 피로가 쌓일 대로 쌓인 상태였다.
제갈량이 서서를 데리고 사라지자 모용환은 하후연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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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하후연이라고 했지요? 아가씨라니 무슨 말입니까?"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하후연은 움찔했다. 모용환은 그녀의 반응에 확신을 가지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냥 별 뜻 없이 아가씨라고 부를 수는 있지. 하지만 그녀가 더 나이가 많지 않느냔 말이야. 뭔가 있어.'
물론 그가 하후연의 나이를 구체적으로 아는 건 아니지만, 그녀의 성숙한 분위기와 무르익은 몸매를 봤을 때 서서보다 연상인 것은 확실했다. 이건 그의 직감이었다.
보통 때 같으면 이렇게까지 캐묻진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건국초기에다 전시상황이었다. 그런데 삼공의 직위를 가지고 있는 제갈량을 흔들 수 있는 여인이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왔다면?
'다소 냉정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그는 많이 신중해진 상태였다.
'이분께 말해도 될까?'
하후연은 고민했다. 모용환은 얼마 전까지 다른 세력의 장수였다. 그녀가 모르게 곽가와 원한이 있을지도 몰랐다. 혹시라도 그가 서서에게 해코지를 한다면 그녀는 미안해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역시 그대로 말하는 건 안 되겠어.'
결정을 내린 하후연이 대충 둘러대려고 할 때 조조가 말했다.
"우리는 이미 한의 신하, 조금이라도 숨기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녀에게 조조의 말은 하늘의 뜻이나 다름없다. 그녀는 바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별로 중요한 사실은 아니니까... 그래도 불안한데...'
"아, 아가씨는... 곽가... 오, 오라버니의 여, 여동생이세요."
그녀는 서서와 곽가가 서로 사랑했던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일말의 불안감이 약간의 거짓을 섞게 만들었다.
"곽가님의 동생? 성이 다른 것으로 보아 친남매는 아니겠군요?"
"의, 의남매에요. 시, 실상 그리 치, 친하진 않았지만요."
모용환은 하후연의 말을 듣고서야 서서에 대해서 대충 납득할 수 있었다. 서서가 동탁의 산하로 들어간 것은 몇 년도 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 전에 조조군에 잡혀 곽가와 인연을 맺었을 수도 있었다.
'곽가님이라면 충분히 그러실 수 있지. 세력에 상관없이 사람 사귀는 걸 좋아했던 사람이니까.'
죽은 곽가를 떠올리자 가슴 한편이 아련해졌다. 단 한번의 만남으로도 사람의 마음속에 이렇게 깊이 파고들 수 있다니. 그만큼 곽가가 그에게 남긴 첫인상은 인상 깊은 것이었다.
하후연이 그녀와 곽가가 별로 친하지 않았다고 부랴부랴 말한 게 걸리긴 했지만. 어느 정도 소중하게 여겼으니 하후연을 보내 그녀를 구출한 게 아니었을까? 그는 곽가가 하후연에게 간곡할 정도로 그녀를 구해주길 부탁했다는 것을 몰랐다.
'아서라. 그분과 관계있는 사람이 불순한 의도를 품었을 리 없잖아. 나도 주책이군.'
모용환은 씁쓸하게 웃으며 하후연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괜한 의심을 했군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황제를 제외하고 모든 자들의 위에 군림하는 상국이 고개를 숙였다. 하후연은 모용환의 지나친 과례에 몸둘바를 몰라 했다. 속으로 아내들에게 체통 운운하긴 했지만 모용환 역시 자신의 위치를 그다지 자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모용환과 하후연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던 주유는 나서서 한마디 했다.
"곽가님의 여동생이라면 이대로 그냥 보낼 순 없어요. 그분께 신세진 것도 있고, 더군다나 량아의 친구잖아요. 최대한 편의를 봐줘야 할 거예요."
"물론 그래야지."
"곽가의 동생이라면 사사롭게는 그대에게 누이가 된다."
조조는 하후연이 곽가의 유지로 출타를 했다는 것만 알았지, 그녀가 곽가의 여동생을 데리고 올 줄은 몰랐다. 조조는 곽가가 죽었을 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여동생이라는 서서라도 신경써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상국인 모용환의 누이라는 신분이면 황궁에서 무시당할 신분이 아니니까.
모용환은 조조가 뜬금없는 얘기를 하자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일전에 조조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린 탓이다.
'그 때 아마도... 곽가님을 형님으로 모시겠다고 했었지? 이것 참... 무를 수도 없고. 졸지에 량아의 친구가 누이가 되게 생겼네.'
그래도 남아일언은 중천금. 모용환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렇지요. 대접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겠군요."
신경써야 할 여자가 하나 더 생겼다. 모용환은 멀뚱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유비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벼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밤새 제갈량과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태사자는 요즘 무척 심통이 나 있었다. 즉위식에 참석하지 못한 것도 그랬지만 자기만 빼놓고 다른 여자들이 낭군님의 주위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복장이 뒤집혔다.
"아이 참. 아주버님은 왜 이리 늦으시는 거야?"
근래에 그녀의 말투는 꽤나 여성스러워졌다. 이제는 제법 애교도 부릴 줄 알았고 여성들만이 사용하는 관용사 '어머', '아잉'이란 말도 습관적으로 쓰기 위해 '연습'했다. 하지만 아직도 주유나 제갈량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다.
"보고 싶은데... 환랑은 날 생각해주기나 할까?"
모용환을 생각하는 그녀의 눈빛이 조금 몽롱해졌다.
그와의 첫 정사는 강제로 범해지다시피 한 것이었다. 나중에는 그녀도 즐기긴 했지만. 주유와 함께 그에게 처녀를 주었다. 처음에는 그냥 첫 남자였고, 강해서 따랐다.
태사자가 본격적으로 그에게 마음을 주기 시작한 것은 수춘에서 모용환에게 구출되었을 때였다. 설마 정말로 단신으로 자신들을 구하려고 원술의 본거지에 난입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떤 여자가 이런 남자를 거부하겠는가.
'유아도 그 때부터 환랑을 정말로 사랑하게 됐다고 했었지...'
주유와는 경쟁 관계였지만 가장 친한 사이기도 했다. 같이 여행도 다녔고, 첫경험도 동시에 했으니...
그녀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 놓기 시작해 지금은 많은 비밀을 공유하고 있었다.
주유가 모용환에게 처음 접근한 것은 순수한 의도가 아니었다. 자신의 알몸을 본 것도 어느 정도 이유가 되긴 했지만 그것은 명목상일 뿐 실제로 그녀의 목적은 모용환을 유혹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그녀로서는 자신을 거두어준 손견의 자식들이 남의 부하가 된다는 게 못 마땅했던 것이다. 주유는 손책에게 알리지 않고, 독단적으로 모용환을 휘어잡아 그의 세력을 손에 넣으려고 했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지만. 유독 주유가 모용환에게 까칠한 것은 그에게 미안한 감정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녀 나름대로의 표현 방법일 것이다.
거기까지 떠올린 태사자는 갑자기 얼굴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이거 정말 효과 있는 거 맞아?"
그녀는 자신의 가슴어림을 더듬어 보았다. 여전히 주유나 제갈량에 비하면 작은 가슴이었다. 하도 모용환이 가슴이 작다고 놀리는 탓에 태사자는 심한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었다.
"걔들도 이런 걸 먹었을까?"
집무를 봐야할 책상 위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병들이 놓여져 있었다. 병들에는 각각 내용물을 알려주는 글자가 써 있었는데, 정말 종류가 다양했다.
양젖, 말젖, 소젖, 심지어 염소젖까지... 갖가지 종류의 젖들이 병 속에 담겨 있었다.
다른 여인들에 비해 자신이 밀리는 것이 가슴크기라고 생각한 태사자는 은밀하게 노련한 유모들을 불러 가슴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았다. 유모들인 만큼 가슴에 대해 아는 것도 많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가슴이 커지게 할 수 있지?'
'흘흘. 젖을 커지게 하려면 젖을 먹어야지. 내 딴에는 소젖이 최고라고 생각한다우.'
'말젖이 그렇게 효과가 좋대요.'
'곶감이...'
의견은 제각각이었다. 개중에는 질문의 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모유수유에 효과적인 방법을 가르쳐주는 산파도 있는가하면 검증되지 않은 속설을 사실인양 늘어놓는 할머니도 있었다.
그래도 젖 종류를 먹는 게 좋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기에 태사자는 그날로 물이나 차 대신 병에 담긴 젖들을 주로 마셔왔다.
그러길 한달, 효과는 없었다. 하지만 태사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 한달로는 부족해. 1년은 먹어야 티라도 나겠지."
오늘 아침에 관우가 보낸 전령이 도착해 그가 합비에까지 당도했음을 알려왔기 때문에 태사자의 기분은 무척 좋았다. 그래서 태사자는 오늘 매사에 꽤 긍정적이었다.
'아주버님만 오시면 환랑을 만나러 갈 수 있어.'
그녀는 어서 관우가 도착하기를 학수고대했다. 그가 빨리 와야 수춘을 떠넘기고 시상으로 달려갈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만이 머리에 꽉 차 있었다.
"장군!"
한창 궁상을 떨고 있을 때 그녀의 부관이 기겁한 얼굴로 집무실에 쳐들어왔다. 워낙 큰 목소리였는지라 태사자는 얼굴을 찡그렸다.
"목소리가 뭐 그리 커? 귀가 다 멍멍하네."
"그런 소리 하실 때가 아닙니다! 어서, 어서 성벽으로 가셔야 합니다! 어억!"
평소라면 찍소리도 못할 부관은 숨쉬기도 힘든 듯 가슴을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워했다. 부관이 숨어 넘어갈 것 같자 태사자는 그에게 소젖을 권했다.
"숨이라도 돌리고 말해봐. 무슨 소리야?"
"꿀꺽. 진나라가 쳐들어왔습니다! 정서장군께서 이미 수비 태세를 갖추고 계십니다!"
태사자는 일순간 멍해졌다.
"뭔 소리야? 진나라가 쳐들어오다니? 거기는..."
긴장감 넘치는 대치 상태를 이루고 있지만 아직 진이나 한이나 건국 초기다. 대규모 전면전을 일으킬만큼 나라가 정비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나가보십시오!"
부관의 재촉에 태사자는 떠밀리듯 성벽위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이미 수춘의 수비병들이 활을 들고 전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굳은 얼굴로 앞을 주시하는 정서장군 조인이 보였다.
사태가 정말로 심상치 않아 보이자 태사자는 병사들을 헤치고 성벽 위에 섰다. 그리고 그녀는 할 말을 잃었다.
"...저게 뭐야..."
수만, 아니 10만은 되어 보이는 대군이 벌판을 새카맣게 메우며 수춘성을 향해 진격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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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가 질질 끄는 것 같다는 의견이 있어서 독자분들에게 여쭤보려 합니다.
스피디한 전개를 원하시나요?
저는 별로 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연희삼국지를 보신 분들은 그 정도의 전개 속도를 원하시는 것 같은데 연중되긴 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연삼은 완결이 났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원소, 조조, 유비, 제갈량까지 모두 먹은 상태고 천하통일을 앞두고 있었으니까요..
앞서 말했지만 전 히로인들 개개인의 개성을 살려주고 싶습니다. 그러다보면 사사로운 에피소드가 많아질 수밖에요. 그래도 200편 안에 천하통일을 하는 건 좀 빠르지 않나요..? 어느새 작품용량도 1000키로바이트가 넘어갔고... 워드 텍본으로는 3.4mb더군요..
연희삼국지를 예전에 읽었을때는 길다라고 느꼈는데 지금 보니 용량이 700정도 되더군요. 그 소설 읽고 삘받아서 쓴 글인데 어느새 그보다 더 많이 쓰게 되다니.. 스스로 뿌듯함(?)을 느낍니다.
연재속도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서는 어쩔수 없습니다 ㅠ 학업도 있고 대학은 졸업해야지요. 1월달이 원래 제일 한가한 달이니..
그래도 하루 1, 2연재는 웬만하면 꼭 지킬 생각입니다. 연중 생각도 없고요. 짤리지만 않는다면...
독자님들의 의견을 적어주세요. 지금의 전개 속도가 나은지, 아니면 좀더 빠른 천하통일을 원하시는지.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서서는 제갈량의 처소에 가자마자 곤히 잠이 들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고생을 많이 한 듯 했다. 제갈량은 안쓰러운 눈으로 잠든 그녀의 볼을 쓰다듬었다. 제갈량이 서서에게 느끼고 있는 마음의 빚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는 모용환은 나름대로 그녀를 위로하려고 왔지만 서두도 꺼내지 못한 채 쭈뼛거리고 있었다.
"... 고아원을 한대요."
"응?"
제갈량은 독백하듯 말했다.
"서아가 많이 힘들었나 봐요. 무슨 일을 겪었을지... 어느 정도 이상까지는 말해주지 않네요. 이대로 낙향해서 앞으로 많아질 전쟁고아들을 거두고 싶대요. 옛날에 스승님이 우릴 거두어 길러주셨던 것처럼..."
사마휘의 친아들인 사마의와, 따로 연고가 있었던 방통과는 달리 서서와 제갈량은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고아 출신이었다.
"그러려면 돈이 많이 들 텐데..."
"제가 지원해 줄 생각이에요. 나라에서 고아원을 만들고 그 운영을 서아에게 맡기면 되지 않을까요?"
한나라의 재정 상태는 그리 넉넉하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제갈량도 안다. 가장 먼저 해결한 일이 토지와 호구를 조사해 세금을 넉넉히 거두는 것이었으니, 그 사정을 알 만 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서서의 일이다. 무리를 해서라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악역은 싫은데...'
그런 좋은 일이라면 그도 마다하지 않을 테지만 국가 차원에서 고아원을 운영한다면 한 두 개로는 어림도 없다. 지역마다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최소 몇 십, 몇 백 곳은 세워야 할 테고 돈도 엄청나게 들 것이 자명했다.
"네 맘은 알겠지만..."
딱 잘라서 거절하기가 힘들었는지 모용환은 말끝을 흐렸다. 제갈량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그녀는 배시시 웃었다.
"그냥 해 본 말이에요. 무리라는건 저도 잘 알아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아쉬운 빛이 역력하다. 그는 어떻게든 제갈량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다. 자고로 여자 앞에서 약한 모습 보이고 싶은 남자는 없는 법이다.
"이곳에서 고아원을 하면 돼."
"여기서요...?"
"낙향을 하게 되면 몰래 자금줄을 대기가 힘들잖아. 그러니까 이곳에서 저 아가씨 이름으로 고아원을 한 곳 운영하면 되는 거야. 그리고 차차 늘려나가면 되는 거지. 시작이 반이라고 했어."
확실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서서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만큼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서 돈을 대기가 힘들게 된다. 하지만 이곳 시상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황실의 힘으로 고아원 한 곳 정도를 운영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타당한 그의 말에 제갈량의 표정이 대번에 환해졌다. 서서와 관련된 일이라면 감정조절이 능숙한 그녀도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러면 되겠네요! 그런데 서아가 그런 도움을 달가워할까요?"
"음. 그게 또 문제군..."
똑똑한 여인들은 자존심이 강하다. 특히 한 세력의 군사까지 겸했던 여인이라면 강해도 보통 강한 것이 아닐 것이다. 아무리 친구라지만 이렇게까지 도움 받는 걸 기뻐할까?
"어쩔 수 없어. 본인에게 물어봐야지. 지금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천천히 생각하자고. 그런데 굳이 고향에 가는 이유가 뭘까? 좋은 기억이 없는 곳일 텐데."
융중. 서서와 제갈량의 고향이다. 어려서부터 그곳에서 사마휘의 손에 자랐고, 사마의가 일을 벌인 곳이기도 했다. 그녀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제갈량만 하더라도 별로 고향에 대한 애착은 없었다.
"물어봐도 대답해 주질 않아요.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후. 결국 우리끼리 탁상공론 해봐야 소용없다는 거군. 내일 동생이 일어나면 의논해 보도록 하자."
제갈량은 의문스런 눈빛을 던졌다.
"동생이요?"
"하하. 그게... 이 아가씨가 곽가 형님과 의남매 사이래. 곽가님은 내게는 형님이나 다름없는 분이니 그 분의 동생이라면 마땅히 나도 동생으로 삼고 돌봐줘야 하지 않겠어? 량아랑 동갑이니까."
단순히 제갈량의 사적인 일로 치부할 수도 있는 일이다. 모용환이 이렇게까지 서서를 배려해줄 줄은 몰랐기에 제갈량은 일렁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정말 고마워요."
"어사대부인 량아의 친우라는 것만으로도 함부로 할 사람은 없어. 나야 약간 더 편의를 봐줬을 뿐이야."
"그래도 고마워요."
무릎걸음으로 다가온 제갈량은 기습적으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 쪽 소리 나게 입맞춤을 했다. 기습적인 입맞춤에 모용환은 일순 멍해졌다.
"후훗, 이건 선물이에요."
아직도 감미로운 입술의 감촉이 은은하게 남아 있었다. 모용환은 아찔할 정도로 요염하게 눈웃음치는 제갈량을 보자 욕망이 솟구쳐 오름을 느꼈다.
"유혹한 거 맞지?"
"질 수는 없잖아요. 특히 유아에게는요."
제갈량은 요즘 경쟁의식을 불태우고 있는 주유를 확실히 의식하고 있었다.
모용환은 제갈량의 가느다란 허리를 당겨 안으며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 어느새 제갈량 또한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여기서 하기는 좀 그렇지?"
"서아가 자고 있으니까... 환랑의 방으로 가요."
둘은 서서가 자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녀는 좀 전에 잠이 깬 상태였다. 정확히는 모용환이 그녀를 도와줄 방법을 언급하면서부터 정신을 차렸다.
몸은 피곤했지만 의식은 또렷했다. 숨 막힐 듯한 생활을 하면서 이제 잠을 깊게 잘 수 없게 된 탓이다. 이곳으로 오면서 자는 사이에 그녀와 하후연을 덮치려던 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얼굴은 가렸지만 드러나는 몸매만으로도 뭇 사내들을 홀릴만한 두 미녀가 남자도 없이 돌아다녔으니 요즘처럼 뒤숭숭한 세상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히 그런 일을 당한 시간대가 모두 밤이라서 하후연이 무리 없이 물리치긴 했지만 매번 가슴을 졸이기는 똑같았다.
서서는 모용환과 제갈량의 대화를 들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좋은 사람과 만났구나... 행복하길...'
그 때 서서는 갑자기 목구멍에서 욕지기가 치밀어 오름을 느꼈다.
"우욱!"
"엇?"
"왜 그래?!"
방을 나가려던 모용환과 제갈량은 갑자기 몸을 일으킨 서서가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하자 깜짝 놀랐다. 제갈량은 사색이 되어서는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었고 모용환은 무언가 토사물을 받을 그릇 같은 것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서서는 답답한 신음성만 낼 뿐 구토를 하지는 않았다. 제갈량은 떨리는 손으로 그녀를 진맥했다. 그녀는 가벼운 진맥 정도는 할 줄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갈량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임신...?"
허둥거리던 모용환은 그녀의 말에 뚝 행동을 멈추었다.
"뭐?"
"임신한 것 같아요... 얼마 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맥이 두 개에요...!"
어느새 구역질을 멈춘 서서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제갈량은 그녀의 낯빛을 보고 주먹을 꼭 쥐었다. 어느 정도... 짐작이 되는 것 같았다.
"이것 때문에... 고향에 가겠다고 한 거야?"
누구의 아이냐고는 묻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빛으로 봐서 원치 않던 아이라는 건 확실했으니까.
'왜 지금 잠이 깨서...!'
서서는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움켜잡았다. 그냥 계속 자고 있었다면 제갈량에게 어떤 걱정도 끼치지 않고 그대로 고향으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입덧을 하기 시작한 것은 엊그제부터였다. 누구의 아이인지는 몰랐다. 한달도 전에 동탁에게 처음으로 안기긴 했지만 바로 그 뒤부터 많은 남자들에게 몸이 범해졌으니.
모용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진맥으로 임신여부를 알 수 있을 정도라면 최소 1개월은 되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여자 홀로 내려 보내는 것이 불안했는데 임산부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아가씨는 곽가 형님의 의동생이지. 그렇다면 내게도 동생이야. 이대로 보낼 순 없어. 여기서 몸조리라도 하도록 해. 여자 혼자 낙향해서 어쩌잔 거야?"
서서는 입술을 깨물었다.
누구의 아이일까? 동탁? 이각? 곽사? 지금 그건 중요치 않았다. 이미 그녀는 아이를 배었고, 낳기로 마음먹었다. 며칠 전, 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비수로 배를 찌르려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때마침 방에 들어온 하후연이 그녀를 필사적으로 말렸었다.
'아, 아이가 노, 놀랐어요! 멈추세요!'
하후연은 영혼을 보고 느낄 줄 안다. 그것은 서서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 그녀가 아이가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를 따라서 아파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서서는 차마... 아이를 뗄 수 없었다. 아이에게 무슨 죄가 있을 것인가.
서서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모용환은 그녀가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홀로 방을 나왔다. 자신은 몰라도 저런 때 절친한 제갈량이 옆에 있다면 큰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방을 나온 모용환은 서서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꼈다. 그도 눈치가 꽤 좋은 편이다. 제갈량과 서서의 분위기로 봐서 어찌 된 사정인지 알 만 했다.
"휴우... 불쌍한 여자군. 큰일..."
"형! 큰일 났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저쪽에서 육손이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게으름뱅이가 뛸 줄도 아냐? 무슨 큰일이 나서 그래?"
"여포가, 여포의 10만 대군이 수춘으로... 형!"
모용환은 육손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납덩이처럼 굳어진 얼굴로 대전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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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 서서를 형수라고 해버린... 마이 미스테이크
ㅇ 대전안의 분위기는 상이라도 난 것처럼 무거웠다.
"어떻게 10만 대군이 지척까지 올 때까지 모를 수가 있지?"
장료가 한탄하듯 말하자 주유는 끄응 앓는 소리를 냈다.
"하나의 나라로 합쳐진 이상 정보의 통제는 쉬워요. 아마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쳐들어 온 걸 거예요. 그나마 수가 많아서 지금이라도 안 게 다행이죠. 빨리 원군을 보내야 해요."
십만의 군사가 진군한다는 사실, 보는 눈이 많아 완전히 감추기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국경을 통제한다면 어느 정도의 봉쇄는 가능하다. 조금씩 새어나간 정보는, 처음에는 뜬소문처럼 여겨졌다가 지금에서야 들어온 것이다.
"날 보내줘. 적장이 우리 대장이라고 들었어."
장료는 결의에 찬 표정이었다.
수춘에는 관우와 조인, 태사자가 있다. 하지만 여포가 이끄는 10만의 대병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지는 미지수였다. 한시라도 빨리 원군을 보내야 했기에 회의는 잡음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원정군의 대장에는 모용환, 휘하로는 육손과 조운, 장료가 포함되었다.
모용환은 복도를 천천히 거닐며 이번 일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여포... 지금 상대하면 이길 수 있을까.'
오각산에서 대적했던 여포의 무위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정말로 혼자서 천 명이고 만 명이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면, 모용환은 주저 없이 그를 꼽을 것이다.
패배? 불가능? 어느 단어도 여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문득 실없는 생각이 났다.
'한니발을 상대하던 로마 병사들도 이런 기분이었을지... 후후.'
이상하게 긴장은 되지 않는다. 오늘이 지나면 목숨을 건 전장으로 떠나야 되는데,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고요한 수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담담하기만 했다.
장료는 자기를 선봉으로 써달라고 했지만 모용환은 추호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선봉이라면 자기가 맡는 게 낫다. 사기진작에도 장료보다는 더 효과가 클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내심은 조금 달랐다.
'그와 싸우고 싶다.'
지금도 이렇게 온몸이 저릿저릿한데, 여포와 대면하게 되면 끓어오르는 호승심 때문에 먼저 뛰쳐나갈 것 같았다.
'지면 죽을 수도 있는데도?'
그는 피식 웃었다.
'일기토면 죽을 수도 있겠지. 여포라면 3대 1 정도는 봐주지 않겠어?"
병사들이 듣는다면 단번에 사기가 떨어질 생각을 하는 그였다.
그는 황제의 침소로 가고 있었다.
진나라의 발호로 혼인식이 연기되기는 했지만 황궁의 모든 사람들은 그가 황제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황제의 침소에 출입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지만, 모용환은 예외였다. 내관들은 그가 침소로 아무 말 없이 그냥 지나가는데도 어떤 제지도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남편이 아내의 방에 들어가는 이유야 알 만 하지 않은가.
그렇게 해서 방에 들어온 모용환은 유비의 옆에서 함께 잠들어 있는 장비를 보며 혀를 찼다.
'나보고 무엄하다더니 자기는 아예 옆에서 자네?'
그는 자신이 그 원인을 제공했음을 모르고 있었다. 예전 그가 유비와 첫 정사를 가졌을 때, 장비는 그녀를 보호하지 못한 것에 자책감을 느끼고 그 이후로 쭉 유비의 옆에서 수면을 해결하게 된 것이었다.
그녀의 머리맡에 놓여있는 장팔사모를 보자 왠지 살벌한 느낌이 들었다. 모용환은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살금살금 유비에게 다가가 그녀를 지그시 들어올렸다.
어지간한 침입자라면 장비가 기척을 느끼고 깨어날 수 있겠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
유비는 몸이 들어올려지자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모용환의 예상대로 비명 따위는 지르지 않았다. 그 때와 마찬가지로 단지 조금 놀란 눈으로 침입자를 응시할 따름이었다.
모용환은 씩 웃었다.
"접니다."
"상공?"
그녀는 침입자의 정체를 알게 되자 적잖이 안심한 듯 했다. 모용환은 장비가 깰까 봐 검지를 입술에 대고 천천히 그녀를 창문가에 내려주었다.
"그 동안 뜸했었지요? 내일이면 출정인데, 그래도 마지막으로 보는 건 폐하의 용안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
그의 말에 유비는 어떤 대꾸도 하지 못하고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그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럽게 느껴진 모용환은 그녀를 그대로 끌어안으려고 했다. 그러자 유비는 그를 가볍게 밀치며 얼굴을 붉혔다.
"제가... 벗을게요."
사라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모용환의 심장은 힘차게 방망이질을 쳤다. 창가에 비춰지는 은은한 빛은 새하얀 유비의 나신을 더욱더 신비스럽게 조장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빙기옥골(氷肌玉骨), 한 떨기 꽃이 따로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여인의 알몸을 보고 있자 모용환은 급격히 피가 쏠리는 것을 느꼈다.
"폐하..."
"장 언니도... 같이 하면 안 될까요?"
"예?"
유비의 당돌한 말에 모용환은 하마터면 큰소리를 낼 뻔했다. 장비와는 지금 무척 껄끄러운 관계다. 그 때문에 이렇게 조용히 일을 치르려는 것인데, 유비가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두 분이 화해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이건 명령이에요."
그녀가 강하게 나오자 모용환은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생겼다. 유비로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장비와 모용환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그가 자신을 안아주지 못하니 상심을 하던 차에, 이렇게 두 사람을 화해시킬 기회가 찾아왔다.
"좋습니다. 대신, 뒷일은 폐하께서 무마해 주십시오."
"물론이에요."
면죄부를 얻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용환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탁자에 놓여 있던 작은 천조각으로 복면을 급조해 얼굴에 뒤집어썼다. 방이 밝았다면 어설픈 두건인 것이 금세 탄로 나겠지만, 이런 어두운 조명에서는 누가 봐도 분명한 밤손님이었다.
"어쩌시려고..."
그 모습을 본 유비는 불안해했지만 모용환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자 묵묵히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모용환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복면을 쓴 채 자고 있는 장비를 덮쳐버렸다. 그걸 보고 있던 유비는 입으로 손을 가리며 놀란 토끼처럼 눈을 떴다.
"누구... 읍!"
푹 자고 있던 데다가 워낙 순식간의 일이었기에 장비는 아무 반항도 하지 못했다. 머리 위로 올려진 손목들이 낯선 침입자의 한 손에 의해 결박당하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비명을 지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시커먼 복면을 한 사내가 장비의 입술을 덮쳐버렸다.
'유비님은?!"
사내에게 입술을 유린당하고 있는 와중에도 장비는 곁눈질로 옆 침상을 살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비는 그곳에 없었다.
'납치당하신 거면 어떡하지? 헉!'
장비는 생각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사내의 손이 그녀의 바지를 찢듯이 벗겨버리며 우악스럽게 꽃잎을 벌리고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얼른 다리를 오므리려고 했으나 이미 다리 사이에 사내의 몸이 끼어버린 상태였다.
'안돼... 흐윽!'
스스로 한 몸 지킬 무예는 익혔다고 자부해왔었다. 특히 최근에는 조운과의 대련으로 예전보다 더 강해졌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양손을 결박하고 있는 무지막지한 힘에는 당할 도리가 없었다.
'이러면서 무슨 유비님을 지키겠단 거야...'
사내의 손은 마음껏 그녀의 꽃잎 속을 애무하고 있었다. 그 능수능란한 손길에 장비의 몸은 주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점차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질벽을 살살 자극하는 손가락의 움직임에 장비는 눈을 꼭 감았다.
"후웁... 쪼옥... 쪽."
그녀의 입가는 사내의 타액으로 인해 범벅이 된 상태였다. 복면인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장비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상대가 입속에 혀라도 내민다면 이빨로 물어버리겠지만 그러지도 않는다.
"으으윽..."
조갯살을 벌리며 진입해 들어오는 커다란 불기둥. 장비는 몸을 출렁이며 입을 악다물었다. 눈물이 났다. 상대는 황실까지 침입해 들어온 실력자다. 자신은 겁탈 당하고 살인멸구를 위해 죽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죽을 거라면 차라리 그 녀석과 사는 것도 나쁘진 않았을 텐데...'
그 사람과는 그다지 좋은 기억이 없는 것 같아 아쉬웠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그녀는 조용히 눈을 내리깔고 혀를 깨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입안에 침투한 이물질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
"윽! 혀를 깨물다니! 미쳤어?! 아우, 아파라."
급히 손을 넣어 장비의 자살 시도를 막은 모용환은 이빨에 물려 피가 나는 손가락을 쓰고 있던 복면으로 칭칭 감았다. 이만하면 장비의 기가 좀 눌렸겠지 하는 생각에 복면을 벗으려고 했는데, 그녀가 다짜고짜 혀를 깨물려고 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
장비는 실체를 드러낸 모용환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머리 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내가 저딴 자식을 마지막으로 생각했다니... 좋은 추억? 이딴 놈하고 그런 게 생길 리가 없잖아!'
생각은 길었고 나오는 말은 짧았다.
"야! 이 나쁜 자식아!"
모용환은 능글맞은 얼굴로 상체를 일으키려는 장비를 내리눌렀다. 한손에 잡히지도 않는 젖가슴의 감촉이 손바닥 한가득 느껴졌다.
"나쁘다니? 이건 엄연히 황제 폐하의 어명을 받든 거라고. 그렇지 않습니까?"
"뭐?"
장비의 눈에 그때서야 저 옆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유비가 들어왔다. 설마 모용환이 자신에게 덤터기를 씌울 줄은 상상도 못한 유비는 무척 억울했다. 하지만 고의든 실수든 그에게 면죄부를 준 것은 자신이다.
"그, 그게... 죄송해요! 전 다만 두 분이 잘되라고..."
유비는 변명을 포기했다. 어차피 장비는 유비가 잘못했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모용환의 탓으로 돌렸다.
"무슨 짓을 했길래 폐하께서 그런 말을 하신거야! 너... 학!"
장비는 말을 잇지 못했다. 모용환이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옷을 풀어헤치고 젖무덤에 얼굴을 묻었기 때문이다. 잔뜩 부푼 유두가 그의 입 안에서 굴려지니 장비는 밀려오는 쾌감에 자기도 모르게 모용환을 얼싸안았다.
"저기... 저도..."
'괜히 말했어!'
순식간에 두 사람의 안중에서 밀려나버린 유비는 모용환에게 장비를 언급했던 것을 후회하며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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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어제 대학학교 졸업식을 했습니다.
덕분에 밤늦게까지 술집에서 -_-ㅋ;; 소맥좀 땡겼더니 아직도 머리가 띵하군요
그래도 동생이랑 하는 술자리인지라 중간에 나갈 수도 없고 해서요.
어제 연재를 못한 것 죄송합니다.
아.. 좀만 있으면 기숙사로 돌아가야하는데 걱정이 태산이군요.
전 이만 해장하러.. "이리 오십시오."
일단 침상위에 올라서긴 했지만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유비는 영문도 모르고 모용환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네? ...아앗! 하아아!"
유비는 장비를 발 사이에 두고 모용환의 앞에 섰다. 그의 팔에 이끌려 부끄러운 곳을 그의 얼굴에 맞대게 된 유비는 얼른 그곳을 가리려 했지만 모용환은 이미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갖다댄 뒤였다.
그의 혀는 영활하게 움직이며 꼭 다물려있던 꽃잎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이미 유비의 꽃잎은 뜨거운 열탕이 되어 있었다.
"아아앙!"
유비는 모용환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듯 꽉 붙잡았다. 그는 짓궂게도 꽃잎 사이에 댄 얼굴을 크게 움직여 그녀의 하체를 자극했다.
"으음..."
모용환은 한손으로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유비의 엉덩이를 지그시 움켜쥐고, 다른 한손으로는 장비의 풍만한 젖가슴을 마구 주물러대고 있었다. 그는 유비의 꽃잎을 애무하면서도 장비와 정사를 나누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녀의 질 안에 들어간 육봉의 움직임은 마치 뱀과도 같았다.
척! 척! 척!
상대가 모용환임을 알게 되면서부터 긴장이 풀어졌는지 장비의 꽃샘에서는 계속해서 물이 흘러나왔다. 덕분에 애액으로 젖은 치모가 모용환의 살과 맞부딪치며 물기 젖은 소리를 냈다.
"하악! 빼, 빼애... 흐아앙...!"
"응? 뭐라고?"
장비는 유비가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모용환이 숙련된 몸놀림으로 꽃잎 속을 능란하게 쑤셔대는 통에 그녀는 미칠 것만 같았다. 경황 중에 그녀는 다리를 벌리고 선 유비의 허벅지를 세게 부여잡았다.
"...언니... 흑! 사, 상공! 거긴 안돼요!"
장비가 너무 세게 허벅지를 잡자 유비는 고운 아미를 찌푸렸으나, 곧바로 모용환이 은밀한 국화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자 크게 놀랐다.
"여긴 마냥 더러운 곳이 아닙니다. 특히 폐하에게는요. 후후."
"아우...웃!"
그는 대교에게 유비의 성감대를 들었다. 그녀는 항문 쪽이 약했다. 어떻게 대교가 그 사실을 알았는지는 몰라도, 확실히 유비는 그곳이 약한 것 같았다. 손가락 두개를 집어 넣고 주위를 살살 어루만지자 그녀의 몸이 배배 꼬이기 시작했다.
모용환은 그렇게 유비의 국화를 희롱하며 장비와의 정사에 집중했다. 일단 하나라도 보내자는 생각이었다.
장비의 꽃잎에서 질걱이며 뿜어져 나오는 꿀물은 이미 침상에 깔려 있던 비단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발기된 음핵 주위를 가볍게 쓴 후 애액이 잔뜩 묻은 손가락을 장비에게 물렸다.
물론 귀엽게 고개를 든 음핵을 한 번 꾹 눌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으응...! 히익! 우움...!"
"장비산 꿀물인데. 맛은 어때?"
무심결에 모용환의 손가락을 빨던 장비는 그것이 자신의 애액이라는 사실을 알자 얼굴이 확 달아올라서는 화를 내려고 했다. 그러나 모용환이 그녀의 가랑이를 거칠게 벌리자 수축된 근육이 찢겨질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악! 아퍼! 놔!"
모용환은 고개를 갸웃했다.
"희한하네. 무예를 좀 했다 싶으면 쫙 벌어지는 게 정상 아냐?"
"누가 그래!"
"꼭 누가 그런 건 아닌데. 운아는 놀랄 정도로 잘 벌어졌거든."
장비가 유연성이 부족한 게 아니라 조운이 유연성이 뛰어난 것이다. 이미 그녀의 다리는 거의 일자에 가깝게 벌어진 상태였다.
그는 장비의 다리를 틀어쥔 손의 힘을 풀며 이번에는 다리 대신 그녀의 조갯살을 손가락으로 벌렸다. 한껏 박힌 육봉이 빠져 나올 때 딸려 나오는 연분홍 속살이 선명하게 보이자, 그는 육봉을 빼내고 손가락 네 개를 한꺼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동시에 유비를 주저앉혀 흠뻑 젖어있는 그녀의 꽃잎에 육봉을 삽입했다.
"아학!"
"상공! 하앗!"
두 여인의 신음은 거의 동시에 울려 퍼졌다.
찌걱 찌걱.
모용환은 장비의 꽃잎 속에 파고든 손을 마구 흔들면서 엄지손가락으로는 그녀의 음핵을 계속해서 자극했다. 빠르게 질 속을 왔다갔다하는 손가락의 움직임에 장비는 눈을 하얗게 치떴다. 그녀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쾌락이었다.
"아아앗! 하읏!"
이윽고 질척이는 소리와 함께 장비는 숨넘어가는 교성을 내뱉었다. 그녀는 조갯살을 잘게 떨며 감로수를 함빡 토해내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몸을 축 늘어뜨렸다.
정사의 열기가 조금 가신 그녀의 시선은 유비와 사랑을 나누는 모용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잠 다 깼잖아... 역시 나쁜 놈이야..."
그녀는 무의식중에 자신의 꽃잎을 어루만졌다. 다시 몸이 뜨거워졌다.
이튿날, 단상 위에 올라 연설을 하는 황제는 조금 수척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호위를 서는 장비 역시 자꾸만 감기는 눈꺼풀을 들어올리느라 안간힘을 써야 했다. 동이 틀 때까지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을 자랑하는 모용환과 몸을 섞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정작 두 여자를 양 옆에 끼고 즐거운 밤을 보낸 모용환은 그런 그녀들을 보며 싱글벙글이었다. 이제 장비의 눈치 볼일이 없이 유비와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다면 말이지만.'
모용환은 절대 죽을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런 미녀들을 무더기로 놔두고 가버린다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남자일 것이다.
어느새 황제인 유비의 연설이 끝났다. 비장한 얼굴로 그녀의 연설을 듣던 원군 4만은 다시 한 번 결의를 다졌다. 10만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인 군세였지만 이곳은 황제가 있는 곳이기에 더 이상 병력을 차출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가는 도중 몇몇 성에서 군사들이 합류하기로 했으니 수춘성의 군사들까지 합친다면 그럭저럭 대적할 만한 수가 될 것이다.
그는 관우와 태사자가 자신들이 올 때까지 버텨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상대가 여포이긴 하지만 이쪽도 그에 비해서 그다지 꿀리지 않는 장수들이었다.
"형. 형 차례인데요."
옆에서 속삭이는 육손의 말에 모용환은 정신을 차리고 유비가 내려온 단상으로 올라갔다. 수만의 눈이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후웁..."
그는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그 또한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는 연설은 처음이었지만 초보 티를 낼 수는 없지 않은가.
'난 만능이다. 단지 내가 그것을 활용하지 못했을 뿐. 하고자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지금 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거야.'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건 모용환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대들 중에는 이번 전쟁이 달갑지 않은 자도 있을 것이다. 그저 나이가 차서 징집된 자도 있을 것이고, 돈을 벌기 위해 군문에 투신한 자도 있겠지."
"......"
병사들은 숨죽이고 그를 지켜보았다.
"지금은 이렇게 우리가 적들을 막으러 가고 있지만 다음번에는 우리가 그들을 침략할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그렇게 되겠지. 아는가? 전쟁은 무조건 나쁜 것이다. 어떤 명분으로도 합리화시킬 수 없는 것이 전쟁이다. 그대들의 부모, 형제, 친구. 모두가 차가운 칼날 아래 쓰러질 수 있는 것이 전쟁이란 괴물이다. 그런 더러운 전쟁을 우리는 하러 가야 한다. 정말 엿 같은 일이지."
그를 지켜보던 장료는 옆에 있던 조운을 툭 건드렸다.
"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러면 사기만 떨어지잖아. 간밤에 무슨 일 있었던 건가? 혹시 알아?"
"오라버니는 폐하의 침소에 들르셨다고..."
힘 빠진 목소리로 말하며 조운은 저 쪽에 있는 유비를 부러운 듯 쳐다보았다. 출전 마지막 날 은근히 모용환이 자신을 찾아주지 않을까 기대하던 그녀였다.
'이런 걸로 실망하지 말자. 오라버니는 나만 바라봐 줄 수 없으신 분이야.'
그래도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구는 조운을 보며 장료는 혀를 찼다.
"폐하가 가지 말라고 울기라도 하셨나 보지. 그래서 죽기 싫어졌나봐. 가만, 그럼 내가 대장이 될 수도 있겠네?"
아니나 다를까, 모용환의 연설을 들은 병사들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웅성대고 있었다. 가장 앞장서서 전쟁을 주도해야 할 대원수가 이렇게 초를 치고 있으니 몇몇은 들리지 않게 욕을 하기도 했다.
실망어린 표정을 한 병사들을 말없이 둘러보던 모용환은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제군!"
그의 박력에 병사들은 다시 벙어리가 되었다.
"무엇을 위해 싸우나? 혈육이 되었든 가족이 되었든 어차피 각자 지키려고 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대들이 하려고 하는 전쟁, 뭐든지 잡아먹어버리는 괴물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소중한 것을 지키는 방패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그는 말을 끊고 심유한 눈으로 병사들을 훑어보았다. 그들은 모용환의 패기에 압도된 듯 홀린 눈으로 그의 입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벌써 수십 년간 지속된 난세다.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전쟁들이 벌어졌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사람들은 이제 전쟁이라면 진절머리를 칠 정도가 되었다. 그런 만큼 천하통일 같은 명분을 내세우지 않고 솔직하게 전쟁을 비하하는 모용환의 연설은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마침내 그의 입이 열렸다.
"투쟁하라! 그리고 승리해라! 계속 이겨서 제군들의 손으로 이 빌어먹을 전쟁을 끝내는 거다!"
"우와아아아아아---!!"
병사들은 목청이 터져라 함성을 질러대었다. 잠시 가라앉았던 장내의 기운은 이어진 그의 연설로 인해 늦여름의 더위도 비켜갈 만큼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버렸다.
"멋져요. 오라버니."
조운은 두 손을 한데 모으고 풀린 눈으로 단상 위에서 높이 검을 빼든 모용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장료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아. 사기꾼도 찜 쪄 먹겠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장료는 '저 녀석이 저런 면이 있었나?'하고 솔직하게 감탄하고 있었다.
모용환은 단상에서 내려오며 아래에 서 있던 육손에게 말했다.
"나 어땠냐?"
육손은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렸다.
"형이 최고에요."
늦여름, 뜨겁게 달구어진 대지도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 할 만큼 기세가 오른 모용환의 군대가 수춘을 향해 출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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믛 수춘성의 장수들은 진나라의 10만 대군을 맞이하여 악전고투(惡戰苦鬪)를 벌이고 있었다. 수춘성의 수비병력 이래 봐야 4만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관우가 복귀했다지만 진나라의 군대에 여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휘하에는 고순, 방덕, 우금, 악진 같은 장수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지막지한 포위 공격이 퍼부어졌다. 죽자 사자 달려드는 진나라 병사들의 기세에 성벽 아래는 그야말로 시산 혈해를 이루었다. 하지만 워낙 병력이 많다보니 줄어도 줄어든 것 같지가 않았다. 여전히 무수하게 몰려오는 적군들 앞에서 한나라의 수비병들은 사기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런 무식한 방법은 피해가 크니 처음에만 기선 제압을 목적으로 어느 정도 공세를 퍼붓다가 금방 중지 될 거라고, 수춘성의 장수들은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여포는 그야말로 인의 장벽을 만들어 성을 둘러쌌고, 사방팔방으로 공격을 해댔다. 밤낮으로 쉴 새 없이 공격을 해대니 병사들은 점점 지쳐갔다.
저 쪽은 기세가 등등한데 아군은 사기도, 체력도 모두 떨어지고 있는 형국이었다. 성이 완전히 포위당해 언제 원군이 올지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 관우는 결단을 내렸다. 소수 정예로 별동대를 만들어 적진을 한바탕 휘젓고 온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부아앙!
"치잇!"
태사자는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섬뜩한 파공음과 함께 볼을 스쳐지나가는 방천극을 간신히 피해냈다. 잘못하면 그대로 머리가 베일 뻔 했다.
"제법 빠르군."
여포는 그녀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선천적인 괴력과 엄청난 초중량 방천극을 토대로 하는 그의 공격 특성상 연약한 여인이 그와 무기를 부딪친다면 십에 칠, 팔은 손목뼈가 으스러질 것이다.
태사자도 그것을 알았다. 한번에 뼈가 부서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의 공격을 몇 합 받아내다가는 손목이 가루가 되어버릴 것이다.
"아저씨... 너무 센 거 아냐?"
장창을 꼬나 쥔 태사자의 얼굴은 암담했다.
별동대를 끌고 곤히 자고 있는 적들의 중군을 휘저을 때는 마냥 좋았다. 잠시 한탕만 하고 도망칠 생각이었으니 부담도 없었다.
그렇게 신나게 아닌 밤중의 홍두깨가 되어 적병들을 쓰러뜨리고 있을 때 나타난 거대한 기마. 그가 여포라는 것을 알자 태사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창을 맞대었다. 처음 몇 합만 겨루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그냥 그의 실력을 조금이나마 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이제 도망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도망치다간 단번에 등이 꿰뚫릴 거야... 하필 별동대가 친 곳이 여포가 있는 곳이었다니.'
그나마 지금이라도 여포의 실력을 어느 정도 알게 된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냥 멋모르고 바로 도망쳤다면 여포의 투창에 의해 꼬치가 될 뻔했다. 지금 겨루면서 알게 된 그의 파괴적인 힘이라면 창을 날려 몸을 관통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힘은 환랑이랑 비슷한 것 같은데 무기가 너무 무거워. 게다가 빨라!'
태사자는 이제 방천극의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나 버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주위의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저 무서운 방천화극을 상대하느니 차라리 이런 잡병들을 상대하는 게 그녀에게는 나았다.
모용환과 대련을 했을 때에는 그가 검을 써서 견딜 만 했다. 지금도 모용환은 청공검을 쓰기 때문에 여포처럼 파괴적인 공격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가 워낙 힘이 세니 어지간한 장사가 아니고서야 그의 청공검을 받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백 근이 넘는 방천화극으로 무장한 여포는 차원이 다른 공격을 했다.
쩌엉!
"아아악!"
필사적으로 이 전장을 빠져나가려고 병사들 사이에서 퇴로를 뚫던 그녀는 뒤쪽에서 무시무시한 기운을 느끼고는 반사적으로 창대를 휘둘러 그것을 막았다. 그리고 그에 따른 충격으로 하마터면 낙마를 할 뻔 했다.
"도망은 용납하지 않는다."
역시나 여포였다. 주변에 있던 병사들의 창들 중 아무거나 집어서 던져버린 것이다. 태사자는 망연자실한 채 바닥에서 날이 뭉그러진 채 나뒹구는 창을 바라보았다. 아마 자신에게 던져진 창인 것 같았다.
얼마나 던져진 힘이 무지막지했으면 창대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뭉그러졌을까. 홀연 그녀의 눈에 가운데가 파여 심각하게 금이 가 있는 자신의 창날이 들어왔다.
"... 괴물!"
그녀의 창은 여포의 방천극처럼 신병이기(神兵異器)가 아니다. 그저 조금 좋은 창 정도에 불과했다. 저런 괴물이 던지는 투창을 막아내고 무사할 리가 없었다.
"저기. 나 좀 도망가면 안 될까... 요?"
태사자는 최대한 애교 있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나 여포는 냉담했다.
"날 이긴다면 얼마든지 가도 좋다."
"이 냉혈한! 여자가 부탁하면 들어줘야 할 거 아냐!"
"전장에서 종알종알 말이 많군."
완벽하게 거절당한 그녀는 부득 이를 갈았다.
'환랑도 못 보고 죽을 수는 없어! 겨우 마음에 드는 짝을 만났단 말이야!'
상성이 너무 좋지 않았다. 그녀는 신체적 조건 때문에 기교를 위주로 한 무예를 익혔다. 상대편이 어느 정도 힘이 부족하다거나, 아니면 힘만 세고 속도가 떨어지는 자라면 쉽게 상대할 수 있을 테지만 여포는 힘과 속도 모두를 갖췄다. 사실 그녀뿐만 아니라 모든 장수들에게 있어 여포란 존재는 절대 넘을 수 없는 태산과도 같은 자였다.
"죽을 수는 없단 말이얏!"
태사자는 발악적으로 창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녀의 창은 허무하게 허공만을 가를 뿐이었다. 간단한 움직임만으로 그녀의 창을 피한 여포는 공중에서 잠시간 멈춰 있는 창날의 옆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까앙! 쨍!
후두둑거리며 떨어지는 창날의 조각들. 태사자는 경악한 얼굴로 박살난 창날의 부스러기들을 쳐다보았다. 타격점이 너무 정확해 창대를 잡고 있는 손에는 아무런 충격이 전달되지 않은 상태였다.
세상에 아무리 금이 가 있었다지만 맨주먹으로 창날을 부숴버리다니! 타격점이 조금만 빗나갔더라도 그 충격에 태사자가 창을 놓쳐버렸거나 창날은 부숴 지지 않았을 것이다.
비로소 태사자의 눈에 공포가 어렸다.
'천하무쌍... 못 이겨. 절대 못 이겨...'
타악! 툭.
그녀는 봉이 되어버린 창대로 바닥에 떨어진 창들 중 아무거나 쳐올려 손에 쥐었다. 그러나 굳건하게 창대를 쥐고 있어야 할 손은 미미하게 떨려오고 있었다.
그 때, 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사했군!"
"아주버님?"
배꼽까지 기른 기다란 수염을 신장처럼 휘날리며 등장한 사내는 말 그대로 신장이라 불리는 관우였다. 혈로를 뚫고 왔는지 그의 온 몸은 피칠갑이 되어 있었다.
"관운장인가?"
"여봉선이로군. 순순히 우릴 보내주지는 않을 테지?"
"물론."
"음. 자네와 싸우게 되어 영광이네!"
관우가 나타났지만 여포의 태도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예전 악진, 조홍, 이전, 사마의 4명의 합공 속에서도 오히려 그들을 패퇴시켰던 전력이 있는 그였다.
"합공을 하겠단 건가?"
관우는 순순히 자신이 여포에 비해 하수임을 인정했다.
"부끄럽네만 이곳은 전장. 체면을 따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네."
"맞는 말."
여포가 방천극을 쳐들자 이번에는 그의 진영 쪽에서 싸움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고순이었다.
"둘이 하나를 상대하는 것은 비겁하지 않소? 관운장께서는 이 고순과 어울려 보십시다!"
고순 또한 지닌바 무위가 결코 얕잡아 볼 수 없는 상대다. 그런 자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달려들자 관우는 침음성을 흘리며 그와 맞설 수밖에 없었다. 이미 빨리 여포를 쓰러뜨리고 태사자를 구해낸다는 계책은 물거품이 되었다.
"하아, 하아..."
그래도 관우가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태사자는 어느 정도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간간이 달려드는 적병들이 있긴 했지만 그들이 끼어들기에는 싸우는 무장들의 수준이 너무 높았다. 관우가 휘두르는 청룡언월도만 해도 무게가 팔십 근이 넘는다. 자칫 끼어들었다간 그대로 골로 가는 수가 있었다.
관우와 고순이 불꽃을 튀기며 겨루는 것을 잠시 지켜보던 여포는 시선을 태사자에게 돌렸다. 그녀는 다시 심장을 짓누르는 압박감이 몰려오자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꿀꺽.
침을 크게 삼키자 평소에 보이지 않던 목젖이 살짝 움직였다. 이제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긴장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끝을 보도록 하지."
히히힝!
주인의 뜻을 알아들었다는 듯 크게 투레질하는 적토마. 적토마의 갈기는 흡사 피를 머금은 것처럼 타는 듯한 붉은색이었다. 아마 적토마는 원래부터 붉은색이었던 것이 아니라 그만큼 피를 많이 뒤집어써서 저런 색이 된 것이 아닐까? 그녀는 잠시 쓸데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어쩌면 거기에 내 피가 추가될 수도 있고.'
"난 살고 싶어. 그러니까 아저씨는 절대 날 못 이길 거야."
"그러길 바라지. 오라!"
그녀의 귀에 여포의 말이 사형집행인의 선고처럼 크게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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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기숙사로 돌아가면 컴퓨터도 없는데 어떻게 글올리지 막막하네요.
편당 보통 8~10kb 정도로 올리고 있습니다만 기숙사 가면 편당 4~6kb로 확 줄어 버리는게 아닐지... 그럼 편수가 2배로 늘어나니 오히려 좋아보일 수도? ㅋㅋ 그런데 유엽과 장료와의 로맨스를 원하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더군요. 누굴 먼저?
이런 걸 바로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는데 ... 퍽 짤방은 여포입니다. '어차피 무기는 많아! 부딪칠 수 없다면...!'
난전으로 인해 주변에는 병사들이 떨어뜨린 창들이 널려 있었다. 여포와 정면으로 부딪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태사자는 아예 말에서 내려 바닥에 있는 창검들을 마구잡이로 던져대기 시작했다.
슝! 슈웅!
"잔머리를 쓰는군."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던진 무기는 몇 배의 위력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여포에게는 육중한 창이나 도가 날아오는 것도 작은 과도를 던지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는 거대한 방천극을 엄청난 속도로 회전시켜 무기들을 퉁겨내었다. 조금이라도 그가 당황할 줄 알았던 태사자는 오히려 여포가 흉포한 기세로 적토마를 달려오자 얼굴이 하얗게 탈색이 되었다.
"저 무거운 방천극을 어떻게 저렇게 빠르게 돌릴 수 있어?! 이건 사기야!"
휭휭 돌아가는 방천극의 속도는 창대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흡사 은색의 커다란 원반이 여포의 방패가 되어 주위의 모든 것들을 휩쓸어 버리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창날의 폭풍, 단순하지만 상대를 질리게 만들기엔 넘치는 수법이었다.
우직! 우드득!
여포와 적토마는 그야말로 파죽지세가 되어 바닥에 깔려있는 시체들을 말 그대로 으깨버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
태사자는 그가 내뿜는 위압감에 몸이 뻣뻣하게 굳어 감히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기백에 완전히 눌려버린 그녀를 향해, 여포는 무지막지하게 방천극의 창대를 휘둘렀다.
퍼억!
"커-흑!"
배를 정통으로 맞은 태사자는 서너 장이나 뒤로 날아가 실 끊어진 연처럼 바닥에 처박혔다.
"쿨럭!"
볼썽사납게 쓰러진 그녀는 겨우 몸을 일으키며 한 사발이나 되는 피를 토해냈다. 피만 나온 것이 아니라 간간이 내장 조각도 섞여 있는 것이 내부가 심하게 상한 것 같았다.
단 일격에 중상을 입었다. 태사자는 피로 물든 입가를 슥 훔치며 오만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는 여포를 노려보았다.
'분해. 남자로 태어났다면 멋지게 싸울 수 있었을 텐데!'
몸의 고통보다는 지금껏 자신이 수련해 온 무예가 완전히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쓰라렸다. 역시 여자는 아무리 몸을 단련해도 선천적인 힘의 차이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인가.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아. 힘으로 안 되면 속도로 제압하면 돼. 지금껏 그래 왔잖아. 단지 이번엔 상대가 너무 강할 뿐이야. 여자라서 못 이기는 게 아니라 다른 남자들도 못 이겨. 말을 버리는 게 아니었는데... 잠깐, 말?!'
헐떡거리면서도 태사자의 눈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구체화시키려고 노력했다.
'말! 그래, 여포가 강하다지만 적토는 일개 말일 뿐이야. 여포한테는 졌지만 말에게도 질까봐?'
생각은 곧바로 실행에 옮겨졌다. 태사자는 복부를 움켜쥐고 있던 손을 떼고 검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낮춰 적토마의 발 아래로 파고들었다. 워낙 커다란 말이다 보니 가녀린 체구의 그녀가 암습을 하기엔 수월했다.
"죽엇!"
단숨에 적토마의 배를 가를 수도 있었지만 태사자는 앞다리 두 개를 베어버리는 쪽을 택했다. 이 공격으로 여포의 균형을 무너뜨려 도망칠 시간을 벌 셈이었다.
'이긴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 잠시의 시간만이라도...'
여포가 흉노 출신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걸음마보다 기마술을 먼저 배운 그가 낙마를 한다고 해서 땅에 떨어지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토마는 그녀의 생각처럼 순순히 당해줄 말이 아니었다.
푸르릉!
"헉!"
쉭!
어이없게도 태사자의 검은 허공을 가르고 말았다. 그녀가 검을 휘두르는 순간, 적토마가 앞발을 높이 쳐들었기 때문이었다. 눈으로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오직 그녀의 살기를 느끼고 민첩하게 반응한 것이다.
사마의가 여포를 상대할 때에도 이런 식으로 적토마에게 당한 적이 있었다. 괜히 마중지왕(馬中之王)이 아니었다.
기습 공격이 실패하자 태사자는 다급하게 눈을 굴렸다.
'앞이 아니면 뒤라도...'
퍽!
"꺄아악!"
그 순간 적토마의 뒷다리를 베어버리려던 그녀는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온 창대 끝에 어깨를 얻어맞고는 다시 한번 나가떨어졌다. 위에 타고 있던 여포가 몸을 아래로 숙여 그녀에게 강타를 날린 것이었다.
태사자가 고양이와 같은 민첩함으로 적토마의 다리 아래에 들어가고, 검을 휘두르고, 적토마가 그것을 피한 후 여포가 그녀를 후려치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였다. 주위 병사들은 싸우던 것도 잊고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장수들이 일기토를 벌일 때에는 일반 병사들이 끼어들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재수 없게 끼어들었다가는 성질 나쁜 장군이 자신의 공을 가로챈다고 생각해 죽일 수도 있었고, 워낙 장수들의 무력이나 무장 정도가 병사들에 비해 월등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태사자의 상태는 그런 일반 병사들도 상대하기 벅찰 만큼 심각했다.
"헉... 허억... 크윽!"
그녀는 여포에게 맞은 오른쪽 어깨에 손을 대보았다.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깨가 탈골됐어. 이래선 왼팔만으로 싸워야 하는데... 틀렸어.'
아직도 관우와 고순은 호각을 유지하고 있었다. 약 삼십여 합을 겨룬 듯 보였는데 원래라면 벌써 결판이 났어야 했다. 하지만 관우는 고순과 싸우면서도 끊임없이 태사자를 곁눈질하고 있었다. 그녀가 수세에 몰릴 때마다 그의 얼굴빛도 수시로 바뀌었다. 언제든 그녀가 위기에 처하면 달려올 준비를 하는 듯 했지만, 패왕기의 부대장이라는 위치를 고순이 거저먹은 것은 아니었다.
여포 또한 그쪽을 신경 쓰고 있었는지 관우쪽에 잠시 시선을 주었다.
"관운장이 걱정 하나를 덜겠군. 잘 가라."
"... 싫어!"
태사자는 이를 악물고 내리쳐지는 방천극의 창날을 얇디얇은 철검으로 막아내려고 했다. 무모했다. 그녀는 검과 함께 두동강이 날 것이다.
그렇게 죽을지라도 태사자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살기를 머금은 날카로운 창날이 작두처럼 내리쳐졌다.
그 순간.
까앙! 깡!
여포는 갑자기 날아온 두 개의 철시(鐵矢) 때문에 태사자를 절단 내려던 방천극의 경로를 바꿔 버렸다.
죽음만을 생각하고 있던 태사자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지만 이윽고 기사회생의 길이 열렸음을 깨닫고 즉시 몸을 뒤로 내빼었다.
"어서 뒤에 타거라!"
"할아버지!"
지척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태사자는 반색을 했다. 별동대가 빠져나간 성을 지키고 있던 황충이었다. 그녀는 재빨리 몸을 날려 황충의 뒤에 사뿐하게 올라탔다. 발을 다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황한승. 명을 재촉하는군. 당신이 겨루어 볼 텐가?"
"허허헛! 아직 죽고 싶지는 않네!"
그는 즉시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관우 역시 고순과의 일기토를 그만두고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의 목적은 적진을 휘젓는 것이었으니 이만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여포가 보통의 무장이었다면 태사자는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그렇게 강하게 내리치는 와중에 무기의 경로를 바꾼다는 것은 초인적인 반사신경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화살 두 발로는 방천극을 제지할 수 없었고, 결국 황충은 여포가 방천극을 틀어주길 바라며 그의 몸쪽에 화살을 날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멋지게 적중한 셈이다. 여포의 뛰어난 운동능력이 오히려 그녀의 목숨을 살린 것이 되었다.
"할아버지, 고마워요!"
"쯧쯧. 그 사람은 대체 뭘 하고 있길래 처자가 이 고생을 하는데도 코빼기도 안 비치누? 내 나중에 상국에게 큰 절을 두 번은 받아야겠다."
제갈량에 이어 태사자까지 구했으니 황충은 충분히 큰소리칠 자격이 있었다.
"환랑은 반드시 올 거예요."
"그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태사자도 그 말에는 부정할 수 없었다. 여포가 이렇게 악착같이 포위공격을 하는 이유는 수춘에 있는 철갑기마대를 봉쇄하기 위함이었다. 공격을 할 때에는 어떤 부대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돌파력을 보여주는 철갑기마대지만 이렇게 수성을 할 때엔 아무 쓸모도 없었다.
사마의가 수춘을 먼저 친 것도 철갑기마대를 위험 요소를 일찌감치 제거하기 위함일 것이다.
최후의 수단으로 별동대를 조직해서 기습 공격까지 해봤지만 그렇게 큰 소득이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오히려 태사자가 큰 부상을 당해 당분간 전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빨리 오라구. 힘들어 죽겠어.'
전쟁이 시작 된지 닷새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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낄렵 진나라의 갑작스런 침공으로 시상성 궁내의 분위기가 침울한 이 때에 유독 활기찬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는 곳이 있었다.
따앙-! 땅!
경쾌한 망치질 소리, 하지만 대장간 내의 분위기는 숙연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단 두 사람만이 심혈을 기울여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궁 한구석에 위치하긴 했지만 황제가 거하는 궁에 웬 대장간이란 말인가. 이 대장간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곳으로, 어떤 사람의 연구소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실용적인 무기를 만들어내는 곳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대장간다운 유일한 점은 주변에 후끈거릴 정도로 열기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몇 명만 뺀다면.
"언니! 오늘도 다 안됐어요?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최대한 서두르고 있어. 시설이 좋아 다행이야."
대교와 소교는 이 대장간을 찾는 얼마 안 되는 단골 중에 하나였다. 그녀들의 앞에서는 유엽와 감녕이 땀을 뻘뻘 흘리며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감녕은 망치질을, 유엽은 풀무질을 하고 있었다. 둘은 거의 사흘을 밤을 새다시피 했다. 토끼처럼 충혈 된 눈은 그간의 피로를 충분히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 출정식에도 못 나오고... 그러다 쓰러지겠어요."
유엽과 감녕이 모용환이 군대를 이끌고 출정할 때 못 나온 것은 이 일 때문이었다. 대교가 걱정스럽게 묻자, 팔을 걷어붙이고 힘껏 풀무질을 하고 있던 유엽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난 이럴 때 보람을 느껴. 모처럼 모용 동생 덕분에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보답을 해줘야지."
그러나 감녕은 다른 모양이었다.
"젠장. 내가 어쩌다..."
"왜, 싫어? 여자인 나도 하는데..."
사나이의 자긍심을 뼛속 깊숙하게 새겨 넣은 그에겐 이만한 자극도 없었다.
'저 말에 몇 번을 속았는지! 이 누님은 여자의 탈을 쓴 머슴이 분명해. 어떻게 여자가 사흘간 대장간에서 밤을 샜는데도 저리 팔팔하냔 말이야!'
사실 유엽의 모습은 팔팔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의복은 땀에 젖어 굴곡진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데다가, 가녀린 팔에는 힘줄이 솟아 있어 안간 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저 상태로 무려 3일이다. 실로 괴물 같은 체력이라 할 수 있었다.
"... 힘드... 세요?"
화풀이하듯 쇳덩이에 마구 망치질을 해대던 감녕은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소교의 말에 호탕하게 웃었다.
"크하하핫! 힘들긴! 장강의 사나이에게 이 정도 쯤이야!"
"호오, 그럼 앞으로 이틀은 문제없겠네?"
"컥! 누님! 그건 좀...!"
대교는 이틀이란 말에 경이롭다는 눈으로 유엽을 쳐다보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진즉에 쓰러졌겠지만... 유엽은 정말로 초인적인 정신력과 체력을 지니고 있었다. 특별히 무예를 수련한 것 같지도 않은데.
"이제 뭘 만드는 지 얘기해 주세요. 궁금하단 말이에요."
"검이야."
"...검?"
"저번에 내가 한동안 자리를 비운 적이 있었지?"
"네."
유엽이야 특별한 직위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자리를 비워도 별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건업에 다녀왔어. 모용 동생이 그러더라. 건업에 아주 옛날부터 만들어진 것 같은 지하도가 있다고."
대교와 소교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 지하도라면 그녀들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자신들이 납치를 당해서 온갖 치욕스러운 조교를 받았던 인신매매단의 소굴이 아닌가.
대교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거긴... 왜요?"
"건질게 없나 해서. 인신매매단의 소굴이었다며? 머저리들만 모아놨나 보더군. 대박을 못 알아보다니."
다행히 유엽은 대교와 소교가 거기서 어떤 일은 겪었는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그런 과거는 말해주고 싶지 않은 법이다. 그녀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빠가 거기까진 말하지 않은 모양이야. 휴우.'
그래도 궁금한 건 있었다.
"대박이라뇨? 그냥 평범한 지하도 같던데..."
"모르는 소리. 난 토목기관(土木機關)쪽에도 일가견이 있어. 내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거기는 오왕(五王) 합려(闔閭)의 지하 무덤이야. 그만큼의 소득도 얻었고."
"네에?!"
이 말에는 자매뿐만 아니라 감녕도 크게 놀라 유엽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유엽이 곧바로 도끼눈을 떴다.
"뭐해? 빨리 망치질 해!"
"예, 예!"
그들이 놀란 것은 당연했다. 오왕 합려, 춘추시대 오패(五覇) 중 하나인 강동 오나라의 왕이었던 합려의 무덤이 건업 지하에 있었다니.
"간장막야(干將莫耶)의 이야기는 알지?"
"대, 대충은요. 전설... 아닌가요?"
"아냐. 간장검과 막야검은 실제로 존재했어."
자매와 감녕은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옛날, 오왕 합려는 월나라 출신의 유명한 장인 구야자(歐冶子)와 한 스승 밑에서 배운 간장이라는 장인을 불러들여 최고의 명검을 만들게 했다. 간장은 천하의 좋은 쇠들을 한데 모아 길일을 택해 동남동녀(童男童女) 삼백 명을 모아 풀무를 돌리게 했는데, 그 광경이 진귀하여 하늘의 신령(神靈)들이 내려와 구경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석 달이 다되어 가도록 쇳물이 만들어지지 않자 간장의 처 막야는 목욕재계를 하고 자신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자른 후에 스스로 화로 속에 몸을 던졌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두 자루의 검이 간장과 막야인데 그 날카로움은 바위를 두부 베듯 할 정도였다.
간장은 합려에게 막야검만을 바치고 간장검은 숨겼는데, 나중에 이 사실을 안 합려가 간장을 죽이고 간장검을 찾아오라고 하자 검은 청룡이 되고, 간장은 신선이 되어 용을 타고 승천하였다는 얘기였다.
워낙 황당한 이야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전설로 여길 뿐이었다. 그런데 그 전설의 검들이 실존한다니! 실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유엽은 멍청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셋을 보자 씨익 웃었다.
"실존했지. 얼마 전 까지는."
"......?"
"모두 녹여서 이 쇳덩이로 만들어 버렸거든. 이게 간장과 막야야."
"헉!"
무심결에 쇳덩이를 두드리고 있던 감녕은 화들짝 놀라 망치질을 멈췄다. 그러자 다시 무섭게 쏘아보는 유엽의 눈길에 다시 망치를 놀리기 시작했지만, 좀 전에 비해 힘이 다소 빠진 듯 했다.
"힘 빠진다. 그렇게 하면 모양이 잘 안나와."
"아니, 어떻게 그 보검들을 녹일 생각을..."
"힘주라니까."
"......"
감녕은 포기한 듯 다시 힘차게 쇳덩이를 두드렸다. 그걸 본 대교는 아연실색하며 입을 열었다.
"언니, 간장과 막야를 녹여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검을 만든다니, 그 쇠로요?"
"응. 그 무덤에 비밀 통로가 있더라고. 거기서 간장의 비술(秘術)이 모조리 적힌 책을 얻었지. 간장막야도 거기 있었고. 그래봤자 쓸만한 비술은 얼마 되지 않아. 워낙 옛날 사람이라... 지금 철 다루는 기술은 꽤 많이 발전했다고. 그래도 이 쇠들의 강도는 놀랍지만..."
"아빠한테는 청공검이 있는데요?"
"요 동생한테 들으니까, 여포는 백 근이 넘는 방천극을 쓴다며? 청공검이 아무리 보검이라도 그런 무지막지한 무기한테는 소용이 없어. 특히 마상에서 전투를 할 때는 장병만한 게 없지. 모용 동생은 힘이 세니까 그 힘을 살릴 무기가 필요해. 그러면서도 평소에는 가볍게 휴대할 수 있는 무기..."
구경만 하고 있던 소교가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 복잡해..."
"에헴.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건데 말이야... 쌍검을 쓰다가 합쳐서 대검을 만들면 어떨까 해서..."
"와아! 평소에는 쌍검, 합치면 대검! 멋져요!"
"호호홋! 그렇지?"
"이름은 정했어요?"
유엽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음... 자웅일대검(雌雄一大劍)... 어때?"
"어울려요!"
뭔가 묘한 의미가 있는 검명(劍名)이었지만 대교와 소교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단지 감녕만이 뜻 모를 미소를 지을 따름이었다.
'저런 속셈이 있었군. 그나저나 나도 우리 자기한테 가봐야 하는데... 우린 아직 신혼이라고. 젠장.'
집에서 기다리는 꽃 같은 아내를 두고 이런 중노동을 하고 있자니 속이 쓰린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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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방은 유엽 ^^
밤에 하나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성을... 뺏겼네..."
"......"
수춘의 관우를 지원하러 간 모용환은 수춘이 아니라 합비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관우가 이끌고 온 패잔병들, 칠, 팔천이 될까 말까한 병력이었다. 퀭한 두 눈과 여기저기 때와 피로 얼룩진 군복이 얼마나 처참한 전투를 겪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모용환은 그들 앞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여포의 10만 대군을 맞이해 이 정도면 잘 싸운 것이다.
"적장은... 여포입니까?"
"여포가 총사령관이네. 그 밑으로 고순, 방덕, 우금, 악진 등이 있었네. ... 아우를 볼 면목이 없군."
장수의 질에서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병력이 열세이면 장수들이 적진을 휘저어 줘야 하는데 관우, 태사자, 조인, 황충으로서도 저들이 버티고 있는 적진을 뚫기란 힘들었을 것이다.
'형님은 여포에게 막힐 테고 빈아는 고순, 황한승님은 방덕, 조인은 우금이나 악진과... 일일이 따져 봐도 밀려. 그나마 장수들이 모두 살아 돌아온 게 다행이야.'
"형님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설사 한신이 무덤에서 살아온다고 해도 그 상황에서 버틸 수는 없었을 겁니다."
"후우..."
"일단 들어가도록 하지요."
합비에 임시로 구축된 진지에 모든 장수들이 보였다. 태사자는 아직 여포에게 당한 부상이 낫지 않았는지 어깨를 천으로 둘둘 말아 고정시키고 있었다. 그녀는 모용환을 보자 울면서 달려들었다.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흑!"
그는 당황하면서도 그녀를 감싸 안았다. 어깨에 단단히 감긴 천이 눈에 들어왔다.
"어깨는...?"
"흐윽... 여포, 그 아저씨한테 맞았어. 완전 괴물이야..."
모용환은 그녀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칠흑의 갑주를 걸치고 전장을 종횡무진으로 휩쓸며 단기로 적들을 압도하는 위압감! 그것이 바로 여포였다.
"혼자서 여포와 대적한 거야?"
"시간벌이로 별동대를 이끌고 나갔는데... 하필 거기에 여포가 있잖아. 별 수 없이 싸웠어. 그런데 상대도 안돼... 사람도 괴물이고, 말도 괴물이야. 그야말로 괴물단지라고!"
'이해한다...'
진저리를 치는 태사자를 보자 여포와 맞서면서 얼마나 두려움이 컸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모용환은 그녀가 그나마 이 정도로 끝난 것에 감사하여 태사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이만한 게 다행이다."
"... 아직 안 끝났어..."
"응?"
태사자는 고개를 푹 숙였다.
"철갑기마대... 모든 장비가 거기 있어... 다 뺏겨버렸어..."
별동대의 작전이 실패한 후 여포군은 총공세를 가해왔다. 그 아비규환에서 급하게 탈출해야 했으니 무거운 철갑기마대의 장비를 챙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식량을 챙기기에도 바빴으니. 그렇다고 그 중장비들을 태워버릴 수도 없고, 결국 모용환이 고안한 철갑기마대의 장비들이 고스란히 진나라에 노획당한 셈이 되어버렸다.
'날 믿고 부대장을 시켜줬는데... 어떡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태사자는 자신을 자책했다. 단 한번 쓴 장비들이 아닌가. 게다가 거기에는 철로 만든 등자도 있었다.
'등자가 노출되었군. 어차피 그런 거야 시간이 지나면 알려지겠지만 한번 쓰고 탄로 나기엔 너무 아까워.'
모용환은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그는 태사자를 옆자리에 앉히며 제장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원군이 가기도 전에 수춘을 점령당해 버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손아, 상황 정리 좀 해줘."
이런 분위기에 적응이 되지 않는지 육손은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볼을 계속해서 긁적이며 말했다.
"여포의 군대는 8만 정도예요. 포위 섬멸전을 구사해서, 희생이 컸지만 빠른 시간 내에 수춘을 함락시켰죠. 어차피 포위전을 하지 않았다면 철갑기마대에 휘둘려서 더 큰 희생이 났을 거예요. 진으로서는 최선의 방책을 택한 셈이죠."
이미 사전에 철갑기마대가 수춘에 주둔해 있다는 것을 알고 예상치 못한 공격을 해 온 것이다. 그 계략을 누가 고안했는지는 몰라도 한나라로서는 꽤나 큰 타격을 입었다.
'사마의? 정욱? 책사는 많다. 누가 했던지 간에... 장기로 치면 차, 포를 떼고 시작하게 생겼군. 불리해졌어.'
한나라 최고의 공격부대인 철갑기마대의 장비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었다. 다행히 말과 사람은 대부분 남아있는 것 같지만, 철갑기병 위주의 진형과 돌격만을 연습한 그들은 철갑 없이는 평범한 기병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그가 생각에 빠져 있는 와중에도 육손의 말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군은 처음 4만에 여강의 2만을 합쳐 6만, 대장군님의 군사들까지 합하면 약 7만이에요. 숫자상으로는 대등해요. 여포는 계속해서 밀고 들어 올 테니까 여기 합비에서라면 충분히 막을..."
'숫자상으로는 대등하다... 잠깐만.'
모용환은 머리를 벌떡 들었다.
"손아!"
"네? 왜 그래요, 형... 아니, 상국님?"
"편한대로 불러. 넌... 아니, 제장들은 이 전쟁의 본질적인 목적이 뭐라고 생각하지?"
"......?"
뜬금없는 그의 말에 막사 안의 장수들은 모두 그에게 시선을 모았다.
"아우, 전쟁의 본질이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말 그대로입니다. 진나라는 아직 국가의 체제가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누가 지금 이 시점에 전쟁을 일으킬 거라 생각을 했겠습니까? 이제 가을이 되었고, 조금만 지나면 겨울입니다. 애초에 장기전을 생각하고 일으킨 전쟁이 아니란 소리지요."
전쟁 경험이 많은 조인은 그 말에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상국! 하지만 10만의 군사가 움직였습니다! 한 성을 공략하기 위해 그만한 병력을 투입하는 건 엄청난 낭비입니다! 10만이나 되는 병사가 하루에 먹는 양만 하더라도... 엄청난 물자가 소모되는데... 그런데 겨우 수춘 하나를 점령하려고 그 병사들을 움직였단 말입니까? 말도 되지 않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좀 전의 육손 또한 그 점을 염두에 두어 여포가 밀고 내려올 것으로 가정하고 수성에 대해 논했었다. 하지만 모용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 많은 물자를 소모했지만 결국 원군이 오기 전에 수춘을 함락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진이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습니까?"
"......"
"첫째로 수춘을 점령했습니다. 수춘은 단지 하나의 성이 아닙니다. 여강과 함께 우리 한의 장강 이남과 이북의 영토를 이어주는 교두보입니다. 수춘이 함락됨으로써 소패, 하비, 북해의 3성이 위험해졌습니다."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장수들은 단번에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진은 선수를 쳐서 한의 허리를 끊은 것이다. 이대로 진이 수춘의 방비를 철저히 하면서 북쪽의 3성을 공략한다면 한나라로서는 큰 난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모용환은 이어서 설명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둘째로는 선기를 잡았다는 겁니다. 두 제국이 건국된 후, 아직 서로의 우열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각지의 제후는 어떻습니까? 엄안의 사신만 하더라도 황실에 오면 폐하에 대한 찬양을 늘어놓지만 실상은 양 제국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진이 한을 선제공격해서 성공적으로 성을 빼앗았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엄안이 가늠하고 있는 저울추는 진으로 기울게 될 것이다. 어차피 엄청나게 커버린 둘 중 하나에 붙어야 살 수 있는 상황이라면 조금이라도 유리한 쪽으로 붙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진나라는 엄안과 철천지원수지간이던 동탁을 제거해주었으니 그가 진에 대한 호의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
"셋째는 시간을 벌었습니다. 10만의 군사를 통해 수춘을 방비한다면 이쪽도 치기가 힘들지요. 이제 곧 겨울이 오기 때문에 잘만 버티면 이 승기를 유지한 채로 겨울을 나게 됩니다. 그 동안 철저히 외교전을 펼치는 거지요. 앞서 말했듯 제후들의 마음은 진으로 기울게 될 겁니다."
'여포의 침공 소식을 듣자마자 떠나왔으니, 우리가 출발한 직후 유아와 량아도 어쩌면 알아챘을 거야. 아니, 알아챘어야 해.'
모용환의 말이 끝났다. 장수들의 표정은 그가 말하기 전후와 비교하여 천양지차로 달라져 있었다. 겨우 성 하나를 뺏겼을 뿐인데 진나라는 이토록 많은 이점을 앗아간 것이다.
육손은 다른 의미로 감탄했다.
'형이 이렇게 머리를 쓰는 건 처음 봤어. 대단해.'
모두가 조용한 가운데서, 장료는 분개하면서 외쳤다.
"그럼 우리도 역공을 하도록 하지...요!"
평소처럼 반말을 하려다가 주변의 시선이 몰려있자 그녀는 급하게 존댓말로 수정을 했다.
"10만의 군사를 끌어 모았다면 주변의 성들은 텅텅 비어있을 거 아... 녜요?! 그럼 우리도 그 성들을 모두 가져가면..."
"그 정도쯤은 당연히 대비를 해뒀을 거야. 이런 작전을 고안했을 정도라면, 역습에도 충분히 계책을 마련해 뒀겠지. 그게 무엇이든..."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고 안 오는 걸 노리는 걸 수도..."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 겨울이 오기 전에, 성 하나를 단숨에 함락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 지리적으로 너무 멀어. 수춘을 제외하고 가장 가까운 진나라의 성들이라면 여남과 강하인데, 이 대군을 이끌고 오고가는 데만도 보름이 넘을 거야. 무엇보다 그 물자를 소모해서 여남이든 강하든 함락시킨다고 해도... 우리가 손해야."
"아우..."
장료는 분해서 미치겠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7만의 군사, 진이 10만 병사를 움직인 것만큼이나 많은 물자가 소요된다. 이런 대군을 이끌고 있으면 무엇보다 일정을 잘 짜야 했다. 대군이라는 것이 하루하루 돈을 잡아먹는 괴물이나 다름없으니까.
'강하는 기름진 땅이 있지. 하지만 점령 직전에 놈들이 다 불살라 버리면 도루묵이나 다름없어. 여남도 마찬가지야. 오히려 사기만 떨어지고 병사들은 굶게 된다.'
겨울이 다가오는 데 성을 내주더라도 곱게 내줄 리가 없지 않은가. 분명히 곡물창고를 태운다는 등의 치사한 수법을 쓸 것이 뻔했다.
"형. 그럼... 어떻게 하죠?"
모용환은 자신만을 바라보는 육손을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군사잖아."
"하지만 전 형이 앞서 말한 점들도 알아채지 못했어요..."
자신 없는 음성으로 육손이 말했다.
육손은 군을 지휘해 본 경험이 한번 밖에 없다. 시상을 수비할 때다. 사실 그것도 지휘라고는 할 수 없었다. 모용환의 작전에 당해 그저 멍하니 성벽 위에 서 있었을 뿐이니까. 머리를 뛰어나지만 아직 여물지 않았다.
'경험만 좀 더 쌓으면 훌륭한 군사가 될 수 있을 텐데.'
그녀는 요즘 병법보다는 내정에 관한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어차피 이런 경험이야 누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그로서는 이번 전쟁을 계기로 육손이 한층 성장하기를 바랐다.
"물론 진나라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 줄 수는 없지."
"오라버니...?"
모용환은 불안한 눈을 한 조운을 힐끗 보며 말했다.
"역공을 한다."
"......!
모든 장수들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장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역공은 안 된다며! ...서요...?"
그는 왠지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
"후후. 단거리에 먹이가 있잖아. 수춘을 친다. 7만으로 여포의 8만이 버티고 있는 수춘을 쳐 버리는 거야. 철갑기마대의 장비? 아직 옮기진 못했을 테지. 수춘을 점령해서 다시 장비들을 노획한다."
장수들은 그 무모함에 입을 쩍 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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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소설은 픽션과 논픽션이 합쳐져 있지요.
사마휘 일화만 하더라도 그렇고, 여러 부분이...
간장과 막야도 그러합니다. 작중 등장하는 간장과 막야의 전설은 실존하는 사실이지요. 간장이라는 대장장이가 실존해서 오왕 합려를 위해 두 자루의 명검을 만들었다는 '사실'과 유엽이 그것을 리메이크해 '자웅일대검'을 만들었다는 '거짓'이 합쳐진 겁니다.
유엽의 독특한 정신세계가 아니라면 합체되는 검이라는 걸 만들수는 없지요 ㅋ 물론 소설적인 설정과 함께. 자웅일대검의 합체된 크기는 참마도나 환두대도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고구려의... 마상무기 비슷하게.
페이트는 간장과 막야라는 중국의 보검을 주인공이 쓴 것이지, 페이트에서 간장과 막야라는 검이름이 나온게 아닙니다 -_-;; 의외로 모르시는 분들이 좀 있더라구요. 쪽지로도 물어보시고 -_-ㅋ ...쩝. 관우와 여포가 맞붙었으면 좋았으려나? 사실 전 관우나 촉나라 쪽 인물들을 별로 좋아하진 않습니다. 물론 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 좋아합니다만, 연의에서의 관우나 조운은 별로... 너무 뻥튀기가 되어 있어서 -_-%2B 관우가 이름을 날린 계기는 화웅을 베어서인데, 사실 화웅은 손견이 베었고... 안량을 벤 것도 술이 식기전에 벤 것도 구라고... 벤건 맞지만... 조운은 실존 자체가 의심이 가는 인물이고... 정사에서의 언급은 거의 없기에.
짤방은 세력도이구요. 빨강색이 현재 주인공이 있는 합비입니다.
오늘이 가기전에 올리긴 했습니다. 밤 맞죠? 수춘성을 함락한 진나라의 분위기는 거의 축제 분위기였다. 일반 병사들이야 단순히 승리감에 취한 것 뿐 이었지만 이면에 감춰진 내막을 알고 있는 장수들은 병사들보다 더욱 들떠 있었다.
장수들은 성벽위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모두 흥취가 올라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기 그지없었다.
"후후. 과연 황제 폐하의 지혜는 놀랍기만 합니다. 겨우 성 하나를 점령했을 뿐인데 이토록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다니..."
우금은 약주가 과했는지 꽤나 취기가 오른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몇몇 장수들도 다르지 않았다. 악진은 덥수룩한 수염을 매만지며 우금의 말을 받았다.
"폐하께서 다시없을 현군(賢君) 이시니 이게 다 진의 홍복이 아니겠소이까? 한의 무지한 것들은 그저 우리가 남하해 올 줄 알고 방비만 열심히 하겠지요. 그러다 겨울이 오면 그 때가 되서야 아차! 하지 않겠소? 푸하하하핫!"
말없이 혼자서 술잔을 홀짝거리던 고순은 그들을 곁눈질하며 살짝 조소했다. 그가 보기엔 우금이나 악진이나, 너무 한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에는 인재가 많다. 장료 그 녀석이 괜히 한으로 간 건 아닐 테고... 우리가 불의의 일격을 먹이긴 했지만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일, 결코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될 터인데...'
"한을 너무 얕보지 마시오. 그 짧은 시간 안에 그만한 제국을 일궈내기는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니."
왠지 자신들을 책하는 듯한 고순의 말에 우금과 악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에게 여포나 고순 등 전 동탁 출신의 무장들은 굴러들어온 돌이나 다름없었다. 무신이나 다름없는 위용을 자아내는 여포에게는 티를 내지 못하지만 이렇게 고깝게 구는 고순을 두고 볼 리 없었다.
'하찮은 오랑캐 주제에!'
우금의 눈이 스산한 빛을 발했다. 지금은 이렇게 한솥밥을 먹고 있지만 그 역시 예전 패왕기와 맞부딪쳐 조조를 놓친 일은 아직까지도 앙금으로 남아있었다.
"흥. 고순 장군은 뭐가 그리 두려우시오? 지나친 신중함은 때로는 겁이 많아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시오."
명백한 도발이었다. 마침 여포도 잠시 자리를 비운 때라 우금이 대담하게 나온 것이다. 그러나 고순은 그런 유치한 도발에 넘어갈 정도로 미숙한 사람이 아니었다.
"수춘이 점령당한 것, 그 의미를 지금이라도 알아챘을 수도 있다는 소리요."
"그래봤자요. 그 쪽에도 머리 쓰는 자 한 둘은 있을 테니 빠르든 늦든 알 수 있을 거요. 하지만 어쩌겠소? 이미 폐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염두에 두셨소. 시상에서 원군이 와봤자, 그 수는 많아봐야 10만을 넘지 않을 거요. 8만이 주둔하는 수춘을 수복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란 말이오."
맞는 말이었다. 이제 진나라의 군대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을 계획이다. 이대로 올해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면, 자연히 대륙정세의 축은 진으로 기울게 되기 때문이다.
"...과연 그럴지..."
고순은 긴말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쓸데없는 논쟁이었다. 생각해보니 자신이 굳이 한나라의 편을 들 이유도 없었다.
'그 녀석이 한을 나와 주면 좋을 텐데.'
그렇게만 된다면 장료와 전장에서 부딪칠 일은 없을 것이다. 딸처럼 귀여워했던 장료와 싸운다는 것은 떠올리기도 싫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어떻게 한에 있을 수 있는 거지? 다른 사람들과 정말 어울리지 못했던 녀석이었는데...'
그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가 아는 장료는 남자 알기를 우습게 알며, 순종적인 여자들을 경멸하고 오직 스스로의 무력만을 믿는, 이 시대로 보면 독특한 가치관을 지닌 여자였다. 그 오만한 면이 늘 걱정이었는데 어떻게 한나라에 들어가 나름대로 요직을 꿰찼는지 모를 일이었다.
경험상 높은 관직에 오르려면 공도 공이지만 인간관계도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상관에게 밉보이기 십상인 장료가 장군직까지 차지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요지경이라 할 만 했다.
상념에 잠긴 고순이 살짝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고개를 돌리자 우금은 그가 할말이 없어졌다 판단하고 더욱 기세가 등등해졌다.
"클클. 이래서 천한 출신들은..."
'이 자가...!'
이 말에는 담담히 우금을 무시하던 고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을 비하하는 것 까지는 참아도 동포들을 싸잡아 무시하는 것은 절대 참을 수 없었다.
"당신...!"
고순이 벌떡 일어서자 우금은 기다렸다는 듯 마주 일어서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적절하게 둘 사이를 떼어놓는 묵직한 저음이 있었다.
"그만해 두도록. 둘 다."
"대장!"
"대장군!"
잠시 자리를 비웠던 여포의 등장에, 이번 기회에 한족 장수들과 합심하여 고순의 위에 서보려던 우금은 참혹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우금을 손봐주려던 고순도 마찬가지였다.
'오랑캐 놈! 운이 좋았다!'
'거만한 한족 놈 같으니! 뭉개줬어야 했는데!'
실제 부딪친다면 결과가 어땠을지 모르나, 어쨌든 우금과 고순은 서로를 노려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러자 그 사이로 여포가 우뚝 멈춰 섰다. 기세 싸움을 하던 두 사람은 삽시간에 주변을 압도하는 여포의 위압감에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여포는 혼자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잠시 성을 빠져나갔을 때에는 분명 혼자였지만 돌아왔을 때에는 회색의 갑주를 걸친 여장수와 함께 온 것이다.
장수들은 회색갑주의 여인이 누구인지 너무도 잘 알았다.
"대장군, 저 사람은..."
"마초다. 잘 알고 있겠지. 오늘 부로 난 수춘을 빠져나간다."
"예...?"
"따로 할 일이 있다. 내 빈자리는 마초가 메우게 될 것이다."
우금은 못마땅했다. 가뜩이나 여포도 마음에 들지 않았건만 마초라니. 이건 더더욱 아니었다. 조조를 배신한 이유가 무엇인가. 사마의의 천하통일지계에 넘어간 것도 있지만 다른 이유는 조조가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여자 상전을 모시게 된 것이다. 그 사람이 무엇보다 별 달리 공적도 없는 마초이기에 그런 생각은 더욱 강했다.
'그것도 동탁에게 몸이나 바치던 천한 계집인 것을!'
"대장군! 소장은 납득할 수 없소! 마 장군의 무위가 뛰어난 것은 인정하나, 아직 아무런 공적이 없지 않습니까?! 이런 대군을 지휘할..."
"마초는 내 무력만을 대신할 뿐, 군사들의 지휘권은 악진에게 넘길 것이다."
그 말에 악진은 황송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우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불만이 많았다.
'문겸이나 나나 비슷한 위치인데 어째서 그란 말인가! 제길...'
그런 우금과는 달리 악진은 다른 문제로 고심하고 있었다.
'저 암말을 어떻게 통제한다...?'
군 통수권을 얻게 된 것 까지는 좋다. 하지만 마초를 아래에 두고 통제를 하자니 여간 찜찜한 것이 아니었다. 여포를 제외하면 여기 있는 모든 무장들 중 가장 무력이 강력한 것은 마초다. 실전에서 그 실력을 본 것은 아니지만...
'얼마 전 화웅과 대련을 했을 때도...'
서량이 무너질 당시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주었던 화웅을 상대로, 마초는 대련을 가졌었다. 당시 그 대련을 지켜보았던 무장들은 온몸이 소름이 돋을 정도의 공포심을 맛봐야 했었다.
대련을 시작한지 이 다경(30분) 만에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화웅! 그의 온 몸은 채찍질이라도 당한 듯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광기로 이글거리는 눈을 한 마초가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고 할 때 때마침 나선 여포가 아니었다면 화웅은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 때의 그 번들거리는 눈이란... 마치 살쾡이를 보는 듯 했다.
지금은 말없이 서 있는 마초였지만 잠잠한 수면아래 감춰진 폭발적인 광기를 악진은 충분히 느끼고 있었다.
"그럼, 난 이만 가보도록 하겠다."
왠지 무거워진 장내를 둘러 본 여포가 나가려는데, 성벽 위에 있던 병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별들이 떨어진다!"
"뭐지?! 한꺼번에 저렇게...!"
그 소리에 장수들의 시선도 병사들처럼 남쪽 하늘로 향했다.
"헛!"
"저건..."
하늘에 떠 있던 별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중천에 떠 있던 십여 개 정도의 별들이 차례대로 하나 둘 지면으로 떨어지며 모습을 감추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라 할 만 했다. 문제는 별이 떨어진다는 것 자체가 그리 좋은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특히 지금 이 시점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불길해..."
"성녀(聖女)의 나라를 침범해서 그런 것 아닐까?"
병사들이 무심결에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악진은 발끈했다.
"이놈들! 어느 안전이라고 헛소리를 늘어놓느냐! 닥치지 못할까!"
그 호통에 수군거리던 병사들은 금세 자라목이 되었지만 불안한 눈초리는 가시지 않았다. 장수들은 그 모습을 보며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한의 황제로 등극한 유비가 가진 이미지는 선(善)그 자체였다. 민초들에게 몸소 의술을 베푼다느니, 선정을 펼친다느니 하는 소문이 그것이었다. 그에 반해 사마의는 숨겨 논 여자가 있다느니, 형제들을 모두 죽였다느니 하는 좋지 않은 평판이 은근히 돌고 있었다.
더구나 이번 전쟁은 선전포고도 하지 않은 일방적인 기습 공격이었기에 일부에서는 비겁하다는 말도 나왔었다.
사람은 미신을 많이 믿기 마련, 벌써부터 병사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대장군... 이거 평범한 일이 아닌 듯한데..."
악진은 별들이 떨어진 평원을 보며 말하다가 눈을 크게 떴다. 멀리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 저게 무슨...!"
별이 떨어졌다고 불이 나다니, 지금껏 그런 일은 듣도 보도 못했다. 여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미약하지만 분명 연기가 났다. 한나라인가? 설마 수춘을 치겠다는 건가...'
그의 뛰어난 시력은 밤중 임에도 불구하고 별들이 떨어질 때 꼬리에 매달린 시커먼 연기를 포착했다. 정말 유성이라면 그런 것이 있을 리 없다. 결론은 하나, 누군가 불덩이를 밤하늘에 띄웠다는 것이었다.
그 증거로 그것들이 떨어진 벌판에 불이 났다. 가을이기 때문에 상당히 공기가 건조해, 저런 불덩이들이 하나도 아닌 여러 개 떨어진다면 불이 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일반 병사들은 동요하겠지. 유치한 유인책이지만 효과는 있다. 직접 적의 군세장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군.'
자신에게는 이미 다른 지령이 떨어졌다. 시간이 촉박하여 지금 당장 출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악진. 뒷일을 맡기마. 마초를 잘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 아니, 대장군...!"
"지금부터 지휘는 네가 한다."
악진은 제 할말만 하고 성벽을 내려가는 여포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방덕이 갑주를 바로입고 말했다.
"일단 가봐야 하지 않겠소? 저게 적들의 함정이든 아니든 병사들의 사기를 생각해서라도 정찰은 필수라고 생각하오."
"으음..."
방덕의 조언에 악전은 침음성을 흘렸다. 일견하기에도 맞는 말이지 않은가. 어차피 불길이 일어난 곳은 성의 바로 코앞이니 기동력이 빠른 기병들로만 주위를 한번 살펴보고 온다면 간단한 일이었다.
물론 위험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방덕의 말대로 저게 적들의 유인책이라면 상당히 위험할 테지만... 그것은 매복이 가능한 지형일 때의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저건 한의 유인책 같소. 눈에 뻔히 보이는 수법을 쓰다니... 멍청한 것들이로군."
"그래도 무지한 병사들에게 먹혀들기엔 충분하오."
"그렇긴 하지. 하지만 정찰대를 편성해서 이게 다 놈들의 계략이었다는 것을 확인해 밝히면 끝날 일이오."
"그건 그렇소만..."
방덕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방금 전의 유성(流星)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알 수 있을 것인데, 뭣 하러 굳이 이런 연출을 하는 건지 적장의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매복? 여긴 사방이 평지다. 매복을 할 수 있는 지형이 아니야... 설마 이 정도에 우리가 성문을 열고 나오리라 생각한 건가? 알 수가 없군...'
만약 적장이 노리고 있는 것이 정말 그것이라면, 바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누가 별 몇 개 떨어졌다고 확인하러 대군을 이끌고 나오겠는가. 기껏해야 정찰병 몇 백기, 많아야 1천기 정도만 보내도 될 일이었다.
설령 매복이 있다고 해도 그 정도의 기마병들이면 별 피해 없이 빠져나오는 게 가능했다.
'병사들이 저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게 하려면 정찰대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 인공적인 현상이었다는 걸 증명해줄 입들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정찰병들은 몇이나 보낼 생각이시오?"
생각을 마친 방덕이 묻자 악진은 고심했다. 그 역시 이미 매복의 위협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1천기 정도가 적당하지 않겠소? 저기에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만약 소수의 적병들이 있다면 쓸어버리기에도 적당한 숫자요."
정찰을 해서 2, 3천 정도의 보병들이 있다면 일거에 쓸어버리겠다는 생각이었다. 방덕이나 우금은 굳이 그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단순 정찰이라면 꽤 많은 숫자였지만 그런 임무까지 맡게 된다면 적절한 수였다.
"1천기라면 마침 패왕기와 같은 수지 않소?"
우금은 슬쩍 말꼬리를 늘이며 고순을 쳐다보았다. 귀찮은 일은 너희가 떠맡아라 하는 심보였다. 하지만 고순은 심드렁하니 대답했다.
"그래서 뭐 어쩌란 거요?"
"...크흠..."
우금은 본전도 찾지 못하고 물러났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패왕기 정도의 최고 정예를 이런 일에 투입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저 찔러나 봤을 뿐.
계속되는 고순과 우금의 신경전에 악진은 가볍게 박수를 쳐서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지금은 자중지란을 일으킬 때가 아니었다.
"그만. 기병 일천을 차출하시오. 가 보면 뭐가 뭔지 알겠지."
한편 그 시각, 모용환이 이끄는 한나라의 군대는 새카맣게 재가 되어버린 연들을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열심히 대형 연들을 수거하는 병사들을 지켜보던 장료는 옆에 서 있던 모용환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정말 이 정도로 놈들이 올까?"
모용환이 7만의 병사로 8만이 주둔하고 있는 성을 공략하겠다고 했을 때에는 장료는 반신반의했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계획을 들었을 때에는 결사반대를 했다.
"글쎄. 아마 오지 않을까?"
"아마?! 야! 그게 무슨 무책임한 말이야! 이거 실패하면...!"
"아아. 말하지 않아도 알아. 확실히 실패하면 큰 타격이지. 하지만 그냥 물러날 수도 없어. 그러니까 날 믿고 기다려봐."
"아휴!"
정말 알 수 없는 자신감이었다. 그러나 모용환은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었다.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지만... 십중팔구는 나온다. 진나라 장수들은 우릴 우습게 여기고 있어. 그리고 이런 평지에서 매복을 해봐야 얼마나 하겠냐는 생각에 정찰병 몇백명 정도는 끌고 올 거야. 안전이 확실한 마당에 굳이 사기저하를 감수할 필요는 없으니까. 이건 아주 쉽게 약간이나마 전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지. 누가 차 버리겠어?'
그에 대한 근거도 있었다.
'적장들 중에 이전이나 서황이 없어.'
승상을 맡고 있는 주유는 모용환이 놀랄 정도로 지금 시대의 인물답지 않게 정보를 중요시했다. 그녀의 주특기는 첩보전. 이미 수많은 간세들이 진나라의 구석구석으로 스며든 상태였다. 어려서부터 종군하여 군사적 기밀이나 소문, 허보 등에 익숙해졌던 것이 정보에 민감해진 요인 같았다.
간세들 중에는 하급이지만 진나라의 관리들도 있었다. 일전에 주유가 이 얘기를 했을 때, 모용환은 그녀가 구축해 놓은 방대한 정보망에 놀라야 했다. 물론 주유는 오월 원정을 다녀왔으니 실제로 이 정보망을 구축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고, 제갈량이 그녀의 생각을 바탕으로 짜 논 정보망이라고 했다.
그 정보망에 따르면 현재 진나라의 실세는 정욱과 이전, 서황이었다. 정욱과 이전이야 예전 사마의가 조조의 밑에 있을 때부터 그를 도왔던 자들이고, 특히 이전은 모반을 성공하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에 현재 대도독을 역임하고 있었다. 서황은 최근 진나라에 들어오면서 급부상한 젊은 무장으로 너무 압도적인 위압감 때문에 다가가기 힘든 대신 실질적인 젊은 무장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여포나 고순, 화웅 등은 동탁의 세력에서 편입된 자들이기 때문에 주류라고 볼 수 없어. 수춘 공략은 기습이니만큼 쉬운 일이었다. 그런데 서황이나 이전이 여포에게 쉽게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양보했다? 이건 말이 안돼. 뒤로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겠지... 뭐가 되었든 현재 여포는 실권이 별로 없을 터.'
어떻게든 공을 세우고 싶어 안달하는 휘하 장수들이 나오지 않을 리 없었다. 모든 장수들이 출세 욕심이 없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일은 없는 것이다.
"후. 잠시 점검 좀 해볼까."
"응?"
모용환은 창을 들고 자세를 취했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장료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야밤에 체조라도 하게?"
"이번엔 내 역할이 무지 중요하단 거, 알잖아. 연습한 거 점검 좀 해보려고 그런다."
"흐응."
눈을 가늘게 뜬 장료는 팔짱을 끼고 모용환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그의 무예가 기초가 잡히지 않았을 때는 엉성하기만 하던 자세가, 지금은 확실하게 틀이 잡혀 있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장료나 태사자, 조운 등의 덕이 컸다.
"자기류(自己流)는 완성했어?"
"대충은..."
"넌 우리 대장과 진짜 비슷해. 그나마 대장은 체구가 크기라도 하지, 넌 키만 좀 크고 호리호리한 체격인데도 대장과 비등할 정도의 힘과 속도를 내는 게 신기하단 말이야..."
모용환은 픽 웃었다.
"능력치 100의 힘일까?"
"불공평하다구. 누구는 죽어라 연습해도 이 정도인데... 누구는 처음부터 그런 몸을 가지고 있다니."
"여자는 근육 많이 붙으면 안 예뻐."
"나도 보디빌더 되기는 싫네요. 그러니까 기교를 연마하는 거잖아."
입술을 삐죽거린 장료는 다시 모용환의 행동에 정신을 집중했다.
모용환이 요새 몰두하는 일은 완벽한 자기류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이 시대에는 그렇게 체계 잡힌 무술은 별로 없었다. 허저만 하더라도 평범한 농민 출신이었지만,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며 만든 자기류의 무술로 천하에 이름을 날리는 맹장이 되지 않았는가. 모용환도 나름 많은 전투를 치렀지만 아직 내로라하는 장수들에 비하면 경험이 적은 편이었다. 대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대련으로 메울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의외야. 무협지 같은데서 보면 고대 중국에는 많은 무예가 있었다고 하던데..."
"있긴 있지. 하지만 일 대 다수의 전쟁에서는 그다지 효용이 없을 뿐이야. 기본기를 익히는 데는 도움이 되긴 해."
"그럼 일기토에는 써먹을 수 있단 건가?"
"그다지... 일기토는 대부분 마상에서 하잖아. 마상무예는 내가 배운 것 이상의 것이 없어. 흉노의 비전 마상무예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지."
"음..."
은근히 무협지의 무공 같은 것을 기대했던 모용환은 입맛을 다시며 자기류 시연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름을 붙이는 게 폼이 나겠지?"
"흥. 마음대로 하셔."
장료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모용환은 머리를 긁적이며 창을 휘둘렀다.
"일단 몇 가지 동작을 만들어 봤는데... 봐봐."
"알았으니까 하기나 해."
슬며시 미소를 지은 모용환은 몸을 낮추고 창대 중간 부분에 두 손을 벌려 잡았다. 그의 눈이 맹수처럼 빛나며 정면을 주시했다. 어찌나 분위기가 진지하던지 편하게 구경하던 장료도 갑자기 엄습해온 긴장감에 당황할 정도였다.
왠지 모를 중압감을 참지 못한 장료가 입을 열었다.
"무슨 폼을 그리..."
그 순간 모용환이 창을 허공으로 강하게 찔러 넣었다.
쐐액! 팡!
"헉!"
장료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토해내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의 눈가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뭐야?! 그냥 찌르기일 뿐이잖아. 그런데... 위력이 무시무시해.'
말 그대로 그냥 찌르기일 뿐이었다. 모용환은 앞발을 내딛고 비스듬히 서서 한쪽 겨드랑이 사이에 창대를 끼우고 있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자세. 좀 전의 '팡' 소리는 너무도 빠른 동작에 바람이 들어간 소매가 크게 펄럭인 소리였다.
모용환은 우두커니 서 있는 장료를 보며 밝게 웃었다.
"관천(貫穿). 이름 그대로 꿰뚫는다는 거지. 역시 창의 꽃은 찌르기 아니겠어? 이미 말 위에서도 쓸 수 있게 연습해 뒀다고."
"그냥 찌르기인데... 그 위력은 뭐야...?"
"응?"
무슨 말이냐는 듯이 되묻는 모용환의 말에 장료는 발끈했다. 아무런 표적도 없었지만 찌르기가 허공에 들어간 순간, 무섭게 갈라지며 요동치는 공기의 흐름을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저기에 사람이 있었다면?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람도 아냐. 말의 몸이라도 일격에 관통해 버릴 정도의 힘이었어! 무기도 별로 무겁지 않은 보통 창인데 어떻게..."
"그야 체중을 실었으니까 그렇지."
"뭐?"
"스프링과 나선(羅線) 같은 거야. 간단해. 다리 근육을 움츠렸다가 창을 내지름과 동시에 체중을 싣는 거지. 이게 허리가 받침대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나처럼 튼튼한 허리를 가진 사람이 제대로 쓸 수 있는 거거든. 그리고 손목을 한껏 비틀어서 총알처럼 회전을 주는 거고. 하하핫! 원래라면 말위에서는 불가능하겠지만 등자가 있으니까!"
"......"
장료는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모용환을 바라보았다. 그의 이론은 간단하지만 실제로 하기에는 무척 힘든 것이었다. 어떻게 한다고 해도 몇 번 쓰다보면 손목과 허리에 엄청나게 무리가 가는 수법이었던 것이다. 자신 같이 몸이 따라주지 못하는 여자는 엄두도 못 낼 기술이었다.
'저걸 대장처럼 무거운 방천극을 들고 쓴다면...'
일격필살(一擊必殺). 사전에 관천이란 기술을 알고 있지 못한 자는 말과 함께 몸이 꼬치처럼 꿰뚫려 버리고 말 것이다. 어쩐지 소름이 끼쳤다.
장료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용환은 자기 할 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아. 하지만 기술을 쓰고 난 후의 리스크가 좀 커. 체중이 모두 앞으로 쏠리기 때문에 자세가 불안정해지는데다가, 말 위에서 쓸 때 에는 달리는 상태여야 해."
그 말을 들은 장료의 시선이 모용환의 왼발로 향했다. 오른발과 수평방향으로 앞으로 내딛어진 왼발의 앞쪽은 흙바닥을 움푹 패고 박혀 들어가 있었다.
"그건...?"
"체중이 쏠려서 그런 거야. 앞발로 지탱하지 못하면 넘어져. 같은 원리로 말 위에서 쓰다가는 낙마할 수도 있지. 하지만 달리고 있을 때라면 파괴력을 몇 배로 올릴 수 있어."
'무적은 아니었군.'
장료는 왠지 모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큰기술은 그만큼의 위험이 따르는 법이다.
"이것 말고도 몇 개 더 보여줄 것이 남았는데..."
그녀는 경악했다.
"더 있어?!"
"당연하지. 설마 하나만 보여주려고 했겠냐? 그런데... 손님들이 온 것 같은데?"
약간 질린 안색의 장료는 손가락을 땅에 대고 있는 모용환의 행동을 따라했다. 과연 그의 말대로 미세한 땅울림이 느껴졌다. 수춘성이 있는 방향. 멀리서 기병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적병들이 보입니다!"
정찰조를 끌고 나온 우금은 들판에 붙은 불길을 잡고 있는 한나라의 군사들을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놈들의 유인책이었던 것이다. 넉넉잡아 1만은 되어 보이는 군사들이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더 있을 수도 있었지만...
'멍청한 놈들. 그냥 가버리면 그만이다!'
일단 적병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임무는 끝난 셈이다. 그는 미련 없이 말머리를 돌렸다.
"성으로 돌아간다! ...아니?!"
뒤로 돌아 성 쪽을 바라본 우금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일단의 기병들이 수춘성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뿐이라면 그리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저기 달려가고 있는 기병들이 정찰을 나온 자신들과 숫자가 거의 비슷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나온 군기(軍旗)와 똑같은 것을 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위장책! 저 놈들을 잡아랏!"
우금이 끌고 나온 기마는 1천. 놈들은 자신들과 똑같이 위장하여 성 안으로 돌입하려는 것이었다. 기껏 1천의 기마로 뭘 하겠냐마는, 우금은 불안했다.
그는 입술을 깨물며 병사들을 재촉했다. 뒤에 늘어선 수많은 적병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말에 비해 굼뜬 보병들은 신경 쓰나 안 쓰나 허수아비 같은 존재였다.
"이랴-!"
히히힝!
평원에서 때 아닌 추격전이 벌어졌다. 쫓고 쫓기는 도합 2천기의 군마들. 그 모습은 수춘 성벽 위에도 똑똑히 보였다.
"한나라 놈들이 온 것이 맞는 모양이오! 저길 보시오!"
"...으음!"
악진이 가리킨 곳에는 급하게 성문으로 달려오고 있는 1천기의 기마가 보였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일단의 기병들과... 그 뒤에서 함성을 지르며 돌진해 오는 수만의 병사들이 보였다.
상황을 모르는 그들의 눈에는 맨 앞에서 달려오는 기마들은 영락없이 우금의 정찰조로 보였다. 상황이 급박하기도 하거니와 군기까지 정확히 일치하니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물론 중간에 낀 진짜 정찰조에도 군기는 있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확인이 불가능했다.
"장군! 어찌하겠소?"
"문칙이 성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성문을 닫도록 하시오!"
달리 방법이 없었다. 고순은 뭐 빠져라 달려오고 있는 선두의 정찰조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아슬아슬 하겠군."
진나라의 정찰조로 위장한 기마병들을 이끄는 장수는 바로 모용환이었다. 그는 열심히 뒤따라오고 있는 우금의 기병들을 힐끗 쳐다보며 낭랑하게 외쳤다.
"후미는 환영식을 열어줘라!"
"옛!"
촤르르륵!
그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후미에서 달려오던 기병들은 말등에 매달려 있던 자루를 바닥에 풀어 놓았다. 자루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쇳조각들이 우르르 떨어져 내렸다.
"저건 뭐지?"
뒤에서 그 광경을 본 우금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제와서 추격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애써 불안감을 떨쳐 내었다.
"모두 동요하지 말고 놈들을 쫓는 것에 집중하라!"
그러나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가 느꼈던 불안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끼히히힝!
푸르륵!
"으아아아악!"
말들이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기병들의 대부분이 바닥에 나뒹굴기 시작했다. 급작스럽게 선두의 대열이 흐트러지자 중간과 후미에서 따르던 병사들이 말들의 가속도를 억제하지 못하고 서로 뒤엉켜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금도 예외가 아니었다.
말이 주저앉는 바람에 낙마해버린 그는 가까스로 몸을 날려 안전하게 착지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다리를 울리는 충격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뾰족한 쇳조각이 다리를 깊숙하게 파고든 것이다.
"크으윽! 이게 대체 뭐란 말이냐!"
십자 모양의 가시가 삐죽하게 튀어나와있는 쇳조각들. 말들이 쓰러진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발굽에 가시가 박히니 도저히 뛸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무기에 우금이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멀찍이서 달려오는 한나라의 군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선두에는 장료가 있었다.
"놈들이 철질려(鐵疾藜)에 당했다! 대장은 사로잡고, 반항하는 놈들은 모두 죽여! 아, 그리고 쓸만한 말들은 상처 나지 않게 조심해!"
우금은 그녀의 외침을 듣고서야 자신의 정찰조를 무력화시킨 쇳조각들의 이름이 철질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단숨에 기병들을 무력화시키는 무기라니. 이런 것은 듣도 보도 못했다.
"철질려라고..."
"그래. 표창 비슷한 건데... 아, 이렇게 얘기하면 잘 모르려나? 호호호! 좌우지간 신기해. 잘도 이런 걸 생각해 냈단 말이야."
어느새 그의 앞까지 다가온 장료가 소리 높여 웃고 있었다.
"넌...!"
"네가 대장인 모양이지? 보니까 무릎도 다친 모양인데, 얌전히 항복해."
초면부터 장료가 반말을 내뱉자 우금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 년이나 저 년이나 죄다...!'
마음 같아서는 한바탕 독설을 퍼부어주고 싶었지만 그러다가는 목이 뎅겅 잘릴 거라는 사실을 그는 무척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겨우 심화를 가라앉히며 물었다.
"그대가 혈랑대장 장료인가?"
"혈랑대장도 맞는데 웬만하면 안북장군으로 불러 줄래? 나도 엄연히 벼슬이 있다고."
"초면에 너무 무례한 것 아닌가!"
결국 참지 못한 우금이 크게 호통을 치자 장료는 멀뚱히 그를 쳐다보다 피식 코웃음을 쳤다.
"난 나보다 약한 사람한테 존대를 하지 않거든? 몇몇 예외가 있기는 한데, 당신은 그 축에는 절대 못 껴."
"다리만 다치지 않았어도..."
"왜 그 말 안나오나 했다. 짜증나니까 간단히 하자, 우리. 죽을래, 살래? 시간을 끌어볼 속셈인가 본데 어차피 바닥에 있는 철질려들 다 수거할 때까지 우리도 못 움직여. 그나마 이제 다 된 것 같으니까... 어서 결정해."
정곡을 찔린 우금은 뜨끔한 얼굴이었다. 그는 대충 한나라의 계략을 파악하고 있었다. 정찰조로 위장한 정예 기병들이 성문을 점하고, 지금 장료가 이끄는 군대가 밀어닥친다. 1만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수성의 이점이 없어진 상황이라면 수춘 함락도 꿈은 아닌 작전이었다.
'그러나 선발대의 대부분은 지리멸렬할 것이다. 조금만 시간을 끌면 놈들을 다 죽이고 다시 성문을 닫을 수 있는데... 교활한 계집 같으니.'
1천의 기병으로 휘젓는 것도 처음뿐이다. 결국 숫자에 눌려 모조리 전멸당하게 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시간을 버는 사석인 셈인데, 우금은 그 점을 노렸던 것이다. 그러나 말로 시간을 버는 것도 장료가 뻔히 알고 있었으니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선발대가 걱정되지도 않나? 그 놈들은 모조리 죽은 목숨이야. 1천의 기병으로 8만 병사를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확실히 섶을 지고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 맞긴 한데, 믿으라니까... 믿어야지. 마누라들 앞에서 폼 좀 재고 싶대잖아. 내가 어쩌겠어. 할 말 끝났어?"
모용환의 얘기였지만 우금이 알아들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무슨 소리냐?"
"참 잔말 많네. 진나라는 주둥이로 장군을 뽑나봐? 그냥 얌전히 있어."
퍽!
"끄윽!"
창대로 우금의 급소를 찔러 간단하게 기절시킨 장료는 다시 말에 올라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도 상당히 불안한 눈동자로 수춘성을 주시하고 있었다.
자신을 비롯해서 관우, 조인, 태사자, 조운, 황충 등의 장수들이 있긴 하지만 태사자는 전투불능이었고 관우나 조인, 황충도 수춘을 탈출하는 데 크고 작은 상처들을 입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결국 제대로 된 실력발휘를 할 수 있는 장수들은 원군을 끌고 온 장수들이었다.
그에 반해 수춘성의 주둔군에는 여포와 고순, 방덕, 악진이 남아 있었다. 모용환은 그들 전부를 성문에서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대장은 싸우지 않겠지. 그걸 계산에 둔 작전이니까...'
여포는 일 대 일 싸움을 즐기지, 절대 다수가 소수를 핍박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성도 없었고. 그러나 최악의 경우 모용환과 여포의 일기토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여포가 대장군인만큼 그럴 가능성은 낮았지만, 반대로 그의 호승심을 생각해 본다면 간만에 만난 모용환같은 장수를 그냥 보낼 리 없었다.
여포가 끼지 않는다면 모용환은 자신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몇 합 만에 죽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만큼 상대들이 강했다. 자연 장료는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던 차에 저 쪽에서 조운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철질려들을 모두 수거했어요!"
"그래? 늦기 전에 서두르자! 전군! 돌겨어억--!"
"와아아아--!"
한의 7만 군사가 수춘성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한편 모용환은 수춘성의 성문을 별다른 의심없이 통과했다. 그의 뒤를 따르는 기병들은 모두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수그린 채였지만 늦은 밤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가까이 있는 병사들 또한 급박한 상황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할 뿐이었다.
'성벽에는 숫자가 별로 없군. 장료와 운아가 올 때까지 최대한 버텨야 하는데 잘 됐어. 그런데... 여포는 어딨지?'
모용환은 고개를 들어 날카로운 눈으로 장군들이 있을 법한 곳을 훑어보았다. 그러나 여포로 짐작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여포가 있었다면 이 시점에 벌써 눈치 챘어야 정상이다. 여포가 내뿜는 압도적인 기세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여포가 성을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그가 알 리 없었다. 모용환은 의아함을 뒤로한 채 자신에게 다가오는 악진을 차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문칙은 어딨나?!"
악진은 푸른색 갑주를 입은 우금이 선두에 보이질 않자 그를 찾고 있었다. 그는 정찰조의 뒤를 추격하는 기병들이 갑자기 고꾸라진 것을 보고 안도하는 한편 가슴 속에 의구심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분명 아무런 일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적병들은 저절로 우수수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다행한 일이었지만 말들이 집단으로 경기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게 당연했다.
'조금만 더...'
일반 병사의 복장을 하고 있던 모용환은 악진이 점점 가까워지자 마른침을 삼키며 기습 공격을 할 준비를 했다. 악진의 직위가 무엇이든 일단 대장부터 눕혀놓고 보면 일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말을 타고 기병들에게 가던 악진은 기병들이 묵묵부답이자 짜증이 치솟았다.
'설마 문칙이 포로로 잡히기라도 했단 말인가?'
"왜들 말이 없나!"
"......"
할 말이 있을 리 없다. 악진은 그것이 우금이 포로로 잡혔기 때문에 면목이 없어서라고 판단했다.
"이이...! 못난 것들! 지휘관만 잃어버리고 무슨 낯짝으로 돌아온 거냐! 성문을 닫아야 되니 저리들 비켜!"
악진이 신경질을 내면서 기병들 사이로 오자, 선두의 모용환은 먹이를 포착한 이리처럼 눈을 빛내며 허리춤의 검을 뽑아 휘둘렀다.
"허억!"
설마 지척에 있던 기병이 기습을 가할 줄은 몰랐는지 악진은 헛숨을 들이키며 눈을 부릅떴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푸확! 투캉!
"큭!"
"흡!"
모용환과 악진, 두 사람의 입에서 엇갈린 소리가 흘러나왔다. 악진은 왼팔을 움켜쥐고 말에서 굴러 떨어졌고, 모용환은 잔뜩 굳은 안색으로 예상치 못한 암격(暗擊)을 날린 자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원래대로라면 그의 검은 단숨에 악진의 심장을 꿰뚫어야 했지만, 어디선가 날아온 비수로 인해 모용환은 급히 검의 궤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그 회심의 일격은 악진의 왼팔 상완만을 베고 지나갔다. 그것도 꽤 깊숙한 상처였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한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 비수를 던지다니... 경이로울 정도의 순발력이다. 응? ...여자?!'
드디어 여포의 등장을 직감하고 긴장하고 있던 모용환은 비수를 던진 주인공이 회색 갑주를 걸친 여인... 그것도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소녀라는 것을 발견하고 크게 놀랐다.
'저 소녀가 이 정도의 반응속도를 지녔다고? 말도 안 되는...! 아차!'
잠시 소녀에게 정신이 팔려있던 그는 뜻밖의 암습에 악진이 당해버려 모두가 굳어버린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깨닫고 공격 명령을 내렸다.
"쳐라--!"
"우오오오오!"
넋이 나간 얼굴들을 하고 있던 진나라의 병사들은 조금 전까지 아군인 줄 알았던 기병들이 창검을 휘둘러 자신들을 공격하자 크게 당황하여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으아악!"
"같은 편이 아니야...! 크악!"
"한나라 놈들이다!"
이곳에 온 별동대는 한나라를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는 자들. 자연 그 눈에 서린 독기와 결의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이 휘두르는 검에는 한치의 자비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순식간에 기백에 달하는 병사들이 반항조차 못하고 죽어나갔다. 그리고 점차 사상자의 수는 몇 배로 늘어났다. 기습의 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같이 온 부하들이 선전하는 가운데서도 모용환은 꿈적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노려보는 소녀 장수의 기백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건 기백이라기보다... 뭔가 달라. 이질적이야.'
"넌... 누구냐?"
그의 물음에 소녀는 투레질하는 말을 끌고 앞으로 나섰다.
"마초. 널 저승으로 인도할 사람이다. 죽을 준비는 됐느냐?"
뜻밖의 이름에 모용환은 깜짝 놀랐다.
"설마 서량의 그... 마초? 마등 일가는 모두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 말에 마초는 두 눈에 싸늘한 한광이 어렸다. 모용환은 모르겠지만 그 일은 그녀의 역린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상치 않군.'
모용환은 영문도 모르고 달라진 그녀의 분위기에 긴장의 고삐를 당기며 자세를 바로 했다. 안이한 생각으로 맞설 상대는 분명 아니었다. 그가 알고 있는 마초는 촉의 오호대장군 중 하나이자 천하에 적수가 없었던 용장 중 한명이 아니었던가.
'여기서도 그다지 달라 보이지는 않는군. 온다! 헉!'
섬전과도 같은 마초의 창이 눈 깜짝 할 사이에 미간을 노리고 짓쳐들자 모용환은 고개를 옆으로 젖혀 그것을 피해냈다. 그러나 너무나도 쾌속한 빠르기에 대처가 조금 늦어 뺨이 길게 베이고 말았다.
"윽!"
살갗이 얇게 베였을 뿐이었지만 그 한번의 공격으로 모용환은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지금껏 이 정도로 빠른 공격은 접한 적이 없었다.
'방금 전까지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는데 언제 찌르기를 한 거지!'
"대단하군!"
"목에서 피를 뿌려도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꺄하하!"
좀 전의 공격으로 선기를 잡은 마초는 잔혹한 웃음소리와 함께 내질러진 창대를 반원을 그리며 크게 휘둘렀다. 창을 회수하지도 않고 바로 공격을 가하자 모용환은 급히 상체를 말등에 밀착시켜 낙마를 면했다.
마초는 비릿하게 조소했다.
"쥐새끼 같군!"
"어디 한 번 쥐새끼에게 물려보지 그래? 차핫!"
'흔들림 없는 상체, 말과 밀착된 하체... 확실히 서량의 기병이 천하제일을 다툴 만 하다는 말은 허구가 아니었어. 마초의 마상전투술은 나보다 확실히 위다. 시간을 끌면 유리할 게 없어. 백병전으로 가는 거다!'
모용환은 잽싸게 자신이 타고 있던 말 엉덩이를 칼등으로 내리침과 동시에 말 위에서 뛰어내려 마초에게 달려들었다.
푸르릉!
엉덩이를 얻어맞은 말은 한번 투레질을 하더니 그대로 일직선상에 있던 마초에게 달려갔다. 모용환이 말을 이렇게 자신에게 보내버릴 줄은 예상치 못한 그녀였기에 마초는 급히 자신의 말에서 뛰어내렸다. 지금 상황에서 급격히 방향전환을 하는 것은 무리였다.
미련 없이 말등에서 내려온 마초는 정면을 보자 얼굴이 굳어버렸다. 푸르스름한 검광을 동반한 모용환이 단숨에 베어버릴 듯한 기세로 돌진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용환은 마초의 코앞에 이르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걸려들었군!"
그의 오른손에 들린 청공검이 번쩍하고 한줄기 섬광을 토해냈다. 실로 번개와도 같은 속도의 일격! 마초가 피할 공간은 아무데도 없어 보였다.
'왠지 아쉽군.'
마초 정도의 장수를 만나자마자 이런 식으로 죽여 버리는 것에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자칫 큰 후환이 될 여자였기에 모용환은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마초가 허리부터 양단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아직 이르다!"
"아니?!"
바로 눈앞에 있었던 마초의 신형이 눈앞에서 꺼지듯 사라져 버리자 모용환은 당황했다. 필살을 자신했던 청공검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라버렸고, 공격이 실패할 줄 생각지 못한 그의 몸은 일순간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 순간 강력한 충격이 앞가슴을 강타했다.
퍼억!
"크으윽!"
위로 뛰어오른 마초가 그 상태에서 공중제비를 한바퀴 돌면서 그 반동으로 그의 가슴팍에 발차기를 먹인 것이다. 몸의 반동을 이용한 공격이었기에 모용환은 답답한 신음과 함께 비척비척 뒤로 물러섰다.
불의의 일격을 허용한 그의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뛰어오르기 위한 예비동작도 없었는데...!'
저 정도로 높이 뛰어오르려면 무릎을 많이 굽혀야 했다. 하지만 마초에게는 전혀 그런 낌새가 없었다. 조금 자세를 낮춘 것 까지는 봤지만 그 정도로 저렇게 뛸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때 마초가 있던 자리에 박혀 있는 창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걸 보고서야 모용환은 의문을 풀 수 있었다.
'저걸 잡고 뛰어올랐군! 그래도 엄청나군. 여간 몸이 단련되어 있지 않고서야 저런... 내가 지금 남 칭찬할 때가 아니지. 이크!'
퍽!
한데 정신을 팔고 있던 모용환은 팔목을 강타하는 마초의 옆차기를 맞고 다시 몇 걸음 물러났다. 자꾸 시야에서 벗어나는 마초의 쾌속한 움직임은 도저히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는 어느새 검을 빼들고 있었다.
"호호! 살갗을 자근자근 저며 주지!"
"얼굴에 맞게 말하라고."
예쁘장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활활 타오르는 눈동자로 검을 휘두르는 마초를 보니 모용환은 처음에 그녀에게서 느꼈던 알 수 없던 '무언가'의 정체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광기였다. 저 피에 굶주린 눈. 결코 정상인으로는 볼 수 없는 눈이었다.
'맛이 갔어. 사람 한둘은 우습게 죽여 버릴 듯한 눈이로군.'
마초는 피를 갈망하는 갈증에 절어있었다. 이런 유형의 상대는 결코 피를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단순히 미친 살인마가 아니라 이성을 유지한 상태로 흉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모용환은 그녀의 검을 몸을 틀어 피하면서 인상을 썼다. 머리카락 몇 가닥이 예리한 검날에 잘려 나풀거리며 떨어지고 있었다.
'제길. 이게 화웅에게 제압당했다던 실력인가?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군. 시간이 좀 걸리겠어.'
차라리 마상에서 전투를 했다면 그녀의 이런 민첩한 몸놀림은 묶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경솔함을 탓해야 했다.
그렇게 모용환이 마초의 속도에 익숙해지기 위해 방어일변도로 나가고 있을 때, 그가 이끌고 온 기병들 틈에서 벗어난 악진이 모용환을 가리키며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다.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 예상보다 기간이 길어졌군요..
오티에서 돌아온 뒤에 동생 놈 자취방 알아봐준다고 대전까지 내려가서 휴우 -_-ㅋ 경기도-> 부산 -> 경기도 -> 대전 -> 경기도 차안에서만 몇시간을 보낸건지..
그저께서야 돌아왔는데요. 아무래도 피곤해서 10연참은 무리고 이틀간 힘들게 5편 축적시켜논거 씁니다 -_-;; 동생 혼자 자취시키는데 폐인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네요.. 장료와 조운이 이끄는 7만 대군의 본진이 도착한 것이었다. 이미 1천의 선발대는 반수 이상이 죽어나간 상태였지만 여전히 성문을 점탭構?있었기 때문에 진나라의 수비병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악진은 새카맣게 몰려오는 한나라의 병사들을 보자 얼굴을 무섭게 일그러뜨렸다. 승전의 기분에 도취되어 있던 게 바로 조금 전이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대회전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더욱 얼굴을 들 수 없는 사실은 그것이 여포가 통수권을 자신에게 넘긴 바로 직후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이었다.
'무조건 막는다! 이대로 좌천당할 순 없어!'
조조의 거병 때부터 천천히 기반을 다져 여기까지 왔다. 어떻게 온 위치인데, 이리 쉽게 내줄 순 없었다.
그래도 아직 재기의 기회는 남아 있었다. 모용환! 적군의 총사령관을 잡으면 재차 역전을 노릴 수 있는 것이다.
"놈들의 본진이 왔소! 지금 성문을 닫는 건 역부족이니 모용환을 잡도록 하시오!"
"크음!"
악진의 의도는 모용환을 상대하는 세 사람에게 충분히 전달되었다. 그들 역시 타개책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하던 차였다. 단지, 마초는 그런 것에 상관없이 쉬지 않고 모용환을 공격하는 중이었다.
쉬익! 쉭!
한방 한방이 도저히 정상적인 인간의 동체시력으로는 쫓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였다. 그 놀라운 속도는 같이 합공을 하는 고순과 방덕이 오히려 같이 공격할 타이밍을 못 잡을 정도였다.
모용환은 식은땀을 흘리며 그녀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소극적인 대응으로는 언젠가 치명적인 일격을 허용하고 말 테니 무언가 방책이 필요했다.
'설령 그것이 고육지책이라도 말이지. 조금 익숙해지나 했더니 저 두 명이 자꾸 방해를 하는군. 일 대 일이었다면 좋은 승부가 되었을 텐데...'
반격의 실마리를 못 잡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초의 틈새를 공략하려고 할 때마다 고순과 방덕이 절묘하게 방해를 해왔다. 공격은 마초, 방어는 고순과 방덕. 그러나 그 둘도 공격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모용환의 심적 부담감은 점점 커져갔다.
쨍!
"후욱...!"
"어딜!"
두 검을 교차시켜 마초의 일격을 다시 한 번 막아낸 그는 그대로 그 반동을 이용해 뒤로 최대한 떨어졌다. 조금이라도 쉬기 위해서였지만 마초는 악착같이 무서운 속도로 따라붙으며 재차 맹공을 퍼부었다.
'저 정도의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지치지도 않나!'
모용환은 마초에게 살짝 감탄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남을 칭찬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얼굴에 서서히 핏기가 가시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껏 계속 몸을 쉬지 않고 격렬히 움직였으니 제대로 산소 공급이 되지 않고 있었다.
'체력이라면 자신 있는데... 숨이 턱턱 막힌다. 이래서는 오래 못 버텨!'
무협지의 주인공들처럼 오랜 시간 동안 격렬하게 싸우면서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최고의 육체를 가진 그였지만 천하를 호령하는 세 명의 장수들과 쉴 틈 없이 겨루는데 체력이 온전할 리 없었다.
마초는 모용환의 낯빛이 서서히 질려가는 것을 보고는 그가 계속되는 공방으로 인해 심폐기능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호호! 이제 슬슬 갈 때가 되었나 보군!"
"이 정도 버틴 것도 용한 일이지!"
고순은 다른 의미로 살짝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벌써 사십여 합이 넘었다. 어중이떠중이도 아니고 자신들과 삼 대 일로 싸우면서 이 정도로 버텼다는 것은 모용환의 무위가 그의 예상을 훨씬 웃돈다는 말이었다.
'저 정도의 장수를 이렇게 죽여야 하는 게 아깝긴 하지만, 적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
"우릴 원망 말게!"
그러나 모용환은 고순의 외침을 챙겨 들을 정신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몸이 너무 무겁다... 운아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큭!"
물 먹은 솜처럼 행동이 서서히 굼떠지던 모용환은 결국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의 가슴에 기다란 자상이 아로새겨지며 한 줄기 선홍색 핏줄기가 위로 솟구쳤다. 찢어진 전포 사이로 시뻘건 상처의 틈이 보일 정도로 꽤 깊숙한 상처였다.
마초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어서 연격을 날렸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하던 모용환이 이를 부서져라 악물고 있는 힘껏 청공검을 휘둘렀기 때문에 그녀의 공격은 무위로 돌아갔다.
두 번째 공격을 실패한 마초는 빨간 혀로 입술을 축이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그녀는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모용환의 목줄기에 선혈이 낭자한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들끓는 가슴과는 달리 그녀의 머리는 무척 이성적이었다.
'놈은 이제 서 있을 기력조차 없어. 이제 몇 합 남지 않아...'
고순과 방덕이 있으니 그녀가 마음껏 공격해도 뒤탈은 없을 것이다.
일순간 마초의 공격이 멈추자 모용환은 한 호흡으로 몸에 다시 원기를 불어 넣었다. 그것으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한줌의 기력은 회복된 듯 했다.
'평소라면 이렇게 빨리 지치지 않는데... 셋과 싸운다는 게 이렇게나 힘들다니.'
누구보다 뛰어난 지구력을 자랑하는 모용환이었다. 그의 육체는 이미 최고의 상태로 완성되어 있었고, 싸우기에 최적이었다. 허나 마초와 고순, 방덕의 합공 때문에 숨도 돌리지 못했을 뿐더러 몇 십배나 많은 적들이 있는 적진에서 싸운다는 것은 보통 중압감이 가는 일이 아닌 것이다. 특히 부하들이 하나 둘 쓰러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모용환의 신경은 자꾸 곤두섰다.
자신이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듯해 도저히 싸움에만 집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침착하자. 이런 원론적인 생각은 나중에 해도 돼. 일단 살고봐야 속죄를 하든 말든 할 거 아니냐. 이미 모두 각오한 일이야.'
흔들리는 듯 했던 그의 눈동자에 다시 빛이 들어왔다.
'절대 질 수 없다!'
"이거나 먹어라!"
막 모용환의 수급을 취하기 위해 다시 공격을 하려던 마초는 갑작스레 그가 들고 있던 철검을 있는 힘껏 날리자 급히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검이 두개였기 때문에 무서운 합공 속에서도 근근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인데 제 손으로 검을 날려버릴 줄이야!
"목숨을 포기한 거냐!"
"천만에!"
검을 던져버림으로써 약간의 시간을 번 모용환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창 하나를 발로 차올린 후, 반쪽을 꺾어 단창(短槍)을 만든 뒤 굳게 쥐었다.
"후웁!"
한 발은 땅을 내딛었고, 한 발은 접힌 채로 높게 들렸다. 허리는 비스듬히 돌려지고, 창을 꾹 쥔 손은 머리 위로 올려져 한껏 비틀린 상태. 일견하기에도 범상치 않은 자세에 다시 달려들려던 삼인은 주춤했다.
그들을 오연하게 응시한 모용환은 문득 심상치 않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이, 야구라고 알아?"
장난기가 다분히 섞인 말투에 방덕은 두 눈두덩을 꿈틀거렸다.
"뭐라고?"
"아냐. 그냥... 이런 게 있다는 것도 알아두라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였다. 모용환은 상체를 숙이며 들려져 있던 발로 땅을 탁 내딛음과 동시에 높이 쳐든 창을 쥔 손을 지면으로 내리찍을 듯 강하게 휘둘렀다. 그 중간의 과정 사이에 단창은 어느새 그의 손을 떠나 버렸다.
'창에는 야구공처럼 실밥도 없고 쥐는 법도 전혀 틀리지만 나름대로 많이 연구한 투창술(投槍術)이다. 마구(魔球)가 아니라... 마창(魔槍)이랄까?'
모용환이 취했던 기묘한 자세는 바로 현대의 스포츠, 야구 투수의 자세였던 것이다. 공이 아니라 창을 쥐었기 때문에 조금 변형되긴 했지만 그 위력은 실로 엄청났다.
쐐애애액!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빛살같이 날아오는 단창을 보자 세 사람의 안색이 순식간에 급변해 버렸다. 바위라도 단숨에 관통할 만한 엄청난 경력이 실렸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맞받아 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세 사람의 뇌리에 스친 생각은 단 하나.
'맞으면 죽는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마초는 경이적인 반사신경 덕분에 가까스로 창을 피해냈다. 그러나 마초의 몸에 가려 창의 궤적을 정확히 읽지 못했던 방덕은 무사할 수 없었다.
푹!
"크악!"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방덕의 왼쪽 팔이 팔꿈치부터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그 역시 순간적으로 몸을 날리긴 했으나 완전히 단창을 피할 순 없었던 것이다. 방덕의 왼팔을 날려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창의 기세는 여전히 죽지 않았다. 단창은 가공할만한 속도와 위력을 유지한 채 그대로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그것은 미처 피하지 못한 두 명의 병사들에게는 재앙이 되었다.
퍽! 퍼억!
"끄으아아!"
"커헉!"
단창을 피해 땅에 구르는 치욕도 마다하지 않았던 고순은 멍한 얼굴로 단창이 날아간 쪽을 쳐다보았다. 병사 두 명을 꿰뚫어 즉사시켜버린 단창이 성벽에 깊숙이 박힌 채, 아직도 부르르 떨고 있었다. 흡사 아직도 피가 모자란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저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아차!"
무지막지한 모용환의 투창술에 경악하던 고순은 창을 날린 장본인에게로 눈을 돌렸다. 마초도 잠시 정신이 나가있기는 마찬가지여서 고순의 행동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모용환을 찾았다.
그러나 모용환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활짝 열려진 성문 사이로 한나라의 병사들이 꾸역꾸역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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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회를 끝으로 생각하냐면요..
300~400회 정도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제가 구상한 스토리의 반 조금 안되는 정도 온 것 같은데... 제목을 모용이국지로 할 걸 그랬나...
짤방은 뜬금없이 장료. 참고로 장료 머리 위의 꽃은 '지금은' 달고 있지 않습니다 -_-ㅋ 가까스로 세 명의 장수에게서 도망친 모용환은 은밀하게 성문 밖으로 빠져나간 상태였다. 성문에서는 난전이 벌어진 상황이어서 아무도 그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쩍 벌어진 가슴의 상처가 쓰라려오자 얼굴을 찌푸렸다.
'정말로 죽을 뻔했군. 생소한 자세에 그들이 주춤하지만 않았더라도 수세에 몰려 죽었을지도 몰라.'
방금 전의 행동은 그로서도 도박이었다. 한 명만 있다면 모를까, 적이 셋인 상황에서 관천을 쓰다가는 한 명은 죽일 수 있을지 몰라도 이후에 두 명의 반격을 받아 목을 내놓게 될 수도 있었기에, 두 번째 기술 용투(龍投)를 쓴 것이었다. 결과도 보지 않고 도망쳐 왔지만 아직까지 쫓아오지 않고 있는 걸 보니 효과는 확실한 듯 했다.
"그나저나 정말 아픈데."
다시금 타는 듯한 통증이 엄습해오자 모용환은 가슴을 꾹 누르며 성문 밖 주변을 서성였다. 그리고 곧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 그는 환한 웃음과 함께 그 쪽으로 뛰어갔다.
"운아!"
언제나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은빛 갑옷을 갖춰 입은 조운은 막 성문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모용환의 외침을 듣고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무사한 것을 보고 다행스럽단 표정을 짓던 조운은 곧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라버니! 가슴이...!"
"같이 좀 탈게!"
모용환은 훌쩍 몸을 날려 조운의 뒤에 올라탔다. 그 바람에 상처가 살짝 벌어져 핏물이 다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조운은 사색이 되어 조금 전까지 병사들을 지휘하던 것도 그만두고 자신의 왼팔을 감싼 옷을 부욱 찢었다.
물론 그 정도로 모용환의 넓은 가슴팍을 감쌀 수 있을 리 없었다. 조운은 안절부절 못하며 그의 가슴에 흐르는 피를 닦아냈다.
"어, 어떡해요?"
"으윽. 이러다가 오라버니 죽겠다."
고통스러운 듯한 모용환의 얼굴을 보자 조운의 큰 눈망울에 금세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금방이라도 울음보가 터질 듯한 기색이었다.
"돌아가시면 안 돼요!"
'아니, 이건 누가 봐도 장난인데...'
그냥 가볍게 장난기가 발동해서 툭 던진 말에 조운이 울상을 짓자 오히려 당황한 건 모용환이었다. 그는 이 사태를 어떻게 무마할까 고민했다.
'에라, 모르겠다!'
"농담이야. 난 이렇게... 멀쩡하다고."
"꺄악!"
그리고는 앞에 타고 있는 조운의 아담한 젖가슴을 기습적으로 움켜쥐는 그였다. 모용환은 그 상태로 그녀의 발갛게 달아오른 귓가에 나직하게 속삭였다. 잘게 떨리는 몸의 울림이 옷을 타고 전해졌다.
"뭐해? 지휘해야지."
"아! 그...럴 게요..."
전혀 반항하는 기색이 없는 그녀의 태도에 모용환은 낮게 한숨을 내쉬며 손을 놓았다. 즉흥적인 행동이긴 했어도 더 이상 진도(?)가 나가면 참지 못할 것 같았다. 보드라운 가슴의 감촉이 손바닥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갑주 위이긴 했어도 그 몸매가 어디가는 건 아니었다.
그는 아쉬움이 짙게 배어나는 투로 물었다.
"장료는?"
"먼저 들어가셨어요."
"안은 위험한데... 우리도 어서 가자. 내가 뒤에서 보조해 줄 테니까, 맘껏 휘저어. 방어는 생각하지 말고 공격만 해. 그 왜... 빈아처럼 말이야."
조금 전, 세 명의 합공을 견디면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었다. 공격과 방어를 확실하게 전담하면 그 위력은 배가 된다는 것.
조운의 창술은 방어가 주가 되는 유형이었지만 그녀는 자신과는 정 반대로 극히 공격적인 태사자의 창술 또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용환의 주문을 쉽게 이해했다. 그러나 모용환의 몸 상태가 걱정되었다. 이렇게 자신에게 농을 걸 정도라면 심각한 상태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그의 상처가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괜찮으시겠어요?"
모용환은 조금 답답한지 가슴을 팡팡 쳤다. 간신히 지혈한 것도 까맣게 잊은 채.
"걱정 말라니까."
"예에..."
"윽! 또 벌어졌어!"
"오, 오라버니! 피! 피가! 어떡해!"
왼팔을 잃은 방덕의 상처를 돌보던 고순은 치열한 전장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은 높은 고음의 음색이 들리자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특유의 오만한 웃음을 입가에 매단 장료가 현란한 창술로 진의 병사들을 한창 유린하는 중이었다.
그걸 본 고순의 두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확대되었다.
"...장료!"
그의 부르짖음은 정신없이 적병들을 베어나가던 장료의 귀에도 똑똑하게 전달이 되었다. 낯익은 목소리에 장료는 고순이 있는 곳으로 눈을 돌렸고, 이어서 입을 벌리고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고순과 눈이 마주쳤다.
장료는 두 눈을 한 번 깜박였다.
"고씨 아저씨?! 왜 여기에? 아!"
여포가 대장으로 있으니 고순이 있는 것도 당연한 것, 장료는 사방을 훑어보았다. 혹시라도 여포가 있는지 살피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여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장은 어디 있어요!"
오랜만에 만나서 하는 소리가 고작 저 소리라니.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던 고순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이 녀석아! 지금 그게 중요하냐! 이게 얼마만인데!"
"아저씨는 덤이고! 대장을 데리러 왔단 말예요! 대체 이딴 나라에는 왜 들어간 거죠?!"
그녀의 단도직입적인 물음에도 고순은 굳은 표정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내심 장료가 하나도 변한 것 같지 않아 흐뭇한 기분이었다.
'내 입장도 좀 생각해 줘야 할 거 아니냐. 생각 같아선 전쟁이고 뭐고 나눌 말이 많다만, 지금 난 너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으니 그마저도 힘들겠구나. 적장이랑 터놓고 얘기할 수는 없으니...'
"우리 일일 뿐이다. 한족인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더 이상 관여치 말아라."
이번에는 장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순이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자신이 나설 여지를 완전히 잘라버리고 있었다.
"아저씨!"
"이유는 묻지 마라. 퍼져서 좋을 거 없다."
장료는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힘으로라도 막을 건데요?"
"하핫! 네가 말이냐? 나를?"
고순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포와 더불어 장료에게 창술을 가르친 것이 바로 그다. 객관적인 무력은 비슷할지도 모르지만, 장료의 창술이 그리는 궤도를 낱낱이 알고 있는 고순이었다. 파훼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같은 창술을 쓴다면 좀 더 그것을 잘 이해하고 숙련된 사람이 유리한 법이다.
당연히 장료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하지만 이대로 고순을 보낼 수는 없었다.
"제가 한 번도 져 본적이 없다는 사실은 잘 아시죠? 아저씨라 해도 예외가 될 순 없어요. 누구도 날 이기진 못할 테니까."
"그 이유 없는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구나."
"내가 괜히 콧대가 높은 줄 알아요?"
오만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장료는 아직까지 본신의 실력을 전부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심지어 여포와 싸운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좀 전의 소리는 결코 허투루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를 가르쳤던 고순마저 장료가 어느 정도의 천재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장료와 고순이 일전을 불사르려 하기 직전, 성문 쪽에 밀집되어 있던 병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 틈사이로 은빛의 인영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렸고, 그 때마다 어김없이 혈화가 허공을 수놓았다.
또 하나의 강적에 등장에 고순은 암담해지는 기분이었다.
"...저 자가 은룡? 대단한 창술이로군."
"나 보다는 아래지만 말이죠."
자신을 제쳐두고 조운에게 신경을 쏟는 고순의 태도가 못마땅한지 장료가 조금 새치름한 얼굴로 말했다.
"말 그대로 은룡이다. 헌데 저 자는... 모용환! 별 달리 상처도 입지 않았구나!"
"용케 살았나 보죠?"
"나와 방 장군, 마초가 합공을 했는데도 제압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제압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지... 다시 겨룬다면..."
그것이 못내 분한 고순이었다. 기이한 자세에 현혹되어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면 투창을 하기 전에 모용환을 저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변명에 불과한 것, 이미 결과는 드러났다. 모용환은 도망쳤고, 그들은 막지 못했다. 그것뿐이었다.
장료는 모용환이 그 셋의 합공에서 버텼다는 것보다 다른 사실에 놀랐다.
"마초라고요?"
고순은 씁쓸하게 말했다.
"그녀는 이미 떠났다. 이미 결과가 정해진 싸움은 하지 않는다더군... 자신은 죽이러 왔지, 죽기는 싫다고 하더구나."
그의 말대로 수춘성 공방전의 결과는 서서히 한의 승리로 굳어지고 있었다. 모용환의 이끈 일천의 기마의 기습으로 총사령관인 악진이 부상을 입었고, 우금이 포로로 잡힌 것만으로도 지휘 일선에 큰 문제가 생겼다. 게다가 방덕까지 회생불능의 상처를 입었으니 모용환 한 명의 분탕질에 이만저만 당한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싸울 수 있는 장수는 고순과 마초뿐인데 그들은 모용환이 비교적 무사한 상태로 도망치는 것을 확인했다. 남은 장수들로서는 뒤이어 들이닥칠 한의 무장들을 감당해 낼 수 없었다. 마초가 미련 없이 가버린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고순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장료와 일전을 결하는 것도 이제 물 건너간 상황이었다.
"나도 이제 병사들을 이끌고 성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방 장군도 데리고 갈 것이니, 옛 정이 남아있다면 부디 막지는 말아다오."
힘 빠진 그의 말에 장료는 창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요. 이번 한 번이에요."
"고맙구나. 그러나..."
"응...?"
"나 역시 이번만 조언을 해주마. 이번 승리로 너무 들뜨지 말아라. 어쩌면 이보다 더 무서운 상황에 처할 수도 있으니까..."
심상치 않은 말이었다. 장료는 아미를 상큼 치켜 올렸다. 그냥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대장은 여기 없다. 이것만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겠냐?"
"......!"
"행운을 비마."
고순은 돌아서서 퇴각명령을 내린 뒤, 말에 올라탔다. 뒤에는 의식을 잃은 방덕을 태운 채였다. 멀찍이서 그 모습을 본 악진도 병사들에게 후퇴 명령을 내리는 듯 했다.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윽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진의 병사들을 보면서, 장료는 한참 동안이나 우두커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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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춘 공방전이 막을 내렸습니다 -ㅁ-
아.. 1월달에는 어떻게 하루에 두세편, 많게는 다섯편이나 올렸는지 모르겠더군요. 요즘은 하나 쓰는 것도 힘드니. 본격 전투씬이 많아서 그런가?
혹은 다른 작품 쓰고 싶은 생각에 글발이 잘 안받는 걸지도..
제가 워낙 즉흥적이라서 다른 소재가 생각나면 그걸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나거든요.
물론 모용삼국지를 어떤 형식으로든 완결내고 쓸 생각입니다만
후속작은 그리스로마신화가 될 듯 -_-.. 쓰고 싶어라! 여성화 같은거 필요없이 여자는 많지 않은가... 후후후... 최고봉은 아프로디테? 크흠흠..
지금 새벽 4시. 오후 중에 힘을 내서 연참을 노려볼까 합니다... 공성전은 끝났다. 예상외로 피해는 적은 편이었다. 진은 성문쪽에서 밀리자마자 병사들을 바로 후퇴시켰기 때문에, 그 때까지만 피해가 집중되었을 뿐 그 이후로는 일방적인 양상이었다. 그러나 장료가 임의로 고순과 방덕을 놓아준 일 때문에 전쟁을 승리로 이끈 모용환은 개운치 않은 뒤끝을 남겨야 했다.
이틀 뒤 수춘성의 궁성. 모용환은 장료와 독대를 하고 있었다. 그 전까지 모용환은 몸에 붕대를 감고 요양을 취해야 했었다.
"네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응."
변함없는 표정을 한 그녀를 보자 모용환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응? 그렇게 간단히 끝낼 문제가 아니야. 넌 적장을 놓아줬어. 군법으로 치면 내통죄로 몰아 즉결 처형감이 될 수도 있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
장료는 여전히 시큰둥했다. 자신의 목숨이 오락가락 하는데도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네가 고순과 절친한 사이였던 것은 알아. 하지만 지금 너는 한의 신하야."
"누구 마음대로?"
"뭐?"
"신하라니, 잊고 있나 본데 난 단순히 계약을 했을 뿐이야. 이딴 관직으로 날 옭아매 두려는 생각은 하지 마. 충성심은 눈곱만치도 없다고. 우리의 관계는 각자의 목적을 위해서 서로를 이용하는 것, 그 이상은 아니지. 착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그녀가 앙칼진 목소리로 대꾸하자 모용환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분명 맞는 말이지만 이런 식으로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다. 평소답지 않게 장료가 유난히 감정적으로 나오자 모용환은 그녀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 흥분하지 마."
"난 지극히 정상이야. 그리고 내 행동이 미칠 반향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 다음에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지. 이번 한 번 뿐이었어... 정 못 믿겠으면 군법대로 해도 좋아."
그 말인즉슨 사형에 처해도 좋다는 소리였다. 모용환은 장료가 왜 이렇게 막 나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죽으라면 죽을 건가?"
"미쳤어? 당연히 도망가야지. 혈랑대는 두고 갈 테니까 알아서 해."
"푸후후..."
당연하다는 듯 장료가 말하자 모용환은 맥 빠진 웃음소리를 냈다. 그럼 그렇지, 순순히 자기 목숨을 내놓을 장료가 아니었다.
"알았어. 그만 나가 봐. 이 일은 불문에 부치도록 할 테니..."
"정말이야?"
모용환이 선선히 응할 줄은 몰랐는지 장료는 미심쩍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모용환은 머리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고맙다고 한 마디 하면 덧나냐?"
"...흥. 얻을 거 다 얻어 놓고는 고맙기는. 가겠어."
일고도 없이 일어나서 바로 나가버리는 장료의 뒷모습을 보며 모용환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자신의 내심을 들킨 것 같아 조금 민망했다.
'장료에게 빚을 지워두었으니 앞으로 요긴하게 쓸 일이 있을 거다. 딱히 손해를 본 것만은 아니야. 방덕은 당분간 전장에서 볼 수 없을 테고, 우금을 포로로 잡았다. 악진도 무사하지 못했어. 그리고... 오늘 같은 상황은 반대로 발생할 수도 있지. 고순 또한...'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문이 다시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섰다. 태사자였다. 어깨에 댔던 부목은 풀었지만 여전히 팔에는 아직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듯 그녀의 오른팔은 늘어져 있었다.
수춘성을 다시 수복한 직후 관우와 태사자, 조인, 황충은 곧바로 입성을 했지만 승리의 주역인 모용환이 부상 때문에 바로 안에 틀어박히는 바람에 별다른 말도 못 건넸었다. 태사자 수춘에서 모용환을 만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인 셈이었다.
그녀는 조금 머뭇거리며 그에게 다가왔다.
"몸은... 어때?"
"덕분에 괜찮아. 앞에 난 이것만 빼고는 경상이니까."
앞가슴을 툭 건드리며 내뱉는 그의 말에 태사자는 발끈했다.
"이번 작전은 너무 무모했어. 여포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그 사람이 있었다면 어쩔 뻔 했어!"
자신을 책망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모용환은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 떴다. 어떤 일이건,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거다. 그리고 그러기에 이런 무모한 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어쩔 수 없었어. 넌 전투불능이고 형님이나 조 장군, 황 어르신도 탈출할 때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서 출전 할 수가 없었잖아. 남은 사람은 나랑 장료, 운아 뿐인데 상대할 적장은 너무 많았지. 여포, 우금, 고순, 악진, 방덕... 마초도 있었지? 어차피 누군가 한 명은 미끼가 되었어야 했어. 7만 군사를 혼자 지휘할 순 없으니까... 이럴 때 다른 사람을 내보낼 수는 없잖아.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어쨌든 성공했고. 내가 세 명과 싸우지 않았다면 1천 기병들은 본진이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거야."
만약 모용환을 잡는다면 쉽게 전투를 끝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장수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지 않았다면 한의 기병들은 일찌감치 전멸했을 것이다. 모용환은 훌륭하게 미끼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물론 그것으로 태사자에게 위안이 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만. 그보다 이것 좀 벗겨줄래? 이제 다 나은 것 같아서."
그 말에 태사자는 하던 말을 뚝 멈추고 모용환의 벗은 상체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두껍게 둘둘 감긴 하얀 천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모용환의 상처가 꽤 크다는 것을 조운에게 들어 알고 있었던 그녀는 의심스러운 기색이었다.
"겨우 이틀인데... 벌써 다 나았어?"
"가슴이 근질근질한 게... 그런 것 같은데. 뒤로 묶여 있으니깐 혼자서는 못 풀겠다."
"...알았어."
모용환의 자연치유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별로 믿기지 않는 표정이던 그녀는 자잘했던 상처들이 희미한 흉터만을 남기고 모두 사라진 것을 보고 놀라는 한편 그의 말을 수긍할 수 있었다.
그의 뒤로 돌아가 천천히 상체를 감고 있는 천을 벗겨내면서 태사자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아직 오른팔을 쓰는 것이 조금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간단한 작업을 하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었다.
"와아..."
한 꺼풀 한 꺼풀 허물을 벗기듯 천을 풀 때마다 드러나는 탄탄한 광배근의 위용에 태사자는 자신이 하던 일도 잊고 감탄사를 터뜨렸다. 모용환의 알몸이야 많이 봤지만 이렇게 관찰하듯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뚜렷한 부채꼴 모양을 이루는 근육들을 보며 태사자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지금껏 이렇게 완벽하게 단련된 근육은 본 적이 없었다. 아마 엄청난 힘의 원천도 이런 조밀한 근육들에게서 나오는 것이리라. 여자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제약이 있는 그녀로서는 모용환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왠지 자랑스러웠다.
모용환은 뒤에서 태사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상념에 젖어 있었다. 미끼가 될 생각으로 나갔고, 어느 정도 자신도 있었다. 특히 몇 가지의 자기류를 완성한 이후에는 여포와도 겨뤄 볼 만 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전에서 써먹질 못했다.'
완성을 하면 뭣 하는가. 정작 쓸 수가 없는데. 단순한 일기토였다면 적절하게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 명이 간격을 두지 않고 합공을 하는 데에는 큰 기술을 쓸 틈이 없었다.
'너무 거창한 것들만 만들었어. 관천, 용투... 치고받는 싸움에서도 은근슬쩍 섞어 쓸 수 있는 실용적인 기술들도 필요한데.'
한마디로 잔기술이 부족했다. 그렇게 시름하던 차에 모용환은 자신의 등을 매만지는 가느다란 손길을 느끼고 흠칫했다. 태사자가 자신의 몸을 면밀히 구경하고 있단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이다.
'이거 참, 한 두 번 보는 몸도 아니고.'
"강한 남자가 좋다고 했지?"
뜬금없는 그의 말에 태사자는 죄지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 조금 떨어져 섰다.
"지금 난 강한가? 빈아 맘에 들 정도로."
"추, 충분히..."
"그으래?"
주저하는 태사자의 말을 들은 모용환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군살 없는 탄탄한 몸. 그러나 예전에는 없던 자잘한 흉터들이 가득했다. 지금은 새살이 돋아서 단지 하얗게 보일 뿐이었지만, 그것이 훈장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성장했다는 거겠지.'
"처음에 내가 강제로 안았을 때, 싫지 않았어?"
갑자기 모용환은 이상한 질문을 해댔다. 태사자는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성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런 상황에 좋아할 여자가 어딨어? 당연히..."
"싫었다고?"
"하, 하지만 지금은 아냐. 그리고 그 때는 유아도 같이 있었고..."
"그러고 보면 둘 다 첫경험이었군."
태사자의 얼굴은 더 이상 달아오를 수 없을 만큼 빨개졌다. 지금에 와서 왜 그런 것을 들추는지 모용환의 의도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 때는 평소라면 못할 행동을 분위기에 휩쓸려 한데다가...
그녀의 생각은 뒤이은 모용환의 말 때문에 이어지지 못했다.
"후후. 보고 싶었어. 넌?"
"나도..."
그 사이에 가슴에는 뜨거운 감정만이 가득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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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방은 조운 모용환은 전쟁을 하는 동안 억눌러 왔던 욕구가 한꺼번에 활화산처럼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며 태사자의 바지를 벗겨내렸다. 바지가 단화를 신고 있는 발목 어림까지 내려가자, 대리석 기둥 같은 늘씬한 다리가 드러났다. 그것을 보자 욕망의 불길이 더욱 크게 일어난 모용환은 급하게 그녀의 다리 사이를 가리고 있는 갑주를 들춰내었다.
"음…"
순간 그는 탄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갑주를 들추자 그가 본 것은 여인의 은밀한 곳을 가리고 있는 고의가 아니라 윤기가 흐르는 치모로 뒤덮인 도톰한 계곡이었던 것이다. 살짝 벌어져 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조갯입에는 이미 맑은 물이 고여 있었다.
모용환이 뚫어져라 자신의 꽃잎을 바라보고만 있자 태사자는 그의 어깨를 잡으며 다리를 오므렸다. 귀밑까지 달아오른 그녀는 달뜬 신음성을 내며 몸을 배배꼬았다.
"그렇게 보지마. 어서…"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군? 후후."
"아아… 부끄러워… 빨리…"
아이처럼 보채던 태사자는 모용환의 옷을 벗겼다. 요양 중이었기 때문에 갑주를 착용하지 않아서 그의 옷은 벗기기 쉬웠지만, 태사자는 갑주를 입은 상태였다. 그러나 가벼운 경갑주였고, 오히려 위에 갑주를 입고 하체만 벗은 모습이 더욱 요염함을 더하는 흥취가 있었다.
털썩!
모용환은 그녀의 몸을 그대로 밀쳐 금침에 뉘였다. 태사자는 한껏 기대에 찬 얼굴로 스스로 두 다리를 벌려 보였다. 그러자 울창한 수림에 뒤덮인 여인의 꽃잎이 이지러지며 아찔하기 그지 없는 속살이 남김없이 개방되었다. 촉촉하게 젖어든 유혹의 동굴은 사내를 갈구하듯 뜨거운 숨결을 쌕쌕 내뱉는 것 같았다.
이보다 더한 유혹이 어디있으랴. 모용환은 마치 코스츔 플레이처럼 장군복을 입고 있는 태사자를 보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리고 계곡살이건 속살이건 상관없이 그녀의 꽃잎을 격렬하게 빨아주기 시작했다.
"아하…! 아앙… 앙…"
오돌토돌하고 매끄러운 정인의 혓바닥이 꽃잎 속을 뱅글뱅글 헤집으며 분탕질을 쳐대자 태사자의 눈가에 살짝 물방울이 맺혔다. 그녀는 한 손으로는 갑옷 위로 자신의 젖가슴을 주무르고 다른 손으로는 모용환의 뒷목을 내리누르며 낭군의 봉사를 만끽했다.
추릅. 춥춥.
꽃잎 주변은 모용환의 침과 태사자의 애액이 뒤엉켜 엉망이 되었다. 계곡 주변부의 방초들은 잔뜩 물기에 젖은 채 마구 파헤쳐져 원색적인 조갯살이 어떤 울타리도 없이 선명하게 모습을 보였다. 수줍게 바짝 몸을 세우는 계곡 위의 작은 바위를 보자 모용환은 그대로 그녀의 조개를 아래에서부터 돌기에 이르기까지 낼름 핥아 올렸다.
"하악! 아아아… 너무 좋아…!"
그의 혀 끝이 첨단의 음핵을 톡 건드리자 태사자는 파르르 몸을 떨며 빨갛게 발기된 음핵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비벼대었다. 그녀의 입은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실로 오랜만의 자극, 그것도 눈물이 날 정도로 날아갈 듯한 쾌감이었다. 그녀 또한 교합의 즐거움을 알게되면서 성감이 많이 깨어났고, 그간 많이 억눌려 있었으니 더욱더 쾌락을 갈구했다.
쉼없이 예쁜 계곡 둔덕에 입맞춤하던 모용환은 자신의 눈 앞에서 태사자가 자위 행위를 하자 그녀의 상체의 갑주 틈으로 손을 찔러 넣어 뭉클뭉클한 촉감을 지닌 젖가슴을 마음껏 주물렀다. 크기는 작지만 고무공 같은 최고의 탄력을 지닌 젖가슴이었다.
"사랑해."
"우움… 움…"
유방을 단단하게 잡힌 태사자는 슬쩍 몸을 비틀며 모용환과 애정이 듬뿍 어린 입맞춤을 나누었다. 그녀의 젖은 눈동자는 무언가 말하려고 하는 듯 했지만, 앵두 같은 입술을 비집고 들어온 모용환의 혀는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쪼옥. 쪽.
서로의 혀가 음란하게 얽히면서 그들은 각자의 타액으로 몸을 축였다. 수동적인 태사자의 혀에 비해 모용환의 혀는 굉장히 능동적으로 움직이면서 그녀의 혀를 구렁이처럼 휘감았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스스로의 음핵을 애무하는 태사자의 손을 꼬옥 잡아준 뒤, 그녀의 조개를 벌리고 손가락 두개를 쑤욱 집어 넣었다. 그녀의 조개는 침입자가 들어오자 깜짝 놀라서인지 그의 손가락을 꼬옥하고 물어왔다.
"으응..."
아랫입과 윗입을 점령당한 태사자의 신경은 온통 벌어진 꽃잎 쪽으로 쏠려 있었다. 금방이라도 질펀해진 꽃잎이 흐물흐물 녹아 없어질것만 같았다. 비비적거리는가 하면 질벽을 살살 긁어주는 손가락들의 움직임은 그녀가 감당하기엔 벅찬 감이 있었다.
'오랜만이라서… 죽을 것 같애… 기분이 너무 좋아… 아!'
몇 개월간 보지 못했던 정인과의 정사를 하면서 태사자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 못지 않게 흥분된 마음을 추스르는 사람이 있었으니… 육손은 혼이 달아날 만큼 놀라서 그 자리에 못 박히듯 서 있었다. 모용환과 태사자, 두 사람은 그녀를 등지고 있었기에 육손이 들어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안다해도 서로의 육체를 탐하는 남녀에게 있어 그런 것은 중요치 않은 문제였다.
'어… 어…'
모용환의 부름으로 이곳에 오게 된 육손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만 벙긋거렸다. 전후 결과 보고를 들으려 하는 줄 알았더니, 사람을 불러 놓고는 그 자리에서 낯뜨거운 행위를 하고 있었을 줄이야. 음탕하게 질걱이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육손의 머리를 점점 숙여졌다. 도저히 두 눈을 뜨고 모용환과 태사자의 정사를 볼 수 없었다.
그러는 마음 한켠에는 엉뚱한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혹시 형은 보고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그냥 나도 불러서…?'
평소 모용환의 행실을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마차 안에서도 대교와 소교, 육손 자신과 함께 격렬한 난교를 즐기지 않았던가. 그녀가 들은 바에 따르면, 주유는 복도에서 전신이 주물러졌고, 제갈량은 춘약을 먹은 채로 온몸으로 모용환을 상대해 며칠 간 거동이 불편했었으며, 조운은 강가에서 모용환의 육봉을 빤 일례가 있었다. 장비는 풀숲에서 겁탈을 당했다. 거기다 몇몇 여인들과는 항문 성교도 즐겼으니… 여인들이 심심풀이로 모용환의 뒷담화를 하다가 나온 이런저런 이야기였지만, 어쨌든 분명 사실이었다.
'엉덩이… 로… 하면 아플까?'
육손은 다시 엉뚱한 생각을 했다. 항문으로 성교하는 것에 대해 이 시대의 여인들은 대개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자세도 정숙하지 못한 후배위가 자주 나오고, 더럽다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손은 태생부터 그런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고, 전에 대교가 뒤로 당하는 것을 보기도 했다. 찢어진 작은 구멍 사이로 줄기차게 드나드는 번들번들한 육봉… 갑자기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쳤다.
'아무래도 아플거야. 세상에, 똥구멍이 찢어지면 앞으로 일은 어떻게 봐? …근데 대체 언제 끝난담?'
소외당하는 기분에 살짝 얼굴을 찡그린 육손은 다시 머리를 들어 한창 열기에 휩싸인 침상 위를 쳐다보았다.
움찔!
육손은 그 순간 자신을 쳐다보는 두쌍의 시선과 마주치고 뜨악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 어느새 자세를 바꾼 모용환과 태사자가 그녀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처억! 척! 처억! 척!
"하으윽… 아앙… 아!"
침상에 걸터앉은 모용환의 품에 안긴 태사자는 그 작은 조개로 우람한 육봉을 한입에 잡아먹은 채 신들린사람 마냥 몸을 위아래로 격하게 흔들고 있었다.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힌 탐스러운 엉덩이와, 모용환의 허벅지 근육이 찰싹찰싹거리며 부딪칠때마다 그녀의 갑주가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들썩였다.
육손이 보고 있다는 것에 자극을 받아서일까, 두 사람은 정사를 멈출 생각은 전혀하지 않고 오히려 발정난 짐승들처럼 행동했다.
"허억, 허억!"
"학…! 아앗!"
태사자의 허리를 안고 적당히 살집이 오른 그녀의 허벅지를 손안 가득 움켜쥐고 주무르던 모용환은 꽃잎의 조임이 한층 강해진 것을 느끼자 튕기듯 몸을 반쯤 일으켰다. 그 바람에 태사자는 앞으로 쓰러질 뻔 했으나, 곧바로 모용환이 그녀의 팔을 양손으로 잡고 뒤로 잡아당기자 허리를 활대처럼 구부리며 둔부를 출렁였다. 그녀는 황홀경을 헤매고 있었다. 방금 전의 반동으로 안 그래도 계속 끝에 닿을 듯 말 듯 했던 육봉이 자궁 끝까지 박혀들었기 때문이다.
조갯살을 원래 크기가 무색할 정도로 무식하게 벌리고 뿌리째 박힌 육봉 주변에 나 있는 털들은 태사자의 치모와 뒤엉켜 하나로 합쳐졌다. 어떤 기교도 없이 몸 안에 가득 채워진 육봉의 존재감만으로도 태사자는 이미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모용환은 흡반처럼 감겨오던 속살들이 이제는 육봉을 끊어버릴 듯한 기세로 수축해오자 미련없이 육봉을 빼 버렸다.
쑤욱!
"하윽… 왜…?"
압도적인 크기의 방망이가 몸 안에서 빠져나가자 태사자는 막혔던 숨통이 트임과 동시에 큰 허탈감을 느꼈다. 이제 곧 절정이었는데 모용환이 그새를 참지 않고 육봉을 빼버린 것이다.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욕화는 이미 멈출 수가 없었다.
'가겠군.'
머리를 쳐들고 고개를 뒤로 돌려 자신을 원망하는 눈초리로 쏘아보는 태사자를 본 모용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쪽에서 우두망찰 구경을 하고 있는 육손에게 말했다.
"잘 봐. 최고로 행복한 몸짓을 보여줄 테니까… 이 쪽으로 와봐."
"……?"
육손은 영문도 모르고 모용환의 지시에 따라 그들의 정사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 침대 옆으로 향했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모용환은 상체를 앞으로 내민 태사자의 몸을 그대로 받치면서, 흘러내린 그녀의 거친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그리고 육봉이 들어찼던 탓에 아직도 벌려져 있는 꽃잎의 중앙부에 손바닥을 대고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문지르기 시작했다.
"아으… 하아아앙… 낭군님… 나 정말… 아항!"
"그래, 우리 이쁜 마누라. 더 귀여운 표정은 없어?"
"나, 나… 정말… 아아… 좋아해… 사랑해… 계속… 아응...!"
이 말을 하는 태사자의 얼굴이, 모용환에게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만큼이나 예뻐보였다.
"당연한 말을."
심중에 담고 있던 말을 끝내 발설한 태사자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마구 흐트러뜨려 더 이상 붉어질 수 없을 만큼 홍시가 된 안면을 가렸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엉덩이는 쑤욱 쑥 손가락들의 왕복주기에 맞춰 계속해서 일렁이고 있었다.
절정 직전의 여운이 남아 있었던 태사자는 극도로 예민해진 살덩이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손길을 느끼자 다시 흥분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모용환의 손에 완벽하게 장악당한 꽃잎은 점차 빨라지는 그의 손길에 끊임없이 감로수를 흘려대었다.
철벅 철벅! 찌걱 찌걱!
모용환은 이제 엄지를 국화에 깊숙하게 찔러넣고는 나머지 네 개의 손가락을 모두 꽃잎 속에 집어넣은 채 최선을 다해 노를 젓기 시작했다. 그의 폭풍 같은 노질에 태사자는 눈을 치뜨며 연신 교성을 질러댔고 철퍽이는 꽃잎에서 떨어지는 꿀물은 비단 이불을 서서히 적셔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힘차게 움직이던 그녀의 잘 익은 엉덩이가 왕복 운동의 속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며 바르르 떨었다. 절정의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지금까지 절정에 이를 듯 말 듯 아슬아슬 줄타기를 했기 때문에 태사자가 느끼는 쾌감은 평소의 배 이상이었다. 그녀는 육손이 보고 있는 것도, 입가에서 침이 흐르는 것도 상관치 않고 오직 엉덩이를 흔드는 것만이 지상과제인양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그것을 지켜 본 모용환은 손목에 힘을 주어 꽃잎 속에 파고든 손가락들의 움직임 역시 최대한 빠르게 했다. 마치 살아있는 연체동물이 질 속에 들어와 내부를 꾸물꾸물 휘젓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이제 다가올 거대한 해일을 맞을 준비를 했다.
이윽고.
"하아아앗! 아아앙!"
푸슈슛! 츄웃!
모용환은 그 순간 계곡살을 쩌억 벌렸다. 육손의 눈에 홍수가 난 태사자의 주름 잡힌 동굴이 훤히 드러났다. 육수로 덮여 반질반질 윤이 나는 새빨간 원색의 균열은 옴찔옴찔 경련을 일으키며 절정의 결정체인 애액으로 된 물줄기를 사방에 휘갈겼다.
'…우와…'
상기된 하얀 엉덩이를 정면에서 보았다. 잘 익은 복숭아 같은 엉덩이 사이, 모용환에 의해서 결정적인 순간 최대한 벌려진 그녀의 조개가 환희의 폭죽을 터뜨리고 있었다. 모용환은 잘 익은 과육 에서 과즙을 짜내듯 조갯살을 검지와 엄지 사이에 끼워 잡고 꾹꾹 눌러 주었다. 그러자 안에 고여 있던 애액들이 찍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 튀었다. 그 중 몇 방울은 정신없이 구경하던 육손의 얼굴에도 묻었다.
"하으… 하으…"
몸 안에 남은 욕망의 찌꺼기를 남김없이 분출한 태사자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자신이 흠뻑 적신 이불 위로 쓰러졌다. 그녀의 동공은 아직도 풀려 있었다. 모용환은 그녀의 갑주를 벗기고 알몸이 된 그녀를 품 안에 소중하게 껴안았다. 아직 이성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도 태사자는 정인의 사랑을 느꼈는지 팔을 뻗어 그를 마주 안아 주었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맞춤하며 속삭였다.
"이제 푹 자."
평소와는 다르게 욕정을 가누지 못하는 태사자를 한번에 풀어주기 위해서 그랬던 것인데 이렇게 완전히 가버릴 것 까지 예상하지는 못했었다. 거의 실신지경. 육손에게 그 장면을 보여준 것은 다 이유가 있어서다. 다음 상대는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었다. 약간의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런 것도 있긴 하지만… 방금 전처럼 엄청나게 색정적인 장면을 보고 흥분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전희의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모용환도 급했다. 태사자를 육봉이 아니라 손으로 보낸 것도 용한 일이었다.
태사자 하나로 만족하기엔 모용환의 정력은 너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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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잠수를 타고 싶어서 탄게 아닙니다 -_-;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기숙사에... 3일날 왔는데.
인터넷도 안되어 있어서.. 5일날 개통.
그거라면 상관없는데 문제는...
후배 새내기랑 같이 방을 쓴다는 것!
이런 젠장맞을 열심히 공부하는 선배의 모습을 보여야 할 텐데 할일없이 앉아서 노트북 두드리는 이유가 성인소설 때문이란걸 안다면 -_-...;;; 특히 이번편은 좀 농도가 높지요? 쓰느라 아주 혼났습니다;;; 눈치보면서... 알트탭신공을 발휘하며..
앞으로 쓸 날이 암담하군요... 그래도 인터넷 들어오기 전에 써논 비축분 몇 편 있는데 내일 한꺼번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후배놈 땜시 그리 많은 양은 아니니 기대는 하지 마세요 p.s / h씬의 묘사 강도를 이번처럼 좀 올리려고 하는데 괜찮나요? 이나 저나 섹x 장면인데 수위를 조절하는게 참... 조아라의 기준을 모르겠음. 품 안의 태사자를 침상에 뉘인 후, 그는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육손을 향해 큭큭 웃으며 말했다.
"몸종씨. 시중들어야지요? 이 주인님은 아직 팔팔하신데."
"아… 그…"
육손은 말을 하다 말고 멈칫거렸다. 그녀가 멍하니 있던 건 방금 전의 장면 때문만은 아니었다. 방금 전 다정하게 서로를 껴안던 두 사람… 태사자와 모용환. 모용환은 자신이나 대교, 소교와의 정사후에 저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대하는 행동이 다른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왠지 이상한 감정이 밑바닥부터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그리고 절박해졌다.
'나만 안달이었던 건...가? 형은 내게 아무 감정이 없는… 멍청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있을 턱이 없잖아. 당연히.'
모용환과 공식적으로 부부지연을 맺기로 한 여자들은 많다. 육손은 어쩌면 자신이 그들 중 한 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개 몸종으로서 너무 과한 욕심을 부린 것일까? 욕심이라기엔 혹시나 어쩌면… 하고 기대를 한 것 뿐이었지만.
혹시나는 역시나가 되지 않았다. 몸종은 그저 몸종인 것이다. 아무리 잘 대해주어도, 그 이상의 관계는 될 수 없었다.
'하긴 모두를 위해 줄 순 없어… 어떻게 그 많은 여자들을 다 사랑해 주겠어? 다 다른데… 형 입장에서 보면 난 스스로 몸을 바친 얼간이 같은 계집일 뿐이야. 정당한 내기로 몸을 가졌으니까. 심심풀이로 안아주면 좋아할 그런 발정난 계집…'
과거를 돌이켜봐도 육손은 한번도 모용환과 단 둘이서 정사를 가진 적이 없었다. 첫경험을 제외하면. 꼭 다른 여자들과 같이 난교를 벌일 때 같이 안아주곤 했다. 그 점이 육손의 생각을 확신으로 굳혔다.
'흥취를 돋우는 곁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 같은 여자를 좋아할 사람은 없지 않은가. 사내애처럼 거친데다 말투도 상스럽고 잔소리를 늘어 놓아야 움직일만큼 게을러 터졌다. 머리가 좋다고 잘난체 했지만 이번 전쟁 때에는 변변한 지략도 짜내지 못했다. 그나마 쓸만한 건 반반한 얼굴과 계집 구실을 할 수 있는 몸뚱아리 뿐이었다.
"이리 와."
육손은 모용환이 자신의 상의를 풀어헤치자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평소라면 좋다고 달려들었을 텐데,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육봉은 꼿꼿하게 고개를 쳐들고 있는데 그것을 풀어줄 여인네가 뜸을 들이자 모용환은 살짝 짜증이 났다. 특히 육손은 정사 행위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그는 그녀가 자신을 애태우는 것이라 생각했다.
"왜 그래?"
육손은 단단히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녀도 여자다.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과 계속 같이 있을 생각은 없었다. 어쨌거나 내기에 졌으니, 한동안은 모용환의 욕구를 풀어주는 밤상대로 지내게 되겠지만, 그런 관계는 오래 가지 않는 법이다. 모용환처럼 주변에 여자가 널린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지금 여기서 그의 속내를 알고, 시간이 지나면 후회를 남기지 않고 떠나기로. 지금 그녀는 모용환이 단물만 다 빼먹고 버려도 받아들일 태세였다. 그런 여자라도 사랑해 줄 남자가 있다면 평생을 함께할 만 하지 않겠는가.
"형… 형은 날 어떻게 생각해?"
"응? 갑자기 뭔 말이야?"
"확실히… 말해 줘. 나… 난 그냥 몸시중 드는 창기 같은 거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모용환은 이쯤되자 육손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이 굳어졌다.
"창기라니?"
일단 말문이 트이자 육손은 거침이 없었다. 그 동안은 누님들에게 눌려 지냈지만, 그녀는 원래 자기 주장이 강하고 남에게 휘둘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 소녀다.
"사실이 그렇잖아. 솔직하게 말해서… 형은 말로는 혼인을 한다고 하지만 모두를 좋아해? 그건 아닐 거야. 분명히 해 줘. …내 몸이 필요없어지면 버려도 좋아. 뒤끝은 남기지 않게."
점점 육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윤곽이 드러나자 모용환은 경직된던 얼굴 근육을 이완시켰다.
"…무슨 말을 하는가 했더니. 그거라면, 어차피 지금 말해 줄 생각이었어. 일전에 유아랑도 얘기를 했었지만… 네 재량에 맡길 생각이야."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난 형의 내심을…!"
"이봐. 솔직하게 말하면, 내게 있어 너보다는 빈아가 더 소중해."
"……!"
얼굴색이 변해버린 육손은 비틀거리며 침상에 앉았다. 예상은 했었지만… 본인에게 확답을 들으니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북받쳐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고개를 떨구었다. 허리어림까지 기른 삼단 같은 머리카락이 목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끝까지 들어."
"…더 이상 뭘 들어야 돼?"
"우리가 알게 된 지 얼마나 됐지? 그 짧은 시간내에 평생의 반려라 생각할만큼 애정을 느낀다는게 쉬운 일은 아냐."
육손은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진심을 말한다면… 내가 정말로 아내로 삼고 심은 여자는 몇 명 되지 않아. 폐하나 량아, 유아, 여기 빈아… 잠들었군. 여하튼 그 정도일까? 너나 상향, 운아는 아직 여동생처럼 느껴지지, 사랑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 대교나 소교는 말할 것도 없고… 장비는 몸만 섞었다 뿐이지 별달리 얘기도 하지 못했어. 조조님은… 도저히 아내될 사람으로는 생각되지 않더군. 솔직히 한눈에 반한 건 폐하와 량아 뿐이야. 너 그거 아냐? 빈아는 나한테 겁탈을 당했어. 처녀를 뺏겼지."
충격적인 말에 육손은 무슨소리냐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좀 전처럼 다정한 분위기를 연출하던 태사자와 모용환. 둘의 첫 정사가 겁탈이었다니.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어떻게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모용환은 픽 웃었다.
"뭐, 그런 거지. 따지고 보면 너도 거의 강제로 당했잖아. 빈아랑 유아도 처음엔 좀 거리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무척 사랑스럽고… 안아 주고 싶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 중이야."
"난…"
"물론 네가 싫으면 그만이고. 어느 여자가 사랑할지 안할지 모르겠다… 이런 말에 평생을 걸겠냐마는, 지금은 이런 말밖에 해줄 수가 없어. …너 말이야… 아이 낳고 싶은 생각없냐?"
"……?!"
육손이 다시 한 번 경악한 얼굴로 쳐다보자 모용환은 볼을 긁적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지나치게 뻔뻔스러운 말이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애를 낳아 달라니.
"괜히 빈아랑 할 때 사정하지 않은게 아니야. 난 나 좋다고 오는 여자 거부할 자신없다. 그렇다고 너무 많으면 손아처럼 상처받는 사람도 있을 거고, 마누라들한테 미안하고… 애가 있으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손아와도 좀 더 가까워질 수도 있을 테고… 아아, 싫으면 못 들었다 생각하면 돼."
"왜, 왜 난데?"
"그럼 대교나 소교한테 이런 말을 하리? 걔들 나이가 몇인데. 폐하는 좀 그렇고, 유아나 량아는 바쁘잖아. 걔들 없으면 나라가 안 돌아가. 다른 애들은 전장에서 싸워야 되는 무장이고… 아무래도 너밖에 없다. 재정관리는 지금도 장굉님이 알아서 하시니까."
이런 말에는 그도 좀 쑥쓰러웠는지 될 수 있으면 육손과 시선을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 그도 많은 고민을 했었다. 가능하다면, 첫 아이는 유비가 임신하는 것이 모양새가 좋겠지만 아무래도 황제다 보니… '가만, 얼마 전에 했을 때 어쩌면… 아냐, 임신이 그렇게 쉽게 되는 건 아니지. 체위도 별로 였으니까.'
육손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이건 뭐라고 해야 될까? 사랑 고백도 아니고… 그 비슷한 거다. 내 아이를 낳아 주오! 라니. 머리가 핑핑 돌아가며 뒤죽박죽이 되어 갔다.
'아이를 낳아… 아이를? 내, 내가 엄마…'
안절부절 못하는 육손을 보니 모용환은 더 이상 성욕을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더군다나 아까 벗기려고 했던 상의는 반쯤 풀어헤쳐진 그대로. 그 틈으로 보이는 뽀얀 가슴골의 윤곽은 살짝 작아졌던 육봉의 크기를 다시 늠름하게 치켜세웠다.
"그건 그거고. 일단 하자. 싫으면, 싸기 전에 말해. 오늘 가임 기간 맞지?"
자기 여자들의 달거리 시기는 정확히 외우고 있는 그였다.
"으, 응…"
'내가 첫 아이를… 내가… 어쩌면 좋아…'
모용환은 궁상에 여념이 없는 육손의 옷을 순식간에 벗겨버렸다. 그녀의 하체는 도저히 19세 소녀라고 볼 수 없을 만큼 다분히 육감적이었다. 육덕이 오를대로 오른 둔부는 아찔하게 출렁거리며 풍만함을 과시했고, 두 다리 사이에 적당히 살찐 계곡살의 중심부는 세로로 깊게 파여 있었다.
그 주변의 울창한 수림들은 좀 전의 정사를 보아서인지 젖을 만큼 젖어 있었다. 모용환은 나이답지 않은 튼실한 하체를 훑어보고는 짧게 평했다.
'애도 순풍순풍 잘만 낳겠구만.'
여기 온지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정 붙이고 살기엔 힘든 세계였다. 피로 난무하는 전장, 문명의 이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곳. 현대에서 살다 온 그가 편히 있기에는 문제가 많은 세상일진대, 그래도 이곳에 뼈를 묻어야 한다면 빨리 가정을 만드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리고, 아빠가 되보고 싶은 맘도 분명히 있었다.
"으음…"
그는 애액을 흘려대는 계곡살의 사이에 우람한 육봉의 끝부분을 잇대고는 문질러 대었다. 그러자 육손의 조개 역시 사내의 육봉을 원하는지 살짝 입을 벌리며 귀두 부분을 쏙 물어왔다. 따뜻하고 미끌거리는 부드러운 점막 지대가 가장 민감한 부분을 감싸오자 육손과 모용환은 동시에 몸을 떨었다.
"후우. 간다?"
육손은 대답대신 모용환의 허리를 깊게 끌어안고는 그대로 하체를 모용환이 있는 쪽으로 단번에 밀착시켰다.
"하아… 아앙!"
색정어린 신음성은 육봉이 뿌리까지 들어오자 절정에 달했다. 육손은 두껍고 단단한 살덩어리가 질벽을 꽉 채운채 몸 깊숙한 곳에서 꿈틀대자 그 포만감에 입술을 살짝 벌리고 조개에 더욱 힘을 주어 조여대었다.
정상위 자세… 모용환은 육손의 젖가슴을 양 손에 터뜨릴 듯 세게 움켜쥐고 그녀를 침상 머리맡 쪽으로 밀치며 하체로 내리 찍었다. 그의 허리에 휘감긴 소녀의 허벅지는 사내의 거친 움직임에 발맞추며 들썩였다.
육손은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유방을 떡 주무르듯 주무르는 모용환의 팔을 잡았다.
"아파! 하으윽… 손… 떼! 아응…"
"임마. 너 나중에 젖 물릴려면 이 정도로는 턱도 없어. 만져주면 커진다."
확답도 듣지 않고 마음대로 임신을 확정지어 버리는 모용환이었다. 그러자 육손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하긴, 그녀의 기억 속에서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마을 아낙들의 가슴은 대개… 컸다. 보통 유선이 발달하면서 커지는 것이었지만, 이런 쪽으로는 무지한 그녀가 알 턱이 없었다.
"그…런 거야? 아흑! 그래도… 살살해! 아아아…"
통증으로 가련하게 떨고 있는 육손의 사슴 같은 목덜미를 핥아내린 모용환은 고통과 쾌락이 반쯤 섞인 신음성을 내뱉는 육손의 입술을 자신의 입으로 틀어 막았다. 그리고 빨간 손자국을 뽀얀 젖가슴에 새겨대던 거친 애무에서 분홍색 유두 주변의 유륜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후읍… 흐읍…"
모용환의 입술 때문에 숨쉬기가 어려워진 육손은 코로 쌔근쌔근 뜨거운 숨결을 내뿜으며 자신의 혀가 입 안으로 침투해 들어온 모용환의 혀와 얽히고 섥히는 것을 느꼈다.
척! 척! 척!
"우움… 읍! 으응… 음…"
능란하게 육손의 윗입과 아랫입을 탐험하던 모용환은 달콤한 입맞춤을 계속함과 동시에 젖가슴 주변을 쓸어가던 손으로 오똑하게 고개를 내민 그녀의 유두를 이리저리 핑그르르 돌려가며 애무를 했다.
육손은 모용환이 삽입을 하면서 교묘하게 발기된 음핵 주변을 몸으로 문질러대자 짜르르 울리는 듯한 감각에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목구멍에서는 환희의 감창소리가 연신 치밀어 올랐지만 입 안을 훑어대는 모용환의 혀 때문에 제대로 신음하지도 못했다.
쾌락으로 점철된 그녀의 눈이 서서히 풀려갔다.
"후우!"
"아응! 아으… 흑!"
길고 긴 입맞춤을 끝낸 모용환은 그녀의 입술에서 입을 떼고 육손의 종아리를 양 손으로 잡고 침대 밑으로 내리 눌렀다. 그러자 자연 그녀의 등이 새우처럼 휘어지며 둔부는 위로 높게 치솟은 형태가 되었다. 허벅지와 젖가슴이 딱 맞닿은 육손은 모용환의 장대한 육봉이 더욱 깊게 들어옴을 느끼고 눈을 하얗게 치떴다.
"하악! 아, 아… 난 몰라… 조, 좋아…"
"안에… 싸도 되냐?"
모용환은 금방이라도 분출할 듯한 위기감에 겨우 진퇴운동을 멈추고 힘겹게 물었다. 그러나 남녀 둘 다 이미 반쯤은 이성을 잃고 있었다.
"응, 응! 빠, 빨리!"
"그럼… 후욱!"
찰싹! 찰싹! 찰싹!
모용환이 그대로 육손을 하체로 찍어누르자 남녀의 사타구니살이 세게 맞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체위상 육봉이 드나드는 결합부를 바로 앞에서 보고 있던 육손은 커다란 육봉이 자신의 소중한 곳을 드나드는 것을 보며 알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그의 손에 꽉 쥐어잡힌 허벅지는 멍이라도 들 듯 했지만 그녀는 그런 아픔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 이제는 눈을 꼭 감고 육봉을 조이는 조개에 더욱 힘을 주며 그의 사정을 도왔다. 급격하게 조여오는 조갯살에 모용환의 노젓기는 점점 더 맹렬해지고… 커다란 침상은 부서질 듯 연신 삐걱이는 소리를 내었다.
"하으응… 아으아으… 하아… 혀…어엉…"
"헉… 헉…!"
사정의 순간을 맞이한 모용환은 육손의 허벅지를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며 허리를 밑으로 최대한 밀어넣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거대한 폭발.
"아아아앙!"
"우웃!"
그의 육봉은 미칠듯이 압박해오는 소녀의 공격을 당하지 못하고 결국 그녀의 자궁에 뜨겁고 끈적한 씨앗들을 잔뜩 쏟아부었다. 육손 또한 정액들이 뱃속에 울컥울컥 비집고 들어옴과 동시에 황홀경에 빠져들며 감로수를 흘려대었다. 엉덩이가 위를 향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사정한 애액이 어찌나 많은지 결합부 사이를 꾸물꾸물 흘러나와 육손의 국화에 조금 고였다가 미려한 둔부의 선을 타고 희멀건 액체가 흘러내렸다.
"아아… 꽉 찼어…"
정신을 차린 육손은 살짝 볼록하게 솟은 아랫배를 어루만지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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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h씬 .. 정말 기숙사에서 이거 하나쓰려면;; 미친다 -_-;;; 화타는 수춘성에서 가난한 성민들을 상대로 의술을 베풀다가 진의 침공 소식을 듣고 몸을 피한 상태였다. 일개 의원인 그에게 진에서 무슨 해를 끼치겠느냐마는 그는 일개 의원이라 치부할 수 없는 의술을 지니고 있었다. 진에서 그를 어떤 식으로 이용할 지 알 수 없었고, 한만큼 그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는 황실이 있는 곳도 없었기에 화타는 사실상 한의 어의(御醫)라 봐도 무방했다.
현재 그는 시상에 있는 황궁에서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화타는 모용환이 원군을 이끌고 나간지 얼마되지 않아 세 명의 여인들을 불러 모았다.
그의 앞에는 황제인 유비와 열왕 조조, 그리고 소교가 앉아 있었는데, 원래라면 유비가 상석에 앉아야 하지만 예전에 그에게 의술을 배웠던 유비는 감히 스승의 머리맡에 앉을 수 없다며 극구 화타를 상석에 앉힌 것이었다. 황제가 스스로 아래에 앉으니, 당연히 조조 또한 그녀를 따랐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황궁에서 가장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 유비는 내정 전반을 주유와 제갈량에게 맡기고 있으니 %26#8211;특히 지금 같은 전시에는 더욱 더- 조례시간에만 얼굴을 비추었고, 조조는 명예직이었으니 할 일이 있을 턱이 없었다. 소교는 전쟁이라는 상황에 자극받아 더욱 열심히 무예를 수련하는 대교와는 달리 학문을 지도해 줄 스승들이 모두 바빠 아무런 일이 없었다. 그저 유엽의 대장간에 들르는 것이 하루 유일한 일과라고 봐도 무방했다.
늘 곁을 지키는 장비는 대교의 간청에 그녀의 수련을 도와주러 간 고로 홀로 다소곳하게 앉아 있던 유비는 급한 일이 있다며 불러 놓고도 침묵만을 지키는 화타를 의아하게 여기며 입술을 열었다.
"황사(皇師). 어인 일로 부르셨나요?"
"허허. 폐하, 노부는 그런 칭호를 감당키 어렵습니다. 말씀을 낮추십시오."
"소녀 어떻게 스승님께 말을 놓겠습니까. 그리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유비가 고집을 꺾지 않자 화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몇 번을 말해도 유비는 이미 결정한 일이라면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는 그런 것을 따지기 위해 만든 자리가 아니었다.
"휴우. 소인이 세 분을 청한 것은 상국에 대한 일 때문입니다."
"예?"
조조는 별 반응이 없었지만 모용환을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한 유비와 소교는 깜짝 놀라야 했다. 화타의 어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좋은 일이라면 이런 식으로 말할 리는 없을 것이다.
"상공께… 나쁜 일이라도 생겼나요?"
유비는 눈썹을 가늘게 떨며 물었다. 소교 역시 묻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이 자리는 황제와 왕이 있는 자리. 감히 자리를 같이한 것만도 무례라고 할진대 허락 없이 입을 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쁜 일이라면 나쁜 일입니다. 천고의 자질 덕분에 오히려 몸을 망치게 생겼으니…"
"그게 무슨 말인가요!"
"세 분은 장차 상국의 반려가 되실 테지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십시오. 제게 의술을 배우셔야 합니다."
"의술이라니요?"
"……!"
세 사람이 감을 못 잡는 것처럼 보이자 화타는 길게 탄식하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두 사람과는 달리 시종일관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조조를 보며 걱정스런 눈길을 보냈다.
'감정이 없다더니, 마음이 병이 깊구나.'
"저는 일전에 수춘에서 상국과 인연을 맺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제갈량이 원술의 휘하에 있을 때, 그녀의 계략에 빠져 주유와 태사자가 인질로 잡히고 모용환이 죽을 위기를 넘겼을 때의 얘기였다. 그 때 만신창이가 된 모용환을 화타가 신기의 의술로 치료해 주었다는 것을 그녀들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화타에게 보내는 후원에는 그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일전에 상공께 들은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얘기가 쉽겠군요."
화타는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모용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처음 기절한 상태의 상국을 만났을 때는 참 놀랐었지요. 인세에 이런 몸을 가진 사람이 있다니… 잘 발달된 근육들과 균형잡힌 몸은 하나의 조각과도 같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그와 같은 몸을 지닌 사람은 감히 없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의 몸은 조물주가 빚은 최고의 작품과도 같습니다."
화타의 의미심장한 말에 유비와 소교는 목덜미가 잔뜩 빨개진 채로 고개를 숙였다. 정사를 나누면서 몇 번이고 자신들을 무릉도원에 보내준 그 몸을 어떻게 잊겠는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절대 그런 몸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절대라고 하기엔 좀 그렇군요… 정정하면, 상국의 나이에 그런 몸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눈 앞에 멀쩡히 그런 사람이 나타났으니 안 믿을 수도 없고… 어떤 천고의 기연을 얻었는지는 몰라도 상국의 몸은 아마 만들어진 몸일 것입니다."
"만들어진 몸?"
"제대로 수련을 해서 만든 몸이라면 그렇게 틀이 잡힐 수가 없지요. 일전에 상국에게도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무슨 특별한 방법으로 수련을 하느냐…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기연을 얻었다고 생각할 수밖에요."
"그러면 좋은 것 아닌가요?"
화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순히 생각한다면 분명 좋은 일이지만, 모용환의 경우에는 그 이후가 문제였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몸, 쉽게 조화지신(調和之身)이라고 하겠습니다. 조화지신을 가진 사람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수련을 해서는 안됩니다. 조화지신은 온 몸의 근육과 뼈대, 기혈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상태, 말 그대로 더 이상 발전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그 자체로 완벽한 몸입니다. 무(武)의 극한에 이를 수 있는 육체지요. 하지만 조화지신을 가진다면 모순되게도 무력이 점점 떨어지게 됩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그녀들이 알 턱이 없었다.
"왜… 어째서죠?"
"무예는 형을 익히고 몸을 단련해서 효율적으로 무기나 육체를 다루는 공부지요. 그리고 그 무기에 맞게 근육을 최적으로 만들게 되는데, 예를 들면 창술을 익히기 위해 하체와 팔 힘을 수련하는 것이 그런 이치입니다. 그리고 창술을 익히다 보면 따로 수련을 하지 않아도 자연히 그 쪽의 근육들이 발달한단 말입니다.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쿵!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은 유비였다. 그녀는 파리한 안색으로 입을 가렸다. 그러지 않으면 비명이 새어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교는 아직 어리둥절한 듯 했고, 조조는 통 속내를 알 수 없었다.
"몸이… 망가지겠어요…"
"바로 보셨습니다. 조화지신은 이미 완벽한 육체… 더 이상의 수련은 의미가 없지요. 하지만 따로 무예를 익히다 보면 불필요한 근육들이 생기게 됩니다. 이미 그 자체로 최강의 힘을 낼 수 있는데도, 균형에 금이 가서… 끝내는 붕괴하게 됩니다."
"아!"
그제야 소교도 일의 심각성을 알아 차렸는지 눈을 동그랗게 치떴다. 화타가 이런 말을 꺼낼 정도라면 모용환에게 닥친 문제가 이제 넘겨버릴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것일 터.
"상국은 아마 이 사실을 모르고 있을 겁니다. 수련을 할수록 오히려 몸이 망가진다니, 믿으려 하지 않겠지요. 몸의 붕괴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그렇게 쉽게 망가지지 않아요. 더군다나 조화지신이라면 더욱 그렇지요. 하지만 기량 퇴보는 어쩔 수 없습니다. 모든 면에서 훌륭한 육체가 몇몇 기예에 특화된 몸이 되는 것… 현재 상국의 상태가 그렇습니다. 상국이 익힌 무예가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무예에 익숙해지면서 원래 힘을 발휘하는 것 뿐인데, 상국은 스스로 수련의 성과가 있다고 믿고 있을 겁니다. 정작… 육체는 쇠퇴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
사실이라면 너무 잔혹한 일이었다. 피땀 흘려 노력해서 얻은 결과가 오히려 안하느니만 못한 것이라니. 이 말을 듣고 모용환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그럼 수련을 멈추면 되지 않나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수련을 멈추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역시 쇠퇴는 그대로 진행됩니다. 최고의 몸을 유지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지요…"
회의적인 화타의 어조에 유비는 다급하게 말했다.
"그, 그럼…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황사의 말씀대로 저희가 의술을 배우면 되는 건가요?"
"의술이라기 보다는 가벼운 안마술(按摩術)입니다. 불필요하게 단련된 근육들을 풀어주고, 몸을 최적의 상태로 만들어주는 의술이지요. 지금까지 그 일에 몰두해서… 조만간 제가 상국의 몸에 직접 시술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전쟁이 터졌고, 그럴 틈도 없게 되었군요. 허허… 이 또한 하늘의 안배이려니 생각하고 있습니다. 노부는 앞으로 얼마 살지 못하고 기력도 많이 쇠해서 상국의 몸을 언제까지나 봐줄 순 없습니다. 그러니 내자 되실 분들이 배워두는 편이 앞날을 위해서도 좋을 겁니다."
"배우겠어요!"
"저, 저도…"
두 사람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바로 나섰지만, 조조는 화타를 똑바로 응시하고만 있을 뿐 즉각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열왕 전하께서는…?"
"배우지 않을 생각이다."
예상외의 대답에 화타는 물론이고 유비와 소교 또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 안마술이라는 것을 하게 되면, 상국은 아마 욕정을 참지 못할 것이다. 내 말이 틀린가?"
직설적인 그녀의 말에 화타는 헛웃음을 지었다.
"허허. 이런 전신 안마는 탈의가 당연한 것. 소인 같은 꼬부랑 늙은이가 시술하면 모르되, 절세가인들이 몸소 건장한 사내의 몸을 주무른다면 그 혈기가 어디가겠습니까? 더구나 거리낄 것 없는 부부지간이라면…"
"모용 상국은 날 안지 않겠다고 했다. 때문에 그것을 배울 수 없다. 우린 명목상의 부부지간일 뿐이다. 나 역시 굳이 쓸데없는 짓을 하고 싶지 않다. 서로 간에 정 같은 건 없다."
"허어…"
조조의 단언에 화타가 안타까운 탄식을 흘릴 때, 유비는 도리질치며 나섰다.
"그건 아니에요. 조조님도 배우셔야 해요."
"폐하, 상국과 소신은…"
"분명 상공이 그런 말을 하기는 했지만 앞에는 전제가 붙지 않았던가요? 조조님이 밝게 웃을 수 있을 때까지 안지 않겠다고 한 것이지요."
"전 앞으로도 그대로일 겁니다."
"앞날은 두고봐야 알아요. 계속 그런 채라면, 조조님이 너무 불쌍하잖아요."
계속해서 거부의 말을 꺼내려던 조조는 불쌍하다는 소리에 말을 뚝 멈추었다. 누가 불쌍하단 말인가? 천하의 조조가?
"폐하께서 실언을 하셨습니다. 소신은 어려서부터 한황실의 일족으로 부족함없이 자랐고, 일찍부터 천하에 뜻을 두어 중원에서 거병하여 천하를 아우르는 세력을 만들었었습니다. 지금 역시 군주는 아니지만 제국의 왕이 되었으니, 결코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정정해 주십시오."
무섭게 변해버린 조조의 분위기에 소교는 작게 몸을 떨었다. 감정이 없다지만, 지금 조조는 분명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안색은 평소 그대로 차분했지만 어조가 미미하게 거칠었다. 믿기 힘들었지만, 그녀는 노기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유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에요. 최고의 길을 걸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어땠나요? 어렸을 때에는 양친이, 나중에는 한팔과도 같았던 곽가님이 명을 달리하셨어요. 그 분들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이 조조님의 주위에서 목숨을 잃었죠."
처음으로 조조의 얼굴에 변화가 생겼다. 유비의 말을 들으면서, 그녀의 미간이 살짝 좁혀진 것이다.
"폐하. 그만 하십시오."
"울지도 못했잖아요."
"……"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울지도 못했잖아요… 그러니까 불쌍한 거예요. 슬프지 않았나요? 괴롭지 않던가요? 말로는 아니라고 해도 분명 힘들었을 건데… 꼭 상공 때문은 아니에요. 조조님은 외로워 보여요."
동정받고 있었다. 자기보다 여섯 살이나 어리고, 세상 경험도 훨씬 적은 여자한테. 자신이 무슨 일들을 겪어왔는지 알기나 하는 것일까? 조조에게는 유비가 너무 쉽게 자기에 대해서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더 이상 말해봤자 무의미하다. 조조는 다시 원래의 얼굴을 되찾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유비의 안타까운 시선을 뒤로 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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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쏘쏘리밧알라뷰 그 시각, 유엽은 뜻밖의 손님을 만나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자웅일대검을 막 완성하고 그것을 전해주기 위해 수춘성으로 가려고 채비를 꾸리던 때에 온 손님이었다.
그 사람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미남이었는데, 모용환이 선이 굵고 남자답게 생긴 미남이라면 그는 속된 말로 기생오래비처럼 미끈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그러나 짙은 검미와 사내다운 목울대는 당당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어 여성스럽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너… 정말 명이냐?"
의심스럽게 쳐다보는 유엽의 시선을 여유만만하게 받아넘긴 그는 씩 웃었다. 여인들의 방심을 두근두근거리게 할 만한 매력적인 미소였다.
"오랜만입니다. 누님.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군요."
"능글맞기는. 역시 문둥이는 아니었나 보구나?"
"후후. 그건 누님도 마찬가지 아니었습니까? 이 정도로 미녀이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전 웬만큼 추녀일 줄 알았는데."
"오호라, 머리가 좀 커졌다 이거지?"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어색함없이 정답게 대화를 나누었다. 오래전의 스승과 제자 사이,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들 사이에는 형용할 수 없는 끈끈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문둥이로 위장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받았던 멸시를 서로를 의지하며 견뎌내었으니.
유엽은 그 당시를 회상하듯 새삼스런 눈으로 자신 앞에 선 진명을 쳐다보았다. 그 작은 꼬마가 이렇게 어엿한 청년이 되다니.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 얼굴은 진짜냐?"
"누님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모르겠는데? 호호홋."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적잖은 감탄의 기색이 어려 있었다. 정말로 인피면구라면, 진명의 실력은 그녀 자신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피부에 감도는 혈색이나 체모 한올 한올이 도저히 인피면구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생기가 있었다.
'뭐, 진짜 얼굴일 수도 있으니까…'
스승으로서의 자존심이랄까, 유엽은 편한대로 그것이 진명의 진짜 얼굴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의 얼굴에 대한 생각을 접고 나자, 이번엔 진명의 갑작스런 방문 목적이 궁금해졌다.
"자. 이제 용건을 들어 보자."
"섭섭하군요. 그냥 누님 얼굴 보러 왔다고 하면 믿지 않으실 겁니까?"
짐짓 서운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진명이었다.
"흐응, 과연 그럴까? 내가 그리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이 넓은 땅덩어리에서 나 하나 찾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내가 모를줄 알아? 개인의 능력으로는 힘들지. 내 뒤를 어떻게 캤는지 정말 궁금한 걸?"
호락호락하지 않은 그녀의 태도에 진명은 미소를 지었다. 꽤나 영리한 여자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의 제자와의 재회 아닌가. 이런 자리에서 내심 이런 계산을 깔아두고 있었을 줄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뿐이야.'
"정말로 우연찮게 누님에 대한 얘기를 들었을 뿐입니다. 후후… 물론, 단순히 사제지간의 상봉을 나누려고 온 것은 아니지요."
대수롭지 않게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진명의 말에 유엽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지만 더 이상 추궁하지는 않았다. 예전부터 비밀이 많은 아이였다.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고, 서로의 선을 넘지 않으며 동거 생활을 해왔다.
'인맥만 있으면 뭐 어떻게든 알아볼 수는 있었을 테고… 그게 별로 중요한 사실은 아니지. 내가 너무 민감하게 굴었나?'
"오호호홋! 나한테 뭐, 청탁이라도 넣으려고?"
"으음. 비슷합니다."
"어?"
장난삼아 했던 말인데 진명이 손쉽게 수긍해 버리자 당황한 쪽은 오히려 유엽이었다.
"야. 이 사부는 관직도 없는데 무슨…"
"그래도 사적인 친분은 있을 테지요. 그저 제가 그 분들을 한 번 뵐 수 있게 해주시면 됩니다."
그 분들이라 함은 한나라의 실세들을 말하는 것일 터. 유엽은 꽤 세세한 부분까지 진명이 알고 있자 다시 한 번 진명의 정체에 대해 궁금증을 느꼈지만, 왠지 자신이 너무 빡빡하게 구는 것 같아 호기심을 접어 두었다.
"만나서 뭘 하려고?"
"당연히… 제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어서지요. 하지만 주군이 되실 분들은 직접 정할 생각입니다. 한이 아니라면… 진으로 가겠습니다."
직접 제국의 수뇌부를 만나보고 임관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말에 유엽은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진명은 무척 치밀했고, 머리가 뛰어났기 때문에 장차 한이 천하를 통일하는데 한 몫을 할 수 있을만한 인재였다.
'다소 감추는 게 많아 보이는 게 흠이지만… 등용 여부는 내가 결정하지 않으니까.'
"자리를 만들어 주는 정도라면 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진명은 머리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뭐, 어렵지 않은 일이니까…"
그러나 유엽은 고개 숙인 진명이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유엽은 너무 딱딱한 얘기만 한 것 같아 화제를 바꾸려는 듯 말을 돌렸다.
"아마 그 애들과 만나면 좀 특이하단 생각이 들 거야."
"그 애들? 그 정도로 친합니까?"
"아하하… 이것도 특이점 중에 하나랄까? 제국 수뇌부가 거의가 여자라는 건 알지? 사적인 자리에서는 전부 언니 동생하는 사이거든. 그 중 또 대부분이 모용 상국의 부인들이기도 해서 사이가 더 각별해. 다른 사람들도 불만이 있을 법도 한데… 그만큼 능력이 있으니까. 인정받고 있는 거지. 승상이나 어사대부가 이십대 초반이면 말 다한 거지."
"게다가 전부 천하 절색이시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진 또한 젊은 인재들이 많으니… 대륙 역사상 이토록 젊은 인재들이 비상했던 시기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송옥이나 반안과 비견될만한 미남인 진명의 입에서 여자의 미모를 칭찬하는 말이 나오자, 유엽의 신경은 자연 그쪽으로 쏠렸다. 다분히 격식조의 말이었지만 어쨌거나 진명이 여자 얘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관심있어?"
"하하. 누님, 무슨 소리십니까?"
"거의 임자가 있긴 하지만 한 명 정도는 소개시켜 줄 수 있는데? 애가 조금… 드세고 퉁명스러운 것이 흠이긴 한데… 장료라고."
"혈랑대의 대장 말입니까?"
"응. 단점이 많지만 미모로 어떻게든 덮을 수 있지 않겠어? 냐하하핫!"
"사양하겠습니다."
짓궂은 말에 진명은 쓴웃음을 입가에 매달고 손사래를 쳤다. 유엽의 눈에는 그것이 영락없이 누나의 장난에 어쩔 줄 모르는 순진한 남동생처럼 보였다. 여성편력이 많을 것처럼 생긴 주제에 이런 얘기에 얼굴을 붉히다니.
'이 녀석도 은근히 놀리는 재미가 있는데? 의외야.'
새로운 먹잇감을 발견한 그녀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 때, 진명은 은근하게 유엽의 귀가 솔깃해질만한 말을 꺼냈다.
"사실 관심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만…"
"응? 누구야? 누구? 말만 하라니까."
"…주 승상님입니다."
그 말을 듣자 유엽은 맥이 탁 풀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모용환과 엮인 여자들은 논외로 쳐야 했다.
"쯧쯧. 안됐다. 주 동생이 미인이긴 한데 남편도 워낙 잘나서 말이지. 넘을 수 없는 벽이야. 처음부터 이런 말 하긴 그런데 포기하는게 좋을 거야."
"글쎄요…"
진명이 애매모호하게 말끝을 흐리자 유엽은 진명이 너무 자신을 과신한다고 넘겨 짚었다.
"얼굴로는 상국도 만만치 않아. 무예도 천하제일을 다툴만 하고, 머리는… 흠. 이건 평하기가 좀 어려운가? 천재 같기도 하고, 바보 같기도 한데 말이야. 종 잡을 수가 없어."
"그런가요?"
"하여튼 껴들 여지는 없을 거야."
"새겨두도록 하지요."
하지만 눈빛은 전혀 유엽의 말을 수긍하는 빛이 아니었다. 유엽은 다시 한 번 진심어린 충고를 해주었다.
"정말이야. 한 귀로 흘리지 마."
"예."
'과연… 버림 받고서도 그 남자를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한이 견고한 이유 중 하나는 배신이 나올 여지가 없다는 거지. 주요 관직에 앉은 여자들은 모두 모용환과 연결되어 있어. 얼핏보면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아 보이지만… 그 구심점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보기엔 모래사장에 누각을 쌓은 꼴이야. 후후…'
이곳으로 오면서, 진명은 모든 계략을 짜둔지 오래였다. 이제는 실행만이 남았을 뿐.
"누님. 자리는 언제쯤이면 되겠습니까?"
"아. 일단은 내 집에서 지내.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는 않아도 될 거야."
진명의 머리가 다시 숙여졌다.
"고맙습니다. …여러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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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짧습니다.
세균이 침투했군요.
짤방은 진명 여자버전.
그런데 희한하게.... 체위에 대해서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더군요-_-;; 아니 그렇다고 쪽지로 문의하실 것 까지야...
정 궁금하시다면, h씬이 나오는 편마다 그 체위가 나오는 cg를 삽화로 올리면..
되나? 그래도 성인란인데 ㅋㅋ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진명은 늦은 저녁 시간에 제갈량, 주유와 독대를 할 수 있었다. 커다란 집무실에 달랑 세 사람만 있었기 때문에 다소 휑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런 것을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갈량과 주유는 유엽의 갑작스런 청에 의해 마지못해 독대를 허락했지만, 진명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진명을 만나고 나니 그런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제국의 삼공들과 마주하면서 눈썹하나 꿈쩍하지 않는 대담함이 있었고 매우 정중하면서도 결코 과례는 하지 않아 비굴해 보이지 않았다.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인재였다.
주유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진명의 인사를 받은 후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감히 독대를 청한 이유를 들어 볼까?"
진명과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은 주유는 매우 거만해 보이는 태도로 물었다. 다리는 꼬고, 턱을 괸채 탁자를 톡톡 두드린다. 그녀가 처음부터 이렇게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에는 물론 이유가 있었다.
'어디, 어떻게 나오는지…'
나름대로의 시험인 셈이었는데, 진명 역시 그 정도도 눈치채지 못할 사람은 아니었다.
"듣던대로 과감하신 분이군요. 그래도 소소한 대화 정도는 나눌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흥. 그 말은 폭급하단 뜻인가?"
"그럴리가요."
까칠하게 나오는 주유의 말을 진명은 유들유들하게 받아 넘겼다.
"사전에 듣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임관을 하러 왔고, 승상님과 대부께서는 제 됨됨이를 평해 주시고 가부를 결정해 주시면 됩니다. 저 또한… 그럴 생각입니다."
"건방지군."
"그렇게 보셔도 할 말은 없습니다만."
주유는 진명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능력은 논외로 치더라도 저 기생오래비 같은 얼굴에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몸은 뭔가. 사내면 사내답게 탄탄한 몸에 남자다운 선이 있어야지, 저런 약골은 딱 질색이었다.
지금은 능력만을 봐야했지만. 자연히 자기 남자인 모용환과 비교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주유와 진명이 치열한 설전을 벌이고 있을 때 가만히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제갈량은 화제를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는 입을 열었다.
"단순히 얼굴만 본다고 해서 그대를 평가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당연합니다. 해서, 전 두 분과 시국을 논하고자 합니다."
"흐응?"
무척이나 당돌한 말이었다. 자그마한 변방의 성 하나로 시작하여 천하의 삼분지 일을 차지하는 대제국이 된 한의 최고 관리들을 상대로 시국을 논하겠다니. 주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찬찬히 진명을 응시했다.
'애송인 줄 알았더니…'
허언을 내뱉을 위인은 아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있다는 소리였다. 제갈량과 주유의 흥미로운 시선을 느낀 진명은 속으로 조소했다.
'나 또한 진나라를 일군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들과는 생각이 틀이 달라. 이곳 사람들은 너무 막혀 있거든…'
"한이 진에게 밀리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뭐?"
"그게 무슨 소리죠?"
대뜸 튀어나온 말에 그녀들은 진명을 노려보았다. 한이 진에 비해서 세력이 조금 약하기는 하지만 밀리는 정도는 아니었다. 최근에는 수춘성을 불의의 기습으로 빼앗겼다가 더 적은 병력으로 역공을 가해 다시 손에 넣은 상황. 오히려 이 승리를 기반으로 우세를 다져가는 중인데 밀리다니?
설령 정말로 밀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승상과 어사대부 앞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부정하셔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역대의 고도들과 대도시들은 거의가 진의 수중에 있고, 한의 영토 중 절반은 변두리에 걸쳐져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대등한 싸움을 한다고 해도 최후에는 막대한 물자를 가진 진에게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전쟁이 길어졌을 때의 이야기다. 우린 불과 1년 사이에 이만큼이나 나라를 키웠고, 진과의 전쟁 역시…"
항변하는 듯한 주유의 말은 조금 힘이 빠져있었다. 지금의 말은 그저 부정하기 위한 급조된 변명이었을 뿐이니까.
앞으로의 싸움이 힘든 것은 사실이었다.
"단기전이 되리라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아닐테지요. 지금까지는 제후국들의 전쟁이었습니다. 때문에 5만이 넘지 않는 병사들이 전투를 벌였고, 단발성 전쟁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대륙은 이제 진과 한, 두개의 제국이 축이 되어 원소와 공손찬, 엄안 등의 제후들만 남았습니다. 앞으로 세력의 판도는 이 제후국들이 어디에 붙느냐에 따라 갈릴 겁니다."
"……"
"섣불리 전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한이 엄안을 친다면 원소가 진에게 붙을 테고,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할 수 있습니다. 공손찬의 세는 이제 쇠약해져 원소나 엄안에 비할 바가 못되니 논외로 치겠습니다."
조조의 패망 이후로 그녀와 밀약을 맺어 군사를 일으켰던 공손찬은 원소와 선비족을 동시에 상대하느라 이제 거의 지리멸렬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진과 직접 전쟁을 벌어야 하는 길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함부로 할 수 없지요. 만약 조금이라도 수세에 몰리게 된다면 대세는 진 쪽으로 기울게 되니 말입니다. 이것은 진 역시 마찬가지여서… 아무도 진이 건국 초기에 군사를 일으키리라 생각하지는 못했었죠. 그 덕에 한이 한방 맞은 것 아닙니까? 다시 수복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청산유수였다. 제후국을 치자니 다른 제후국이 진에 붙을 것 같고, 진을 치자니 단 한번의 전쟁에 국운을 건 장기전이 될 수 있는 데다가 잘못해서 수세에 몰리면 약삭빠른 제후국들이 진의 휘하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겉으로는 팽팽해 보여도 사실 한은 무척 나쁜 상황입니다. 외교적으로도 그다지 좋지 않지요. 엄안은 여기저기 눈치를 보고 있고, 원소와는 철천지원수 사이. 당장 원소가 진에게 붙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그랬다가는 끝장이 날테니까요. 대체… 이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수뇌부의 무능 때문입니다."
"오만이 지나치구나!"
"……"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제갈량은 아무 말이 없었고, 주유는 벌떡 일어나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진명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얼굴색하나 변하지 않은 진명은 말을 이어나갔다.
"상황을 뒤집을 기회는 많이 있었습니다. 가령, 저라면 이렇게 했을 겁니다. 조조가 공손찬과 협공을 하여 원소의 숨통을 조일 때… 텅 빈 조조의 성들을 모조리 차지하는 겁니다. 당시 조조군과 한은 동맹을 맺고 있었다지요? 그렇다면 사마의보다 먼저 조조군의 출병 소식을 접했을 테고, 사마의가 진류나 복양을 차지하기 전에 선점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더불어 소패나 하비도 말이지요."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는 주유의 옆에서 사태를 관망하던 제갈량은 진명의 말을 재촉했다. 그녀의 눈은 어느 때보다 깊게 침잠되어 있었다.
"조조의 군사들은 물에 약합니다. 전선도 별로 없고… 하지만 한에는 장강에서 단련된 수병들이 많이 있지요. 조조가 원소를 치러 간 사이, 황하 아래에 있는 조조의 성들을 모두 차지한다. 설마 같은 동맹군이 공격할 줄은 모를 테니 성들을 점령하기는 쉬울 겁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안 조조가 성을 되찾기 위해 도하하는 것을 수병들로 막는다. 쉽진 않겠지만 어려운 일도 아닐 겁니다. 당시 사마의는 채모를 통합하고 이유의 항복을 받기 전이었으니 한과 싸울 여력은 안되었을 겁니다."
제갈량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진명의 말을 가만히 듣다보니 갑자기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기억하기도 싫은 얼굴이.
"도하도 하지 못하고, 본진도 잃어버린 채 하북에 발이 묶여 버린 조조가 취할 행동은 무엇이겠습니까? 그저 불나방처럼 원소에게 달려드는 수밖에요. 원소에게 항복해서 당할 치욕에 비하면 차라리 전장에서 죽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조조가 열왕이란 직위를 받고 한에 있다는 것을 뻔히 아는데도 진명은 스스럼없이 이런 말을 내뱉고 있었다.
"공손찬과 조조가 연합해서 원소를 친다면, 특히나 그렇게 구석에 몰려 독이 바짝 오른 상태라면 원소를 이기진 못해도 최소한 양패구상까지는 갈 수 있습니다. 하북이 초토화되는 거지요. 그 후에는… 차려진 밥상을 먹으면 됩니다."
진명의 말이 끝나자 제갈량은 감았던 눈을 떴다.
'사마의…'
진명의 전략은 완전히 사마의의 방식과 판박이였다. 오로지 결과 위주, 다른 것은 신경쓰지 않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원하는 것을 취하는 방식. 그녀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실행할 수도 없는 방법이었다.
결과대로라면 한은 하북을 모조리 차지하고 중원지방 역시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완벽한 천하통일의 토대를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륜이라는 게 있다. 어떻게 안면을 싹 바꿔서 동맹국인 조조의 뒤를 칠 것이며, 극한 상황까지 몰아 하북을 폐허로 만들 것인가. 고립된 하북에서는 피터지는 대회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희생될 사람들이 대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병사들 뿐만 아니라 백성들까지 합하면 족히 수십만이 죽어나갈 것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쪽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도의는 지켜야 할 터. 이런 방식의 전략을 쓸 수 있는 사람은 한에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주유도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그런 짓을 할 수 있지?"
"역사는 승자의 편입니다. 한고조 유방를 물심으로 도와 항우를 패퇴시켰던 한신이, 후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마 한 황실의 대부분은 한신을 후에 타락하여 역모를 꾀하였던 역신으로 알고 있을 겁니다. 작은 것에 연연한다면 큰 것을 이룰 수 없습니다."
진명의 말에도 주유는 수긍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전 여기서 더 진보시킬 자신이 있습니다. 허나 선택은 두 분의 몫이겠지요."
진명은 이미 계산을 끝마친 상태였다. 그는 뚫어져라 제갈량을 주시했다.
'너흰 결코 날 내치지 못해. 내게서 사마의를 떠올렸겠지? 그렇다면 더더욱… 내가 필요할 거다.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날 놓칠 셈이냐? 제갈량.'
진명은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존재다. 이유는 현재 병으로 두문불출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진명은 행동에 제약이 없었다. 누구도 그녀가 진의 간자라는 것을 모르고, 그녀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조차… 사마의 뿐이었다. 서서가 본 얼굴조차 방통이라는 가면이었을 뿐.
'모용환이 내가 생각하는 그가 맞다면 내 존재를 의심스러워 하겠지. 하지만 그 또한 상관없는 일. 어차피 그는 스스로 무너지게 되어 있다.'
제갈량은 주유와 눈을 맞추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미 둘은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방식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사마의의 의도를 대략적으로 판가름할 수 있다는 데서 이 사람의 존재는 필요해. 의견을 절충하다보면 더 좋은 전략도 나올 수 있을 테고…'
'저 건방진 녀석은 내가 교육시키겠어.'
결론은 나왔다. 주유는 타오르는 눈으로 진명을 응시하며 말했다.
"내일부터 승상부로 나와."
그리고 더 이상 말하기도 싫은 듯 홱 몸을 돌려 집무실을 나가버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본 진명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첫날부터 미움을 샀군요."
"충분히 미움을 살만한 발언이었어요."
"그렇다고는 해도… 그게 사실입니다. 뭐, 두 분의 심정. 이해합니다. 지아비의 뜻에 따르는 것이 아녀자된 도리일 테니까요. 결국, 무능한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
모욕적인 말을 하고 사라지는 진명의 뒷모습을 본 제갈량은 어쩐지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을 믿고 저리 오만한 것일까. 그러나 아쉬운 쪽은 자신. 천하통일의 열쇠를 쥐고 있을 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이 정도로 벌을 줄 수는 없었다.
주유가 알아서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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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텍스트본 뿌리면 받으실 의향있으신분 계십니까? 요즘 보내달라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수춘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모용환은 몇 백의 호위병들만 거느리고 시상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물론 귀환길에는 장료와 조운, 육손 등 원군을 이끌었던 장수들도 뒤따랐다. 하지만 승리를 자축하는 병사들의 분위기와는 달리 선두의 장수들의 얼굴은 그렇게 밝지 못했다.
장료가 고순에게 전해들었던 말, 여포가 이미 한이 공격을 하기 전에 모종의 일로 성을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그녀에게서 접한 모용환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여포다. 귀계에 능한 사마의가 여포에게 무슨 지시를 내렸을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설마 수춘을 다시 빼앗길 걸 예측이라도 했다는 건가.'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 거라면 뭐하러 그 많은 물자와 병사들을 수춘성에 보냈겠는가. 그리고 객관적으로 봐도 수춘성의 수복은 운이 많이 작용한 결과였다. 만약 여포가 있었다면 결과는 크게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모용환이 죽기살기로 3명을 상대로 버텨낸 결과가 승리로 이어진 것이니까.
'여포보다는 덜 하지만 마초 역시… 강했다. 그 상태로 얼마나 더 성장을 할지…'
천하무쌍 여포는 이미 대적할 상대가 없을 만큼 강하다. 그것은 직접 병기를 맞대 본 모용환 역시 인정하는 바였다. 자신의 무력 또한 지난날과 비교해서 일취월장 했다지만 아직 부족한 감이 많았다. 특히 최근에는 조금이지만 몸에 피로를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 몇 날 몇 일 밤을 새워도 지칠 줄 모르던 몸이었는데… 기술적인 면에서는 발전했지만 육체적으로는 왠지 예전만 못한 것 같았다. 이런 자신에 비해서 일전에 상대한 마초는 그 기량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중인 듯 했다. 화웅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연의의 마초는 화웅에게 질 실력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마초는 화웅에게 패배하여 결과적으로 마등이 동탁에게 멸망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지만 일전에 상대한 그녀는 결코 화웅에게 질 실력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과 싸울 때도 전심전력을 다한 것 같지 않았다. 먹잇감의 상태를 가늠하는 이리의 눈빛이었다고나 할까. 비교적 마초가 소극적이었기에 모용환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돌이켜보면 전장에서 가장 먼저 발을 뺀 것도 마초였다.
'이것 역시 수상해… 날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도. 대체 무슨 꿍꿍이지?'
"형."
"왜?"
계속 모용환이 머리를 싸매고 있자 그 이유가 궁금해진 육손은 모용환에게 말을 걸어왔다.
"뭘 그렇게 궁상을 떨어?"
"…마침 잘 물어봤다."
혼자 끙끙대는 것보다는 머리 좋은 육손에게 상담을 하는 것이 편할 듯 했다. 모용환은 육손에게 아직 이런 사실도 알려 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실소를 흘렸다.
'그러고보면 군사는 이녀석인데. 언제부터 내가 이런 걸로 고민했다고…'
역시 아직 어려서 그런지 무의식중에 믿음이 잘 안가나 보다. 그런데도 임신시킬 생각은 잘도 했다고 스스로를 타박한 그는 입을 열었다.
"이번 전쟁… 미심쩍은 점이 너무 많아."
여포의 부재, 소극적인 마초. 후에 들리는 말로는 진의 패잔병들 사이에서도 방덕과 고순의 모습만이 보였을 뿐 마초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육손은 볼을 뾰루퉁하게 부풀렸다.
"뭐야, 그건. 난 곁다린가? 그런 건 좀 빨리 얘기해 줬어야지!"
"그러게 말이다. 장료랑 운아는 다 알고 있는데 왜 너한테만 얘기를 안해줬지?"
그야, 요 며칠간 육손과는 보자마자 옷부터 벗어제꼈으니… "으응… 잠깐만. 머리 좀 굴려 보고."
나란히 말을 타고 가면서 열심히 생각에 집중하는 육손. 모용환은 별 기대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방금 들은터라 별 정보도 없을 테고, 경험도 부족한 애송이가 무슨 결론을 도출해 내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래봐야 답 없다. 시상에 가서 량아나 유아가 머리를 맞대면 뭐라도 나올 것 같지만…"
"알 것 같은데?"
"……?"
"거 왜, 있잖아. 형이 나한테 써먹은 거. 빈집털이."
빈집털이. 모용환이 육손에게 자신의 전략을 알려 주면서 많이도 써먹은 단어였다. 모용환과 장료, 조운이 자리를 비운 틈에 한의 황제가 있는 시상을 친다. 일견 타당한 말이기도 했지만 모용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그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냐.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너무 낮아. 내가 없어도 한에는 걸출한 장수들이 많고, 시상에만 하더라도 십만이 넘는 병사들이 있어. 공성에는 수성의 두 세배가 넘는 병력이 필요하다. 이건 병법의 기본이야. 이미 수춘성 공략에 많은 병사들을 소모한 진은 그럴 여력이 없어."
그러나 육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그렇지만도 않을 건데…"
"흐음?"
"진나라 내에서 병력의 움직임은 극비야. 형도 알다시피 10만에 육박하는 대군이 수춘성을 향해 진군하는데도 우린 코앞에 닥쳐서야 알았잖아."
"그건 특별한 경우지. 전방 수백리에 걸쳐 엄청나게 통제를 했다고 하던데. 덕분에 지금 원성도 꽤 사고 있고…"
"특별한 경우라고 해도 그런 방식이 성공할 정도면 군사들의 훈련이 무척 잘 되어 있다는 증거지 않아? 대병력으로 이런 일이 가능하면… 몇십, 몇백 단위의 소수병들은 어떨까? 한적한 곳에 모이는 거라면, 잘게 나뉘어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나게 모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처음에는 육손의 말에 동의하지 않던 모용환은 차츰 그녀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도 충분히 타당했기 때문이다. 진나라는 차츰 군사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어가는 상태. 재정의 상당 부분을 군사력에 투자할 만큼 강병 육성에 힘을 쏟고 있었다. 때문에 나라의 안정은 늦어지고 있는 상태지만 당장의 성과는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반면에 한은 수비에 전념하면서 나라의 안정부터 꾀하는 상황. 국력도 진에 비해 뒤지는 한이 이런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오랫동안 두 셋의 세력으로 통일 상태가 지속되어 왔던 진의 영토에 비해 자잘한 제후국들이 단기간에 합쳐진 국가였기 때문이었다.
육손의 말은 계속되었다.
"이번에 전장에서 이탈한 장수들… 여포나 마초는 모두 마상 전투라면 제일을 다툴만한 무장들이야. 패왕기도 수춘성에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처음에는 있었다고 들었는데 전황이 불리해지니깐 바로 후퇴한 것 같아. 하긴, 지는 싸움에 그런 강병들을 소모하는 건 등신 같은 짓인걸."
"아직 언어교정이 필요하구나."
"핏. 지금 그게 중요해? 하여튼 평지에서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병대와 최고의 기병대장들이 빠져나갔단 거지. 보병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기동력이 빠른 기병대… 이상의 사실과 빈집털이를 조합해 보면 뭐가 나와?"
"나오긴 뭐가… 소패성?"
수춘 주변에서 주변이 평지로 둘러싸인 성은 소패성밖에 없었다.
"땡. 아쉽지만 아닐걸? 그 작은 성 하나 차지하려고 들인 비용이 너무 크지 않아? 형이라면 이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 그런 성 하나를 가지려고 하겠어?"
"그렇다면… 젠장. 전혀 모르겠다. 답이 뭐야?"
모용환으로서는 도저히 육손이 의도하는 답을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그가 포기선언을 하자 육손은 혀를 차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나라면 왕을 잡겠어. 황제 말이야. 하지만 시상은 강을 끼고 있는데다가 성벽이 가팔라서 공략이 어려워. 게다가 지키는 군사들도 많고. 수도는 건업으로 선포했는데도 왜 한이 굳이 황제가 머무는 곳을 시상으로 한 이유…"
그 이유는 진의 빠른 발호를 막기 위함이었다. 시상은 장강의 요지이면서 화남과 화중을 아우를 수 있는 군사적 길목이기도 했는데 그곳에 적국의 황제가 머물고 수많은 군사들이 주둔한다면 진으로서도 목 끝에 칼이 대어져 있는 셈이라 섣부른 공격은 할 수가 없으리란 생각에서였다. 이번에 멋지게 그 예상을 뒤엎고 선공을 당하기는 했지만.
"…그래, 그런 이유지."
"황제가 있으면 당연히 사람이 몰리게 마련, 하지만 시상은 아직 그런 대도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성은 아니야. 한현 같은 놈이 떵떵거렸을 정도로 작은 곳인걸. 자연히 수도 유지에 무리가 따를 수밖에. 하지만 폐하께서 계시기 때문에 단숨에 도약하고 있는 성이기도 해. 하지만, 시상을 임시 수도로 삼은 일차적 의미가 퇴색한 이 시점에서, 폐하의 안위까지 위태로워 진다면?"
"…무슨 불길한 소리냐."
"나라면 무릉이나 장사를 치겠어. 하지만 장사는 너무 머니까… 강릉 바로 아래 있는 무릉만이라도 차지한다면 한에게는 심각한 위협이 될 거야. 자칫 합공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시상이 함락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는 셈이지."
무릉과 장사. 둘다 기마병이 활약하기에는 최적인, 평야 지대로 둘러싸인 곳들이었다. 모용환이 보낸 장료와 조운의 병력들이 금선을 칠 때에도, 그녀들이 이끄는 기병들이 큰 활약을 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금선처럼 성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 실현이 불가능한 얘기였다.
"글쎄… 그렇단 얘기야. 하지만 무릉도 수춘처럼 중요한 요지임에는 틀림이 없어. 일단 무릉을 뺏기면 엄안과의 통상이 힘들어지니까… 자연 엄안이 진에게 기울 수밖에 없겠지? 엄안을 병합하기도 쉬워지고… 또 한이 혹시라도 시상을 버린다면 막대한 손해도 입힐 수 있는 셈이고…"
그럴 가능성이 적으리라 생각은 하지만 계속 듣다보니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뒤죽박죽이 된 머리를 부여잡은 모용환은 앓는 소리를 내며 말을 몰기 시작했다.
"젠장. …일단 가자. 량아의 의견을 들어봐야 겠어."
"아-. 나 좀 믿어 보면 안돼?"
"시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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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성인물을 출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ㅎㅎ; 그런데 메일로 다 보내려면 제가 죽어나네요 ㅠ 다른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짤방은 세력도.
마칠은 한나라의 병사다. 한이 건국되기 전부터 제후들의 밑에서 숱한 전란을 거쳐 살아남았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동료 병사들에게 존경받는 고참으로 행세하고 있었다. 승산이 없다 싶으면 가장 먼저 꽁무니를 뺐기 때문에 이렇다 할 전공도 없어 아직까지 말단 병사 신세지만, 그래도 6년 동안이나 전쟁터를 전전하면서 불구가 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존경받을 자격이 있었다.
이제 불혹을 바라보는 마칠은 여기저기 주름살이 깊게 파인 얼굴을 문지르며 졸음을 쫓았다. 나른한 가을, 성문 밖 초소를 지키는 일은 무척이나 고된 일이었다. 성문 밖에 위치한 마을들 중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있는 곳이었기에 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한창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수춘쪽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인데 무슨 일이 있겠는가. 전쟁이란 그저 강 건너 불구경 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마칠이었다.
그런 마칠을 보던 한 젊은 병사가 느릿하게 그에게 다가왔다. 이제 갓 군에 들어온 병사인데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했지만 그에게 꼬박꼬박 대형이라 불러주는 눈치가 빠른 녀석이었다. 그러나 눈꼬리가 축 처진 것이 그도 어지간히 졸리운 모양이었다. 평소라면 한창 오수를 즐길 시간대인데, 진이 수춘을 친 덕분에 진과 접경하고 있는 성 주변에는 경계 태세가 내려져 농땡이도 피우지 못하고 있었다.
"대형, 거 얘기나 좀 합시다."
"얘기는 무슨 얼어죽을. 저기 파리나 쫓아라."
시큰둥한 마칠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병사는 그의 앞에 털썩 주저 앉았다.
"에이, 그러지 마시우. 대형도 졸려 죽겠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그저 이럴 땐 계집들처럼 수다나 떠는게 제일 아니겠수? 요즘은 술도 마시면 안되니…"
"옆집 앵춘이가 어제 몰래 갖다준 걸 내가 모르는 줄 아는감?"
귀신 같은 마칠의 말에 병사는 찔끔했다. 모두 자는 시간에 몰래 홀짝이려고 고이고이 숨겨두었던 것인데…
"어, 어떻게 알았소?"
"여기는 내 손바닥 안이라니까. 으허허…"
'이놈아. 앵춘이가 잘하면 내 딸이 될 수도 있는 건 모르지?'
입맛을 쩝 다신 젊은 병사는 저녁에 그에게 최소 반병은 헌납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하고는 만사 포기한 표정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며 궁시렁댔다.
"진이 수춘에까지 쳐들어왔다지요? 거긴 내 생전 한번도 가본적 없는 곳인데 왜 여기까지 이 난리인지 모르겠습디다."
"젊은 놈이 애늙은이 같은 말투 하고는. 진나라나 한나라나 좀 큰 곳이더냐? 예전 같지가 않아. 저기서 전쟁이 나면 여기서 날 수도 있는 거고… 작은 나라들끼리의 전쟁이 아니다. 자그마치 두 제국간의 싸움이니까."
"언제나 끝날지 모르겄소."
"한쪽이 망하면 끝나겠지."
"그게 대체 언제요?"
"네 녀석이 앵춘이와 혼인해서 아들딸 낳을 때쯤?"
"에휴…"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걸 보니 요즘 사이가 그렇게 신통치는 않은가보다. 그래도 어제 곡주 한병 가져다 줬을 정도면 기대해 볼만도 한데… 젊은 것들 사이에까지 관여하고 싶지는 않은 마칠이었다. 혹시 앵춘어미와 잘 된다면 모르지만.
'내가 앵춘이 아부지되면 그 때는 어떻게 나오자 보자. 크허헛!'
내심 흡족한 생각을 하며 허허거리던 마칠을 미심쩍은 얼굴로 바라보던 병사는 잠이라도 깨려는 듯 손뼉을 짝 소리나게 치고는 말했다.
"이런 시시껄렁한 얘기는 집어치우고, 한번 가슴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이야기나 해 봅시다."
"가슴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얘기라니?"
"거 왜 있잖소. 대륙 최고의 장군은 누구인가! 하는 거지."
병사의 눈에는 선망의 빛이 듬뿍 어려 있었다. 천군만마를 이끌며 대륙을 누비는 각 제국의 장수들! 이들은 이와 같이 병사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결코 오르지 못할 나무는 아니다. 그 중에는 허저나 전위와 같이 출신이 비천한 자들도 있었다. 천생 신력과 전장에서 갈고 닦아진 무예로 왕후장상에 버금가는 위상을 세운 자들! 그리고 홀로 수십 수백을 상대하는 막강한 무용! 사람들은 으레 그들 중 최고를 가려 뽑기를 좋아했다.
한두번 도마위에 올라오는 화제도 아닌지라 마칠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야 이를 말인가. 천하무쌍 여포를 따를 자가 어디있다고. 그가 휘두르는 방천화극의 무게가 백근이 넘는다지? 날이 세워지지 않은 무쇠덩어리라도 그런 것에 맞는다면 곤죽이 되기 십상이니… 그게 사람인가? 거기다 대륙 최고의 명마 적토마까지 있으니 가히 인세 최강이라 부를만 하지."
"여포가 최강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래도 혹시 압니까? 특히 여포는 천하에 이름난 장수들과 제대로 된 싸움판을 벌여본 적이 없어서 실력을 가늠하기가 까다롭다고 들었수. 방천화극 같은 괴물을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이 당하기엔 하늘에 별 따기지만 그래도 천하명장들은 다르지 않겄소?"
병사의 말도 어느 정도의 타당성은 있었다. 실제로 여포가 공식적으로 자웅을 겨룬 상대 중 가장 강한 상대는 태사자였다. 일전에 사마의를 비롯한 조홍, 우금 등과 다수로 싸운 적은 있었지만 그 때에는 사마의가 일신의 무예를 감추고 있었고 같이 싸운 장수들 또한 태사자 같은 장수들과 비교하기에는 무예가 조금 떨어졌다.
"그래도 태사자와 싸워 이기지 않았나? 듣기로 아주 처참하게 당했다던데."
"결과적으로는 태사자 장군이 살아남았고, 또 아무래도 여자이니 좀 힘이 달리지 않겠소? 특히 수춘성에서 벌어진 첫 전투는 워낙 아군이 열세였다고 하던데… 여기저기 신경쓰다 보면 앗 하는 사이에 질 수도 있지요. 그리고 태사자 장군은 관우 장군님께도 진 전례가 있소."
아무래도 소속이 소속이다 보니 적장을 그렇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젊은 병사의 심리를 안 마칠은 피식 웃었다.
"듣고 보니 그렇구만. 그럼 여포와 겨루어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 태사자 장군보다는 강해야 한다는 거로군. 그런 장수는 누가 있지?"
"으음… 내 생각에는…"
태사자만 하더라도 대륙에서 손꼽히는 맹장. 섣불리 그녀 위에 있는 자를 가린다는 게 쉬울 리 없었다. 결국 젊은 병사의 입에서 나온 것은 특별한 게 아니라 누구나 태사자보다는 위에 있을만한 이름들이 거론되었다.
"일단 앞서 말한 관우 장군이 있지 않겠소? 팔십근이 넘는 청룡언월도라면 여포와도 어느 정도 대적할 수 있을 거고, 또 싸움은 무기 무게로 하는 게 아니니까 말이오. 원술 아래에 있을 때부터 신장으로 이름이 드높았던 관우 장군이 일순위요."
"큼… 신장이라면 최강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또 하후돈 장군도 있소.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았다는 소문도 있고, 절세명검 의천검으로 태산에서 헤아릴 수 없는 적병들을 베었다고 하오. 진에 그 무지막지한 놈 있잖소. 서황이라는… 그 놈이 지칠대로 지친 하후 장군을 얕보고 덤볐다가 한방 크게 먹고 달아났다고 하잖소."
최근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서황은 일전에 벌어진 국지전에서 전위와 수백합을 겨루는 기염을 토했다. 그런 자를 패퇴시킨 하후돈이 높게 평가받는 것도 당연했다. 자연히 마칠의 고개도 끄덕여졌다.
"허저나 전위 같은 맹장들을 휘하에 거느리던 대장군이라면 의심의 여지가 없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모용 상국께서도 능히 여포와 대적할만 하시지 않겠소? 문추와 함께 하북의 두마리 호랑이라 불리던 안량의 목을 쳤고, 저번에 들으니 위연 장군의 무기를 단숨에 날려 버렸다고 합디다."
"강동의 별이라…"
이후로도 으레 있을 법한 이름들, 전위나 방덕, 허저, 문추, 화웅, 마초, 고순, 장료, 장합, 감녕, 조운 등의 이름이 튀어나왔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것으로 따지자면 그들의 이름은 태사자 이상이라 보기 어려웠다. 동급의 무장을 서로 패퇴시킨 전력이 없기 때문이다. 여포나 관우는 태사자를, 하후돈은 서황을, 모용환은 안량을… 최강이라는 이름을 놓고 쟁투하는 강자들의 공통점은 '강자'라 불리는 자들을 한번씩 꺾었다는 것이었다.
"한번 그들이 붙는 걸 보고 싶군."
"대형도 그렇수? 뭐, 전쟁이 끝까지 가면 안 붙을래야 안 붙을 수 없을거 아뇨?"
"그렇긴 허지."
"기왕이면 여포놈을 바닥에 꿇려줬으면 좋겠는데."
주먹을 휙휙 휘두르며 병사가 말했다. 방금 말한 네 명, 그 중 셋이 한의 장수다. 여포가 아무리 압도적인 강함을 자랑한다지만, 패사할 가능성도 꽤나 높다고 할 수 있었다.
젊은 혈기를 바라보고 있는 마칠의 입가에 쓴웃음이 매달렸다. 서른 후반, 아직 젊다고 우길 수 있는 나이지만 숱한 고난을 거쳐오며 얼굴은 오십대 중늙은이처럼 겉늙었다. 과연 여포가 진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녀석아…"
피융!
"커흑!"
막 병사를 향해 뭐라 말하려던 마칠은 별안간 가슴을 움켜잡고 비틀거렸다. 삽시간에 붉게 물들어버린 그의 가슴팍에는 굵직한 화살이 깊숙하게 박혀 있었다. 그 광경을 본 병사는 벌떡 일어섰다.
"이게 무슨…! 크악!"
병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신의 목을 부여잡았다. 목을 정확하게 관통한 화살이 박힌 자리에는 피가 꾸역꾸역 새어 나오고 있었다.
"꾸르르륵…"
잠시동안 피거품을 게워내던 병사는 힘없이 풀린 눈으로 다시 주저 앉아버렸다. 아련한 그의 망막속에 언뜻 누군가의 인영이 맺히는 듯 했다. 이윽고 그의 상체가 힘없이 지면에 맞닿자,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 뭐야! 큭…!"
"적이다! 으아아!"
"아악!"
순식간에 피로 물든 초소. 그와 함께 죽음의 사신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혈향을 들이마시듯 투레질하는 말들. 그리고 그 위에 표정없이 몸을 실은 가죽옷의 병사들… 좀 전의 난리가 그들의 짓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시위를 매긴 활이 들려 있었다. 처음 모습을 보인 자들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뒤를 이어 족히 수백은 넘어갈 듯한 무수한 기마들이 후미에서 나타난 것이다.
습격자들 중 단연 돋보이는 자는 선두에 선 흑색 갑주의 사내였다. 거친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사내는 기골이 장대한 적색의 말을 타고 있었다. 말임에도 불구하고 살기가 번들거리는 눈을 한 붉은 거마는 사람도 가까이 하기 힘든 위압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위압감으로 치자면 거마 위에 탄 자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단신으로 천명을 압도하는 기백을 보이고 있는 검은 갑주의 사내의 흉흉함에는 산천초목에 숨을 죽이는 것 같았다. 사내는 빗발치는 화살 세례에 초토화가 되어 버린 초소 안을 훑어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죽었군."
"쥐새끼 한마리도 남겨 놓지 않았습니다."
"좋다."
수하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인 사내는 손에 쥔 방천화극을 스치듯 쓰다듬었다. 기분 좋은 촉감, 휘둘러지면 꼭 피를 보고야 마는 인육을 먹는 병기. 그 괴물이 지금 굶주린 배를 쓰다듬으며 짐승마냥 칭얼대고 있는 것 같았다.
"수춘이 다시 함락되었다고 했던가…"
자신이 없었어도 수춘이 함락될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던 모양. 우금이 포로로 잡히고 방덕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대체 어떻게 전쟁을 하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 중요한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결말은 이미 정해졌다."
히히힝!
일천여 기의 기마가 시체들만 남은 초소를 뒤로한 채 평원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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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주말에 올릴 수 있을지... 해외축구 보시는 분들은 알겠지만 이번주말 프리미어리그 일정이 ..... 빅뱅.
첼시 이겨야 한다......!!!
목요일, 7월 10
(SM소설,조교소설,MC물) 모용삼국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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